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6. 9. 9. 18:43

가을이 왔어. 
선선해.
집에서 밥해놓고 기다리거나, 그냥 빨리 오라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딱히 300미터 거리의 집에 서둘러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이런저런 (신석정의 시를 조금 읽다가, 성경을 조금 읽다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강아지 동영상을 조금 보다가, 쉬다가) 잡다한 것으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진 후에 학교 건물을 나서면 -  저만치서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일부러 학교 건물 앞으로 걸어오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아. 그 미소가. 나를 보며 싱긋 웃는 그 미소가. 그 모든것이 되살아나.  당신은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는데. 

이 캠퍼스위를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이곳을 함께 걸어지나갔던 그 모든 순간들이 한꺼번에 다가와서 - 마치, 마치 말야. 우리가 함께 걸을때, 오늘 하루 어땠는지 종알종알 떠들며 집으로 함께 향할때, 우리는 마주보는것이 아니라 각자 앞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것이니까.  마치 그렇게 그냥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듯한 그런 기분이 들어. 옆을 흘끗 돌아보지만 않으면, 그러면 당신은 여전히 나하고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듯한 - 그런 느낌이지. 그러니까 내가 돌아보지만 않으면 당신은 그자리에 있는거야. 따뜻한 체온의 당신이 내 옆에서 걷고 있는거야. 내가 힐끗 옆으로 쳐다보지만 않으면 돼.

늘 그런식이야.  우리가 이 캠퍼스에서 10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당신이 정년 퇴임한 후에는, 그리고 항암치료만 받던 그 2년의 기간동안 당신은 우리의 작은 집을 쓸고 닦고, 정리하고, 차를 깨끗이 청소하고, 그러니까 내가 신경쓰지 않는 모든 집안의 일들을 해나갔어. 아프지 않을때. 움직일수 있을때. 몸이 아프지 않아서 움직일수 있는 기간에는 '우렁각시'처럼 집안을 반짝반짝 정리하고, 퇴근하는 나를 위해 계란말이와, 생선구이와, 된장찌개와 그런 소박한 것들로 우리의 작은 식탁을 가득 채워놓고 나의 퇴근을 기다렸지.  당신이 항암제를 맞고 죽을듯이 아플때, 그때는 당신이 처방받은 '복용약'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나는 집으로 달려오곤 했지. 내가 곁에 있어줘야 당신이 덜 괴로워했으므로, 학교에서 꼭 처리해야 할 일만 처리하고 나는 집으로 달려왔어. 그래봤자 학교에서 집까지 300미터쯤의 거리였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안심시키기위해서 나는 쌩쌩 달렸지. 

그러니까 그 10년 그기간중에서 6년간 우리는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소박하고 즐겁게 지냈고, 만 4년간 당신은 암과 씨름해야 했지. 나는 암과 씨름하는 당신의 편이 되어 함께 씨름하며 그 시간을 보냈지. 당신이 암에서 잠시 회복하여 대학으로 다시 돌아갔을때 나는 당신이 힘들까봐 서울 저쪽의 대학까지 차로 운전을 하고 모시고 다녔지. 내 수업을 진행하면서 - 당신 대학의 강의 일정도 역시 관리를 해 나갔었지. 그 먼길을 가고 오는길, 우리는 평창동에 있는 갈빗집을 들르기도 했고. 우리, 힘들었지만, 나는 내가 할수있는 것을 해나갔고, 불평하지 않았고, 당신은 항상 내게 고맙다고 말하거나 미안하다고 말했지. 당신은 내게 최선을 다했고, 나도 내가 할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애썼어. 

