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09.19 09:05



긴 여름을 꽃을 피우며 나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난초 (나는 심지어 이것이 무슨 이름을 가진 난인지도 모르는데)가 길다란 꽃대 두가지를 까맣게 마르도록 기다리다가,  '미안하다. 네가 피어나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하여 참 미안하다' 마음을 보내주니, 아마도 죽을 힘을 다하여 또 한가지를 밀어올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내게 그 자태와 향기를 드러내주다.


장하다, 장하다, 장하다!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서 분갈이를 하고, 꺾꽂이를 하여 새로 살림을 낸 작은 다육화분.  집에서 돌보다 오늘 아침 연구실로 데리고 오면서 들여다보니, 이 작은, 새살림 낸 화분에서 꽃봉우리 하나가 솟았다.  하.하.하.  우리 하느님께서 내 타는 속에 찬물 한바가지 부어주시는 대신에 꽃봉우리를 보내시다. (지금 내 표정이 딱, 저 태양에너지 고양이 표정이다. 까딱까딱)






그러니까. 이것이 숙소의 나의 '아주 코딱지 만한 작은 정원'이다.  맨 왼쪽 친구, 저 친구는 숙소 현관 화분에 있던 것을 내가 그냥 한 가지 끊어다가 물에 담가 뿌리 내려서 저만큼 키운 것이고,  그 다음이 오늘 연구실로 이사온 작은 녀석.  보라색꽃은 '다이소'에서 파는 인공화초 천원이나 이천원쯤 하는 것인데, 그래도 예쁘다.  가운데 노랑이가 작은 녀석의 본가. 저 무성한데서 꺽꽂이를 해서 새살림을 냈는데, 조그만 화분 더 사다가 몇군데 더 심어 볼까나.  어느 정원에서 꺾어온 백일홍 한송이도 백일쯤 나하고 함께 있었으면 좋겠고, 맨 오른쪽 아주 작은 선인장은 저게 깨알만하게 작은 주제에 올 봄에 꽃을 여러송이 피워냈다. 


화초를 잘 키우는 방법은, 그냥 게으르고 무심하면 되는것 같다. 말라 죽지 않게 물 주고, 가끔 영양제 주고, 가끔 흙 갈아주고. 화초는 그 정도 해주면 잘 사는데, 사람은 그 정도 해주면 대개 떠나간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일것이다. 말라죽지 않게 내버려두면 대개 말라 죽는다.  오 하느님, 제게 살아갈 용기를 퍼부어 주시고... 오늘 하루 잘 살아내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근데 아무래도, 난꽃이 피었는데, 그냥 지나칠수가 있는가...

주변 선비들을 불러 모아 달빛 향기에 가서 축하라도 해야...

정진사, 신진사, 이대감...헐.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9.18 11:07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여기저기서 '결혼식'이 잦고, 나도 자식들이 장성하였으니 그들이 언젠가 결혼 할 것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 보게 된다. 가까이에 자식의 결혼식 날짜를 잡은 이의 말을 들으니 요즘은 '주례'를 생략하는 추세라고 한다. 


주례대신에 신랑 신부 부모님이 하객에게 인사를 하거나 자식들에게 덕담을 하거나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뭐 어쨌거나 정해진 답이 없으니 결혼식을 마음대로 하는 것에 큰 이의는 없다.


주례 얘기 하니까 생각 나는데, 우리 박선생에게 후배가 결혼식 주례를 해 달라고 했는데 거절을 했다고 한다. 웬만하면 해 주지 거절까지 할거야 없지 않은가?  그런데 박선생 왈, "아 그 녀석이 행실도 별로 안좋은 바람둥이 녀석으로 소문이 났는데, 얼마전에도 재혼식을 했고, 이번이 삼혼인데 그 주례를 나보고 서라는거야. 쳇. 재혼까지는 봐주겠는데, 삼혼까지 하는 마당에 주례 세워서 요란을 떨게 뭐냐구. 난 안가!" (이 대목에서 가만히 듣고 계시던 택시 운전사님이 박장대소를 하셨지...)



