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12.04 12:03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 나온 한 장면이 나를 아주 잠깐 '혼란'에 빠뜨렸다.  


하바리 출신의 재벌 막내 아들을 정부 요직에 있는 하바리 출신의 인사들이 초청해 놓고 새파랗게 젊은 재벌 막내가 나타나자 한참 나이 많은 '선배님'들이 일제히 기역자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한다. "더 숙여 임마!" 이런 대사도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니까, '재벌'이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고 정부 관리들은 그의 하수인처럼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리둥절, 처연했다. 



저...저...게 이 세상의 진짜 모습인걸까?



물론 허구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저게 진짜 모습인걸까?' 할 필요는 없다. 허구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 허구인가? 재벌과 밝게 미소짓던 여자 대통령, 그 여자 대통령을 탄핵하고 그자리에 오른 남자 대통령 역시 그 재벌과 밝게 미소짓지 않던가. 그것은 현실이지. 그 재벌은 무슨 짓을 해도 '솜방망이' 처벌을 이겨내고 늘 빙긋 웃는다.  내가 본 현실과 영화속의 장면이 왜 그렇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가?



그...그..그러니까...내가 여태 그걸 몰랐을 뿐, 세상은 저런것이었나보다.



내가 내 오십여 인생을 돌아보니, 극단적으로 가난하지도 않았고, 떵떵거리는 부자인적도 없고, 성실하게 평생 월급쟁이로 남들만큼 노력하고, 남들만큼 고민하면서 굶어죽지 않고, 도태되지 않고 도란도란 살면서,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재벌 따위 남의 일이니 신경 안써도 되었고, 재벌이 크게 부럽지도 않았고 (어차피 부러워한다고 될일도 아니니 마음 접었고), 내 인생 재벌과 상관없이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다는 상상 속에서 살아온 것 으로 보인다. 재벌이 내 앞에 있어도 내가 고개 숙이고 허리 숙이고 인사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너는 너 나는 나 상관없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삶 역시 저들의 '마수' 안에서 요리되고 기획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태 멍청하게 살아온게 아닌가 슬슬 회의가 든다. 



좋아. 니네들은 너희들의 게임의 규칙에 충실하게 살아라. 나는 다행히 큰 화를 당하지 않고 눈치껏 소시민으로, 방관자로, 치사하게, 비굴하게, 양심껏, 적당히 회유되고, 적당히 굴복하면서 연명해왔다. 



그런데 말야.  이제 내가 오십이 넘었거든.  별로 가진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을것으로 보이지도 않아요. 지금 가진것만으로도 그냥 대충 먹고 살면 근근히 남한테 손 안벌리고 살다 죽을수 있을것도 같거든.  정 안되면 바닷가에 가서 조개 줍고 굴 따고, 미역 따서 쌀밥에 국 끓여 먹다 죽어도 우짜든동 살아 낼 수 있을것 같거든.  그런 계산이 서자, 평생 비굴하고 소심하게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하면서 사회 정의보다는 방관자로 돈 한푼이라도 알뜰하게 절약하고 챙기면서 살아온 내 앞에 다른 계산이 서기 시작한다.



내가 여태, 이 세상에서, 크게 손해보지 않고, 연탄가스에 크게 시달리지도 않고, 고시원 생활도 한번 해 본적 없이 떵떵거리고 잘 살아왔는데, 그것은 내 덕분이 아니라 그냥 운이 좋아서, 내가 비굴하게 굽신거리며 산 결과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까, 이제부터는 나도 '사람'처럼 살고 싶어진단 말이지.  사람처럼 살고 싶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한번쯤은 나도 모든 것 내려놓고 '사람'으로 살다가 가야 하는거쟎아. 딱 한번 만이라도 '사람'의 행동을 하고 싶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많이 살았어. 편히 잘 살았어. 남들이 고통을 겪을 때 내 잇속만 챙기며 잘 살아냈어.  그러니 이제 한번쯤은, 딱 한번만이라도 '사람'의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어? 나는 이제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  오늘 살다 내일 죽어도 '사람'으로 죽겠어. 



