WednesdayColumn2012. 6. 6. 20:2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5521

 

올해로 미국에 와서 산지 꼭 10년이 된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미국에서 영어교육 전공으로 학위까지 마치고 현재 하는 일도 영어를 가르치거나 영어교육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데, 여전히 영어는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최근에 친구로부터 파티 초대를 받았다. 집 뒷마당이 아주 넓으니까 거기서 야유회를 할 계획이니 부담 없이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Chillie and Dog Party’라는 제목을 붙였다. ‘칠리는 고기와 각종 야채를 잘게 썰어 뭉근하게 오래 끓인 고기 죽 같은 것인데, 칠리를 대접하겠다는 말이군. 그런데 도그 파티라면 개들도 모여서 노는 파티인가? 마당이 넓으니까 아이들과 개들까지 모두 어울려 노는 파티인가보다. 우리 개 왕눈이도 데리고 가야지.’ 마침 이 때 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내 친구네 집에서 도그 파티가 있대. 왕눈이 목욕시켜서 파티에 데려 가려고!”



 내가 파티 얘기를 하자 전화기에 잠깐 침묵이 흐른다. “엄마, 도그 파티는 개 데리고 가는 파티가 아닌데요. 그 도그는 ‘핫도그’예요. 칠리와 핫도그를 제공하겠다는 말이에요.” 아들 덕분에 파티에 개를 끌고 가는 실례를 안 하게 되었다. 그 ‘도그’가 ‘핫도그’를 말하는 걸 나는 몰랐던 것이니….



 사실 핫도그(Hot Dog)만해도 그렇다. 내가 한국에서 알고 있던 핫도그는 막대기에 소시지를 끼고 밀가루 반죽을 발라서 기름에 튀겨 내던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소시지를 빵 사이에 끼워 먹으면서 그걸 핫도그라고 한다. 나는 소시지 종류를 안 먹기 때문에 평생 핫도그를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도그 파티’라는 단어를 보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개’일수 밖에.
 


핫도그뿐이 아니다.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미국의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는 ‘샌드위치’라고 부른다. 처음엔 그것도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었다. 비닐봉지를 ‘플라스틱 백’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언젠가 내 친구 영희씨(가명)가 영어를 배우다 저지른 실수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영어 ‘Dish’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접시’가 된다. 미국에 처음 와서 ESL 교실에 다니던 중이었는데, 미국인 선생님이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겠다고 하면서 “Bring a dish to share”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영어 초보자인 영희씨지만 ‘Bring a dish’라는 말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디시’ 정도는 한국에서 중학교때 배웠던 단어니까.



 미국 선생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난생 처음 초대받은 영희씨는 백화점에 가서 큼직하고 예쁜 접시를 하나 골라 예쁘게 선물포장까지 해 가지고 파티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음식이 담긴 그릇들을 한 가지씩 가져왔더라고.


 
Dish 는 ‘접시’라는 뜻도 있지만 ‘음식’이라는 뜻도 있다. 영희씨는 그것을 몰랐던 거다. 그뿐 아니라 미국 서민들의 파티란 것이 대개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함께 나누는 ‘팟럭(Potluck)’ 형식이란 것에도 깜깜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접시’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Plate(플레이트)’에 더 가깝다. 접시를 Plate 라고 말하면 혼동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Dish라는 말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실수를 했던 영희씨도 지금은 미국인 뺨치는 영어 실력으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웃으면서 옛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실수는 미국 생활 초보자들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어르신들도 실수담을 전하며 깔깔대기도 하신다.



언어를 배우면서 착각이나 실수는 누구나 한다. 심지어 모국어를 사용할 때도 뜻을 잘 모른다거나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수에 기 죽을 필요는 없다. 한 가지 실수를 했으면 새로 한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았는데도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서 나는 이 낯선 나라의 삶이 즐겁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착각도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어야 놀자!

May 9, 2012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2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1954

 

매년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미국 전역에서 걷기에 재미들린 사람들이 워싱턴DC에 모인다. 이들은 남들이 다 잠이 든 새벽 3시부터 조지타운에서 시작되는 포토맥 강변 수로를 따라서 하루에 100 킬로미터 행진을 한다. 이들이 100 킬로미터를 행진하여 다다르는 최종 목적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 국립 공원. 이것이 자신 없는 사람들은 아침 10시에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여 역시 하퍼스페리를 향해 걷는다.



1974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 내가 처음 참가하게 된 것은 지난해의 일이었다. 작년에 이 지면에 글도 쓰고, 주말 특집으로 행사 소개도 한 적이 있다. 지난 해에는 아들과 함께, 올해는 동행 없이 나 혼자였다. 하지만 350여명의 참가자들이 나의 길동무였다.

 


 
올해는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오후부터 비가 내릴 것이 예보됐다. 날도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작년에는 발걸음 가볍게 50 킬로미터를 마쳤는데, 올해는 어쩐지 처음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이미 절반 지점부터 나는 절름거리기 시작했고, 길에서 잠이 쏟아졌으며, 급히 먹은 샌드위치에 체한 듯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도착 지점은 한 없이 멀었다. 사람들이 절름거리는 나를 추월하여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앞에 차례차례 두 사람이 지나갔다.
 

 


한 사람의 셔츠 등판에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가 선명하게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는 문구였다. 고통은 순간이지만 견디기가 참 힘들어 보였다. 나는 그래도 이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또 한 사람이 나를 지나쳤다. 그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 중이었다. “난 지금 걷고 있어. 남편은 중간에 포기하고 나갔어. 지금 집결지에서 뜨거운 음식과 커피를 먹으며 쉬고 있어.” 누군가 걷기를 중도 포기하고 집결지에서 편히 쉬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게다가 다리가 잘 못 되었는지 나는 지금 절름거리고 있는데, 이런 최악의 상태에서 완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신의 계시다. 중도포기해도 살 길이 있다는 신의 계시임이 틀림없다. 이제 그만 걷자.’

 



 그렇게 4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10킬로미터를 더 걸으면 목적지였다. 어쩐 일일까? 생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견디고 꾸역꾸역 걷고 나자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마신 뜨거운 커피 덕분인지, 30여 분간의 휴식 덕분인지 나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다리는 여전히 절름거렸지만, 그래도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그래서 중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접어서 강물에 날려보내고 나는 다시 마지막 10킬로미터의 여정에 올랐다.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숲은 검게 물들었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날 저문 숲 속 길을 걸었다. 걷다가 다리의 고통이 극심해 졌을 때, 나는 ‘달리기’를 생각해 냈다. 걷기 자세에서 ‘달리기’ 자세로 바꾸자 오히려 고통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목적지까지 달리기 자세를 유지했다. 내 달리기 기록은 고등학생 시절, 체력장을 위한 1000 미터 달리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밤의 숲 속 길을 수 킬로미터를 혼자서 달리고 있었다. 절름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밤새들이 울고, 강변의 꽃들이 흰 별처럼 피어나 나의 길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도 50 킬로미터 행진을 완보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나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고통을 견뎌내는 시험 한 가지를 통과한 기분이다. 혼자서 밤의 숲 속 길을 달려본 그 기억은 내게 또 한 해를 용감하게 잘 살아낼 힘을 주는 것도 같다. 내년에도 나는 또 이 길을 걸을 것이다.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극복할 것이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

 



 이 행사는 매년 1월 말에 등록을 받는데 등록을 시작하자마자 하루 만에 신청 마감이 되는 편이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이 행사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된다. https://www.onedayhike.org

 

2012,5,2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5. 7. 23:43

 

(위 표에서 맨 위의 412번. 왼편에 등수가 나오고 오른편에는 각 휴게소에 들어가고 나간 시간 기록. 최종 도착시각 기록. )

 

 

공식 기록이 나왔다. 올해 50 킬로미터 걷기에는 189명이 시작해서 177명이 완보했다 (12명이 중도에 그만 뒀다)  그리고 전체 189명중에서 나는 146등이다. 하하하 (그러니까 오십명이 한반에 있다면 나는 40등쯤 하는 애다.ㅋㅋ. 한숨.팍 팍) 일등은 오후 세시반에 들어왔다. 아이구야. ...그러니까 이 기록표를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해. 내년에는 오후 일곱시까지는 도착을 해야 해.

