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4. 16. 22:54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2. 8. 22:27

 

2024년 2월 8일 목요일.

 

 

지난해까지 내가 수행하던 중요 프로젝트들을 대거 정리하면서 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하나님께서 새해에는 뭔가 프로젝트를 주실것 같아요.  정리해 놓고 가만히 있으면 뭔가 보내실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상치 못했던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하나님이 툭 던지셨다.  나는 닷새간 잠을 이루지도, 밥을 먹지도 못하고, 숨쉬는 죽은 사람처럼 멀거니 시간을 보냈다.  목사님과 교회 어르신들께서 통곡의 기도를 올려주셨다. 내 머리와 뺨위로 내 눈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물이 떨어져 흘러내렸다.  그분들의 눈물과 기도가 나를 일으켜세웠다. 

 

오빠와 언니가 응원해주기 위해서 온다길래, 집이 아닌 해변에서 만나자고 했다.  바닷물에 서리가 내린듯 살짝 성에가 낀 쌀쌀한 날씨였지만, 햇살이 따스했고 바람이 없어서 포근한 느낌이었다. 

 

 

개펄 멀리서 바다가 소리를 내며 밀려오고 있었다. 바다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오빠와 나는 맨발로 개펄을 걸었고, 남편과 언니는 개펄에 들어가기 싫다고 해안 보드워크를 걸었다. 남편이 높다란 산책로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오빠는 개펄에서 맨발로 걷는것이 평생 처음 경험이라며 즐거워하였다.  나도 오랫만에 개펄을 걸을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는 개펄위에 아랍글자처럼 꼬불꼬불 씌어진 조개들의 발자취를 신기해 했다. 한번도 그런것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인이었던 그는 너무 큰것들만 보느라 아주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제대로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나보다. 

 

 

바닷가 산책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가려고 자동차로 갔을때 - 내 자동차 열쇠가 사라지고 없었다. 외투 주머니에도 바지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가방을 거꾸로 들고 다 털어서 보아도 자동차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해변으로 달려가 내가 모래를 털고 양말과 신발을 다시 신었던 자리에도 가보고, 산책로 입구쪽에도 가보았다. 혹시 내가 실수로 흘렸나해서.  내가 다녔던 곳을 다시 뒤진다해도 열쇠를 되찾을수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일부러 멀리서 나를 보러온 손님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만도 없었다. 마침 남편이 늘 여벌의 열쇠를 갖고 있으므로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단지, 내 열쇠에 함께 걸려있는 연구실 열쇠...그것이 없으면 연휴가 끝날때까지 연구실 출입이 불가하다. 연휴동안 밀린 일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연구실 열쇠를 어떻게 해결하지?'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기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습관처럼, 아무것도 없이 텅빈 내 외투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던 내 손 끝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외투 주머니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외투자락으로 무엇인가 굴러다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투자락 끝에, 뭔가가 있다. 내가 손으로 호주머니 아랫쪽 외투자락을 훑어보니 거기 뭔가 입체적인 것이 있다.  외투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뒤져보았다.  열쇠였다. 내 자동차 열쇠가 주머니에 생긴 구멍을 통해 외투 안쪽으로 빠져 들어가서 내가 움직일때마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열쇠는 내 안에 있었다.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도록, 가장 안전하고 깊숙한 곳에서 내 열쇠는 뒤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열쇠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잃어버렸다고 상상 했을 뿐. 열쇠는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 내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시는 메시지라고 판단했다. 

 

하나님은 내가 풀어내기 힘든 고난도의 문제를 하나 주셨다.  나는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쓰다가 낙심하여 미치거나, 죽자고 작정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슬퍼할것이고, 좌절할 것이고, 많이 울것이고, 많이 기도할 것이고, 사색할 것이고, 자꾸만 자꾸만 작아져서 마침내 내가 나를 잃을 것이고, 나는 매일 매일 죽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매일 다시 살아날 것이고, 내가 죽은 자리에 새로운 내가 생성될것이며, 어쩌면 하나님께서 주신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풀고, 잠긴것처럼 보이는 문을 열을수 있을것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자명하다: 아가, 아가, 소중한 나의 아가야. 내가 네게 문제를 주었을때 이미 나는 너에게 열쇠도 주었음을 기억해라.  나는 네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켜 주었다.  나는 네가 벌여놓은  여러가지 쓸데없고 잡다한 일들을 정리하도록 해 주었고, 성경통독을 통해서 나의 존재에 눈뜨게 해 주었다. 빅토를 프랭클의 책도 읽도록 해 주었다.  사실 너는 문제를 풀 준비가 다 되어있다. 이제부터 문제를 풀면 된다.   이제부터 내가 네 안에 감춘 열쇠를 네가 발견해라. 꼭 성공하길 나도 빈다. 아가 아가 울지 말고 일어나서 네가 갖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내게 더 가까이 오너라. 열쇠는 네 안에 있다. 아가. 네가 죽고, 새로운 네가 열쇠를 찾아내기를.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길을 찾아낼것이며, 거기서 나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길이 멀고 지루하고 힘들겠지만, 이 여정이 어딘가에서 끝날때, 거기 블루벨이 만발한 길의 끝에서 나는 쉴 것이다,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리면서. Dear God, I'm ready. Let's go.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30. 18:44

카톡을 통해서 '자동차검사'를 필하라는 메시지가 와서, 사전에 온라인 신청을 했고, 오늘이 예약 날짜라서 다녀왔다.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을때도 스캠인지 아닌지 헛갈리니까 온라인 검색을 해보고 '정상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확인 한 후에 예약을 진행하였고, 자동차검사장에 가기 전에도 검색을 해보니 벌써 여러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가기로 한 검사장에 다녀온 후기를 사진과 함께 상세히 적어 놓으셔서 현장에 가면 어떠할지는 충분히 가늠하고 다녀올 수 있었다. 

 

버지니아에서는 해마다 emission 검사를 하고 검사필증을 자동차 번호판에 붙여 놓는 식인데, 한국에서는 신차의 경우 출고 이후 4년, 그 이후부터는 2년에 한번씩 자동차 검사를 받는것 같 같다.  그러니까, 내가 내차를 새로 구입한지가 벌써 4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세월이 빠르구나.)  예약할때 이미 검사비 지불 정보를 입력했기 때문에 예약한 시간에 차를 갖다 놓고 기다리니 검사필증을 프린트해주고 그것이 끝이다.  내 차는 - 그야말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중고차 딜러들이 무조건 광고하는 '여교수가 타던 차' 바로 그런, 얌전하고 주행거리 많지 않고, 사고 기록 전혀 없는, '거의 새차'에 해당된다.  검사필증 내주시던 과장님이 '차 별로 안타셨네요. 새차네요' 하셨다.  출퇴근도 안하는 차이니까 기껏해야 근처 농수산물 시장에 채소 과일 사러 다니고,  주말에 엄마 보러 다니고, 가끔 바닷가에 바람쐬러 가거나, 신촌에 다녀오는. 주로 지하주차장에 얌전히 서 있는 '여교수차.' 

 

2년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  고맙다 복덩이 내 차. 

 

* 뭔가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정보가 필요할 때, 검색을 해보면 누군가가 블로그에 상세하게 사진과 함께 정보를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요즘은 '광고'를 다는것이 대세인 모양인데, 어떤 분은 광고도 없이 상세한 정보를 담아 놓으셨다. 블로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랄까, 광고도 없이 좋은 정보를 올려주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계시는구나.  그런 것을 발견할 때 기쁘다.   옛날에 우리들은 광고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고 정말 정보를 많이도 올리고 했는데...  지금은 내가 정보도 안올리지만, 앞으로도 나는 광고없이 나의 블로그를 사용할것이다. 어차피 나혼자 쓰고 보고 하는것이니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30. 01:22

아마존 킨들에서 저가에 판매가 되길래 (USD2.99) 간단히 읽어보려고 샀다가 첫 챕터만 읽었는데 - 책의 효과를 보았다. 서문에 저자는 'No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욱 존중받는다'고 설명한다. Yes 라고 무조건 받아주는 사람은 다소 만만하게 보이고 No 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욱 당당해보이고 주도권을 가질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읽고 났는데, 마침 내가 어떤 결정을 할 일이 생겼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해줄게'였겠으나, 지금 방금 아주 좋은 조언을 들었던터라 '아니. 안해'라고 답했고 내 결정이 옳다는 것을 나는 확신힌다.  나의 시간과 노력은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기분이 좋아져서, 이 책을 좀더 샅샅이 읽기로 한다. 나는 이제부터 조금더 집중적으로 내게 꼭 필요한 것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살겠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30. 00:23

 

저자 Rex Ogle 의 자전적 어린시절 이야기를 담은 non-fiction 이라고 한다. 

