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8. 22. 20:4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67859

 

과자를 좋아하는 치타가 있다. 치타는 과자를 먹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나 끈질긴 치타는 외친다. “반드시 먹고 말 거야! 치토스!” 십여 년 전에 내가 한국에서 살 때 텔레비전에 나오던 과자 광고문구다.

나는 그 과자를 입에도 댄 적이 없지만 광고 동영상 속의 치타의 외침만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치타가 딱해 보이기도 하고, 참 끈질기다 싶기도 하고.

 지난 7월부터 10월20일 사이에 미국의 각 지역에서 다가오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선거인 등록, 즉 재외국민 신고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혹은 영주권자인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선 치러야 하는 신고식이다.

 나는 지난 봄 총선에 대학생 아들과 함께 신고와 투표를 한 바 있다. 미국에서 성장한 아들은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총선에 참여한 이후에는 한국의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시사토론장도 찾고 한다. 역시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이 효과가 크다.

 그래서 지난주, 아들과 나는 함께 영사관에 부재자 신고를 하러 가기로 했다. 아들은 영사관에 가자는 말에 두말 않고 스스로 여권이며 신분증 등을 챙겼다. 그런데 막상 행장을 차리고 나서 보니 내 여권이 안 보이는 것이다. 여권이 중요한 서류이니 아마도 너무 깊이 챙겨놓은 것이 사단이었다. 결국 그날 하루는 온 집안을 뒤져서 여권을 찾는 것으로 다 보냈다. 덕분에 대청소를 한번 했다.

 드디어 그 다음날, 일찌감치 차를 달려 영사관에 도착했는데 웬걸, 문이 안 열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영사관 뒷마당에서 나오더니 우리를 발견하고는 설명을 해주신다. “오늘 광복절, 국경일이라서 영사관 문 닫았대요.” 그분도 나처럼 한국 국경일을 잊고 왔다가 허탕을 치셨다고.

 연거푸 이틀을 허탕을 치니까 아들이 좀 실망스러운 눈치를 보이길래 녀석에게 말해줬다. “너 치토스를 잊었니? 네가 좋아하던 과자 치토스 말이다. 치타가 뭐라고 외쳤지? 반드시 먹고 말 거야, 치토스!”

 그 이튿날, 우리들은 ‘위풍당당’하게 영사관 문을 활짝 밀어젖히고 들어가 부재자 신고를 했다. 신고에 필요한 서류는 대한민국 여권이나, 미국 영주권자의 경우 그린 카드, 운전 면허증 등 신분을 증명 할 수 있는 서류가 될 것이다. 비치되어 있는 신고서를 형식에 맞게 기입하고, 신분증을 제시하면 담당자가 필요한 서류를 복사하여 보관한다. 신고서에 이 메일을 적어 넣으니 신고 후 한 시간도 안되어 등록이 되었다는 확인서가 이 메일로 날아왔다.

 이 글을 적기 위해 지난 봄 총선의 재외국민의 투표현황 자료를 살펴보았다. 재외국민 유권자 223만3193명 중에서 2.48%가 실제로 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미주지역의 경우 전체 유권자중에서 선거인 등록을 한 사람은 2.7%라는 집계도 있다. 그리고 그 중에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에 참여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백 명중에 실제 투표 참가자는 두 명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많은 예산을 들인 재외국민 투표가 실적이 미미하다며 재외국민 투표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돈 들였는데 효과가 없다고 집어 치우자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런 분들께 ‘첫 술에 배부르랴’는 한국 속담을 보내드리고 싶다. 투표율이 낮으면 제도적인 문제점들을 개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한 표의 권리를 누리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 이제 간신히 시작한 것을 무르자고 해서야 되겠는가.

 미주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지리적으로 도저히 투표에 참여하기 힘든 경우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아 한 시간 안에 투표장에 가서 해결 할 수 있지만 온종일 자동차를 달려 투표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구제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떠난 후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나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냈다. 이번에는 나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직접 참여 할 수 있다. 내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절대 놓칠 수는 없다. “이번엔 반드시 먹고 말 거야, 치토스!”

 

2012,8,22,lem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8. 16. 01: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63733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수염을 길렀다. 상대편 후보도 수염을 길렀다. 그러므로 그를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몰아버리는 거야!”

 “하지만, 예수님도 수염을 기르셨지!

 “이봐, 선거 운동할 때 절대로 유태인들을 씹지 말게나 그러면 큰일 나네.

 지난 주말에 미국 전역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 ‘캠페인(The Campaign)’에 나오는 장면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연방하원 지역구 의원을 뽑는 캠페인에서 두 명의 후보들이 서로 물어 뜯는 선거전을 펼친다. 대기업의 사주를 받은 돈 거래와 후보 밀어주기가 진행되고, 서로를 함정에 빠뜨리며, 밀고하고, 폭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 선거전. 물론 코미디 영화이므로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에피소드도 들어갔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의 대사에 깔깔대며 공감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이와 비슷한 일들을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구민과의 대화에서 두 후보에게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 “취업률이 떨어져서 큰일이다.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후보는 대꾸한다. “일자리는 매우 중요하며,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하여 위대한 미국을 만들어야 한다. 미 합중국 만세!” 그러자 지지자들이 열광하고 관중이 박수를 친다. 이 꼴을 보고 객석에서는 발을 구르며 폭소를 쏟아낸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없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말씨로 ‘동문서답’을 하는 후보들을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자주 봐왔던 것이니.

 올 가을과 겨울, 미국과 한국이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미국은 11월6일, 한국은 12월19일에 치러진다. 이미 미국의 주요 텔레비전 뉴스채널은 많은 시간을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의 각축을 보도하는 데 할애하고 있고, 한국은 아직도 주요 당에서 후보 경선을 진행 중이다.

 최근 오바마와 롬니의 설전 한 가지. 오바마가 롬니의 경제정책을 비꼬면서 ‘롬니 후드 (Romney Hood)’라고 칭했다.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줬던 전설적인 영웅 ‘로빈 후드’에 빗대어, 반대로 롬니를 가난뱅이들의 재산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나눠줄 사람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롬니 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오바마의 이런 언급에 대하여 ‘오바마-로우니 (Obamaloney)’라고 일축했다. 이는 오바마 이름에 ‘baloney’라는 단어를 조합한 것으로 ‘벌로니’라고 하면 ‘엉터리, 터무니 없는’을 뜻하는 속어. ‘오바마로우니’에서 전해지는 뉘앙스는 ‘엉터리 같은 오바마, 오바마가 하는 엉터리 말이나 행동’ 정도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이전에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구경해 왔지만 이토록 비방과 비난이 심한 경우는 겪어보지 못한 것도 같다. 대통령 선거가 흑색선전이나 말장난으로 일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며칠 전에는 한국에서 모 의원이 어느 상대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여성 의원을 지칭하며 입에 담기 힘든 말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후보들이 우회적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판국인데, 한국 의원이 원색적인 욕설을 사용했다니 실망스럽다. 좀 아름다운 말로 캠페인을 하면 안될까? 하지만 한 사람의 실언에 과민하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면 그것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피차 자중자애 하는 것이 상책 일 터.

 영화 ‘캠페인’은 해피 엔딩이다. 거대 재벌들의 음모에 놀아나던 후보가 단호하게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외로운 선거운동을 펼치고, 재벌들과 손잡고 선거에 승리했던 후보가 양심선언을 하고 후보에서 물러난다. 결국 둘은 손을 잡고 재벌들을 청문회에 세우고 정직한 정치를 펼친다는 너무나 아름다운 결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다. 현실도 그러하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기대하면서.

 12월 19일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고, 현재 주미 영사관에서는 재외 한국인들의 선거인 등록을 받고 있다. 7월22일부터 10월20일 사이에 재외국민으로서 선거인 등록을 해야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가을이 오기 전에 소풍을 가듯, 스무 살 아들의 손을 잡고 영사관에 가서 신고를 할 생각이다. 한국 떠난 후 처음으로 해보는 대통령 선거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12,08,15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8. 16. 01: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59430

 

며칠 전 어느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 입구에 서있는 기계 앞에서 두 시간짜리 주차증을 사는데, 옆에서 누군가 혼자 한탄 하는 소리가 들렸다. “What the heck it is(아이구, 도대체 이게 뭐람)!.” 두 꼬마 아이들을 거느린 어느 흑인 여성이 기계 앞에서 큰 목소리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주차증을 사는 방법에 서툴러서 그런 것 같았다.

