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0. 14. 22:55

신촌에서 송도로 돌아오는 길, 마침 트래픽을 피해서 한시간 가량. CBS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한가로운 '가을'노래를 듣다가, 가사가 어딘가 거슬렸다. 

 

이른 아침에

 

 

  1. 아버지가 이른 아침 산책다녀오는 동안 (약수도 떠오고)
  2. 엄마는 산책대신 - 부엌에서 동동거리고
  3. 그 집 아들은 한가롭게 냉수나 찾고
  4. 아침을 해결한 엄마가 빨래를 하는 동안
  5. 그 집 아들은 기타나 치면서

 

 

가을이 좋다고 한다.  넌 좋겠지... 노랫속의 화자가 '그집 아들'인지, 아니면 그 집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 나는 이런 풍경이 편치가 않다.  그집 아들은 엄마가 밥하고 빨래하는 동안 게으름 피울 권리를 천부인권처럼 타고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랬다. 옛날에 우리 엄마도 그랬다.  엄마의 부엌일을 돕는것은 그 집 딸이었다.  마당을 치우는것도,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도, 온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것은 '엄마'였고 -- 엄마가 허둥대며 집 안팎을 치우고 관리하는 동안, 밖에서 월급을 벌어온 아버지는 안방에 아랫목에 누워서 테레비를 보았다. 월급 받아온것만으로 그는 제왕이었고, 우리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런 허드렛일 말고,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큰소리를 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결과적으로 나는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딱히 내가 엄마라서, 여자라서, 아내라서 그런것이 아니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므로 지금은 아무 유감이 없다. 하지만, 저따위 노래가사는 여전히 불쾌하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음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파란 하늘 바라보며 커다란 숨을 쉬니
드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 편해지네
텅 빈 하늘 언제 왔나 고추잠자리 하나가
잠 덜 깬 듯 엉성히 돌기만 비잉비잉, 음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동기동기 기타 치는 그 아들의 한가함이
심심하면 쳐대는 괘종시계 종소리와
시끄러운 조카들의 울음소리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뜬구름 쫓았던 내겐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0. 9. 15:27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는데, 아무래도 내가 학계에서 은퇴하기 전에 반드시 써야 할것 같다는 절박함을 요즘 느끼고 있다.  <은퇴 전>으로 못박고, 슬슬 조금씩 데이타를 모아나가면 되겠지.

 

이미 학계에서 활발하게 다뤄지는 '언어와 정체성 Language and Identity'의 소주제라 할만한데, 대체로 영어권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같은 사람들)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여러가지 제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특유의 액센트 (영어를 배운 사람의 영어에는 모국어 액센트가 함께 작동한다)'로 인해서 의도치 않은 소통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겪은 것이므로 생생하다. 20여년전, 내가 플로리다 주립대 대학원에 입학 할때, 내가 가진 비자를 학생비자로 바꿔야 하는 문제 때문에 대학의 국제학생센터 (외국인 학생들에게 여러가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구)에 들러서 상담을 하였다. 상담해준 사람은 지금 돌아보면 중동계나 터키인이었던 것 같은데 영어 액센트가 아주 강했고 (뻑뻑했다고나 할까) - 결과적으로 내게 아주 불친절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 사람과 대화하는 내내 아주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입학해서 생활하면서 돌아보니, 그것이 순전히 나의 오해였다. 내 주위에 중동계를 비롯한 여러나라 출신의 대학원생들이 많았고, 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 '불친절'하게 느껴졌던 언어가 사실은 그들 언어 특유의 액센트가 들어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사실 나의 영어도 나는 요즘도 평소에 매우 조심하는데 내 영어가 평범한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영어에 비해서 '절대 나긋나긋하지 않고,' '좀더 직설적이며,' 심지어 '공격적으로' 여겨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조심 조심'하면서도 '나긋나긋하지 않게' 하는 이유는 아시아 여자에 대한 편견에 저항하는 의도도 있다.  저들에게 비굴하게 비쳐지거나 만만하게 보이기 싫은것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나는 제법 '젠틀'해보이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 편이다. (연극을 하는거지. 생활을 '연기' 해야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대체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권에서 살때는 대체로 이렇게 '연기'하면서 산다고 할 수 있다.)

