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를 샀다. 이 소파이다. 가구 쇼핑을 함께 따라 나서 주었던 나의 막내동서는 내가 이 소파 앞에 서서 관심을 보이자 - 나를 슬며시 째려 보았다. (맘에 안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젊은 막내동서는 요즘 유행하는 기능성/기계식 기역니은자 (한국에서 일명 카우치소파라고 불리는) 그런 소파를 살 것을 기대했던 눈치이다. 물론 처음에 나도 이 소파를 살 생각은 별로 없었다. 내가 찾던 디자인의 소파 프레임을 발견했으니 여기서 시작해서 좀더 현대화된 그러나 클래식한 프레임을 유지하는 소파를 찾아 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 매장에서 이런 클래식한 프레임의 소파를 철수시키기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요즘 통 안팔린다고) - 그 소파를 팔아치우고 싶어했다.
이 소파에 대하여 맘에 안들어하던 내 막내동서는 '그것 참 잘되었다. 이런 구닥다리 디자인을 요즘 누가 산단 말인가' 이런 심산으로 거래를 깨겠다고 작정한 듯 가격을 무자비하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동서는 이 소파의 가격을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후려치면 거래가 성사가 안 될 것이고, 그러면 저 고물딴지같은 '형님'이 마음을 접고 매장에서 떠날것이라고 기대했으리라.
일단 소파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비슷한 디자인의 다른 가구들을 둘러보기 위하여 매장 이곳저곳을 안내받으며 돌아다녔고 - 그 사이 막내동서는 매장 사장님과 소파 가격 흥정을 진행했다. (그녀의 목표는 판을 깨고 어서 이곳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이 매장에서 소파와, 일인용 리클라이너와, 마스터베드룸 침대 한개와, 손님 방 용 침대 두개와, 거실장과, 협탁등을 계약했다. 알뜰한 살림 베테랑인 내 막내동서는 저 소파값을 '중고거래 앱에 나온 가격보다 더 싸게 흥정'하는데 성공했고 (안 사겠다고 막나가는 사람과의 거래에서 매장 사장님은 속수무책으로 당한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분들이 손해보는 장사를 할리는 없다), 다른 가구들에 대해서도 '응징'을 가하는 무서운 심판처럼 가격을 후려치는 것처럼 보였다. 가구 쇼핑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동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엔 형님이 그 소파 앞에 서있는데, 나는 형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마침내 우리 형님이 미치셨구나... 그런데, 그 앞에 서서 흥정하면서 보면 볼수록 그 소파가 맘에 드는거예요. 지금은 그 소파가 너무 맘에 들어요!" 나로서도 소파값이 너무 비싸서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동서가 흥정을 잘 해줘서 내 예산범위내에서 이런 고급 소파를 장만하게 되어서 마음이 흡족했다.
남편은 사실 요즘 유행하는 기능성 (리클라이너도 들어가있고, 뭐 컵홀더에, 유에스비도 꽂을수 있는 기계식 다기능) 소파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구식 소파를 고르게 되었으므로 남편을 위해서는 개인용 리클라이너를 주문했다. 난 그 기계식 리클라이너를 볼때마다 어릴때 다니던 동네 '이발소'의 의자가 생각난다. 나는 그런 의자에 앉을 생각이 없다.
소파는 내게 각별하다. 나는 예쁜 소파를 갖고 싶다. 최근 한달 가까이 집근처 가구점을 돌아다니며 소파며 가구 구경을 했다. 남편은 가구의 기능성을 봤고, 나는 가구의 '디자인'을 봤다. 가구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런 것이다 -- 2002년에 집을 떠난후 22년간 나는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는 줄곧 월세 아파트에서 살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사택에 살고 있다. 특히 사택의 경우 모든 가구며 집기가 이미 준비되어 있어서 내가 살기위해서 뭘 더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창세기 속의 인물들처럼 집도 없이 22년간 떠돈 느낌이다. 불행했다는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 집'이 그리웠다는 것이다. 최근에 오빠가 '잊혀진 나의 아파트'를 기억해 냈고, 그 집을 수리해주셨다. 너무 오래 바깥으로 떠돌았으니, 이제는 집에 가서 편안한 시간을 가지라는 배려였다. 나는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있었고, 오빠가 드나들며 그 집을 싹 새로 수리해주셨다. 오빠는 이따금 전화를 걸어서 '벽지 무슨색으로 할래? 타일 무슨 색으로 할까?' 이런 '색깔'과 '디자인'에서 내 판단을 구했다. 22년전에 내가 떠난 내 집은 우리 오빠의 선의와 노력으로 새단장이 되었다. 나는 플로리다의 노란 햇살과 파란 바다 컨셉으로 노랑과 파랑 인테리어 색을 정했다. 플로리다의 바다와 햇살이 우리집에 가득할것이다.
