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2. 11. 30. 17:49

에스겔 34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3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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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에는 동료들과 작은 기도회를 진행하는데, 오늘 기도회 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사람들을 기다리며 무심코 펼친 성경책에서 '무시무시한'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성경책 통독을 여러차례 하였으므로 분명코 이 부분을 여러차례 읽고 지나쳤겠으나, 오늘 나는 이 부분을 난생 처음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눈으로 읽되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이것은 성경속에 실린 '위정자의 길' 가르침이구나.  크거나 작거나간에 어떤 집단의 리더가 되었을때 반드시 살펴야 하는 덕목이구나 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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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11. 30. 16:01

 

인천 송도에 있는 '아트센터인천'은 별명이 '케네디센터'다. 그냥 내가 그렇게 부른다. 매클레인에 살때, 케네디센터까지 걸어가기도 했던 -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연장이었다. 그래서 케네디센터 무대에 올리는 참 좋은 각종 공연들을 비교적 싼 값에 (그냥 일찌감치 제일 싼 표를 사면 좋은 공연을 부담이 적은 가격에 볼 수 있다) 마음껏 즐길수 있었다.  집 근처 운하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나갈때는 '포토맥'에 간다고 말한다. 포토맥강변을 걷듯 운하 주변 공원을 걷는다는 뜻이다.  미국에 가면 '여기는 한국 어디 같다'고 말하며 한국과 닮은 구석을 찾아내듯, 한국에 오면 여기는 플로리다 혹은 버지니아 어디같다는 식으로 미국에서 정들었던 장소들과 닮은 곳을 찾아낸다.  그래서 '아트센터인천'은 내게는 '케네디센터'다.  이 두 공연장의 유일한 공통점은, 케네디센터 베란다에서 포토맥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것 처럼, 아트센터 인천에서는 베란다에서 인천바다를 내다볼 수 있다.

 

김정원의 낭만가도 9월 콘서트가 참 달콤하고 좋았기때문에 11월 콘서트도 오늘 다녀왔다. '애환'이라는 주제처럼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무겁고 우울하게 여겨지는' 음악들이 연주되었는데 - 무겁고 어두웠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라디오에서 그 음악이 나오면 나는 '무거워서' 그냥 채널을 돌렸을테지만, 음악당에서 연주자들이 정성스레 연주하여 들려주는 음악은 채널을 돌릴 필요도 없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게 여겨졌다. '이 음악은 집에서 찾아 듣기 힘든, 음악당에서만 들을수 있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찾아듣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딘가 아름다운. (그래서 연주자들이 도전해보는 그런 곡이 아닐까?)

 

오늘 음악회에 오점을 남긴것은 음악회를 마무리하는 김정원씨의 '이야기'였다. 그는 그가 오늘 연주한 곡을 연습하는 내내 너무너무 힘이 들었고 우울했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또 누군가 손가락을 다쳤다고 그래서 연주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고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 '연습할땐 누구나 다 힘든게 아닐까? 더우기 어두운 음악이니 더 힘들었을것을 짐작은 하지만 , 그걸 지금 관객들한테 얘기 해야만 해?' 이런 투덜거림이 내게서도 흘러나왔다.  내가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남의 애환에 공감을 못하는걸까? 아니 그렇지는 않다. 나의 문제는 내가 공감능력이 너무 넘쳐서 다른 사람이 힘든것만 봐도 내가 힘이 빠지고, 내가 더 못견디겠다는거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면 나는 더 기운이 빠진다.  그런데 내가 음악회에서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고 기운을 차리고 싶어 거기 간건데 거기서도 연주자님 힘들었다는 말에 힘을 빼야 하는가? 그런 신세한탄은 관객한테 하지 말고 연주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해야 하는것 아닌가?

 

대중음악가들을 생각해보았다. 유명 트롯 가수가 부친상을 당했어도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거나 뭐 그런 사례들. 그분들이 무대에서 부친상 당했다고 울기라도 하던가?  아니지. 그분들은 프로페셔널들이니까 자신의 상황과 무대를 분리할 줄 안다. 광대는 슬퍼도 웃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대 매너이니까.  김정원씨, 우리가 아끼는 음악가이지만 - 자신이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무대에서 신세한탄이나 힘들었다는 말씀을 생략해주길. 보는 사람이 피곤해진다. 

 

그래서 나의 결론: 나는 철저하게 무대매너로 이 세상을 살아가겠다. 징징거리지 않겠다는 것이지 뭐.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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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11. 27. 01:31

봄-여름-가을: 누군가에게 등떠밀리듯 어쩌다 맡게 된 '평생교육' 프로그램 일년분 과정을 모두 마쳤다.  홀가분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가 않은것이 내년에 내가 이것을 계속해야 할 지, 내려놓고 손털고 가뿐하게 살아야 할지 갈팡질팡 하는 기분이다. 

 

 

어쨌거나 일년 가까이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내며,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리고 연구하여 발표까지 하러 돌아다니면서 어찌어찌 나도 '평생교육전문가' 반열에 오른 듯한 상황인데, 일년 과정을 모두 마치며 'So what?' 질문에 대하여 갈피가 잡히는 듯 하다.

 

"So what?" (그래서 뭐? 어쨌다구?). 대학이 제공하는 무료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열심히 이수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학생에게 이 프로그램은 어떤 의미인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나는 그것을 묻는 것이다. 

 

그 너머의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면 - 그저 '취미'로 배우고 흘러가다가 그만두고 마는거라면 -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그 시간에 술이나 마시고 방구석에서 우울증을 키우기보다는 바람쐬러 나가서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들이 제공하는 무료 교양 교육이라도 받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인가?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방향은 대략 세가지이다:

 

1) 취미로라도 이런저런 교양을 쌓은것 자체가 안하는 것보다는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냥 거기까지).

 

2) 교양으로 공부를 하다보니 방향이 잡혀서 - 그 방향으로 쭈욱 가보기로 했다 (축하드린다. 방향을 찾으셨다니 감사하다. 공부가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나보다).

 

3) 공부와 행동을 병행하기로 했다 - 이제부터는 공부와 함께 '자원봉사'를 체계적으로 해 보겠다 (축하드린다. 맹목적인 교양 수업에의 탐닉보다는 뭔가 행동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년에 이 프로젝트를 키워나가게 된다면 2)번과 3)번 관련 과목들을 개설해 나가서 궁극적으로 수강생들이 삶의 어떤 방향을 잡아나가실수 있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더 하게 되거나, 혹은 좀더 의미있는 삶의 장면으로 걸어들어가거나.  공부가 그냥 교실에서만 끝난다면 그 공부가 삶과 연결이 안된다면 ... 나는 그런 '공부'의 현장에 있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도 나의 편견일지 모른다. 인정).