 

내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영어학습자가 영어를 할 때는 특유의 액센트 때문에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최근에 나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을 조정하는 회의에 참석을 하였다. 그 분쟁은 학생이 제기한 것으로, 모 교수가 특히 자신을 미워하여, 학점에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자신을 '응징'했고, 이것은 교수로서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분쟁 조정 위원회가 열렸고, 해당 교수와 해당 학생도 모두 참석하였다. (재판정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제출된 여러가지 자료와 정황에 대한 설명등을 자세히 살피고 듣고,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이 '분쟁'의 내용은 사실 별것이 아니었다. 제출된  작은 과제에 대하여 교수가 'cheating'이라고 판단했고, 몇가지 근거를 제출했으며, 학생은 그것이 절대 'cheating'이 아님을 역설하며 학생편에서 제공할만한 근거 자료를 역시 제공했다.  양쪽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 교수가 과제에 대하여 설명한 부분에 '빈 틈'이 있었고, 그 '빈 틈' 때문에 학생이 뭔가 착오를 한 부분도 있었다.  이런 오해와 분쟁은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는 것이고, 대체로 이런 오해가 발생했을때 학생들은 해당교수에게 수업전후에 찾아 온다던가 개별적으로 문의를 하여 오해를 풀어내는 편이다. 나 역시 과제 평가를 하다가 실수를 할 수 있는데, 학생이 찾아와서 내가 준 평가점수에 대하여 문의를 하면 둘이 함께 들여다보고 내가 왜 이점수를 줬는지 납득할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거나, 내 쪽의 명백한 실수가 발견되면 그자리에서 내 실수를 인정하고 점수를 정정하기도 한다 (내가 분명히 피드백에 칭찬의 말까지 써놓고, 부가점수까지 주겠다고 코멘트를 해 놓고 엉뚱한 점수를 표시할때도 있다. 예컨대 50점 준다고 해 놓고 5점으로 기록을 하기도 하는것이다. 학생이 깜짝 놀라서 찾아오면 나는 그자리에서 곧바로 내 실수를 시인하고 내 실수를 고친다. 인간이 신이 아니므로 실수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대수롭지 않은 - 이런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릴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었는데, 이 문제가 왜 이렇게 시끄러워진 것일까?  양측의 발언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한가지를 발견했다. 위원회 소속 교수들이 나 이외에는 모두 미국인들 (영어 한가지 밖에는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문제의 해당교수는 아랍계 남자였다. 학생은 심지어 이 조정위원회에 출석해서도 격앙되어 '저 교수가 나를 개인적으로 미워하고 그래서 나를 응징하는거라고 본다'고 발언했다. 

 

양측의 설명을 들을만큼 듣고, 회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내가 발언권을 구했다, -- 이건 이 사안과 딱히 연관이 없겠지만 - 그렇지만 한가지 나를 슬프게 하는 면이 있어서 질문을 하고 싶다. (학생에게) 교수가 너를 인간적으로 미워한다고 느끼나? 아니면 당시 상황속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오해의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질문에 대하여 학생은 교수가 자신에게 한 행동과 말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해당교수와 학생이 자리를 뜨고, 위원회교수들만 남겨졌을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문제'를 토로했다. 지금 저 교수는 너희들도 직접 대화하니까 알겠지만 영어가 원어민에 비교하여 서툰편이고, 특유의 액센트도 강해. 평범한 미국인 교수들처럼 젠틀하게 들리지 않고, 평이하게 얘기를 해도 마치 싸우자고 달려드는것처럼 들릴수도 있어. 화가 났거나 불친절하게 느껴질수도 있어. 그가 의도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들릴 뿐이야.  나역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때문에 내 영어가 거칠고 도전적으로 너희들에게 들릴수도 있어. 나는 이런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편이고, 내 영어가 저 교수보다는 능통하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지. 

 

 

나는 여기서 두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어.

 

  1.  저 교수가 언어 때문에 '오해'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평이하게 말해도 화를 내는것처럼 들릴수 있다. 
  2. 어쩌면, 학생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저 교수'에 대하여 어떤 편견을 갖거나, 무의식중에 얕잡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작은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의도했다기보다는 '무의식중에' 그런 자세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의 결론: 이건  언어와 소통과 관련된 슬픈 케이스야. 이것은 나도 역시 끌려나와 당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해.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어떤 판단을 내리건 이 점을 고려해주길 바래.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인교수들은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 사건에서 그런 면도 있을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연하지 너희들은 이런 문제를 겪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까).

 

그날 분쟁조정위원회는 학생도, 교수도 다치지 않을만한 조정안을 채택했다. 

 

분명히 '언어유창성'이나 '언어 액센트'관련해서 영어 원어민이 아닌 영어권의 교수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현상은 이미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 나는 게으름을 피우느라 이것을 제대로 된 보고서로 써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꼭 해 내야 할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9. 23. 22:32

우리 동네 쇼핑센터 여성복 매장 구석에서 발견한 표시. 판매하는 여성복의 기장이나 뭔가 수선이 필요할 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리라.  Sewing Room 을 의도했으리라. '바느질방'  철자 'e'가 빠져서 졸지에 '스윙룸'이 되어버렸다.

 

 

서구식으로 제대로 표현하려면 'Alterations' 혹은 'Tailoring Service' 또는 'Alterations and Tailoring Service' 로 하면 좋을것이다. Sewing Room 은 문자 그대로 '바느질방'.  집에 재봉틀 있고 뭐 그런 공간. 

 

 

그러면 Swing Room 은 뭘까? 우체국 직원들이 잠시 쉬는 곳을 Swing Room 이라고 한다.

