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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30 삼나무 장식 : 숲의 향기를
- 2024.11.28 가게들이 모여있는 골목길
- 2024.11.25 새벽.별.
- 2024.11.21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에 그의 현재가 들어있다
- 2024.11.20 행복의 공식은 '분수'만 알면 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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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29 다알리아 길
- 2024.10.25 과학은
- 2024.10.25 강의실과 카페와
인천 송도에는 T상가거리가 있고, 그곳에 M 이라는 매장이 있다. 집에서 사용하는 부엌 용품이며 침구류 커튼 등 가정용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매장이다. 근처에는 H 아웃렛도 연결되어 있어서 유동인구가 일정하게 있는 편이다. 우리 부부도 밥하기 싫을때는 이곳으로 나가서 밥을 먹고, 소화시킬겸 산책삼아서 상가거리를 걷다가 그 M매장에 들르기를 좋아한다. 나는 예쁜 컵을 들여다보는 편이고, 남편은 후라이판에 관심이 많다. 이 매장의 좋은 점은 실용적인 가격대의 예쁜 물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고, 내가 구경하는 동안 점원들이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따금 꼭 필요한 물건을 발견하면 사기도 한다.
어제도 매장에서 내가 평소에 '사야지'했던 것을 발견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하도 빨아 쓰다보니 나달나달해져서 새로 살때가 된 것인데, 마침 그것을 할인판매하고 있으니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것을 사려고 집어 들었다가 - 그냥 내려놓았다. 그리고 중얼댄다, "아 줄서서 돈내기 귀찮아. *팡으로 주문하면 되는데 뭐."
사실 그 시간대에는 매장이 한산해서 값을 치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카운터에 가져가서 카드만 내밀면 그만일터였다. 그런데 내가 왜 마음을 바꾼 것일까?
그것을 들고 계산을 하려고 머리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본 순간! 바로 그 순간! - 나는 기억해냈다. 내가 이 매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곳이 계산카운터라는 것을. 그랬다. 이 매장은 구경하기에는 참 좋다. 그런데 무엇을 사가지고 나올때 기분이 애매하게 불쾌하다. 아주 아주 애매하게, 설명하기 힘들정도로 애매하지만 그러나 느낌은 분명한 '불쾌감.' 무엇이 나를 애매하고도 선명하게 불쾌하게 만드는가 하면 - 계산을 치르기위해서 카운터에 도착해서 계산을 마치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 카운터앞에 서있는 것이 애매모호하게 불편한데 - 카운터 직원의 태도가 어둡고 침침하고 불편해서이다. 그 매장은 참 이상하다. 카운터 직원이 누구이건 그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모두 불편하다. 표정도, 언어도, 행동도, 어딘가 '내가 죽지 못해서 여기 있는거지. 너같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서 여기 있다는것이 참 따분하고 한심한 일이고, 나는 일을 하기 싫고, 네가 이걸 사거나 말거나, 나를 귀챦게 하지 말아줘' 이런 메시지를 온몸에서 뿜어내고 있는것 같은 표정과 말투와 자세.
이게 나만 이렇게 느끼는건가 싶어서 동료에게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매장에 가서 예쁜거 구경하는거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뭔가 사갖고 나올때 기분이 아주 나빠져. 불쾌해. 왜그런지 모르겠어" 했더니 내 이야기를 듣던 동료도 말했다, "거기 직원은 어딘가 사람을 깔보는것 같아. 나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 그러니까 나만 '미친X'이 아니었던거다. 나하고 비슷한 느낌을 갖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었던거다.
그러면 나는 왜 그 카운터를 싫어할까? 나는 카운터 직원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누구가 되었건 거기 서있는 사람의 태도에는 일관되게 '어둡고 불행하고 따분한' 아우라가 있다. 거기서 느껴지는 그 불행감은 - 거기 서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듯 하다. 누구나 거기 서면 그렇게 된다면 - 그 자리가 문제다. 그 조직의 문제. 그 조직은 거기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그 매장에 비해서 훨씬 저렴한 다이* 매장을 생각해본다. 천원혹은 몇천원짜리 물건으로 가득찬 그 매장의 직원들은 대체로 활기차고, 누군가 질문을 하면 활기차고 신속하게 안내를 한다. 나를 무시한다거나 본인들이 스스로 불행한 표정이라거나 그런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적어도 불행해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건 '조직문화'의 문제처럼 보인다.
T 스트리트의 M매장을 나는 여전히 좋아할것이다. 들러서 구경하는 곳으로. 하지만 계산대의 불쾌함 때문에 거기서 물건을 사는 일은 좀체로 없을것이다.
6시 이후로 금식하라길래 4:30에 이른 저녁을 먹고, 6시까지 신나게 단감과 귤과 요거트를 먹었다. 그리고 일체 물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새벽에 잠이 깨어, 건강검사소에서 챙겨 오라는 것들을 챙기고 - 성경쓰기를 먼저 할까, 밥을 먼저 안칠까 잠시 고민하다가 - 밥을 안치고 나서 성경쓰기를 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밥을 안쳤는데, 밥에 이어서 자동적으로 아침 밥상에 올릴 이것저것을 씻고 다듬고 데치고. 무슨 정성이 뻗쳤다고 시금치까지 꺼내어 다듬어 씻어서 데치고 헹궈가지고 그걸 무쳤던거다.
그게 사단이었다.
시금치.
그러니까, 남편이 '오징어숙회'가 먹고 싶다고 지난 저녁에 장봐다 놓은 것을 향긋하게 데쳐서 썰어서 접시에 담을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신이 온전했다. 이것을 맛보려고 입에 넣으면 안되지. 나는 금식해야 하니까. 나는 얼마나 기특한가, 아침부터 남편을 위하여 진수성찬을 차리고 있지 않은가! 제법 스스로 기특하여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시금치 나물로 옮겨간 것인데, 시금치 나물의 간을 간장으로 할 것인가 소금으로 할 것인가 약간 고민하던 사이에, 그만, 내가 위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살짝 망각하고, 소금으로 방향을 잡고 소금과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주물주물 하다가 그만 '간'을 보기 위해서 그걸 한잎 입에 넣고 우물우물 맛을 봤던 것이다. 향긋하다, 고소하다, 싱싱하다. 좋았어 좋았어. 간도 딱 맞네! 하고 스스로 감탄하다 말고, 그제서야 내가 '금식'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목에 손가락을 넣어서 그 시금치를 토해내려고 별짓을 다 했지만 - 아무래도 식도를 내려가던 시금치가 긴급소환장을 받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식도벽에 딱 달라붙은것일까?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하는수 없이 나머지 작업을 마저하고 시금치 나물이 포함된 칠첩반상을 남편에게 바쳤다.
"시금치 딱 한잎을 삼켰을 뿐인데요..."
내시경 담당자는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검사는 불가능합니다. 다른 날짜를 새로 잡으셔요."
그래서, 사정사정 통사정을 하여 내시경 검사를 내일 아침으로 다시 잡고, 나머지 다른 건강검진항목들을 채우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구박하던 담당자가, 내가 다른 검사를 모두 마치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 "또 금식을 하셔서 어떡해요, 힘드셔서" 하고 제법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 줬다. 아마도 아까 나를 구박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말해줬다.
"괜찮어유~ 뭐, 금식기도 기간으로 생각하면 돼유~ 금식기도 하고 오겄슈~"
시금치는 - - - 사랑이다.
