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77022
침팬지 ‘갑’은 평소에 별로 개성이 없고 기운도 없고 그래서 가족 내부에서도 무시를 당하며 살다가 결국 마을에서 쫒겨났다. 그는 혼자 떠돌다가 다른 침팬지 집단의 눈치꾸러기로 합류했다. 집단의 가장 낮은 곳에서 구박을 받으며 살던 ‘갑’은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중간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권력의 상부로 이동한다. 그 사이에 몇몇은 늙어 죽었고, 혹은 인간에게 잡혀 갔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상부에 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날 대장 침팬지가 죽었을 때 ‘갑’은 자신이 이제 대장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침팬지 ‘을’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 힘으로 ‘갑’을 제압해 버리고 그 날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가 아주 힘이 세고 사나웠기 때문에 아무도 저항할 수 없었다. 침팬지 ‘병’은 별로 힘이 세지 않았으므로 대장 ‘을’ 앞에서 얌전히 지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을 모았고, 때를 기다렸다. 어느날 이들은 힘을 모아 ‘을’을 공격했고 이 싸움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대장 ‘을’은 피투성이가 되어 마을에서 쫒겨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병’의 리더십이 시작되었다. ‘병’을 도운 침팬지들이 권력을 함께 누렸다.
이 이야기는 우화가 아니다. 동물 학자들이 수년간 침팬지 집단의 삶을 관찰하면서 발견하고 기록한 것으로 시카고 대학의 진화심리학자 마에스트리피에리(D. Maestripieri)가 최근 발간한 책 ‘영장류의 게임 방법(Games Primates Play)’에 소개된 사례다. 이 침팬지 마을 이야기를 인간 세상으로 옮겨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갑순이는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상사와 동료들이 던지는 온갖 굳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언젠가 자신에게도 동등한 기회가 올거라는 희망으로 양심적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그가 간신히 남들보다 한참 늦은 진급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에서 갑자기 나타난 ‘을순이’는 별다른 노력이나 공적도 없이 덜컥 간부자리를 차지한다. 을순이의 집안 배경이 굉장하다거나 학력과 이력이 뛰어나다거나, 혹은 그의 패거리가 무시무시하다는 소문도 있다.
‘병순이’는 갑순이와 마찬가지로 학력도 집안 배경도 내세울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는 사회성이 뛰어나서 주변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설득력이 있다. 병순이는 때를 기다렸다가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을순이’를 제거하고 조직을 장악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다지 낯선 얘기는 아니다. 사회성이 있는 동물 집단이라면 그것이 침팬지이거나 인간이거나 집단 안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이고, 일상 생활에서 나 자신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이어 이번주에는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다. 양당의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저녁 쟁쟁한 정치인들의 연설이 이어지면서 이들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을 들여다보는 일도 흥미진진하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공화, 민주 양당의 전당대회와 한국에서 진행되는 대통령 선거전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정치는 혼자서 때를 기다린다거나 완력이나 부정한 수단으로 혼자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서로 타협하고 의논하며 리더를 정하고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리더도 그 무엇도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위에 소개한 침팬지 집단과 인간 집단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 침팬지들은 누군가 힘있는 놈이 나타나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힘 자랑을 할 때 대개 그를 대장으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투표’를 통해서 ‘나의 대장’을 직접 뽑을 수 있다. 비록 내가 힘이 없고 리더십도 없고 별볼일이 없는 존재라고 해도 나 역시 내 한 표를 나보다 힘 세고, 잘난 친구와 동등하게 행사할 수 있다. 여러 명의 후보가 있을 때 누가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누가 ‘약자’를 보호할 사람인지 가늠해 보고, 위대한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 다행이다, 내가 침팬지가 아니고 인간이라서. 다행이다, 나도 투표 할 수 있어서.
20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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