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12. 20. 01:27




영화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 – 그대 안의 호랑이

 

            먼 나라로 팔려가는 동물들을 싣고 가던 배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좌초하게 된다다리를 다친 얼룩말어미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가족을 잃은 소년이 구명정에 오르게 되고, 호랑이 한마리가 뒤늦게 합류한다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우랑우탄을 죽이지만,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만다그리고 마침내 구명정에 남겨진 인도 소년과 호랑이.


            소년은 어떻게 해서든지 호랑이를 처치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막상 호랑이가 물에 빠져 죽을 지경이 되자 호랑이를 구해내고 만다그로서는 한배를 탄 생명을 없앨수는 없는 일.  이로부터 소년은 호랑이를 달래가며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데 몰두하고 이들은 함께 모험을 겪게 된다.


            2001년 소설로 발표된 얀 마텔 (Yann Martel) 의 원작소설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가 대만계 이 안 (Ang Lee)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들에게 다가 왔다동성애를 소재로 한 비극적 사랑을 그린 브록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으로 이미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이 안감독의 우리에게 친근한 작품으로는 와호장룡,’ ‘, ’, ‘음식남녀등이 있다내가 보아온 이안감독의 특징이라면, 일단 그가 어떤 소재를 잡으면 그 소재가 갖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이나 색감에 충실하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인데, 이 안감독의 영화적 스케일은 파이의 이야기에서 더욱 확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2 24일자로 발간된 주간지 타임에서는 2012년 최고의 영화 열편중에 파이의 이야기 3위로 소개하고 있는데 편집자는 이 영화가 아바타 3D (3차원) 입체 영상과  ‘유인원 행성의 도래 (Rise of Planet of the Apes)’에서 보여준 컴퓨터 그래픽 기술 두가지를 합쳐야 가능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하고 있다


            즐거워야 할 금요일 아침에 동네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나 스무명의 무고한 유치원생, 일학년 어린이 들이  희생당하고, 이들을 보호하던 선생님들이 희생당하고,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이미 우울감이 극에 달해서 선택한 영화영화는 따뜻하고 꽃으로 뒤덮이고 순수함으로 가득한 인도의 풍광을, 망망대해를 떠도는 절망적인 시간을,  그리고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감싸는 푸른 하늘과 깊은 바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 반추할만한 시간을 제공한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망망대해를 사나운 호랑이와 싸우며 견뎌야 하는 소년 파이는 우리에게 전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희망을 놓지 말라고신을 발견할수 없을때에도 신께 기도하고, 신이 의심스러울때조차 신의 사랑을  믿으라고 속삭인다


            영화 말미에, ‘파이가 대치하고 있던 호랑이가 파이자신이었을수도 있다는 암시가 나온다호랑이가 실재 했는가, 아니면 파이의 또다른 자아였는가는 분명치 않다이안 감독은 원작 소설에 충실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그 호랑이가 누구였는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혹은 소설을 읽은 독자가 개별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안개낀 하늘을 향해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하고 내가 싸워 나를 이기자. 그래서 지금보다 더 굳센 나를, 옳은 나를, 나은 나를…”  어릴때, 아버지가 붓글씨로 써서 액자로 만들어 언니와 내가 쓰던 방에 걸어주셨던 윤석중 선생님의 시아버지는 자신의 서예 작품에 윤석중 선생님의 낙관까지 받아 오셨었다어린 나는 뜻도 모르고 이 시를 종알거리곤 했는데, 영화속 호랑이를 보면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나는 나의 공포와, 나의 태만과, 나의 나약함과 싸워 이기고 이것들을 길들여야 하리라그리고 희망을 찾아 나아가야 하리라, 삶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온가족이 다함께 가서 각자의 상상속에 묻혀 함께 즐길수 있는 아주 좋은 영화연말 가족 나들이용으로 영화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를 추천드리고 싶다.

 

2012,12,19 



Life of Pi 책 굉장히 재밌다. 동물 행동학 관련 얘기도 나오고.   영화는 2012년에 본 영화들 중에서 최고.   찬홍이하고 함께 가서 다시 또 보기로 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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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빈방

    저두 어제 남편이랑 손잡고 가서 3D로 이 영화 보고왔어요. 환상적이더라구요 스토리 자체보다는 화면이...
    오늘 아침 눈뜨기가 무섭게 직면해야 할 현실이 믿기지 않네요. 새벽까지 잠도 못잔데다 이건 뭐... 제가 너무 현실에서 동떨어진 나만의 집단 안에 갇혀 있었나봐요. 세상을 너무 몰랐어요ㅠㅡㅠ 하루종일 멘붕상태. 뉴타운 총기사건을 보면서 '근데 거기서 왜 gun control' 얘기가 나오냐! 총을 소지하는건 우리의 권리다'를 외치는 지인의 지인 얘길 듣고서 또 새삼 다른 세상을 봅니다.

    2012.12.20 06:16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희망을 꼭 쥐고 있어야 하지요. 망망대해의 조난자같은 심정이 되어도 항해는 계속해야 하니까요.

      이 영화가 저한테는 '엄청난' 위로가 됩니다. 여러모로. 작금의 현실에 대처하는데도. 금요일 아침에 또 보러 가기로. :>

      * 앗참, 방금 뉴스 보니 뉴트 깅그리치가 '교장선생이 총을 갖고 있었으면 범인을 쏴죽였을텐데, 교사들도 총기 소지를 해야...' <====그 인간을 쳐다보면서 '야 이 미친새끼야! ' 아주 사대 필수 교양과목중에 총검술도 넣겠구나 ...





      혹시 책 안 읽으셨으면 그것도 보시면 ...영어가 아주 평이한 영어이고, 무척 재미있어요. 저 요새 그거 신나게 읽고 있어요. 이런 암담한 시간에 의지가 되지요.

      2012.12.20 07:45 신고 [ ADDR : EDIT/ DEL ]
  2. 저는 몇년전에 책을 읽었는데 읽고좋아서 아이도 영어로 된책을 사서 읽게 했었어요.. 근데 영화로도 나왔다니 반갑네요.. ^^

    2013.01.01 08: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킨들 파이어에 담아놓고, 가끔 아무데나 읽어보고 그래요.
      마음이 밝아져요 이 책 읽으면.

      2013.01.28 22:53 신고 [ ADDR : EDIT/ DEL ]

WednesdayColumn2012. 10. 11. 01:4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502176


“꽃과 같이 곱게 나비 같이 춤추며 아름답게 크는 우리, 무럭무럭 자라서 이 동산의 꾸미면 웃음의 꽃 피어나리!”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우리 시골집 앞마당에 초저녁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할아버지가 매일 우리들을 위해서 어린이 라디오 방송을 틀어 주셨는데 모두들 그것을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뜻도 잘 모르면서 고모들이나 언니, 오빠가 부르던 그 노래들을 따라서 불렀다. 

 어릴 때 나는 할아버지의 라디오 안쪽의 어딘가에서 베짱이나 여치같은 아주 작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는줄 알았다. 고운 목소리로 누군가 얘기하는 현장을 잡기 위해서 라디오 뒷쪽의 구멍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나는 피비에스(PBS)를 좋아하고, 빅버드(Big Bird)도 좋아하지만 중국에서 빚까지 얻어다가 피비에스에 대한 정부 보조를 해 줄수는 없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의 이같은 발언은 피비에쓰 뿐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새서미 스트리트(The Sesame Street)’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 줬다. 피비에스가 미국 재정 적자의 원흉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 방송을 본 한 어린이가 롬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트 롬니씨, 내가 지금은 여덟살이라서 자주 보지는 않지만 나도 한 때는 새서미 스트리트의 팬이었습니다.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이가 생기면 내 아이에게 새서미 스트리트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새서미 스트리트를 없애지 마세요. 앨라배마에서 세실리아.” 이 소녀는 공책 종이에 연필로 쓴 편지의 말미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정확히 밝혔다. 

 1969년 방송을 시작한 피비에스의 어린이 프로그램 ‘새서미 스트리트’는 44년간 방송을 이어 오는 동안 미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믿을만한 어린이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동네 아이들 틈에서 할아버지의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그 시각에 미국에서 자라나던 내 또래 어린이들은 텔레비전 속의 친구들에게서 알파벳과 셈하기와 친구 사귀기등을 배웠으리라. 

 이번에 롬니의 발언으로 새삼 화제가 된 새서미 스트리트와 나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나와도 40년 가까운 인연인 셈이다. 우리 집에 처음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 왔을때 몇 개 안되는 채널 중에는 주한 미군들을 위한 방송 채널도 하나 있었다. 말을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이 ‘그림’만 보던 그 미군 방송에서 커다란 새와 인형들과 인종들이 뒤섞인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췄다. 나른하고 달콤한 피리소리 같던 타이틀 곡은 무허가 집, 쓰레기 냄새가 넘치던 골목에 살던 내게 알수 없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곤 했다. 

 1980년대, 대학에 들어가니 미국인 교수가 한 분 있었는데 그 분이 영어 실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미군방송을 자주 보라고 권했고, 특히 새서미스트리트가 좋다고 안내해 줬다. 1990년대에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때 전셋집을 전전하던 내가 일부러 몫돈을 들여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샀던 이유는 당시에 한 세트로 묶어서 판매하던 ‘새서미 스트리트’ 교육용 비디오를 내 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텔리비전 수신도 잘 안되던 안양의 산골짜기 집에서 매일 그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앉아서 내 두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나도 배우고 그랬다. 후에 내가 초등, 중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의 자산이 바로 그 새서미 스트리트 교육용 비디오였다. 나는 아직도 새서미 스트리트에서 소개된 아름다운 노래들을 가사 정확하게 부를 수 있다. 나는 영어 교육 방법을 새서미 스트리트에서 배웠다.

 새서미 스트리트는 단순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것은 문화가 척박한 초강대국 미국이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교육 문화 자산이다. 피비에스나 새서미 스트리트 지원을 중단한다는 것은 프랑스 정부가 루브르 박물관 보수 공사를 안하고,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없애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교육적으로는 학교를 없애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문화, 교육을 홀대한 나라의 미래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빅 버드가 없는 미국은 쓸쓸할 것이다. 


