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11. 25. 16:07

 

11월의 마지막 목요일.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학교에서는 캠퍼스에서  추수감사절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피곤해서 그냥 쉬기로 했다. 책이나 보다가 퇴근해야지. (코비드가 무서워, 사람 모이는데 가는 것은 피하고 본다.) 

 

문득 5년 넘게 내 오피스에 걸려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2015년 추수감사절, 메릴랜드 오션시티 해변.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날의 너무나 따스했던 햇살과, 텅빈 해변과 파도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 삶의 한 순간이 영원처럼 박제된것 같은데 - 박제된 시간속에서 파도는 여전히 철썩철썩 소리를 내는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시간에서 6년 멀어졌고, 그만큼 나이 들었고, 느려졌고, 거울속의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만큼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 한장의 사진이 있어서 아직도 그날의 햇살과 파도소리를 간직할 수 있으니.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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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11. 16. 14:01

눈맞춤

 

팬데믹의 여파로 Zoom 을 이용한 대화가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버린듯하다.  특히 줌 수업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향한 시선처리가 중요하다. 가능하면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대화를 해야 저쪽에서는 나와 눈맞춤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사실 깨알만한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 어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가르쳐 준 꿀팁. 노트북이나 컴퓨터 모니터나 하여튼 줌으로 대화를 하는 도구의 카메라 바로 뒤에 커다한 두개의 눈동자를 그려 붙이면 - 우리의 시선이 저절로 그 두개의 눈동자로 가게 되고 - 그러면 우리가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킨듯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들어보니 그럴듯 해서, 잘생긴 남자 배우 얼굴 사진을 한장 큼지막하게 프린트하여 모니터 뒤의 벽에 붙여 놓았다.  줌 수업할 때 카메라 대신에 이 미남자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한다.  어차피 카메라도 켜지 않는 '검은 그림자' 같은 학생들. 그 검은 그림자들을 보면서 우울증에 걸리느니 잘생긴 미남 배우의 사진에 의지하여 수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 보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카메라를 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 학생들을 나무랄수도 없고, 강제할 수도 없다. 얼굴 사진 하나 가지고 온갖 범죄를 생산해내는 기묘한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어쨌거나 잘생긴 이 @@ 씨가 우리를 돕고 계시다. 

 

눈이 사슴 눈이라서. 하하하. (원래 내 취향은 아닌데. 요즘은 딱히 취향이란것이 없다.세상이 시들하고, 미남자들도 시들하고. 심심하다.) 일단 잘생기면 좋은거지 뭐.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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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11. 14. 12:59

 

'연탄은행'이라는 기관과 연계하여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우리 학교 학생, 교직원, 학장님까지 20여명이 1,600장의 연탄을 여덟 가구에 200장씩 배달하는 행사였다. 

 

연탄은행에서 활동하시는 봉사자들이 우리 일행에게 팀을 짜서 일거리를 분담을 시켜주셨는데, 나는 연탄의 최종 배달지 창고에서 연탄을 받아 쌓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쌓여있는 연탄더미에서 연탄을 '지게'에 실어주는 팀 - 지게로 운반하는 팀 - 운반된 연탄을 창고 입구에서 받아서 쌓는 팀 - 대략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을 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른 팀과 함께 창고 구석에서 연탄을 죽어라 쌓는 일을 한 것인데 그러니까 내 손으로 쌓은 연탄만 정확히 800장이다. (네 가구의 연탄광을 내가 채웠고, 다른 팀이 나머지 네가구를 채웠고.)  이 일을 딱 두시간에 끝내고 오후 한시쯤에는 학교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하루 반나절을 끙끙 앓았다. 하하하.  연탄 쌓는 일은- 그게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연탄을 사용해 본 나같은 사람이 연탄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쓰러지지 않게, 좁은 연탄광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을수 있는 것이다.  우리팀은 내가 쌓았고, 다른 팀은 '하필 연탄을 생전 구경도 못해본 우리 미국인 학장님'이 쌓아야 했는데 - 처음에는 이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말귀'도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내가 가서 설명을 해주고 와야했다. 우리 학장님이 나이가 내또래인데, 몸도 펼수 없는 낮고 좁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 연탄을 쌓아야 했으니 나보다도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 연탄창고는 임시로 이리저리 막아놓은 뚜껑있는 상자 모양이어서 - 사람이 허리를 펼수도 없는 공간이었고, 연탄을 받아서 몸을 오그리고 그것을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일은 그냥 체육관에서 웨이트트레이닝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힘쓰기'와 '근육'을 요하는 일이었다.  지금 목부터 온 몸이 쑤시고 있다. 그래도 몸살이 나지않고 허리 어디가 삐끗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기저기 쑤시는 부위에는 새로운 '근육'이 붙고 있을 것이니.