어제, 산에 산책나갔다가, 눈에 쓰러진 삼나무가 보이길래, 가지들을 꺾어가지고 왔다. 산길 다 내려오면 도로 건너에 다이소가 있어서, 다이소에 들러서 포인센티아 핀 세개 한봉지와, 크리스마스 덩굴 그런것 사가지고 왔다.
오늘 오전에 청소하고나서 삼나무들을 엮고 포인세티아 핀을 하나씩 장식으로 꽂아 주었다. 하나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도시가스관에 매달아 놓았고, 또 하나는 향긋하라고 침실 창가에 (커튼 끈에 그냥 감아 놓았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는 달력에 걸었다.
삼나무 잔가지 잎들이 남았길래, 찻잔 받침으로 쓰니 좋다. 천주교에서는 이런 식의 뭐가 있다던데 잘 모른다. 그냥 이렇게 잔을 받치고 차를 마시니 내가 융숭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든다.
다이소표 크리스마스 덩굴 두줄로 아파트벽에 붙은 인터폰을 칭칭 둘러감아주었다. 역시 다이소표 장식품으로 모니터 화면도 가려버리고. (사실 우리집의 방문객은 극히 제한적이고 인터폰이 울리는 일은 거의 없다. 모니터를 가려버리니 '감시자'가 사라진것 같아 흐뭇한다.)
산에 가서, 눈에 쓰러진 소나무나 삼나무를 발견하면, 나뭇가지를 잘라다가 집안을 장식해야지. 숲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싶으니까. 숲의 향기를.
위 이미지는 내 머릿속의 '골목길'을 검색하여, 가장 비슷한 것을 빌려온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이런 골목길에서 성장했다. 집들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드문드문 주택과 상점이 뒤섞여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주택의 일부를 가겟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집과 가게가 뒤섞여 있는.
대체로 도시생활이 아파트 거주로 바뀌면서 - 아파트 상가나 혹은 상가거리외에 집과 가게들이 뒤섞여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지금도 지방 중소도시에 가면 그런 풍경들이 남아있으련만, 내가 현재 거주하는 인천 송도나 고양시 모두 아파트, 상가, 빌딩, 도로 뭐 이런 식의 구획이 분명하다. '사람의 집'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가게'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이 살고, 상점들도 있지만 - 내 머릿속의 사람의 '집'과 사람의 '가게'를 현실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용인의 고향땅에서 농사 짓는 일에 싫증이 나셨는지, '외도'를 몇년간 하신적이 있다. 수원의 원천호수 근처 마을에서 '가게'를 여셨다. 그 가게라는 것이, 호숫 입구 마을의 마당있는 보통 집이었는데, 원천 유원지 입구이고, 버스정거장도 바로 집앞에 있는지라, 그냥 보통 마당있는 집의 마루에 '물건'을 진열하여 팔기 시작하셨는데,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 마루를 개조한 가게의 수입이 짤짤해지고, 그러면서 판매되는 물건의 종류도 점점 다양해지고, 뭐 간판을 달지도 않았지만, 그 가게를 하면서 두분이 수원바닥의 돈을 쓸어 모았다는 얘기도 있고, 어쨌거나 한재산 모으셨으리라. 개울건너 밭건너에 '선경직물' 공장과, '삼성전자' 공장이 그 당시 지어지고 있었고, 이어서 그곳에서 일하는 '공장 직원'들이 빵이나 사탕, 사이다를 사 먹을데가 우리집 밖에 없었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이다. 상가도 상점도 무엇도 아닌, 그냥 마당있는 집 마루에 대충 만든 가게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내 머릿속에 뿌리내린 '가게'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다. 사람의 집과 사람의 상점이 결합된. 그런것들은 새들이 멸종하고, 식물이 멸종하듯이 멸종되는 중이리라.
그런데, 오랫동안 남에게 빌려줬던 고양시의 내 집으로 이십여년만에 철새처럼 돌아온 요즘, 바로 내 집 근처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우리집에서 길을 건너면 구청이다. 우리집 베란다에서는 구청의 마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내가 원한다면 구청장님과 구청직원들이 출퇴근하는 것도 '감시'할수 있다. 집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면 구청담을 끼고 산책을 할수 있는데, 구청 담을 끼고 조금 걷다가 길을 건너면, 상가건물 사이로 '차의 통행이 금지된 구역'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대략 500미터 정도 되는 길의 양 옆으로 각종 가게들이 있다. 오늘 오후에 내가 산책을 나가서 들렀던 가게들을 저 끝에서부터 되뇌어 보자. 길의 끝까지 갔다가 집쪽으로 차례차례 되돌아 오며 가게를 들르는 것이다.
- 정말 '구멍가게'라고 할만한 자그마한 '구멍' 혹은 '굴'같은 도넛가게가 있다. 거기서 나는 모짜렐라 치즈볼을 4개에 오천원을 주고 샀다. 그집 꽈배기도 맛있지만, 나는 새로 발견한 치즈볼에 재미가 들려서 그걸 산다. 딱 한개만 먹으면 되는데 왜 네개를 사느냐하면 - 그냥 오천원 내는게 편해서 그렇다. (나이 먹은 사람이 잔돈 주고 받고 하는게 어쩐지 미안해서. 그정도 여유는 있으니까. 그렇게 작은 가게에서 크레딧카드 쓰는것도 어딘가 미안해서 꼭 현금으로.)
- 도넛가게 맞은편에 떡볶이, 어묵, 각종 튀김 그런것 파는 역시 작은 가게가 있다. 일전에 군대 제대한 조카가 온다고 해서, 조카 주려고 그집에서 떡볶이를 산 적이 있다. 오천원어치 샀는데, 조카와 둘이 1/3 정도 먹고, 나머지 2/3는 아직 냉장고에 있다. 나중에 먹을 것이다. 오늘은 그 집에서 튀김 오천원어치를 샀다. 튀김 한개에 800원이라고 해서, 그냥 오천원어치 달라고 했더니 일곱개를 준다. 오늘 한개 먹었다.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생각날때 꺼내 먹어야지. 나이 먹으면 먹는 양이 줄어든다. 생각같이 많이 먹지를 못한다.
- 몇 집 내려와서, 손두부 가게에서 - 사장님이 오늘 만들었다는 두부 두모를 샀다. (한개 오천원, 두개 만원). 그런데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누릉지도 있길래 그것은 한봉지 육천원에 샀다. 비상식으러 뒀다가, 출출하고 뭔가 뜨끈한 숭늉이 먹고 싶을때 끓여먹어야지.
- 길가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이것저것 늘어놓고 농산물을 파시길래 감자를 한봉지 샀다. 역시 현금 오천원.
- 내가 고양시 집에 오면 반드시 가는 과일가게가 그 골목에 있다. 그 과일가게에서는 진열한 여러가지 과일중에 귤이 있는데, 참 이상하다. 큰 귤은 한바구니에 칠천원이고, 작은 귤을 한바구니에 만원이다. 전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과일가게 사장님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저것은 작은데 왜 더비싸요?" 나는 큰귤을 좋아한다. 과일사장님 왈, "원래 귤은 작은게 더 비싸요. 작은게 더 달고 맛있거든요." 어라..어라..난 큰 귤이 더 시원하고 맛있던데요? 과일사징님 왈, "그렇더라구요. 큰귤 좋아하는 분들은 작은귤 싫어하고, 작은귤 좋아하는 분들은 큰귤 싱겁대요." 나는 큰귤파다. 큰귤이 더 싸니 더 좋지 (원래 내 입맛이 저렴해요).