나이 먹은 아줌마는 무서운게 없어지면서, 슬슬, 탈바꿈을 하고 싶어진다. 먹을 만큼 먹었고, 살만큼 살았어. 나는 평생 충분히 비굴했고 충분히 비정했으며 충분히 무책임했고 충분이 제 밥벌이에 급급했어. 마이 무따. 고마하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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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11.30 12:31




What is Name Calling Propaganda?

Name calling propaganda occurs when complementary or pejorative words are used by governments, individuals, or the media to describe another person or group. The purpose is to subliminally manipulate or influence public opinion in order to generate conformity with the opinions of those producing the propaganda.


https://soapboxie.com/us-politics/Name-Calling-Propaganda-Terrorist-or-Freedom-Fighter




'name calling' 혹은 'name-calling' 이라는 선전선동술 (propaganda)이 있다.  한국어로는 어떻게 번역이 되거나 통용되는지 잘 모르겠다. "영희야! 철수야!"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평이하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이름/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사람들이나 특정 집단에 대해서 '나쁜 별명'을 붙이는 것이다.



무슨 예가 있을까? 호남지방 사람들을 '홍어'라고 부른다거나 '절라디안'이라고 칭하는 것을 가끔 웹에서 보는데, 그걸 볼 때마다 기분이 아주 나빠진다. '개쌍도'라는 말도 있다. 역시 불쾌한 말이다. 또 요즘 웹에 보이는 나쁜 별명들이 뭐가 있더라?  맘충, 급식충, 틀딱, 좌빨, 빨갱이들, 종북, 태극기부대, 개독 (개같은 기독교라는 말인가보다), 기레기 (기자+쓰레기)  뭐 그런것. 어떤 대상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의 뜻을 담아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name calling 이다.



미국에서 red-neck은 남부지방의 저소득 노동자 계급 백인 남자들을 일컫는다.  태양아래에서 일하다보면 못 뒷덜미가 붉게 타니까 이런 조롱섞인 별명이 붙었나보다 추측한다. 



여자들에 대해서 보통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하는 말 중에서 '김여사'는 운전이 서툰 중년 여성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줌마'는 본디 아름다운 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아줌마'에 부정적인 의미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목격한 TV프로그램 장면. 그냥 스치면서 화면 돌리다가 발견하여 약 3분쯤 시청하다 끄고 나왔다. 프로그램은 '마녀사냥'이고 주제는 '내 남친은 젊은 아줌마'다.  수컷 몇 사람이 나와서 수다작렬. 이들은 아주 교양넘치고 선량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누구에게도 악의는 없어보인다. 



내용을 보니, 어떤 여자가 사연을 보냈는데, 남자친구가 남의 결혼식 부페 식당에서 음식을 챙기는 둥 '아줌마' 같은 행동을 해서 챙피하다는 것이고, 여기 모인 수컷 신사분들은 점쟎을 빼면서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이었다. 뭐 심각하게 여혐, 여자 조롱 얘기를 한 사람은 없다.  문제는 마녀사냥 제목 아래에 붙은 타이틀이었다 "내 남친은 젊은 아줌마." 



여기서 이들이 '아줌마'라고 칭할때 그 아줌마는 어떤 사람일까? 이들이 언급을 했던 안했건 숨은 뜻은 이런거다:

    1. 부페식당에서 봉지에 음식 담아가는 뻔뻔한 기혼녀 (주로 중년, 그래서 중년이 아니면 젊은 아줌마)
    2. 부끄러운줄 모르고 민폐를 끼치는 기혼녀 
    3. 함께 있기 괴로운 존재
    4. 함께 있으면 창피한 존재 (그래서 남자친구의 행동을 --젊은 아줌마 행동으로 정의한다).


