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23. 10. 25. 15:17

 

코바늘뜨기로 스웨터를 짰다. 한 일주일 쯤 걸렸다. 비교적 쉬운 뜨개질 패턴이고, 디자인도 단순해서 TV 보면서 금세 뜰 수 있었다.  비슷한 형태로 하나 더 짜볼까 생각중. 

 

 

크로셰 잘하시는 분이 만든 패키지를 사서 짠것이라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도안도 상세히 잘 나와 있어서 내가 아무 생각없이 그냥 시키는대로 따라하기에 아주 좋았다.  평소에 머리를 쓰고, 내가 생각해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서인지 - 아무 생각없이 남이 설명하는대로 따라서 뭔가 하는 일이 편안하고 즐겁다.  참 고마운 일이다. (참, 도안을 꼼꼼하게, 알아보기 쉽게 만드셨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10. 10. 17:36

나는 왼손잡이이다. 그래서 나는 왼손으로 현을 잡는 현악기를 사용하기에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음악이나 연주에 대하여 고등학교 수준의 교양을 갖고 있는 나의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론적으로 전혀 뒷받침이 안될것이나...).  아무튼 나는 왼손잡이이니까 왼손으로 코드를 잡는것이 오른손으로 잡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기타 연습을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게 만드는 연습곡이 있다. 새끼손가락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연습곡이다. 잘 진도가 나가다가 그 곡이 나오면 나는 혼자 '징징' 우는 소리를 낸다. 나는 새끼손가락이 현저하게 짧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남자손같이 두둑한 내 손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내 새끼손가락을 발견하면, "야, 너 새끼손가락 너무 귀엽다!"고 말하곤 한다. 다른 손가락에 비해서 새끼손가락이 앙증맞게 작고 가늘고 귀엽기 때문이다.  새끼손가락은 내 손을 제법 귀엽고,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 앙증맞게 작고 가늘다는데 있다. 

 

저 아래 솔부터 시작해서 솔-라-시-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파-솔 까지 치려면 기타줄 맨 아랫줄(가장 높은 음줄)의 솔에 새끼손가락을 붙이고 기타줄 맨 윗줄(가장 낮은음 줄)의 솔까지 잡고서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데 - 그 아래솔과 그 위의 솔을 한꺼번에 새끼손가락과 네번째 손가락으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넷째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이 가장 힘이 약한데 이 두 손가락이 가장 잡기 힘든 두개의 줄을 잡아야 한다. 너무나 괴롭다. 

 

아, 뭐 연습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가락힘이 약하다는 것 뿐이다. 군소리 말고 연습을 해서 근력을 키워야 한다. 아, 괴롭다.

 

(장애가 없어도 괴로운 상황은 얼마든지 많은데, 불리한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도 그것을 이겨내고 대가를 이루는 사람들은 정말 굉장한 사람들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20. 11:25

 

기타를 들여다보다가, 클래식 기타와 통기타는 어떻게 다른지 검색도 해보고, 어쿠스틱은 또 뭔가? 조사를 해보니 통기타를 어쿠스틱이라고 하는것도 같고 - 기타를 분류하는 기준도 여러가지가 있는 듯 하다.  일단 클래식 기타가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았다.  기본적인 차이는 몇마디 (클래식 12마디, 어쿠스틱 14마디), 줄간격이 클래식기타가 조금 더 넓은 편이고, 줄의 재질에서 차이가 나고. (https://blog.naver.com/orangewood_/221186870656

 

예전에 기타 배울때 교본으로 사용하던 카르카시 기타교본 (미국집에 있는데) 을 다시 주문하였다. 연구실에 기타 자리를 잡아주고, 청소를 했다. 보면대를 사려다가 독서대를 책상위에서 보면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발 받침은 주문을 해야 할것 같다. 

 

옛날과 동일한 책으로, 옛날에 초보때 연습하던 생초보 연습곡들을 차례차례 훑어나간다. 신기하게도 일단 옛 책을 열어서 순서대로 연주해보니, 기억이 '확!' 되살아난다. (인간의 기억력은 참 신기하고 신통하다! 새삼 인간의 몸을 얻고 태어나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에 경이감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27년이 흘렀다. 내가 한창 기타에 입문하여 시도  때도 없이 기타에 매달려 있던 시간으로부터 27년이 흘렀다.  그 때, 나는 내가 세상을 많이 살았고 늙어갈 일만 남았다는 상상을 했지만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가 당시에 많이 회자되어서, 그 당시 서른을 넘긴 사람들은 모두 인생이 끝난것 같은 기분이었다), 돌아보면 서른에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가 아니었을까? 내 인생의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된 상태였고, 갈길이 참 멀었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갈길은 멀다.  그 때 하룻강아지 시절 - 나는 인생이 대충 정리가 되고 기울어간다고 상상했고 - 막막한 가운데 그냥 기타를 시작했던 거다.  왜 기타였냐면 - 피아노에 한이 맺혀 있어서 둘째를 위해 예쁘장한 피아노를 사 준 후였지만 피아노를 시작할 생각이 털끝 만큼도 들지 않았고, 뭔가 부드럽고 다정하며, 휴대가 가능한 그런 악기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근처 아파트에서 대학교수님이 피아노 개인교습을 해준다는 광고문이 붙었길래 - 무장적 그를 찾아가서 기타에 입문한 것이다. 특별히 기타일 필요도 없었고, 우연히 기타였다.

