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09. 9. 24. 12:51

Philadelphia Museum of Art Handbook of Collections [Second Reprint, 1999]

 

 

일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63   에 갔던날, 뮤지엄샵에서 이 책을 한권 사려다가 말았었다. '아마존 닷 컴'에서 사면 할인가격에 좀 더 저렴하게 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집에와서 웹 검색을 해보니 아마존에서 취급을 안하는 책이었다. 그렇다고 구형 판형의 '헌책'을 사고 싶은 생각도 안들었다. 그래서 운송료 8달러를 부가적으로 물고 언라인 뮤지엄샵에서 새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아, 나의 실수).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워싱턴 디씨지역의 뮤지엄샵에서 판매가 되던 미술관련 책들은 아마존 검색해보면 미술관 판매가격보다 아마존 할인율이 높아서 미술관에서 타이틀 적어놨다가 언라인으로 구입하곤 했었다.  그런데, 때로는 미술관에서만 취급을 하는 책들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뮤지엄 다닐때 일일이 컴퓨터 갖고 다니면서 이 책이 미술관이 더 싼가, 언라인 책방이 더 싼가 확인하기도 귀챦은 일이고.  (요즘은 각종 통신기기가 발달해 있으니까, 넷북이나 휴대전화 열고 현장에서 가격비교도 쉽게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휴대 인터넷검색족은 아니다. 그것도 귀챦아서.)

 

그래서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 집 근처 뮤지엄샵 책들은 나중에 또 가도 되니까, 그리고 대개 언라인 책방에서 할인이 되니까 언라인 구입하고, 먼곳에 있는 뮤지엄샵의 책들은 혹시 모르니까 현장에서 맘에 드는 책 발견하면, 그냥 사고 만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그날 미술관을 샅샅이 둘러보고 다리도 쉴겸 뮤지엄샵에서 책 구경하다가 이것을 열어 봤는데,  내가 맘에 들어하던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많이 나와줬다.  그러니까, 그 무수한 작품들 중에서 한정된 숫자만을 선정하여 소개한 이 핸드북을 만든 편집자들과 나의 코드가 맞아 떨어진다는 셈이었다.  (이는 내가 매우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이나 기호를 갖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내가 아주 평범한 관객이라는 뜻이리라.)  아무튼 내가 눈여겨 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었으므로 흥미가 생길수밖에.

 

역시, 배달된 책을 들여다보니 내가 미처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사실들이 속속 나와준다. 가령 예를 들어서, 로댕의 '지옥의 문  http://americanart.textcube.com/59  '의 경우, 37년간 이 한편의 완성을 위해 씨름했던 로댕이 사망했을때, 지옥의 문은 아직도 미완성이었고, 실제로 작품이 만들어진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주형 틀은 있었지만 작품은 아직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 당시 미국의 한 재벌이 완성품 두개 (주형 틀로 두개를 찍어내는것)를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지옥의 문 첫 두 작품중에 하나는 그가 프랑스에 선물하고, 하나는 미국으로 운반해와서 그의 조국 미국에 선사했다. 바로 그가 그의 조국 미국에 선사한 '지옥의 문'이 필라델피아 로댕 뮤지엄에 있는 그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지옥의 문이, 이 세상에 첫 선을 뵌 미완성 지옥의 문 첫 두작품중의 하나였던 것이고,  이 첫작품들이 탄생할수 있도록 후원한 사람은, 미국인 실업가였던 셈이다. 결국, 작품은 프랑스인 로댕이 만들었는데, 정작 로댕 사후에 그것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후원한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돈 많으니까, 팍팍 썼구만...)  덕분에 나같은 사람도 그런 명작을 공짜로 구경 할 수 있으니, 고마울 뿐.

 

지옥의 문이 '미완성'이라는 것도 꽤 상징적이다. :-)  (음, 아무래도 지옥의 문 특집 페이지 몇장 만들어야 하려나...갈등.)

 

내게는 큼직한 미술관의 화집이 몇권 있는데, 일단 미국의 책값을 기준으로 보면 큰 미술관의 화집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리는 편이라 가격 부담이 덜해서 몇번 망설이다가 살수 있고 (너무 비싸면 못산다),  그리고 그렇게 집어온 책은 집에서 심심할때마다 자주 열어놓고 보게 되는데, 보면 재미있다. 재미있고 흥미생기면, 시간 날때 또 미술관에 가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러면 더 재미있어지고...