- 골목의 끝에 **생협이 있다. 사실 나는 생협이 뭔지도 모르는데, 살림의 여왕인 내 친구가 "너 생협에 멤버십 가입하고, 거기서 좋은거 사다 먹어라"하고 알려줘서, 친구가 이르는대로 멤버십가입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들른다. 집에 올때마다 한번은 들르는 셈이다. 오늘은 거기서 콩나물, 쑥갗, 그리고 통영굴을 한통 샀다.
- 생협 맞은편에 '반찬가게'가 있다. 다섯개에 만원. 다섯개의 작은 팩에 들은 여러가지 반찬을 골라담았다. 시래기나물 두팩, 멸치볶음 두팩, 그리고 파래무침 하나.
물론 이 외에도 이 골목에는 빵집에 몇군데 있고, 남자 머리 깎는 미장원도 두군데 있고, 일반 미용실도 몇군데 있고, 여성 맞춤옷 만드는 그 옛날식 양장점 (기성복이 아니라 몸에 못 맞추는 그런것 말이다)도 두군데나 있고, 꽃집도 있고, 문방구, 김밥집, 떡집, 커피집...다음에 산책가면 입구부터 하나하나 기록을 해 볼까보다.
홈플러스나 뭐 롯데마트나 이마트를 갔다면, 나는 그 '마트'에서 이런 것들을 '카트'에 담고 한꺼번에 계산을 했겠지. 하지만, 그 가게골목에서 나는 일곱개의 가게에 들러서 일곱명의 가게 주인/점원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 받고, 봉지, 봉지, 조롱 조롱 내게 필요한 먹을 거리들을 샀다. 봉지 봉지 조롱 조롱. 그중에서 무겁고 부피가 큰것은 시장가방에 담고, 찌그러지면 안되는 것은 따로 들고, 조롱 조롱. 우리 동네에 이런 가게 골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가 아주 맘에 든다.
두 사나이
2주 전에 노란 은행잎 빛깔로 물들었던 연세 백양로의 나무들은 이제 잎을 떨구고 겨울 휴식으로 들어서는 풍경이었다.
평소대로 오전 6시에 집을 나섰다. 네비게이터는 40분 후에 신촌에 도착할거라고 알려주었다. 길은 막힘없이 순하게 잘 흘러가고 있었는데, 운전을 시작한지 10여분이 흐른 후에 운전석 대쉬보드에 '타이어'에 문제가 있다는 표시등이 들어오더니, 이어서 타이어가 앞 뒤 모두 공기압이 떨어져있으니 점검하라는 좀더 상세한 메시지가 뜬다. 아마도 기온이 내려가니까 타이어 공기압이 줄어서 그런거 아닐까? 미국에서는 도로를 달리다가 이런 표시가 뜨면 근처 주유소에 들러서, 주유소 구석에 반드시 있는 공기주입기로 직접 공기를 넣어주면 되지만, 한국의 주유소에는 코인 공기주입기가 없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본적이 없다.) 살살 운전을 하면서 생각을 굴리다가, 일단 주유도 해야 하니까 근처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타이어 점검을 해보기로 했다.
수색 못미처서 (고양시와 수색 경계쯤 되는 곳) 전에도 새벽에 들렀던 그 주유소에 들어서니 어딘가에서 주유해주시는 아저씨가 나타나셨다. 나는 셀프 주유를 하려고 문을 열고 나선참이라서 아저씨가 주유를 하는 동안 차를 둘어보며 발로 쿵쿵 타이어를 쳐보기도 하고, 내 식으로 타이어 점검을 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타이어 표시가 떴는데, 어디서 공기를 넣죠, 이 새벽에?" 나 혼자 타이어를 발로 쿵쿵 치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주유하던 아저씨가 흘려듣지 않고 대꾸했다,, "왜요? 차에 타이어표시 들어왔어요?"
나: 네...이거 날이 차가워져서 뜨는거 같은데, 어디서 공기를 넣죠?
그: 카센터 가셔야죠 뭐. 지금 연데는 없고, 이따가 들러보세요.
나: 그래야겠죠? (한숨)
그: 어디 가시는데요? 어디 먼데 가세요?
나: 지금부터 세브란스에 갔다가, 그 후에는 인천에 가야 하는데요...
그: 아이고, 그러면 카센터 들르기도 애매하시네... (잠시 생각하다가)...지금 급하시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봐드릴수도 있을것 같은데요.
나: 네, 일찍 서둘러서 출발해서 지금 급하지는 않아요. 봐주시면 저는 너무 좋죠.
그: 그러면, 주유 다 끝났으니까, 차를 저 구석으로 빼 놓고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이 형님이 오시면 되는데...
나: (차를 주유소 구석으로 빼 놓음)
그: 여기 계시면 우리 형님이 오실거예요. 그러면 형님이 봐주실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 5분쯤 후에 새벽 어둠 속에서 또 한 사나이가 다가왔다. 그는 한구석 창소에서 공기주입기에서 연결된 호스를 가져다가 내 차의 네개의 타이어를 하나씩 점검하며 공기를 넣어주었다.
그2: 겨울에는 공기압이 줄어서 이런 일이 생기죠. 일단 임시방편으로 공기 맞춰 놓았으니까, 만약에 또다시 타이어 표시가 뜨면 그땐 어딘가 빵꾸가 났을지도 모르니까 자주 다니시는 카센타 가셔서 점검 받아보세요.
그1과 그2는 조심해서 무사히 목적지까지 잘 가시라는 덕담과 함께 나를 그냥 보내려했고, 나는 '커피'라도 사 드시라며 인사를 챙겼다. 극구 사양하던 그분들이 내 작은 선물을 받으며 훈훈하게 웃으셨다. 이분들이 새벽에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 오늘 하루는 훨씬 더 고단했을것이다.
(추신) '휴대용 자동차 공기주입기'를 언라인으로 검색하여, 그중에서 평이 좋고 가격이 높은 (싼게 비지떡이라, 뭔가 잘 모를땐 가격 높은걸 고른다) 것으로 주문을 했다. 차에 갖고 다니다가 '타이어' 표시등 들어오면 당황하지 말고 내가 직접 손봐야지.
"내가 암에 걸렸지 정신병에 걸린줄 알아?"
복도에서 갑자기 쩌렁쩌렁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부터 모든것은 내가 '귀'로만 들은 내용이다.
그: 나, 주사놓은 간호사 오라고 해! 나 주사놓은 간호사 어딨어?
그의 보호자: (아마도 부인인듯, 쩔쩔매는 말투로) 아이고 알았어요, 제발 목소리좀 낮추세요...
그: 나 주사 놓은 간호가 부르라구!!!
온동네가 시끄럽자 마침내 그의 담당간호사였던 사람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노신사는 일부러 그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들으라는 듯이 호령을 해 댔는데, 그의 큰 목소리덕분에 문제의 본말을 대체로 (주로 그의 시각에서) 주워들을수 있었다.
문제는,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그는, 자신이 항암제를 제대로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항암치료 다 끝났으니 이제 귀가하셔도 됩니다'라는 메시지를 듣고 황당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제대로 처방을 받고 주사를 맞은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마침내 소환된 간호사는 '제가 아까 모두 설명 드렸습니다' 하는 입장이고, 화가 난 노신사는 '당신이 언제 나한테 설명을 했다고 그래? 왜 거짓말을 쳐? 나한테 제대로 설명 안했쟎아. 왜 나한테 설명안하고 마치 내가 못알아들은것처럼 얘기하는거지?' 이런 입장이었다.
