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8. 17. 18:0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44121

지난주에 극장가에 개봉된 영화 ‘The Help’는 백인 가정의 하녀로 생계를 유지했던 1960년대 남부 흑인 여성들의 끈질기고 용기 있는 삶을 스케치하고 있다. 말콤 엑스와 마르틴 루터 킹 등의 적극적이고 격렬한 흑인 인권 운동이 펼쳐지던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 흑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흑인과 백인은 ‘동등’하지만 각자 ‘분리’해서 살아가는 (equal but separate) 사회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버스에서도 백인과 흑인의 칸이 분리 돼 있었고, 식당 역시 흑백을 구분하여 손님을 받았다. 심지어 ‘변기’를 흑인이 사용하면 질병을 옮긴다고 해 집에서 일하는 흑인들에게는 별도의 ‘변소’를 사용 하도록 했다. 영화 속에서는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바깥의 ‘변소’에 갈 수 없었던 흑인 하녀가 백인 집주인의 화장실을 급히 사용했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콤 엑스의 어린 시절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학급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던 말콤 엑스는 8학년 수업 중에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그에게 선생님은 “깜둥이 (niggar)가 어떻게 변호사가 된다는 거냐”고 대꾸한다. 그날 말콤 엑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는 백인들의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공부를 하여 인권 운동가로 성장한다.



지난 7월에 백악관에 그림 한 장이 새로 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노만 로크웰 (Norman Rockwell)의 1963년작 ‘The Problems We All Live With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문제들)’이다. 나는 2년 전 여름에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노만 로크웰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감상했었는데, 이 그림이 백악관으로 왔다니 참 반갑고, 기쁘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60년 알라바마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그림 중앙에 흑인 소녀가 앞을 보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고, 흑인 소녀의 앞뒤로 경찰관들이 호위하고 있다. 알라바마 주에서 흑백차별을 철폐하고 흑인과 백인이 동일한 학교에 다니도록 조치를 취했으나 흑인 학생의 등장에 백인들은 등교 거부를 했고, 이 흑인 소녀는 일년 동안 텅 빈 학교에 혼자서 다녀야 했다.


이 사건으로부터 50년이 흘렀고, 백악관에는 흑인 대통령이 입성했다. 그러나 현재 오바마 대통령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차기 대통령 후보로 클린턴 국무장관을 점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제 그림 속의 주인공은 흑인 소녀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 자신일지도 모른다.

영화 The Help 에 나오는 흑인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나, 독학으로 인권 운동의 길에 접어든 말콤 엑스의 이야기, 혹은 일년 넘도록 등교 투쟁을 한 흑인 소녀와 위기 앞에 선 오바마 대통령.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이 먼 다른 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거나 남의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내 고향 소꿉동무는 가난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상경하여 병원 집 식모살이를 하러 떠났다. 내 또래 소녀들이 공장으로 혹은 버스 안내양의 길로 가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내가 누리는 것과 그들이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 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으러 드는 “계집애가, 여자가, 애 엄마가, 아줌마가 어딜……”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좌절감과 함께, 전의를 불태웠다.

어떤 종류의 차별 이건 간에, 차별 당할 때 팔자 소관으로 알고 순응하는 대신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사방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을 넘고자 하는 용기. 시련이 내다 보여도 한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 이 영화가 한바탕 시원한 웃음과 기쁜 결말을 선사 했듯, 우리 삶의 풍경 속에서도 차별 당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나는 꿈꾼다.

Posted by Lee Eunmee
2011. 8. 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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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Column2011. 8. 3. 19:1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36143

“일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일전에 존경하는 어느 부인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저명한 분의 부인이기도 한 그분은 부군을 내조하며 남들이 누리기 힘든 영예로운 삶의 살아오셨는데, 나의 질문에 아주 소박한 대답을 했다. “학창 시절에, 내 작품이 큰 미술상을 탔는데, 그 때가 내 삶에서 가장 기쁘고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내 생애에서 가장 가슴 뛰던 순간은? 대학시절에 쓴 단편소설로 상을 받았을 때, 그 때 온 세상에서 종소리가 나는 것 같았었다. 그 후에 내가 직업 소설가가 된 것도 아니고, 내가 열망하던 다른 것들을 성취했지만 지금 돌아봐도 그 일은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는 똑같은 질문을 나의 독자들께도 던지고 싶다, “일생에서 가슴이 쿵쿵 뛰도록 행복하고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최근에 알렉산드리아의 극장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 ‘써니 (Sunny)’는 이제 중년이 된 사람들에게 우리 일생에서 가슴이 뛰던 한때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 준다. 영화 내내 흐르는, 내가 고교생이던 시절 듣던 팝송들, 그리고 과외가 금지된 시절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입시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가던 심야 버스에서 듣던 이종환의 음악 방송.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들어 아무도 대문을 열어주지 않는 날이면 담을 타 넘어가기도 하던 나의 고3 시절. 대학 입시준비한다고 아무도 특별히 신경 써주던 사람도 없던 시절. 뉴스 시작하면 늘 1번으로 출연하던 어떤 사람. 나는 영화 속 소녀들처럼 서클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크게 사고를 치지도 못하고, 평범하고 눈에 안 띄는 고교 시절을 보냈지만, 그러나 영화를 보던 내내 영화 속 소녀들과 함께 춤추고, 웃고, 울고 있었다.

 고교 시절,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잘생긴 남자 선생님 한 분을 점 찍어 놓고 허구 헌 날 그 선생님 생각으로 한숨 지으며 3년을 보내고 말았다. 그 때 그 선생님을 짝사랑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고를 치고 다른 일로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웃는다.

 영화 ‘써니’는 얼핏, 몇 해전에 흥행했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여학생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죽거리의 소년들이 성룡의 쿵후에 미쳐 있었다면, 비슷한 시대 서울 시내 어디쯤의 교복 자율화 여고생들은 나미의 ‘빙글빙글’과 보니앰의 ‘써니’에 맞춰 춤을 추는 것에 열광했다. 말죽거리의 고교생들이 가출, 자퇴, 퇴학의 과정을 거쳐 검정고시 학원에서 청춘의 한 순간을 보냈듯, 써니의 여고생들도 집단 퇴학을 당하고, 이제 중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났다. 각자 다른 삶의 풍경으로부터.

 중년에게만 추억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팔순을 내다보는 내 어머니가 손자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인 나도 모르던 내 엄마의 이야기. “수원에 있는 양재학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계집애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반대를 하시는 거야. 그래서 집 뒤 울타리에 개구멍을 뚫어놓고, 몰래 그리로 내뺐지.” 공부를 하고 싶어 목이 마르던 엄마는, 처녀시절 아버지 몰래 몇 십 리 길을 걸어 공부를 하러 다니던 이야기를 손자에게 하다가 말고 펑펑 우신다. 나도 모르던 엄마의 역사.

엄마에게 가장 가슴 뛰고 눈부시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는 엄마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한번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들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나는 고백한다. 당신들이 내 삶에 와준 것은 분명 축복이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내게는 분명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기쁜 나만의 역사가 있다. 아마 당신들도 그러하겠지. 그러하길 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나에게는 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영화 ‘써니’. 눈부신 여름 날, 온 가족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소풍을 나가는 것도 유쾌하리라. 써니!

***





알렉산드리아 호프만센터의 에이앰씨 극장은  에스컬레이터가 엄청 높다. 무서워서 다리가 후덜덜.  극장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무섭다.

2011.8.2.수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27. 20:5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31421


“21세기를 창조할 사랑스런 젊은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창조한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며, 저항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라고.”

 2차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된 적도 있고, 유엔 인권 헌장의 기초를 작성했던 프랑스의 사회 운동가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의 아주 짧은 책 한 권 ‘분노하라! (Indignez Vous!)’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성난 사자처럼 우렁차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나는 ‘Time for Outrage!’라는 제목의 영문 번역서를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삼복 더위에 폭포수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목 그대로 스테판 에셀은 독자들에게 ‘분노하고, 저항하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분노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노해야 하는가?

 유태인으로 나치의 학대를 당했던 에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행하는 폭력에 분노한다. 압제를 받았던 자가 약자를 짓밟은 압제자가 된다면 그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그는 보는 것이다. 경제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자는 더욱 소유를 증가시키고 못 가진 자는 더욱 기초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사회구조에 그는 분노한다. 누군가가 기초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거든 그가 최소한의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분노와 저항이다.

 저항의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사회정의 실천을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이 93세의 청년은 깊은 고민의 과정을 거친 듯 하다. 그는 “어떤 형식이건 폭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실패에 불과하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폭력을 중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폭력’이며 비폭력이 인류의 역사에서 ‘비폭력적 희망’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에게 있어서 ‘폭력이란 희망에 등을 돌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는 ‘저항’을 역설하지만 동시에 ‘비폭력’을 강조한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하며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각계 인사들을 격려하는 노르웨이에서 최근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아직 배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알려진 바로는 이슬람 문화에 적대적인 노르웨이 사람이 다문화적인 것에 관용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반감을 품고 백 여명 가까운 사람들을 살상하는 사고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 범행의 배후가 누구인지, 단독 범행인지 조사가 진행되어봐야 알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린다.

 그렇다면 나는 개인으로서 무엇에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가? 에셀은 눈을 뜨고 문제를 들여다 보라고 제안한다, 그것이 시작점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쉬운 일일까? 우리는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주변의 현상을 모두 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눈을 뜨고도 못 보거나,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외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스텐리 코언 (Stanley Cohen)의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에 이런 ‘외면’의 사례들이 많이 소개가 된 바 있다.

