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8. 27. 16:59

나는 요즘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의심을 품어 본다. 

https://nct.go.kr/distMental/rating/rating02_2.do

 

국가트라우마센터

 

nct.go.kr

이곳에서 대충 검사를 해보니 중간수준의 점수가 나왔다. 나의 증상은 이러하다.

도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세시간 정도 집중해서 하면 끝내는 일이 있다고 할 때, 예전에는 '빨리 해치우고 놀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후딱후딱 두시간에 일을 잽싸게 해 치우고나서 여유있게 놀면서 '도대체 꾸물대고 못하는 사람은 뭐지? 결국 자기 의지 문제가 아닌가?' 이런 기고 만장한 생각을 하곤 했다. 모든것이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여전히 내가 집중해서 하면 세시간도 안되어 끝낼 일임을 알고 있는데 - 일을 하기가 싫다. 그래서 그냥 누워서 며칠을 빈둥대다가 내 일상에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로 일을 뚝딱 해치우고 만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같았으면 나서서 해치웠을 여러가지 일들에서 나는 손을 떼고 있다. 그냥 안하기로 한다. 예를 들면, 내가 공들여 진행하는 일이 있는데, 관련 기관에서는 '포상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러저러한 공을 세웠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면 연말에 무슨 '상'을 받을수 있는 기회다. 경쟁이 심하지도 않고, 보고서만 작성하면 상을 받을것이 확실하다. 기한도 충분히 주었다.  그런데, 하루 정도 날 잡아서 끄적이면 될 일을 - 안하기로 결정한다. '아쉽지만 귀챦군. 어차피 내가 죽어서 관속에 들어갈때 그 따위 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구. 그쪽에서 상을 줘도 내가 받으러 가기 귀챦다구...' 이런 마음이 된다.  작년에는 내가 며칠간 그 보고서에 공을 들여서 내가 소속한 기관이 큰 상을 받았는데, 지금은 한글자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공들여 키운 프로젝트도 내년부터는 안하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대체로 무엇을 하러 들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개인적으로 일회성 부탁이 들어오는 것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자원봉사' 차원에서 그러마고 해 주지만,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정리를 해 나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단지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1. 일단 나는 최근에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작년 5월에 이어서 두번째 확진이다. 경과는 나쁘지 않았다. 코로나 치료제도 먹지 않고 지금은 코로나에서 회복했다. 하지만, 나는 현재 기운도 없고, 입맛도 없고, 뭐랄까 늘 속이 울렁거린다. 

2. 일어나 앉아있기도 싫고, 늘 누워있고 싶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선풍기를 미풍으로 약하게 틀어놓고 온종일 누워있으러 든다. 

3. 머리가 아프다거나 뭐 특이한 증상은 없지만 나는 늘 멀미가 느껴진다. 

맡은 책임이 중요한 것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대한 일들을 내가 아직까지는 잘 해내고 있는데, 어느순간부터 그 일들이 서서히 무너지는게 아닐까 슬슬 불안해진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에 학교에 나와서 밀린 일들을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마치 깊은 우물속에 잠겨서 깊이 깊이 가라 앉는것 같은 암담한 기분이 든다. 하나님께서 나를 일으켜세워주시길. 하나님 저를 우물에서 건져주셔요. 제가 이대로 죽을것 같습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21. 17:11

 

50여일 내가 학교를 비운동안, 나의 꽃밭을, 학교 복도를 청소해주시는 여사님이 잘 관리를 해 주셔서 서양란이 역대급으로 무성하게 피어났다.  꽃가지가 자라나는 것을 떠나기 전에 보았으므로, 내가 없는 동안 꽃이 피었다가 다 기울었겠다고 상상했는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한채 피어나고 있다.  동양란인 '향란'은 꽃대 마른것 세줄기가 남아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피고 진 흔적. 나는 나를 기다리다 까맣게 마른 그 꽃대를 잘라 주었다. 애썼다.  비록 네 향기와 꽃의 자태를 만나지 못했으나, 네가 얼마나 아름답게 피었을지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오늘부터 개강이다. 나는 화요일에 수업 스케줄이 잡혀 있으므로 내일 학생들과 만난다.  오늘은 내가 관리하는 프로그램 관련 일을 마무리하고 인턴들을 만나느라 분주하다.

 

귀국후에 몸을 가누기 힘들정도의 피로감이 지속되어서 도무지 개강 준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양수액'이라도 맞고 오면 나으려나 싶어서 단골 내과에 갔더니 대뜸 '코로나 검사'부터 하자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았다.  코로나 확진자에게는 영양수액을 맞출수가 없다고 해서 영양제도 못 맞고, 코로나 증상을 개선시켜주는 일반 몸살감기약 종류하고, '팍스로비드'라고 하는 코로나 치료제를 처방 받았다.  작년에 코로나 확진 받았을때는 해열제 하나도 처방해주지 않아서, 나 혼자 알아서 타이레놀 몇알 먹고 그냥 버텼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로 코로나 치료제를 처방하는가? 약이 남아도는가?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작년에 아무 처방 받지 않고도 며칠만에 회복한 경력이 있으니 팍스로비드는 생략하기로 결정했다. 감기약 사흘치 먹고 그냥 드러누워 티브이나 보면서 약기운에 자고, 깨면 과일을 소처럼 씹어먹고, 다시 약먹고, 자고, 먹고 하니 몸이 가뿐해진다.  뭐랄까, 나를 여름내내 짓누르던 피로감 같은것이 이제사 해소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2차도 무사히 탈 없이 그냥 감기약 몇끼로 지나가고, 무사히 개학을 맞았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개강에 맞춰서 몇가지 프로그램을 열고 자리를 잡으면 - 다시한번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몸이 늙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가끔 생각한다. 내가 많이 겸손해진다. 

