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5. 1. 22. 13:09

최근에 두가지 상이한 프로그램 (전공)의 신임교수 채용과 관련한 수업 참관을 하고 평가를 한 적이 있다.  한 프로그램에서는 세명의 후보를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네명의 후보를 평가하였다. 교수 임용 커미티에서 서류를 평가하거나, 혹은 모델 수업 참관을 할때 내가 '인간적으로' 느끼는 것은 -- '아이구야, 이 무서운 경쟁을 뚫고 내가 이자리에 있다는 말인가? 내가 어떻게 여기 올 수 있었지?" 

 

 

대체로 서류 심사를 하다보면 너무나 쟁쟁한 교수 후보들이 넘치게 많아서  서류 심사하는 교수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분들하고 일대일로 맞붙으면 승산이 없겠다' 혹은 '아이구야, 나는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겠다!' 뭐 이런 기분. 모델 수업 참관을 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 '내가 떨지 않고 저렇게 수업을 잘 진행할수 있을까? 이렇게 교수들과 학생들이 나를 평가하기 위해서 앉아있는데!' 이런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게 나만 그런가하면 그런것도 아니어서, 얼마전에 교수 후보 평가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나의 느낌을 동료들에게 얘기 했더니, "아이구 나도 마찬가지야!" 하고 동료 외국인 교수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럼에도, 지금 나/우리는 평가하는 입장이 되어서 앉아있고, 나보다 더 훌륭하고 능력있고 똑똑해보이는 후보들이 평가받는 입장이 되어 저기에 있다.   평가하는 우리들 역시 우리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평가받는 자리가 얼마나 떨리는 자리인지 잘 알기 때문에 후보들에 대하여 굉장히 우호적인 편이다.  가능한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모델 수업에 협조적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자로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후보의 장단점이 아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대체로 한 후보자에 대하여 공통적인 평가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까 어떤 후보에 대하여 극단적인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내가 느끼는것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수/강사 후보로서 맛보기 수업을 성공적으로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봤던 성공적인 케이스와 실패케이스를 정리해보면 대충 윤곽이 나온다.

 

 

성공적인 후보들의 맛보기 수업 (30분)

  1. 일단 사람 자체가 정돈되어 보인다. Confident 하다고 해야하나. 당당해보인다. 
  2. 수업 목표와 내용을 정확히 소개한다. (정돈 되어있다는 인상을 준다)
  3. 수업자료를 다채롭게 준비한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Shared Document 를 활용한 공동쓰기나 피드백 주고 받기, 짧게나마 토론하고 생각 교환하기와 같은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여러가지들을 준비하고 시간에 맞춰서 진행한다. 
  4. 맛보기 수업이지만 이전 수업과 이후 수업에 대한 연결점을 분명히 제시한다.
  5. 30분의 수업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맛있으며 재미있다. (심지어 평가하기 위해 모인 교수들조차도 수업에 빠져든다.)

 

 

이러면 그는 채용된다. 이런 후보가 많을것 같지만, 사실 많지 않다.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최고의 후보를 만장일치로 정할 수 있다. 

 

....

 

 

따분하고 재미없는  후보들의 맛보기 수업 (30분)

 

성공적인 후보들의 반대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1. 일단 어수선하다. 수업자료를 제시하는 선에서부터 뭔가 뒤숭숭하다. 정돈이 안되어 보인다.
  2. 수업 목표와 내용을 소개 하는둥 마는둥 하는데 - 이 사람의 수업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왜 가르치는 것인지 정확한 안내가 없다.  참관하는 내내  '그런데 이거 뭐지?' 이런 느낌이 들게 만든다. 
  3. 워드 다큐먼트 열어놓고 그거 줄창 읽어대는 사람. 파워포인트 열어놓고 그거 읽어대는 사람. -- 그 지루한 것을 보면서 참관자들을 생각한다 '수업을 그렇게 하겠다고? 진심?'  당연히 탈락이다.
  4. 자기가 이걸 왜 가르치는지, 대상 학생이 누구인지 명쾌하지 않다. 심지어 참관자가 수업이후에 질문을 해도 우물거린다. 탈락이다.
  5. 30분이 3년같이 지루하다. 참관자들은 이제 들을 생각을 안하고 스마트폰 화면이나 들여다보며 메시지나 확인하고 있다. 
  6.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감점하는 부분이다: 한국계 교수 후보중에는 그것을 겸손의 뜻으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 자꾸만 수줍게 웃고, 어깨를 움추리면서 뭔가 사과하는 듯한 제스쳐를 습관적으로 취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개인 취향의 문제인데 나는 '수줍게 자꾸 웃는' 후보에 대하여 부정적인 편이다. 그분은 겸손의 제스쳐인지 모르겠는데 - 내 눈에는 자신없어 보이고, 나를 불쾌하게 한다.  '영어 못하는 아시아여자들이 면전에서 영어로 모욕을 해도 못 알아듣고 방긋 웃는다'는 편견 같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 적어도 교육받고 말귀 알아듣는 아시아여자라면 그렇게 행동을 안했으면 좋겠다. (이것도 나의 편견일 것이다.)
  7. 가끔 가다가 이런 사람 있다. 뚱한 표정으로 사납게 말하는 후보들 가끔 있다. 우리는 아무 배경지식 없이 잠깐만 그 후보를 보는 것이므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인상은 사납지만 사실은 순하고 착하고 정말 협조적인 사람일수도 있고 그렇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인상은 그 사람이 만든거지 내가 만든게 아니다. '저 사람은 왜 여기와서 화를 내지? 왜 저렇게 못됐지? 저렇게 학생들을 대하겠다고? 누가 좋아해? 나도 무섭고 싫네' 이런 후보들 가끔 보인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인상이 어떤지 한번 살펴보시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것은 그 사람의 용모의 문제가 아니다. 표정을 온화하게 하고 자신감 있게 하지만 따뜻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최소한 사나운 인상을 주면 안된다.

 

 

적어놓고 보니 한심하네. 별로 정보가 안되는 것 같다.

 

 

말이 쉽지 이게 쉬운게 아니다. 성공적인 후보의 맛보기 수업을 볼때는 - '와! 저거 정말 굉장하다! 나도 저렇게 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의 교육자료를 메모해 놓기도 한다. 가르치는게 쉬운 일이 아니고 자꾸만 배워야 한다. 늙은 교수나 새로 임용되는 교수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16. 16:30

역사적으로, 평화시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독재자/폭군'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권리청원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우고 역사책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  저 새끼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할 때, 책을 디밀고 '이게 상식이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평화시에 계엄령을 선포 할 수 없다."