 

 

처음 연탄을 배달하러 간 집에서는 노신사가 살고 계셨는데, 우리가 열심히 연탄을 쌓는 동안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 햇살 가득한 산기슭 그의 한뼘만한 마당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저기 저 학생은 아주 먼데서 온 모양이야" 할아버지가 가리킨 학생은 미국에서 온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므로 노신사께 자기 이름도 말하고 인사도 하고 하였다. 노 신사는 우리가 작업을 다 마치고 다른 집으로 이동할 때까지 한뼘짜리 마당가에 서서 우리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여기가 그린벨트야. 그래서 개발이 안돼.  기름보일라가 따뜻하지가 않아. 기름만 잡아먹지. 그래서 연탄으로 바꿨어. 아껴써서 하루에 여섯장이 들어가. 아주 아껴써서. 고맙지 이렇게 학생들하고 교수님하고 연탄을 쌓아주니." 

 

 

아주 아껴써서 하루 여섯장이 든다면 연탄 이백장은 기껏 한달 쓸 분량이다. 난방을 해야 하는 기간은 12-1-2-3 이렇게 네달은 잡아야 하는데 그러면 720장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아주 작은 연탄보일러에 연탄을 최소한으로 아껴서 쓸때 이런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쌓은 것은 딱 200장이었는데.  그것도  - "마침 연탄이 똑 떨어졌는데 오늘 쌓아주니 참 고마워" 뭐 이렇다.  맞다. 그의 연탄창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두번째 집은 젊은 신사분이 사시는 집이었다. 집 입구에 장애인용 전동의자차가 있었다. 내가 그 전동의자차를 발견하고 든 생각은 - '이 비좁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 전동의자차가 제대로 오르내릴수 있을까? 이 의자의 주인은 정말로 이걸 타고 이 골목길을 내려갈수 있을까?'   우리가 창고에 연탄을 쌓는 동안 딱 한번, 미닫이 문이 열리고, 젊은 신사분이 얼굴만 내밀고 우리에게 인사를 보내셨고 - 학생들도 씩씩하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보냈다. 

 

 

아무도 없었던 세번째 집의 아주 작은 꽃밭에는 붉은 맨드라미가 있었다. 화분만한 아주 작은 꽃밭이었지만 '루비'처럼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네번째 집의 창고에는 자전거도 한대 세워져있었다. 

 

 

집에 와서 - 도대체 내가 나른 연탄은 요새 한장에 얼마나 하는건가? 궁금한 생각이 들어 검색해보았다. 대략 650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차가 닿지 않는, 리어카(손수레)도 다닐수가 없이 비좁고 꼬불꼬불한 언덕길 위에 연탄을 배달할때도 그가격일까? 배달료를 더 받는게 아닐까? 

