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7. 11. 22:08

옛날에, 자식들이 아직 어릴 때, 고민도 많고 울통불퉁한 시기를 지날 때 내가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내용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네가 무슨 실수를 하고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혼자 해결하기 힘들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뭐든 도와줄게." 

 

자식들이 내게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극복해낸 일화들이 더 많겠지만 - 그래도 때때로 힘이 들 때 아이들은 내게 와서 문제를 토로하곤 했다. 나느 훌륭한 엄마도 아니고 아주 불량엄마도 아니고 그냥 보통의 엄마이고 (때로는 상대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안심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음을 인정한다. 아들은 패도 되는줄 알았다). 내가 철이 들어 "전에 내가 너희들 때린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성인이 된 아들들에게 사과를 하면 작은 아들은 정색을 하면서 "엄마가 잘 못하신거 맞아요." 나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고  군복무을 마친 큰 아들은 "됐어요 엄마. 다 맞을만해서 맞은거지.  임마 엄마가 때리신걸 갖고 뭘 따져"  이렇게 너그럽게 나의 과오를 용서해준다.  아무튼 내멋대로 내 기분 내키는대로 자식들을 키우고 가끔 패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철권 마징가제트' 처럼 '엄마에게 말하면 뭐든 해결된다'는 그런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작은 아들은 심지어 그의 '첫경험'까지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큰 아들은 내게 신세한탄을 많이했다.  적어도 그들은 내가 그들을 품어줄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니까. 엄마는 굉장한 존재이니까. 

 

남편에게도 나는 가끔 그런 얘기를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20년 전에도 나는 남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이 닥치고, 무슨 실수를 해도 너무 걱정하지마. 나는 괜챦아. 내가 다 막아줄게."  그래서인지 남편은 정말로 사고를 친 것까지 내가 묻기 전에 내게 와서 이실직고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실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심하게 태평하다. 

 

어느 도시의 시장님이 갑자기 증발되었는데, 그 증발의 사유가 '성추행 혐의' 와 연관이 된것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마도 소문에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소문을 사실이라고 치고.  나는 남편에게 당부했다 --"있쟎아, 당신이 똑같은 상황에 빠지면 증발하지 마, 왜? 당신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겁먹지 마. 내가 다 해결해줄게.  내가 당신하고 함께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빌거야. 혼자 빌면 무섭지? 나하고 함께 빌면 무서울거 없어.  그러니까 말야, 무슨 실수를 하고 어떤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이 생겨도 기죽지 마. 내가 있으니까.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싹싹빌고 다시는 그런 짓을 안하면 되는거야. 피해자들과 손 맞잡고 웃을수 있을때까지 싹싹 빌어야 하는거야. 그게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 그렇게 피해자들이 상처를 씻어내릴때까지 반성하고 싹싹 빌어야 하는거야. 그게 필요해. 피해자들에게는 바로 그런게 필요해.  그게 진정한 사죄인거지. 도망가는건 그냥 도망에 불과한거야. 죽어도 벗어나기 힘들어. 그러니까 나하고 같이 가서 싹싹 빌자.  도망가지 마. 알았지? 내가 다 해결해줄게." 

 

* 그게 큰 문제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 피해자의 기억속에 그것들이 모두 증발되어 '아무것도 아닌일'로 남을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의  말도 안되는 '만담'이 싫지 않은지 남편은 킥킥 웃고, 나를 위하여 설겆이를 해 주고 집으로 갔다. 

 

말못할 성추행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사는 입장에서  내가 '성추행'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다.  그냥 한편 생각하면 - 죽으면 태워 없어질 혹은 썩어 없어질 사람의 몸이 뭐 별거인건가? 성추행이건 성폭행이건 사실 기억에서 사라지면 별것도 아니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문제인거지.  두고두고, 죽을때까지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러니까 이 일은 문제일수도 문제가 아닐수도 있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이런 기억을 털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니다'에 집중하라는 말씀을 종종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거니까. 그게 쉽지 않다는거지.  나도 지금도 불쑥불쑥 분노가 치밀며 '저새끼 아직도 사과 안해..저 천벌을 받을 새끼....' 이런 생각을 하곤 하니까.  그런데 그 '저새끼'는 자신의 과오를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르지.  때로는 '그게 천벌 받을 짓이었을까?' 스스로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성추행이나 성폭행 당한 사람이 이것을 발설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이것을 공론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당해봐야 알겠지. 안당해보면 모르지.  차라리 남이 그러면 발설하기가 쉬울것이다. 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면 이건 출구가 없는거다. 직장도 마찬가지이고.  차라리 교통사고가 간단한거지. 

 

어쨌거나 피해자가 그 기억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약은 가해자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이다.  사과와 보상 없이 뺑소니를 치면 안되는거다.  그러니, 혹시 내 아들이, 내 남편이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그들의 손목을 이끌고 가서 싹싹 빌겠다는 것이다. 손이 닳도록 싹싹 빌어서 '원한'을 풀어 내야만 한다. 

 

인간이 신이 아니니,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건 얼마든지 실수하고 죄를 저지를수 있다.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지면 나는 그것을 감당해야만 하는거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거다. 나는 누군가 비를 맞으며 걸어 갈때 함께 비를 맞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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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11. 21:01

 

지난 밤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성경 통독을 모두 마쳤다. (낮에는 쿨쿨 자고 밤에 일어나 성경읽기를 하는 삶이었다).  성경은 처음에는 내가 읽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라지고 누군가가 읽는다.  나는 사라지고 성경의 숲을 관통하는 내 발길이 빨라진다.  

어느부분은 대충 눈을 거치는 식으로 넘어갔고 어느 부분은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울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마치 초저속 카메라로 하늘의 풍경을 찍은 것 처럼, 그것을 정속으로 풀었을때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고요해지고 파란 하늘, 다시 구름이 한꺼번에 미친듯이 돌아가듯이 성경을 읽는 나의 시간이 그러하였다. 

 

지금 돌아봤을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매번 통독 할 때마다 포인트가 조금씩 변하는데 올해 통독하였을때는) -- 욥기.  욥기가 너무나 아름답다.  요나에서는 깔깔 웃음이 나왔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 이전에 읽을 때 재미없이 통과했던 '성전 건축'의 부분이 이번에 눈에 확 들어왔다. 아 그 지난한 역사.  예수님이 '날아가는 새도 집이 있고 여우도 돌아갈 굴이 있는데 사람의 아들이 머리 둘 곳이 없구나' 하셨던 대목처럼 구약에서 '언약궤'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다.  심지어 모세는 하느님의 십계명 돌판을 홧김에 집어 던져 박살을 낸적도 있지 않은가.  참 더럽게 말 안듣는 '자식'들 덕분에 '여호와 하나님'도 뒷방 노인처럼 인간들의 배은망덕과 오만불손과 온갖 구박을 다 견디셔야 했다.  그걸 그분이 왜 그렇게 참으시고 견디셨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분이 '사랑'이라서 다른 방법이 없으신건가?  아무튼 그를 위한 성전은 쉽게 세워지지 않았고, 한번 세워진 후에도 편할 날이 별로 없었다.  구약-신약을 통틀어서 그 '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내 '집'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내 신세가 그 문제에 투사가 되어서일까?  나의 '정처없는 이 발길'의 삶을 성경속에서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내 가슴속에 솔로몬의 영광기에 세워진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성전과 같은 -- 아름다운 성전을 세워야 한다는 어떤 상념에 이르렀다.  그것이 무너지면 나는 또 세운다.  무너지지 않는 성전은 --- 내 가슴에 예수님을 온전히 간직하는 것이지.  (그건 내게 쉬운 일이 아니지...) 

 

예언자들의 예언서가 대개는 '재앙'이 닥쳐올것에 대한 경고, 그리고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언자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 모두들 울고 있지 않은가?' 문득 --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우울증'의 여러가지 증상들이 아닐까?  정신과 의사들은 성경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어떤 '진단'을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욥기'를 가장 아름답다고 봤던 이유도 '욥기'는  '우울증'의 여러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빠지면 그냥 우울감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정말로 몸도 고통스러워지고 정말로 사는게 힘들어지지 않던가?   인간이 당할수 있는 고통중의 고통을 모두 겪은 자가 욥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러하므로 그는 찬란한 하나님의 음성과 가르침을 듣는다.  그는 회복된다. 참 아름답다. 특히 하나님의 등장 부분은 풀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다. 

 

성경을 제한된 시간안에서 최대한 빨리 속독하여 통독 할 때 일어나는 일은 -- 구약에서 반복되었던 어떤 메시지들 혹은 '어휘들'이 신약에서도  반복되면서 그러한 것들이 한줄에 휘리릭 꿰어진다는 것이다.  성경이 방대하고 '하느님의 메시지'이므로 한자 한자 한구절 한구절 곱씹고 곱씹다 보면 정말 부분 부분만 사색하고 지나가게 되는데 -- 그런 성경 읽기를 하다가 일년에 한번쯤 번개치듯 통독을 하면 소나기를 맞은것처럼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큰 그림'을 다시 갖게 된다.  내비게이터의 메시지만 듣고 운전을 하다가 문득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대략 찬찬히 살필때의 느낌.  우리는 세세한 내비게이터도 커다란 지도도 모두 필요하다.  정독과 통독이 모두 필요하다. 

 

볼때마다 우는 대목은 --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시는 장면들  처음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때.  베드로가 강변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훈수를 두신 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자각하고 허둥지둥 외투를 걸치고 달려 갈때.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가 그려지는 장면에서 나는 늘 운다. 그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이 또 있을까?  일설에 예수님께서 '요한'을 애지중지 하셨다고 하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사랑의 요한'을 알겠더라. 요한 1-2-3서가 온통 사랑 타령이더라)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연애는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의 연애가 아닐까 한다.  다가옴 - 못 알아봄 - 알아봄 - 함께함 - 배신 - 도망 - 후회 - 연민 - 사랑 - 떠남 - 기다림  뭐 이런 '사랑 이야기'의 요소들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있다. (말귀 못알아듣는 어떤 미친 기독교인이 내 글을 우연히 읽고 이게 무슨 게이 스토리냐고 예수님 모독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댓글이 달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겹다, 말귀 못알아 듣는 가짜들.) 

 

아, 그런데, 성경통독은 아직도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프로젝트이다. 올해 겨울 방학때 다시 한번 할 수 있을까?  코비드가 진정되지 않아 겨울에도 다시한번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때 통독을 하게 될까?  아직 장담하거나 약속하지 않기로 하자. 나는 하나님께는 함부로 약속을 안드린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생각만 하고 있자.

 

이런 생각은 해 봤다.  누군가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일주일에 딱 한시간 만나서 다른 것은 안하고 인사도 무엇도 생략하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앉아서 성경을 소리내어 교독하는 것이다. 천천히 한구절 한구절 돌아가면서 읽다가 한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왜?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New International Version 으로. 

 

 

 

 

 

자가격리를 돕는 최고의 장치는 '온라인 쇼핑'이다. 자가격리의 숨은 영웅은 '택배 요원'이다.  서리태 (검정콩)을 온라인으로 주문한지 24시간도 안되어 문앞에 도착하였다.  오늘부터 서리태로 콩물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남편에게 매일 콩국수 사다 달라고 하다가 아예 매일 콩국물을 직접 만들어 먹기로 한거다. 

