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6. 6. 20:2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9815

 

인간의 영혼을 거두는 천사가 있었다. 하루는 어느 여인의 영혼을 거두러 갔는데 그이는 쌍둥이 아이를 낳고 누워있다가 저승에서 온 천사를 발견하고는 사정을 했다. 아이들 아버지는 사흘 전에 죽었고, 이 신생아들을 돌봐줄 이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 제발 목숨을 거두지 말라고. 천사는 여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한지라 빈 손으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하느님의 명을 거역한 그는 벌을 받아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 떨어지는데, 그에게는 세 가지 과제가 주어진다.



“인간에게 무엇이 있는지, 인간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깨닫고 오라.”



 헐벗은 채 지상에 떨어진 그를 처음 발견한 이는 가난한 구두장이였는데, 그가 옷을 벗어 이 천사에게 걸쳐주고, 부부가 함께 그에게 밥을 먹인다. 천사는 이들에게서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을 발견하고 미소 짓는다.


구두장이의 조수로 일하던 천사는 구두를 맞추러 온 부자 사나이의 등 뒤에 서있는 동료 ‘천사’를 발견한다. 부자 사나이에게 필요한 것은 몇 년 신어도 해지지 않을 튼튼한 구두가 아니라 오늘 저녁, 시신에게 신겨줄 신발이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영원히 살 것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천사는 깨닫는다. 6년이 흘렀다. 구두 가게에 한 여자가 쌍둥이 아이들에게 신길 구두를 맞추러 찾아온다. 천사는 그 쌍둥이 아이들이 6 년 전에 한 산모가 죽으면서 남긴 아이들임을 알아본다. 돌봐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둘 다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인간은 부모보다는 신의 섭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지상에서 6년간 머물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인간은 ‘사랑’을 갖고 있어서 살아있는 것이며, 정작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며,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면 그 안에 ‘살아 있는 신’이 있어 사는 것인데 살아있는 신은 ‘사랑’이다.


 위의 이야기는 톨스토이 민화 중의 하나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간추린 것이다. 영문으로는 ‘What men live by’라는 검색어를 치면 웹에서도 영어 번역문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어머니 날’이었던 지난 주말, 나는 개를 끌고 동네 산책을 나간 길에 식품점에 들러서 간단한 장을 보고 구석의 커피점에서 냉커피를 한 잔 샀다. 개는 가게 앞에 묶어놓은 채였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개가 잘 있는지 유리창 밖을 내다 보았다. 우리 개 왕눈이가 묶여있는 자리에 웬 사람이 등을 구부리고 뭔가 하는 것이 보였다.


개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굽어진 등과 그가 식품점 점원들이 입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 정도가 보일 뿐이었다. 커피를 받아가지고 나오니 평소대로 개가 펄쩍펄쩍 뛰면서 나를 반겼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개를 묶어놓은 자리에 놓여진 물 한 그릇. 누군가 우리 왕눈이 먹으라고 물을 한 그릇 떠다 주고 자리를 떴던 것이다. 길에 묶여 있는 개가 딱해 보여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 한 그릇을 떠다 놓고 가는 어떤 낯 모르는 사람의 굽어진 등 위에 하늘의 빛이 어리고 있음을 나는 흘끗 본 것도 같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5월은 감사와 은혜의 달인 듯 하다. 어머니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고 이어서 아버지 날도 오고 그런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은 것도 같다.



 이 세상을 온전하게 굴러가게 하는 이들은 특별한 아무개가 아닌, 내가 살면서 수없이 스치거나 스치지도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지만 늘 문 앞에 우편물을 갖다 주는 우편 배달부나 새벽의 신문 배달원, 새벽 세시면 빵을 굽는 우리 동네 식품점 점원. 밤새 하이웨이를 달리는 물품 트럭 운전사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그 보이지 않는 손길에서 나는 이따금 신의 시선과 숨결을 느낀다. 그 찰나의 각성의 순간에 나의 등 허리도 문득 빛날지 모른다.

 

2012, 5,16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2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5521

 

올해로 미국에 와서 산지 꼭 10년이 된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미국에서 영어교육 전공으로 학위까지 마치고 현재 하는 일도 영어를 가르치거나 영어교육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데, 여전히 영어는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최근에 친구로부터 파티 초대를 받았다. 집 뒷마당이 아주 넓으니까 거기서 야유회를 할 계획이니 부담 없이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Chillie and Dog Party’라는 제목을 붙였다. ‘칠리는 고기와 각종 야채를 잘게 썰어 뭉근하게 오래 끓인 고기 죽 같은 것인데, 칠리를 대접하겠다는 말이군. 그런데 도그 파티라면 개들도 모여서 노는 파티인가? 마당이 넓으니까 아이들과 개들까지 모두 어울려 노는 파티인가보다. 우리 개 왕눈이도 데리고 가야지.’ 마침 이 때 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내 친구네 집에서 도그 파티가 있대. 왕눈이 목욕시켜서 파티에 데려 가려고!”



 내가 파티 얘기를 하자 전화기에 잠깐 침묵이 흐른다. “엄마, 도그 파티는 개 데리고 가는 파티가 아닌데요. 그 도그는 ‘핫도그’예요. 칠리와 핫도그를 제공하겠다는 말이에요.” 아들 덕분에 파티에 개를 끌고 가는 실례를 안 하게 되었다. 그 ‘도그’가 ‘핫도그’를 말하는 걸 나는 몰랐던 것이니….



 사실 핫도그(Hot Dog)만해도 그렇다. 내가 한국에서 알고 있던 핫도그는 막대기에 소시지를 끼고 밀가루 반죽을 발라서 기름에 튀겨 내던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소시지를 빵 사이에 끼워 먹으면서 그걸 핫도그라고 한다. 나는 소시지 종류를 안 먹기 때문에 평생 핫도그를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도그 파티’라는 단어를 보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개’일수 밖에.
 


핫도그뿐이 아니다.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미국의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는 ‘샌드위치’라고 부른다. 처음엔 그것도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었다. 비닐봉지를 ‘플라스틱 백’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언젠가 내 친구 영희씨(가명)가 영어를 배우다 저지른 실수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영어 ‘Dish’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접시’가 된다. 미국에 처음 와서 ESL 교실에 다니던 중이었는데, 미국인 선생님이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겠다고 하면서 “Bring a dish to share”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영어 초보자인 영희씨지만 ‘Bring a dish’라는 말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디시’ 정도는 한국에서 중학교때 배웠던 단어니까.



 미국 선생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난생 처음 초대받은 영희씨는 백화점에 가서 큼직하고 예쁜 접시를 하나 골라 예쁘게 선물포장까지 해 가지고 파티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음식이 담긴 그릇들을 한 가지씩 가져왔더라고.


 
Dish 는 ‘접시’라는 뜻도 있지만 ‘음식’이라는 뜻도 있다. 영희씨는 그것을 몰랐던 거다. 그뿐 아니라 미국 서민들의 파티란 것이 대개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함께 나누는 ‘팟럭(Potluck)’ 형식이란 것에도 깜깜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접시’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Plate(플레이트)’에 더 가깝다. 접시를 Plate 라고 말하면 혼동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Dish라는 말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실수를 했던 영희씨도 지금은 미국인 뺨치는 영어 실력으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웃으면서 옛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실수는 미국 생활 초보자들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어르신들도 실수담을 전하며 깔깔대기도 하신다.



언어를 배우면서 착각이나 실수는 누구나 한다. 심지어 모국어를 사용할 때도 뜻을 잘 모른다거나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수에 기 죽을 필요는 없다. 한 가지 실수를 했으면 새로 한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았는데도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서 나는 이 낯선 나라의 삶이 즐겁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착각도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어야 놀자!

May 9, 2012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6. 6. 20:2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01954

 

매년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미국 전역에서 걷기에 재미들린 사람들이 워싱턴DC에 모인다. 이들은 남들이 다 잠이 든 새벽 3시부터 조지타운에서 시작되는 포토맥 강변 수로를 따라서 하루에 100 킬로미터 행진을 한다. 이들이 100 킬로미터를 행진하여 다다르는 최종 목적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 국립 공원. 이것이 자신 없는 사람들은 아침 10시에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여 역시 하퍼스페리를 향해 걷는다.



1974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 내가 처음 참가하게 된 것은 지난해의 일이었다. 작년에 이 지면에 글도 쓰고, 주말 특집으로 행사 소개도 한 적이 있다. 지난 해에는 아들과 함께, 올해는 동행 없이 나 혼자였다. 하지만 350여명의 참가자들이 나의 길동무였다.

 


 
올해는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오후부터 비가 내릴 것이 예보됐다. 날도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작년에는 발걸음 가볍게 50 킬로미터를 마쳤는데, 올해는 어쩐지 처음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이미 절반 지점부터 나는 절름거리기 시작했고, 길에서 잠이 쏟아졌으며, 급히 먹은 샌드위치에 체한 듯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도착 지점은 한 없이 멀었다. 사람들이 절름거리는 나를 추월하여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앞에 차례차례 두 사람이 지나갔다.
 

 


한 사람의 셔츠 등판에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가 선명하게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는 문구였다. 고통은 순간이지만 견디기가 참 힘들어 보였다. 나는 그래도 이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또 한 사람이 나를 지나쳤다. 그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 중이었다. “난 지금 걷고 있어. 남편은 중간에 포기하고 나갔어. 지금 집결지에서 뜨거운 음식과 커피를 먹으며 쉬고 있어.” 누군가 걷기를 중도 포기하고 집결지에서 편히 쉬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게다가 다리가 잘 못 되었는지 나는 지금 절름거리고 있는데, 이런 최악의 상태에서 완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신의 계시다. 중도포기해도 살 길이 있다는 신의 계시임이 틀림없다. 이제 그만 걷자.’

