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02.21 04:49

이 주제는, 3월 9일 이후에 작성한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2.21 04:29





이명행은 예고편 이었다.  누군가 '거 나쁜 놈이네' 촌평을 했을 때 나는 '글쎄...' 했다.  그가 연극계의 국민배우급 위상이라는 얘기는 잘 모르겠다. 난 20년 가까이 한국의 연극무대를 구경 한 적이 없다.  미국에서도 주로 음악회, 오페라, 발레 이런거 보려 극장에 갔지, 연극은 딱 한번 가 본 것이 전부이다. 연극은...그냥 고생스럽고 돈이 안되는 장르라는 느낌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이명행에 대해서 내가 '글쎄...'하며 단죄를 유보했던 이유는 막연하게나마 그가 '예술판'의 '싯적 파격' 혹은 '예술적 환상에 의한 일탈' 행위로서 여성 멤버들에게 추근대는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닐까, 뭐 그정도 였다. 그래도 될것만 같은 '예술의 혼미함'에 기댄 일탈이 아닐까? (상대방의 기분 따위는 고려할 여유가 없었겠지.)  아주 나쁜 놈은 아닐거야....내가 기억하는 이명행은 참 순하고 착한 소년이었고, 소박한 꿈을 쫒던 꼬마였다. 어릴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제 엄마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 엄마'하고 제 엄마에게 매달리던 그 애가 생각난다. 그 녀석이 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12색 크레파스랑 스케치북을 사다주니 좋아서 싱글벙글, 소리도 없이 웃으며 좋아했는데.   너 왜 주변 여성들에게 못 된 짓을 한거니?   어쨌거나, 납작 엎드리고 재빨리 시인하고 물러나는 수순을 밟았으니 뭐.  석고대죄하는 시간 가지시길.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마.  (그렇다고 그가 연쇄 살인범도 아니지 않은가?)



이윤택이라는 '거물'이라는 사람이 망가지는  장면은 참 ...뭐랄까...너무 쉽게 망가지면서 그의 추하고 때에 절은 심상을 드러내는 장면을 티브이 화면으로 뚫어지게 들여다보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 어라, 어라, 어라, 이거 한순간에 무너지고 마네! 너무 쉽게 무너지네.  더불어,  우리집에도 그의 시 전집이 뻗치고 서 있는바,  고은 선생의 평생의 문학적 업적도 최영미 시인의 시 한편에 끝장이 나고 마는 형국이니... 앞으로도 문화 예술계의 성추행 폭행범들은 시리즈로 고발당할 사회 분위기 인데.  "아저씨들 쌤통이셔. 뜨거운 맛 좀 보셨네.  오래오래 타산지석이 되셔" 하며 관조하다가도 문득, 아 문득,  아 쫌 억울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왜 억울하냐고?  나도 당했고, 늘 당할 위협속에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아무튼 이 아저씨들 박살 나는 꼬라지는 일면 통쾌하기는 하다.  그런데...내 어릴적 꿈이 소설가였다. 말하자면 '문화예술인' 축에 끼고 싶었다. 그리고 내 비록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문화예술인들을 사랑한다. 그 배고픈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는 유독 문화예술계의 성폭행범들만 '각광'을 받고, 깨지고, 망신당하는 작금의 현상이 어딘가 '괴이쩍게' 느껴진다.  



문화예술인들은, 참 약해. 참 쉽게 깨져.  참 어이없게 무너지고 말아.  본래 문화예술이란 분야가 그래..나쁜 놈들이라도 지능적이지가 못해. 지능적이고 교활한 면보다는, 어리숙하고...뭐...자기의 위대성에 도취되어가지고 자기가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그냥 나쁜 짓에 빠져들어.  그러다가 칼바람 불면  그게 끝이야. ...  나쁜짓의 이면에 계획적이라던가 교활한 그런게 안보여.  "나 힘쎄니까 너희들이 와서 알아서 안마하고 빨아주고 응?"   뭐 이런식이야.  순진한건지 멍청한거지 도무지 감이 안잡혀. 숨을곳도 만들어 놓지 않고 못된짓 하다가 그냥 한방에 날아가버리는 시스템이야.  .Fragile 이라는 영 단어가 있다.  깨지기 쉬운, 망가지기 쉬운.  뭐 그런 단어인데,  플로리다에 살때, 플로리다에는 사철 나비가 날아다닌다. (천국 같지 않은가?)  주말에 바닷가로 차를 달리다보면 자동차 앞 유리에 퍽!퍽! 하고 부딪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나비들이다.  나비가 한가롭게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자동차를 피할새도 없이 부딪쳐서 그냥 '곤죽'이 되어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그 나비들에게 미안했다. 너희들 정말 fragile 하구나 했다. 