"그래도, 상대방 색시가 초혼이거나 그러면 격식 다 갖춰서 결혼식을 하고 싶은거겠지. 사정도 잘 모르면서 왜 화를 내셔?"  



뭐, 요즘은 신부가 한1드3 이라나 그런 공식도 있다는데, 한복 한벌 드레스 세벌이 필수라고 한다.  결혼식 전에 미리 웨딩촬영할 때 입을 드레스가 있어야 하고, 웨딩 드레스가 있어야 하고, 피로연 드레스도 있어야 하고. 뭐 그런 식이라고 한다. (아이고, 내가 80년대에 결혼한게 다행이다. 지금 같으면 복잡해서 결혼도 귀챦을것 같다.)



어쨌거나, 드레스 여러벌 갈아 입으면서 맘껏 주인공 기분내고, 귀챦고 귀따가운 주례따위 과감하게 생략해버리고 다 좋은데, 하객으로 돈봉투 갖다 주고 끌려다니는 내 입장에서도 할말은 있다. 주례따위 생략하는 김에 하객도 생략해버리고, 결혼식은 그냥 니네끼리 하면 안될까? 드레스 차려입고 기분내고 그냥 니네끼리만 즐기면 안될까?  하객은 꼭 필요하니? 왜? 돈이 필요해서?  가족사진 뒷배경?  (어차피 가족사진 따위 안볼거쟎아. 안그래?)  축하금, 그건 그냥 언라인 입금으로 대체하면 안될까? 축하금 그것마저도 좀 생략해주면 안될까? 그 돈은 꼭 받아야겠니? 드레스 사 입어야 하니까?


그래도, 일단, 결혼을 축하한다. 부디 행복하길.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9.17 08:46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내가 사는 섬마을에는 내가 산책할 수 있는 거리에 서점이 세개나 된다!  교보문고가 한군데, 영풍문고가 두군데에 있다!  그러므로 심심하면, 그냥 '서점'에만 나가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터넷서점의 약진으로 오프라인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미국 서점가를 생각하면, 지금 내가 누리는 호사는 보통 호사가 아니다. 서점의 신간코너를 춤을 추듯 이리저리 돌며 새 책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유희인가.  언젠가 이 수북히 쌓인 신간들 속에서 내 책을 발견하리라 상상하는 일도 즐겁다.  옛날에 내 책이 나왔을때, 일부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내 책이 어디에 진열되었는지 확인하고, 자꾸자꾸 돌아보던 일이 생각난다.  늘 그때의 설레임으로 책방을 찾게 되는데.


그렇게 한가로운 9월 어느날 저녁, 내 눈에 '데미안'이 눈에 띄었다.  데미안이라니. 그런데, 책 서두에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그 한마디 때문에 책을 집어 들었다. 


언제였더라? 데미안을 읽은 것이?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도대체 그 때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일까?  도대체 그때 내가 무엇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비밀조직원들처럼 "너 데미안 읽었니?" 묻고 서로 아는체를 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 당시에 나의 '데미안' 읽기는 싱클레어와 막스 데미안과의 관계, 혹은 에바 부인과의 기묘한 관계에 한정되어 있었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신비한 무엇'정도로 지나쳤겠지. 그리고 중학생인 우리들은 서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아프락사스라 한다"라는  그 유명한 구절을 비밀 결사단체의 암호처럼 서로 주고 받았으리라. 


나이 오십이 넘어 그 책을 다시 집어 드니, 책안에서 뜨겁게 논의되는 카인에 대한 시각, 혹은 '신성'의 문제, 니체 초인철학의 그림자, 세계의 고대 종교및 보편적인 종교들,  하이데거의 '던져진 존재'를 방불케하는 이미지들이 여기저기에 수채화 물감처럼 스며 있다.  이런 담론의 주제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을 읽어본적도 없고, 카인이 누군지도 몰랐던 어린 나는 책을 읽고 어떤 상상을 했던 것일까?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중학생들이 이 책을 읽어봤자라는 말은 아니다. 책은, 소설은 자기 수준만큼 이해하면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읽으면 좋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내가 그걸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해를,

그리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Page 129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Page 172



