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04.27 03:11



야구 경기 구경을 갔다. 내 일생에 처음으로 야구 경기장에 가 본 것이니 기록을 하고 싶어진다.  이 지역 소속 프로야구팀이 홈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날이었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경기 시작 애국가를 중창했고, 총장님이 시구를 하셨다.  그러므로 이런 이벤트에 빠질수가 있겠는가.  오늘 행사에 참가하는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학교셔츠를 맞춰 입고 경기장에 갔다.  경기장내 중계 화면에 한국학생 외국학생들이 줄을 맞춰서서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학생들이 며칠간 흥분해서 애국가 연습을 했는데, 한 외국계 학생은 학교에서 지나칠때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애국가 부르다가 실수할까봐 조바심을 치기도 했다.  낯선 '남의 나라' 애국가를 신나게 불러대던 그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인상적이었다.  (그거 외우느라 연습 엄청 했겠다)  총장님이 시구를 하기 위해서 투수석에 나타나셨을때, 우리는 열광했고 마치 만루 홈런이라도 터진것처럼 환호했다.  우리 식구가 나왔다 이거지. 하하하.  


난생 처음 프로야구 경기장에 가보니,  야구경기장에는 경기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더라.  물론 경기를 보기는 하지만, 나같은 사람이 경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반해서, 대체로 사람들은 야구경기장의 '분위기'를 즐기는것처럼 보였다.  응원단의 지시에 맞춰서 다함께 노래하고 응원하고 박수치고 춤추고 소리지르고, 중간중간에 안타라도 터져주면 난리가 나고, 그리고 중간중간에 뭐 사다 먹고, 경기하고 상관없이 일행들끼리 잡담도 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은 '소풍'을 나온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소풍 장면이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미국에서 대학 풋볼 시즌이 되면, 사람들은 풋볼 경기장 근처 잔디밭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면서 노는데, 그런 소풍과 비슷하다.  그런 분위기에 취하는 맛 -- 그 자체를 즐기는 것같아 보인다.  재미있었다.


예전에 내가 큰맘먹고 플로리다 주립대가 홈경기를 할 때, 애들 다 데리고 갔던날, 우리 학교가 버지니아 주립대를 상대로 아주 대박을 터뜨렸었다. 내가  난생처음 갔던 풋볼 경기에 대박이 났던 것이지. 그날은 탈라하시 시내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마침, 내가 생애 최초로 한국 프로야구를 보러 간 날에도 우리팀이 대박이 났다.  2점 홈런을 시작으로 .... 그 2점 홈런의 장면이 연출될때, 그 공이 바로 내가 앉아있던 그 바로 앞으로 스르르 굴러가면서, 외야수가 그걸 제대로 잡지를 못하면서 ....난리가 났었다.  나는 그 공의 향방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혼자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고, 주위에서 피자나 닭다리를 뜯고 있던 동료들은 갑자기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뭐...모두들 우르르 일어나서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그래서 깨달았다.  이거구나. 이맛에 경기를 보러 다니는거구나. 


그러니까, 잔디위로 조그만 야구공이 톡 떨어져 스르르 구르고 있을때, 내 온 마음이 내 몸을 유체이탈하여 그 공에 가서 딱 달라붙어서, 내가 공과함께 스르르 움직이고 있는것 같았다.  잡히지 말자. 잡히면 안돼 스르르 굴러가자, 그렇지 스르르... 그 사이에 2루 3루에 있던 선수들은 홈으로 돌진한다. 공이 된 나는 상대편 선수의 손을 피하여 스르르 굴러간다. 내 영혼이 공에 들어갔다. 나는 사라지고 없다. 오로지 미친듯한 함성만 허공으로 퍼져나간다. 내 몸은 사라지고 없다.  나는 야구공이다. 나는 함성이다.  --- 뭐 이렇게 되더라는 신비로운 경험.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니는 딱 4회말까지 보고, 학교에서 마련해준 버스 첫차를 타기위해 자리를 떴다. 학교에서는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버스를 준비해주었다. 얼마나 살뜰한 배려인가.  미리 버스를 타고 기다리자 나처럼 중간에 빠져나온 다른 학생들과 동료들이 차에 올랐는데, 내가 나온 후에 혹시 또 홈런이 터졌나 경기 진행상황이 궁금하여 동료에게 지금 스코어가 어떻게 되냐고 하니까 그는 '모른다'고 답했다. 자기는 스코어 신경 안쓰고 그냥 놀았다고.  학생들도 우르로 버스에 오르길래 현재 스코어 물어보니 "몰라요, 까르르. 저흰 그런거 몰라요. 까르르"  그러니까, 이분들이, 경기하고는 상관없이 그냥 그 소풍 자체를 신나게 즐기고 왔다는 얘기가 되는거다.  그래서 -- 아, 진짜 선수들은 경기같은거 안보면서 노는구나 했다.  집에 와서 궁금하여 확인해보니 우리가 5:4로 이겼다.  내가 떠난후에 1점 추가, 4점 실점. 내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면 아주 떡을 만들어 줬을텐데. 경기의 하일라이트는 다 보고 나온거군.  


