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7. 14. 09:54

[살며 생각하며] 세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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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소리를 듣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오직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절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시청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영감 가득한 작가로 변신한 헬렌 켈러(1880-1968)는 그의 수필 ‘세상을 사흘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헬렌 켈러가 사흘의 시간이 허락 된다면 보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날, 그는 자신을 교육시켜준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꼽는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다고. 그 다음으로 그가 꼽는 것은 사랑하는 개, 그리고 그의 일상을 지키는 물건들. 매일 그의 손이 닿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중한 물건들. 오후가 되면 숲으로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밤이 되면 인간이 만든 조명의 아름다움을 쳐다보고 싶다고.

 둘째 날,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본 후에, 그는 인류가 수 천 년을 살아오면서 이룩한 자취들을 보기 위하여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한 곳은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에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볼 수 있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간이 이룩한 예술의 성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녁이 되면 그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아가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기와 빛과 움직임을 보고 싶다고 한다.

 셋째 날,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본 후에 그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에 뉴욕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광경은 굉장할 것 같다고 그는 상상한다. 그리고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그는 바삐 달려가 발 아래 펼쳐지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서 도시의 골목에 서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상상한다. 마지막 날 저녁이 다가오면, 그는 극장으로 달려가 유쾌하고 웃기는 연극을 보겠노라고 한다. 그는 아마도 깜깜한 어둠으로 돌아가기 전의 슬픔을 달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헬렌 켈러가 마지막 날 아주 웃기는 연극을 보겠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의 슬픔이 전이가 되어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만약에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사흘뿐 이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그 마지막 사흘을 보낼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 매일 똑같이 흐르는 일상이 갑자기 보석처럼 빛나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ESL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들 대부분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답을 했다. 어느 여학생이 가족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 눈물이 전이가 되면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눈물을 질금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헬렌 켈러는 “내일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될 것처럼 그렇게 오늘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평생 어둠 속에서 상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한 사람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한국에서 엄마가 오셨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엄마를 모시고 워싱턴 일대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닌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미술관에 가면 무료로 대여해주는 휠체어를 빌려 엄마를 태우고 다니며 엄마에게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보여드린다. 나는 엄마가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내일은 엄마를 모시고 새벽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떠난다. “엄마, 엄마가 가는 그 미술관은, 옛날에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눈을 단 한번이라도 뜰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가서 보고 싶어하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도 꼭 보셔야 해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엄마 얼굴이 가장 보고 싶을 거예요.”

*** 월요일에 급히 원고를 써서 보냈는데, 신문이 나온 날은 뉴욕에 다녀온 다음날 (수)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원고 쓰면서 벌써 다녀왔다고 쓸수도 없었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일은'으로 썼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