 

 

 

그런데 한편 이런 것들이 모두 부질없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건 내가 좀 지쳐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 내려놓고 주님께서 이끄시는 방향으로 무작정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방향이 무엇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설마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평생교육'인건가? 알수가 없다.

 

https://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2203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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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11. 18. 11:40

11월의 서해바다

 

아이폰 사진기 파노라믹뷰로 찍음. 멀리 송도와 인천대교.

 

날씨가 하도 좋아서 - 쌓이고 밀린 일을 내버려둔채 섬에 가서 썰물 소리를 한참 듣고 돌아옴. 천국의 하루였음.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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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11. 16. 18:07

수인선 소래 철길-다리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소래포구와 어시장, 2022년 11월 16일 오후

 

점심시간에 근처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채소와 과일을 사 차에 싣고, 배가 고파서 (농수산물 시장에는 변변한 식당이 없다) 소래포구로 향했다.  원래는 소래어시장에서 생선구이백반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마침 주차장 앞에 '초당두부' 식당이 보이길래 그리 들어가 아주 맛있는 초당두부를 배부르게 먹었다.  배가 부르니 장보는 것도 다 귀챦아져서 새우과 굴만 사가지고 눈부신 햇살아래 산책이나 슬슬 하다가 돌아왔다.

 

지난 시월에 나는 11월 중순의 햇살속을 내가 한가로이 산책할거라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내 상황은 굉장히 암담했다.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을 지나고 있었다.  그 죽음의 골짜기에서 이렇게 가볍게 빠져나오리라고는 상상도, 예측도 그 무엇도 할 수 없을정도로 내 상황은 암담했었는데 - 지금은 햇살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 

 

오, 나의 하나님. 내 하나님 없이 나는 단 하루도 살아 있기 힘들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하루하루 기적 속을 걷듯이 놀라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고통가운데서 더 선명하게 잘 보인다, 마치 어둠이 깊어야 빛을 더 크게 자각하듯이).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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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11. 15. 12:31

내 연구실 한쪽 벽에는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 사진이 많이 빽빽이 붙어있다.  이 사진들은 에디오피아, 캄보디아, 우간다, 그리고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내게 우편으로 온 것들이다.  외국의 어린이들은 한해에 한두번씩 근황을 알리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 '증명 사진'을 보내주는데 국내의 어린이는 단 한장의 사진 외에 오년가까이 성장 기록이 오지 않고 있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추측하는 편이다. 

 

 

모두 '모어린이재단'을 통해 결연된 아동들이다. 국내의 어린이는 선천성 장애와 질환을 갖고 태어나서 이따금 수술도 해야 하는 소녀이다. 이 재단에서는 그 소녀를 나와 결연시키기에 앞서서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연결시켜도 괜챦은지 내게 물었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데 그 어린이가 소년인지 소녀인지 장애가 있는지 천재인지 그것이 중요할까? 그런데, 어떤 후원자에게는 그런 것도 문제가 되길래 내게 묻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나는 매달 일정액이 내 월급에서 나갈뿐 딱히 후원하는 아동과 살뜰하게 관계를 맺을거라는 상상도 안했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로 5년여 동안 나는 국내 어디선가에서 자라고 있을 그 어린이를 위해서 별도로 선물을 준비한다거나 편지를 쓴다거나 하지 않았다. 이따금 어린이 재단에서 후원어린이에게 편지를 전달하거나 선물을 전달할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나는 그냥 지나치고 있다. (그냥 내가 바빠서, 여력이 없어서, 딱 거기까지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에디오피아, 캄보니다. 우간다의 어린이들은 가끔가다 - 일년에 한 두차례 - 최근 사진과 성장 소식을 보내준다.  (그런데 왜 국내 어린이 소식은 안보내주는걸까? 동일한 어린이재단인데 해외 아동과 국내아동에 대한 관리 방법이 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내 연구실 한쪽 벽이 그 어린이들의 성장사진으로 채워지고 있다.  사람들이 내 연구실에 들어와서 그 사진들에 관심을 표하면 -- 언젠가 내가 비행기타고 가서 만나보게 될 친구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편이다. 

 

 

 

가끔 기분이 저조하고 우울할때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잘 외워지지 않는다. 그냥 이름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 아 내 월급에서 이 어린이들에게 일부가 흘러가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의미가 있어. 내가 버는 돈도 조금은 의미가 있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런 생각들이 내게 위로가 되고 나의 영혼을 순화시킨다. 내가 까마득히 먼 어느 나라의 아주 예쁜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느날 TV에서 탤런트 김혜자씨가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이 어느 단체를 통해 외국의 어린이들에게 흘러간다는 방송을 보면서 그래서 그 노인 여배우가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얘기를 보면서 그의 삶이 거룩하게 여겨졌었다. 물론 액수를 비교하기는 힘들정도로 나의 기부금은 먼지만큼 미미하지만 - 우리 삶을 거룩하게 하는 요소를 나 역시 먼지만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재단에서 후원결연된 어린이의 사진을 보내주면서 이들이 명시하는 메시지가 있다. 이 어린이의 사진을 개인 소셜미디어 같은데 올려서 친구들과 공유하거나 퍼뜨리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후원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자랑을 할수는 있지만 - 그 자랑에 어린이의 사진을 포함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지침에 따라서 나는 그 어린이들의 사진을 원본그대로 벽에 붙여놓고 본다. 혹은 내 연구실을 찾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하고 물으면 그냥 '언젠가 내가 찾아가서 만나보게 될 친구들'이라고 소개하고 지나친다. 누군가 - '나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하고 물으면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이걸 시작하면 어떤 '상'을 받는지 얘기해준다. 그 '상'이란 - 내가 세계의 어느 구석의 어떤 귀한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거룩함, 안도감, 기쁨을 뜻한다.  통장에서 나가는 액수보다 그 '상'이 훨씬 크다. 

 

그런이유로, 내 포스팅에 나의 어린 친구들의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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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11. 1. 08:47

아래 글을 적은 것이 2021년 6월 15일.

 

그리고 영주권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카드를 발급한 것이 2022년 10월 14일. 장장 16개월만에 새로운 영주권을 발급 받았다. 코로나 여파로 모든 서류 심사 과정이 느려지긴 했어도, 영주권이 사실상 유효기간이 지난후 10개월 만에 재발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음, 하도 연락이 없어서 '그래 맘대로 해라, 신경도 안쓴다' 하고 있었더니 USCIS에서 이메일로 '발급'을 알리는 연락이 왔고, 그리고 주소지로 새로운 디자인의 새로운 10년을 여는 신분증이 날아왔다. 