 

 

나도 어쩔수 없이 나이를 먹어 - 그 무서운 '갱년기' 증상이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고 있다. 문득문득 다가오는 '발열감'은 차라리 견딜만 하다. 안면홍조도 없고 선풍기 바람도 필요하지 않고, 그냥 발열감일 뿐이니까.  (전에는 열이 난줄 알고 타이레놀 먹고 그랬는데 체온계로 재보면 체온은 오히려 저온이란 말이지...). 한달 전부터 왼쪽 손이 그냥 얼얼하고 아프다. 손마디도 아프고 손끝도 맵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걸 '내가 잠을 잘 못자서, 몸으로 손을 덮치고 자서 그런가?' 그런 추측을 했는데 검색해보니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이란다.  생각해보니 우리 언니가 몇해전부터 손이 아프다고 파라핀 온열치료기도 쓰고 뭐 그랬다. 나는 우리 언니가 부지런한 살림꾼이라서 손을 하도 많이 써서 아픈가보다 했는데 - 요즘 나도 손이 아프다. 난 일 안하는 게으름뱅이이고 내가 손쓰는 일은 자판 두드리는 것 정도이다. 내가 손이 아플일이 없다. 그런데 손이 아프다.  갱년기 증상인 것이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식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 으뜸이 검은콩이더라 (하하하)  나는 콩국수도 좋아하므로 콩국물은 언제나 좋아한다. 잘 됐다. 내가 콩국물을 직접 만들어서 매일 먹으면 되겠구나. 이런 결론. 

 

 

 

콩 삶아서 (6-7시간 불리고 10분쯤 끓는 물에 삶는다, 너무 오래, 너무 짤게 삶지 않고 적당히. 그것이 10분쯤이란다) 물, 우유하고 함께 갈아서 소금 약간 뿌려서 먹는다.  매번 삶기 귀챦으니까 한꺼번에 삶아서 삶은 콩을 봉지봉지 담아 냉동실에 얼렸다가 한봉지씩 꺼내서 갈면 되지 않을까?  일단은 2회분만 삶아보았다.  몸이 삐걱삐걱 녹스는것 같다. 운동을 못하니 배도 나온다. 아 ... 나도 늙는구나.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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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11. 00:01

자정 넘어서 확인한 뉴스에서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만감 교차.  그를 지지하던 사람이나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나 비슷한 기분이었을것다. 모두다 어리둥절하고 '뭐지?' 싶은 그런 심경. '각자 다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만다. 이미 그는 이곳에 있지 않으므로 우리들의 영향을 전혀 안 받을것이므로. 

 

그런데 이제서야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미국에 있을 때 '성추행 관련'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소속한 곳에서는 이 문제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하여 극도의 '함구령'이 유지되었다.  그러니까 최초 신고자에서부터 상황에 연루된 모든 사람에게 '일체 다른 곳에 이 일을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경계가 내려졌다.  나도 그 상황 속에 연루된 사람이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무척 불안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뭔가 더 많은 협조를 받고 싶었지만 한정된 숫자의 사람 외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가 진행되었다.  

 

성추행 관련 사건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나는 피해자 측의 사람이었는데 이 조사를 얼마나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하던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자측 사람들은 (나를 포함) 숨이 막히는 심리적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러다가 흐지부지하게 묻히는게 아닐까? 이런 불안감.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안감.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일은 '공정하게' 마무리 되었다. '가해자'가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얼마나 철통같이 보안이 되었던지 이 사건에 대해서 '관련 된 사람들' 외에는 전혀 '아무도' 몰랐다. 물론 수근수근하면서 알음알음 뭔가 감을 잡은 사람들도 발생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아 이것이 미국에서 상황을 수습하는 방법이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지나갔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상황이 끝났을때.  아무도 모른다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오직 관련자들만 알 뿐이다. 심지어는 그래서 그 '가해자'가 소리소문도 없이 한마디 말도 없이 그곳에서 사라졌을때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영전되어 떠났다'고 까지 상상하였다. 그런 소문이 한참을 돌았다. 그가 더 큰 물로 가기 위해서 이곳을 떠났다고.  그가 '승자'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그가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었으므로 상상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은 아주 공개 망신을 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편으로 내가 그 시스템에 수긍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너무 챙피해서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근심에서 우리가 벗어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살하지 않았고, 다른 영역으로 가서 잘 살아내고 있다. 과오는 과오일 뿐이다.  그 당시에 나는 '미국 시스템이 참 맹숭맹숭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나는 분명히 안다. 그때 그것이 공개되었더라면 '피해자'들 중에 '자살'로 뛰어들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지. 어떤 사건이 공공연하게 알려질 때 '자살'가능성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찾아온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 처럼, 한 사람의 과오는 그 과오에 대하여 지적받고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과오가 죽을 정도의 과오가 아니라면 죽으면 안된다. 

 

그래서, 이제 내가 나이를 먹고 이 사회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내가 '판단'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섰을때 나는 제일먼저 '그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부터 생각해본다.  가령 어떤 학생이 부정행위로 걸렸다. 그래서 이를 심의해야 한다. 그럴때 내가 제일먼저 다른 동료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이건 단지 그냥 부정행위일 뿐이야. 교정이 가능해. 이 문제로 학생이 패닉에 빠지거나 이 일이 트라우마로 남게 되면 안돼. 학생이 개선하는 방향과 방법을 찾아야 해.' 

 

옛날에 메릴랜드에 살 때, 하이웨이에서 교통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붙었다.  뭔가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교통경찰이 따라오면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갑자기 가슴이 뛰고 두렵고 초조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가?  차를 길가에 대고 창문을 내리고 경찰을 기다리던 나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헉!헉!  놀란듯한 가쁜 숨을 쉬었다. 나로서는 겁났다는 싸인 랭기지 같은거였다.  눈 크게 뜨고 놀란 표정과 함께.  --->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본 경찰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Calm down, calm down....Can you breathe?  Alright?" 진정해 진정해. 숨 쉴수 있지? 괜찮아?  이러면서 나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는 괜챦았다. 그냥 놀란 리액션이 좀더 드라마틱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경찰 입장에서 볼 때는 앞에서 어떤 아시아 여자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겠지.   사실 내용은 별게 아니었다.  경찰차가 갓길에 있을때는 차선을 바꿔서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면 1차선으로 옮겨서) 경찰차와 거리를 두고 가야 했는데 나는 차선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규정이 있는줄도 몰랐다. 그날 처음 알았다.  사실은 티켓 (벌금)을 받아야 할 사항이지만 네가 너무 놀란것 같으니 앞으로 주의하라고.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내가 대개 무척 놀란 표정을 짓곤 하지 ㅎㅎㅎ 교통경찰에게 불쌍하게 보여서 상황 모면하기 성공.)   그런거다. 매 다섯대 맞을 일에 목숨을 끊으면 안되는거다.  그리고 사회는 매 몇대 맞을일에 사람이 죽게 해서도 안되는거다. 그 교통경찰은 간단한 주의를 받을 일에 내가 숨이 넘어갈까봐 걱정이 되었던거다. 

 

잠깐 살다가는 인생인데, 한번 눈감으면 그걸로 다 끝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쪼록 피해자 분들도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시길 빈다.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히길 원했던 것이지 그가 죽어서 사라지길 원했던 것은 아니니까. 불안하고 화가 나실 것이다.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살아서 잘 견디고 이겨내시길 응원한다. 죽지 마시길.   

 

***  ***

얼마전에 유학 동문들과 밥을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나의 평소의 궁금함 --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대단하신 '대가리'들이 어떤 문제에 연루되어서 (뇌물이나 부정 청탁이나 파렴치 범죄나...) 교도소에 1-2년 다녀 온 후에 그들은 어떤 식으로 사회의 정상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1) 경제사범들은 그들이 정말 '대가리'들이라서 황제처럼 들어갔다가 황제처럼 나오신다. 

 

2) 정치사범들 역시 그들이 정말 '대가리'일 경우 몇년후에 다시 중앙으로 복귀한다.

 

3) 사회적  '대가리'인데 '파렴치 범'인 경우가 참 애매하단 말이다.  특히 미투상황 속에서 연루되었던 사회적 '대가리'들은 어떻게 과거의 영광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 이것이 내가 던진 그날의 '화두'였다. 

 

 

경제, 정치 사범들은 제자리로 곧바로 돌아오는데 3)번 케이스에 이렇다할 모범 케이스가 안보인다. 누군가 어떤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뒤집어 보면 이 사회는 경제 사범들에 대하여 너무나 관용적인것 같기도 하고. 경제사범들도 파렴치범인데 성폭행범과 다를바가 없는데 그들은 영광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것처럼 내 눈에 비쳐진다. 이 사회는 경제사범을 황제처럼 떠받들고 있는게 아닐까?   왜 사람들은 파렴치범인 경제사범은 슈퍼스타 대하듯 떠받들고 찬양하면서 성추행범만 손가락질하고 침뱉고 밟는가?  경제사범 처벌을 강화하라!!!!  성추행범의 사회적 망신에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  처벌강화! 처벌강화! 처벌강화!   사회적 망신주기를 멈추고 처벌을 강화하라!!  그것이 법치사회 아닌가?

 

 

뜬금없이....  문득.... 노회찬씨가 그게 그가 목숨을 버려야 할 과실이었나?  매 몇대 맞을 일에 목숨을 버리신게 아닌가?  왜 갑자기 노회찬씨가 그리워지는가... 내가 기억하는 사회적 인물들의 죽음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노회찬'씨의 죽음이었다. 아직도 가끔 그가 그립다. 우리들의 낭만이었던 정치인.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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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10. 03:55

7월 2일에 입국하여 자가격리에 들어갔으므로 7월 2일이 자가격리 Day 1 이지만, 성경읽기는 7월 3일에 시작했으므로 성경읽기 Day 1 은 7월 3일이다. 자가격리 스케줄과 하루 차이가 난다. 

 

 

Day 8 (자가격리 Day 9) 금요일 새벽에 구약 읽기를 마쳤다. (헥헥헥 숨차게 달림)

 

 

구약은 하루에 170페이지 읽는 것으로 계산을 했고, 신약은 하루에 90페이지.  첫 며칠은 집중이 잘 안되어서 진도가 안나가서 끙끙 앓았고 어제, 그제부터 속도가 붙어서 씽씽 달렸다.  중도에 포기하면 '천벌'을 받을까봐 고민을 많이 했다. 성경에 그런 말씀이 나온다 -- 하느님께 함부로 저 이것 하겠습니다 뭐 이런 약속을 하지 말라.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것을 하느님이 싫어하신다. 아이구야.  그래서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열심히 달렸다.  아 다행이다.