 가족 중에 힘없는 아동이 성적인 학대를 당할 때 ‘설마 우리 식구가 그럴 리가 없어’라고 외면하는 일은 아동 성학대의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눈 앞에 일이 일어나도 못 보거나 안 본다. 전철에서 누군가가 행패를 부릴 때 이를 나서서 말려주는 대신에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일은 나 역시 저지르는 일이 아닌가? 나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나는 왜 저항하지 않는가? 나는 왜 나서서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나는 왜 희망에 등을 돌리고 모르는 척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고통 당하고 있을 때 그의 고통을 직시하고 도우려는 몸짓을 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임무다. 그것이 에셀이 말하는 분노이며 평화적 저항이다. 그것이 희망의 역사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나는 최근 93세의 청년을 만났다. 그는 내게 ‘분노하라’고 속삭였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22. 00:2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28045

 “이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한국 영화 ‘투사부일체’에서 무식한 깡패 중간 보스역의 정웅인이 뭔가 납득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습관처럼 뇌까리는 대사이다. 그는 영어도 못하면서 마치 라스베이거스에서 몇 년 살다 온 사람처럼 아는 체를 하는데 그의 천연덕스러운 무식함에 관객은 실소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며칠 전에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지하철에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데리고 올라타자 어느 승객이 개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비난을 했다고 한다. 아, 이 승객의 눈에는 개만 보였을 뿐, 그 개를 데리고 탄 사람의 상황이나 그 개의 특수성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개가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띈 존재라는 것을 알았던들 이런 소동을 피우지는 않았으련만. 눈을 떴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 모르면 봐도 못 보는 것이다.

 한국에서 방문한 엄마를 모시고 다니면서 나는 요즘 신체적으로 약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시다. 그래서 어디에 구경을 가는 일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지육신이 건강해서 남을 부축해가며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거뜬히 걷는 나로서는 거동이 불편해서 뭘 못한다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초음속 비행기처럼 행동할 때, 엄마는 달팽이처럼 느리다. 그래서 우리 엄마의 별명은 ‘달팽이 엄마’다.

 엄마를 모시고 다니면서 나는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전시장에서 신체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설을 마련해 놓았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뉴욕과 워싱턴DC, 리치먼드에 이르기까지 직접 엄마를 모시고 간 미술관들에서는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전시장 구석구석, 휠체어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따금 어느 구석 계단 몇 개를 오르내려야 하는 공간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휠체어 전용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져 있고 해당 자원봉사자의 기꺼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시실 안내 서비스도 다양하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맹인 안내견이 전시장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고, 그 외에 다른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개도 전시장에서 본 적이 있다.

 전에 내가 근무하던 플로리다의 어느 학교에서는 개가 ‘상담선생님’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개가 선생을 한다고? 투사부일체의 정웅인이라면 “이건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개는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개에게 달려가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신세한탄을 하거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으며, 개는 묵묵히 아이들을 돌봤다. 그 개는 아주 따뜻하고 자애로운 선생님이었다.

 윌리엄스버그에 가면 록펠러가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던 집이 일반 관객에게 공개된다. 언젠가 이곳에 갔을 때,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는 록펠러 집을 소개하는 전문 안내원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린 후에 우리들을 대기실에서 정원을 지나 본채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가면서 그제서야 나는 발견했다. 그가 흰 지팡이에 의지하여 우리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그는 실수 없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우리들을 집의 이곳 저곳으로 안내하며, 실내의 그림과 비품들을 마치 눈에 보이듯 설명해 주었다.

나는 록펠러 집을 구경하는 것보다, 시각장애 안내인이 눈 뜬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며 안내해주는 것에 반쯤 정신이 홀려 있었다. 그의 설명은 진지했고 성실했으며 우리들은 무
엇에 홀린 듯 그의 설명을 경청했다.

 “시각장애인이 그림 설명을 하고 집 안내를 한다고? 그것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군!” 이 세상에는 우리가 눈뜨고도 놓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14. 09:54

[살며 생각하며] 세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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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소리를 듣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오직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절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시청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영감 가득한 작가로 변신한 헬렌 켈러(1880-1968)는 그의 수필 ‘세상을 사흘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헬렌 켈러가 사흘의 시간이 허락 된다면 보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날, 그는 자신을 교육시켜준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꼽는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다고. 그 다음으로 그가 꼽는 것은 사랑하는 개, 그리고 그의 일상을 지키는 물건들. 매일 그의 손이 닿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중한 물건들. 오후가 되면 숲으로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밤이 되면 인간이 만든 조명의 아름다움을 쳐다보고 싶다고.

 둘째 날,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본 후에, 그는 인류가 수 천 년을 살아오면서 이룩한 자취들을 보기 위하여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한 곳은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에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볼 수 있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간이 이룩한 예술의 성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녁이 되면 그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아가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기와 빛과 움직임을 보고 싶다고 한다.

 셋째 날,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본 후에 그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에 뉴욕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광경은 굉장할 것 같다고 그는 상상한다. 그리고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그는 바삐 달려가 발 아래 펼쳐지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서 도시의 골목에 서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상상한다. 마지막 날 저녁이 다가오면, 그는 극장으로 달려가 유쾌하고 웃기는 연극을 보겠노라고 한다. 그는 아마도 깜깜한 어둠으로 돌아가기 전의 슬픔을 달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헬렌 켈러가 마지막 날 아주 웃기는 연극을 보겠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의 슬픔이 전이가 되어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만약에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사흘뿐 이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그 마지막 사흘을 보낼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 매일 똑같이 흐르는 일상이 갑자기 보석처럼 빛나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ESL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들 대부분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답을 했다. 어느 여학생이 가족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 눈물이 전이가 되면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눈물을 질금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헬렌 켈러는 “내일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될 것처럼 그렇게 오늘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평생 어둠 속에서 상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한 사람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한국에서 엄마가 오셨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엄마를 모시고 워싱턴 일대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닌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미술관에 가면 무료로 대여해주는 휠체어를 빌려 엄마를 태우고 다니며 엄마에게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보여드린다. 나는 엄마가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내일은 엄마를 모시고 새벽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떠난다. “엄마, 엄마가 가는 그 미술관은, 옛날에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눈을 단 한번이라도 뜰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가서 보고 싶어하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도 꼭 보셔야 해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엄마 얼굴이 가장 보고 싶을 거예요.”

*** 월요일에 급히 원고를 써서 보냈는데, 신문이 나온 날은 뉴욕에 다녀온 다음날 (수)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원고 쓰면서 벌써 다녀왔다고 쓸수도 없었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일은'으로 썼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6. 23:56

달걀을 먹는 여러 가지 방법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21962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실려 내 십대를 장악했던 글귀. 아마도 학창시절에 헤세를 읽었던 많은 이들이 이 글귀를 베껴 적으며 가슴 설레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새는 태어나기 위해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을 먹기 위해서 알 껍질을 깨야만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걀 요리는 뚝배기에 달걀 푼 것을 넣고 새우젖으로 간하여 밥솥에 쪄내는 달걀 찜이다. 그 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삶은 계란, 계란 말이, 계란 후라이 정도이다. 삶은 달걀은 소풍 갈 때 엄마가 김밥과 함께 반드시 넣어주던 특식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달걀은 매우 귀한 것이었고, 우리 할머니는 집안의 남자들, 할아버지, 아버지, 아저씨, 오빠 이런 사람들에게만 날달걀을 보약 먹이듯이 제공 했다. 날 달걀을 먹는 방법은, 쇠 젓가락으로 계란의 뾰족한 위 아래를 톡톡 두드려 부순 후에, 하늘을 보며 계란을 입에 대고 빨아 먹는 것이다.

 미국의 식당에서도 다양한 계란 요리를 제공한다. 아마도 가장 흔한 종류가 스크램블드 에그 (Scrambled Egg)일 것이다. 계란과 우유를 뒤섞어서 부슬부슬하게 지져 내는 것이다.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른자를 제외한 ‘Egg White (흰자)’로만 요리를 해달라고 주문을 할 수도 있다. 미국 식당에서 계란 후라이를 주문할 때는 ‘Overcooked (계란 노른자와 흰자가 단단하게 익은 상태)’, ‘Over Easy (한번 뒤집긴 하나 노른자와 흰자가 부드럽게 익은 상태’나 ‘Sunny Side Up (한 면만 익혀서 노른자가 볼록하게 살아있는 상태)’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란’이라고도 하는 ‘Scorched Egg’도 있다.

 식당에서 ‘삶은 달걀 (Boiled Egg)’을 주문하면, 대개는 반숙된 달걀이 조그만 술잔 같은 것에 담겨 나온다. 이 반숙을 어떻게 먹으면 우아하다는 칭송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이따금 가는 조지타운의 어느 식당에서 삶은 달걀을 주문해 먹는 손님이 많아서 이 사람들을 눈 여겨 관찰 한 적이 있다. 내가 살피니 사람들마다 이것을 먹는 방법이 제각각 이었고,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흘린다거나 반숙 계란 껍질을 다 까놓고는 쩔쩔매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반숙 먹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군!

 마침내, 어느 날 나도 용기를 내어 반숙을 주문했다. 그런데 친절한 웨이터가 계란을 내 테이블 앞에 놓더니 직접 내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어떻게 내가 난생 처음으로 미국 식당에서 반숙을 주문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일까? 어쨌거나, 그날 나는 웨이터의 도움까지 받은 덕분에 우아하게 반숙을 먹는데 성공했다.

 작은 잔에 계란 반숙이 날라져 올 때, 작은 나이프와 스푼도 함께 오는데, 스푼으로 계란 머리를 톡톡 두들기고, 나이프로 그 부스러진 부분을 도려낸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계란 껍질을 적당히 벗겨 낸 채로, 계란 스푼으로 계란을 야금 야금 파 먹는다. 그러다 보면 노른자가 나오는데 스푼으로 퍼 먹어도 되고, 아니면 빵으로 노른자를 찍어 먹을 수도 있다.

 무슨 계란 한가지 사 먹는 것도 이렇게 복잡한가? 이민자로 살아가는 일도 피곤한데, 밥 한끼 먹자고 계란 요리 이름까지 외워야 하는 일도 신세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를 익혀야 하는 일이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낯선 언어를 사용하고 먹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문화와 일체감을 갖게 되는 시작점 일수도 있다. 삶은 달걀 하나를 사 먹는 일은 내게도 엄청난 모험이었다. 모험으로 가득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알을 먹기 위해 알 껍질을 깨야만 한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30. 05:56



[살며 생각하며] 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

이은미  
기사입력: 06.28.11 18:1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NEWS&source=&category=opinion&art_id=1218601

일전에 한국의 병무청에서 최근 4년간의 병역 회피자들의 신분을 분석한 자료가 나왔다. 체육인, 유학생, 연예인, 의사가 회피자의 49.9%를 차지 한다고 한다. 신체적으로나 경제 사회적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경우가 다른 회피의 경우보다 수치가 높아서 문제가 된 듯 하다. 물론 이런 통계자료로 체육인이나 유학생, 의사들을 모두 군기피자로 색안경을 쓰고 봐서도 곤란하다.
 
