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5. 1. 31. 15:46

열한자루의 검정펜과 네자루의 빨강펜

 

눈이 올듯 말듯 하더니 펑펑 오기도 하고 먼지처럼 흩뿌리기도 하면서 종일 온다. 창밖을 내다보니 많이 쌓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흰 눈이 길을 덮고 있다. 눈이 쌓이면 운전자에게는 힘들지만, 운전할 필요도 외출할 필요도, 농작물이나 하우스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평온한 풍경일 뿐이다.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는 남편에게 "점심 드시고, 뒷산에 진도개 있는 집앞길을 지나 산책을 하시고, 그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도 마시고 눈을 실컷 즐기고 오셔"하고 보냈는데, 정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즐거운 한 나절이 되기를...

 

나는  KBS FM을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 지난 명절기간동안 (나흘간) 팽개쳐두었던 성경을 다시 붙잡고 필사를 하며 고요한 시간을 편안하게 보낸다.  눈오는날 '사우나'에 가면 온천에 간것 같겠다, 비록 눈오는 노천 온천은 아닐지라도... 그런 상상을 하며 동네 목욕탕에 갈까 망설이다가, 그것도 귀챦아서 집에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고 성경쓰기를 한가롭게 한다. 

 

쓰고 있던 빨강펜이 다 닳아서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 여태까지 쓰고 모았던 펜 껍데기들을 한자리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12월 1일부터 성경필사를 시작하여 오늘 (1월 31일)에 이르기까지 2개월간 검정펜 11자루와 빨강펜 네자루를 다 썼구나. 성경필사공책도 지금 쓰고 있는 마가복음까지 마치면 다 쓰게 될것 같다. (이미 여벌로 2권을 배달시켜 놓았으므로 아무 걱정이 없다). 

 

아래의 첫번째 사진은 서재에서 내다보이는 - 집의 뒷편 풍경이다. 멀리 산과 들판이 흰눈에 뿌옇게 보인다.  거실쪽 창으로는 구청앞 버스정거장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버스정거장 주위로 걷거나 서있는 모습이 작게 보인다. 정겨운 풍경이다.  남편은 이 눈속에서 절친과 눈 구경을 하고 있겠지. 

 

 

하느님, 눈이 햇살에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지듯, 저의 근심, 제가 안고 있는 문제, 이러한 것들이 눈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질것을 믿습니다. 

 

 

 

KBS FM에서는 오늘 대체로 장송곡과 같이 무겁고 어두운 음악을 주로 틀어대고 있다.  어제 일어난 포토맥강의 민간기-블랙호크 충돌로 67명이 하늘의 별이 된것을 애도하는 것인가? (이것은 나의 지나친 확대 해석인가?).  사람의 목숨이...한치 앞도 알수 없으므로, 크게 근심할일도 크게 자신할 일도 없다. 지금 살아서 숨쉬고 눈뜨고 눈구경을 할 수 있는 동안,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드리는것이 인간이 할 일이라...

 

* 유엔난민기구의 후원자가 되어 달라는 광고를 보고, '그래 후원해주지 뭐..'하고 웹으로 찾아서 들어갔는데 [후원하기] 클릭하면 - 후원에 대해서 뭐라뭐라 정보가 나온다. 그래서 후원하기 위해서 '아이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아이디 만들기'를 하려하면 --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으라고  (다른 옵션으로 이메일도 있다) -- 그래도 인증하기 위해서 -- 아무리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고 '확인코드'를 받기 위해서 클릭을 해도 - 후원하고자하면 전화를 걸어서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라는 메시지만 줄창 뜬다.  내가 여러단체를 후원했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단체는 처음이다. 내가 꼭 전화까지 해야해? 그냥 후원하겠다니까!  몇차례 '전화 안걸고' 후원하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나는 전화걸어서 담당자와 얘기하는 그게 장대높이뛰기의 장애물처럼 높게 여겨진다.  왜, 왜, 왜, 전화를 걸라고 하는거지? 다 인증이 되는 시대에 이렇게 구태의연하게 책상놀음을 하면 될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24. 17:08

위 사진에서, 빨간 펜 끝이 가리키는 31절 - 예수님 말씀 부분. 빨간색 잉크로 인쇄되었어야 했다.

 

 

신약은 내 평생에 두번째 필사이다. 이번에는 번호도 꼼꼼하게 매기고, 예수님 말씀은 성경에서처럼 '빨간색펜'으로 적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주 사소한 편집상의 실수가 발견되는데, 마가복음 필사할때 아주 아주 사소해서 '실수 할수도 있겠다' 할만한 것들이 두세번 발견되었었다.  이를테면 "말씀중에" he said, "다시 말씀..."   이 경우에 말씀을 빨간색으로 설명은 검정색으로 표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냥 빨간처리를 한 것이 몇차례 발견되었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마가복음 6장 31절은 '대형사고'라 할만하다. 아예 예수님 말씀을 통째로 검정잉크로 처리를 했으므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보면 성경을 필사하는 것의 엄중함에 대하여 잘 그려지고 있다. 나도 그 소설 읽을때 -- 옛날에 인쇄기술이 미비하여 오로지 사람 손으로 성경을 필사하여 전하는 상황에서 필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책임을 심각하게 지키려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을 빨간잉크로 처리하기로 약속한 책에서 말씀을 검정으로 처리하다니! (중세시대 같았으면 목이 달아날 일일것이다. 하하하) 아가페 NIV 이다. 최신판. 

