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Art History Sketch2020. 12. 27. 12:40

americanart.tistory.com/202

 

The Eight / Ashcan school (3) William Glackens

William Glackens (1870-1938) 는 The Eight 의 멤버인 John French Sloan 과 고등학교 동창이고,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서도 함께 미술을 공부했으며, 슬로언의 소개로 로버트 헨라이와 만나게 되어 절친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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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무는 이곳은 버지니아의 구릉지대로 '목장'이 사방에 있고 목장이 아닌 언덕도 많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한 눈은 크리스마스 당일까지도 내려서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튿날, 토요일.  눈 쌓인 언덕에 몇몇 가족이 아이들을 데리고나와 눈썰매 놀이를 하고 노는 모습이 보였다.  꼬마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기위해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을 기를 쓰고 올라갔다. 가다가 미끄러져 자빠져도 울지도 않고 깔깔대며 올라갔다. 

 

 

이 광경을 어딘가 그림에서 봤던 것 같아서 블로그를 뒤져보니 십년도 더 된 옛날에, 조 바이든 대통령을 탄생시킨 지역의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직접 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8. 1. 28. 22:37



https://www.nga.gov/exhibitions/special/weems-kitchen-table-series.html


https://www.nga.gov/exhibitions/special/weems-kitchen-table-series.html



며칠전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에 갔을때, 동관에서 특별전시중이던 재미있는 사진전을 보았다. 캐리 매 윔스라는 작가의 '식탁' 시리즈.  부엌 식탁이 주인공으로 이 식탁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24시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시리즈로 사진에 담은 것이다.  사실 나도 식탁에서 밥도 먹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친구와 차도 마시고, 뜨개질도 하고, 고양이와 놀고, 온갖것을 다 하면서도 (아직 식탁에서 섹스는 못 해 봤다...) 식탁의 풍경이 이렇게 다채로울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었다. 전시장 입구를 제외한 네 벽에 이 시리즈가 걸려있어서 전시장 가운데에 서서 빙 둘러보면 마치 내가 식탁 중앙에 서있고 그 상태도 하루종일 식탁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사진전을 기록하는 이유는, 사실 나는 '사진 예술'에 별로 매력을 못느껴서 미술관 산책중 사진전시회는 대충 지나가기 일쑤이다.  만약에 내 블로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어떤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눈치 챘을것이다, 내가 사진전에 대해서 단 한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런데 이 사진전은 내 발을 한참 붙들고 못 움직이게 했다.  이 시리즈 전체가 어떤 이야기,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랬을것이다.   한장의 사진속에서 시각적 구도나 깊이나 뭐 그런 사진 고유의 예술성을 들여다봐야 한다면 나는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사진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식탁'을 주제로 한 이러한 연작 앞에서면 스스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내거나 자신의 식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이 사진속의 식탁에 대해서 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선 식탁 그 자체와 의자들이  아주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서민용 식탁세트라는 것이다. 아마 월마트에 가면 백 몇달러짜리 이 식탁세트가 판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상자를 사다가 직접 조립해서 사용해야 하며, 조립하기 귀챦으면 굿윌 같은 고물상에 가서 남이 쓰다 버린 이 테이블 세트를 사도 그만이다. 사실 내게도 사진속의 똑같은 식탁세트가 있었는데, 대학원시절 선배가 학위마치고 귀국하면서 살림 처분할때 내게 그냥 쓰라고 넘겨주고 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수년간 사용하다가 이사하면서 남쓰라고 줘버렸는데, 의자 하나는 아직도 우리집거실에 남아 있다.  사람들이 살수 있는 '가장 싼' 서민용 식탁세트, 그 주위에 살아가는 서민들. 결국 일반적인 미국인들 정서속에 이 식탁이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에게 개다리 소반의 정서가 스며있듯. 사진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만의 추억에 잠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처럼, '나는 식탁이로소이다'나는 타이틀로 어느집의 식탁이 주변 상황을 스케치하고 그 집 식구들의 일상을 고자질하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영감을 받았다.  어떤 '영감'을 주는 작품.  좋은 작품이다. 내게 영감을 줬으니까, 설령 내가 그것을 구체화하지 않는다해도, 그런 상상만으로도 유쾌해질수 있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8. 1. 27. 10:54


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셔널 몰에 있는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 들렀다가 내가 평생에 꼭 한번은 보고 싶었던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요즈음 국립미술관에서 잭슨 폴락 벽화 특별전시 중이다.  국립 미술관이 잭슨 폴락의 대작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는 한데, 이번에 특별 전시하는  '1943년 벽화'는 이곳에서 볼수 없었던 작품이다.  왜냐하면 아이오와 주립대 (University of Iowa) 미술관에 소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강의 사연은 이렇다.  뉴욕 맨해턴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그 미술관 주인이었던 페기 구게하임이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연명하던 잭슨 폴락을 미술관 직원으로 채용한 후에 그의 작품성에 눈을 뜨게 된다 (아직 잭슨 폴락의 '물감 뿌리기' 이전의 일이다.  페기는 폴락에게 그녀의 저택의 현관 벽을 장식할 작품을 의뢰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벽화 1943'이다.   후에 어떤 인연인지 이 작품이 아이오와 주립대에 기증이 되고 대학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다. https://uima.uiowa.edu/collections/american-art-1900-1980/jackson-pollock/mural/  해당 대학의 작품 소개 페이지를 링크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 전이구나.  미국 중서부에 크게 물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당시에 아이오와 대학교 미술관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 작품 역시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손상을 입은바 있다.  그래서 후에 캘리포니아로 옮겨저서 수년에 걸쳐 복원 되었고,  오늘날 국립 미술관에 걸리게 된 것이다. 

2009년에 내가 한창 미국미술사 연구하고 잭슨 폴락의 작품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그의 대작이 아이오와에 있다는 사실과 수재를 당해서 전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폴락이 남긴 작품 중에서도 대작이라는데, 그걸 못 보다니... 당시에는 참 안타까왔다. 2011년 가을에 드모인의 주립대에 발표하러 갈 일이 있어서 스케줄을 짤때도, 혹시나 그것이 복구 되었나 보러갈까 궁리까지 했었는데, 당시에 악천후로 비행기도 취소되고 난리가 나서 모든 일정이 취소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고나서도, 이제는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것인데, 미술관에 아무 생각 없이 갔을때, 내 눈앞에 '신기루'처럼 그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복관 당첨 된 듯한 기분.  뒷통수를 한대 탁 맞았는데 기분 좋은 그런 기분.  뭐, 잠시 황홀했었다.  이 작품을 보러 한국 가기 전에 또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솟는다.  


아래 사진 설명:  알렉산더 칼더의 대형 모빌이 돌아가고,  중간층 (약간 어두워 보이는 층) 오른쪽에 잭슨 폴락 벽화 전시장이 보인다.  그 아랫층 대형 통유리벽 앞쪽에 관람객이 쉴수 있는 편안한 의자.  전시 구경하다 다리쉼 하러 그 소파에 가 앉아서 내가 뭘 했냐면...




수도쿠 풀었다. 하하하. 박물관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 풀었다.