2012, 10,10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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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10. 11. 01:0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96462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중에 미모의 미국인 여학생이 한명 있었다. 황갈색의 윤기 흐르는 머리칼과 역시 갈색의 깊고 그윽한 눈빛, 그리 흰 피부 언제 봐도 매력적이었는데, 성격도 활달하고 상냥해서 우리는 모두 이 친구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친구는 가족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게 설명해줬다. “우리 증조 할머니는 세미놀 인디언이었고, 할아버지는 멕시칸이었어. 내 몸에는 미국 원주민의 피가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미국 백인의 외모를 하고 있던 내 친구가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예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한다면 어딘가 아시안하고 닮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이후로 나는 외모를 보고 인종을 판단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순혈의 인종을 찾기도 힘들고, 나 역시 순수 한민족이라고 자신할 근거가 없지 않은가.
 
최근 매사추세츠주의 상원 의원 선거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상원의원은 공화당의 스캇 브라운(Scott Brown). 이에 맞서서 선전을 펼치고 있는 이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렌 (Elizabeth Warren) 교수다. 문제의 발단은 후보 대담 프로그램에 나온 브라운 의원이 워렌 교수 자신이 ‘미국 원주민’의 후예라고 주장하면서 소수계에게 주어지는 특전을 누렸다고 비난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워렌 교수를 가리키며 ‘어디를 봐서 저 이가 인디안으로 보이는가?’하고 냉소했다. 

 그쯤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며칠 후에는 그의 선거 참모 여러명이 워렌의 정치집회에 몰려와서 아메리칸 인디언 전사들의 노래와 함성을 외치는 식으로 ‘미국 원주민 후보’인 워렌을 조소하는 행동을 저질렀으며, 브라운 의원은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어물쩍 넘기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미국 원주민들 전체에 대한 비아냥거림으로 비쳐진다. 말하자면 ‘비천한 미국 원주민 따위에게 상원의원 자리는 어림도 없다’는 식으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장치같다. 

 공개적으로 미국 원주민을 비웃는 듯한 이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이 아시안을 비롯한 다른 유색인종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들이 드러내놓고 미국 원주민을 조롱하는 이유는 아마도 원주민들에게 이렇다할 정치력이 없다거나, 인구가 너무나 미미해 만만하게 여겨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메리칸 인디안이 아닌데도 마치 내 정체성이 짓밟힌듯한 씁쓸한 기분이 든다.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누구든 크고 작은 편견의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내가 소속한 합창단에 새로운 단원이 들어왔다. 미국에 온 지 두 달도 안된 중국인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이 사람은 중국인이래. 어쩌면 좋아!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하고 누군가가 물었고 일제히 시선에 내게 몰렸다. 그들에게는 내가 중국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한국인이고 중국어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이 분하고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중국인이 내 앞으로 안내되었고, 내가 그냥 영어로 인사를 하니 그도 서툴지만 충분히 소통가능한 영어로 내게 자기 소개도 하고 합창단에 온 사연도 활달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주위의 미국인 단원들에게 말해줬다. 

“걱정할 것 없다구. 이분이 영어를 잘 하는 걸 뭐.” 선량한 단원들은 공연히 염려를 했다며 웃었다.

 이들은 왜 중국인이 영어를 못할 거라고 미리 단정했을까? 이들은 왜 한국인인 내가 중국인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상상했을까? 내가 인종적으로 그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백인처럼 생겼어도 미국 원주민의 후예일 수 있고, 미국에 엊그제 도착한 이민자라도 영어가 유창할 수도 있고, 그들 눈에 똑같아 보여도 중국인과 한국인은 다르다.

 인간은 감각적인 존재이므로 편견이나 피상적인 감각 너머에 있는 사실에 다가가기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시선이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2012,10,3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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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9. 27. 00:5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92108


떡이 너무 작은가 아니면 분배하는 방법이 문제인가? 고등학교에서 사회시간에 인구와 자원의 문제를 논의할 때 제시되는 토론거리로 두 가지 가설이 주어진다. 아프리카 대륙을 위시한 지구의 특정 지역에서 사람들이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첫째, 지구에서 인간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식량도 한계가 있는데 오늘날 인구가 너무 많아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둘째, 식량은 전세계의 인구가 굶어죽지 않을 만큼 충분히 생산된다. 문제는 식량 자원이 골고루 분배 되지 않아서, 지구의 한 구석에서는 음식물을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또 다른 곳에서는 굶주리거나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식량문제라면 우리는 인구 조절에 집중해야 하고, 식량자원을 분배하는 구조가 잘 못 되었다고 본다면 자원의 고른 분배쪽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집 냉장고 구석에서는 오래된 빵이나 야채가 시들어가고 있다. 음식 찌꺼기가 무심하게 쓰레기 통에 버려지며, 우리 개 왕눈이는 고기를 달라고 보채는데 지구 어느 구석의 내 이웃은 주린 배를 물로 채우며 배부르게 먹는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분배에 있는것 같다.

 10월 1일자 주간지 타임(Time)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별 기고를 특집 기사로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클린턴은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다섯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클린턴과 클린턴재단(Clinton Global Initiative)이 세계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내다보는 다섯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화기가 경제, 의료면에서 낙후된 지역에서 삶을 개선하는 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반드시 스마트폰일 필요도 없다. 간단하게 텍스트만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기를 활용하여 의료 낙후지역 주민들이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세계인의 삶을 위협하는 AIDS와 같은 질환에 대항하는 미국 정부, 제약회사와 같은 사기업 그리고 비영리단체들의 단결된 의지가 치료비를 낮추고 희생자를 줄이는 데 앞장서 왔으며 이러한 단결된 노력이 여러가지 영역에서 확산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소아 비만에 맞서서 학교에서만이라도 당도가 높은 탄산음료를 제한해야 한다는 운동도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다.

 셋째, 지구 환경을 살리는 무공해 에너지의 생산 및 활용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태양 일조량이 많지 않은 독일에서 하루에 생산해내는 태양력 전기는 22기가 와트인데 이것은 20개의 핵발전소가 생산해 내는 양과 맞먹는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활용은 공상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성공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넷째, 전 지구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있다. 특히 여성 인권이 낙후된 것으로 보였던 중동지역의 경우, 2002년부터 바레인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여성 고학력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다섯째, 비록 여기저기서 충돌와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문화권의 청년, 학생들이 힘을 합쳐 비영리단체 활동을 조직해 내고 있다. 중국과 대만 출신의 학생이 힘을 합치고, 파키스탄과 인디아 출신의 대학생들이 팀이 되어 사회 발전의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퇴임 이후, 클린턴 재단을 이끌면서 전 지구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클린턴의 세계관은 희망으로 가득차 보인다. 오늘도 지구 여러곳에서 반목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골고루 서로 사이좋게 노나먹고 도우면서 살라는 참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원리. 지구상에서 식량이 바닥이 난 적은 여태 없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서로 돕는가 하는 데 있을 것이다. 



2012/9/26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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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9. 27. 00:5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87106



요즘 유튜브가 뜨겁다. 불이 난 듯 하다. 한국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그리고 미국인이 만들어 배포했다는 영화 ‘무슬림의 무지(Innocence of Muslims)’가 화제의 주인공들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조회수 2억을 돌파 했다는 인터넷판 뉴스를 방금 확인했다. 그 숫자가 그만큼의 인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와 뮤직 비디오에 열광을 하는가 보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에서 한국 가수 ‘싸이’를 초대하여 방송을 한다는 것도 이제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뉴스가 되어 버린 것도 같다. 

 내가 가수 싸이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고 하자, 대학생 아들이 가르쳐준다. “옛날에 ‘난 완전히 새됐어’라는 노래 부른 사람.” ‘새됐다’는 표현이 1990년대 말에 한국에서 IMF 사태로 직장인들이 실직자가 되고 고통에 시달릴때 바로 그들의 심경을 대변한 말이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그 노래를 부르던 청년이 이제 ‘아저씨’가 되어 돌아와 ‘오빤 강남 스타일!’하고 외치는 모양이다. 경제 불황으로 고통을 겪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노래와 율동으로 즐거움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유튜브의 또 다른 폭발적인 비디오는 ‘무슬림의 무지(Innocence of Muslims)’라는 제목의 영화이다. 정체가 아직도 불분명한 미국의 반이슬람주의자가 제작했다는 이 엉성한 영화에서 제작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저급한’ 인물로 그려 놓았다. 이 영화가 이슬람권 사람들의 분노를 산 대목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매트를 ‘인간 쓰레기’로 묘사한 전체적인 내용뿐 아니라, 이것이 안고 있는 이슬람 문화의 몰이해에 있는 듯 하다.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미술관이나 예배당에 가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그림이나 조각물, 십자가에 달린 예수등 무수한 기독교적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이에 반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마호매트의 초상화나 조각물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은 신성시하는 대상을 그림이나 다른 이미지로 구체화 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상징으로 마음에 담아둘 뿐이다. 문제가 된 필름은 이런 금기를 깬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마호매트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일단 그의 생을 연구하고, 그가 속한 문화권의 정서를 연구했어야 했다.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지난 여름 펜실베니아의 랭캐스터, 아미시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갔을 때 그곳에 대한 안내를 맡았던 이가 우리에게 당부를 한 것이 있다. “아미시들은 거울도 안보고, 사진도 안찍고, 초상화도 남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얼굴에 하느님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고 해서 감히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사진기를 그들에게 들이대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이 사는 방법을 존중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아주 특별해 보이는 그 사람들의 뒷모습을 먼거리에서 조심스럽게 찍거나 그들의 집 풍경을 사진기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설마 사진기를 들이댄다고 그들이 뭐라고 야단을 치지는 않겠지만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람들의 정서나 문화를 싸그리 무시하고 반이슬람 정서를 아주 원색적으로 드러낸 문제의 필름은 그런 면에서 악의적이다.