 

Free lunch (무료 급식) 라는 미국의 청소년 복지 시스템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미국의 초-중-고등학교 (K-12) 학생들은 학교 식당에 가서 돈을 내고 점심을 사 먹거나, 자기가 집에서 싸가지고 온 점심을 펼쳐놓고 먹는다.  그런데 식당에서 점심을 골라서 먹는 학생들 중에 돈을 내지 않고 무료로 받아 먹는 학생들이 있다. 학교에 저소득이라고 알리면 대개 그것이 가능해지는 듯 하다.  내가 플로리다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을 할 때, 가난한 유학생 자녀들도 '저소득층'에 해당되었고 학교에 신고만 하면 무료 급식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애들 기죽이기 싫고 내 형편이 애들 점심도 못 먹일 형편이 분명 아니므로 무료급식을 신청하지 않았었다.  나와는 반대로 '사회복지'를 전공하던 '지금은 모 명문 주립대 교수이신 내 이웃친구'는 '당연히 누려야할 복지 서비스를 외면할수 없다'며 자녀들에게 무료점심을 받게 했다. 그 댁 자녀들 역시 누려야 할 복지를 누리는 것이 지당하다고 믿고 그다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무료 급식 서비스를 누린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이 글의 저자는 중학교 (6학년)에 들어가서 자신이 무료급식자로 등록이 된것에 대하여 수치스러워하였고, 다른 친구들이 그것을 알아챌까봐 전전긍긍하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제목도 '무료급식 Free Lunch' 이다.  '무료급식'은 여기서 - 미국 사회에서 '무료급식' 서비스를 신청할수 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헤어나기 힘든 상황 전체를 대변한다고 할 만하다. 

 

어찌보면 비참하고 슬픈 상황인데, 다행스럽게 책의 저자이며 화자이며 주인공인 렉스는 착하고 바르게 상황들을 헤쳐나간다.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그는 멋진 작가가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미국에서 저자와 비슷한 또래로 성장한 내 두아들이 학교에서 겪었을 여러가지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큰아이 존이 가끔가다 그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웃기는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온가족이 포복절도 하곤 하는데, 녀석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

렉스는 자기가 가난하고 해진 옷과 신발을 신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백인 아버지와 멕시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피부빛깔이 진하다는 이유로 영어선생님(우리나라에서 국어선생님)에게 차별을 당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자유롭게 읽기 시간에 그가 천페이지가 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네가 그렇게 두꺼운 책을 어떻게 읽는다는거냐' (거의 다 읽어가는데요)  '네가 읽는다면 나쁜책이 분명하다, 네 엄마에게 알리겠다' (헌책방에서 엄마가 사준건데요) 이런 식의 노골적으로 경멸섞인 반응을 보인다.  하루는 단어 받아쓰기 시험을 봤는데, 분명히 모든 단어를 정확히 썼는데도 85점을 받았다. 선생님에게 가서 어디가 틀렸는가 묻자 선생님이 세개의 단어를 가리켰다. 'U'자로 쓴것이 'W'로 보인다는 것이다.  렉스가 '나는 분명히 철자를 알고 있다. 나는 잘 못 쓰지 않았다'고 항변하자 - 선생님은 95점으로 점수를 고쳐줬는데 - 5점 깎은 이유는 글씨를 헛갈리게 쓴것에 대한 징계라고 했다.  화가난 렉스는 "선생님, 이거 20개 문제를 내셔야 했는데 선생님은 19개의 문제만 내셨어요. 한문제 빠졌다구요.  그 한가지 빠진 단어를 제가 채워드리지요"라고 말하고 시험지에 PREJUDICE (차별) 이라고 적어 놓고 자리를 뜬다. 

 

이튿날, 렉스는 겁에 질려서 학교에 간다. 분통을 터뜨린것까지는 기분이 좋았으나 아무래도 선생님이 단단히 화가나서 자신을 응징할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렉스를 복도로 불러낸 선생님 - 벌벌 떨고 있는 렉스 -- 선생님은 렉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고 렉스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 정말 현실에서 이런 극적인 태도의 반전이 가능할까?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기위한 장치가 아닐까? 읽으면서 생각을 해 봤는데, 뭐 사실이건 허구이건 간에 여기서 교훈은 'You should resist and speak up' 으로 정리 될 수 있겠다.  부당한 일이 진행될때, 가만히 있으면 바뀌는게 없다, 어느 순간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 그래야 깨지거나 해결되거나 할 것이다. 사회가 정의롭지 않게 돌아갈때, 충돌 없이 바뀔수 있는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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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가 그보다 조금 부유한 친한 친구와 만나서 놀다가 식품점에 가게 된다. 그 친구가 목이 말라서이다. 렉스도 목이 마르지만 돈이 한푼도 없으므로 아무것도 살 수가 없다. 식품점에 간 친구는 계산도 하기 전에 차가운 음료수 하나를 꺼내서 마신다. '내가 계산도 안하고 음료수를 마시면 나는 잡혀갈텐데...' 하고 렉스는 상상한다. 

 

친구는 점원이 바쁜 틈을 타서 진열대에 있는 과자 나부랑이들을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발각되지 않는다. 친구는 렉스에게도 어서 먹을것을 훔쳐서 옷에 숨기라고 한다. 하지만 렉스는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너희 아버지는 변호사라서 걸려도 별일 없겠지만, 나는 잡히면 교도소에 가게 될거야'하고 렉스는 생각한다.  여러가지 과자를 몸에 숨긴 친구는 자신이 마신 음료수의 빈캔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점원과 즐거운 대화를 하며 계산을 치르고 나온다. 그는 밝고 명랑하고 세련되고 그리고 점원들의 환대를 듬뿍 받는 귀공자. 그들이 상점에서 나오는데 점원이 렉스를 불러세운다. '너 옷속에 뭔가 숨겼지?' 점원이 렉스의 몸을 더듬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점원은 심지어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를 보낸다.  이를 보고 있던 친구는 깔깔대며 말한다, "내가 훔치는 동안 점원이 너를 감시했단 말이지. 우리 보석가게도 털러 가자. 네가 의심받는동안 내가 훔치면 되니까."   렉스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런데 너는 부자이고 아버지도 변호사이고, 갖고 있는 돈도 많은데 왜 물건을 훔치는거지?" 렉스가 묻자 친구는 대답한다."그냥, 훔칠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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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중심의 미국사회에서 유색인종이나 이민자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백인들이 100퍼센트로 일을 할때, 나머지 우리들은 200퍼센트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간신히 그들이 누리는것에 근접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근접한다고 해도 동등한 혜택을 누린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속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생산성과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보다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현실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이 남성이 누리는 것만큼을 누리기 위해서 역시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것과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정치사회경제적인 힘을 갖고 태어난 자와, 그것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자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갖고 태어나지 못한자'들은 '갖고 태어난자들'에 비해서 힘들고 피곤한 삶을 살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런 공공연한 문제를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식으로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 동시에 '개인'이 이것을 어떻게 대면할것인가의 문제도 동시에 생각해봐야 한다.  각자 잘 싸우고, 공동의 장에서 만나서 또 잘 싸우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위로해주고. (뻔한 소리). 

 

 

이민자들은 이것을 디폴트로 받아들이고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29. 01:34

 

어릴때 (대학시절에) -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한글 번역서로 요즘 '먹방 선수'들이 한꺼번에 라면을 열다섯봉지씩 먹어치우듯이  그렇게 그냥 속도전을 하듯 방학동안에 하루에 한두권씩 책을 읽어 '치우던'시절 한번 읽고 지나갔던 책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 책을 읽으며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냥 이야기가 너무 끔찍하고, 그냥 대체로 끔찍하고 괴로운 '안네 프랑크의 일기'류의 무엇으로 대충 읽고 지나간 듯 하다.  그러니까 중학교 때 사회선생님의 스토리텔링으로 '안네의 일기'를 발견하여 - 그 책을 무슨 사서삼경처럼 모시고 읽었던 시절이 있었고, 이에 대한 역작용으로 머리가 굵어진 후 부터는 '이차대전과 유태인들 고통겪은 이야기'에 대하여 그냥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후로도 내내 그런 기분이다. 홀로코스트의 끔찍함과, 유태인들의 고통과, 그들이 역사의 다른 장에서 펼치는 '만행'에 대한 삐딱한 시각이 여전한 가운데 - 얼마전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이제서야 왜 이 책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고 읽는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으니 -- 나에게는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세월'과 '경험'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물론 내가 저자와 같이 끔찍한 고통을 겪지는 않았으므로, 여전히 그가 말하는 것의 심연까지 닿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그대로 (내가 여전히 사색하고 있는 하박국 3장 17-19)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금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를 지옥에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거룩한 책'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 소개된 '죽음의 수용소'와 같은 극한 상황의 경험치가 필요했을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죽음의 수용소를 전전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2022년에 내가 처했던 상황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수용소와 다를바가 없었던 위급한 병동. 그 안을 돌아다니던 친절하거나 불친절했던 감시자들, 친위대원들, 늘 기웃대고 있던 죽음. 5분단위로 전해지던 코드블루.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  내가 유일하게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었던 것은 - 성경책을 펼치고 시편을 필사하거나 조용히 기도하는 일이었다.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을때는 찬송가를 불렀다.  다른 사람이 있을때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방해를 하면 안되므로.  조금 여유가 생기면 '수용소'가 마련해준 기도실에 가서 한시간쯤 기도를 드렸다.  '병동'과 '수용소'가 참 흡사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발견했다. 

