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2. 8. 00:4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13380
1970년대 초반, 매섭게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의 겨울 밤이었다. 서울 변두리의 단칸 셋방에서는 네 명의 아이들이 이리저리 포개진 채 잠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아낙은 숨겨뒀던 꾸러미를 꺼냈다.

꾸러미에서 나온 것은 아동용 초록색 벙어리 장갑 한 켤레. 짝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줄로 연결되어 목에 걸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그 벙어리 장갑을 그이는 낮에 월곡천 건너 시장에서 샀다. 막내둥이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큰 아이들에게도 장갑은 없었다. 하지만 네 명의 아이에게 장갑을 사 줄 형편이 못되었던 아낙은 다섯살박이 막내의 장갑 한 켤레를 샀다. 그래도 내일이 ‘크리스마스’니까.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돌아다닌다고 하니까. 아낙은 막내 아이에게만이라도 산타 할아버지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낙이 장갑을 들여다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일곱 살짜리 셋째가 잠이 깨어 두리번거렸다. “엄마, 그게 뭐야?” 아낙은 얼른 자신의 집게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고 속삭였다. “쉿, 막내가 깨면 안돼! 이것은 막내에게 주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야.”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셋째가 물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누군데?”
 
아낙은 빙긋 웃으며 설명을 해줬다. “있어, 그런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선물을 준대. 세상에 그런 할아버지가 어디 있겠니. 다 만들어낸 얘기지. 하지만, 우리 막내가 산타 할아버지한테서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하겠니. 그러니까, 너는 모른 척 해야 해, 알았지?”
 
그날 밤 나는 이 세상에 ‘산타 할아버지’라는 경이로운 존재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순거짓부렁’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막내둥이가 머리맡에 놓여진 초록색 장갑과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감에 놀라워할 때 나는 막내의 포근한 장갑을 쳐다보며 혼자 애늙은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 따위…’ 나에게도 달콤한 솜사탕 같은 ‘환상’은 필요했는데, 그것은 내게는 허용되지 않는 사치였을 것이다.
 
최근 시카고의 폭스 뉴스에서 한 여성 앵커가 “산타 클로스는 없다”고 말했다가,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사과방송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온가족이 다 함께 보는 뉴스 시간에 부주의한 발언을 하여 어린이들의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였다. 글쎄, 산타 할아버지가 없으니까 없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과를 할 정도의 발언이었을까?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나 정서는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12월이 되면 미국의 쇼핑몰이나 공공장소에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쇼핑몰의 한 구석에서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의 무릎에 안겨서 그와 사진을 찍고 그에게 어떤 선물을 갖고 싶은지 소원을 빌기도 하고 그런다. 사진사도 있어서 그 자리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곳을 지나칠 때면 성인인 나도 산타 할아버지한테 가서 소원을 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설령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영국에서는 산타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을 때의 주의사항을 각급학교에 배포를 했다고 한다. 가급적이면 산타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지 말 것이며 혹시 앉더라도 무릎 끝 쪽에 걸치기만 하라는 것이다. 어린이 성추행 방지를 위한 대책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산타 할아버지 품에 한번 안겨 보고 싶다는 나의 망상은 접어야 할 것도 같다.
 
산타 할아버지가 있거나 없거나, 매년 12월에 크리스마스는 온다. 1년 중 가장 추운 때, 그래서 인정의 불꽃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구세군의 종이 울리고 교회나 각종 사회단체에서 도시 인근의 가난한 청소년,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모으고 있다. 나는 워싱턴 DC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을 마련하는 것으로 12월을 시작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그 선물을 잘 전달해주길 바라면서.

산타 할아버지가 있거나 없거나, 인정과 나눔은 우리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을 믿는다.

2011,12,07, 수,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