 

마태복음까지는 매일 서너시간씩 성경필사를 하며 보냈고, 마가복음부터는 내가 할일들을 하면서 하루에 최소 '복음서 한장'씩 필사하고 있다. 지금 내게 성경은 나를 살아 숨쉬게 하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하느님이 지켜주실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9. 12:11

 

성경을 읽을때나 혹은 베껴적기를 할 때, 혹은 사람들과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때, 나는 베드로가 나오는 장면에 오래 머물며, 그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어린아이처럼 울먹이게 된다. 오랜 습관 같다. 아마도 2011년1월부터 그러했던 것 같다. 당시에 지홍이는 군대에 가있고, 남편 역시 귀국하여 한국에 있고 찬홍이와 나 단둘이 지내던 시기인데 - 나하고 동갑쟁이였던 제자가 '신년기도회'에 가자고 하여 난생처음으로 제자를 따라서 일박이일로 진행되었던 한국인교회의 기도회에 가게 되었다. 미국교회에서는 이런 행사를 안하므로, 제자를 따라 간 한국교회의 기도회가 꽤나 신기하고 흥미진진했었다. 저녁에 어느 '기도원' 강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리고나서 정해진 숙소에 가서 (호텔방 같은 숙소) 자고 아침에 다시 강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오후에 이런 모든 행사를 마치면서 그제야 빵을 나눠주었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부터 꼬박 금식을 하고 받아 먹는 빵이라서 - 그 하와이안 브레드라고 보통 식품점에서 파는 모닝빵 덩어리 - 꽤 맛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기도회의 마지막 행사로 빵을 나눠줘서 그걸 먹으며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목사님은 베드로와 예수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이야기해주셨다. 대략 기억에 의거하여 옮겨보면 -- '베드로는 평생 어부로 산 선수란 말이지요. 그 베드로가 밤새 아무것도 못 잡고 돌아오는데 호숫가에서 웬 낯선 남자가 서서 물어요, "물고기를 많이 잡았소?" 지친 베드로가 "한마리도 못잡았소"하고 대답을 하지요.  그러니까 그 낯선 남자가 "배를 저리 돌려서 그물을 저쪽으로 내려보시오" 이런단 말야. 프로 어부 베드로로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란거죠. 그렇지만 베드로가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 이 낯선 남자가 범상치 않아 보였던 모양이에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대꾸합니다, "내 밤새 한마리도 못잡았지만, 댁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내가 그러면 한번 해보지요"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 '내가 명색이 어부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거냐. 내가 밤새 한마리도 못잡은 고기를 여기서 어떻게 잡으라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마음을 바꾸고 "댁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내가 댁네의 말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져보겠소"라고 했단 것이지요. 이해하시겠어요 이대목? "말씀에 의지하여.."가 이런 맥락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가 거기 들어있더란 것이지요. 이때 베드로가 눈을 떠요. 베드로가 예수님의 범상치 않음을 바로 자각하고 곧바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가 시작된거죠. 

 

 

그때 목사님이 대략 이런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셨는데, 그 얘기가 내 귀에 꽂혔다. 아마도 심장에 꽂힌듯 하다. 당시에 찬홍이가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매나서스 운전면허시험장까지 데려다주면서 내가 그 이야기를 찬홍이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내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 하이웨이에서 통곡을 했다. 찬홍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 말고 이 대목에서 통곡을 했다. (찬홍이는 엄마가 원래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서, 늘 엉뚱한 짓을 하므로, 크게 개의치 않고 침묵을 지켜주었다. 그날 찬홍이는 운전면허시험에서 떨어졌다. 하하하.) 

 

 

그날 이후로, 나는 성경을 읽다가, 쓰다가, 성경 이야기를 하다가,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 부분이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흐른다. 