 



 그렇게 4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10킬로미터를 더 걸으면 목적지였다. 어쩐 일일까? 생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견디고 꾸역꾸역 걷고 나자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마신 뜨거운 커피 덕분인지, 30여 분간의 휴식 덕분인지 나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다리는 여전히 절름거렸지만, 그래도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그래서 중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접어서 강물에 날려보내고 나는 다시 마지막 10킬로미터의 여정에 올랐다.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숲은 검게 물들었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날 저문 숲 속 길을 걸었다. 걷다가 다리의 고통이 극심해 졌을 때, 나는 ‘달리기’를 생각해 냈다. 걷기 자세에서 ‘달리기’ 자세로 바꾸자 오히려 고통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목적지까지 달리기 자세를 유지했다. 내 달리기 기록은 고등학생 시절, 체력장을 위한 1000 미터 달리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밤의 숲 속 길을 수 킬로미터를 혼자서 달리고 있었다. 절름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밤새들이 울고, 강변의 꽃들이 흰 별처럼 피어나 나의 길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도 50 킬로미터 행진을 완보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나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고통을 견뎌내는 시험 한 가지를 통과한 기분이다. 혼자서 밤의 숲 속 길을 달려본 그 기억은 내게 또 한 해를 용감하게 잘 살아낼 힘을 주는 것도 같다. 내년에도 나는 또 이 길을 걸을 것이다.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극복할 것이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

 



 이 행사는 매년 1월 말에 등록을 받는데 등록을 시작하자마자 하루 만에 신청 마감이 되는 편이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이 행사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된다. https://www.onedayhike.org

 

2012,5,2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25. 21:34

 

 

http://thebullyproject.com/indexflash.html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8282

 

최근 극장가에 ‘Bully (청소년 폭력)’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출시되었다. 공립학교 학생들이 학교나 스쿨버스에서, 동네에서 또래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언어,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사례들을 다섯 학생과 그 가족을 중심으로 1년 가까이 기록한 것이다.


 

아이오와주의 중학생 알렉스는 중산층 가정에서 조산아로 태어나서 몸이 허약하고 성장이 느렸지만,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동생들이 넷이나 있는데 집에서 설거지며 동생들 돌보기 등 부모님 잔심부름도 도맡아 하는 착한 아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렉스에게는 친구가 없다. 알렉스가 사회성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학교나 동네에서 ‘왕따’당하는 아이로 찍히고 말았다. 알렉스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스쿨버스 안에서, 학교에서, 어딜 가나 주변 아이들의 폭력에 시달린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그가 조용하고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크게 염려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카메라에는 그가 지속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는 것이 기록된다. 중간에 제작자가 폭력 장면이 담긴 장면들을 학교와 부모에게 보여준다. 부모는 분노하고, 학교는 침묵한다.


 

너무나 속이 상한 엄마가 울면서 알렉스를 다그친다. “넌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거니? 넌 그렇게 당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니?” 그러자 착한 알렉스가 아무 표정 없이 대꾸한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자꾸만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 느낌도 없어요.”


 

마침내 학교에서는 비디오 자료에 담겨있는 악동들을 개인면담하여 문제를 시정해보려 한다. 대부분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던 아이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대꾸했고, 그를 괴롭힌 아이들조차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폭력을 당하는 일에 익숙해진 아이와 남을 괴롭히는 일에 익숙해진 아이들, 바로 옆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내 알 바가 아니라며 신경 쓰지 않은 아이들, 그리고 운전에만 충실했던 스쿨버스 기사. 무정한 사회의 단면을 시골의 스쿨버스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프고 씁쓸했다.


 

동성애자로 낙인찍혀 학교에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로부터도 집단적 왕따를 당하고 동네에서도 설 자리가 없는 소녀가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보며 말한다. “비가 왜 오는가 하면, 사람들이 슬픔을 꾹꾹 참고 사는데, 그 슬픔이 모여서 비가 되어 쏟아지는 거야. 저건 슬픈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야.”


 

대개 청소년 폭력(bully)의 유형으로는 말로 약을 올리거나 모욕을 주고 겁을 주는 언어적 폭력, 밀거나 치고 때리고 찌르고 괴롭히는 신체적 폭력,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절교해 버리고 왕따시키는 사회적 폭력, 그리고 페이스 북과 같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저지르는 사이버 폭력 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폭력에 시달려 자살을 하는 사례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학교 교사들이나 교육관계자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한 학부형은 ‘플라스틱 스마일 (plastic smile)’이라는 말로 학교의 자세를 비난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저 위선적인 미소를 지으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잠정적인 통계에 의하면 해마다 1300만 명의 미국의 청소년들이 크고 작은 ‘폭력’을 당하고 있으며, 약 300만 명의 학생들이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결석을 한다고 한다. 학교폭력으로 자살을 하거나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미국 여러 도시에서 부모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실, 자식들을 그렇게 희생당한 부모들이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엔 괴로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라고 알렉스는 말한다. 우리들의 귀한 자식이 폭력에 이런 식으로 순응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내 아이가 남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게 방치해서도 안 된다. 다음은 학교폭력에 대항하는 웹사이트다. http://www.pacer.org/bullying/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18. 21: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4607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마음 놓고 길을 가자 새 나라의 새 거리!”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학교의 복도에서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좌측 통행’을 하라는 것을 골수에 새겨지도록 배우고 실천했다. 복도에서 좌측통행을 하지 않다가는 ‘당번’이나 ‘주번’에게 걸려서 칠판에 이름을 적히는 일이 허다했다. 새 나라의 어린이로서 나는 착실히 좌측통행을 몸에 익히며 성장했다.


 

그런데 십여 년 전 내가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학교 건물 계단을 오르는데 마침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 나오는 학부생들이 얌전히 ‘좌측 통행’을 하는 내 앞 길을 물밀듯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왼쪽은 비워놓고 복도의 오른쪽으로 파도처럼 밀려 내려와 얌전한 나의 좌측통행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참 공중도덕이 없는 학생들이로군. 미국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킨다고 하는 말도 다 거짓부렁인 거야!’ 미국에서 자동차나 사람이나 모두 ‘우측통행’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일을 겪은 이후, 복도에서 학생들이 통행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한 후의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미국 학생들의 통행을 방해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길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사람들도 보행할 때 마주 오는 사람과 지나칠 경우 각자 길의 오른쪽을 차지하는 ‘우측통행’이 이뤄지는데, 내가 자란 한국에서는 왜 차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이라고 가르친 걸까? 내가 추측하기에 학교 복도나 비좁은 통로에서 ‘좌측통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식민지 시절부터가 아니었을까 한다. 식민지 시절부터 ‘좌측통행’ 문화가 학교에 정착했고, 그래서 그것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고, 그것과 상관없이 한국의 도로 교통 시스템은 미국식으로 정착을 한 결과,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길이라는 현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미국에서는 오른쪽에 사람들이 서 있고, 급해서 에스컬레이터에서조차 걸어야 할 형편인 사람들은 왼편을 통해 걸어올라간다. 그래서 메트로역처럼 부산한 곳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오른쪽에 붙어서서 왼편을 열어 놓아 주는 것이 일반적인 에티켓이다.


 

날이 포근해지니 인근 공원으로 소풍이나 산책을 나가는 일이 잦아진다. 여기서도 ‘우측통행’의 원칙은 지켜진다. 특히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사용할 때에는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신경써서 우측통행을 하는 것이 좋으며, 친구, 가족들과 여럿이 산책을 할 때에도 주변에 지나치는 사람들을 신경 쓰고, 길의 절반은 열어두는 배려를 잊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때 걷는 사람이 진행방향 길의 오른편을 차지하고, 왼편은 누군가 지나 갈 수 있도록 남겨둬야 한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특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저 멀리 내 뒤편에서 “On your left!”라고 소리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당신 왼쪽으로 통과하겠습니다!”라는 신호다. 이럴 땐 좀더 신경 써서 길 오른편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통과하는 사람을 신경 써주는 제스처를 해 주면 그는 통과하면서 “Thank you!”라고 인사를 날릴 것이다. 만약에 산책로에 자전거를 끌고 간다면 “On your left!”을 열 번쯤 소리쳐서 연습을 하고 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녀들과 함께 공원에 자전거를 끌고 나갈 때도 이것을 숙지시켜주는 것이 좋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내가 빠른 걸음으로 앞사람을 추월해 갈 때도, 앞에 가는 사람의 왼편으로 통과하는 것이 좋다. 만약에 길의 오른편으로 가고 있는 앞사람의 오른쪽 구석으로 내가 통과를 하게 되면 상대방은 어딘가 ‘공격 당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무언의 도로 교통을 상대방이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끔 산책로에서 이런 미세한 무언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 나도 모르게 언짢은 기분이 드는데, 얼른 마음을 고쳐먹고 그에게 웃어준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저이도 어쩌면 나처럼 좌측통행 사회에서 새로 전입을 했는지도 몰라. 그래서 자신이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지. 차차 깨닫겠지.’

 

 

 

2012,4,18

 

 

 

* 전에 미국에서 수년간 살고 있는 한국인 대학원생과 함께 산책을 하는데, 자전거 탄 이가 On your left! 외치고 지나갔다. 나는 평소에 늘 듣던 소리니까 그냥 뒤도 안돌아보고 길을 좀 비켜주고 있는데 학생이 내게 묻는거다, "지금 저 사람이 뭐라고 한거에요?"  On your left.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왼쪽으로 추월한다고 신호 보내는거에요.  난 이미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낯설고 말귀도 못알아듣겠고 그런거다.  마찬가지로, 아마도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익숙한 정보들을 내가 놓치는 것이 아주 많겠지....   아무튼 나로서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생각'을 찾아내곤 한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11. 20:5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0990

 

 

 

 

 

 “여섯 살 때부터 나는 뭐든지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들었다. 50세가 될 때까지 수많은 디자인을 제작했지만, 70세가 된 후에야 동물, 곤충, 물고기, 식물, 나무들의 진정한 형상을 깨닫게 되었다. 86세가 될 때까지 나는 더욱 발전할 것이고, 90세에 예술의 진수에 좀 더 다가가 있을 것이다. 백세에 나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고, 백십 세가 되면 모든 점과 선이 살아 움직일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 남아 있을 사람들에게 내 말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살펴 주기를 부탁드린다.”