 

 

모르겠다. 일단 계산좀 해보자. 650x180=117,000x4=468000  한 사람의 최소한의 겨울 난방비가 이쯤 되려나보다.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에, 내가 신혼일때 우리 시아버지도 연탄을 때셨는데, 연탄을 무지무지 아끼셨다. '불구멍을 막아 놓는다'고 - '죽은 놈 콧김 만큼도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온기 없이 지내시다가, 내가 나타나면 불문을 열어 놓으셨다. 그러면 정말로 그 손바닥만한 방이 금세 따끈따끈해졌다.  내가 어쩌다 '시댁에서 자는 날'에는 냉골로 놓아두던 작은 방에 급히 연탄을 옮기고 불을 붙이셨다.  나는 그걸 보면서 '안때던 방에 연탄 불 때면 가스가 나올텐데, 내가 오늘밤에 연탄 가스로 저승으로 가는게 아닐까?' 그런 문제의식을 갖기도 했었다.  나는 그래도 신혼 생활을 기름보일러집에서 시작했는데, 나도 돈 아끼느라 그 기름보일러를 안쓰고 그냥 셋집 마루에 연탄난로를 들이고 연탄을 때면서 그 온기로 삼동을 보냈다.  그 이후로 연탄은 내 일상에서 사라진듯 하다. 그래도 겨울이면 한 트럭씩 연탄을 주문하여 연탄광을 꽉꽉 채우고 살던 어린시절, 겨울에 골목에서 놀다가 '연탄 왔다!' 엄마가 부르시면 모두들 달려가 연탄을 연탄광까지 옮기던 시절을 보냈으므로 연탄을 나르고 쌓는 일이 내게는 친근한 과거로의 회귀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연탄을 때시는 우리 이웃의 아주 작은 꽃밭에도 햇살은 가득했고, 맨드라미는 빛났으며, 문을 열고 내다보는 젊은 신사도, 마당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신 노신사도 모두 반짝반짝 빛나셨다. 

 

***   ***

 

<봉사 활동에 대하여>

봉사활동은 내돈 내고 하는게 맞다. 

 

 

대학 다닐때, 내 가까운 친구들이 여름이면 '대학생 농촌봉사활동'을 갈 때,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기만 하였다. 내게는 '농촌봉사활동'의 명분이 없었다. 왜냐하면, 여름이면 시골집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농사일을 거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집 식구나 돕지 무슨 봉사냐' 뭐 이런 분위기를 거역하기 힘들었다. 집 안팎에 널린게 일거리인데 그것 놔두고 무슨 중뿔나게 남 돕는다고 돌아다니냐 이거다.  내가 대학생이던 당시에, 우리 외사촌오빠도 대학생이었는데, 어느해 여름에 물난리가 나서 경기도 일대의 논밭이 떠내려가고 쌀이 썩고 아주 난리가 났었다. 우리 외삼촌댁도 그 경기도 일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집이 난리가 났는데 - 우리 사촌오빠는 글쎄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수재복구 봉사'를 하러 어디로 갔다는 것이다.  지네집에 난리가 났는데 무슨 남을 구제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킬킬거리며 그 오빠 흉을 봤다. 

 

 

지금도 - 예컨대 어느 주부가 어디로 봉사활동 간다고 하면 - '제 집 꼴도 엉망인게 무슨 봉사라고 나돌아다니냐, 네 앞가림이나 똑바로 하라'는 냉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뭔가 '봉사'라면 팔자 좋은 사람들이 '취미' 정도로 해야 타당하다는 분위기이다. 혹은 위선적으로 살면서 무슨 봉사냐며 한 사람의 전인생을 평가하고 '봉사'를 할만한 사람과 봉사는 택도 안되는 사람으로 분류를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봉사'에 대해서 마냥 따뜻한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봉사'라는 것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평생 살면서 '봉사'는 다섯손가락도 채우기 힘들 정도로 봉사를 안하고 살았다. 나는 '봉사'는 성인군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남의집 봉사 다니느니 내집부터 돕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고, 돈 안되는 봉사보다는 돈 버는 일에 열중했다.  돈을 벌어야지 무슨 봉사냐구. 