오늘날, 성추행/성폭행범으로 난도질 당하는 그 수컷 문화예술인들을 보면서 --나쁜 아저씨들이긴 한데...어쨌거나 다른 분야의 더 나쁜 수컷들에 비하면, 당신들 참 연약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서지현 검사가 겨냥했던 그 사람, 혹은 그 직업군의 사람들중에 어느누가 '이윤택'처럼 개망신 당한이가 있는가?  이윤택이 문화예술계의 권력자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발생하는 권력이고, 이 사회를 쥐고 흔드는 수컷들중에 '이윤택'같은 아저씨들이 없겠는가? 있지. 그런데 그들은 '진짜' 권력자들이라서 이런 식의 파장에는 미동도 안하고, 감히 아무도 건드릴 생각도 못한다는 것이지.  서지현 검사는 검찰을 흔들지 못했다.  괜한 문화예술계의 힘없는 예술인들이 그 파편을 맞고 장렬하게 개망신 당하는 중이다.  (그들을 위해 항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는 왜 꿈쩍도 안하냐는거다. 제,길,슨).



나비는 죽어도 괴물들은 여전히 도로를 막고 서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러 든다. 난 더 큰 물결을 원한다.  



저따위 한방에 훅 갈, 다 살아서 이제 제대로 건사도 못하는 잔챙이들 말구, 좀더 섹시하고 힘있는 진짜 나와!  수컷임을 과시하며 산화해 보셔! 




문래동 카이스트의 명언: 아임 스띨 헝그디!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2.13 23:56


이곳이나 저곳이나 하룻밤의 꿈 같다.  3월에 또 잠시 들러야 하고, 그 다음에 어디로 향할지 나는 잘 모른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사람들은 참 내게 친절하고, 나는 어딜가나 은혜 가운데 서 있다. 어디에 있건, 어디로 가건, 무엇을 하건 여행일뿐이다. 모험일뿐이다.  영국동화책속의 첼로의 모험같은 모험일뿐이다. 

하느님께서 내게 길을 일러 주실 것이다.  만약에 저곳에서의 삶이 이어진다면...만약에 이곳으로 오게 된다면... 나는 시나리오를 짜 놓고 앉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것을 딱히 선망하지도, 어느것을 딱히 피하고 싶지도 않다.  


어느 오락프로그램 속에서 모 여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죽어.  애인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죽어버려. 그래서 참 쓸쓸해."  그걸 보며 내가 생각해보니 '천만다행스럽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장수하시다 가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오래전에 그 슬픔을 극복했다.  그 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 누구도 죽지 않았다.  나의 사랑하는 개 왕눈이가 죽은것 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천복임을 깨달았다.  심지어 내가 사랑했으나 헤어질수밖에 없었던 옛사랑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 기쁜 일이다.  


살아있기만 해.  그거면 된다. 



며칠 봄을 재촉하는 비가 쏟아지더니 오늘은 맑개 개었다. 이제 포토맥 강변에 수선화들이 기지개를 켤 것이다. 3월에 오면, 꼭 가서 봐야지. 수선화들. 나는 봄날 워싱턴의 벚꽃 축제보다 강변의 수선화를 더 좋아했었지.  내 꿈이 길몽이길.  슬픈 꿈에선 빨리 깨어나길. 이제 나를 기다리는 송도로 간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2.04 06:50

요즘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국내에서 전문직 여성계에 이르기까지  성폭력 관련 문제제기 현상인 '미투' 가 확산되고 있고, 나는 이것을 역사 발전의 방향이라고 보는 편이다. 역사의 바퀴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교수, 검사, 공무원, 교사,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어떤 새로운 장을 열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현상 속에서 내가 문득 호기심이 드는 분야.  이 걷잡을수 없는 물결이 '근친 성폭행'까지 이어질까?