 

요즘 스미소니안 아시아 미술관인 새클러 미술관에서는 일본 화가 호쿠사이(1760-1849)의 ‘후지산 36경’ 판화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오는 6월29일까지 계속된다. 프랑스 파리의 풍경에는 뾰족한 에펠 탑이 들어가고, 일본 풍경에는 일본의 상징인 뾰족한 후지산이 많이 등장한다. 이 판화전의 작품들은 화가 호쿠사이가 애초부터 ‘후지산 36경’을 기획하고 작정하고 제작한 것이고 전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호사인 셈이다.



 

 판화가 ‘호쿠사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거리에서 포스터를 늘어놓고 판매하는 자리에서나 식당 등지에서 물거품이 일어나는 일본 파도 그림을 종종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강하게 여겨진다고 해서 미국 사람들 중에서 그 파도 그림을 방 벽에 붙여 놓는 이들도 많다. 바로 그 ‘파도그림’의 주인이 호쿠사이이다. 조선의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보다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비슷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이기도 하고 세상 만물을 다 그리고 싶어했던 그의 예술세계가 단원, 혜원의 세계와도 흡사하여 더욱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 화가가 후지산 36경을 제작할 무렵인 75세에 바로 위와 같은 술회를 한다. 여섯 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던 화가가 평생 직업 화가로 살아왔는데 70에 이르러서야 사물의 정확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 90쯤에나 예술의 진수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는 아직도 이뤄야 할 것이 많은 ‘젊은’ 화가였던 것이다.

 

 

 

 


 

최근 미국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 편 있다. ‘Jiro Dreams of Sushi(지로는 초밥 꿈을 꾼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현재도 일본의 작은 초밥 집에서 매일 손님을 위해 초밥을 만드는 85세 ‘지로’ 할아버지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나이 아홉에 집을 떠나야 했는데, 아홉 살 소년이 들은 말은 “너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었으므로 길거리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초밥 왕’이 되었다.


 

두 아들까지 모두 자신의 뒤를 잇는 초밥의 장인으로 성장시키고 일본 최고의 초밥 왕으로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은 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여전히 손님 열명이면 가득 차는 작은 식당을 지키며 아들과 제자들을 진두지휘하고 손님 접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꿈속에서조차 초밥 생각을 한다. 때로는 꿈에서 깨어나 “이거다!” 외치며 꿈 속에서 보았던 초밥을 만들기도 한다.



 

초밥에 완성이란 없으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하며, 그러므로 매일매일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고 그는 술회한다. 초밥을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므로 자신은 죽을 때까지 초밥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스크린에 비쳐지는,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맑은 표정의 자그마한 이 할아버지에게서는 어쩐지 레몬과 생강 향기가 감도는 것도 같다. 참 향기로운 사람이다.


 

벚꽃이 분분히 지는 봄 날 만난 두 명의 일본 장인 ‘호쿠사이’와 ‘지로’는 삶에 대한 긴 안목과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게 주어진 생의 절반도 살아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우리 삶에는 각자 크고 작은, 그러나 완수해 내야 할 사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이 백 살에 내가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데 나도 영롱한 삶의 열매를 만들고 사라지고 싶어진다. 이제부터라도 꿈을 꿔야 하리라.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4. 4. 22:2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86871

 

한국에서 치러지는 4.11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재외국민 투표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진행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각 지역 선거구 및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투표가 이뤄졌다. 나는 지난 주말에 이웃 주의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투표를 했다.


 

 
워싱턴 인근 지역의 경우 한미과학협력센터 건물에 투표소가 마련되었는데 건물 입구에 태극기 그림과 함께 ‘투표소’라고 큼지막하게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한글로 ‘투표소’ 표시를 보는 것 만으로도 한국 집으로 돌아간 듯 푸근한 기분이 들었다.


 

 
투표소에서 “우리 아들이 생애 첫 투표를 하는 거랍니다”하고 내가 지나가는 말로 설명을 하자, 진행 요원이 그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해 주었다. 생애 첫 투표라든지, 아기까지 안고 온가족이 투표를 하러 왔다든지, 연로하신 어르신들께서 투표에 참여하신 경우 특별히 즉석 기념 촬영을 해 준다는 설명이었다. 참 세심한 배려라고 할 만하다. 아들은 생애 첫 투표를 주위 어른들의 칭찬까지 받으며 치러낸 셈이다. 아들 녀석은 몹시도 기쁜 표정이었다. 국민의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인 선거에 아들을 참여 시킨 나로서도 뿌듯한 시간이었다.


 

 

 


 

성인이 되어 선거권을 가진 이후에 나는 투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열세라서 뽑힐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나는 소신대로 투표를 하곤 했다. 내가 표를 던진 후보가 뽑혔을 땐 기뻤고, 그가 낙선 했을 때는 아쉽지만 당선자가 잘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난 이후로 내게는 투표를 할 기회가 없었다. 지난 10년 여의 세월 동안 미국땅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나는 미국의 선거에도 한국의 선거에도 참여 할 수 없었다. 마침내 재외국민들에게도 선거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그제서야 제대로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은 듯 했다.


 

 
혹자는 ‘미국 땅에 살면, 미국 일에나 신경 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미국에 살고 있으므로 설령 내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미국이 잘 되어가길 기대하며 미국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금도 착실히 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쓴다. 내게 미국의 선거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성실하게 그 의무를 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 어디에 살건, 내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고 내 가족이 대한민국 땅에 있는 한 나는 한국으로부터 한 치도 멀어질 수 없다.


 

 
나의 큰 아들은 현재 강원도 전방에서 적과 대치 중이고, 작은 아들도 조만간 한국군에 입대할 것이다. 한국이 이들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만큼이나 신성한 것이 선거이기도 하다. 내 나라의 ‘지도자’들을 잘 뽑아야 나도 내 가족도 편안할 것이다. 게다가 통신과 운송 기술의 발달로 재외국민의 물리적 거리는 많이 완화가 되었다. 비행기만 타면 한나절에 갈 수 있는 조국,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이 비좁은 지구촌 시대에 외국에 나가 있다고 조국의 일에 무심할 수는 없으며 외국에 산다는 것이 투표 자격의 상실을 의미할 수는 없다.


 

 
첫 투표를 한 아들은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이름도 생경한 각종 정당 표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가려내고,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소속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투표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도 배웠으리라.


 

 
내 주위에는 3개월에 걸친 선거인 등록기간을 놓치고 이제서야 선거인 등록을 희망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때는 잘 몰라서 등록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투표가 진행되는 것을 접하면서 아쉬운 감이 드는 모양이다. 이번에 투표의 기회를 놓치신 분들은 올해 12월에 있을 18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선거인 등록을 놓치지 마시길 당부드린다. 기간 내에 선거인으로 등록을 해야 선거일에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고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 내가 던진 표 한 장이 민주주의의 꽃 한 송이가 되는 것이니 투표는 정녕 즐거운 축제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3. 28. 22:3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82938

세계보건기구의 최근 자료를 보면 세계 137개국 국민들의 비만도를 비교해 놓은 것이 있다.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열 개의 국가들 중 아홉은 남태평양 일대의 작은 섬나라들이고, 최고 비만 10위에 미국이 올라있다. 미국은 성인들 중 33퍼센트가 비만에 해당한다고 한다. 호주와 영국 역시 비만 상위 20위, 2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은 비만 최하위 20개 국가에 포함된다. 일본은 137개 국가 중 119위, 남한은 126위. 비만도에서 최하위는 베트남으로 보고되었다.
 


전체적으로 비만 최상위의 국가들이나 최하위 국가들에 개발도상국들이 몰려있다. 그러니까 비만 10위에 오른 미국이나 비만 하위 국가에 속하는 일본, 한국을 제외하면 대개 경제적으로 열세에 있는 사회에 비만 인구가 몰려있거나 혹은 못 먹어서 야윈 인구가 몰려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면 가난하면서 비만 인구가 넘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페루의 ‘거미 원숭이’들은 주로 과일이나 견과류 등을 먹고 사는데, 9개월 동안 밀림에서 이들을 따라다니며 연구한 학자들이 있다. 거미 원숭이들이 개별적으로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의 양은 다양할 수 있는데, 이들이 섭취한 단백질의 양은 일정하다고 한다. 전체 섭취한 칼로리에서 탄수화물로 섭취한 칼로리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섭취한 단백질은 늘 일정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생들의 칼로리 섭취를 관찰하고 분석한 학자들도 있다. 대학생 한 그룹을 호텔에 머무르게 하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갖춘 뷔페 음식을 제공하고 이들이 먹는 음식을 꼼꼼히 계산한다. 첫 이틀 동안 이들은 똑 같은 식당에서 각자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그 다음 이틀 동안에는 이 그룹을 두 개로 나눴다. 한 그룹은 단백질 중심의 뷔페 식단을 받았고, 다른 그룹은 탄수화물이 많이 들은 뷔페 식단을 받았다. 이틀이 지난 후 이들은 처음처럼 다시 똑같은 식당에 모여서 자유롭게 식사를 했다.