 

그 사이에 일신상에도 사연이 있었다. 일단 2021년 6월에 재발급 신청할때 사용했던 '주소'지가 그 사이에 두번 변동이 있었다. 최근 몇개월 전에도 주소지 변경을 해야 했는데 - '혹시 주소 바뀌면서 주소지가 막 뒤엉키면서 내 영주권 배달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주소지가  급작스럽게 자주 바뀌는것도 재발급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이런 염려도 있었다. 

 

주소지 (1) 재발급 신청시 내가 거주하던 주소지 (2021년 6월) 

주소지 (2) 잠시 이사했던 인근 아파트 (2022년 1월) 

주소지 (3) 집을 사면서 영구적으로 사용하게 된 주소지 (2022년 6월) 

 

 

 

자 이렇게  주소지가 급변했다.  그래서 실제로 USCIS에서 이메일이 날아올때 이들의 메시지는 - '네가 최근에 주소지를 변경했는데, 우리는 변경 이전의 주소지로 네 카드를 보냈다. 혹시 중간에 분실되면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아서 재발급을 받도록 해라 (읽기도 싫다, 재발급 신청을 또 해야 한다니!!!) -- 그런데 우리가 트래킹 번호 (우편 추적 번호)를 줄테니 네가 잘 찾아봐라, 영 안오면 분실신구하고 재발급. 블라블라. 

 

 

보내준 트래킹 번호로 추적을 해보니 카드는 (2)번 주소지로 착착 가고 있다가 거기서 빨간불이 켜지고 (Forwarded) 라는 메시지가 뜬다. 다른 주소지로 이전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3)번 주소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미국 우편서비스는 돌쇠와 같은 신뢰감을 준다.  미국 우편서비스는 비록 조금 느리지만 우리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만세!

 

자 새 카드를 가지고, 이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우리가 세례받은 교회에 가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리라...이런 상상을 해본다.

 

 

 

 

 

2022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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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영주권의 만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10년이 흘렀다. 푸르던 청춘이 머리 희끗한 아주머니로 변하던 사이에 10년이 흘렀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하여, 이걸 어떻게 하는거지? 고민을 조금 하다가 구글링으로 대충 자료 살피고, 뭐 그냥 하기로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Hjri7iiEgE&t=616s 

온라인 정보 중에서 내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 정보이다. 이 정보를 올려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정말, 오후에 '영주권 만료일이 언제지?'하고 들여다보다가, 앗 지금 갱신 신청할수 있는거네! 문득 깨닫고 - 구글링 좀 하고, 착수하고 한시간쯤 걸려서  - 착수 -완료하였다. (파일링 비와 지문비 합하여 540달러를 온라인으로 지불했고 영수증도 받았다.)  

음, 이민국 일처리가 십년사이에 굉장히 친절해지고 신속해졌다는 느낌.  그 전에는 변호사님이 처리해주었으므로 내가 그 절차를 잘 알지 못하였으므로 비교는 불가능하다. 전자정보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니까 온라인으로 처리되는 일들은 참 간단하고 신속하게 진행되는것 같다.

 

내가 이 작업을 위해서 위에 링크된 정보와, 또다른 분의 설명 이렇게 두가지 유튜브 정보를 리뷰했는데, 또다른 분의 설명과 위의 설명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또다른 분의 정보가 약 6개월 전의 정보.  그런데 6개월사이에 프로세스는 더욱 간단하고 쉬워진 모양이다.  내가 6개월 전에 갱신신청을 해야 했다면 나는 첨부서류를 몇가지 더 장만했어야 했을것이다.  이번에 신청하면서 내가 별도로 첨부한 서류는 - 그냥 내 그린카드 앞뒷면을 전화기로 사진 찍어서 첨부한것.  그것이 전부였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하느님만이 아실일이고, 나는 흘러가는대로 살면 된다.  내가 지금 이나이 먹도록 살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 무슨 일이 일어나건 결과가 어찌되건 우리는 그저 흘러간다는 것이다. 전전긍긍 할것도 없고, 잔머리 쓸것도 없고, 그냥 굵직굵직하게 -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면 된다. 

 

2주 전에 동료교수들과 기도회 할때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있었다. "I decided to be happy. Simple."  무슨 얘기였냐면 - 나는 진급이나 높은 자리 혹은 더 큰 명예나 재산 이런것을 탐하지 않고, 지금 받는 월급,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그것이 지상최고의 행복이라고 믿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것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가장 최고의 것들이라고 그냥 믿어버리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노력을 기울여 무엇을 했을때 - 그것이 잘 되건 안되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어버리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그러니까 - 나는 그냥 행복하기로 결정했다. 

 

 

https://americanart.tistory.com/3138   -- 며칠후 영수증 및 접수증이 날아왔다. 일사천리 신속하게 일이 진행되는 듯하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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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9. 29. 13:50

백남준 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

 

지난 여름에 기획한대로 일전에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필드트립을 다녀왔다.  지금 나는 내년에 진행할 여러가지 필드트립을 기획하고 있다. 캠퍼스에서 버스로 두시간 이내에 닿을만한 위치에 있는 '국제적'인 규모와 명성을 지닌 전시장이나 역사성, 사회성을 가진 장소를 주로 물색하고 있는데 미술관, 공연장, NGO 등 다양한 장소들에 대한 목록을 키워나가고 있다.  내가 추진하는 필드트립은  가서 '구경'하고 오는 식이 아니고 - 가서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돌아오는 수업이다. 

 

 

필드트립외에도 교양을 갖춘 시민들의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줄 각종 이벤트도 역시 기획하고 있다. 그 중에는 회화수업과 전시회를 잇고, 합창수업과 합창발표도 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으면 어느날 누군가 '상담할게 있어요'하고 기획서를 들고 나타난다. 그 분은 순수하게 인생 오래 산 내게 인간적으로 자신의 진로 고민을 나누고 상담하러 온 것인데 그의 고민을 듣다 말고 나는 무릎을 친다. "그 기획서 여기 놓고 가세요. 그리고 수업 준비하세요."  그렇다, 내가 생각을 하면 - 그 분야의 전문가가 내게 온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한 일에 대하여 그런 현상들이 벌어진다.  내 연구실은 '꿈의 공작소'가 되어가고 있다, 요즈음. 