 

 

 

 

 

평화시에 계엄령을 선포하지 말것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16. 06:15

 

한국에서 1년간 지낸 미국인 교수. 그는 CNN이나 BBC 를 통해 한국 뉴스를 본다. 그리고 1월 15일 한국의 대통령이 체포된 뉴스를 보다가 이런 질문을 그가 속한 직장 대화방에 올렸다 "한국 대통령의 체포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왜 한국기와 미국기를 흔드는건가요?"

외국인이 볼때는 태극기/성조기 부대와 촛불시위대 분간이 안가는 모양이다. 

게다가 저 보수단체가 성조기 흔들어대는 광경은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나도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미국인들도 의아해한다 - 왜  한국 사람들이 성조기를 흔드나요? 설명을 하면서 참 수치스러웠다. 

 

 

 

보수단체 -- 나하고 생각이 달라도, 그분들도 생각의 자유가 있다.  추운데 떨기는 마찬가지이다. 좋고 싫고는 생각하고 다를수도 있으므로 이념과 표현의 자유 다 존중한다. 그런데, 그냥 태극기만 흔드셨으면 좋겠다. 내가 외국인들한테 이 성조기 현상을 설명할때 쪽팔리지 않도록.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11. 03:57

한때는 진보인사이고 진보학자로 행세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보수로 돌아섰다는 한 인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진보나 보수는 그 사람의 생각의 틀 같은거라서 그 틀을 바꿀수밖에 없는 어떤 계기나 사건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무엇이 저 사람을 이끝에서 저끝으로 가게 한거지?  들여다보며 의아하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르키메데스도 아니건만 목욕탕에서 문득 깨달았다. 

유레까!

 

아, 그 사람은 애초에 보수냐 진보냐에 아무 상관이 없었던거다! 그 사람이 막 알에서 깨어나와 세상과 타협할 즈음에 당시의 권력이 진보정권이었던거고 그래서 당시의 권력을 빨아주다가  - 진보에서 보수로 권력이 넘어가자 권력의 흐름에 몸을 맡겼던거다.  그 흐름에 몸을 푹 담그고 나니, 그 이후에는 그냥 그 물 사람으로 정착이 된거다.  그 정치학자의 대가리엔 이데올로기고 뭐고 없었던거다. 열심히 권력을 빨아주고 있었던거지. (간단한걸 이제야 깨닫다니...)

 

생각이 안풀릴땐 목욕탕으로 가는거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9. 12:11

 

성경을 읽을때나 혹은 베껴적기를 할 때, 혹은 사람들과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때, 나는 베드로가 나오는 장면에 오래 머물며, 그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어린아이처럼 울먹이게 된다. 오랜 습관 같다. 아마도 2011년1월부터 그러했던 것 같다. 당시에 지홍이는 군대에 가있고, 남편 역시 귀국하여 한국에 있고 찬홍이와 나 단둘이 지내던 시기인데 - 나하고 동갑쟁이였던 제자가 '신년기도회'에 가자고 하여 난생처음으로 제자를 따라서 일박이일로 진행되었던 한국인교회의 기도회에 가게 되었다. 미국교회에서는 이런 행사를 안하므로, 제자를 따라 간 한국교회의 기도회가 꽤나 신기하고 흥미진진했었다. 저녁에 어느 '기도원' 강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리고나서 정해진 숙소에 가서 (호텔방 같은 숙소) 자고 아침에 다시 강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오후에 이런 모든 행사를 마치면서 그제야 빵을 나눠주었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부터 꼬박 금식을 하고 받아 먹는 빵이라서 - 그 하와이안 브레드라고 보통 식품점에서 파는 모닝빵 덩어리 - 꽤 맛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기도회의 마지막 행사로 빵을 나눠줘서 그걸 먹으며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목사님은 베드로와 예수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이야기해주셨다. 대략 기억에 의거하여 옮겨보면 -- '베드로는 평생 어부로 산 선수란 말이지요. 그 베드로가 밤새 아무것도 못 잡고 돌아오는데 호숫가에서 웬 낯선 남자가 서서 물어요, "물고기를 많이 잡았소?" 지친 베드로가 "한마리도 못잡았소"하고 대답을 하지요.  그러니까 그 낯선 남자가 "배를 저리 돌려서 그물을 저쪽으로 내려보시오" 이런단 말야. 프로 어부 베드로로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란거죠. 그렇지만 베드로가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 이 낯선 남자가 범상치 않아 보였던 모양이에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대꾸합니다, "내 밤새 한마리도 못잡았지만, 댁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내가 그러면 한번 해보지요"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 '내가 명색이 어부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거냐. 내가 밤새 한마리도 못잡은 고기를 여기서 어떻게 잡으라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마음을 바꾸고 "댁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내가 댁네의 말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져보겠소"라고 했단 것이지요. 이해하시겠어요 이대목? "말씀에 의지하여.."가 이런 맥락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가 거기 들어있더란 것이지요. 이때 베드로가 눈을 떠요. 베드로가 예수님의 범상치 않음을 바로 자각하고 곧바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가 시작된거죠. 

 

 

그때 목사님이 대략 이런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셨는데, 그 얘기가 내 귀에 꽂혔다. 아마도 심장에 꽂힌듯 하다. 당시에 찬홍이가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매나서스 운전면허시험장까지 데려다주면서 내가 그 이야기를 찬홍이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내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 하이웨이에서 통곡을 했다. 찬홍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 말고 이 대목에서 통곡을 했다. (찬홍이는 엄마가 원래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서, 늘 엉뚱한 짓을 하므로, 크게 개의치 않고 침묵을 지켜주었다. 그날 찬홍이는 운전면허시험에서 떨어졌다. 하하하.) 

 

 

그날 이후로, 나는 성경을 읽다가, 쓰다가, 성경 이야기를 하다가,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 부분이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흐른다. 