사람은 자기가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 상황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사람들이 왜 야구경기장에 찾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 사람들에대하여 관심도 없었다.  지금은, 이해한다.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장에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 그 의미를 이제 조금 이해한다.  나의 세계가 한뼘 더 넓어졌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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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분류없음2018.04.26 08:51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오, 하느님, 제가 이 책을 책방에서 발견하게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방의 인문교양서적 쌓아놓은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한 하드커버 책.   얼핏 보면 어떤 개인의 '회갑기념' 수필집같은 장정이라서 뭔가 싶은데, 책을 열어보면 -- 만만치 않은 책임을 알게 된다.  내 첫 인상이 그러했다.  일단 책 제목이 어딘가 수필집 같은데, '질병의 사회적 책임' 이라니?


저자는 '저는...' '...입니다'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설명을 하는듯한, 혹은 겸손한 자세로 강의를 하는듯한 문체로 질병의 사회학적 관점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해주고 있다. 서양에서 들어온 이론에 대해서는 영문으로 정확한 표기도 해 줌으로써, 관련 자료도 쉽게 찾아보도록 해 주었다.  그의 전공영역인 '사회역학 (Social Epidemiology)'은 내게도 낯선 분야인데, 참 알기 쉽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잘 해준다.  어떤 집단이, 어떤 직업군이,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어떤 질환으로 고통을 겪거나 죽어갈때, 그것을 개인의 차원에서 해석하기보다는 그 집단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문제가 무엇인가 들여다보고 사회적, 정책적 해법도 생각해 보는 다양한 사례가 이 책에 제시된다. 


그가 21페이지에서  

 * Experienced discrimination

 * Perceived discrimination

 * Reported discrimination


의 개념을 쉬운말로 설명해줄때, 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거였구나. 이러한 컨셉은 보건학뿐 아니라,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수 있다. 어차피 사회학적인 관점이므로.  하필, 쓰레기 자동 집하설비를 점검하던 30대 사나이가 수백미터 아래로 쓰레기 집하 통로에 처박혀 목숨을 잃은 그날,  수백명의 사람들을 집에서 키우는 개, 돼지 만큼도 못한 대우를 하던 재벌 일가의 행패 소식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전히 업데이트 되던 그날, 세월호 희생자와의 영결식을 마친 며칠후, 내 눈에 들어온 이 책은 새로운 어떤 세계에 대한 발견이었다.  이런 분야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난 도대체 뭘 하면서 사는거냐 그런데?)


이 책은 어쩌면 공중보건학 종류의 책일수도 있고, '사회학' 책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전공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한번쯤 쓱 훑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책이다. 책방에서 정가 다 주고 산 그 책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주 오랫만에 책다운 책을 만났다는 희열.  책을 읽는 사이에 두통이 사라지고, 멀미도 사라지고, 책 읽다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서 책을 읽었다.  이제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된다. 