 

“May I help you(도와드릴까요)?”하고 물으니, 잔뜩 골이 났던 여성이 죽마고우라도 만난듯한 표정이 된다. 나는 차근차근 각 단계마다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을 하면서 그 여성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기계에서 주차증이 두 장이 나오는 거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 여성이 설명을 한다. “아까 나 혼자서도 이걸 다 했는데, 주차증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그걸 몰랐던 거야.” 이 사람은 주차증이 나오는 입구를 기계에서 찾지를 못해서 공연히 주차비를 두 배로 물고 만 셈이다.

 주차증 얘기가 나오니, 공항의 주차카드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워싱턴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공항이 덜레스 공항일 것이다. 이곳에 손님 영접이나 송별을 위해 들르게 될 때는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카드를 뽑은 후에 주머니에 갖고 다니다가 나중에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기 전에 입구의 주차카드 정산기기에서 미리 주차비를 정산하면 편리하다. 이때는 기계에 내 주차카드를 넣고 그 후에 내 은행카드를 넣는다.

은행카드가 스르르 나오고 주차비 정산이 된 후에 주차카드가 나온다. 그 주차카드를 갖고 있다가 공항을 빠져나갈 때 기기에 집어 넣으면 출구 가로대가 올라가고 차는 유유히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생활 속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앞서의 흑인 여성은 왜 주차증 판매 기계 앞에서 쩔쩔매고 서 있었던 것일까? 그이에게는 그 기계가 한없이 낯설었고, 주위에 설명을 해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더위를 잊기 위해 집어 든 책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I'm a Stranger Here Myself(나 역시 이방인)’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젊은 시절 20년간 영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미국으로 귀국한 이후에 맞닥뜨린 ‘낯선 미국’의 경험을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미국인 빌 브라이슨이 미국에서 낯설게 여긴 것 들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동네의 단골 식당에 들어간 그는 뭔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급히 메모하기 위해서 입구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식당 직원이 다가와서 차가운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자리 안내를 받지 않고 앉으셨군요.” 미국 식당의 일반적인 불문율은 입구에서 얌전히 기다렸다가 직원이 테이블로 인도를 하면 얌전히 시키는 대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문율을 이 사람이 깬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파리만 날릴 정도로 한가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이 사람의 주문을 받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제멋대로 구는 손님에 대한 일종의 응징이었다.

 이 사례를 읽으며 나 역시 내가 겪은 일들을 상기하며 웃고 만다. 이따금 한국에서 손님이 왔을 때 식당에 가면 아무데나 빈 자리에 저벅저벅 가서 앉으려는 분도 있다. 그러면 내가 황급히 그를 붙잡고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한다. 한국의 일반식당에서는 들어가서 아무데나 내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보통인데 미국의 식당에서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주는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니.

 영어 교육을 하다 보니 미국에 살면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이 내가 영어를 못해서…”라고 스스로 단정하는 분들. 그런데 사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 사람들에게도 미국은 낯설고 어렵고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어려운 법이다, 딱히 영어 때문이 아니라 해도. 반대로 낯설어도 다가가 차근차근 익히면 나는 능숙한 사람이 된다, 내가 이방인이라고 해도.

 

2012,08,08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8. 16. 01:3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55654

그 곳에 가면 긴 빨래 줄에 소박하고 무늬 없는 옷들이 바람에 날린다. 장식 없는 마차에 무늬 없는 긴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 느릿느릿 말을 몰고 지나가고, 그 앞뒤로 자동차들이 조심스럽게 비켜 간다. 밀짚 모자를 쓴 남자들은 긴 바지와 긴 옷소매 차림으로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흰 모자로 머리를 가린 여인들은 맨발로 앞마당의 닭과 개와 아이들을 돌본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 동이 틀 때부터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한다. 전기를 쓰지 않아 여름에도 선풍기 바람도 없지만 이들은 도통 더위를 모르는 듯 하다. 빨래가 바람에 마르는 것을 보면, 이 곳에만 유독 선선한 바람이 부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에게는 따로 예배당이 없다. 이들은 신자들의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이들이 예배를 볼 때면 찬송가를 부르지만 아무도 악기 연주를 하지는 않는다. 악기 연주하는 사람이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을 이들은 원치 않는다.

 



 이 마을 아이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야구경기나 다른 스포츠를 하며 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득점 수를 헤아려, 어느 팀이 이겼는지 셈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판단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곳의 오래된 묘지에 서있는 묘비들은 누구의 것이 두드러지게 크지도, 작지도 않고 모두 고만고만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은 이후에도 서로 사이좋은 형제나 이웃으로 남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 곳 사람들의 집에는 거울이 없다. 아무도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초상화를 남기지도 않는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의 얼굴에 신성이 깃들었으니 그 신성을 함부로 사진이나 그림에 남기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마을 특산품으로 만들어내는 인형에도 얼굴이 없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들은 두 가지의 언어를 익힌 후에 영어를 익힌다. 영어는 영어 사용자들과 소통하거나 거래를 할 때만 사용하고 마을 사람들끼리는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으며 인터넷이나 컴퓨터, 스마트 폰도 이들과는 상관이 없는 도구들이다. 물론 자동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마차가 있으므로. 마을의 다른 사람들의 차고에 자동차가 한 두 대 있는데, 이들의 집 차고에는 마차가 한 두 대 있다. 이들이 사는 마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들은 펜실베니아주의 랭캐스터 카운티와 그 인근 농촌지역 여기 저기에 섞여서 살아 갈 뿐이다.

 



 주변의 보통 미국 농업지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소나 양의 젖을 짜서 유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목공소를 차려 가구나 목공제품들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여자들이 바느질로 만들어내는 퀼트는 미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독보적인 분야가 되었다. 그러니 남자, 여자 모두 동틀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부지런히 일하여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길에서 스치거나 밭에서 일하는 이들을 지켜보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개 홀쭉한 몸매이다. 통계에 의하면 이들에게서 발생하는 각종 질환이 다른 일반 미국 성인들이 겪는 질환의 절반도 되지 않는 비율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은 때가 되면 속세의 일반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누릴 기회를 갖는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속세 사람들처럼 살아갈지 아니면 고향 사람들처럼 살아갈지 결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선택하는 시간이 왔을 때 99 퍼센트의 사람들이 고향 사람들처럼 살아갈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일컬어 ‘아미시(Amish)’라고 부른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발생한 개신교 종파의 후예들로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미국 여러 주에 분포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에 가면, 자동차들 사이로 느릿느릿 말이 끄는 수레가 지나가고,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삶이 고요해진다.

 

2012, 8,1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7. 25. 19:0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51318

 

열명 이상의 아동들을 성추행 한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고 수감된 펜스테이트대의 은퇴한 풋볼 코치 샌더스키. 그는 감옥으로 들어갔지만, 이 사건의 파장은 아직도 증폭되고 있다. 샌더스키 사건의 직격탄을 맞은 사람은 전설적인 미국 풋볼의 영웅 조 페이터노 (1926-2012)라고 할 수 있다.



 조 페이터노는 1966년부터 2011년 샌더스키 사건이 도마에 오를 때까지 46년간 펜스테이트대의 풋볼 감독 자리를 지켰다. 지난 연말 은퇴할 때도 사람들은 그가 직접 상관도 없는 성폭행 사건으로 억울하게 불명예 은퇴를 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1월 그가 급거 사망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풋볼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는 ‘억울한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다 동료였던 샌더스키 때문이 아닌가? 얼핏 그렇게 보였다.



 샌더스키의 유죄 평결 직후, 대학의 벽화에 그려진 페이터노 감독의 초상화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머리 주위에 그려졌던 둥근 원, 성스러움을 상징하던 그 원이 지워졌다. 벽화 작가가 직접 지웠다고 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펜스테이트대가 자랑할만한 성스러운 존재로 남을 수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대학에 세워져 있던 그의 동상이 학교 자체의 판단으로 치워진 것을 비롯해,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가 대학 측에 대한 공식적인 징계 조치를 통보했다. 이들의 징계 조치는 6000만 달러의 벌금과 앞으로 4년간 장학생 풋볼 학생수를 25명에서 15명으로 축소, 포스트 시즌 경기 및 각종 보울(Bowl) 게임 참가 자격 박탈 등이다.