 

 

구약을 전력질주하듯 달리면서 배운 것 몇가지

  1. 인간은 참으로 하느님 말씀을 지겹게도 안듣는다.  은혜를 쉽게 잊고 언제든지 샛길로 빠질 준비가 되어있으며, 불평도 쉽게하고 번번이 하느님을 실망시킨다. 아주 하느님을 실망시키는데 선수들이다.  마치 부모 속 썩이기 위해 태어난 자식처럼 속을 썩인다. 
  2. 하느님은 인간에게 참 인내심이 많으시다. 딱 착한 부모님 같으시다. 참고 참고 참고 용서하고 용서하고 용서하신다. 죽이겠다고 결정하신 후에도 반성하면 돌이키신다. 예언서의 주된 내용이 뭔가하면 예언자들 풀어서 '혼내주겠노라' 하시고 웬만하면 곧바로 (그냥 참회하는 시늉만 해도)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용서해주시고 복을 퍼 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요나가 하느님의 이러한 태도에 불만을 품고 불평을 해 대겠는가. 하지만 하느님은 불평하는 요나마저 살뜰히 돌봐주신다.  참 좋으신 하느님이시다. 
  3. 재난과 고난 가운데를 걸어갈지라도 -- 설령 그것이 나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형벌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있다. 하느님이 주시는 형벌이라면 그것조차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하여 우리는 안심해도 된다. 형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놀라운 메시지이다.  이것을 이번에 새로 깨달았다. 
  4. 예언서 (예언자들이 나열된 부분)는 시간순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었다.  시기가 오락가락 한다. 나는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예언자들이 시간순으로 정리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5. 그리고 또 알게 된 것!  예언서들이 구약의 마지막에 정리된 것과  신약의 요한계시록이라는 예언서가 신약의 끝부분에 배치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약과 신약을 공히 예언서로 마무리를 했구나...
  6. 그냥 잡념 -- 코로나 난국에 사람들 바글거리는 클럽이나 비치에서 마스크도 없이 향락을 즐기는 군중의 모습과 구약의 망해가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때 마을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었으며 소돔이 망하기 직전에 롯이 사위들에게 함께 떠나자고 할 때에도 사위들조차 롯을 비웃었다.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상황에서 눈을 감는 군중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있으며 인류가 망하는 그 날까지 되풀이 될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나도 매일매일 이렇게 넘어지며 살고 있으므로.  인간은 어리석다.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의지하여 하루하루 사는 수 밖에 없어보인다. 
  7. 이번에 구약을 통과하면서 가장 큰 '득템'은 우리 하느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 전에는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역시 성경 통독을 할 때마다 크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이제 신약을 달려보자.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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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9. 22:17

점심에 남편이 약속대로 콩국수를 사다 줘서 맛있게 먹었다.  내일도 그 콩국수를 사다 달라고 했다.  콩국수가 좋은 이유는 일단 부드럽고 고소하고 속이 편안한데다가 국물 자체가 '두유'이므로 국물도 음료수 마시듯 안심하고 먹을수 있기 때문이다. 

 

 

자가격리에서 무사히 해제되기 위해서는 다음주에 재검 받을 때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 첫 검사에서도 깔끔하게 음성이 나와주었으므로 재검에서 다시 깔끔하게 음성 판정을 받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내가 기대할수 있는 최선이다.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고, 갱년기 여성인 나로서는 내 건강도 장담을 못하므로 조심 또 조심이 상책이다.)   나는 정말로 그동안, 이 오피스텔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체온계라던가 필수 아이템 주문한 것이 문앞에 배달되었을때 문을 빼곰히 열고 그것을 집어 들이거나, 남편이  내 '먹이'를 갖고 올때 빼꼼이 문을 여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무사히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어 저 멀리 눈앞에 보이는 '나의 숙소'로 귀환해야 한다. 

 

어제 회의를 했다. 동료들은 회의실에 모여있었고, 나는 온라인으로. 이제 이런 온라인 회의가 일상이 되어 크게 불편함도 없다. 나는 평소대로 있다가 화면 앞에 앉을때 립스틱만 바른다. 립스틱이 에티켓이다.  내게 자가격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묻는다.  조만간 미국에 다녀와야 하는 동료들이 있으므로.  그래서 내가 일목요연하게 영문으로 정리하여 알려주기로 했다. 나는 마치 내 조직에서 '선발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동료들 중에서 '자가격리'를 경험한 최초의 구성원이고 '아무도' 이게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다. 뉴스나 언라인에서 정보를 구할 뿐.  그래서 자가격리중인 내가 회의에 참석하여 내가 살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니 -- 회의 주제보다는 '자가격리' 주제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어떤 면에서 늘 '선발대' 같았다.  늘 새로운 것을 먼저 경험하고 그것에 대하여 종알거리곤 했다.  우리집 아이들도 늘 그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늘 뉴에이지, 얼리 어댑터고 우리는 엄마를 따라 가느라 헉헉 댔어요'가 두 아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이제 그들이 나보다 앞선 테크놀로지의 일꾼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내 얘기를 경청하는 편이다.  내게는 그들 전문영역의 지식은 없어도  그 너머를 내다보고 있으니까. 어떻게?  책을 읽으니까...  내가 어떤 영역의 전문가들인 내 아들들을 아직도 선도할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책을 읽기 때문이다.  책속에 다 씌어 있는데 뭐.  그리고 나는 매일 하느님한테 길을 물으니까.  아 아무튼 내 경험에 미루어 내 동료들 그리고 가을학기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자가격리 정보를 정리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내 일상은 대개  낮에 종일 낮잠이나 뒹굴거리면서 보내다가 해가 지면 깨어나서 성경읽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난관을 거슬러 올라가 본래 하느님께 약속드린대로 성경 통독을 마칠것이다. 

 

****    ****

성경통독을 하면서 내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매번 성경 통독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조금 새로운 것과 만난다) -- 속독으로나마 성경을 통독한다는 일은 내 영혼에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내린 성전을 재 건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하느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강을 건널때 이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전쟁중에 적군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고 그 언약궤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다윗 시대에 다윗이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자 하나 여호와께서 이를 승인하지 않으신다.  네 아들 솔로몬이 짓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의 완성을 보게 되는데 그 성전을 짓는 동안에도 많은 방해와 난관이 이어진다.  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성전 건축의 역사를 재미없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읽다가 문득 이런 각성을 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구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이구나.  그래서 완성된 성전을 묘사할때 그 언어가 그렇게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것이구나.  화려한 치장에 재미없어 할 것이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왜 이렇게 기쁨에 들떠서 세밀한 묘사를 했던 것인지  생각을 해 볼 만 하구나.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자가격리 공간에서 한여름에 지루한 묘사로 이어지는 구약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내 영혼의 무너진 성터를 다시 건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쌓아 올리도록 하자.  코로나 핑계로 여러가지 핑계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삶에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 예배를 드리나 딴짓을 했고, 기도를 드리나 딴짓을 했고, 기도한다고 하나 정말로 기도했는가 돌아보면 나는 안이하고 나태하다.  하느님은 말없이 나를 지켜보신다. 그 지켜보시는 눈을 마주하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분명 내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이 아직 남아있을것이므로.  오늘 밤도 성경속에서 보내야겠다. 

 

명불허전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미국식으로 채워졌다.  Victoria's Secret 도 내 삶의 일부인데 20년 가까이 그 속옷을 입고 살았다. 대개 세장에 얼마씩 싸게 판매하는 것 위주로 여러장씩 사다가 입는 식이었다.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미국을 오갈때마다 꼭 들러서 실용적이고 편안한 속옷들을 사서 나도 입고 가끔은 언니나 조카에서 선물도 하고 르했는데,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쇼핑을 못했다.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나도 거의 '자가격리'와 같은 생활을 했으므로 살 기회도 없었다. 

 

 

티브이 홈쇼핑에 한국산 속옷을 예쁜것을 팔길래 '일명 엄마 속옷'이라는 -- 아가씨들은 입지도 않을 평범하고 펑퍼짐해보이는 속옷 세트를 샀다.  인견으로 만들었다는 알록달록하고 경쾌한 무늬의 속옷인데 '세상에 다시 없이 편한, 안 입은것 같은' 속옷이라는 칭찬이 자자했다.  언라인으로 리뷰를 봐도 나쁘지 않았고 엄마와 딸이 함께 입는다는 말도 있고. 그리고 원래 한국에서 이런 실용적인 속옷을 참 잘 만들지 않는가?  그래서 믿고 샀다.  왔다.  모두 빨아 널어 말려가지고 예쁘게 정리도 해 놓았다. (감옥살이니까 심심풀이로).  그런데 오늘 새거 한장 입어보고 실망했다.  불편하다.  내가 평소에 입는 Victoria's Secret 보다 크기도 크고 펑퍼짐한 디자인이고 신축성도 좋고 촉감도 좋고 색상도 좋고 다 좋아서 정말 눈으로보고 손으로 만질 때는 '우리 나라 속옷 정말 잘 만들어!!!' 감탄했는데 -- 막상 입으니 매우 불편하다. 

 

 

어떻게 불편한가 하면 그 Y zone 이라는 부분의 고무줄이 살을 파고든다. 내가 살이쪄서 고무줄이 살을 파고 든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Victoria's Secret 입을때는 불편하지 않은걸.  가위로 고무줄 부분을 잘랐다. (그러면 속옷은 망가지는거지. 그래도 잘랐다) 고무줄 자르면 옷은 망가지지만 편안 할 줄 알았다.  살을 파고드는 고무줄을 잘라서 숨통을 트여 놓아도 여전히 불편했다.  작은걸 샀냐고? 아니 넉넉하게 입으려고 아주 풍신하고 펑퍼짐한 사이즈로 샀다. 그런데 내 체형에 안맞는다. 그러니까 촉감도 좋고 펑퍼짐하고  다 좋은데 고무줄이 살을 파고든다.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새로 산 속옷들을 아마도 가위로 고무줄 부위를 잘라서 딱 한 번 입고 버리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Victoria's Secret 속옷하고 맞대어 놓고 비교를 해보니 VC의 편안함은 그 디자인에서 오는 것으로 보였다.  VC는 Y zone 에 편안함 을 주기 위하여 그 선을 피해서 재단을 하고 마감을 해 놓았다. 살이 겹치는 곳에는 살만 겹치게하여 속옷의 이물감을 제거했다.  여기서 산 속옷의 문제는 살이 겹치는 곳에 고무줄도 겹쳐서 내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그걸 들여다보면서 '명불허전'을 생각했다.  괜히 VC가 속옷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은것이 아니군. 속옷 디자인에도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한 것이군.  그래서 오늘 새삼스럽게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Victoria's Secret 의 탁월성을 깨닫게 되었다.  VC 팬티와 브라는 내 평생에 가장 즐겨입는 가장 내 몸에 편안한 속옷이다. (인정). 

 

* 나는 양말목도 조인다 싶으면 가위로 잘라서 신고, 뭐든 내 혈관을 누르거나 조이는 것은 가위로 잘라서 숨통을 트이게 하는 편이다. 아니면 그냥 버리거나. 혈관을 조이거나 숨통을 조이는 것을 참지 않는 편이다.  편한 빤쓰 찾아 입기도 쉬운 일이아니구나. 싸건 비싸건간에 빤쓰가 편해야 몸이 편하지... (결론).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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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8. 18:58

 

자가격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 이라면 나는 이것을 추천하고 싶다. 소형 믹서기.  이 소형 믹서기는 남편과 내가 세달 가까이 신나게 사용하다가, 둘이 먹고 살기에는 좀 더 큰것이 필요하다 싶어서 큰 믹서기를 산 이후에  주전에서 '후보 선수'가 된 것이다. 자가격리 들어올 때 남편에게 이것을 갖다 달라고 했다. 

 

소형 믹서기, 바나나 한송이, 우유 천밀리. 요거트. 매일 저녁에 요거트 한개, 바나나 한두개, 우유 이렇게 해서 믹서기에 씽씽 갈아 먹으면 한끼가 된다.  이렇게 한끼 먹으면 '건강식'이라는 느낌도 들고 밥걱정 따로 안해도 되고 속도 편안하다.  미국에 가서 아들과 지내는 동안에도 저녁은 대개 이렇게 먹었다. 아들도 내가 만들어 주면 잘 먹었다.  원래 집에서는 직접 집에서 만든 요거트에 여러가지 견과류, 건강에 좋은 채소등을 섞어서 스무디로 만들어 그것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그런 아침 식사가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하루에 먹는 식사 내용은:

 

1. 아침에는 햇반 한개 꺼내서 밑반찬 + 김 + 체다치즈 이런것으로 든든하게 먹는다.  햇반이 좋은 이유는 내가 딱 한개만 먹으므로 '과식'을 안하게 된다. 

 

2. 점심에는 대개 남편이 근처 식당에서 뭔가 식사를 사다 준다. 물냉면, 비빔냉면, 빵... 그런 식이다.  내일은 '콩국수'를 사다 달라고 신청해 놓았다. 

