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어.
선선해.
집에서 밥해놓고 기다리거나, 그냥 빨리 오라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딱히 300미터 거리의 집에 서둘러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이런저런 (신석정의 시를 조금 읽다가, 성경을 조금 읽다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강아지 동영상을 조금 보다가, 쉬다가) 잡다한 것으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진 후에 학교 건물을 나서면 - 저만치서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일부러 학교 건물 앞으로 걸어오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아. 그 미소가. 나를 보며 싱긋 웃는 그 미소가. 그 모든것이 되살아나. 당신은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는데.
이 캠퍼스위를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이곳을 함께 걸어지나갔던 그 모든 순간들이 한꺼번에 다가와서 - 마치, 마치 말야. 우리가 함께 걸을때, 오늘 하루 어땠는지 종알종알 떠들며 집으로 함께 향할때, 우리는 마주보는것이 아니라 각자 앞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것이니까. 마치 그렇게 그냥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듯한 그런 기분이 들어. 옆을 흘끗 돌아보지만 않으면, 그러면 당신은 여전히 나하고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듯한 - 그런 느낌이지. 그러니까 내가 돌아보지만 않으면 당신은 그자리에 있는거야. 따뜻한 체온의 당신이 내 옆에서 걷고 있는거야. 내가 힐끗 옆으로 쳐다보지만 않으면 돼.
늘 그런식이야. 우리가 이 캠퍼스에서 10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당신이 정년 퇴임한 후에는, 그리고 항암치료만 받던 그 2년의 기간동안 당신은 우리의 작은 집을 쓸고 닦고, 정리하고, 차를 깨끗이 청소하고, 그러니까 내가 신경쓰지 않는 모든 집안의 일들을 해나갔어. 아프지 않을때. 움직일수 있을때. 몸이 아프지 않아서 움직일수 있는 기간에는 '우렁각시'처럼 집안을 반짝반짝 정리하고, 퇴근하는 나를 위해 계란말이와, 생선구이와, 된장찌개와 그런 소박한 것들로 우리의 작은 식탁을 가득 채워놓고 나의 퇴근을 기다렸지. 당신이 항암제를 맞고 죽을듯이 아플때, 그때는 당신이 처방받은 '복용약'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나는 집으로 달려오곤 했지. 내가 곁에 있어줘야 당신이 덜 괴로워했으므로, 학교에서 꼭 처리해야 할 일만 처리하고 나는 집으로 달려왔어. 그래봤자 학교에서 집까지 300미터쯤의 거리였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안심시키기위해서 나는 쌩쌩 달렸지.
그러니까 그 10년 그기간중에서 6년간 우리는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소박하고 즐겁게 지냈고, 만 4년간 당신은 암과 씨름해야 했지. 나는 암과 씨름하는 당신의 편이 되어 함께 씨름하며 그 시간을 보냈지. 당신이 암에서 잠시 회복하여 대학으로 다시 돌아갔을때 나는 당신이 힘들까봐 서울 저쪽의 대학까지 차로 운전을 하고 모시고 다녔지. 내 수업을 진행하면서 - 당신 대학의 강의 일정도 역시 관리를 해 나갔었지. 그 먼길을 가고 오는길, 우리는 평창동에 있는 갈빗집을 들르기도 했고. 우리, 힘들었지만, 나는 내가 할수있는 것을 해나갔고, 불평하지 않았고, 당신은 항상 내게 고맙다고 말하거나 미안하다고 말했지. 당신은 내게 최선을 다했고, 나도 내가 할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애썼어.