좀 따져보자. 이 프로그램에서 화제의 주인공은 -- 교양없고, 경우없이, 뻔뻔하게 민폐를 끼친 사람은 아직 미혼인 젊은 남자. 그런데 그 녀석이 '젊은 아줌마'로 둔갑을 한다. (여기서 내가 열폭을 하는거다)  저들은 젊은 남자가 미친을 할 때 '미친년'이라고 욕을 한다. 실제로 웹에서 보면 수컷들끼리 서로 얕잡아서 욕을 해 댈때, 상대가 남자인대도 ''이 들어간 욕을 한다. '놈'소리 들을 자격도 없는 '년'이라는 뜻이리라. '년'들은 이렇게 평가절하된다.   


난 어떤 놈이 내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 보다도 이렇게 생각없이 방송에서 막 떠들어대는 저 인간들에 대해서 더 분노를 느낀다. 왜냐하면, 어떤 새끼가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면 손목아지를 비틀어가지고 경찰서로 끌고 가면 되지만, 생각없이 연예인들이 막 뱉어내는 방송 언어는 내가 손목아지를 비틀어 패대기를 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 교묘하고 음습하며 뻔뻔하다. '내 남친은 젊은 아줌마'라는 표현이 사연 보낸 젊은 여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그 여자는 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똑바로 교육받아야 한다.  혹은 저따위 문구를 창조해 낸것이 방송 작가이고 그것이 여자라면 역시 같은 여자로서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남자 방송작가가 저렇게 썼다면 역시 교양을 좀더 키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프로듀서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 귀하신 분이시여, 니 대가리는 악세사리야? 프로듀서라는게 찍어서 내기만 하면 되는거니?  니 부하직원들이 실수하면 니가 다 책임져야지, 안그래?




말 나온김에 '아줌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긍정적인 이미지를 정리해보자.

부정적:
    1. 버스나 전철에서 빈자리 나오면 가방부터 던지고 몸을 날리는 부끄러움 없는 동물
    2. 제 가족을 위해서라면 악다구니로 싸우는 전사들
    3. 제 가족만 챙기고 남은 짓밟는 뻔뻔한 동물들
    4. 뚱뚱하고, 못생기고, 냄새나고, 패션감각 없고
    5. 교양없고, 뻔뻔하고, 아무데나 기웃대고, 아무데서나 떠들고 
    6. 운전은 죽어라 못하고 도로에서도 민폐끼치는 운전자이고
    7. 부페식당에서 음식 죽어라 챙기고 (도대체 누가?)

긍정적:
    1. 남의 아기도 잘 안아주고 달래주고
    2. 폭력적이지 않으며
    3.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고
    4.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며
    5. 자원봉사를 많이 하고
    6. 가족을 위해 전전긍긍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으며
    7. 우리나라 교통사고 유발자 통계를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사고를 내고 사고내서 사람 쳐죽이고, 음주운전으로 사람 죽이는데도 불구하고 운전 못한다고 욕먹어도 군소리 안하며
    8. 가족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며
    9. 이웃의 고민에도 귀를 기울이며
    10. 동네 강아지나 고양이도 거둬먹이며


본래 아줌마, 혹은 아주머니는 아름다운 어휘였을것이다. 내가 자라던 용인의 시골에서는 서로를 아줌마나 아주머니라고 부를때 서로 존중하는 정서가 있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고모도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보다 일곱살 많은 초등학교 다니는 고모에게도 내가 '아줌마!'하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집성촌이었으므로 나보다 한살 많은 집안의 남자가 내게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항렬상 조카뻘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아름다운 어휘가 오늘날 방송에서 '뻔뻔하고 무교양한 행동을 하는 미혼 청년'의 행동을 설명하며 '젊은 아줌마'라고 규정하였다. 그게 왜 젊은아줌마 행동인가? 뻔뻔한 청년의 행동이지.




