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gomtn/221311140324
산책로를 발견했다. 웹을 검색해보니, 위에 링크한 블로그에 상세한 안내가 나와있다 (글쓰신 분께 감사드린다).
이 전체길에서 내가 좋아하는 길은 위 포스트 맨 아래 전체지도에서 - 화정배수지에서부터 광통농원까지의 길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광통농원까지 왕복하면 딱 만보가 나온다. 원당에서 국사봉까지 이르는 길은 나로서는 그렇게 만만치 않다. 내 기준으로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길도 있고, 무릎이 아프거나 숨을 헐떡대는 구간도 있다. 하지만 화정배수지-광통농원까지의 길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구릉지대라서 내가 한바퀴 돌아올때는 계속해서 내리막길로 내려오게 되므로, 가는길은 분명 오르막길일텐데 갈때 오르막길 오르는 느낌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정도로 경사가 완만하고 편안하다. 특히 이 구간은 '맨발'로 산길을 걷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의 붉은 황토로 이루어진 산길이 자연그래도 노출되어 있고, 마치 누군가 마당비로 깨끗이 쓸어놓기라도 한듯 깨끗해서 맨발로 걷는것이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 이 구간을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맨발이시길래 나도 신발을 벗고 걸어보니 편안했다.
나는 이 구간을 '다알리아길'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길 초입의 비닐하우스 농가에 다알리아가 많이 피어있기 때문이다. "그 다알리아길에 가자" 하면 다알리아 핀 마을을 지나 완만한 구릉지대를 한바퀴 걷고 돌아오는 코스 전체를 말하는 것인데, 특히나 내가 반환하는 지점에는 비닐하우스 농원이 두동이 있는데, 한동에서는 선인장 종류를 키우고 또다른 한동에서는 장미를 키운다. 그리고 요즘 그 장미원에서 장미꽃다발을 (한다발에 7-8송이) 묶어서 한다발에 천원씩에 팔고 있다. 무인판매시스템이라서 그냥 장미꽃다발을 물양동이에 담아놓고, 그 옆의 나무상자에 한단에 천원씩 돈을 넣어두던가, 아니면 은행계좌로 돈을 보내라는 안내가 나온다. 지난 토요일에 그 장미가 싱싱할지 아닐지 알 수 없어 실험삼아 세단을 사왔는데, 밤사이에 꽃이 탐스럽게 피어나기 시작하고 향긋하여서,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일요일에는 일부러 장미를 사러 산책을 나갔다. 장미 다섯단을 사다가 근처에 사는 시동생네 집에 주었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장미를 사러 산책을 나갈 것이다. 장미사러 맨발로 산길을 산책하러 나갔다 오면 만보 해결. 참 아름다운 길 발견. 특히나 산책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초입의 논둑길은 내 고향 집으로 가는 길과 닮아서 특히 이 산책로에가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위의 링크된 블로그에 '누리길이정표를 따라 농로를 걷는다'는 설명이 붙은 평범한 논둑/밭둑길 그길이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다. 멀리 북한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길 다 내려오면 만나는 농가길, 길고양이가 사람을 반기고 놀자고 한다.
길에서 고양이의 환대를 받으면 그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된다.
침
대
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침대 광고를 보다가, 문득.
과학은 침대다 ===> 과학은 우리가 안심하고 몸을 누일수 있는, 휴식할 수 있는 근간이다.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시간은 한때 과학적 사실로 알려졌던 것들의 비과학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비과학이라는 것으로 판명되기 전까지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때로는 그 비과학성의 토대위에서 과학성이 움트고 성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언젠가 비과학으로 판명된다고 해도, 그래도 현재 우리는 '과학'이라고 알려진 토대위에 서 있어야 한다. 과학은 침대다. 침대에 우리는 안심하고 몸을 누일수 있고, 휴식할 수 있다.
( 프로포절을 시작해야 하는데, 뚜껑을 열기가 버거운 나는, 딴짓을 하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결국 기한안에 쓰긴 하겠지.)