 

 

 

어떤 아줌마가 '스윙 춤'을 추면서 옷 기장을 줄이는 광경이 연상이 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9. 10. 10:44

8박9일의 신촌생활을 순조롭게, 무사하게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몇가지 준비까지 해 놓았지만 다행히 돌발상황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무척 복된' 상황이다. 여름내내 기도를 드린 것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와 은혜라고 해석하고 있는 중이다.  신촌에서의 일상도 평온하였다. 순조로웠고, 돌발 상황이 전혀 없었으며, 믿어지기 힘들정도로 모든 일이 시냇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아, 하느님의 평화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지옥에서 맛보는 평화 같은것.)

 

일상으로 돌아와 수업을 하고, 과제물을 평가하고, 또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이런 일상이 어찌나 '달콤'한지...

[전쟁이나 질병, 파산, 사망 혹은 관계의 망가짐으로 인해 일상이 망가진 사람들은 문득 발견하게 된다 --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천국'이었음을.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내가 없는 사이에 향란이 저 혼자 피어나서 나의 정원을 향기로 채우고 있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얼마나 향기로운지. 

 

 

 

(지난 여름의 기억)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8. 31. 14:03

 

동료가 몬스테라 화분을 기르다 싫증이 난다고, 내게 키워보겠냐고 물었다. 나는 마침 몬스테라가 궁금해서 화분 하나를 살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어디선가에서 잘 자라던 제법 큰 (높이가 내 가슴까지 올라오고 제법 넓게 벌어진) 몬스테라 화분을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원래 작고 볼품없던 화분에 대충 키우던 중이었다던데 너무 잘 자라서 아파트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게 되자 '파양'에 이른것 같았다.  나는 일단 번듯하고 큰 화분을 사다 분갈이도 제대로 해주었다. 분갈이를 해주니 식물의 모양이 더욱 살아나면서 정말 귀티와 부티를 겸비하게 되었다. 그랬다. 6월 말쯤에 우리집에 와서 분갈이를 한 모습은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처럼 우아하고 고귀해보이기까지 했다.  몬스테라가 반음지 식물이고 직사광선을 쬐면 오히려 힘들어한다고 해서, 거실 안쪽에 직사광선을 피하면서도 환하고 환기도 잘 되는 것에 자리를 잡아주기까지 했다.  

 

나는 이 화분에 반했다. 그 크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잎사귀와 그 색상에 반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그리고 바퀴달린 화분받침을 이용하여 자주 욕실에 데려다가 샤워를 시켜주기도 했다. 내가 샤워하는것보다 몬스테라를 샤워 시킬때 더욱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 크고 우아한 잎사귀가 끝부터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과습이구나' -- 나는 바로 알아봤다. 물을 너무 자주 줬구나.  그래서 나는 과습 방지를 위해서 물을 '안줘야지'하고 다짐했다. 샤워 시키고 싶은것도 참고, 물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제법 물 주는것도 자제해서 1주일이나 열흘에 한번씩 물을 줘도 잎사귀들이 하나 하나 자꾸만 누렇게 변해갔다. 참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일단 누렇게 변색되는 잎사귀들을 다 잘라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화분을 세탁실이 있는 북쪽 베란다로 옮겨 놓았다.  북쪽이지만 환기도 잘되고 환하고 넓직한 곳이라서, 화분을 갖다 놓으니 베란다 분위기가 갑자기 고급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아무튼 나로서는 내가 자주 가지 않는 베란다로 이 몬스테라를 유폐시키는 것이 그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판단이었다. 내 눈에 띄지 않게, 내가 뭔가 자꾸 들여다보고 손을 쓰지 않게.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자주 쳐다보지도 말자. 

 

2주전에 나는 송도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2주 정도 화분에 물을 주지 않아도 웬만한 식물은 말라죽지 않는다. 그리고 내 집에 있는 화초들은 나의 오랜 부재까지 감안하여 한달동안 물을 안줘도 죽지 않을 녀석들뿐이다. 나는 집의 식물들에 대하여 그다지 염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2주만에 돌아왔을때, 나는 보았다. 나의 몬스테라가 내가 안보이던 동안 새로운 잎사귀 하나를 키워내고 있었다는 것을.  이 새잎사귀는 아직도 다 펼쳐진 것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어딘가가 갈라져야 한다.  새끼고양이나 강아지들이 눈을 감고 태어나는데, 일주일 쯤 지나면 조금씩 조금씩 그 닫힌 눈꺼풀이 갈라지면서 눈을 뜨게 된다. 몬스테라의 잎사귀도 마치 강아지의 눈꺼풀이 갈라지듯, 잎사귀들이 서로 갈라지면서 벌어지는 모양이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서 몬스테라의 새 잎을 발견하고, 가슴에 초록색 희망의 샘이 솟는다. 

 

그래서 몬스테라에게서 나는 배웠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무심한 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너무 친절하지 않게' 그냥 내버려두며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함.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하지 않았던가, "Too much love will kill you."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