(사실 우리집에는 여러가지 분야에서 출판된 증정본들이 쌓이는데, 어떤 것은 딱 한번 훑고 쓰레기통에 넣기도 한다. '이 책은 남에게 줄 가치도 없어보인다'고 여겨질때. 아주 좋은 책들도 증정본으로 (공짜로) 볼 수 있는 여건이다보니, 서점에 가도 어지간해서는 책을 사지 않는다.  집에도 비슷한 좋은 책이 있으니까. 혹은 곧 증정본이 올지도 모르니.  그런데, 이 책은 책방에서 발견 즉시 내 돈내고 사가지고 그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음, 돌팔이 의사 친구에게 이 책을 보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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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건강'에 관해서 내가 공부한 것으로는 버지니아주에서 발행하는 Personal Care Aide 간병사 자격증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시간동안 교육받고 해당 과정을 이수하면 별 문제 없이 나오는 '누구나' 가능한 자격증이다.  '그냥' 이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땄다.  뭐 상식적으로 사람을 잘 돌보는 상식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나는 막연히 이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딴 것인데,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6년간 재직한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안식년을 선포하고, 1년동안 백수로 지냈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배운 도둑질'이니까, 새로운 삶이래봤자, 새로운 학교를 알아보는 정도였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 전 지역의 대학에 지원서를 보냈다.  그런데, 메릴랜드주의 모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이들이 눈여겨 본것은 내게 '버지니아주 PCA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것은, 이민계 의사 간호사등 의료업종에 있는 이민자들에게 적합한 영어교육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내게 '의료업종 자격증'이 있고 내가 '영어교육' 전문가이므로 -- 의료업종 영어교육 전문가를 찾던 그들 눈에 내 지원서가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꽉 막힌듯 했던 내 운수가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특수전문직 (의료직) 대상 영어교육 전담이 되어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버지니아의 주립대로 옮길수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곳으로 향할수 있었다.  물론  현재 내가 의료관련 전문직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내 이력이 확장될 수 있었다. 


메릴랜드에서 '의료영어'를 가르치는 동안, 나 혼자 상식수준의 의료관련 영어공부를 많이 했다. epidemic이냐  pandemic이냐 뭐 이런것도 그 당시에 공부를 해서 알게 되었고, 뭐 상식적인 수준의, 의사나 간호사나 간호보조사들이 매일 사용하는 수준의 영어를 스스로 익혀서 가르쳤다.  심지어는 간단한 처치 행위까지도 가르쳤다.  원래는 학생중에 어느 의사가 그 부분을 스스로 실연해보이기로 했었는데, 하필 그날 그에게 이민법 관련 문제가 생겨서 그가 수업에 올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가르쳤다. 내가 가르치고 학생들이 실연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을 하여 디렉터에게 보냄으로써, 교육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그렇게 나는 의료영어교육 '선수'가 되었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의 지향점은 그쪽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버지니아 쪽을 선택했고, 지금 여기에 와 있다. 


그러니까 공중보건에 대해서 내가 아주 문외한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잘 안다고 할수도 없다.  이도저도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뭐라도 공부 해 놓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기회가 올것인지 나는 예측할수 없다. 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조심조심 헤쳐나가듯, 우리 삶이 그러한 것이지.  눈을 뜨거나 감거나 우리는 앞날에 대해서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그냥' 일없이 공부해서 따놓은 자그마한  간병인 자격증이 내 삶에서 하나의 문을 열어줄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에서의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잘 모르겠다. 이곳에 몇년 더 살게 된다면 방송통신대에서 새로운 전공을 공부해볼까 생각해본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4.25 15:21