중간고사를 마친 학생들에게 '선물'의 의미로 오전에 진행되는 한시간짜리 수업을 강의실이 아닌 구내 '카페'로 하기로 공지를 하였다. 학생수도 많지 않아 카페의 큼직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수업을 진행해도 별 무리가 없어보였다. 처음에 학생들은 'You mean, there's no class?"하고 반문했는데 - 그에 대하여 "Of course, we have a class but not in the classroom but at a cafe! If you don't show up, I will mark it as absent"라고 분명히 말 해 줬다. 그래도 혹시 학생들이 헛갈려할까봐 두차례나 이메일로 공지를 해 줬다.
내가 늘 수업을 하기 위해 모이는 강의실이 아닌 구내 카페로 장소를 일시적으로 옮긴 이유는, 우선 중간고사 기간동안 고생한 학생들의 노고에 대하여 내가 값을 치르는 따뜻한 차나 커피로 위로와 응원을 해 주고 싶었고 - 강의실이 아닌 카페에서 학생들이 좀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영어토론을 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씨가 화창한 시월의 어느 아침에, 나는 일찌감치 구내 카페로 가서 가장 큰 테이블을 '점거'해 놓고, 카페 직원들에게도 '여기서 오늘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라고 알렸다. 물론 카페 측에서는 한시간동안 테이블에서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에 밝게 웃으며 환영의 표시를 하였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 학생들이 차례차례 등장했고, 나는 학생들이 한명 한명 등장할때마다 카운터로 함께 가서 음료수를 사 주었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듯, 카페 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준비한 '토론' 주제를 소개했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한가지씩 짧은 주제토론을 리드하다보면 수업시간이 채워질것이다. 토론 주제는 가령 '동물 상대 실험은 어디까지 용납될 것인가,' '노숙자에게 애완동물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운전면허 연령제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늙으신 부모의 봉양 책임은 자식에게 있는가, 개인의 책임인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 뭐 이렇게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생각이 오고갈 만한 것으로 채워졌다.
토론중에 학생들에게서 내가 예기치 못했던 이야기들도 나왔다. 어느 여학생은 '한국이 밤길 걸을때 미국보다 안전한 사회라고 알려져 있고, 밤길에 살해당할 걱정을 덜하는 사회라고 알려져있지만, 한국에서 사는 여성인 자신은 밤길에 살해당할 걱정보다 아무때나 강간당할까봐 더 두렵다'고 실토했다. 살해의 위협보다는 아무때나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 강간'이 더 무섭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살해 당할 가능성'보다 '강간 당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는 심리적 압박감의 토로였다.
동일한 내용에 대해서 남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어때? 밤길 걸을때 살해당할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가?" 대체로 남학생들은 별로 그런 생각을 안해봤다고 답했는데 - 우리나라에서 제일 빡세다는 특수부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체력단련에 힘을 쓰고 있는 남학생 (그가 내게 전에 그의 계획을 얘기해 준 적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I feel the same anxiety when I walk around at night. It's scary walking alone at night." "체력 좋은 남학생인 너도?" 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아, 아, 이 학생은 두려움이 많기 때문에 더욱더 특수부대쪽에 관심이 있는거구나, 두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하여...
카페에서의 수업을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땠어? 강의실과 카페 두 장소중에서, 어디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눌때 마음이 편해? 아니면 덜 긴장돼? What do you think between the classroom and the cafe? Which place do you feel more comfortable or less stressful speaking in English?" 나는 내심 '카페에서 영어로 토론하니 재미있어요' 뭐 이런 답이 나올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자리에 참석한 '모든'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Classroom. I feel more comfortable speaking in English in the classrooom." 모두가, 모두가 그렇게 답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Tell me more about it. What made it sort of stressful for you to discuss in English at a cafe? 카페에서 영어로 토론하는것이 뭐가 힘들었던거지? 난 교실보다 카페가 더 편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이쪽에서 음료수를 사주면서 수업을 진행한것인데 말씀이야....."