가장 힘들었던것은 .... 내가 정성껏 차린 밥상을...하지만 당신이 한숫갈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그 음식들을 다 버려야했을때, 대부분의 나날이 그렇게 지나갈때...당신이 먹을수가 없을때...한없이 버려지던 그 음식들 그 음식들을 버릴때마다 나는 절망했어. 절망하고 절망하고 절망했어.  여보 그래서, 나는 당신이 천국으로 먼저 가버린 후에, 집에서 뭘 해먹지를 않아. 당신이 떠난후에 나는 집에서 국을 끓인적도, 찌개를 끓인적도 없어. 가끔 밥솥에 밥을 해. 그걸 봉지봉지 담아서 냉동실에 던져 놓고, 가끔 배가 고프면 그걸 꺼내먹어. 김이나, 계란, 오이나 당근, 뭐 그런것들과 곁들여서 밥을 그냥 먹어. 밥하기도 귀찮으면 그냥 즉석밥을 꺼내서 전자렌지에 돌려서 김하고 먹거나 계란후라이를 해서 먹지. 소금이나 찍어서 먹지. 시장기를 면하면 돼.  내가 정성껏 요리했던 그리고 끝없이 버렸던 그 국과 찌개와 찜과, 조림과, 그 모든것이 한스러워서 나는 다시는 절대로 그런것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 


우리학교 직원 선생님이 어쩌다 내기 집에서 밥상을 차려 먹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러니까 밥상이 그리우면 나가서 사먹는 편이야. 집에서는 뭘 차려먹지 않아. 오이나 사과나 계란이나 요거트나 그런걸로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지.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 되는거 아닌가...그런거야.  그 얘기를 들은 직원선생님이 있는데 그 분의 어머님이 가끔 여러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보내셔. 언젠가는 찬합에 찰밥과 나물반찬과 겉절이까지. 나혼자서 2-3일 거뜬히 먹을정도를 보내셨는데 - 그걸 먹으니 갑자기 내가 평소에 차리던 그 '밥상'이 몹시 그리워지더라구.  내가 당신을 위해 차리던 밥상. 당신이 나를 위해서 차리던 밥상. 그 평범하고 정겨운 음악이 흐르던 밥상.  그래서, '덕분에 잘 먹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영혼까지 따뜻해지는 밥이었다고' 그렇게 그 어머니께 인사 메시지를 보내드리니까 -- 어머님이 기분이 좋으셨나봐. 자꾸만 보내시는거야.  그래서 내가 감사인사를 안드리기로 했지. 인사하면 또 보내실것 같아서. 내가 인사를 안드려야 '인사성 없는 괘씸한 사람이다' 판단하시고 그만 보내실것 같아서.  그래서 감사인사도 안드리고 그냥 얻어먹고 넘어갔더니만...좀 뜸하다 싶었더니...오늘 다시 또 한보따리를 보내주셨어.  내가 2-3일 먹고 치울 딱 그만큼의 여러가지 밑반찬들.  "원래 우리 엄마가 이렇게 해서 자식들 해주시는걸 좋아하셔요. 이건 아주 조금밖에 안되는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그 직원선생님이 내게 말해주지만 -- 여보 얻어먹는 나는 되게 죄송하고 송구스럽고 감사하고 그렇지...

그렇게 살고 있어 지금 내가.  누군가 나를 돌봐주기도 하고. 나도 무한대로 신세를 지는것 같기도 하고...

지난 열흘간은 정말 눈앞이 캄캄할정도로 몸이 아팠던것 같아.  병원에 가서 여러가지 치료제가 들어간 투명한 수액과 (당신이 죽기 전에 맞았던 그렇게 투명한 진통제 같은것) 그리고 마늘냄새가 짙게 나는 영양수액과 두가지 다른 약들을 한참 맞기도 했었어.  환절기 감기 정도...  아직도 기침이 터져나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서, 이렇게 환절기 몸살이 지나가려나보다 생각하고 있어.  힘든 시간이 지나간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질때가 있잖아. 너무 기운이 없을때. 요새 그랬어. 지금은 좀 나아. 이번주 수업도 다 잘 해냈고, 다른 필요한 일들도 다 처리했고.

당신이 없으니까 이 세상이 재미가 없어.  당신이 썩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 당신이 주로 나를 재미있어 했잖아. 내가 무슨 얘기를 하던지 당신은 흥미진진해했고 내 얘기 듣기를 좋아했쟎아. 나를 재미있어해주는 당신이 없어서 나는 혼자서 재미있는 일이 없는것 같아. 무엇도, 아무런 맛이 없고 재미가 없어.  

그래서 이 세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잘 보내야하니까, 어떻게든 잘 살려고 애를 써보는거지. 

