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5. 6. 16. 19:37

 

 

난 김지애가 싫었다. 이유는 우리 할아버지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예뻐하셨다. 그래가지고, TV에서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여자가수가 나오면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미야, 저 가수 예쁘지. 우리 은미같이 이쁘게 생겼구나~~" 

 

우리 할아버지가 '저 가수 우리 은미처럼 이쁘구나'라고 했던 역대 여가수들은 다음과 같다.

 * 조미미 - 이 가수가 누군지 안다면 당신은 최소한 50대, 그 이상이어야 한다.
 * 김연자 - 이분은 트롯의 부흥과 함께 요즘 잘 나가고 계신다. 
 * 김지애 - 바로 이 김지애씨.

또 누가있더라...하여간 얼굴이 나부대대하고 넓적하고, 머리는 남자처럼 짧은 커트에 뭐, 그냥 촌스러운 (당시의 내 기준으로 봤을때) 그런 가수들을 할아버지는 '미인'이라고 하셨고, 그 촌스럽고 넙적한 '미인'가수들이 보일때마다 '우리 은미같애.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훤하고' 혼자 중얼중얼 하셨던 것이다.  나의 청춘시절에 최고 미인은 '황신혜'였는데, 뭐 내가 그런 미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도 대학 시절에는 제법 눈에 띄는 얼굴이었는데 - 우리 할아버지는 조미미, 김연자, 김지애를 나한테 갖다 붙이는 식으로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벅벅 내셨다. 

그런데,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 우리 할아버지가 이쁘다고 칭송했던 분들이 사실 나보다도 인물이 좋아서 그 자리까지 간것이지, 그러한 점을 인정하게 되고 내가 내 주제를 파악하게 된다.  설겆이를 하며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김지애의 '몰래한 사랑'이 흘러나오는데 - '아 김지애 - 은미 닮아 이쁜 가수'였던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서 흥얼흥얼 했던 것인데 - 무슨 마법에 걸린것처럼 며칠 내내 내가 청소를 할때나 꽃밭을 가꾸고 그럴때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너랑 나랑 둘이서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그래서 생각난김에 유튜브에서 그 가수를 찾아서 노래를 들어보니, 김지애 가수는 노래 부를때 마치 '여신'처럼 율동도 없이 꼿꼿하게 서서 이 리듬 넘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더라. 독특하다. 뭔가 카리스마가 있었네. 그때는 - 내가 어릴 때는 그 사람의 매력을 왜 발견을 못했던걸까?  그러고보면 우리 할아버지, 인물 볼 줄 아셨던거다. 

그래서 지금은 이노래 가사를 대충 외워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대여! 이렇게 ...무화과는 익어가는 날에는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