 

중간에 단백질 중심의 식단을 제공받았던 그룹은 그 이틀 동안 섭취한 칼로리가 오히려 적었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을 제공 받았던 그룹은 단백질 섭취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칼로리 섭취량이 증가했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에서 평소만큼의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그들은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원숭이 관찰에서나 대학생들의 섭생 관찰에서나 비만 문제의 열쇠가 되는 것은 ‘단백질’이다. 우리에게는 매일 일정량의 단백질 섭취가 필요한데, 단백질이 모자라면 그것이 보충될 때까지 우리는 허기를 느끼고 자꾸만 뭔가 먹게 될 것이다. 우리 몸에 충분한 양의 단백질이 들어오면 우리는 시장기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의 칼로리 섭취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필요 이상의 칼로리 섭취가 비만의 주요 원인이라면, 비만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우리 식생활에서 단백질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비만도 최상위 국가들인 남태평양의 개발도상국들과 미국이 당면한 비만 문제는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단백질이나 무기질 대신에 값싸게 공급되는 탄수화물, 지방질이 가득한 음식들을 과도하게 섭취 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선한 야채, 과일, 육류는 값이 비싸지만 햄버거, 탄산음료, 튀김 음식, 과자, 빵은 값이 싸고 어디서나 쉽게 살수 있다.


 
본래생선과 과실이 풍부했던 남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비만이 된 것은 20세기 후반, 경제적 후진국으로 어업권을 다른 선진국에 강탈당하고 선진국에서 내다버리는 칠면조 꼬리의 기름 덩어리, 값싼 청량음료와 밀가루, 빵 등으로 연명하면서부터다. 미국의 대도시 빈민가에는 신선한 야채나 유제품, 과일을 판매하는 식품점이 적다. 공장에서 나온 빵과 과자,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점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어딘가 허기지고 그래서 값싼 탄수화물 덩어리들을 자꾸 먹고, 그리고 비만이 된다.
 


사람은 허기져서 죽기도 하지만, 비만으로 죽기도 한다. 가난한 비만은 빈곤과 풍요가 극단으로 흐르는 현대 문명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더한다.


 

2012, 3, 28

 

관련자료: http://www.robbrooks.net/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3. 21. 20:2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7984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81526

 

 

 

동물도 인간처럼 말을 할 수 있을까? 동물에게도 언어 능력이 있을까? 언어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교양 수업 중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언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것이다. 인간들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보편적인 구조가 존재하고, 이러한 언어구조 능력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는 논리를 펼친 학자로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가 있다. 요즘 그는 언어학자이기보다는 진보적 지성으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게도 언어 능력이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 동물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나 진화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영장류 침팬지가 이들의 언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1973
년 갓 태어난 침팬지에게 님 침스키 (Nim Chimsky)’라는 이름을 붙인 연구팀이 침팬지의 인간 언어발달 연구를 시작한다. 태어난 지 2주 만에 엄마 품에서 떨어진 님 침스키는 인간의 아기가 자라나는 환경과 똑같이, 인간의 가정에서 인간 대우를 받고 성장한다. 그리고 전문 교사들이 이 침팬지에게 언어 학습을 시킨다. 이 침팬지는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미국 수화를 토대로 극히 기초적인 어휘들을 습득해 나간다. 3년여의 교육과 관찰 끝에, 연구진은 침팬지가 인간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구를 중단한다.

            
여기까지는 교양 과정 언어학 수업에서도 많이 소개되는 일화이다.  그런데 연구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 님 침스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님은 원래 그가 태어난 동물 연구소의 철창 안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아이로 성장하던 님은 다른 침팬지들과 똑같이 철창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다. 그 후에는 신약 연구팀에 실험용 동물로 팔려 간다. 그는 각종 백신의 생체실험 동물로 이용되다가 간신히 구출되어 야생동물 보호소로 보내졌다.  그 보호소에는 동료 침팬지가 없었고, 그는 우리에 갇힌 채 2000 26세로 사망하기에 이르도록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이 침팬지가 죽을 때까지 그를 찾아가 친구가 되어준 이는 그를 인간의 아기처럼 끔찍이 아끼던 그의 보모들이나 연구자들, 교사들이 아니었다. 동물 연구소에서 그를 친구처럼 대하던 동물원 직원이 언어 교육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침팬지와 활발하게 소통하며 죽을 때까지 그의 벗으로 남았다.



2011
년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영화인 프로젝트 님 (Project Nim)’은 이러한 님의 일생을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해에 이와 흡사한 영화 한편이 출시가 되었다. 제목은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인데 사람들은 이를 고전 영화 혹성탈출시리즈의 전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 비행사가 불시착한 이상한 별은 유인원들이 지배하는 땅. 우주비행사는 결국 그 유인원의 땅이 바로 자신이 떠나온 지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혹성탈출을 나는 어릴 때 흑백 텔레비전으로 본 적이 있다. 지구가 어떻게 유인원의 땅이 되었는지를 2011년에 출시된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인데, 참 놀랍게도 이 영화와 거의 유사한 침팬지 학대가 사실은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니, 님 침스키의 기구한 몰락과 영화 속 침팬지의 파란만장한 역정이 너무나 일치해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침팬지가 인간 언어를 습득할까 하는 연구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인데,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침팬지에게 바나나이라는 단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침팬지에게 바나나를 물에 넣어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침팬지가 바나나를 창 밖으로 휙 던졌다. 몇 번이나 같은 지시를 해도 침팬지는 똑 같은 짓을 반복했다. ‘역시 침팬지는 안돼……’ 연구자가 한숨을 쉬며 창 밖을 내다보니 창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고 한다.



내일은 대학원생들과 국립 동물원에 필드트립을 나간다. 침팬지 사육장에 가서 침팬지들을 관찰하며 간단한 언어 실험도 해 보려고 한다. 문득 궁금해 진다. 인간 언어를 침팬지가 잘 못 배운다고 치고, 인간은 침팬지의 언어를 얼마나 잘 배울 것인가?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3. 15. 00:0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75304

http://americanart.tistory.com/1569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코지 판 투테 (Cosi fan tutte)’가 지난 2월부터 3월15일까지 케네디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 중이다. 제목 ‘Cosi fan tutte’는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세 명의 남자들이 합창하는 곡의 대사이기도 한데, 우리 말로는 ‘여자는 다 그래’라는 뜻이다. 애인들의 사랑이 진실하고 영원한지 시험을 해 보는 남자들, 그 남자들의 꾐에 넘어가는 애인들. 그래서 결국 남자들은 ‘여자는 다 그래’라고 노래 부르게 된다는 것인데,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 제목은 그다지 냉소적이거나 여성 비하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냉소적 가사 뒤에 남녀간의 사랑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철학적 관조가 스며있는 유쾌한 코미디다.

 
1790년에 처음 무대에 올랐다는 이 작품이 이백 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관객의 공감을 얻으며 오페라 하우스를 폭소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이유가 모차르트 음악의 탁월성에 있기도 하겠지만, 연애가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도 통시적인 속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는 입고 있는 옷이 바뀔 뿐 그다지 변하지 않는 것이니.

 
그래서일까? 2012년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의 ‘코지 판 투테’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일상을 그리는 ‘시트콤’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닌, 현대적 디자인의 단순한 무대가 세시간 내내 변함없이 지켜지고, 캐주얼 의상, 오토바이 폭주족 의상, 그리고 최근 새로 도입된 미군 복을 입은 주인공들이 무대 위를 활보한다. 출연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즉석 사진을 찍기도 하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군중도 객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고전적이고 화려한 무대를 기대했던 내게 2012년의 ‘코지 판 투테’는 그 일상성 때문에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나의 상식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고전적 오페라를 고전에 가두지 않겠다는 새로운 조류를 발견하는 것은 아프면서도 산뜻한 경험이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해석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이 코미디 오페라에는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각자 중요 역할을 해 낸다. 내가 지난 11일에 본 공연에서는 한국 출신 소프라노 양제경씨가 그 주인공들 중 하나인 '데스피나' 역을 아주 활발하게 해 냈다.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체구가 다소 작은 듯 하지만 작은 체구를 무색하게 하는 힘찬 음성과 연기로 무대를 압도하고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는 그를 보니 특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오페라를 보러 갈 때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갈까? 라디오나 음반을 통해 귀에 익은 아리아를 흥얼거리며 그것을 오페라 무대에서 확인하기 위해 가는 수도 있고, 드라마 그 자체를 즐기는 경우도 있고, 화려한 무대나 조명을 기대하는 수도 있고, 오페라를 위한 오케스트라 연주에 열광하는 수도 있겠다. 오케스트라 연주나, 유명 아리아들, 줄거리, 가수들의 연주와 연기, 무대 연출과 조명들, 많은 요소들이 한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종합 예술’이라고 칭한다.

 
예전에 나는 '오페라'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오페라’는 부자들이나 즐길 수 있는, 서민 생활하고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고, 게다가 노래 가사도 알아 들을 수 없는 것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비용 문제는 아직도 걸림돌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사 이해 문제는 무대 위 쪽으로 자막 처리를 해 주므로 해소가 되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일까, 이제는 역량 있는 성악가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는 종합예술인 오페라 구경을 하는 일이 참 좋다. 입장료는 여전히 부담이지만, 조금 부지런을 떨면 그럭저럭 싼 표를 구할 수도 있다. 케네디 센터에서 ‘코지 판 투테’를 보고 오는 길에 5월에 열리는 ‘나부꼬’와 ‘베르테르’ 공연표를 샀다. 제일 싼 25달러짜리로. 구석자리 가장 싼 표라도 오페라를 볼 수 있다니 참 기쁜 봄날이다.


2012,3,14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3. 8. 01:5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70581

영화 ‘철의 여인 (The Iron Lady)’이 한참 전에 개봉했음에도 여태 안 본 이유는, 영화의 실제 인물인 ‘마가렛 대처 (Margaret Thatcher)’에 대해서 어딘가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이는 12년간 영국의 총리를 지낸 인물로 영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총리이기도 하고 영국은 아직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인물이나 역사물을 즐기는 내가 이 영화를 안보고 지낸 이유는 좀 엉뚱한데 있다.