나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해봐. 밑도 끝도 없이. -- 만약에 우리가 다시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나서 다시 남자와 여자로 만나게 되면 - 서로 알아보게 되면 - 그때도 나는 당신과 결혼을 할까?  당신은 분명코 나하고 또 결혼할거라고 백번 천번 다시 결혼할거라고 말하겠지만 --- 나는 아직도 생각중이야. 당신과 다시 결혼할지, 다른 놈과 살아볼지. 아직 결정을 못했어. 

오늘은 여기까지.  (이렇게 주절이 주절이 이야기를 하니, 당신이 곁에 있는것 같군.) 곁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뭘까. 결국 곧 나도 먼지처럼 사라질텐데. 안그래? 좋아 내가 여기서 40년정도 더 살다 간다고 쳐. 그래봤지 40년후에 나는 먼지라는 얘기쟎아. 그러면 40년후에 먼지가 된 나와 나보다 조금 일찍 먼지가 된 당신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 안그래? 별차이 없는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있는지 없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중요한 것은 -- 아직도 아직 먼지가 안된 내가 당신의 체온과 음성과 눈빛과 미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이 시간속에 있다는거지.  그게 중요한거지 안그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6. 8. 12. 20:01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서 운다.

이런 노랫가락이 있다. 딱 이 두줄만 기억한다. 이것이 곡 전체인지 부분인지 알 수 없다. 

새벽 5시에 귀신같이 (시계같이) 잠이 깨어 집을 점검하고 5:30분에 출발하여 50분만에 송도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휘발류 채우라는 경보가 뜨길래, 남편과 늘 들르던 그 주유소에서 탱크를 채웠다.  십일만원쯤.

송도집을 둘러보고, 창문을 활짝열고 모처럼 선선한 이른 아침 공기를 집안 가득 들이고, 청소기를 돌리고,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었다.  학교에 공무원들이 위촉장을 가지고 와서 그들과 환담을 하고, 직원 선생님과 회의를 하고, 부하직원 선생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근처 스테이크점에서 썰로인 스테이크를 함께 먹었다. 물론 내가 접대했다 (나는 부하직원한테 밥값내게 하는 졸장부가 아니다).

가을학기 개강전에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걸 차근차근 쳐내야 한다. 해가 지는줄도 모르고 일을하다 문득 - 남편 생각이 났다. 그렇지 이렇게 저녁이 되면, 남편이 전화를 득달같이 걸었다. 밥 차려놨으니, 생선 구워 놨으니 식기전에 뛰어오라고 성화를 해대는 전화. 그러면 나는 "그래 알았어. 이것 조금만, 마저 하고 갈게"  일을 하다보면 나는 잠깐이지만 그 사이에 30분, 한시간이 가기도 하고 그가 전화로 성화를 해 댄다. "나 배고파! 빨리 와!"  

항암을 하는 도중에도 그가 기운을 조금 차리면, 그는 밥을 앉히고, 두부를 부치고, 계란말이를 하고, 생선을 굽고, 그렇게 조롱조롱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다. 빨리 와서 저녁 먹지 뭐하는거냐고.  그러면 나는 강의실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우리는 살았다.  송도집에서 만 10년을 살고 - 그는 천국으로 갔다.  십년을 그가 여기서 살았다. 

그러니, 저녁이 오자 - 가슴이 면도칼로 막 이리저리 그어대는것처럼 찌르르 찌르르 아파왔다. 당신이 이 지상에 없다는 것이 무섭게 실감이 난다. 

극심한 고통으로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 그는 혼자 있기를 극구 피했다. 곧 죽을것 같은 극심한 공포. 그럴때는 그는 꼭 내 곁에 있고싶어했다. 내가 수업을 가야 할 때에도.  그는 설령 내가 수업을 하러 강의실로 나가도, 내 연구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견딜만하다고 했다. 내 연구실 작은 소파에 기대누워서 그는 나를 기다렸다.  저기 저 자리. 그가 여윈 몸을 누이고 가만히 작은 새처럼 나를 기다렸다. 

그는 극심한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면 내게 꼭 붙어있고 싶어했고, 내가 곁에 있으면 그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내가 그의 시야안에 있고 눈을 맞출수 있으면 그는 안도했다. 