내 큰 아들 얘기를 이 칼럼에서 몇 차례 적은 적이 있다. 주립 대학에 다니다가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간 녀석이다. 결국 이 녀석이 훈련소에 입소 했고, 현재 유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아들을 훈련소에 데려다 준 날, 남편은 한숨이 가득한 국제전화를 걸어와서 수심을 털어 놓았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그 청년들이 입고 갔던 옷가지를 부대에서 집으로 부쳐준다고 하는데, 그 소포가 집에 도착한 날에도 남편은 울음 섞인 채 전화통을 붙잡고 늘어졌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알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아들의 옷가지를 보면서 중년의 가장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전화통 너머로 울먹이던 남편이 며칠 후에는 밝은 목소리로 승전보를 전하듯 알린다. “이봐요, 지금 웹 카페에 들어가봐요! 거기 우리 아들 사진이 올라 왔어!”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훈련병들의 단체사진이며 소그룹 사진, 일상생활을 하고 훈련 받는 스냅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여기 있는 이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모두 내 자식처럼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오호라! 여기 정말 내가 낳은 내 자식이 있구나. 늠름하게 얼룩 무늬 군복을 입고 햇살 아래 눈이 부신 듯 약간 찡그린 채로 씩 웃고 서 있구나!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껴안을 듯이 다가간다. 가능하다면 모니터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 사진 속의 아들에게 가고 싶구나.
 
아들이 태평양 건너 강원도의 어느 훈련소로 들어간 이래로, 나는 이따금 이유도 없이 긴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훈련병, 현역병 관련 사고 소식은 나를 혼비 백산하게 만든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전방의 소식에도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나는 가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쩌다 훈련소에서 공개하는 훈련병들의 사진이 새로 웹 카페에 올라왔을 때, 그 속에서 다행히 내 아들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 나는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홍아!”하고 외치고 만다. 빈집에 앉아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정신이상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돌아본다.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을 때, 나는 초등생의 엄마가 되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아들이 입학 했을 때 아들을 따라 나도 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군인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의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아들이 만들어 준 자리 중에 대한민국 육군의 엄마 자리가 가장 자랑스럽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이 뿌듯함.
 
내일은 아들이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훈련병 수료식을 하는 날. 수료식 후에는 가족 면회도 있다고 하는데, 미국에 있는 나는 훈련병 아들의 수료식도 볼 수가 없다. 남들이 엄마 품에 안길 때, 내가 가서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다.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 육군 장병의 엄마답게 하늘을 보고 웃을 것이다.
 
장하디 장한 대한의 아들. 나는 너를 잘 교육시켜 대한민국으로 보냈다. 너는 대한민국을 지킬 것이고, 대한민국은 너를 품에 안아 지켜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너의 엄마인 것이 참 자랑스럽구나.


***

웹카페에서 지팔이네 직속 조교로부터 채팅하듯 실시간 댓글을 받았다.  지팔이가 훈련소에서 훈련 받으면서 틈틈이 조교들에게 부과되는 잔무를 많이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후임 조교로 콕 찍어놓고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게 되어서 아쉽다고. 다른 사병을 통해서도 (면회 나간 가족에게, 혹은 전화로 부대 얘기하면서 전하는 얘기) 훈련병 지홍이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활달하게, 봉사정신을 발휘 하는듯한 인상이었다.  몇몇 부모님들이 지홍이 소식을 쪽지로 보내주셨다.

지홍아, 요놈아, 엄마는 만리 밖에서도 네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열심히 나라를 지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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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22. 17:3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15197

[살며 생각하며]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기사입력: 06.21.11 18:06
 “당신이 처음 내 이름을 묻던 날이 생각나네. 당신은 오래된 신작로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 있네. 자갈밭 속의 자갈처럼, 흙 속의 흙처럼, 먼지 속의 먼지처럼, 거미줄 속의 거미줄처럼.”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 소개가 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서 나도 이 책을 구해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의 문체가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신경숙씨의 문체는 우리 가슴에 그대로 스며든다. ‘먼지 속의 먼지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서울역에서 길을 잃고 사라진 엄마를 찾아 헤매는 큰 딸, 큰 아들, 영감님, 그리고 친구에 대한 사라진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어쩌면 망자가 저승으로 아주 가버리기 전의 넋두리와도 비슷하다.

내 주변에 이 책을 읽었다는 친구들이 여럿이라서 이 소설의 인기를 실감했는데, 대개는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파서 또 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신원 미상의 무연고 처리되는 시신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혹은 범죄의 희생자로, 여러 가지 경로로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들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 같은 현상을 시인 정호승은 그의 ‘세한도’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영등포역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고 하고 / 청량리역 어느 무료급식소에서 봤다고 하는 / 아버지를 찾아 한겨울 내내 /서울을 떠돌다가 /동부시립병원 행려병동으로 실려가 /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행려병자들을 보고 돌아와…”
 
그렇게 신원미상의 시신으로 남겨진 그분들에게도 한 때 눈부시게 빛나는 삶이 흘렀다. 그 눈부신 삶의 기억을 우리들이 읽어내지 못 할 뿐이다. 문학의 위대성은 이런 데 있다. 우리들이 잊어버리거나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소박한 언어로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 가갈 수 있는 근거는 ‘엄마’라는 것이 갖고 있는 인류 보편의 정서에 닿았다는 것이리라. 그뿐이라면 그야말로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김치 냄새’ 풍기는 삼류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틀에 박힌 ‘엄마’ 모습 외에 고유의 독자적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모습이 들어있다. 엄마에게는 평생 손 한번 잡아 보지 않은, 가족 중 아무도 모르는 이성친구도 있었다.

의사가 이름을 물을 때 자기 이름도 잊어버리고 ‘박 소녀’를 외치는 친구, 그런 친구가 평생 그의 곁에 있었다. 엄마의 비밀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있다. 그 비밀들이 엄마를 독자적인 한 ‘사람’으로 세워 놓는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나 역시 할머니, 엄마, 엄마만큼 나이를 먹은 고모님들을 떠올렸다. 각기 다른 얼굴들이지만 비슷비슷한 삶이다.
 
내 엄마는 회갑쯤에 미망인이 되었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생했다. 그래서 거동이 서투르고 언어가 어눌해지셨다. 칠순에는 개인 아마추어 회화 전시회를 열면서 평생 가슴에 담고 있었던 비밀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엄마가 ‘소학교’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라는 것. 엄마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학력’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칠순 할머니가 개인전을 연다고 언론사에서 집에 인터뷰하러 찾아왔을 때, 엄마는 기자들 앞에서 털어 놓으셨다, “내가 국민학교밖에 안 나와서, 평생 졸이고 살았는데, 이렇게 털어 놓으니까 후련합니다.”
 
그 후에 엄마는 몇 년 사이에 두 가지 암 수술을 받고 극복해 내셨다. 그 사이에 엄마의 허리가 휘어지고, 달팽이처럼 한없이 느리게 걷는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아마추어 화가, 우리 엄마의 꿈 “우리 딸네 동네에 커다란 미술관이 많은데, 거기 유명한 사람들 그림이 다 붙어있대. 그걸 보고 와야지!” 오늘은 엄마가 워싱턴에 오는 날.

나는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가겠다. 공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엄마의 기억 속에 눈부신 워싱턴의 나날들을 스며들게 해야지.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June 22, 2011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15. 18:45

[살며 생각하며] 우디 앨런의 환상 여행 'Midnight in Paris'

기사입력: 06.14.11 20:37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이따금 이런 질문을 서로 던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늘 같다. 

“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어요. 지금 이 상태가 제일 좋아요. 돌아보면 고민스런 나날들도 많았고, 그다지 행복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가 제일 좋고, 그리고 앞으로 더욱 기쁜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기대해요.”

 역사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문제도 결국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가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고,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감사하고 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시간이 평화로워서 고맙다. 과거의 어느 시절도 내게는 매력이 없어 보인다.

 우디 앨런 (Woody Allen) 감독이 2011년 여름에 우리에게 선사한 영화 ‘Midnight in Paris (밤의 파리에서 생긴 일)’에서 주인공 남자는 그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꿈꾸는 파리의 1920년대로 간다. 영화가 꿈의 소산이라면, 영화 속의 꿈의 세계는 꿈속의 꿈 일 것이다.

 1920년대의 파리의 풍경은 어떠하였나? 거트루드 스타인 부인이 파리의 살롱에서 당시의 청년 작가들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코트 피츠제럴드와 문학 토론을 하고, 피카소, 마티스, 만레이, 달리 등의 예술가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미국의 야만성이 싫다고 영국으로 귀화해버린 엘리어트 역시 파리에 있었다. 엘리어트가 누군지 몰라도 매년 4월이 오면 ‘사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그의 서사시 ‘황무지’를 읊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2011년의 미국인 소설가가 1920년의 파리에 가서 헤밍웨이를 만나고 스타인부인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습작을 고쳐 나간다. 이 소설가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사실 이쯤에서 나 역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스무 살 이었을 때, 나의 꿈은 ‘미국에 가서 헤밍웨이를 연구하고, 헤밍웨이와 같은, 선이 굵은 소설가가 된다’는 것이었다. 십 여 년 전 플로리다에서 유학하게 된 남편을 따라서 온 가족이 플로리다에 거주하게 되었을 때, 나의 첫 번째 희망은 키웨스트에 가서 헤밍웨이의 저택과 서재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헤밍웨이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마치 일생의 꿈을 이룬 듯 행복해 했었다. 