좀 생각을 해보자. 그건 그 녀석이 교양이 없어서 그런거고 혹은 뭐 말못할 사정이 있어서 꼭 그래야만 해서 그랬는지 모른다. 그게 젊거나 늙거나 아줌마하고 무슨상관인건가?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저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의 제작자가 누군지 조사를 하여, 항의를 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관계기관에 연락을 취하여 저따위 못되 처먹은 언어를 방송에서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저정도 프로그램 프로듀서를 하려면 교육도 제법 받았을 것인데,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올지는 전혀 관심없이, 그냥 모여서 수다떨면서 웃기기만 하면 되는건가? 그것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피해를 당하는데도? 




니가 아줌마가 아니라 무감각하고 무신경하고 상관 없지?  나 아줌마야. 이건 내 문제야. 반드시 비속어나 누가 보기에도 저급함 '맘충, 틀딱' 뭐 이런 어휘만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이런 어휘들은 오히려 그 선명한 저열함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줌마'라는 평이한 어휘에 음습하게 스며든 온갖 부정적인 딱지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딱지를 붙인 어휘가 방송 화면에 버젓이 드러나는 것 그런 현상이 사실 더 위험하고 문제가 더 깊다. 개선되어야 하고, 책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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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11.27 13:15


'스킨답서스' 혹은 '신답서스'라고 불리우는 식물.  설령 이 식물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한다해도 누구나 한 번쯤 집 구석에서 혹은 공공장소에서 쉽게 볼만한 식물이다.  값도 비싸지 않고, 죽는 일 없이 잘 살고.  공기정화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식물은 줄기를 아무데나 잘라서 물병에 꽂아 주면 뿌리를 내리는데, 그걸 화분에 옮겨 심으면 잘 자란다. 그러니까 꺾꽂이도 가능한, 돌쇠같이 강인한 식물이다. 내게도 이 신답서스 화분이 있는데, 처음 섬마을 학교에 부임했을때, 학교 현관에 넝쿨이 늘어진 것을 보고 그냥 줄기를 잘라다 물병에 꽂는 것으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뿌리가 생겼길래, 자그마한 화분에 심어서 또 한참을 보냈다. 이 식물은 늘 그자리에 있는듯 없는듯 군소리 하는 법 없이 물을 많이 주거나 안주거나 불평하는 법 없이 곁에 있었다.  


지난 초가을 무렵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인근 다이소에 가서 천원짜리 플라스틱 화분이며 비료흙이며, 그냥 한무더기 사 온적이 있다. 그리고 일괄적으로다가 콩알 만한 작은 화분들에 심겨진 조그만 화초들을 조금씩 큼직한 화분으로 옮겨 심어주었다. 숨좀 쉬고 살으라고.


그런데, 콩알만한 작은 화초들을 몸집이 큰 화분에 옮겨 심어주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이 작은 화초들이 무섭게, 왕성하게, 미친듯이 몸집을 늘리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신답서스만 하더라도, 뱀처러 길게 길게 자라기만 하던 녀석이, 큼직한 화분과 기름진 흙이 제공되자 갑자기, 잎새 모퉁이마다 새롭게 가지치기를 하고 막 이리저리 새로운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휴,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만했다. 완전 -- 식물 도깨비를 보는것 같았다.) 


그러니까 마치, 좁디 좁은 상자 속에서 가만히 옹그리고 있던 생명체들이 갑자기 기지개를 켜면서 활개를 치며 자라나는 것 같았다. 