학생들은 뭔가 선명한 대답을 안했는데, 그 중 한학생이, "Because it's noisy here"라고 답했다. 카페는 시끄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카페는 시끄럽지 않았다. 이른 아침 수업이었고, 그러므로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 카페가 방금 문을 열은 상태였고, 주로 테이크아웃으로 음료수를 사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카페는 한산했다. 시끄러울 정도의 소음은 없었다. 소음에 신경질적으로 민감한 나 조차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캠퍼스 구내에 있는 그 카페는 음악도 틀지 않는다. 어느때는 '적막강산'으로 변하기도 한다. 내가 느끼기에 조용하기만 한 카페 공간에 대하여 그 학생은 '카페라서 소음이 많아서, 영어토론 하기가 교실보다 불편했다'고 설명한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시월의 파란 하늘과 보석처럼 물들어 찰랑거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연구실로 향하던 중 나는 문득 떠올렸다. 오래전 내 박사학위 논문에 내가 적었던 현상. 그 부분에 대하여 심의하던 교수들께서 놀라운 발견이라며 높이 평가해줬던 것이 있다. 대체로 제2언어 습득 관련 분야에서는 언어발달의 순서가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대화에서 시작해서 - 학문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통설인데 - 이 통설에 약간 예외적인 현상이 있다. 학교 영역에서는 고등학생이건 대학생, 대학원생이건 간에 학교 영역에서는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교실영어 (추상적이고 학문적인 영어)'가 유창한데 비해 '일상적인 대화'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니까, 학교나 교실에서는 그나마 숨이 붙어있어서 최소한의 필요한 영어(고급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학교 밖의 영역 (일상 영어)으로 가면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고,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현상이 보인다). 이들이 주로 '공부/추상/학문'영역에서만 영어를 활용했기 때문에 공부 영역에서의 영어는 그나마 '익숙'하지만 -- 대중적인 장소, 일상적인 장소, 영어 사용을 회피할수 있는 장소에서 일상적인 영어를 해야 할때 이들은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소음이 있지도 않는 상황에서 '소음때문에 힘들어'라고 무의식중에 설명하러 드는 것이다.
이 친구들이 강의실을 벗어나 카페에서, 길에서, 시장에서, 파티장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게 하려면 - 결국 그런 장소로 자꾸만 이끌어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갸우뚱).
일주일, 혹은 열흘, 또는 이주일에 한번 - 나는 물 긷는 여인이 된다. 복도 끝에서 이웃 대학 건물로 이어지는 유리 통로에 형성된 나의 작은 정원. 그 정원의 식물에 물을 줘야 하는데, 물론 이곳에는 수도가 없다.
물을 뜨기 위해서는 건물의 중앙에 위치한 교수 휴게실 싱크대의 수도를 이용해야 한다. 튼튼한 대형 (일명 빠께쓰) 물통을 학생용 바퀴의자에 싣고 (바퀴의자가 나의 운송 수단이다. 어차피 바퀴이니까), 나는 복도를 가로질러 물을 뜨러 다닌다. 이 정원에 물을 흠뻑 뿌려주고 남기려면 최소한 세번을 교수 연구실이 늘어선 복도를 왕복해야 한다. 그러니까, 나의 동료들은 내가 의자에 파란 물통을 싣고 복도를 오가는 풍경을 정기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일주일, 열흘, 혹은 보름에 한번.
이 정원에 물을 뿌려주면서, 시든 잎을 따주거나, 마른 꽃을 정리해주거나, 난초의 꽃대가 올라오는 비밀스런 현장을 지켜보거나 하다보면 한시간이 휙 가버린다. 조금 한가로울때면, 꺽꽂이가 가능한 화초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화분을 만들기도 한다. 어차피 이 정원은 아주 작은 가지 하나에서 시작하여 - 그 가지가 새끼를 치고, 새끼가 새끼를 치고, 그렇게 숲을 이룬 것이므로, 정원의 확장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Gardener'로 통한다. 동료교수들은 내가 정원에서 노닥거리는것이 보일때, 다가와서 한담을 나누기도 하고, 갖고 있는 화초가 죽어가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혹은 작은 모종을 얻어가기도 하고 그런다. 이곳은 나의 휴식처이면서, 사교장이기도 하고, 비즈니스 회담 장소이기도 하다. 이 정원에서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논의되거나 완성되기도 한다.