 

3. 저녁은 바나나 요거트 우유 스무디 이것을 먹는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참외를 먹는다. 

 

식사를 매우 조심하고 있는데 갇혀 지내므로 운동량이 적고, 군살이 붙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들러서 돌봐줄 가족이 없다면 자가격리 들어오기 전에 장을 봐야 하는데 장을 볼때

 

 

  1.  햅반 14일간 먹을 만큼
  2. 김구운것
  3. 체다치즈
  4. 좋아하는 밑반찬 (단무지, 김치, 뭐, 생각나는 것)
  5. 우유 1000미리 두팩
  6. 떠먹는 요거트 2주일분.
  7. 과일
  8. 과자 몇가지
  9. 라면을 좋아한다면 컵라면 몇개, 봉지라면 몇개.

 

이정도면 될 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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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8. 18:09

  1. 3분 쇠고기 카레 2
  2. 3분 쇠고기 짜장 2
  3. 신라면 5
  4. 참치캔 3
  5. 스팸 3
  6. 햇반 10 
  7. 도시락김 8
  8. 육개장 1
  9. 쇠고기국 1

 

 

자가격리 7일만에 드디어 구호식량이 도착했다. 감사하다. 여기서 실제로 내가 먹을수 있는 것은 햇반과 도시락 김.  나머지는 '편식이 아주 심한 불량시민'인 내가 안 먹는 식료품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이지 구호품 보내주신 분 잘못은 아니다. (남편이 내 대신 먹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스팸은 먹지 않는데... 내가 참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내 삶은 늘 그랬다.  밥상에서 내가 먹을수 있는 것만 말없이 골라 먹는 식으로 한평생 살아왔다. 나는 스팸도, 쇠고기 짜장도, 카레도, 육개장도, 소고기 국도, 아무튼 고기가 들어간 것은 안먹는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꽤 갑갑한 종자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나의 식성을 배려해주며 30년 넘게 살아준 남편에게 감사할 노릇이다. 선물 받은 기념으로 햅반을 찬물에 말아서 김과 함께 저녁 한끼를 먹어보자.  아무튼 구호식량을 받으니 이제야 내가 이나라에 세금을 내고 사는 시민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고가 많으시다. 

 

***  ***

 

아, 한달전에 대한항공으로 미국 갈 때,  대개 미국행에 주는 것이 (1) 비빔밥 (2) 삼각김밥이나 빵 같은 간식 (3) 서양식 한가지  이런 식인데,  그래서 (1) 비빔밥을 먹었고 (2) 삼각김밥 대신에 바나나를 줘서 그걸 먹었고 (3) 서양식 한가지로 닭고기나 돼지고기 두가지 중에서 한가지를 고르라고 한다.  나는 난감했다.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먹지 않는데... 평소에는 닭과 생선 둘중에 하나 고르라고 해서 나는 생선을 골랐는데, 그날은 닭과 돼지 중에 택일이다. 난 두가지 다 안먹는다.  그래서 "난 둘다 안먹는데 어떡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까 먹은 '비빔밥'이 남아 있는데 그걸 드시겠냐고 묻는다.  그래서 냉큼 "예!!! 비빔밥 주세요!!!" 했다.  사실 기내식으로 내가 선택할수 있는 최고가 '비빔밥'이다.  나머지는 그냥 피치 못해서 먹는거다.  그래서 그날은 운 좋게 비빔밥을 두번이나 먹었다는 말이지.  나는 평생 나의 '편식 취향'에 대해서 죄책감과 열등감 (남들이 다 먹는걸 나는 못먹는다는 열등감과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때 까탈을 부리지 않는 편이다. 늘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다. 나의 취향은 늘 꾸지람의 대상이었으므로 몸에 익은 눈치 살핌이다.  그래서 한번도 주어지는 음식에 대해서 내 목소리를 내 본적이 없었는데 -- 그날 '난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안먹는다'고 말했을때, 승무원이 '그러면 비빔밥 줄까?' 하고 물었을때 그 승무원이 '천사' 같이 보였다. 참 감사했다.  '왜 갑질이냐 주는대로 처먹지!' 뭐 이럴수도 있었을텐데.   (사실 나 어릴때 우리집에서는 내가 이것 저것 안먹으면 '주는대로 처먹지 왜 속을 썩이냐'는 피드백이 주로 날아다녔다.)  지금도 나는 주는대로 얌전하게 처먹는 편이다.  다 내탓이니까. 

 

 

결론은 -- 그날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못먹는 내게 비빔밥을 제공해준 그 승무원님 정말 고마우신 분이다.  내인생 최고의 승무원이시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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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8. 15:31

어제 실내운동이 내게 벅찼기 때문에 몸이 아팠다.  그래서 오래 오래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 내가 쓰던 빨간 가방을 보았다.  그것이 그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다니...

 

나는 국민학교 5학년 시절의 학교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계단을 다 올라섰을때 내 눈앞에 내가 들고 다니던 빨간 가방이 눈앞에 들어왔다. 가방 뚜껑에 매직으로 선명하게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내 가방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무서운 꿈이었다.  그 빨간 가방에 적힌 내 이름을 본 순간 나의 모든 '죄'가 그 가방안에 담겨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잠을 깼다.  아주 무서운 꿈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꾼 '죄의 꿈'이었다. 

 

'죄의 꿈'이란 -- 몇가지 반복되는 장면인데 대개는 내가 이불속에 혹은 벽장안에 무언가 내가 죽인 시체를 숨겨 놓고 있는 상황속에서 사람들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것이다. 곧 내가 숨긴 시체가 만천하에 드라나려는 찰나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지. 그러한 꿈을 꾸면 나는 몸이 아프고 그런다. 전에는 자주 이런 악몽에 시달렸는데, 요 몇년간은 통 이런 꿈을 꾸지 않았다. 내 영혼이 좀더 죄에서 가벼워진걸까 그런 상상을 했었다.  '죄의 꿈'이 다시 내게 몇 년만에 돌아왔다.  빨간 가방은 전혀 새로운 꿈의 패턴이다.  '무서운 죄의 꿈'이라는 내용은 동일한데 여태까지 반복되던 장면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장면이랄까.   내가 어릴때 갖고 다니던 빨간 가방이 왜 그렇게 무섭게 여겨지면서 그 안에 무시무시한 나의 죄가 들어있다고 상상하게 된걸까?  꿈은 엉뚱하다.  

초등학교에 다닐때, 6년간 나는 학교가방을 두번 새로 갖게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갈때 엄마가 사 주신 빨간 가방은 -- 지금 돌아보건대 그다지 품질이 좋았을리가 없는 가방이었을테니 -- 손잡이에 조금씩 금이가다가 끊어졌다.  가방은 멀쩡한데 가방 손잡이 끈이 끊어지니까 엄마는 가방 손잡이를 집안에 굴러다니던 헝겊으로 칭칭 감아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핸드메이드, 핸드 크래프트, 아주 특별한 가방 손잡이의 탄생이었지만 (요즘 멋쟁이들은 멀쩡한 가방의 손잡이도 일부러 멋을 부리느라 스카프로 칭칭 감아준다) 어린 나로서는 참 챙피스러운 노릇이었다.  그냥 남들하고 다르고 우중충한 나 자신이 싫었다.  그렇다고 그걸 엄마에게 투정부릴 처지도 못됐다.  나는 내가 부모에게 뭔가 불평하거나 요구하면 안되는 존재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 우리식구 소속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느낌으로 살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우중충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런 '챙피한' 가방을 일년도 넘게 갖고 다니다가 3학년 봄날, 할머니가 서울집에 오셔서 며칠을 지내다 가시게 되었는데, 할머니 주위에 온가족이 모여앉아 모처럼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때 -- 나도 용기를 내어 "할머니 나는 학교 가방이 너무 챙피해요"라고 말했다.  내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할머니, 이 가방 손잡이 끈이 끊어졌는데 엄마가 헝겊으로 이걸 감아줬어요. 나는 챙피해서 이 가방이 싫어요" 뭐 이런 얘기를 할머니께 제법 신나게 떠들어댔다.  할머니는 가방에 책만 잘 들어가면 되는거지 가방끈이 뭐가 어떠냐고, "너희 고모들은 이런 가방도 없어서 책보자기에 싸가지고 핵교를 다녔는데, 너는 팔자가 좋아서 불평이 많구나" 하며 나를 나무라셨다. 사실 맞는 말씀이다. 나도 나보더 열살쯤 많은 우리 막내고모가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학교로 가는걸 매일 보면서 컸으니까. 

 

그렇지만, 할머니는 나를 야단을 친 후에 언니와 나를 시장에 데리고 가셔서 새 가방과 새 신발을 한켤레씩 사 주셨다. 새 신발을 사 주신 이유는, 내가 해져서 엄지 발가락이 삐죽 나오는 헌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할머니가 보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우리 손자들이 한꺼번에 키가 쑥쑥 크느라 신발이 이렇게 구멍이 나는구나"하면서 흐뭇해 하셨다.  그렇다. 내가 엄지 발가락 부분이 구멍이 나서 엄지 발가락 일부가 훤히 보이는 신발을 신고 다닐때도 우리 부모님들은 '키가 갑자기 크고 발이 갑자기 커서 저렇게 신발에 구멍이 난다'고 했을 뿐이고, 그래서 나는 그것은 챙피할 줄 도 몰랐다. 신발 뚫어진것은 챙피한줄 몰랐고, 가방 끈만 챙피했다.  할머니는 그날 언니와 나에게 빨간 새 가방과 빨간 새 신발을 사 주시고,  봄바람에 옷고름을 날리시며 할아버지와 시골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1학년 입학 할때 엄마가 사준 가방, 그리고 3학년때 할머니가 사준 가방 그렇게 두개의 가방으로 국민학교를 보냈다.  

 

내 기억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 달콤하다. 호랑이 사자처럼 성정이 무서운 분들이셨는데 그래도 그분들의 기억은 늘 따뜻하다. 내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더 큰 은혜를 입었으련만 - 엄마 아빠의 사랑은 당연한것 같고, 어딘가 내가 차별받았다는 억울한 느낌이 더 많고 --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달콤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나도 잘 설명이 안된다.  내 빨간 가방속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죄많은 인생이란 것은 잘 안다마는 ... 나는 죽을때까지 나의 죄를 반복할 것이고, 가끔 악몽에 시달리겠지. 

 

****

 

아, 그 꿈은 오늘 오후에 있을 회의 때문인걸까?  내가 속한 위원회에서 어떤 '평결'을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류들을 꼼꼼히 살폈고, 내가 잘 모르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내가 추측한 것들에 대하여 전문가의 자문도 구해서 대강의 나의 입장을 정했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 이러한 문제를  '교육적인 측면'에서 '사람을 잘 키워내는 측면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평결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것이다.  상황은 파악이 되었는데 그러면 어떻게 수습 할 것인가?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나 깊은 상처로 남지 않게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문제를 고민했었다.  그 고민 때문이었을까?  그 꿈의 메시지는 -- '너는 너의 과거의 죄를 되짚어 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일을 판단하라'는 것일까?  정말 그걸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오히려 더욱 성장할수 있도록 돕는.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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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8. 14:40

 

자가격리 해제를 위해서는 2차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다음주 목요일 12시까지가 내게 지정된 자가격리 기간이다.  오늘 문득 -- '그러면 그날 그냥 나가면 되나?' 궁금하여 일전에 문자를 주고 받은 적이 있던 곳으로 문의를 보내봤다.  