여성들은 입으로 발설하지 않는 여러가지 '비밀'들을 가슴에 묻고 산다.  그 비밀이 들어 있는 방의 자물쇠가 하도 단단해서 여성 그 자신도 그 문을 열기 힘들때가 많다.  그 여자가 입을 열어 비밀을 발설 하는 순간 그 집안은 풍비박산이 날 것 같아 보이고,  그 집안이 박살이 날때 비난의 화살은 그 여자에게 날아갈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너란 년이 이 집안을 말아 먹는구나 결국" 뭐 이런 식이 되겠지.


내 또래 여성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나는 생각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들의 내밀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듣게 된다.  그냥, 맥도널드에서 제일 싼 커피 한잔 씩 들고 마주 앉아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하릴없이 하다가 문득 듣게 되는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얘기다.  집안의 아무개에게 당했다.  엄마가 집안 망신이라며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그 인간 면상을 보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뭐 대체로 이런 맥락이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내가 당했던 억울한 얘기를 털어 놓고 둘이 서로 세상을 신나게 욕을 한 후에 한결 가뿐한 얼굴로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하는 식으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제 50이 넘었으니 무슨 말은 못 하겠는가, 게다가 나는 당신을 신뢰한다' 이런 바탕위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나는 가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사람을 남자, 여자로 구분하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 사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동물인 것 같아. 이 사회는 남자라는 동물이 우세한 사회이고, 여자라는 동물은 사자가 뜯어먹고 남긴 고기를 하이에나가 뜯어 먹듯, 주변을 빙빙 돌면서 남은 고기를 뜯어 먹는, 그냥 다른 종류의 동물인것 같아.  우리가 동일한 '인간종'이라는 것은 그저 '환상'은 아닌걸까? 나는 정말 생물학자들에게 묻고 싶어, 정말 여자와 남자가 인간이라는 동종으로 묶여질수 있는 동물들인지.  만약에 동종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차별을 하지? 응?  그러니까 아마 동종이라는 것이 환상일것 같아.  


나는 남녀차별을, 내가 태어난 가정에서부터 경험하고 학습하고 내면화 해 왔으므로, 사실 사회에서의 남녀 차별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한 편이다.  집안에서도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사회에서 뭘 바래?  내 부모도 나를 차별했는데 남들이 나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거 아닐까? 저들에게 뭘 바래?  어떻게든 생존할 궁리를 하는게 답이지... 돌아보면, 나는, 인생이라는 이 정글에서 외토리 늑대처럼 돌아다니며 '남성'이라는 다른 '종'의 동물들을 경계하면서  적당히 친한척 하면서 살아왔지 한번도 그들을 나와 동일한 종이라고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 형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저들은 그냥 나하고 다른 '종'의 동물들이고 우리는 우연히 한자리에서 '가족'이나 '동료'나 뭐 '친구'나 그런 허울좋은 이름으로 연결 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어느때라도 배가 고프거나 뭐 다른 이유로 나를 물어 뜯어 죽일지도 모르고, 나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경계하며 나를 지켜내야 한다.  아무도 믿어선 안된다.  특히 남자라는 종은,  조심해야 한다. 아마도 이런 태도가 내 생존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내게 착하고 선량한 남편과 두 아들이  있다고 해도 나의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상념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은 정글이고 나는 나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가족 조차도 내게는 약육강식의 정글일 뿐이었고  정글은 나를 단련 시켰다.  바깥세상이 특히 더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내 가족이 선량한 만큼, 타인도 선량하고, 타인들이 악한 것 만큼 가족도 악하다.  차이는 없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부는 '미투' 바람이 '가정내 성폭행'으로까지 확산 된다면, 인간 사회의 '가족 제도'가 온전히 유지 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런데,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가슴에 자물쇠를 채우고 평생 비밀을 말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으면서 지켜내는 그 가족이란 대체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가?