아, 나의 추억 속의 헤밍웨이가 영화 속에 나타나, 죽음을 응시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을 수 있다고 무뚝뚝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우리가 개별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역사 속의 인물들이 사실은 어느 시기에 한 장소에서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살아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파티장에서 서로 스치거나 혹은 카페에서, 살롱에서 어울려 예술과 인생을 논했던 ‘동네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물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구슬을 줄에 꿰듯 향수 어린 회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약에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잘 모를 경우, 이 영화의 매력은 떨어 질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아들에게 “저 사람이 쓴 작품은, 저 사람이 그린 작품이 지금 미국 미술관에…”라고 설명을 해 줬는데, 녀석은 “엄마의 설명이 없었다면, 영화가 재미없을 뻔 했어요”라고 고백했다. 

 “엄마가, 여름 방학 동안에, 저기 나온 화가들의 작품들을 미술관에 함께 가서 다 보여줄게. 스타인 부인의 조각상은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도 있단다.” 이 영화 덕분에 대학 입학을 앞 둔 아들의 여름방학은 영화에 나온 작가들의 소설과 예술작품을 보는 것으로 채워질지도 모르겠다

2011, 6, 15 



부록: 아래 2002년 Thanksgiving Holidays 기간에 키웨스트 헤밍웨이 집에 갔던 증명 사진들. 

헤밍웨이의집필실 

 
2층 계단참의 책꽂이



9년전, 내가 아직 '신인류'의 탈을 벗지 않고 버티고 있을당시의 모습. 현재보다 눈이 컸고 (눈이 처지지 않았으니까...), 머리는 신인류 동지들과 같이 알록달록하고, 지금보다 날씬했군. 우리집 아이들은 "엄마가 신인류 시절에 정말 잘 나갔는데~" 하면서 회상하곤 한다.  여기서 신인류란, 일본의 매우건전하고 퇴폐적인 일부 날라리  집단을 뜻한다고 애들이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은 손 씻었다. :)  


 어딘가 예전에 내가 쓰던 홈페이지를 뒤지면, 10년전 애들 끌고, 엄니 모시고 베르사이유며 파리를 누비던 사진들도 나올법한데.  그 때 우리 엄니 모시고 내가 잘 돌아다녔지...중풍을 벗어난 엄니와 두 초등생들 끌고, 이 성질 급한 내가 매일 씩씩거리며~  (나도 용감했던것 같아....)

엄마!  엄마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시겠지만, 엄마는 2001년에, 딱 10년전에 나하고 함께 유럽을 돌아다녔었어 (엄마는 엄마가 어디를 다녔는지 기억을 못해서, 친구들한테 자랑질하는데도 애로가 많쟎아.) 엄마가 로마에서 베드로성당 앞에서 커다란 솔방울을 집어 들고 "이것이 참 심상치 않아 보인다..." 했을때, 나는 엄마의 말을 흘려듣고 말았지.  그런데 여행안내원이 그 솔방울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상징물이라고 설명해줬어.  엄마는 나보다도 관찰력이 뛰어나. 

엄마는 몽마르뜨르 언덕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길에서 네 초상화 그린데가 어디지?" 이런식이지. 엄마가 오면, 우리 Midnight in Paris 를 다시 보러가. 그 영화에 나온 장소들은 엄마가 다 가 본 곳이야, 엄마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리고 엄마, 이제 10년만에 나하고 또다시 여행을 하는거야. 이번에는 워싱턴과 뉴욕과 나이아가라를 보여줄게.  엄마하고 나하고 매일 미술관에 다니는거야. 엄마 이제부터 이걸 외워놔. 어디가냐고 물어보면 "딸네집에" 뭐 볼거냐고 하면 "워싱턴, 뉴욕."  하루에 열번씩 읽어가지고 외워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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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1. 23:17

나는 이른 아침 극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일전에 조조할인으로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2’를 관람했다. 쿵푸 판다는 2008년에 1편이 나왔었고 3년 만에 2편이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이 애니메이션에 부제를 붙인다면, ‘Inner Peace(마음의 평화)’라고 할 만하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이슬 방울을 손으로 받아 온전한 이슬 방울 상태로 물에 내려 놓는 ‘사부’는 이러한 기술을 닦기 위해 수 십 년의 수련을 거쳤다고 말한다.

우리의 뚱땡이 어수룩한 판다 ‘포’는 사부의 가르침을 어떻게 구현 할 것인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한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의 포크 아트 갤러리에 가면 괴상한 전시물 한가지가 눈에 띈다. James Hampton (1909-1964)이라는 어느 빌딩의 야간 경비가 14년간 알루미늄이나 금박지, 은박지 등 폐품을 수집하여 종교적인 형상들을 만들어 놓고 사망했는데, 그 설치물들이 국립 미국 미술관에 영구 전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설치물의 가장 중심에 그가 새겨놓은 문구는 ‘Fear Not’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의 신약과 구약을 통틀어서 ‘두려워하지 말라’와 관련된 문구는 대략 365번 나온다고 한다. 매일 하루에 한번 정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해 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문구를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이유는, 감옥에 갇혀 있던 쿵푸 대가들이 감옥에서 빠져나가는 것 조차 포기 했을 때, 포가 그들에게 외친 한마디 때문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지어낸 두려움의 감옥에 갇힌 것뿐이야.” 나를 가두는 것은 내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포’ 역시 공포의 기억 앞에서 번번이 무릎을 꿇기도 하지만, 내면의 평정심을 찾아 냄으로써 공포심에서 벗어나 평화를 만드는 존재로 거듭난다.
 
쿵푸 판다를 보는 또 다른 재미로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유명배우들이 연기했다는 것인데, 일단 주인공 ‘포’는 몸집이 판다처럼 통통하고 늘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배우, 잭 블랙이 맡았고, 호랑이 역의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사부님의 더스틴 호프만 등의 친숙한 목소리를 분간할 수 있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더욱 유쾌해진다.

그뿐인가, 덤으로 알게 된 사실로, 이 애니메이션의 총감독을 맡은 이가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온 한국계 미국인 제니퍼 여 (Jennifer Yuh)라는 여성감독이라는 점은 어쩐지 가슴 한 켠을 아리게 한다. 아시아에서 태어나 북미대륙에서 성장한 여 감독의 일대기와 판다 마을에서 태어나 양아버지 거위의 품에서 자라난 주인공 '포'의 삶이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만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라니, 참 장하고도 장하지 않은가?
 
영화는 끝나고, 영화관을 빠져 나올 무렵, 나는 현실의 숙제들 앞에 다시 선다. 두려움 없이, 평점심을 가지고 나도 뚱땡이 판다처럼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아비요!” 나도 어린 아이처럼 외쳐보는 것이다.

June 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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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1. 23:13
[살며 생각하며] 당신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것



길고 지루한 대학 입학 신청 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하이스쿨 졸업을 앞두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최근 멀티미디어 기기인 ‘아이포드’를 하나 장만해 주었다. 그 동안 노력한 것에 대한 작은 상이었다. 사실 여태까지 청소년들이라면 하나씩 갖고 있을 휴대용 음향기기가 우리 집에서는 소지 금지 품목이었다. 이어폰이나 헤드셋으로 음악을 장시간 듣다가 귀를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나의 고육지책이었다.

 아들이 이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알아서 챙길 것이라 믿고, 마침내 그 ‘아이포드’라는 ‘요물단지’를 장만해 준 것이다. 처음 아이포드를 갖게 된 아들은 온 세상을 손에 쥔 듯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그 것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어딘가로 함께 갈 때에도 녀석은 나 대신 아이포드와 대화하고 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어디로 갈 때면 아이포드부터 챙기던 녀석이 엊그제는 함께 포토맥 강변으로 장거리 산책을 나가면서 빈 손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어쩐 일로 네 분신을 안 챙기는 거냐? 오늘은 음악 안 듣니?” 내가 심드렁하게 묻자 아들은 진지하게 대꾸했다.

 “전에 아이포드가 없을 때는, 나 혼자 머릿속으로 음악을 상상하고, 어떤 악상이 떠오르면 그것을 머릿속으로 기억하려고 몇 번씩 혼자서 되감기를 했거든요. 상상 속에서 늘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만들었어요. 집에서 직접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포드가 생긴 이후로는 음악을 듣느라고 정작 음악을 상상하거나 직접 만드는 일을 전혀 못하고 있어요. 요즘 곡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이포드와 거리를 유지하기로 결심했어요.”

 옳거니! 이 녀석이 ‘모자람’의 ‘미덕’에 드디어 눈을 떴구나! 음향기기가 없을 때는 걸어서 학교에 오가는 동안, 집의 개를 산책시키거나 심부름으로 어딘가를 다녀오는 시간에 머릿속으로 음악을 상상하고, 만들고, 기억하고 이런 매우 창조적인 작업을 진행했던 것인데, 만능 엔터테이너 기기가 생긴 후로 이 모든 창의로운 작업을 진행할 자투리 시간이나 여유를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엊그제, 친지의 대학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을 했었다. 이 학교 출신의 보험 사업가 Joe Plumeri가 열정적으로 무대 위를 이리저리 오가며 축하 연설을 했는데 그가 후배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정보 기술이 발달 된 오늘날, 구글에서 거의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 구글은 알려 주지 못 할 것이다.” 첨단 정보, 기술, 지식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열정에 불을 지피라는 메시지였다.

 어린 시절, 나는 나가 놀 줄도 모르는 게으름뱅이에 책벌레였는데, 안타깝게도 가난했던 우리 집엔 읽을 책이 별로 없었다. 책벌레는 책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 나는 읽었던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어 내용을 다 외우고 책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었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벽에 벽지 대신 발라져 있었던 신문지를 뜻도 모르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영양실조에 걸려 죽게 생긴 이 책벌레는 마침내 누런 종이를 묶어서 거기에다가 직접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가지고, 책을 만들어서 그것을 읽었다. 책을 먹는 책벌레에서 책을 만드는 책벌레로 변신을 한 것이다. 그 당시 내게 수백 권의 동화책이 있었다면, 나는 직접 책을 만들 궁리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멀티미디어 인포메이션의 시대라고 해도, 우리 삶의 양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 폰, 컴퓨터 혹은 다른 통신기기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그 속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는 없는 일. 첨단기기 아이포드에 열광하던 아들은 만능 엔터테이너 기기 대신에 텅 빈 하늘을 바라보고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사색하는 것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일찌감치 예수께서 설파하셨으리라. 그릇은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살찌운다.