 

 

오늘 새벽기도 하다가 문득 이러한 현상에 눈뜨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냥 하루하루 지내다가 오늘 새벽기도 시간에 문득 '아하!' 하면서 깨달아졌다는 것이다. 

 

 

옛날에 나는 꿈을 꾸곤 했다. 그냥 이런저런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찾아 다녔다. 전시회장을 늘 돌아다니고, 연주회장에 정기적으로 다녔다.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애인만나러 가듯 돌아다녔다. 내가 즐기던 일들은 돈도 안되고 그리 해가 되지도 않는 심심풀이 즐거운 일 들이었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글을 써서 여기저기 발표를 했고, 그 모든 일들이 돈은 안되지만 내가 심심풀이로 할만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교육프로그램 기획자가 된 나는 내 머리에서 떠오르는 모든 프로그램들을 실행할수 있다. 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탄생시키고, 필요한 경비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술가가 '돈걱정 없이 예술'만 한다면 얼마나 행운인가. 지금 나는 돈걱정 없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실행시키고 있다. 내 머릿속의 꿈들이 현실이 된다. 

 

 

 

필드트립에 버스를 렌트하여 학생들을 편안히 모시고 가고, 정성껏 준비된 고급스러운 점심식사를 미술관 정원 풀밭에서 귀족처럼 즐기고, 큐레이터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교육을 받고, 이런 모든 과정에 대하여 학생들은 내게 매우 고마워했다. 내가 봐도 참 고마운 융숭한 대접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께 얘기했다, "제돈 나가나요? 여러분들께서 내신 세금으로 운영되는거니까, 스스로 뿌듯하시면 되지요.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고, 여러분들이 세금을 잘 내주시고 그래서 이런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되는겁니다. 저야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저도 사례비 받고 하는 일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한가지 '미션'이 있다. 뭐 좋은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야 말할것도 없고 특히 내가 신경쓰는 것은 학생들이 '나는 사랑을 흠뻑 받고 있다. 나는 학생으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 나는 아주 귀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교육 분위기 이다. '사랑을 흠뻑 받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며, 공부에 집중도 잘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내가 경험을 통해서 그냥 터득한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고 많이 하면 뭣하나? 사랑이 결핍되어 있으면 다 소용없고 부질없다. 학생들이 사랑을 흠뻑 배부르게 받아먹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공부는 그것으로 사명을 다 한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 내가 새벽에 깨달은 것이 뭐냐하면 - 나의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에대한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분이 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만드시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만드셨다. 그리고 어느날 내게 '사람들을 위한 아주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해라. 내가 너의 꿈을 구체화 할 수 있게 조력자들을 보낼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오늘 문득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현재 나의 형편은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하루, 하루, 하루를 살 뿐이다. '내일'에 대하여 나는 아무것도 장담 할 수 없다. 내가 내년도 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그저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가을학기를 무사히 마칠지 그것 역시 미지수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오늘'을 살면서 '내일'계획을 세워 놓는다. 내일이 오지 않아도 내일의 계획은 수립되어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의지할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나는 오늘 살다 내일 죽어도 그만이다. 그런 각오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시려는 걸까? 나는 하나님의 계획이 궁금해진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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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8. 29. 12:50

채널 돌리다 '스타다큐'라는 프로그램에 내가 아는 방송인이 나오면 - 그 사람 요즘 뭣하고 사는가? 궁금해져서 발길을 멈추곤 한다.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이 나오면 옛 친구처럼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스타가 나오건 간에 이 프로그램에는 어떤 공식이 있다. 단지 이 프로그램 뿐만이 아니다. 인간극장도 그러하고 하여간에 일반인이나 유명 연예인이나 그 사람의 일상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는 '설정'이 한가지 있다. '멀리 있는 무덤'에가서 성묘를 하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한 개인이 특별히 조명이 될 때, 그 개인들이 꼭 보여주고 싶어하는 곳이 먼저 떠나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나 영감님, 마나님 뭐 이런 가족의 묘지이다. 그 묘지에 시청자들을 끌고 가서 그 무덤앞에서 절을 하고 술잔을 뿌리는 것을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고나 할까?  내가 미국에서 이십년가까이 살면서 미국 테레비를 이잡듯이 뒤지며 봤어도, 어떤 사람 다큐멘터리에 자기 조상 산소에 끌고 가는 사람 별로 못  봤다.  유독 한국인들은 가족의 산소에 시청자들을 초대하는것을 즐기며, 그것을 어떤 성스러운 의무라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이런 심정인것 같다 - '내가 테레비에도 나올 정도로 뭔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을때, 이 사건에 대하여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 무덤속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뭐, 나도 뭔가 내 삶에 의미있는 일이 발생했을때 나도 우리 조상님 산소에 갈 생각부터 한다. 최근에 승진을 했는데, 아직 산소에 가지를 못해서 금주중에라도 가려고 벼르고 있긴 하다.  한국인들의 '성묘' 문화는 유네스코에 등재할 문화가 아닐런지. ㅋㅋㅋ.

 

근데, 연예인들 조상 산소...그것 좀 생략하면 안될까? 테레비보다가 그런 장면 나오는 분위기가 되면, 그 때 나는 채널을 돌린다.  뭐 내가 남의 조상 산소까지 들여다볼 정도로 정감이 있고 푸근한 인간이 아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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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8. 16. 09:27

https://www.youtube.com/channel/UC3HYdJ4f0UjB_8ezgtMWk8w

 

MOON haewon JAZZ

Jazz Voc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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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2022.8. 12) 저녁에 아트센터인천에서 열린 문해원 재즈 콘서트에 다녀왔다. 

 

나의 일상이 너무 일이 많고, 기운은 없고, 일박이일로 어디를 놀러갈 여건도 안되고 뭔가 특별한 휴식이 필요해서 별 생각없이 바람을 쐬러 나갔다. 

 

음악은 좋았다. 노래도 잘 불렀다. 바닷가에 지어진 음악당도 좋았다. 

 

그런데 '피로'와 '나가고 싶다'는 기분이 몇차례 들기도 했다.  그냥 건조하게 그 이유를 적어보겠다.

 

1) 물고기비늘같은 의상의 커다란 비늘들이 무대조명을 반사하면서 - 맨 앞줄에 앉은 내 눈을 막 찔러대서 가수를 쳐다볼수가 없었다.눈이 아팠다. 가수가 노래부르는 내내 나는 눈을 감거나 사선으로 무대 구석을 바라봐야 했다.   무대생활을 십년 넘게 했으면 객석에 앉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게 아닐까? 관객의 눈을 찌르는 무대의상이라니. 