15년만에 한국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내 귀에 들어온 가수.   도통 가수들에게 관심이 없고,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노래 아무거나 듣다가,  이 친구 만큼은 '기억'을 하고 종종 찾아 듣는다.   내가 찾아 듣는 유일한 가수.  수업가기 전에 한자락 듣고, 가야지...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20분에 내 수업이 끝나면, 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 중에서 네명의 학생이 내 연구실로 온다.  학생들이 내게 청해서 만들게 된 모임인데, '영어 말하기'를 더 잘하기 위해서 모여 앉아서 한시간동안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들은 외국 유학 경험이 없이 미국계 학교에 입학해서, 갑자기 모든 것을 영어로 해야 하는 상황속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을 하던 와중에 나름대로 꾀를 낸 것이다.  한두번 오는척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떨어져 나가겠지 생각하고 흔쾌히 한시간을 내 주었는데, 이들이 꼬박꼬박 나타난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 이 새싹같은 젊은이들이 서로 어떻게 서로의 언어를 취하는지, 새로운 표현을 얼마나 날쌔게 자기것으로 만들어 사용하는지 관찰을 하는데, 관찰할만한 재미가 있다.  아직까지는 관찰만 했는데, 다음주부터는 이들의 동의를 얻어서 한시간동안의 대화 내용을 녹음을 할까 생각 중이다.  그냥 놓쳐버리기 아까운 '언어의 진화'를 기록해보고 싶은 것이다. 


놀라운 일은, 한시간 사이에도 이들의 언어가 '진화'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저희들끼리도 앉아서 충분히 영어로 대화하면서 서로 배울수 있건만, 그래도 내게 찾아오는 이유는, 누군가 '감독자'혹은 '보호자'가 있을때 좀더 동기부여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기이하게도 학생들은 내가 '원어민'일거라는 어떤 '상상'을 한다.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어가 더 유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내 영어에 어떤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인 신뢰인걸까?  어쨌거나 이들은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할 때, 설령 내가 별 말을 안해도 자기들끼리도 재미있게 영어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나서 내게 고맙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어쨌거나, 이들은 한시간 사이에 '유창성'에 변화를 느끼고 내 오피스를 떠나게 된다.  


이 학생들이 하도 예뻐서,  앞으로 네차례, 아무도 결석하는 일이 없이 서로 독려하면서 이 수요일 오후의 미팅에 나타나면, 5월 말에는 우리가 다함께 길건너 상가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물론 시간이 없어서 가진돈을 다 쓰지도 못하는 내가 저녁을 사주면 된다.  신나서 좋아하며 나가는 내 학생들은 향기롭다.  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예쁜지, 향기로운지, 아름다운지 모를것이다.  이 모임이 성공적으로 학기말까지 이어지면, 자동차에 태워서 섬에도 데려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프로젝트로 키워볼까 한다.  다른 미국인 교수들도 동참하도록. 


더필름의 '함께 걷던길'을 종종 꺼내 듣는다.  이 노래를 들으면, 오십년이 넘도록 내가 걸었던 길들이 떠오른다.  혼자 걸었던 길,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걸었던 길.  온세상의 내가 걸었던 길들이 떠오르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벚꽃이 눈부시게 피어있던 학교의 담장도 떠오르고.  눈부시고 후텁지근했던 해변도 떠오른다.  그 길에 동행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쉬움, 그리움, 그런 감정이 피어오른다.  가령, 고향집 시골길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다시 가 볼수도 없지만, 그래도 노래를 들을때는 그 길이 되살아난다.  사람들이 되살아나고, 음악은 사라진것을 되살린다.  학교 담장의 벚꽃은 지고 없으리라.  하지만, 그 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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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4.24 12:07


지난 금요일부터였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잠이 깨었지만 꼼짝도 하기 싫어서 새벽기도에 안갔다.  약속 잡은것도 취소했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서 억지로 억지로 나갔다.  그리고는 꼭 해야할 일만 해 치우고 돌아와서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우며 뒹굴거렸다.  토요일 아침에도 만사가 귀챦은 가운데,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하고, 뭔가 생산적으로 살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극심한 피로감에 또다시 온종일 뒹굴거리며 보냈다.  아침에 빨래,청소,목욕한것이 그날 한 모든 것이었다.  결국 저녁부터 심한 두통때문에 타이레놀을 꺼내 먹어야 했다.  일요일에도, 예배를 다녀온 것이 그날 하루의 전부였다.  타이레놀을 두알씩 먹고 비몽사몽으로 하루를 보냈다.