 

 

결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 마음에 들 경우 현장에서 사세요. 언라인 책방에서 구하기 힘들어요. 배송료 비싸니까 현장에서 사는 것이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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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21. 02:10

 

공식 홈페이지: http://americanart.si.edu/

내가 작성한 또다른 안내 페이지: http://freefeel.org/wiki/VisitTheSmithsonian

 

 

                                               위의 지도에서 중앙의 맨 윗쪽에 있는 박물관

 

 

워싱턴 디씨에 있는 '스미소니안' 계열 국립박물관들 중의 한가지로 (1) 미국미술 박물관 (2) 국립 초상화 갤러리가 함께 있다. (이곳에 가면 두가지 박물관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곳 외에도 스미소니안 계열 미술 박물관에 가면 '미국 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으므로 '미국미술' 관련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는 동안 나는 꽤 자주 내셔널 몰 지역의 미술관들을 산책하게 될 것이다. 물론 스미소니안 계열 박물관 뿐 아니라, 이미 소개가 된 필립스 콜렉션이나 코코란 미술관, 국회 도서관, 기타 건물들에 미국 주요미술품들이 전시가 되고 있으므로 볼거리는 풍부하다 할 수 있겠다.

 

 

이 많은 미술관들중에서 '미국미술'과 관련된 '왕중왕'은 아무래도 국립미국미술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이곳에 가면 미국 건국초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주요 미술품들이 골고루 소개가 되고 있다.  초상화 갤러리에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실이 있고, 관련 멀티미디어 자료도 볼 수 있다. 미술 박물관 쪽에서는 상설전시, 특별전시, 특강등을 통해 대중들이 예술을 가까이서 즐길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워싱턴지역의 스미소니안 계열 국립 박물관은 모두 '무료입장'이다. 버지니아에 있는 항공우주 박물관의 경우 '주차비'를 따로 받지만 그곳 역시 입장료는 무료이다.

 

스미소니안 계열 국립박물관이 전관 무료개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나름대로 세가지를 추측하게 되는데  (1) 그 첫번째는 미국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행정수도의 국립박물관을 무료 개방함으로써, 미국이 문화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 아닌가? (2) Smithson 이라는 영국의 재벌이 사심없이 한번도 가보지도 않은 나라, 신생국 미국에 그의 유산을 쾌척하여 그 기금을 씨앗으로 세워진 박물관들이므로 '스미손'씨의 조건없는 '기여'의 정신에 부응하여 역시 돈 없는 '걸인'이라도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문을 열어 놓은 것이 아닌가?  (3)  미국의 수도, 그 중앙 국립광장이라 할수 있는 National Mall 에 일년 내내 미국 전역에서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자녀를 거느린 미국인들은 자녀들의 역사교육을 위하여,  미국의 수도를 보기 위하여, 외국인들 역시 미국의 수도를 보기 위하여 방문하게 되는데, 미국인들에게는 '수도에 가면 국립 박물관이 모두 무료다, 우리 미국인들은 이렇게 근사한 나라의 국민이다. 우리는 대접받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고, 외국인 방문자들에게는 '미국은 역시 근사한 나라야'하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데, 이는 입장료 수익을 상회하는 큰  이익을 가져 올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특히 수십개의 주로 이루어진 미국은 전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만한 정신적인 '아이콘'이 필요한데, 내셔널몰이 일부 그러한 '아이콘' 역할을 하고, 무료 입장 가능한 국립 미술관들 역시 이런 분위기에 일조한다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워싱턴디씨를  수년간 드나들며 관찰한 나의 시각이다.