이때, 이 노신사가 분기탱천하여 했던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암에 걸렸지, 정신병에 걸린줄 알아?"
결국 해당 간호사가 '제가 정확히 설명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처방대로 주사 모두 맞으셨고요, 보호자님께 설명 드렸고요, 보호자님도 인정하시고요. 저의 실수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오늘 주사 모두 끝나셨습니다.' 이렇게 설명과 사과를 나붓나붓 하는 것으로 이 소동은 끝이났다.
그냥 어느 한구석에서 이 소동을 귀로만 듣는 내 입장에서는 노신사가 약간 히스테리컬한 면도 있었고 (그 부인은 쩔쩔매는 말투였다), 아마도 어딜가나 저렇게 장군처럼 당당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씀은 결국 하시는 분인것도 같고, 대체로 좋은 인상을 주기는 힘들었지만 그가 했던 한마디는 두고두고 곰곰 생각하게 했다. "내가 암에 걸렸지, 정신병에 걸린줄 알아?"
'환자'는 우리가 종종 잊고 있지만, 이 사회에서 '약자'에 속한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그들이 신경질을 내면 - 환자로서의 히스테리로 보기도 쉽다. 몸이 아프기때문에 짜증을 내는 면도 있겠지만, 환자라는 이유로 어쩌면 무시당하고, 바보취급 당할수도 있을 것이다.
비명
테이크아웃으로 음식을 주문해놓고, 식당 벽에 기대서서 기다리는 동안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직원과 방문객들로 장터처럼 붐비던 그 구내식당. 나는 벽에 기대서서 기다렸다가 음식을 들고 나가면 그만이었지만, 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평소에 그곳은 주문대에 서있던 식당 직원이 노약자들에게 마땅한 좌석을 찾아 안내를 하기도 하는데, 가끔 그런 광경들을 발견하면 그분들이 천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연히 내 눈안에 들어온 광경: 한 젊은 여성이 입구 가운데 서서 홀 안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두리번두리번 하는 사이에 카운터 직원이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나가서 기다려주세요." 젊은 여성은 그 말을 듣고, 입구에서 밖으로 사라졌고, 마침 그의 어머니인듯한 노부인이 그를 뒤쫒아 나서며, "저기 자리 네개 맡아놨다. 먹고 가자!" 외쳤고 - 이미 기분이 나빠진 젊은 여성은 노부인을 끌고 나갔고, 노부인의 뒤를 이어서 아파보이는 노신사도 영문을 모르는채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주문한 테이크아웃을 받으러 갔다 오니 식당입구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나갈줄 몰라서 거기서 나가라고 하는거에요? 내가 그런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요? 우리 아버지 오늘 항암받으러 오셔서, 뭐라도 드시게 하려고 자리 찾고 있었던건데 나가서 기다리라고요? 여기 나가서 기다리는 시스템이라도 있어요? 여기 병원 식당이면, 여기 오는 사람들의 기분이 어떤지는 아실거 아니에요? 지금 이것을 안내라고 하는거에요?" 해당직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대체로 상대가 흥분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리며 사과하고 달래는 중이리라.
내게는 그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외마디 비명처럼 들렸다, '나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누군가 나를 좀 위로해줘. 내게는 늙으신 부모님이 계시고, 우리 아빠는 말기암환자야.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중이야. 너무나 딱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는 비명같은것. 그것을 비명으로 듣는다면 - 그 카운터 직원도 칼과 같은 그의 말에 다치기보다는 공감하고 그리고 위로의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있는대로 화를 내는 그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 괜챦아, 다 괜챦아질거야 - 뭐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미소
그곳에 가면, 나는 의식적으로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때마다 방긋 웃어준다. 평소에 내가 밝게 미소를 지으면 사람들은 내 미소가 멋있다고 말한다. 그걸 기억해내고, 그곳에 가면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쩌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에게 그 멋있는 미소를 보내려 애쓴다. 오늘도 누군가가 "9번이 어디지..."하고 두리번 거리길래 "저기에요"라고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리키며 환하게 미소를 보냈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그 창백하고 마른 사나이는 내 미소에 화답하듯 밝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이구 가르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냥 단지 미소만 보냈을뿐인데도 사람들은 고마워하고 인정의 꽃같은 미소로 화답하곤 한다.
그래, 우리 이렇게 살다가 내일 마른꽃처럼 진다고 해도, 오늘은 인정의 꽃을 활짝활짝 피우며 순간을 화려하게 사는거다. 웃는거다.
기말이 다가오고 있다. 기말 프로젝트 제출 시한이 다가오고 있고, 기말 제출 이전에 '드래프트'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는 기간이다. 그 '초안 (드래프트)'에 이러저러하게 고치고 보충하라는 피드백을 주는것이 교수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골치아픈 과제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과제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고 상상하는데,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하나만 하면 되지만, 가르치는 나는 이걸 수십명 분을 들여다봐야 한다구! 내가 더 중노동이라구!"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학생이 과제하다가 몸살을 겪을때 - 그 과제를 들여다보고 피드백을 적절히 줘야 하는 교수는 피드백 주다가 응급실에 실려간다. 그래서 기말이 되면 학교 전체가 조금씩 미쳐가는것도 같다. 학생들도 피로에 쩔은 얼굴이고, 교수들도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허둥지둥 돌아다닌다. 우리 모두 힘든 산을 함께 넘는 것이다.
내 수업을 두가지를 수강하는 학생이 있다. 참 착실하고, 의지가 되는 학생이다. 아침 9시 수업을 학생들이 회피하고, 지각을 하고 그러는 편인데 이 학생은 내가 오전 8:40 쯤에 강의실에 도착하면 이미 와 앉아있다. 이른 아침 빈 강의실에 불도 안키고 조용히 앉아 있다. 뭘 하는지 모르지만 늘 일정하게 그자리에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고 수업 세팅을 하면서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곤 한다. 참 좋은 사람이다. 오후에 진행되는 다른 수업에서도 그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 학생이라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과제를 무난하게 잘 해낸다.
그런데, 이 학생이 '연구 논문쓰기' 관련 수업에서 뭔가 이상 증세를 보였다. 기말 연구논문 제출 전에 '초안'을 제출하라는 과제에 엉뚱한 초안을 제출했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연구 논문 구조와 거기에 담을 내용 전체를 싸그리 무시한 제멋대로 아무거나 담겨있는 초안이었다. 나는 몇번이나, '이것이 우리 000이가 제출한 초안이란 말인가?' 컴퓨터를 확인 또 확인해야 했다.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이러저러하게 잡다한 피드백을 덧붙이면서 맨 마지막에 별도로 개인적인 메시지를 추가했다 -- "There's something wrong going on with you. I think we need to talk."
오늘 아침에, 역시 일찍 나온 그와 빈 교실에서 수업 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농담하듯이 물었다, "Hey, what's going on with you? Any family issue or girl friend trouble? Your draft is telling me something... I guess you have something to tell me..."
수업은 순조럽게, 활기차고 유쾌하게 지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빈교실에서 내가 교실 컴퓨터를 끄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을때 그가 다가왔다. '지난 주에는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까마득해요. 교수님 수업 뿐 아니라 다른 수업들도 엉망이었어요. 사실은 동생이 큰 사고를 당해서, 온 가족이 모두 정신이 없었어요...'