 

이 책의 저자가 기술한 것을 보면 -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현명하게 상황에 대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죽음을 넘어서는 무엇이 간절히 필요하던 시기에 나는 죽음을 넘어서는 존재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위로 받았고, 내가 왜 하박국의 노래에 매달려 있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삶을 들여다보면 - 이 책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 결국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빠져나가기 힘든' 수용소를 살고 있는 셈이다. 이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것인가. 저자는 고통의 이야기를 하며 스피노자의 윤리학 일부를 소개하는데 (대략 내 말로 설명하자면 )-- '고통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때, 고통이 삶의 의미로 다가온다, 곧 우리는 고통의 심연에서 벗어난다는 것인데 -- 이는 불교에서도 역시 동일한 가르침이 있고, 나는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수용소'에 있을때 받았던 것같다.  그 당시 나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지금도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안다. 

 

 

이 책에 소개되는 '테헤란의 죽음' 이야기는 작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어느 부잣집의 머슴이 어느날 '저승사자'를 맞닥뜨렸다. 깜짝 놀란 모슴은 부자 주인에게 저승사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테헤란으로 도망가려하니 말 한필을 달라고 한다.  부자는 머슴을 살리기 위하여 가지고 있던 말중에서 가장 빠른 말을 그에게 주고 빨리 도망가게 해준다.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머슴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승사자가 서 있었다.  당신은 왜 우리 머슴을 놀라게 한거요? 하고 주인이 묻자 저승사자가 답했다, "놀래키려고 한것은 아니고, 내가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직 여기 있길래 내가 그만 깜짝 놀랐지 말입니다."  결국 머슴은 사력을 다하여 예정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거다.  그러니 우리는 '운명'을 회피하려고 노력해봤자 소용이 없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황'에 대하여 회피의 가능성이 없을때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는 말하고 싶어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에 대하여 속수무책일때 (가령, 갑자기 죽을병 선고를 받았을때, 갑자기 사고로 인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재난을 겪고 있을때, 구약의 욥과 같이 모든것을 잃고 괴로움에 빠졌을때, 그 재난에는 내 잘못도, 합리적인 원인도 그 무엇도 없을때. 내가 속수무책일때)  그때, 나의 자세에 대하여 - 저자는 바로 그때 삶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방향을 잡으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그의 경험에 의거하여.  그는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설령 가스실에 끌려가 죽음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중에도 성자들이 있었고, 선한 사람들이 있었고, 악당들이 있었다.  살아남을 운명이라 살아남았듯, 죽을 운명이라 죽었을 뿐이다. 그 운명에 어떤 설명을 기대해선 안된다.  이런 면에서 '운명'과 '우연'은 동일한 뜻으로 보인다.  그저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회피하건 환영하건 일은 무심하게 일어난다. 이 때 이것을 대하는 나의 자세만큼은 내가 선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수용소에 끌려와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가면서 한 소녀가 창밖에 간신히 보이는 밤나뭇가지를 매일 내다보는데 소녀는 나뭇가지가 말을 거는 듯한 상상에 빠진다, 나무는 이렇게 말한다고, "나 여기 있어. 나 여기있어. 나는 영원한 생명이야. 그러니까 너도 괜챦아." -- 언젠가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저자의 뜻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삶이 고통스러운가? 이 책이 어떤 위로나 혹은 해법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좋은 책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27. 17:16

내가 사용하던 Iphone Xs가 사용 시작한지 5년도 넘는데, 나는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었으나 아들들이 '이제 교체할 때가 되었다'고 충고를 해서 한국오기 전날 애플매장에 가서 하나 새로 샀다. 내가 새로 산 것은 iphon 15 max pro 라는 것이다. 사전에 내가 꼼꼼히 조사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매장에 가서 전시된 것 중에서 '가장 가격이 높은것'을 고르니까 마지막 단계에서 저장용량을 묻길래 '테라 바이트'라고 한마디 하는 것으로 간단히 구입을 했다. 거기다가 보호용 필름 옵션으로 하니까 1,770달러가 나오더라 (세금 포함). 

 

 

아이폰 사용자가 미국에서 아이폰 기계를 사서 한국에서 사용할때 - 요즘 약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내 경우 uSIM 에서 eSIM으로 갈아타기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못알아먹겠던거다.  그래서 일단 웹을 검색해보니 별 문제가 아닌듯 해서 타이슨스 애플매장에가서 '한국가서 쓸거니까 unlocked 기기로' 하니까 다 알아서 해 주었다. 심지어 지금 당장 사용할수 있도록 자료 이전도 다 해줄수 있다고 해서 '애플 매장에서 이런거 서비스 해주는 직원들 정말 매너 좋다'  앉아서 서로 이야기나누며 모든것을 다 셋업 했는데 - 단한가지가 막히더라.  한국에서 사용하는 KT 전화 서비스가 미국 현장에서 셋업하는데 장애가 있어보였다.  그래서 '그건 내가 한국가서 해결할게 걱정하지마'하고 '마침표'를 찍어주지 못해서 애석해하는 직원을 위로해주고 자리를 떴다.

 

 

그러니까, 미국 매장에서 아이폰 사면, 내가 사용하던 아이폰에서 모든 설정이나 자료를 그대로 카피하여 전달받을수 있다 (심지어 trade-in 하면 기종에 따라서 140달러까지 절약도 가능하다). 바로 현장에서 새 아이폰으로 거의 모든것이 다 가능해지는데 (이메일 체크나 카톡이나 뭐 거의 모든앱이 가능하다) - 전화와 은행관련 앱이 해결이 안된다. 

 

 

어제 귀국하여, 오늘 가까운 KT 플라자 매장에 방문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전에 전화로 내가 방문하려는 목적, 문제사항을 설명하니 직원이 내 전화번호를 물은후에 친절하게 응대해주었다. 전화기를 가지고 현장에 방문하니, 내 전화문의를 받았던 분이 바로 나를 알아보고 다른 직원에게 'usim 에서 esim 으로 넘어가는게 엉킨것 같아 그것만 해결하면 돼'하고 지시를 했고, 내 전화기와 신분증을 주자 한 10분 만에 전화 불통하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eSIM 비용 2750원이 청구된다고 했다. OK. 

 

 

그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 은행앱(금융앱) 활성화이다. 다른 일반적인 앱과는 달리 '현금 자산'이 걸려있는 금융앱은 새 기기로 갈아탈 경우 새로 인증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집에서 약 10분간 여러가지 인증을 하고 이것을 해결했다.  이제 완전히 옛기기에서 새기기로 옮겨졌다. 

 

 

결론, 미국 아이폰 매장에서 'unlocked' 폰을 사면 한국에서 사용하는데 아무런 장애도 발생하지 않는다. 단 uSIM 전화기에서 eSIM으로 갈아탈때 약간 장애가 발생할수 있는데, 이경우에는 근처 KT 플라자에 가면 친절한 서비스 직원들이 금세 해결해주신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27. 01:23

 

조나 버거의 'Magic Words: What to say to get your way' 를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역시 어딘가에 갇혀 있는 시간이 책을 읽거나 공부하거나 수도를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이 사람 책을 구성하는 형식이 내 맘에 드는데, 어떤 식이냐면 

 1. 챕터의 구성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2. 내용을 평이한 언어로 예를 들어가면서 지루하지 않게 설명해주고
 3. 요약해주고

다음 챕터 들어가면서 앞 챕터 요약하고, 앞으로 전개될 내용 소개하고 다시 위의 구조 반복. 책을 마칠때는 전체를 다시한번 요약 설명.  전형적인 리써치페이퍼 쓰는 양식을 취하였다. 비즈니스 스쿨 교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

내가 특히 메모해가면서 읽은 내용은 '질문'에 관한 챕터였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사실 질문 한가지 잘해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수 있다. 질문을 어떻게 하면 천냥빚을 갚을수 있을까? "Do you have any advice?"  참 간단하지요.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이 작은 질문 한가지가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올수도 있을것이다. (당장 2월에 리더십 워크숍이 있는데, 이 내용을 소개해야지 하고 열심히 메모를 했다.) 

 

 

미국에서 경찰관의 인종적인 배경과 상관없이 (경찰관이 백인이건, 흑인이건, 아시안이건, 뭐 다른 무엇이건 간에), 통계적인 자료로 보면 경찰의 인종적배경과 상관없이 미국의 경찰은 백인에게는 우호적인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흑인에게는 적대적이거나 멸시하는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개인별로 따지는것이 아니라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이므로 대체로 그러한 경향이 있다고 보면 된다. 