 

 

아유, 운동 좀 열심히 해서 내년에는 50등안에 들어야 할텐데.  (사실 하퍼스 페리에 도착한 후에 두개의 높은 언덕을 올라야 하는 최후의 난코스가 있는데, 이때 바로 이 언덕코스에서 열명도 넘는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내가 언덕에 취약하다는 뜻이리라.)

 

작년 기록을 보니 도착시각이 10시 19분. (40분 단축.)  하지만 작년에는 몸이 아주 가벼웠고, 올해는 천근만근이었다. 작년에는 길에서 경치도 보고, 사진도 찍고 뭐 딴짓을 많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냈던 기록이다.  막판에는 찬홍님 부축하느라 기운 뺀것이고, 올해는 내 컨디션이 저조했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해.

 

(아래, 작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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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5. 1. 06:46

 

 

어떤 분이 방출한 행사 기념 사진 앨범속에 나도 하나 들어있다. (하하하). 내가 멀리서 남의 카메라에는 이렇게 잡히는구나. 제법 옷 색깔이 선명해서 여기 저기 구석에 내 모습이 많이 보이는 편이다. 하하하. 그런데, 군중속에 보이는 나는 참 작고 미미하고 그렇다. 그래도 참 쪼그만게 겁 없이 막 이 큰 대륙이 좁다고 돌아다니며 설치고 살고 있다. 난 이만큼 산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복되고 복된 삶을 선물 받았다고 보는 편이다.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여기는 50 킬로미터 시작지점이다. 화이츠 페리. 지금 반대 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이리 2.5 마일 갔다가 다시 되돌아서 하퍼스페리 쪽으로 계속 가야 한다.)

 

쩌어기, 기둥 옆에 서 있는 분홍 잠바. (하하) 나는 저기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미는 카메라로 기념 사진 찍어주고 그랬다. 기둥을 배경으로.  오른쪽 주차장 광장에서 모여서 주의사항 듣고 출발.

 

그러니까 여기까지 와서 찍고 되돌아서 가는 식으로 50 킬로미터를 채우는 것이다.  이 지점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도착하는대로 사람들 사진을 찍었다.

 

 

저기, 작고 씩씩한 내가 오고 있다.

 

엄마가 작년에 사다주신 장갑도 끼고. 나름대로 손 흔들면서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수고가 많으시다고 인사도 하고 그러고 있다. 어디가나 매너가 돋보이는 나. :-)

 

이 유쾌하고 인상 좋은 젊은 부부가 마지막 스테이션에서 내게 많은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밤에 셔틀버스 타고 디씨로 돌아올때도 함께 있었다. 한살짜리 딸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에서 봐주시고, 젊은 부부 가뿐하게 50 킬로 완보.

 

자원 봉사자들이 찍어서 공개하는 사진들이다.

 

 

처음엔 이렇게 줄서서 가듯이 걷지만 차츰 차츰 거리가 벌어지면서 밤이 되면 사방에 아무도 없게 된다. 마라톤 맨들은 해가 기울기도 전에 도착해버리고, 지친 사람들은 자정이 되어서나 나타난다.  나는 올해 고생을 하긴 했지만, 작년보다 기록이 훨씬 단축되었다. (곧 공식 기록이 발표 될 것이다). 작년에는 짐덩어리 찬홍님  부축해 드리느라  늦었고, 올해는 혼자 고생했지만 그래도 도착은 작년보다 훨씬 빨리 했다. (찬홍이가 이 얘기를 듣고 깔깔댔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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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4. 29. 20:53

 

츨발

 

 

 

체사피크 오하이오 수로의 시작점인 조지타운에서 수로변의 마일 포스트를 따라 이동하여 60.7 마일 지점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하퍼스 페리가 나타난다. 여기까지가 100 킬로미터인데, 덤으로  다리 건너서 언덕을 따라 1.5 마일 죽어라고 올라가면 볼리바 (Bolivar)라는 마을이 있고, 그곳 마을 회관이 집결지이다.  하루에 100 킬로미터를 완보하는 사람들의 이동 코스이다.

 

50 킬로미터만 걷는 사람들은 출발점에서 35마일 진행된 White's Ferry 에 집결하여 동일한 코스를 걷는것이다. 35 마일 지점에서 시작하면 마일리지가 모자란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35마일 지점에서 역으로 32.5 마일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전체 마일리지를 채우게 된다.

 

행사 참가자들을 위한 Support Station (도움센터)이 절반 지점부터 시작하면 네 군데에 설치된다 (그 전에도 있을텐데, 그건 내가 50 킬로 참가자라서 잘 모른다).

 

 

 

 

나의 경우, 올해는 시작 할 때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전날 피곤하게 이것저것 한 데다가 결정적으로는 잠을 설쳤다. 중간 시작지점 모임장소까지 가는 셔틀버스에서부터 꾸벅꾸벅 졸고 앉아있었다.

 

 

 

네개의 써포트 스테이션

 

 

 

1. 오전 10시.  35 마일지점에서 시작하여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35마일 시작 지점에 써포트 스테이션이 서 있다. 5마일을 걷는데 1시간 15분 걸렸다 (시속 4마일로 걸은 셈이다). 거기서 과일을 좀 먹고 견과류와 포테이토칩 조금씩 담은 봉지를 간식거리로 가방에 집어 넣고, 게토레이트 한잔 마셔주고 행진.

 

2. 42 마일 지점 써포트 센터 도착.  오후 1시 15분에 도착. 음료수 마시고 쿠키 두개 챙겨가지고 다시 출발. (먹을것을 한줌씩 갖고 다디다가 지치면 먹어줘야 한다.  배부르게 먹는것이 아니고, 시장기를 느끼지 않을만큼 야금야금 먹으면 좋은것 같다.) 전체 12마일 걸을 셈인데, 어쩐지 이 지점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서 괜챦아지겠지 생각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날씨는 전반적으로 아침부터 흐렸고, 오후부터는 비가 뿌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었다.  구름끼고 쌀쌀한 날씨라서 뜨거운 햇살을 피할수 있어서 한편 좋았지만, 좀 쌀쌀했다. 얇은 옷을 몇겹 입고, 쉼없이 걸었으므로 체온은 유지가 되었지만 약간 춥다는 느낌.

 

 

 

(햇볕가리개, 비가 떨어지면 우산대용, 누비라서 방석으로도 좋고, 만능인 내 모자. 앉아서 쉬거나 누워있을땐 이걸 반드시 방석, 베개로 썼다. 숙녀가 날 바닥에 막 앉으면 안되지~ 10여년전에 갭에서 5달라 클리어런스로 샀지 아마.)

 

3. 42-48 마일 지점 (12-18 마일걷기) 까지 걷는동안 몸 상태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선두그룹이었는데 내가 자꾸만 뒤처졌다. 내 걸음이 느려지고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속보 경주가 아니므로 상관 없었지만, 작년에는 내가 빠른 걸음으로 한명 한명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잡는 놀이를 했는데, 올해는 그 반대였다. 중간지점부터 엉덩이 근육이 아프기 시작했다. 특히 왼쪽은 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쑤셨다. 근육 어딘가가 쥐가 나는것 같았다. 이때부터 절름거리기 시작했다.  아픈 근육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살살 걷다보니 절름거리게 되더라.  그러니까, 다리뼈가 시작되는 엉덩이의 근육 뭉쳐있는곳 어딘가에 무리가 간듯 했다. 