몇해전에 내가 한참 전시장과 미술, 박물관에 미쳐 돌아다니고 있을때는, 시도때도 없이 거길 드나들면서도 늘 '도망자'처럼 헉헉대고 다녔다.  전쟁을 하듯이. 이걸 다 보고 읽고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보이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섦명을 읽고, 책을 사서 들여다보고, 공책에 정리도 하고...미친듯이 열정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오늘날, 나는 전시장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나 채우며 논다.  물론 전시장을 돌아보기는 한다. 그러나 내가 꼭 보고 싶은것 몇가지 보면 더이상 볼 생각을 안한다.  마치 부페식당을 처음 알게 되었을때, 조금 먹으면 손해라는 피해의식에 휩싸여서 맛이 있건 없건 무조건 많이 많이 담아다가 배가 터지게 먹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골치까지 아프게 먹어야 돈 값을 한다고 상상하는 시기가 있다.  처음엔 미친듯이 먹는다. 하지만 몇차례 겪다보면 초특급 부페라도 심드렁해지고, 맛있는것이 아니면 잘 안먹으러 든다. 나는 나의 태도의 변화를 대강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편이다 (그냥 오늘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러는가 혼자 사색해보다가...)


폴락의 '벽화'를 보면서 나는 문득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내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데자뷰라고 해야 하나?  분명 두개는 다른 작품인데, 나는 벽화 앞에 서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나도 설명을 잘 못하겠다.  다음에 가서 다시 보고, 자료도 좀 찾아보고 -- 내가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분석을 좀 해봐야겠다. 



음. 수도쿠는 내가 생각이 복잡하고 심드렁해질때 '타이레놀' 처럼 찾아서 풀어보는 나의 게임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 다 마치고나면 집에 아이들이 공부하고 남아있는 '수학의 정석'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볼까 한다.   시험걱정 없이 심심풀이로 하는 수학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2018, 1, 26, 금. 맑음.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2. 3. 19. 23:29


봄의 제전 (1905) 가로 56 인치 세로 26인치

미국에는 프레데릭 처치 (Frederick Church) 라는 이름의 유명한 화가가 두명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생존했던 분들인데 풍경화가로 유명한 Frederick Edwin Church (1826-1900) 가 있고,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Frederick Stuart Church 가 있다.  풍경화가 에드윈이 약 20년 먼저 태어나 활동했다.

프레데릭 스튜어트 처치 (1842-1924)는 그당시 문화예술계에서 후진국이나 다름 없었던 미국의 화가/화가 지망생들이 유럽을 동경하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 세태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그는 미국을 사랑했고,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유럽으로 유학 가서 유럽 화풍을 배우는 일 보다는 스스로의 미술세계를 일구는데 충실했고, 상업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과 렌윌 갤러리에서도 그의 소형, 대형 작품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 대개는 신화나 우화를 모티브로 한 몽환적인 작품들이 보이고 있다.

'봄의 제전'이라는 위의 작품에는 숲속에 온갖 동물들이 모여서 봄의 여신같은 여인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몽환적인 장면이 담겨 있다.  요즘 나 역시 겨울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나온 곰처럼 그렇게 꽃속에서 몽롱하다.

2012, 3, 19

Posted by Lee Eunmee


Grandma Moses (1860-1961) <---101년을 사셨네~
Painted by Kristin Helberg (1948 -) in 1998
Acrylic on canvas attached on board

70대 중반에 류머티즘 때문에 수 놓는 일이 힘들어졌을때, 소일 삼아서 붓을 들었던 모세 할머니는 나이 80에 미국을 상징하는 할머니 화가로 떠오르면서 돌아가실때까지 영광의 나날을 보내셨다.

모세 할머니처럼 혼자 그림을 익힌 크리스틴 헬버그가 사진속의 모세 할머니를 자기 식으로 그렸다.  아마도 크리스틴에게 모세 할머니가 역할 모델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2011년 11월에 미국 미술관, 초상화 갤러리를 방문 했을때, 미국을 빛낸 위인들 초상화들 속에서 모세 할머니의 초상화를 발견 했다. 이 그림은 그린 화가는 작품 속에 모세 할머니의 작품 일부를 그려 넣었다. 애정 담긴 그림으로 보인다.

2011, 11,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1. 10. 27. 03:23
2011년 2월 19일 버지니아 미술관 (Virginia Museum of Fine Arts)에서, 사진 이은미



오션 파크 시리즈 22번, 1969년
"기질적으로 나는 늘 풍경화가였다."--디벤콘.
(버지니아 미술관 작품 설명에서)



2010년 12월 23일 허시혼 (Hirshhorn Museum http://hirshhorn.si.edu/ )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촬영

리처드 디벤컨 (Richard Diebenkorn :1922-1993)  은 미국 미술사를 한눈으로 내려다 볼 때, 특별한 '서부지역' 작가로 자리매김을 하는 편이다. 삼백년도 안되는 신생 미국의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필라델피아와 뉴욕이 미술의 중심지로 화가들을 끌어 모았고, 그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한 출중한 대가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지방 미술가들에게 모욕스러운 발언일수 있으나 대략 그러하다는 것이다.) American Regionalism 관련 페이지에 소개된 지역주의 화가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잊혀진 미국 중부 대륙을 대표했던 그 지방 화가들이라는데 있다. 20세기 미국 화단에서 먹고 살 만한 집 사람들은 유럽으로 유학을 갔고, 미국에서라면 필라델피아, 뉴욕에 화가들이 모였다.  한국에서 시골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서울로 일터를 찾아서, 혹은 공부를 하러 올라가던 것과 흡사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웨인 티보 (  http://americanart.tistory.com/957 ) 나 리차드 디벤컨은 미국 서부해안지역이 자랑할 만한 작가들이라고 할 수있다. (여기도 인물 있다! 이거다.).

그리고 디벤콘의 대표적인 작품이 위에 소개된 Ocean Park 씨리즈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까, 디벤콘이 어떤 작가인지 잘 모르더라도, 미술관에서 위의 작품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 -- 아마 디벤컨 일걸? 하고 추측해도 대강 정답에 가깝다. 기하학적인 추상화 같은데, 가만 보면, 비행기 타고 가다가 내려다보는 미국 대륙을 닮기도 하였다. 지도를 무한 단순화 작업을 하면 이와 비슷한 형태의 지도가 탄생 할지도 모른다.

위의 작품이 1978년 작품이고, 111번 번호가 붙었다. 그는 오션 파크로써 그의 미술 세계 하나를 새로 탄생 시킨 셈이다. 


어릴 때 부터 미술에 흥미를 보였던 디벤콘, 그의 아버지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사실 아들이 그림쟁이 되겠다고 할 때 이를 반기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디벤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1940년 스탠포드 대학 일반계열에 진학한다.  2차 대전이 시작되고, 3년후 그는 해병대 장교 훈련을 받으러 버지니아로  떠난다. 청년 디벤콘은 워싱턴 디씨의 미술관등지에서 현대 미술품들을 보면서 미술에 대하여 새로 눈을 뜨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제대한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San Fransisco Art Institute 에 입학한다.