 

오늘 성경을 쓰다가 내가 발견한 것은 --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어떤 면에서 -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의 대화 같다는 것이다.  사랑은 늘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던가. 아, 나는 사랑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아, 잊고 있었는데, 그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게 신비한 현상이 일어났었다. (어디에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있으리라. 어느 파일 구석에). 기도회 모두 마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문득 내  왼손바닥에 붉은 십자가가 보였다. 나는 처음에 -- '내가 운전하면서 오다가 운전대를 너무 세게 잡아서 손바닥의 손금같은 것이 눌려서 벌겋게 된건가?' 이런 추측을 했다. 손바닥의 중심의 '명운'이라고 하는 굵고 선명한 손금을 중심으로 십자가모양으로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으므로.  어딘가에 눌린 자국이라고 추측을 했다.  그런데 그 붉은 십자가가 일주일 정도 그대로 그자리에 유지가 되었다.  내가 그 손바닥의 십자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모두들 신기해했다. 물감으로 칠한것도 아니므로 아무리 비누로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고, 분명 손바닥 투명한 피부 안쪽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때 함께 일하던 우리학교 학장님이 그걸 보시고 '이런걸 스티그마 (stigma)라고 해요. 이런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이교수 은혜 받았네! 밥사요!"  (그래서 내가 학장님에게 밥을 샀다.)  하하하. 

 

그게 정말로 기독교에서 일컬어지는 stigma (성흔)이라면 그게 왜 나같은 잡종 인간에게 나타난 것인지..는..잘 설명이 안된다.  어쨌거나, 하느님은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가까이 내 곁에 계시는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살아보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7. 22:16

응원합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5. 16:19

 

새벽에 일어나 쉬엄 쉬엄 외출준비를 하고 여섯시에 출발하려고 밖을 내다보니 눈이 쌓여 있었다. 오늘 2025년 들어서 첫 예배라서 온라인으로 드리기 싫어서 송도에 가려고 생각했는데 - 눈이 계속내리고 있으니 어쩐다?  잠시 망설였지만 -- '내가 눈길을 헤치고 예배드리러 가는데, 하느님께서 알아서 다 살펴주시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송도로 향했다.  텅빈 도로, 차창으로 날아오는 함박눈, 모두 '먼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신비한' 풍경이었다.

송도 집에 도착하여 챙겨온 밥과 국으로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뜨거운 차도 한잔 마시고, 교회로 향했다. 주차장에도 차가 몇대 없었다. 쌓인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교회로 걷는 기분이 유쾌했다. 참 좋구나. 눈이 내리는 가운데 교회로 가는 발걸음이 - 달력속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구나. 

입구에 서서 사람들을 맞이해주시던 부목사님들이 깜짝놀라시며 "이 눈길을 헤치고 오셨어요!" 하고 반가워하셨고, 목사님께서도 어디선가에서 나타나서 - 자리에 앉은 남편을 위해 안수기도를 해 주셨다. 장로님들도 권사님들도 일부러 다가와서 안부를 묻고 반가워하셨다. 우리 가족을 위하여 매일 매일 중보기도를 드려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여기가 나의 집이다.

 

예배를 마치고 학교에 들렀다. 화단에 물을 준지 30여일쯤 된다. 그동안 목이 말랐겠다. 겨울에는 3-4주에 한번 물을 줘도 괜챦다지만 식물마다 물 먹는 주기가 조금씩 차이가 나고, 겨울철이라고 해도 학교건물에는 기본적인 난방이 계속 제공되기때문에 우리집보다도 따뜻하다. 물을 더 자주줘야 한다. 방학에 집으로 돌아간 동료 교수들이 갖다 놓은 화분들도 눈에 띄고. (식구가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계절이다.) 일단 물을 시원하게 뿌려주고, 시든 잎들을 정리해주고, 스킨답서스와 자주달개비 줄기들을 듬성듬성 잘라 담았다.  스킨답서스는 물에 담가 뿌리를 내린후에 화분에 심고, 자주달개비는 곧바로 잘라서 흙에 심으면 된다. 

 

내가 물을 퍼다가 목마른 화분들에 물을 주는 동안, 남편은 시든가지를 정리하고, 화분 주변을 청소해주었다. 즐거운 화단정리. 본된 주일이다. 눈속을 달려 귀가. 

 

 

 

 

 

 

집에서 번식시키기위하여 챙긴 스킨답서스와 자주달래비 넝굴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5. 1. 2. 07:44

 

2025년이 밝았다. 하느님 올 한해도 제가 광야에서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온전히 무사히 주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걷게 하소서. 

 

 

 

[시편]에 이어, 결국 신약으로 왔다.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신약을 쭈욱 걸어갈것이다. 예전에 2011년에 성경필사를 시작해서 2022년 말까지 구약 창세기-시편-신약을 한번 쓴적이 있다.  올 한해 신약을 다 베껴적을수 있을까?  뭐 길을 걷다보면 헤메기도 하겠고, 쉬기도 하겠지만 결국 어딘가에서 끝내겠지. 그래도 두번째 쓰기라고 - 나도 뭔가 이번에는 더 잘쓰자는 생각에, 예수님 말씀은 '빨간색'으로 쓰고 있다. 2011년에는 내가 성경을 잘 모를때 썼기때문에 쓰는 그 자체에 급급했었고 (그것만으로도 은혜였고) - 지금은 그래도 그때보다는 더 많이 알고 익숙하니까, 생각도 해가면서 내 식으로 해석도 해가면서. 오래된 연인들처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31. 05:53

 

신촌 연세암센터 3층 로비 (세브란스 본관과 암센타를 연결하는 입구의 로비)에 '김종학'씨의 그림이 나타났다. 2주전에 들렀을때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크리스마스 전후하여 이곳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임시로 설치한 듯한 각목 받침대가 보이고, 아직 이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 그림소재를 알리는 이름표도 붙지 않았다.  대략 가로 2미터 세로 3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대작이다. 캔버스라고 보기엔 어딘가 허술하여 종이에 그린건가 싶기도 하고. 

 

병원 안내부쓰 옆의 빈 벽에 설치되어있는데, 이 그림에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아마도 암센타의 속성상 위중한 질환과 관련하여 근심에 쌓여 오가는 분들이 다수일것이고,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들이나 치료 받는 사람들이나 지친듯한 표정의 일상이므로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 세상에는 '그림'에서 힘을 얻는 사람도 있는 법이고, 새벽에 이 작품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추운 겨울 아침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거대하게 거기 있던 그림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쿵 뛰고 온몸이 활활 불타듯 따뜻해졌다. 마법의 그림.  나는 이 그림앞에 한참 서서, 화가가 그려넣은 파란 잠자리와,거미와, 나비와 사슴벌레와, 내가 이름을 알아 맞출수 있는 꽃이름들을 하나 하나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나리꽃. 백일홍, 메꽃, 나팔꽃, 금강초롱...  '설악산 화가'라는 별명처럼 설악산의 꽃으로 거대한 화폭을 가득 채우셨구나.