그랬다. 사고였다. 뭔가 이상했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그걸 주위 사람들이 알듯이,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학생은 어떤 식으로든 '기침'처럼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감지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모를 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의기소침해진 등을 툭툭 쳐서 위로를 하고, 이 위기 상황에 어떻게 학기를 잘 마무리 할지 의논을 한다.
어제, 연세대 심리학과 김민식 교수의 '더 컨트롤러'라는 책을 읽고 있다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폴 사뮤엘슨 선생님의 행복공식을 발견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위의 낙서). 내가 책 읽다 말고, "이런 공식이 있었네!"하고 감탄하자 - 옆에 있던 남편님이, "그러니까 행복해지려면 그 분모 값을 '영'에 가깝게 하는거야. 그게 스토아 철학자들의 생각이었어. 우리나라에서 조순 경제학책이 유명한데, 사실 그 책은 말이지 사뮤엘슨의 책 내용을...블라블라블라"
세상 천지 모든것을 다 아는것처럼 깝치던 내가 - 세상 사람이 다 아는 '공식'을 모르고 앉아있었던거다, 여태까정... 그런데, 내 수학적인 머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것인지 '행복은 소비 나누기 욕망이다'라고 하면 나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을 분수식으로 이렇게 그려놔야 내 머릿속에 개념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나눗셈 인간이 아니고 '분수'인간인것 같다. 그렇지 '분수'를 알면 되는거지. 그래서 '안분지족'이란 말이 있는거 아니겠어?
부평에 있는 한국 제너럴모터스에 동료들과 다녀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 깊어가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다. 전세버스 타고 다녀오는 동안 운전 안하고 차창밖 내다보며 거리의 단풍구경을 할수 있어서 좋았다. 동료들과의 심심파적 대화도 소풍같았고. (결론은 날짜를 정해서 둘러앉아 마오타이주를 마신다는 것이었다....)
2. 제너럴모터스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인상과 고용계약을 하라는 현수막들이 뒤덮여 있었다. 단풍과 현수막이 어울려 있었는데 - 한글을 읽을줄 모르는 동료교수들은 그것을 무슨 '설치미술'처럼 상상했고 - 내가 간단히 설명을 해주자 그제서야 분위기를 눈치챘다.
3. 시민대 프로그램에서 2년전 인연을 맺은 '학생'님께서 내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모여있던 회의실로 와 주셨다. 그는 회의실에서 (즉석에서,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우리 대학과 제너럴모터스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간단한 스피치를 했다. 대학과 기업이 협력하는 모델을 멀리가서 찾을게 아니라 -- 바로 저 분의 케이스에서 찾으면 된다는 내 제안에 그가 즉석에서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발표했던 것이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제자이자 친구이다.
4. 인체역학실험인가, 뭐 그 사람모형 가지고 각종 충격실험 하는 그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것을 보여줬는데 - 그런것은 뭐 티브이 광고나 뉴스 같은데서도 많이 봐서 새로울 것은 없었는데 - 그 인형 (dummy)하나에 십억원까지 간다고 해서 놀랐다.
5. 뭐 딱히 놀랍게 새로운 것은 그들이 안보여줬거나, 안알려준것이 아닐까? 나를 깜짝 놀라게 할만한 새로운 것은 내가 식견이 부족하여 못본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동차회사 기획실에서 일하는 내 조카는 "곧 하늘을 날으는 택시가 나올겁니다. 먼 얘기가 아닌데요, 제가 그거 개발하고 있거든요" 라고 했는데 - 그런 꿈같은 얘기를 제너럴모터스에서는 들어볼수가 없었다. (말 안해주는걸거야 아마....)
끝.
음 돌아보니,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은 - 회의실에 와서 앉아있던 내 제자를 발견한 순간. 아, 그가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화초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만만하게, 신경안쓰고 번식시킬수 있는 화초 몇가지가 있다. 스킨답서스, 센세베리아 뭐 이런친구들과 함께 '나비란'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이 흰 줄무늬가 들어간 (위) 종류일 것이다. 몇해전에 엄마 집에 있는 것을 조금 잘라다가 학교에서 키웠는데, 지금 무지무지 많이 번식했고, 학교에서 자라던 것 몇가지를 끊어다가 집으로 와서 뿌리를 내려 키우니, 여기서도 무섭게 번식을 하고 있다. 위의 친구는 흙이 기름지고 햇살이 좋으니 뻗어나온 꽃대가 '공룡'처럼 느껴질 정도로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아래는 내가 어제 동네 미장원 원장님에게서 얻어온 것이다. 그 미장원은 아파트 근처 개인주택가 골목에 숨어있어서 동네사람이 아니면 찾아가기도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어제 독감백신을 맞기위해 25년전에 내가 우리 어린 두아들 데리고 다니던 '가정의학과'에 들렀는데 - 백신 맞고 돌아오다가 문득 '이 머리좀 잘라야겠다' 생각하고, 근처 골목길을 기웃기웃대다가 이 미장원을 발견한 것이다. 대추차가 고요히 끓고 있던 그 미장원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가정의학과에 들렀을때에도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들어서자마자 대기할것도 없이 바로 의사선생님을 만났던 것인데, 미장원에서도 대기할 필요없이 곧바로 머리를 자를수 있었다. 머리 자르다말고 원장님이 "새치 염색 안하셔요?" 하고 물었고, "머리 자르고 새치염색하는데 시간이 얼마가 걸릴까요?" 물으니 한시간도 안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내 용모에 변화가 올수 있다면 그것참 좋은 일이다 싶어서 새치염색까지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머리를 하다가 미장원에 있는 화분에 눈길이 갔고, "저것은 나비란 같은 모양인데 줄무늬가 없네요...." 했더니, "갖고 싶으시면 조금 끊어 드릴까요?"하고 원장님이 흔쾌히 이걸 나눠주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나비같이 가볍게 머리를 자르고, 산뜻하게 새치염색도 하고, 미장원에서 얻어온 나비란을 들여다보고 있다.
줄무늬가 없는 나비란. 이 친구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싶다.
어제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가, 그 산길을 대비로 쓸고 있는 분을 발견했다. 그냥 길에서 흔히 보이는 눈에 안띄는 검정색 운동복을 입은 60대 아저씨가 맨발인채로 산길의 낙엽들을 쓸고 있었다. 천천히, 마치 집앞 마당을 거쳐 오솔길을 쓸듯 그렇게 천천히. 그래서 나도 멀리서부터 그를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아하! 어쩐지 산길을 누군가가 빗자루로 쓸어 놓은듯이 깨끗하고 비질 자국이 보이길래 이 산길을 누가 쓰는걸까? 능 궁금했는데 선생님께서 쓸어 놓으신거군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사나이는 나의 활달한 감사인사가 싫지 않았는듯, "뭘요. 나만 쓰는게 아니에요. 좋아해주시니 저도 좋죠"하고 답을 했다.
그를 지나쳐 산길을 더 오르다보니 길가 운동틀 옆에 빗자루가 세워져 있는것이 보였다. 이거구나. 이걸로 쓰는거구나. 그래서 나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아까 그 아저씨가 있는 방향으로 쓸어내려갔다. 그가 쓸어 올라오고, 내가 쓸어 내려가면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되리라. 아저씨가 저만치 보이는데서 빗자루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마저 산길을 올라갔다.