1947년 그는 이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는데 당시에 Clyfford Still 역시 교수진에 있었고, Mark Rothko 는 1947년에서 1948년 사이에 잠시 이 학교에 머무르기도 했다.  후에 그는 University of New Mexico 에서 미술 석사 과정을 밟는다. 그가 1953년 샌프란시스코 미술학교에 다시 돌아올 무렵, 그는 이미 그의 추상 표현주의 미술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후 잠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구상주의 미술 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1966년 UCLA 에 자리를 얻는 그는 산타 모니카 인근의 Ocean Park 에 스튜디오를 장만한다. 그리하여 1967년부터 Ocean Park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는데, Ocean Park 는 25년간, 그가 죽을 때 까지 그의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디벤콘의 오션 파크 시리즈및 그의 풍경화를 보는 방법은, 나 자신을 헬리콥터나 비행기에 태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천미터쯤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안가 풍경은 어떠할 것인가? 그 풍경을 얀간 단순화 한다면?  그러면, 도로가 보이고, 바다가 보이고, 혹은 푸른 초원이 보일 것이다.

아래에 보이는 작품은 1962년, 그의 오션 파크 스타일의 풍경화가 나오기 전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을, 조금더 단순화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무채색의 기하학적 구성이 가능해 질 것이다. 구체적인 풍경이면서, 장차 등장할 오션파크 시리즈의 구도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한 작가의 작품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서 들여다 보는 일도 재미가 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1층, 2011년 10월 이은미 촬영




 

 




아래 콜로라도 시리즈는 모두 1970년 작품으로, 허시혼 미술관 소장품들이다. (2010년 12월 23일 이은미 사진).










 

 





 

 






2011년 10월 26일.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1. 4. 21. 06:12



지난 3월 31일에 필립스 콜렉션에서 만난 현대 화가 쌤 길리엄.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서 끄적인 낙서에 그가 친필 서명을 남겨 준것을 오늘 액자를 사다가 담아 놓았다. (액자 6달러).   :-)









Posted by Lee Eunmee

Swing, 1969, Acrylic and aluminium on canvas

Photo by Lee, Eunmee, 3rd Floor,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January 14, 2011


스미소니안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3층에 걸려있는 쌤 길리엄의 '그네 (Swing, 1969).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은 여러점의 길리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되고 있는 것은 이 작품 하나, 그리고 Luce Foundation Center (그림창고같은 전시장) 구석에 평면적인 액자 작품이 하나 걸려있다.

Corcoran 미술관에서도 그러하고, 요즘 진행되는 필립스 콜렉션의 전시회에서도 그렇고, 미술관들은 길리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커튼 널어놓은 것 같은 작품 한점과 이런 작품들의 평면 모습을 보여주는 액자 작품을 형제처럼 걸어놓는 편이다.  그리고 그 외의 평면적인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 이다.  그는 60년대외 70년대에 이렇게 '걸어 놓는 캔바스' 작업에 열중하고, 그 이후에는 꼴라쥬를 위시한 다양한 작업을 했는데, 미술관에서는 그의 '널어 놓는 설치 미술' 쪽에 애정을 보내고 있는듯 하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이 '널어 놓는 캔바스'가 그의 독특하고, 새시대를 여는 발상이었고, 나머지는 남들도 다 하는 것들이니까 그럴 것이다.

아래는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의 쌤길리엄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 풍경이다.

사실 이 사진을 찍었던 날은, 나의 관심이 백남준의 작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백남준 보러 갔다가, 간김에 또 한바퀴 둘러보던 식이었다. (그래서 결국 온종일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왼쪽 구석에 쌤길리엄의 '그네'가 매달려 있다. 전시실 중앙에 백남준의 'Zen' 이라는 텔레비전 작품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 백남준씨 작품을 보고 지나치면서, "테레비가 고장이 났나?" 뭐 이러고 말았었다.  그런데 바로 이 '한줄 그은듯한 선' 그것이 백남준씨가 의도한 'zen'이었다.
창문이 있고, 하얀 석고상같은 여자가 창밖을 내다보는 작품이 Georg Segal의 조각 작품이고, 오른편에 Rauchenberg 의 콜라쥬 작품이 두점 보인다.






 




3층 전시실 복도. 내가 사진을 찍는 위치가 백남준의 Megatron/Matrix 전시실 입구 쯤이 될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왼편 전시장에 백남준의 방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20세기 비디오아트 기획전이 진행중이다. (현재에도 진행중).  쌤길리엄 작품 외에 전시장 전체를 담아보는 이유는, 이것이 그가 속한 미술의 어떤 시대이고, 그리고 그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예술가들의 일생을 단 몇줄로 요약해보면, 대개는 그의 '대표작'이 한두가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 대표작이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지. 삶의 어떤 시간속에 그 어떤 순간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그것만을 기억할 뿐이지.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잊혀지고 말아.  쌤 길리엄은 현재 노인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할수 있지.  그런데, 아직 그의 삶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획기적인 어떤 변화가 없는한, 결국 그는 벽에 걸어놓은 커튼같은 캔바스작품,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같은 설치미술작품 이 두가지로 기억되고 말것이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삶을 기억할때는, 그의 '종말'이 아니라, 그가 가장 빛나던 순간을 기억해주는 것이 좋을것 같다.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어 시체되고 벌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가장 빛나던 장면 그런 것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술가를 기억할때는 그의 마스터피스를 기억해주니까.

종말이 아닌, 삶의 장면들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삶은 다른 각도에서 무척 신기로와 보일것이다. The best is yet to come. 내 인생에 최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이런 백치같은 optimism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Chrysler Museum, VA, November 29, 2009


버지니아 남단 Norfolk 라는 해안 도시에 Chrysler Museum이 있다. 이 박물관 중앙 천장을 장식한 쌤 길리엄의 작품. Norfolk Keels (1998).  크라이슬러 뮤지엄 앞에는 호수가 있어서, 석양에 호수가 반짝거리면 미술관 벽과 천장에 물결 그림자가 일렁인다. 환상적인 장면이다. 

그 천장을 장식한 쌤길리엄의 작품.  (관객중에 안경끼고 삐딱하게 서 있는 우리 박선생.) 


그 당시에도 이 작품이 참 인상적이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내가 쌤 길리엄을 직접 만나서 악수를 하게 되리라고는 그때는 상상도 못했었다.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Phillips Collection (1st Floor), Washington D.C. March 31, 2011


아주 작은 소품이다. 대략 가로 25 센티 세로 12 센치쯤 되려나? 실물 크기의 죽은 새 그림이다.  나뭇잎에 둘러싸인 죽은 새 한마리가 전부인 그림이다. 서리가 내린 듯 해 보이는 화면. 황금 새.  알버트 핑크햄 라이더의 그림이 터치가 거칠고 전체적이로 투박한 편인데, 이 그림속의 새 그림은 단순한 터치 속에서도 세밀한 묘사가 되었다.  그 점이 좀 특이했다. (평소에 내가 익히 보아오던 그의 그림 스타일과 차이가 났다.)


이 죽은새 그림을 본 순간 D.H. Lawrence 의 Self-pity 라는 시가 떠올랐다.