 

그런데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한 번 하면 - 깨달아지는 것이 많다. 봉사의 장점을 말하자면 -- (1) 내 평소 생활권이 아닌 다른 곳, 낯선 곳에 가서 내가 평소에 만나지 않는 새로운, 낯선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마치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2) 여행과 같은데 경비는 별로 많이 안 든다. (3) 몸이 고단해지는데 마음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4) 무조건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5) 내가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진다, (6) 잠을 푹 잔다. '내 애플워치의 기록에 의하면 간밤에 나는 잠에서 깨지않고 8시간을 잤는데 올해들어서 그렇게 잠을 잔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자 봉사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혜택을 얻게 된다. 그러니 봉사는 내 돈을 내고서라도 하는 것이 맞다. 봉사는 누군가 남을 도우려고 하는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거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웃이 약간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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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탄가스란 단어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낯선말이 아니었는데..
    귀한섬김을 하셨네요
    삼동을 연탄난로로 나셨다니..
    젊은시절인데도 알뜰하셨네요
    봉사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감사의글 잘읽었어요

    2021.11.14 14: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연탄가스란 단어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낯선말이 아니었는데..
    귀한섬김을 하셨네요
    삼동을 연탄난로로 나셨다니..
    젊은시절인데도 알뜰하셨네요
    봉사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감사의글 잘읽었어요

    2021.11.14 14: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집수니님 반갑습니다. '국민학교'를 아시니 대화가 통하는 것 같습니다. 연탄을 지게에 짊어지고 오르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 저 친구들이 연탄이란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기나 알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참 기특하지요.

      봉사는 - 사실 자기 자신을 섬기는 일인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가 '사랑'의 몸짓을 할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니 - 하나님과 하나가 될때 우리는 완성되는 것이므로 - 봉사를 통해 우리는 아주 잠시 '완성'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것들을 연탄을 쌓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고 사랑을 생각할때 그 반짝이는 찰라의 순간 - 에피파니를 경험하고, 변화의 산에 잠시 머무르며...


      예, 저는 과거에도 zzansuni (짠수니) 였고, 지금도 별반 변한것이 없습니다. 헤헤.

      2021.11.14 16:58 신고 [ ADDR : EDIT/ DEL ]
  3. 긴 답글 감사합니다.
    작은 사랑의 몸짓으로도 우리를 하나되어 주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2021.11.14 17: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긴 답글 감사합니다.
    작은 사랑의 몸짓으로도 우리를 하나되어 주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2021.11.14 17: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저는 온라인으로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학교에 와서 일을 하는 중입니다. 화분들도 돌보고, 수업준비도 하고. 텅빈 학교에서 조용히 일하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특히 예배 드리고 와서 일을 하니 제가 하는 일이 모두 성스럽게 여겨집니다. (일하기 싫어서 꾀부리느라 블로그 하나 쓴것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이렇게 집수니님과 하나님에 관한 대화도 나눌수 있으니 제게는 정말로 성스러운 안식의 주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기원드립니다. 저의 하나님께서는 제게 참 친절하시지요. 그래서 늘 죄송하고 감사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죄송한 이유'는 제가 참 미천하고...하나님 기대에 못미치는 것 같아서입니다. 뭐 그것도 헤아려주시겠지요.

      2021.11.14 19:04 신고 [ ADDR : EDIT/ DEL ]
  5. ^^~

    2021.11.14 19: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

    2021.11.14 19: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21. 10. 21. 17:30

 

 

이쁘장하게 생긴 남자 배우의 몰락이 요즘 화제다.  그 배우는 내가 방학때 미국집에 있는 동안 넷플릭스를 통해서 봤던 '백일의 낭군님'인가 하는 드라마에 나왔던 '착한 남자'다.  나는 거기 나오는 주인공이 잘생겨서 그걸 열심히 보았다. 이 사람은 주인공은 아니고 조역이었는데, 만화책에서 방금 튀어나온듯한 미소년이어서 인상적이었다. 그 배우의 전 애인이 뭔가 '보복성'글을 언라인에 올렸고 뭐 그 때부터 상황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그 사람이 요즘 뜨는 대세배우였대서 놀랐고, 그가 별로 착한 남자가 아니었대서 조금 놀랐고, 뭐 그가 폭망하게 되었다고 해서 한숨이 나왔다. 일부함원이면 오월비상인데 그걸 몰랐구나 그 만화책 미소년이. 