이쯤되면 털고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부터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에 더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아프고 멀미나고. 딱 버스타고  차멀미하는 그런 기분. 그래도 근무중에는 바짝 긴장이 되어서 별 탈 없이 일을 한다.  하지만, 타이레놀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도, 잠을 자면서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댔다. 자면서도 아프기는 처음이다. (기침도 안하니, 남보기에는 아주 멀쩡해보인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하지만 수업이 있으니 학교에 가야한다.  내가 학생이라면 결석을 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결석을 하면 안된다.  끓인밥에 타이레놀을 먹고 (감기 몸살엔 찬밥 팔팔 끓여 먹는게 최고로 속 편하더라),  그리고나서, 양치질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우리집 냉장고에 마약이 있어!!!"마약이란...집 근처 약국에서  조합을 하여 판매하는 약인데 -- 그러니까, 피로회복제 병에 들은거 한병, 무슨 앰플이라고 역시 피로회복제 앰플, 거기에 무슨 피로회복제 약 이렇게 여러가지를 묶어서 대략 10,000원에 파는 것이다.  약국에 갔을때 그것이 보이길래 물어보니까 약국 직원이, 감기 몸살이나 피로로 몸 가누기 힘들때 이걸 먹으면 잠시 반짝 정신이 든다고, 급할때 쓰면 좋다는 설명이었다.   그걸 사다 놓은지 1년 넘게 냉장고에 있었는데,  그걸 꺼내다 먹었다.  그래도 독약이 아닐까 싶어서 안경끼고 자세히 읽어보니 주로 피로회복약들이었다.   그걸 먹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여전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차멀미 하듯이 속이 울렁거린다.  감기겠거니 하고 있다.  가까운 가정의학과나 내과나 소아과 그런데 가면 뭔가 처치를 해 줄텐데.  한번 가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어제는 모 위원회에 참석을 했는데, 뭔가 심사를 해야 했다.  전달된 서류들을 들여다보던 중에 -- 아무 생각없이 서류들을 검토를 하던중에 --내가 제법 소상히 알고 있는 내용의 서류가 나왔다.  그래서 객관적인 자료와 소상히 알고 있는 내용을  근거로 삼아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위원회에서, 설마,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참석한 내가 '힘있는' 소견을 말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을것인데. (나도 상상을 못했던 일이라서...).  판단은 공정하게 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조금이라도 정치경제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좀더 가산점이 가도록 애쓴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나서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 세상은 정말로 '불확정'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예기치 않았던  변수가 등장해서 방향을 살짝 틀어버릴지 알 수가 없다.  내 삶의 방향도, 이런 미지의 불확정한 인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왔을 것이다.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나의 노력과, 주위의 도움과, 우연의 소산이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오직 확실한 것은 -- 나의 예수님 뿐일것이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이 "어서와' 하고 반겨 주실것만이 확실할 뿐이다. (그게 뭐가 확실하냐구?  그거 말고 확실한게 없으므로, 그것을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이지 뭐. 적어도 죽는건 확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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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4.19 13:18



"그러니까, 그럴 땐, 교수님한테 -- 교수님 배고파요, 밥 사주세요 -- 이렇게 말을 해. 그러면 교수님이  흔쾌히 밥 사주셔, 그러면 함께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나누고..." 


어느 오피스에 들렀다 나오는 길이었다.  오피스 문간을 지키는 프론트 데스크에 학생 인턴들이 앉아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교수 상대하는 법'에대한 쎄미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귓등으로 듣고 스쳐지나가며 문득 깨달았다. "아...저것이 어떤 사람한테 가까이 가기 위한 어떤 방법인거구나."  

그리고나서 다시 깨달았다. '아! 나는 벽창호였구나!'

