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2. 15. 05:00

        오늘은 수요일이다. 그리고 1992 1월부터 20여 년 간 매주 수요일이면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이 모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집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매주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이 이들의 천 번째 모임의 날이다. 본래,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작되어 진행된 이모임의 천 번째를 기념하기 위하여, 워싱턴 DC에서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오늘 정오, 1000차 일본 종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연대 시위 수요 집회가 열리는 것이다.

        2차 대전 중 일본에 의해 종군 위안부로 끌려 갔던 여성은 대략 20만 명으로 추산이 된다고 한다. 국적도 다양하여,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데, , , 일 출신의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했으며 그 중 한국여성이 52퍼센트, 중국여성 36 퍼센트, 일본 여성 12 퍼센트 정도 된다는 자료도 있다.  과반수가 한국에서 끌려간 소녀들 이었다는 것이다.

 
      
종군 위안부를 영어로는 ‘Comfort Women’이라고 쓰기도 하고, 좀더 정확하게는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일본군 성 노예)’라고 표기 하기도 한다. 나로서는 성 노예라는 표현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Comfort Women’이 위안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같다.

  
     
자료를 찾아보면 태평양 전쟁 말기에 12세 이상의 소녀들과 여성들을 정신대명목으로 데려다가 공장에서 일을 시키거나 위안부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1935년생인 나의 어머니도 소학교 (초등학교) 꼬마였을 때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일본 순사가 처녀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아서 집안의 여자들을 감추거나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의 한국계 소설가 노라 옥자 켈러 (Nora Okja Keller) 1997년에 발표한 소설 ‘Comfort Woman (위안부)’은 우리들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 세대에서 겪었던 조선인 위안부들의 처절했던 삶을 스케치 하고 있다. 취직을 하는 줄 알고 따라 나섰던 소녀는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어 먼 나라로 떠돌며 짐승 같은 대우를 받는다.

 
      
소설에 그려진 일화 중에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병들어 죽어가는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인 병사들이 막대기로 입을 통과시켜 하체까지 꿰어서 마치 사냥한 짐승을 잡아 옮기듯 내다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지옥을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전쟁 이후의 삶 역시 편안하지 않았다. 그들은 존중 받지 못했고, 보상 받지 못했고, 위로 받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의 오점을 바로 잡기 위한 작은 몸짓이, 바로 그 20년간 지속 되어온 수요일의 집회이다. 이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저지른 반 인간적 범죄를 시인하고,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사과 하고, 관련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일본 역사 교과서에 이 일을 사실대로 정리하여 재발을 방지 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정으로 참회하라는 것이다.

 
      
현재 당시의 참상을 증언 해 줄 생존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도 않다. 지난 20년간 많은 분들이 위안부라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은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일본 정부는 이들의 시위와 요구에 대하여모르쇠로 일관 하고 있다. 희생자들이 모두 사라지면 그만 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집회, 20년간 매 주 진행된 질기디 질긴 집회,‘일본 종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는 사실 너무 오랫동안 진행되어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집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 그 1000회를 맞이하여, 워싱턴 DC에서도 이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날씨가 추운들 어떤가? 위안부 할머니들은 노구를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 대사관 앞에 서지 않았는가?  오늘, 나도 피켓 하나를 들고 그 자리에 서리라. 우리들이 힘을 모아, 이제 그만 이 슬픈 집회가 끝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1, 12, 14, 수 이은미




간 길에 영사관에 들러서 재외국민 투표 등록도 했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투표 해야 하는거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의무이며 권리이다.


워싱턴 일본 대사관 앞에서 당일 정오에 시작된 집회



정각에 맞춰서 도착했는데, 이미 단체 버스로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오신 한인 단체 어르신들이 집결해 계셨고, 주로 어르신들이 많으시다보니, 내가 이나이에 '꽃띠'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젊은 축이라서, 기록 사진사들이 나를 세워놓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에게 사진이 배달이 되지는 않겠지만, 기꺼이 모델이 되어 드렸다.) 젊은 친구들은 다들 생업이 바빠서 오기가 힘들었을거라고 추측한다.

마침, 영상 카메라를 세워놓고 열심히 취재를 하는 젊은기자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자랑스러운 나의 제자'이다.  대학원 코스 아직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지역 방송국에 취직하여 열심히 기자와 피디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테레비에도 나온다는데, 내가 테레비를 안보는 관계로 녀석을 테레비로 본적은 없고, 취재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을 발견하고, 내 자식을 만난듯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참여자가 대개 한인들이었지만, 간혹, 한인이 아닌 분들도 보였다.  왼편에 '나꼼수' 후드티를 입은 분이 보인다. 나꼼수 후드티 입은 분을 여럿 발견했다.


굳게 닫힌채 미동도 않는 일본 대사관 문.  앞에 계시는 어르신은, 내가 자문해드리는 영어프로그램 담당 선생님이신데, 이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프로그램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모두 나오셨다고 한다.



보상하라, 사과하라, 역사에 기록하라 이런 구호들을 외치고, 애국가, 아리랑, 울밑에선 봉선화 노래도 함께 부르고, 이 조직의 대표자가 대표로 일본 대사관에 들어가서 요구문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 모임은 파했다.  너무나도 대견하고,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내 제자와 한장 찍었다. "얘가 제 제잡니다!"하고 자랑을 꽤나 했다.   이 친구가 곱상해도, 태권도가 4단이라 태권도 사범도 하고, 학보사 출신이고, 내 제자이기도 하니 팔방미인이라서 개국하는 지역 방송에서 두말 않고 좋은 조건으로 채용을 해줬다. (성격도 좋아서, 어디에 가나 성실하게 일하고 사랑을 많이 받을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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