Self-Pity

  H.D.Lawrence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
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자기 연민

나는 들짐승이 자기 연민에 빠진것을 본적이 없다
작은새가 얼어죽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질때
그 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슬퍼해본적도 없었으리라

(몇해전에 번역 해 봤던 시)

동일한 어떤 정서를 작가는 글을 통해, 화가는 그림을 통해 전달하는 것 같다. 이 그림과 이 시는 쌍둥이처럼, 똑같다 (내게는.)  그래서, 이런 그림을 보거나, 시를 대하게 되면 "우리가 저 작은 새와 다를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내가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잡다한 것들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뭐 그다지 서러울것이 있단 말인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번 눈감고 이 세상 떠나면, 내 육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말보로 사나이처럼 쿨~ 하게 아쉽고 서러운 것들을 짐짓 외면하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2011년 3월 31일 (목) 오루 6시 30분.  필립스 콜렉션 2층 계단 앞에서 Sam Gilliam 과 큐레이터의 대담이 있었다.  관객들은 그들 앞에 둘러서서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질문 답변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작가가 정면으로 보이는 맨 앞의 마룻바닥에 편히 (퍼질러) 앉아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사진 촬영을 금지 시켰기 때문에 아무도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도, 사진을 찍지 못했으므로, 하는수 없이 갖고 있던 공책에 메모를 해 가면서 간단히 그 장면을 스케치를 하였다.  내가 스케치한 뒷 배경에 색칠한 것이 Flour Mill 이라는 그의 설치 작품이다.


아래에 내가 어렵사리 사진 한장을 찍을수 있었다.  Sam Gilliam 과 그의 뒷편의 계단과 계단 너머의 설치 작품.  쌤 길리엄의 설명으로는 계단 역시 작품에 포함되는 구도라고 했다. 계단이 장애물이 아니고, 계단과 설치 작품이 어우러지는 것이 최종적인 이 작품의 목표인듯 했다. (방앗간에서 밀가루를 빻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아이들이 방바닥에 앉거나 누운채로 어른의 이야기를 듣듯) 편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펜으로 메모를 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했는데, 그의 양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가로줄무늬 그의 양말은 그와 동시대에 워싱턴에서 함께 활약했던 (그들은 모두 Washington Color Painting School 멤버들이다) Gene Davis 의 작품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나는 Gene Davis Socks 라고 메모를 해 두었다.

Phillips Collection 에서 인상적인 작품이 뭐냐고 큐레이터가 물었을때, 1962년에 전시장에서 본 Braque (브라크)의 'Shower (소나기)'라고 답했다.  브라크의 소나기는, 내가 브라크 작품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인데!  그래서 나도 얼른 "It's my favorite, too!" 라고 메모 해 두었다.

필립스 콜렉션에 걸려있던 브라크 작품중에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사진기에 담아놓은 것이 바로 그 '소나기'라는 작품인데... 대개 브라크는 피카소와 쌍벽을 이루는 큐비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브라크의 작품중에 가장 정감이 가는 것은 큐비즘에서 약간 비껴있는 그 '소나기'라는 작품이다. 쌤 길리엄과 나의 정서가 어디쯤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듯 하다.  (그래서 내가 그를 찾아 간 것이겠지만...)




그래서, 갤러리 토크가 끝나고 작가가 의자에 앉아있을때, 사람들이 다가가서 인사를 하기도 했는데, 나도 그에게 다가가서 내가 메모하고 스케치 한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1933년에 태어났고, 한국에 있는 내 엄마는 당신보다 몇년 늦게 태어났다. 우리 엄마는 아마츄어 화가이다. 나는 당신의 작품들을 유수의 미술관에서 모두 살펴 보았으며, 그래서 오늘도 당신을 보기위해서 찾아 왔다. 내게는 아주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당신의 입에서 쟁쟁한 화가들에 대한 회상이 나올때, 나는 감동받았다. 내가 미술책에서 본 사람들을 당신은 생생하게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는 내 공책에 싸인을 해주면서, "엄마가 한국의 어디에 계시는가?" 물었다.  나는 '서울'이라고 말했다 (일산이지만). 쌤 길리엄의 이력중에는 고교 졸업후에 군복무를 한 경력이 있다. 아마도 군복무 경력으로 대학때 학비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혹시 한국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아무튼 쌤 길리엄은 엄마가 한국의 어디에 계시는지 재차 물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쌤 길리엄의 싸인을 내가 스케치 한 것 위에 받았다. "우리 엄마에게 이것을 보여드리겠다"고 그에게 말해줬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당신 사진 한장 찍으면 안될까? Would you mind if I take a picture of you?"

"Oh, sure!  Go ahead!"

그는 사람좋게 허허 웃어주었다. 아, 참 마음좋은 신사 할아버지셨다. 1933년생이니까 만 78세이시다.  그래갖고 내가,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화가 선생님의 승락을 받고 그분의 사진을 찍어 올수 있었다는 것이지 헤헤헤. (내가 너무 흥분해갖고 카메라 조작을 실수를 해서, 동영상을 일부 찍었다. 그래서 그의 웃는 목소리까지 담아왔다.)




아, 나는 쌤 길리엄의 친필 서명이 들어있는 이 메모장을, 액자를 해 놓을 생각이다. 헤헤헤.  다음부터 미술관에 갈때는 줄쳐진 공책 말고, 작은 스케치북 (몰스킨 같은것)을 갖고 가야겠다.



갤러리토크의 내용은 추후에 정리하여 올리겠다.

아래 사진은 필립스 콜렉션이 소장하는 The Shower. Braque 의 1952년 작품이고 1953년 필립스 콜렉션이 구매했다. 1962년에 워싱턴 디씨로 이사온 쌤 길리엄이 미술관 구경을 왔을때 브라크의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나가는 소나기를 브라크가 잘 그려냈으며  이를 가로지르는 '자전거'가 참 예뻐 보였다고 한다.  나도 그 자전거가 이뻐서 이 그림이 맘에 들었는데... 기본 색조는 전형적인 브라크의 색조이지만, 그의 유명한 큐비즘 추상작품과는 약간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좋아했다.

오늘 심지어 쌤 길리엄과 나의 복장도 비슷했다. 우리 둘다 감색 더블 버튼, 금단추 상의를 입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양말과, 슬리퍼 신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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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ee, Eunmee, National Gallery of Art, September 5, 2010


 













Posted by Lee Eunmee
사진 촬영: Corcoran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January 16, 2011 by Lee Eunmee


샘 길리암 (Sam Gillaim 1933 -  2011년 현재 생존)은  현재 생존하는 미국 현대 화가 이다.  그는 Washington Color School 의 일원으로 1962년에 결혼과 함께 워싱턴 디씨로 이주한 후 평생 워싱턴을 떠나지 않은 흑인 예술가이다.

본래 미시시피주에서  8형제중에 일곱번째로 태어난 그는 켄터키주의 루이스빌 대학에서 미술 학사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워싱턴으로 이주한 후에는 워싱턴 디씨 일원의 고등학교와 Corcoran Art School, MICA, Univ. of Maryland, Carnegie Mellon 등에서도 활발하게 미술 강의를 하였다.