 세계 주요 언어 중에 인구가 가장 많은 언어는 중국 만다린어. 2위는 스페인어, 3위가 영어, 4위는 인도 힌디어, 그리고 5위가 아랍어다. 영어권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영어가 가장 중요한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페인어 인구가 더 많고, 아랍어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인구가 크다. 문제의 영화는 그 아랍어권과 이슬람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자극했다. 그들의 장난에 성실하게 외교에 임하는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세계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유튜브를 열어 싸이의 유쾌한 노래와 율동을 들여다보며 생각해 본다. 동일한 매체를 가지고 누군가는 기쁨을 선사하는데, 누군가는 불안을 조장하고, 분노를 촉발하고, 평화를 위협한다. 유쾌한 강남 스타일 ‘오빠’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2012/9/12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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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9. 5. 19:5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77022



침팬지 ‘갑’은 평소에 별로 개성이 없고 기운도 없고 그래서 가족 내부에서도 무시를 당하며 살다가 결국 마을에서 쫒겨났다. 그는 혼자 떠돌다가 다른 침팬지 집단의 눈치꾸러기로 합류했다. 집단의 가장 낮은 곳에서 구박을 받으며 살던 ‘갑’은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중간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권력의 상부로 이동한다. 그 사이에 몇몇은 늙어 죽었고, 혹은 인간에게 잡혀 갔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상부에 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날 대장 침팬지가 죽었을 때 ‘갑’은 자신이 이제 대장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침팬지 ‘을’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 힘으로 ‘갑’을 제압해 버리고 그 날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가 아주 힘이 세고 사나웠기 때문에 아무도 저항할 수 없었다. 침팬지 ‘병’은 별로 힘이 세지 않았으므로 대장 ‘을’ 앞에서 얌전히 지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을 모았고, 때를 기다렸다. 어느날 이들은 힘을 모아 ‘을’을 공격했고 이 싸움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대장 ‘을’은 피투성이가 되어 마을에서 쫒겨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병’의 리더십이 시작되었다. ‘병’을 도운 침팬지들이 권력을 함께 누렸다.

 이 이야기는 우화가 아니다. 동물 학자들이 수년간 침팬지 집단의 삶을 관찰하면서 발견하고 기록한 것으로 시카고 대학의 진화심리학자 마에스트리피에리(D. Maestripieri)가 최근 발간한 책 ‘영장류의 게임 방법(Games Primates Play)’에 소개된 사례다. 이 침팬지 마을 이야기를 인간 세상으로 옮겨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갑순이는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상사와 동료들이 던지는 온갖 굳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언젠가 자신에게도 동등한 기회가 올거라는 희망으로 양심적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그가 간신히 남들보다 한참 늦은 진급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에서 갑자기 나타난 ‘을순이’는 별다른 노력이나 공적도 없이 덜컥 간부자리를 차지한다. 을순이의 집안 배경이 굉장하다거나 학력과 이력이 뛰어나다거나, 혹은 그의 패거리가 무시무시하다는 소문도 있다. 

 ‘병순이’는 갑순이와 마찬가지로 학력도 집안 배경도 내세울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는 사회성이 뛰어나서 주변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설득력이 있다. 병순이는 때를 기다렸다가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을순이’를 제거하고 조직을 장악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다지 낯선 얘기는 아니다. 사회성이 있는 동물 집단이라면 그것이 침팬지이거나 인간이거나 집단 안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이고, 일상 생활에서 나 자신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이어 이번주에는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다. 양당의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저녁 쟁쟁한 정치인들의 연설이 이어지면서 이들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을 들여다보는 일도 흥미진진하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공화, 민주 양당의 전당대회와 한국에서 진행되는 대통령 선거전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정치는 혼자서 때를 기다린다거나 완력이나 부정한 수단으로 혼자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서로 타협하고 의논하며 리더를 정하고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리더도 그 무엇도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위에 소개한 침팬지 집단과 인간 집단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 침팬지들은 누군가 힘있는 놈이 나타나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힘 자랑을 할 때 대개 그를 대장으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투표’를 통해서 ‘나의 대장’을 직접 뽑을 수 있다. 비록 내가 힘이 없고 리더십도 없고 별볼일이 없는 존재라고 해도 나 역시 내 한 표를 나보다 힘 세고, 잘난 친구와 동등하게 행사할 수 있다. 여러 명의 후보가 있을 때 누가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누가 ‘약자’를 보호할 사람인지 가늠해 보고, 위대한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 다행이다, 내가 침팬지가 아니고 인간이라서. 다행이다, 나도 투표 할 수 있어서.


2012,9,5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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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9. 5. 19:4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72349


그 집 입구에는 창고같이 보이는 작은 오두막이 있다. 그 오두막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 그 집의 안채가 보인다. 하지만 식구들은 모두 들에 일을 나갔는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마치 옛날 우리 시골집 사랑채 바깥 마당 구석에 세워진 바깥 변소처럼, 그 작은 창고는 외톨이로 서있다. 이때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전화벨은 그 창고에서 울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달려와 전화를 받는 이는 없고, 한참 후 전화벨 소리는 시무룩하게 끊긴다.


 지난 여름 펜실베이니아의 랭캐스터 카운티에 갔을 때 어느 아미시 집 마당에서 겪은 일이다. 현대 기술문명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아미시. 그들도 ‘전화’의 필요성만은 인정을 했나 보다. 전화를 놓은 집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화기를 집안으로 들여놓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집 전화기는 바깥채 헛간에서 혼자 외롭게 울어대곤 한다.

 옛날에는 우리도 그렇게 살았다. 마을에 한 대 밖에 전화가 없던 시절, 시골 우리 집은 온 동네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전화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두 서로 가족처럼 마주보고 웃고 울며 살던 마을 사람들. 하지만, 세상은 그로부터 한참 멀어졌다.

 최근 주간지 타임(Time)지는 이동 통신 기술이 우리 삶을 바꾸는 열 가지 양상을 특집으로 실었다. 스마트폰이나 셀폰 등 손으로 들고 다니는 이동통신을 모두 아우르는 이 기사는 무엇을 주목했을까? 그중 다섯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스마트폰의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이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홍보물 전달이나 후원금 모금 방법이 전보다 훨씬 쉽고 유연해졌다고 한다. 

 둘째, 단문을 주고 받는 텍스팅 (texting)이, 방해 받지 않는 새로운 소통 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장문의 이 메일이나 문서들은 귀찮아서 열어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텍스트 한 두 줄은 즉각적으로 확인이 되는 편이다. 

 셋째, 스마트폰만 있다면 지갑 속의 현금이나 크레딧 카드 없이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넷째,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당신의 전화가는 모두 알고 있다. 최근의 전화 사용내역이나 검색, 텍스트, 이 메일 열람 내역을 조회해보면 그 안에 모두 답이 있다. 그래서 최근 범죄자 추적 시간이 많이 짧아졌다는 통계도 있다. 

 다섯째, 당신과 가장 가까운 것은 지갑도, 가방도, 애인도, 애완견도 아니다. 스마트 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전화기를 놓아둔다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었다. 기지국이 없어서 무선전화가 불가능한 먼 오지의 마을 사람들도 요즘 기지국을 세우는 문제로 토론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를 따라 이제 카메라는 지구 구석구석 어디든 간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무선 스마트기기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이나 값비싼 도구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학교에서도 무조건 셀폰 사용을 금지할 수만도 없게 되었다.

미국의 여러 지역 학교에서 셀폰이나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고, 의과대학에서는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기기가 의료행위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에 따라 의사 가운 주머니에 태블릿을 넣을 수 있도록 주머니가 조정되었을 정도이다. 아프리카 우간다와 같이 의료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셀폰을 통한 문자 메시지만으로도 의료처방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내 일상을 돌아보니,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나는 이미 이동통신과 연결된 삶에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다. 바깥채에 전화기를 놓고 무심히 살고 싶다는 바램과는 상관없이 나는 이동 통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어쩌면 이동통신은 내가 숨쉬는 공기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내 전화기는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데, 나는 내 전화기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많이 있다. 이제 내 전화기와 적극적으로 친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2,8,29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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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8. 22. 20:4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67859

 

과자를 좋아하는 치타가 있다. 치타는 과자를 먹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나 끈질긴 치타는 외친다. “반드시 먹고 말 거야! 치토스!” 십여 년 전에 내가 한국에서 살 때 텔레비전에 나오던 과자 광고문구다.

나는 그 과자를 입에도 댄 적이 없지만 광고 동영상 속의 치타의 외침만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치타가 딱해 보이기도 하고, 참 끈질기다 싶기도 하고.

 지난 7월부터 10월20일 사이에 미국의 각 지역에서 다가오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선거인 등록, 즉 재외국민 신고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혹은 영주권자인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선 치러야 하는 신고식이다.

 나는 지난 봄 총선에 대학생 아들과 함께 신고와 투표를 한 바 있다. 미국에서 성장한 아들은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총선에 참여한 이후에는 한국의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시사토론장도 찾고 한다. 역시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이 효과가 크다.

 그래서 지난주, 아들과 나는 함께 영사관에 부재자 신고를 하러 가기로 했다. 아들은 영사관에 가자는 말에 두말 않고 스스로 여권이며 신분증 등을 챙겼다. 그런데 막상 행장을 차리고 나서 보니 내 여권이 안 보이는 것이다. 여권이 중요한 서류이니 아마도 너무 깊이 챙겨놓은 것이 사단이었다. 결국 그날 하루는 온 집안을 뒤져서 여권을 찾는 것으로 다 보냈다. 덕분에 대청소를 한번 했다.

 드디어 그 다음날, 일찌감치 차를 달려 영사관에 도착했는데 웬걸, 문이 안 열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영사관 뒷마당에서 나오더니 우리를 발견하고는 설명을 해주신다. “오늘 광복절, 국경일이라서 영사관 문 닫았대요.” 그분도 나처럼 한국 국경일을 잊고 왔다가 허탕을 치셨다고.

 연거푸 이틀을 허탕을 치니까 아들이 좀 실망스러운 눈치를 보이길래 녀석에게 말해줬다. “너 치토스를 잊었니? 네가 좋아하던 과자 치토스 말이다. 치타가 뭐라고 외쳤지? 반드시 먹고 말 거야, 치토스!”

 그 이튿날, 우리들은 ‘위풍당당’하게 영사관 문을 활짝 밀어젖히고 들어가 부재자 신고를 했다. 신고에 필요한 서류는 대한민국 여권이나, 미국 영주권자의 경우 그린 카드, 운전 면허증 등 신분을 증명 할 수 있는 서류가 될 것이다. 비치되어 있는 신고서를 형식에 맞게 기입하고, 신분증을 제시하면 담당자가 필요한 서류를 복사하여 보관한다. 신고서에 이 메일을 적어 넣으니 신고 후 한 시간도 안되어 등록이 되었다는 확인서가 이 메일로 날아왔다.