 
대처가 총리를 지낸 1979년부터 1990년 그 12년 사이의 한국의 현대사는 어떠하였는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가 쏜 총에 사망했고, 이어서 1980년에는 광주 민주화 항생이라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의 잇따른 집권.

 
보수주의자 대처가 영국의 총리로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명성을 쌓는 동안 한반도에서 한창 자라나던 나는 걸핏하면 수업이 중단되거나 휴교령이 내려지던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돌아보기에도 씁쓸하고 암울했던 시절. 그래서 나는 동시대를 살았던 대처의 세월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메릴 스트립이 이 영화로 2012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영화를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영화 ‘철의 여인’은 노년에 쇠락해가는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잡화상의 딸이었던 한 사람. 결혼을 하더라도 남성의 품에 기대있기보다는 사회활동을 하고 싶었던 사람. 그가 마침내 이룬 영광의 세월과 그리고 이어지는 노년과 상실의 시간.

 
대처의 보수적 정치 노선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가 느꼈을 갑갑함에는 깊이 공감하는 편이다. 이 영화에는 남녀가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식사를 마치자 남성들은 남성들끼리, 그리고 동반하여 온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따로 자리를 옮긴다. 이 때 어쩐지 쫓겨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는 젊은 날의 대처. 나는 그이의 그 좌절감에 깊이 공감했다.

 
나는 부부동반 모임을 좋아하지 않으며 잘 가지도 않는다.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다. 남편과 나는 사이 좋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부부동반 모임에 가면 나는 부속품 신세로 변모한다. 한국인들의 경우 부부동반으로 초대를 받아가도 대개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모여 앉는다. 남자들은 서로 술을 주고 받으며 직장이야기나 사회, 정치 이야기를 하고, 동반한 부인들은 자녀교육 얘기나 식탁에 차려진 요리를 어떻게 한 것인지 이야기를 한다. 어느 때는 맥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내가 꼭 필요하지도 않은 자리에서 막연히 남자들의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못 된 여자가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 드는 것이다.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던 여자, 결혼을 하더라도 집에서 살림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젊은 날의 대처를 보며 나는 위안을 받았다. 대처의 곁에는 그가 정치인으로 쑥쑥 자라도록 착실히 외조 했던 남편이 있었다.

 
대처의 시대는 갔다. 한국에서도 신 군부의 시대는 갔고, 혁혁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한국에도 대처를 방불케 하는 여성 지도자들이 정계에 많이 등장했다.


제일 야당대표인 한명숙씨도 있고, 대권 주자라는 박근혜씨도 있다. 진보의 아이콘 이정희씨와 심상정씨가 있고, 서울 시장 후보에 올랐던 나경원씨도 있다. 독신인 박근혜씨를 제외하면, 이들 여성 정치인들은 모두 남편의 착실한 외조를 받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정치적 노선은 각기 다르지만 오늘날 한국의 정치 판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사실이고, 개인적인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이들 여성 정치인들의 활약을 보면서 기쁨을 느낀다. 이들은 한국 정치의 장에서 아직까지도 여건이 척박한 여성들의 몫을 넓히는 철의 여인들인 것이다. 이제 좀 더 많은 여성 인재들이 철갑 옷이 아닌 본성의 부드러움으로 한국 정치의 폭을 넓혀주기를 기대해 본다.


2012,3,7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2. 29. 20:3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66380



‘진흙을 자꾸 던지다 보면 일부는 들러붙기도 한다(Throw enough mud, and some of it will stick)’이라는 영어권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이 사용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실력이 별로 없고 서툴지라도 자꾸 하다 보면 일부는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뜻이 되기도 하고 둘째로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근거 없는 비방을 자꾸만 하게 되면 설령 그 사람에게 잘못이 없을지라도 점점 인상이 나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을 문제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근거 없는 소리도 늘어놓으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한국에서 날아온 인터넷 뉴스는 많은 사람들을 안도하게 했다. 강모 의원이 박모 서울시장의 아들에 대해서 병역비리를 제기하며 매일 블로그를 통해 그리고 의원회관에서 뿌려대는 보도자료로 흑색선전을 계속하던 중이었다. 이 흑색선전은 박시장의 아들이 전격적으로 신체검사를 다시 받음으로써 일단 종결되는 듯 보였다. 의료진은 검사에 문제가 없었음을 입증했고, 흑색선전에 열을 올리던 강모씨는 이를 깨끗이 수긍하는 듯해 보였으며, 고통 받던 박시장은 모든 일을 불문에 붙이기로 했다.

 
그래서 이 일은 이쯤에서 정리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며칠 잠잠하던 강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도 문제들을 캐 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으로 2라운드에 들어가는 듯 하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진흙을 자꾸 던지다 보면 들러 붙는 것도 있다’는 속담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런데, 흑색선전으로 고통을 받던 박시장이 한 말이 눈길을 끈다. 자꾸 아들의 신체검사 결과에 대한 의혹이 반복되니까 급기야는 아버지인 자기 자신마저 ‘내 아들이 혹시 나 모르게 무슨 부정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에 빠지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혹시 내 자식이 나 모르게 못된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순간 부모가 겪는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식품점에 가게 되면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눈앞에 진열된 각종 잡지로 눈길이 가게 된다. 그 잡지 중에 ‘내셔널 인콰이어러(National Enquirer)’라는 것도 있다. 이번 주에는 얼마 전 작고한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장례식 시신 사진이 커버에 실려있다. 그 옆에 ‘피플’이라는 잡지 역시 휘트니 휴스턴을 커버에 실었는데 전성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실어 놓았다. 나는 시신 사진을 허락도 받지 않고 실었을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보며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이제 고인이 된 사람의 모습을 저런 식으로 싣다니 얼마나 무례한가!



 나는 내셔널 인콰이어러지를 직접 사서 들여다 본 적은 없지만 계산대 앞에서 이 잡지 커버를 보는 것만으로도 잡지의 정체를 짐작하게 된다. 이 잡지는 허구 헌 날 영국 찰스 황태자의 가족문제나 이혼문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파경설, 어느 여배우의 임신 소식 등 주로 이혼, 불륜, 파경소식으로 도배를 한다.


 
그래서 하루는 장을 보며 아들에게 말해줬다. “저 잡지가 사실이라면 안젤리나와 브래드는 벌써 몇 수십번 이혼하고, 결혼식하고, 집나가고, 헤어지고 그랬을 거다.” 그러자 아들이 말해줬다. “저 잡지는 하도 이상한 소문을 많이 내다보니 어떤 경우에는 우연히 그 소식이 맞아 떨어져서 대박이 날 때도 있어요.” 그렇군, 진흙을 계속해서 던지다 보면 맞아 떨어지는 것도 생기는 법이군.

 
장난으로 던지는 돌에 개구리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아주 죽이자고 작정을 하고 돌을 던지면 배겨낼 개구리가 얼마나 될까? 개구리뿐 인가? 사람은 강하면서도 연약하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인간’은 한없이 강하고 너그러워질 수도 있지만, 인간인지라 한없이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꾸만 돌을 던지면 분명 다친다.


돌에 맞는 사람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다치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돌 던지는 그 자신의 영혼이 망가진다. 이제 진흙 던지기 놀이는 그만 좀 해줬으면 좋겠다. 진흙 던지는 그 사람이 너무 딱하다.



2012,2,29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2. 29. 20: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62181

중년의 미국 학자 베리씨는 청바지 몇 벌 있는 것을 십 년 넘게 입었다. 이것도 오래 입다 보니 헤어지길래 모처럼 갭 (GAP) 매장에 청바지를 사러 나갔다.


‘갭’은 ‘올드 네이비’와 더불어 미국 서민들의 대표적인 옷 가게로 자리를 잡은 매장이다. 그런데 청바지 진열대 앞에 선 베리씨는 한참을 서성댔다.  청바지들은 쌓여 있는데 도무지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열대를 들여다 보자. Straight, Boot, Original, Skinny, Standard, Easy, Slouchy Slim, Loose, Skater Chino, Cropped Jeans…. 그 외에도 아직 정체 불명의 바지들이 널려있었다. 결국 미국 심리학계를 주름잡는 학자 베리씨는 직원의 도움으로 아주 평범한 ‘진짜 청바지’를 간신히 하나 고르는 데 성공했는데 집에 와서도 그는 전혀 개운치가 않았다. 자기가 사온 것이 정말 그 중 제일 나은 것인지 혹시 거기에 정말 자기가 원하던 물건이 남아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 남편은 미국 대학에서 석사 공부를 마쳤고, 미국 근무만도 3년 넘게 하고 영어도 한 가닥하는 사람인데 가족과 외출을 하거나 식당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모든 거래를 아이들이나 아내에게 일임한다. 도무지 영어가 성가시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식당에 간다고 치자. 햄버거 하나를 주문했다고 치자. 고기는 어떻게 익히기를 원하는가, 햄버거에 치즈를 추가할 건가, 어떤 치즈를 추가할건가, 야채는 무엇을 넣어줄까, 사이드 메뉴는 뭘 선택할래, 물에는 얼음을 넣어줄까말까, 커피에는 크림과 설탕도 필요한가 등등 자질구레한 질문을 알아듣고 일일이 순간순간 판단하고 선택하고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로서는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한국식으로 알아서 한 상 차려다 주면 얼마나 좋을까?

 
앞서 소개한 베리씨의 청바지 구매 사례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이라는 책의 저자 베리 슈워츠 (Barry Schwartz) 박사가 서술한 그의 경험담을 정리한 것이다. 내가 그의 사례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종종 느끼는 곤혹스러운 경험들이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민자이기 때문에, 혹은 원어민이 아니라서 느끼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용 청바지 한 장 맘에 드는 것을 산다는 일이 저명한 미국인 학자에게도 간단한 일이 아니며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일인 거구나 깨닫게 된다.

