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5. 16. 22:28

 

 

지난 주말에 장을 보러 나간 길에 헌책방에 들렀다.  책방은 새책방이건 헌책방이건 그냥 지나치기가 힘든 곳이니까. 일없이 기웃대다가 콘라드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 하드커버본을 발견했는데, 어쩐지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1판 1쇄가 2000년, 그리고 이 책은 22쇄 2014년에 나온 책이다. 아마도 나는 1판1쇄를 사서 읽었을것이다.  그리고 24년이 흘렀을것이다. 

 

'솔로몬의 반지'는 아마도 나를 '자연과학'으로 이끈 최초의 책이었을것이다. 그해에 나는 폭식하듯 생물학, 동물학, 물리학, 진화생물학, 기술서적등 평소에 내가 읽지 않았던 과학책들을 밀린 숙제 하듯 읽어'치웠다.'  '질풍노도의 자연과학책 탐독시기' 정도 되려나.  그해에 읽었던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이후에 플로리다주립대 대학원에 들어갔던 첫학기에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주제로 SLA의 패러다임 변화를 논할때도 역시 언급이 되어져서 놀랐었다.  그 놀라운 과학책의 세계로 이끌어준 책 '솔로몬의 반지.' 

 

 

 

 

 

나는 이 책을 나의 집, 내 서재의 하얀소파에서 뒹굴며 읽었었다.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가, 내 소파에 누워서 오래된 이솝 이야기책을 읽고, 또 읽고 하듯 이 책을 띄엄띄엄 읽을것이다. 

 

나는 요즘 좀 맥이 빠졌다. 나이가 들어서 에너지 레벨이 낮아진 탓도 있지만 - 최근에 내 책의 최종 작업을 해야 했다. 내 책은 시월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독서의 계절에 맞춰서 서점에 출시하려는걸까? 나는 알고 있다. 시월이 금세 닥치리라는 것을. 나에게 시간은 가혹하리만치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것처럼 여겨진다. 시월은 금세 닥칠것이다.  그때까지 별일 없기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아무튼 최종 원고 작업을 하고 나니 맥이 빠지고,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 든다.  나는 앞으로 또다른 책을 쓸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가?

 

우리 오빠는 이따금 내게, '너 왜 소설 안쓰니?'하고 묻는다.  오빠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젊은날의 나를 기억하는 몇 안되는 사람중의 한명이다.  오빠는 내 소설이 출판되어 나온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몇 사람중의 한명이다. 그 책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소설에서 너무 멀어져있다. 근 이십여년간 여간해서는 소설책조차 읽지 않았다. 사람이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된다.  인생에 대해서 너무 상세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알아버리고나면 소설을 쓰는 일이 어딘가 맥이 빠진다.  소설도 아직 사람이 젊을때 시작할수 있는거다. 물론 젊어서 소설 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잘 써나갈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람은 소설을 시작하기기 힘들어진다.  나는 어쩌면 더이상 무엇을 쓰지 못할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 없다. 나는 글을 쓰기보다는, 바닷가로 가서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글을 쓸수 있을거라고 상상했던 적이 있는데, 사랑이 끝나고나면 다 끝나는거다. 파도소리만 남는 것이다. 파도소리면 족한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