Sam Gilliam 은 현재 생존하는 작가이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예술 세계를 '이렇다'라고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쌤 길리엄을 널리 알려지게 만든 작품은, 아마도 캔버스에 물감 작업을 하여 빨래 널듯 널어놓은, 혹은 커튼을 매달아 놓은 듯한 바로 이런 풍의 작품들 일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둘러본 큼직큼직한 미술관의 어느 코너에 대개 쌤 길리엄의 '늘어진 커튼'같은 작품이 한 점쯤 걸려있었다. (이제부터 사진 파일들을 뒤져서 그것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볼 생각이다.)


잭슨 폴락이 캔버스 위에 물감 흩뿌리기로 그의 세계를 완성시켰다거나, Morris Louis 가 캔버스위에 물감 흘러내리기로 그의 개성을 결판지었다 한들, 그렇다한들, 그들의 작품은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국 액자에 반듯하게 '박제'되어 벽에 걸리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쌤 길리엄이 '무슨 짓을 했는가'하면, 그는 캔버스를 염색공장의 물감먹인 헝겊처럼 벽에, 허공에 치렁치렁 거는 시도를 한 것이고, 그의 '발상'이 현대미술에 한 획은 긋게 되었는데 (쌤 길리엄이 이런 시도를 했을때, 그가 그로인해 '미술사'책에 오를줄을 그가 예상이나 했을까?)... 난 항상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1960년대, 그가 워싱턴 디씨의 작업실 창가에 앉아있을때, 창밖 거리에 빨래 널린 것을 내다보다가, 빨래 널린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는 60년대와 70년대에 주로 이런 작업을 하다가 후에 다른 시도를 하게 되는데, 아직까지 쌤 길리엄의 'hall mark'라면 단연 이 늘어진 캔바스라고 할 만하다. 미술사에게, 쌤 길리엄에 이르러, 캔바스는 더이상 박제되어 벽에 걸리기를 거부했다. 캔바스가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억하시면, 쌤 길리엄의 미술사적 가치를 잊지 않게 될 것도 같다.

(내가 나 혼자 미술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떤 작가를 기억하는 방법은 -- 그의 대표적인 작품 한두점을 머릿속에 각인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대개의 경우 그의 작품이 수십, 수백점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의 '개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낯선곳에서 내가 모르는 그의 작품과 마주 설 때에도, 결국 그의 숨결을 찾아내게 되더라. 사람은 쉽게 못 변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숨지 못한다...)  샘 길리엄은, 그냥 '헝겊에 물들여서 주렁주렁 걸어놓은 화가' 라고 설명하면 대개 회상을 하게 된다.






















 





 










3월 31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필립스 콜렉션에서 쌤 길리엄의 갤러리 토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 퇴근을 해요....  지금부터 가서 놀다가 갤러리 토크 보고 가능하면 작가 사진도 찍고, 집으로~

Posted by Lee Eunmee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현재 전시중인 위의 작품 Merahi Metua no Tehamana (The Anscestors of Tehamana, 1893) 를 발견했을때, 나는 Mary Cassatt 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메리 커셋의 화집에서 익히 보던 줄무늬 옷 때문이었다.

위의 고갱의 작품속의 줄무늬와 아래의 메리 커셋 작품속의 줄무늬가 색상에서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내게는 동일한 패턴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Mary Cassatt (1844-1926) 과 Paul Gauguin (1848-1903)이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나 유럽에서 이런 패턴의 직물이 많이 사용된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게 된다.  위에 커셋과 고갱의 생몰 년대를 표시해 놓았다. 
 

  1. 메리가 4년 먼저 태어났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고
  2. 이 두사람들이 '인상파'라는 화가들의 리그에 공히 소속해 있었고,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메리 커셋이 미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작업을 했으니 간접적으로라도 교류가 있을 법도 하거니와
  3. 당시의 유행처럼 이들 모두 일본 판화에 관심이 많아 판화를 직접 제작하거나 일본 판화의 구도를 자신들의 작품에 구현하기도 했다는

여러가지 공통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두 화가가 '줄무늬' 옷을 통해서 얻으려 한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일본판화가 보이는  단순성 -- 그 단순성이 주는 힘, 그것을 의도했을까?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1. 1. 16. 01:28

Train in Coal Mine (1968) Oil on Fiberboard 광산의 기차
Jack Savitsky (1910-1991)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층 Folk Art 갤러리
사진 이은미, 2011, 01,14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은, 미국 미술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는 Folk Art 라고 불리우는, 전시장도 있어서 주로 무명의  일반 사람들이 그리거나 만든 작품들이 전시가 되고 있다. Grandma Moses 의 작품도 한점 걸려있고. 간혹 작가의 이름이 알려진 작품들도 보이는데, 이 기차그림도 작가가 알려진 경우에 속한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나는 새로운 그림을 발견 할 때가 있는데, 정말 새로운 그림이 거기 걸려있다기보다는, 늘 무심코 지나쳤던 것인데 문득 내 눈에 다가올때, 그 때 새로 만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전시 기획자가 계절에 따라서 작품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그 기차 그림은 내가 이곳에 올때마다 늘 그자리에 걸려있던 것이었는데, 이 작품이 문득 내 마음에 노크를 했다.  왜 하필 이것이 유독 눈에 띄었을까?  밖은 차가운 겨울 날씨인데, 그림이 환하고 따뜻하고 힘차보여서 그랬을까?

아니, 무심코 지나치다가 작품 제목에 덧붙여져있던 설명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일까?
스미소니안이 붙여 놓은 태크 (이름표)에 적혀 있던 구절을 기억에 의거 풀어 놓자면 -- 대다수의 민간 예술가들 (folk artists)은 그림 공부를 따로 하지도 않고 평생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여 살다가 노년에 일자리에서 물러난 후에, 취미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생애의 생생한 경험과 기억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기억들을 그림으로 옮긴다. 잭 새빗스키 역시 탄광촌에서 나고 자라서 광부로 35년 가까이 일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959년 탄광일을 그만두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Gransma Moses나 Horace Pippin 이 바로 그렇게 그림을 시작한 분들이 아닌가.

우리 엄마는 회갑을 며칠 앞두고 중풍으로 쓰러진후, 중풍을 이겨내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여 칠순때 개인전시회를 열었던 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미국의 풍속화가들에 대한 몇줄짜리 설명을 읽다가, 나는 내 엄마의 이야기를 그 속에서 발견해 낸 것이리라.  내 엄마. 위대한 내 엄마.  나는 이 그림앞에 서서, 워싱턴에 우리 엄마가 오면, 엄마 손을 끌고 이리 와서. 이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 낸것인지 설명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골똘히 골똘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의 작가는 탄광노동자들이 많이 걸리는 그 진폐증과 같은 질환으로 고통을 겪었고, 후기에는 유화의 그 강한 휘발유 냄새도 그의 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즐기던 유화도 포기하고 색연필과 같은 무해한 도구를 이용했어야만 했다고 혼다. 그는 다행히도 풍속화가 발굴에 노력한 어느 평론가의 지원을 얻어서, 살아서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지금도 웹을 찾아보면 그의 작품이 판매가 되고 있기도 하다.  탄광노동자 아무개씨는 은퇴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그의 작품이 미국의 국립 미국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는 영예를 누린 것이다.  폐는 먼지로 썩어들어갈 망정, 그가 그린 세상은 밝고 힘차다. 저 열차를 타고 탄광 노동자들은 광산과 집을 왕래하며 평생을 살아갔으리라.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2. 24. 11:04

2009년 10월 3일 Cocoran Gallery of Art에서 촬영.  워싱턴 디씨, 백악관 옆에 있는 코코란 갤러리 소장품. 메리 커셋의 '창가의 소녀 Young Girl at a Window.