 이 글을 적기 위해 지난 봄 총선의 재외국민의 투표현황 자료를 살펴보았다. 재외국민 유권자 223만3193명 중에서 2.48%가 실제로 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미주지역의 경우 전체 유권자중에서 선거인 등록을 한 사람은 2.7%라는 집계도 있다. 그리고 그 중에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에 참여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백 명중에 실제 투표 참가자는 두 명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많은 예산을 들인 재외국민 투표가 실적이 미미하다며 재외국민 투표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돈 들였는데 효과가 없다고 집어 치우자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런 분들께 ‘첫 술에 배부르랴’는 한국 속담을 보내드리고 싶다. 투표율이 낮으면 제도적인 문제점들을 개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한 표의 권리를 누리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 이제 간신히 시작한 것을 무르자고 해서야 되겠는가.

 미주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지리적으로 도저히 투표에 참여하기 힘든 경우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아 한 시간 안에 투표장에 가서 해결 할 수 있지만 온종일 자동차를 달려 투표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구제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떠난 후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나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냈다. 이번에는 나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직접 참여 할 수 있다. 내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절대 놓칠 수는 없다. “이번엔 반드시 먹고 말 거야, 치토스!”

 

2012,8,22,lem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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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8. 16. 01: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63733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수염을 길렀다. 상대편 후보도 수염을 길렀다. 그러므로 그를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몰아버리는 거야!”

 “하지만, 예수님도 수염을 기르셨지!

 “이봐, 선거 운동할 때 절대로 유태인들을 씹지 말게나 그러면 큰일 나네.

 지난 주말에 미국 전역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 ‘캠페인(The Campaign)’에 나오는 장면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연방하원 지역구 의원을 뽑는 캠페인에서 두 명의 후보들이 서로 물어 뜯는 선거전을 펼친다. 대기업의 사주를 받은 돈 거래와 후보 밀어주기가 진행되고, 서로를 함정에 빠뜨리며, 밀고하고, 폭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 선거전. 물론 코미디 영화이므로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에피소드도 들어갔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의 대사에 깔깔대며 공감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이와 비슷한 일들을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구민과의 대화에서 두 후보에게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 “취업률이 떨어져서 큰일이다.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후보는 대꾸한다. “일자리는 매우 중요하며,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하여 위대한 미국을 만들어야 한다. 미 합중국 만세!” 그러자 지지자들이 열광하고 관중이 박수를 친다. 이 꼴을 보고 객석에서는 발을 구르며 폭소를 쏟아낸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없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말씨로 ‘동문서답’을 하는 후보들을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자주 봐왔던 것이니.

 올 가을과 겨울, 미국과 한국이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미국은 11월6일, 한국은 12월19일에 치러진다. 이미 미국의 주요 텔레비전 뉴스채널은 많은 시간을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의 각축을 보도하는 데 할애하고 있고, 한국은 아직도 주요 당에서 후보 경선을 진행 중이다.

 최근 오바마와 롬니의 설전 한 가지. 오바마가 롬니의 경제정책을 비꼬면서 ‘롬니 후드 (Romney Hood)’라고 칭했다.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줬던 전설적인 영웅 ‘로빈 후드’에 빗대어, 반대로 롬니를 가난뱅이들의 재산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나눠줄 사람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롬니 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오바마의 이런 언급에 대하여 ‘오바마-로우니 (Obamaloney)’라고 일축했다. 이는 오바마 이름에 ‘baloney’라는 단어를 조합한 것으로 ‘벌로니’라고 하면 ‘엉터리, 터무니 없는’을 뜻하는 속어. ‘오바마로우니’에서 전해지는 뉘앙스는 ‘엉터리 같은 오바마, 오바마가 하는 엉터리 말이나 행동’ 정도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이전에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구경해 왔지만 이토록 비방과 비난이 심한 경우는 겪어보지 못한 것도 같다. 대통령 선거가 흑색선전이나 말장난으로 일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며칠 전에는 한국에서 모 의원이 어느 상대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여성 의원을 지칭하며 입에 담기 힘든 말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후보들이 우회적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판국인데, 한국 의원이 원색적인 욕설을 사용했다니 실망스럽다. 좀 아름다운 말로 캠페인을 하면 안될까? 하지만 한 사람의 실언에 과민하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면 그것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피차 자중자애 하는 것이 상책 일 터.

 영화 ‘캠페인’은 해피 엔딩이다. 거대 재벌들의 음모에 놀아나던 후보가 단호하게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외로운 선거운동을 펼치고, 재벌들과 손잡고 선거에 승리했던 후보가 양심선언을 하고 후보에서 물러난다. 결국 둘은 손을 잡고 재벌들을 청문회에 세우고 정직한 정치를 펼친다는 너무나 아름다운 결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다. 현실도 그러하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기대하면서.

 12월 19일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고, 현재 주미 영사관에서는 재외 한국인들의 선거인 등록을 받고 있다. 7월22일부터 10월20일 사이에 재외국민으로서 선거인 등록을 해야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가을이 오기 전에 소풍을 가듯, 스무 살 아들의 손을 잡고 영사관에 가서 신고를 할 생각이다. 한국 떠난 후 처음으로 해보는 대통령 선거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12,08,15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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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8. 16. 01: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59430

 

며칠 전 어느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 입구에 서있는 기계 앞에서 두 시간짜리 주차증을 사는데, 옆에서 누군가 혼자 한탄 하는 소리가 들렸다. “What the heck it is(아이구, 도대체 이게 뭐람)!.” 두 꼬마 아이들을 거느린 어느 흑인 여성이 기계 앞에서 큰 목소리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주차증을 사는 방법에 서툴러서 그런 것 같았다.

 

“May I help you(도와드릴까요)?”하고 물으니, 잔뜩 골이 났던 여성이 죽마고우라도 만난듯한 표정이 된다. 나는 차근차근 각 단계마다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을 하면서 그 여성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기계에서 주차증이 두 장이 나오는 거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 여성이 설명을 한다. “아까 나 혼자서도 이걸 다 했는데, 주차증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그걸 몰랐던 거야.” 이 사람은 주차증이 나오는 입구를 기계에서 찾지를 못해서 공연히 주차비를 두 배로 물고 만 셈이다.

 주차증 얘기가 나오니, 공항의 주차카드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워싱턴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공항이 덜레스 공항일 것이다. 이곳에 손님 영접이나 송별을 위해 들르게 될 때는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카드를 뽑은 후에 주머니에 갖고 다니다가 나중에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기 전에 입구의 주차카드 정산기기에서 미리 주차비를 정산하면 편리하다. 이때는 기계에 내 주차카드를 넣고 그 후에 내 은행카드를 넣는다.

은행카드가 스르르 나오고 주차비 정산이 된 후에 주차카드가 나온다. 그 주차카드를 갖고 있다가 공항을 빠져나갈 때 기기에 집어 넣으면 출구 가로대가 올라가고 차는 유유히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생활 속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앞서의 흑인 여성은 왜 주차증 판매 기계 앞에서 쩔쩔매고 서 있었던 것일까? 그이에게는 그 기계가 한없이 낯설었고, 주위에 설명을 해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더위를 잊기 위해 집어 든 책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I'm a Stranger Here Myself(나 역시 이방인)’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젊은 시절 20년간 영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미국으로 귀국한 이후에 맞닥뜨린 ‘낯선 미국’의 경험을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미국인 빌 브라이슨이 미국에서 낯설게 여긴 것 들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동네의 단골 식당에 들어간 그는 뭔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급히 메모하기 위해서 입구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식당 직원이 다가와서 차가운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자리 안내를 받지 않고 앉으셨군요.” 미국 식당의 일반적인 불문율은 입구에서 얌전히 기다렸다가 직원이 테이블로 인도를 하면 얌전히 시키는 대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문율을 이 사람이 깬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파리만 날릴 정도로 한가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이 사람의 주문을 받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제멋대로 구는 손님에 대한 일종의 응징이었다.

 이 사례를 읽으며 나 역시 내가 겪은 일들을 상기하며 웃고 만다. 이따금 한국에서 손님이 왔을 때 식당에 가면 아무데나 빈 자리에 저벅저벅 가서 앉으려는 분도 있다. 그러면 내가 황급히 그를 붙잡고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한다. 한국의 일반식당에서는 들어가서 아무데나 내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보통인데 미국의 식당에서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주는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니.

 영어 교육을 하다 보니 미국에 살면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이 내가 영어를 못해서…”라고 스스로 단정하는 분들. 그런데 사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 사람들에게도 미국은 낯설고 어렵고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어려운 법이다, 딱히 영어 때문이 아니라 해도. 반대로 낯설어도 다가가 차근차근 익히면 나는 능숙한 사람이 된다, 내가 이방인이라고 해도.

 

2012,08,08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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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8. 16. 01:3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55654

그 곳에 가면 긴 빨래 줄에 소박하고 무늬 없는 옷들이 바람에 날린다. 장식 없는 마차에 무늬 없는 긴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 느릿느릿 말을 몰고 지나가고, 그 앞뒤로 자동차들이 조심스럽게 비켜 간다. 밀짚 모자를 쓴 남자들은 긴 바지와 긴 옷소매 차림으로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흰 모자로 머리를 가린 여인들은 맨발로 앞마당의 닭과 개와 아이들을 돌본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 동이 틀 때부터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한다. 전기를 쓰지 않아 여름에도 선풍기 바람도 없지만 이들은 도통 더위를 모르는 듯 하다. 빨래가 바람에 마르는 것을 보면, 이 곳에만 유독 선선한 바람이 부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에게는 따로 예배당이 없다. 이들은 신자들의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이들이 예배를 볼 때면 찬송가를 부르지만 아무도 악기 연주를 하지는 않는다. 악기 연주하는 사람이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을 이들은 원치 않는다.