 

2) 신세한탄: 글쎄 이것이 한국의 가수들의 '컨서트' 문화인지 아닌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내가 컨서트에 간것은 '음악'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는데 무대위의 가수가 '말이 너무 많았다.'  뭐 눈도 부셔서 바라볼수도 없는데 ...말을 하는데...그럼 그 말의 내용이 밝고 편안하고 즐거웠다면 좋았을 것 같다.  노래 한곡 소개하면서 '이곡은 제가 일본에서...제가...매니저도 없이..그 화살을 다 맞고...괴롭더라구요....'  '제 선배님께서 돌아가셨는데....꿈에...선배님이....'  사실 그의 이야기가 늘어지고 있을때 그냥 나가고 싶었다.  맨앞 맨 가운데 자리라서 차마 나갈수가 없었다.  내가 재즈 컨서트에 쉬러 간건데 거기서 가수의 신세한탄이나 꿈자리 뒤숭숭한 얘기나 들어주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저 가수가 이런 컨서트홀에서 개인 이름을 걸고 컨서트를 할 정도면 업계에서는 그래도 프로페셔널이 아닐까? 그런데 왜 저런 이야기를 지루한줄 모르고 늘어 놓고 있는 것일까? 그의 팬들은 그의 '토크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 모이는걸까? 아니면, 내가 이상한걸까?  나는 지금도 가수가 이상한것인지 그걸 이상하게 보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잘 알수가 없다. 원래 개인 재즈콘서트 분위기가 저런 것인지.

 

어쨌거나 그래서 내가 생각을 정리해봤는데, 내가 '무대'나 '강단'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때, 나는 절대로 개인의 뒤숭숭한 개인사나 울적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되겠다.  평소에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주의를 하긴 하는데, 그래도 더욱 주의를 해야겠다.  

 

노래를 참 잘 하시던데, 관객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의상이나, 재즈 콘서트를 '재미없는 토크 콘서트'로 만들어버리는 무대매너를 개선하시면 더 좋은 무대를 만드실수 있을 것이다. 

함께 연주하신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연주자분들 연주 훌륭했다.  (말없이 이분들의 개인 연주 시간을 좀더 늘렸다면 좋았을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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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8. 11. 10:38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연령적으로 내 또래인 감독이라서일까 - 배경 노래인 정훈희의 '안개' 와 무심코 지나가는 '트윈폴리오'라는 송창식-윤형주 듀엣의 이름등 노스탤지어 대사와 색감이 나를 푹 잠기게 했다. 원래 유명한 그의 미장센이 특히 이번 영화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비야,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내게 가져다줘' 라고 번역된 그녀의 진짜 말은 '심장'이 아니고 '마음'이었다고 그녀가 정정하고 -이와 비슷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 소통의 '애매함'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언어학 적인 측면에서 분석해도 꽤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어쩌면 언어학자는 언어학자대로, 철학자들은 철학자들대로,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자들대로, 영화비평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각자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이 영화를 들여다보며 곰씹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냥 심심풀이로 '상받았다니 가서 봐줘야지. 우울한 영화 같던데, 기운이나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갔다가 - 영화에 깊이 깊이 푹 잠겨 있다가 나왔다.  송창식과 정훈희가 영화의 화룡점정이었다고 해도 되려나. 이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영화의 완결미가 없었을것 같다.

 

 

박찬욱 감독 - 이것이 그의 영화의 '정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도 그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겠지만, 이 영화 만큼의 깊이와 울림이 있는 작품을 또 탄생시킬수 있을까?

 

그런데 영화보는 내내 김승옥씨의 '무진기행'을 떠올렸다. 김승옥씨가 이영화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전혀 다른 스토리인데 어딘가 쌍둥이처럼 닮아 보인다는 말이지. 

 

사랑에 대한 놀라운, 뜻밖의,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해석.  아...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지기 전에 또 가서 보고 싶어진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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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8. 8. 12:57

아주 오랫만에 메가박스에서 연달아 이틀에 걸쳐 영화 '탑건, 메브릭'과 한국영화 '비상선언'을 보았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두 영화 모두 '비행기' 소재의 작품들이었다. 

 

 

'탑건'은 보는 내내 눈이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느낌이 지배해서, 영화 관람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상선언'은 조조할인으로 봤고, 역시 불만은 없다. 탑건이 시원한 맛에 봤다면 '비상선언'에는 어딘가 블랙코미디 같은 사회비판적인 구석도 있어서, 그리고 뭐 재난 스릴러이므로 아슬아슬 속이 타면서도 - 한국식 신파조가 있는것으로 봐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주겠지 했다.  송강호, 이병헌이 나오는 영화이니 믿고 봐도 된다고 생각했고, 내가 이름을 잘 모르지만 정말 빛나는 조연들도 나와줘서 나로서는 만족한다. 

 

 

 

'탑건'은 내게는 - 나와 동갑쟁이인 탐크루즈가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맛이 있었던 '노스텔지어' 영화 였고, '비상선언'은 장거리 비행 여행을 자주 하는 내게는 꽤나 실감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탈때마다 나는 '혹시 내가 사고로 죽게되면...'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한다.  뭐 죽으면 죽는거지...

 

 

나는 매일 -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산다. 아, 이렇게 사는거 참 힘든 일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들이 이렇게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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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JunePaik2022. 8. 4. 04:35

 

백남준 아트센터 필드트립을 정하여 공고를 하였다. 

 

 

"광클릭 전쟁이 날것 같아요. 저처럼 서툰 사람은 등록도 못 할것 같아요" - 어느 학생이 말씀하셨다.   "주말이 아니고 평일로 잡혀서, 직장 다니시는 분은 참여가 힘드시겠네요" 라고 내가 염려를 하자 직장 때문에 늘 조금씩 지각하면서도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과정을 이수하고 계시는 청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월차 써야죠. 놓칠 수는없죠."  중국어문학 과정 종강식에 축하하러 갔을때 학생들이 보여준 반응.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뜨거운 반응이다.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고 - 현장 답사를 나갔는데, 현장에 도착하여 나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한국에서 활동한지 6년이 넘어가는데 왜 여태 여기 올 생각을 안했던고?" 나스스로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홍보가 미흡했던것 아닐까? 아니면 관계자들이 '사람이 너무 많이 올까봐 홍보를 일부러 안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상상도 하게 된다. 그 정도로 백남준 아트센터는 아트센터 자체의 기능 외에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그곳에  운전해서 가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위치 (location)'이 월등하다.

