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6. 6. 20:2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9815

 

인간의 영혼을 거두는 천사가 있었다. 하루는 어느 여인의 영혼을 거두러 갔는데 그이는 쌍둥이 아이를 낳고 누워있다가 저승에서 온 천사를 발견하고는 사정을 했다. 아이들 아버지는 사흘 전에 죽었고, 이 신생아들을 돌봐줄 이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 제발 목숨을 거두지 말라고. 천사는 여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한지라 빈 손으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하느님의 명을 거역한 그는 벌을 받아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 떨어지는데, 그에게는 세 가지 과제가 주어진다.



“인간에게 무엇이 있는지, 인간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깨닫고 오라.”



 헐벗은 채 지상에 떨어진 그를 처음 발견한 이는 가난한 구두장이였는데, 그가 옷을 벗어 이 천사에게 걸쳐주고, 부부가 함께 그에게 밥을 먹인다. 천사는 이들에게서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을 발견하고 미소 짓는다.


구두장이의 조수로 일하던 천사는 구두를 맞추러 온 부자 사나이의 등 뒤에 서있는 동료 ‘천사’를 발견한다. 부자 사나이에게 필요한 것은 몇 년 신어도 해지지 않을 튼튼한 구두가 아니라 오늘 저녁, 시신에게 신겨줄 신발이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영원히 살 것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천사는 깨닫는다. 6년이 흘렀다. 구두 가게에 한 여자가 쌍둥이 아이들에게 신길 구두를 맞추러 찾아온다. 천사는 그 쌍둥이 아이들이 6 년 전에 한 산모가 죽으면서 남긴 아이들임을 알아본다. 돌봐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둘 다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인간은 부모보다는 신의 섭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지상에서 6년간 머물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인간은 ‘사랑’을 갖고 있어서 살아있는 것이며, 정작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며,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면 그 안에 ‘살아 있는 신’이 있어 사는 것인데 살아있는 신은 ‘사랑’이다.


 위의 이야기는 톨스토이 민화 중의 하나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간추린 것이다. 영문으로는 ‘What men live by’라는 검색어를 치면 웹에서도 영어 번역문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어머니 날’이었던 지난 주말, 나는 개를 끌고 동네 산책을 나간 길에 식품점에 들러서 간단한 장을 보고 구석의 커피점에서 냉커피를 한 잔 샀다. 개는 가게 앞에 묶어놓은 채였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개가 잘 있는지 유리창 밖을 내다 보았다. 우리 개 왕눈이가 묶여있는 자리에 웬 사람이 등을 구부리고 뭔가 하는 것이 보였다.


개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굽어진 등과 그가 식품점 점원들이 입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 정도가 보일 뿐이었다. 커피를 받아가지고 나오니 평소대로 개가 펄쩍펄쩍 뛰면서 나를 반겼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개를 묶어놓은 자리에 놓여진 물 한 그릇. 누군가 우리 왕눈이 먹으라고 물을 한 그릇 떠다 주고 자리를 떴던 것이다. 길에 묶여 있는 개가 딱해 보여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 한 그릇을 떠다 놓고 가는 어떤 낯 모르는 사람의 굽어진 등 위에 하늘의 빛이 어리고 있음을 나는 흘끗 본 것도 같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5월은 감사와 은혜의 달인 듯 하다. 어머니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고 이어서 아버지 날도 오고 그런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은 것도 같다.



 이 세상을 온전하게 굴러가게 하는 이들은 특별한 아무개가 아닌, 내가 살면서 수없이 스치거나 스치지도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지만 늘 문 앞에 우편물을 갖다 주는 우편 배달부나 새벽의 신문 배달원, 새벽 세시면 빵을 굽는 우리 동네 식품점 점원. 밤새 하이웨이를 달리는 물품 트럭 운전사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그 보이지 않는 손길에서 나는 이따금 신의 시선과 숨결을 느낀다. 그 찰나의 각성의 순간에 나의 등 허리도 문득 빛날지 모른다.

 

2012, 5,16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