휴게실 싱크대에 물통을 올려놓고 물을 가득 담아서 그것을 운반용 바퀴의자로 옮길때, 그 때 나는 체육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던 기억을 떠올리고 - 심호흡을 한 후에, 허리를 두드려 긴장을 풀고나서 '영차'하고 용을써서 무거운 물통을 바퀴의자에 안전하게 내려 놓는다. 그리고 조심조심 - 물통이 넘어지거나 물이 흘러 넘치지 않게 조심조심 바퀴의자를 끌고 복도를 가로질러 복도끝 나의 정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 물통을 옮기는 것을 휴게실에서 스치며 발견하는 교수들은 한결같이 "그 무거운 물통을 어떻게 드시는가?', '정원에 수도를 끌어다 놓아 달라고 학교에 요청을 해보시라' 뭐 이런 코멘트를 듣곤 한다.
그럴때 나는 빙긋 웃으며 말해준다.
"이 무거운 물통을 옮길때, 내게 아직 이것을 번쩍번쩍 들어 옮길수 있는 근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지요. 일종의 웨이트 트레이닝입니다."
"이 물통을 옮길때마다 생각하죠 - 옛날에 우리 할머니, 우리 엄마는 이 물을 무거운 항아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옮기셨겠지... 옛날에 우리 시골집에서도 집앞 도랑에서 물을 떠나 썼다고 해요. 저도 어릴때 도랑의 물이 참 맑고 시원해서 거기서 물을 먹곤 했었지요. 그래도 우리집 뒷곁에는 물이 펑펑 쏟아지는 펌프가 있었는데요, 거기에 사연이 있어요. 우리 엄마가 새색시이던 시절, 도랑에서 물을 퍼서 이고 대문을 들어서다가 그만 새색시가 넘어져서 물동이가 박살이 났다고 해요. 새색시도 어딘가 다쳤겠죠. 그것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당장 그날 사람을 사다가 뒷마당에 펌포를 팠다는 거에요. 그 펌푸에 이웃 사람들이 드나들며 물도 퍼가고, 뭐 씻기도 하고 그러는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그 펌프가 우리 가까운 이웃들의 우물가 미팅 장소였던 셈이지요."
"제가 버지니아에 있을때인데요,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레퓨지 (난민)"들을 대상으로한 직업 영어를 가르쳤거든요. 주로 아프리카계 난민들이 많았어요. 그중에 탄자니아에서 온 수더분한 여인이 들려준 얘기가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 우리가 살던 곳에서는 누군가가 아기를 낳으면 마을의 보건소에 가는데, 그러면 보건소의 의사와 간호사가 '가서 물을 떠오라'고 해요. 그러면 온 집안 식구들이 물통을 들고 저 멀리 들판을 건너 물을 뜨러가요. 물을 떠다 줘야 보건소에서 그 물을 데워서 산모나 아기를 씻기고 그러는거지요. 우리는 물을 뜨러 몇시간씩 걸어야 했어요."
정원에 물을 주기위해 복도를 가로질러 물통을 바퀴의자에 싣고 느릿느릿 걸으면서 - 나는 탄자니아를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먹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탁한 물 한통을 구하기위해서 몇시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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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귀냄이' 찬삐가 아내 그레이스와 보름간 다녀갔다. 그레이스는 멀리서 이 정원을 발견하고 "사진에서 봤던 어머니의 정원이다!"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제 나의 정원을 바라볼때 이곳을 다녀간 찬삐와 그레이스를 생각할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