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2. 1. 21:1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48183

2월에 발표되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휴고 (Hugo)’와 ‘예술가 (The Artist)’가 유력한 후보로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 모두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휴고’가 193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초기 영화사를 재조명하고 있다면 ‘예술가’는 1930년 경제 대공황을 전후로 전개된 미국의 무성영화, 유성영화의 변천을 담아 내고 있다.

 
‘예술가’의 예술성이나 작품성 같은 것은 둘째치고, 이 영화가 정말 맘에 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렇게 알아듣기 쉬운 미국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영어실력이 아무리 좋은 분들이라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성장한 사람들에게 미국에서의 영화 보기는 참 씁쓸하고 자존심 상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자막’ 없이 영어로만 된 영화를 보면서 대사를 다 알아듣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도 ‘예술가’만큼은 걱정 없이 볼 수 있다. 영화에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이기 때문이다.

 
무성영화 시절의 스타인 주인공은 녹음시설을 갖춘 영화가 세상을 지배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그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는 결국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재기 할 것인가?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근심스럽게 그의 몰락을 지켜보며 그의 행운을 빌게 된다.

 
흑백의 무성영화는 자칫 지루한 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감초처럼 화면을 오가는 강아지가 우리의 근심을 덜어주고 관객을 웃게 만든다. 저 충성스러운 개를 봐서라도 주인공은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우리는 주인공에게 다가가 말해주고 싶어진다.

 
지난 일요일에는 개를 끌고 강변 산책을 하다가 조지타운에 들어섰다. 조지타운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반즈 앤 노블 책방이다. 습관처럼 그 책 방 앞을 지나는데 책방 폐업을 알리는 빨간 안내판이 유리창에 붙어있다. 조지타운의 심장부에 있던 3층짜리 책방 하나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나는 오래된 친구를 잃은 것처럼 맥이 빠져서 집으로 오면서 ‘내 탓이오’를 수없이 중얼거려야 했다.

 
책방에 자주 가서 책을 들여다보거나 구경을 하면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지만, 근래 2년간 나는 책방에서 책을 산 적이 없다. 좋은 책을 발견하면 언 라인 책방에서 저렴한 가격에 샀으며, 최근에는 그나마 종이 책도 사지 않고 전자 책을 샀다. 지난 몇 년 간 책방은 나의 휴식처였지 내가 책을 사는 곳은 아니었다. 결국, 나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네 책방은 설 자리를 잃고 마는 것이리라.
 

거리의 책방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놀러 가나? 이 문제를 생각해보니 더욱 맥이 빠졌다. 하지만, 책의 미덕과는 별도로, 시대는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고 매체가 다양해져 가고 있다. 무성영화의 주인공이 퇴물처럼 사라지듯, 오늘날 동네 책방도 신문물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게 되는 걸까?

 
내가 미국에 와서 가장 사랑한 미국적인 풍경은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공공 도서관과, 여유 있는 책 방 인심이었다. 책방에 소파와 테이블까지 놓아주고 읽고 싶은 책은 맘껏 읽다가 손 털고 나가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 그 여유. 인구 많은 한국의 도시에 살면서 늘 바글거리는 책방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책 구경을 하며 살았던 내가 미국의 책방 인심에서 대국의 풍모를 읽었다면 과장 일까? 그런데 그런 책방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보더스가 갔고, 반즈 앤 노블 매장이 줄어들고 있다.

 
영화 말미에 무성영화 주인공 남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거듭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하나 둘 사라져가는 동네 책방들, 그 책방들도 어쩌면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와 책방의 위용과 품위를 되찾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나 책방뿐이랴. 우리 인생 역시 맥없이 흘러 갈수도 있고 나날이 자라날 수도 있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운 귀환을 빌어본다.

2011,2,1,ㅇㅇㅁ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