소파는 내게 각별하다. 나는 예쁜 소파를 갖고 싶다. 한달 가까이 근처 가구공단의 큼직한 전시장들을 둘러보면서 요즘의 가구시장 트렌드와 가격대를 익혔다. 요즘 나오는 가구들은 전혀 내 영혼을 끌어당기지 못했다. 가구점을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 나를 감동시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달 넘도록 시간을 보냈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막내동서가 '가구박람회' 티켓을 구해놓고 그 날을 기다렸던 것이다. 가구박람회에서 나는 '영혼'을 건드리는 가구를 찾지 못했다. 내가 "찾는게 없어. 피곤하다. 그냥 집으로 갈까봐" 하자, 막내도련님 (우리 동서의 남편)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근처 가구공단에 가보자 했다. 안그래도 되는데. 내게 '막내 도련님'이지만 - 대학생때는 내가 도시락을 싸주곤 하던 귀한 시동생이지만 그도 지금은 50이 넘은 신사가 아닌가. 우리 모두 팍삭 늙었다. 그렇게 국내 최대 가구공단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가구점 거리로 가서 몇집을 도는 동안 나는 반복했다, "내 영혼을 건드리는 가구가 안나와. 나를 건드려야 내가 살텐데."
그렇게 몇집을 돌다가 마침내 이 소파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파를 시작으로 그 매장에서 일사천리로 중요 가구들을 선택했다.
나의 아파트는 우리 가족이 2000년도에 사서 입주한 곳인데, 그 때 너무너무 행복했다. 동네에서 몇년간 살면서 눈여겨 보던 큼직한 아파트였다. 이곳에서라면 아이들이 다 장성하여 결혼을 해 나가고, 손주들이 놀러와도 좋겠다고 - 이제 평생 이사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좋아했다. 그당시 아이들이 어렸으므로 거실에 TV를 놓는 대신에 '서재'처럼 꾸미자고 생각하고, 근처 목공소에 책꽂이를 맞췄고, 소파를 한달 넘도록 고르러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골라낸 소파가 아래와 같은 것이다. (디자인은 동일하고, 패브릭의 꽃무늬가 조금 차이가 나지만 이런 분위기였다). 일인용 암체어는 올리브색 체크무늬였다. 당시에 '수입가구점'에서 이 소파 세트를 샀는데, 제법 값이 나갔다. 서양사람들 몸집에 맞게 제작된 것이라 소파가 다소 높기도 했고, 아무튼 그당시에는 꽤나 '별중스럽고' 유별난 아이템이었다. 보수적인 사람들 눈에는 '유난맞아'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언니는 - 너는 평범한걸 사지 왜 이렇게 유난맞은걸 사냐고 평했다.) 남들의 평이 어쨌건, 나는 내 소파가 너무너무 좋았다. 2년후에 우리는 집을 비우고 미국으로 떠났고, 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몇년후에 남편이 모든 살림을 싸가지고 버지니아로 왔고, 나는 몇년 만에 이 소파를 버지니아에서 만났다. 원래 미국에서 수입해 온 소파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 이래로 이 소파는 대략 2020년도까지 우리 미국집에서 살았다. 내가 미국집을 떠난 후에도 방학때 가면 소파는 여전히 그자리에서 나를 반겼다. 나는 침대에서 잔 날보다 이 소파에서 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패브릭으로 만들어진 내 소파는 나달나달 해지고 낡아갔고, 나는 조안스 패브릭에서 소파수선용 헝겊을 사다가 덧대어 꿰매가며 이 소파와 살았다. 소파와 나는 '함께 살았다.' 이 소파에는 우리 개 '왕눈이'의 냄새가 배어있었고, 그 모든 시간의 냄새가 스며있었다.
2020년쯤 아이들이 장성하여 하나는 아리조나로 하나는 버지니아 남부 도시로 직장을 따라 이사하게 되면서 집의 집기며 가구들을 나누거나 정리해야 했는데, 너무나 누덕누덕한 소파를 마침내 '처분'하는데 모두 동의했다. 두 아들이 소파를 들어 아파트 쓰레기장에 갖다 놓았다. 나는 내 방에 꼭꼭 숨어서 소파가 나가는 것도 보지 않았고,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도 가지 않았다. 나는 약 일주일 가까이, 외출할 일이 생겨도 일부러 아파트 쓰레기장을 피하여 멀리 돌아가곤 했다. 내 사랑하는 소파가 버려져있는것을 두눈으로 볼 수가 없어서. 소파는, 집에서 키우던 '개'와 별 차이가 없는 '정서'적 대상이었다. 나의 소파는 20년간 나와 함께 살았다. 소파를 끌고 왔던 남편이 워싱턴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큰애가 한국으로 가서 군대에 가 없는 동안에도, 작은 애가 대학 기숙사로 가서 나와 왕눈이만 남겨졌을때에도 나는 별로 외롭지 않았다. 나는 왕눈이와 함께 소파에 기대고 눕고 뒹구르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태평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 소파를 사랑했다.
나에게 소파는 각별하다. 내가 그 품에 눕고, 내가 그 품에 기대고, 안겨서 위로를 받는 '존재'다. 내 소파는 '사무용가구'나 '공공시설' 혹은 '호텔가구'와는 조금 달라야 한다. 내 소파는 '집'이어야 한다. 집의 가구는 '집 가구'여야 한다. 나는 아마도 가구를 찾는동안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가구를 다 정한후에 이런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다. 내가 찾아 헤메던 것은 '집'에 어울리는 가구였다.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오면, 나는 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푹 쉴 것이다. 나의 옛 소파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 소파를 닮은 새 소파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반길 것이다.
내가 갖고 싶은 집 색상 컨셉: 햇살이 졸린듯 따스하고, 파란 바다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나가고, 나는 고양이와 모래사장에 누워서 낮잠을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