 

 

다음주 중에 아마도 2차 검사를 한다는 말이지.  2차 검사에서 다시 음성 판정을 받아야 집으로 갈 수 있는 모양이다. 아직 끝난게 아니군. 

 

 

이런 내용을 내가 묻기 전에 '자가격리 대상자를 위한 생활 수책 안내문' 이런것 안내 할 때 정확히 고지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말로 자가격리자가 알아야 할 것에 대한 안내는 빠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자가격리자'가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는 것같다. 지금이라도 자가격리자를 위한 안내문에 이러한 내용들이 포함되길 바란다. 앞으로도 코로나가 끝장나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자가격리 상황이 발생 할 것이니까. 

 

체온계 도착

 

 

사진에서 위는 오늘 도착한 만원쯤 하는 전자체온계이다. (겨드랑이에 끼고 체온을 측정하는 것이다.)  아래는 5회 체온 측정이 가능한 체온계로서 지난번에 코비드 검사 받던날 보건소에서 준 것이다.  내가 만 14일 (15일) 자가격리하면서 하루에 2회 검사하여 애플리케이션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보건소에서는 5회용 체온계를 네개를 주었다. "최소 28회 (많게는 30회) 체온 측정이 필요한데 20회 분량만 주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체온계를 사라는 말인가?"  내가 그 당시에 질문 했을 때 담당자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검사는 하루에 한번만 하셔도 돼요"라고 대답하며 체온계를 더 주지 않았다.  따지고 싶지 않아서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담당자의 설명과는 달리, 내가 매일 하루에 두차례 보고해야 하는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체온을 입력하지 않으면 전송이 안된다.  그러니까 하루에 두번 체온 측정을 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담당자가 내게 한 설명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루에 한번만 측정하면 기록 전송이 안되니까 말이다.  하루에 두번씩 측정할 경우 5회용 체온계 네개 가지고는 안된다.  나는 체온계를 사야 한다.  처음부터 내게 "체온계를 사서 쓰세요"라고 말했다면 상관없다.  내가 체온계 살 돈이 없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처음부터 체온계 다 제공한다고 말해 놓고, 모자라게 주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면 그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런식의 행정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온라인으로 살수 있는 가장 저렴한 전자체온계를 하나 주문하여 받았다. 뭐 나 혼자 쓰는 것이니 내 몸에 닿아도 상관없으므로 딱히 비접촉식 비싼 전자 체온계를 고집할 이유가 없으므로, 이것으로 족하다. 체온 측정은 아주 잘 된다. 하루에 열번이라도 안심하고 측정하여 애플리케이션에 기록을 남길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전에 아이들 키울때 사용하던 유리로 된 수은계 보이는 옛날 체온계는 이제 살 수 없는 것일까? 문득 그 체온계 생각이 난다. 나 그거 참 활용을 잘 했었는데.)

 

 

(내가 이러한 상황을 꼼꼼히 기록하는 이유는 -- 나 이후에도 우리학교에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미국에서 입국을 할텐데, 그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질 것이므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렇고, 한국어 안통하고 한국 상황속에서 체온계 이런것 살줄 모르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그런 점을 미리미리 준비 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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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8. 02:52

오전 5시 30분에 교회에서 하는 온라인 새벽 기도회 (유튜브) 에 참석했고,  오전 9시 30분에는 내가 리더가 되어 하고 있는 Zoom 기반 화요 기도모임을 진행했다.  운동을 했고, 운동의 여파로 피로하여 온종일 뒹굴거리고 자느라 성경읽기 숙제가 뒤처지고 있다.  

 

이곳은, 하느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피난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루함은 잘 모르겠고, 성경읽기가 속도가 나지 않아 마음이 초조한 편이다. 이 기간동안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도록 성경에 좀더 다가가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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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6. 22:38

자가격리에 들어간지 5일 째 되는날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자).

 

아침 뉴스를 보니 지난 7월 2일에 입국한 (나도 그날 오후에 들어왔다) 외국인 프로 선수 (종목이나 이름은 잘 모른다)가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 했다고 한다. 뜨아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새삼 감사하자).

 

그러니까, 나의 경우는 입국하자마자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검사 결과를 받아서 안심할수 있었지만 -- 이것은 운좋은 다수의 경우에 해당 되는 것이고 -- 어떤 사람들은 그자리에서 '확진' 판정을 받거나, 혹은 '확정 되지 않은 애매함' 때문에 며칠사이에 재검을 받거나 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깔끔하게 결과가 나와서 안심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참 감사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확진 판정을 받으신,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시는 분들도 무사히 이 상황에서 벗어나시길 빈다.

 

닷새째이다.  내게 비상식량을 보내는 정부 기관이나 단체는 아직 없다. 남편이 없었으면 나는 살을 많이 뺐을거야.  자가격리자에게 '먹이'를 제공하지 않으면 자가격리자는 나가서 뭘 사다 먹을 수 밖에 없다.  행정의 빈틈이 보인다.  물론 나는 한발짝도 문밖으로 나가지 않은채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뭐 사먹으러 나가는 자가격리자도 발생할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은 다 자기가 상황이 닥쳐봐야 그 상황속의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의무적으로 깔아 놓은 앱은 -- 내가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움직임이 없어서 담당 공무원에게 알렸다. 버튼을 눌러서 네 위치를 알려라" 뭐 이따위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매일 온다. 짜증이 난다. 그래서 이틀전에는 "내가 어디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직접 전화를 하시오. 낮잠 자는동안 전자메시지 와도 나는 받지 못하지만 전화벨 울리면 받을 것이오" 라고 앱에 메시지를 띄웠다. 아무 답도 없다. 그리고 매일 앱에서 잔소리 메시지가 뜬다. "전화 하라구! 나 꼼짝도 않고 방구석에 있으니까 전화기 쓸일이 없어 안 움직이는건데 -- 나보고 나가 돌아다니라는거야 뭐야? 앱을 뭐 이따위로 만든거야?  전화 하라니까!"  이러고 혼자 신경질을 내고 있다.  그냥 앱이 기계적으로 보내는 메시지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내가 한심하다. 하지만....집안에 죄수처럼 처박혀 있는 내게 '움직임이 없으니 수상하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어쩌라는건가? 전화를 하시던가!!!   

 

내가 죄수야 뭐야?  연쇄살인마도, 파렴치범도 감옥에서 밥은 삼시세끼 꼬박꼬박 받아 먹고 산다.  자가격리자에게는 기초 인권도 없다. 가둬 놓고 밥은 안준다.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양심적으로 말 잘 듣는 시민이란 말이다. 슬슬 분노가 피어오른다.  가둬 놓고 감시만 하면서 밥은 안 주는 시스템.  겉만 번지르르한 세상.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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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6. 02:47

며칠전 입국 할 때 대한항공 기내 면세점에서 산 제품. 프로폴리스 프레시 브레스 스프레이. 이것 써 보니 참 신통방통해서 내가 이걸 리뷰를 쓰고 앉아있다. 하하하.  근래에 내가 산 것 중에서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은 물건이다.

 

값은 -- 부시럭부시럭 영수증 찾아봄 -- 미화 51달러. 면세 가격이다.  이것이 싼지 비싼지 평은 어떤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샀다. 코비드 때문에 미국에서 지내면서 쇼핑도 못하고, 국제공항 면세점도 문을 닫아서 구경도 못하고 그래서 약간 짜증이 나면서 -- 평소에 거들떠도 안보던 기내 면세품 카타로그를 들여다보다가 충동적으로 샀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그 많은 물건중에 이것 하나를 고른 이유는 구강 청결제 스프레이라서 그랬다. 왜냐하면 나는 비행기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 하기를 포기했으므로 - 가능한 최대한 비행기에서 안 움직이고 화장실도 가능한 참고 안가는 쪽으로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행기 여행'이 코비드 시대에 가장 위험한 여행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거의 하룻동안 양치질을 못한다는 것을 고려하여 -- 이 구강 스프레이를 고른 것이다.  그리고 사자마자 정말로 포장을 뜯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꼼짝도 못하고 앉아 주는 밥 먹고, 물로만 간신히 입안을 헹구고 마는 것인데, 이 때 이 스프레이를 뿌려주니, 한 숨 자고 나면 스스로 느낄수 있는 입냄새가 나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여 화장실에서 곧바로 양치질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때까지 입안이 상쾌하다는 느낌이 유지가 되었다.

 

 

자가격리중에도 온종일 입다물고 혼자 앉아있고, 잠을 자거나, 움직거리거나 주로 입을 다물고 있어서인지 양치질을 해도 입안이 텁텁하고 그렇다. 그럴때, 양치질을 했는데도 입안이 여전히 텁텁할 때 이것을 뿌려주면 입안이 정돈이 된다는 느낌이 든다. 밤에 잠들기 전에 뿌리고 자면 아침에 깨어났을때 입안이 여전히 상쾌한 기운이 느껴진다 (덜 텁텁하다.)

 

그래서  -  이 물건 정말 물건이다!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한세트에 세개 들었으니까 하나 나 쓰고 하나 남편주고 하나 언니주고 그러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 아무도 안준다. 나 혼자 쓸거다. (어디서 구할수 있는지 알아봐야지).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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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6. 02:12

코로나는 우리의 삶의 풍경을 대폭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나는 봄학기 내내 학생 얼굴도 못보고 화상으로만 수업을 해야 했고, 미국에 다녀온 나는 지은 죄도 없이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 있다. 우리 생활의 깊고 얕은 모든 영역에 코비드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경조사 문화도 검토가 필요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장성한 자녀를 가진 지인과 통화를 길게 하게 되었다.  코비드를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조심을 하고 있는지 마스크며 외출을 삼가는 것이며 그렇게 서로 자랑하듯 '조심' 얘기를 하다가 자녀의 '결혼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렀다. 

 

나의 의견:  이 '난리통'에 예전처럼 결혼식을 하려는 것은 타인에 대한 '폭력'과 마찬가지이다. 청첩장 받고 안가면 사람의 도리가 아닌것이 한국의 문화인데, 꾸역꾸역 청첩장 돌리면 마스크를 이중 삼중으로라도 하고 꾸역꾸역 가야 하는게 아닌가? 제발 예전같은 큰 결혼식 하지 말고, 직계 가족끼리 모여서 작게 결혼식 하되 -- 여태까지 남의 잔치에 축의금 낸거 본전 뽑아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감안하여 -- 결혼 소식을 띄우며 은행계좌를 안내하라는 것이다. 

 

원리는 이렇다.

 

  1. 한국에서는 경조사에 돈봉투 갖고 가는것이 자리잡은 문화이고, 경조사 소식이 들려오면 가계부 들여다보고 '그 때 그 집에서 우리집에 얼마 보냈지?' 이런것 확인하여 액수 맞춰서 갚는 것이 일상이다.  좋게보면 상부상조, 그냥 중립적으로 보면 내가 낸 돈 내가 타먹는 형식. 
  2. 코비드 때문에 사람 청하는 것이  환영받지 못한다.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행사를 안하면 내가 낸 돈을 회수할 수가 없으므로 잔치를 해야만 한다.
  3. 돈의 회수를 위한 잔치라면 잔치 생략하고 그냥 은행계좌를 안내하면 된다. 그러면 축의금 갚아야 하는 사람은 흔쾌히 은행으로 축의금을 보낼 것이고, 위험한 잔치에 안가도 되니 안도할 것이다. 
  4. "그래도 어떻게 잔치도 안하고 돈만 받는가? " --> 이게 문제인데, 뿌린 돈 회수 (좋게 말해 상부상조) 차원의 불필요한 잔치 이벤트를 그냥 생략해도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난리통이고 사람 부르는 것이 오히려 민폐이니까. 
  5. 그러니, 문구를 잘 만들어서 안내를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일 모시에 이러한 잔치가 있아오나 코비드로 인해 잔치는 생략하오니 멀리서 축하해 주시옵고 (zoom, youtube 와 같은 원거리 화상 진행으로 잔치 영상은 누구나 볼 수 있게 배려하고), 축하금을 보내주고 싶으시면 이 번호로 보내주시면 고맙게 잘 쓰겠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누군가 내게 이런 식으로 잔치 소식을 알리면 -- 나는 흔쾌히 -- 잔치 장소로 나를 불러내지 않는것에 감사하면서 진심으로 축하하며 축의금을 언라인으로 보낼것이다. 진심이다. 