 또한 감독으로서 동료 코칭 스태프의 성범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면키 어려운 페이터노의 경기 우승 기록 중 1998년에서 2011년까지 공식기록이 삭제된다. 이것은 샌더스키의 수상쩍은 행동에 대한 보고를 그가 처음 접했던 시점으로부터 그가 풋볼 감독에서 퇴임하기까지 우승의 역사를 모두 무효화한다는 의미다. 지도자로서 마땅히 책임을 지고 행동했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 눈 감거나 모른 척한 순간부터 그는 지도자가 아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미 죽어서 고인이 된 사람의 우승기록 삭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페이터노가 대학 풋볼팀을 이끌면서 여태까지 세운 기록은 역대 풋볼팀 감독 중에서 최고였다. 그의 이력은 미국 대학 풋볼계에서 ‘왕중왕’이었고, 펜스테이트대가 영웅으로 모시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학 풋볼 감독이 영웅인 것이 뭐가 대단한 건가 의아해할 사람도 있는데,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풋볼은 삶에서 떼어놓기 힘든 문화와 같은 것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풋볼 경기는 축제와 같은 것이다.


 해마다 가을 대학 풋볼이 시작되고 대학 풋볼팀이 홈경기를 하거나 원정경기를 하는 날이면 사람들은 풋볼 경기장에 모여들고,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경기장 바깥의 잔디 공원에서 바비큐 파티와 피크닉을 즐기는 것이 이들의 문화다. 풋볼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식품점의 과자와 음료수가 동이 나고, 점잖은 교수들도 대학 풋볼 응원 티셔츠를 입고 수업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은 모여서 파티를 하며 풋볼을 얘기하고, 유명 선수들의 기록을 얘기하고, 감독들에 열광한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해본 사람과 풋볼 경기장에 가본 사람 숫자를 통계내보면 아마도 풋볼 경기장에 가본 인원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게 풋볼은 미국인들의 삶의 일부이고, 풋볼 감독, 그 중에서도 최고의 감독은 찬란하게 빛나는 별 중의 별이다. 그 별 하나가 지금 사후에 부관참시당하듯, 진흙탕에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동료 코치의 잘못 때문에. 감독해야 마땅한 위치에서 방조하거나 ‘범인’을 두둔했기 때문에.


 나는 이미 사망한 조 페이터노 감독이 맞이하는 사후의 불명예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나, 현재 그에 대해 이뤄지는 조치는 환영하는 편이다. 자기 방어력이 없는 약자들을 향한 성폭행의 범죄자들과 그의 ‘방조자’들은 죽어도, 죽어도 자신의 죄를 벗을 수 없다는 하나의 사례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7. 1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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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나마 앞이 탁 트여서 덜 지겨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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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도 찜통같은 더위 때문에 나는 아침에도 운동 나가기를 포기 할 때가 많다. 도무지 진땀이 나서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파트 체육관에 갈 때가 종종 있다.  트레드밀에서 걷기는 '지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운동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으니까.  대개 2마일을 채우는 편이다. 30분에 2마일.  지겨운 것을 견디기 위해서 포드캐스트를 듣는데, 때로는 포드캐스트도 지겹다. 새소리 바람소리는 두세사간을 들어도 지겹지가 않은데,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음악이나 포드캐스트는 10분만 들어도 지겹다.  지겨워도 ...견뎌야 한다.  날이 선선해지면 숲에 나갈수 있을 것이다.

 

트레드밀에서 요즘은 달리기 연습도 하고 있다.  언젠가 4마일 거리를 달리기로만 해 봐야지.

 

운동을 거르지 않기 위해서, 부엌의 달력 앞에 싸인펜 하나를 놓아두었다. 운동 할 때마다 달력에 동그라미로 표시하고 운동량을 표시한다.  내 눈에 보이는데에 크게 표시를 해 두는 것이 나를 더욱 동기화 시킬것으로 보기 때문에.  난 뭐든 내가 하는 것을 표시하고 계산하고 매일 쳐다보고 그럴때 스스로 발동이 걸리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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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7. 18. 19:4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46630

 

매일 평균 한 명의 현역 미군이 전쟁터가 아닌, 후방의 복무지에서 자살을 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낸 병사들이 현장에서 전사하는 숫자보다 더 많은 병사들이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최근 공영라디오방송 NPR(National Public Radio)이나 뉴스전문 케이블채널 CNN을 위시한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일제히 다룬 기사 중의 한 가지는 미국 현역 군인들의 자살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7월23일자 주간지 TIME이 이 문제를 특집 기사로 담았다. 우리는 흔히 전쟁에 참전하고 퇴역한 사람들 중에 많은 수가 외상후 증후군(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과 같은, 각종 정신적 신체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전쟁터에 나가본 적도 없이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자살 숫자가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의관 마이클 매카던은 군 입대 후에 여러 가지 공을 세우고, 의대에 진학하여 군의관이 된 중년의 장교였다. 그는 최근에 자녀 셋을 남긴 채 하와이의 근무지에서 자살을 택했다. 하와이는 전쟁터가 아니지 않은가? 이안 모리슨은 2007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아파치 헬리콥터 조종사가 된 전도 유망한 젊은 장교였다. 그는 텍사스의 자택에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총을 겨눴다.


 
군 관련자들은 이런 자살에 대해 대개는 ‘집안 일이나 애정 문제 때문에 장교나 사병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고 덮으려 들지만 막상 가족의 입장은 다르다. 사망한 사람들은 이미 오랜 기간 우울증에 시달려 왔고 스스로 이를 극복하거나 도움을 받으려 노력했으며 부인들도 적극적으로 남편을 도우려 애썼지만 막상 이들의 근무지인 군부대에서는 이런 우울증상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자살한 군의관 마이클의 부인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 용기를 내어 남편의 상관을 만나 마이클의 우울증세를 의논했을 때 상관은 자신의 휘하 장교 중에 우울증이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후에 부대 안에서 마이클의 시신을 발견한 이는 바로 그 장교였다. 헬리콥터 조종사 이안이 스스로 정신적 질환을 인식하고 애타게 군 병원을 찾아 우울증을 호소할 때 그가 받은 처치는 ‘수면제’ 몇 알 정도였으며 그가 위기를 느끼고 군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을 때 받은 대답은 ‘기다리라(Hold)’는 것이었다. 그는 자살 직전까지도 대답 없는 우울증 상담소에 애타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통계를 보면 200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그리고 2003년 이라크에 파병된 이후 10여 년간 육군의 자살률이 급등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올해 육군에서 186명의 자살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 숫자는 미국의 민간인 자살자의 수를 넘어서는 것이다. 공군이나 해군, 해병대에서 발생하는 자살자까지 합치면 평균 하루에 한 명 꼴로 미군의 자살이 이어지는 셈이다.



 미군 자살자의 95%가 남성이고, 80%가 백인이며, 47%가 25세 미만이다. 자살한 지역의 통계를 보면 83%가 미국 영토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라크나 아프간과 같은 전방에서는 10%, 그 외 지역에서 7% 발생했다. 지난해의 통계를 보면 미군 사망자 전체에서 26%가 전사, 20%가 자살, 17%가 교통사고, 6%가 암, 18%가 그 외의 이유로 유명을 달리했다. 민간인 남자 17세에서 60세 사이의 자살률이 7%인데 비해서 미군 자살률이 20%라는 것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미군의 자살률이 늘어나고 있는데 미군의 대책은 무엇인가? 이들은 아직도 자살률이 늘어나는 원인규명이나 속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 진행되는 전쟁이 후방 사람들의 정신건강까지도 해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에는 전방 후방이 따로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마음이 아파서 생기는 우울증이 전쟁보다 무섭게 후방을, 우리 삶을 교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전후방에서 근무중인 병사들의 건강을 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기를.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7. 16.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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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고 돌아오는 길, 나의 벤치 근처에서 발견한 초록 뱀. 굵기는 내 엄지 손가락 정도 굵기이고 길이는 약 60 센치정도.  머리를 바짝 세우고,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내가 막 나뭇가지 조각 이런것을 뱀 근처로 살살 던지니까, 소리도 없이 풀숲으로 사라졌다.  사라질때도 아주 유연하게, 물이 흐르는 것 처럼 ~  우아해 보였다.  독뱀은 아닌 것 같았다. 예뻐 보였다.