 

오늘 성경을 쓰다가 내가 발견한 것은 --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어떤 면에서 -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의 대화 같다는 것이다.  사랑은 늘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던가. 아, 나는 사랑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아, 잊고 있었는데, 그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게 신비한 현상이 일어났었다. (어디에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있으리라. 어느 파일 구석에). 기도회 모두 마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문득 내  왼손바닥에 붉은 십자가가 보였다. 나는 처음에 -- '내가 운전하면서 오다가 운전대를 너무 세게 잡아서 손바닥의 손금같은 것이 눌려서 벌겋게 된건가?' 이런 추측을 했다. 손바닥의 중심의 '명운'이라고 하는 굵고 선명한 손금을 중심으로 십자가모양으로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으므로.  어딘가에 눌린 자국이라고 추측을 했다.  그런데 그 붉은 십자가가 일주일 정도 그대로 그자리에 유지가 되었다.  내가 그 손바닥의 십자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모두들 신기해했다. 물감으로 칠한것도 아니므로 아무리 비누로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고, 분명 손바닥 투명한 피부 안쪽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때 함께 일하던 우리학교 학장님이 그걸 보시고 '이런걸 스티그마 (stigma)라고 해요. 이런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이교수 은혜 받았네! 밥사요!"  (그래서 내가 학장님에게 밥을 샀다.)  하하하. 

 

그게 정말로 기독교에서 일컬어지는 stigma (성흔)이라면 그게 왜 나같은 잡종 인간에게 나타난 것인지..는..잘 설명이 안된다.  어쨌거나, 하느님은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가까이 내 곁에 계시는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살아보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5. 16:19

 

새벽에 일어나 쉬엄 쉬엄 외출준비를 하고 여섯시에 출발하려고 밖을 내다보니 눈이 쌓여 있었다. 오늘 2025년 들어서 첫 예배라서 온라인으로 드리기 싫어서 송도에 가려고 생각했는데 - 눈이 계속내리고 있으니 어쩐다?  잠시 망설였지만 -- '내가 눈길을 헤치고 예배드리러 가는데, 하느님께서 알아서 다 살펴주시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송도로 향했다.  텅빈 도로, 차창으로 날아오는 함박눈, 모두 '먼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신비한' 풍경이었다.

송도 집에 도착하여 챙겨온 밥과 국으로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뜨거운 차도 한잔 마시고, 교회로 향했다. 주차장에도 차가 몇대 없었다. 쌓인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교회로 걷는 기분이 유쾌했다. 참 좋구나. 눈이 내리는 가운데 교회로 가는 발걸음이 - 달력속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구나. 

입구에 서서 사람들을 맞이해주시던 부목사님들이 깜짝놀라시며 "이 눈길을 헤치고 오셨어요!" 하고 반가워하셨고, 목사님께서도 어디선가에서 나타나서 - 자리에 앉은 남편을 위해 안수기도를 해 주셨다. 장로님들도 권사님들도 일부러 다가와서 안부를 묻고 반가워하셨다. 우리 가족을 위하여 매일 매일 중보기도를 드려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여기가 나의 집이다.

 

예배를 마치고 학교에 들렀다. 화단에 물을 준지 30여일쯤 된다. 그동안 목이 말랐겠다. 겨울에는 3-4주에 한번 물을 줘도 괜챦다지만 식물마다 물 먹는 주기가 조금씩 차이가 나고, 겨울철이라고 해도 학교건물에는 기본적인 난방이 계속 제공되기때문에 우리집보다도 따뜻하다. 물을 더 자주줘야 한다. 방학에 집으로 돌아간 동료 교수들이 갖다 놓은 화분들도 눈에 띄고. (식구가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계절이다.) 일단 물을 시원하게 뿌려주고, 시든 잎들을 정리해주고, 스킨답서스와 자주달개비 줄기들을 듬성듬성 잘라 담았다.  스킨답서스는 물에 담가 뿌리를 내린후에 화분에 심고, 자주달개비는 곧바로 잘라서 흙에 심으면 된다. 

 

내가 물을 퍼다가 목마른 화분들에 물을 주는 동안, 남편은 시든가지를 정리하고, 화분 주변을 청소해주었다. 즐거운 화단정리. 본된 주일이다. 눈속을 달려 귀가. 

 

 

 

 

 

 

집에서 번식시키기위하여 챙긴 스킨답서스와 자주달래비 넝굴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2. 07:44

 

2025년이 밝았다. 하느님 올 한해도 제가 광야에서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온전히 무사히 주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걷게 하소서. 

 

 

 

[시편]에 이어, 결국 신약으로 왔다.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신약을 쭈욱 걸어갈것이다. 예전에 2011년에 성경필사를 시작해서 2022년 말까지 구약 창세기-시편-신약을 한번 쓴적이 있다.  올 한해 신약을 다 베껴적을수 있을까?  뭐 길을 걷다보면 헤메기도 하겠고, 쉬기도 하겠지만 결국 어딘가에서 끝내겠지. 그래도 두번째 쓰기라고 - 나도 뭔가 이번에는 더 잘쓰자는 생각에, 예수님 말씀은 '빨간색'으로 쓰고 있다. 2011년에는 내가 성경을 잘 모를때 썼기때문에 쓰는 그 자체에 급급했었고 (그것만으로도 은혜였고) - 지금은 그래도 그때보다는 더 많이 알고 익숙하니까, 생각도 해가면서 내 식으로 해석도 해가면서. 오래된 연인들처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