 

 

 

 

 

워싱턴 지역을 통과하는 메트로 (전철) Red Line의 Gallery Place/ China Town 메트로역에서 나오면 바로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빨간선, 한국의 3호선이 Orange Line 인것처럼 이곳에서 색깔로 노선 구분을 한다. 한국에서 나는 3호선 Orange Line 구역에 살았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Orange Line 을 통해 주로 이동한다) 이곳이 갤러리 플레이스, 차이나타운 역인 이유는 이곳에 갤러리들이 있고 또한 박물관 뒷편으로 중국인들의 거리인 차이나타운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도심이면서도 늘 한적한 느낌이 들어서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1930년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미술 기금이 마련되었을때, 미국 전역의 화가들이 기금의 도움으로 그림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당시 작품들을 재 전시 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 뿐 아니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우리들이 겪고 있는 경제 불황이 1930년대의 경제 암흑기를 연상시킨다.

 

 

 

기형적으로 커다란 꽃, 동물의 뼈, 단순한 선과 면의 주로 그린 조지아 오키프의 대형 그림이 보인다.

 

 

 

3층 링컨 갤러리의 중심에 설치된 백남준씨의 Electronic Super Highway 라는 작품을 볼 때마다 엉뚱하게도 내 머릿속에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가 흐른다.  여기 한국산 미술가가 설치 해 놓은 미국 최고의 작품을 보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 숨겨진 다른 백남준씨의 작품들은 후에 별도의 페이지를 열고 정리하겠다.

 

 

 

미국미술박물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3층 링컨 갤러리. 사진 왼편 벽, 형광불빛이 나오는 벽면에 백남준씨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동시대의 조각품, 회화,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때로 나는 이곳에 설치된 작품들에 대해서 '설명'을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리는데, '말'로는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나의 설명력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몸으로 체험하기 전에는 도무지 짐작이 안되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는 친구가 '어디 봐야해?'하고 물을때 나는 서슴치 않고 '미국미술 박물관'에 가보라고 권하게 되는데, 미국미술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이곳에 와서 꼭 봐야할 보물들이 있기 때문에... 가슴이 컥 막히고 눈물이 쏟아지는 '한국'이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립 미술관의 '심장부'에는 '한국'이 들어있다.  한 예술가가 그것을 이뤘다.  그, 그것을 꼭 꼭 봐야만 한다...

 

 

초상화 갤러리의 대통령 초상화들 속에 있는 Ben Shahn ( http://en.wikipedia.org/wiki/Ben_Shahn )의 작품. 뉴딜 정책의 주인공, 미국의 대공황을 딛고 일어선 대통령, 간단하게 FDR 로 통하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초상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에 4선했던 사람이다. 네번이나 당선이 되었다는 뜻이다. 세번째 임기까지 무사히 채우고 네번째 임기중 사망했다. 당시 '사회성'강한 그림을 그리던 벤 샨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호감을 보이고 사회성 짙은 작품 활동으로 대통령을 도운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 샨 역시 내가 좋아하는 화가이므로 장차 그에 대한 페이지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뮤지엄은 '미음자' 구조로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통로를 따라 이동하게 되면 동서남북 미음자로 한바퀴 돌게 된다. 그리고 그 미음자 구조의 중앙은 코트야드 (Court yard, 중앙홀)이다. 지붕을 수백장의 유리판으로 얹어서 이곳 테이블에 앉아 하늘의 구름도 보고, 저녁에는 달님 별님도 볼 수 있다.  비오는날 이곳에서 비 떨어지는 것을 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는데 아직 비 쏟아지는 날 이곳에 가 본 적은 없다.

 

 

 

