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8.06.22 10:22

 

 

아침 여섯시에 집을 나서서, 키브리지에서 조지 타운대학 방향으로 걸었다.

키브리지앞 주유소에서 77개의 낭떠러지같은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조지타운 대학 구역.

조지타운 근처나 수로변에서 혹은 강 건너편에서 조지타운쪽을 보면 옛 유럽의 성채같은 건물이 언덕위에 보이는데 (어제 비디오 파일에서도 보이는 성채같은 건물) 그 건물이 바로 이 것이다. 일자형이 아니고 디귿자 모양의 건물인데, 이 뒷쪽에 중앙 정원이 있고 그리고 채플이 있다. 조지타운에 가면 시간이 바뀔때 딩딩 종소리가 울리는데, 중앙의 뾰족 지붕이 종탑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이것은 대학을 상징하는 대학본부 건물.

 

이 건물의 오른쪽에 입학처 건물이 따로 있고, 왼쪽에는 도서관이 있다. 중앙은 코트야드.

 

오전 일곱시 15분을 가리키는 시계. 대학 구내는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아직 잠이 덜 깬 중세의 성처럼 고요했다. (토요일에 도서관은 8시에 연다.)

 

 

조지타운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카톨릭계열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규모에 비해서 아담해보이는 채플.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그래서 맨 앞줄에 앉아서 '킨들'군을 꺼내가지고 마태복음 5장을 몇번 읽고, 나름 신성한 장소이니만큼 나도 평화라던가 뭐 그런 문제에 대해서 사색을 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앞에 계시는 예수님한테 딜을 걸었다.  "나 이 학교에서 일 좀 하게 자리 하나만 마련해주세요. 예수님 빽으루다가 나좀 '특채'좀 어떻게 안될까요? 나 일 잘 할 자신 있는데..." 예수님은 묵묵부답이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이루어 질 것이다.  그때까지 공부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아 분명이 자리 하나 맹길어 놓으실테니깐.

 

 

 

 

돌아오는길에 옛집에 들렀다.  뒷마당으로 가는 쪽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해서 뒷동산으로 갔다. 데크에 우리가 사용하던 의자 한개가 남겨져 있었다. 가져올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차피 살림 정리한 마당이니까. 그리고...너라도 여기 남아 있어라. 추억처럼. 그림자처럼.

 

 

 

나의 어미여우와 네마리의 새끼 여우들이 드나들던 여우굴도 그대로 남아있다.

 

 

 

여우굴은 반드시 입구가 두개 이상이다. 통로가 이리저리 나 있다. 그래야 은신처가 된다.

 

 

 

어미여우가 새끼들과 어울려 놀다가 경계하듯 내려다보던 여우 언덕. 아직도 너희들 모습이 내 눈에 생생해.

 

 

내가 오디를 따먹던 뽕나무도 가지치기를 하여 가지가 손에 닿지 않는다.

 

내가 5월말에 나갔는데, 그동안 집은 리모델링을 하였고, On Sale 표시를 달고 있는지가 세달이 넘었다. 집은 아직도 팔리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이 빈집에 찾아 올수 있다. (마치 내가 유령이 되어 서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September 11, 2010 Mclean, VA. 

 


워킹 카테고리 (diary/walking) 글들을 열어놓고, 살아 있던 왕눈이와 내 젊은 날들을 돌아보다.   워킹 카테고리를 여름동안 업데이트 해야겠다고 계획에 넣었다.  돌아보니 워킹 일기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담고 있었다.  내가 숲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다는 것을 자각했다.  메릴랜드의 왕눈이 무덤에 가 보는 것으로 나의 여름을 시작해야지.  왕눈아, 내 사랑, 내가 네게 간다.  내사랑.  June 2018. lem.



 

Posted by Lee Eunmee
분류없음2018.06.22 09:37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6.18 14:54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저자가 인용했던 글.  서울대학교 김병도 교수의 '도전력'이라는 책이었는데.....(리뷰는 안써도 될 것 같은...저 인용문이 전부라고 할만한...  아 내가 약간 회의적인 이유는...도전하라 위험하게 살아라 강조하시는 분이, 어쩐지 교수 연구실에 앉아서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딘가, 뭔가, 음.... 뭐랄까... 앞뒤 아귀가 잘 안맞는다는 듯한 느낌. ㅋㅋ 죄송합니다, 저자가 이 글을 보신다면.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



위험하게 살아라

당신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 기슭에 세워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우며 살아라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중에서.