 

 

  •  아트센터 건물과 외형 디자인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건물은 네모로 각이 져 있는데, 건물을 둘러싼 작은 돌맹이들이 길과 담을 곡선으로 흐른다.  그 곡선의 돌길과 담이 곡선의 (끝이 없어 보이는) 숲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고속도로를 빠져 나왔을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일단 하이웨이를 타고 가면 막힘없이 목적지까지 갈수 있다. 
  • 바로 이웃에, 잠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과 경기도 박물관이 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구상을 한걸까?  서초동 예술의 전당처럼, 경기도 박물관들의 클러스터 라고 할만하다.)

 

 

 

백남준 아트의 영감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것도 적어선 안될것 같다. 그냥 머릿/가슴속에 간직을 해야지.  적으려면 이 휘저어진 생각들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하다. 

 

 

 

 

어제 오전에 잠깐 다녀왔는데, 잠을 설치고 있다.  눈앞에 백남준의 작품들이 오락가락한다.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잔잔한 행복감이 떠나지 않는다.  마치 마약에 취한듯 잠깐 바람쐬고 구경한 예술에 취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은 '백남준이 오래 사는집'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나도 오래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혼자서라도 미국미술사 공부를 한 보람을 느낀다.  혼자서 공부해서 전문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는 가늠이 되고 전문가를 찾아 갈 줄은 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런 깜짝 놀랄만한 '아트 필드트립'을 기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기획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아트가 된다.  (왜냐하면 머릿속에 아트가 둥둥떠다니니까). 기획을 하면 - 나머지는 교육은 전문가에게 부탁을 드리면 된다.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신 '반짝'하고 행복했던 날.  나는 오랫동안,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살아 숨쉬고 있지만, 나는 이미 죽은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신촌에서 지내는 동안.  백남준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면들이 내게 말했다 - 너는 살아있어.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백남준 아저씨 땡큐!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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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7. 14. 09:30

내가 미국미술을 개인 프로젝트로 정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더라? 2009년쯤이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십 몇년이 흘렀고, 나의 미국미술 탐구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중지된것처럼 보인다. 전에는 빠삭하게 외우고 남들에게 설명할수 있던 것들도 지금은 '나도 기억이 안나고, 처음부터 알지도 못했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을에 나는 백남준을 만나러 간다. 경기도 용인에 백남준 아트홀이 있고, 나는 학생들을 이끌고 그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나는 백남준에 대한 강의를 하려한다. 물론 아트홀에 학예사들이 있으니 전문적인 강의는 그분들이 맡으시겠지만 -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나 역시 준비를 하기로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슬슬, 그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고 강의 자료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나는 '예술'에 대하여 논할 정도로 전문가가 아니다. 잘 안다. 나는 예술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백남준의 신화를 얘기하게 될 것이다. 한국땅에서 태어나 어느 시점에 세계를 뒤 흔든 예술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미국인이 된 그의 작품에 숨어있던 한국인 유전자의 코드들을. 그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 혼자 공부한 것이 아주 헛된 일은 아니었어.  이 수업을 위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미국의 미술관들을 쏘다니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라.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계획을 세우셨던 것인지 가끔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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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7. 14. 09:24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매일 책을 내다 버렸다.  장을 보러 갈때 끌고 나가는 바퀴달린 박스 - 그 플라스틱 박스 가득히 집에 쌓여 있는 책을 담아, 재활용폐기장에 내다 놓았다.  중고서점에 갖다 주면 돈을 좀 받겠지. 인근 도서관에서는 책을 기증해 달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지만, 내게는 책을 기증하러 돌아다닐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는 극도로 피로하다. 기증하고 남과 나누고 이런 과정조차 내게는 힘드는 일이다. 그래서 그냥 재활용폐기장에 갖다 쌓아 놓았다. 많은 양이 빠져나가자 비좁던 거실이 다수 숨통이 트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읽고 쌓아둔 책이 아니라, 그것이 빠져나간 빈 공간을 차지하는 '신선한 공기.'  어느날 재활용장 관리하시는 아저씨가 내가 내다 놓은 책에 대하여 뭐라고 불만을 표시한다. 폐지보다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툴툴댄다. 그 분과 상대하기도 귀챦아서 책을 내다 버리는 일을 멈춘다.

 

나는 매일 장을보러 갈때 끌고 나가는 바퀴달린 박스, 그 박스가득 헌 옷을, 아까워서 버리지 않고 쌓아두던 플라스틱 반찬통들, 굴러다니는 선물받은 텀블러등, 집안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을 담아서 내다 버린다. 쓰레기 역시 발생하는 즉시 내다 버린다. 신촌살이 하는 동안 냉장고 안에서 서서히 곰팡이 슬어가던 것들도 이제 대체로 정리되었다.  그럼에도 매일 냉장고에서 폐기물들을 찾아낸다. 나를 기다리다 썩어버린 것들. 미안.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집에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녕 잘가라.  뭔가 집에서 끄집어 내다 내다버릴때 나는 한결 내 삶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이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좋은 것 같다. '도대체 이 많은 물건들을 왜 쌓아 놓은 것일까?  아무리 아무리 내다 버려도 왜 집은 여전히 비좁고 답답한가?  내가 정리를 잘 못해서인가?' 이런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는 오늘도 뭘 내가 버릴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기도하다 말고 연구실을 둘러본다. '내 저것들을 다 내다 버리리라' - 하며 몇가지 명백히 버려야 할 것들을 가늠해낸다. 

 

내 집이 텅 빌때까지, 내 연구실이 텅 빌때까지, 나는 매일 뭔가 정리하여 내다 버릴 것이다. 그자리를 헛헛한 공기와, 그리움과, 기도로 채우고 나는 어느날 증발 되기를 바란다.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아침이슬처럼 이 지상에서 사라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집을, 나의 연구실의 '기도의 집'으로 만들 생각에 잠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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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7. 4. 17:29

 

 

 

Flipped. 케이블 tv 어딘가에서 이 영화를 방송해 주었다.  예고편도 봤기 때문에 기대를 안고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 날 너무 피곤해서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영화를 놓치고 말았다.  내용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니 원작 소설이 먼저 있었다고 하길래, 청소년 소설인 원작 소설을 ebook 으로 사서 단숨에 읽었다. 

 

오호! 이렇게 쉽게 잘 읽히면서 재미있고 좋은 책이 있었다니! 

 

책을 읽으면서 - 미국 남부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낸 두 아들을 생각했다. 아들들이 보고 싶다. 하지만 올 여름엔 내가 자리를 뜰수가 없구나.  그래서 조금 슬프다. 한국에서 6월 7월을 보내기는 15년만이다. 그 6월이 고단하게 지나갔고 - 7월에는 쉬고 싶다.  

