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5. 7. 4. 08:53

평생교육 기관에서 주최하는 '강사 채용 면접' 심사를 하고 왔다. 약 30여명의 강사후보들을 대략 5-10분 사이에 면담하고 당락을 결정하는 '점수'를 매기는 일이었다.  대학의 강사가 아니고 '평생교육기관'의 강사후보이므로 학력은 대졸에서 박사까지 다양하게 분포했고, 연령이나 강의주제, 배경 등도 다양했다. 몇차례 서류 심사를 거쳐서 최종심에 오른 분들이었으므로 모두 그 자리에 설만한 자격이 되는 분들이었다.  그중에 어떤 분은 여러가지로 출중하지만 단지 '평생교육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요건이 맞지 않는 분도 계셨다.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몇가지 메모하겠다.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후보들에게서 배울만했던 것. 

  • 일단 표정이 밝고, 단정한 외모이다. 옷을 썩 잘 차려입지 않아도 된다. 그냥 2-3만원짜리 옷을 입어도 단정하고, 밝고 경쾌하면 된다. 
  • 자신의 주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 
  • 이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강사/강의가 무엇일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잘 설명한다.
  • 적극적이다. (표정이나 몸짓, 자세에서 그 건강한 적극성이 감지된다)
  • 나이가 지긋하게 들었어도 어딘가 밝고 유쾌하다. (70대 최연장자 강사후보님은 표정이 놀랍도록 젊고 경쾌해서 나무의 새순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셨다. 놀라운 인물이셨다. 이분이 주는 생명의 풋풋함 그 자체가 심사위원 전체를 사로잡았다.) 이런 분은 또래의 다른 분들께도 좋은 에너지를 전파할것이며 젊은 세대와도 충분히 교감하시리라.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고 싶은 분이다. 
  • 유연하다. 어떤 질문이 던져졌을때 - 미처 준비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신뢰를 준다.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

  • 지각 -- 이 경우 나는 주최측에 "지각하는 사람을 왜 면접을 하죠? 강사 후보가 지각을 하면, 그 사람 수업은 불보듯 뻔한것 아닙니까? 강사가 지각을 하면 학생이 뭐라겠어요?" 했다.-- 무조건 탈락 시키거나 아예 지각면접 자체를 허용하지 말자는것이 나의 평소 의견인데 주최측에서는 오히려 나보다 너그러운 편이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한 분도 있고, 여러가지 사정상 지각 면접을 허용하기로 했단다.  허용은 되었지만, 지각 면접한 분들중 합격자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편견없이 심사를 했다고 해도, 면접에 지각을 하는 정신상태이면 그 분의 면접 자체도 사실 크게 기대할 것이 없는 편이다. 
  • 복장 -- 그래도 강사 후보 면접인데 구멍 숭숭 난 바지 (멋쟁이들이 입는 여기저기 구멍난 옷)에 어디 카페에 마실가는 듯한 복장이면 그건 좀 심하지. 그것도 '이미지 관리'를 강의한다면서 - 전혀 본인의 이미지를 신경안쓴다면.
  • 해외학력 그럴듯하게 부풀려 왔는데 건더기가 없는 경우 -- 해외에서 받는 온갖 수료증이나 졸업증 (심지어 해외 석사 박사까지)으로 지원서류가 그득한데 서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수상쩍어 보이기도 한다. 물어보면 우물우물하고 정확히 답을 안한다.  더 묻지 않고 탈락.  (신정아 사태 이후로 해와 수료증 그거 한국에서 더이상 별볼일 없는것 아닌가?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외국 학위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강사의 학력을 보는 것이 아니고 강사가 가져올 '내용'을 궁금해한다. 
  • 개인 신상 발언: 강사 심사받으러 와서 개인의 우울하고 딱한 사정을 설명하러 들지 말라. 그런 분은 수업에 가서도 자기 신세한탄 할것 아닌가?  (사회 생활  제대로 하려면 지금 내가 죽게생겼어도 인터뷰에 와서는 행복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기분좋게 만들어야 한다).
  • 본인이 유능해서 여기저기 비즈니스를 벌여 놓았는데 최근에 한가지 비즈니스가 잘 못 되어서 한달에 삼백만원이 펑크가 나서 - 한달에 삼백만원을 채우기 위해서 강사 신청을 했다는 '기상천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이 계셨다. 주최측 간사님이 "여기 강사로 그렇게 못 버세요...." 하고 굉장히 상냥하게 설명을 하셨다.  하하하.  그분 나가시고 간사님이 보충 설명 --"인터뷰 전에도 월 삼백 말씀하셔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씀 드렸는데 여기와서도 저러시네요..."   무슨 입시학원 강사도 아니고, 시민 평생교육기관에서 준비하는 강사풀을 위한 심사에서 월삼백을 희망하시다니 이분은 상황을 잘 못 이해하신것으로 보인다. 입시학원가셔야지...
  • 시민평생교육 기본 취지에 잘 맞지 않는 후보: 학력도 좋고 경력도 좋다 다 좋지만 시민평생교육사업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갖고 오시는 분도 있다. 이 경우 그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에 탈락을 한다. 그분은 '내 경력과 학력에, 내가 왜 떨어졌지? 여기 문턱이 그렇게 놓은가?'하고 오해하거나 좌절하실수도 있는데 - 이경우 그분 잘못은 없다. 그분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유로 탈락하신 후보님들은 좌절하거나 실망하실 필요가 없다. 그냥 단지 서로 안맞을 뿐인 것이다.