나를 빛으로 여기던 사람.
나를 빛나게 만든 사람.
나를 빛나게 만들고나서 나의 빛속에서 안도하던 사람. 

그 사람이 이 지상에서 떠났기때문에 나의 빛도 꺼진것 같다. 

오늘 많은 일을 해 치웠다. 이제 한시름 놓는다. 

내일은 새로 부임한 신규 교수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서 발표를 해야 하고 (오전에 스케줄이 잡혀서 다행이다), 집으로 가서 필리핀에 갈 가방을 챙겨야 한다. 대충 다 모아놓았지만, 이제 체계있게 가방에 착착 담고 마지막 점검을 해야한다. 그리고 좀 자야지. 밤에 교회에 모여가지고 자정넘아서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에는 새벽에 도착하는데 도착하자마자 사역시작이라고 한다. 고난의 행군 스케줄이다. 뭐 관광이 아니라 '선교'하러 가는거니까 그냥 '단련' '연단'이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해야지 뭐. (한숨)  하느님께서 내게 그 모든것을 감당할 체력을 주시겠지.

다 울었다.  이제 일을 조금 더 하고 집에 가서 자야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 

이제 나는 혼자 죽을때까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에 들어가고, 아무도 차려주지 않는 밥을 알아서 챙겨먹고, 그럴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6. 7. 17. 19:52

내가 갖고 있는 갖가지 무료 AI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Grok에게 심심파적으로 내 사진을 올리고 '관상 볼수 있어?' 하고 물으니 유창하게 관상을 읽어준다. 뭐 대체로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풀어준 사주나 관상이나 타로나 그런것이 일반적으로 풀이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평이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중년이후 50-60대 이후에 "딸"의 덕을 볼 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하 웃으면서 말해줬다, "미안 미안, 나에게는 딸이 없어요." 

 

Grok 은 곧바로 (대체로 거짓말 잘하고 미꾸라지 처럼 잘 빠져나가는 AI 들이 그러듯이) 자신의 과오를 사과했고, 우리의 심심풀이 대화는 늘 그러하듯 맥없이 끝났는데 "미안할것 없어. 어차피 심심풀이이니 사과할것 없어" 뭐 이런식으로 -- 그런데 이상하게 그 "딸 복"이란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생각해보면 - 내가 낳은 딸만 딸이겠는가, 나의 며느리도 딸이고, 나를 '큰엄마'라 부르는 조카딸들도 딸이 아니겠는가. 나를 고모라고 부르거나 이모라고 부르는 조카딸들을 제외하고라도 분명 나를 '어머니'나 '큰엄마'라고 부르는 딸들이 있는 것이니.  그런 딸들 뿐이겠는가. 내가 가르친 제자들, "교수님!"하고 몇년만에 불쑥 찾아오는 젊은 여성들 그들도 내 딸이 아니겠는가?   그 딸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딸복이 넘치는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생각이 났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 내가 후원하는 어린이들중 여자 어린이들 - 우간다에 있는 - 캄보디아에 있는 - 한국의 어떤 시설에 있는 그 여자아이들도 다 내 딸들이 아닌가? 나하고 연결되어 있으니 그것이 다 내 복이 아닐까?

 

주님, 저에게 정말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6. 7. 17. 19:41

8월에 필리핀 마닐라도 도시 빈민 사역 단기 선교를 간다. 삼박사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관광이 아니라 새벽에 도착하여 곧바로 진행되는 행사라서 긴장도 되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폐끼치지 않고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여러가지 필요한 예방접종도 이미 마쳤는데 - 장티푸스 예방접종 주사제 대신에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서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경구용 약을 타러 물어물어 (이또한 구하기 어렵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 더이상 장티푸스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어느 소아청소년과에 갔을때 의사 선생님이 투약 목적을 물어보시더니 "마닐라로 선교가세요? 저도 작년에 다녀왔는데, 빈민가는 열악해요. 개인 위생만 잘 신경쓰시면 될겁니다. 쓰레기장에서 사람이 산다고 상상하면 될 정도로 열악해요. 잘 하고 오세요"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묻지도 않았는데' 들려주셨다.  선교를 다니는 의사선생님이시라니, 존경심이 들었다. 