 

* 책을 읽는 내내, 남자애 아버지 역할을 Steve Busemi 가 하면 잘 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캐랙터 정말 특이하고 귀여웠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스티브 부세미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뱅뱅 돌았었다. (영화 보고 싶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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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7. 4. 17:21

 

 

Ebook 으로 살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아무 생각없이 그냥 검색을 하다가 순전히 '제목'과 초록색 북커버 이미지에 꽂혀서 주문하여 읽은 책.  '여름의 서정'적인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상상하고 골랐으므로 - 처음에는 '아, 앗. 이게 아닌데...웬 건축 이야기?' 이런 뜨악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고요한 늪'같은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뗄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론은 - 책 제목과 북커버 이미지가 나를 속이지 않았다. '부합한다'는 것이다. 

 

나의 고난의 시간을 위로해 준 책.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가 70% 된다는 느낌. 그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는 나의 상상속에서 빙글빙글 맴돌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건축가가 정성껏 집을 지어놓았다 해도, 그 집을 완성시키는 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소설가가 정성껏 쓴 소설 역시, 그 소설을 완성시키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서 뭔가 내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한다. 가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라.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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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6. 23. 07:31

신촌살이가 이어지고 있다.  새벽에 문득, 신촌 오거리 간이 매대에서 판매하는 '길거리 토스트'가 먹고 싶어져서, 새벽길을 슬슬 걸어나갔다. 창천동 감리교회 앞을 지나, 늙수구레한 아주머니가 졸고 앉아있는 '길거리 토스트' 매대를 지나서 신촌오거리로 간다. 졸고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만들어주는 토스트는 어딘가 유통기한이 지난 것으로 기름냄새 절은 것 같은 그런 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새벽에 뭔가 신선하고 따끈한 것을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도 장사를 하려면 혹은 뭔가 세상에서 일을 하려면 늙수구레한 아주머니로 졸다가는 안되겠구나 라는 각성과 함께. 늙는것도 서럽고, 기운이 없어 졸리는 것도 서럽고, 우리는 그렇게 이울어가는 것이리라.  내일은 저 아주머니의 토스트를 하나 사리라. 맛이 없으면 버릴 각오를 하고.)

 

일반 계란 토스트는 2500원. 치즈 토스트는 3000원. 인스턴트커피 500원.  치즈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하고 사천원을 냈는데 거스름돈 오백원을 줄 생각을 안한다.  '뭐지?' 의아해하다가 그냥 따끈한 토스트와 커피를 받아가지고 길거리 계단에 앉는다.  오백원 받으나 안받으나 내 인생이 달라져? 신경쓰지 말자. 

 

 

토스트는 신선하고 따끈하고 맛있고, 커피도 맛있다. 토스트를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길거리에 앉아 따끈한 토스트를 먹으며 -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여행자 같다는 느낌이 든다.  뉴욕 거리에서 닭고기 꼬치를 우물거리며 돌아보는 세상이나 신촌 오거리에서 입에 맞는 토스트를 달게 먹으며 내다보는 세상이나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맨해턴이나 신촌이나, 참 비슷하다. 나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요구르트 한개, 사과 한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공용 정수기에서 나오는 얼음을 띄우면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된다. 기분이 좋아진다. 연세대 뒷산이 푸르다.

 

인간은 (혹은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히 절망하거나 완전히 기뻐하거나 하기는 힘든 존재인듯 하다.  암담한 상황속에서도 나는 평안하다. 그리고 여행자처럼 내가 처해진 상황이나 주변 상황들을 관찰한다.  그러면 재미있고 유쾌한 구석들이 보인다. 새벽 신촌 오거리에서 나는 맨해턴을 걷는다. 내가 직접 만들어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씻은 사과 (씻지 않고 바로 먹을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을 충분히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돌아보면 암담한 상황이 오기 전, 돌아보면 걱정 근심거리가 전혀 없던 시절에도 나는 인생이 재미없었고, 불만이 많았고 그랬다. 그때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리 암담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여행중이다. 낯선 시간, 낯선 공간, 낯선 상황 이런 것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친밀해지고. 아마도 이런 식으로 나의 여행은 계속 되겠지. 내가 어디로 흐르건 나는 흘러갈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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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6. 17. 16:12

시민을 위한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봄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운영을 해보고 있다.  정해진 학점을 이수하면 명예학위증까지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1년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세부 강의 일정을 짜는 가운데, 나도 그 중에서 한과목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역시 프로그램 기획자가 직접 수업을 진행해봐야, 시민들의 희망사항이나 수업에 대한 기대, 태도, 문제점 등을 세밀하게 파악하게 된다.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모여서 듣는 대학 수업. 실제로 내가 수업중에 가르치는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 실제 대학과 차이가 있다면 가르치는 내용은 동일하지만, 시험이나 과제의 비중에서 차이가 난다. 

 

어느날 내 또래의 '가장'이신 중년 학생이 내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거 수료하면 수료증 나오는데 그 수료증을 어디다 써먹을수 있죠?" 좋은 질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과정을 수료했을때 무엇을 얻을수 있는가? 그 수료증이 어딘가에 내밀만한 실용성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좋아한다. 구체적으로 어디다 써먹을지를 묻는 질문을 나는 좋아한다. (내 개인 취향이다.)

 

그래서 나는 답해줬다: 

 

"제가요, 버지니아에 있을때, 어느 조그만 대학에서 교수로 일을 할 때 인데요. 월급도 신통치 않고, 전망도 흐릿하고, 한마디로 앞날이 막막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제가 그냥 지역에서 제공하는 '간병사' 교육을 받았어요. 그 교육을 이수하고 간단한 시험을 통과하면 '버지니아주'에서 제공하는 '간병사 자격증'이 나오거든요. 그냥 파트타임으로 간병사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그러면 내 삶이 조금 더 의미가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거죠.  한편으로는 그 조그만 대학에서 벗어나 큰 대학에서 제대로 대우받고 교수를 하겠다는 희망으로 끊임없이 미국 전역의 대학에 이력서를 보내고 있었지요.  한편으로는 대학에 자리를 알아보면서 한편으로는 파트타임으로 뭔가 할만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그 간병사 자격증으로 뭘 했을까요? 저는 간병사로 일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간병사 자격증이 제게 큼직한 대학의 교수자리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된거냐구요?  제가 미국 전역의 주립대에 뿌린 이력서의 말미에, '특기사항'에 '버지니아주 간병사 자격증'이 적혀 있었는데 - 하필 바로 그것을 눈여겨 본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영어교육을 전공한 박사급 후보들 중에서 특히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영어를 교육 할 수 있는 후보자가 필요했던 것인데, 제가 간병사 자격증이 있다니까 인터뷰를 하면서 "그러면 너는 기초적인 메디컬 영어를 잘 알고, 그것을 가르칠수 있겠니?" 하고 묻는 것입니다.  나는 무조건 'Of course!'하고 확답을 했습니다.  최소한 나는 four vital signs 라는둥 뭐, 극히 기초적인 '병원 용어'를 설명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관련 자료를 찾아서 공부하고 가르칠 역량이 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나는  아무튼 전문직 간호사들에게서 바로 그 교육을 받았으므로. 그리하여, 저의 아주 특별한 (별것도 아니지만, 그 영역에서는 독보적이라 할수 있는) 자격증 한가지로 인해, 다른 영어교육전공 박사들과 차이를 보였고, 그 덕분에 꿈에 그리던 주립대에 말뚝을 박게 되었지요. 

