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4. 11. 20:5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0990

 

 

 

 

 

 “여섯 살 때부터 나는 뭐든지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들었다. 50세가 될 때까지 수많은 디자인을 제작했지만, 70세가 된 후에야 동물, 곤충, 물고기, 식물, 나무들의 진정한 형상을 깨닫게 되었다. 86세가 될 때까지 나는 더욱 발전할 것이고, 90세에 예술의 진수에 좀 더 다가가 있을 것이다. 백세에 나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고, 백십 세가 되면 모든 점과 선이 살아 움직일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 남아 있을 사람들에게 내 말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살펴 주기를 부탁드린다.”


 

요즘 스미소니안 아시아 미술관인 새클러 미술관에서는 일본 화가 호쿠사이(1760-1849)의 ‘후지산 36경’ 판화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오는 6월29일까지 계속된다. 프랑스 파리의 풍경에는 뾰족한 에펠 탑이 들어가고, 일본 풍경에는 일본의 상징인 뾰족한 후지산이 많이 등장한다. 이 판화전의 작품들은 화가 호쿠사이가 애초부터 ‘후지산 36경’을 기획하고 작정하고 제작한 것이고 전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호사인 셈이다.



 

 판화가 ‘호쿠사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거리에서 포스터를 늘어놓고 판매하는 자리에서나 식당 등지에서 물거품이 일어나는 일본 파도 그림을 종종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강하게 여겨진다고 해서 미국 사람들 중에서 그 파도 그림을 방 벽에 붙여 놓는 이들도 많다. 바로 그 ‘파도그림’의 주인이 호쿠사이이다. 조선의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보다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비슷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이기도 하고 세상 만물을 다 그리고 싶어했던 그의 예술세계가 단원, 혜원의 세계와도 흡사하여 더욱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 화가가 후지산 36경을 제작할 무렵인 75세에 바로 위와 같은 술회를 한다. 여섯 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던 화가가 평생 직업 화가로 살아왔는데 70에 이르러서야 사물의 정확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 90쯤에나 예술의 진수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는 아직도 이뤄야 할 것이 많은 ‘젊은’ 화가였던 것이다.

 

 

 

 


 

최근 미국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 편 있다. ‘Jiro Dreams of Sushi(지로는 초밥 꿈을 꾼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현재도 일본의 작은 초밥 집에서 매일 손님을 위해 초밥을 만드는 85세 ‘지로’ 할아버지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나이 아홉에 집을 떠나야 했는데, 아홉 살 소년이 들은 말은 “너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었으므로 길거리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초밥 왕’이 되었다.


 

두 아들까지 모두 자신의 뒤를 잇는 초밥의 장인으로 성장시키고 일본 최고의 초밥 왕으로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은 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여전히 손님 열명이면 가득 차는 작은 식당을 지키며 아들과 제자들을 진두지휘하고 손님 접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꿈속에서조차 초밥 생각을 한다. 때로는 꿈에서 깨어나 “이거다!” 외치며 꿈 속에서 보았던 초밥을 만들기도 한다.



 

초밥에 완성이란 없으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하며, 그러므로 매일매일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고 그는 술회한다. 초밥을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므로 자신은 죽을 때까지 초밥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스크린에 비쳐지는,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맑은 표정의 자그마한 이 할아버지에게서는 어쩐지 레몬과 생강 향기가 감도는 것도 같다. 참 향기로운 사람이다.


 

벚꽃이 분분히 지는 봄 날 만난 두 명의 일본 장인 ‘호쿠사이’와 ‘지로’는 삶에 대한 긴 안목과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게 주어진 생의 절반도 살아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우리 삶에는 각자 크고 작은, 그러나 완수해 내야 할 사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이 백 살에 내가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데 나도 영롱한 삶의 열매를 만들고 사라지고 싶어진다. 이제부터라도 꿈을 꿔야 하리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