 
최근에 내게도 스마트폰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애플리케이션들 중에서 내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항목들을 지우려고 하는데 기본설정이라 지워지지가 않는다.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과 씨름하느라 며칠을 보냈다. 그뿐이 아니다. 내게 스마트폰이 생겼다는 것을 발견한 지인들이 이러저러한 앱을 사용하라고 추천들을 한다. 대개 내 삶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나는 꼭 필요한 것만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이런 내가 답답한 사람처럼 비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뭐든 복잡하게 나열되는 것들이 피곤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것이다. 영문으로는 ‘More is less’라는 표현이 있다. 청바지 매장에 너무 많이 널려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바지들은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스마트폰에 너무 많이 깔려있는 앱들, 페이스북에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는 얼굴들, 수 십 가지의 케이블 TV 채널들, 너무 많이 날아오는 우편함의 광고 우편물들, 일반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카푸치노, 카페 라테, 에스프레소, 톨, 라지, 벤티, 스킴, 레귤러 밀크 등 너무 많은 선택사항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판단과 선택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과정이라고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거나 혹은 삶을 단순화하면 된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내 갈 길을 그냥 가는 것이다.


2012,2,22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2. 15. 20: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57467

 케냐의 어느 마을에서 한 살짜리 아기 하마 오웬이 발견되었을 때 이 하마는 심한 탈수증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오웬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130세의 거북이 할머니 앰지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2004년 처음 만난 이후로 단 한시도 떨어져 지내지 않는 단짝이 되었다. 이들은 늘 함께 잠들고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의 얼굴을 핥아주기도 한다.


앰지 할머니가 오웬의 꼬리를 살짝 깨물면 그것은 저쪽으로 비키라는 뜻이다. 오웬이 앰지 할머니의 오른발을 슬쩍 밀면 오른쪽으로 가라는 뜻이고, 왼발을 슬쩍 밀면 왼쪽으로 가라는 뜻이다. 아기 하마 오웬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이 이들의 우정의 시작이 되었을 거라고 학자들은 해석한다. 2월20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기획기사에 실린 사례이다.
 

내가 키우는 개 ‘왕눈이’는 7년 전 동네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작은 잡종 털북숭이 개다. 열 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생김새가 귀여워서 동네에 데리고 나가면 모두들 귀엽다며 만져보고 싶어한다. 왕눈이는 털이 복실복실한 종류의 개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지만 털이 짧고 행동이 민첩한 개들과는 원수지간처럼 사이가 안 좋다.
 

우리 왕눈이에게도 단짝친구들이 있었다. 작은 학생용 아파트에 살 때는 이웃 건물에 사는 ‘포메라니안’ 개의 집에 자주 놀러 갔다. 개가 없어지면 그 집으로 찾아가면 되었다. 그 개 역시 문만 열리면 우리 왕눈이를 보러 왔다. 왕눈이는 그 개가 오면 제 밥그릇까지 내 주며 친구를 반겼다.
 

개인 주택에 살 때는 동네의 ‘비천 프리즈’ 종의 털이 오글오글하고 흰 귀염둥이 개 한 쌍이 틈만 나면 우리 왕눈이를 보러 달려왔다. 내가 일부러 이들과 교제하도록 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네들끼리 동네에서 알게 된 후에 서로 집을 기억해 놨다가 문만 열리면 친구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중성화 된 개들이라 짝을 짓겠다고 오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서로 친구가 그리운 모양이었다. 요즘 왕눈이는 이렇게 서로 오가는 단짝친구가 없다. 왕눈이로서는 딱한 일이다. 개에게도 단짝 친구는 필요할 것이다.
 

동물학자들은 ‘동물’에게도 ‘친구’나 ‘우정’이란 것이 존재할까 하는 물음표를 던져놓고 연구를 하기도 한다. 동물학자들이 규정하는 우정이란, 가족의 범주를 벗어난 대상과 일시적이지 않고 수 년간 지속적이며, 한쪽이 죽거나 사라지면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고, 서로 보호해 주는 시스템인가 하는 것이다. 침팬지, 돌고래, 말, 작은 원숭이 등 사회성이 발달된 동물들이 그 연구 대상이다.
 

학자들이 이러한 연구에서 알게 된 사실로는 돈독한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동물들이 절친한 친구가 없거나, 혹은 교제가 적은 동물들에 비해 건강하고 장수하며 새끼들도 건강하게 키워낸다는 것이다. 친구 없이 혼자 외따로 지내는 동물은 질병에 걸리거나 일찍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 왕눈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나가서 동네 개들과 교제하도록 신경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들도 멀리서부터 맘에 드는 개를 발견하면 서로 다가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지 않던가.
 

이것이 단지 동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인가? 가족이나 친지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은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적으며, 스트레스 호르몬이 상대적으로 적고, 면역체계가 강하다고 한다. 2010년 브리검 영 대학의 과학자들이 30만 명 이상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소원한 채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비만증인 사람들만큼이나 조기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혼자 있으면 외롭고 외로우면 건강도 저하되는 것이다.
 

130세 거북이에게도 친구는 필요했으리라. 우리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혹은 우울감에 혼자 처박혀 지내는 친지를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한다고 해도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 하는 이유는 전화통을 통해서라도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2012,2,15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2. 8. 14:28
Practical Wisdom


철수씨는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철수씨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은 그의 근로계약서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는데, 바닥을 걸레질한다든가, 환자의 침구를 정기적으로 교체한다든가 하는 일이다. 철수씨가 일하는 병동에는 지난 6주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흑인청년이 있다. 그 흑인 청년은 동네에서 친구와 다투다가 그 지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환자의 아버지가 매일 와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환자를 지키고 있다. 철수씨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참 딱해 보였다. 그래서 그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일과 중 아버지가 잠시 화장실에 간다거나,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쐰다거나 하는 이유로 자리를 비울 때 환자의 병실을 치워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복도에서 만난 흑인 청년의 아버지가 다짜고짜 철수씨에게 화를 냈다. 왜 아들의 병실을 며칠째 치워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철수씨가 청소하는 것을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청소를 안 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다. 철수씨는 난감했다. 분명 오늘도 신경 써서 깔끔하게 청소를 해 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청소부 철수씨’라면 나는 어떻게 처신 했을까? 몇 가지 답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청소를 했노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환자의 아버지는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둘째, 부서 감독관을 불러다 놓고 내가 청소를 했는데도 억울한 소리를 들었다고 3자 개입을 부탁한다.  그러면 나는 좀 덜 억울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셋째, 나도 똑같이 큰소리로 화를 내는 방법도 있다.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아니던가? 넷째, 상대방을 싹 무시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내 할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방법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철수씨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빙긋이 미소 짓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후에 자신이 조금 전에 싹 치운 병실에 들어가 다시 청소를 하고 나왔다. 철수씨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아들은 벌써 6주째 의식불명이고, 그 아버지는 속수무책으로 아들 병실을 지키고 있고, 내가 보기에 이들이 너무 딱했어요. 그 아버지로서는 청소가 안되어 있다고 내게 행패를 부리는 것 외에는 그 슬픔을 해소할 데가 없었을 거에요. 딱하잖아요. 내가 그이 보는 앞에서 청소를 하면 아버지가 누워있는 아들을 위해서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보람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실 철수씨는 병원 청소부이고, 그의 근로 계약에는 환자나 환자 가족의 마음을 배려하고 보살피라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단순하게 청소만 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철수씨는 자신을 ‘청소부’로만 여기지는 않았다. 철수씨는 걸레질을 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인간의 사회성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베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근저 ‘Practical Wisdom (실용적 지혜)’의 서두에 소개된 어느 청소부의 실제 사례를 한국인 이름으로 바꿔서 요약해 본 것이다. 그 청소부의 이름이 철수씨이거나 지미, 요한이라 해도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삶을 조화롭게, 정의롭게 지켜주는 것은 사실은 법에 명시되거나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들이 아니다. 우리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쌓을 수 있는 ‘배려심’, ‘덕성’이 오히려 더욱 소중한 가치라고 이 심리학자는 역설한다.

 
요즘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서 한국계 이민자들과 유색인종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발단은 굉장히 사소해 보인다. 어느 한국계 가게 주인과 흑인 손님 사이에서 일어난 극히 개인적인 마찰이었다. 그런데 그 마찰이 인종문제로 비화된 모양새이다. 어쩌면 양측 모두 화가 날대로 나서 갈 데까지 가보자고 작심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는 일에 지쳐서 악에 받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과 나 자신에게 독이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후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막심한 후회감은 어찌해야 하는가? ‘청소부 철수씨’의 아량을 기억하면 오늘 하루 나의 실수를 모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2,2,8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2. 1. 21:1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48183

2월에 발표되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휴고 (Hugo)’와 ‘예술가 (The Artist)’가 유력한 후보로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 모두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휴고’가 193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초기 영화사를 재조명하고 있다면 ‘예술가’는 1930년 경제 대공황을 전후로 전개된 미국의 무성영화, 유성영화의 변천을 담아 내고 있다.

 
‘예술가’의 예술성이나 작품성 같은 것은 둘째치고, 이 영화가 정말 맘에 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렇게 알아듣기 쉬운 미국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영어실력이 아무리 좋은 분들이라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성장한 사람들에게 미국에서의 영화 보기는 참 씁쓸하고 자존심 상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자막’ 없이 영어로만 된 영화를 보면서 대사를 다 알아듣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도 ‘예술가’만큼은 걱정 없이 볼 수 있다. 영화에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이기 때문이다.

 
무성영화 시절의 스타인 주인공은 녹음시설을 갖춘 영화가 세상을 지배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그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는 결국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재기 할 것인가?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근심스럽게 그의 몰락을 지켜보며 그의 행운을 빌게 된다.