미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소녀가 입고 있는 흰 드레스가 아랫부분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밝아지면서, 머리의 흰 모자 부분이 눈부시게 희게 빛나는 식으로 빛의 처리를 했으며, 이 흰빛의 극대화를 위해서 배경이 되는 하늘이나 먼 도시의 풍경 역시 소녀의 모자를 중심점으로 펼쳐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소녀가 무릎에 안고 있는 강아지의 검은 털이나 등뒤 유리창의 푸른빛, 그리고 숲은 어두운 초록색 역시 모자부분의 눈부신 흰빛을 위한 소품처럼 보인다.

그런데, 소녀의 흰빛에 가장 대비되는 것은 발코니의 울타리. 이 울타리는 소녀를 먼 풍경으로부터 단절시키거나 가두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오늘날 시각으로 (혹은 자유를 희구하는 여성의 시각, 혹은 나의 시각에서) 봤을때, 이 그림은 어쩐지 모순적 어두움을 안고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소녀의 모자, 울타리에 갖힌 소녀. 메리 커셋이 이러한 해석을 의도했을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한장의 그림은 메리 커셋이 무수하게 그린 대상들, 여인과 어린이, 집안의 여인들의 시대적 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울타리 안에 한정된.


메리 커셋은 그 울타리를 넘었을까?  커셋은 스스로 그 울타리를 넘었다고 믿었을까?
아니면 죽을때까지 그 울타리를 의식하며 살았을까?
나는 그것을 메리 커셋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당신의 울타리를 넘는데 성공했는가?'












코코란 미술관에 전시된 위의 작품. 오른쪽에 보이는 홀의 중앙의 중앙에 독보적으로 걸린 작품. 그 앞을 남자 관객이 가로막고 서있다.




렌윅 갤러리 (Renwick Gallery), 백악관 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스미소니안 렌윅 갤러리 2층 홀에 전시된 커셋의 '소녀' 그림. 소품인데 초록색 보넷을 쓴 소녀가 사랑스럽기도 하다.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2. 24. 10:03

메리 커셋을 소재로 한 픽션 (Lydia Cassatt Reading the Morning Paper), 아침 신문 읽는 여인을 읽은 것은 2008년 2월의 일이다. 커셋의 작품에 모델로 등장했던 메리 커셋의 언니 '리디아 커셋'은 피를 토하는 불치의 병에 걸렸고, 작가는 메리가 언니 리디아를 그린 작품속에 그녀의 병환을 어떤 식으로 그렸는지 설명을 하고 있다. 리디아가 그려진 작품속에 등장하는 핏빛 소품들 혹은 정체 불명의 빛빛 소품들.  당시에 이 소설을 읽고, 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이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등 소설에 소개된 작품들을 찾아 다니며 리디아의 환후를 확인하고는 했었다.  (아쉽게도 당시에 내가 사용하던 작은 디카로는 미술관의 흐릿한 조명아래서 문제의 작품들을 선명하게 촬영할수 없었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메리 커셋은 그저 예쁘장한 여성 취향의 그림을 그린 어줍지않은 미국 인상파 화가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소설을 통해서 메리 커셋을 만난 이후로 그이에 대한 나의 이해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메리 커셋 관련 페이지를 정리하다가 생각이 나서 책 페이지를 만들어본다.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2. 24. 09:17


(위 그림은 2009년 12월 19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에서 촬영했다)


메리 커셋 (Mary Cassatt 1844-1926)은 미국의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독일과 프랑스에서 보냈으며, 16세때는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s in Philadelphia)에 입교, 미술 수업을 받았다. 이후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미술 수업을 받고, 평생 프랑스 파리와  인근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화가이다. (그이은 결국 82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운명했다)

메리 커셋은 당시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상파화가 (Impressionists)들중 유일한 미국출신, 여성 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나 Edgar Degas 와의 교류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드가가 메리 커셋의 예술성을 발견하고 커셋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고도 하지만, 커셋 역시 자기 주장이 확실했던 화가였다고 한다.

커셋의 작품들은 대개 '여성'들의 일상적 삶의 풍경에서 그 소재를 취하였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활동의 폭이 제한적이었음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시각에서 커셋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남성중심의 시스템에 갖혀있는 극히 제한적인 여성의 삶의 묘사에서 그 한계를 느끼게 되지만, 그것은 21세기 여성의 시각에서 그러한 것이고, 커셋이 살아가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는 메리 커셋이라는 화가가 화단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그 실력을 인정받을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 해방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쯤에서 조선의 '신사임당'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신사임당이 유명해진 이유 속에는 조선의 석학 이이 선생의 모친이었다는 것이 한몫 하긴 하지만, 신사임당이 그려낸 화조도는 그 상세한 묘사나 애정어린 시각, 사물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뛰어넘는 탁월성이 있다. 그이의 주요 소재가 꽃이나 과일, 작은 짐승들과 같이 울타리 안에 갖혀사는 여인네가 관찰할수 있는 한정된 대상이었다고 해서 현재의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이를 비판하거나 그 가치를 과소 평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사임당이라는 한 여성의 탁월성은 그대로 여성들의 모델이 될만도 하다.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아기, 집안의 여성들의 한정된 일상적 삶의 풍경의 그 제한성이나 진부함으로해서 메리 커셋의 예술성을 폄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커셋은 여성들에게 입교가 허용되지 않는 미술학교에 들어가고 그림 수업을 받는 담대함을 가지고 그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개척한 투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음은 2010년 1월 16일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촬영한 커셋의 작품들.





상기한 바 대로 프랑스 화가 Edgar Degas 가 커셋의 예술성을 발견한 이래 미술적 멘토, 친구로 평생 지내게되는데, 커셋의 그림의 구도를 함께 의논한다거나 혹은 소품을 어떻게 늘어 놓을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드가는 세심하게 조언 내지는 '참견'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셋은 드가의 조언이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감정을 드러내고 격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기묘한 관계다.) 드가는 커셋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 때문인지, 큼직한 미술관에 이들의 그림이 걸릴 경우 드가 작품 옆에는 대개 커셋의 작품을 걸어 놓는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작품이 커셋의 The Loge 이고, 그 왼편에 Degas 선생의 작품이 걸려있다.  글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이 두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면 그만 픽 웃게 된다.  전시를 기획한 디렉터의 의중을 대충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짝꿍으로 전시되는 작품들은 커셋과 드가 외에도 오스트리아의 클림트 선생과 에곤 쉴레. 클림트가 쉴레의 후원자였고 이들은 격렬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래서 미술관이 두 사람의 작품을 소장할 경우 기를 쓰고 두 사람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는 편이다. (하하하),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0. 21. 10:41

http://americanart.textcube.com/380  에서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전시된 라이더의 작품들을 소개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Jonah 라는 작품을 다시 올려본다.