보름쯤 전에, 일산 호수공원에 갔을때, 밤새 비가 온 후 이른 아침.   내 눈길을 훅! 잡은 달팽이 한마리.  저 작은 달팽이가 1미터도 넘는 높이의 장미나무 꽃 정상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장미향기에 취해서 올라갔을까?   달팽이가 꿀벌이나 잠자리도 아니고, 저기 올라가 앉는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 모습이 하도 장하고 신통해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니체는 '위험하게 살아라'고 했지만, 달팽이는 '위험' 자체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위험조차 그에겐 위험이 아닌듯 하다. '달팽이 승.'   이 사진을 인화하여 벽에 걸어두고, 용기가 필요할때, 삶이 빡빡하고 재미 없게 느껴지거나, 사는게 무섭다는 느낌이 들때, 장미에 취하여 장미나무에 올라간 달팽이를 상기하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뭐 어쨌거나 이 달팽이를 발견하고 그만 눈물이 핑... 이렇게 쪼끄만게 날개도 없이 거기까지 기어올라간게 너무 신기해서. 어쩌면 나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 출발해봐야 하는게 아닐까. 이런.)







연구실을 한참 비워야 할 즈음에, 진분홍 호접란 꽃대를 발견했다.  2016년 8월말, 선물받은 화분이었는데, 그 후로 잘 지내고 있었지만  꽃대가 올라온 것은 처음이다.  내가 없어도 꽃을 잘 피워내길.  씩씩하게. 


살아 숨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생명의 노래를 부른다. 





Posted by Lee Eunmee
분류없음2018.04.26 08:51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오, 하느님, 제가 이 책을 책방에서 발견하게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방의 인문교양서적 쌓아놓은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한 하드커버 책.   얼핏 보면 어떤 개인의 '회갑기념' 수필집같은 장정이라서 뭔가 싶은데, 책을 열어보면 -- 만만치 않은 책임을 알게 된다.  내 첫 인상이 그러했다.  일단 책 제목이 어딘가 수필집 같은데, '질병의 사회적 책임' 이라니?


저자는 '저는...' '...입니다'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설명을 하는듯한, 혹은 겸손한 자세로 강의를 하는듯한 문체로 질병의 사회학적 관점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해주고 있다. 서양에서 들어온 이론에 대해서는 영문으로 정확한 표기도 해 줌으로써, 관련 자료도 쉽게 찾아보도록 해 주었다.  그의 전공영역인 '사회역학 (Social Epidemiology)'은 내게도 낯선 분야인데, 참 알기 쉽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잘 해준다.  어떤 집단이, 어떤 직업군이,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어떤 질환으로 고통을 겪거나 죽어갈때, 그것을 개인의 차원에서 해석하기보다는 그 집단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문제가 무엇인가 들여다보고 사회적, 정책적 해법도 생각해 보는 다양한 사례가 이 책에 제시된다. 


그가 21페이지에서  

 * Experienced discrimination

 * Perceived discrimination

 * Reported discrimination


의 개념을 쉬운말로 설명해줄때, 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거였구나. 이러한 컨셉은 보건학뿐 아니라,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수 있다. 어차피 사회학적인 관점이므로.  하필, 쓰레기 자동 집하설비를 점검하던 30대 사나이가 수백미터 아래로 쓰레기 집하 통로에 처박혀 목숨을 잃은 그날,  수백명의 사람들을 집에서 키우는 개, 돼지 만큼도 못한 대우를 하던 재벌 일가의 행패 소식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전히 업데이트 되던 그날, 세월호 희생자와의 영결식을 마친 며칠후, 내 눈에 들어온 이 책은 새로운 어떤 세계에 대한 발견이었다.  이런 분야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난 도대체 뭘 하면서 사는거냐 그런데?)


이 책은 어쩌면 공중보건학 종류의 책일수도 있고, '사회학' 책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전공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한번쯤 쓱 훑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책이다. 책방에서 정가 다 주고 산 그 책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주 오랫만에 책다운 책을 만났다는 희열.  책을 읽는 사이에 두통이 사라지고, 멀미도 사라지고, 책 읽다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서 책을 읽었다.  이제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된다. 


(사실 우리집에는 여러가지 분야에서 출판된 증정본들이 쌓이는데, 어떤 것은 딱 한번 훑고 쓰레기통에 넣기도 한다. '이 책은 남에게 줄 가치도 없어보인다'고 여겨질때. 아주 좋은 책들도 증정본으로 (공짜로) 볼 수 있는 여건이다보니, 서점에 가도 어지간해서는 책을 사지 않는다.  집에도 비슷한 좋은 책이 있으니까. 혹은 곧 증정본이 올지도 모르니.  그런데, 이 책은 책방에서 발견 즉시 내 돈내고 사가지고 그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음, 돌팔이 의사 친구에게 이 책을 보내줘야지.)