 

서른, 잔치가 끝났다구?  아직 게임은 시작도 안된 그런나이다.  서른이여 희망을 가지시라.  (그때 나는 두아이의 엄마였고, 이미 학부형이 되어 있었고, 신도시에 중형 아파트도 자력으로 마련하여 입주한 상태였고, 뭐랄까 폭풍같은 인생의 가시밭길을 다 헤쳐나온 그런 기분이 들었고, 잔치가 끝났다고 회자되는 나이였기때문에 그냥 인생이 이제 황혼으로 치닫는 줄 알았었다.)

 

그때 나는 막연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애들을 키워야 했고, 번듯한 직장에 나가고 싶었지만 애들을 키워야 했다. 돈이 풍족한것도 아니었고, 뭐랄까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았으며 동시에 애매했다. 그러다가 꽤 조건이 좋은 파트타임 강사 자리를 통해서 제법 흡족한 용돈 벌이를 시작했는데 - 몇시간 일하고 남의 월급 만큼 흡족한 용돈 벌이를 하는 여유가 생기자 - 객기 부리듯 대학교수에게서 기타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한거다.  그리고 하루에 몇시간씩 기타를 안고 살았다. 부엌에서 밥을 짓다 말고 기타에게 달려갔고, 잠에서 깨자마다 기타를 안았으며,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든 밤에 혼자 기타를 부둥켜 안고 사랑을 나눴다. 그랬다. 기타와의 열정적인 외도. 그러나 모든 외도가 그러하듯 불타오르던 외도의 즐거움은 금세 사그라졌고 그 후에 우리 가족은 플로리다로 향했다. 기타는 내 삶에서 싹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이 친구가 다시 내 삶으로 저벅저벅 들어왔다. 

 

기타와 나는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혹은 한때 사랑했으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옛 연인들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기타: 오랫만이네.

나: 그렇군. 너는 그대로인데, 내가 좀 늙고 바랬지...

기타: 늙고 바래는게 꼭 나쁜것은 아니겠지. 너의 손길은 여전한데.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엉성하고, 여전히 내 소리를 좋아하는구나. 

나: 그래. 나는 연주자는 아니야. 잘 할 자신도 없어. 하지만 네 소리는 언제나 달콤해. 너는 아주 달콤한 연인이지. 

기타: 내게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구나. 돌아와서 기뻐.

나: 반겨주니 고마워. 너는 언제나 다정하지. 

기타: 네 시간은 어땠니?

나: 나쁘지 않았어. 그냥 지금 좀 지치고, 보시다시피 늙었고, 그대신 조금 더 성숙해지고, 아이들이 자 자라서 어른이 되었지. 나는 공부를 했고, 전문직도 갖게 되었고, 꿈꾸던 삶을 사는것 같기도 해. 예전에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인생이 막막했는데, 지금은 그런대로 성취감도 있고, 편안해.  나쁘지 않아. 

 

기타: 이제 다시 나하고 시간을 보내려고 하니?

 

나: 아마 그럴것 같아. 네 소리는 여전히 달콤하고, 너는 항상 내게 상냥해.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8. 14:37

 

동료가 연구실 문앞에 클래식기타를 놓고 갔다.  일전에 그의 집을 방문했을때, 거실에 기타가 놓여있길래 먼지가 덮여있는 것을 태충 셔츠로 문질러서 먼지를 털어내고, 생각나는 멜로디를 몇가지 연주해보았는데 그것을 눈여겨보았던지 그가 내게 기타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 "아니. 어차피 내가 연주할 것 같지도 않아"하고 사양을 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그 기타소리에 머리에서 맴돌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클래식기타 소리는 뭐랄까 아기고양이가 양양거리는 것같이 감미롭고 은근하지 않던가? 그 감미로운 소리가 귓가에서 산들바람처럼 맴돌았던 것이다.  그래서 복도에서 만났을때 그 얘기를 했더니, 기타를 가져다 놓았다.  그는 몇해전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살고 있었는데, (가끔 그가 여행을 갈 일이 있으면 그의 이혼한 남편이 와서 아이들을 돌봤으므로, 나도 이따금 그가 개를 산책시키는 것을 본적이 있다)  얼마전에 그 애들 아버지가 애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리면서 내 동료는 개와 함께 남겨졌다.  물론 방학때는 아이들을 보러 가기도 하고, 그들을 보면 이혼은 하였으되 '가족'으로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 클래식기타는 그이의 이혼한 전남편이나 아이들이 연주하던 것이리라. 그는 내가 기타 연주를 할 때, '이집에서 기타소리를 듣다니 참 좋네. 난 기타연주를 할 줄 몰라. 그건 그냥 폼으로 거기 서있는거야, 네가 원하면 가져가도 돼'라고 말했던 것이다.