 

나는 평소에 시간당 4마일 거리로 걷는 편인데 (체육관에서 트레드밀로 걷기 할때 대개 4마일에 맞추거나 4.5마일에 맞춘다), 왕복 7마일 거리를 다녀오는데는 세시간 정도 걸린다.  왜 그런가하면, 나는 숲길 걸으면서 늘 두리번거리기 때문이다.  두리번거리다가 뱀 만나면 뱀 관찰하고, 사람 만나면 사람하고 인사하고, 뭐 그러느라고 꾸물거리고 한눈팔고 그런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내 버릇을 고칠 의사가 없다.  숲에 가는 이유가 세상 만나러 나가는 건데, 뭐 내가 속보 기록 올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눈 안팔고 걷기는 트레드밀에서 하는 것으로 족한데, 나는 트레드밀에서 10분 보내는 것이 아주 죽을 맛일 정도로 그 워킹 머신이 지겹다.  (그래도 날이 너무 덥거나 비가와서 못 나갈 경우 트레드밀이 요긴하긴 하니, 불평할 바는 못된다.)

 

 

오늘 만난 뱀은 색이 너무 곱고 사랑스러워서 정말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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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7. 11. 19:1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41890

 

올림픽 단거리 달리기에서 네 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그 외의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던 흑인 달리기 선수 마이클 존슨(Michael Johnson)이 런던 올림픽을 앞둔 요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흑인 달리기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이들이 ‘노예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 자신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선조가 아프리카 출신 노예임을 확인한 그는 선조가 노예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우수한 유전자가 후대에까지 전해졌으므로 달리기에서 유리하다는 괴상한 해석을 했다.

 마이클 존슨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과거의 노예제도가 현재 흑인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을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다는 해석이 엉뚱하다는 것과, 다른 영역에까지 이런 ‘일반화’가 확대 될 경우 인종적인 문제로 불거져 흑인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대로 라면 미국 학교에서 흑인 학생들의 학력고사 성적이 대체적으로 백인에 비해서 뒤지는 이유는 흑인의 지능이 낮기 때문이고, 흑인이 받는 평균 연봉이 백인에 뒤지는 이유 역시 흑인이 업무 능력이 뒤지기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일반화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생활하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영어 사용자와 만나게 된다. 뉴스 앵커같이 깔끔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양이 심한 사투리 사용자도 만나게 되고, 흑인 액센트를 강하게 사용하는 사람과 대화하기도 한다. 영어 학습자들은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백인들의 영어는 그래도 좀 알아 듣겠는데, 흑인영어는 도통 못 알아듣겠다는 호소를 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심지어 알아듣기 힘든 흑인 영어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하러 든다. “흑인들은 원래 구강구조가 백인과 달라서 백인들의 발음이나 액센트가 불가능하다.”
 

 

사실 흑인이 강한 액센트를 사용하는 것은 구강구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고등 교육’을 받은 흑인들은 ‘백인 영어’와 ‘흑인 영어’를 마음대로 오가며 구사하는데, 그들의 설명으로는 ‘사회 생활 할 때는 표준어라 할 수 있는 깔끔한 영어를 사용하고, 집에 가서 흑인 가족 친지와 어울릴 때는 흑인 액센트를 구사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어느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서울에서 사회 생활을 할 때는 깔끔한 표준어를 사용하다가 집에만 가면 바로 지방 사투리로 돌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표준어 익히는 대신에 자신의 사투리에만 안주하는 사람이 있듯, 흑인들 역시 주류사회의 표준어 대신에 흑인들의 독특한 화법과 액센트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사람이 침팬지가 아니고 사람인 바에는 인종이나 언어와 상관없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하는 말은 다 할 수 있는 구조를 타고 났다. 언어뿐 만이 아니다, 달리기나 공부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기 보다는 사회 경제 환경과 개인의 노력을 들여다 보는 쪽이 현명하다.

 

 

에마뉴엘 베일리(Emmanuel Bailey)라는 영국의 흑인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있다. 어느 날 그가 타야 할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발견한 베일리는 버스를 잡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 갔다. 물론 그는 이미 성공한 달리기 선수였으니까 무척 잘 달렸고, 운 좋게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다. 그가 버스에 타자 한 백인 승객이 중얼거렸다.

 

“흑인들은 정말 모두들 잘 달려. 그 단거리 달리기 선수 베일리가 백인 선수들을 물 먹이는 것 좀 보라구. 흑인들은 타고 났어.” 물론 그 백인 승객은 버스를 따라 잡은 흑인청년이 바로 그 유명한 베일리라는 것은 알아보지 못하고 하는 소리였다. 베일리는 그 때의 일을 자서전에 기록했다. 사람들이 자신이 기울인 노력은 무시한 채 흑인이기 때문에 잘 달린다고 판단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흑인이 잘 달리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상관 있다. 흑인에 대한 이런 식의 엉뚱한 일반화로 인해 ‘여자는 원래 힘이 약하다’ ‘아시안은 원래 수학을 잘한다’ ‘한국인은 원래 영어를 못한다’ 등의 엉뚱한 일반화도 얼마든지 가능해 진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인식이 멀쩡한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2012,7,11

Posted by Lee Eunmee
Humor2012. 7. 10. 16:11

Dan Ariely 의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에 소개된 내용.

 

미국 학생들은 중간고사나 기말 고사때 교수에게 이메일로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프로젝트를 제대로 못하게 생겼으니, 시간을 조금 더 달라'는 호소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면 대개 교수들은 학생이 희망하는대로 과제 제출 기한을 조금 연장해 준다거나, 최대한 편의를 제공한다.

 

글쎄, 학생들이야 한두번 써먹는 카드이지만, 많은 학생을 대하는 교수들 입장에서 보면 -- 이것이 자꾸 쌓이다보면 이런 가설이 나올법 하다 --"미국 대학생들의 할머니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에 사망률이 가파르게 올라간다."   중간고사때 완만하게 상승한다면 기말고사때는 매우 가파르게 상승한다.

 

특이한 점은 주로 학교 공부나 과제를 잘 수행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할머니가 주로 기말고사때 사망을 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 미국의 할머니들은 특히 학교 숙제나 시험을 잘 못해내는 손자들과의 관계가 매우 친밀하며 손자들의 걱정을 아주 많이 한다.  기말고사때 손자들이 고민에 빠지면, 할머니들은 손자 걱정을 하다가 미리 죽는다.

 

 

 

미국 할머니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때 특히 건강을 주의하시라는 댄의 당부의 말씀.  (근데, 할머니 사망 카드는 미국 학생들만 전매 특허 낸 것은 아닌것 같다. 내가 가르치는 ESL 학생들중에서 상습적으로 지각 결석하는 친구들, 할아버지 할머니 많이 돌아가셨지.... ㅎㅎㅎ... 넌 왜 일주일을 무단 결석한거냐 물으니까, 고국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너무 가슴이 아파서 못왔다더니 며칠후에는 할머니 돌아가시고, 며칠 후에는 사촌이 죽고... 아주 온가족을 다 죽이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슬픈 표정으로 애도를 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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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7. 6. 04:43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37376

 

오늘은 미국인 최대의 명절 ‘독립 기념일’이다. 미국이 인류사에 자랑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나는 ‘대통령제’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탄생시킨 국가이고, 인류 역사 최초의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다.

 조지 워싱턴의 어린 시절 일화 한가지가 유명하다. 어린 조지 워싱턴도 손도끼를 갖고 싶어 했고, 마침내 그것을 하나 얻게 되자 이리저리 다니며 손도끼를 가지고 장난을 했다. 그러다 실수로 그만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를 베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벚나무가 넘어진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조지, 너 누가 이걸 다치게 했는지 아느냐?”라고 물었으리라. 잔뜩 주눅이 들은 조지는 아버지께 자신이 그랬다고 이실직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표정이 한없이 온화해지며 아들을 안고 말했다고 한다. “너의 정직성이 내 벚나무 수백 그루보다 더 소중하다.”

 조지 워싱턴은 정직함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배우고 성장했으므로 정직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정직한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 정직할 수도 있고, 정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How We Lie to Everyone---Especially Ourselves

 

 

 댄 에리엘리 (Dan Ariely)라는 행동경제학자의 근간 ‘부정직함에 대한 정직한 진실(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정직성을 지키거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많은 사례들이 담겨있다.

 가령, 우리들은 영화 DVD가 매장에 진열 되어 있을 때 이것을 성큼 집어가지고 돈도 안내고 매장을 나가는 ‘용감무쌍’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도’에 해당되고, 일단 절도범으로 잡히면 인생이 아주 골치 아프게 꼬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인터넷에 최신 영화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올라와 있고, 한 두 번의 클릭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경우 우리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많은 경우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키보드를 한 두 번 클릭하여 영화를 무료로 본다. 그리고 내가 ‘절도’를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한 것이라고는 컴퓨터 키보드 한 두 번 두드린 것이고, 나는 실제로 남의 물건을 내 손으로 집어 갖고 나온 것이 아니므로.