 

***

마치 확진을 받을 것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내과에 가기 전에 근처 농산물 도매시장에 가서 과일을 엄청 사가지고 왔었다.  '홍로'라는 햅사과와, 방울토마토, 거봉 포도, 참외, 키위, 오이 등등. 그리고 쿠팡에서 세일한다길래 주문해 놓은 그릭 요거트 큰통 두개 등등.  이런 것들을 잠에서 깨어나면 '소'처럼 우적우적 먹어치우곤 했다. 먹고, 자고, 약먹고, 또 자고, 먹고, 자고, 약먹고 또 자고. 정말 원없이 자고 먹었다. 약기운때문인지 자려고 눈을 감으면 그대로 잠에 빠졌다.  과일과 오이를 배터지게 먹고, 참 실컷 잘 잤다.  아무래도 이것이 별 탈 없이 감기 앓듯 코로나를 이겨낸 비결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정말로 어떤 휴식의 계기를 주신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돌보시니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기뻐하면 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5. 22:27

성경책에 키가 작은 사나이 얘기가 나온다. 삭개오 (Zacchaeus) 라는 사람이다. 그는 예수께서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얘기를 듣고 거리로 나왔으나 키가 작아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도무지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급한 마음에  돌무화과 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예수께서 돌무화과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발견하시고 기뻐하셨다. (누가복움 19장 1-10)   그림에서 삭개오 스펠이 잘못되어서 지우고 고쳤다. 

 

올여름 마지막 초크 드로잉이 아닐까.  다음주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예수님께 바치는 나의  노래다.

 

 

 

 

아들내외가 신혼집으로 장만한 집에서 여름을 보냈다. 위에 보이는 3층 열린 창문의 방에서 나는 책을 보고, TV를 보고, 책원고를 쓰고, 창밖을 내다봤다. 며느리가 (옆에 세워진) 제 차를 내줘서 편안히 돌아다닐수 있었다. 집 옆 잔디밭에서는 어미토끼와 아기토끼가 여름내 뛰놀았다. 아침 저녁으로 이웃집 개들이 산책을 했고, 그 중에 두마리는 나를 알아보고 멀리서도 반가워했다. 뒷마당에서는 며느리가 정성스레 심은 다알리아가 여름내내 꽃을 피웠다.  2층 베란다에서는 가지와 고추 그리고 노란 방울토마토가 자라났다. 고추는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의 친구 까마귀들이 놀러왔다. (먹이를 찾으러 온거지만). 

 

 

엄마 아버지가 유쾌하시기 때문에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고, 겨울에 다시 오셔도 좋다는 며느리의 허락을 받았다. 하하하. 

 

 

나는 저 열린 창문의 방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비록 제 키가 작고, 제가 늙고, 옹졸하고, 죄를 아주 많이 지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며 사랑이 가득하시며, 저희는 안심하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Posted by Lee Eunmee
Books2023. 8. 3. 23:32

 

 

집 2층 발코니 난간에 새 모이통과 물통을 달아놓고 매일 모이를 주니, 버지니아에 상주하는 각종 새들이 종류별로 와서 모이를 먹는다. 새모이중에 '해바라기씨'를 다람쥐가 좋아해서, 다람쥐들도 온다.  어느날부터인가 까마귀들이 보이길래, '까마귀는 뭘 먹지?' AI에게 물어보니 잘 가르쳐준다. 마침 집에 냉장고에서 한달 넘게 외면당하고 있던 포도가 보이길래, (아무도 청포도에 관심이 없어서 청포도가 냉장고 안의 장식물처럼 오래오래 거기 있었다. 나는 수박이나 허니듀 같은 것을 먹고, 다른 식구들은 사과나 내가 먹는 것을 먹으니까 포도가 의문의 일패를 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난간에 구슬처럼 하나하나 세워 놓으니 냉큼 와서 집어 간다.  맥도널드에서 먹다 남긴 '프렌치프라이'도 잘게 잘라 주니 금세 물어가고, 닭튀김 부스러기도 놓아주니 신났다고 가져간다.  그렇게 하여 나는 점차 까마귀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까마귀들에게 관심이 생기자 - 뭐,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까마귀 관련 서적도 몇권 샀다. Yes24에서는 일본 학자가 쓴 '까마귀책'을, Amazon에서는 AI가 추천한 미국학자의 책을 내려 받았는데, 아무래도 일본학자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읽기가 더 수월해서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까마귀 친구들'을 관찰하고 있다. 

 

시들시들한 포도를 난간에 세워 놓았을때, 까마귀들이 여러마리가 와서 물어가는데, 내가 관찰한바 최고 기록은 한놈이 세알을 물고 가는거였다.  게으른 애들은 한알, 대개는 두알을 물고가고, 어느 열정 넘치는 까마귀가 세알을 주루룩 한꺼번에 주둥이에 물고 가는 것을 한차례 본적이 있다.  귀여운 나의 친구들이다. 

 

까마귀들을 매일 관찰하면서 - 까마귀 관련 소설을 한편 지어야겠다는 창작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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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3. 22:48

Great Falls 파크는 포토맥강의 일부로, 강의 이쪽은 버지니아, 강의 저쪽은 메릴랜드주이다.  미국 국립 공원 시스템에서 1번이 이 Great Falls 공원이다 (다른 어마어마한 국립공원이 수두룩 하지만, 그냥 번호 매길때 수도 워싱턴에 인접해 있어서 그냥 1번 준것 아닐까 추측한다).  메릴랜드쪽에서 진입할때는 입장료가 없는데, 버지니아 쪽에서는 공원을 조성해 놓고 입장료를 받는다. 승용차로 진입하면 차 한대당 20달러.  어쩌다 들르는 관광객이라면 입장료를 감수하지만, 지역 사람들이라면 입장료 절약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폭포 상류에 위치한 Riverbend Park 로 진입하는 방법이다.  폭포에서 약 1마일 (1.6킬로미터) 상류에 위치한 Riverbend Park는 공원이 아담하게 잘 조성되어 있지만 입장료가 따로 없다.  그리고 Riverbend 에서 Great Falls 로 향하는 강변의 숲속길이 정원과 같이 걷기에 편안하며,  '절경'이다.  폭포까지 왕복 2마일 (3킬로미터 안팎)을 평탄한 강변의 숲속길을 산택하는 코스이다. 

 

 

 

https://www.fairfaxcounty.gov/parks/riverbend https://www.nps.gov/grfa/index.htm

 

 

Great Falls Park (U.S. National Park Service)

Homepage

www.nps.gov

 

예전에 매클레인에 살때는 이곳을 내집 안마당처럼 드나들며 산책을 했었는데, 참 오랫만에 들렀다. 메릴랜드로 이사를 했다가, 페어팩스로 이사하고, 한국으로 가고, 그러는 사이에 10년이 훌쩍 지났고, 그동안 이곳을 찾지 못했었다.  옛 친구를 찾은듯, 혹은 고향집에 돌아온 듯 반갑고 편안하였다.