----

책을 읽으면서 --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개인적인 취향이나 습관'으로  원인 규명을 하던 것들에 대해서, 사실은 그게 그런것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뭐, 딱히 적합한 예라고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나는 고기를 잘 못먹는다. 고기 냄새도 싫어하고, 아무튼 사정이 그러하다.  우리 언니도 고기를 통 안먹니 대학생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터,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입에 대게 되었다.  나는, 쇠고기 스테이크나 불에 구운것만 먹고, 다른 종류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  우리 오빠와 내 사내동생은 특별히 까다롭게 굴지 않고 보통사람들이 먹는 보통 고기들을 가리지 않고 어릴때부터 먹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는 이걸, 그냥 언니와 나는 고기를 싫어하고, 오빠와 사내동생은 고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 까탈스러운 입맛에 나조차도 짜증나고 불편해 하는 편이다.  남들이 맛있다고 먹는 고기 음식에 대해서 나는 왜 구역질이 나는가?  나는 이런 현상을, 그냥 '내게는 고기를 소화시키는 분해효소나 뭐 관련 호르몬이나 뭐 장기능이 떨어지는게 아닐까? ' 이쯤으로 상상하며 살아왔다.  아마 내 상상이 그다지 크게 잘 못된 것은 아닐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왜 대체로 내가 성장하면서 본, 우리 집안 사람들중에서, 남자들은 고기를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여자들은 고기를 가리는 사람이 많은걸까? 이것이 남녀 취향이나 혹은 소화기계의 차이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 문화적인 어떤 패턴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것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일까?


나는 왜 고기를 회피하는 사람이 된걸까?   한 집안에 남매들이 섞여 있을때, 왜 남자들은 고기를 대충 먹는데, 여자들은 까탈스럽게 고기를 안먹거나 못먹는 식으로 분리가 되는걸까? 개인 취향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집안같이 대대로 남녀차별이 눈에 띄게 존재했던 집안에서는, 그 원인이 개인 취향외에 '사회 문화'에 기인한 것도 있을수 있다.  


집안에서 자라날때 고기를 잘 못먹거나 안먹던 사람이 사회생활 하면서 고기를 먹게 되는 현상 (우리 언니 같은 케이스)을 살펴보자.  그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여 고기를 먹게 되었을수도 있고 (사회적 압력 때문에), 혹은 집에서 벗어나 다른 영역에 갔을때, 구성원들사이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고, 내 돈 내고 내가 먹을수 있는 경제권이 생겼을때...내가 '자립'함으로써 한 집안의 '분위기'에서 벗어났을때, 그의 먹성도 달라질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동등하게 대접해 줬다면 집안의 다른 구성원들이 먹는 만큼은 먹었을것이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 한 집안에서 여자들이 대체로 고기를 잘 안먹고, 남자들이 가리는것 없이 잘 먹는다면, 그것은 '차별'이 원인이다. (아주 거칠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다.) 


오늘 저녁에 퇴근하는대로 동네 갈빗집에 가서 갈비를 먹겠다. 



'사람의 건강'에 관해서 내가 공부한 것으로는 버지니아주에서 발행하는 Personal Care Aide 간병사 자격증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시간동안 교육받고 해당 과정을 이수하면 별 문제 없이 나오는 '누구나' 가능한 자격증이다.  '그냥' 이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땄다.  뭐 상식적으로 사람을 잘 돌보는 상식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나는 막연히 이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딴 것인데,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6년간 재직한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안식년을 선포하고, 1년동안 백수로 지냈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배운 도둑질'이니까, 새로운 삶이래봤자, 새로운 학교를 알아보는 정도였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 전 지역의 대학에 지원서를 보냈다.  그런데, 메릴랜드주의 모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이들이 눈여겨 본것은 내게 '버지니아주 PCA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것은, 이민계 의사 간호사등 의료업종에 있는 이민자들에게 적합한 영어교육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내게 '의료업종 자격증'이 있고 내가 '영어교육' 전문가이므로 -- 의료업종 영어교육 전문가를 찾던 그들 눈에 내 지원서가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꽉 막힌듯 했던 내 운수가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특수전문직 (의료직) 대상 영어교육 전담이 되어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버지니아의 주립대로 옮길수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곳으로 향할수 있었다.  물론  현재 내가 의료관련 전문직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내 이력이 확장될 수 있었다. 


메릴랜드에서 '의료영어'를 가르치는 동안, 나 혼자 상식수준의 의료관련 영어공부를 많이 했다. epidemic이냐  pandemic이냐 뭐 이런것도 그 당시에 공부를 해서 알게 되었고, 뭐 상식적인 수준의, 의사나 간호사나 간호보조사들이 매일 사용하는 수준의 영어를 스스로 익혀서 가르쳤다.  심지어는 간단한 처치 행위까지도 가르쳤다.  원래는 학생중에 어느 의사가 그 부분을 스스로 실연해보이기로 했었는데, 하필 그날 그에게 이민법 관련 문제가 생겨서 그가 수업에 올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가르쳤다. 내가 가르치고 학생들이 실연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을 하여 디렉터에게 보냄으로써, 교육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그렇게 나는 의료영어교육 '선수'가 되었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의 지향점은 그쪽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버지니아 쪽을 선택했고, 지금 여기에 와 있다. 