May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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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5. 20. 03:14
2011 5월 18일

아침 신문을 펼쳐보니, 내 칼럼 자리에, 내가 몇달전에 썼던 글이 그대로 올라가 앉아있다. 
이번주용으로 써서 보낸것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망신스러운 날이다.)

기가 막혀서 실소.

****

이튿날, 2011 5월 19일

동일한 면의 보이지도 않을 구석에, 어제 사고에 대한 짧은 사과문이 실렸다. 더이상 무엇을 어쩔것인가. 

나는 실수를 한 편집당당자에게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이세상 사람들이 저지르는 그 사소하고 지리멸렬한 실수들에 대해서 '어쩔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어쩔수 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불완전한 존재.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신문 편집담당 직원이 원고를 잘 못 올리는 정도의 실수야 '코메디' 수준이 될 것이다.  만약에 병원에서 중환자에게 제공하는 약을, 담당자가 실수로 다른 환자의 것과 바꿔치기 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다.  전에 엄마가 뇌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을때, 우리들은 엄마에게 제공되는 모든 처치를 기록장에 기록을 했었는데,  하루는 평소와 다른 이름의 약이 온거다.  언니가 '이 약은 뭔가 새로운 것이네요...이건 뭐죠?' 하고 물었을때, 간호사가 약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어머, 이것 이 환자분것이 아닌데...'

모든 실수는 사소한 실수다. 결과는...사소할수도 있고, 치명적일수도 있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5. 11. 19:4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opinion&art_id=1196431



매트로 역에서 길을 잃다


기사입력: 05.10.11 21:39
내가 플로리다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 온 가족을 이끌고 워싱턴에 ‘구경’을 온 적이 있다. 일단 도심에 차 끌고 다니는 것이 무서우니 매트로를 타고 내셔널 몰에 진입하기로 작전을 세웠는데, 난관은 매트로 역에서 시작되었다. 도무지 매트로 표를 어떻게 사야 하는지 난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석사를 마친 남편과, 박사공부를 하고 있던 내가 중고등학생 두 아들과 매트로표 자판기 앞에 웅성거리고 서서, 진땀을 흘리며 ‘작전회의’를 한 끝에 간신히 우리들의 하루치 매트로 표를 사는데 성공을 한 적이 있다.
 
그 날, 매트로를 타고 스미소니안 역을 통해 디시 내셔널 몰에 입성한 내가 역을 나오자 마자 맞은 편에 보이는 하얀 궁전을 가리키며 “저기 화이트하우스가 보인다!” 하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듯 외쳤던 일이 생각난다. 곁에 있던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이들 못 듣게 작은 소리로 내게 말해주었다, “여보게, 저것은 국회 의사당이라네.”
 
몇 년 후 공부를 마친 나는 직장을 찾아 워싱턴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인데, 시내에 가기 위해서 매트로를 타러 갈 때마다 늘 그 첫 날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고 만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내가 평상시처럼 매트로 역에 들어서서 익숙하게 스마트 카드에 잔고를 채우고 떠나려는데, 양복을 단정히 빼어 입은 신사가 내 곁으로 다가와 아주 또박또박하고도 점잖은 영어로 물었다. “나는 텍사스에서 컨퍼런스 때문에 이곳에 왔는데, 매트로 표를 사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자리에서 신사에게 목적지를 묻고, 편도인지 왕복인지 물은 후에 요금 표를 들여다보며 차비 계산하는 방법이며, 현금이나 카드로 운임을 지급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여, 그가 표를 살 때까지 지켜봐 주었다. 그는 곁에서 시종일관 지켜봐 준 내게 무척 감사해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턴 일대를 통과하는 매트로는 다섯 가지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노선 별로 초록, 파랑, 주황, 노랑, 빨강 색깔로 표시가 된다. 사람들이 헛갈려 하는 것은 매트로의 운임체계일 것이다. 매트로 역의 티켓 자판기에는 운임표가 있는데, 내 목적지 매트로 역 이름을 찾아내어서 편도나 왕복 운임을 확인 해야 한다.
 
그런데, 동일한 구간이라고 해도 워싱턴을 통과하는 이 매트로는 세가지 다른 가격 체계를 갖고 있다. 우선 일반 가격 (Regular Fare)은 새벽부터 오전 9시 30분, 그리고 오후 3시에서 7시 사이의 시간에 적용된다. 그런데 a peak-of-the-peak fee 라는 출퇴근 할증 시간대가 있다. 평일 오전 7시 30분부터 9시, 그리고 오후 4시30분부터 6시까지는 보통 운임에 20 센트를 추가로 낸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대는 할인 가격(Reduced Fare)으로 표를 산다. 처음에 나는 이 시스템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을 좀 더 해보니, 이런 식으로 해서 승객들의 이용 시간대를 한가한 시간대로 이동시키려는 의도가 보였다. 
 
계산을 잘 못하여서 표에 찍힌 가격에서 돈이 모자라면 어떻게 할까? 그때는 역 안에 있는 Exit Fare 라는 표시의 기기에 가서 필요한 만큼의 동전을 넣어서 차표에 채워 넣으면 된다. 반대로, 매트로 표에 몇 푼 남아있다면, 나중에 필요한 운임만큼 채워서 사용하면 된다.
 
매트로 이용을 자주 한다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스마트카드를 사용하면 편리하다. 이 스마트 카드는 매트로 주차비를 낼 때나 시내버스와 연동되어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신용카드나 현금으로 충전이 가능하다. 참고로 스마트카드 자체의 가격이 5달러이다. 그래서 스마트카드를 새로 장만하기 위해서 자판기에 10달러를 넣으면 카드에 채워져 나오는 금액은 5달러이다. 처음에 나는 스마트 카드를 사면서 5달러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카드가 잘 못 되었다고 분개를 한 적이 있다.
 
워싱턴 지역에서 매트로 표 사기가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당신, 안심하시길. 이것을 어려워하는 미국인들이 한 둘이 아니고, 뭐든 처음에는 어려운 것이오니. 5/1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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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5. 6. 19:03



[길따리 사색하는 이은미의 자연여행] 걷고 싶은 계절, 숲이 부른다!

하루 50㎞·100㎞ … 온종일 걸어도 즐거워
끝까지 완주한 아들이 장하고 자랑스러워
기사입력: 05.05.11 19:05
▷One Day Hike

지난 4월 30일, 미국 수도를 관통하는 포토맥 강변 숲 속에서는 일년에 한번 열리는 이색 행사가 있었다. 미국이 자랑하는 국립공원 C&O 내셔널 히스토릭 파크의 시발점인 조지타운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해 포토맥강 수로변을 따라 하루에 60마일(100㎞)을 걸어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에 이르는 행사이다. 하루에 100㎞이면 마라톤을 두 바퀴 돌고도 남는 거리이다. 워싱턴 디씨에서 메릴랜드, 웨스트버지니아를 거쳐 펜실베이니아의 컴버랜드까지 이어지는 180여 마일 수로의 삼분의 일을 하루에 걷는 것이다. 

이것이 힘든 사람들은 중간지점에서 오전 10시에 합류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노선을 선택 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대학 진학을 앞둔 12학년 아들과 50㎞ 장정에 도전해 함께 완주했다. 오전 10시에 화이츠 페리(Whites Ferry)를 출발한 우리 모자는 밤 11시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총 13시간을 강변길에서 보낸 것이다. 

1974년 처음 시작된 이 행사에 올해에는 총 350여명이 100㎞와 50㎞에 도전했다. 참가 자격에 제한은 없으며, 그냥 하루 종일 걸을 수 있을 만큼의 체력만 있으면 된다. 내가 길을 걷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가 된 노신사는 지난해에 정년퇴직 하고 올해 처음 이 행사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차근차근 걸어서 결국 목적지에서 나와 다시 합류했다. 그런가 하면, 젊은이들 중에도 발에 통증을 호소하며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처치를 받고 결국 중간에 포기를 선언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동 노선은 걷기 초보자에게도 평이하게 느껴질 만큼 평탄하고 단순한 편이다. 오른편에는 수로가, 왼편에는 포토맥강의 흐르는 길을 따라 해가 뜨고, 해가 중천에 걸리고, 해가 지고, 마침내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어둔 밤까지 내리 걷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종일 걸을 수 있는 체력과 인내심뿐이다. 

나는 중년의 나이지만, 19세 아들보다 걷는 체력이 더 좋았다. 마지막 5마일부터는 발목이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는 아들을 부축하며 수 시간 거북이걸음을 해야 했다. 내 실력대로 하자면 한 시간 반이면 걸어갈 거리를 덩치 큰 아들을 부축하며 네 시간 가까이 걸었던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아들이 장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 행사에서 나는 삶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아들은 신체적 고통을 참고 뭔가 새로운 영역을 해 냈다는 보람을 얻었을 것이다. 

▷미국의 힘, 선량한 자원봉사자들

이 행사에 참가하는 일이 내게도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우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함께 모여서 행사장으로 이동해야 하고, 밤에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누군가가 픽업을 해주러 오거나, 아니면 원래 차를 주차시킨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나는 늦게 등록을 하는 바람에 단체로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이 문제를 이메일로 멤버들에게 호소하자, 생판 타인인 우리를 위해 차를 태워주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나타나 교통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아들이 중간에 신체적 고통을 호소할 때도, 자원봉사자들이 진심으로 아들의 상태를 걱정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는데, 이들의 응원 덕분에 아들은 용기를 내 끝까지 갈 수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을 손전등에 의지하여 나아갈 때, 멀리서 보이는 자원봉사자들의 깜박이는 신호는 우리에게 천사들의 신호처럼 보였다. 고통 속에서 행진을 계속하던 아들은 목적지의 등불이 깜박일 때 “사람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이제야 알겠다”고 말했다. 