또, 나같은 미국사회의 이민자나 영어를 배워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눈에 훅 들어오는 대목 - 언어코드가 그가 소속한 기관, 단체의 힘있는 자들과 맞아야 승진이나 취업, 월급 인사의 기회가 훨씬 많고 높다.  그러니까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는 두명의 후보가 있는데, 한명만 승진시켜야 할때, '말이 잘 통하는'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 인간의 경향이라는 것이지.  이민자들은 그러한 '장애'를 뛰어넘어야 간신히 살아서 생계를 유지할수 있는 것이다. 뭐 다 아는 얘기인데, 통계자료 갖다 보여주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하니까 끄덕이며 읽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좋은 책이라서, 저자가 책에서 언급했던 작가들 책을 찾아보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24. 21:52

최근에 읽은 '퓨처셀프'책은, 일단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것 같다.  요즘 나는 뭔가 '귀챦고' 하기싫은 일을 해야 할때, '내일의 나를 위하여'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니까 예컨대 이달말까지 제출해야하는 교수평가서만 해도, 한국에서 오기 전에 연구실 컴퓨터 앞에서 사전 작업을 조금 했었다. 평가기준을 꼼꼼히 읽어보고, 폴더도 만들어놓고, 일부 자료를 작성해놓기도 하고. 그당시 계획은 -- '이정도 해 놓고, 미국가서 애들하고 놀다가 한국 돌아가서 작업해야지'였다.  그러니까 한달전에 내가 미리 작업을 할 때도 사실은, 미래 시간속의 나를 위하여 준비를 해 놓은거였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기오니 드는 생각이, '내가 한국가서 이거 한다고 붙잡고 앉아있으면 한달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지.  남편과도 놀아줄 시간이 필요해. 그래 숙제를 다 해놓고 가면, 가서 놀 수 있지.'   그래서 서둘러서 이틀간 작업을 하여 끝낸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 내가 사전에 준비해놓고 만들어 놓은 자료가 실제로 작업을 빨리 마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미리 준비 해 놓으니까 이렇게 좋구나. 한달전의 나에게 정말 고맙다. 한달전의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전략을 세우게 된다.  나는 나의 '응원자'이고 '조력자'이며 나의 '수호천사'이다.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하여 지금 일을 한다. 나는 1시간 이후의 나를 위하여 지금 움직인다. 나는 10년후의 나를 위하여 지금 귀챦은 일을 한다.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한 최고의 친구이며 도우미이다.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내일의 나를 위하여 지금 보따리를 싸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23. 19:09

 

어제와 오늘 (1월 22일-23일) 이틀에 걸쳐서 일년에 한번씩 써야하는 자기평가서 작업을 해치우기로 하고 일하는 중이다. 해마다 하는거지만, 요구사항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므로 사전워크샵도 며칠전에 가졌고, 이달말까지 제출시한이 정해져 있어서, 하여간에 이틀을 잡아 놓았다.  내 행적을 정리하는 것이고, 갖고 있는 자료를 정비하고 설명을 덧붙이는 작업이지만, 원래 '편집'에 편집증이 있는 성격이라서, 그리고 이 보고서에 대한 평가 결과에 따라서 내 개인의 임금인상률이 달라지는 판국이라서 대충 허투로 쓸수도 없고, 최대한 '내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해치우는 능력자'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할수 있어야 한다. 

 

 

 

원고 작업하다 말고, 햇살이 하도 투명하고 눈부셔서, 창가에 서있는 '나의 나무'에게 다가가서 신선한 바람을 쐬기도 하고 (아들이 비디오로 촬영해줌).

 

 

어제 저녁 먹고 바로 쓰러져 잤다가 자정쯤에 깨어났는데, 곧바로 작업을 재개하여 밤새 꽤 먼길을 걸어왔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아무튼 나는 이것을 오늘 중으로 끝내서 원드라이브에 올려놓고 - 가끔 들여다보며 마지막까지 수정작업을 하다가, 마지막날 교수처에 평가서 링크를 전송할 것이다. 아무튼, 오늘 끝내고 놀아야지. 

 

 

한국집에서 내가 오기를 일구월심 기다리고 있는 우리 박선생왈: "야, 야, 곰이 나무를 뿌리채 뽑으려고 하는구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20. 23:05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아침 기도를 위하여 창가에 앉았는데, 바람이 불어서 창가의 나뭇가지에 소복히 쌓였던 눈이 흩날렸다.  다람쥐들이 담장위를 쏘다니며 담장위에 쌓인 눈을 이리저리 흩뿌리기도 한다.  이웃 아파트의 지붕에 쌓여있던 눈이 일제히 바람에 쓸리며 눈안개를 연출하기도 한다.  깊은 산속 눈에 갇힌 작은 오두막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던 황동규의 싯귀가 문득 어디선가에서 들려온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늙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사물들이 내게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황동규의 싯귀가 떠오르는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시를 중얼거리는듯한 느낌이 든다.  나무가, 눈이, 다람쥐가 두런두런 내게 뭐라고 말을 건다는 것이다.

 

 

"할무니 제사를 지내고 새벽에 절골댁에 제삿떡을 돌리러 가는데 눈이 허리까지 차도록 쌓여서, 간신히 뚫고 갔더니 대문에 금줄이 쳐져있쟎아요.  저 애기씨가 난 날이지 뭐야. 눈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그날이 우리 할무니 제사지내고 다음 아침이라 내가 날짜를 잊어버릴수가 없어요" 

 

 

우리 큰댁 형님 (형님이지만 연배는 우리 엄마보다도 훨씬 많으신 분)이 겨울날 - 전설같은, 내가 태어난 날의 새벽을 또렷이 기억하고 서사시를 읆던 고대의 시인처럼 나의 탄생을 읊던 날이 있었다.  우리 엄마도 곧잘 '패쓰'하고 지나가던 나의 생일을 선지자같던 큰댁 형님은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날이 하필 '할무니 제사' 다음날이라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니까 - 연결되어 내 생일도 함께 기억되는 모양이었다. 몇해전에 그댁 조카들 (그 형님의 자식들)로부터 부고를 받고 수원 장례식장에 가서 모두를 뵈온적이 있다. 그 조카들이 나의 큰 오빠나 아저씨 정도의 나이였지만 항렬상 조카였기 때문에 꼬박꼬박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었다. 그댁 막내아들이 우리 막내고모와 비슷한 또래였고, 지금 아이돌 뺩치는 꽃미남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안 농사를 지으며 유유자적, 겨울이면 장총 들고 토끼나 꿩을 사냥하러 선산을 오르내렸다.  어릴적 나도 그 조카가 꿩사냥 나갈때 따라나선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그냥 눈덮인 산만 돌아다니고 말았다.  그 꽃미남 조카는 나이가 칠순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꽃미모를 자랑하는 노인이 되었다.

 

 

 

눈이 밤새 허리까지 올라올 정도로 내리던 날 그 새벽에 내가 태어났기 때문일까, 나는 눈쌓인 풍경을 내다보는 것이 참 즐겁다. 눈이 쌓인 나뭇가지가 창가에 있을때는 그 나뭇가지들만 온종일 들여다봐도 여전히 즐겁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얼굴을 하루종일 들여다봐도 즐거운것처럼.  당신은 하루종일 들여다봐도 여전히 보고 싶은 그런 사랑을 해 보았는가? 나의 사랑은 그러하였다.  다람쥐한마리가 아파트 나무 담장위를 달려간다. 눈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경쾌하다.  그런 사랑을 해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눈이 또 퍼부울것이다. 내가 태어났던 날 함박눈이 쌓였던 것처럼, 내가 죽는날에도 함박눈이 내린다면 좋겠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by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20. 06:44

 

한국에서는 쿠팡이나 무신사등 패션 아이템 판매처에서 구입할 수 있고, 미국에서는 notabag usa 공식홈페이지 혹은 아마존 https://www.amazon.com/stores/Notabag/Homepage/page/BDE32BAC-3D70-40A2-BB6D-CF28C995F9D8 에서 구입가능.

 

내가 이 가방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23년 가을 추석연휴에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 '백남준'의 '다다익선' 작품 보러 갔다가 미술관 갤러리에서.  당시에 오리지날 파랑색을 사가지고 그자리에서부터 백팩으로 메고 다녔는데 가을 내내 그리고 겨울에도 '옷'을 입듯 이것을 달고 다녔다. 남편이  '너 중될래? 스님 매고 다니는 바랑같구나'하고 농담으로 놀리기도 했는데 남편도 이 가방이 내 패션에 아주 잘 맞는다고 어딜가나 먼저 챙겨주기도 했다.

 

지난 12월에 내 친구와 만나서 영종도에 놀러간 날 - 자연주의자라서 꽤 까탈스러운 내 친구도 이 가방에 반해서 '그것은 어디서 사는거냐?' 묻길래 '쿠팡'에서 싸게 팔더라 하고 알려주었는데 그날 저녁에 미대나온 딸과 의논하여 파랑색 하나 까망색하나 이렇게 두개를 샀다는 카톡을 받았다.  가을학기에 나와 작업하시던 시민 학생들도 외국 드나들면서 외국에서 사온거냐고 묻는 분들이 있었다. 사실 파랑색이 더 예쁜데, 겨울이라서 눈오면 눈에 띄는색이 좋을것 같아서 빨강색으로 들고왔다. 마침 매일 눈이 와줘서 매일 잘 사용중. 

