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1. 21. 11:05

 

기말이 다가오고 있다.  기말 프로젝트 제출 시한이 다가오고 있고, 기말 제출 이전에 '드래프트'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는 기간이다.  그 '초안 (드래프트)'에 이러저러하게 고치고 보충하라는 피드백을 주는것이  교수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골치아픈 과제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과제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고 상상하는데,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하나만 하면 되지만, 가르치는 나는 이걸 수십명 분을 들여다봐야 한다구! 내가 더 중노동이라구!"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학생이 과제하다가 몸살을 겪을때 - 그 과제를 들여다보고 피드백을 적절히 줘야 하는 교수는 피드백 주다가 응급실에 실려간다.   그래서 기말이 되면 학교 전체가 조금씩 미쳐가는것도 같다. 학생들도 피로에 쩔은 얼굴이고, 교수들도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허둥지둥 돌아다닌다.  우리 모두 힘든 산을 함께 넘는 것이다.

 

내 수업을 두가지를 수강하는 학생이 있다. 참 착실하고, 의지가 되는 학생이다.  아침 9시 수업을 학생들이 회피하고, 지각을 하고 그러는 편인데 이 학생은 내가 오전 8:40 쯤에 강의실에 도착하면 이미 와 앉아있다. 이른 아침 빈 강의실에 불도 안키고 조용히 앉아 있다. 뭘 하는지 모르지만 늘 일정하게 그자리에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고 수업 세팅을 하면서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곤 한다. 참 좋은 사람이다. 오후에 진행되는 다른 수업에서도 그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 학생이라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과제를 무난하게 잘 해낸다.


그런데, 이 학생이 '연구 논문쓰기' 관련 수업에서 뭔가 이상 증세를 보였다.  기말 연구논문 제출 전에 '초안'을 제출하라는 과제에 엉뚱한 초안을 제출했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연구 논문 구조와 거기에 담을 내용 전체를 싸그리 무시한 제멋대로 아무거나 담겨있는 초안이었다.  나는 몇번이나, '이것이 우리 000이가 제출한 초안이란 말인가?' 컴퓨터를 확인 또 확인해야 했다.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이러저러하게 잡다한 피드백을 덧붙이면서 맨 마지막에 별도로 개인적인 메시지를 추가했다 -- "There's something wrong going on with you. I think we need to talk." 

 

오늘 아침에, 역시 일찍 나온 그와 빈 교실에서 수업 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농담하듯이 물었다, "Hey, what's going on with you? Any family issue or girl friend trouble? Your draft is telling me something... I guess you have something to tell me..." 

 

수업은 순조럽게, 활기차고 유쾌하게 지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빈교실에서 내가 교실 컴퓨터를 끄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을때 그가 다가왔다. '지난 주에는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까마득해요. 교수님 수업 뿐 아니라 다른 수업들도 엉망이었어요. 사실은 동생이 큰 사고를 당해서, 온 가족이 모두 정신이 없었어요...'

 

그랬다. 사고였다. 뭔가 이상했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그걸 주위 사람들이 알듯이,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학생은 어떤 식으로든 '기침'처럼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감지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모를 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의기소침해진 등을 툭툭 쳐서 위로를 하고, 이 위기 상황에 어떻게 학기를 잘 마무리 할지 의논을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1. 20. 11:20

 

 

 

어제, 연세대 심리학과 김민식 교수의 '더 컨트롤러'라는 책을 읽고 있다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폴 사뮤엘슨 선생님의 행복공식을 발견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위의 낙서).  내가 책 읽다 말고, "이런 공식이 있었네!"하고 감탄하자 - 옆에 있던 남편님이, "그러니까 행복해지려면 그 분모 값을 '영'에 가깝게 하는거야. 그게 스토아 철학자들의 생각이었어. 우리나라에서 조순 경제학책이 유명한데, 사실 그 책은 말이지 사뮤엘슨의 책 내용을...블라블라블라"

 

 

세상 천지 모든것을 다 아는것처럼 깝치던 내가 - 세상 사람이 다 아는 '공식'을 모르고 앉아있었던거다, 여태까정... 그런데, 내 수학적인 머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것인지 '행복은 소비 나누기 욕망이다'라고 하면 나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을 분수식으로 이렇게 그려놔야 내 머릿속에 개념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나눗셈 인간이 아니고 '분수'인간인것 같다.  그렇지 '분수'를 알면 되는거지. 그래서 '안분지족'이란 말이 있는거 아니겠어?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1. 15. 10:23

 

부평에 있는 한국 제너럴모터스에 동료들과 다녀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 깊어가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다. 전세버스 타고 다녀오는 동안 운전 안하고 차창밖 내다보며 거리의 단풍구경을 할수 있어서 좋았다. 동료들과의 심심파적 대화도 소풍같았고. (결론은 날짜를 정해서 둘러앉아 마오타이주를 마신다는 것이었다....)