이 책이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내가 아직도 나를, 혹은 나의 운명을 찾아 내지 못했기 때문인데 문득 윤동주의 '길'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내가 어릴땐, 청년일땐 몰랐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의 '헤멤'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어릴때 나는 내 아버지나 내 엄마 혹은 주위의 어른들, 학교의 교수님들은 삶에 대한 어떤 확고한 답을 이미 갖고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들은 어른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교육을 많이 받았건 적게 받았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답'을 갖게 되는건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내가 혹시 인생을 낭비한 것은 아닌가, 내가 엉뚱한 곳에서 헤메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회의가 시시때때로 몰려온다. 그것은 '내가 재산을 얼마나 모았나. 나는 왜 집한칸 없이 떠도나' 이런 문제가 아니다. 그런것은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정말 제대로 이 생을 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감이 자꾸 든다는 것이지. 


그런이유로 '데미안'은 아직도 유효하다. 내 고민을 그대로 책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작가가 이 세상에 있었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비슷한 책을 읽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각만으로도 제법 위로가 된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을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남학생들은 모르겠고, 내 또래 여학생들 중에서 그래도 '책'좀 읽는다는 주위의 친구들은 대개는 '헤르만 헷세'에 미쳐지내던 시절이 반드시 있었다. 우리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너 000 읽었니?'였다. 그건 비밀결사단체의 암호 같은 것이라서 그것을 읽었다고 고개를 끄덕일때만 어쩐지 정말 친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혜화동의 고등학교에 다닐때, 내가 존경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바로 그 '데미안'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 친구를 정말로 존경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키도 크고, 인물도 시원하고,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 명작들을 이미 읽은 후였고, 공부도 나보다 잘했고, 그림도 나보다 잘 그렸고, 글짓기도 나보다 잘했다.  나는 산문을 좀더 잘썼고, 그 친구는 시를 잘 지었다.  심지어 스포츠에도 뛰어났다.  그런데다 별로 말도 없고, 쳐다볼땐 눈빛이 깊고 그윽했다.  중성적인 매력까지 있었다. 도대체 못하는 것이 없어 보이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지나치는 말로 소설 무엇, 무엇, 무엇 말할때마다 나는 놓치지 않고 그것들을 찾아 읽었다. 나도 책벌레 소리 들었는데, 그 친구에 비하면 내 독서력이가난하기 그지없던 형편이라서, 학교 도서관에 자주 책을 빌리러 가야했다. (물론 그 친구의 눈에 띄지 않게 책을 읽었다. 하하).  나는 그 친구를 존경했다. 진심으로. 



그렇지만, 내게 먼저 다가온 것은 그 친구였다. 나는 나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어서 늘 '관망자' '구경꾼' 정도에 머물러 있던 편이었고, 사람에게 다가가기보다는 멀리서 관망하는 편이었기때문에 그냥 내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그가 내게 먼저 다가왔다. 다른 평범한 친구들처럼 방과후에 함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함께 같은 방향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거나 그런 짓을 얼마간 했다.  내가 중간에 내리고 내 친구는 그 버스의 종점까지 가면 되었다.  우리는 별로 말도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 이해하고 있었다. 내 친구는 여일하게 나를 대했고 어느날 나는 내 친구에게서 도망을 쳤다. 평범한 친구 관계는 두달도 못 갔을 것이다. 나는 도망쳤다. 방과후에 함께 하교하기 위해 내 친구가 기다릴때 나는 다른 길로 가버렸고, 도서관에서 마주치면 불에 데인듯 피했다.  나는 내 친구를 여전히 존경하고 그를 신뢰하고, 언제든지 내가 힘들땐 저 친구가 나타나서 나를 위로해 줄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 친구를 피해다녔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내 친구가 나를 찾아와 뭔가 말을 하자고 할 때도 나는 골난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몇번인가 내 친구는 나를 찾았고 깊은 한숨을 지으며 딱하다는 듯이 나를 들여다보다가 자리를 뜨곤 했다. 나중에 내 친구는 멀리서 웃어주기만 했고, 나도 멀리서 웃었다.  그래도 그는 나를 잊지 않았다는 듯 학년이 바뀌어 서로 다른 반으로 흩어진 후에도 갑자기 달려와 삶은 밤 몇개를 내 책상에 놓아주고 가거나, 내가 대학입시 공부에 몰두 해 있을때는 라면 부스러기 같은것을 갖다 주고 휙 가기도 했다. 나는 온순하게 그것들을 받아 먹었다. 우리들은 연결되어 있었다. 내 친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을 되짚어 내가 왜 그렇게 맹렬하게 내 친구에게서 벗어나려 했는지 생각해보면, 내 친구와 내가 너무나 '닮은 꼴'이어서 였던것 같다.  내 친구와 나는 일단 외모에서 많이 닮았다. 물론 나보다 키고 크고 나보다 빼어난 외모였지만, 내 친구와 나는 서로 거울을 보는 기분이 들곤 했다. 물론 내 친구가 모든 면에서 훨씬 좋은 사람이고, 고양된 영혼의 소유자이긴 했으나, 우리는 아주 기묘하게 서로 닮아있었는데, 내 친구는 그래서 내게 친화적이었던 것 같고, 나는 그래서 아주 멀리 멀리 달아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나는 내게서 달아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멀리 멀리. ) 