 



 이 마을 아이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야구경기나 다른 스포츠를 하며 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득점 수를 헤아려, 어느 팀이 이겼는지 셈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판단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곳의 오래된 묘지에 서있는 묘비들은 누구의 것이 두드러지게 크지도, 작지도 않고 모두 고만고만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은 이후에도 서로 사이좋은 형제나 이웃으로 남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 곳 사람들의 집에는 거울이 없다. 아무도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초상화를 남기지도 않는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의 얼굴에 신성이 깃들었으니 그 신성을 함부로 사진이나 그림에 남기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마을 특산품으로 만들어내는 인형에도 얼굴이 없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들은 두 가지의 언어를 익힌 후에 영어를 익힌다. 영어는 영어 사용자들과 소통하거나 거래를 할 때만 사용하고 마을 사람들끼리는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으며 인터넷이나 컴퓨터, 스마트 폰도 이들과는 상관이 없는 도구들이다. 물론 자동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마차가 있으므로. 마을의 다른 사람들의 차고에 자동차가 한 두 대 있는데, 이들의 집 차고에는 마차가 한 두 대 있다. 이들이 사는 마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들은 펜실베니아주의 랭캐스터 카운티와 그 인근 농촌지역 여기 저기에 섞여서 살아 갈 뿐이다.

 



 주변의 보통 미국 농업지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소나 양의 젖을 짜서 유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목공소를 차려 가구나 목공제품들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여자들이 바느질로 만들어내는 퀼트는 미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독보적인 분야가 되었다. 그러니 남자, 여자 모두 동틀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부지런히 일하여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길에서 스치거나 밭에서 일하는 이들을 지켜보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개 홀쭉한 몸매이다. 통계에 의하면 이들에게서 발생하는 각종 질환이 다른 일반 미국 성인들이 겪는 질환의 절반도 되지 않는 비율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은 때가 되면 속세의 일반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누릴 기회를 갖는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속세 사람들처럼 살아갈지 아니면 고향 사람들처럼 살아갈지 결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선택하는 시간이 왔을 때 99 퍼센트의 사람들이 고향 사람들처럼 살아갈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일컬어 ‘아미시(Amish)’라고 부른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발생한 개신교 종파의 후예들로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미국 여러 주에 분포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에 가면, 자동차들 사이로 느릿느릿 말이 끄는 수레가 지나가고,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삶이 고요해진다.

 

2012, 8,1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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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7. 25. 19:0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51318

 

열명 이상의 아동들을 성추행 한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고 수감된 펜스테이트대의 은퇴한 풋볼 코치 샌더스키. 그는 감옥으로 들어갔지만, 이 사건의 파장은 아직도 증폭되고 있다. 샌더스키 사건의 직격탄을 맞은 사람은 전설적인 미국 풋볼의 영웅 조 페이터노 (1926-2012)라고 할 수 있다.



 조 페이터노는 1966년부터 2011년 샌더스키 사건이 도마에 오를 때까지 46년간 펜스테이트대의 풋볼 감독 자리를 지켰다. 지난 연말 은퇴할 때도 사람들은 그가 직접 상관도 없는 성폭행 사건으로 억울하게 불명예 은퇴를 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1월 그가 급거 사망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풋볼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는 ‘억울한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다 동료였던 샌더스키 때문이 아닌가? 얼핏 그렇게 보였다.



 샌더스키의 유죄 평결 직후, 대학의 벽화에 그려진 페이터노 감독의 초상화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머리 주위에 그려졌던 둥근 원, 성스러움을 상징하던 그 원이 지워졌다. 벽화 작가가 직접 지웠다고 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펜스테이트대가 자랑할만한 성스러운 존재로 남을 수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대학에 세워져 있던 그의 동상이 학교 자체의 판단으로 치워진 것을 비롯해,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가 대학 측에 대한 공식적인 징계 조치를 통보했다. 이들의 징계 조치는 6000만 달러의 벌금과 앞으로 4년간 장학생 풋볼 학생수를 25명에서 15명으로 축소, 포스트 시즌 경기 및 각종 보울(Bowl) 게임 참가 자격 박탈 등이다.



 또한 감독으로서 동료 코칭 스태프의 성범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면키 어려운 페이터노의 경기 우승 기록 중 1998년에서 2011년까지 공식기록이 삭제된다. 이것은 샌더스키의 수상쩍은 행동에 대한 보고를 그가 처음 접했던 시점으로부터 그가 풋볼 감독에서 퇴임하기까지 우승의 역사를 모두 무효화한다는 의미다. 지도자로서 마땅히 책임을 지고 행동했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 눈 감거나 모른 척한 순간부터 그는 지도자가 아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미 죽어서 고인이 된 사람의 우승기록 삭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페이터노가 대학 풋볼팀을 이끌면서 여태까지 세운 기록은 역대 풋볼팀 감독 중에서 최고였다. 그의 이력은 미국 대학 풋볼계에서 ‘왕중왕’이었고, 펜스테이트대가 영웅으로 모시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학 풋볼 감독이 영웅인 것이 뭐가 대단한 건가 의아해할 사람도 있는데,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풋볼은 삶에서 떼어놓기 힘든 문화와 같은 것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풋볼 경기는 축제와 같은 것이다.


 해마다 가을 대학 풋볼이 시작되고 대학 풋볼팀이 홈경기를 하거나 원정경기를 하는 날이면 사람들은 풋볼 경기장에 모여들고,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경기장 바깥의 잔디 공원에서 바비큐 파티와 피크닉을 즐기는 것이 이들의 문화다. 풋볼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식품점의 과자와 음료수가 동이 나고, 점잖은 교수들도 대학 풋볼 응원 티셔츠를 입고 수업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은 모여서 파티를 하며 풋볼을 얘기하고, 유명 선수들의 기록을 얘기하고, 감독들에 열광한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해본 사람과 풋볼 경기장에 가본 사람 숫자를 통계내보면 아마도 풋볼 경기장에 가본 인원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게 풋볼은 미국인들의 삶의 일부이고, 풋볼 감독, 그 중에서도 최고의 감독은 찬란하게 빛나는 별 중의 별이다. 그 별 하나가 지금 사후에 부관참시당하듯, 진흙탕에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동료 코치의 잘못 때문에. 감독해야 마땅한 위치에서 방조하거나 ‘범인’을 두둔했기 때문에.


 나는 이미 사망한 조 페이터노 감독이 맞이하는 사후의 불명예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나, 현재 그에 대해 이뤄지는 조치는 환영하는 편이다. 자기 방어력이 없는 약자들을 향한 성폭행의 범죄자들과 그의 ‘방조자’들은 죽어도, 죽어도 자신의 죄를 벗을 수 없다는 하나의 사례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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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7. 18. 19:4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46630

 

매일 평균 한 명의 현역 미군이 전쟁터가 아닌, 후방의 복무지에서 자살을 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낸 병사들이 현장에서 전사하는 숫자보다 더 많은 병사들이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최근 공영라디오방송 NPR(National Public Radio)이나 뉴스전문 케이블채널 CNN을 위시한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일제히 다룬 기사 중의 한 가지는 미국 현역 군인들의 자살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7월23일자 주간지 TIME이 이 문제를 특집 기사로 담았다. 우리는 흔히 전쟁에 참전하고 퇴역한 사람들 중에 많은 수가 외상후 증후군(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과 같은, 각종 정신적 신체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전쟁터에 나가본 적도 없이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자살 숫자가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의관 마이클 매카던은 군 입대 후에 여러 가지 공을 세우고, 의대에 진학하여 군의관이 된 중년의 장교였다. 그는 최근에 자녀 셋을 남긴 채 하와이의 근무지에서 자살을 택했다. 하와이는 전쟁터가 아니지 않은가? 이안 모리슨은 2007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아파치 헬리콥터 조종사가 된 전도 유망한 젊은 장교였다. 그는 텍사스의 자택에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총을 겨눴다.


 
군 관련자들은 이런 자살에 대해 대개는 ‘집안 일이나 애정 문제 때문에 장교나 사병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고 덮으려 들지만 막상 가족의 입장은 다르다. 사망한 사람들은 이미 오랜 기간 우울증에 시달려 왔고 스스로 이를 극복하거나 도움을 받으려 노력했으며 부인들도 적극적으로 남편을 도우려 애썼지만 막상 이들의 근무지인 군부대에서는 이런 우울증상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자살한 군의관 마이클의 부인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 용기를 내어 남편의 상관을 만나 마이클의 우울증세를 의논했을 때 상관은 자신의 휘하 장교 중에 우울증이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후에 부대 안에서 마이클의 시신을 발견한 이는 바로 그 장교였다. 헬리콥터 조종사 이안이 스스로 정신적 질환을 인식하고 애타게 군 병원을 찾아 우울증을 호소할 때 그가 받은 처치는 ‘수면제’ 몇 알 정도였으며 그가 위기를 느끼고 군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을 때 받은 대답은 ‘기다리라(Hold)’는 것이었다. 그는 자살 직전까지도 대답 없는 우울증 상담소에 애타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통계를 보면 200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그리고 2003년 이라크에 파병된 이후 10여 년간 육군의 자살률이 급등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올해 육군에서 186명의 자살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 숫자는 미국의 민간인 자살자의 수를 넘어서는 것이다. 공군이나 해군, 해병대에서 발생하는 자살자까지 합치면 평균 하루에 한 명 꼴로 미군의 자살이 이어지는 셈이다.



 미군 자살자의 95%가 남성이고, 80%가 백인이며, 47%가 25세 미만이다. 자살한 지역의 통계를 보면 83%가 미국 영토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라크나 아프간과 같은 전방에서는 10%, 그 외 지역에서 7% 발생했다. 지난해의 통계를 보면 미군 사망자 전체에서 26%가 전사, 20%가 자살, 17%가 교통사고, 6%가 암, 18%가 그 외의 이유로 유명을 달리했다. 민간인 남자 17세에서 60세 사이의 자살률이 7%인데 비해서 미군 자살률이 20%라는 것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미군의 자살률이 늘어나고 있는데 미군의 대책은 무엇인가? 이들은 아직도 자살률이 늘어나는 원인규명이나 속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 진행되는 전쟁이 후방 사람들의 정신건강까지도 해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에는 전방 후방이 따로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마음이 아파서 생기는 우울증이 전쟁보다 무섭게 후방을, 우리 삶을 교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전후방에서 근무중인 병사들의 건강을 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기를.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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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7. 11. 19:1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41890

 

올림픽 단거리 달리기에서 네 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그 외의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던 흑인 달리기 선수 마이클 존슨(Michael Johnson)이 런던 올림픽을 앞둔 요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흑인 달리기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이들이 ‘노예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 자신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선조가 아프리카 출신 노예임을 확인한 그는 선조가 노예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우수한 유전자가 후대에까지 전해졌으므로 달리기에서 유리하다는 괴상한 해석을 했다.