 
흑백의 무성영화는 자칫 지루한 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감초처럼 화면을 오가는 강아지가 우리의 근심을 덜어주고 관객을 웃게 만든다. 저 충성스러운 개를 봐서라도 주인공은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우리는 주인공에게 다가가 말해주고 싶어진다.

 
지난 일요일에는 개를 끌고 강변 산책을 하다가 조지타운에 들어섰다. 조지타운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반즈 앤 노블 책방이다. 습관처럼 그 책 방 앞을 지나는데 책방 폐업을 알리는 빨간 안내판이 유리창에 붙어있다. 조지타운의 심장부에 있던 3층짜리 책방 하나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나는 오래된 친구를 잃은 것처럼 맥이 빠져서 집으로 오면서 ‘내 탓이오’를 수없이 중얼거려야 했다.

 
책방에 자주 가서 책을 들여다보거나 구경을 하면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지만, 근래 2년간 나는 책방에서 책을 산 적이 없다. 좋은 책을 발견하면 언 라인 책방에서 저렴한 가격에 샀으며, 최근에는 그나마 종이 책도 사지 않고 전자 책을 샀다. 지난 몇 년 간 책방은 나의 휴식처였지 내가 책을 사는 곳은 아니었다. 결국, 나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네 책방은 설 자리를 잃고 마는 것이리라.
 

거리의 책방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놀러 가나? 이 문제를 생각해보니 더욱 맥이 빠졌다. 하지만, 책의 미덕과는 별도로, 시대는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고 매체가 다양해져 가고 있다. 무성영화의 주인공이 퇴물처럼 사라지듯, 오늘날 동네 책방도 신문물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게 되는 걸까?

 
내가 미국에 와서 가장 사랑한 미국적인 풍경은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공공 도서관과, 여유 있는 책 방 인심이었다. 책방에 소파와 테이블까지 놓아주고 읽고 싶은 책은 맘껏 읽다가 손 털고 나가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 그 여유. 인구 많은 한국의 도시에 살면서 늘 바글거리는 책방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책 구경을 하며 살았던 내가 미국의 책방 인심에서 대국의 풍모를 읽었다면 과장 일까? 그런데 그런 책방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보더스가 갔고, 반즈 앤 노블 매장이 줄어들고 있다.

 
영화 말미에 무성영화 주인공 남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거듭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하나 둘 사라져가는 동네 책방들, 그 책방들도 어쩌면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와 책방의 위용과 품위를 되찾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나 책방뿐이랴. 우리 인생 역시 맥없이 흘러 갈수도 있고 나날이 자라날 수도 있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운 귀환을 빌어본다.

2011,2,1,ㅇㅇㅁ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1. 25. 21:33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43666


그저께는 음력 설날이었다. 아직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은 아들놈을 데리고 장을 봐다가 올해도 가볍게 설 상을 차리고 차례를 지냈다. 본디 ‘설날’의 의미는 ‘조심하는 날’이라고 한다. 밤 껍질을 벗기고 예쁜 각이 지게 쳐내다가 손을 베었지만, 반창고를 감고 마저 하던 일을 하고, 두부를 부치고, 고기적을 굽고, 조촐하게나마 떡국을 끓여 차례상을 차렸다.

 
옛날에 내가 새색시이던 시절, 설 차례를 지내러 시댁에 가니 시어르신들이 “이 집 큰며느리가 왼손잡이”라고 수군거리시는데, 시아버지께서 “우리 새아기도 나를 닮아서 외손잡이네”하며 웃으셨다. 선머슴처럼 사느라 변변한 음식도 만들 줄 모르던 며느리를 들여다보며 “우리 새아기는 밤을 참 곱게도 치네!”하고 칭찬도 해주셨다. 부엌일하기 싫어 밖으로만 돌던 나는 유일하게 젯상의 밤 치는 일을 곧잘 했는데, 친정에서 할아버지께서 밤 치실 때 곁에서 밤 조각 얻어먹으며 눈 동냥으로 배운 실력이었다.

 
시어머니도 안 계신 시집에서, 제사 때가 되면 시아버지는 큰며느리인 나를 데리고 앉아, 홍동백서, 어동육서, 두동미서 등 제사상의 기본 틀을 설명해주셨고 나는 제사 많던 친정에서 구경한 깜냥으로 이런 것들을 금세 배워나갔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제삿날이나 제사 상 차리는 일을 잘 아는 사람은 우리 시아버지 다음으로 나이다. 남편과 그 형제들은 세세한 규범들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달력을 보지 않아도 제삿날이 다가오면 정확히 그 음력 날을 맞추곤 한다. 창밖에 개나리가 필 때, 유월 앵두가 열릴 때 이런 식으로 계절 따라 돌아오던 제삿날들이 창 밖 풍경이 바뀌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다.
 

몇 해전 설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큰 아이가 대학입학 문제로 방황을 하여 집안 분위기가 어둡고, 모두 기운이 없을 때였다. 나는 속이 상해서 설을 지낼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새벽에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남편이 혼자서 서툴게 음식 장만을 하고 있었다. 혼자 음식을 준비하던 남편의 뒷모습이 어찌나 딱해 보였던지! 하는 수 없이 나도 아이들을 깨워서 온 가족이 부랴부랴 차례상을 차리고 다 함께 떡국을 먹었다. 대충 차린 엉성한 차례상이었지만 그날 모처럼 온 가족이 뜨거운 떡국을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웃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번거로워도 이를 통해 정작 우리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게 되지 않았는가? 그 후로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추석 차례나 설 차례를 챙기게 되었다. 차례를 지내는 것이 의무도 아니고, 그저 즐겁고 고마운 가족만의 대동단결의 자리인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해마다 민속 명절인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차례상’ 차리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 차례상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제사나 차례 지내는 것이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도 아니고 수 천 년간 이어진 미풍양속도 아님을 강조하고, 반대편에서는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주장한다. 나의 입장은 분명하다. “만약에 차례상이 그토록 의미 있고 중요하면, 남이 차려다 바치는 것 받아 먹지만 말고 직접 차려보고 말을 하라.” 자기 자신은 차례상 차리는 것을 주도하거나 거들기는 싫으면서 전통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 것은 참 무책임한 태도이다.

 
반대로 여태까지 우리가 간직했던 전통을 무조건 폐기처분 하는 것에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전통의 틀을 유지하되, 힘들지 않게, 기쁘게, 간단히, 모두 즐겁게 그런 자리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올해도 나는 아무도 봐 줄리 없는 차례상을 차리고 한국의 가족들과 통화를 하며 설날 아침을 보냈다. 세상이 좋아져서 화상통화도 가능한 시대라 태평양의 이쪽저쪽에서 설날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된다. 어느 집 맏며느리로 몸은 비록 태평양 건너에 있지만, 그래도 그 집 차례는 내가 지내 준다는 자부심 역시 내가 이역에서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올해도 설 차례를 지냈다. 올해도 한국의 시아버지께 세배도 못 드리고 설날이 지나갔다.


2012,1,25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1. 18. 22:23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40084


“엄마, 엄마, 제 몸에 기생충이 있어요!”
 
1년 여 전의 일이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던 큰 아들이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용변에서 실같은 벌레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어보니 ‘촌충’에 감염된 것 같았다. 촌충에 감염되었을 때는 옷이며 이부자리 등을 깨끗이 소독하고, 구충제를 먹으면 대개 해결이 된다. 그래서 “학교 보건소에 가서 구충제를 타먹지 그러니?”라고 일러주었는데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일단 의사를 만나서 용변검사 및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구충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또 며칠이 지날 것이 아닌가? 고민을 하고 앉아 있다가 내게 한국산 구충제 딱 1인분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국에 다녀온 학생이 미국에서는 구충제 구하기가 어렵다며 내게 선물로 줬던 것이다. 그래서 그 길로 차를 달려 아들에게 가서 약을 먹였다.
 
그 해 겨울에 한국에서 가족이 올 때 나는 다른 것 말고 구충제를 많이 사다 달라고 했다. 나도 먹고 주변에 급한 사람이 생기면 나눠 주려고. 올해도 나는 작은 아들과 함께 종합 구충제를 한 알씩 먹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세대라면 학창시절 해마다 채변봉투를 채워 내던 일이나 혹은 ‘기생충 알’이 발견된 아이들의 이름을 선생님이 부를 때 거기에 내 이름이 끼면 어떻게 하나 근심하던 일들이 기억나실 것이다. 학교에서 주는 약과는 별도로 집에서 종합 구충제를 해마다 봄, 가을에 온 가족이 복용하기도 했었다. 온종일 흙장난을 하고 비누로 손을 자주 씻을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 우리들은 쉽게 기생충 감염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기생충 박멸이 우리 몸에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우리 몸에 살던 기생충들이 위생적인 환경과 구충제의 영향으로 몸에서 사라지면서 ‘아토피’나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났다고 설명을 하는 의사들도 있다. 인간이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 살게 되면서 면역계를 조절해주던 장내 기생충을 잃어버리고 기생충과 미생물들에 충분히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면역계가 모든 것에 과민 반응을 한다는 ‘위생 가설’도 등장했다. 이른바 알레르기,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같은 자가면역질환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기생충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사례를 소개한 학자도 있다.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정준호 지음)에서는 돼지 편충 알을 이용하여 ‘크론병’이라는 소화기 계통의 질환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소개된다. 이 질병은 장내 기생충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고 한국, 일본, 유럽 등 고소득 선진국에서 발견되는데 기생충 알을 약 대신 투여하여 질환을 치료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생충 알 값이 무척 비싸서 부유층에서나 그 의료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피부가 곪아 터지는 환자의 환부를 깨끗이 소독하는 데는 금파리의 유충인 구더기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금파리의 구더기는 환부의 썩은 부분만 깨끗이 빨아내고 생살은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위생도구로 환부를 소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몸의 질환을 화학제재가 아닌 기생충이나 기생충 알로 치료할 때의 장점은 이들이 우리 몸의 면역계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의 문제를 생명으로 푸는 것이 화학제재로 해결하는 것보다 부작용이 덜한 이상적인 방법이 된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지어진 피조물 중에 악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것은 악종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착하고 좋은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내 기생충조차도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우리는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기생충 학자들은 설명해 준다.
 