 

 

(반다나 손수건을 얌전히 깔고, 샌드위치와 과일)

 

48마일 지나 도착한 써포트 스테이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길래 그것 하나를 억지로 먹었다. 포도몇알과 오렌지 한조각, 그리고 간식거리를 가방에 집어 넣고 다시 출발. 커피를 먹고 싶었으나 커피 받겠다고 서있는 줄이 길고, 야외에서 버너에 물끓여서 커피 내리는거라 언제 내차례가 올지 알 수 없어 포기하고 그냥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미 이 지점부터 나는 '중도포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이미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고,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엉덩이 부분의 근육이 아파서 한쪽다리를 절름거리고 걷는데다, 졸음이 쏟아졌고 (잠을 못잤으니까), 그리고 샌드위치를 억지로 먹은것이 얹혔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최악이었다).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지나쳐갔다. 심지어 나는 길가다가 보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동안 기도하는 사마귀 자세로 졸기까지 했다.  가끔 지나치는 사람이 Are you OK? 하며 물었다. 그때마다 얼굴을 들고 방긋 웃으며 괜챦다고 대꾸를 하긴 했는데, 사실은 죽을 맛이었다.  그냥 거기 누워서 자고 싶었다.  그런데 비는 후두둑거리고 떨어지고, 날은 춥고 (걷지 않고 앉아있으니 체온도 내려가고), 졸음은 쏟아지고, 속은 울렁거리고. 아아 미치겠네....

 

그런데 중간에 포기를 하려해도 다음 써포트 스테이션까지는 가야만 했다.  강변 숲길에서 혼자 포기한다고 누가 도와줄수 있는게 아니니까. 써포트 스테이션까지는 가서 '나 아파서 못한다....' 이렇게 신고를 해야 누군가 내게 교통편을 제공해줄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죽어도' 다음 스테이션까지는 가서 죽던지 말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절름거리면서 꾸역꾸역 ....

 

         <두가지의 메시지와 나의 선택: 흰 악마 검은 악마 >

 

 

 

이 구간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걷기가 지긋지긋하게 여겨졌고,  집의 침대가 한없이 그리웠고, 평생 절름거리며 살아야 하는 신체 장애인들의 고통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눈뜨게 되었고,  작년에 찬홍이가 이렇게 고통스러웠던거구나 깨닫게 되었으며, 나 스스로도 건강에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아아아. 중도포기의 의지를 불태우며 걷고 있는데, 나를 추월하여 앞서가는 사람의 셔츠 뒷판에 씌어진 선명한 문구,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  마라톤 참가 기념 셔츠인 모양이었다.  그 문장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동안 그 사람은 이미 저만치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 더 가니 뒤에 오던 사람이 전화를 받고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사람은 달팽이같이 절름거리고 있는 나를 지나쳐 앞서가면서도 여전히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는데, 통화 내용 --- "어, 스탠? 스탠은 아까 아까 중도 포기하고 지금 최종 집결지에 가서 뜨거운 췰리에 피자 이런거 먹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어.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난 괜챦아...."

 

아 그러니까, 중도 포기한 사람을 누군가가 최종 집결지에 데려다줬구나! 나도 포기하면 누군가 안전하게 데려다 주겠구나!  이건 신의 계시야!  중도포기하면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신의 계시야! 좋아, 다음 써포트 스테이션까지만 꾹 참고 가보자!

 

4. 이렇게해서 간신히 54 마일 지점의 마지막 스테이션에 도착 한 것이 오후 여섯시 반.  배도 안고프고, 마침 커피가 그득그득 담긴것이 보이고, 그래서 뜨거운 커피를 연거푸 두잔이나 마셨다. 커피를 마시니 정신이 나는 것 같았다. 비스듬하게 경사진 잔디에 머리가 아래로 가도록 거꾸로 누워서 두 다리를 올리고 몸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기한듯 쳐다보고 웃고 그랬다. 남들은 머리를 위로 두고 누워있는데 나는 머리가 아래로 가게 거꾸로 있으니까.  (다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니까 전체적으로 몸을 가볍게 해주려면 거꾸로 있어줘야 하는게 아닐까?)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나서 나는 서포트 팀을 살폈다. '누구한테 가서 중도포기 한다고 말을 해야 하나?' 관계자를 찾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어쩐지 내 상태가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커피의 각성 작용 때문인걸까? 엉치는 여전히 아프지만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가라앉고, 졸음도 물러났다. 나는 누운채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면서 깔깔댔다.  사이좋아 보이는 젊은 부부하고 종알거리는데 젊은 남편이 관계자에게 들었다며 "여기서부터 7.3 마일만 더 가면 끝이래"하고 알려준다.  그래서 내가 "거기서 마지막 1.5마일이 지옥이야."라고 말해줬다.  "지옥 포함 7.3마일이면 끝나는거쟎아"하고 그가 대꾸했다. 젊은 아내가 깔깔거리며 내게 힘을 내라고 했다.  니네들은 젊어서 좋겠다....난 지금 죽을것만 같다구.

 

한숨을 푹푹 내 쉬면서도, 나는 더이상 졸립지가 않고, 울렁증도 가라 앉았다는 것이 좋은 징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중도포기'의 생각을 포기했다.  설마 가다가 쓰러져 죽겠어?  그냥 가보자. 가보는거야.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렇게 내가 마지막 스테이션을 떠난것이 일곱시. 내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한시간에 3마일씩 두시간, 마지막 언덕길 30분. 이렇게 잡으면 될것도 같았다. 나는 음식도 먹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작년에 함께 걸은적이 있었던 신사 매트를 길에서 만났다. 매트는 막내아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져오고 나도 동행이 필요했다. 그런데 매트가 말했다, "넌 빨리 걷쟎아. 난 빨리 못걸어. 나때문에 뒤처지지 말고 빨리 앞서가도 돼." 그는 작년에 내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걷다보니 상태가 좋아져서 느리게 걷는 그를 앞질러 나아갔다. 엉치 근육은 여전히 아팠는데, 내가 달리기 자세를 취하니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걸을때는 아프고 달리면 안아픈거다. 걷기 근육이 다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달리기 자세로, 아주 아주 느리지만 달리기 자세로 바꾸고 계속 진행했다. 내 평생에 수마일 길을 달리기 자세로 가보기도 처음이네.  달리면 안아프니까.

 

도착

 

 

웃기게도 절름거리며 '중도포기'만을 생각하던 내가, 마지막 대략 5마일 거리는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거다.  나도 달리기가 되는 인간이구나~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려서 50킬로 지점에 도착한 것이 오후 아홉시.  그리고 가파른 언덕 두개를 올라가 집결지에 도착한것이 아홉시 반. 아, 해 낸것이다. 그것도 평생 안해본 장거리 조깅까지 구사해가면서.

 

여덟시 반까지도 강변 숲길은 훤하게 빛나고 있었다. 숲은 검고, 길은 희게 반사가 되었다. 왼편으로는 큰 강이 굽이치고 있었고 밤새들이 울었다. 참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그 이후에도 희게 반사되는 길과 얇게 낀 구름이 반사해내는 묘한 빛때문에 사방이 밝게 느껴졌다. 나는 가져간 손전등도 켜지 않았다. 신비한 밤의 빛을 나는 보았다.  그 신비한 빛속에서 절름거리던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내게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삶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고통과 대화하며 그를 물리쳤을때 내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런 많은 생각들이 강물처럼 굽이쳐 흘렀다. 어두운 숲길에 나는 혼자였지만 나는 대지와 강물과 숲과 새들과 신의 은총에 감싸인, 요람에서 쉬고 있는 아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던거다.   철저히 혼자서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것도 신의 선물처럼 여겨진다.

