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이 다가오고 있다. 기말 프로젝트 제출 시한이 다가오고 있고, 기말 제출 이전에 '드래프트'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는 기간이다. 그 '초안 (드래프트)'에 이러저러하게 고치고 보충하라는 피드백을 주는것이 교수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골치아픈 과제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과제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고 상상하는데,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하나만 하면 되지만, 가르치는 나는 이걸 수십명 분을 들여다봐야 한다구! 내가 더 중노동이라구!"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학생이 과제하다가 몸살을 겪을때 - 그 과제를 들여다보고 피드백을 적절히 줘야 하는 교수는 피드백 주다가 응급실에 실려간다. 그래서 기말이 되면 학교 전체가 조금씩 미쳐가는것도 같다. 학생들도 피로에 쩔은 얼굴이고, 교수들도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허둥지둥 돌아다닌다. 우리 모두 힘든 산을 함께 넘는 것이다.
내 수업을 두가지를 수강하는 학생이 있다. 참 착실하고, 의지가 되는 학생이다. 아침 9시 수업을 학생들이 회피하고, 지각을 하고 그러는 편인데 이 학생은 내가 오전 8:40 쯤에 강의실에 도착하면 이미 와 앉아있다. 이른 아침 빈 강의실에 불도 안키고 조용히 앉아 있다. 뭘 하는지 모르지만 늘 일정하게 그자리에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고 수업 세팅을 하면서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곤 한다. 참 좋은 사람이다. 오후에 진행되는 다른 수업에서도 그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 학생이라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과제를 무난하게 잘 해낸다.
그런데, 이 학생이 '연구 논문쓰기' 관련 수업에서 뭔가 이상 증세를 보였다. 기말 연구논문 제출 전에 '초안'을 제출하라는 과제에 엉뚱한 초안을 제출했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연구 논문 구조와 거기에 담을 내용 전체를 싸그리 무시한 제멋대로 아무거나 담겨있는 초안이었다. 나는 몇번이나, '이것이 우리 000이가 제출한 초안이란 말인가?' 컴퓨터를 확인 또 확인해야 했다.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이러저러하게 잡다한 피드백을 덧붙이면서 맨 마지막에 별도로 개인적인 메시지를 추가했다 -- "There's something wrong going on with you. I think we need to talk."
오늘 아침에, 역시 일찍 나온 그와 빈 교실에서 수업 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농담하듯이 물었다, "Hey, what's going on with you? Any family issue or girl friend trouble? Your draft is telling me something... I guess you have something to tell me..."
수업은 순조럽게, 활기차고 유쾌하게 지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빈교실에서 내가 교실 컴퓨터를 끄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을때 그가 다가왔다. '지난 주에는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까마득해요. 교수님 수업 뿐 아니라 다른 수업들도 엉망이었어요. 사실은 동생이 큰 사고를 당해서, 온 가족이 모두 정신이 없었어요...'
그랬다. 사고였다. 뭔가 이상했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그걸 주위 사람들이 알듯이,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학생은 어떤 식으로든 '기침'처럼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감지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모를 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의기소침해진 등을 툭툭 쳐서 위로를 하고, 이 위기 상황에 어떻게 학기를 잘 마무리 할지 의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