꼭 필요해서 뮤지엄샵에서 산 것들. 미국미술사 정리된 것 (할인해서 8달러에 살수 있었다. 아마도 싼맛에 좋아서 샀을 것이다. 갖고 있는 미국미술사 관련 책만 다섯권이다. 하하하.).  그리고 '미술 용어 카드.'  미술 관련 블로그를 열어 놓고 글을 쓰다보니, 내가 미술 용어중 구체적으로 정확히 내용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남에게 쉬운말로 전달할수 없다면, 나는 정확히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다. 뭐든지 아주 쉬운 말로, 가령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신 '내 엄마'가 내 말을 알아듣고 수긍할 수 있을 정로로 내가 설명할 수 있어야 내가 정말로 아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그러므로 뭐든 설명하기 위해서는 깊게, 상세히 이해해야 하고 이를 가장 쉬운 말로 간단하게 정리 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수업할때, 학생들이 발표 자료를 준비해 가지고 와서 발표를 할 때,  가르치는 입장에서 내가 가장 '재미없어'하는 것은, 파워 포인트 자료에 잔뜩 교재 요약해 가지고 와서 그것을 '낭독하듯' 발표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발표를 하는 학생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개념이나 어휘를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가령 Meta-linguistic, Meta-physical, Meta-cognitive 라는 말이 막 뒤섞여 나오는데, 그 메타가 뭐냐? 묻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우물거리다가 beyond...above ...이정도의 대답을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묻는다.    "Beyond..above..what? (그게 무슨 말인데?). 그러면, 이미 다른 과정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온 학생조차 우물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I know it, but I cannot explain it..because it's a very abstract concept (알긴 하지만 설명을 하기는 힘들다, 왜나햐면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그러면 나는 대꾸해준다, "If you are not able to explain that concept in plain language, you do not know about it. Don't tell me that you do know it... (만약에 그 개념을 평이한 언어로 설명 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 없다.  안다는 말은 하지 말라.)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안다고 말하면 안된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그냥 베껴다가 읽으면서 자신이 그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내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아닌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모르면, 책을 뒤지고 인터넷에 널린 친절한 자료를 뒤져서라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Meta-linguistics knowledge' 란 '언어에 대한 지식'을 가리킨다.  메타 피직스란 물리 세계에 대한 지식, 그러므로 철학을 메타 피지컬 학문이라고 하는데, 물리 세계 너머에서 물리세계에 대한 사색을 하는것, 그것이 철학의 시작인 것이다. Meta-cognitive awareness 는 앎에 대한 지식. 내가 무엇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대한 자기성찰 그것을 말한다.  '나는 아는가 모르는가?' 자기 성찰은 '메타'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나서 문법적으로 그것이 잘 못 되었음을 파악하는 능력, 그것이 메타-언어 능력이다.   내가 평이한 말로 설명 할 수 없다면,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배움과 소통에 대한 나의 신념인데, 그 신념대로 나를 채찍질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내가 왜 내 전공도 아닌 미국미술을 가지고 씨름을 시작했단 말인가?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도 나간다. 왜냐하면... 미국미술이 좋아서 :-]  )

 

그러니 공부를 해야...

 

(엄마가 읽고 수긍 할 수 있는 블로그... 그렇게 만들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다.)

 

 

    전철역 입구의 각종 무료 주간 안내지 상자들. 그 알록달록한 통들이 서있는 것이 발랄해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메트로 역

 

                                                                  워싱턴 디씨 메트로

 

                                                        

 

메트로 스테이션 역에서 Orange Line 으로 갈아타야 한다.  벽화가 보이길래 사진기에 담아 보았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거리의 풍경을 이루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문화가 되고, 미술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므로.

 

2009년 9월 19일 금요일 오후 방문. redfox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20. 22:14

 

 

공식 홈페이지:http://www.philamuseum.org/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서 있는 언덕은 원래는 '저수지'였다. 그런데 기존의 펜실베이나 박물관이 노후해 짐에 따라 새로운 박물관 부지를 물색하던 사람들이 이 저수지 자리를 눈여겨 봤고, 1917년 이 터전위에 세워질 박물관 설계가 완성되었다.  11연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28년 현재의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완공을 보게 된다. 올해가 2009년이니까 81년 된 셈이다.  1917년이면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한일합방을 당하고 1919년에 삼일운동이 일어났으니까, 그 즈음에 이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의 주요 건물들이 대개 '코린트 양식 (Corinthian)'을 택하고 있는데 이 건물 역시 동일한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미국 건국 초기의 건축양식에 나타나는 미국의 이상주의에 대한 페이지를 따로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코린트 양식을 '별로 아는바가 없는 내 식으로' 단순무식하게 설명하자면, 기둥위를 살피면 '뭐라뭐라' 장식을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히히히. 이부분은 Art Dictionary 카테고리에 추가 설명 페이지 엮어야 할 것 같다. 공부를 해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시간은 (오전 10시 - 오후 5시).

입장요금은 성인 16달러

자세한 사항은 http://www.philamuseum.org/

안내데스크에는 한국어/일어 안내지도 준비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가보다.