 골퍼들이 눈속임으로 하는 행동 중에 공을 아주 약간 옮겨놓는 일이 있다고 한다. 공을 약 10센티 몰래 옮길 때 손으로 집어서 옮기거나, 발끝으로 툭 밀어서 옮기거나, 골프 클럽으로 슬쩍 밀어서 옮기는 수도 있다. 10센티를 옮기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에는 차이가 있는데 대개 손으로 집어 옮기는 것은 아주 ‘못된 짓’으로 치부되지만 골프 클럽 끝으로 슬쩍 미는 ‘부정 행위’에 대해서는 나도, 남도 관대한 입장이라고 한다.

 골프의 전과정이 18홀일 때, 1번 홀에서 이런 부정행위를 하는 것과 18번 홀에서 저지르는 부정행위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저 10센티를 옮기는 부정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1 번 홀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에 18번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면 ‘용서받지 못할 자’가 된다고 한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자신이 행하는 거짓말, 부정행위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조목조목 일상에서 내가 저지르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부정 행위, 혹은 거짓말에 대해서 자각을 하게 해 준다. 인간이 항상 정직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어느 날 한 소년이 손도끼 하나를 선물 받았다. 소년은 이것저것 도끼로 자르고 다니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를 베어내고 말았다. 불같이 화가 난 아버지가 “누가 벚나무를 벤 거냐!”하고 으르렁댔다. 소년은 말했다. “제가 그랬어요, 아버지.” 그러자 아버지는 소년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갈기며 화를 냈다. 소년이 물었다, “조지 워싱턴의 아버지는 정직한 아들을 칭찬해줬는데 아버지는 왜 저를 혼내시나요?” 아버지는 여전히 불같이 화를 내며 쏘아 붙였다. “조지 워싱턴의 아버지도 나처럼 베어지는 나무 위에 있었다더냐?”

 

July 4, 2012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27. 22: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32457

 

요즘 미국 최대 뉴스 중 한 가지는 단연 제리 샌더스키의 아동 성폭행 관련 재판 내용이다. 특히 판결을 앞둔 지난 일주일간 케이블 뉴스 전문 채널 CNN은 거의 온종일 매시간마다 그와 관련된 보도를 하거나 재방송을 내보냈다.



 샌더스키는 펜실베니아 주립대에서 4년간 풋볼 선수로 활동했고 같은 대학에서 풋볼 코치로 그의 긴 풋볼 지도자 이력을 이어 나갔다. 1977년 그는 ‘The Second Mile’이라는 아동 보호 단체를 조직하여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 단체에 소속한 불우한 청소년들 중에서 그의 ‘먹잇감’을 찾아 냈을 것이다.



 1998년 그가 대학 구내에서 아동을 성추행한다는 내용이 접수됐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1999년 그는 32년간의 풋폴 코치 생활을 접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2000년 대학의 샤워실에서 샌더스키가 소년을 성폭행하는 장면이 청소부에게 들켰지만 이 일에 경찰이 개입되지는 않고 흐지부지 지나갔다. 2001년에는 대학의 보조코치가 역시 샌더스키가 샤워실에서 아동 성추행을 하는 장면을 발견해 대학에 보고했지만, 어떠한 사법적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2011년 그는 여러 명의 피해자들에 의해 제소됐고 바로 지난주 그는 수갑을 차고 수감됐다. 그에게는 수백 년의 수감 판결이 떨어졌다.



 범인은 감방으로 들어갔지만,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샌더스키 뿐만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경고 등’이 켜졌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샌더스키를 감싸고 돌던 펜실베이니아 주립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풋볼 코치를 지키기 위해서 대학측은 이름 모를,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이 성폭행을 당할 때 이를 ‘모른 척’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나는 악인 샌더스키보다, 그가 명예롭게 활약하도록 방조했던 대학측과 이렇게 돌아가는 인간사회 전체에 대해서 슬픔을 느끼는 편이다.



 샌더스키의 아동 성추행 관련 재판 보도를 매일 지켜보면서 나는 중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 여자 중학교의 방송반원들은 인물이 훤칠한 학생들이었고 나는 그런 방송반 ‘언니’들을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방송반을 담당하던 음악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너 방송반에 들어와라.” 나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영문도 모르는 채 방송반원이 됐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월요일 전체 조회시간에 마이크를 설치하든가, 매일 아침 저녁 국기 게양과 하강 방송을 내보내는 일이었다. 우리들은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방송실에 모여서 공부를 하거나 심부름을 하곤 했다. 언젠가는 나 혼자 방송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뒤에서 나를 안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는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갔다.

며칠 후에는 정말 예쁜 방송반원과 둘이 있는데 선생님이 그 친구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려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있기가 너무 민망하고 무서워서 얼른 방송실 밖으로 도망을 쳤고, 조금 후에 내 친구도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허둥지둥 도망쳐 나왔다. 우리는 둘이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언젠가 내가 너무나 우울하고 근심스러워서 상담 선생님께 이 일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상담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조심하라고.

 그 후로 나는 늘 선생님의 두 눈을 빤히 노려보며 그곳을 드나들었다. 내가 늘 사나운 표정을 지어서인지 그는 나를 건드리지 못했고, 나는 방송반에서 ‘혁혁한’ 활동을 했다는 구실로 졸업식장에서 영예로운 공로상까지 받고 그 학교를 떠났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난 후에도 그에 대한 이상한 소문은 다른 학교에까지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세월을 겪으며 성장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하지만 우리들은 누구에게 함부로 발설도 못한 채 영문 모를 폭력과 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샌더스키는 저주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샌더스키가 설치고 돌아다니도록 방조한 이 사회 역시 무거운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21. 06:1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28321

그는 스포츠를 좋아했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으며 아내와 두 딸을 끔찍이 아낀 성실한 가장이었다. 그가 43세의 젊은 나이에 맹장염 합병증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을 때, 미국은 미술계의 별 하나를 잃었다. 지난 6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는 20세기 초반의 미국 미술사를 장식한 사실주의 화가, 조지 벨로우즈 (George Bellows, 1882-1925)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국립 미술관에 가면 서쪽 건물 가운데 벽에 벨로우즈의 작품 걸개그림이 크게 걸려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다. 얼핏 보면 상투적인 귀족 소녀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소녀가 입고 있는 옷소매가 아버지의 옷을 물려 입은 듯 소매가 길고 허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세탁 일을 하는 소녀를, 화가는 주인공으로 담아 놓았다. 이 미술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벨로우즈가 추구하던 미술 세계가 무엇 이었을 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조지 벨로우즈를 나는 이렇게 설명 하곤 한다, "미국 회화 중에서 권투 하는 그림이 나오면 조지 벨로우즈가 정답이지." 화가들마다 즐겨 그리던 소재나 화풍이 있는데, 벨로우즈는 독보적으로 '권투'하는 장면을 많이 그린 화가이다. 이번 특별전에도 미국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던 권투 하는 장면 대작들이 여러 점 나왔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권투는 미국에서 대중들의 관람이 금지된 스포츠였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링 위에 선수들을 올려 놓고 관중을 모집하는 것이 불법이었고, 사교적인 모임에서 회원들간에 권투를 하는 것은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흥행업자들이 꾀를 낸다. 사교모임의 회원들간에 취미로 권투 경기를 한다는 구실로 경기를 열었다고 한다. 참 쓴 웃음이 지어지는 대목인데, 조지 벨로우즈는 역동적인 링 위의 선수들뿐 아니라 주변의 관중들에 대한 스케치도 잊지 않았다. 벨로우즈의 권투 그림에는 이중섭의 '황소'를 연상시키는 역동성이 흐르는가 하면,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려진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을 채운다.

 벨로우즈가 즐겨 그린 또 다른 소재는 도시와 풍요의 이면에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한창 개발되어가고 있던 뉴욕 맨하튼 외곽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어린 아이들, 발가벗은 채 강변에서 멱감기를 하는 수십 명의 빈민가 소년들. 1908년에 이 그림이 처음 공개 되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역시 벨로우즈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국립 미술관 중앙 벽에 걸린 걸개그림 속의 소녀를 들여다보면 눈빛이 만만치가 않다. 비록 허름한 옷을 입고 서 있지만 눈 속에 전 운명을 떠받치는 듯한 강인한 빛이 흐른다.

