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8. 16. 01: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59430

 

며칠 전 어느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 입구에 서있는 기계 앞에서 두 시간짜리 주차증을 사는데, 옆에서 누군가 혼자 한탄 하는 소리가 들렸다. “What the heck it is(아이구, 도대체 이게 뭐람)!.” 두 꼬마 아이들을 거느린 어느 흑인 여성이 기계 앞에서 큰 목소리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주차증을 사는 방법에 서툴러서 그런 것 같았다.

 

“May I help you(도와드릴까요)?”하고 물으니, 잔뜩 골이 났던 여성이 죽마고우라도 만난듯한 표정이 된다. 나는 차근차근 각 단계마다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을 하면서 그 여성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기계에서 주차증이 두 장이 나오는 거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 여성이 설명을 한다. “아까 나 혼자서도 이걸 다 했는데, 주차증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그걸 몰랐던 거야.” 이 사람은 주차증이 나오는 입구를 기계에서 찾지를 못해서 공연히 주차비를 두 배로 물고 만 셈이다.

 주차증 얘기가 나오니, 공항의 주차카드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워싱턴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공항이 덜레스 공항일 것이다. 이곳에 손님 영접이나 송별을 위해 들르게 될 때는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카드를 뽑은 후에 주머니에 갖고 다니다가 나중에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기 전에 입구의 주차카드 정산기기에서 미리 주차비를 정산하면 편리하다. 이때는 기계에 내 주차카드를 넣고 그 후에 내 은행카드를 넣는다.

은행카드가 스르르 나오고 주차비 정산이 된 후에 주차카드가 나온다. 그 주차카드를 갖고 있다가 공항을 빠져나갈 때 기기에 집어 넣으면 출구 가로대가 올라가고 차는 유유히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생활 속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앞서의 흑인 여성은 왜 주차증 판매 기계 앞에서 쩔쩔매고 서 있었던 것일까? 그이에게는 그 기계가 한없이 낯설었고, 주위에 설명을 해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더위를 잊기 위해 집어 든 책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I'm a Stranger Here Myself(나 역시 이방인)’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젊은 시절 20년간 영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미국으로 귀국한 이후에 맞닥뜨린 ‘낯선 미국’의 경험을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미국인 빌 브라이슨이 미국에서 낯설게 여긴 것 들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동네의 단골 식당에 들어간 그는 뭔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급히 메모하기 위해서 입구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식당 직원이 다가와서 차가운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자리 안내를 받지 않고 앉으셨군요.” 미국 식당의 일반적인 불문율은 입구에서 얌전히 기다렸다가 직원이 테이블로 인도를 하면 얌전히 시키는 대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문율을 이 사람이 깬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파리만 날릴 정도로 한가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이 사람의 주문을 받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제멋대로 구는 손님에 대한 일종의 응징이었다.

 이 사례를 읽으며 나 역시 내가 겪은 일들을 상기하며 웃고 만다. 이따금 한국에서 손님이 왔을 때 식당에 가면 아무데나 빈 자리에 저벅저벅 가서 앉으려는 분도 있다. 그러면 내가 황급히 그를 붙잡고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한다. 한국의 일반식당에서는 들어가서 아무데나 내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보통인데 미국의 식당에서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주는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니.

 영어 교육을 하다 보니 미국에 살면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이 내가 영어를 못해서…”라고 스스로 단정하는 분들. 그런데 사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 사람들에게도 미국은 낯설고 어렵고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어려운 법이다, 딱히 영어 때문이 아니라 해도. 반대로 낯설어도 다가가 차근차근 익히면 나는 능숙한 사람이 된다, 내가 이방인이라고 해도.

 

2012,08,08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