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1. 4. 17:13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31639

2012년이 활짝 열렸다. 올 한해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적으로 역동적인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11월6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요즈음 공화당의 후보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4월11일 국회의원 선거, 12월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이합집산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한국의 선거가 특히 재외 국민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제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 국적의 국민들에게도 참정권을 행사 할 기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재외 국민에게 본래 선거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에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폐지한 이래, 40년 만에 어렵게 되찾은 국민의 권리인 것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나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권리이기도 하고 동시에 의무이기도 한 선거권을 포기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간접적으로 체육관에서 치러졌던 기묘한 대통령 선출 방식을 경험하며 성장 했던 내게, 대통령 직접 선거를 하거나 내 손으로 시장을 뽑는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내가 표를 던진 후보가 당선되면 기뻤고, 내가 표를 주지 않은 후보가 선출되었을 때는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직접 선거 방식의 민주주의를 사랑했다. 그래서 내게 투표는 기쁜 의무와 권리였다.
 
그런데 한국 땅을 떠난 이래로 십 년 가까이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면서 나는 투표권을 누릴 수 없었고, 이는 매우 서운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마침내 2012년 ‘재외국민’ 혹은 ‘부재자’에게 선거권이 주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목소리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다.
 
그래서 얼마 전 DC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시위에 참석하러 가던 날, 주미 한국 대사관 총영사관에 들러서 재외국민 선거인 등록을 하였다. 총영사관에 들어서면 재외국민 등록을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담당자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안내에 따라서 본인이 신청서 양식을 작성하고, 해외 체류자는 여권 원본과 사본을, 영주권자인 경우에는 여권 원본과 사본, 그리고 그린 카드 원본과 사본을 제출한다. 원본은 그 자리에서 돌려 받고, 사본은 신청양식에 첨부된다.
 
선거인 등록을 하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대학에 다니는 작은 아들놈이 만 19세를 넘겼다. 한국에서는 만 19세 이상이면 참정권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작은 놈도 선거인 등록을 해야 한다. 나는 녀석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 이제 녀석을 데리고 총영사관에 가서 등록을 할 차례다. 초등학생 시절에 미국에 와서 십 년 가까이 살아온 녀석은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는 한국의 정치 현안과 관련된 한국 서적 몇 권을 녀석에게 던져 주었다. 한국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국민된 입장에서 제대로 투표를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서점가에서 신들린 듯 팔려나가고 있다는 책 ‘닥치고 정치’에서 저자인 김어준의 주장은 과격한 제목과는 달리 매우 평범하고 온순해 보인다. 정치란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시민 각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아주 작은 권리 혹은 의무인 ‘선거권’을 휴지 조각처럼 방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민이 ‘투표’라는 아주 작은 행위로 제 목소리를 내면 목소리 낸 것만큼 존중 받고, 그만큼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그는 호소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참고로 선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초기에 선거권을 가진 이들은 유산계급, 남자들 중심이었다. 미국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가진 것은 1920년에야 가능했다.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과 함께 남녀 공히 참정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참정권이 간단히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은 아닌 것이다.
 
2012년 40년 만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선거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간단히 주어진 기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설령 번거롭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권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내일은 아들의 손을 잡고 총영사관에 가리라. 아직 늦지 않았다. 등록은 2월11일까지 가능하다.


2012, 1,  4 ㅇㅇㅁ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