 

웹에 설명이 나오는데 끈을 다른방식으로 잡으면 손에 드는 가방이 된다. 이걸 접어서 '가방내부의 포켓'에 접어 넣으면 네모난 카드봉투만해진다.  모든것이 참 자연스럽고 실용적이라서 놀라워했었다. 

https://notabag.us/

 

 

 

 

가을 내내 '옷'처럼 입고 다녔던 파랑색 가방.  추석에서 이어지던 연휴기간에 하늘이 천국처럼 파랗고 아름답던 날, 엄마 모시고 파주의 벽초지 수목원에 갔었다.  그날 사진에 파랑색 가방이 몇장 남이있다.

 

 

 

 

 

 

 

이 가방의 단점: 가방안에 '책한권'정도 혹은 그 이상의 무게가 실려야 어깨끈이 어깨에 착 붙어서 흘러내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방에 뭐 장갑이나 '존재감이 없이' 가벼운것만 들어있으면 오히려 어깨에 착 붙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그러니까 가방에 담을 것이 없으면 그냥 접어서 갖고 다니거나 '손수건이나 스카프'처럼 손에 들고 다니거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이 편하고, 뭔가 장을 보거나 책같은 것을 담을때 오히려 제대로 '가방'기능을 한다.  스스로 모양을 잡는 가죽가방이 아닌 '보자기'와 같은 헝겊 가방들이 갖는 공통적인 개성이므로 단점으로 보기도 힘들지만. 가방안에 아무것도 없을때는 백팩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한다. 

 

 

빨강도 예쁘네
하나는 애들 도서관 가방으로 쓴다
난 이제 이가방 없인 못다녀
어깨 내려가는게 어찌하나 생각하다가 다이소 등산용품코너에서 간단한 체스트벨트 찍찍이 3개 천원에구매
멜때만 붙이고 다닌다.
작은 가방에 항상 넣고다니다 필요할 때 꺼내 잘 쓰고있지.

친구에게 '가방을 잘 쓰고 있니?'하고 물으니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내가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어깨끈 흘러내림 현상을 내 친구는 찍찍이 끈으로 간단히 해결한듯 하다. 저런 방법이 있었군. 정말 현명한 친구이다. 파랑과 까망을 샀다더니 이 친구는 결국 까망을 사용하는군. 파랑에 반해서 사 놓고 왜 까망을 쓰는걸까?  원래 이 친구는 뭔가 색이 드러나는것, 원색적인것을 동경은 하되 실제로 사용은 잘 못하는 편인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내 친구가 나와 친구가 되었을것이다. 그가 동경하는 '드러나고, 원색적이고, 활발한' 그런 사람으로 내가 선정되었고, 내 친구는 그 곁에서 드러나지 않고, 무채색으로 조용히 나와 영혼의 교제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는 또 그런 친구가 편하기도 하고. 둘다 원색적이고 시끄럽고 그러면 충돌이 일어나겠지.  돌아보면 ...내 삶에 스며든 좋은 사람들은 대체로 얌전하고, 조용하고, 말도 별로 없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런 유형의 사람들인것 같다.  또 그런 사람들은 나의 '야수파나 표현주의적 원시적 에너지'를 동경하는 것일수도 있다.

 

 

 

 

* 이 가방 리뷰를 쓰면서 스스로 자각한 사실: 아....내가 명품백의 세상에서 완전 은퇴를 했구나. 요즘 내가 사용하거나 관심을 갖는 가방들이 대체로 '헝겊 명품'쪽으로 가고 있구나. 십만원 안팎의 가볍고 실용적인 가방들.  사실 내 옷장안에 브랜드별로 한점에서 몇점까지는 갖추고 있다. 샤넬 한개, 구찌 두개, 버버리 다수, 크리스찬디올 한개, 페라가모 한개, 루이비통 다수. 돌아보면 지난 수년간 나는 이것들을 거의 꺼내들지 않았다. 샤넬가방은 내가 학교의 일로 외부의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았을때 그래도 내가 대표하는 조직의 '가오'를 살리기 위해서 꺼내서 먼지 털어서 들고 나가는 편이고, 루이비통 여러개중에서 커다란 캐리올 가방 한개는 여름 겨울 미국 드나들때 정말 '짐보따리'로 끌고 다니고, 나머지는 그 아까운 것들이 온장안에 처박혀서 은퇴자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편이다.  현재의 나는 명품가방이 딱히 필요가 없다. 사람이 나이대별로 조금씩 생활이 변하는데, 이제 내 나이가 되면 명품 가방도 명품 옷도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런것으로 '가오'를 세우고 뭐 그럴 나이가 아니다. 그래서 젊은 며느리들에게 말해준다, "니 남편이 명품백 사주거든 아끼지 말고 가방 산 그날부터 들고다니고 마르고 닳도록 써라. 어차피 그거 닳아없어지지도 않고, 옷장 안에 묵히는사이에 청춘이 금세 도망간다." 

 

 

나는 보석도 없는 편이다. 그러니까 뭐 관심이 없다. 젊을때는 악세사리에 관심이 가기도 했는데 내가 귀금속에 빠져들었어야 할 나이에 유학을 하는 바람에 돈이 온통 학비로 쏟아져들어갔고, 머리를 '먹물'로 채운 후에는 보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판 칠때 반지나 시계는 다 성가시므로 손에 뭘 걸치는게 불가능하고, 목에 목걸리를 하려해도 나이 먹으니 피부가 약해져서 금목걸이를 해도 목이 따갑고 가렵다. 그래서 목걸이도 안된다. 이래저래 귀금속도 나하고 인연이 없다.  가끔 농담삼아 남편이나 아들에게 말하곤 한다, "엄마가 귀금속에 꽂히는날 니네들은 망하는거야. 엄마 뭐에 꽂히면 정신줄 놓는거 알지? 가산을 팔아서라도 귀금속을 사서 모으러들거다. 다행이지 뭐니 내가 그쪽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사실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거다.내가 귀금속 살만큼 돈을 잘 버는것도 아니니 처음부터 포기했겠지.

 

어쨌거나, 나이먹고, 다리도 쑤시고, 삭신이 쑤시니 명품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편한게 '장땡'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9. 21:47

창가의 튤립 포플라: 봄이면 튤립같은 꽃이 이 나무에서 피어나서 '튤립 포플라'라고 버지니아 사람들이 부르는데, 눈이 쌓이니 목화솜 처럼 보인다.

 

 

1월 18일 목요일. 

 

아파트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북버지니아의 최대 쇼핑몰이라 할만한 타이슨스 쇼핑몰 (왼쪽)로 진입하게 된다. 사진 왼편의 벽돌색 외벽에 반즈앤노블이 보이고, 회색 외벽에 AMC (극장) 표시도 보인다. 저 반즈앤노블이 나의 산책 목표 지점이다. 집에서 출발해서 5분이면 책방에 도착할 수 있으니, 신나는 산책코스이다. 

 

이 다리아래로 흐르는 도로가 Capital Beltway 인데 말 그대로 워싱턴디씨를 중심에 놓고 '벨트'처럼 동그랗게 순환하는 도로이다. 이 도로를 타고 있으면 워싱턴디씨 주위를 뱅글뱅글 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벨트웨이는 미국의 행정수도 워싱턴을 관통하는 '포토맥강'의 이쪽저쪽으로 버지니아와 메릴랜드를 통과한다. 2015년 봄에 내가 버지니아주의 조지메이슨대학과 메릴랜드주의 몽고메리 커뮤니티 칼리지 두군데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나는 아침에 패어팩스 조지메이슨에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이 벨트웨이를 달려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 있던 몽고메리 커뮤니티칼리지에서 강의를 하고 밤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당시의 나의 이동 노선이 버지니아패어팩스 -- 워싱턴디씨 --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을 한바퀴 왕복하는거여서 그당시에 내가 농담으로 자평을 했었다: "나 무서운 사람이여. 하루에 버지니아와 워싱턴과 메릴랜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사람이여."  이 벨트웨이가 수도 워싱턴의 동맥 같은 도로라서 트래픽이 심한데, 당시에 오후 6시에 시작되는 오후 강의를 하기 위해서 조지메이슨에서 오전 수업 세시간을 하고 - 집에 와서 라면 하나 끓여먹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2시에 출발하여 오후 3시에 학교에 도착하여야 했다.  오후 2시이후에 출발할 경우 시시각각으로 트래픽이 심해지면서 25마일 거리를 세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에. 어느날은  정말 차가 안막히면 30분이면 통과할 그곳을 세시간이 넘게 도로에서 가다서다를 한 적이 있었다.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벌써 그 시간도 십여년 전의 일이다.  이 다리아래로 미친듯이 달리는 자동차들처럼 나의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아래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벽돌건물을 우리식구들은 '쇼핑백 건물'이라고 부른다. 원래 건물 디자이너가 설계할때부터 '시장가방' 형태로 컨셉을 잡았다고 한다. 2007년에 처음에 이곳에 왔을때는 이 건물만 유독 크게 보였던 상징적인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이 일대가 개발이 되면서 화려한 고층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서 이 건물이 어딘가 찌그러진 느낌이다. 