 

 

 

 

여엉 가고 싶지 않은 장소이지만 (누가 암센터를 가고 싶겠는가. 의사들 조차도 자신의 직장이 싫을것 같다),  그래서 그곳에 갈때 이 그림을 볼수 있다면 위로가 될 것이다. 최소한 '아 오늘은 김종학 화가의 그림을 보러가는 날'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는거니까.

 

이 그림이 임시로 왔다가 가는게 아니라, 그냥 여기 영구소장되길 빌어본다. 김종학 화백님 감사합니다! 

환한 그림앞의 남편의 얼굴도 꽃처럼 환해지다. 241230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28. 10:19

 

12월 1일부터 성경 시편 (NIV) 필사를 시작하여 오늘 마쳤다.  이어서 다음편에는 어느편을 쓸지 오늘 생각해보겠다. 평균 하루에 두시간씩 쓴것 같다. 수성볼펜 여덟자루를 다 닳게 쓰고 반자루 정도 썼다. 처음부터 쿠팡에 이것을 한 50자루 한꺼번에 저렴하게 사서, 쓰다 떨어지면 새로 꺼내다 쓰고, 다 쓴것은 별도로 봉지에 담아 보관했다 (나중에 보려고). 

 

시편을 쓰면서 발견한 것 몇가지는 

  1.  일정한 어휘가 반복된다. 시편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어휘들은 : praise the lord, forever, rock, shield, stronghold, refuge, deliverer ...
  2. Blessed are those who 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8복의 노래는 시편에 이미 존재하는 양식이었다. (아, 신약은 대체로 구약의 패턴이 그대로 옮겨진 것이구나.) 
  3. 시편 119편에는 내가 모르는 기호들이 나타나는데, 찾아보니 그것이 히브리어의 알파벳에 해당되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가....나...다...라... 이런식의 부제를 따라서 노래들이 나온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자료를 찾아보려고 한다)
  4. 시편을 필사하다보면 - 반복되는 찬양의 표현으로 인해서 어떤 '힘'을 체험할 수 있다. 신세한탄 하는 노래에서 나의 신세한탄이 떠오르고, 위로를 바라는 노래에서 나도 위로를 바라고 있으며, 찬양의 노래에서 그럼에도 나 역시 기쁜 노래를 부르게 된다. '말'이 내 안에 들어와 아궁이의 불을 지피듯 내 영혼에 불을 지피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필사의 시간이 하루중 가장 속 편하고, 그야말로 안전지대로 몸을 숨기듯 자꾸만 책상앞에 앉아 끄적이게 된다. 나의 살 길을 찾은듯한 기분이 든다. Praise the Lord. 

 

....

 

 

내가 시편을 필사하면서 체험했던 신비로운 경험 사례들과 새로 발견된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니 - 모든 것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남편이 -- "아 그런것 자세히 알려면 온라인에 좋은 논문이나 자료들 많아 성경관련해서 좋은 자료 많아" 하고 아는체를 했다.  그래서 내가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물로 나도 알지, 내가 성경을 옮겨적으며 때로 이해가 잘 안되는 구절이나 구조, 혹은 새로운 발견에 대하여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기위해서 구글 몇겹 들어가보면 차고 넘치는게 좋은 자료라는 것을.  그런데 말씀이야. 그것은 나하고 지능이 똑같은 내 수준의 사람들이 자기가 먹고 소화시키고 게워낸 것을 내가 가서 핥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요.  다른 잡다한 지식은  그렇게 접근해서 얻는게 많지만, 성경 만큼은 --  내 '몸'으로 만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이건 '교제'하는거 같은거야.  내가 어떤 사람과 교제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하는거지. 나는 내가 교제하고 사랑하고 섹스를 나누고 싶은 사람을 티브이나 넷플릭스나 다른 사람들의 논평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싶지가 않아요. 나는 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음성을 즐기고, 손을 만지며 체온을 나누고 이렇게 전신으로 입체적으로 성경을 만나고 싶은거야. 남이 그와 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가 않아요. 꼭 필요할때, 그때 참고자료를 볼 수는 있지만, 그건 꼭 필요할때 뿐이야. 하느님은 논문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 당신이 백날을 성경 논문을 들여다보라고 거기 하느님이 계시는가..."  물론 성경속에만 하느님이 계시는 것은 아니지, 문맹이라 평생 성경을 못 읽는 이라도 믿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갈수 있는거니까.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도 하느님을 만날수 있는거고, 나는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있는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그 원시림 속에서 그분과 교제하는 중이야 지금.  나의 방식으로 그분과 교제중이라는 것이지. 그런 교제에 남이 소화시킨 배설물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어요. 나는 날것의 하느님을 가장 좋아해요."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23. 05:41

어제는 장보러 근처 상가로 향해서 가던중, 길가에 안경점이 보이길래 들어가서 돋보기 안경 두개를 맞췄다. 안경테 한개는 만원, 다른 한개는 오만원. 그런데 안경에 넣을 안경알을 이런 저런 조건으로 맞추어 넣다보니 수십만원이 된다. 두개 합하여 35만원쯤 들었다.  지금 내가 주로 사용하는 돋보기 안경들은 대체로 만원짜리 안경테에, 일반 안경알을 넣어 대략 오만원정도에 해결을 보던 것들인데 - - 내가 바가지를 쓴건가? 아니, 그냥 일반 안경알 옵션도 있긴 했는데 - - 안경 맞춰주는 직원이 이런 저런 옵션을 소개해 줬을때, 나도 문득 내가 내 눈을 너무 '만만히 취급'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던것도 같다.  얼굴에 바르는 영양크림이 한통에 만원에서 수십만원 차이가 나듯, 내 눈을 보조해주는 돋보기에도 근소한 차이로 수십만원 차이가 날수도 있는 일이다. 근소한 차이 때문에 싼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근소한 차이라도 좀더 나은 것을 내 눈에 주기위하여 바가지를 쓸 수도 있는 일이다. 