 

 

숲이 어찌나 깊고, 그윽한지, 숲길을 산책하는 동안 내 몸이 초록으로 물들것 같은 - 신비로운 초록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폭포 상류의 포토맥 강물은 호수처럼 잔잔하였다. 

 

 

 

 

폭포를 보고 다시 리버밴드로 거슬러 오며 나는 숲속의 나무를 만지며 말했다, "잘 있어. 크리스마스에 다시 보자."

버지니아는 8월 들어서면서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선선하여, 한국의 9월 중순의 선선함을 선사하고 있다. 버지니아와 한국의 날씨를 비교하면, 버지니아에서 가을과 봄이 한국보다 빨리온다. 버지니아에서 선선한 가을을 맞고 돌아가면 한국은 아직도 더운 여름이고, 쇼핑센터에서 봄 옷을 전시하는 것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모피 옷을 팔고 있는 식이다. 그 외에는, 날씨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8월 1일에 원고 작업을 모두 마쳐서 편집자에게 보냈다. 오랫동안 기한을 넘겨 정체되었던 숙제를 마쳐서 보내고 나니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것이 사라진것 같았고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그래서, 오랫만에 그곳에 간 것이리라. 홀가분해서.  만약에, 내게 그 책쓰는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나는 큰 부담없이 그럭저럭 놀며 지냈을까?  책을 쓰는 일이 내게는 매우 고통스럽고 무겁고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는데, 그것을 마쳐서 이메일로 전송하는 그 순간 -- '해방'의 안도감 혹은 -- 상상컨대 환각제를 대량으로 최대한 효과를 볼 만큼을 투여한 상태에서 나오는 그런 '환희감' 같은것 그런 것을 느꼈다. 그 환희감은 아직도 여전히 내 가슴에 잔잔히 남아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고통' 뒤에는 '고통의 양과 질'만큼 그에 상응하는 '쾌락'이 오는것 같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쾌락이라고 해도 좋고.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이 사는 사람은 고통도 없지만 쾌락도 없을것 같다...  쾌락은 고통만큼만 주어지는 '위로'가 아닐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고 말씀하셨을때, 그것이 우리가 늘 기쁘고 순탄한 상황을 살아서가 아닐것이다. 이 세상 사는 일이 온통 고통으로 가득차있어서 -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할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옛날에 (아마도 2005년. 그러니까 18년 전이구나) 버팔로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간적이 있다. 그 때 폭포의 상류에서 잠시 수영을 하였다. 물 흐름이 고요했기 매문이다.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물흐름이 빨라지긴 하지만 그 윗쪽으로 올라가면 '호수'같이 고요한 부분이 있다.  거기서는 설마 지척에 '천길 낭떠러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고요하다.  그 고요 후에 폭발적인 어마어마한,모든 것을 집어삼킬듯한 폭포의 풍경이 펼쳐진다.  태풍 직전의 고요, 혹은 태풍의 눈 속의 고요와 흡사하다.  우리가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 '폭발적인 힘'을 예비하기 위해서이다.  어차피 온 우주는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고요의 에너지를 폭포의 에너지로, 태풍의 에너지로, 혹은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것. 그것이 기도자가 하는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31. 01:13

 

 

This is my father's land.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상은.

 

오랫동안 지체되어 왔던 책 원고 작업을 어제 대충 마쳤다. 아직 출판사에 보내기전에 세부적인 것을 통독하면서 확인하고 다듬어야 하지만, 하루 이틀이면 끝날 것이고, 내일 모레 쯤 전송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 이미 출간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작년에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느라 모든 것이 정지되었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책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 간신히 숨을 돌리고 - 버지니아 집에서 대충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침에 제법 선선한 아침 바람 속에서 작업을 하였다.

 

며느리가 나와서 나무 그림 작업을 도왔다. 나무에 '아무 열매나 마음껏 그려 넣으라'는 지시에 커다란 파인애플과, 빨갛게 익은 고추까지 그려 넣은 나의 친구 - 나의 며느리.  나는 며느리를 '딸' 같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며느리는 내게 'Mom!' 이라고 살갑게 부르고, 나는 그를 '친구' 대하듯 한다.  우리는 제법 사이가 좋다. 생각이 통하고 뜻이 통하고, 나는 그를 간섭하지 않고, 그는 나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방문자로 잠시 머무르는 동안, 남에게 (형제자매나 부모나 자식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 나의 신경질적인 성격에도 아들 며느리의 집은 편안하고 유쾌하였다.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책도 읽고, 나무와 대화하며 그 품에 매달려 놀고, 그리고 그늘에 배를 드러낸채 벌렁 누워 낮잠을 자거나 빈둥대는 것 --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즐거운 여름날의 풍경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불러오는 두마리의 물고기가 '호쿠사이'의 '파도' 속을 유유자적 놀고, 고양이, 여우가 함께 놀고, 새들이 날아다니다.  나무에는 여러가지 과일들이 주렁주렁.

 

이것이면 족하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해주신 세상.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17. 04:48

간밤 폭우로 그림이 깨끗이 지워졌다.   어차피 초크 그림은 비가 오거나 물을 뿌리면 지워지는 그림이라서 - 잠 자고 일어났을때 깨끗이 사라진 그림 - 그 빈터를 발견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지워졌다고 아쉽거나 슬프지 않다. 이미 사라질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깨끗이 사라진것에 대한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죽을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초크 그림처럼, 어차피 모두 죽을것을 알고 있으므로 누군가 죽었을때, 또 내게 죽음이 임박했을때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아름다운 그림 한편이 깨끗이 지워진다는 그 후련한 느낌이면 어떨까?

 

교회에 다녀오니 햇볕이 쨍쨍나서 - 너무 덥고 뜨거워서 마당에 오래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스팔트의 검정색 바탕을 이용한 간단한 실루엣화롤 주님께 올리기로 했다.  요한복음 1장 36절. 