잠깐이지만 -- 산길에 쌓인 낙엽을 쓸어낼때 기분은 - 고요한 오대산 월정사 앞길을 나 혼자 쓸고 있는 느낌. 혹은 눈쌓인 고향집 바깥마당에서 이웃집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쓸고 있는 느낌. 그런것.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평화롭고 따스한 '순간'과 '장소'에 몰입되어 있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런 평화 다시 없어라 (비발디의 세상에 참평화 없어라) - 바로 그 '참평화' 의 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지, 무엇이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지 아시고, 깊은 가을날 집 근처 숲에서 세상의 모든 고요를 주시다.
버지니아에서 내가 간신간신히 별로 희망도 없는 직장에서 단지 '영주권'한가지를 기다리며 '영주권 노예살이' 시기를 보낼때였다. 박사학위고 뭐고 '미용기술'이나 '손톱 다듬는 기술'보다도 돈이 안되는 학위가지고 막연한 시간을 보내던 시절 나는 생계 꾸리기도 힘든 작은 대학 교수질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기술'이라도 배우자는 심정으로 지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간병사' 교육을 받았다. Personal Care Aide. 그래서 내가 버지니아주 간병사 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본다). 뭐 그냥 정해진 수업시수를 잘 채우고 성실하게 가서 듣고 간단한 실습을 하면 되는 극히 초보적인 교육 과정이다.
그런데, 간병사 과정을 배울때, 간호와 관련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강의를 해주셨으므로 -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다채로운 내용을 배우게 되었다. 호스피스 전문가도 오시고, 간호대 박사과정 선생님도 오시고 - 현장에서 평생 근무하신 간호사 선생님도 오시고. 참 많은 내용들을 귀동냥하게 되면서 CNA 코스 (Certified Nursing Assistant, 간호조무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역시 사회단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CNA 과정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CNA는 우리나라의 간호조무사 제도처럼 교육과정도 6개월 정도 되고, 수업이나 실습의 양이 많고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CNA 부터 뭔가 professional 의 단계로 여겨졌다. 정말 공무 열심히 해야 하는 자격증인 것이다.
나는 PCA을 착실히 했고, CNA 과정은 다니다가 그만두었는데 - 그 이유는 본래 그 자격증을 따려던 목적이 - 내가 그걸로 어딘가에 취직을 하려던 것이 아니고 -- 그 당시에 진로 고민하다가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무슨 새로운 전공을 공부해야 할까?' 고민하던 우리 귀냄이 녀석에게 "귀냄아, 간호대를 가보는 것은 어떨까? 잘만하면 그쪽도 의사 못지 않은 전도유망한 분야란 말이지..." 살살 꼬셔서 녀석과 함께 PCA도 끝내고 CNA도 함께 등록하여 공부하고 있었던 것인데, 우리 귀냄이가 주위 친구들의 강력 추천으로 Information Techonology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CNA 과정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나 역시 더이상 그것을 마칠 동기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아들의 장럐를 위해서 자격증 공부까지 함께 해 줄 정도의 엄마이기도 했다. (내가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함께' 그 길을 가주는 친구이기는 했다.)
뭐 그래서 귀냄이는 간호대학으로 편입하려는 계획을 접고 공대로 간것이고, 나역시 '내가 뭐 현장에서 정말 환자들을 돌볼 사람도 아니므로' 대충 기본적인 상식 공부를 한 셈 치고 그 과정을 그만 둔것인데.
그런데 내가 그냥 심심파적으로, 뭔가 상식의 경계를 넓히고자 잠시 공부했던 PCA, CNA 과정이 내 삶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 얘기를 하려던 것인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내가 뭔가 번듯한 직장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백의종군 하는 심정으로 집구석에 처박혀서 미국 전역의 2년제 4년제 사립 공립 대학교에 이력서를 보내며 소일하고 있던 어느날 메릴랜드의 몽고메리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전화가 왔다. ESL 수업을 맡아 달라고. 그래서 당장 가서 공식 채용 절차를 마쳤는데 - 다시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이민자를 위한 의학영어 과정을 열어야 하는데 - 네가 적임자인것 같아. 네 이력서를 보니 너는 PCA 자격증도 있고 CNA 과정도 일부 이수했다고 나오네. 너 외국에서 온 의사, 간호사들에게 의료 관련 영어를 가르치는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칠수 있을까? 그 과정은 특수 과정이라서 강의료도 높고, 네가 잘하면 고정적인 과정으로 자리잡을수도 있어. 우리에게 ESL 강사는 많은데 메디컬 영어를 가르칠 사람이 없어, 너밖에." 이런것을 우리 업계 용어로는 ESP (English for Special Purposes)라고 한다. 일반 영어교육이 아니라, 특수 목적의 영어 교실을 말한다, 말하자면 의사들을 위한 영어, 파일럿을 위한 영어 이런식으로 특수 직군에게 필요한 영어 과정들이다.
후보가 나밖에 없다니 (나도 한번도 안가르쳐봤지만....), 게다가 일반 강의보다 강의료가 세배나 높은데 -- 이게 웬 떡인가. 그래서 나는 그날 당장 관련 서적들을 사들여서 착실히 공부를 하고 수업과정을 설계했다. 심지어는, 내가 PCA, CNA과정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이수했던 '실습'과정까지 내가 다 가르치게 되었는데 대학에서는 내가 영어와 실기까지 다 가르칠수 있다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겼다. 그렇게 - 몽고메리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나는 '이민자/난민' 의료인들을 위한 의료 영어 교육 전문가가 되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고, 나는 아프리카등지에서 온 난민 학생들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고국에서 간호사나 의사로 일했던)을 위해서 여러 사회단체에 죽어라고 이메일을 보내어서 - 희망하는 사람들이 CNA 과정을 무료로 공부할수 있도록 장학금을 끌어다 주기도 했다. (이메일 질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내가 활발하게 일을 하자 몽고메리 칼리지에서는 내게 풀타임을 제안했다. 그 때 내가 마음이 잠깐 흔들렸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조지메이슨에서도 시간강사를 하고 있었다. 몽고메리 칼리지와 조지메이슨 두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내 희망은 조지메이슨에 풀타임 교수로 가는 거였다. 그런데 몽고메리에서 내게 풀타임을 제안한 것이다. 잠시 흔들렸지만 나는 곧바로 '감사'와 함께 그냥 개인 사정으로 시간강사는 할 수 있지만 풀타임은 할 의사가 없다는 답을 했다. 내가 몽고메리에 풀타임으로 자리를 잡으면 조지메이슨에서 풀타임 자리가 났을때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럴경우 나를 믿고 뽑아준 몽고메리에도 미안한 노릇이고. 나는 함부로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깝지만 그자리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학기에 나는 내 소망대로 조지메이슨에 풀타임 교수로 들어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내가 프로포절을 작성한 십만달러짜리 미국 정부 교육프로그램은 '난민을 대상으로 한 영어, 문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금 내가 속한 대학에는 '난민' 전문가 교수들도 있고, '영어교육' 전문가 교수들도 있다. 그런데, '난민 대상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거나 제공했던 사람은 '나' 한 사람 밖에 없다. 그래서 - 내가 이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지금 그 난민 대상 영어교육 프로그램과 -- 간병사나 간호조무사 공부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의 별것도 아닌 간병사, 간호조무사 공부 이력이 나를 '이민자들을 위한 의료 영어교육' 전문가로 키웠고, 의료영어 교육 전문가로 크는 동안 -- 내게 수업을 들은 학생들 - 정치적 난민들, 취약계층을 위하여 내가 발벗고 나서서 장학금을 끌어오거나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했던 이력이 나를 특수 영어 교육 전문가로 캐웠으며 ----> 그 이력이 나를 '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설계자로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거다.