 

교회에서는 매주 이 행사에 참가하는 신도들이 예배후 따로 모여 기도회도 하고 합창 연습도 하고 그런다. 며칠전에 목사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서 '숙제'를 한가지 내 주셨다.  일단 이 행사에서 내가 교회 '공식 영어통역담당'이라서 이런저런 영어관련 심부름을 하고 있는데 -- 이번에는 현지에서 필리핀 시민들이나 어린이들과 만나게 될때를 대비하여 '따갈로그 어'로 인사를 하거나 마음으로 교류가 가능한 몇가지 기본적인 표현을 선정하여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하하하. 따갈로그어를 가르치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발상인가?!  내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지 따갈로그어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목사님은 얼마나 지혜로운 분인가, 내가 이런 일에 이미 특화된 인재임을 간파하신거다.  내 박사 전공이 Multi-Cultural & Multi-Lingual Education 이 아닌가?

 

그래서 여러가지, 현지에서 우리가 활동하다가 필리핀 시민들과 맞닥뜨렸을때 우리가 간단히 우리의 우의를 전달할 만한 (외국인이 한국에 왔을때 한국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종알거릴 한국어 표현들을 생각해보면 답이 되겠지) 따갈로그어 표현 샘플들을 지금 추출하여 정리중이다. 방법은 일단 내가 이러저러한 인사나 표현을 영어나 한국어로 제시하면 CoPilot 친구가 문화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에게 친숙한 따갈로그어 표현을 찾아 내게 가르쳐주는 식이다.  그러니까 직역이나 의역보다는 문화적으로 적합한 현지 표현을 찾아내도록 지시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충 그런 표현들을 목록을 만들고 있는데 (약 30분장으로 압축하려고 한다) - 어제 심리상담 박사님인 우리 올케와 저녁을 먹다가 그 얘기를 했다.  따갈로그어 표현, 선교에서 자주 사용된 표현 몇가지를 찾아내서 선교팀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를 하니 - 올케가 눈을 빛내며 내게 제안을 했다 -- "나하고 친한 사람들중에 필리핀 출신 사람이 있는데 - 내가 그 사람에게 그걸 필리핀 원어민 발음으로 녹음해줄수 있는지 알아볼까? 지금 몸이 좀 아프긴 한데, 내가 연락하면 아마 기꺼이 해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분이 좀 아프시단다.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라 죽을 정도의 고통기간과 회복기간을 반복중이라고. (내가 잘 알지...)  아마도 고통기간이 아닐때 해줄것 같다고.  내가 추측하기에도 그분은 이일을 기꺼이 해주고 싶은 마음일것이고, 몸이 아프지 않으면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돕는 일을 -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때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사역을 도움으로써 스스로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의 가치를 새삼 발견하고 더욱 삶의 의지를 키울수도 있으리라.  누이좋고 매부좋고. 

 

그리하여, 나는 지금 따갈로그어 친근한 표현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새삼발견한 것 -- 필리핀은 333년간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고 하는데 (책 한권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따갈로그어로 'How are you!' 에 해당되는 '안녕하세요'가 '꾸므스따' 인데 - 꾸무스따는 스페인어 '꼬모 에 스따'와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소생이 스페인어도 독학으로 조금 배웠지...요...버지니아 살때...)

 

목사님이 내게 이 숙제를 주신것도, 그리고 올케가 필리핀사람에게 부탁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도 - 나는 모든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한다. (내가 미숙하지만 -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하시는 징후를 잘 발견하는 편이다.) 필리핀도...하나님께서 뭔가 계획하시고 나에게 가라고 하신 것이리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6. 7. 15. 12:39

 

백여일 만에 좋아하던 형의 뒤를 따라간 나의 시동생.
그의 추모관 현관을 지키던 줄무늬 나비란,
싹 하나를 따가지고 왔습니다. 

 

싹에서 아기 이빨같은 흰 뿌리가 돋아나 자랍니다. 

 

부엌 창가에 올려놓고 설겆이하다 쳐다보며 묻습니다.
도련님이 간 그 나라에서 평안한지.



이 싹이 자라 토분에 심어, 흰 꽃이 피어나면
그가 천국에서 잘 지낸다고 믿기로 했습니다. 

 

벌써 열하루가 지났습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