 

 

 

 

집결지인 볼리바 센터에서 후에 도착한 매트와 매트의 아들과 다시 만나고, 그리고 작년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보고,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게된 사람들과 가족처럼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매트는 내가 셔틀버스에 오르기 위해 떠나면서 "See you next year" 하고 인사를 건네자, 마치 먼길 보내는 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안아주었다. 참 착한 아저씨이다.  메트로 주차장에 세워놓은 내 차를 끌고 집에 오니 자정이 넘었다.  왕눈이가 미칠듯이 반겼다. 아, 지옥과 천국을 다녀온 길고 긴 하루였다.  내년에도  또 가고 싶다.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

 

 

 

 

맺음

 

 

빨리 걷는다--> 느려진다--> 절름거린다 --> 주저 앉는다 --> 일어난다 --> 걷는다 ..> 달린다.  아마 조금 있으면 날개가 돋을지도 몰라, 날개가 나오는 고통을 견딘 후에. 그러니까 고통은 선물이야. 난 이제부터 달리기 할래. 아니 어제부터 나는 나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대로 달리기를 시작해버린거야. 언젠가 날개가 돋을지도 몰라, 나의 의지가 아닌 신의 계획대로. 난 시험처럼 거쳐야 하는 고통을 잘 견뎌내면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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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25. 21:34

 

 

http://thebullyproject.com/indexflash.html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8282

 

최근 극장가에 ‘Bully (청소년 폭력)’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출시되었다. 공립학교 학생들이 학교나 스쿨버스에서, 동네에서 또래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언어,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사례들을 다섯 학생과 그 가족을 중심으로 1년 가까이 기록한 것이다.


 

아이오와주의 중학생 알렉스는 중산층 가정에서 조산아로 태어나서 몸이 허약하고 성장이 느렸지만,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동생들이 넷이나 있는데 집에서 설거지며 동생들 돌보기 등 부모님 잔심부름도 도맡아 하는 착한 아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렉스에게는 친구가 없다. 알렉스가 사회성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학교나 동네에서 ‘왕따’당하는 아이로 찍히고 말았다. 알렉스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스쿨버스 안에서, 학교에서, 어딜 가나 주변 아이들의 폭력에 시달린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그가 조용하고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크게 염려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카메라에는 그가 지속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는 것이 기록된다. 중간에 제작자가 폭력 장면이 담긴 장면들을 학교와 부모에게 보여준다. 부모는 분노하고, 학교는 침묵한다.


 

너무나 속이 상한 엄마가 울면서 알렉스를 다그친다. “넌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거니? 넌 그렇게 당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니?” 그러자 착한 알렉스가 아무 표정 없이 대꾸한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자꾸만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 느낌도 없어요.”


 

마침내 학교에서는 비디오 자료에 담겨있는 악동들을 개인면담하여 문제를 시정해보려 한다. 대부분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던 아이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대꾸했고, 그를 괴롭힌 아이들조차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폭력을 당하는 일에 익숙해진 아이와 남을 괴롭히는 일에 익숙해진 아이들, 바로 옆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내 알 바가 아니라며 신경 쓰지 않은 아이들, 그리고 운전에만 충실했던 스쿨버스 기사. 무정한 사회의 단면을 시골의 스쿨버스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프고 씁쓸했다.


 

동성애자로 낙인찍혀 학교에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로부터도 집단적 왕따를 당하고 동네에서도 설 자리가 없는 소녀가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보며 말한다. “비가 왜 오는가 하면, 사람들이 슬픔을 꾹꾹 참고 사는데, 그 슬픔이 모여서 비가 되어 쏟아지는 거야. 저건 슬픈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야.”


 

대개 청소년 폭력(bully)의 유형으로는 말로 약을 올리거나 모욕을 주고 겁을 주는 언어적 폭력, 밀거나 치고 때리고 찌르고 괴롭히는 신체적 폭력,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절교해 버리고 왕따시키는 사회적 폭력, 그리고 페이스 북과 같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저지르는 사이버 폭력 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폭력에 시달려 자살을 하는 사례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학교 교사들이나 교육관계자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한 학부형은 ‘플라스틱 스마일 (plastic smile)’이라는 말로 학교의 자세를 비난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저 위선적인 미소를 지으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잠정적인 통계에 의하면 해마다 1300만 명의 미국의 청소년들이 크고 작은 ‘폭력’을 당하고 있으며, 약 300만 명의 학생들이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결석을 한다고 한다. 학교폭력으로 자살을 하거나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미국 여러 도시에서 부모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실, 자식들을 그렇게 희생당한 부모들이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엔 괴로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라고 알렉스는 말한다. 우리들의 귀한 자식이 폭력에 이런 식으로 순응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내 아이가 남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게 방치해서도 안 된다. 다음은 학교폭력에 대항하는 웹사이트다. http://www.pacer.org/bullying/

Posted by Lee Eunmee
MyColor2012. 4. 22. 23:24

 

 

 

 

 

 

 

 한단을 민무늬로 더 짜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심술쟁이 왕눈이가 오늘은 곱게 인형친구들하고 '적과의 동침'중. 왕눈이는 내가 인형 만지고 그러면 질투가 나서 으르렁대는 편인데 오늘은 졸린지 가만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특한 왕눈 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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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4. 2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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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왕눈이 데리고 리버밴드에서 그레이트 폴스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폭포 입구쪽에 작은 시내가 흐르는데, 왕눈이를 쉬게 하려고 시냇가로 내려갔더니 왕눈님께서 작은 조약돌로 덮여있는 시냇가에 '털퍼덕~'  엎드리고 만다. 앞발을 물에 담근채 가끔 물을 먹기도 하고, 졸졸 흐르는 물을 쳐다보기도 하고. 혹은 시냇가의 풀들을 뜯어먹기도 하고 (왕눈아, 네가 양새끼로 보이는 구나. Mary has a little lamb!  너는 새끼양이고 나는 메리 놀이를 해야겠구나.)

 

폭포 내려다보고 돌아서는데 머리위에 아카시아가 주렁주렁.  한송이 따서 야금야금 먹었다.  옛날에 어릴때 시골에서 살때, 동네 아이들 (고모들, 오빠 언니, 이웃집 아이들)이 개울가에 몰려가 아카시아를 따 먹었다.  아이들 높이의 아카시아를 다 따먹으면, 그중에 나무를 잘 타는 이웃집 유순이같은 애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을 따먹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네살짜리 땅꼬마인 나는 고모들이 마지못해 노나주는 꽃 몇송이 얻어먹는것이 고작이었는데, 참 달고 맛있었다.  한국에서 아카시아가 지천으로 피어나지만, 내가 따먹을수 있는 나지막한 아카시아 나무는 없었다.  버지니아에 오니 나무들이 하도 많아, 아카시아도 많고, 미국 사람들은 꽃을 따먹을 생각을 안하므로 내가 원한다면 아마 아카시아로 배를 불릴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한송이 맛보는 것으로 이미 추억이 몸안에 가득해진다.  나는 되새김질 하는 초식동물 같아, 결국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시간이 내가 살아있는 시간보다 더 긴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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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2. 4. 21. 10:44

메릴랜드주, 항구도시 볼티모어 소재 '아메리칸 비저너리 아트 뮤지엄 American Visionary Art Museum'

공식 홈페이지: http://www.avam.org/

 

 

 

 

아래, 악기가 몸체인 거대한 새. 건물 윗층에 거대한 새 둥우리가 있고, 그 둥우리에서 사람들이 마치 작은 새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   아아, 얼마나 기발한가. 나는 이 광경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가끔 이 미술관 생각이 나곤 한다.