나는 이런 얘기를 최근에 내게 상담을 하러 온 학생에게 들려주었다. 우리학교에 회계학 전공으로 들어온 그 학생은 - 원래 간호대에 가고 싶었는데 간호대 입시에 실패해서 - 그냥 부자 할아버지가 가라고 하셔서 자기는 별로 관심도 없는 우리대학 회계학과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에게, 이번학기 성적관리나 잘하고 학교를 그만두라고 얘기해주었다. "간호사가 되고 싶으면 간호사가 되는 길을 가, 여기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고" -- 이것이 내가 그에게 해 준 말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간호대에 들어갈수 있는 여러가지 경로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내 간병사-간호조무사 공부 얘기도 해주었다. "당장 겨울방학에 동네 구청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간병사 자격증 공부라도 심심파적으로 해봐라. 거기서 시작해서 네가 소망하던 간호사의 길을 가면 된다. 가만보니 너희 집안이 먹고 살만하고 교육수준도 되게 높아서 - 아마도 네가 어느 구석의 허름하고 이름없는 간호학과 같은데 가는것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로 보이는데 -- 그분들 말 들을거 없다.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차근차근 해라.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 네가 그 길을 성실하게 가다보면 - 나중에 그분들이 너를 우러러볼수 있는 그런 자리에 네가 가 있을것이 자명하다."
모처럼, 아무런 숙제도 없는 주말이다. 가을학기 개강이후에 매 주말마다 뭔가 나를 짓누르는 숙제들이 있어왔다.
교수 승진 위원회에서 승진신청 교수님들 자료 분석하고 신청추천서 작성하고, 평가 심의회에 참석하고, 누군가를 위한 변론도 해야 했고. 그 일은 아직도 진행중이긴하지만 큰 파도는 지나갔다.
몇년 끌어온 책 원고의 마지막 교정 작업도 진행했다. 그것도 마쳐서 넘겼으니 나머지는 이제 출판사에서 마무리해서 출시하겠지. 안도의 한숨.
누군가를 위한 포상 신청작업도 했다. 내가 아닌 내 주위의 훌륭한 사람이 마땅한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서와 문서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그분이 상을 받을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 사이에 미국의 아들 부부가 보름간 다녀갔다. 자식이라해도 내 '구역'에 온 손님이기도 해서 - 아무것도 안해도 보름간 신경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애들이 가고 난 후에 '포진'도 올라오고 한차례 몸살을 앓고 지나갔다. (아, 오늘은 가까운 내과에 가서 독감 백신을 맞아야지. 그동안 몸 상태가 편치 않아서 독감 예방 접종도 미루고 있었다).
십만달러짜리 프로젝트 프로포절을 일주일 넘게 주무르며 작성하여 엊그제 보냈다. (잘 접수되었다는 확인서가 왔다). 그걸 드래프트 작업하면서 -- 나 이걸 쓰긴 쓰는데, 채택이 안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채택되면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할 기운이 없다 -- 이런 생각을 했다. 안되면 다행이고, 되면 .... 그 때 가서 어떻게 시간과 에너지를 안배하여 이 일을 추진할 것인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것이다.
2025년도 지역사회를 위한 시민 교육 프로그램 커리큘럼 디자인 작업을 현재 진행중인데 - 다행히 신임교수들께서 적극 참여 의사를 밝히셔서, 근사한 팀을 짜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래서, 이번 주말은 - 아무런 숙제도 없이, 뭔가를 마감해서 보내야 한다는 강박감도 없이 머리 가볍게 쉬면서 보낼수 있을것이다. 물론 다음주 월요일부터 다시 고난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지만 - 이제 뭐 신촌에 가야 하는 일정도 어느정도 익숙해진것도 같다. 신촌에 가는 날은, 아침 나절에 연세대 백양로를 지나쳐 캠퍼스 일대의 동산을 이리저리 산책을 하기도 한다. 지옥에도 햇살은 빛날것이다. 누군가 고통의 강을 건널때도 그 강변에 꽃이 피고 지며, 새들이 위로하듯 날아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11월도 곧 갈 것이다. 그러면 방학이 온다. 학생들은, 고맙게도 잘 해내고 있다. 학생들의 눈빛이 깊어가는 가을처럼 깊어지며 사색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젊은 그들이 깊어지고 높아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하루하루 단풍이 붉어지듯 그들이 깊어지는 것이다. 향기로운 대학생들과 생활하는 특혜를 주신 하나님께 오늘도 감사와 찬양을.
https://m.blog.naver.com/gomtn/221311140324
산책로를 발견했다. 웹을 검색해보니, 위에 링크한 블로그에 상세한 안내가 나와있다 (글쓰신 분께 감사드린다).
이 전체길에서 내가 좋아하는 길은 위 포스트 맨 아래 전체지도에서 - 화정배수지에서부터 광통농원까지의 길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광통농원까지 왕복하면 딱 만보가 나온다. 원당에서 국사봉까지 이르는 길은 나로서는 그렇게 만만치 않다. 내 기준으로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길도 있고, 무릎이 아프거나 숨을 헐떡대는 구간도 있다. 하지만 화정배수지-광통농원까지의 길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구릉지대라서 내가 한바퀴 돌아올때는 계속해서 내리막길로 내려오게 되므로, 가는길은 분명 오르막길일텐데 갈때 오르막길 오르는 느낌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정도로 경사가 완만하고 편안하다. 특히 이 구간은 '맨발'로 산길을 걷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의 붉은 황토로 이루어진 산길이 자연그래도 노출되어 있고, 마치 누군가 마당비로 깨끗이 쓸어놓기라도 한듯 깨끗해서 맨발로 걷는것이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 이 구간을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맨발이시길래 나도 신발을 벗고 걸어보니 편안했다.
나는 이 구간을 '다알리아길'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길 초입의 비닐하우스 농가에 다알리아가 많이 피어있기 때문이다. "그 다알리아길에 가자" 하면 다알리아 핀 마을을 지나 완만한 구릉지대를 한바퀴 걷고 돌아오는 코스 전체를 말하는 것인데, 특히나 내가 반환하는 지점에는 비닐하우스 농원이 두동이 있는데, 한동에서는 선인장 종류를 키우고 또다른 한동에서는 장미를 키운다. 그리고 요즘 그 장미원에서 장미꽃다발을 (한다발에 7-8송이) 묶어서 한다발에 천원씩에 팔고 있다. 무인판매시스템이라서 그냥 장미꽃다발을 물양동이에 담아놓고, 그 옆의 나무상자에 한단에 천원씩 돈을 넣어두던가, 아니면 은행계좌로 돈을 보내라는 안내가 나온다. 지난 토요일에 그 장미가 싱싱할지 아닐지 알 수 없어 실험삼아 세단을 사왔는데, 밤사이에 꽃이 탐스럽게 피어나기 시작하고 향긋하여서,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일요일에는 일부러 장미를 사러 산책을 나갔다. 장미 다섯단을 사다가 근처에 사는 시동생네 집에 주었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장미를 사러 산책을 나갈 것이다. 장미사러 맨발로 산길을 산책하러 나갔다 오면 만보 해결. 참 아름다운 길 발견. 특히나 산책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초입의 논둑길은 내 고향 집으로 가는 길과 닮아서 특히 이 산책로에가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위의 링크된 블로그에 '누리길이정표를 따라 농로를 걷는다'는 설명이 붙은 평범한 논둑/밭둑길 그길이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다. 멀리 북한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길 다 내려오면 만나는 농가길, 길고양이가 사람을 반기고 놀자고 한다.