 

 

지난 밤에 꾼 꿈이, 예배 도중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중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꿈 1)  나는 언덕위에서 비가 갠 후의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혼 무렵 어둑어둑해지려는 하늘의 중심이 네모 형태로 뻥 뚫렸다. 뭔가 빛으로 가득한 뭔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나는 이것을 보면서 '하늘의 문이 열렸다!'하고 외쳤다.  그런데 하늘의 문은 잠시 거기 있는듯 하다가 사라졌다. 뭔가 내 눈앞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가가 수초후에 사라진 것이다.  내가 주위를 돌아보며 "하늘의 문이 열렸다가 사라졌어! 너도 봤니?" 했더니 모두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꿈 2) 나는 혹시 하늘의 문이 다시 열리려나 기대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분명히 하늘 가운데에 정방형으로 빛에 가득싸인 무언가가 뻥하고 뚫린것 같은 현상이 벌어졌고 그 상태는 수초간 (하나-둘-셋 정도 셀만큼 ....약 3초 간) 이어지더니 다시 스르륵하고 문이 닫히듯 사라졌다.  이번에는 주위에 있던 명명의 사람들도 그 현상을 보고 나와 함께 놀라워하였다.

 

꿈 3) 우리들은 하늘의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하며 언덕에 서 있었다.  그러자 멀리에서 대리석 기둥같은 - 코린트 양식의 대리석 기둥같은 모양의 산호색과 여러가지 파스텔 색으로 휩싸인 기둥같은 것이 먼 하늘에서 찬란하게 나타났는데 이것을 쳐다보며 나는 깨달았다. 핵 폭탄이 터졌다! 핵폭탄이 터졌다.  앞서서 하늘의 문이 열린 것은 저 핵폭탄이 터지기 전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나보다! 

 

그리고 내 꿈은 거기서 끝났다. 이상한 꿈이었다.  예배 도중 그 꿈이 떠올랐다. 이것은 어떤 꿈인걸까? 하도 꿈이 기묘하여 여기에 기록해둔다. 

 

언라인에서 관련 이미지를 뒤져보니 이런 이미지가 나오는데 - 내 꿈에 보였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하다. 계단 같은 부분은 잘라냈다.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지에는 구름이 문처럼 형성되어있는데 - 내 꿈에서는 구름보다는 알수없는 신비한 광채 (마치 종이에 불이 붙어서 가운데에서부터 타들어가는 듯하게 구멍이 뚫린것 같은)로 뚫려있었다.  (그래도 위의 이미지가 가장 흡사하다.) -- 왜 그....돋보기로 햇살을 모아서 검은 색종이의 중심에 지속적으로 비추고 있으면 검은 색종이의 중심에 불이 붙어서 주변으로 점점 타들어가면서 가운데가 뻥 뚫리지 않는가? 바로 그런식으로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불이 난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식으로 신비하게).  그런데 이렇게 열렸던 하늘의 문이 몇초만에 싹~~~!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처럼 돌아왔다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15. 21:37

 

크레용이나 아크릴 혹은 유화로 꼭 그려보고 싶었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닭을 안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 입니다. 구글에서 뒤져보면 누군가 그린 '명작'이 하나 나옵니다.  그 '모티브'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 머릿속의 모티브를 정말로 한번 구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보니 결국 다시 '예수님'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닭을 안고 있는 아이'의 이미지에서 '불사조 피닉스'를 안고 있는 존재. 불멸의 존재. 하나님에게로 결국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소나기가 예본 된 오늘. 이 그림은 흔적도 없이 곧 사라지겠지요. 소나기가 그치고 나면 쨍하고 햇살이 빛나고 다시 텅빈 마당이 남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영원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영원의 일부입니다. 

 

 

 

 

 

 

 

 

집앞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이 제 그림의 관객입니다. 제 그림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일인지요.  '공공예술'의 기쁩입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9. 01:21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9. 01:14

July 7, 2023, Virginia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6. 17:57

 

넷플릭스에서 잠안오는 밤에 (시차적응이 안되어) 꽤 여러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가을학기에 동명의 책을 시민들과 영어독서클럽으로 진행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가을학기에 진행할 책을 뭘 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나는 끼니를 근심할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지도 않았고, 내 살림도 그렇게 가난해 본 적이 없다.  '하루에 한끼의 죽으로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무섭고 암담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암담함 속에서 희망의 작은 날개짓을 하는 소년을 보면서 - 나의 세계관에 어떤 미세한 떨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란 기껏해야 한국과 미국. 나머지 세상을 잘 모른다.  책을 마음껏 읽을수 있고,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것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 것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킨들 책을 사서 읽고 있다. 어쩌면 가을에 시민들과 이 책을 함께 읽어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6. 17:33

이제 성인이 되었고, 법원에 가서 결혼신고를 하고 법원 마당에서 결혼 기념 사진을 찍었고, 집을 샀고, 모든 것을 그가 찾아낸 배필과 함께 의논하며 일궈가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나의  아들 '귀냄이'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 (나는 아들이 백일쟁이 아기였을때, 아이가 하도 순하고 벙긋벙긋 잘 웃어서, 이름대신에 '우리 귀냄이, 우리 귀냄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렇게 순하고 벙글거리기만 하더니, 비슷한 배필을 만나 둘이 매일 벙글거리며 잘 살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며느리는 내가 갖고 온 백팩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 그것이 한국인이나 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탤리산 '희귀 아이템'이라는 사실에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희귀 아이템이라고 해서 모두 다 비싼것은 아니고 단지 꽤나 예쁘장하고 고급지며 사람들이 보통 수백만원 짜리 어떤 브랜드라고 종종 착각을 하곤 하는, 기껏해야 삼십만원도 안되는 '착하고 예쁜'가방). 그래서 "엄마는 한국 집에 이것과 같은 브랜드의 백팩이 하나 더 있으니 맘에 들면 이것은 네가 가지렴"하고 넘겨주었다.  며느리는 이 가방을 매고 거울을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아이가 - 선물받은 가방을 등에 지고 좋아하듯, 며느리는 이 가방을 참 좋아한다.  .  옷 장안에 소위 '명품'가방들을 상자째 보관하면서 너무 아까워서 가끔 열고 들여다보기만 하는 그 순진함에 - 이제 나이들은 내가 말한다, "옷장 안에 처박아 두지 말고 그냥 매일 들고 다녀. 인생은 아주 짧아. 아끼지 말고 매일 사용을 해. 인생은 정말 훅 지나간다구..."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행장에도 이 가방을 챙겼다.