 

 

 

 

 

컬리지 파크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길 나선김에 볼티모어에 가서 오랫만에 아메리칸 비저너리 아트 뮤지엄에 들렀다.  입장료를 내고 입장할 생각은 없어서 바깥 조각 공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미술관 이름에서 드러나듯 수집품이 좀 특이한데 내가 세번 방문하고 대충 감 잡은바로는 (1) 평범하지 않은, 심지어 괴상스러워 보이고 이질적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정신현상과 관련된 주제들 (2) 움직이는, 장난감과도 같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조각작품들 이런 특징의 소장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 미술관에서 클랙식 명품을 기대할수는 없고, 다가오는 미래의 예술의 역할을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볼티모어가 사실 빈민구역이 넓게 퍼져있고, 가난한 어린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볼티모어에서 큼직한 미술관으로 (1) 볼티모어 아트 뮤지엄 (2) 월터스 아트 뮤지엄 (3) 아메리칸 비저너리 아트 뮤지엄 이렇게 세가지를 들 수 있다. 볼티모어 아트 뮤지엄은 공립기관으로 무료 입장. 월터스 아트 뮤지엄은 월터스 재벌 재단의 콜렉션을 소장하고 있다가 공익을 위해 기증되어 몇해전부터 무료 입장, 비저너리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비저너리 아트 뮤지엄의 경우 설립에 막대한 후원을 해 주신분이 특히 볼티모어 지역의 청소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몇해전에 조사한 내용을 생각나는대로 적고 있다... 나중에 자료 찾아보고 보강을.... )

 

 

위 사진의 오른쪽 (안보이는 곳에) 뮤지엄이 있다. 뮤지엄 뒷동산에 올라가서 발 아래 내려다보이는 볼티모어 하버 인근 풍경을 찍은 것이다.  사진 찍은 곳은 언덕 정상이다. 독립전쟁 유적지이기도 하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4. 2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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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주문한 신발 덮개가 왔다.  앞부분에는 고리가 달려서 운동화 끈에 걸면 되고, 뒷꿈치에는 찍찍이를 붙여서 고정 시키는 것이다. 물론 탈부착이 가능하므로 다른 신발 신을때는 거기에 부착 시키면 그만이다.

나는 등산화를 신고 장거리 워킹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요즘 등산화를 주로 신고 걸으러 나간다. (이 등산화를 신어보니 그 둔탁한 바닥이 의외로 편안하고, 산길에 안전해서 자꾸 신게 된다.)  등산화에 부착시키니 날렵한 맛을 덜하지만, 그래도 예쁘다.  군복무늬에 핑크색 입힌 원조는 (내가 알기로는)앤디 워홀 님이다. 워홀님은 내겐 충분히 매력적인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워홀무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 다음주 토요일이 바로 그 날이군.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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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Books2012. 4. 19.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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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커버, 어린이용 그림책이다. 197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가격은 1.5 달러였다.  아마존 중고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자신의 이름이 홀리 호비이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만들어낸 캐랙터에 그대로 붙였다.

 

전체 16 페이지.  한 소녀의 하루 일과를 담아냈다. 책 전체를 블로그에 올리면, 아무래도 저작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것 같아서 일부만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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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썬보넷을 쓰고 패치워크 에이프런을 두른 이 표지 그림이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홀리 호비 그림일 것이다. 이 그림을 베껴그리는 판도 있고, 수를 놓을 수 있는 디자인들이 다양하게 팔려 나갔고 아직도 여전히 생산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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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페이지에 딱 한가지 그림과 이야기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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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물장구를 치기 위해 웅덩이를 골라서 찾아다니는 우산 쓴 이 소녀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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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때는 이런 그림책을 가져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릴때도, 놈들이 사내놈들이었던 관계로 이렇게 고운 그림책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가 '응당' 누렸어야 할, 소녀 시절에 누렸어야 마땅한 것들을, 아직도 탐을 내고 있다. (노망이 난것도 아니고 말이지...)   헌책 주문해 놓고 며칠 기다리다가, 책 받아보고 아주 신 나셨다.   그냥 들여다보기만 해도 행복해.  아 아 일러스트레이션은 얼마나 멋진 예술의 한 영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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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18. 21: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4607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마음 놓고 길을 가자 새 나라의 새 거리!”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학교의 복도에서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좌측 통행’을 하라는 것을 골수에 새겨지도록 배우고 실천했다. 복도에서 좌측통행을 하지 않다가는 ‘당번’이나 ‘주번’에게 걸려서 칠판에 이름을 적히는 일이 허다했다. 새 나라의 어린이로서 나는 착실히 좌측통행을 몸에 익히며 성장했다.


 

그런데 십여 년 전 내가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학교 건물 계단을 오르는데 마침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 나오는 학부생들이 얌전히 ‘좌측 통행’을 하는 내 앞 길을 물밀듯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왼쪽은 비워놓고 복도의 오른쪽으로 파도처럼 밀려 내려와 얌전한 나의 좌측통행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참 공중도덕이 없는 학생들이로군. 미국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킨다고 하는 말도 다 거짓부렁인 거야!’ 미국에서 자동차나 사람이나 모두 ‘우측통행’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일을 겪은 이후, 복도에서 학생들이 통행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한 후의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미국 학생들의 통행을 방해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길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사람들도 보행할 때 마주 오는 사람과 지나칠 경우 각자 길의 오른쪽을 차지하는 ‘우측통행’이 이뤄지는데, 내가 자란 한국에서는 왜 차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이라고 가르친 걸까? 내가 추측하기에 학교 복도나 비좁은 통로에서 ‘좌측통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식민지 시절부터가 아니었을까 한다. 식민지 시절부터 ‘좌측통행’ 문화가 학교에 정착했고, 그래서 그것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고, 그것과 상관없이 한국의 도로 교통 시스템은 미국식으로 정착을 한 결과,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길이라는 현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미국에서는 오른쪽에 사람들이 서 있고, 급해서 에스컬레이터에서조차 걸어야 할 형편인 사람들은 왼편을 통해 걸어올라간다. 그래서 메트로역처럼 부산한 곳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오른쪽에 붙어서서 왼편을 열어 놓아 주는 것이 일반적인 에티켓이다.


 

날이 포근해지니 인근 공원으로 소풍이나 산책을 나가는 일이 잦아진다. 여기서도 ‘우측통행’의 원칙은 지켜진다. 특히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사용할 때에는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신경써서 우측통행을 하는 것이 좋으며, 친구, 가족들과 여럿이 산책을 할 때에도 주변에 지나치는 사람들을 신경 쓰고, 길의 절반은 열어두는 배려를 잊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때 걷는 사람이 진행방향 길의 오른편을 차지하고, 왼편은 누군가 지나 갈 수 있도록 남겨둬야 한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특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저 멀리 내 뒤편에서 “On your left!”라고 소리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당신 왼쪽으로 통과하겠습니다!”라는 신호다. 이럴 땐 좀더 신경 써서 길 오른편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통과하는 사람을 신경 써주는 제스처를 해 주면 그는 통과하면서 “Thank you!”라고 인사를 날릴 것이다. 만약에 산책로에 자전거를 끌고 간다면 “On your left!”을 열 번쯤 소리쳐서 연습을 하고 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녀들과 함께 공원에 자전거를 끌고 나갈 때도 이것을 숙지시켜주는 것이 좋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내가 빠른 걸음으로 앞사람을 추월해 갈 때도, 앞에 가는 사람의 왼편으로 통과하는 것이 좋다. 만약에 길의 오른편으로 가고 있는 앞사람의 오른쪽 구석으로 내가 통과를 하게 되면 상대방은 어딘가 ‘공격 당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무언의 도로 교통을 상대방이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끔 산책로에서 이런 미세한 무언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 나도 모르게 언짢은 기분이 드는데, 얼른 마음을 고쳐먹고 그에게 웃어준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저이도 어쩌면 나처럼 좌측통행 사회에서 새로 전입을 했는지도 몰라. 그래서 자신이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지. 차차 깨닫겠지.’