길에서 고양이의 환대를 받으면 그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된다.
침
대
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침대 광고를 보다가, 문득.
과학은 침대다 ===> 과학은 우리가 안심하고 몸을 누일수 있는, 휴식할 수 있는 근간이다.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시간은 한때 과학적 사실로 알려졌던 것들의 비과학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비과학이라는 것으로 판명되기 전까지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때로는 그 비과학성의 토대위에서 과학성이 움트고 성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언젠가 비과학으로 판명된다고 해도, 그래도 현재 우리는 '과학'이라고 알려진 토대위에 서 있어야 한다. 과학은 침대다. 침대에 우리는 안심하고 몸을 누일수 있고, 휴식할 수 있다.
( 프로포절을 시작해야 하는데, 뚜껑을 열기가 버거운 나는, 딴짓을 하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결국 기한안에 쓰긴 하겠지.)
중간고사를 마친 학생들에게 '선물'의 의미로 오전에 진행되는 한시간짜리 수업을 강의실이 아닌 구내 '카페'로 하기로 공지를 하였다. 학생수도 많지 않아 카페의 큼직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수업을 진행해도 별 무리가 없어보였다. 처음에 학생들은 'You mean, there's no class?"하고 반문했는데 - 그에 대하여 "Of course, we have a class but not in the classroom but at a cafe! If you don't show up, I will mark it as absent"라고 분명히 말 해 줬다. 그래도 혹시 학생들이 헛갈려할까봐 두차례나 이메일로 공지를 해 줬다.
내가 늘 수업을 하기 위해 모이는 강의실이 아닌 구내 카페로 장소를 일시적으로 옮긴 이유는, 우선 중간고사 기간동안 고생한 학생들의 노고에 대하여 내가 값을 치르는 따뜻한 차나 커피로 위로와 응원을 해 주고 싶었고 - 강의실이 아닌 카페에서 학생들이 좀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영어토론을 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씨가 화창한 시월의 어느 아침에, 나는 일찌감치 구내 카페로 가서 가장 큰 테이블을 '점거'해 놓고, 카페 직원들에게도 '여기서 오늘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라고 알렸다. 물론 카페 측에서는 한시간동안 테이블에서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에 밝게 웃으며 환영의 표시를 하였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 학생들이 차례차례 등장했고, 나는 학생들이 한명 한명 등장할때마다 카운터로 함께 가서 음료수를 사 주었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듯, 카페 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준비한 '토론' 주제를 소개했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한가지씩 짧은 주제토론을 리드하다보면 수업시간이 채워질것이다. 토론 주제는 가령 '동물 상대 실험은 어디까지 용납될 것인가,' '노숙자에게 애완동물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운전면허 연령제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늙으신 부모의 봉양 책임은 자식에게 있는가, 개인의 책임인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 뭐 이렇게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생각이 오고갈 만한 것으로 채워졌다.
토론중에 학생들에게서 내가 예기치 못했던 이야기들도 나왔다. 어느 여학생은 '한국이 밤길 걸을때 미국보다 안전한 사회라고 알려져 있고, 밤길에 살해당할 걱정을 덜하는 사회라고 알려져있지만, 한국에서 사는 여성인 자신은 밤길에 살해당할 걱정보다 아무때나 강간당할까봐 더 두렵다'고 실토했다. 살해의 위협보다는 아무때나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 강간'이 더 무섭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살해 당할 가능성'보다 '강간 당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는 심리적 압박감의 토로였다.
동일한 내용에 대해서 남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어때? 밤길 걸을때 살해당할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가?" 대체로 남학생들은 별로 그런 생각을 안해봤다고 답했는데 - 우리나라에서 제일 빡세다는 특수부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체력단련에 힘을 쓰고 있는 남학생 (그가 내게 전에 그의 계획을 얘기해 준 적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I feel the same anxiety when I walk around at night. It's scary walking alone at night." "체력 좋은 남학생인 너도?" 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아, 아, 이 학생은 두려움이 많기 때문에 더욱더 특수부대쪽에 관심이 있는거구나, 두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하여...
카페에서의 수업을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땠어? 강의실과 카페 두 장소중에서, 어디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눌때 마음이 편해? 아니면 덜 긴장돼? What do you think between the classroom and the cafe? Which place do you feel more comfortable or less stressful speaking in English?" 나는 내심 '카페에서 영어로 토론하니 재미있어요' 뭐 이런 답이 나올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자리에 참석한 '모든'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Classroom. I feel more comfortable speaking in English in the classrooom." 모두가, 모두가 그렇게 답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Tell me more about it. What made it sort of stressful for you to discuss in English at a cafe? 카페에서 영어로 토론하는것이 뭐가 힘들었던거지? 난 교실보다 카페가 더 편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이쪽에서 음료수를 사주면서 수업을 진행한것인데 말씀이야....."
학생들은 뭔가 선명한 대답을 안했는데, 그 중 한학생이, "Because it's noisy here"라고 답했다. 카페는 시끄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카페는 시끄럽지 않았다. 이른 아침 수업이었고, 그러므로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 카페가 방금 문을 열은 상태였고, 주로 테이크아웃으로 음료수를 사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카페는 한산했다. 시끄러울 정도의 소음은 없었다. 소음에 신경질적으로 민감한 나 조차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캠퍼스 구내에 있는 그 카페는 음악도 틀지 않는다. 어느때는 '적막강산'으로 변하기도 한다. 내가 느끼기에 조용하기만 한 카페 공간에 대하여 그 학생은 '카페라서 소음이 많아서, 영어토론 하기가 교실보다 불편했다'고 설명한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시월의 파란 하늘과 보석처럼 물들어 찰랑거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연구실로 향하던 중 나는 문득 떠올렸다. 오래전 내 박사학위 논문에 내가 적었던 현상. 그 부분에 대하여 심의하던 교수들께서 놀라운 발견이라며 높이 평가해줬던 것이 있다. 대체로 제2언어 습득 관련 분야에서는 언어발달의 순서가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대화에서 시작해서 - 학문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통설인데 - 이 통설에 약간 예외적인 현상이 있다. 학교 영역에서는 고등학생이건 대학생, 대학원생이건 간에 학교 영역에서는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교실영어 (추상적이고 학문적인 영어)'가 유창한데 비해 '일상적인 대화'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니까, 학교나 교실에서는 그나마 숨이 붙어있어서 최소한의 필요한 영어(고급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학교 밖의 영역 (일상 영어)으로 가면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고,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현상이 보인다). 이들이 주로 '공부/추상/학문'영역에서만 영어를 활용했기 때문에 공부 영역에서의 영어는 그나마 '익숙'하지만 -- 대중적인 장소, 일상적인 장소, 영어 사용을 회피할수 있는 장소에서 일상적인 영어를 해야 할때 이들은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소음이 있지도 않는 상황에서 '소음때문에 힘들어'라고 무의식중에 설명하러 드는 것이다.
이 친구들이 강의실을 벗어나 카페에서, 길에서, 시장에서, 파티장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게 하려면 - 결국 그런 장소로 자꾸만 이끌어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갸우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