 

 

아들 부부가 여름 휴가를 내어 캘리포니아로 가는 이유는 친구가 캘리포니아에서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랑 신부가 모두 준 재벌급 배경의 사람들이라서 '영화'에서 봄직한 크레이지 아시안 결혼식이 진행될것인데, 아들과 며느리가 들러리를 선다나 뭐라나.  "너희들은 법원에 가서 결혼신고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퉁쳤는데, 그런데 가면 마음이 상하지 않니? 괜챦니?"  아들의 결혼식을 '공짜'로 넘긴 내가 미안해서 조심스럽게 물으니 아들은 쿨하게 답했다.  "우린 결혼식 경비 쓰는대신에 집을 산걸요.  엄마도 옛날에 평일 점심시간에, 직장 근처 허름한데서 대충 날림으로 결혼식 하셨다면서요. 우리도 엄마를 닮아서, 그런데 돈쓰고 싶지 않아요. 우린 괜챦아요."  (덕분에 나는 아들 결혼식에 돈 십원도 쓸 필요가 없었던 행운의 엄마다.  이런걸 '행운'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한심한 사람이다. 하하하.  나는 결혼식 사진따위 결혼식이 지난후에 뭐 액자에 꽂아 둔적도 없고, 별도로 들여다본적도 없다. 어딘가에 있겠지.  나는 그저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을뿐 결혼식 같은 것은 하고 싶지가 않았었다.) 아들은 그렇다 치고, 며느리는 어떨까? 알수 없다. 그래도 며느리와 나는 서로 '전문인'으로서 존중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잘 지내고 있다. 

 

 

 

이제 나는 새벽이 오면 아들과 며느리를 공항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 잠이 안오므로 오랫만에 블로그에 끄적이고 있다. 

 

 

어제 오후에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만약에 다시 태어나서 이 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다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싶으세요?"  나는 그의 질문에 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꿈이 뭐였지? 내가 열망했으나 이루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지? 다시 태어나면 꼭 하고 싶은게 뭐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엄마: "음, 첼로를 배워서, 첼로 연주로 밥먹고 살면 좋은것 같구나"

아들: 요요마같은 세계적인 첼리스트요? 아니면 그냥 시립교향악단 단원 정도요?

엄마: 글쎄, 세계적인 그런거 말고, 첼로 연주로 밥을 굶지 않는 정도면 되겠지.  

 

첼로가 아니라면..음..글쎄...뭐 별로 하고 싶은게 없다. 그렇다고 내가 뭐 첼로를 열망하는 것도 아니고 - 그냥 첼로 소리가 바람소리처럼 좋아서, 그걸 벗삼아 한생을 살면 어떨까 하는거지. 뭐 열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보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것 같아. 

 

그렇다. 나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고, 뭐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금이 가장 좋다. 별로 후회 되는 일도 없고, 뭐, 게으름을 피우긴 했으나 나름대로는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바둥거리며 살았던 것도 같은데 - 고단한 삶이었으나, 그래도 행운이 이어졌고,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구를 생각하면 내가 누리는 것은 정말 과분할 정도로 복된 것이며... 뭘, 더, 바란다는 말인가. 다시 태어나면 이보다 더 좋은 여건에서 태어난다는 보장이 있나?  식량부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나가고 있는 지구상에서 - 체중이 느는 것을 걱정할 정도로 먹을것이 넘쳐흐르는 여건에서 살고 있는데. 

 

다시 태어난다면 - 글쎄, 내가 죽어가지고 어딘가에서 '너 다시 세상에 태어날래 말래?'하고 물으면 - 나는 그냥 다시 태어나는것 말고, 다음 스테이지가 무엇인지 물을것 같다. 이런거 말고 다른 차원의 세계가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내 육신은 하루하루 낡아가고 있고 여기저기 녹이 슬고 있으며 -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낡아가는 육신에 갖히고 있다는 기분이 종종 든다. 육신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다시는 육신에 가두어지는 이 세상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  뭔가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6. 8. 16:38
카테고리 없음2023. 6. 7. 13:35

 

 

 

 

6월 6일 현충일.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6:30분에 전등사 입구에 도착. 

이른 아침, 텅빈 절 집 마당. 생각에 잠긴 신도들이 한 두분 지나칠 뿐. 고요한 절 마당에서 나를 반겨준이는 '고양이'들.  내가 '나비야 나비야' 하자 저를 쓰다듬으라고 와서 제 몸을 맡기는 '고양이 보살'들. 

그래서, 한적한 절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나갔던 길에서 '고양이 보살'들의 환대 속에 편안하고 나른한 휴식을 하고 옴. 절 마당이며 절 카페며 절 근처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정오에 출발하여 집에와 낮잠도 푹 자고. 평화.

 

10시쯤에 절에서 종을 치며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진행하는데 - 절에서 타종 하는 가운데 묵념을 하니, 가신이들에 대한 감사함이 새삼 더 해지는 듯 했다.

 

전등사 - 참 좋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21. 17:59

 

 

 

 

 

 

보문사 오백나한상 - 현대미술 작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감을 주는 작품들이다.

 

 

 

오백나한과 ----- 501호 (하하하) 

 

 

 

 

보문사 와불상 모셔진 암자 문에 걸린 내용.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15. 10:32

 

아카시아의 계절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근처에 아카시아는 피어난다. 아카시아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 일대에도 많이 피어난다.  내가 평생 만났던 아카시아는 흰색이었는데, 얼마전 나는 포도송이 같이 탐스럽게 매달린 아카시아 나무들을 발견했다.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발견한 아카시아 무리가 너무나 인상적이라서 남편에게도 이세상 어딘가에 포도송이 같은 '자주색' 혹은 '보라색' 아카시아가 피어난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에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운하 뚝방길 도로변에 그 나무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산책삼아 보라색 아카시아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사실 내 머릿속 지도속의 그 아카시아 나무는 송도 4교 (바이오대교) 건너편 남동공단쪽 뚝방길에 무리지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30분이면 갈만한 곳이었으므로 우리는 가볍게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송도4교를 건너 뚝방길에 도착했을때, 보라색 아카시아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조금 더 가다가 약 1.5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송도1교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무성한 아카시아 숲속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다리 앞 뚝방길에 무리서 있던 보라색 아카시아를 보았는데... 지난번에 내가 운전해 지나갈때도 보았고, 어제 학생들과 관광버스로 필드트립을 다녀올때 창밖으로도 역시 보았는데, 분명히 두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를 보았는데 - 내가 막상 걸어와 보니 왜 하나도 보이지 않는걸까?