이민자들이 모여서 세운 국가, 미국. 미국은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들과 팀을 이루거나 낯선 사람들을 위해 봉사 하는 일을 매우 조직적으로 이뤄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모르는 사람들이 어울려서 팀플레이를 하는데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을 이끌어나가는 대중의 힘으로 보였다.

▷One Day Hike 참가 방법

ODH가 주관하는 ‘온종일 걷기’는 일년에 딱 하루, 4월 마지막 토요일에 시행된다. 이 걷기를 위해 매년 초부터 걷기 트레이닝 프로그램도 운영을 한다. 걷기 잘하는 팀 리더와 모여 일정 거리를 걷는 것이다. 이 역시 희망자들에 한하는 것으로, 나처럼 독자적으로 평소에 걷는 사람이라면 별도의 트레이닝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가오는 6월 5일 일요일에 메릴랜드의 캐더락에서 야유회를 갖는다. 역시 포토맥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서 피크닉을 즐기며 각자 걸을 수 있는 만큼 강변 산책을 하는 것이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피크닉에 참가할 수 있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그리고 이메일 리스트를 통해 상세한 정보를 수시로 받아볼 수 있다. 

홈페이지: http://www.onedayhike.org/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OneDayHike

트위터 : http://twitter.com/#!/OneDayHike

그룹이메일: http://groups.yahoo.com/group/onedayhike/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4. 27. 21:0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89686

높이뛰기 선수권대회에서 수년간 금메달을 받은 황제 벼룩을 유리 항아리 안에 가둔다. 이 벼룩의 최고 높이뛰기 기록은 70센티미터이고, 유리항아리의 높이는 50센티미터이다. 이 항아리에 뚜껑을 덮는다. 벼룩은 유리 항아리에서 나가기 위해 연신 점프를 하지만, 번번이 머리를 뚜껑에 부딪치고 만다. 시간이 흐른다. 유리항아리에서 뚜껑을 치운다. 벼룩은 이제 자유롭게 항아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벼룩은 유리항아리에서 나가지 못한다. 벼룩은 이제 더 이상 점프 하지 않는다. 

커다란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커다란 수조에 이 물고기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수조의 가운데에 유리벽을 세운다. 유리 벽 건너편에는 맛있는 작은 물고기들이 돌아다닌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다가갈 때 마다 유리벽이 번번이 그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 시간이 흐른다. 유리벽을 수조에서 꺼내낸다. 하지만 큰 물고기는 꿈쩍도 않는다. 큰 물고기는 굶어 죽고 만다. 

개를 실험실에 가둔다. 그 실험실 바닥에는 전류가 흐르는 실선이 설치되어 있다. 실험실의 한쪽 벽은 개가 뛰어 넘을 수 있는 높이이다. 개를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 놓는다. 전류를 흘릴 때마다 개는 괴로워서 낑낑대며 담을 넘어 가려고 한다. 하지만 묶여있는 개는 담을 넘을 수가 없다. 개는 고통을 견뎌야만 한다. 시간이 흐른다. 묶어 놓은 개 줄을 풀어준다. 그리고 전류를 흘려보낸다. 이제 개는 담을 넘어 도망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개는 담을 넘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무기력하게 견딜 뿐이다. 

여기 소개된 벼룩, 물고기, 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능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가 몇 차례의 시련을 거치면서 의기소침해지고, 스스로 무능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장애가 사라진 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학자들은 ‘학습된 무기력증(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해석한다. 사실 위에 소개된 벼룩이나 물고기, 개가 신체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신체는 멀쩡했다. 그들이 다친 것은 ‘마음’이다.

그런데 이것이 위에 소개된 동물들에 한정된 현상일까.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은 무기력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자기 파멸 행동까지 하게 된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죽이는 것은 천재지변이나 피하기 힘든 사고가 아니다.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들이 우리를 서서히 병들게 하고 죽이기도 하고 그런다. 

얼마 전, 대학 입학에서 쓴 잔을 마시고 커뮤니티 칼리지를 거쳐서, 자신이 희망하던 대학으로 편입을 했던 내 큰 아들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아들이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갔는데, 일단 ‘카투사’라는 부대에 들어가려 했다가 ‘추첨제’에서 낙방을 하고 말았다. 통역병을 해보겠다고 시험을 쳤는데 준비가 안 되어 역시 미역국. 그래서 일반병으로 곧 입대하게 된다. 통역병 시험에 낙방을 한 날, 녀석이 울면서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난 왜 하는 일마다 번번이 안 되는 거죠? 난 뭐든지 시원하게 되는 것이 없어. 엉엉” 

전화를 받는 엄마의 마음도 한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나는 웃으면서 벼룩과 물고기와 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네가 받았던 상들, 네가 잘 해냈던 시험들, 너의 영광스런 순간들을 기억해라. 너는 현재 아주 잘 해내고 있고, 시련은 너를 큰 사람으로 키워줄 것이니 안심하고 지금 이 순간을 견뎌라.” 니체가 남긴 말이라고 하던가, “죽지 않으면 강해질 것이다(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전화통을 붙잡고 울던 아들은 주중에는 회사에 나가 인턴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막노동 현장에 가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입대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노동자 친구들과 일 할 때 삶의 희열을 느낀다는 참 건강한 청년. 나의 아들. 나는 녀석이 자랑스럽다.


2011,4,27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4. 22. 17:52


[길따라 사색하는 이은미의 자연여행]

철쭉 '花들짝'…국립 수목원 트레일 유혹


철쭉동산
철쭉동산
스프링 브레이크를 맞이한 아들과 국립 수목원(US National Arboretum)에 가서 6시간 동안 8마일 거리를 걸으며 봄 꽃 잔치를 보았다. 늦게 피는 벚꽃이며 박태기나무 꽃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나무들이 흥에 겨워 희고 붉은 꽃을 피워대고 있었고, 철쭉 군락지에서는 각종 철쭉들의 꽃 봉우리들이 가득했다. 철쭉은 금주 말 그리고 다음주가 절정이겠다. 분재 전시장 주변의 화단에서는 모란꽃이 소담하게 피어나고. 모란의 개화는 다음주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국립 수목원을 둘러보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트램: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트램을 타고 약 40분간 방송되는 안내를 받으며 편히 앉아 수목원의 전체 얼개를 살펴 볼 수 있다. (탑승료 성인 4달러).

2. 승용차: 수목원 지도를 보면서 중요 지점으로 직접 운전해 정해진 곳에 차를 세워놓고 정원을 둘러보고 또다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주요 지점을 살펴볼 수 있다. 경내에서 자동차는 시속 20마일 미만을 유지해야 한다.

의사당 기둥 언덕
의사당 기둥 언덕
행정관 연못의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
행정관 연못의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
박태기 꽃과 벚꽃 동산
박태기 꽃과 벚꽃 동산
3. 걷기: 수목원 지도를 들고 걸으면서 각기 다른 주제의 숲과 정원들을 살펴본다. 이 경우 천천히 구경하면서 이동 하다 보면 5~6시간이 금방 지나갈 것이다. 이곳의 주요 지점들을 모두 걸어서 통과할 경우 대략 8마일을 걷게 된다. 어디에 가나 다리 쉼 할 수 있는 벤치들이 마련되어 있어 그다지 피로를 느끼지는 않는다.

물론 위의 세 가지 방법 중에서 형편에 맞게 응용하여 소풍 계획을 짜도 좋을 것이다.

날씨가 화창한 날 이곳을 방문할 때 챙겨야 할 것들로는, 그늘이 없는 구역들이 있으므로 챙 넓은 모자와 선글래스, 썬 블록 크림, 배낭에 물과 간식을 갖고 다니는 것이 좋다. 또한 반드시 경내 지도를 가지고 다닐 것을 권한다. 그래야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다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수목원 안내 지도는 수목원 기념품 상점 옆에 있는 화장실 입구에 비치되어 있다. 음료수 자판기는 화장실 건물 안쪽에 있다. 그 외에 음식물을 사 먹을 장소가 없으므로 간식이나 도시락을 챙겨야 시장기를 면할 수 있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3년 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트램을 타고 한 바퀴 돌고, 가까운 정원을 둘러보다가 돌아왔는데, 당시에는 이곳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 직접 두 발로 걸어서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이제야 나는 국립 수목원의 진면목에 다가서는 느낌을 받았다.

각종 정원에 가니 발끝에 밟히는 아주 작은 식물들에 이르기까지 이름표를 세워 놓았다. 평소에 혼자 숲 속을 다니면서 자생하는 식물들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풀꽃들의 이름을 알 수 없었는데, 궁금해 하던 많은 이름들을 오늘 만나게 되었다. 그 뿐인가, 지도에도 표시 안 된 샘물들이 졸졸 흘렀으며, 숲 속 오솔길들이 이어졌다. 밋밋한 듯, 심심한 도로를 걷는 일도 ‘이 다음에 무엇을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지루하지 않았다. 만약에 이 길들을 트램이나 자동차로 지나치고 말았더라면 나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이곳이 재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떴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외국인으로, 이민자로, 이민자의 후예로 살아간다. 아무데나 정들면 고향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사는 곳에 정을 붙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곳에서 자생하는 식물과 새, 동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을 두발로 걸어 다니며 상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아닐까? 그런 믿음으로 나는 이 땅에서 자라나는 풀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참고로, 내가 여섯 시간 동안 천천히 돌아본 정원들은 분재 박물관을 시작으로 허브 정원, 의사당 기둥 언덕, 양치류 계곡, 어린이 수목원, 아시아 정원과 한국 언덕, 아나코스티아 강변, 도그우드 숲, 목련 언덕, 회양목 언덕, 벚꽃 동산, 진달래 동산 등이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왔던 길을 또다시 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재미있었다.

국립 수목원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아시아가든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한국의 언덕’이라는 장소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도대체 어떤 식물이 한국을 상징할 만한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이름만 ‘한국의 언덕’일 뿐 그것은 그냥 버려진 언덕일 뿐이었다. 뭔가 한국 측의 협조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 동산에 무궁화를 심으면 어떨까? 무궁화는 미국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인데. 한국의 돌하르방이나 돌탑이라도 하나 깎아다 세워놓으면 어떨까?’ 고민거리가 한 가지 더 늘고 말았다.

