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두가지 상이한 프로그램 (전공)의 신임교수 채용과 관련한 수업 참관을 하고 평가를 한 적이 있다. 한 프로그램에서는 세명의 후보를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네명의 후보를 평가하였다. 교수 임용 커미티에서 서류를 평가하거나, 혹은 모델 수업 참관을 할때 내가 '인간적으로' 느끼는 것은 -- '아이구야, 이 무서운 경쟁을 뚫고 내가 이자리에 있다는 말인가? 내가 어떻게 여기 올 수 있었지?"
대체로 서류 심사를 하다보면 너무나 쟁쟁한 교수 후보들이 넘치게 많아서 서류 심사하는 교수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분들하고 일대일로 맞붙으면 승산이 없겠다' 혹은 '아이구야, 나는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겠다!' 뭐 이런 기분. 모델 수업 참관을 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 '내가 떨지 않고 저렇게 수업을 잘 진행할수 있을까? 이렇게 교수들과 학생들이 나를 평가하기 위해서 앉아있는데!' 이런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게 나만 그런가하면 그런것도 아니어서, 얼마전에 교수 후보 평가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나의 느낌을 동료들에게 얘기 했더니, "아이구 나도 마찬가지야!" 하고 동료 외국인 교수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럼에도, 지금 나/우리는 평가하는 입장이 되어서 앉아있고, 나보다 더 훌륭하고 능력있고 똑똑해보이는 후보들이 평가받는 입장이 되어 저기에 있다. 평가하는 우리들 역시 우리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평가받는 자리가 얼마나 떨리는 자리인지 잘 알기 때문에 후보들에 대하여 굉장히 우호적인 편이다. 가능한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모델 수업에 협조적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자로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후보의 장단점이 아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대체로 한 후보자에 대하여 공통적인 평가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까 어떤 후보에 대하여 극단적인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내가 느끼는것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수/강사 후보로서 맛보기 수업을 성공적으로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봤던 성공적인 케이스와 실패케이스를 정리해보면 대충 윤곽이 나온다.
성공적인 후보들의 맛보기 수업 (30분)
- 일단 사람 자체가 정돈되어 보인다. Confident 하다고 해야하나. 당당해보인다.
- 수업 목표와 내용을 정확히 소개한다. (정돈 되어있다는 인상을 준다)
- 수업자료를 다채롭게 준비한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Shared Document 를 활용한 공동쓰기나 피드백 주고 받기, 짧게나마 토론하고 생각 교환하기와 같은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여러가지들을 준비하고 시간에 맞춰서 진행한다.
- 맛보기 수업이지만 이전 수업과 이후 수업에 대한 연결점을 분명히 제시한다.
- 30분의 수업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맛있으며 재미있다. (심지어 평가하기 위해 모인 교수들조차도 수업에 빠져든다.)
이러면 그는 채용된다. 이런 후보가 많을것 같지만, 사실 많지 않다.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최고의 후보를 만장일치로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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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하고 재미없는 후보들의 맛보기 수업 (30분)
성공적인 후보들의 반대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 일단 어수선하다. 수업자료를 제시하는 선에서부터 뭔가 뒤숭숭하다. 정돈이 안되어 보인다.
- 수업 목표와 내용을 소개 하는둥 마는둥 하는데 - 이 사람의 수업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왜 가르치는 것인지 정확한 안내가 없다. 참관하는 내내 '그런데 이거 뭐지?' 이런 느낌이 들게 만든다.
- 워드 다큐먼트 열어놓고 그거 줄창 읽어대는 사람. 파워포인트 열어놓고 그거 읽어대는 사람. -- 그 지루한 것을 보면서 참관자들을 생각한다 '수업을 그렇게 하겠다고? 진심?' 당연히 탈락이다.
- 자기가 이걸 왜 가르치는지, 대상 학생이 누구인지 명쾌하지 않다. 심지어 참관자가 수업이후에 질문을 해도 우물거린다. 탈락이다.
- 30분이 3년같이 지루하다. 참관자들은 이제 들을 생각을 안하고 스마트폰 화면이나 들여다보며 메시지나 확인하고 있다.
-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감점하는 부분이다: 한국계 교수 후보중에는 그것을 겸손의 뜻으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 자꾸만 수줍게 웃고, 어깨를 움추리면서 뭔가 사과하는 듯한 제스쳐를 습관적으로 취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개인 취향의 문제인데 나는 '수줍게 자꾸 웃는' 후보에 대하여 부정적인 편이다. 그분은 겸손의 제스쳐인지 모르겠는데 - 내 눈에는 자신없어 보이고, 나를 불쾌하게 한다. '영어 못하는 아시아여자들이 면전에서 영어로 모욕을 해도 못 알아듣고 방긋 웃는다'는 편견 같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 적어도 교육받고 말귀 알아듣는 아시아여자라면 그렇게 행동을 안했으면 좋겠다. (이것도 나의 편견일 것이다.)
- 가끔 가다가 이런 사람 있다. 뚱한 표정으로 사납게 말하는 후보들 가끔 있다. 우리는 아무 배경지식 없이 잠깐만 그 후보를 보는 것이므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인상은 사납지만 사실은 순하고 착하고 정말 협조적인 사람일수도 있고 그렇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인상은 그 사람이 만든거지 내가 만든게 아니다. '저 사람은 왜 여기와서 화를 내지? 왜 저렇게 못됐지? 저렇게 학생들을 대하겠다고? 누가 좋아해? 나도 무섭고 싫네' 이런 후보들 가끔 보인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인상이 어떤지 한번 살펴보시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것은 그 사람의 용모의 문제가 아니다. 표정을 온화하게 하고 자신감 있게 하지만 따뜻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최소한 사나운 인상을 주면 안된다.
적어놓고 보니 한심하네. 별로 정보가 안되는 것 같다.
말이 쉽지 이게 쉬운게 아니다. 성공적인 후보의 맛보기 수업을 볼때는 - '와! 저거 정말 굉장하다! 나도 저렇게 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의 교육자료를 메모해 놓기도 한다. 가르치는게 쉬운 일이 아니고 자꾸만 배워야 한다. 늙은 교수나 새로 임용되는 교수나 모두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