 

장례식은?  장례식의 경우 나는 소식 받으면 '사람들 모이기 전에' 제일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봉투' 내고 인사만 하고 현장을 떠난다.  슬픈 일에는 위로가 필요하고, 잠깐이라도 얼굴 마주하고 위로 하고 싶으니까.  그러나 위험을 최소화 한다.  물론 이것도 언라인으로 송금을 원칙으로 한다.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전쟁인데, 태평한 소리 하지 마시라. 결혼 호화롭게 했다고 다 잘사는것도 아니고, 결혼은 둘이 잘 살아내면 그만인거다. 결혼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것이 없다. 장례식도 이미 끝났으니 크게 의미 둘것 없는데, 위로 차원에서 내가 좀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나의 이런 태도에 대하여, "그건 네 삶의 기반이 미국으로 옮겨져 있고, 한국에서 사회생활 대충 해도 되니까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하는거지. 한국은 달라"로 대응을 할 수도 있다. 물론 맞는 말씀이다. 각자의 생각은 각자 옳다.  나는 어느 사회에도 잘 안맞는 사람일지 모른다. 30여년전에 내가 결혼식을 할 때에도, 나는 평일 점심시간에 서울 변두리 허름한 결혼식장을 잡아서 신부 마사지니 뭐니 그런거 다 생략하고 싸구려 웨딩드레스 그 허름한 결혼식장에서 빌려서 입고 대충 결혼식을 했다. 평일 점심시간을 택한 이유는 남의 주말을 내 결혼식으로 망치기 싫어서였고, 저렴하고 허름하게 한 이유는 결혼식에 돈 쓰는게 합당치 않아 보여서 그랬다. 하객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와서 축복해주고 갔다.  그때 내 보스였던 독일인 사장도 와서 나하고 사진찍고 회의있다고 곧바로 갔다. 하하하.  그리고 우리는 30년 넘게 오르락 내리락 모험같은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나는 신부가 다 갖는 '경대'라는 것도 없이 여태 살고 있는데, 그래서 경대위에 결혼 사진 올려 놓고 그런 것도 없었다.  결혼식이 내게 큰 의미가 없었듯, 결혼사진도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증명사진 같은 결혼사진들은 나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뻔한 것을 전시하고 매일 들여다본다는 것은 하품나는 일일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결혼생활이 여태까지는 제법 성공적으로 흘러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앞날에 대해서는 또 가봐야 아는거지만, 이제 남은 것은 남편이나 나나 둘중에 하나가 먼저 떠나고  - 남은 사람이 홀로 쓸쓸하게 끝까지 살아야 하는거겠지. 어찌됐건 내 일생에 결혼은 한번. 결혼식 재미없어서 두번다시 할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다.)  남편이 혹시 나보다 더 오래 산다면, 그 사람이 재혼을 하건 말건 그건 그 사람의 판단의 문제이지, 내 삶은 끝났으니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 

 

결혼식에 남에게 민폐 안끼치는것이 이미 30년전의 내 사고방식이었으므로 내 삶의 기반이 미국이건 한국이건 나의 태도는 마찬가지라는거다. 나도 사회생활 잘 하는 사람이다.  그까짓 경조사비 따위...거기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 그뿐이다.  (너는 경조사비 신경 안써도 되는 부자니까 그런거지...라는 오해는 마시길. 나는 한국의 평균적인 경제를 누리는 사람이다. 서울에 집한채 없다. 가난하지도 않지만 부자도 아니다. 그래도 경조사비, 그따위 우습다. 그게 내 삶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하니까.)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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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6. 01:45

평생 선거에서 '보수'의 반대편에 표를 던져 왔던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운명적으로, 손금에 그어진 것처럼 나는 '보수'와 손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진보인가?  나는 한때 내가 '진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더이상 진보가 아님을 안다. 혹은 나는 어디에도 안 맞는 사람일것이다.특히 한국에서 '진보'란 있는걸까? 그걸 의심한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서울과 충청도 두군데에 아파트를 한 채씩 갖고 있다가 출신지역인 충청도의 싸고 큰 아파트를 처분하고 전도유망하고 앞으로도 값이 오를 서울의 작고 비싼 아파트를 유지하는 식으로 '일가구 이주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 그에게 비판적인 각종 보도와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서 나는 탄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사람 뿐이 아니지. 조 아무개씨도 그랬고, 뭐 꼴랑 벌어 놓은 돈으로 시시한 건물 하나 샀다가 그 문제로 영광의 길에서 벗어난 김 아무개씨도 그렇고, 뭐 아무튼 현재 문대통령 근처에서 시시한 '개인적이고 소시민적인 욕망'을 드러내어 비판을 받고 있는 한때의 야권 인사들, 한때의 '진보'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저들은 대통령과 함께 일을 하면서, 그 자체를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나머지를 포기할 의사가 없는걸까?" 

 

나는 생각해봤지. 아무것도 아닌 나는 생각해봤다.  내가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위하여 일을 하는 처지라면 나는 그것을 내가 태어난 사명으로 인지하고 내 욕심을 다 내려 놓고 오직 우리가 쌓아올린 명분을 사회를 개선하는 것으로 결과를 보기 위해, 나중에 돌아보고 "그 때 우리는 위대했지"라고 자부심을 가질수 있기위해 하루하루 살아 갈 것 같은데 말이지. 그것 자체가 영광 아닌가?  그까짓 강남의 13평 아파트 한채 때문에 그 영광위에 똥을 싸대고 냄새를 풍기고 있는가?  (강남의 13평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명예와 자존심과 영광을 내려 놓는 소시민인 그대여 그냥 소시민으로 집앞의 개똥을 치우며 사시길. 강남의 13평이 무섭지?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데 강남에 집이 없는 나는 강남이 안 무섭다. 이상하지 않은가?  강남하고 상관없이 사는 나는 강남이 우습다. 하하하.) 

 

*저들이 해 처 먹은 대규모 조직적 부패에 비해서 우리가 하는 짓거리는 소시민적인 작은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역설하고 싶지? 응? 그것이 바로 당신들을 필망, 필패로 이끄는 논리라는거지. 우리의 기대수준은 훨씬 높아졌어요. 똥걸레 빨아서 똥자욱 남은 누런 걸레 만들었다고 우리는 만족하지 않아요. 락스물에 팍팍 삶아서 희게 빛나는 걸레를 만들고 싶거든요. 

 

나는 대통령 근처에서 이렇게 시시하고 소시민적인 사고를 치고 있는 그의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은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하는거야. 그러니까 13평 강남 아파트를 포기할 수 없는거지."라고 판단하게 된다.  함께 일하고 함께 몰락할 각오 따위는 없는거야. 그러므로 저들은 몰락하고야 말거야.  몰락한 이후에 말하겠지 "13평 아파트 안 팔길 정말 잘했어. 이거라도 남았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몰락 할 수밖에 없는거야. 세상 이치가 그래... 그래서 보수 정권에서 진보 정권으로 세상이 바뀐 듯 해도, 다방 인테리어 하나 안바뀌고 마담만 바뀌고 마는거지. 커피 맛도 그저 그렇고, 음악도 그저 그렇고, 칙칙한 지하실 곰팡이 냄새와 섞인 커피 냄새도 그저 그렇고, 바뀐것은 없이 쥐새끼 들끊고 커피값 50원 쯤 오른 다방은 그대로 거기 있는거야.  다방마담과 커피나르는 종업원 얼굴이 바뀐다고 다방이 달라질것은 없어요. 역전 다방.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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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6. 00:59

 

 

내 연구실 밖의 화초들을 내가 없는 동안 남편이 챙겨서 돌봐주고 있다. 어제 남편이 화초에 물 주고나서 '증명사진'들을 보내주었는데, 5월부터 피기 시작한 호접란이 점점 더 많은 꽃 송이들을 피워내고 있고,  동양란도 꽃대 여럿이 올라오고 있다.  미국에 있을때 남편에게 "꽃들은 잘 피고 있어?" 물었더니 '물 만 주고 꽃은 못 봤다'는 애매한 답을 하길래 "꽃이 피고 있는데 못 봤어?" 물었더니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꽃이 눈 앞에 있어도 꽃을 못 보는 사람도 있구나...

꽃이 피건, 안피건 소중한 내 친구들이지만 꽃이 필때는 더욱 칭찬을 해 줘야 하는거지.  그 후로는 꽃 사진도 보내준다.  나는 남편이 보내주는 화초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내 눈길로 그들을 하나 하나 만져주는 편이다. 어제 보낸 사진에서 동양란에 꽃대 올라오는것을 발견하여 "동양란 꽃대가 올라오네! 굉장하다!" 했더니 남편은 그걸 눈 앞에 놓고도 "어디? 어디?" 한다.  꽃이 있어도 꽃을 못 보는 사람.  사람의 시각적 인지 기능이 이런 식이다. 관심이 가야 보이는 법이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남편은 내가 "해당화가 피었네" 해야 해당화가 핀 것을 본다. 나는 그의 또다른 눈이다.  물론 남편 역시 내가 못 보는 것을 보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여럿이 어울려 살아야 한다.

 

언니는,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서양란, 동양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가?" 묻는다. 화초들을 햇살 좋은 동남향 창가에, 최대한 건강한 햇볕을 잘 받도록 배치하고 --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물을 흠뻑 주고 (한번만 준다. 흠뻑) -- 가끔 다이소에서 천원에 10개들이 주사기 모양 비료를 사다가 꽂아 주는 정도이다.  일년에 한번 정도는 분갈이도 대충 해 준다.  분갈이의 '분'자도 모르는 일자 무식이 대충 온라인으로 정보를 찾아보고 대충 재료 사다가 해 주는 정도이다. 그것이 전부다.  하루에도 여러차례 그 곁에서 들여다보고 예뻐해주는 것도 영향을 줄까?  학생들 숙제 채점하고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화초에게 가서 위로를 받는데 과연 그것도 영향을 끼칠까? (그건 검증이 안되므로 잘 모르겠다.) 

 

 

  ***   ***

 

어제 실내 운동을 너무 재미있게 한 것이 원인 이었을것이다.  밤에 잠을 푹 잤는데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졸음이 쏟아졌고, 온종일 비몽사몽의 연속이었다.  '이거 뭐지?  걸린건가?' 이런 의심도 들었으나 오전, 오후 두차례 체온 측정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나이 들으니 평소에 안하던 운동을 하면 이런 식이다. 몸이 아프다.  그래서 오늘 종일 퍼 자느라 운동을 못했다. 성경 읽기도 못했다.  

 

 

오전에는 온라인으로 일요일 예배를 드렸고, 저녁 나절에 남편이 '송추갈비'에서 물냉면을 사다 주었다. 맛이 깔끔하고 속이 후련한 맛이었다.  감사하다. 이래서 배우자가 있어야 하는거다.  자가격리 할 때 냉면 사다주는 사람, 오직 '가족'만이 가능한 일이다. 