 마이클 존슨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과거의 노예제도가 현재 흑인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을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다는 해석이 엉뚱하다는 것과, 다른 영역에까지 이런 ‘일반화’가 확대 될 경우 인종적인 문제로 불거져 흑인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대로 라면 미국 학교에서 흑인 학생들의 학력고사 성적이 대체적으로 백인에 비해서 뒤지는 이유는 흑인의 지능이 낮기 때문이고, 흑인이 받는 평균 연봉이 백인에 뒤지는 이유 역시 흑인이 업무 능력이 뒤지기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일반화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생활하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영어 사용자와 만나게 된다. 뉴스 앵커같이 깔끔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양이 심한 사투리 사용자도 만나게 되고, 흑인 액센트를 강하게 사용하는 사람과 대화하기도 한다. 영어 학습자들은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백인들의 영어는 그래도 좀 알아 듣겠는데, 흑인영어는 도통 못 알아듣겠다는 호소를 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심지어 알아듣기 힘든 흑인 영어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하러 든다. “흑인들은 원래 구강구조가 백인과 달라서 백인들의 발음이나 액센트가 불가능하다.”
 

 

사실 흑인이 강한 액센트를 사용하는 것은 구강구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고등 교육’을 받은 흑인들은 ‘백인 영어’와 ‘흑인 영어’를 마음대로 오가며 구사하는데, 그들의 설명으로는 ‘사회 생활 할 때는 표준어라 할 수 있는 깔끔한 영어를 사용하고, 집에 가서 흑인 가족 친지와 어울릴 때는 흑인 액센트를 구사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어느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서울에서 사회 생활을 할 때는 깔끔한 표준어를 사용하다가 집에만 가면 바로 지방 사투리로 돌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표준어 익히는 대신에 자신의 사투리에만 안주하는 사람이 있듯, 흑인들 역시 주류사회의 표준어 대신에 흑인들의 독특한 화법과 액센트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사람이 침팬지가 아니고 사람인 바에는 인종이나 언어와 상관없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하는 말은 다 할 수 있는 구조를 타고 났다. 언어뿐 만이 아니다, 달리기나 공부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기 보다는 사회 경제 환경과 개인의 노력을 들여다 보는 쪽이 현명하다.

 

 

에마뉴엘 베일리(Emmanuel Bailey)라는 영국의 흑인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있다. 어느 날 그가 타야 할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발견한 베일리는 버스를 잡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 갔다. 물론 그는 이미 성공한 달리기 선수였으니까 무척 잘 달렸고, 운 좋게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다. 그가 버스에 타자 한 백인 승객이 중얼거렸다.

 

“흑인들은 정말 모두들 잘 달려. 그 단거리 달리기 선수 베일리가 백인 선수들을 물 먹이는 것 좀 보라구. 흑인들은 타고 났어.” 물론 그 백인 승객은 버스를 따라 잡은 흑인청년이 바로 그 유명한 베일리라는 것은 알아보지 못하고 하는 소리였다. 베일리는 그 때의 일을 자서전에 기록했다. 사람들이 자신이 기울인 노력은 무시한 채 흑인이기 때문에 잘 달린다고 판단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흑인이 잘 달리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상관 있다. 흑인에 대한 이런 식의 엉뚱한 일반화로 인해 ‘여자는 원래 힘이 약하다’ ‘아시안은 원래 수학을 잘한다’ ‘한국인은 원래 영어를 못한다’ 등의 엉뚱한 일반화도 얼마든지 가능해 진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인식이 멀쩡한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2012,7,11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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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7. 6. 04:43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37376

 

오늘은 미국인 최대의 명절 ‘독립 기념일’이다. 미국이 인류사에 자랑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나는 ‘대통령제’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탄생시킨 국가이고, 인류 역사 최초의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다.

 조지 워싱턴의 어린 시절 일화 한가지가 유명하다. 어린 조지 워싱턴도 손도끼를 갖고 싶어 했고, 마침내 그것을 하나 얻게 되자 이리저리 다니며 손도끼를 가지고 장난을 했다. 그러다 실수로 그만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를 베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벚나무가 넘어진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조지, 너 누가 이걸 다치게 했는지 아느냐?”라고 물었으리라. 잔뜩 주눅이 들은 조지는 아버지께 자신이 그랬다고 이실직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표정이 한없이 온화해지며 아들을 안고 말했다고 한다. “너의 정직성이 내 벚나무 수백 그루보다 더 소중하다.”

 조지 워싱턴은 정직함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배우고 성장했으므로 정직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정직한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 정직할 수도 있고, 정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How We Lie to Everyone---Especially Ourselves

 

 

 댄 에리엘리 (Dan Ariely)라는 행동경제학자의 근간 ‘부정직함에 대한 정직한 진실(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정직성을 지키거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많은 사례들이 담겨있다.

 가령, 우리들은 영화 DVD가 매장에 진열 되어 있을 때 이것을 성큼 집어가지고 돈도 안내고 매장을 나가는 ‘용감무쌍’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도’에 해당되고, 일단 절도범으로 잡히면 인생이 아주 골치 아프게 꼬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인터넷에 최신 영화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올라와 있고, 한 두 번의 클릭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경우 우리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많은 경우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키보드를 한 두 번 클릭하여 영화를 무료로 본다. 그리고 내가 ‘절도’를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한 것이라고는 컴퓨터 키보드 한 두 번 두드린 것이고, 나는 실제로 남의 물건을 내 손으로 집어 갖고 나온 것이 아니므로.

 골퍼들이 눈속임으로 하는 행동 중에 공을 아주 약간 옮겨놓는 일이 있다고 한다. 공을 약 10센티 몰래 옮길 때 손으로 집어서 옮기거나, 발끝으로 툭 밀어서 옮기거나, 골프 클럽으로 슬쩍 밀어서 옮기는 수도 있다. 10센티를 옮기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에는 차이가 있는데 대개 손으로 집어 옮기는 것은 아주 ‘못된 짓’으로 치부되지만 골프 클럽 끝으로 슬쩍 미는 ‘부정 행위’에 대해서는 나도, 남도 관대한 입장이라고 한다.

 골프의 전과정이 18홀일 때, 1번 홀에서 이런 부정행위를 하는 것과 18번 홀에서 저지르는 부정행위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저 10센티를 옮기는 부정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1 번 홀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에 18번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면 ‘용서받지 못할 자’가 된다고 한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자신이 행하는 거짓말, 부정행위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조목조목 일상에서 내가 저지르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부정 행위, 혹은 거짓말에 대해서 자각을 하게 해 준다. 인간이 항상 정직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어느 날 한 소년이 손도끼 하나를 선물 받았다. 소년은 이것저것 도끼로 자르고 다니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를 베어내고 말았다. 불같이 화가 난 아버지가 “누가 벚나무를 벤 거냐!”하고 으르렁댔다. 소년은 말했다. “제가 그랬어요, 아버지.” 그러자 아버지는 소년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갈기며 화를 냈다. 소년이 물었다, “조지 워싱턴의 아버지는 정직한 아들을 칭찬해줬는데 아버지는 왜 저를 혼내시나요?” 아버지는 여전히 불같이 화를 내며 쏘아 붙였다. “조지 워싱턴의 아버지도 나처럼 베어지는 나무 위에 있었다더냐?”

 

July 4, 2012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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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6. 27. 22: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32457

 

요즘 미국 최대 뉴스 중 한 가지는 단연 제리 샌더스키의 아동 성폭행 관련 재판 내용이다. 특히 판결을 앞둔 지난 일주일간 케이블 뉴스 전문 채널 CNN은 거의 온종일 매시간마다 그와 관련된 보도를 하거나 재방송을 내보냈다.



 샌더스키는 펜실베니아 주립대에서 4년간 풋볼 선수로 활동했고 같은 대학에서 풋볼 코치로 그의 긴 풋볼 지도자 이력을 이어 나갔다. 1977년 그는 ‘The Second Mile’이라는 아동 보호 단체를 조직하여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 단체에 소속한 불우한 청소년들 중에서 그의 ‘먹잇감’을 찾아 냈을 것이다.



 1998년 그가 대학 구내에서 아동을 성추행한다는 내용이 접수됐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1999년 그는 32년간의 풋폴 코치 생활을 접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2000년 대학의 샤워실에서 샌더스키가 소년을 성폭행하는 장면이 청소부에게 들켰지만 이 일에 경찰이 개입되지는 않고 흐지부지 지나갔다. 2001년에는 대학의 보조코치가 역시 샌더스키가 샤워실에서 아동 성추행을 하는 장면을 발견해 대학에 보고했지만, 어떠한 사법적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2011년 그는 여러 명의 피해자들에 의해 제소됐고 바로 지난주 그는 수갑을 차고 수감됐다. 그에게는 수백 년의 수감 판결이 떨어졌다.



 범인은 감방으로 들어갔지만,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샌더스키 뿐만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경고 등’이 켜졌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샌더스키를 감싸고 돌던 펜실베이니아 주립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풋볼 코치를 지키기 위해서 대학측은 이름 모를,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이 성폭행을 당할 때 이를 ‘모른 척’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나는 악인 샌더스키보다, 그가 명예롭게 활약하도록 방조했던 대학측과 이렇게 돌아가는 인간사회 전체에 대해서 슬픔을 느끼는 편이다.



 샌더스키의 아동 성추행 관련 재판 보도를 매일 지켜보면서 나는 중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 여자 중학교의 방송반원들은 인물이 훤칠한 학생들이었고 나는 그런 방송반 ‘언니’들을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방송반을 담당하던 음악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너 방송반에 들어와라.” 나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영문도 모르는 채 방송반원이 됐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월요일 전체 조회시간에 마이크를 설치하든가, 매일 아침 저녁 국기 게양과 하강 방송을 내보내는 일이었다. 우리들은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방송실에 모여서 공부를 하거나 심부름을 하곤 했다. 언젠가는 나 혼자 방송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뒤에서 나를 안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는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갔다.

며칠 후에는 정말 예쁜 방송반원과 둘이 있는데 선생님이 그 친구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려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있기가 너무 민망하고 무서워서 얼른 방송실 밖으로 도망을 쳤고, 조금 후에 내 친구도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허둥지둥 도망쳐 나왔다. 우리는 둘이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언젠가 내가 너무나 우울하고 근심스러워서 상담 선생님께 이 일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상담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조심하라고.