 

안경사는 내가 돋보기를 쓰고 앉아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컴퓨터 모니터를 볼때의 거리와 사용 시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 볼때의 거리와 시간, 태블릿 사용 시간과 거리, 그것들을 어떻게 뒤섞어 사용하는지 세밀하게 상담하고 고민하고 - 내 눈이 최대한 보호받을 옵션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연구하는 듯 했다. 안경 두개 맞추는데 한시간도 넘게 걸렸으니까. 이건 내가 안경 맞추러 간건지 내 인생 상담하러 간건지 헷갈릴만도 했다. 

 

 

그 안경사는 온갖 기계를 동원하여 내 눈을 들여다보며 상담을 하더니, 최종에는 기계를 모두 치우고, "제 눈을 들여다보세요" 하면서 내 시선이  그의 동공을 바라보게 하고 자신의 얼굴을 이리 저리 돌려서 눈의 위치를 바꾸면서  - 그의 눈동자를 따라서 움직이는 내 눈동자를 보면서 새 돋보기에 직접 마킹을 하기도 했다. 뭔가 촛점이 맞춰질 위치를 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두개의 안경을 맞춰야 했으므로 그의 눈동자에 촛점을 맞추어 시선을 고정시키는 동안 - 나는 방금 만난 낯선 사람의 눈을 깊이 깊이 응시하게 되었는데 - 그의 눈속에 비친 내 모습까지 포함하여 - 삼십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우리 아들들 또래의) 젊은 사람의 눈동자의 선과, 색깔과, 갈색 동공의 그 다채로운 색상들을 들여다보며 - 아, 인간의 눈이 아름답구나. 이 사람이 설마 이런 식으로 내게 최면을 거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순간 했다. 그래서 작업이 끝났을때 말했다, "안경사님 눈이 예쁘시네요. 이러다 정들겠네. 하하."  (당신 눈속에 내가 있고, 내 눈속에 당신이 있을때 우리 서로가 행복했노라 .. 조용필노래.)

 

 

안경점에 간 김에 쓰고 있던 안경다리도 수선을 받았다. 며칠전 운전하다가 떨어뜨리면서 어딘가에 짓눌려서 안경다리가 꺾였었는데 그걸 대충 수리해서 쓰고 있었는데 - 안경점에서 보더니 안전하게 수리해주었다.  이번에는 일년에 3,000원이라는 안경보험도 가입했다. 그러니까 그 안경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나는 안경을 좀 험하게 (운동선수들이 안경끼고 운동하듯) 쓰는 편이라서 내 안경은 몸이 성할날이 없다. 사실 며칠전에도 지난 수년간 사용하던 오래된 돋보기 안경 다리를 부러뜨려서 - 정들었던 그놈을 그냥 버리면서 조금 아쉬워했다. 정든 그 세월때문에. 그게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맞췄던 안경이었지 아마. 정들었지만 - 망가진 그놈을 서랍에 두기보다는 그냥 쓰레기통에 넣었다. 무엇을 기념삼아 보관하는 일 따위는 이제 없는거다. 나는 앞으로 살날이 살아온 날에 비해서 짧다. 멀리 내다보고 무언가를 자꾸 보관하고 쌓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며 치우고 정리하고 버려야 할 때이다. 

 

내가 새로 맞춘 안경은 공장에서 처리를 해야 해서 일주일쯤 기다려야 한다고. 제법 내 눈을 편하게 해 준다는 그 안경 두개에 의지해서 다가오는 한해를 어찌어찌 무사히 잘 헤쳐나갈수 있기를. 무사히 생존할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래본다.  아, 너무나 힘든 한해였다. 다가오는 한해는 이번해보다는 덜 고통스럽기를.  하나님, 제가 건너야 할 강을 불평하지 않고 조심 조심 잘 건넌거죠. 광야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 하나님 제가 지쳐쓰러지게 내버려두지는 마시고요, 제발 우리를 살려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제발 제가 지쳐쓰러지게 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는 다가오는 시간이 겁이 납니다. 그래서 안경을 두개나 맞췄을겁니다. 실족하지 않으려고. 살아내려고.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22. 01:34

 

몇 해전, 매주 금요일마다 동료교수들과 두시간씩 '글쓰기'시간을 가졌을때 대충대충 엮었던 책의 원고를 국내의 십여개가 넘는 출판사에 보냈을때 나는 번번히 퇴짜를 맞았는데, 마침내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편집자가 바로 그 주제의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맞는 원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 수정하거나 다시 쓰거나 하면서 몇년을 보냈다. 코비드가 왔다 가는 사이에 계속해서 수정 보완을 하면서, 지난주에는 맺음말을 보내라고 하더니, 오늘은 책 날개에 실을 저자 약력을 직접 쓰라는 숙제가 와서 그것도 써보냈다.  책은 언제 세상 빛을 보려는가? 크리스마스 이후가 되려나? 아니면 2025년 새해맞이로? 뭐 가장 좋은 때에 나오겠지.

 

그런데 사실 2주 쯤 전에 다음에 나올 책에 대한 계약도 이루어졌다. 지난번에는 원고를 수백페이지 써서 여기저기 뿌리고 거절당하기를 밥먹듯 하다가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이번에는 아직 '원고' 한글자 쓰지 않았는데 - 단순히 '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길 바래'라는 메시지의 계약서였다.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돈도 받았으니, 이제 글을 써야한다. 그래도 내 평생에 - 중학교때부터 방송국에 글 써보내고 상품권 받거나, 대학교때부터 학교 신문이나 교지 이런데 투고하여 원고료 짭짤히 챙기고 하면서 늘 글 쓴후에 글값 받았는데 -- 이번에는 글을 쓰기전에 글값을 미리 받으니 내 형편이 그래도 제법 많이 좋아진것도 같아서 잠시 흐뭇했다. 글을 써서 돈을 받는 일을 하던 가운데 - 이제 선금을 받는 팔자가 되었으니 일취월장 아니던가. 에라 좋구나. 