 

 

자정이 지났다.  성격읽기를 하며 이 밤을 보내야지.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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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4. 18:01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이 내국인 외국인 막론하고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자가격리자 앱이다.  이것을 전화기에 깔아야만 입국이 가능하다. 매일 이것을 열고 아침, 저녁 두차례 체온 기록과 유증상 여부를 기록한다.  내가 기록하면 누군가가 그것을 조회하는 모양이다. 

 

 

뭐,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생활에 규칙성을 주므로 나름 재미가 있다. 산사람은 뭐라도 해야 하는거니까. 

 

 

내가 그저께 입국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를 시작했고, 어제 오전에 음성 판정이 나왔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는데, 오늘 오후에  담당공무원이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 '자가격리용 비상 식량'이 필요하면 신청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참 일찍도 왔다.)  오늘 신청하면 주말 건너서 한 사흘후에 비상식량을 받을거라는 메시지이다.  뭐 비상 식량 안줘도 내가 굶어죽을리는 없지만, 그래도 뭐가 오는지 궁금하여 신청을 하였다.  그런데, 나는 나 먹이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여기는 남편이 부지런히 먹이를 챙겨다 주므로 문제가 안되지만, 그런 가족이 없는 사람은 어쩌라는걸까?  뭔가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기분이 든다. 만약에 내게 식량 공급하는 가족이 없다면, 나는 자가격리 장소를 이탈하여 '식량 보급 투쟁'을 하러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아예 보건소에서부터 준비하였다가 비상식량을 줘 보내야 격리소로 가서도 '이탈'을 안 할 것이 아닌가? 

 

"내가 아는 사람은 이러저러한 것을 받았다는데 너는 왜 아무것도 못 받는거냐?" 

 

 

벌써 전화로 내게 이러저러한 코칭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던 중이었다.  아, 나는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을리는 없으므로 신경 쓰기도 싫었는데, 오히려 '자가격리' 상황에 대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호기심을 갖고 나를 전화상으로 관찰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뭐 지방자치단체 마다 혹은 담당 공무원마다 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대충 이런 상상을 하고 접는다.  하긴, 만약에 내게 가족이 없고, 아무도 내 '먹이'를 갖다 주지 않으면 나는 15일간 수돗물로 연명하는 가운데 '체중조절' 에 성공하는 역사를 쓸지도 모르지.  하하하.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 상황이 아니면 남이 나를 신경을 안 써준다거나 나에 대한 서비스가 누락이 된다거나 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세상이 늘 내게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체로 운명은 내게 가혹하지 않았고, 나는 잘 지내왔다. 그러므로 대체로 나의 현재에 고마운 편이다. 

 

 

아침에 유튜브를 열어서 '국민체조'를 꺼내어 동심으로 돌아가 '국민체조'를 신나게 했는데 -- 그 후에 유튜브에서 자동으로 뭔가가 흘러나왔다. "엄마 TV"의 김선생이란 분이 아주 쉬워 보이는 춤/운동 동작을 하면서 30분간 그걸 따라하면 3Km걷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슬슬 따라했다.  운동이 끝난후 내 애플워치로 확인해보니 정말로 3Km 걷기가 완성 되어 있었다.  "끼부리기" "트위스트" "수영하기" "스케이트" 뭐 이런 식으로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동작을 쉼 없이 이어서 하는 운동이었는데, 크게 힘들지 않으면서 땀이 쏟아졌다. 아주 좋은 운동이었다.  매일 이 운동을 해야지.  그러니까 매일 아침 '국민체조'를 두번 하고 '엄마 TV'의 30분 운동을 따라해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3BEU86NQr6Y

아, 내가 국민체조 했다가 자동으로 연결되어서 따라하게 되었던 운동이 이것이다.  매일 들어가서 운동을 해야지.  조금씩 하다가 조금 강도 높은 운동으로 옮기고 해야지.  요가를  학교에서 제공해줘서  온라인으로 하다가 힘들고 재미없어서 그만 뒀는데 이분 운동은 힘도 안들고 따라 할만하다.  갇혀 지내는 동안 운동도 잘 해 봐야지. 하하. 

성경책 레위기에서 이상한 구절을 발견하여 '번역이 잘 못 된걸까?'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나의 무지를 깨우치고, 내 머리 위에서 지휘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새삼 발견했다. 처음에 나는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이 부분에서 언뜻 납득이 안 갔다.  그래서 영문 성경 여러가지 버전들을 살펴보면서 원뜻을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깨달았다 - 아 우리는 보통 도의적으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서고 힘있는 자에게 굴종하지 않는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지만, 어떤 법률적인 판단을 함에 있어 한 사람이 '가난하다'는 것이 과오나 잘못을 용서 받을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구나.  가난하거 부자이건 간에 도의적인 판단의 근거는 동등해야 한다. 만약에 동등하지 않다면  그거야 말로 가난한 사람을 욕되게 하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사회복지'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법률 앞에서 우선은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이후에 인정이나 상황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속독을 하는 과정에서도 새로 깨닫고 각성할 기회가 많이 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ㅣLeviticus 19:15
"'Do not pervert justice; do not show partiality to the poor or favoritism to the great, but judge your neighbor fairly.

너희는 재판 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 할 지며

 


New Living Translation
“Do not twist justice in legal matters by favoring the poor or being partial to the rich and powerful. Always judge people fairly.

English Standard Version
“You shall do no injustice in court. You shall not be partial to the poor or defer to the great, but in righteousness shall you judge your neighbor.

Berean Study Bible
You must not pervert justice; you must not show partiality to the poor or favoritism to the rich; you are to judge your neighbor fairly.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ou shall do no injustice in judgment; you shall not be partial to the poor nor defer to the great, but you are to judge your neighbor fairly.

 

 

어제 남편이 사다 준 아이스 커피 (왼쪽), 오늘 좀더 큰 사이즈로 사다 준 아이스 커피 (오른쪽).   온종일 아껴서 먹고 있다.  슬리브의 빨강색이 강렬하고 매력적이라서 기분이 좋아진다. 나갈때까지 버리지 않고 모으면 몇개까지 모으게 될까?  착한 남편이 매일 아이스커피를 배달해 줄지도 모른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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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3. 20:56

 

 

낮밤이 뒤바뀌어, 오후에 남편이 사다 던져주고 가버린 아이스커피를 마시고나서 아주 푹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성경책을 열어서 구약이 1,331 페이지, 신약이 423 페이지까지 표시가 된 것을 확인했다. (성경의 페이지 개념은 일반책 페이지와 약간 다르다. 한페이지가 몇페이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원전의 페이지를 옮기기 때문에 그런듯 하다.)  어쨌거나, 전체 페이지와 내가 여기 갇혀 지낼 날짜를 따져보고 구약은 하루에 170페이지씩, 신약은 하루에 90페이지씩 읽어나가기로 계획은 세웠다.

 

성경을 그렇게 빨리 읽느냐고? 어떤 경우에는 성경읽기 일주일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캠프도 있다고 들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주어진 시간 안에 통독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피드 리딩인데 -- 그렇게 설렁설렁 대충대충 읽어나가면 뭣하느냐고 누군가가 물을 수도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Intensive reading vs. Extensive reading 의 문제이다. 빠르게 죽-죽-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것도, 한 줄 한 줄 사색하며 읽는 것도 모두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해마다 여름 방학때 성경 스피드 리딩을 몇 차례 했었다.  가가격리 기간을 '요나의 고래 뱃속 체험'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나의 성격상, 이렇게 계획표를 만들어 놓으면 -- 여태까지의 경험상 -- 늘 계획표보다 먼저 숙제를 끝내는 편이었다.  이제는 나도 늙어가고 있고 전 같이 빠릿빠릿하지가 않으니 알 수 없는데. 해 보면 알겠지. 

 

그런데, 성경 읽기에는 어떤 신비한 무엇인가가 따른다.  그것은 말로 설명이 안되고. 그냥, 정말로 하느님이 나와 함께 앉아 계신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우선, 아까 잠시 창세기를 읽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이 인류에게 던진 최초의 질문이 무엇일까? (나는 오늘에서야 그것을 자각했다.... 그렇게 수차례 읽었어도 그 점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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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3. 18:48

 

7월 2일 입국하여 보건소에서 검사받고 자가격리를 위해 마련된 장소에 들어옴.

7월 3일 오전에 위의 문자를 받음.

7월 3일 오후에 아래의 통지서를 전화로 받음.  (음성 판정을 받았으니 격리기간을 채우고 나가라는 메시지로 보임). 만약에 양성판정을 받았다면 아래의 통지서가 아니라 -- 뭐 어디로 입원하라는 메시지가 왔을것이고 아마도 내가 들어온 이 건물 전체를 소독한다고 난리가 났을 것이며, 어제 비행기에서 시작해서 공항, 보건소등 내가 돌아다니며 스쳐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아휴, 상상만해도 골치가 아프다. 그러므로 각자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감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제 오후 7시 쯤에 검사를 받았는데 오늘 오전 9시에 문자를 받았다. 일단 음성 판정을 받아서 마음이 가볍다. 미국 공항에서 한국 공항까지 이동중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앞으로 며칠간 감염 증상이 없다면 일단 안심하고 날짜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면 될것이다.  (내가 마스크 귀신딱지이니, 극도로 조심하고 마이크 착용을 열심히 한 것에 스스로 감사하자).   사람없는 미국 시골마을에서 혼자 산책을 할 때에도 나는 일단 마스크부터 챙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게 (1) 마스크 꼼꼼히 쓰고 (2) 2미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3) 손 열심히 씻고, 이 세가지만 잘 해도 나를 돕고 남을 돕은 것이 아닌가. 

 

 

남편이 내가 먹을 햇반, 반찬 이런 것을 사가지고 들렀다.  "아이스커피 좀 사다 달라니까!"  감사인사 대신에 아이스커피 먹고 싶다고 신경질을 내니까 마스크 너머의 남편이 준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를 그냥 무의도로 보내버릴것을 그랬구나..."

 

 

인천 공항 근처에 '무의도'라는 섬이 있다. 대무의도, 소무의도 이렇게 있는데, 그 무의도의 한켠에 '실미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무의도에 '자가격리 시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인천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는 동안 공무원,  경찰관등과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가지 정보를 얻어낸 모양이다. 가족이 없거나 마땅히 격리 장소가 마련되지 않은 사람이 갈 수 있는 '무의도 격리 시설'이 있다는 것이다.  "너를 그리 보내버리면 내가 이런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으련만...." (그의 한탄).   주말에는 가사도우미들도 쉬는 날이라며 주말동안 햇반 먹고 잘 지내라고 말하고 그는 집으로 갔다.  "아이고, 아이고, 아주 나를 실미도로 보내라. 내가 못 살겠다!!!" 이런 농담을 하면서 오랫만에 부부가 마스크를 쓴채 깔깔댔다.  이것도 '음성 판정'을 받았으므로 가능한 대화였다. 