 

신호등에 뭐라는 메시지가 많이 붙어있다. (맨아래) 건너고 싶으면 버튼을 누르라고 적혀있다.  보행자용 건널목 신호등이 자동으로 바뀌는것이 아니라 보행자가 버튼을 눌러야 신호가 바뀌는 시스템이다.  만약에 사거리라면 두가지 방향의 신호등이 있어서 자기가 건너려는 방향의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이걸 안 누르면 아무리 기다려도 보행자 신호가 켜지지 않는다.  

 

 

 

 

타이슨스 쇼핑몰 푸드코트.  저쪽에 AMC 입구가 보인다.  읽고 있는 책은 Jonah Berger 의 Magic Words: What to say to get your way. 

 

전에 온가족이 매클레인에 살던 시절에는 금요일 저녁에 온가족이 이곳에 와서 영화도 보고, 푸드코트에서 밥도 먹고, 쇼핑몰 구경도 하고 그랬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금요일 저녁의 풍경.   아이들은 장성하여 각자 살고 있고, 나는 여행자로 잠시 이곳을 스친다.  산책삼아 이곳에 오는 일이 항상 즐겁다. 

 

이 책은 꽤나 흥미진진하다.  '명사'와 같이 규정하는 어휘가 '형용사나 동사'같이 서술하는 어휘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가령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사람을 죽였을때 (1) 그는 살인자다, (2)그는 사람을 죽였다 이 두가지 설명중에서 (1)번이 그 사람의 '규정'하는 표현인데 사람을 죽인 사실에는 차이가 없지만 '그는 살인자다'가 그 사람에 대하여 훨씬 더 부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예는 내가 생각해 본 것이고, 책의 저자는 'help'와 'helper'로 설명을 한다. 

 

 

 (1) Will you help me to clean it?  (2) Will you be an helper (and clean it)? 

 

 

 

이 두가지 중에서 '나를 도와줄래?' 보다는 '나의 조력자가 되어줄래?'가 상대방의 도움을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좋은 책이다. 조나 버거의 책을 몇권 더 읽어야지) 

 

 

1월 19일 금요일, 눈. 

 

새벽에 깨어보니 창밖의 나뭇가지가 선명해졌다. 아하! 밤사이에 또 눈이 왔구나!  내다보니 눈이 솔솔 뿌리고 있다. 나뭇가지의 눈이 지워지기 전에 다시 눈이 내려 덮었다.  좋아라!  눈이 오는 창가는 항상 기쁘다 (출근 할 걱정이 없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8. 11:58

작년에 이어서 온라인으로 연말정산을 마쳤다.  혹시 해외에서 하면 어떤 장애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아무런 장애 없이 간편하게 연말정산을 마칠수 있었다.

 

나는 평소에 별로 세밀한 계획없이 그냥 '카드'로 살림을 하고 있는데 - 연말 정산을 위하여 국세청 홈택스에서 나의 종합적인 자료를 내려 받아보면 지난 일년간 내가 어떤 항목에 어떻게 돈을 썼는지 알려줘서 신기한 느낌이다. (내가 개념없이 살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에는 (내가 20대 30대 이던 시절) 정말 돈 10원까지도 세밀하게 가계부에 기록하고, 계획하고 돈을 쓰던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 후에 유학생 시절에는 가계부고 뭐고 학비 제외하면 정말 뭐 가계부 쓸것도 없이 빠듯하게 살았고, 그 이후에는 그냥 있는 돈 범위 안에서 크게 신경안쓰고 알뜰하게 살았고, 최근 10여년은 버는대로 쓰고, 나머지도 쓰는 그런 삶이다. 별로 저축에 뜻이 없다.  그렇다고 흥청망청은 아니고, 나를 위해 쓰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거나 이리저리 돈을 쓴다. 돈 모으기위해서 머리를 싸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 예수님께서 보물을 하늘에 묻어놓으라고 하셔서, 내가 이 세상에 예금을 많이 남기고 죽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블로그에서 밝힌바 있는데, 나는 교회에 다니고, 교회에 헌금을 한다. 십일조라고 매달 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내 수입의 십분지일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냥 교회에 내가 낼만큼만 낸다. 그 대신에 무슨 어린이재단이나 국경없는 조직이나 이런저런 재단에 매달 돈이 나간다.  연말정산할때 이렇게 '자동이체'되는 시스템의 좋은 점은 내가 따로 영수증 처리를 안해도 홈택스가 자동으로 다 알아서 정돈을 해주더라.  그러니까 내가 연말정산에서 추가 해야 하는 것이 '교회 헌금 영수증'이다.  그래서 어제 그것을 교회에서 pdf로 받아서 연말정산을 마칠수 있었는데, 내가 정확한 숫자를 들여다보니 지난  일년간 교회를 포함한 이런 저런 단체에 기부금으로 보낸 액수가 나의 일년치 수입의 '십일조'에 해당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십일조를 낸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8. 11:26

 

지난 크리스마스에 인천공항 책방에서 샀던 책.  년말이니까 뭔가 이런 책을 읽으며 한해를 시작하면 좋을것 같아서 샀었는데 조금씩 보다가 오늘 밑줄 팍팍 그으면서 마저 읽고, 아마존에서 하드커버 원작을 찰리네 집으로 주문했다. 아들 며느리가 집에 두고 읽으면 도움이 될것 같아서.  이 책은 큰아들 존의 집에 두고가면 존이 읽을것이다. (나는 킨들로 한권 사서 아이패드에 갖고 다니며, 리더십 트레이닝 자료 만들때 활용해야지. (24년도에는 전문가들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트레이닝 스케줄이 봄 가을에 많이 잡혀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내가 내린 결정이 '아주 잘 한 짓'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번역된 '퓨처 셀프'보다는 '지금 미래의 너로 살라'는 원제가 훨씬 작가의 취지에 부합하는 듯 하다. 하지만 번역하기에는 그냥 퓨처 셀프가 선명하고 기억에 강하게 남을것이므로 번역 제목도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 현재, 네가 꿈꾸는 미래의 네 모습으로 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이다.  예컨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지금 TV 앞에서 빈둥거리며 '장차 축구선수가 되어야지'하고 꿈을 꾸기보다는 지금 나가서 축구공하고 놀고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잔가지를 싹 치고, 그 목표지점에서 필요한 것을 지금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라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내린 결정은 지난 2년간 내가 책임자로 이끌던 프로젝트 한가지를 내려 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프로그램을 이렇게 저렇게 창조적으로 운영하는 재미와 보람도 적지 않았지만 - 나는 내가 '소모'되거나 '닳아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좋은게 아니다. 나는 이것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이 종종 강력하게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여 마무리를 아름답게 짓고 그 일에서 벗어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 저자가 역설하는게 바로 그것이었어! 나는 제대로 된 판단을 했던거야' 하고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문제'라고 발견한 것은 -- 미래의 나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치 이 땅에서 '미래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 내일 무엇을 먹고 입을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주님의 나라와 정의를 구하라고.  주님의 권능과 그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 이따금 그 문제를 생각하긴 하지만, 그 역시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고,  지금 현재 직장을 다니는 것 외에 미래의 내 모습에 나는 어떤 바람도 그 무엇도 없어보인다. 

 

 

사람이 한 번 되게 당해보면 (죽음이 내 곁을 스쳐지나간다거나 내가 1초후에 죽을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면) - 미래를 계획하는게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내가 지금 그런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언제 죽을지 알수도 없는 인생, 무슨 십년후 혹은 오년후를 따지고 있는가, 하나님과 대면했을때 그가 나를 기쁘게 맞으실지 그것이 더 궁금한 사항이 아닐까 말이다. 

 

 

그래도 내가 나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본다면 -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하게 웃어주고, 매일 기도하고, 매일 웃고, 건강한 좋은사람.  그 외에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게 유익하다. 내게 쓸데없는 것들을 잘라내고 정리하라고 일깨워준다.

 

 

 

 

Matthew 6:25-34 

6:25

Therefore I tell you, do not be anxious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what you will drink, n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put on. Is not life more than food, and the body more than clothing?

6:26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neither sow nor reap nor gather into barns, and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re you not of more value than they?

6:27

And which of you by being anxious can add a single hour to his span of life?

6:28

And why are you anxious about clothing? Consider the lilies of the field, how they grow: they neither toil nor spin,

6:29

yet I tell you, even Solomon in all his glory was not arrayed like one of these.

