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기관에서 주최하는 '강사 채용 면접' 심사를 하고 왔다. 약 30여명의 강사후보들을 대략 5-10분 사이에 면담하고 당락을 결정하는 '점수'를 매기는 일이었다. 대학의 강사가 아니고 '평생교육기관'의 강사후보이므로 학력은 대졸에서 박사까지 다양하게 분포했고, 연령이나 강의주제, 배경 등도 다양했다. 몇차례 서류 심사를 거쳐서 최종심에 오른 분들이었으므로 모두 그 자리에 설만한 자격이 되는 분들이었다. 그중에 어떤 분은 여러가지로 출중하지만 단지 '평생교육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요건이 맞지 않는 분도 계셨다.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몇가지 메모하겠다.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후보들에게서 배울만했던 것.
- 일단 표정이 밝고, 단정한 외모이다. 옷을 썩 잘 차려입지 않아도 된다. 그냥 2-3만원짜리 옷을 입어도 단정하고, 밝고 경쾌하면 된다.
- 자신의 주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
- 이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강사/강의가 무엇일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잘 설명한다.
- 적극적이다. (표정이나 몸짓, 자세에서 그 건강한 적극성이 감지된다)
- 나이가 지긋하게 들었어도 어딘가 밝고 유쾌하다. (70대 최연장자 강사후보님은 표정이 놀랍도록 젊고 경쾌해서 나무의 새순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셨다. 놀라운 인물이셨다. 이분이 주는 생명의 풋풋함 그 자체가 심사위원 전체를 사로잡았다.) 이런 분은 또래의 다른 분들께도 좋은 에너지를 전파할것이며 젊은 세대와도 충분히 교감하시리라.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고 싶은 분이다.
- 유연하다. 어떤 질문이 던져졌을때 - 미처 준비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신뢰를 준다.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
- 지각 -- 이 경우 나는 주최측에 "지각하는 사람을 왜 면접을 하죠? 강사 후보가 지각을 하면, 그 사람 수업은 불보듯 뻔한것 아닙니까? 강사가 지각을 하면 학생이 뭐라겠어요?" 했다.-- 무조건 탈락 시키거나 아예 지각면접 자체를 허용하지 말자는것이 나의 평소 의견인데 주최측에서는 오히려 나보다 너그러운 편이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한 분도 있고, 여러가지 사정상 지각 면접을 허용하기로 했단다. 허용은 되었지만, 지각 면접한 분들중 합격자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편견없이 심사를 했다고 해도, 면접에 지각을 하는 정신상태이면 그 분의 면접 자체도 사실 크게 기대할 것이 없는 편이다.
- 복장 -- 그래도 강사 후보 면접인데 구멍 숭숭 난 바지 (멋쟁이들이 입는 여기저기 구멍난 옷)에 어디 카페에 마실가는 듯한 복장이면 그건 좀 심하지. 그것도 '이미지 관리'를 강의한다면서 - 전혀 본인의 이미지를 신경안쓴다면.
- 해외학력 그럴듯하게 부풀려 왔는데 건더기가 없는 경우 -- 해외에서 받는 온갖 수료증이나 졸업증 (심지어 해외 석사 박사까지)으로 지원서류가 그득한데 서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수상쩍어 보이기도 한다. 물어보면 우물우물하고 정확히 답을 안한다. 더 묻지 않고 탈락. (신정아 사태 이후로 해와 수료증 그거 한국에서 더이상 별볼일 없는것 아닌가?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외국 학위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강사의 학력을 보는 것이 아니고 강사가 가져올 '내용'을 궁금해한다.
- 개인 신상 발언: 강사 심사받으러 와서 개인의 우울하고 딱한 사정을 설명하러 들지 말라. 그런 분은 수업에 가서도 자기 신세한탄 할것 아닌가? (사회 생활 제대로 하려면 지금 내가 죽게생겼어도 인터뷰에 와서는 행복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기분좋게 만들어야 한다).