 

연구실 바닥에 먼지가 굴러다니길래 걸레질을 하면서 - 유튜브로 김광진의 '편지'를 틀어놓고 걸레질을 하고 하고 하고 또 하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모두들 '한때는 사랑했는데...'라고 한다.  한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으니까 지금 그 사람이 망하는 꼴을 봐야 하는걸까? 나는 이 부분이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내가 사랑했고, 둘이 서로 사랑했고, 내가 버림받으면 (혹은 상대가 내게 싫증을 느끼고 도망을 가버리면) 그것으로 그 상황이 끝난다고 해도, 그래도 사랑은 거기 있으면 안되는가?  사랑은 거기 그냥 있으면 안되나?

 

어느 여배우도 한때 둘이 어울려 연애했던(연애했다고 어느 한쪽이 주장하는) 정치인을 향해서 여러가지 '저주'를 공개적으로 퍼붓는다.  나는 어느쪽 편도 들 생각이 없지만, 여전히 생각한다, 둘이 서로 좋아서 교제하던 시절 그 시절은 그대로 폐기되어야 하는가 (만약에 둘이 연애했다면 말이다)?

 

나는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면서 사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외사랑(짝사랑)일때도 있었고, 서로 사랑을 했을때도 있었다. 주로 내가 훨씬 더 많이 사랑을 했다. 주로 내가 더 많이, 더 오래 오래 사랑했다.  사랑을 퍼붓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  그 사랑이 잘 못 되었건 어쨌건, 나의 죄는 하나님께서 판단 하실 일이고, 나는 사랑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산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내게 아주 소중하다. 그들 하나 하나가 아주 소중하며, 그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넘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발끈하고, 보복하고, 망하기를 바라면서 한때라도 사랑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면 그렇게 못하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을 가지고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이 슬프다. 

 

김광진의 '편지'를 듣고 있으니 그 '편지'가 생각난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330706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YES24

`-저를 전혀 알지 못하시는 당신에게-이따금 눈앞이 캄캄해지곤 합니다.어쩌면 이 편지를 끝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제게 남은 힘을 다해서 일생에 단 한번 당신에게 보내는 이 편지

www.yes24.com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이 어느날 한문 수업은 안하시고 - 우리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르니까, 아마도 오늘같이 깊어가는 가을 오후였으리라,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저자가 스테판 쯔바이크였다는 것은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그 책을 찾아 읽었을때 알게된 것이었고 - 한문 선생님은 참 청승맞게 그 이야기를 해 주셨다. 평소에도 말씀을 단정하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시던 차분한 분이셨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문 선생님이 바로 그 여주인공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저를 알지 못하시는 당신에게...  이 짧은 소설의 끝은, 그런데 편지를 받은 그 남자는 도무지 이 여자가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것이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인터넷 시대에, 알고 싶지 않아도, 십년전에 헤어진 웬수도 검색 몇번만 하면 지금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애는 몇이고, 몇번 이혼했는지 소상히 알수 있는 시대에, 고전적인 사랑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헤어져도 헤어질수가 없어 - 티브이 틀면 나오고, 카카오톡 열면 나오고, 어디서든 유령같은 그들이 살아서 돌아다니니까 잊고 싶어도 잊을수가 없어.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가버린 사랑'을 잊을수도, 용서할수도 없는건가?  인터넷 시대에는 새로운 사랑의 방법 혹은 패러다임이 필요한걸지도 모른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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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10. 19. 13:16

 

남루하게 입었더도 거지같이 입은 그것이 모두 명품 수백만원어치라고 해서 유명해진 어느 법조인의 모습이 테레비에 나왔을때, 나는 - 아 저 역은 '김수로'씨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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