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2. 23. 05:41

어제는 장보러 근처 상가로 향해서 가던중, 길가에 안경점이 보이길래 들어가서 돋보기 안경 두개를 맞췄다. 안경테 한개는 만원, 다른 한개는 오만원. 그런데 안경에 넣을 안경알을 이런 저런 조건으로 맞추어 넣다보니 수십만원이 된다. 두개 합하여 35만원쯤 들었다.  지금 내가 주로 사용하는 돋보기 안경들은 대체로 만원짜리 안경테에, 일반 안경알을 넣어 대략 오만원정도에 해결을 보던 것들인데 - - 내가 바가지를 쓴건가? 아니, 그냥 일반 안경알 옵션도 있긴 했는데 - - 안경 맞춰주는 직원이 이런 저런 옵션을 소개해 줬을때, 나도 문득 내가 내 눈을 너무 '만만히 취급'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던것도 같다.  얼굴에 바르는 영양크림이 한통에 만원에서 수십만원 차이가 나듯, 내 눈을 보조해주는 돋보기에도 근소한 차이로 수십만원 차이가 날수도 있는 일이다. 근소한 차이 때문에 싼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근소한 차이라도 좀더 나은 것을 내 눈에 주기위하여 바가지를 쓸 수도 있는 일이다. 

 

안경사는 내가 돋보기를 쓰고 앉아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컴퓨터 모니터를 볼때의 거리와 사용 시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 볼때의 거리와 시간, 태블릿 사용 시간과 거리, 그것들을 어떻게 뒤섞어 사용하는지 세밀하게 상담하고 고민하고 - 내 눈이 최대한 보호받을 옵션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연구하는 듯 했다. 안경 두개 맞추는데 한시간도 넘게 걸렸으니까. 이건 내가 안경 맞추러 간건지 내 인생 상담하러 간건지 헷갈릴만도 했다. 

 

 

그 안경사는 온갖 기계를 동원하여 내 눈을 들여다보며 상담을 하더니, 최종에는 기계를 모두 치우고, "제 눈을 들여다보세요" 하면서 내 시선이  그의 동공을 바라보게 하고 자신의 얼굴을 이리 저리 돌려서 눈의 위치를 바꾸면서  - 그의 눈동자를 따라서 움직이는 내 눈동자를 보면서 새 돋보기에 직접 마킹을 하기도 했다. 뭔가 촛점이 맞춰질 위치를 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두개의 안경을 맞춰야 했으므로 그의 눈동자에 촛점을 맞추어 시선을 고정시키는 동안 - 나는 방금 만난 낯선 사람의 눈을 깊이 깊이 응시하게 되었는데 - 그의 눈속에 비친 내 모습까지 포함하여 - 삼십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우리 아들들 또래의) 젊은 사람의 눈동자의 선과, 색깔과, 갈색 동공의 그 다채로운 색상들을 들여다보며 - 아, 인간의 눈이 아름답구나. 이 사람이 설마 이런 식으로 내게 최면을 거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순간 했다. 그래서 작업이 끝났을때 말했다, "안경사님 눈이 예쁘시네요. 이러다 정들겠네. 하하."  (당신 눈속에 내가 있고, 내 눈속에 당신이 있을때 우리 서로가 행복했노라 .. 조용필노래.)

 

 

안경점에 간 김에 쓰고 있던 안경다리도 수선을 받았다. 며칠전 운전하다가 떨어뜨리면서 어딘가에 짓눌려서 안경다리가 꺾였었는데 그걸 대충 수리해서 쓰고 있었는데 - 안경점에서 보더니 안전하게 수리해주었다.  이번에는 일년에 3,000원이라는 안경보험도 가입했다. 그러니까 그 안경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나는 안경을 좀 험하게 (운동선수들이 안경끼고 운동하듯) 쓰는 편이라서 내 안경은 몸이 성할날이 없다. 사실 며칠전에도 지난 수년간 사용하던 오래된 돋보기 안경 다리를 부러뜨려서 - 정들었던 그놈을 그냥 버리면서 조금 아쉬워했다. 정든 그 세월때문에. 그게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맞췄던 안경이었지 아마. 정들었지만 - 망가진 그놈을 서랍에 두기보다는 그냥 쓰레기통에 넣었다. 무엇을 기념삼아 보관하는 일 따위는 이제 없는거다. 나는 앞으로 살날이 살아온 날에 비해서 짧다. 멀리 내다보고 무언가를 자꾸 보관하고 쌓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며 치우고 정리하고 버려야 할 때이다. 