놀라워서 웹 검색을 해보니, 화분에 담겨진 식물은, 뿌리의 센서가 자신이 뻗어나갈 한계를 가늠하고, 딱 주어진 환경 사이즈 만큼만 몸집을 유지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화초를 작은 화분에 담으면 그 화초는 작게 자라고, 큰 화분에 담으면 크게 자란다는 것이다.  그 원리를 이용한 것이 '분재'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도깨비'처럼 한도 끝도 없이 자라날것만 같은 나의 신답서스 화분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곤 한다.  식물도 제 처지를 가늠하고 성장을 멈추거나 느리게 하는데, 사람은 안 그렇겠나?  사람도 어릴적부터 '넌 요만큼이다.  아예 꿈도 꾸지 말아라. 넌 딱 요만큼이다'라는 저주를 듣거나, 혹은 아무도 신경 안써줘서 제가 갇힌 골방이 온 세상이라고 상상하고 자라거나 그러면, 그러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나. 


또 한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화분에 심겨진 식물이 아니니까, 설령 한정된 상황속에서 살아간대도, 곁에 누군가가 좋은 선생님이나, 좋은 언니나, 친구가 있다면, 궁벽하고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쏟아주는 좋은 부모가 있다면, 그 아이는 큰 화분같이 좋은 환경으로 옮겨졌을때 대성 할수도 있겠지. 아니, 최소한 큰 꿈을 꿀수도 있겠지.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을 할 수도 있겠지...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기름지고 커다란 화분같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설령 불행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수 있도록 응원해줘야 하는 것이다. 식물은 가만히 웅크리며 기다려야 하지만, 발 달린 사람은 환경을 좀더 적극적으로 개선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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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11.20 17:14


미국의 중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은 글쓰기 과제를 할 때 어떤 '포맷'을 유지하도록 교육 받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주로 MLA (Modern Language Association) 스타일을 영어(그들의 국어)시간에 익히고, 대학에 들어가면 전공 분야에 따라서 각기 다른 스타일을 사용하게 되는데, 문학, 창작 쪽에서는 MLA, 과학 분야에서는 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그리고 사회학이나 역사학 쪽에서는 Chicago 스타일을 대체로 사용한다. 


내가 하는 수업중에는 각기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이 세가지 스타일을 학생들이 제대로 맞춰서 사용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의 글을 써내도록 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내 학생들은 내가 이 헷갈리는 괴물같은 '스타일'들에 대해서 바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밤사이에 학생에게서 '글쓰기 관련해서 급히 상담할 것'이 있으니 아침에 뵐 수 있느냐는 이메일이 와 있었다. OK 답을 보냈더니, 이른 아침에 두명의 학생이 나타났다. 이들이 머뭇대면서 제기하는 문제:



학생:  "저번에 수업에서 시카고 스타일 글쓰기 배웠쟎아요...." 

나: 응, 전에 한번씩 훑었지. 자료는 언라인 자료실에 다 올려 놓아서 언제든지 볼 수 있쟎아. 뭐, 이해 안되는게 있나?

학생: 그런데....교수님이 시카고 스타일 샘플로 주신 자료가 암만봐도 이상해요...

나: 그래?

학생: (프린트된 자료를 내보이며) 이 샘플은 시카고 스타일 샘플이 아니라 APA스타일 샘플같아요 (우물우물)

나: (휙 보고) 어! 이건 APA인데! 내가 이걸 시카고 샘플이라고 그랬어? 자료실에 그렇게 올렸어? 아이고, 내가 실수했네!

학생: (우물쭈물) 아니요. 교수님이 아니고요, 우리 교수님이 (우물우물)...


몇번의 질문을 거쳐서 파악한 내용은, 전공 교수께서 텀 페이퍼 과제를 내주면서 '시카고 스타일'로 쓰라고 지시를 했고,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샘플 에세이까지 자료실에 올려 주셨는데, 두 학생이 함께 공부하며 아무리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것은 시카고 스타일 샘플이 아니더란 것이다.  그래서 혼란스러워가지고, 밤에 둘이 공부하다가 -- 낼 아침에 글쓰기 선생, 그여자 (--> 나)한테 가서 확인을 해보기로. 


전공학과 교수님이 엉뚱한 자료를 올려주셔서 학생들이 혼란에 빠진것이군. 


