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 뭔가 그의 평생을 곁에서 함께 해 주었던 늙고 병든 개를 끌고 나가 안락사 시키거나 길거리에 버리러 나가는 기분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남편이 골라서 상자에 담아놓은 책들이 현관앞에 있었다. 중고서점 (알라딘)에 내다 팔 것들이었다. 저녁을 먹고, 운동 할 겸, 그 책들을 백팩에 가득 담았다. 마치 늙은 부모를 지게에 지고 나가서 산속에 버리려는 패륜 자식들처럼 (고려장 혹은 나라야마 부시코) 우리는 책을 짊어지고 1 킬로미터쯤 되는 상가 거리를 지나 알라딘에 도착했다. 우리가 지나치는 상가거리를 우리끼리는 '소돔의 거리'라고 부르는데, 대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을 목표로 한 술집들과 고깃집들이 즐비한 그 거리를 지날때마다 늘 반복해서 떠오르는 단어가 '소돔'이기 때문이다.
소돔의 거리를 지나서 '알라딘'에 도착한 우리는 책을 매대에 꺼내 놓았다. 점원이 자신들이 구매할 책과, 살 필요가 없는 책을 따로 구분하였다. 구매할 필요가 없는 책들은 우리가 그대로 놓고 갈 경우 그냥 폐기된다고 한다. 어떤 책들은 진열대로, 어떤 책들은 폐기 상자로 가겠구나. 등이 아프게 짊어지고간 그 책들을 내려놓고 우리 알라딘 계정에는 9,000원이 들어왔다. 단돈 구천원에 세계의 지성들이 쌓아올린 그 지식의 보석들을 폐기하는구나...
돌아오는 길, 우리는 자주 들르던 카페에 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팔아넘긴 그 값진 지식의 저장소가 단돈 구천원이었기 때문이다. 빵하나 커피 한잔 값에 불과한 지식. 우리는 팔아버린 늙은개가 미안해서 그 돈을 함부로 쓸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당분간 우리는 어쩐지 카페에서 사오천원에 판매되는 음료수를 덜컥 사먹을수 없을것만 같다. 남편이나 나나 '지식'을 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는 지식을 폐기하고 돌아온 패륜아(들)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마다 우리는 백팩에 가득 늙은개를, 늙은 어머니를, 늙은 아버지를 짊어지고 내다 팔것이다. 운동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