 

자 그러니, 아무나 그냥 대충 60시간 정도 수업 들으면 딸 수 있는 '간병사 자격증' 그 별것도 아닌 것이 - 저의 꿈을 이루게 해주리라고는 저 자신도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지요. 저도 그게 그렇게 될 줄을 몰랐어요. 그냥 막연히 뭔가를 배우고 싶었을 뿐.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제가 제공하는 과정은 '자격증' 과정도 아니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학생에게 이 과정은 디딤돌이 되거나 도약대가 될 지도 모르지요. 자, 이걸 어떻게 요리 할지는 선생님께서 직접 고민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 나중에 회의 하는 자리에서 이 프로그램 얘기를 하다가 - 회의 참석자 누군가가 비슷한 질문을 하길래 -- 내가 수업시간에 그런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고 이야기를 하니 회의 참석하고 나가시던 어떤 분이 "그 간병사 이야기 말이에요. 놀라운 얘기네요. 늘 뵐때마다 저를 깜짝깜짝 놀래키시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하시는거다.  그래서..그게 어떤 사람을 놀래킬만한 에피소드였던가?  그럴수도 있으려나? 생각하며 몇자 끄적.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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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6. 9. 04:10

요즘 유명한 사람의 부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기혼여성에 대하여 '아무개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아무개 여사님'과 '아무개 씨'라는 호칭 중에서 '아무개씨'라고 부르면 인권에 저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시민 단체마저 등장했다. 내가 살다가 이런 논란은 생전 처음 겪어서 흥미를 가지고 상황을 관조하고 있는 가운데, 내가 문제의 당사자라면 나는 '아무개씨'쪽을 환연하겠다.  

 

우선 나는 그 문제의 '여사'라는 어휘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것이 아닐까 추측만 한다. (어딘가에서 왔겠지, 순수 한국어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여사'라는 호칭이 맘에 안든다. 여사, 여교수, 여의사, 여사장, 여류 시인, 여류 소설가 이런 '여'의 공통점은 어떤 사람을 일단 '여자'로 묶어 놓는다는 것이다.  사람이기 이전에 '여자'다. 이런 어휘나 호칭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올바르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일단 '여사'라는 호칭이 거슬린다. 

 

남편의 지인 중에 유학 동기가 한분 계신다. 남편을 통해서 알게 된 분인데, 우리가 한때 같은 대학에 소속해 있었고, 먼 타국 생활을 하는 동안 같은 도시에서, 같은 캠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뭐 그것 뿐이다. 친하지도 않았고, 그냥 아는 사이 정도였으며 몇년 사이에 두세번 조우했을 뿐이다. 그냥 어쩌다 스치면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정도.  그분도 모대학 교수가 되었고, 나도 교수가 되었다. 교수 사회에서는 서로 '아무개 교수님'이라고 불러준다.  어느날 이분이 연구하는 일로 내게 뭔가 물어볼것이 있어서 연락을 취하셨는데 꼬박꼬박 내게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대화 주제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누는 연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분은 내게 꼬박꼬박 '사모님'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사모님'이라는 경칭이 내 몸에 붙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 나는 그냥 내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줌마'라고 불러라. 차라리 그게 낫겠다.  내 이름을 모르면 그냥 평범하게 '아주머니, 아줌마'라고 불러라' 말하자면 이런 입장이었다.  '사모님'이란 어휘에는 '아무개의 부인'이라는 뉘앙스가 강한데 나는 '아무개의 부인'으로 칭해지는 것이 싫다. 나는 누구 부인 이전에 나다. 나는 누구 딸이기 이전에 나다. 나는 누구 엄마이기 이전에 그냥 나다. 나는 나다.  아무튼 몇차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내 연구실까지 방문하여 나와 의논을 하는 동안 그는 내게 꼬박꼬박 '사모님'이라는 경칭을 썼는데 - 나는 그 '사모님'소리를 들을 때마다 점점 화가 났다. 남편의 지인만 아니었으면 벌써 사단이 났을것이로되, 남편 체면 생각해서 듣기 싫은 호칭을 꾹꾹 참고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지나는 말로 한마디 했다 --"당신 그 후배 그분 말야, 꼬박꼬박 나보고 사모님이래. 아유 기분나빠..."  남편은 내가 뭘 기분나빠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분에게 내가 기분나빠하고 있다고 알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분 설명으로는 '사모님' 호칭이 상대방을 가장 높여서 부르는 호칭이라서 내게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극존칭이 '사모님'인 모양이었다.  그 후로 그분은 내게 아무런 호칭을 쓰지 않으면서 대화를 한다. 가령 그 전에 "사모님 안녕하세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그냥 "안녕하세요!" 한다.  그 '사모님' 소리 안들어서 그나마 나도 안도했다. 

 

 

'여사님'이 '사모님'과 다른 한가지는 '사모님'에게 '남편'이 필요하다면 '여사님'은 홀로 여사일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김여사 운전'의 예처럼 과연 '여사'가 존칭인지는 애매하다. 요즘 존칭이 대세라서 '여사님!'하고 부르는 상황이 다양하다. 집에 청소하러 와 주시는 도우미님게게도 '여사님'이고 뭐 그냥 전에 '아줌마'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요즘은 '여사님'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여사라는 호칭이 정말 존칭이기나 한지 나는 헛갈린다.

 

 

그래서, 나는 '아무개씨'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여사님", "사모님" 이런 이름 말고 그냥 "아무개씨", "아무개님" 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얕보기 위해서 "아무개씨"라고 부른대도 나는 괜챦다. 그게 원래 내 이름이니까 말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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