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10. 11. 01:4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502176


“꽃과 같이 곱게 나비 같이 춤추며 아름답게 크는 우리, 무럭무럭 자라서 이 동산의 꾸미면 웃음의 꽃 피어나리!”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우리 시골집 앞마당에 초저녁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할아버지가 매일 우리들을 위해서 어린이 라디오 방송을 틀어 주셨는데 모두들 그것을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뜻도 잘 모르면서 고모들이나 언니, 오빠가 부르던 그 노래들을 따라서 불렀다. 

 어릴 때 나는 할아버지의 라디오 안쪽의 어딘가에서 베짱이나 여치같은 아주 작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는줄 알았다. 고운 목소리로 누군가 얘기하는 현장을 잡기 위해서 라디오 뒷쪽의 구멍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나는 피비에스(PBS)를 좋아하고, 빅버드(Big Bird)도 좋아하지만 중국에서 빚까지 얻어다가 피비에스에 대한 정부 보조를 해 줄수는 없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의 이같은 발언은 피비에쓰 뿐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새서미 스트리트(The Sesame Street)’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 줬다. 피비에스가 미국 재정 적자의 원흉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 방송을 본 한 어린이가 롬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트 롬니씨, 내가 지금은 여덟살이라서 자주 보지는 않지만 나도 한 때는 새서미 스트리트의 팬이었습니다.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이가 생기면 내 아이에게 새서미 스트리트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새서미 스트리트를 없애지 마세요. 앨라배마에서 세실리아.” 이 소녀는 공책 종이에 연필로 쓴 편지의 말미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정확히 밝혔다. 

 1969년 방송을 시작한 피비에스의 어린이 프로그램 ‘새서미 스트리트’는 44년간 방송을 이어 오는 동안 미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믿을만한 어린이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동네 아이들 틈에서 할아버지의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그 시각에 미국에서 자라나던 내 또래 어린이들은 텔레비전 속의 친구들에게서 알파벳과 셈하기와 친구 사귀기등을 배웠으리라. 

 이번에 롬니의 발언으로 새삼 화제가 된 새서미 스트리트와 나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나와도 40년 가까운 인연인 셈이다. 우리 집에 처음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 왔을때 몇 개 안되는 채널 중에는 주한 미군들을 위한 방송 채널도 하나 있었다. 말을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이 ‘그림’만 보던 그 미군 방송에서 커다란 새와 인형들과 인종들이 뒤섞인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췄다. 나른하고 달콤한 피리소리 같던 타이틀 곡은 무허가 집, 쓰레기 냄새가 넘치던 골목에 살던 내게 알수 없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곤 했다. 

 1980년대, 대학에 들어가니 미국인 교수가 한 분 있었는데 그 분이 영어 실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미군방송을 자주 보라고 권했고, 특히 새서미스트리트가 좋다고 안내해 줬다. 1990년대에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때 전셋집을 전전하던 내가 일부러 몫돈을 들여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샀던 이유는 당시에 한 세트로 묶어서 판매하던 ‘새서미 스트리트’ 교육용 비디오를 내 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텔리비전 수신도 잘 안되던 안양의 산골짜기 집에서 매일 그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앉아서 내 두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나도 배우고 그랬다. 후에 내가 초등, 중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의 자산이 바로 그 새서미 스트리트 교육용 비디오였다. 나는 아직도 새서미 스트리트에서 소개된 아름다운 노래들을 가사 정확하게 부를 수 있다. 나는 영어 교육 방법을 새서미 스트리트에서 배웠다.

 새서미 스트리트는 단순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것은 문화가 척박한 초강대국 미국이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교육 문화 자산이다. 피비에스나 새서미 스트리트 지원을 중단한다는 것은 프랑스 정부가 루브르 박물관 보수 공사를 안하고,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없애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교육적으로는 학교를 없애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문화, 교육을 홀대한 나라의 미래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빅 버드가 없는 미국은 쓸쓸할 것이다. 


2012, 10,10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