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1954
매년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미국 전역에서 걷기에 재미들린 사람들이 워싱턴DC에 모인다. 이들은 남들이 다 잠이 든 새벽 3시부터 조지타운에서 시작되는 포토맥 강변 수로를 따라서 하루에 100 킬로미터 행진을 한다. 이들이 100 킬로미터를 행진하여 다다르는 최종 목적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 국립 공원. 이것이 자신 없는 사람들은 아침 10시에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여 역시 하퍼스페리를 향해 걷는다.
1974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 내가 처음 참가하게 된 것은 지난해의 일이었다. 작년에 이 지면에 글도 쓰고, 주말 특집으로 행사 소개도 한 적이 있다. 지난 해에는 아들과 함께, 올해는 동행 없이 나 혼자였다. 하지만 350여명의 참가자들이 나의 길동무였다.
올해는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오후부터 비가 내릴 것이 예보됐다. 날도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작년에는 발걸음 가볍게 50 킬로미터를 마쳤는데, 올해는 어쩐지 처음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이미 절반 지점부터 나는 절름거리기 시작했고, 길에서 잠이 쏟아졌으며, 급히 먹은 샌드위치에 체한 듯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도착 지점은 한 없이 멀었다. 사람들이 절름거리는 나를 추월하여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앞에 차례차례 두 사람이 지나갔다.
한 사람의 셔츠 등판에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가 선명하게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는 문구였다. 고통은 순간이지만 견디기가 참 힘들어 보였다. 나는 그래도 이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또 한 사람이 나를 지나쳤다. 그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 중이었다. “난 지금 걷고 있어. 남편은 중간에 포기하고 나갔어. 지금 집결지에서 뜨거운 음식과 커피를 먹으며 쉬고 있어.” 누군가 걷기를 중도 포기하고 집결지에서 편히 쉬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게다가 다리가 잘 못 되었는지 나는 지금 절름거리고 있는데, 이런 최악의 상태에서 완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신의 계시다. 중도포기해도 살 길이 있다는 신의 계시임이 틀림없다. 이제 그만 걷자.’
그렇게 4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10킬로미터를 더 걸으면 목적지였다. 어쩐 일일까? 생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견디고 꾸역꾸역 걷고 나자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마신 뜨거운 커피 덕분인지, 30여 분간의 휴식 덕분인지 나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다리는 여전히 절름거렸지만, 그래도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그래서 중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접어서 강물에 날려보내고 나는 다시 마지막 10킬로미터의 여정에 올랐다.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숲은 검게 물들었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날 저문 숲 속 길을 걸었다. 걷다가 다리의 고통이 극심해 졌을 때, 나는 ‘달리기’를 생각해 냈다. 걷기 자세에서 ‘달리기’ 자세로 바꾸자 오히려 고통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목적지까지 달리기 자세를 유지했다. 내 달리기 기록은 고등학생 시절, 체력장을 위한 1000 미터 달리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밤의 숲 속 길을 수 킬로미터를 혼자서 달리고 있었다. 절름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밤새들이 울고, 강변의 꽃들이 흰 별처럼 피어나 나의 길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도 50 킬로미터 행진을 완보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나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고통을 견뎌내는 시험 한 가지를 통과한 기분이다. 혼자서 밤의 숲 속 길을 달려본 그 기억은 내게 또 한 해를 용감하게 잘 살아낼 힘을 주는 것도 같다. 내년에도 나는 또 이 길을 걸을 것이다.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극복할 것이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
이 행사는 매년 1월 말에 등록을 받는데 등록을 시작하자마자 하루 만에 신청 마감이 되는 편이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이 행사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된다. https://www.onedayhike.org
20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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