내가 생각해보니, 내 오피스에 드나들던 학생들 중에도 바로 저런 말을 한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밥 사먹으러 나간것이 아니고, "배고파? 난 지금 할일이 많아서 못 나가는데.  그럼 가서들 밥 먹어. 밥값줘?" 뭐 대략 이런 내용의 대꾸를 해왔다.  같이 밥먹으러 가자는 말에 대개는 회의에 가야 한다거나 누구를 만날 일정이 있다거나 뭐 다양한 이유로 나갈수가 없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었으니까.  한번은 아주 미리 날짜를 잡아서, 내가 차에 모두 태우고 저 바다건너 섬으로 가서 잘 먹인적도 있다.  그 친구들을 격려해줄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배고파요, 밥 사주세요"가 '밥'외에 다른 의도를 가진 메시지라는 것은 내가 알지 못했다.  그냥 배고프다는 뜻인줄 알았다.  게다가, 아니 배고프면 식당 가서 밥 사먹지 왜 나한테 와서 배고프다고 하는가? 그것도 이해가 잘 안갔다. 가령 온종일 나하고 뭔가 함께 작업을 했다면, 물론 내가 밥 사먹이지. 그런데 내가 청한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와서 배고프다고 하면 -- 나로서는 배고프면 식당가서 밥 먹으라고 하는게 자연스러운거 아닌가? 나하고 사귀고 싶으면 그냥 내 오피스에 오면 된다. 밥먹자는 말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내 가까운 친구가 옛날에 해 줬던 얘기가 생각난다.  뭐 연애나 뭐 그런걸 잘하는 '선수'들은 이성에게 접근하는 어떤 패턴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벌써 다 까먹었다, 전형적인 어떤 패턴이 있다던데) 뭐 예를 들어서 여자가 남자한테 "향이 좋네요, 어떤 향수 쓰세요?" 뭐 이런식으로 접근을 한다나 뭐라나.  뭔가 '선수'들이 쓰는 표현이나 행동양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뭐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 바닥 선수들끼리 사용하는 어떤 특정의 표현을 쓸때, '벽창호'는 그 말귀를 통 못알아 먹을거고 그러면 거기서 진도가 막히는 것이리라.  하하하. 


그래서, 돌아보면...어쩌면...나는...어떤 '선수'가 멋지게 다가오는 멘션을 날렸을때, 말귀를 못 알아먹고 그 선수를 곱게 보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깔깔깔.  말귀를 못 알아 들었으니 내가 무슨 기회를 놓쳤는지, 어떤 선수를 그냥  보냈는지 알수는 없다. 


나한테 같이 밥먹자고 해 봤자 그 방법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 99프로.  왜냐하면, 나는 누구하고 사교하기 위해서 밥을 먹는 일이 별로 없다. 사교 목적의 자리에서는 나는 밥을 잘 안먹거나 못 먹는다. 나한테는 어떤 '문제'를 들고 오는것이 훨씬 소통이 잘 될 것같다.  그 문제를 들어주고, 고민해주고, 뭔가 해법을 함께 찾아보고, 그러다보면 친해질 가능성이 크다.  밥은, 내가 사교하는 틀이 아니다. 


어제는 학생 몇명이 내 오피스에 와서 한시간동안 이야기들을 했는데, 내가 "그런데 너희들은 누구하고 사귀고 싶을때 어떤 말을 하니?" 하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어디 가자. 술마시자, 차마시자, 영화보자, 숙제 같이 하자 뭐 그런것.  세상이 변해도 연애의 정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것 같다. 그들은 예전에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다.  (난 그 예쁘던 시절에 도대체 뭘 한거냐 ...뭐 기억나는게 별로 없다. 어흑흑 급 좌절 모우드.) 


문득, 한가지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대학교 1학년때 미팅을 했다. 이렇게 눈부신 봄날이었지.  나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제법 예뻤을것이다. 종로에서 미팅을 했는데 남자쪽 일행도 모두 미남들이었고,  우리들은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후 각자 쌍쌍이 따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대체로 좋은 미팅이었다. 나도 내 파트너가 맘에 들었고, 저쪽에서도 같은 입장인듯 했다.  그런데 우리들은 둘다 대학 신입생들이었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을것이다. 하하하.  그러다가 해가 지게 생겨서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못 들어가면 아버지한테 살해당해도 할말이 없는 나로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서둘러서 종로2가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며 

 나: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가야해요. 안그러면 난 죽어요!" 외쳤고; 그 남자애도 헐레벌떡 나를 따라 뛰어오며


