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학자가 30년전에 쓴 책인데 여전히 팔려나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월에 번역소개가 된다는 광고를 보고 예스24에서 배달받은 책. 이런식의 교양서를 일본의 학자가 썼다면 - 큰 기대는 안하지만 실망을 주지도 않는 편이다. 일본 사람들은 '다이제스트'판을 잘 쓰는 편이다. 뭔가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해서 전달하는 것을 잘 한다. (그런 책들이 살아 남는 것이겠지...)
딱 그정도의 기대에 부응하는 세계사책이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계사를 100개의 챕터로 정리해 놓았다는 것. 그것을 보면서 '아, 어떤 주제의 글을 쓸때 이런식으로 20챕터, 30챕터, 50챕터 이런식으로 정리해서 소개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은 - 그냥 고등학교 시절의 국정교과서 '세계사'에 살을 좀 붙인 정도. 주루룩 훑으면서 - 아 이대목을 배울때 - 그 때 창밖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지...뭐 그런 과거 회상으로 걸어들어갈때가 종종 있었다. 딱 중고등학생이나 '무식한' 대학생들이 교양서로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 여기서 내가 말하는 '무식한 대학생'은 내 조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내 조카는 수학만 잘하는 어리버리한 친구인데, 수학만 잘하는 그 특이한 재능으로 소위 말하는 sky 대학은 꿈도 못꾸고 모 과학기술대에서 1년쯤 공부를 하다가 군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복학하기 전에 세상구경한다고 물류센터에서 열심히 알바를 해가지고 돈 천만원을 모아서 친구들과 함께 한달정도 유럽여러나라를 구경하고 왔다. 친구들 포함 네명이 함께 한달을 돌아다녔는데 - 다녀왔다고 큰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하러 왔는데 (얼마나 반듯하고 착한 청년인가) - "가서 뭘 깨닫고 온거니?" 이런 내 질문에 "아유, 큰엄마 제 친구들하고 제가 무식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가 되게 무식해가지고요..." 얼마나 무식하냐하면 --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봤냐 안봤냐 얘기하다가 -- "그 있쟎아요 그 박물관 중앙의 니케 그 승리의 여신 니케. 거기서요, 친구들이 만약에 잃어버리면 거기서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니케 큰엄마도 보셨어요?" 하길래 - "아 '니케' 그게 '나이키'지. 나이키. 너 신고온 운동화 그 나이키 말이지" 하고 장단을 맞춰 줬더니 "큰엄마 그 니케가 나이키에요?" 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 아닌가.
옛날에 2001년 여름에 아이들데리고 루브르 갔을때, 그 때 나도 그 승리의 여신상 앞에서 애들에게 당부를 했던 일이 생각이 난다, "얘들아. 이 목없고 날개만 있는 이 친구가 '나이키'신발의 그 '나이키'야. 그 나이키신발 로고의 원형이 이 목없는 날개 여신이란다. 만약에 여기서 길 잃고 엄마 잃어버리면 이리로 와서 꼼짝 말고 있어. 엄마도 이리 찾아올테니까. 여기서 만나면 되는거야." 물론 나는 애들 손을 꼭 잡고 있었으므로 실제로 애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하는 '무식한 대학생'이란 그냥 보통정도의 교양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시시콜콜한 것은 잘 모르는 평범한 젊은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냥 중고등학생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교양인이 읽기에 적당한 - 대체적으로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는 교양서이다. 심각한 무엇은 없으나 그래도 부분 부분 저자의 세계사적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깊지 않지만 가볍지만도 않은 - 그것이 내가 평소에 느끼는 일본 교양서 번역본에 대한 일반적인 느낌이다. 깊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그냥 머리 식히려고 읽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Splendid Isolation 이라는 19세기 영국의 외교정책의 그 영어 표현을 처음 접한 책이다. 영국이 Brexit 라고 EU에서 나온것도 - 아마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