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 – 그대 안의 호랑이
먼 나라로 팔려가는 동물들을 싣고 가던 배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좌초하게 된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 어미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가족을 잃은 소년이 구명정에 오르게 되고, 호랑이 한마리가 뒤늦게 합류한다.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우랑우탄을 죽이지만,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구명정에 남겨진 인도 소년과 호랑이.
소년은 어떻게 해서든지 호랑이를 처치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막상 호랑이가 물에 빠져 죽을 지경이 되자 호랑이를 구해내고 만다. 그로서는 한배를 탄 생명을 없앨수는 없는 일. 이로부터 소년은 호랑이를 달래가며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데 몰두하고 이들은 함께 모험을 겪게 된다.
2001년 소설로 발표된 얀 마텔 (Yann Martel) 의 원작소설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가 대만계 이 안 (Ang Lee)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들에게 다가 왔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비극적 사랑을 그린 브록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으로 이미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이 안감독의 우리에게 친근한 작품으로는 ‘와호장룡,’ ‘색, 계’, ‘음식남녀’등이 있다. 내가 보아온 이안감독의 특징이라면, 일단 그가 어떤 소재를 잡으면 그 소재가 갖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이나 색감에 충실하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인데, 이 안감독의 영화적 스케일은 ‘파이의 이야기’에서 더욱 확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2월 24일자로 발간된 주간지 타임에서는 2012년 최고의 영화 열편중에 ‘파이의 이야기’를 3위로 소개하고 있는데 편집자는 이 영화가 ‘아바타’의 3D (3차원) 입체 영상과 ‘유인원 행성의 도래 (Rise of Planet of the Apes)’에서 보여준 컴퓨터 그래픽 기술 두가지를 합쳐야 가능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하고 있다.
즐거워야 할 금요일 아침에 동네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나 스무명의 무고한 유치원생, 일학년 어린이 들이 희생당하고, 이들을 보호하던 선생님들이 희생당하고,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이미 우울감이 극에 달해서 선택한 영화. 영화는 따뜻하고 꽃으로 뒤덮이고 순수함으로 가득한 인도의 풍광을, 망망대해를 떠도는 절망적인 시간을, 그리고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감싸는 푸른 하늘과 깊은 바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 반추할만한 시간을 제공한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망망대해를 사나운 호랑이와 싸우며 견뎌야 하는 소년 ‘파이’는 우리에게 전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희망을 놓지 말라고. 신을 발견할수 없을때에도 신께 기도하고, 신이 의심스러울때조차 신의 사랑을 믿으라고 속삭인다.
영화 말미에, ‘파이’가 대치하고 있던 호랑이가 ‘파이’ 자신이었을수도 있다는 암시가 나온다. 호랑이가 실재 했는가, 아니면 ‘파이’의 또다른 자아였는가는 분명치 않다. 이안 감독은 원작 소설에 충실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그 호랑이가 누구였는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혹은 소설을 읽은 독자가 개별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안개낀 하늘을 향해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하고 내가 싸워 나를 이기자. 그래서 지금보다 더 굳센 나를, 옳은 나를, 나은 나를…” 어릴때, 아버지가 붓글씨로 써서 액자로 만들어 언니와 내가 쓰던 방에 걸어주셨던 윤석중 선생님의 시. 아버지는 자신의 서예 작품에 윤석중 선생님의 낙관까지 받아 오셨었다. 어린 나는 뜻도 모르고 이 시를 종알거리곤 했는데, 영화속 호랑이를 보면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나는 나의 공포와, 나의 태만과, 나의 나약함과 싸워 이기고 이것들을 길들여야 하리라. 그리고 희망을 찾아 나아가야 하리라, 삶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온가족이 다함께 가서 각자의 상상속에 묻혀 함께 즐길수 있는 아주 좋은 영화. 연말 가족 나들이용으로 영화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를 추천드리고 싶다.
2012,12,19
Life of Pi 책 굉장히 재밌다. 동물 행동학 관련 얘기도 나오고. 영화는 2012년에 본 영화들 중에서 최고. 찬홍이하고 함께 가서 다시 또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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