 

사진을 한번 클릭 한 수에 다시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가 보인다. 큰 이미지로 보면 야훼 (하느님)와 요나 (조나)의 표정까지 상세하게 보인다.

 

하느님이나 요나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작가인 라이더의 인간적인 측면을 상상하게 되는데, 어쩌면 닮은꼴처럼 보이는 '하늘의 하느님'과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요나'의 표정이 라이더의 자화상 처럼 보이는 것이다.

 

라이더의 그림을 나는 '엄숙'하다고 바라봤었는데, 오늘 우연히 이 작품속의 '표정'들을 발견하고는 - 어쩌면 라이더는 순진무구한 소년같은 영혼을 유지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2010년 10월 20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에서 촬영.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0. 21. 08:57

Flying Dutchman

completed by 188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6.1x43.8 cm

 

Images introduced here are Albert Pinkham Ryder’s paintings on view at the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on December 29, 2009. For viewers’ better understanding the whole scale of this particular painter’s artworks, I added title tags right next to each piece.

 

Presently, SAAM holds 28 pieces of Ryder, and here is the full list of artworks at the Smithsonian: http://americanart.si.edu/collections/search/artwork/results/?id=4199.

 

Put your cursor on the image and click twice, you will have a better view of these photos.

                                                                                      --RedFox.

 

 

알버트 라이더에 대해서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좀, 어이없는 계기 때문인데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105 제가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서 시리즈로 정리를 한 바 있는데,  에드워드 호퍼의 한장의 그림이 저를 매우 가렵게 했습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중에서 (1층에 있습니다) 왼편이 Cape Cod Morning,  그리고 오른쪽의 '집' 그림 제목이 Ryder's House 였던겁니다.

 

케이프 카드라는 곳은 미국지도 보면 나옵니다. 바닷가의 유명한 휴양지이지요. 그리고 문제의 Ryder's House 도 이곳에서 호퍼가 그린것이라고 알려져있는데, 그런데 Ryder가 누구길래 그 집을 그렸냐 하는거죠.  궁금한거죠. 가려워 미치는거죠. 미술관의 작품 안내문을 봐도, 이 집의 정체는 안밝혀주고 뭐 그림의 구도나 색채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하는겁니다.  내가 궁금한것은, 라이더가 누구이고, 라이더의 집이 왜 중요한가 뭐 이런건데요.

 

 

 

그렇게 가려운 세월을 보내던중, 에드워드 호퍼 관련 서적에서, 간단히 지나치는 언급중에, 이 집이 미국미술가 Ryder의 집이었다는 내용이 있는겁니다. 딱 한줄짜리 내용이었습니다. "미국미술가 Ryder가 이집에 살았어? 그런데, 호퍼는 그 사람 집을 왜 그렸대? 친구였대? 뭐지?"  이렇게 혼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중얼 하는거죠. 네, 저는 혼자 중얼거릴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 '라이더'의 집이 미국미술가의 집이었다는 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애매하고, 이 집이 작은 오두막인지 커다란 집인지도 애매합니다.  그림에서는 작아보이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집이라고도 하고요. '사실'로 확인된 정보를 저는 별로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같은 미술관 2층에서 아예 '라이더'로 '도배'가 된 전시실 하나를 만났습니다.  언뜻 보기에 멀미가 날 것같은 바다 그림, 그리고 어딘가 종교적인 분이기가 팍팍 나는 그림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전시실에 들어섰는데, 이름표를 들여다보니 Ryder 였습니다.  (갸가 갸여?  이 라이더가 그 라이더인감?  거시기가 거시기여? -- 혼자 또 중얼중얼).

 

그런데 또 들여다보니, 오매, 요 사람 라이더(1847-1917)가  에드워드 호퍼 (1882-1967)보다 한세대 앞선 사람이긴 헌데, 딱 '호퍼'급이네~ 이런 기분이 사사삭 드는겁니다. 왜 호퍼를 연상시키는가하면

 

 1. 호퍼(1882-1967)가 바다와 배를 즐겨그렸는데, 그 바다와 배의 구도가 라이더(1847-1917)와 비슷해요

 2. 신비한 쓸쓸함이 묻어나요

 3. 고집스러운 의지, 은둔자의 고집스러움, 혹은 결연함 같은것이 느껴져요.

 4. 딱 loner (외톨이) 풍이에요.

 

이런것은 물론,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미술비평가들은 Ryder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로 (1) Marsden Hartley (2) Jackson Pollock 이 두사람을 꼽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미술세계에 영향을 준, 혹은 최초의 미국 근대미술가로 '라이더'를 칭송했기 때문입니다 (Hughes, 1997. pp 362-365)).  그러면, 왜 라이더가 미국 현대 미술의 '아버지'급으로 인정을 받았는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전하기 전에, 그냥 그림이나 살펴보지요.  그림을 보다보면...뭐가 잡히겠지요.

 

 

 

요나 (Jonah)

 

Jonah ca.185-1895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69.2x87.3cm

 

요나...는,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요나가 거대한 물고기에게 삼켜졌다는 일화인데요.  라이더가 '구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군요.

 

 

이 글을 적고나서 8개월이 흘렀습니다.

또 가서 이 작품을 봤습니다.  이번에는 홀에 앉아서 '킨들'을 꺼내어 구약의 Jonah 를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성경 이야기를 잘 몰라요.  그래서 찾아 읽어보니 조나 (요나)가 야훼의 '심부름'을 피해서 도망을 갑니다.  그러니까 야훼가 '요놈 네가 도망가봤자 내 손바닥 안이니라' 이러시는 것이지요.  조나가 배을 타고 도망을 가니까 풍랑이 일게 하고, 커다란 물고기의 뱃속에서 '반성'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 후에도 조나가 뭐라고 투덜대니까 야훼가 야단을 치고 그럽니다.  저는 그 '조나 (요나)' 장을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위의 사진을 두번 클릭하면 좀더 큰 이미지로 볼수 있는데요, 가만 보면 그림 윗부분, 구름 중앙 부분에 하얀 산신령 같은 이미지가 보입니다. 아, 야훼 이십니다.  하하하.  야훼의 오른손 (우리가 보기에 왼편)에는 검은 공 같은것이 들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야훼의 손 안에 있는 '지구'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아랫쪽 가운데에 물에 빠진채 두 손을 들어 올린 조나가 보이고, 그 윗쪽 오른쪽에  큰 물고기가 보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운명이나 사명을 피할 길이 없을 때는 받아들여야만 하겠지만, 우리는 도망 가고 싶을 때가 더 많을겁니다.  투덜이 조나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매일 거울 속에서 조나와 만나기 때문일겁니다.