 

고민고민하다가 내가 생각해 낸 것은 - 내 차의 유리창 틴트나 관광버스 유리창의 틴트가 흰아카시아를 보라색으로 보이게 한걸까? 자동차 유리에 뭔가 색상이 덧입혀져 있었는데 그것때문에 흰 아카시아가 순간적으로 보라색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것이 아닐까?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이상 '나의 눈'을 믿을수 없게 되었다. 내가 '보라색' 꽃이라고 믿었던 그 꽃무리들이 - 내가 직접 걸어가 봤을때는 흰색이었다. 보라색 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동행한 남편도 황당해 했다. 나의 '눈'에 혹은 '인지 구조'에 어떤 '노화 현상'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나는 내가 보는 것을 사실로 믿어선 안된다. 나는 슬슬 나 자신이 의심스러워졌다.

 

어제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예배를 마치고 -- "우리 그럼 이번에는 자동차로 거기를 지나가보자. 보라색 꽃이 보이나 안보이나 확인해보자" 하고 그 방향으로 운전해 갔다.  다리를 건너서 뚝방길을 따라 가다보니 길가에 '신기루'처럼 '보라색 아카시아'가 무리지어 피어있는것이 보였다. 남편도 그것이 '보라색'이라고 동의했다. "창문을 열어봐! 창을 열면 흰색으로 변하는가 한번 보자!" 창을 열어도 닫아도 그 꽃들은 보라색이었다. 보라색 아카시아들이 포도처럼 탐스럽게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뭐지! 어제 왔을때는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내가 영문을 알수 없어 하자 남편이 말해줬다.  "어제 당신은 나를 4교 왼편으로 데리고 갔는데, 오늘 아카시아 핀곳은 1교의 왼편이었어.  4교 왼편엔 보라색 아카시아가 없어. 보라색 아카시아는 1교 왼편에 피어있는거야." 

 

그렇다. 나의 문제점은 내가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칠때 그 아카시아 나무들이 있던 위치를 잘 못 기억해뒀던거였다. 나는 엉뚱한 곳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나의 시력은 아직 멀쩡하지만, 내가 어떤 위치에 대하여 착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얼마나 오류의 가능성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온전히 신뢰하면 안된다. 스스로 의심을 해 봐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15. 10:13

지난주 모 고교 특강중에 일어난 일화.

중간에 10분 휴식을 갖고 두시간을 진행하는 특강 첫날 첫 시간 - 학급 전체 학생중 약 1/4이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엎드려 자고 있거나 하는 상황이었다.  내 특강을 보조하기 위해 배치되신 듯한 선생님께서 학생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며 조용조용히 주의를 주신다.  특강하는데 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깨어나라는 뜻이리라. 중간 쉬는 시간에 담당선생님께 빙긋 웃으며 말했다, "Please do me a favor. Please do not wake them up. Let them take a nap if they are tired or just bored of my class. I am fine with it." 선생님께서도 잔잔한 미소로 동의하셨다.

 

 

2교시 수업 시작할때 내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Feel free to take a nap in my class if you like to. It will be okay as long as you do not disturb other students during my class activities. If  you are tired, you need to taka a rest in my class."  그렇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는 것을 제시해도 교실 구석에서 누군가는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그들중 누군가는 내가 이야기를 하면서 그 곁으로 다가가면 - 나를 의식한듯 부스스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는 그의 잔등을 토닥이며 '자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수업 듣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깨운다고 그 사람이 수업을 제대로 듣겠는가?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나도 재미없는 수업중엔 낙서를 하고 딴짓을 했다. 이들이라고 나하고 다를리가 없지 않은가?

 

 

둘째 날은 수업 시작할때부터 학생들 앞에서 수업보조를 하러 오신 새로운 담당교사께 공개적으로 부탁을 드렸다. 내 수업중에 자는 학생이 보여도 흔들어 깨우지 말고 푹 자게 내버려 두시라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역시  일부 학생들은 노골적으로 엎드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생존 반응'을 보이는 - 눈을 빛내며 내 질문에 답을 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강의를 이어나갔다. 

 

 

내가 한국의 전형적인 '이력서' 양식과 미국의 전형적 '이력서' 양식 샘플 이미지 두가지를 보여주며 - 차이를 설명해보라는 지시를 했을때였다. 한국이력서는 사진을 포함한 각종 개인적 정보가 들어있다.  미국 이력서에는 사진도 없고 개인적인 정보가 별로 없다. 

 

"왜 미국 이력서에서는 사진이 안보일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고, 사진을 요구할경우 문제가 되지. 왜 그럴까?" 

 

뭐 이런 요지의 질문을 했을때, 한시간 내내 자고 있었던 남학생 한명이 졸린 눈을 부비며 엎드린채 나를 보고 대꾸했다, "Racism?"

 

그렇다. 그 학생은 그냥 딱 한마디만 했다 "Racism?"  하지만 그 한마디로 나는 그 학생이 뭘 설명하고 싶은지 알수있었고, 그래서 Bingo! 를 외쳐주었다. 용모나 성별이나 인종적인 정보를 드러내는 사진은 '인종차별' 뿐 아니라 각종 '차별'의 수단이 될수 있다. 그래서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면 안된다. 내내 엎드려있으면서 '생존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던 그 학생은 - 사실 살아있었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엎드린채로 가끔 스크린도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적시에, 모두가 침묵할때 내가 기다리던 답을 던져 줄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죽은듯이 엎드려 있을때조차도 우리는 노래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가만히 엎드려서 나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일때라도 우리는 그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고, 그를 향해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 식물이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그러나 왕성하게 생존의 노력을 기울이듯 누군가 가만히 엎드려있을때에도 그는 듣고, 생각하고, 자란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12. 04:46

Joel 2:28

“And afterward,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내가 심심파적으로 키운 화초로 만들어진 작은 정원이 학생들 사이에서 '포토존'이 되어가고 있다. 이따금 연구실 밖이 시끌벅적해지는데, 학생들이 와서 사진을 찍으며 놀기 때문이다. (아, 관광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마냥 편치만은 않겠구나.)   나는 나의 화초들을 사랑해주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학생들이 좋으니까 흐뭇한 표정으로 지나치고 있는 편이다. 