내가 특히 위에 빨간 펜으로 추가한 부분은 평소에 진로/취업 상담을 할때 내가 학생들에게 종종 들려주는 얘기이다. 최근에 석사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AI 분야의 유망주인 내 조카가 박사과정 공부하려다가 진로를 바꾸어 취업을 결정하고 구직 전쟁터로 향했다.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던 조카는 취업을 만만히 생각했던 모양인데, 자기를 불러줄 국내 대기업 취업에 번번히 실패를 하자 단단히 풀이 죽었다. 그래서 내가 말해줬다. "네 실력과 능력이면 결국 너는 어딘가 아주 좋은 회사에 들어갈거야. 초조해 할 것 없어. 앞으로 한 백군데에서 더 떨어질 생각을 해. 너는 떨어질때마다 한가지씩 배우게 될거야. 봐라 네가 단지 몇번 떨어진 것으로 너는 현실 파악도 했고, 제법 겸손해지기까지 했쟎아. 매번 너는 새로운 것을 배울거다.  네가 떨어지는 이유는 네가 능력이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네가 그 회사가 찾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 지금 어딘가에서 바로 너를 간절히 찾는 회사가 있을거야. 이건 결국 만남의 문제야. 

결국 내 조카는 국내 AI 산업을 이끄는 최고 기업체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자존심이 하늘을 찔러서 인턴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결국 인턴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뭐 5개월 한정 인턴직이라고 한다. "5개월 후에는 어딘가 정직원 자리를 찾아봐야죠"라고 조카가 그의 포부를 밝혔다.  그래서 내가 조카에에 말해줬다. "5개월 후에 -- 어딘가에서 정직원 자리를 찾으러 들지말고, 지금 네가 인턴으로 가는 그 회사에서 한두달 안에 정직원 자리를 만들어내. 5개월을 왜 기다려? 들어간데서 결판내는거지!!" 

연구실에만 있던 순진한 내 조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네?...아?...아.....아!!!... 그...그게 가능해요?"


그거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거지. 이 세상에는 절대 되는일도, 절대 안되는 일도 없다. 생각을 해보고, 상상도 해보고, 길을 만들어가는거지. 그러니까, 내가 어디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기죽을것은 없다. 나하고 그 기관하고 뭐가 안맞았던것이고, 생각을 해보고, 방향을 찾아보면 되는 것이지. 될.때.까.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6. 16. 19:37

 

 

난 김지애가 싫었다. 이유는 우리 할아버지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예뻐하셨다. 그래가지고, TV에서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여자가수가 나오면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미야, 저 가수 예쁘지. 우리 은미같이 이쁘게 생겼구나~~" 

 

우리 할아버지가 '저 가수 우리 은미처럼 이쁘구나'라고 했던 역대 여가수들은 다음과 같다.

