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서 운다.
이런 노랫가락이 있다. 딱 이 두줄만 기억한다. 이것이 곡 전체인지 부분인지 알 수 없다.
새벽 5시에 귀신같이 (시계같이) 잠이 깨어 집을 점검하고 5:30분에 출발하여 50분만에 송도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휘발류 채우라는 경보가 뜨길래, 남편과 늘 들르던 그 주유소에서 탱크를 채웠다. 십일만원쯤.
송도집을 둘러보고, 창문을 활짝열고 모처럼 선선한 이른 아침 공기를 집안 가득 들이고, 청소기를 돌리고,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었다. 학교에 공무원들이 위촉장을 가지고 와서 그들과 환담을 하고, 직원 선생님과 회의를 하고, 부하직원 선생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근처 스테이크점에서 썰로인 스테이크를 함께 먹었다. 물론 내가 접대했다 (나는 부하직원한테 밥값내게 하는 졸장부가 아니다).
가을학기 개강전에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걸 차근차근 쳐내야 한다. 해가 지는줄도 모르고 일을하다 문득 - 남편 생각이 났다. 그렇지 이렇게 저녁이 되면, 남편이 전화를 득달같이 걸었다. 밥 차려놨으니, 생선 구워 놨으니 식기전에 뛰어오라고 성화를 해대는 전화. 그러면 나는 "그래 알았어. 이것 조금만, 마저 하고 갈게" 일을 하다보면 나는 잠깐이지만 그 사이에 30분, 한시간이 가기도 하고 그가 전화로 성화를 해 댄다. "나 배고파! 빨리 와!"
항암을 하는 도중에도 그가 기운을 조금 차리면, 그는 밥을 앉히고, 두부를 부치고, 계란말이를 하고, 생선을 굽고, 그렇게 조롱조롱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다. 빨리 와서 저녁 먹지 뭐하는거냐고. 그러면 나는 강의실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우리는 살았다. 송도집에서 만 10년을 살고 - 그는 천국으로 갔다. 십년을 그가 여기서 살았다.
그러니, 저녁이 오자 - 가슴이 면도칼로 막 이리저리 그어대는것처럼 찌르르 찌르르 아파왔다. 당신이 이 지상에 없다는 것이 무섭게 실감이 난다.
극심한 고통으로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 그는 혼자 있기를 극구 피했다. 곧 죽을것 같은 극심한 공포. 그럴때는 그는 꼭 내 곁에 있고싶어했다. 내가 수업을 가야 할 때에도. 그는 설령 내가 수업을 하러 강의실로 나가도, 내 연구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견딜만하다고 했다. 내 연구실 작은 소파에 기대누워서 그는 나를 기다렸다. 저기 저 자리. 그가 여윈 몸을 누이고 가만히 작은 새처럼 나를 기다렸다.
그는 극심한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면 내게 꼭 붙어있고 싶어했고, 내가 곁에 있으면 그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내가 그의 시야안에 있고 눈을 맞출수 있으면 그는 안도했다.
나를 빛으로 여기던 사람.
나를 빛나게 만든 사람.
나를 빛나게 만들고나서 나의 빛속에서 안도하던 사람.
그 사람이 이 지상에서 떠났기때문에 나의 빛도 꺼진것 같다.
오늘 많은 일을 해 치웠다. 이제 한시름 놓는다.
내일은 새로 부임한 신규 교수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서 발표를 해야 하고 (오전에 스케줄이 잡혀서 다행이다), 집으로 가서 필리핀에 갈 가방을 챙겨야 한다. 대충 다 모아놓았지만, 이제 체계있게 가방에 착착 담고 마지막 점검을 해야한다. 그리고 좀 자야지. 밤에 교회에 모여가지고 자정넘아서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에는 새벽에 도착하는데 도착하자마자 사역시작이라고 한다. 고난의 행군 스케줄이다. 뭐 관광이 아니라 '선교'하러 가는거니까 그냥 '단련' '연단'이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해야지 뭐. (한숨) 하느님께서 내게 그 모든것을 감당할 체력을 주시겠지.
다 울었다. 이제 일을 조금 더 하고 집에 가서 자야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
이제 나는 혼자 죽을때까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에 들어가고, 아무도 차려주지 않는 밥을 알아서 챙겨먹고, 그럴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