그래서 내가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 줬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나도 수업중에 단어를 틀리게 적는다거나 엉뚱한 소리하고 그러지 않는가.  교수들이 머리가 핑핑돌게 힘든 사람들이야. 수업만 하고 노는게 아니라 할 일이 아주 많아요. 그러다보면 실수를 할 때도 있지. 이것은 교수님이 좋은 자료 올려준다고, 안해도 될 일을 하시면서 실수를 하신거지.  그러니 자네들이 좀 이해를 해 줘야 하네.  내가 APA 샘플과 Chicago 샘플을 프린트 해서 자네들이 사용할 것과, 그 교수님이 사용할 것을 줄테니, 그 교수님께는 나를 만났다는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올려주신 자료에 착오가 있는것 같습니다. 이것이 맞는것이 아닌지요 묻고, 이것을 드리게나.  교수님이 좀 당황스럽고 미안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착오를 바로잡을수 있는거니까.  자네들의 꼼꼼하고 세심함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지. 전공 교수께도 도움을 드리는 것이고.  어차피 학문의 장에서는 교수 학생이 서로 도우면서 가는거라네.  나한테 다녀왔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말고 (그러면 추후에 내가 아주 난처해지니까), 둘이 가서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짓기를 바라네. 문제를 지적했다고 화를 내거나 삐질 교수님이 아니시니 안심하고 가서 말씀을 드리게. 건투를 비네. 


학생들이 굉장히 수줍음이 많고, 말을 우물우물하는데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한다. 그러니 그 밝은 눈에 착오가 보였겠지. 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용기를 내어 교수의 착오를 매너있고 세련되게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나도 수업중에 학생들이 의문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학생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그를 인정해준다. 원리는 간단하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수업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그렇지만 가끔 나도 실수를 하는데, 내 실수를 내가 인정하면 된다. 내 실수 때문에 학생들이 나를 거부하면 거부 당하는거고, 무시하면 무시 당하는거다. 나는 솔직하게 살면 된다. 내 능력밖의 일을 한다 싶으면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보면 되는거고. 이제부터 죽을때까지 나는 '가짜'로 살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모습 그대로. 허위나 위선을 최소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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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11.20 09:02

Christ on the Mount of Olives, by Josef Untersberger




어제, 새벽기도에 가서 (나는 늘 일찍 간다, 가서 예배가 시작하길 기다리는 편이다)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예배당안에는 입구 반대편 구석에 떨어져 앉은 나와 입구쪽에 구부리고 앉아있는 두 여인.  이렇게 셋이었다. 


그런데 문밖 현관에서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 허공에 외치는 듯한 소리였다.  왜 새벽에 텅 빈 교회에 와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조금 의아해하며 자리에 앉아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소리가 갈수록 거칠어졌다.  뭐랄까, 누구든지 나오기만 하면 잡아 죽일것 같은 분노의 음성으로 누군가를 불러댔다.  (가정문제로 누군가 교회로 피신을 했는데, 저 사람이 쫒아와서 지금 행패인걸까?  머릿속으로 여러가지를 상상 중.)


조금 후 예배당 문이 열리더니 소리를 질러대던 주인공인 것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멀쩡하게 생긴, 30-40대 젊은 남자.  노숙자로 보이지도 않고 말쑥한 차림인데 얼굴이 약간 붉그레 한 것이 밤새 어디서 술을 마신걸까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출입문 반대편 끝에서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물었다.


나: 뭐요? 

그: 약간 변태같인 기묘한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으며 손짓으로 오라는 표시를 한다. 

나: 당신 뭔데 새벽에 교회에 와서 소리를 질러?  경찰 부를까?  (교회 바로 옆집이 파출소임.  ㅋㅋ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

그: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여전히 변태같이 빙글빙글 웃으며 그러지 말고 이리좀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 왜 기도하는 교회에 와서 소리지르고 행패냐구! 안나가? 나가! (예배당이 쩡쩡 울리는 중)

그: 빙글빙글 웃음기가 가시더니 꾸벅 머리를 조아리고는 퇴장.  