 * 조미미 - 이 가수가 누군지 안다면 당신은 최소한 50대, 그 이상이어야 한다.
 * 김연자 - 이분은 트롯의 부흥과 함께 요즘 잘 나가고 계신다. 
 * 김지애 - 바로 이 김지애씨.

또 누가있더라...하여간 얼굴이 나부대대하고 넓적하고, 머리는 남자처럼 짧은 커트에 뭐, 그냥 촌스러운 (당시의 내 기준으로 봤을때) 그런 가수들을 할아버지는 '미인'이라고 하셨고, 그 촌스럽고 넙적한 '미인'가수들이 보일때마다 '우리 은미같애.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훤하고' 혼자 중얼중얼 하셨던 것이다.  나의 청춘시절에 최고 미인은 '황신혜'였는데, 뭐 내가 그런 미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도 대학 시절에는 제법 눈에 띄는 얼굴이었는데 - 우리 할아버지는 조미미, 김연자, 김지애를 나한테 갖다 붙이는 식으로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벅벅 내셨다. 

그런데,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 우리 할아버지가 이쁘다고 칭송했던 분들이 사실 나보다도 인물이 좋아서 그 자리까지 간것이지, 그러한 점을 인정하게 되고 내가 내 주제를 파악하게 된다.  설겆이를 하며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김지애의 '몰래한 사랑'이 흘러나오는데 - '아 김지애 - 은미 닮아 이쁜 가수'였던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서 흥얼흥얼 했던 것인데 - 무슨 마법에 걸린것처럼 며칠 내내 내가 청소를 할때나 꽃밭을 가꾸고 그럴때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너랑 나랑 둘이서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그래서 생각난김에 유튜브에서 그 가수를 찾아서 노래를 들어보니, 김지애 가수는 노래 부를때 마치 '여신'처럼 율동도 없이 꼿꼿하게 서서 이 리듬 넘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더라. 독특하다. 뭔가 카리스마가 있었네. 그때는 - 내가 어릴 때는 그 사람의 매력을 왜 발견을 못했던걸까?  그러고보면 우리 할아버지, 인물 볼 줄 아셨던거다. 

그래서 지금은 이노래 가사를 대충 외워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대여! 이렇게 ...무화과는 익어가는 날에는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6. 16. 19:32

얼마전에 내가 '술을 먹으니 우울증이 격하게 몰려온다'는 것을 깨닫고 술을 안마시기로 결심하는 글을 적은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나의 그 다짐을 잊고, 술을 몇 잔 마시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연은 이러하다.  우리들은 대체로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하여 만족해 하고 있었고, 축하할 겸해서 누군가가 보너스도 받았다고 해서, 보너스 받은 사람이 밥을 사기로 했고 새로운 대통령이 나라 살림을 잘 해줄것을 응원하는 뜻에서 모처럼 횟집에 모였던 것이다. 횟집이 문제였다. 여러가지 회르 바리바리 주문하면서 자연스럽게 '회에는 소주!'라고 누군가 외쳤고 (그게 나였던가....),  또 누군가가 '소주엔 맥주!' 이러고 장단을 맞췄고, 회가 상을 그득하게 채우고 소주와 맥주가 왔을때, 그 밥을 사기로 한 사람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잔잔잔마다 딸아 주었다.  그래서 그 '소맥'이란것을 한 20년만에 마시게 되었는데 - 그것이 목에 무척 시원하게 넘어갔다. 

 

회와 더불어 그것을 약 세잔쯤 마시면서 나름 스스로에게 설명을 붙였다 --'우울할때 먹는 술은 위험해. 우울감을 증폭시키거든. 그래서 술은 기분 좋을때 기분 좋게 마시라고 했어. 지금은 모두 새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기분 좋은 자리이니까 괜챦아...마셔도 돼.' 