 

1층에는 미국미술과, 유럽미술이 주로 전시가 되면 윗층으로 올라가면 세계 여러나라의 문화 예술품 전시관들이 있다. 이곳에 한국관도 있는데 이웃한 일본관에 비하면 어쩐지 쓸쓸하지만, 아무튼 한국관도 있긴 하다.  2008년에 방문했을때 돌아보았는데, 올해 (2009)에는 내가 '미국 미술' 자료를 찾아보러 간 것이라서, 전관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다. 오로지 미국미술관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냥 일반적으로 둘러보기에는 하루를 다 잡아도 다 보기 힘들정도로 전시품의 양이 방대하고, 그냥 지나치기 안타까운 명작, 명품들이 수두룩해서 오히려 갈증이 심하게 날지도 모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귀한 것들인데 다 볼 수 없어서 안타까운, 그런 갈증.

 

 

 

본관 외에도 길건너 조금 걸으면 Perelman Building (펄만 빌딩)이라고 불리우는 별관도 있는데, 이곳에는 주로 현대 미술, 설치작품들이 전시가 된다.  참고로 이 건물의 카페테리아 디자인이 현대적이고 예쁘다.

 

 

 

미국미술에 관심을 가진 나의 입장에서 평가해보자면, 이곳의 미국 미술관은  가구나 다른 장식품 속에 당시의 회화작품을 전시하는 식으로 입체적인 전시를 시도 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은 미국미술의 분야중에서도 '회화'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가구나 장식품에는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는것을 보면).  펜실베니아 태생의 Thomas Eakens 토마스 이킨스, Hicks (힉스)등 지역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어서 배부르게 볼 수 있고, 제법 '미국미술'품이 숫자가 많아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에도 미국미술 전시관이 따로 있는데,  내 인상으로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쪽이 미국 미술에 좀더 성의를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미국미술의 '왕'은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박물관이라고 할수 있겠다.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 미술관까지는 자동차로 편도 세시간이면 넉넉하다. 그래서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자중에 이곳을 일정에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미국에서 왕복 여섯시간 거리는 그냥, 대충 참을만한 하루 여행거리).  필라델피아 시내에 있어서 일단 미술관에 가면 걸어서 시내를 둘러보는 일도 가능하고, 주말에는 주변에 무료로 주차도 가능하다. (내가 주말에만 가 봤으므로 주중에 주차사정이 어떠할지는 가늠이 안된다.)

 

참고로 Philadelphia 필라델피아는 City of Brotherly Love (형제애의 도시)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탐 행크스가 주연했던 Philadelphia 라는 영화에서 닐 영 (Neil Young) 이 부르는 노래 '필라델피아'가 흐르는데 'City of brotherly love~'라는 가사가 슬프고 달콤하게 흐르기도 한다.  이 별칭은 초기 미국 정착역사와 관련이 있다. 매사추세츠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주요 세력은 '퓨리탄'이라고 일컬어지는 개신교 세력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종파에 대하여 배타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델라웨어나 기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기도 하였다. 펜실베니아 지역에는 퀘이커교도들이 정착하게 된다. 퀘이커 교도들은 퓨리턴들과 달리 이념이나 종교적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용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도 마음편히 살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도 전해지는 해리엣 스토우의 '엉클 톰스 캐빈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야기에도 퀘이커 교도들이 도망가는 흑인 노예들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늘 '퀘이커 교도' 하면 어릴때 읽었던 그 장면이 떠오르고 마는데, 필라델피아가 그들의 땅이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역사적인 곳인데,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페이지를 여는것이 좋겠다. 오늘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방문한 사진을 좀 올리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를.

 

 

유튜브에 연결된 닐 영의 필라델피아 노래

 

 

 

가사:

Sometimes I think that I know  
What love's all about  
And when I see the light
I know I'll be all right.

I've got my friends in the world,
I had my friends
When we were boys and girls
And the secrets came unfurled.

City of brotherly love
Place I call home
Don't turn your back on me
I don't want to be alone
Love lasts forever.

Someone is talking to me,
Calling my name
Tell me I'm not to blame
I won't be ashamed of love.

Philadelphia,
City of brotherly love.
Brotherly love.

Sometimes I think that I know
What love's all about
And when I see the light
I know I'll be all right.
Philadelphia.