 

 

 

2012,4,18

 

 

 

* 전에 미국에서 수년간 살고 있는 한국인 대학원생과 함께 산책을 하는데, 자전거 탄 이가 On your left! 외치고 지나갔다. 나는 평소에 늘 듣던 소리니까 그냥 뒤도 안돌아보고 길을 좀 비켜주고 있는데 학생이 내게 묻는거다, "지금 저 사람이 뭐라고 한거에요?"  On your left.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왼쪽으로 추월한다고 신호 보내는거에요.  난 이미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낯설고 말귀도 못알아듣겠고 그런거다.  마찬가지로, 아마도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익숙한 정보들을 내가 놓치는 것이 아주 많겠지....   아무튼 나로서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생각'을 찾아내곤 한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4. 16. 08:15




I saw something moving gently on the surface of the river and snatching a fish!

The victim looked larger than the mouth of the serpent and I was wondering how it was going to cook and eat its dinner.

I was sorry to see that the fish was still alive and was trying to free himself from this monster's mouth.

Sometimes I feel something like I were trapped in a hell without exit and the only way out is 'eternal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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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11. 20:5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0990

 

 

 

 

 

 “여섯 살 때부터 나는 뭐든지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들었다. 50세가 될 때까지 수많은 디자인을 제작했지만, 70세가 된 후에야 동물, 곤충, 물고기, 식물, 나무들의 진정한 형상을 깨닫게 되었다. 86세가 될 때까지 나는 더욱 발전할 것이고, 90세에 예술의 진수에 좀 더 다가가 있을 것이다. 백세에 나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고, 백십 세가 되면 모든 점과 선이 살아 움직일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 남아 있을 사람들에게 내 말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살펴 주기를 부탁드린다.”


 

요즘 스미소니안 아시아 미술관인 새클러 미술관에서는 일본 화가 호쿠사이(1760-1849)의 ‘후지산 36경’ 판화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오는 6월29일까지 계속된다. 프랑스 파리의 풍경에는 뾰족한 에펠 탑이 들어가고, 일본 풍경에는 일본의 상징인 뾰족한 후지산이 많이 등장한다. 이 판화전의 작품들은 화가 호쿠사이가 애초부터 ‘후지산 36경’을 기획하고 작정하고 제작한 것이고 전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호사인 셈이다.



 

 판화가 ‘호쿠사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거리에서 포스터를 늘어놓고 판매하는 자리에서나 식당 등지에서 물거품이 일어나는 일본 파도 그림을 종종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강하게 여겨진다고 해서 미국 사람들 중에서 그 파도 그림을 방 벽에 붙여 놓는 이들도 많다. 바로 그 ‘파도그림’의 주인이 호쿠사이이다. 조선의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보다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비슷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이기도 하고 세상 만물을 다 그리고 싶어했던 그의 예술세계가 단원, 혜원의 세계와도 흡사하여 더욱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 화가가 후지산 36경을 제작할 무렵인 75세에 바로 위와 같은 술회를 한다. 여섯 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던 화가가 평생 직업 화가로 살아왔는데 70에 이르러서야 사물의 정확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 90쯤에나 예술의 진수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는 아직도 이뤄야 할 것이 많은 ‘젊은’ 화가였던 것이다.

 

 

 

 


 

최근 미국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 편 있다. ‘Jiro Dreams of Sushi(지로는 초밥 꿈을 꾼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현재도 일본의 작은 초밥 집에서 매일 손님을 위해 초밥을 만드는 85세 ‘지로’ 할아버지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나이 아홉에 집을 떠나야 했는데, 아홉 살 소년이 들은 말은 “너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었으므로 길거리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초밥 왕’이 되었다.


 

두 아들까지 모두 자신의 뒤를 잇는 초밥의 장인으로 성장시키고 일본 최고의 초밥 왕으로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은 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여전히 손님 열명이면 가득 차는 작은 식당을 지키며 아들과 제자들을 진두지휘하고 손님 접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꿈속에서조차 초밥 생각을 한다. 때로는 꿈에서 깨어나 “이거다!” 외치며 꿈 속에서 보았던 초밥을 만들기도 한다.



 

초밥에 완성이란 없으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하며, 그러므로 매일매일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고 그는 술회한다. 초밥을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므로 자신은 죽을 때까지 초밥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스크린에 비쳐지는,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맑은 표정의 자그마한 이 할아버지에게서는 어쩐지 레몬과 생강 향기가 감도는 것도 같다. 참 향기로운 사람이다.


 

벚꽃이 분분히 지는 봄 날 만난 두 명의 일본 장인 ‘호쿠사이’와 ‘지로’는 삶에 대한 긴 안목과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게 주어진 생의 절반도 살아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우리 삶에는 각자 크고 작은, 그러나 완수해 내야 할 사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이 백 살에 내가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데 나도 영롱한 삶의 열매를 만들고 사라지고 싶어진다. 이제부터라도 꿈을 꿔야 하리라.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4. 6. 17:26

 

 

 

2012년 4월 5일 (목),  운하 4마일에서 14마일까지 왕복

총 거리: 20마일

시간: 오전 8:45 - 오후 5:45 (9시간)

앉아서 쉰 시간은 30분도 안되고, 오가며 딴짓하고 한눈 파느라 거북이 행진. (거북이도 만나서 놀고...)

 

 

이번주가 내게는 스프링 브레이크이다.  집에서 책보면서 주변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래도 날 좋을때 20마일 한번 걷자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가방에 바나나 두개 넣고, 물 한병 담고. 점심을 싸기도 귀챦아서 베이글 가게에 들러서 계란 샌드위치 하나 사고.  포토맥 애비뉴에 차 세우고 10마일 걸어 갔다가, 간 것 만큼 되돌아 와야 하는 길. 목표는 그레이트 폴스.

 

부활절, 석탄알, 식목일이 모여 있는 일년중에 가장 '잔인한' 계절. 4월. '천국'가는 길이 이러할 것이다...라고 상상할 만큼 들꽃으로 덮인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민들레가 지천으로 깔려 있어서, 꽃을 따 모아서 화환을 만들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참았다... 그래도 꽃을 따면 죄가 될것 같아서.  (못 참고 몇송이 땄지만, 아마 용서 해 주시리리.) 씁쓸한 민들레 꽃. 

 

 

 

수로에 살던 거북이 (자라?)가 해바라기 하러 길로 올라와 있다.  볕이 좋은 4월.  풀잎을 따 가지고 거북이를 간지르고 있는 중이다.  산 짐승이 산 짐승을 만났는데 어찌 그냥 지나가리오. 인사도 하고 해야지. 안 그렇노 거북선생?

 

 

 

 "아이구 아이구, 야, 너 뭐야? 그냥 지나가 주면 아될까?  사색하는데 방해가 되는구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놓아라. 안 그러면 번작이끽야!  구워 먹겠노라!!!"  삼국시대로 돌아가 아리따운 수로부인을 내 놓으라고 시비거는 중이셔~

 

 

 

 

 거북아, 네 평생에 네가 하늘을 날을 일이 있겠느냐? 너는 운이 기가막히게 좋아서 이 볕 좋은날 너의 그 2차원적 삶으로부터 3차원의 세상으로 날아 오른것이지.  기적이 일어난 줄 알아라.

 

 

 

 

박태기꽃, 도그우드 하염없이 피어있는 물의 나라 포토맥.

 

 

 

여기서부터는 그레이트 폴스 찍고, 돌아 오는길.

