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매주 금요일마다 동료교수들과 두시간씩 '글쓰기'시간을 가졌을때 대충대충 엮었던 책의 원고를 국내의 십여개가 넘는 출판사에 보냈을때 나는 번번히 퇴짜를 맞았는데, 마침내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편집자가 바로 그 주제의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맞는 원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 수정하거나 다시 쓰거나 하면서 몇년을 보냈다. 코비드가 왔다 가는 사이에 계속해서 수정 보완을 하면서, 지난주에는 맺음말을 보내라고 하더니, 오늘은 책 날개에 실을 저자 약력을 직접 쓰라는 숙제가 와서 그것도 써보냈다. 책은 언제 세상 빛을 보려는가? 크리스마스 이후가 되려나? 아니면 2025년 새해맞이로? 뭐 가장 좋은 때에 나오겠지.
그런데 사실 2주 쯤 전에 다음에 나올 책에 대한 계약도 이루어졌다. 지난번에는 원고를 수백페이지 써서 여기저기 뿌리고 거절당하기를 밥먹듯 하다가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이번에는 아직 '원고' 한글자 쓰지 않았는데 - 단순히 '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길 바래'라는 메시지의 계약서였다.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돈도 받았으니, 이제 글을 써야한다. 그래도 내 평생에 - 중학교때부터 방송국에 글 써보내고 상품권 받거나, 대학교때부터 학교 신문이나 교지 이런데 투고하여 원고료 짭짤히 챙기고 하면서 늘 글 쓴후에 글값 받았는데 -- 이번에는 글을 쓰기전에 글값을 미리 받으니 내 형편이 그래도 제법 많이 좋아진것도 같아서 잠시 흐뭇했다. 글을 써서 돈을 받는 일을 하던 가운데 - 이제 선금을 받는 팔자가 되었으니 일취월장 아니던가. 에라 좋구나.
그런데 전에는 글을 써서 보내고 그 글이 소개가 될까, 신문에 실릴까, 책에 실릴까, 출판을 해 줄까 뭐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은 '아이고 이거 덜컥 쓰겠다고 계약하고 내가 글을 못쓰면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근심을 할 때가 많다. 길을 걸으면서, 운전을 하면서, 설겆이를 하면서, 샤워를 하다가,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멍하니 그 책 생각을 한다. 이걸 못쓰면 어떻게 하지? 응?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다. 그 가운데 나는 성경필사만 줄창 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고 피난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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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네살 때, 시골집 사랑방에서 둘째, 셋째, 넷째 고모들이 책상 주위에 모여서 호롱불에 의지하여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며 이따금 우스개 소리를 하고 왁자지껄 웃기도 할때, 내가 중학생이던 막내고모 어깨너머로 "글씨 쓰기 가르쳐줘"하고 조르던 생각이 난다. 고모가 16절지 누런 종이에 가나다라 이런것을 써주면, 내가 그것을 따라 쓰면서 한글을 떼었다. 그러니까 내게 한글을 가르쳐준이들은 내 고모들이었다. 나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집갈 준비를 하던 둘째 고모와, 당시 중학생이던 셋째, 넷째 고모들이 돌려 읽던 시집이며 소설책이며, 교과서들을 떠듬떠듬 읽어나갔다. 너무나 무료하고 심심했던 나머지. 나는 뜻도 모르고 '의적 일지매'를 읽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채 글씨들을 해독하는 재미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위해 서울의 가족과 합류했을때, 엄마는 시골서 데리고 온 작은 딸아이가 얼굴도 더럽고, 머리도 떡지고, 손등은 다 터지고, 사람과 들짐승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수상쩍은 몰골일지언정 길거리 간판을 소리내어 읽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해 하셨다. (서울에 올라오니 온거리에 읽을것 투성이라서, 그리고 그것을 읽을때마다 엄마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고 나도 잠시나마 기를 펼수 있었다.)
서울집은 시골집보다 문화적으로 더욱 궁핍해보였다. 단칸방에서 여섯식구가 기역니은 이리저리 포개서 잠을 자야 했으므로. 장난감도 없고, 산과 들도 없고, 새도 꽃도 없고, 강아지도 없고, 나는 숫기도 없어서 이웃아이들과 쉽게 친해질수 없었고, 온종일 방구석 신세였다. 그 당시에 나의 유일한 읽기책은 '엄마의 일기장'이었다. 나는 대체로 신세한탄으로 일관된 엄마의 일기장을 읽고 또 읽었는데, 그 외에 다른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역시 애들이 일기장을 보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식목일즈음. 비가 주룩주룩 오던날. 나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종이를 반절을 접어서 실로 꿰메어 '공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에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넣었다. 만화도 그려넣었다. 그것이 내가 제작한 최초의 책이었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마칠때까지 나는 그런 짓을 꽤 했다. 어릴때는 직접 공책을 만들어서 내용을 잔뜩 채웠지만, 형편이 나아지고 용돈이 제법 생기면서 나는 예쁜 공책들을 사다가 좋아하는 시를 옮겨적고 그림을 그리고 장식하고 그러면서 노닥거렸다. 내가 꾸민 그런 '명시집'같은 것들은 결혼하여 애엄마가 된 셋째, 넷째 고모가 예쁘다며 달라고 했고, 나는 이미 그것을 완성할 즈음에는 그것에 싫증이 났기 때문에 누가 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것들을 내주었다. 일기장들은 일년에 한두번씩 뒷마당에서 태워없앴다. (뭔가 그게 멋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내게는 남아있는 일기장이 없다. 딱 두권의 일기장이 미국집에 있는데, 지홍이 찬홍이의 육아일기. 그것들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내가 한글을 호롱불 밑에서 고모들에게 배운 이래로 나는 늘 연필을 손에 쥐고 살아왔고,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거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쓰고 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