6:30

But if God so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today is alive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oven, wi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 O you of little faith?

6:31

Therefore do not be anxious,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6:32

For the Gentiles seek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all.

6:33

But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added to you.

6:34

Therefore do not be anxious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be anxious for itself. Sufficient for the day is its own trouble.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6. 22:09

 

Snow at my window, window snow... 

Tree At My Window

Tree at my window, window tree,
My sash is lowered when night comes on;
But let there never be curtain drawn
Between you and me.

Vague dream head lifted out of the ground,
And thing next most diffuse to cloud,
Not all your light tongues talking aloud
Could be profound.

But tree, I have seen you taken and tossed,
And if you have seen me when I slept,
You have seen me when I was taken and swept
And all but lost.

That day she put our heads together,
Fate had her imagination about her,
Your head so much concerned with outer,
Mine with inner, weather.
 
 
창가의 나무, 창문, 나무.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첫구절이 떠올라서 전문을 찾아보았다.  이런 시였구나...내식으로 번역해보자. 
 
창가에 나의 창문, 창문, 나무. 
내 창문은 밤이 오면 닫히지만, 너하고 나사이에 커튼을 드리우지는 말자. 
 
땅밖으로 솟아나온 애매한 꿈의 머리, 그리고 구름에 버금가게 산만한 
(바람에 네가 일렁일때) 너의 가벼운 혀가 떠드는 소리가 모두 심오한 것은 아니리.
 
하지만 나무야, 나는 네가 휘청이고 흔들리는 것을 보아왔지. 
그리고 만약 네가 잠자는 나를 봤다면, 
너는 내가 휘청이고, 뒤척이며 완전히 망연자실한것을 본것이지.
 
그날 운명의 여신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의 머리를 한데 모았던날 
너의 머리는 바깥세상의 날씨에,
나의 머리른 내적인 날씨에 근심하였지.
 
.....
 

겨울나무 가지에 눈이 쌓인 겨울아침 풍경은 언제나, 고향집 뒷곁으로 나를 돌아가게 한다. 눈쌓인 장독대, 얼어붙은 물펌프, 오래된 감나무 가지에 쌓인 눈, 그리고 햇살.

 

큰애가 애빙던에 살때, 그때도 나는 2층 방 창가의 책상에서 시간을 보냈고, 아기였던 고양이 토마스는 내 책상에 올라와서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창가에 책상을 가져다 놓자, 토마스는 그때와 다름없이 창가에 와서 창밖을 내다본다.  애빙던에서는 창밖으로 목장이 보였고, 얼룩소들이 온종일 풀을 뜯었다.  이곳에서는 다른 집들의 정겨운 창문들이 보인다. 이 역시 정겹다.

 

오늘 내가 할일:

1. 실러버스 한과목 언라인에 업로드해야 한다.
2. 연말정산에 필요한 기부금 영수증 한가지 다운로드 해야 한다. (그것이 완료되면 내일은 연말정산을 마치자).
3. 저녁에는 한국캠퍼스에서 진행하는 회의를 줌으로 참석해야 한다 (잊으면 안돼!!)

 

 

금주중에 마무리해야 할일
1. 센터 보고서 작성해서 전송
2. 평가보고서 초안 작성 

 

 

매일 해야 할 일

1. 하루 30분이상 창가, 이 자리에서 기도.

오늘 과제를 다 하면 하고 싶은일

1. 눈 산책
2. 반즈앤노블 책방까지 산책 (책 구경)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6. 07:14

 

Martin Luther King Jr. (MLK Day holiday) 기념일이다.  아침에 깨어보니 밤사이에 눈이 내려 쌓여 창밖이 환 했다. 어제, 일요일 오후에 눈발이 날리다 그치는가 했는데, 밤사이에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아들이 산책을 나가자고 해서 아파트 인근으로 온가족이 산책을 나갔다.  아들은 먼길을 돌아 마치 회귀하듯 -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 근처의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산책 목표지점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살았던 매클레인의 아파트 근처 세이프웨이 상점.  그곳은 내가 왕눈이를 데리고 나가서 상점 입구에 묶어 놓고 장을 보기도 하던 곳이다. 왕눈이가 잘 있는지 내다보면 왕눈이는 끈에 묶인채 내가 나오길 기다렸고 - 입구를 오가는 동네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발견한듯 기쁜 눈빛으로 왕눈이를 쳐다보거나 미소를 짓곤 했다. 고등학생이던 찰리는 "나가서 스타벅스에가서 아이스커피 벤티 한잔 사오너라"하고 내가 심부름을 시키면 왕눈이를 데리고 이곳까지 와서 커피를 사다주곤 했다. 한쪽 모퉁이 주유소도 여전하다.  달라진 점이라면, 내가 살던 아파트 구역이 재개발되어 콘도미니넘으로 새로 지어져서 약 백만달러 가까운 금액으로 매매가 되고 있다는 것 정도.  

 

이곳에서 찰리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해서 기숙사로 나갔고, 존이 한국군에 입대를 하러 나갔다.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고, 벚꽃이 쏟아져 쌓인 나무 아래를 왕눈이가 무심히 코를 킁킁대며 산책하던 눈부신 봄날이 떠오른다.  엄마가 한달 가까이 지내다 가시기도 했다. 

 

존은 어딘가 전통적인 한국인 가족의 맏아들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안방 - 매스터 베드룸'을 온전히 한국에서 엄마 아버지가 오셨을때 사용할 방으로 꾸며 놓았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옆의 작은 침실을 사용한다.  내가 '그래도 이게 너희 집인데 나는 어쩌다 일년에 한두번 손님처럼 다녀가는데, 큰 방을 너희가 써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했더니 그는 처음부터 약혼자와 살림을 합칠때부터 '한국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문화'라고 서로 합의를 보고 그래서 엄마가 오건 안오건 안방은 부모님 방으로 지정이 되었다고 했다.  찰리는 엄마가 쓰라고 방을 두개 꾸며 놓았지만, 매스터베드룸은 그들 부부가 사용한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부모를 신경써주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작은아들이 좀더 자신들의 삶을 중심에 놓는다면, 큰아들은 '한국의 맏아들' 흉내를 내러든다. 

 

나는 뭐 - 자식들이 부모가 쓸 방까지 신경을 써주니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손님'으로 지내다 갈 뿐이다. 자식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흩날리는 눈발속에 눈을 밟으며 동네 한바퀴 5킬로미터 (약 3.5마일). 즐거운 산책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주민들 전용 작은 매점이 있는데 눈속에 있는 모습이 요정의 가게 같아보여서 사진을 한장 남겼다.  아이들이 커피 한잔 사러 들어간 사이. 저 가게안에 큰아들과 며느리가 들어있다. 내가 마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사고 있다.

 

 

 

 

창밖으로 떡가루 같은 고운 눈이 솔솔솔 뿌려지고 있다. 온종일 솔솔솔.  근처 타이슨스 쇼핑몰에 책방 반즈앤노블이 있는데, 거기까지 산책을 다녀올까 말까 망서리고 있다. 눈길을 산책하여 책방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참 아름답다.  아들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질까봐 말린다. 그 마음씨도 아름답다.  

 

 

 

아들이 마련해준 내방 창가 책상에 앉아있으니 십여년전 바로 이 근처 아파트에서 지낼때 내가 매일 내다보던 창문과 별반 다르지 않아, 내 마음은 그 시절의 나에게로 돌아간다.  여전히 창가를 지키는 아름드리 나무와 나뭇가지들, 바쁘게 오르내리는 다람쥐들. 눈 속에 여전히 바쁜 다람쥐들.  십여젼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아들들은 장성하여 각자 자신들의 가정의 주인의 되어 살아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눈이 며칠 더 왔으면 좋겠다. 나는 이 창가에 앉아 눈을 내다볼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3. 04:32

 

내일 큰 아들네 집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오늘 그림을 마무리 하기로 하고, 창가에 앉아서 간단히 마무리.  뭐,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곳에 색을 더하고. 빛이 필요한 곳에 빛을 보내고.  마무리. 

 

 

 

 

마이클스라는 크래프트샵에서 산 아크릴 물감이 조금 의외였다.  그냥 개별 용기에 들어있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검정, 흰색 이렇게 몇가지 아크릴 물감을 사가지고 그렸으면 더 수월했을것 같다. 물감을 열어보니 내가 찾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수채화를 그릴때도 그렇고, 아크릴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몇가지 원색을 가지고 마음껏 배합하면서 농담을 조정하는 편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가 구식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런 일회용 플라스틱 컨테이너 뚜껑을 빨레트 삼아서, 페트병을 잘라서 물통으로, 커다란 붓 두개 (하나는 일반붓, 하나는 납작붓)가지고 대충 대충.  큰 아들네 집에 가면 고양이 두마리와 큰아들 부부의 가족화를 그려야지. 