▷ 국립 수목원 주소: 3501 New York Avenue, NE; Washington DC 20002-1958

▷ 홈페이지: http://www.usna.usda.gov/ 늘 새로운 행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방문하기 전에는 해당 홈페이지를 살펴서 볼만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계획하면 좋다.

▷ 한국어 안내문: http://www.usna.usda.gov/USNA_Korean.pdf

▷ 입장료 무료

2011/04/22 (금), 글, 사진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4. 20. 19:3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86316

4월의 마지막 토요일, 다가오는 30일에 포토맥 강변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일년에 단 하루 날을 잡아서 100킬로미터(60마일)를 걷는 행사를 하는 것이다.

조지타운의 톰슨 보트하우스에서 시작되는 C&O수로(Chesapeake & Ohio Canal)는 총 길이 184.5마일(296.9킬로미터)로 워싱턴 디씨에서 메릴랜드, 웨스트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까지 이어진다. 주로 산업 운송수단으로 활용되던 이 수로는 기차를 비롯한 교통의 발달로 사라질 뻔 했다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오히려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명소로 탈바꿈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1974년부터 진행된 이 100킬로미터 걷기 행사는 2000년부터 50킬로미터 행사가 추가 되었다. 100킬로미터 팀은 새벽 3시에 출발하고, 50킬로미터 팀은 오전 10시에 중간 지점에서 이들과 합류하여 100킬로미터 도착점인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에 이르게 된다. 일년에 딱 하루 진행되는 이 ‘걷기’ 행사를 위해 미국의 각 주와 해외에서 150여명의 사람들이 와서 모인다고 하는데 올해에는 나도 작은 아들과 50킬로미터 걷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의 최장거리 걷기 기록은 22마일이다. 총 거리 11마일인 Capital Crescent Trail 을 한번 왕복한 경험이 있다. C&O 트레일을 왕복 20마일 걸은 적도 한 번 있다. 대략 15마일 거리의 걷기는 이따금 혼자서 하곤 했다. 체인브리지 부근에서 시작하여 강변을 따라 걷다가 내셔널 몰 지역에 이르러 박물관 구경을 하고 혼자서 터덜터덜 걸어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김삿갓’ 같은 한나절의 방랑을 혼자서 하는 것이 나의 달콤한 취미이기도 하다. 체인브리지 부근에서 시작하여 조지타운까지의 왕복 8마일 거리의 강변길은 내가 버지니아에 사는 동안 가장 자주 나가서 걸으며 걱정 근심을 강물에 흘려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하루에 30마일을 걷는 일은 내게도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해서 나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걸으러 나가고 있다. 근력을 키워서 나의 ‘작은 도전’을 성공시키고 싶은 것이다.

마라톤도 아니고 걷기 가지고 무슨 호들갑을 떠는가 하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미련 곰딴지’로 통했다. 행동이 굼뜨고, 운동도 잘 못하고, 특히 달리기를 하면 숨이 찼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나 술래잡기 놀이하는 것 보다 혼자서 방구석에서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다. 이런 내게 가장 자신 있는 운동이 ‘걷기 운동’이다. 걷기를 잘 한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오랫동안 천천히 걷는 일에 익숙한 편이다. 내게는 혼자 걸으면서 사색하는 일이 아주 기쁜 일이다.

미국의 초절주의 철학자 쏘로우(Henry David Thoreau)는 말했다. “나의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생각이 흐르기 시작한다.” 시계추같이 매일 정해진 시각에 동네 산책을 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칸트. 그에게서 ‘산책’을 빼앗았다면, 그의 ‘비판론’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산책을 하면서 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후의 ‘소요학파’의 모태가 된다.

걷기가 단지 사색에만 좋은 것은 아니다. 걷기는 우리 건강을 증진시키며 우리의 심성도 다스려 준다. 화가 날 때 나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분노가 가라앉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루 날을 정해서 원없이 실컷 한번 걸어보는 것이다.

이 걷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미리 등록을 하고, 거리와 상관없이 일인당 45달러를 회비로 내야 한다. 돌아오는 차편이 필요한 사람은 미리 셔틀버스의 좌석을 신청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www.onedayhike.org/ )에 안내가 되어 있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4. 13. 19:0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80917

글쎄, 아들아, 네게 해 줄 말이 있구먼.
나한테 인생은 수정 계단같이 화려하지 않았지.
못과 가시가 튀어나오고, 판자는 깨지고,
카펫도 깔려있지 않은 맨 바닥이었어
하지만, 그래도 난 늘 계단을 올라갔어.
계단참에 도착한 후에는 모퉁이를 돌았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 설 때도 있었구먼.
그러니 아들아, 돌아보지 마라.
좀 어려워 보인다고 해서 계단에 그냥 주저앉으면 안돼.
지금 넘어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가야, 이 어미는 아직도 올라가고 있는걸
어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어.
그리고 나의 삶은 수정계단이 아니었단다.

Well, son, I'll tell you:
Life for me ain't been no crystal stair.
It's had tacks in it,
And splinters,
And boards torn up,
And places with no carpet on the floor --
Bare.
But all the time
I'se been a-climbin' on,
And reachin' landin's,
And turnin' corners,
And sometimes goin' in the dark
Where there ain't been no light.
So boy, don't you turn back.
Don't you set down on the steps
'Cause you finds it's kinder hard.
Don't you fall now --
For I'se still goin', honey,
I'se still climbin',
And life for me ain't been no crystal stair.


미국 흑인 문학계의 별과 같았던 시인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 1902-1967)의 ‘엄마가 아들에게(Mother to Son)’라는 시이다. 미국 중학교 교과서에 시 전문이 실려서 교실에서 이 시를 읽고 토론을 하는 일도 있다. 영문 원시를 읽어보면 아주 평범한 흑인 엄마가 아들에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나의 삶도 수정 계단이 아니니까.

3년 전, 2008년 4월은 내게 아주 혹독한 계절이었다. 우리 집 큰 아이가 대학 입학 허가서를 못 받았기 때문이다. 꽃은 미칠 듯이 피어나는데, 우리 가족들 모두 지옥의 어둠 속에 빠진 듯 했다. 몇 가지 해결 방법을 고민하다가, 큰 아이에게 제안 한 것이 커뮤니티 칼리지 입학이었다. “엄마가 알아보니,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면 여러 가지 좋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더라. 오바마 대통령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콜럼비아 대학으로 편입 한 사람이야.”

나는 큰아이가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는 2년간 출퇴근을 하면서 내 차에 아이를 통학 시켰다. 첫 학기에 아이는 무척 괴로워했다. 다른 친구들은 큼직한 대학으로, 기숙사로 모두 떠났는데, 자신은 엄마의 차를 얻어 타고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닌다는 열패감이 아이를 몹시 괴롭힌 듯 했다. 첫 학기를 죽을 듯 괴로워하며 보낸 아이는 두 번째 학기부터는 학교에서 친구도 사귀고,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면서 자신의 학교에 애정을 표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학기에는 편입 희망하던 대학들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기 시작했고, 네 번째 학기를 마치고는 자신이 희망하던 큼직한 대학으로 편입을 했다.

아이가 지옥 같은 어둠 속을 헤매던 그 첫 학기에,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괴로워 울기도 여러 번. 무조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이 시에 나오는 엄마처럼 아들에 대한 나의 꿈 그리고 내가 살면서 실패하거나 넘어졌던 일화들을 들려주며, 이 시련을 어떻게 영광스럽게 마무리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이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리고 결국 웃으면서 엄마의 품을 떠났다. 덕분에 우리는 아이의 대학교육 2년을 ‘'헐값’에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야, 네가 효자다. 학비 비싼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싸게 공부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치하를 하곤 한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혜로웠다.

남들이 번듯한 대학의 기숙사로 떠날 때, 희망학교에서 입학허가를 못 받았기 때문에 커뮤니티 칼리지로 가는 학생들의 기분이 어떨지 나는 잘 아는 편이다. 그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지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미 겪어본 입장에서 웃으면서 말씀드릴 수 있다. “커뮤니티 칼리지가 학비도 싸고 정말 좋아요. 계획을 잘 짜서 착실히 공부하면 졸업 전에 원하는 큰 대학으로 편입을 할 수도 있어요. 절대, 절대, 절대 좌절하지 마셔요!”



***

한정된 글자수 안에서 글을 쓰느라 생략하고 지나갔는데, 블로그에서 첨가를 하자면,

실의에 빠진 사람, 실패의 기억에 짓눌려서 자신감을 잃은 사람  (self-confidence가 바닥에 내려간 사람)의 경우 무기력감에 빠져서 눈앞에 해결점이 보여도 아무것도 안하는 수가 많고, 행동화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렇게 무기력감에 빠진 사람을 지도하거나 돕는 방법은 :

1) 아주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줘야 한다
2) 해결의 과정을 단계별로 정리하여 제시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잘 할수 있어"라고 말해봤자 소용없고,  


    1. 집근처에 무슨 무슨 학교가 있는데
    2. 일단 거기 카운슬러를 만나보는거야
    3. 카운슬러와 학업계획을 짜보는거야
    4. 첫학기에는 뭐가 되어 있어야하고
    5. 두번째 학기에는 뭐가 되어 있어야 하고
    6. 프로세스는 이러저러해. 생각보다 간단하지?
    7.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 중에 누구를 알고 있는데 만나볼까?

자 그러니 우선 오늘은 학교 웹사이트부터 좀 들여다보고... 이런식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차근차근 밟아 나가다보면, 그 사이에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더 큰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전에,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 적이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아래서 예기치 못한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그때, 학생과 마주 앉아서 내가 했던 일:

  1. 현재 당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뭐지? 한번 정리좀 해볼까?  학생을 안정 시키고, 종이위에 그의 문제들을 적어 나갔다.  개인 삶이 힘든 부분, 학업하는데 힘든 부분, 짓누르는 걱정거리, 기타 문제들
  2. 문제점을 다 적은 후에 이것들을 몇가지로 분류를 했다. (ㄱ) 해결 가능한 문제들 (ㄴ) 어쩔수 없는 문제들 (ㄷ) 애매한 문제들
  3. 해결 가능한 문제들을 다시 두가지로 분류했다. (ㄱ) 사실은 간단히 혼자 해결할수 있는 것들 (ㄴ)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한 것들.