 

지금 그 기타가 내 연구실에 서 있다.  들여다보니 스페인 톨레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내 평생에 스페인산 기타를 공짜로 만져보게 될 줄이야.  아마도 이 기타는 내가 돌려주지 않으면 내것이 되리라.  아무래도 나는 동료에게 기타값이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할 것도 같다. 

 

온라인에 떠있는 카롤리의 기초 악보를 찾아서 떠듬떠듬 연주를 해본다. 기타 생기초가 클래식 기타 연습할때 최초로 배우는 카롤리의 안단티노.  여전히 감미롭다. 다 잊어버려서 떠듬떠듬 다시 익혀야 하지만, 여전히 감미로운 멜로디.  그래서, 카르카시 기타교본과 쉬운 기타 연주곡집을 주문했다.  가을에 참 잘 어울리는 악기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5. 11:29

 

시민들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활동 중에, '내가 꽃밭에 뭔가 한가지를 심을수 있다면 무엇을 심고 싶은가?' 질문을 던졌다. 그냥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대답할 만한 질문을 던진 것 뿐이다. 주제가 씨앗을 심는 것과 관련이 있었고.  게다가 한국말로 알지만 영어로 이름을 모르는 식물은 '인간 영어사전'인 내가 가르쳐주면 되는 거였다. 사람들을 머릿속에 어떤 꽃밭을 상상하는지 행복한 표정으로 차례차례 이야기를 했다. 

 

대답한 사람들은 두 파로 나뉠수 있었는데, 콩이라던가 뭔가 '작물'을 키우는 '농사'짓는 파와,  순전히 꽃을 보려는 '정원관리'파로 분류될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벚꽃나무'를 심고싶다고 했다. "I would like to plant cherry blossom trees." 그래서 내가, "Ah ha! Now you want to enjoy both flowers and fruits!  After the cherry blossoms come the cherries!" 라고 맞장구를 쳐 주었는데, 그자리에 있던 대학 졸업 혹은 그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영어도 좀 하시는 시민들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Cherry blossom 하고 cherry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벚꽃이 진 자리에 버찌 열매가 맺힌다고 내가 설명을 하자 -- '너 지금 우리한테 농담하는거지? 뻥치는거지?' 이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때, 이웃 강의실에서 다른 수업을 진행하던 미국인 교수가, 문이 열려있으니까 잠깐 들어왔다.  그래서 내가, "마침 잘왔어!  벚꽃이 핀 자리에 벚꽃 열매 버찌가 열린다는데 이 분들이 내 말을 안믿네" 했더니, 나하고 동갑내기인 그 미국인 교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Are you kidding? There cherry blossoms are blossoms. Cherries are from cherry trees!"  (넌 또 뭐냐? 너 지금 농담해? )

 

서로가 서로에게 '너 지금 농담해?'하면서 옥신각신 하던 사이에 어느 지혜로운 분이 '구글'에게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는 여전히 아련한, 안개속을 걷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정말 벚꽃 자리에 열매가 맺힌대! 그걸 먹는대!" 

 

구글이 없었으면 내가 아주 미친X이 될 뻔했다. 

 

그래서 나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 잘 교육받은 젊은 분들 (30대 -40대)이 해마다 벚꽃을 보면서도, 그 벚나무에 맺힌 까맣게 익어가는 과일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구나.  눈앞에 보여도 아마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겠구나.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냥 모르는채로 그 무수하게 떨어져 땅을 까맣게 물들이는 버찌의 존재를 지나쳤겠구나. 평.생.동.안.

농부는 꽃이 피면 그 열매를 생각한다.  열매맺지 못하는 것은 무심히 지나친다.  산업시대의 사람들은 꽃을 즐기되,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는것을 모른다. 몰라서 한번도 제대보 본적이 없고, 열매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런것같다. 

 

 

나는 정말 나 스스로가 이 세상에 아주 오래 살았고, 나는 벌써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생각했다. 나는 꽃을 보면 열매를 상상하는 시대의 사람이므로.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