(상황 끝)




사내가 이리 오라고 손짓 할 때 안가고 소리를 지른 이유: 내가 그에게 다가가면 

  1.  그는 술냄새를 풍기면서 돈이 떨어졌으니 차비 몇만원 달라고 할 것이다. (너한테 돈 주기 싫어)

  2.  바지를 내리고 바바리맨 공연을 하며 히죽거릴지도 모른다. (네 성기에 관심없어. 내가 기도하러 왔지 음란공연 보러 온게 아니야. ) 

  3.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이유없이 나를 찌를지도 모르지. (기도하러와서 사고당하면 예수님께 죄송한 일이야.)


사내를 내쫒고 예배당 전면의 십자가로 시선을 향했을때, 문득 우리 예수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예수님: "얘야. 너 말야 너! 맨날 기도하러 오는 애!  내가 도대체 너때문에 살 수가 없구나.  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야. 너좀 조용히 할 수 없니? 시끄러워서 못살겠다. 사람의 아들이 머리를 둘데가 없구나.  내 잠시 내 아버지의 집에 가서 한 숨 자고 오련다. 끙." 




음...영화 쿵후허슬에 나오는 소리지르기 아줌마, 사자후. 딱 그거였다.  어제 새벽에.  좀 잘 살아보겠다고 새벽에 눈비비고 와서 기도드리는 사람들한테 와서 왜 행패냐구. 인생 답답하면 너도 기도하면 되는거지. 술 마시고 얼굴 시뻘개져갖고 와서 어디서 행패냐구. 목사님들이나 이런 분들은 천사라서 이런 행패꾼에게도 점쟎게 대하시는 모양이지만, 난 목사가 아니거등. 너 오늘 임자 만난거야.  내 기도 방해하면 너는 국물도 없는거야...


내가 누군가에게서 띠엄띠엄 들은 목사님들 (직업적인 성직자들)의 애로사항 한가지가 뭐냐하면, 교회에 가끔 애기를 업고 나타난다거나, 아픈 표정으로 나타난다거나, 뭐 여러가지 슬픈 표정으로 나타나 신세한탄하면서 '돈 좀...' 달라거나 빌려달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은 뻔히 이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알면서도 '오죽 힘들면 여기와서 앵벌이를 하는가...' 싶어서 그냥 속아주고 주머니를 털어 돈을 주고 만다는 것이다. 일-이만원은 애교이고, 애기 업고 와서 대담하게 십만원 이상을 뜯어가는 사례도 일어나는데, 이런 사람들도 이교회 저교회 돌아다니며 같은 시나리오로 드라마를 연출하니까,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들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한다고.  그런데, 문제는 설령 이웃 교회 목사님이 "거기 이러저러한 사람이 애기 업고 나타나 이런 스토리로 드라마를 할 것이니, 아예 돈 주지 마시오. 여기서도 많이 털어갔소"하고 귀띰을 해 줘도, 막상 그 사람이 나타나 징징거리면 매정하게 내쫒지를 못 한다고. 직업 종교인(성직자)으로 살아가면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낮은 곳으로 향하는 사랑의 실천 뭐 그런것을 어길수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알면서도 속아주고 주머니를 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성직자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전문 앵벌이 짓을 하는 모양인데... 음...나는 자유롭지.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아닌자의 자유. 교회 차려서 재벌되어서 자식한테 세습하는 '유능한' 목사님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박봉에 시달리며, 너무 사는게 힘들어 '자살'을 상상하며 간신간신히 살면서도 어려운 사람에게 주머니 탈탈털어 '보시'하는 그런 목사님들도 쌓이고 쌓였다. 덕분에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를 드나들고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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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