 

 

미술관 및 필라델피아 시내 사진들

 

 

 

 

 

 

미술관 앞 광장 계단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내가 시간을 많이 보낸 미국 미술 전시장의 한 갤러리. 토마스 이킨스의 그 유명한, 수술하는 그림이 오른쪽에 보인다.

 

 

현대미술 갤러리의 한 전시장.  오른쪽에 앤디 와홀의 재클린 케네디 작품이 보이고, 왼쪽에는 역시 앤디와홀의 '전기의자 (사형할때 쓰는 전기의자)' 작품들이 걸려있다. 중앙의 홀 천장 저쪽에 가위표 (x표)가 보이는데 이쪽편 벽에는 동그라미표가 있다.

 

 

 

미술관 구경의 즐거움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뮤지엄샵 구경.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뭘 사지는 않는다. 그냥 사진 찍어 오는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하고, 물건 사 늘어놔봤자, 어쩐지 인생에 짐만 들어나는 것 같기도 해서.

 

 

 

뮤지엄샵에서 발견한 한국미술품 도록.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하는 한국미술품 책이다. 반가와서 들었다가 내려놨다.  :)

 

 

 

미술관 계단에서 내려다본 필라델피아 시내 전경. 중앙에 보이는 도로가 '프랭클린 도로'인데 (벤자민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의 터줏대감님이었다) 이 도로를 따라서 한가롭게 걷다보면 시내 주요 박물관들, 건물들이 차례차례 나온다.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뭐 배경 좋은 공원에서 신부사진을 많이 찍는데, 이 미술관앞 광장에 신부사진을 찍으러 온 팀들이 여럿이었다.  사진속에만도 두팀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신랑, 신부만 단촐하게 웨딩사진을 찍는 편인데, 미국에서 살면서 보면 신랑신부가 친구들에게 드레스와 턱시도를 사 입혀가지고 (그러니까 돈이 엄청 들지...) 아예 단체가 이동을 하며 여러가지 장면을 연출한다. 사진에서 보면, 가까운데 있는 팀은 '가족'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옷을 맞춰 입고 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단촐한 경우이고, 저만치 있는 팀은 신부의 친구들이 단체로 드레스 입고, 신랑 친구들도 단체로 턱시도 입고 줄서서 사진찍고 그랬다.  공부할때 중국계나 돈없는 유학생들 결혼식하는 것도 보았는데, 가장 단촐한 케이스는 지역 등기소에 가서 결혼신고 하고, 등기소 한구석에 마련된 '기념사진 촬영용' 세트 앞에서 그냥 신랑색시가 기념사진. 이때 신랑색시의 복장은 그냥 수수한... 친구들도 각자 가진 옷중에 가장 좋은 옷으로 골라입고 와서 축하.

 

 

계단 아래 입구 구석에, 그 유명한 Rocky 로키 동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줄서서 차례 기다리는 사람들.  무명의 실버스타 스탤론을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만들어준 영화 Rocky 1편의 장면중에 로키가 운동삼아서 이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을 뛰어오르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성공으로 덕분에 이 장소도 명소가 되고 말았다.  (어릴때 영화 로키 1의 이야기를 선생님한테서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수업중에 영화 얘기를 해준 선생님이라니...하하하.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집에 비디오가 생긴 후에야 그 유명하다는 '옛날' 영화를 보고 좋아했었지.)

 

 

 

프랭클린 도로변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에 로댕 박물관이 나타난다. 입장료는 무료. 기부를 하고 싶다면 각자 알아서 원하는 만큼만 내거나 말거나. 중앙에 보이는 것이 지옥의 문. 왼편으로 건물안에 들어가는 문이 있다. 그 안에 로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칼레의 시민이 중앙홀에 있다.

 

 

계속 걷다보면 왼편에 프랭클린 도서관이 나오고, 길 건너편에 과학센터, 자연사 박물관등이 나오고, 중앙에 로간 써클 (Logan Circle)이라는 중앙 분수공원이 나온다. 이 분수공원을 가로질러 가보면 자연사박물관 뒷편으로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자연사 박물관

 

 

고층건물의 숲. 