 

그런데, 내가 사전에 검색을 해보니 '자가격리자를 위한 식량 보급품'을 받았다는 블로그 내용들을 볼 수 있었는데, 내게는 아무도 먹을 것을 갖다 놓아주지 않는다.  뭐지? 나도 세금 다 내는데 왜 나는 잊혀진거지?  어차피 식량 보급품이 쌀이나 라면 뭐 그런 종류이므로 안받아도 사는데 지장 없으나, 남들 다 받는거 나만 안받으면 손해 본다는 느낌이지.  무인도에 나만 버려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만약에 우리 남편이 없었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였지? 아 뭐냐구?  (정부는 우리 남편이 나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것일까?  --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쨌거나 이대로 얌전히 자가격리 원칙을 준수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창밖으로 저만치에 내 연구실 창문이 보인다. 그 창문을 보는 것 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성경 통독을 시작한다. 2주에 성경통독을 하려면 하루에 약 200 페이지씩 읽어나가면 될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학교 근처 주상복합건물의 오피스텔이다. 에어비앤비로 자가격리 시설 승인을 받은 곳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준비해 주셨으므로 나는 얌전히 지내다 나가면 된다.  내가 오기 직전에 이곳을 사용하고 나갔던 사람이 뭔가 물건을 찾으러 왔는데 이웃대학 외국인 교수 같았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처럼 작은 호텔방에서 2주간 갇혀 지내야 할거라는 상상을 했었는데 복층형 구조로 되어있어 아래 위 층 오르내리는 '운동 재미'도 있고 멀리 학교도 보이고, 내가 갇혀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휴양지에서 게으르게 아무데도 안나가고 뒹굴거린다는 느낌이다.  아침에 깨어나서 여행 가방 좀 정리하고, 손빨래를 해서 2층 난간에 빨래를 널어 놓기도 하고, 빗자루를 들고 위아래 돌아다니며 청소도 하고, 나름 사람 사는 것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이 겪는 일을 나도 겪을 뿐이다. 기왕에 하는거 모범적으로 착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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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7. 3. 05:27

미국에서 출국 전 풍경

 

 

아틀란타 국제 공항 7월 1일의 풍경이다. 모든 면세점 및 카페등이 닫혀있다. 유일하게 문을 열어 놓은 매장은 Hudson 이라는 - 미국 공항에 가면 어디에서 있는 상점이다. 이곳에서는 여행객의 생필품 (과자, 음료수, 자질구레한 기념품, 책)을 판매하는데 여행객들을 위해서 유일하게 업무를 보는 것 같다.  다른 유명제품 면세점들은 모두 위와 같은 표시와 함께 닫혀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비교해보자면

 

한국은 거의 모든 업소 (상점, 식당등 소비자들이 찾는 곳)들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할것을 독려하는 편이고, 미국은 많은 업소들의 문을 닫아 놓은 상태에서 개인 위생에 대해서는 한국에 비하여 너그러운 편이다. (마스크 착용의 예를 보면 한국은 삼엄하고, 미국은 도무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엉성하다.) 어프로치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한국에서 미국을 바라 볼땐 "저 사람들이 도대체 제 정신인가? 왜 저렇게 무심한가?" 한숨이 나올 정도로  그들의 코로나 대처가 미숙하고 미개하다고 여겨졌는데, 막상 미국땅에서 이들의 삶을 지켜보니 그럴만해서 그러는구나 싶다.  뭐랄까. 인구 밀도도 조밀하지 않고, '설마' 하고 그냥 태평하게 산다고나 할까.  

 

 

내가 지내던 시골 작은 도시에서는 내가 마스크를 쓴채로 어느 매장에 가서 물건을 보고 있으면 -- 단지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나를 점원으로 착각하고 내게 와서 물건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  매장의 직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님들은 자유롭게 마스크를 하거나 말거나 하니까, 예쁜 마스크를 쓴 나를 '점원'으로 착각들을 하는 것이다.  워싱턴 디씨로 가니 상황은 훨씬 엄중해졌지만 한국의 삼엄함에 비하며 새발의 피지 뭐.  나는 '사람이 귀해서, 사람을 반기는' 그런 작은 도시에서 지내다 왔으므로 뭐 딱 미국판 '웰컴투 동막골'의 행복한 아줌마였다. 

 

 

대한항공편으로 입국했는데, 아틀란타 공항에서 티켓을 받을 때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설치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래서 안내대로 전화기에 설치했다.  비행기 탑승중에도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안내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투명한 바이저를 한 사람들도 보였다. 나는 94 마스크 위에 내가 수놓은 면 마스크 이렇게 2중으로 마스크를 했다.  좌석은 한칸씩 띄엄띄엄 배치.  통로 건너 편 내 옆자리에 앉은 신사분이 착석하자마다 마스크 벗고 있길래 신경이 쓰여서 승무원에게 그 분이 신경쓰인다고 말했다. 승무원이 곧바로 조치하고 그 신사분은 그 이후로 착실하게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학교에서도 마스크 귀신 할멈이었는데 뭐 어딜가도 마스크 만큼은 양보가 안된다. )

 

 

한국 도착

 

 

한국 입국 절차가 삼엄해졌다.  마치 옛날에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드나들때 미국 이민국 통과하느라 줄서서 기다리던 것처럼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우선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입국에 필요한 서류 세장을 나눠주며 기입하라고 했다. 한장은 세관통과용 늘 쓰던 것이고, 두가지는 코로나와 관련된 것들.  그것들을 줄서서 기다리며 하나 내고, 또 줄서서 또 하나 내고 뭐 이런 식으로 여러차례 줄을 섰다.

 

 

나는 직장에서 학교 근처 Air BnB 오피스텔을 하나 잡아 줬는데, 그 오피스텔 번호가 주소에서 누락되어 있었다. 내가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고 이메일을 확인하여 오피스텔 번호를 제출해야 그 마지막 입국 관문을 통과 할 수 있었다.  번호 확인이 안되면 통과가 안된다고. 뭐 한참 후 간신히 연락이 되어서 통과를 할 수 있었다. 

 

 

 

보건소 행

 

 

내가 입국 절차를 밟은 동안, 나를 픽업하려고 공항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서 텍스트가 왔다. 관활 보건소에 예약을 해놨으니 그리 바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학교에서 내 자가격리를 도와준 담당선생님이 내게 보내 정보로는 보건소에서 근무를 오후 6시까지만 하므로 그 이후에 도착할 경우 다음날 아침에 예약하고 가서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는데 -- 남편은 오후 7시 30분 예약을 해 놨다니 이것은 무슨 조화인걸까?

 

 

 

남편이 하염없이 늦어지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거기서 근무하는 공무원, 경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모르던 정보를 많이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연락해서 예약을 하게 되었다고. 

 

 

 

사연은 이렇다. 우리 학교 선생님은 해당 보건소의 웹사이트를 찾아보고 거기 적힌 정보를 내게 친절하게 안내해 준 것인데, 웹사이트 정보와는 상관없이 해당보건소에서는 아래 [사진]과 같은 시간대로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학교 선생님에게 이 정확한 정보를 보내주었다.)

 

 

코로나 검사및 보건소에서 준 자가격리 물품

 

 

그 시각에 예약하고 나타난 해외여행자가 나밖에 없어서 가자마자 곧바로 검사를 받았다. 작년 겨울에 Flu A 검사 받을때와 같은 방법과 동일했다. 길다란 대롱을 콧구멍에 집어 넣었다 꺼내고, 입도 아 벌리라고 하고 뭔가 찍어내고.  아 그 콧구멍 검사가 찔끔 눈물이 나게 괴롭다. 딱히 아픈것은 아니지만 찔끔 눈물이 나게 톡 쏘는 데가 있다. 뭐랄까...바다에서 수영하다가 갑자기 코로 물을 삼킬때 코가 찡한거...뭐 그런 느낌하고 비슷핟. 아무튼 순식간에 벌에 쏘이듯 하는거니까 겁먹을 것은 없다. 

 

 

보건소 직원이 조그만 가방에 자가격리 물품을 건네 주었다.

 

  •  손소독제 큰 병 하나
  • 일반 스프레이 소독제 큰 병 하나 (청소하거나 비품에 뿌리는 것)
  • KF94 마스크 세장
  • 방역용 쓰레기 봉투 한장 (내게서 발생하는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면 안된다)
  • 14일간 사용할 일회용 체온계 (1개로 5회 검사 가능하다고 함) 

 

사실 '체온계' 관련 작은 실수가 발생했다.  보건소에서 나를 맞은 직원 분이 이 자가격리 꾸러미를 내게 주면서 "체온계도 들어있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이 꾸러미를 남편에게 주면서 "체온계도 들어있대" 했다.  내가 검사를 받고 나와서 차에 타려는데 -- 그 사이에 꾸러미를 확인하고 있던 남편이 "체온계가 없어" 한다.  그래서 다시 직원에게 가서 체온계 있다더니 없다 뭐 이럭저럭해서 그걸 받아왔다.  

 

 

 

뭐 안내판에는 '차량 이용객' -- 차량안에서 라고 적혀있었지만, 내가 차를 끌고 갔을 때는 차를 주차시키고 와서 검사받으라고 하더라. 저 안내문과 달랐다.  뭐랄까, 뭔가 허둥댄다는 느낌?  이런 현상에 대해서 딱히 불평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담장 직원은 내게 친절했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계셨다. 그냥 시스템이 뭔가 아직 정착이 안되고, 담당자도 갑자기 배정된 일이라 아직 뭔가 모르는 부분이 있고 그런것 같아 보였다.  전국민이 코로나 때문에 난리를 겪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불평을 한다면 내가 모자란 인간이다.

 

그렇게 첫째 날이 지나갔다. 2020, 7, 2.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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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6. 30. 03:13

카맥스 (carmax https://www.carmax.com/ ) 라는 중고 자동차 거래소가 있다. 내가 2009년에 사서 사용하던 차를 팔러 갔다.  한국에서는 아반테, 미국에서는 엘란트라로 팔리는 자동차이다. 2009년에 이 차를 사게 된 이유는 당시에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가 경기를 활성화 시키려고 헌자동차를 가져와서 새자동차를 살 경우에 여러가지 가격 할인을 하게 해 줬다. 그런데 소형차를 사야지 유리하다고 해서 당시에 내가 운전하던 크라이슬러 타운앤컨츄리를 갖다 주고 이 차를 받아왔었다. 

 

햇수는 10년이 넘었지만, 흔히 중고자동차 거래할 때 자동차 세일즈하시는 분이 하는 대사 (영화에 나온다) "이게요, 여교수님이 타던 차에요. 깨끗합니다" -- 바로 정말로 그런 차에 해당되는 차이다. 이 차를 가지고 두 아들의 대학 입학과 기숙사 뒷바라지를 했다. 이 차가 내 곁에 있는 동안 이 차는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경계를 넘나들며 네번을 이사했고 다섯 집에서 살았다.  

 

매클레인의 2층 집에서 살 때 이차를 샀고, 그후에 매클레인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그 후에 메릴랜드로 갔었고, 페어팩스로 갔다가,  이리로 왔다. 이리 온 후에는 일년 가까이 차고에 가만히 있었다. 아들에게 내가 새 차를 물려줬기 때문에 이 차는 할 일이 없어졌다.  그 사이에  고등학생이던 두 아들이 장성하여 사회인이 되었다.  이 차는 내 소중한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던 아주 소중한 친구였다. 

 

우리 왕눈이도 이 차를 좋아했다. 참 많은 추억이 이 차에 스며있는데, 하지만 이제 우리 가족을 돌보는 일에서 벗어났으므로 다른 가족을 만나서 그들을 돌보는게 낫다 싶어서, 차를 끌고 카맥스로 갔다. 

 

카맥스 직원이 차를 꼼꼼이 살피고 가져온 견적이 우리가 미리 이리저리 알아보고 예상했던 가격과 일치했다. 그래서 아들과 나의 결론은 '카맥스'가 믿을만 하다는 것이다. 중고차를 팔아야 할 때 공연히 아는 사람에게 판다던가 해서 나중에 골치아플것 없이 카맥스로 끌고 가면 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사랑하는 차 한대가 내 곁은 떠난다.  그 후에 새로 장만한 파란색 사륜구동 자동차는 우리아들이 잘 쓰고 있다. 엄마가 자동차를 두대나 공짜로 자신에게 주었다고 좋아한다.  줄 수 있는것은 다 주고 싶은게 엄마 마음이지.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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