횟집에서의 만찬은 기분좋게 마무리되었고, 모두들 느긋한 포만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로컬푸드에 들러서 꽃화분을 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론은, 술은 이제 마시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는데, 머리가 무겁고 몸이 편치 않았다. 이제 내가 청춘이 아니고 몸도 마음도 고단한 황혼이라, 술을 감당할 체력이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아아, 그런데 그 회를 먹다가 우리가 내기를 걸게 되었다. 우리가 내기를 건 것이 뭐냐하면:  지금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당수 '조국'씨가 광복절 특사로 나올것이다 라는 중론이 있었고 - 거기서 유일하게 나 혼자 '그건 그렇게 안될걸...왜냐하면 말이지...' 하고 내 나름의 정치적 해석과 예측을 논했던 것인데 그래서 결론적으로 '조국 씨'가 '광복절 특사'로 나오면 내가 그들에게 한우 생갈비 숫불구이에 해당되는 어쨌거나 비싼 밥을 대접하고, 만약에 '조국씨'가 '광복절 특사'로 못 나오면 그들이 내게 한우스테이크나 갈비나 아무튼 비싼 밥을 사주기로.  그래서 우리들은 과연 '조국씨'가 어떻게 될 것인가 815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조국 씨'가 '815 특사로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 그냥 느낌이 그렇다.  사실 이 일파들과는 이전에 과연 '김문수씨'와 '이준석씨'가 후보단일화를 할것인가 논의를 하고, 모두들 '단일화 할걸 ...' 할 때, 나 혼자서 '이준석이가 머리가 있는 X이면 안하겠지.  그래도 그 사람이 머리는 있어보이니까 안할걸'  하고 단언했는데 내가 맞췄다는 것이지. 결국 안했으니까.  그런 감으로, 나는 조씨가 815 특사로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예상하는데, 뭐 내가 내기에 지면 그것이 조씨에게는 잘 된 일이니까 내가 밥사는 것이 아까울게 없고, 만약에 내 예상이 맞으면 안된 일이지만 내가 공짜 밥을 얻어먹으니...뭐...다음을 기약해야 하는건데.  '그러면 언제 나오는데?'하고 그분들이 내게 물어보길래 내가 'XX'라고 딱 집어서 말을 하긴 했다.  그것은...일단 815까지 기다려보고나서... ㅋㅋㅋ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6. 6. 06:26

 

기말이다.  학생도 교수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오락기구에 강제로 태워진 기분으로 복도를 바쁘게 지나친다.  내가 가르치는 '스피치'관련 수업 두가지도 이번주에 모두 '마지막 스피치 발표'로 종강을 했다.  그날 한 학생이 내게 말했다, "오늘 저는 기말 프레젠테이션을 세개나 했어요."  그러자 다른 학생이 말했다, "난 네개."  대체로 교수들이 학기간에 진행된 각종 프로젝트의 진행결과 발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돌보다 연구실로 돌아와보니, 학생 한명이 문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30분후에 수업에서 만날 학생인데 왜 온걸까?  그 학생은 안색이 안좋았고,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우물우물 말했다. "For personal issues, due to family problem, today, I cannot attend the class...."  뭐, 사람 사는게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지 닥칠수 있으므로, 이 학생에게 갑자기 곤란한 일이 닥쳤을 수도 있다. 나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일단 연구실로 들어가 앉아서 얘기를 해보자" 하고 우물거리는 학생을 이끌고 연구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혔다. 

나: "자, 오늘 기말 프레젠테이션 하는 날인데, 이걸 빼먹으면 낙제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빼먹을정도로 심각한 일이 생겼다면 내가 좀 걱정이 되는구나. 무슨 일인지 대충 가늠이라도 하게 알려줄수 있을까? 혹시 집안에 누가 돌아가셨거나 가족중에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셨나?"   

너: 아니요...