 

 

그 정원을 보다가 내 학생이 '모르는 학생들'과 함께 내 연구실에 들렀다. 사회성 좋은 내 학생이 '그냥 제 친구들이에요 교수님' 하면서 내가 모르는 학생들까지 이끌고 쳐들어온 것이다. 알건 모르건 결국은 모두 학생들이고 - 내가 저들을 몰라도 저들은 평소에 나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므로 나는 무조건 환대하는 편이다. 그것이 '선생'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잠시 나눈 적이 있다.  그날 우연히 나와 이야기를 나눈 학생들 중에는 '환경 관련 서클' 활동을 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내 정원에 대해서, 환경서클활동에 대해서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 "환경서클이 뭔가 실내 공기 정화 프로젝트'라도 만들면 어떨까?"하고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별것도 아닌것이 - 사람들이 나의 작은 정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구역에 오면 확실히 공기의 '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공기가 신선하고 정말로 '향기'가 난다.  과학적인 실험을 한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화초들이 내뿜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아마존 밀림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러니, 내 정원에 와서 사진만 찍을것이 아니라, 학교의 구석구석을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나 혼자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내 작은 정원의 화초가 말라죽지 않게 최소한의 관리를 하는것만도 일주일에 최소 두시간은 투자를 해야 한다. 여력이 없어서 다른 곳은 내 손길이 미칠수가 없다.)  "공간이 없으면 벽을 정원으로 만드는거지. Green Wall project 그런게 요새 유행이쟎아"  뭐 이런 이야기를 두달 쯤 전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제는 복도에서 예전의 그 학생과 마주쳤다. 그는 눈길로 나를 세웠다. (지나치는데 뭐랄까 - 내가 너에게 할말이 있어 - 하는 눈길을 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는 마치 '식물'이 말을 걸면 이렇게 말을 거는게 아닐까 싶은 나지막하고 조용하면서도 촉촉한 떨림이 있는 음성과 화초가 보내는 듯한 조용한 시선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전에, 그 green wall 이야기를 해주셨쟎아요. 그래서 저희가..." 

 

 

그러니까, 이 노인이 꿈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그가 귀담아 듣고 사색을 하고 그리고 뭔가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어떤 '제안서'를 만들어서 프레젠테이션을 할것이고 그것이 통과되면 정말로 학교의 어느 구역에 '초록 식물의 벽'이 곧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그 일을 위하여 나의 조언과 정보가 필요하다고 나를 그의 눈길로 불러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도에 선채로 거의 한시간 가까이 이 프로젝트를 정말로 어떻게 성공시킬지 그 방향과 전략을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었다.  그의 눈은 점점 더 빛났다. 그의 눈빛 속에서 푸른 정원이 자라나는것처럼 보였다. 

 

 

그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연구실로 돌아오면서 - 나의 정원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의 꿈을 내가 반드시 이뤄야 하는것은 아니구나. 나의 열망을 누군가가 이뤄줄수도 있는거구나. 나의 꿈을 저 청년이 이루어주는구나.  그리고 그 의미를 잘 알수 없었던 성경구절의 의미에 다가갈수 있었다. 노인은 꿈을 꾸고 청년은 환상을 볼것이요... (요엘 2:28)  오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 제 소망 한톨 한톨도 잊지 않으시고 다 이뤄주시는 하나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11. 18:06

지난 월요일 화요일 이틀간 어느 먼 곳에 떨어져있는 고등학교에 가서 특강을 하였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만난 학생들은 같은 학년, 다른 학생들이었다. 이틀간 동일한 주제의 강의를 다른 학생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내가 외부특강시 영어강의를 할때에는 학생들에게 당부를 한다. "나는 영어로 강의하고, 당신들도 영어 강의를 대개 다 알아듣는다. 그런데 내 질문에 답을 할때 당신중에 어떤 사람은 답은 알지만 영어로 말하기가 안될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한국어로 답을 하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영어로 떠들것이고, 당신들이 내게 말을 할때는 영어나 한국어나 편한것으로 한다는 원칙이다. 

 

 

내가 이런 '자유'를 명시해도, 지난 수년간 내가 외부 특강을 할때, 학생들은 대체로 영어로 응답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다들 그정도는 하는가보다 하고 나는 상상을 했던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갔던 학교에서 학생들은 대체로 '한국어'로 내 질문에 답을 했다.  나는 물론 학생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답을 해주길 바랬다. 나는 이미지들을 보여주면서 이미지들 사이의 '언어, 문화, 사회적' 차잇점을 발견하고 해석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게 아니라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학생들은 영특했으므로 내 질문의 의도를 잘 알아채고 한국어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중에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처음에는 매우 수줍어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나는 폭풍같은 칭찬을 날려주었다.  5분 쯤 후에 내가 던진 질문에 그 여학생이 역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영어'로 답을 하려고 애썼다.  영어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여학생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내가 더 명쾌한 영어로 그 학생의 답을 반 전체에 소개했다. 이 여학생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자 다른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할때, 이 여학생은 짝꿍과 함께 내 곁에 와서 종알종알 말을 걸었다. 사랑스러운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두번째 시간에 이 여학생은 줄곧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2시간 수업을 마치면서 내가 '평가 설문지'를 돌렸는데 설문지에는 영어로 질문 몇가지가 적혀있고 한국어 번역도 적혀있다. 설문에 대한 답은 영어나 한국어나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내가 받은 32장의 학생 설문 응답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답을 적은 유일한 학생이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이 여학생이 2시간 사이에 보여준 미세한 변화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영어 강의를 듣는다 ---> 한국어로 답을 한다 --> 영어로 답을 한다 --> 영어로 설문지에 답글도 적는다.

 

 

 

이런 변화 과정에 대하여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영어수업이 제공된다면 좋겠다. 중간적인 단계의 영어수업. 영어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한국어나 영어로 편안한 언어로 답을 하고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차차 영어가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이런 흐름을 만들수 있는 수업. 그런 수업 모형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4. 28. 06:20

"너 하고싶은것 다 해봐.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는 가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게 윙크를 보내고 계셨다는 것을 문득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나는 이따금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아이디어들을 구현해내곤 한다.  그것을 내가 진정 원해서 했던 것인지, 의무라서 해야만 했던 것인지 분간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낸 것인데 결과적으로 꽤 유쾌한, 내가 평소에 저질러 보고 싶었던 이벤트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게 취미생활은 아니고 내가 해야 할 일인데 - 꽤 재미있는.  