 

갔던길 되돌아 오기가 뭣해서, 강변의 빌리 고우트 트레일로 에둘러 왔는데, (그러니까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역시 숲속 길을 걸으니까 평소에 보지 못하던 현상이나 숲속 길에 피어나는 희귀한 꽃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어떤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데 분명 어디서 '딱!' 소리가 난거다. 새소리 물소리 온갖 소리가 널려있는 숲에서, 그런 물리적인 소리와 관계없는 어떤 소리.  '달빛 소리'같은 어떤 소리가 분명 난거다.  그래서 이상도 하다 하고 둘러보다가 이것을 발견했다.  도토리가 싹이 터진 소리. 떡잎이 벌어지는 도토리의 껍데기가 깨지면서 낸 소리.  그 소리는 내 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렸을거다 아마.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  도토리 기지개 켜는 소리를 들으니 며칠전에 봤던 '이웃집 토토로' 생각이 났다.  도토리 싹이 나도록 밤새 기합을 넣던 토토로와 아이들.  내가 마치 생명의 존재인것처럼, 내가 지나치니까 도토리가 싹이 트는구나. 생명이 생명에게 보내는 인사.  아마 그런것이겠지. 

 

 

 

천국가는 길이 이런 꿈같은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염소가 간신히 다녔을 이 좁은 강변 숲속길을 한참 걸었다. 가는 길보다 에둘러 돌아온 그 길이 참 좋아서 시간 가는줄 몰랐다.

 

 

집에와서 찬밥 있는거 김치랑 먹고, 전기 담요 깔려있는 찬홍이 방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참 걷고 난 후에 몸이 으슬으슬해서 따끈한 목욕을 했어야 했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내가 온종일 걸은 실제 거리는 20마일보다 훨씬 길 것이다. 에둘러 다녔으니까.  그래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여겨졌다.  그러면 이달 말에 걷는 32마일 (50킬로)도 문제 없을 것이다. 힘들겠지만 결국 잘 해 낼 것이다. 2월 한달간, 나 혼자 앓고 지낼때는 5분 10분 걷는일도 힘이 들었었다.  매일 왕눈이 산책 시키는 것이 고역이었으니까.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하루에 거뜬히 20마일을 걸어낸 것 자체가 부활이나 기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잘 견뎌낸것도 같다. 이렇게 건강하여 온 세상에 들꽃이 가득한 계절을 걸어낼수 있는 것 만으로도 나는 무조건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에 무슨 소리에 깨어보니 내 얼굴에 달빛이 가득. (보름달인가?)  달은 아직도 내 얼굴에 가득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그리고 햇님, 달님, 별님이 나에게 축복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사는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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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4. 5. 08:28

 

 

 하루종일 창가에 앉아서 내다보는 왕벚꽃 나무.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들여다보면 꽃송이가 툭...하고 떨어진다.

 우리 왕눈이, 벚꽃 아래서 님 기다리는 '게이샤' 같은 포우즈. 랄라~

 

 왕눈이는 일단 개줄을 묶고 나가면, 내가 끈을 내려놓고 딴짓을 할 때 조차도 내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뭐랄까, 끈이 있는한 절대로 내 곁에서 멀어질수 없다고 믿고 있는 눈치이다.  만약에 내가 끈을 풀어주면, 멋대로 아무데나 막 돌아다닌다. 왕눈이에게 '개끈'은 그 자체로도 '속박'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왕눈아, 너 착각하는거야.  (하지만, 인간 역시 이런 착각을 종종 한다. )

(저 위의 사진, 울타리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아주 작게 보인다.  아래 사진에는, 그 노란 사람이 개를 끌고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나도 저 쪽문으로 왕눈이를 끌고 드나든다.)

떨어진 꽃을 감상하시는 왕눈 할아범.

 

아파트 인근, 동네 산책.  벚꽃 나무 가지 너머로 노란 스쿨버스 한대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엘리오트의 '황무지'에 등장하는 '라일락'.  너의 향기는 지옥처럼 감미롭다.

 

태양은, 지상에도 자신을 닮은 꽃들을 흩뿌려 놓았다.

 포도송이같이 흐드러진 등나무꽃.

 

아파트 입구에 저승의 등불처럼 요사스럽게 피어난 박태기 꽃.  아직 어린, 작은 나무이지만, 꽃은 요염하게 피어났다. 색상이 어딘가 '형광 핑크'라서, 가짜꽃 같아라. 박태기꽃. Redbud.

오늘, 우리동네 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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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4. 22:2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86871

 

한국에서 치러지는 4.11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재외국민 투표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진행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각 지역 선거구 및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투표가 이뤄졌다. 나는 지난 주말에 이웃 주의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투표를 했다.


 

 
워싱턴 인근 지역의 경우 한미과학협력센터 건물에 투표소가 마련되었는데 건물 입구에 태극기 그림과 함께 ‘투표소’라고 큼지막하게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한글로 ‘투표소’ 표시를 보는 것 만으로도 한국 집으로 돌아간 듯 푸근한 기분이 들었다.


 

 
투표소에서 “우리 아들이 생애 첫 투표를 하는 거랍니다”하고 내가 지나가는 말로 설명을 하자, 진행 요원이 그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해 주었다. 생애 첫 투표라든지, 아기까지 안고 온가족이 투표를 하러 왔다든지, 연로하신 어르신들께서 투표에 참여하신 경우 특별히 즉석 기념 촬영을 해 준다는 설명이었다. 참 세심한 배려라고 할 만하다. 아들은 생애 첫 투표를 주위 어른들의 칭찬까지 받으며 치러낸 셈이다. 아들 녀석은 몹시도 기쁜 표정이었다. 국민의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인 선거에 아들을 참여 시킨 나로서도 뿌듯한 시간이었다.


 

 

 


 

성인이 되어 선거권을 가진 이후에 나는 투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열세라서 뽑힐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나는 소신대로 투표를 하곤 했다. 내가 표를 던진 후보가 뽑혔을 땐 기뻤고, 그가 낙선 했을 때는 아쉽지만 당선자가 잘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난 이후로 내게는 투표를 할 기회가 없었다. 지난 10년 여의 세월 동안 미국땅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나는 미국의 선거에도 한국의 선거에도 참여 할 수 없었다. 마침내 재외국민들에게도 선거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그제서야 제대로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은 듯 했다.


 

 
혹자는 ‘미국 땅에 살면, 미국 일에나 신경 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미국에 살고 있으므로 설령 내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미국이 잘 되어가길 기대하며 미국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금도 착실히 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쓴다. 내게 미국의 선거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성실하게 그 의무를 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 어디에 살건, 내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고 내 가족이 대한민국 땅에 있는 한 나는 한국으로부터 한 치도 멀어질 수 없다.


 

 
나의 큰 아들은 현재 강원도 전방에서 적과 대치 중이고, 작은 아들도 조만간 한국군에 입대할 것이다. 한국이 이들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만큼이나 신성한 것이 선거이기도 하다. 내 나라의 ‘지도자’들을 잘 뽑아야 나도 내 가족도 편안할 것이다. 게다가 통신과 운송 기술의 발달로 재외국민의 물리적 거리는 많이 완화가 되었다. 비행기만 타면 한나절에 갈 수 있는 조국,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이 비좁은 지구촌 시대에 외국에 나가 있다고 조국의 일에 무심할 수는 없으며 외국에 산다는 것이 투표 자격의 상실을 의미할 수는 없다.


 

 
첫 투표를 한 아들은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이름도 생경한 각종 정당 표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가려내고,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소속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투표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도 배웠으리라.