 그 후로 나는 늘 선생님의 두 눈을 빤히 노려보며 그곳을 드나들었다. 내가 늘 사나운 표정을 지어서인지 그는 나를 건드리지 못했고, 나는 방송반에서 ‘혁혁한’ 활동을 했다는 구실로 졸업식장에서 영예로운 공로상까지 받고 그 학교를 떠났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난 후에도 그에 대한 이상한 소문은 다른 학교에까지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세월을 겪으며 성장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하지만 우리들은 누구에게 함부로 발설도 못한 채 영문 모를 폭력과 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샌더스키는 저주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샌더스키가 설치고 돌아다니도록 방조한 이 사회 역시 무거운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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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2. 6. 21. 06:1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28321

그는 스포츠를 좋아했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으며 아내와 두 딸을 끔찍이 아낀 성실한 가장이었다. 그가 43세의 젊은 나이에 맹장염 합병증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을 때, 미국은 미술계의 별 하나를 잃었다. 지난 6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는 20세기 초반의 미국 미술사를 장식한 사실주의 화가, 조지 벨로우즈 (George Bellows, 1882-1925)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국립 미술관에 가면 서쪽 건물 가운데 벽에 벨로우즈의 작품 걸개그림이 크게 걸려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다. 얼핏 보면 상투적인 귀족 소녀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소녀가 입고 있는 옷소매가 아버지의 옷을 물려 입은 듯 소매가 길고 허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세탁 일을 하는 소녀를, 화가는 주인공으로 담아 놓았다. 이 미술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벨로우즈가 추구하던 미술 세계가 무엇 이었을 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조지 벨로우즈를 나는 이렇게 설명 하곤 한다, "미국 회화 중에서 권투 하는 그림이 나오면 조지 벨로우즈가 정답이지." 화가들마다 즐겨 그리던 소재나 화풍이 있는데, 벨로우즈는 독보적으로 '권투'하는 장면을 많이 그린 화가이다. 이번 특별전에도 미국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던 권투 하는 장면 대작들이 여러 점 나왔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권투는 미국에서 대중들의 관람이 금지된 스포츠였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링 위에 선수들을 올려 놓고 관중을 모집하는 것이 불법이었고, 사교적인 모임에서 회원들간에 권투를 하는 것은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흥행업자들이 꾀를 낸다. 사교모임의 회원들간에 취미로 권투 경기를 한다는 구실로 경기를 열었다고 한다. 참 쓴 웃음이 지어지는 대목인데, 조지 벨로우즈는 역동적인 링 위의 선수들뿐 아니라 주변의 관중들에 대한 스케치도 잊지 않았다. 벨로우즈의 권투 그림에는 이중섭의 '황소'를 연상시키는 역동성이 흐르는가 하면,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려진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을 채운다.

 벨로우즈가 즐겨 그린 또 다른 소재는 도시와 풍요의 이면에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한창 개발되어가고 있던 뉴욕 맨하튼 외곽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어린 아이들, 발가벗은 채 강변에서 멱감기를 하는 수십 명의 빈민가 소년들. 1908년에 이 그림이 처음 공개 되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역시 벨로우즈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국립 미술관 중앙 벽에 걸린 걸개그림 속의 소녀를 들여다보면 눈빛이 만만치가 않다. 비록 허름한 옷을 입고 서 있지만 눈 속에 전 운명을 떠받치는 듯한 강인한 빛이 흐른다.

 잡지나 신문 삽화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사회성 있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학살당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민중, 독선적 전도자, 정치인 등, 그의 사회 비판 의식이 거침없이 화폭에 담겼다.

 미술관에서 '미국회화'쪽을 돌다 보면 20세기 초반의 사실주의 그림들을 지날 때, 늘 함께 전시되는 화가들을 발견하게 된다. 8인회 (The Eights) 혹은 '애시캔 (쓰레기통, The Ashcan) 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실주의 화가들 그룹이다. '애시캔'이라는 별칭은 '쓰레기'같은 빈민들을 소재로 즐겨 그렸던 이들을 비아냥거리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 진다. 조지 벨로우즈도 그들 중의 한 명이다.

 이번 특별전은 가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옮겨가고, 그 후에는 영국 런던에서 전시된다. 평생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조지 벨로우즈의 주요 작품 130점이 총망라된 기획전이다. 100 여 년 전에 활동하던 화가의 그림들이 오늘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삶의 풍경은 변해도 우리 삶의 양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벨로우즈의 그림 속에는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고, 내 이웃이 있다. 서관 1층에 위치한 극장에서 벨로우즈를 안내하는 다큐멘터리 필름도 상영해주는데, 매우 알차게 편집 되었다. 전시회에 가신다면 이 필름도 꼭 챙기시기를 당부 드린다.

 

다큐멘터리 포드캐스트 영상자료 http://itunes.apple.com/podcast/national-gallery-art-videos/id257590780?mt=2

관련 페이지: http://americanart.tistory.com/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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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ylvia

    은미씨 덕분에 또 그림구경을 하러 오랜만에 D.C에 나갈 일이 생겼네요.
    이번주는 무더위에 햇볕이 강해서 선선한 날 갈려고 해요.
    지난 주 방학을 맞아 집에 온 아이와 함께 필립스 콜랙션에 갈려고 준비를 했다가 덥다고 집으로 그냥 돌아왔답니다.
    듀퐁 써클 스타벅스 같은 빌딩에 빨간 지붕 이태리 레스토랑에 들려보세요.
    스파게티가 아주 맛있답니다.ㅎㅎㅎ
    무료한 일상에 볼거리를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12.06.21 07:47 [ ADDR : EDIT/ DEL : REPLY ]
    • 서관에서는 조지 벨로우즈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동관 옥탑방에서는 현재 바넷 뉴만이라는 추상화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백남준씨 특별전 열렸던 곳). 지난 주에 사실은 이 두가지 특별전을 보러 나갔던 것인데, 조지 벨로우즈 본 후에 뉴만을 일부러 안 봤어요. 하나의 감동을 다른 것으로 희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주 일요일이나, 혹은 가까운 시일내에 또다시 국립미술관에 나가 볼 생각이지요.

      식당 안내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스파게티는 무조건 토마토 소스 (빨간 소스)가 들어가야 먹어요. 희끄무리한것은 느끼해서 안넘어가더라구요 헤헤헤.

      2012.06.21 09:46 신고 [ ADDR : EDIT/ DEL ]

WednesdayColumn2012. 6. 13. 22:26

 

 

Grant Wood: American Gothic

까탈스럽게 정직하고 근엄한 아버지와, 늦도록 시집 안가고 버티는 딸을 보는듯한 그림이다 :-)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24320

 

다가오는 6월17일은 ‘아버지의 날 (Father’s Day)’이다. 본래 미국에서 유래된 이 날은 매년 유월 셋째 일요일에 기념된다. 한국에서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다가 1973년부터는 어머니, 아버지 모두를 기리는 ‘어버이 날’로 이름을 바꿨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일요일은 ‘어머니의 날’, 6월 셋째 일요일은 ‘아버지의 날’이라는 식으로 따로 기념을 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기 다른 날짜에 기념을 하는 이 아버지 날의 기원은 미국으로, 소노라 도드(Sonora Dodd)의 아이디어로 1910년 처음 시작되었다. 어머니 날에 교회에서 목사님이 어머니의 은혜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듣던 소노라는 아내를 잃고 혼자 힘으로 자신을 비롯한 자녀들을 성실하게 키워낸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래서 6월, 아버지의 생일에 그를 기념하는 ‘아버지 날’ 행사를 치렀다. 이렇게 발단이 된 ‘아버지 날’은 1972년 닉슨 대통령 시절에 국가적인 기념일로 선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일전에 내가 소속한 교회 합창단원들에게 교회에서 협조를 부탁했다. 아버지 날을 기념하는 자료를 만들고 있으니 ‘아버지와 나’의 모습이 함께 들어있는 사진 파일을 각자 하나씩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무심코 이 메일을 본 나는 가슴이 먹먹해 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평생 아버지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거나, 업히거나, 아버지와 손을 잡아 본 기억도 없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미 20년 전에 돌아가셨다. 내게는 교회에 보내줄 아버지와의 사진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의붓자식이라거나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것도 아니다. 나는 평범한 가정의 아주 성실한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는 내 두 아이의 재롱을 보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친지 분들은 아버지가 약주만 한 잔 하시면 자식들 중에서 특히 나에 대한 자랑을 하셨다고 이야기를 전한다. 둘째 딸이 어찌나 고집이 세고, 강인한지 아마 사막에 갖다 던져 놓아도 잘 살아 낼 거라며 내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아버지의 상냥한 칭찬의 말씀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나와 마주치면 훈계로 일관했으며 나의 문제점들을 지적하셨다. 아버지는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지만, 아버지는 나에 대해서 수치스러워 하실 거라는 막연한 느낌을 항상 안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정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으로 나눠지고 말았다.

 아버지께 무척 죄송한 일이 있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인데, 그때도 나는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웠다. 하루는 친정에 전화를 걸으니, 엄마가 아닌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시는 거다.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너무나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그만 불에 데인 듯 전화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 때 그 일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히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딸 자랑을 하시면서 내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셨을 텐데.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오월의 어머니 날과 유월의 아버지 날 중에서 전화통화 숫자가 많은 날은 어머니 날이다. 사람들이 어머니 날에 집에 전화를 걸고 인사를 하는 숫자가 아버지 날보다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수신자 부담, 콜렉트 콜의 숫자는 어머니 날 보다 아버지 날에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콜렉트 콜이 가장 많은 날이 아버지 날이다.

 프랑스 속담에 ‘아버지는 자연이 선물한 금고’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는 지갑 속에 지폐 대신에 자녀의 사진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자식이 생기면 지갑 속의 현금은 탈탈 털리고, 가족을 위해서 끝없이 돈을 벌어다 줘야 하는 화수분 같은 존재인 아버지. 아버지의 날이 다가온다. 이번 주 일요일이다. 콜렉트 콜이라도 좋으니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보자. 나는 천국에 계신 내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야 할까보다. 천국 전화 번호 아시는 분?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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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inker

    놈들도 나에게 콜렉트 콜이라고 전화를 하겠지?