 

내가 새로 맞춘 안경은 공장에서 처리를 해야 해서 일주일쯤 기다려야 한다고. 제법 내 눈을 편하게 해 준다는 그 안경 두개에 의지해서 다가오는 한해를 어찌어찌 무사히 잘 헤쳐나갈수 있기를. 무사히 생존할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래본다.  아, 너무나 힘든 한해였다. 다가오는 한해는 이번해보다는 덜 고통스럽기를.  하나님, 제가 건너야 할 강을 불평하지 않고 조심 조심 잘 건넌거죠. 광야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 하나님 제가 지쳐쓰러지게 내버려두지는 마시고요, 제발 우리를 살려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제발 제가 지쳐쓰러지게 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는 다가오는 시간이 겁이 납니다. 그래서 안경을 두개나 맞췄을겁니다. 실족하지 않으려고. 살아내려고.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22. 01:34

 

몇 해전, 매주 금요일마다 동료교수들과 두시간씩 '글쓰기'시간을 가졌을때 대충대충 엮었던 책의 원고를 국내의 십여개가 넘는 출판사에 보냈을때 나는 번번히 퇴짜를 맞았는데, 마침내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편집자가 바로 그 주제의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맞는 원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 수정하거나 다시 쓰거나 하면서 몇년을 보냈다. 코비드가 왔다 가는 사이에 계속해서 수정 보완을 하면서, 지난주에는 맺음말을 보내라고 하더니, 오늘은 책 날개에 실을 저자 약력을 직접 쓰라는 숙제가 와서 그것도 써보냈다.  책은 언제 세상 빛을 보려는가? 크리스마스 이후가 되려나? 아니면 2025년 새해맞이로? 뭐 가장 좋은 때에 나오겠지.

 

그런데 사실 2주 쯤 전에 다음에 나올 책에 대한 계약도 이루어졌다. 지난번에는 원고를 수백페이지 써서 여기저기 뿌리고 거절당하기를 밥먹듯 하다가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이번에는 아직 '원고' 한글자 쓰지 않았는데 - 단순히 '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길 바래'라는 메시지의 계약서였다.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돈도 받았으니, 이제 글을 써야한다. 그래도 내 평생에 - 중학교때부터 방송국에 글 써보내고 상품권 받거나, 대학교때부터 학교 신문이나 교지 이런데 투고하여 원고료 짭짤히 챙기고 하면서 늘 글 쓴후에 글값 받았는데 -- 이번에는 글을 쓰기전에 글값을 미리 받으니 내 형편이 그래도 제법 많이 좋아진것도 같아서 잠시 흐뭇했다. 글을 써서 돈을 받는 일을 하던 가운데 - 이제 선금을 받는 팔자가 되었으니 일취월장 아니던가. 에라 좋구나. 

 

그런데 전에는 글을 써서 보내고 그 글이 소개가 될까, 신문에 실릴까, 책에 실릴까, 출판을 해 줄까 뭐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은 '아이고 이거 덜컥 쓰겠다고 계약하고 내가 글을 못쓰면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근심을 할 때가 많다. 길을 걸으면서, 운전을 하면서, 설겆이를 하면서, 샤워를 하다가,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멍하니 그 책 생각을 한다. 이걸 못쓰면 어떻게 하지? 응?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다.  그 가운데 나는 성경필사만 줄창 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고 피난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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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네살 때, 시골집 사랑방에서 둘째, 셋째, 넷째 고모들이 책상 주위에 모여서 호롱불에 의지하여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며 이따금 우스개 소리를 하고 왁자지껄 웃기도 할때, 내가 중학생이던 막내고모 어깨너머로 "글씨 쓰기 가르쳐줘"하고 조르던 생각이 난다. 고모가 16절지 누런 종이에 가나다라 이런것을 써주면, 내가 그것을 따라 쓰면서 한글을 떼었다. 그러니까 내게 한글을 가르쳐준이들은 내 고모들이었다.  나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집갈 준비를 하던 둘째 고모와, 당시 중학생이던 셋째, 넷째 고모들이 돌려 읽던 시집이며 소설책이며, 교과서들을 떠듬떠듬 읽어나갔다. 너무나 무료하고 심심했던 나머지.  나는 뜻도 모르고 '의적 일지매'를 읽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채 글씨들을 해독하는 재미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위해 서울의 가족과 합류했을때, 엄마는 시골서 데리고 온 작은 딸아이가 얼굴도 더럽고, 머리도 떡지고, 손등은 다 터지고, 사람과 들짐승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수상쩍은 몰골일지언정 길거리 간판을 소리내어 읽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해 하셨다. (서울에 올라오니 온거리에 읽을것 투성이라서, 그리고 그것을 읽을때마다 엄마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고 나도 잠시나마 기를 펼수 있었다.)