그러니까 공중보건에 대해서 내가 아주 문외한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잘 안다고 할수도 없다.  이도저도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뭐라도 공부 해 놓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기회가 올것인지 나는 예측할수 없다. 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조심조심 헤쳐나가듯, 우리 삶이 그러한 것이지.  눈을 뜨거나 감거나 우리는 앞날에 대해서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그냥' 일없이 공부해서 따놓은 자그마한  간병인 자격증이 내 삶에서 하나의 문을 열어줄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에서의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잘 모르겠다. 이곳에 몇년 더 살게 된다면 방송통신대에서 새로운 전공을 공부해볼까 생각해본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2.04 06:06



케네디 센터에서 열리는 미국 국립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2018, 2, 3, 오후 8시). 


1월과 2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생일축하 이벤트를 생각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여 확답을 받고 음악회 표를 산 것은 이미 3주 전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요정의 입맞춤' 이렇게 세가지 곡이 연주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컨체르토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자주 들어서 가장 친숙한 곡이니까.


찰리는 나를 위해서 휴가를 냈고, 존은 직장에서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다고 그렇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진통제를 먹고 앓는 소리를 하길래  존의 허리에 약을 발라주고 챨리와 둘이 66 East 를 달려 케네디센터에 갔다.  내겐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것 같은 익숙한 길.  여기 온지도 몇 년 만이다.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짧은 원피스 드레스도 입고, 정장 구두도 신고,  음악회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따로이 드레스코드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을 내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가끔은, 우리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용모를 단장하듯, 가끔은 뭔가 이벤트를 만들고 예쁜 옷과 예쁜 구두를 신고, 아름다운 것을 음악을 들으러 예쁜 음악당에 가서 오로지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평소에 향유하지 못하는 뭔가 고양된 것을 경험하거나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차이코프스키의 '폭풍'은 음악 전체가 '폭풍' 그림 앞에 서 있는듯한 분위기였다.  천둥 번개가 치고 잦아들고 다시 몰려오고 그러다가 사라지는.  나로서는 음악을 들으며 어떤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어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템페스트가 끝나고 들어온 스타인웨이 피아노.




음악이 시작 되었을때, 찰리와 나는 저도 모르게 서로 쳐다보고 소리없이 '아!' 했다. 


음악에 대해서 특별한 미각이 없는 나는, 피아노 컨체르토 곡이 라디오나 음반에서 흘러 나올때, 대개는 '귀챦아' 하는 편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부담스럽다'는 대체적인 느낌.  아 시끄러... 이런 느낌.  그래서 대체로 솔로 독주나 실내약 정도가 내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 인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내가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음악에 눈과 귀가 트인것 같다.  아, 저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이구나. 


우선 지휘자.  지휘자가 춤을 추듯 발뒤꿈치를 살짝 살짝 올려가며 두 팔을 휘저을때, 그리고 음악당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를때, 내 눈에는 마치 보티첼로의 그림에서 서풍의 신 (제피루스)의 입에서 꽃잎이 터져 나오듯 지휘자의 두 팔에서 음악이 만들어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이 그의 두 팔 안으로부터 꽃잎처럼 펴져 나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도 나의 서술은 시각중심이다.)


지휘자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그리고, 교향악단의 개별적인 연주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음악의 요정'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눈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의 춤, 피아노 독주자의 옆모습 표정까지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고, 계절이 지나가는 시각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시각에 국한 된 경험은 아닐것이다.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나는 소리의 따뜻한 바닷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으니까.  음악회에 가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놀고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음악이 끝나갈무렵,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머리가 가뿐해지고, 가슴에서 희망이 솟아니며, 잘 살아내야만 한다는 각성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 찰리가 새로산 아이폰으로 뭔가 이펙트를 넣어 찍은 사진.  이제 4년차로 들어가는 내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인데.)



찰리에게 말해줬다.


우리의 일상이 똥통같은 현실속에서 구더기처럼 꿈틀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일년에 한 두번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 만들어내는 고양된 예술을 경험하면,  똥통속에 살아간대도 하늘에 태양과 별들이 빛나며, 음악당에서 아름다운 음악들이 연주되고,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며, 바다는 여전히 넘실대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회상'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고양될수 있고, 그 희망을 가지고 순간순간을 견딜수 있는거다.  우리 곁을 맴돌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은  쥐새끼만한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그 음악을 들을때라도 '회상'을 통해서 되살아날거다.  우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를 들을때, 우리는 오늘 들었던 천상의 선율을 되살려 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 줄거다.



Posted by Lee Eunmee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