 잡지나 신문 삽화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사회성 있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학살당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민중, 독선적 전도자, 정치인 등, 그의 사회 비판 의식이 거침없이 화폭에 담겼다.

 미술관에서 '미국회화'쪽을 돌다 보면 20세기 초반의 사실주의 그림들을 지날 때, 늘 함께 전시되는 화가들을 발견하게 된다. 8인회 (The Eights) 혹은 '애시캔 (쓰레기통, The Ashcan) 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실주의 화가들 그룹이다. '애시캔'이라는 별칭은 '쓰레기'같은 빈민들을 소재로 즐겨 그렸던 이들을 비아냥거리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 진다. 조지 벨로우즈도 그들 중의 한 명이다.

 이번 특별전은 가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옮겨가고, 그 후에는 영국 런던에서 전시된다. 평생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조지 벨로우즈의 주요 작품 130점이 총망라된 기획전이다. 100 여 년 전에 활동하던 화가의 그림들이 오늘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삶의 풍경은 변해도 우리 삶의 양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벨로우즈의 그림 속에는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고, 내 이웃이 있다. 서관 1층에 위치한 극장에서 벨로우즈를 안내하는 다큐멘터리 필름도 상영해주는데, 매우 알차게 편집 되었다. 전시회에 가신다면 이 필름도 꼭 챙기시기를 당부 드린다.

 

다큐멘터리 포드캐스트 영상자료 http://itunes.apple.com/podcast/national-gallery-art-videos/id257590780?mt=2

관련 페이지: http://americanart.tistory.com/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2. 6. 1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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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 1.4 마일 크기의 자그마한 호수 혹은 연못.  새 관찰 트레일도 있고, 비버가 자라와 함께 한가롭게 헤엄치고, 덤불에는 토끼들이 산다.   두바퀴 돌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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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13. 22:26

 

 

Grant Wood: American Gothic

까탈스럽게 정직하고 근엄한 아버지와, 늦도록 시집 안가고 버티는 딸을 보는듯한 그림이다 :-)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24320

 

다가오는 6월17일은 ‘아버지의 날 (Father’s Day)’이다. 본래 미국에서 유래된 이 날은 매년 유월 셋째 일요일에 기념된다. 한국에서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다가 1973년부터는 어머니, 아버지 모두를 기리는 ‘어버이 날’로 이름을 바꿨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일요일은 ‘어머니의 날’, 6월 셋째 일요일은 ‘아버지의 날’이라는 식으로 따로 기념을 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기 다른 날짜에 기념을 하는 이 아버지 날의 기원은 미국으로, 소노라 도드(Sonora Dodd)의 아이디어로 1910년 처음 시작되었다. 어머니 날에 교회에서 목사님이 어머니의 은혜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듣던 소노라는 아내를 잃고 혼자 힘으로 자신을 비롯한 자녀들을 성실하게 키워낸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래서 6월, 아버지의 생일에 그를 기념하는 ‘아버지 날’ 행사를 치렀다. 이렇게 발단이 된 ‘아버지 날’은 1972년 닉슨 대통령 시절에 국가적인 기념일로 선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일전에 내가 소속한 교회 합창단원들에게 교회에서 협조를 부탁했다. 아버지 날을 기념하는 자료를 만들고 있으니 ‘아버지와 나’의 모습이 함께 들어있는 사진 파일을 각자 하나씩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무심코 이 메일을 본 나는 가슴이 먹먹해 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평생 아버지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거나, 업히거나, 아버지와 손을 잡아 본 기억도 없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미 20년 전에 돌아가셨다. 내게는 교회에 보내줄 아버지와의 사진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의붓자식이라거나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것도 아니다. 나는 평범한 가정의 아주 성실한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는 내 두 아이의 재롱을 보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친지 분들은 아버지가 약주만 한 잔 하시면 자식들 중에서 특히 나에 대한 자랑을 하셨다고 이야기를 전한다. 둘째 딸이 어찌나 고집이 세고, 강인한지 아마 사막에 갖다 던져 놓아도 잘 살아 낼 거라며 내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아버지의 상냥한 칭찬의 말씀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나와 마주치면 훈계로 일관했으며 나의 문제점들을 지적하셨다. 아버지는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지만, 아버지는 나에 대해서 수치스러워 하실 거라는 막연한 느낌을 항상 안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정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으로 나눠지고 말았다.

 아버지께 무척 죄송한 일이 있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인데, 그때도 나는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웠다. 하루는 친정에 전화를 걸으니, 엄마가 아닌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시는 거다.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너무나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그만 불에 데인 듯 전화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 때 그 일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히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딸 자랑을 하시면서 내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셨을 텐데.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오월의 어머니 날과 유월의 아버지 날 중에서 전화통화 숫자가 많은 날은 어머니 날이다. 사람들이 어머니 날에 집에 전화를 걸고 인사를 하는 숫자가 아버지 날보다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수신자 부담, 콜렉트 콜의 숫자는 어머니 날 보다 아버지 날에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콜렉트 콜이 가장 많은 날이 아버지 날이다.

 프랑스 속담에 ‘아버지는 자연이 선물한 금고’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는 지갑 속에 지폐 대신에 자녀의 사진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자식이 생기면 지갑 속의 현금은 탈탈 털리고, 가족을 위해서 끝없이 돈을 벌어다 줘야 하는 화수분 같은 존재인 아버지. 아버지의 날이 다가온다. 이번 주 일요일이다. 콜렉트 콜이라도 좋으니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보자. 나는 천국에 계신 내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야 할까보다. 천국 전화 번호 아시는 분?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20678

우리 집 개, 왕눈이는 질투심이 무척 강하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집안에서 “왕눈아!”하고 부르면 들은 척도 안하고 무시하지만 내가 “찬홍아!”하고 우리 아들을 부르면 번개처럼 달려와 내 품에 안기고는 다가오는 찬홍이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엄마’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뜻이다. 왕눈이는 내가 집에 있는 동물 인형을 품에 안고 예쁘다고 해도 그 동물인형을 물어뜯으러 든다. 왕눈이는 나를 중심에 놓고 그 외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질투를 드러낸다.



 개가 질투를 한다고? 개의 질투에 대해서 학자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질투’란 매우 발달된 감성체계이고 동물들에게는 이런 감성이 없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동물에게도 공정함, 질투, 시기와 같은 감성이 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랑게 (Range)는 몇 해 전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실험을 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손!’하고 외쳐서 개가 앞발을 악수하듯 내밀게 하는 훈련을 시키곤 한다. 개들은 상으로 개 과자를 받을 때나 아무 상이 없을 때나 앞발을 척척 잘 내밀어준다. 그런데 ‘누렁이’와 ‘워리’ 이 두 마리 개를 앉혀놓고는 유독 한 놈에게만 개 과자를 상으로 준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 몇 번은 워리도 순순히 앞발을 내민다. 하지만 워리가 보는 앞에서 누렁이만 혼자서 개 과자를 계속해서 받아먹자 워리의 태도가 달라진다. 워리는 앞발을 내밀지 않고 모른 척 한다. 골이 난 것이다. 워리가 앞발을 안 내밀고 시위를 하는 이유는 단지 ‘개과자’ 때문이 아니다. ‘불평등’ 때문이다.



 에모리 대학의 프란스 드 왈(France de Waal)이 원숭이들을 데리고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원숭이들에게 작은 돌멩이 한 개를 사람에게 건네주는 훈련을 시켰다. 원숭이가 작은 돌멩이 한 개를 실험자에게 건넬 때마다 원숭이는 오이조각 한 개씩 상으로 받았다. 오이는 원숭이들이 즐겨먹는 간식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원숭이는 아주 특별한 상을 받았다. 원숭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포도를 상으로 준 것이다. 평소에 오이 한 조각을 상으로 줘도 신이 나서 돌멩이를 실험자에게 건네주던 원숭이들은 한 놈만 아주 특별한 ‘포도’ 상을 받자 골이 났다. 이들은 돌멩이를 실험자에게 건네주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마침내는 상으로 받은 오이조각마저 실험자에게 집어던지고 만다.