일단 문제 상황들을 말로 설명하고 종이에 적어보는 과정에서 학생은 많이 차분해졌다.  그중에서 나는 해결 가능한 문제들을 들여다봤다.  실질적으로 교수인 내가 도와줘서 해결할수 있는 문제도 있었고, 주변 학생들이 도와주면 될만한 문제도 있었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들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해결가능한 것들을 정리하고 내가 도와줄것은 나도 메모를 하여 처리를 해주고, 주변 학생들의 도움을 청하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없으나 마음의 응원을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상황이 지나고나자  학생은 일시적으로 '패닉'에 빠졌던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구먼. 우리는 모두 나약한 존재들이고, 우리는 때로 '나 죽겠다'는 최후의 몸짓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때 조금만 도와줘도 잘 견디고 넘어가는 것이다.  '나 죽도록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꾹참고 죽는것보다 훨씬 좋다. 그런데 모든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듯 혼란스러울때, 그럴때는 스스로 문제들을 객관화 시키고, 해결 가능한 것 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도록 누군가 곁에서 도와주면 좋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4. 8. 18:09
체사피크&오하이오(C&O) 트레일의 일부 구간. 오른쪽에 수로가, 왼편에 포토맥강이 펼쳐진 길이다.
체사피크&오하이오(C&O) 트레일의 일부 구간. 오른쪽에 수로가, 왼편에 포토맥강이 펼쳐진 길이다.
1. 조지타운 수로변 사진.
1. 조지타운 수로변 사진.
2. 봄 한철 내내 똑같은 길에 나가 걸으면서 거위들이 부화하여 자라나는 것을 관찰한 적도 있다. 포토맥 강변 거위가족 사진.
2. 봄 한철 내내 똑같은 길에 나가 걸으면서 거위들이 부화하여 자라나는 것을 관찰한 적도 있다. 포토맥 강변 거위가족 사진.
3. Chesapeake & Ohio National Park 조지타운 입구.
3. Chesapeake & Ohio National Park 조지타운 입구.


[길따리 사색하는 이은미의 자연여행] 꽃피는 봄, 온 가족 함께 걸어요
북VA·워싱턴 DC 산책코스 5곳 어때요
기사 링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9797

꽃피는 계절, ‘걷기족’들의 계절이 돌아왔다. 인류가 두발로 서서, 손을 사용하여 ‘도구’를 만들게 된 이후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다고 문화인류학자들이나 진화론자들은 풀이한다. 수렵 채취 시절의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하루 평균 12마일을 걸어야 했다고 한다. 두 다리를 이용해 걸으면서 인간의 두뇌가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에, 우리의 두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열심히 걸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인지과학자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 버지니아, 워싱턴DC의 주위에는 포토맥강을 중심으로 수려한 풍광이 펼쳐져 있다. 도시 생활을 하는 걷기족들에게 이곳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라고도 할만하다. 짧게는 한두 시간, 넉넉하게는 서너 시간, 혹은 한나절 마음 편하게 걷기에 좋은 장소를 몇 군데 소개하고자 한다.

◇추천할만한 트레일 5 가지

▷내가 가장 자주 나가서 걷는 곳은 워싱턴DC의 플레처스 커브(Fletcher’s Cove)에서 조지타운 하버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대략 왕복 7마일쯤 되는 이곳을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다. 사실 이 구간은 체사피크&오하이오 내셔널 히스토릭 파크(Chesapeake & Ohio National Historic Park)의 일부인데, 멀리 오하이오까지 연결된 흙 길로 전체길이 184.5마일에 달하며 전 구간을 자전거나 도보로 통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조지타운 하버까지의 구간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조지타운 도심의 책방에 들러 잠시 쉬면서 독서를 하다가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곳의 왕복 20마일 구간을 온 가족이 함께 걸은 적도 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이어서, 괴롭고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곳의 빌리 고우트 트레일(Billy Goat Trail)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이다. 일부 바위 구간이 나오지만 위험하지 않아 어린이들도 좋아하는 트레일이다.

▷리버벤드 파크(Riverbend Park)에서 크레이트 폴스 파크(Great Falls Park)로 이어지는 강변 숲길은 왕복 4마일쯤 된다. 이 트레일의 특징은 폭포의 상류에 있어서인지 강이 호수처럼 고요하며, 강을 바로 발치에 두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고요한 정원 같아 사색하기에 좋다. 버지니아에서 그레이트 폴스 공원에 입장하려면 주차비를 내야 하지만, 리버벤드 파크는 입장료, 주차비가 무료다. 따라서 리버벤드 파크 트레일을 통해 그레이트 폴스로 진입할 경우 주차비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가볍게 한두 시간, 강변의 말랑말랑한 흙 길을 산책하기에는 이곳이 참 좋다.

▷워싱턴DC에서 메릴랜드의 베데스다를 통과하는 캐피털 크레센트 트레일(Capital Crescent Trail)도 추천 할만하다. DC의 조지타운 하버를 기점으로 한 이 초승달 모양의 트레일의 총 길이는 11마일. 이 트레일을 왕복하면 22마일을 걷는 셈이다. 나는 어느 날 여섯 시간쯤 걸려서 혼자 22마일을 걸은 적이 있다. 이곳의 특징은, 번화가인 조지타운 하버에서 시작해, 역시 아름다운 도시 베데스다를 통과한다는 것. 특히나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베데스다의 벚꽃 군락지를 통과하게 된다. 트레일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벚꽃의 감동은 평생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숲과 도시가 어우러진 트레일이라서 중간에 카페에 들러서 음료수 한잔으로 피로를 달래고 마저 걷기에도 좋다.

▷페어팩스의 버크 레이크(Burke Lake) 트레일은 인근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장소다. 트레일 전체 길이는 4.7마일. 걸음이 느린 사람이라도 호수를 끼고 한 시간 반 정도 쉬엄쉬엄 산책을 할 수 있다.

▷터키 런 파크(Turkey Run Park)는 왕복 4마일 거리의 ‘비밀의 화원’ 같은 곳이다. 발이 빠른 사람이라면 한 시간에도 왕복이 가능하고, 쉬엄쉬엄 사색하며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한데, 숲이 너무나 우거져서 여성 혼자 가기에는 어쩐지 불안할 수도 있겠다. 가족들이나 친구들 두 세 명이 함께 가실 것을 권한다.

▷워싱턴DC 인근의 포토맥강은 양안 모두 자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족이나 걷기족이 걸어서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포토맥 강변 어디에서 출발해도 우리는 온종일 강바람을 쐬면서 실컷 걸을 수도 있고 혹은 일부 구간만 산책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트레일 산책을 나갈 때의 주의사항과 요령

▷강변이나 호숫가의 숲길로 산책을 나갈 때는 편안한 운동화에, 간편한 운동 복장, 그리고 썬블락 크림을 바르고 모자, 장갑 등을 착용하면 좋다. 휴대전화도 챙기고 가족에게 어디에 가는지 정확히 고지하면 비상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동차에는 여분의 물을 항상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자그마한 배낭에 물, 간식을 챙겨서, 걷다가 목마르거나 허기 질 때 요기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배낭이 귀찮다면 지퍼가 달린 옷의 주머니에 별도로 귀중품을 보관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은행카드를 재킷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숲에서 잃어버린 적도 있다.

▷산책을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트레일 산책 일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나는 산책 할 때마다 트레일 구간을 적고, 소요시간, 거리를 간략하게 메모하는 편이다. 그러면 한 달 단위로 내가 얼마나 걸었나 통계도 낼 수 있고, 걷기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카메라로 풍경 사진을 찍고, 가끔 만나는 신기한 새들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블로그에 소개하기도 한다.

◇걷기 관련 서적

걷기와 관련된 책으로 60 Hikes within 60 miles (2nd Ed.) Washington DC including suburban and outlying areas of Maryland and Virginia 을 추천할 만하다. 한 때 이 책을 친구 삼아서 열심히 찾아 다녔었다. 한국어 번역서도 나온 빌 브라이슨의 A Walk in the Woods (나를 부르는 숲)’ 역시 걷기족들을 유쾌하게 해주는 필독서라고 할만하다.

◇관련 웹사이트 링크

이 글에 소개된 트레일들을 살펴볼 수 있는 웹 페이지들

http://www.nps.gov/choh/index.htm

http://www.fletcherscove.com/

http://www.midatlantichikes.com/id163.html

http://www.fairfaxcounty.gov/parks/burkelake/burketrails.htm

http://www.cctrail.org/

http://www.fairfaxcounty.gov/parks/riverbend/trails.htm

http://www.nps.gov/gwmp/turkey-run-park.htm



나는 위크엔드 한면을 상상하면서 글을 써서 송고를 했는데, 신문을 받아 보니 두면에 걸쳐서 큼지막하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사진이 뭐가 적당할지 몰라서 -- 골라서 쓰시라고 여러장 보냈는데, 그것들을 대부분 면에 수용을 하면서 면을 두배로 늘려 놓았다.  (놀라워라)

자전거가 들어간 표지 사진. 내가 꽤 좋아하는 사진인데, 그거 보내면서 '걷기 기사'에 자전거가 좀 안맞지...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것이 이렇게 크게 편집이 될 줄은 몰랐다.  조지타운 사진과 국립공원 안내판 사진은 며칠전에 찍은 것이고, 강변의 봄 사진들은 전에 (동일한 계절에) 찍었던 것들이다.

내가 아끼는, 내가 찍은 사진들과 내 글이 신문에 함께 실리니 기분이 좋다. 난 뭐든지 내손으로 뚝딱거리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내가 너무 좋아 탄성을 지르며 사랑하는 것들을 이렇게 신문 매체에 실어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마치 연인을 친구들에게 공개하는 듯한 기분.  헤헤. 나의 이 헛되게 걸어 돌아다니는 취향은 우리 할아버지의 유전자일 것이다.  면 편집을 내가 상상한 것 보다 더 잘 해주셔서 편집자께도 감사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