 

서울집은 시골집보다 문화적으로 더욱 궁핍해보였다. 단칸방에서 여섯식구가 기역니은 이리저리 포개서 잠을 자야 했으므로. 장난감도 없고, 산과 들도 없고, 새도 꽃도 없고, 강아지도 없고, 나는 숫기도 없어서 이웃아이들과 쉽게 친해질수 없었고, 온종일 방구석 신세였다. 그 당시에 나의 유일한 읽기책은 '엄마의 일기장'이었다. 나는 대체로 신세한탄으로 일관된 엄마의 일기장을 읽고 또 읽었는데, 그 외에 다른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역시 애들이 일기장을 보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식목일즈음. 비가 주룩주룩 오던날. 나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종이를 반절을 접어서 실로 꿰메어 '공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에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넣었다. 만화도 그려넣었다. 그것이 내가 제작한 최초의 책이었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마칠때까지 나는 그런 짓을 꽤 했다. 어릴때는 직접 공책을 만들어서 내용을 잔뜩 채웠지만, 형편이 나아지고 용돈이 제법 생기면서 나는 예쁜 공책들을 사다가 좋아하는 시를 옮겨적고 그림을 그리고 장식하고 그러면서 노닥거렸다. 내가 꾸민 그런 '명시집'같은 것들은 결혼하여 애엄마가 된 셋째, 넷째 고모가 예쁘다며 달라고 했고, 나는 이미 그것을 완성할 즈음에는 그것에 싫증이 났기 때문에 누가 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것들을 내주었다.  일기장들은 일년에 한두번씩 뒷마당에서 태워없앴다. (뭔가 그게 멋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내게는 남아있는 일기장이 없다. 딱 두권의 일기장이 미국집에 있는데, 지홍이 찬홍이의 육아일기. 그것들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내가 한글을 호롱불 밑에서 고모들에게 배운 이래로 나는 늘 연필을 손에 쥐고 살아왔고,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거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쓰고 쓸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22. 01:05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로 2017년 출시작이다. 어딘가 자폐적으로 보이는, 평생을 사회정의구현을 위해 헌신한 - 커튼뒤의 '인권변호사'였던 로만. 영화 중반이 지나가도록 그의 모든 행동거지가 나를 짜증나게 했는데, 나는 그가 '덴젤 워싱턴'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만큼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인물 자체에 그대로 빠져들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사실 영화 중반까지 부엌을 왔다갔다 하면서, 빨래를 거실에 널어가면서, 운동용 자전거에 올라 앉아 운동을 해가면서 그냥 대충대충 볼 정도로 영화에 대한 몰입감도 없었다. 그러다가 중반부터 화면에 몰입하게 되었으리라.  로만은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짜증나는 '찐따'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장점을 꿰뚫어보는 똑똑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만약에 현실에서 로만같은 사람이 내 근처에 있다면 - 나는 그 사람을 답답해하고 슬슬 피했을것이고, 그러므로 그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것이다. 대체로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인간형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그가 길에서 노숙자가 죽어있었을때 - 경찰들이 그 시체를 아무렇게나 다루려고 할때 시체의 가슴에 그의 명함을 넣어두고 집요하게 경찰과 대치하던 장면부터였다. '그는 아무나가 아니야. 그도 어떤 사람이었어. 내가 장례비를 치를테니까 그를 무연고자로 태워버리지 말란말야.' 그가 이렇게 경찰과 대치하는 사이에 죽은것 같았던 노숙인이 부시럭거리고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현장을 떠나버리고 경찰과 로만의 대치도 그것으로 종결된다. ---> 지금 생각해보니, 이 장면 -- 죽은자를 살린것은 로만의 '인간애'였던것이 아닐까? 작가이며 감독이었던 사람은 그런 의도로 이 장면을 만든것은 아닐까?

 

아, 저 짜증나게 답답한 저사람이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 영화를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로만이 십만달러를 벌어가지고 해변으로 갔을때, 바다에서 혼자 즐길때, 나는 내심 '영화가 그냥 저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바랬다. 그냥 저렇게 평생 답답하게 사회정의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에게도 저런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그를 응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는 우리가 원하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잠깐의 행운/행복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그는 스스로가 피고가 되고 스스로가 원고가 되어 자신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글을 쓴다. 그는 회개하고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려 최선을 다한다. 그의 마지막 독백은 (기억에 의거하여 정리해보자면) -- 우리가 평생을 바쳐서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나 실수를 저지르고 과오를 범할수 있는데, 그럼에도 과오를 저지른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되돌이켜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작은 과오는 용서받을수 있다 -- 대략 이런 내용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고발하고 그럼으로써 나는 용서받을수 있다 뭐 그런 거다. 영화 마지막 대사를 다시 돌려봐야 하려나? 