 

그런데 전에는 글을 써서 보내고 그 글이 소개가 될까, 신문에 실릴까, 책에 실릴까, 출판을 해 줄까 뭐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은 '아이고 이거 덜컥 쓰겠다고 계약하고 내가 글을 못쓰면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근심을 할 때가 많다. 길을 걸으면서, 운전을 하면서, 설겆이를 하면서, 샤워를 하다가,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멍하니 그 책 생각을 한다. 이걸 못쓰면 어떻게 하지? 응?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다.  그 가운데 나는 성경필사만 줄창 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고 피난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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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네살 때, 시골집 사랑방에서 둘째, 셋째, 넷째 고모들이 책상 주위에 모여서 호롱불에 의지하여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며 이따금 우스개 소리를 하고 왁자지껄 웃기도 할때, 내가 중학생이던 막내고모 어깨너머로 "글씨 쓰기 가르쳐줘"하고 조르던 생각이 난다. 고모가 16절지 누런 종이에 가나다라 이런것을 써주면, 내가 그것을 따라 쓰면서 한글을 떼었다. 그러니까 내게 한글을 가르쳐준이들은 내 고모들이었다.  나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집갈 준비를 하던 둘째 고모와, 당시 중학생이던 셋째, 넷째 고모들이 돌려 읽던 시집이며 소설책이며, 교과서들을 떠듬떠듬 읽어나갔다. 너무나 무료하고 심심했던 나머지.  나는 뜻도 모르고 '의적 일지매'를 읽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채 글씨들을 해독하는 재미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위해 서울의 가족과 합류했을때, 엄마는 시골서 데리고 온 작은 딸아이가 얼굴도 더럽고, 머리도 떡지고, 손등은 다 터지고, 사람과 들짐승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수상쩍은 몰골일지언정 길거리 간판을 소리내어 읽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해 하셨다. (서울에 올라오니 온거리에 읽을것 투성이라서, 그리고 그것을 읽을때마다 엄마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고 나도 잠시나마 기를 펼수 있었다.)

 

서울집은 시골집보다 문화적으로 더욱 궁핍해보였다. 단칸방에서 여섯식구가 기역니은 이리저리 포개서 잠을 자야 했으므로. 장난감도 없고, 산과 들도 없고, 새도 꽃도 없고, 강아지도 없고, 나는 숫기도 없어서 이웃아이들과 쉽게 친해질수 없었고, 온종일 방구석 신세였다. 그 당시에 나의 유일한 읽기책은 '엄마의 일기장'이었다. 나는 대체로 신세한탄으로 일관된 엄마의 일기장을 읽고 또 읽었는데, 그 외에 다른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역시 애들이 일기장을 보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식목일즈음. 비가 주룩주룩 오던날. 나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종이를 반절을 접어서 실로 꿰메어 '공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에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넣었다. 만화도 그려넣었다. 그것이 내가 제작한 최초의 책이었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마칠때까지 나는 그런 짓을 꽤 했다. 어릴때는 직접 공책을 만들어서 내용을 잔뜩 채웠지만, 형편이 나아지고 용돈이 제법 생기면서 나는 예쁜 공책들을 사다가 좋아하는 시를 옮겨적고 그림을 그리고 장식하고 그러면서 노닥거렸다. 내가 꾸민 그런 '명시집'같은 것들은 결혼하여 애엄마가 된 셋째, 넷째 고모가 예쁘다며 달라고 했고, 나는 이미 그것을 완성할 즈음에는 그것에 싫증이 났기 때문에 누가 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것들을 내주었다.  일기장들은 일년에 한두번씩 뒷마당에서 태워없앴다. (뭔가 그게 멋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내게는 남아있는 일기장이 없다. 딱 두권의 일기장이 미국집에 있는데, 지홍이 찬홍이의 육아일기. 그것들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내가 한글을 호롱불 밑에서 고모들에게 배운 이래로 나는 늘 연필을 손에 쥐고 살아왔고,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거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쓰고 쓸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22. 01:05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로 2017년 출시작이다. 어딘가 자폐적으로 보이는, 평생을 사회정의구현을 위해 헌신한 - 커튼뒤의 '인권변호사'였던 로만. 영화 중반이 지나가도록 그의 모든 행동거지가 나를 짜증나게 했는데, 나는 그가 '덴젤 워싱턴'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만큼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인물 자체에 그대로 빠져들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사실 영화 중반까지 부엌을 왔다갔다 하면서, 빨래를 거실에 널어가면서, 운동용 자전거에 올라 앉아 운동을 해가면서 그냥 대충대충 볼 정도로 영화에 대한 몰입감도 없었다. 그러다가 중반부터 화면에 몰입하게 되었으리라.  로만은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짜증나는 '찐따'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장점을 꿰뚫어보는 똑똑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만약에 현실에서 로만같은 사람이 내 근처에 있다면 - 나는 그 사람을 답답해하고 슬슬 피했을것이고, 그러므로 그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것이다. 대체로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인간형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그가 길에서 노숙자가 죽어있었을때 - 경찰들이 그 시체를 아무렇게나 다루려고 할때 시체의 가슴에 그의 명함을 넣어두고 집요하게 경찰과 대치하던 장면부터였다. '그는 아무나가 아니야. 그도 어떤 사람이었어. 내가 장례비를 치를테니까 그를 무연고자로 태워버리지 말란말야.' 그가 이렇게 경찰과 대치하는 사이에 죽은것 같았던 노숙인이 부시럭거리고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현장을 떠나버리고 경찰과 로만의 대치도 그것으로 종결된다. ---> 지금 생각해보니, 이 장면 -- 죽은자를 살린것은 로만의 '인간애'였던것이 아닐까? 작가이며 감독이었던 사람은 그런 의도로 이 장면을 만든것은 아닐까?

 

아, 저 짜증나게 답답한 저사람이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 영화를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로만이 십만달러를 벌어가지고 해변으로 갔을때, 바다에서 혼자 즐길때, 나는 내심 '영화가 그냥 저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바랬다. 그냥 저렇게 평생 답답하게 사회정의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에게도 저런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그를 응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는 우리가 원하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잠깐의 행운/행복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그는 스스로가 피고가 되고 스스로가 원고가 되어 자신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글을 쓴다. 그는 회개하고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려 최선을 다한다. 그의 마지막 독백은 (기억에 의거하여 정리해보자면) -- 우리가 평생을 바쳐서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나 실수를 저지르고 과오를 범할수 있는데, 그럼에도 과오를 저지른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되돌이켜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작은 과오는 용서받을수 있다 -- 대략 이런 내용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고발하고 그럼으로써 나는 용서받을수 있다 뭐 그런 거다. 영화 마지막 대사를 다시 돌려봐야 하려나? 

 

나는 문득 '노회찬'씨를 떠올렸다. 그가 왜 죽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가 무슨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는 뭔가 과오를 저질렀을수 있다. 하지만 그의 과오가 그의 목숨만큼 커다란 과오였을까? 사형선고를 받을 만큼의 과오였을까? 시절이 수상할때마다, 나는 그를 떠올린다.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가끔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노회찬씨가 그 몇안되는 사람들중 한사람이다. 