그러니까, 박물관에서 내려다보던 저 멀리 있던 그 고층건문들 그 숲속까지 슬슬 걸었었다는 기록이 되겠다.  걷기에 편안한 9월의 햇살이었다.

 

 

 

박물관 입구 돌계단에서, 사진사들이 신부들을 꼭 이자리에 앉혀 놓고 사진들 찍길래, 저 자리가 어떤 자리길래 모두들 저 각도로 저기서 사진을 찍나 궁금해서 찍어봤는데,  햇살이 뒷편에서 부터 오면서 역광에 가까운 측광이라 머리 뒷부분이 반짝이고, 얼굴은 그늘지고,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 각도가 신부사진 찍어대던 전문 사진사들이 선호하던 각도였다.  하하. 난 야외에서 신부사진 그런거 찍어본적 없어서 야외 웨딩촬영하는 풍경을 보면 조금, 음, 번거롭겠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옛날에 우리 엄마는 '구식 결혼'을 해서, 연지곤지에 한복 새색시 복장으로, 아빠는 사모관대 뭐 그런 복장으로 결혼식을 해서, 그런 흑백사진이 우리집에 걸려있는데 엄마는 하얀 웨딩드레스입은 사람들 사진을 무척 부러워하셨다. 두고두고 부러워하셨다.  어느해에 우리 엄마가 집에 돌아다니면서 사진장사를 하던 사람의 설득에 혹하여서 '사진 합성'을 주문했다.  뭐냐하면 아빠, 엄마 얼굴 잘 나온 사진을 가져다가 웨딩드레스 입고 양복입은 신랑신부 사진에 '합성'을 하는 것이다. 사진장사가 그렇게 합성을 하여 액자에 담아가지고 와서 돈을 받아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주 아주 옛날 이야기이다.  그날 저녁에 학교에서 퇴근하신 우리 아빠가 엄마를 '어린애' 야단치듯(?) 엄마한테 화를 내셨다. 왜 남의 몸뚱아리에 내 얼굴을 갖다 붙이느냐 이거였다. 이런 거짓사진이 그렇게 좋냐 이거였다.  나는 웨딩드레스의 환상이 좌절된 우리 엄마가 안타까웠다.  그때부터였을거다. 내가 웨딩드레스를 증오하게 된 것이.  나는 그따위 환상같은것 개나 물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인데, 엄마의 환상이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에 그만 그 반대로, 강한 거부를 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봐도 별 감흥이 없고, 사람들이 왜 저것을 입고 사진을 찍을까? 이런 의문이 일없이 떠오르다 말 뿐이다.  사는게 그런거지. 뭐.

 

 

Posted by Lee Eunmee
Pop Art2009. 9. 19. 18:42

 

http://americanart.textcube.com/48 로이 리히텐시타인의 '집'에 이어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and Portrait Gallery) 입구에 설치된 로이 리히텐스타인(1923-1997)의 작품, Modern Head (근대적 머리). 1974년에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이 작품은 1989-1990 년에 제작된 것이다.

 

리히텐스타인은 1960년대 말 부터 이 모던헤드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산업화가 가속되는 현대 문명 속에서 기계처럼 변화하는 인간을 묘사했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 데코 (Art Deco) 건축 디자인과도 맥이 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원래 1996년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World Trade Center)에서 한블럭 떨어진 곳에 세워졌었다.  그런데 2001년에 911 참사가 터졌고, 무역센터 빌딩들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한복판에 있었던 이 작품은 약간의 표면 상처만 입었을 뿐 멀쩡하게 그 재난을 버티고 서 있었던 것.  모던 헤드.  이는, 인간의 두뇌가 그 모든 재앙 속에서도 꿋꿋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서, 911참사 발생 직후, FBI 요원들이 이 지역을 조사하던 시절, 이 작품은 FBI 요원들의 '메모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작품 벽에 메모지들을 붙여놓고 정보 정리도 하고 연락도 취하고...  911참사 발생 2개월 후 2001년 11월 9일 모던헤드는 뉴욕에서 벗어나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으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박물관 울타리 안쪽에 세워져 있으므로 다가가서 메모지를 붙여 놓을 수는 없지만, 멀리서도 이 파란 얼굴을 보면 반갑기도 하다. 재앙을 딛고 일어선채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것 같아서.