가장 힘들었던것은 .... 내가 정성껏 차린 밥상을...하지만 당신이 한숫갈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그 음식들을 다 버려야했을때, 대부분의 나날이 그렇게 지나갈때...당신이 먹을수가 없을때...한없이 버려지던 그 음식들 그 음식들을 버릴때마다 나는 절망했어. 절망하고 절망하고 절망했어. 여보 그래서, 나는 당신이 천국으로 먼저 가버린 후에, 집에서 뭘 해먹지를 않아. 당신이 떠난후에 나는 집에서 국을 끓인적도, 찌개를 끓인적도 없어. 가끔 밥솥에 밥을 해. 그걸 봉지봉지 담아서 냉동실에 던져 놓고, 가끔 배가 고프면 그걸 꺼내먹어. 김이나, 계란, 오이나 당근, 뭐 그런것들과 곁들여서 밥을 그냥 먹어. 밥하기도 귀찮으면 그냥 즉석밥을 꺼내서 전자렌지에 돌려서 김하고 먹거나 계란후라이를 해서 먹지. 소금이나 찍어서 먹지. 시장기를 면하면 돼. 내가 정성껏 요리했던 그리고 끝없이 버렸던 그 국과 찌개와 찜과, 조림과, 그 모든것이 한스러워서 나는 다시는 절대로 그런것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
우리학교 직원 선생님이 어쩌다 내기 집에서 밥상을 차려 먹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러니까 밥상이 그리우면 나가서 사먹는 편이야. 집에서는 뭘 차려먹지 않아. 오이나 사과나 계란이나 요거트나 그런걸로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지.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 되는거 아닌가...그런거야. 그 얘기를 들은 직원선생님이 있는데 그 분의 어머님이 가끔 여러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보내셔. 언젠가는 찬합에 찰밥과 나물반찬과 겉절이까지. 나혼자서 2-3일 거뜬히 먹을정도를 보내셨는데 - 그걸 먹으니 갑자기 내가 평소에 차리던 그 '밥상'이 몹시 그리워지더라구. 내가 당신을 위해 차리던 밥상. 당신이 나를 위해서 차리던 밥상. 그 평범하고 정겨운 음악이 흐르던 밥상. 그래서, '덕분에 잘 먹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영혼까지 따뜻해지는 밥이었다고' 그렇게 그 어머니께 인사 메시지를 보내드리니까 -- 어머님이 기분이 좋으셨나봐. 자꾸만 보내시는거야. 그래서 내가 감사인사를 안드리기로 했지. 인사하면 또 보내실것 같아서. 내가 인사를 안드려야 '인사성 없는 괘씸한 사람이다' 판단하시고 그만 보내실것 같아서. 그래서 감사인사도 안드리고 그냥 얻어먹고 넘어갔더니만...좀 뜸하다 싶었더니...오늘 다시 또 한보따리를 보내주셨어. 내가 2-3일 먹고 치울 딱 그만큼의 여러가지 밑반찬들. "원래 우리 엄마가 이렇게 해서 자식들 해주시는걸 좋아하셔요. 이건 아주 조금밖에 안되는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그 직원선생님이 내게 말해주지만 -- 여보 얻어먹는 나는 되게 죄송하고 송구스럽고 감사하고 그렇지...
그렇게 살고 있어 지금 내가. 누군가 나를 돌봐주기도 하고. 나도 무한대로 신세를 지는것 같기도 하고...
지난 열흘간은 정말 눈앞이 캄캄할정도로 몸이 아팠던것 같아. 병원에 가서 여러가지 치료제가 들어간 투명한 수액과 (당신이 죽기 전에 맞았던 그렇게 투명한 진통제 같은것) 그리고 마늘냄새가 짙게 나는 영양수액과 두가지 다른 약들을 한참 맞기도 했었어. 환절기 감기 정도... 아직도 기침이 터져나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서, 이렇게 환절기 몸살이 지나가려나보다 생각하고 있어. 힘든 시간이 지나간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질때가 있잖아. 너무 기운이 없을때. 요새 그랬어. 지금은 좀 나아. 이번주 수업도 다 잘 해냈고, 다른 필요한 일들도 다 처리했고.
당신이 없으니까 이 세상이 재미가 없어. 당신이 썩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 당신이 주로 나를 재미있어 했잖아. 내가 무슨 얘기를 하던지 당신은 흥미진진해했고 내 얘기 듣기를 좋아했쟎아. 나를 재미있어해주는 당신이 없어서 나는 혼자서 재미있는 일이 없는것 같아. 무엇도, 아무런 맛이 없고 재미가 없어.
그래서 이 세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잘 보내야하니까, 어떻게든 잘 살려고 애를 써보는거지.
나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해봐. 밑도 끝도 없이. -- 만약에 우리가 다시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나서 다시 남자와 여자로 만나게 되면 - 서로 알아보게 되면 - 그때도 나는 당신과 결혼을 할까? 당신은 분명코 나하고 또 결혼할거라고 백번 천번 다시 결혼할거라고 말하겠지만 --- 나는 아직도 생각중이야. 당신과 다시 결혼할지, 다른 놈과 살아볼지. 아직 결정을 못했어.
오늘은 여기까지. (이렇게 주절이 주절이 이야기를 하니, 당신이 곁에 있는것 같군.) 곁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뭘까. 결국 곧 나도 먼지처럼 사라질텐데. 안그래? 좋아 내가 여기서 40년정도 더 살다 간다고 쳐. 그래봤지 40년후에 나는 먼지라는 얘기쟎아. 그러면 40년후에 먼지가 된 나와 나보다 조금 일찍 먼지가 된 당신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 안그래? 별차이 없는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있는지 없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중요한 것은 -- 아직도 아직 먼지가 안된 내가 당신의 체온과 음성과 눈빛과 미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이 시간속에 있다는거지. 그게 중요한거지 안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