박멸이 아닌 ‘상생’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단지 기생충만의 문제일까? 신이 지으신 피조물은 모두 아름답다. 인간의 지혜는 생명의 말살이나 박멸이 아닌 ‘상생’ ‘조화’의 길로 더욱 나아갈 것이라 기대해 본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1. 11. 23:3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35980

시사잡지 뉴스위크가 금주 특집으로 ‘머리가 좋아지는 31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내용을 간추려 보면, 우리 두뇌의 기능 중에서 ‘단기 기억장치’ 기능의 향상이 지능의 향상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능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향상되거나 저하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의 지능이 높거나 낮다고 해서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보면 되겠다.

기억력 증진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보조적인 수단으로 걷기, 낮잠, 아무 생각 안하고 쉬기와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하루에 30분씩 일주일에 5회 이상 걷거나 이와 유사한 운동은 뇌의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하루 일과 중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낮잠을 자거나 밤의 충분한 숙면도 기억력을 향상시키거나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나이키나 구글에서는 직원들을 위한 수면실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일과 중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거나 백일몽에 들어서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 우리가 ‘멍하니’ 있는 동안 뇌는 여러 가지 쌓인 일을 정리하고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제 2언어나 외국어 공부는 기억력 증진 및 문제 해결 능력, 판단력에 이르기까지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니까, 현재 미국에 살면서 영어가 능통하지 않아 스트레스 팍팍 받으시는 분들은 이 참에 영어 공부에 재도전하실 것을 권한다.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 하다 보면 단지 영어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소통 능력도 높아지고 게다가 머리까지 좋아지는 것이다.

다음은, 뉴스위크가 소개해준 머리 좋아지는 31가지 방법이다. 이중에 몇 가지라도 의식적으로 실천해본다면 ‘더 머리가 좋아지는’ 한 해가 될 수도 있겠다.

(1)크로스워드 퍼즐과 같은 단어놀이 (2)심황 뿌리가 들어간 음식 먹기. 인도 카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3)태권도 배우기. 태권도가 아니라도 춤추기, 공놀이 등 심장박동을 증가시키면서 손발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운동이 좋다고 한다 (4)‘알 자지라’와 같이 내가 평소에 접하지 않는 뉴스 접해보기. 늘 새로운 정보에 열려있으라는 뜻이다 (5)스마트폰과 같은 온라인 도구들에서 벗어나서 시간 보내기 (6)근무 중에 낮잠도 자고 잠을 충분히 자기 (7)TED(http://www.ted.com/) 자료 시청하기 (8)문학 페스티벌 참가하기 (9)뭔가 외우는 일을 습관적으로 해보기 (10)외국어 배우기 (11)다크 초콜릿 먹기 (12)뜨개질 하기 (13)가끔 미간을 좁히고 사색하는 표정 짓기. 다시 말해서 골똘히 생각해보고 기억해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14)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비디오게임 해보기 (15)트위터에서 유명 과학자들 팔로우하기 (16)요거트 먹기 (17)슈퍼메모 프로그램 활용하기 (18)셰익스피어 연극 보기 (19)상황에 따라서 빠르게 또는 느리게 사고하기 (20)물 많이 마시기 (21)유명대학의 온라인 강의 보기. 비록 대학생이 아니라도 요즘은 유명대학의 명강의는 유튜브나 다른 매체에서 쉽게 시청할 수 있다 (22)미술관 가기 (23)악기 연주하기 (24)종이에 손으로 글 쓰기 (25)모래시계를 이용해 25분 작업하고 잠시 휴식하기 (26)가끔 ‘생각 안 하기’. 내가 아무 생각 안하는 동안 뇌는 중대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27)커피가 기억력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28)즉각적인 보상을 미루고 잘 참는 사람이 학업 성취도가 높다고 한다 (29)자신만의 특기 키우기 (30)일기장이나 온라인 블로그에 글 쓰기 (31)도심을 벗어나 자연으로 나가 시간 보내기.

위에 소개된 서른 한 가지를 들여다보면 결국 항상 새로운 정보를 만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갖고 적절히 운동을 해주고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고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도 머리가 좋아진다니 새해를 맞아 외국어라도 한가지 배워볼까 싶어진다.

2012,1,11,ㅇㅇㅁ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1. 11. 01:12




매주 수요일에 실리는 내 칼럼은 2010년 8월에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그 때부터 매주 한편씩 2,000 자의 글을 신문에 발표를 한 셈이다. 주제를 정하지도 않았고, 그냥 마음가는대로 편안하게 써 달라고 해서, 그렇게 써오기는 했는데... 그 사이에 독자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뭐 별로 관심을 받을 일이 없으니까 나쁜 반응이랄 것이 없고.  누군가 아는체를 할 때는 대개가 덕담이므로. 헤헤.

칼럼을 계기로 모르는 분이 찾아와 내게 일을 부탁하여 기꺼이 수락을 한 경우도 있고,  모르는 분이 연락한 것에 내가 답을 하지 않고 지나친 경우도 있다. 나는 교육 관련 사회단체와는 협조적이지만 그 외에 정체가 애매한 단체와는 잘 협조가 안된다. 내가 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를때는 나서기를 저어한다. (나 스스로 아무데나 깝죽대고 얼굴 들이밀고 그러는것은 실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쓸모가 있는 곳에 서 있고 싶다. 돈이 안되는 일이라도.)  칼럼이 인연이 되어 내 학생이 된 분도 있고. 모르는 사람인데 그냥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덥석 손을 잡아준 분도 계시고 -- 글 잘 읽었노라고.

칼럼을 쓰면서 가장 덕을 많이 본 사람은 나 자신일것이다.  (1) 일단 나는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졌다. 옷 매무새도 좀 조심스럽게 하고, 행동도 튀지 않게, 오만불손하지 않게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이다.  (2) 내 글과 내 행동이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3) 매주 새로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거나, 일단 주제가 정해지면 최소한 '멍청한 소리'를 해서는 안되므로 관련 자료도 챙겨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나 스스로 많이 배우고, 정돈된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나라는 한 인간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대개 수요일에 실리는 원고는 화요일 오전까지 담당기자에게 전해져야 하는데, 나는 성질이 급한 축이라서 뭐든 닥쳐서 하지 못하고 앞서서 하는 편이다. 그러니 일요일 저녁이면 원고가 완성된다. 월요일 아침에 다시한번 원고 상태를 체크하고 (다듬을데가 발견되면 기쁜 마음으로 다듬는다), 그리고 나서 안심이 되면 월요일 오후에 원고를 보낸다.  원고란 것이 써놓고 덮어 뒀다가 다시 보면 뭔가 미진한 것들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런 후에도 신문에 실린 글에서 오자, 탈자, 잘못된 정보가 발견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내가 잘못 쓴것을 편집자가 고쳐 놓은 경우도 종종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글 생각이 안나서 그냥 보내버리고, 월요일 저녁까지도 아무 생각이 안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뉴스위크지를 집어들고 특집 기사를 요약소개하는 형식으로 글을 써서 보냈다. 번갯불에 콩을 튀겨먹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평소에 내가 흥미롭게 관심가지고 관련 서적들을 보아오던터라 글 쓰기가 재미 있었다. 어쨌거나 편집자가 작업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새벽에 원고는 날아갔다.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서울의 김선배가 신년 축하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그 속에 유머가 한편 들어있다. 그냥 웃고 지나갈 만한 유머이지만, 사실 이론적으로 들여다보면 '원인'에 대한 착각이나 오해와 관련된 내용이다.


만득이가 벼룩에게 말했대요. '뛰어!' 벼룩은 팔짝 뛰었답니다.
이번에는 벼룩의 다리 하나를 부러뜨리고 말했답니다. "뛰어!" 벼룩은 미동도 하지 않았겠지요?
만득이가 내린 결론; 벼룩은 다리가 부러지면 귀가 먹는다.

위의 유머와 관련된 실생활의 예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한 학생이 수업중에 집중을 하지 않고 산만하고 노트필기도 잘 안하고 그래서 선생님이 관찰을 했는데, 알고보니 그 학생이 시력이 안좋아서 칠판의 글씨가 제대로 안 보였다는 것이다. 그 학생은 칠판이 안 보이니 옆자리 친구가 베껴쓰는 것을 훔쳐 보거나 혹은 잘 보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을 것이다.  그것이 선생님 눈에는 태도가 불량하게 비쳤을수도 있다.

빈민가 지역 교도소에 흑인 수감자가 많은것을 보고, '흑인들은 범죄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겉보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빈곤한 상황이 이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한가지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미국에 방금 온 학생이 하나 있다. 그는  한국에서 수재,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여러모로 탁월하다. 하지만 영어는 아직 제대로 할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말을 할때도 제대로 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겉보기에 바보같다.  사람들은 그가 말귀를 잘 못알아듣고, 말을 잘 못하므로 바보 천치라고 판단한다. 영어가 문제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수한 미국 만득이들이  내리는 결론, '한국의 천재는 미국의 바보 수준이다.'

하여...이 유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가, 한가지 '스르르' 드는 생각.  매주 수요일에 나오는 내 칼럼을 쓸때, 주제가 어떠하건 한가지 '유머'를 가지고 시작하면 어떨까?  유머가 있는 칼럼. 유머 한가지를 통해서 세상 사는 일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런데 사실 유머 적재적소에 활용하기가 참 어렵고, 게다가 유머를 발굴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서점에 가서 유머집을 좀 들여다봐야 하려나....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