 



 나는 요즘 우리 개 왕눈이에게 새로운 재주를 한 가지 가르쳤다. 내가 ‘손!’하고 외칠 때마다 차례차례 앞발 두 개를 내 손에 맡기는 재주다. 개들은 앞발 하나는 잘 내밀지만 두 발 모두 내미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새로운 재주를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왕눈이 앞에서 왕눈이가 극도의 질투심을 드러내고 경계하는 동물 인형을 데리고 앉아서 ‘손!’하고 외치고 인형의 한 발을 내 손으로 잡은 후에, 또다시 ‘손!’하고 외치고 나머지 한쪽 발도 내 손으로 잡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몇 번 반복한다. 그 후에는 찬홍이를 불러다놓고 역시 ‘손!’을 외쳐서 오른손, 왼손을 모두 내밀게 했다. 왕눈이는 분노에 몸을 떨며 내가 찬홍이의 오른손, 왼손을 차례차례 잡아주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왕눈이를 내 앞에 앉혀놓고, “왕눈아, 손!” 하고 외쳤다. 왕눈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자신의 앞발을 차례차례 내 손에 맡겼다. 물론 나는 “우리 왕눈이가 최고야!”하고 외치며 녀석을 쓰다듬어주었다.

 인형이나 찬홍이 등 왕눈이의 질투심을 유발시키는 대상을 이용한 나의 왕눈이 교육 작전은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동물 학자들은 동물의 불공정에 대한 의식 외에 동물의 질투심을 이용한 ‘학습’에 관한 실험을 해도 좋으리라.

 

2012,,6,5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13706

 

5월28일자 시사 주간지 ‘타임’에 워싱턴DC와 인근 지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스케치가 실렸다. 요즘 워싱턴DC에서는 Uber Washington(위버 워싱턴)이라는 고급 택시 사업이 활황이라고 한다. 홈페이지(www.uber.com)를 찾아 검색해보니 on-demand private driver(맞춤형 개인 기사 서비스)라는 설명이 나온다.


스마트 폰으로 디시 시내 어디서나 차를 불러서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쉽게 다닐 수 있는 운송 체계인데, 사용되는 차들이 고급 세단이나 리무진 급이다. 시내에서 덜레스 공항까지는 80달러, 볼티모어 공항까지는 115달러 정액제다. 그 외에 시내 구간별로 예상되는 차비 안내가 나온다.



 이 위버 워싱턴 운송 시스템과 연관되어 ‘Uber Washingtonian(위버 워싱토니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말하자면 고급 택시를 이리저리 타고 돌아 다닐 만큼 경제력이 밑받침되는 워싱턴지역 사람들, 혹은 독일어 위버(Uber)의 본뜻인 ‘초월적인, 대단한 (super)’을 그대로 살려 ‘남들을 능가하는, 굉장한, 잘 나가는’ 워싱턴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리라.



 정말 워싱턴 사람들이 그렇게 잘 나가는가? 2011년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인구 별 예상 수입 중간점(median)이 가장 높은 카운티 20군데 중에서 DC인근 지역이 열 군데를 차지한다. 최고는 라우든(Loudoun) 카운티로 중간 연봉이 12만불 정도 된다. 중간값이란 수입액을 최하부터 최고까지 나열한 수치 중에서 중간에 위치한 것을 가리킨다. 모든 값을 더하여 나눈 평균과는 다른 것이다. 3위 패어팩스(Fairfax)카운티, 4위 하워드(Howard)카운티가 있고 그 외에도 알링턴, 스태포드, 몽고메리 등이 있다.



 미국경제가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이런 침체국면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 워싱턴DC 지역인데 그 이유는 이곳의 일자리들이 대개 연방 기구나 연방 산하기구와 관련된 것들로 경기는 침체되어도 연방 예산이 줄어 들지 않는 한 크게 일자리가 줄지는 않는다는 원리를 보여준다.



 미국의 다른 대도시보다 평균 수입이 높고 실업율이 가장 낮은 곳이지만, 워싱턴의 빈곤율(20%) 역시 미국 평균(15%)을 훨씬 웃돈다. 공교육 시스템은 전국 최악이고, 범죄율도 다른 부유한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DC에 거주하는 백인들은 흑인들보다 1인당 수입이 3배 정도 높다.



 최고 연봉자들이 몰려 사는 곳에서 빈곤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다는 것은, 이곳에서 빈부의 격차가 매우 높아서 잘사는 사람들은 리무진을 타고 다니며 세련된 도시생활을 즐기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가난함을 의미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최고의 사립 학교에 보내고, 빈곤층은 미국의 최악이라는 공립학교에 희망도 없이 자녀들을 보낼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가족, 친지가 워싱턴을 방문하면 대개 우리 집에 머물면서 시내 구경을 한다든가, 내가 직접 내셔널몰 지역의 명소를 안내해 주게 된다. 방문객들이 워싱턴에 와서 보는 풍경은 공원이 잘 정비된 내셔널 몰 일대의 국립 박물관들, 관공서 건물들, 말끔한 오피스 빌딩들과 역사적인 공원 등이다. 이들은 워싱턴DC가 공기 맑고 한적하며 잘 정비된 도시라는 평을 한다. 나는 이들을 시 외곽의 분위기 삭막한 빈민가, 밤이 되면 가로등도 없어서 깜깜한 거리로 일부러 안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리무진 불빛이 흐르지 않는 이면의 어둠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방 정부에서 일하거나 의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교양’을 갖추고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자가용 승용차 대신에 ‘위버 워싱턴’ 택시나 메트로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을 이용하고, 세계 정세에도 관심이 많아서 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의 행적에도 밝은 이 세련된 ‘위버 워싱토니안’들은 그러나 바로 이웃 빈민가의 사람들이나 동네 공립학교의 실정이 어떠한지 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한 시민 운동가가 쓴 소리를 날린다.

 

2012, 5,23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2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9815

 

인간의 영혼을 거두는 천사가 있었다. 하루는 어느 여인의 영혼을 거두러 갔는데 그이는 쌍둥이 아이를 낳고 누워있다가 저승에서 온 천사를 발견하고는 사정을 했다. 아이들 아버지는 사흘 전에 죽었고, 이 신생아들을 돌봐줄 이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 제발 목숨을 거두지 말라고. 천사는 여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한지라 빈 손으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하느님의 명을 거역한 그는 벌을 받아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 떨어지는데, 그에게는 세 가지 과제가 주어진다.



“인간에게 무엇이 있는지, 인간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깨닫고 오라.”



 헐벗은 채 지상에 떨어진 그를 처음 발견한 이는 가난한 구두장이였는데, 그가 옷을 벗어 이 천사에게 걸쳐주고, 부부가 함께 그에게 밥을 먹인다. 천사는 이들에게서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을 발견하고 미소 짓는다.


구두장이의 조수로 일하던 천사는 구두를 맞추러 온 부자 사나이의 등 뒤에 서있는 동료 ‘천사’를 발견한다. 부자 사나이에게 필요한 것은 몇 년 신어도 해지지 않을 튼튼한 구두가 아니라 오늘 저녁, 시신에게 신겨줄 신발이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영원히 살 것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천사는 깨닫는다. 6년이 흘렀다. 구두 가게에 한 여자가 쌍둥이 아이들에게 신길 구두를 맞추러 찾아온다. 천사는 그 쌍둥이 아이들이 6 년 전에 한 산모가 죽으면서 남긴 아이들임을 알아본다. 돌봐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둘 다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인간은 부모보다는 신의 섭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지상에서 6년간 머물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인간은 ‘사랑’을 갖고 있어서 살아있는 것이며, 정작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며,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면 그 안에 ‘살아 있는 신’이 있어 사는 것인데 살아있는 신은 ‘사랑’이다.


 위의 이야기는 톨스토이 민화 중의 하나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간추린 것이다. 영문으로는 ‘What men live by’라는 검색어를 치면 웹에서도 영어 번역문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어머니 날’이었던 지난 주말, 나는 개를 끌고 동네 산책을 나간 길에 식품점에 들러서 간단한 장을 보고 구석의 커피점에서 냉커피를 한 잔 샀다. 개는 가게 앞에 묶어놓은 채였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개가 잘 있는지 유리창 밖을 내다 보았다. 우리 개 왕눈이가 묶여있는 자리에 웬 사람이 등을 구부리고 뭔가 하는 것이 보였다.