 

 
내 주위에는 3개월에 걸친 선거인 등록기간을 놓치고 이제서야 선거인 등록을 희망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때는 잘 몰라서 등록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투표가 진행되는 것을 접하면서 아쉬운 감이 드는 모양이다. 이번에 투표의 기회를 놓치신 분들은 올해 12월에 있을 18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선거인 등록을 놓치지 마시길 당부드린다. 기간 내에 선거인으로 등록을 해야 선거일에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고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 내가 던진 표 한 장이 민주주의의 꽃 한 송이가 되는 것이니 투표는 정녕 즐거운 축제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3. 28. 22:3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82938

세계보건기구의 최근 자료를 보면 세계 137개국 국민들의 비만도를 비교해 놓은 것이 있다.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열 개의 국가들 중 아홉은 남태평양 일대의 작은 섬나라들이고, 최고 비만 10위에 미국이 올라있다. 미국은 성인들 중 33퍼센트가 비만에 해당한다고 한다. 호주와 영국 역시 비만 상위 20위, 2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은 비만 최하위 20개 국가에 포함된다. 일본은 137개 국가 중 119위, 남한은 126위. 비만도에서 최하위는 베트남으로 보고되었다.
 


전체적으로 비만 최상위의 국가들이나 최하위 국가들에 개발도상국들이 몰려있다. 그러니까 비만 10위에 오른 미국이나 비만 하위 국가에 속하는 일본, 한국을 제외하면 대개 경제적으로 열세에 있는 사회에 비만 인구가 몰려있거나 혹은 못 먹어서 야윈 인구가 몰려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면 가난하면서 비만 인구가 넘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페루의 ‘거미 원숭이’들은 주로 과일이나 견과류 등을 먹고 사는데, 9개월 동안 밀림에서 이들을 따라다니며 연구한 학자들이 있다. 거미 원숭이들이 개별적으로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의 양은 다양할 수 있는데, 이들이 섭취한 단백질의 양은 일정하다고 한다. 전체 섭취한 칼로리에서 탄수화물로 섭취한 칼로리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섭취한 단백질은 늘 일정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생들의 칼로리 섭취를 관찰하고 분석한 학자들도 있다. 대학생 한 그룹을 호텔에 머무르게 하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갖춘 뷔페 음식을 제공하고 이들이 먹는 음식을 꼼꼼히 계산한다. 첫 이틀 동안 이들은 똑 같은 식당에서 각자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그 다음 이틀 동안에는 이 그룹을 두 개로 나눴다. 한 그룹은 단백질 중심의 뷔페 식단을 받았고, 다른 그룹은 탄수화물이 많이 들은 뷔페 식단을 받았다. 이틀이 지난 후 이들은 처음처럼 다시 똑같은 식당에 모여서 자유롭게 식사를 했다.


 

중간에 단백질 중심의 식단을 제공받았던 그룹은 그 이틀 동안 섭취한 칼로리가 오히려 적었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을 제공 받았던 그룹은 단백질 섭취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칼로리 섭취량이 증가했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에서 평소만큼의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그들은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원숭이 관찰에서나 대학생들의 섭생 관찰에서나 비만 문제의 열쇠가 되는 것은 ‘단백질’이다. 우리에게는 매일 일정량의 단백질 섭취가 필요한데, 단백질이 모자라면 그것이 보충될 때까지 우리는 허기를 느끼고 자꾸만 뭔가 먹게 될 것이다. 우리 몸에 충분한 양의 단백질이 들어오면 우리는 시장기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의 칼로리 섭취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필요 이상의 칼로리 섭취가 비만의 주요 원인이라면, 비만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우리 식생활에서 단백질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비만도 최상위 국가들인 남태평양의 개발도상국들과 미국이 당면한 비만 문제는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단백질이나 무기질 대신에 값싸게 공급되는 탄수화물, 지방질이 가득한 음식들을 과도하게 섭취 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선한 야채, 과일, 육류는 값이 비싸지만 햄버거, 탄산음료, 튀김 음식, 과자, 빵은 값이 싸고 어디서나 쉽게 살수 있다.


 
본래생선과 과실이 풍부했던 남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비만이 된 것은 20세기 후반, 경제적 후진국으로 어업권을 다른 선진국에 강탈당하고 선진국에서 내다버리는 칠면조 꼬리의 기름 덩어리, 값싼 청량음료와 밀가루, 빵 등으로 연명하면서부터다. 미국의 대도시 빈민가에는 신선한 야채나 유제품, 과일을 판매하는 식품점이 적다. 공장에서 나온 빵과 과자,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점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어딘가 허기지고 그래서 값싼 탄수화물 덩어리들을 자꾸 먹고, 그리고 비만이 된다.
 


사람은 허기져서 죽기도 하지만, 비만으로 죽기도 한다. 가난한 비만은 빈곤과 풍요가 극단으로 흐르는 현대 문명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더한다.


 

2012, 3, 28

 

관련자료: http://www.robbrooks.net/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3. 25. 03:35


오늘과 내일은 비가 예보 되어 있다.  하지만, 매일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봄날인데, 비가 온다고 집에만 있기에는 가는 봄날이 아쉬워서, 우산을 챙겨가지고 찬홍이와 집을 나섰다.

창밖에 왕벚꽃이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다. 내 창에서 보이는 왕벚꽃나무. (뒤에 아파트 벽이 있어서 벽화 처럼 보이기도 한다.)


포토맥에서 3마일쯤 걸으면 나타나는 켄우드 벚꽃마을. 지난주에 막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제 만개를 하여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린다. 봄날이 가는것이 아쉽고, 청춘이 지난 것이 아쉽다.  인생이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하루가 허락된 것에 감사할따름이다.








켄우드 벚꽃 마을을 지나쳐 1마일 걸으면 나타나는 예쁜 마을 베데즈다.  마을 가운데 책방. 책방앞에 한가롭게 모여서 노는 사람들.  빨간 튤립이 눈에 띄게 사랑스럽다.




베데즈다 베이글 집에서 샌드위치 하나씩 사서 길거리 벤치에 앉아 신나게 먹고, 동네 상점 구경.



베데즈다 르 뺑 꼬디디엥 카페에 앉으면 창밖에 보이는 작은 케이크 가게가 있다. 이 집은 특별한 케이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지역 명품 케익점이라고 한다.  찬홍이와 나는 이 가게에 들어가서 케이크 구경하다가 그냥 나왔다.  내게는 조지타운 컵케이크가 더 친숙하다.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준비한 우산을 쓰고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속에 숲속길을 걸어 돌아왔다.



아침에 바글바글 사람들이 모여 있던 벚꽃 동산.  비가 내려서인지 아무도 없고 조용했다. 신비한 고요. 빗방울. 비에 젖은 꽃잎들.  그래서, 나는, 비오는날의 산책을 좋아한다. 세상은 더욱 고요하고, 인적은 없다. 별유천지 비인간.




보슬비는 우산을 접고 맞아도 그만이다. 우산을 접은채 씩씩하게 걷는 찬홍이.



빗속에 웃고 있는 제비꽃들.



어제는 햇살이 따가웠다. 그래서 디씨에 다녀 온 후에 지쳐서 낮잠을 잤다. 오늘은 날이 흐리고 비가 오니까 걷기에 참 좋았다. 지치지도 않았고, 산책을 마친 후에도 피로하지 않다.  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산책하기에 좋은 날.

찬홍이는 피곤하다고 잠이 들고, 왕눈이도 찬홍이 곁에서 쿨쿨 낮잠을 잔다.

나는 집안을 치우고 찬홍이가 먹을 맛있는 것을 만들어야지. 비오는 봄날이 참 좋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아쉬운것은 아쉬운대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흘려 보내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세월이 흐르는 것을 수긍하거나 체념하기에 이르른 것 같다.  청춘을 지나 보낸 사람의 체념 같은 고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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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3. 24. 22:45


호빵맨 찬삐와 나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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