나: 그럼, 자네가 어디 아픈가? 병원에 가야 하는건가? 여기 올 정도면 심한것 같지는 않은데...많이 아픈가?

너: 아니요...

나: 그러면 가족 모두 무사하시고, 자네도 무사하면 그러면 다행이네. 일단 아무도 안다쳤으니까 내가 안심이야.  그런데 기말 프레젠테이션하는날 30분후면 수업인데 그걸 못 올 만한 상황이 어떤건가?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우물거리던 학생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채, 울음을 애써 참는듯한 떨리고 눌린 음성으로 띄엄띄엄 말했다, "제가요, 오늘 프레젠테이션이 세개가 있는데요, 두가지는 어떻게든 마쳤는데요... 교수님 수업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제대로 못했어요...."

나: 내가 발표자료부터 온라인자료실에 올리라고 했는데 - 모두 올렸던데.  자료 이미 만들지 않았나? 다 올라왔던데?

너: 자료는 다 만들었어요. 준비는 다 했는데요...제가...연습을 충분히 못했어요. 제가 충분히 연습을 못하면...앞에 나가서 말을 잘 못하니까...저는 오늘 도저히 발표를 할 수가 없어요. 

나: 발표 자료 잘 만들어서 벌써 제출했고, 오늘 급우들 앞에서 5분간 간략하게 발표만 하면 (여태까지 쌓아온 점수를 볼때) A 플러스를 받을수 있는 학생이, 지금 기말 발표를 포기하고 F를 받겠다고? 그런 좀 딱한 일이지. 발표를 잘하고 못하고 점수의 차이가 크지 않을테니 대충 얼버무려도 발표를 해야지...

너: F받아도 할 수 없어요. 저는 충분히 연습을 못했기 때문에, 나가서 발표를 할 수가 없어요... (울먹울먹)

 

그래서 나는, 이 학생에게 '불안장애'에 해당하는 특별조치를 생각해냈다 (special accommodation).  너의 불안감이 학점을 포기할 정도로 극심하다면, 그것을 내가 '장애'로 인정해주기로 하자.  

나: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내 앞에서는 발표를 할 수 있을것 같아? 아니면 내가 무서워?  내가 막 발표 못하는 학생을 잡아 먹을것 같아? (유머러스하게)

너: (눈물 가득한 눈동자로 빙긋 웃으며) 아니요... 교수님 안무서워요...

나: 그러면, 여기서 해. 자 노트북열고 자료 꺼내고, 내 앞에서 발표를 해. 발표 한것으로 인정해주고, 여기서 심사를 해줄게.

학생은 잘 준비된 자료를 열고 차분하게 내 앞에서 발표를 했다. 최고점은 줄 수 없지만, 평균 이상의 점수는 줄 수 있었다. 잘 준비된 안정된 발표였으니까. (단지 대중 앞에서 못했을뿐.)  내게 아무것도 아닌 쉬운 일이 - 어떤 이에게는 그것을 포기할 만큼 공포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그것은 '장애'로 봐야 한다. 그러면 좀 다른 방법으로 평가를 할 수도 있다/있어야 한다.  이번에 응원과 지지를 받았으므로, 다음에는 포기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의 길을 찾아가겠지.

나는 그래서 늘 문제에 빠진 학생에게 말 해준다. 힘들고 불가능해 보여도 지레 포기하지 마. 포기 하지 말고, 나를 찾아오든지, 누군가를 찾아가서 얘기를 해봐. 대체로 길이 열릴거야. 

 

이건 우리 하느님이 늘 내게 해주시는 말씀이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내 얘기를 모두 들으시고, 내가 말하지 않는것까지 모두 아시고, 내 등을 토닥이고, 길을 찾아 주신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5. 29. 17:49

 

5월 29일 -- 대통령 선거 사전 선거일 첫째날, 현재. 

꽂아놓은 나뭇가지를 의지하여 올라가고 있어요.  

쑥쑥 커라! 쑥쑥 커라!  높이 높이!  여름내내 아침마다 파란 나팔꽃을 피워주셔요!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