 

로만은 법의 엄중함을 알고, 그 법의 잣대를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스스로를 고발하였다. 비록 실수를 저질렀으나 그는 그의 과오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우리나라에서 법 잘아는 사람들, 검사들, 그들이 그들의 잣대를 그들 스스로에게 적용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겠지. 우리나라 사법연수원에서 틀어줘야 할 영화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물론 나의 도덕성에 대하여도 역시 ...할말이 없다....

 

오랫만에 제대로 된 좋은 영화를 봐서 리뷰를 남겨본다.  (영화 다섯편 리뷰하는 세션하나 만들까 생각해봤다. 사회정의와 관련된 잘 만들어진 영화 다섯편을 선정하여...)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17. 10:59

ER

일주일 내내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지만 감기는 점점 더 심해지는 듯 했다. 마침내 세번째 방문했을때, 의사는 폐렴으로 번진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 소견은 애매했다. 폐렴은 아니지만, 뭔가 폐렴으로 발전될것 같은 뿌연것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항생제를 처방했다고 했다. 영양수액도 맞았다. 그리고나니 한두시간은 반짝 - 마약이라도 한듯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이 되자 오한이 나기 시작했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온몸이 망가지는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통증은 아니지만 통증보다 더 기분나쁜. 그렇게 세시간쯤 뒤척이다가 가까이 사는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퇴근한 시동생과 동서가 함께 왔다.  시동생은 근처 약국에가서 체온계를 사왔다. 체온을 재보니 39.5도.  내가 늘 갖고 다니던 타이레놀을 송도집에 놓아두고 온듯. 급한대로 아스피린을 두알 먹었다. 시동생부부가 근처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다. 병원에 가서 다시 체온을 재니 38.5도로 내려와있었다. 열때문인지 혈압도 미친듯이 올라가 있었다 (내 혈압이 그렇게 높게 올라간 것은 본적이 없다).

 

그래도 응급실에 가서 등록을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혼미하던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고, 부들부들 온몸을 떨던 오한도 가라앉았다. 의사는 내가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받았던 지난 일주일간의 약제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아마도 의료보험 관련해서 전산시스템에 내가 처방받은 것들이 공유되는 모양이었다.)

 

의사는 내게 세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1) 간단히 해열제및 관련 처방약을 받아가지고 귀가한다 (견딜만 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

2) 응급실에서 수액및 해열 진통제 처방을 받으며 한두시간 경과를 본후에 퇴원한다. (불안하면 이것도 괜챦다)

3)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일수 있으므로 엑스레이, 초음파등 필요한 검사들을 싹 다 진행한다 (돈이 꽤 들었이지만 불안하면 이 방법도 추천한다)

그리고나서 의사는 덧붙였다. "응급실에서 진행하는 검사나 약제 이런것들이 응급상황이라서 의료보험이 안되는 것이 많고 비용이 많이 들어요." 

 

나는 내가 오늘밤에 죽을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그리고 직장 다니는 시동생과 동서가 한밤에 나때문에 응급실에서 보초를 서야하는 상황도 딱하고해서 긴급 약 처방만 받아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엉덩이에 주사 맞고, 해열 소염제 사흘치 처방받고.  그러고 계산하니 67,000원이 나온다. 음..응급실은 뭔가 비싸구나... 그래도 온나라가 의료비상체계에 들어가있고,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는 판국인데, 나는 응급처치를 탈없이 받을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다. 

 

내 평생 처음으로 내 몸이 아파서 응급실 도움을 받은 날이다. 그래서 기록에 남긴다. 내가 이 세상 살면서 이제야 처음으로 응급실 신세를 졌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동안 별 탈없이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해서, 그것또한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달이 밝았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9. 08:55

 

우원식 오빠! 다시 한번 담장을 넘어 주셈! 화이팅!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9. 08:48

 

 

 

한동훈 한덕수 동반 퇴장하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7. 18:07

윤석열 OUT!

내란 동조자 OUT!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5. 06:42

 

인천 송도에는 T상가거리가 있고, 그곳에 M 이라는 매장이 있다. 집에서 사용하는 부엌 용품이며 침구류 커튼 등 가정용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매장이다.  근처에는 H 아웃렛도 연결되어 있어서 유동인구가 일정하게 있는 편이다.  우리 부부도 밥하기 싫을때는 이곳으로 나가서 밥을 먹고, 소화시킬겸 산책삼아서 상가거리를 걷다가 그 M매장에 들르기를 좋아한다.  나는 예쁜 컵을 들여다보는 편이고, 남편은 후라이판에 관심이 많다.  이 매장의 좋은 점은 실용적인 가격대의 예쁜 물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고, 내가 구경하는 동안 점원들이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따금 꼭 필요한 물건을 발견하면 사기도 한다.

 

어제도 매장에서 내가 평소에 '사야지'했던 것을 발견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하도 빨아 쓰다보니 나달나달해져서 새로 살때가 된 것인데, 마침 그것을 할인판매하고 있으니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것을 사려고 집어 들었다가 - 그냥 내려놓았다. 그리고 중얼댄다, "아 줄서서 돈내기 귀찮아. *팡으로 주문하면 되는데 뭐." 

 

 

 

사실 그 시간대에는 매장이 한산해서 값을 치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카운터에 가져가서 카드만 내밀면 그만일터였다. 그런데 내가 왜 마음을 바꾼 것일까?

 

그것을 들고 계산을 하려고 머리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본 순간! 바로 그 순간! - 나는 기억해냈다. 내가 이 매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곳이 계산카운터라는 것을.  그랬다. 이 매장은 구경하기에는 참 좋다. 그런데 무엇을 사가지고 나올때 기분이 애매하게 불쾌하다. 아주 아주 애매하게, 설명하기 힘들정도로 애매하지만 그러나 느낌은 분명한 '불쾌감.'  무엇이 나를 애매하고도 선명하게 불쾌하게 만드는가 하면 - 계산을 치르기위해서 카운터에 도착해서 계산을 마치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 카운터앞에 서있는 것이 애매모호하게 불편한데 - 카운터 직원의 태도가 어둡고 침침하고 불편해서이다.  그 매장은 참 이상하다. 카운터 직원이 누구이건 그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모두 불편하다. 표정도, 언어도, 행동도, 어딘가 '내가 죽지 못해서 여기 있는거지. 너같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서 여기 있다는것이 참 따분하고 한심한 일이고, 나는 일을 하기 싫고, 네가 이걸 사거나 말거나, 나를 귀챦게 하지 말아줘' 이런 메시지를 온몸에서 뿜어내고 있는것 같은 표정과 말투와 자세. 