 

나는 문득 '노회찬'씨를 떠올렸다. 그가 왜 죽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가 무슨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는 뭔가 과오를 저질렀을수 있다. 하지만 그의 과오가 그의 목숨만큼 커다란 과오였을까? 사형선고를 받을 만큼의 과오였을까? 시절이 수상할때마다, 나는 그를 떠올린다.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가끔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노회찬씨가 그 몇안되는 사람들중 한사람이다. 

 

로만은 법의 엄중함을 알고, 그 법의 잣대를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스스로를 고발하였다. 비록 실수를 저질렀으나 그는 그의 과오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우리나라에서 법 잘아는 사람들, 검사들, 그들이 그들의 잣대를 그들 스스로에게 적용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겠지. 우리나라 사법연수원에서 틀어줘야 할 영화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물론 나의 도덕성에 대하여도 역시 ...할말이 없다....

 

오랫만에 제대로 된 좋은 영화를 봐서 리뷰를 남겨본다.  (영화 다섯편 리뷰하는 세션하나 만들까 생각해봤다. 사회정의와 관련된 잘 만들어진 영화 다섯편을 선정하여...)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17. 10:59

ER

일주일 내내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지만 감기는 점점 더 심해지는 듯 했다. 마침내 세번째 방문했을때, 의사는 폐렴으로 번진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 소견은 애매했다. 폐렴은 아니지만, 뭔가 폐렴으로 발전될것 같은 뿌연것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항생제를 처방했다고 했다. 영양수액도 맞았다. 그리고나니 한두시간은 반짝 - 마약이라도 한듯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이 되자 오한이 나기 시작했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온몸이 망가지는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통증은 아니지만 통증보다 더 기분나쁜. 그렇게 세시간쯤 뒤척이다가 가까이 사는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퇴근한 시동생과 동서가 함께 왔다.  시동생은 근처 약국에가서 체온계를 사왔다. 체온을 재보니 39.5도.  내가 늘 갖고 다니던 타이레놀을 송도집에 놓아두고 온듯. 급한대로 아스피린을 두알 먹었다. 시동생부부가 근처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다. 병원에 가서 다시 체온을 재니 38.5도로 내려와있었다. 열때문인지 혈압도 미친듯이 올라가 있었다 (내 혈압이 그렇게 높게 올라간 것은 본적이 없다).

 

그래도 응급실에 가서 등록을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혼미하던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고, 부들부들 온몸을 떨던 오한도 가라앉았다. 의사는 내가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받았던 지난 일주일간의 약제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아마도 의료보험 관련해서 전산시스템에 내가 처방받은 것들이 공유되는 모양이었다.)

 

의사는 내게 세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1) 간단히 해열제및 관련 처방약을 받아가지고 귀가한다 (견딜만 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

2) 응급실에서 수액및 해열 진통제 처방을 받으며 한두시간 경과를 본후에 퇴원한다. (불안하면 이것도 괜챦다)

3)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일수 있으므로 엑스레이, 초음파등 필요한 검사들을 싹 다 진행한다 (돈이 꽤 들었이지만 불안하면 이 방법도 추천한다)

그리고나서 의사는 덧붙였다. "응급실에서 진행하는 검사나 약제 이런것들이 응급상황이라서 의료보험이 안되는 것이 많고 비용이 많이 들어요." 

 

나는 내가 오늘밤에 죽을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그리고 직장 다니는 시동생과 동서가 한밤에 나때문에 응급실에서 보초를 서야하는 상황도 딱하고해서 긴급 약 처방만 받아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엉덩이에 주사 맞고, 해열 소염제 사흘치 처방받고.  그러고 계산하니 67,000원이 나온다. 음..응급실은 뭔가 비싸구나... 그래도 온나라가 의료비상체계에 들어가있고,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는 판국인데, 나는 응급처치를 탈없이 받을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다. 

 

내 평생 처음으로 내 몸이 아파서 응급실 도움을 받은 날이다. 그래서 기록에 남긴다. 내가 이 세상 살면서 이제야 처음으로 응급실 신세를 졌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동안 별 탈없이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해서, 그것또한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달이 밝았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2. 9. 08:55

 

우원식 오빠! 다시 한번 담장을 넘어 주셈! 화이팅!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