그:  "아 그래요? 언제, 우리 학교 놀러올래요?"  (<-- 이거이 애프터 신청임, 그때는 몰랐지만.. 아이구 이 머저리...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나: "그 학교여? 거기 여기서 되게 멀죠? (종로에서 관악구가 그당시에는 한국에서 미국가는것처럼  멀게 느껴졌었다.)  (<--- 머저리. 여기서 이렇게 말하면 헷갈리지. "아, 네, 저도 그 학교 가보고 싶어요!" 이랬어야지 이 벽창호야! )


그: "아, 그...여기서 가는 버스 있는데..."  (너두 여기서 뭔가 날짜부터 정했어야지 멍청아! 하하하) 


나: 여기서 한번에 가는 버스요? ( 삼천포로 가고 있는 대화) 


그: 네 그 버스가. (애프터는 이제 낙동강 오리알) 


나: 아! 저기 내 버스 온다! 저 지금 저 버스 못타면 아버지한테 죽어요!  저 버스 타요! (아버지한테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다음 만남을 기약했어야 했어. 말하다 그냥 도망가는게 아니야, 멍청아!) 


그: (이미 버스에 오르고 있는 나를 향해) 아, 네, 그 버스가.. (너도 마음에 있었으면, 그 버스에 따라 타던지 했어야지...하지만 이해해, 첩첩산중, 학이 날아다니는 시골에서 온 네가 알지도 못하는 아무 버스를 어떻게 따라서 탈수 있었겠니. 서울 지리 자체가 미궁속이었을 너에게 그것은 목숨을 거는 모험이었을것을. )


나중에 미팅 주선한 선배언니가 "너, 남자애들 중에서 제일 멋진애를 일부러 네 파트너로 꽂아 줬는데, 넌 맘에 안들었니? 너가 걔 찼다며?"  


아닌데, 나도 그 남자애 맘에 들었는데, 하지만 당시에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던터라서... (아이구야.)  지금의 나라면 "아니 아니 언니, 나 그 애 너무 너무 너무 맘에 들어.  그애도 내가 괜챦대?  그럼 전화번호좀 줘봐. 내가 연락하게" 뭐 이랬겠지. 하지만, 그때 나는 대학 신입생이었고 뭐랄까, 뭐, 여자는 좀 도도해야 한다는 잘못된 상상을 하고 있었고, 내가 그애를 찬것으로 소문이 난 마당에 그냥 그걸 사실화 하는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에이, 뭐, 그렇게 알려져 있으면 그걸 사실로 만들자. 뭐..하는수 없지. 뭐 이렇게 된거다. 얼마나 멍청한 시추에이숑이냐 대체.  그 애는 잘 있으려나...관악구로 가는 그 버스가 몇번이었더라? 25번이었나? 그때는 2호선 개통 전이었지 아마.  온통 '버스' 얘기만 하던 우리들의 마지막 순간.  서로 맘에 있었지만, 어떻게 연결하는지 잘 몰랐던 두 벽창호. 


(돌아보니, 우리 아부지, 내 미팅 여러개 박살냈다...미팅마치고 둘이 버스정거장에서 서서 버스 기다리는데 -- 그 애가 우리집까지 바래다 준다고 함께 버스 기다리고 있는데, 아부지가 나타나서 인상 팍 쓰면서...뭐, 망한거지...하하하.  . 아부지도 우연히 거기서 버스 타려고 나타나신것일뿐 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뭐 아무튼 그 애하고도 거기서 끝장 났고.  그 후에도 두고두고 "어디서 머리 파마를 한 양아치 녀석과 길에 서 있었다"고 나를 씹었다. 머리 파마하면 다 양아치인가?  쳇, 그애가 얼마나 똑똑한 친구인데, 남의 귀한 아들을 양아치라니.. 참 시련도 많았지... 하지만, 그 시절에는 남자 대학생이 파마를 하면 너도나도 모두 그를 '양아치'라고 손가락질 해도 무방했다. 하하하. 아유 웃겨.  걔 이름은 생각도 안난다. 파마머리 밖에는.  그래도 그 애가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학교에서도 역시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법학과 학생이었는데.  에잇...  남편님은 장인어른에게 감사해야 할거다. 그 모든 노루 사슴들을 모두 앞서서 사살해버리고 결국 그를 사위로 맞았으니. ) 라일락이 피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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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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