    2012.06.14 14:26 [ ADDR : EDIT/ DEL : REPLY ]
    • 글쎄....지팔님은 아버지날이 언제인지 모를걸. 나라를 지키느라 바빠서. 그리고 찬홍님은 탐험중이므로 전화를 걸기가 어려울것으로 보이는데...

      그대신 열 아들 부럽지 않게, 제가 전화를 드립죠, 녜... :-) (잘키운 마누리 하나 열 자식 안부럽다!)

      2012.06.16 09:27 신고 [ ADDR : EDIT/ DEL ]
  2. sylvia

    올해 초 가족여행으로 시카고에 갔을때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이 그림을 보았지요.
    얼마나 강인하고 인상적이었던지 돌아 와서도 한동안 머리속에서 이그림이 떠나지 않았어요.
    시카고 미술관이 어찌나 크고 그림이 많았던지 다시 한번 가서 보고 싶네요.
    개인 적으로 고호를 가장 좋아하는데 많은고호 초상화를 봤지만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은 초상화 앞에 서있으니 고호와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며서 눈물이 나더군요
    다시 한 번 이 그림으로 추억속 의 여행으로 떠나게 해주어서 감사 드립니다...

    2012.06.21 08:03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2008년 8월에 시카고에 갔을때 저도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지요. 아,그때 대충대충 보고 지나간 것이 영 후회가 되어서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어요. 아이오와에 정말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집도 있다는데요, 거기도 가 보고 싶어요. :-)

      2012.06.21 09:42 신고 [ ADDR : EDIT/ DEL ]

WednesdayColumn2012. 6. 6. 20: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20678

우리 집 개, 왕눈이는 질투심이 무척 강하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집안에서 “왕눈아!”하고 부르면 들은 척도 안하고 무시하지만 내가 “찬홍아!”하고 우리 아들을 부르면 번개처럼 달려와 내 품에 안기고는 다가오는 찬홍이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엄마’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뜻이다. 왕눈이는 내가 집에 있는 동물 인형을 품에 안고 예쁘다고 해도 그 동물인형을 물어뜯으러 든다. 왕눈이는 나를 중심에 놓고 그 외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질투를 드러낸다.



 개가 질투를 한다고? 개의 질투에 대해서 학자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질투’란 매우 발달된 감성체계이고 동물들에게는 이런 감성이 없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동물에게도 공정함, 질투, 시기와 같은 감성이 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랑게 (Range)는 몇 해 전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실험을 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손!’하고 외쳐서 개가 앞발을 악수하듯 내밀게 하는 훈련을 시키곤 한다. 개들은 상으로 개 과자를 받을 때나 아무 상이 없을 때나 앞발을 척척 잘 내밀어준다. 그런데 ‘누렁이’와 ‘워리’ 이 두 마리 개를 앉혀놓고는 유독 한 놈에게만 개 과자를 상으로 준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 몇 번은 워리도 순순히 앞발을 내민다. 하지만 워리가 보는 앞에서 누렁이만 혼자서 개 과자를 계속해서 받아먹자 워리의 태도가 달라진다. 워리는 앞발을 내밀지 않고 모른 척 한다. 골이 난 것이다. 워리가 앞발을 안 내밀고 시위를 하는 이유는 단지 ‘개과자’ 때문이 아니다. ‘불평등’ 때문이다.



 에모리 대학의 프란스 드 왈(France de Waal)이 원숭이들을 데리고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원숭이들에게 작은 돌멩이 한 개를 사람에게 건네주는 훈련을 시켰다. 원숭이가 작은 돌멩이 한 개를 실험자에게 건넬 때마다 원숭이는 오이조각 한 개씩 상으로 받았다. 오이는 원숭이들이 즐겨먹는 간식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원숭이는 아주 특별한 상을 받았다. 원숭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포도를 상으로 준 것이다. 평소에 오이 한 조각을 상으로 줘도 신이 나서 돌멩이를 실험자에게 건네주던 원숭이들은 한 놈만 아주 특별한 ‘포도’ 상을 받자 골이 났다. 이들은 돌멩이를 실험자에게 건네주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마침내는 상으로 받은 오이조각마저 실험자에게 집어던지고 만다.

 



 나는 요즘 우리 개 왕눈이에게 새로운 재주를 한 가지 가르쳤다. 내가 ‘손!’하고 외칠 때마다 차례차례 앞발 두 개를 내 손에 맡기는 재주다. 개들은 앞발 하나는 잘 내밀지만 두 발 모두 내미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새로운 재주를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왕눈이 앞에서 왕눈이가 극도의 질투심을 드러내고 경계하는 동물 인형을 데리고 앉아서 ‘손!’하고 외치고 인형의 한 발을 내 손으로 잡은 후에, 또다시 ‘손!’하고 외치고 나머지 한쪽 발도 내 손으로 잡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몇 번 반복한다. 그 후에는 찬홍이를 불러다놓고 역시 ‘손!’을 외쳐서 오른손, 왼손을 모두 내밀게 했다. 왕눈이는 분노에 몸을 떨며 내가 찬홍이의 오른손, 왼손을 차례차례 잡아주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왕눈이를 내 앞에 앉혀놓고, “왕눈아, 손!” 하고 외쳤다. 왕눈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자신의 앞발을 차례차례 내 손에 맡겼다. 물론 나는 “우리 왕눈이가 최고야!”하고 외치며 녀석을 쓰다듬어주었다.

 인형이나 찬홍이 등 왕눈이의 질투심을 유발시키는 대상을 이용한 나의 왕눈이 교육 작전은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동물 학자들은 동물의 불공정에 대한 의식 외에 동물의 질투심을 이용한 ‘학습’에 관한 실험을 해도 좋으리라.

 

2012,,6,5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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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inker

    왕눈이가 그렇게 질투심이 강했나? 재미 있는 훈련을 시켰네.

    2012.06.08 09:09 [ ADDR : EDIT/ DEL : REPLY ]
    • 왕눈이의 '심술'은 나이 먹을수록 '완고'해지는것도 같아. 사람도 나이 들수록 그러하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일수도 있고, 어딘가에 '고착'되는 것일수도 있고.

      2012.06.08 13:58 신고 [ ADDR : EDIT/ DEL ]

WednesdayColumn2012. 6. 6. 20: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13706

 

5월28일자 시사 주간지 ‘타임’에 워싱턴DC와 인근 지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스케치가 실렸다. 요즘 워싱턴DC에서는 Uber Washington(위버 워싱턴)이라는 고급 택시 사업이 활황이라고 한다. 홈페이지(www.uber.com)를 찾아 검색해보니 on-demand private driver(맞춤형 개인 기사 서비스)라는 설명이 나온다.


스마트 폰으로 디시 시내 어디서나 차를 불러서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쉽게 다닐 수 있는 운송 체계인데, 사용되는 차들이 고급 세단이나 리무진 급이다. 시내에서 덜레스 공항까지는 80달러, 볼티모어 공항까지는 115달러 정액제다. 그 외에 시내 구간별로 예상되는 차비 안내가 나온다.



 이 위버 워싱턴 운송 시스템과 연관되어 ‘Uber Washingtonian(위버 워싱토니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말하자면 고급 택시를 이리저리 타고 돌아 다닐 만큼 경제력이 밑받침되는 워싱턴지역 사람들, 혹은 독일어 위버(Uber)의 본뜻인 ‘초월적인, 대단한 (super)’을 그대로 살려 ‘남들을 능가하는, 굉장한, 잘 나가는’ 워싱턴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리라.



 정말 워싱턴 사람들이 그렇게 잘 나가는가? 2011년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인구 별 예상 수입 중간점(median)이 가장 높은 카운티 20군데 중에서 DC인근 지역이 열 군데를 차지한다. 최고는 라우든(Loudoun) 카운티로 중간 연봉이 12만불 정도 된다. 중간값이란 수입액을 최하부터 최고까지 나열한 수치 중에서 중간에 위치한 것을 가리킨다. 모든 값을 더하여 나눈 평균과는 다른 것이다. 3위 패어팩스(Fairfax)카운티, 4위 하워드(Howard)카운티가 있고 그 외에도 알링턴, 스태포드, 몽고메리 등이 있다.



 미국경제가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이런 침체국면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 워싱턴DC 지역인데 그 이유는 이곳의 일자리들이 대개 연방 기구나 연방 산하기구와 관련된 것들로 경기는 침체되어도 연방 예산이 줄어 들지 않는 한 크게 일자리가 줄지는 않는다는 원리를 보여준다.



 미국의 다른 대도시보다 평균 수입이 높고 실업율이 가장 낮은 곳이지만, 워싱턴의 빈곤율(20%) 역시 미국 평균(15%)을 훨씬 웃돈다. 공교육 시스템은 전국 최악이고, 범죄율도 다른 부유한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DC에 거주하는 백인들은 흑인들보다 1인당 수입이 3배 정도 높다.



 최고 연봉자들이 몰려 사는 곳에서 빈곤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다는 것은, 이곳에서 빈부의 격차가 매우 높아서 잘사는 사람들은 리무진을 타고 다니며 세련된 도시생활을 즐기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가난함을 의미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최고의 사립 학교에 보내고, 빈곤층은 미국의 최악이라는 공립학교에 희망도 없이 자녀들을 보낼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가족, 친지가 워싱턴을 방문하면 대개 우리 집에 머물면서 시내 구경을 한다든가, 내가 직접 내셔널몰 지역의 명소를 안내해 주게 된다. 방문객들이 워싱턴에 와서 보는 풍경은 공원이 잘 정비된 내셔널 몰 일대의 국립 박물관들, 관공서 건물들, 말끔한 오피스 빌딩들과 역사적인 공원 등이다. 이들은 워싱턴DC가 공기 맑고 한적하며 잘 정비된 도시라는 평을 한다. 나는 이들을 시 외곽의 분위기 삭막한 빈민가, 밤이 되면 가로등도 없어서 깜깜한 거리로 일부러 안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리무진 불빛이 흐르지 않는 이면의 어둠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방 정부에서 일하거나 의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교양’을 갖추고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자가용 승용차 대신에 ‘위버 워싱턴’ 택시나 메트로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을 이용하고, 세계 정세에도 관심이 많아서 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의 행적에도 밝은 이 세련된 ‘위버 워싱토니안’들은 그러나 바로 이웃 빈민가의 사람들이나 동네 공립학교의 실정이 어떠한지 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한 시민 운동가가 쓴 소리를 날린다.

 

2012, 5,23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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