스스로 얼굴과 이름과 직업을 드러내고 물 위로 걸어나와 전면전을 치르는 여성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드린다.  당신들은 새로운 세상을 새로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2.04 06:06



케네디 센터에서 열리는 미국 국립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2018, 2, 3, 오후 8시). 


1월과 2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생일축하 이벤트를 생각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여 확답을 받고 음악회 표를 산 것은 이미 3주 전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요정의 입맞춤' 이렇게 세가지 곡이 연주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컨체르토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자주 들어서 가장 친숙한 곡이니까.


찰리는 나를 위해서 휴가를 냈고, 존은 직장에서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다고 그렇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진통제를 먹고 앓는 소리를 하길래  존의 허리에 약을 발라주고 챨리와 둘이 66 East 를 달려 케네디센터에 갔다.  내겐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것 같은 익숙한 길.  여기 온지도 몇 년 만이다.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짧은 원피스 드레스도 입고, 정장 구두도 신고,  음악회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따로이 드레스코드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을 내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가끔은, 우리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용모를 단장하듯, 가끔은 뭔가 이벤트를 만들고 예쁜 옷과 예쁜 구두를 신고, 아름다운 것을 음악을 들으러 예쁜 음악당에 가서 오로지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평소에 향유하지 못하는 뭔가 고양된 것을 경험하거나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차이코프스키의 '폭풍'은 음악 전체가 '폭풍' 그림 앞에 서 있는듯한 분위기였다.  천둥 번개가 치고 잦아들고 다시 몰려오고 그러다가 사라지는.  나로서는 음악을 들으며 어떤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어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템페스트가 끝나고 들어온 스타인웨이 피아노.




음악이 시작 되었을때, 찰리와 나는 저도 모르게 서로 쳐다보고 소리없이 '아!' 했다. 


음악에 대해서 특별한 미각이 없는 나는, 피아노 컨체르토 곡이 라디오나 음반에서 흘러 나올때, 대개는 '귀챦아' 하는 편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부담스럽다'는 대체적인 느낌.  아 시끄러... 이런 느낌.  그래서 대체로 솔로 독주나 실내약 정도가 내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 인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내가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음악에 눈과 귀가 트인것 같다.  아, 저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이구나. 


우선 지휘자.  지휘자가 춤을 추듯 발뒤꿈치를 살짝 살짝 올려가며 두 팔을 휘저을때, 그리고 음악당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를때, 내 눈에는 마치 보티첼로의 그림에서 서풍의 신 (제피루스)의 입에서 꽃잎이 터져 나오듯 지휘자의 두 팔에서 음악이 만들어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이 그의 두 팔 안으로부터 꽃잎처럼 펴져 나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도 나의 서술은 시각중심이다.)


지휘자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그리고, 교향악단의 개별적인 연주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음악의 요정'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눈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의 춤, 피아노 독주자의 옆모습 표정까지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고, 계절이 지나가는 시각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시각에 국한 된 경험은 아닐것이다.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나는 소리의 따뜻한 바닷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으니까.  음악회에 가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놀고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음악이 끝나갈무렵,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머리가 가뿐해지고, 가슴에서 희망이 솟아니며, 잘 살아내야만 한다는 각성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 찰리가 새로산 아이폰으로 뭔가 이펙트를 넣어 찍은 사진.  이제 4년차로 들어가는 내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인데.)



찰리에게 말해줬다.


우리의 일상이 똥통같은 현실속에서 구더기처럼 꿈틀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일년에 한 두번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 만들어내는 고양된 예술을 경험하면,  똥통속에 살아간대도 하늘에 태양과 별들이 빛나며, 음악당에서 아름다운 음악들이 연주되고,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며, 바다는 여전히 넘실대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회상'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고양될수 있고, 그 희망을 가지고 순간순간을 견딜수 있는거다.  우리 곁을 맴돌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은  쥐새끼만한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그 음악을 들을때라도 '회상'을 통해서 되살아날거다.  우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를 들을때, 우리는 오늘 들었던 천상의 선율을 되살려 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 줄거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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