개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굽어진 등과 그가 식품점 점원들이 입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 정도가 보일 뿐이었다. 커피를 받아가지고 나오니 평소대로 개가 펄쩍펄쩍 뛰면서 나를 반겼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개를 묶어놓은 자리에 놓여진 물 한 그릇. 누군가 우리 왕눈이 먹으라고 물을 한 그릇 떠다 주고 자리를 떴던 것이다. 길에 묶여 있는 개가 딱해 보여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 한 그릇을 떠다 놓고 가는 어떤 낯 모르는 사람의 굽어진 등 위에 하늘의 빛이 어리고 있음을 나는 흘끗 본 것도 같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5월은 감사와 은혜의 달인 듯 하다. 어머니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고 이어서 아버지 날도 오고 그런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은 것도 같다.



 이 세상을 온전하게 굴러가게 하는 이들은 특별한 아무개가 아닌, 내가 살면서 수없이 스치거나 스치지도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지만 늘 문 앞에 우편물을 갖다 주는 우편 배달부나 새벽의 신문 배달원, 새벽 세시면 빵을 굽는 우리 동네 식품점 점원. 밤새 하이웨이를 달리는 물품 트럭 운전사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그 보이지 않는 손길에서 나는 이따금 신의 시선과 숨결을 느낀다. 그 찰나의 각성의 순간에 나의 등 허리도 문득 빛날지 모른다.

 

2012, 5,16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2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5521

 

올해로 미국에 와서 산지 꼭 10년이 된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미국에서 영어교육 전공으로 학위까지 마치고 현재 하는 일도 영어를 가르치거나 영어교육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데, 여전히 영어는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최근에 친구로부터 파티 초대를 받았다. 집 뒷마당이 아주 넓으니까 거기서 야유회를 할 계획이니 부담 없이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Chillie and Dog Party’라는 제목을 붙였다. ‘칠리는 고기와 각종 야채를 잘게 썰어 뭉근하게 오래 끓인 고기 죽 같은 것인데, 칠리를 대접하겠다는 말이군. 그런데 도그 파티라면 개들도 모여서 노는 파티인가? 마당이 넓으니까 아이들과 개들까지 모두 어울려 노는 파티인가보다. 우리 개 왕눈이도 데리고 가야지.’ 마침 이 때 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내 친구네 집에서 도그 파티가 있대. 왕눈이 목욕시켜서 파티에 데려 가려고!”



 내가 파티 얘기를 하자 전화기에 잠깐 침묵이 흐른다. “엄마, 도그 파티는 개 데리고 가는 파티가 아닌데요. 그 도그는 ‘핫도그’예요. 칠리와 핫도그를 제공하겠다는 말이에요.” 아들 덕분에 파티에 개를 끌고 가는 실례를 안 하게 되었다. 그 ‘도그’가 ‘핫도그’를 말하는 걸 나는 몰랐던 것이니….



 사실 핫도그(Hot Dog)만해도 그렇다. 내가 한국에서 알고 있던 핫도그는 막대기에 소시지를 끼고 밀가루 반죽을 발라서 기름에 튀겨 내던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소시지를 빵 사이에 끼워 먹으면서 그걸 핫도그라고 한다. 나는 소시지 종류를 안 먹기 때문에 평생 핫도그를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도그 파티’라는 단어를 보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개’일수 밖에.
 


핫도그뿐이 아니다.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미국의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는 ‘샌드위치’라고 부른다. 처음엔 그것도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었다. 비닐봉지를 ‘플라스틱 백’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언젠가 내 친구 영희씨(가명)가 영어를 배우다 저지른 실수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영어 ‘Dish’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접시’가 된다. 미국에 처음 와서 ESL 교실에 다니던 중이었는데, 미국인 선생님이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겠다고 하면서 “Bring a dish to share”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영어 초보자인 영희씨지만 ‘Bring a dish’라는 말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디시’ 정도는 한국에서 중학교때 배웠던 단어니까.



 미국 선생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난생 처음 초대받은 영희씨는 백화점에 가서 큼직하고 예쁜 접시를 하나 골라 예쁘게 선물포장까지 해 가지고 파티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음식이 담긴 그릇들을 한 가지씩 가져왔더라고.


 
Dish 는 ‘접시’라는 뜻도 있지만 ‘음식’이라는 뜻도 있다. 영희씨는 그것을 몰랐던 거다. 그뿐 아니라 미국 서민들의 파티란 것이 대개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함께 나누는 ‘팟럭(Potluck)’ 형식이란 것에도 깜깜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접시’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Plate(플레이트)’에 더 가깝다. 접시를 Plate 라고 말하면 혼동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Dish라는 말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실수를 했던 영희씨도 지금은 미국인 뺨치는 영어 실력으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웃으면서 옛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실수는 미국 생활 초보자들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어르신들도 실수담을 전하며 깔깔대기도 하신다.



언어를 배우면서 착각이나 실수는 누구나 한다. 심지어 모국어를 사용할 때도 뜻을 잘 모른다거나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수에 기 죽을 필요는 없다. 한 가지 실수를 했으면 새로 한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았는데도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서 나는 이 낯선 나라의 삶이 즐겁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착각도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어야 놀자!

May 9, 2012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2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1954

 

매년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미국 전역에서 걷기에 재미들린 사람들이 워싱턴DC에 모인다. 이들은 남들이 다 잠이 든 새벽 3시부터 조지타운에서 시작되는 포토맥 강변 수로를 따라서 하루에 100 킬로미터 행진을 한다. 이들이 100 킬로미터를 행진하여 다다르는 최종 목적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 국립 공원. 이것이 자신 없는 사람들은 아침 10시에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여 역시 하퍼스페리를 향해 걷는다.



1974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 내가 처음 참가하게 된 것은 지난해의 일이었다. 작년에 이 지면에 글도 쓰고, 주말 특집으로 행사 소개도 한 적이 있다. 지난 해에는 아들과 함께, 올해는 동행 없이 나 혼자였다. 하지만 350여명의 참가자들이 나의 길동무였다.

 


 
올해는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오후부터 비가 내릴 것이 예보됐다. 날도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작년에는 발걸음 가볍게 50 킬로미터를 마쳤는데, 올해는 어쩐지 처음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이미 절반 지점부터 나는 절름거리기 시작했고, 길에서 잠이 쏟아졌으며, 급히 먹은 샌드위치에 체한 듯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도착 지점은 한 없이 멀었다. 사람들이 절름거리는 나를 추월하여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앞에 차례차례 두 사람이 지나갔다.
 

 


한 사람의 셔츠 등판에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가 선명하게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는 문구였다. 고통은 순간이지만 견디기가 참 힘들어 보였다. 나는 그래도 이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또 한 사람이 나를 지나쳤다. 그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 중이었다. “난 지금 걷고 있어. 남편은 중간에 포기하고 나갔어. 지금 집결지에서 뜨거운 음식과 커피를 먹으며 쉬고 있어.” 누군가 걷기를 중도 포기하고 집결지에서 편히 쉬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게다가 다리가 잘 못 되었는지 나는 지금 절름거리고 있는데, 이런 최악의 상태에서 완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신의 계시다. 중도포기해도 살 길이 있다는 신의 계시임이 틀림없다. 이제 그만 걷자.’

 



 그렇게 4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10킬로미터를 더 걸으면 목적지였다. 어쩐 일일까? 생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견디고 꾸역꾸역 걷고 나자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마신 뜨거운 커피 덕분인지, 30여 분간의 휴식 덕분인지 나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다리는 여전히 절름거렸지만, 그래도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그래서 중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접어서 강물에 날려보내고 나는 다시 마지막 10킬로미터의 여정에 올랐다.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숲은 검게 물들었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날 저문 숲 속 길을 걸었다. 걷다가 다리의 고통이 극심해 졌을 때, 나는 ‘달리기’를 생각해 냈다. 걷기 자세에서 ‘달리기’ 자세로 바꾸자 오히려 고통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목적지까지 달리기 자세를 유지했다. 내 달리기 기록은 고등학생 시절, 체력장을 위한 1000 미터 달리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밤의 숲 속 길을 수 킬로미터를 혼자서 달리고 있었다. 절름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밤새들이 울고, 강변의 꽃들이 흰 별처럼 피어나 나의 길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도 50 킬로미터 행진을 완보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나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고통을 견뎌내는 시험 한 가지를 통과한 기분이다. 혼자서 밤의 숲 속 길을 달려본 그 기억은 내게 또 한 해를 용감하게 잘 살아낼 힘을 주는 것도 같다. 내년에도 나는 또 이 길을 걸을 것이다.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극복할 것이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

 



 이 행사는 매년 1월 말에 등록을 받는데 등록을 시작하자마자 하루 만에 신청 마감이 되는 편이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이 행사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된다. https://www.onedayhike.org

 

2012,5,2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