 

강아지 스텔라 (돼지코, 왕눈이, 츄바카 등 다양한 별명의 강아지)가 매일 나하고 함께 잤는데, 내가 가고나면 개집에 가서 자야한다.  복된 시간이었다. 이 창가에서 성경 통독을 했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것을 내다봤고, 이웃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무심히 쳐다봤으며, 집에 택배가 오면 누구보다 먼저 알수 있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3. 01:06

 

 

(위) 2024년 1월 10일 버지니아 집에서 - 제목 (축복)
캔바스에 아크릴 

 

 

우리 찬삐 부부와 강아지 가족.  며느리가 이 그림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기쁘다. 선물로 놓고 갈것이다. 

 

이 그림 사진을 본 내 친구가 단박에 이 그림을 해석해냈다. "온갖 금은보화와 축복을 그들 앞에 깔아놓아주고 싶었구나! 점점이 찍힌 것이 너의 축복이구나. 네 마음이 읽혀지는 그림이다" 라고 내 친구가 카톡으로 말했다.  내 친구는 정말로 soul mate 인것 같다. 내 혼까지 읽어내는 것 같다. 내 친구는 또다른 내 그림의 개성을 짚어냈다. "얼굴이 없는 사람" (얼굴이 없는게 아니라 눈코입을 생략한것이지만). 그것이 내 그림의 개성인줄은 나도 몰랐었다.  그리고 내 친구는 내가 그린 나무를 좋아한다. 내가 나무를 아주 잘 그린단다.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얼굴의 눈코입을 안그리는 이유는 

 

 (1) 제대로 잘 그려낼 자신이 없어서.
 (2) 음...보는 관점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표정을 가질수 있도록.  이 그림을 간직할 며느리에게 내가 말해줬다, "엄마는 여기에 표정을 그리지 않았어. 네가 위로가 필요할땐 이 그림에서 위로의 표정을 찾아내길 바래. 네가 때로는 이 그림에서 기쁨을, 슬픔을, 평화를 찾아내길 바래. 천가지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이대로 놓아두는거야"  며느리도 동의했다. 

 

 ... ...

 

아래 그림은 작년 12월에 내 친구하고 영종도 성수갤러리 카페에 갔던날 세시간만에 내가 그린 작품.  이 작품을 갖고 집에 왔을때, 내가 "성수 갤러리에 다녀왔지"라고 말하니까 작품을 받으면서 남편이 "이 그림은 거기서 사온거야?" 하고 물었다. 하하하.  "이거 돈 주고 사온것처럼 보여?" 내가 물으니 작품이 정말 맘에 들어서 내가 어떤 사람 작품을 사온거라고 상상했다고 한다. '갤러리'에 다녀왔다니까 거기가 그림 그리기 카페라는것을 몰랐던 남편의 단순한 착각이었다.  어쨌거나 돈 주고 살만큼은 된다는 말이지? 응? (스스로 대견해짐) 

 

 

 

 

(위) 2023년 12월 영종도 성수갤러리 카페에 친구와 함께 가서, 그날 그린 그림: 나무, 예수님. 

캔바스에 아크릴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6. 13:37

2023년 12/31 - 2024년 1/4 성경통독

 

지난 2023년 12월 31일은 일요일이었다. 전에 다니던 매클레인의 교회에 가서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닷새동안 구약부터 신약까지 급행열차를 탄것 같은 속도로 성경 통독을 마쳤다.  내가 일년 중 보낸 시간중 가장 귀한 시간으로 기록 될 것이다.

 

위의 사진은 12월 31일.  (사진속) 맞은편 집 사람들은 자기네 차고 앞 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불멍을 때리며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였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아랫층 거실에서 파티를 하며 새해맞이를 했고, 나는 성경책을 읽으며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였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주일 예배. 목사님 설교가 아주 좋았다. 아이들도 모두 인상적이었다고 좋아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시작이라는 메시지였다. 여기서 '한계'란 - 피아노의 키보드의 음계를 정확히 짚는것. 자유롭게 멋대로 열손가락을 모두 눌러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안된다는 것 - 목사님은 직접 키보드의 키를 열손가락으로 꽝 하고 누름으로써 (어린 아이가 피아노를 칠줄도 모르면서 무장정 여기저기 눌러대는 그 불협화음을 연출해보여주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여기서 조화로움이란 - 하나님의 뜻에 부합함, 순종, 인간의 한계를 깨달음. 등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빨간다리'가 타운과 상점가를 이어준다.  겨울 햇살 속에, 이 빨간 다리를 통과하여 근처 맥도널드나 식품점을 오간다. 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버지니아주의 상징적인 새 Virginia for Lovers 라는 슬로건에는 꼭 이 카니널 새가 등장하는데, 버지니아에는 정말 카디널이 우리나라의 까치처럼 흔하다. 그리고 빨간 색 덕분에 쉽게 눈에 띈다.  빨간것은 숫놈. 암놈은 갈색빛이 많이 난다. 

 

 

크리스마스 밤에 도착했다. (그날 한국 출발 비행기표 값이 가장 쌌다. 그래서 그냥 그날표를 샀다).  시차 적응하느라 며칠 졸았는데, 잠이 오락가락 할때 책 읽기에는 머릿속이 뿌옇고, 심심해서 - 쿠션 커버를 짰다. 주황색 다알리아 네송이가 들어간 것을 먼저 짰고, 네가지 다른 색이 들어간 것을 나중에 짰다. 먼저 짠것은 둘째가 냉큼 가져갔고, 나중에 짠것은 큰애가 가져갈 것이다.

스텔라 (강아지)가 새식구로 들어와 - 손님으로 온 나를 반겼다. 요즘 이 강아지와 침대를 함께 쓴다. 강아지하고 자면 그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내게 스며들어서 꿀잠을 잘 수 있다. 

 

 

내일(주말)부터 한파가 닥친다고, 아들이 장을 보러가자고 해서 장보러 갔다가 - '바나나꽃'이 보이길래 '이건 어떻게 먹는거지?' 궁금해서 하나 사왔다.  아무래도 찜틀에 쪄서 (양배추 찌듯이) 뭐 쌈장에 찍어먹으면 될 것 같다. 내일 연구좀 해봐야지.

 

 

 

성경책을 5일에 통독하려면 하루에 350 페이지를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읽기 전쟁'이다. 되게 힘들다. 다 읽고나면 - 영적으로 배가 부르다는 것 말고 그냥 신앙심을 빼고 난 관점에서 -- 무지막지하게 책 읽기를 한 결과 --> 다른 시시한 책 읽기가 정말 수월해진다.  그러니까 굉장히 높은 산을 힘들게 올라갔다가 내려온 후에는 - 웬만한 산에 오르는것이 매우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읽기를 마치고나니 - 내가 읽어보려고 몇권 가져온 한글 책들이 너무 빨리, 쉽게 읽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후딱 읽어치우고 - 아마존에서 새로나온 좋은 책들 몇권을 더 사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통독은 정말 힘든 일이다. 어떤 신앙심 강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정말 신앙심 만큼은 나에 비해서 태산같이 깊은 분인데 그분은 '성경통독'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종교생활을 이어가는 방법이나 방향이 다 다르구나' 생각했다. 나는 뭘 하면 일단 관련 '문서'를 조사를 하는 편인데, 어떤 분은 '문서' 상관없이 그냥 '믿음'으로 가는 분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이 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편이다.  그런데 성경통독은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고 - 어떤 프로젝트로 진행을 해야 한다. 나는 대개 방학때 정해놓고 '며칠안에 끝낸다'고 작정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요 몇해동안은 해마다 한번은 했는데 2022년 2023년에 하지 못했다. 2022년에는 통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대신 그때는 시편 필사나 기도를 많이 했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기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성경통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 내 삶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 아니 '평온'으로 돌아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2021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는 성경 통독을 한 바 있다. 그 때,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성경구절이 하박국 3장 17-19절 이었다. 그당시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이건 뭐지?' 했다. '이건 뭔데, 내가 이 구절을 들여다보고 있는거지?' 곰곰 생각하다가 목사님께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나 - 목사님, 이번 통독에서 이 말씀이 가장 강렬하게 제게 다가옵니다' 뭐 이런 메시지였다.  그러니까 그것이 2년전이었고, 2년후 나는 성경통독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 그것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하박국에 이르러 이 말씀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말씀을 뜻을 파악한 것 같다.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찼던 시간이었을것이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을때, 포도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을때, 감람나무에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을때, 밭에 먹을것이 없었을때, 양이 없고, 소가 없었을때 -- 그 빈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 그 텅빈 (고통, 고독, 아픔, 통증, 고난) 듯 해보인 곳을 가득 채운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것을 다 잃어도, 심지어 목숨마저 잃어도 나는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 이미 하나님으로 가득차있으니까. 그가 내 아버지이니까.  내가 없어져도 나는 하나님속에서  없어지지 않으니까.  (아...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광복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을수 있었던거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이 없어져도 자신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거다.)

 

나는 매일 죽어야한다. 매일 망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새로 태어나고 매일 새로 자라야 한다 - 하나님 속에서. 그의 사랑 속에서.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