- 본인이 유능해서 여기저기 비즈니스를 벌여 놓았는데 최근에 한가지 비즈니스가 잘 못 되어서 한달에 삼백만원이 펑크가 나서 - 한달에 삼백만원을 채우기 위해서 강사 신청을 했다는 '기상천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이 계셨다. 주최측 간사님이 "여기 강사로 그렇게 못 버세요...." 하고 굉장히 상냥하게 설명을 하셨다. 하하하. 그분 나가시고 간사님이 보충 설명 --"인터뷰 전에도 월 삼백 말씀하셔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씀 드렸는데 여기와서도 저러시네요..." 무슨 입시학원 강사도 아니고, 시민 평생교육기관에서 준비하는 강사풀을 위한 심사에서 월삼백을 희망하시다니 이분은 상황을 잘 못 이해하신것으로 보인다. 입시학원가셔야지...
- 시민평생교육 기본 취지에 잘 맞지 않는 후보: 학력도 좋고 경력도 좋다 다 좋지만 시민평생교육사업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갖고 오시는 분도 있다. 이 경우 그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에 탈락을 한다. 그분은 '내 경력과 학력에, 내가 왜 떨어졌지? 여기 문턱이 그렇게 놓은가?'하고 오해하거나 좌절하실수도 있는데 - 이경우 그분 잘못은 없다. 그분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유로 탈락하신 후보님들은 좌절하거나 실망하실 필요가 없다. 그냥 단지 서로 안맞을 뿐인 것이다.
내가 특히 위에 빨간 펜으로 추가한 부분은 평소에 진로/취업 상담을 할때 내가 학생들에게 종종 들려주는 얘기이다. 최근에 석사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AI 분야의 유망주인 내 조카가 박사과정 공부하려다가 진로를 바꾸어 취업을 결정하고 구직 전쟁터로 향했다.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던 조카는 취업을 만만히 생각했던 모양인데, 자기를 불러줄 국내 대기업 취업에 번번히 실패를 하자 단단히 풀이 죽었다. 그래서 내가 말해줬다. "네 실력과 능력이면 결국 너는 어딘가 아주 좋은 회사에 들어갈거야. 초조해 할 것 없어. 앞으로 한 백군데에서 더 떨어질 생각을 해. 너는 떨어질때마다 한가지씩 배우게 될거야. 봐라 네가 단지 몇번 떨어진 것으로 너는 현실 파악도 했고, 제법 겸손해지기까지 했쟎아. 매번 너는 새로운 것을 배울거다. 네가 떨어지는 이유는 네가 능력이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네가 그 회사가 찾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 지금 어딘가에서 바로 너를 간절히 찾는 회사가 있을거야. 이건 결국 만남의 문제야.
결국 내 조카는 국내 AI 산업을 이끄는 최고 기업체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자존심이 하늘을 찔러서 인턴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결국 인턴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뭐 5개월 한정 인턴직이라고 한다. "5개월 후에는 어딘가 정직원 자리를 찾아봐야죠"라고 조카가 그의 포부를 밝혔다. 그래서 내가 조카에에 말해줬다. "5개월 후에 -- 어딘가에서 정직원 자리를 찾으러 들지말고, 지금 네가 인턴으로 가는 그 회사에서 한두달 안에 정직원 자리를 만들어내. 5개월을 왜 기다려? 들어간데서 결판내는거지!!"
연구실에만 있던 순진한 내 조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네?...아?...아.....아!!!... 그...그게 가능해요?"
그거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거지. 이 세상에는 절대 되는일도, 절대 안되는 일도 없다. 생각을 해보고, 상상도 해보고, 길을 만들어가는거지. 그러니까, 내가 어디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기죽을것은 없다. 나하고 그 기관하고 뭐가 안맞았던것이고, 생각을 해보고, 방향을 찾아보면 되는 것이지. 될.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