 

september 18, 2009 rf.

 

 

그런데, 지금 사진을 들여다보니 울타리에 붙어있는 장애인 표시의 파랑색과 모던헤드의 파랑색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는듯 하다.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9. 19. 03:18

 

                        http://www.nga.gov/press/special/tower/guston09/index.shtm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http://americanart.textcube.com/41   ) 에서 2009년 1월부터 1년간 필립 거스톤 (Philip Guston (1913-1980)의 특별전을 열고 있다.  위치는 동관 (East Building)의 Tower Gallery. 

 

필립 거스톤은 Jackson Pollock, Willem De Kooning 과 더불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화풍의 기수였으며 후기에는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으로 선화하기도 하였다.  추상표현주의나 신표현주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뤄보기로 하겠다.

 

 

1913년 캐나다 몬트리올 태생의 필립 거스톤은 가족을 따라 어린 시절 캘리포니아의 로스 엔젤레스로 이주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1세이던 1924년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어린 필립은 아버지의 자살 현장을 목격한다. 그가 14세 되던 1927년 Los Angeles Manual Arts High School 에 입학하여 Jackson Pollock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가 미술보다 스포츠를 더 많이 지원한다고 항의했다가 퇴학조치를 당하고 만다. 폴락은 그 후에 학교로 복귀했지만, 거스톤은 고등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후에 Otis Art Institute in L.A. 에서 1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하게 된다. 그가 1년만에 오티스 미술 학교를 집어 치운 이유는 학교에서 석고상을 그리는 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도록 지도하는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그는  왜 석고상만 그려야 하는가  반발하여 어느날 밤새도록 실기실에서 석고상을 스케치하여 실기실 바닥을 그의 습작으로 뒤덮어 버린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받은 미술 교육의 전부였다. 그후로 그는 스스로 그의 미술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비록 정규 미술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정규 미술 교육 과정의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University of Iowa (1941-1945)에서 교수를 했고, 미주리 주에 위치한 Washington University at St. Louis, New York University, Pratt Institute 에서도 후진을 양성했다.

 

본래 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유태인이었고 유태인 탄압을 피해 북미 캐나다로, 그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피해 북미로 왔지만, 북미가 유태인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소년시절 거스톤은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는 Ku Klux Klan (일명 KKK단, 혹은 Klan)의 폭력에 노출되어  심리적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미국태생의 학생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흔히 KKK단의 주요 공격대상이 '남부 흑인'인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KKK 관련 내용을 좀더 뒤져보거나 미국사 책을 뒤져보면 KKK단이 인종청소를 감행하려 했던 '나찌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백인이 아닌 거의 '모든' 인종들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주요 공격대상이 흑인들이었지만, 그 외에도 아시아계, 유태계, 히스패닉계 역시 이들의 공격 내지는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의 부모가 유태계였으며, 미국에서 KKK의 위협에 시달렸던 흔적이 그의 미술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여기저기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KKK단 복장을 한 인간의 모습이 여기저기 나타나는가 하면 나찌의 유태인 학살장면을 연상케 하는 무수한 '신발들'이 포개진 그림들. 

 

국립 미술관에 모아진 필립 거스톤의 유화 대작들과, 리토그래프 작품들을 이리저리 감상하면서 얼핏 스치는 생각은, 어딘가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것이다. 알수 없는 불안함. 편하지 않음.  그러나 한편 낙관적임.  뭐랄까 불안을 극복한 사람이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미소라고 할까?  원래 그림 감상은 감상자의 투사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정작 불안한 것은 그림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와 필립 거스톤과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후에 공부를 하면서 그의 미술 세계에 대한 리뷰를 적어나가겠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전시회에 진열된 '전 작품' 그리고 전시실 구석에 마련된 필립 거스톤 관련 6분짜리 영상자료를 내가 사진으로 찍어본 것 들이다.  (아직 사진기술이 서툴러서 그림이 삐뚤어지고 그랬지만, 내 눈으로 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

 

 

 

 

 

 

 

 

 

 

 

 

 

 

 

 

 

 

 

 

 

 

 

 

 

 

 

 

동영상 화면 사진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