 

 

 

그러니까, 이 일을 나는 해야만 했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에도 내가 성공적으로 해 내야 하는 '시민 평생교육 프로젝트'의 '물주' 그러니까 '스폰서' -- 교육 프로젝트 경비를 모두 제공하는 '스폰서'기관에서 요청한 몇가지 사항이 있었는데 정규 학사 프로그램과 별도로 등록이나 수료 같은 것 신경쓰지 않고 시민 '아무나' '아무때나' 참가할만한 지역시민을 위한 이벤트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다. 음대를 갖고 있는 모대학은 대학 오케스트라의 협조를 얻어서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한다거나, 명사초청 특강 이벤트를 연다거나 이런식이다. 물론 나도 구색 갖추기 위한 공개이벤트를 이것저것 기획하여 수행중인데 그 중에 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영어카페' 프로젝트이다.

 

 

이십여년전에 '소크라테스 카페'라는 책이 소개되면서 알려졌던 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카페를 저녁시간에 몇시간 빌려서 번개모임 갖듯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운동이 진행된 적이 있다. 마침 내가 살던 버지니아의 지역 도서관에도 그 '소크라테스 카페' 운동원이 와서 모임을 한차례 개최한 적이 있어서 - 책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적도 있었는데 - 뭐 그냥 아무것도 아닌, 잊혀져도 그만인 경험이었는데 나는 그 모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여성과 교제를 이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 모임은 그냥 그저그랬다. 심각한 철학 얘기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다반사를 조금 사색적으로 바라보는 정도의 일회성 이야기모임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내또래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 그이와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몇차례 더 만나게 되었다. 그 여성은 돈많은 중동계 이민자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워싱턴디씨 인근의 부호들이 산다는 대저택 구역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던 그 여성은 중동계 사모님이었고, 이민자이지만 영어도 소통에 불편함없이 하고 있었고 교육도 잘 받았는데 손발이 묶인것처럼 스스로 느끼기에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그 여자와 몇차례 만나면서 주로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길래 나는 너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이러저러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얘기도 하고 - 그러면 너는 어떻게 자유를 찾을수 있을까?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제안했던 것은 -- 그래 이렇게 도서관에서 여는 이런저런 모임에도 자주 나와서 사람들과 만나라. 아이들 학교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지역민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에도 나가봐라. 그래서 자꾸만 현지의 이웃을 알아나가고 - 친구를 만들고 ...   그러다가, 아마도 그 여자가 영특해서 점점 더 자신의 숨쉴만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와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을것이다. 말하자면 작은 새장에 갖혀있던 새가 스스로 새장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소크라테스 카페' 모델을 내식으로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영어카페'를 열어서 시민대 학생들 뿐아니라 지역민들에게도 홍보를 하였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고정멤버도 있고,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만큼, 지난주에 봤던 얼굴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런다. 정말 동네 카페 같은 상황이다. 장사가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럭저럭인 날도 있고. 

 

 

카페지기인 나는 수업준비 하듯이 그날의 몇가지 소통 주제를 정하여 준비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영어를 떠듬떠듬 대충 혹은 잘 할줄 아는 사람들이 와서 그걸 활용하여 대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그러니 미국에서 살다 온 교포출신 시민들도 있는가하면 진짜 영어 왕초보 시민도 있고 그렇다. 초급부터 선수까지 뒤섞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다. 

 

 

 

며칠전에는 내가 재미있는 게임을 한가지 갖고 갔는데 작은 팀을 이뤄서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는거였다. 그러니까 팀원들이 열심히 단어 설명을 하면 그중 한명이 맞추는 게임이었는데 - 한 팀의 경우 살펴보니 두사람이 번갈아 단어 설명을 했어야했는데 유독 한명이 앞서서 단어 설명을 하고 옆에 있던 이는 정말 '어-버-버-' 뭔가 말을 하려다 못하고, 하려다 못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하려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내 짝이 앞서서 그걸 모두 설명해버리는 식이었다. 나도 조금만 시간을 주면 말할수 있는데 말이다. 그 딱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나는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나의 실책이다. 번갈아 설명하라고 먼저 지시를 했어야했는데....).

 

 

게임이 끝나고, 다른 주제 토론을 하는 시간이 되었을때 나는 아까 '어버버' 하면서 가슴만 치고 있던 그 분에게 '토론 주제가 되는 이야기'를 마이크를 잡고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분은 기꺼이 마이크 앞에서 또박또박 영문을 읽어나갔고, 주제 토론이 이어졌다. 

 

 

카페 문을 닫을 시간 -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고, 마지막으로 그분이 남아있었다. 오늘 활동이 재미있었다고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까 단어게임 하실때 힘드셨죠? 잘 하려는데 입에서 그놈의 영어가 잘 안나오죠?  그래도 잘 하셨어요. 친구나 집의 아이들이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하고 평소에도 그런 게임을 해보세요. 영어가 쉬워질거에요." 그러자 이분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제가 집에서 아이들과 영어 연습을 하려고 하면 애들이 엄마는 영어 못하니까 하지 말래요..." 젊은 엄마였다. 아이들이 고작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일 것이다. 쪼끄만 놈들이 엄마의 영어를 놀린다. 그 아이들은 유아원부터 아마도 영어 사교육을 받아서 영어 발음이 제 엄마보다 좋을지도 모른다. "아이고, 아이들힌테 기죽지 마셔요. 걔네들 영어, 그거 다 엄마가 돈대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만들어 놓은건데 기죽을거 하나 없어요. 오늘 하신것처럼 그냥 자꾸 자꾸 하시면 엄마가 영어를 더 잘하시게 될겁니다." 

 

 

그 젊은 엄마가 나가면서 말했다, "아까, 저에게 읽기 시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너무 속상했거든요."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의 '눈'을 잠시 빌려주셔서 - 누가 속상한지 알게하시고 - 어떻게 위로할지 알게해주셨다. 그 젊은 엄마가 위로받은것보다, 내가 더 많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