 

이게 나만 이렇게 느끼는건가 싶어서 동료에게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매장에 가서 예쁜거 구경하는거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뭔가 사갖고 나올때 기분이 아주 나빠져. 불쾌해. 왜그런지 모르겠어" 했더니 내 이야기를 듣던 동료도 말했다, "거기 직원은 어딘가 사람을 깔보는것 같아. 나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 그러니까 나만 '미친X'이 아니었던거다. 나하고 비슷한 느낌을 갖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었던거다. 

 

그러면 나는 왜 그 카운터를 싫어할까? 나는 카운터 직원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누구가 되었건 거기 서있는 사람의 태도에는 일관되게 '어둡고 불행하고 따분한' 아우라가 있다. 거기서 느껴지는 그 불행감은 - 거기 서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듯 하다. 누구나 거기 서면 그렇게 된다면 - 그 자리가 문제다. 그 조직의 문제. 그 조직은 거기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그 매장에 비해서 훨씬 저렴한 다이* 매장을 생각해본다. 천원혹은 몇천원짜리 물건으로 가득찬 그 매장의 직원들은 대체로 활기차고, 누군가 질문을 하면 활기차고 신속하게 안내를 한다. 나를 무시한다거나 본인들이 스스로 불행한 표정이라거나 그런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적어도 불행해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건 '조직문화'의 문제처럼 보인다. 

 

T 스트리트의 M매장을 나는 여전히 좋아할것이다. 들러서 구경하는 곳으로. 하지만 계산대의 불쾌함 때문에 거기서 물건을 사는 일은 좀체로 없을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3. 18:09

6시 이후로 금식하라길래 4:30에 이른 저녁을 먹고, 6시까지 신나게 단감과 귤과 요거트를 먹었다. 그리고 일체 물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새벽에 잠이 깨어, 건강검사소에서 챙겨 오라는 것들을 챙기고 - 성경쓰기를 먼저 할까, 밥을 먼저 안칠까 잠시 고민하다가 - 밥을 안치고 나서 성경쓰기를 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밥을 안쳤는데, 밥에 이어서 자동적으로 아침 밥상에 올릴 이것저것을 씻고 다듬고 데치고.  무슨 정성이 뻗쳤다고 시금치까지 꺼내어 다듬어 씻어서 데치고 헹궈가지고 그걸 무쳤던거다. 

 

그게 사단이었다.

 

시금치.

 

그러니까, 남편이 '오징어숙회'가 먹고 싶다고 지난 저녁에 장봐다 놓은 것을 향긋하게 데쳐서 썰어서 접시에 담을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신이 온전했다.  이것을 맛보려고 입에 넣으면 안되지. 나는 금식해야 하니까. 나는 얼마나 기특한가, 아침부터 남편을 위하여 진수성찬을 차리고 있지 않은가! 제법 스스로 기특하여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시금치 나물로 옮겨간 것인데, 시금치 나물의 간을 간장으로 할 것인가 소금으로 할 것인가 약간 고민하던 사이에, 그만, 내가 위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살짝 망각하고, 소금으로 방향을 잡고 소금과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주물주물 하다가 그만 '간'을 보기 위해서 그걸 한잎 입에 넣고 우물우물 맛을 봤던 것이다.  향긋하다, 고소하다, 싱싱하다. 좋았어 좋았어. 간도 딱 맞네! 하고 스스로 감탄하다 말고, 그제서야 내가 '금식'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목에 손가락을 넣어서 그 시금치를 토해내려고 별짓을 다 했지만 - 아무래도 식도를 내려가던 시금치가 긴급소환장을 받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식도벽에 딱 달라붙은것일까?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하는수 없이 나머지 작업을 마저하고 시금치 나물이 포함된 칠첩반상을 남편에게 바쳤다. 

 

"시금치 딱 한잎을 삼켰을 뿐인데요..." 

 

내시경 담당자는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검사는 불가능합니다. 다른 날짜를 새로 잡으셔요."

 

그래서, 사정사정 통사정을 하여 내시경 검사를 내일 아침으로 다시 잡고, 나머지 다른 건강검진항목들을 채우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구박하던 담당자가, 내가 다른 검사를 모두 마치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 "또 금식을 하셔서 어떡해요, 힘드셔서" 하고 제법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 줬다. 아마도 아까 나를 구박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말해줬다.

 

"괜찮어유~  뭐, 금식기도 기간으로 생각하면 돼유~ 금식기도 하고 오겄슈~" 

 

시금치는 - - - 사랑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1. 30. 13:35

 

어제, 산에 산책나갔다가, 눈에 쓰러진 삼나무가 보이길래, 가지들을 꺾어가지고 왔다.  산길 다 내려오면 도로 건너에 다이소가 있어서, 다이소에 들러서 포인센티아 핀 세개 한봉지와, 크리스마스 덩굴 그런것 사가지고 왔다. 

 

 

오늘 오전에 청소하고나서 삼나무들을 엮고 포인세티아 핀을 하나씩 장식으로 꽂아 주었다.  하나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도시가스관에 매달아 놓았고, 또 하나는 향긋하라고 침실 창가에 (커튼 끈에 그냥 감아 놓았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는 달력에 걸었다. 

 

 

 

삼나무 잔가지 잎들이 남았길래, 찻잔 받침으로 쓰니 좋다.  천주교에서는 이런 식의 뭐가 있다던데 잘 모른다. 그냥 이렇게 잔을 받치고 차를 마시니 내가 융숭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든다. 

 

 

 

다이소표 크리스마스 덩굴 두줄로 아파트벽에 붙은 인터폰을 칭칭 둘러감아주었다. 역시 다이소표 장식품으로 모니터 화면도 가려버리고. (사실 우리집의 방문객은 극히 제한적이고 인터폰이 울리는 일은 거의 없다. 모니터를 가려버리니 '감시자'가 사라진것 같아 흐뭇한다.) 

 

 

산에 가서, 눈에 쓰러진 소나무나 삼나무를 발견하면, 나뭇가지를 잘라다가 집안을 장식해야지. 숲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싶으니까. 숲의 향기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