 

 

2. 제너럴모터스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인상과 고용계약을 하라는 현수막들이 뒤덮여 있었다. 단풍과 현수막이 어울려 있었는데 - 한글을 읽을줄 모르는 동료교수들은 그것을 무슨 '설치미술'처럼 상상했고 - 내가 간단히 설명을 해주자 그제서야 분위기를 눈치챘다. 

 

 

3. 시민대 프로그램에서 2년전 인연을 맺은 '학생'님께서 내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모여있던 회의실로 와 주셨다. 그는 회의실에서 (즉석에서,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우리 대학과 제너럴모터스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간단한 스피치를 했다.  대학과 기업이 협력하는 모델을 멀리가서 찾을게 아니라 -- 바로 저 분의 케이스에서 찾으면 된다는 내 제안에 그가 즉석에서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발표했던 것이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제자이자 친구이다.  

 

 

4. 인체역학실험인가, 뭐 그 사람모형 가지고 각종 충격실험 하는 그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것을 보여줬는데 - 그런것은 뭐 티브이 광고나 뉴스 같은데서도 많이 봐서 새로울 것은 없었는데 - 그 인형 (dummy)하나에 십억원까지 간다고 해서 놀랐다.  

 

 

5. 뭐 딱히 놀랍게 새로운 것은 그들이 안보여줬거나, 안알려준것이 아닐까? 나를 깜짝 놀라게 할만한 새로운 것은  내가 식견이 부족하여 못본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동차회사 기획실에서 일하는 내 조카는 "곧 하늘을 날으는 택시가 나올겁니다. 먼 얘기가 아닌데요, 제가 그거 개발하고 있거든요" 라고 했는데 - 그런 꿈같은 얘기를 제너럴모터스에서는 들어볼수가 없었다. (말 안해주는걸거야 아마....)

 

 

끝. 

 

 

 

음 돌아보니,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은 - 회의실에 와서 앉아있던 내 제자를 발견한 순간. 아, 그가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1. 11. 18:49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1. 9. 10:42

 

화초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만만하게, 신경안쓰고 번식시킬수 있는 화초 몇가지가 있다. 스킨답서스, 센세베리아 뭐 이런친구들과 함께 '나비란'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이 흰 줄무늬가 들어간 (위) 종류일 것이다. 몇해전에 엄마 집에 있는 것을 조금 잘라다가 학교에서 키웠는데, 지금 무지무지 많이 번식했고, 학교에서 자라던 것 몇가지를 끊어다가 집으로 와서 뿌리를 내려 키우니, 여기서도 무섭게 번식을 하고 있다. 위의 친구는 흙이 기름지고 햇살이 좋으니 뻗어나온 꽃대가 '공룡'처럼 느껴질 정도로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아래는 내가 어제 동네 미장원 원장님에게서 얻어온 것이다. 그 미장원은 아파트 근처 개인주택가 골목에 숨어있어서 동네사람이 아니면 찾아가기도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어제 독감백신을 맞기위해 25년전에 내가 우리 어린 두아들 데리고 다니던 '가정의학과'에 들렀는데 - 백신 맞고 돌아오다가 문득 '이 머리좀 잘라야겠다' 생각하고, 근처 골목길을 기웃기웃대다가 이 미장원을 발견한 것이다.  대추차가 고요히 끓고 있던 그 미장원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가정의학과에 들렀을때에도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들어서자마자 대기할것도 없이 바로 의사선생님을 만났던 것인데, 미장원에서도 대기할 필요없이 곧바로 머리를 자를수 있었다. 머리 자르다말고 원장님이 "새치 염색 안하셔요?" 하고 물었고, "머리 자르고 새치염색하는데 시간이 얼마가 걸릴까요?" 물으니 한시간도 안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내 용모에 변화가 올수 있다면 그것참 좋은 일이다 싶어서 새치염색까지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머리를 하다가 미장원에 있는 화분에 눈길이 갔고, "저것은 나비란 같은 모양인데 줄무늬가 없네요...." 했더니, "갖고 싶으시면 조금 끊어 드릴까요?"하고 원장님이 흔쾌히 이걸 나눠주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나비같이 가볍게 머리를 자르고, 산뜻하게 새치염색도 하고, 미장원에서 얻어온 나비란을 들여다보고 있다. 

 

줄무늬가 없는 나비란. 이 친구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