 

 

 

 

 

날으는 네덜란드인

Flying Dutchman

completed by 188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6.1x43.8 cm

 

http://americanart.textcube.com/292  삽화가 하워드 파일 (1853-1911)의 페이지에서 Flying Dutchman 의 전설을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요, 똑같은 전설을 라이더는 이렇게 그려냈군요.  파일의 작품은 1900년에 그려졌고, 이 작품은 그보다 3년전에 탄생했군요.  동일한 소재를 작가들이 어떻게 구현해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292 해당 페이지

 

 

 

기울어진 배

With Sloping Mast and Dipping Prow, ca.1880-1885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0.4x30.4cm

 

 

 

 

 

 

떠나는 페가수스

 

Pegasus Departing, by 1901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6.1x43.8cm

 

 

페가수스는 신화속의 날개달린 말 입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었을때, 메두사가 흘린 피에서  나타난 말이라는 설도 있고, 바다의신 포세이돈과 메두사 사이의 자식이라는 설도 있는데요. 날개달린 말, 페가수스의 등위에 페르세우스가 타고 있지요. 페르세우스와 페가수스는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원해주기도 하고, 음악의 신들의 샘이 말랐을때 페가수스가 샘을 만들어주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전원

Pastoral Study, 189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60.9x74.6cm

 

 

연인들의 배

 

The Lover's Boat ca.1881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wood 28.9x30.5cm

 

'연인들의 배'라는군요. 

 

이 그림을 보니까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가 생각났는데요. 이런 시가 있거든요.

 

Meeting at Night
   Robert Browning (1812-1889)

The gray sea and the long black land;
And the yellow half-moon large and low;
And the startled little waves that leap
In fiery ringlets from their sleep,
As I gain the cove with pushing prow,
And quench its speed i' the slushy sand.


Then a mile of warm sea-scented beach;
Three fields to cross till a farm appears;
A tap at the pane, the quick sharp scratch
And blue spurt of a lighted match,
And a voice less loud, through its joys and fears,
Than the two hearts beating each to each!

 

Browning 의 또다른 시, Porphyria's lover 라는 시도 있고요.  옛날에는, 이런 드라마틱한 사랑의 시도 즐겨서 낭송하고 그랬는데요.  미지의 어떤...사랑을 꿈꿀때.  옛날에요.  아직 인생이 뭔지,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런게 뭔지 잘 알지 못할때. 어릴때는 어떤 '드라마'를 꿈꾸쟎아요.  지금은, '환멸'의 시대를 사는것도 같아요. 인생에는 환상의 시대가 있고, 현실의 시대도 있고, 그리고 환멸의 시기도 있는듯 한데요.  환상의 등불들이 하나, 하나, 하나 꺼져가는 시기.  특히 무엇이 나를 서럽게 한다거나 실망시켜서가 아니라,  무수히 빛나던 것들이 하나 하나 꺼져가는거죠.  그런데, 라이더는 아마도 죽을때까지 삶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간직했던것도 같아요. 이런 그림을 그린것을 보면.  (그러니까, 그가 예술가이겠지요.)  아니 가만있자, 1881년이면 1847년생이니까, 34세.  음, 34세면, 아직 뭐 연인들의 보트라던가 이런 환상을 갖고 있을만도 한 나이가 아닐까... ㅎㅎㅎ. (그래, 아직 인생에 대한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기였는지도 모르지.)

 

 

 

 

 

 

달빛

 

Moonlight, 188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mahogany panel, cradled  40.4 x 45.0 cm

 

휘영청 밝은 보름달에, 배 한척이라. 달빛이 내 뺨에 가득 어리는듯 평화로운 풍경이죠.....

 

 

 

 

울린의 딸

 

Lord Ullin's Daughter, before 190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52.0x46.7cm

 

스코틀랜드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입니다. 율린의 딸이 마을의 청년과 사랑에 빠졌을때, 율린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이들의 사랑을 반대 했습니다. 그 청년은 율린의 집안과는 원수 집안의 사람이었으니까요.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 같죠?)

 

율린의 딸은 애인과 도망을 칩니다. 율린의 딸이 애인과 야반도주를 하여 호숫가에 이르렀을때 풍랑이 몰아칩니다. 율린의 딸은 뱃사공에게 호수를 건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뱃사공은 풍랑이 위험해서 배를 몰고 나가고 싶지 않아 거절합니다. 율린의 딸은 제발 호수를 건너서 도망하게 해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뱃사공은 내키지 않지만, 이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해 노를 저어 나갑니다.

 

율린의 딸이 도망친것을 알게 된 율린은 부하들을 이끌고 딸을 잡으러 달려옵니다. 잡기만 하면 이 '년놈들을' 죽여버려서 가문의 수치를 씻어버리리라 다짐하지요.

 

비운의 연인들을 싣고 풍랑을 헤치며 나아가던 뱃사공은, 그러나 그 자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배는 풍랑에 뒤집히고 맙니다. 율린이 딸을 잡기 위해 호숫가에 이르렀을때, 풍랑은 잠잠해지고 호숫가에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율린의 딸이 물결을 따라 밀려옵니다.  한 팔은 사랑하는 남자를 잡고, 한 팔은 구조를 요청하느라 내 뻗친채 뻗뻗한 시체가 된 처녀의 몸이 호숫가에 밀려옵니다.  두 년놈을 잡아 죽이리라 장담하던 율린은 자신을 책망하며,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Lord Ullin's Daughter

http://www.rampantscotland.com/poetry/blpoems_ullin.htm

 

 

Thomas Campbell (1777-1844)

 

A Chieftain to the Highlands bound,
Cries, 'Boatman, do not tarry;
And I'll give thee a silver pound
To row us o'er the ferry.'

'Now who be ye would cross Lochgyle,
This dark and stormy water?'
'Oh! I'm the chief of Ulva's isle,
And this Lord Ullin's daughter.

'And fast before her father's men
Three days we've fled together,
For should he find us in the glen,
My blood would stain the heather.

'His horsemen hard behind us ride;
Should they our steps discover,
Then who will cheer my bonny bride
When they have slain her lover?'

Outspoke the hardy Highland wight:
'I'll go, my chief - I'm ready:
It is not for your silver bright,
But for your winsome lady.

'And by my word, the bonny bird
In danger shall not tarry:
So, though the waves are raging white,
I'll row you o'er the ferry.'

By this the storm grew loud apace,
The water-wraith was shrieking;
And in the scowl of heaven each face
Grew dark as they were speaking.

But still, as wilder blew the wind,
And as the night grew drearer,
Adown the glen rode armed men-
Their trampling sounded nearer.

'Oh! Haste thee, haste!' the lady cries,
'Though tempests round us gather;
I'll meet the raging of the skies,
But not an angry father.'

The boat has left a stormy land,
A stormy sea before her-
When oh! Too strong for human hand,
The tempest gathered o'er her.

And still they rowed amidst the roar
Of waters fast prevailing;
Lord Ullin reach'd that fatal shore-
His wrath was chang'd to wailing.

For sore dismay'd, through storm and shade,
His child he did discover;
One lovely hand she stretch'd for aid,
And one was round her lover.

'Come back! Come back!' he cried in grief,
'Across this stormy water;
And I'll forgive your Highland chief,
My daughter!- oh, my daughter!'

'Twas vain: the loud waves lash'd the shore,
Return or aid preventing;
The waters wild went o'er his child,
And he was left lamenting.

 

 

 

 

계속...

 

 

 

 

 

참고문헌:

 

Robert Hughes (2009), American Visions: The Epic History of Art in America (pp. 352-365), New York: Random House.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