내친구의 싯귀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참 아름다운 시였다. 내 친구는 나보다 성적도 월등히 좋았으므로 선망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내 친구가 대학원생일때 딱 한번 그의 학교 조교실에서 그를 만났다. 내 친구는 여전히 고등학교때처럼 농구를 즐겼는데,  대학에서도 장대같이 큰 남학생들과 어울려 농구를 한다고 했다.  그는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화장도 섹시하게 하고, 그리고 대학원 조교실에서 후배 남학생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여왕, 혹은 여신처럼 보였다.  혹은 아직도 내가 옛날에 존경하던 친구 그대로의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가끔 그 친구 생각을 한다. 애써 찾지는 않는데, 아마도 때가 되면 어딘가에서 나타날것 같기 때문이다. 




아, 그 친구 때문에 나는 헤르만 헤세의 거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는데, 지금 그의 저서 목록을 훑어보면, 도대체 내가 그 책들을 어떻게 읽은 것인지 제목만 생각나고 줄거리는 아예 가물가물하다. 그나마 떠돌이 시인의 삶을 그린 '향수'나 성장기 고통을 그린 '수레바퀴 아래서'는 구체적인 스토리가 떠오르는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내가 읽은 당시에 열광을 했으면서도 지금 그게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쩐지 올 가을 내내 헤르만헤세의 작품들을 하나 하나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9.16 13:29



내 이름은 미미. 잠자는 아기 고양이 미미.



잠자는 아기 고양이 미미를 데리고 '미미네 떡볶이' 가게에 들어갔을때, 가게 사장님과 옆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나의 '미미'를 들여다보고 깜짝깜짝 놀랐다.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모두들 미미를 만져보고 싶어했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띄었기 때문에 고양이를 데리고 앉아있다가 한가지 아이디어를 얻었다. '미미'가 이미 사람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정말로 이 고양이가 사람들을 위로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자. 





그래서, 잠자는 아기 고양이 미미를 내가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의 마스코트로 임명하기로 했다. 학생들을 위해서 새로운 프로그램 한가지를 시작하는데, 그 프로그램은 특히나 어떤 학생들을 '후원'하고 '응원'하는 성격을 띈다. 무조건 응원이 필요한 학생들. 그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것인데, 모임에 '미미'를 데리고 가면 좋을것 같다. 평화롭게 쌔근쌔근 잠을 자는 고양이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평화와 위안과 쑥쑥자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한학기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면, 크리스마스 즈음에 참여 학생들을 모두 데리고, 미미도 데리고, 미미네 떡볶이 가게에 가서 떡볶이와 튀김과 맥주를 마실것이다. 




 "내 이름은 미미입니다. 나는 온종일 잡니다. 당신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안고 온종일 잡니다. 두려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꿈이니까요. 만사는 잘 될 것입니다. 모두 꿈 일 뿐입니다." 



꿈속의 꿈


꿈속에서 뭔가 막다른 길에서 앞도 뒤도 막히고 움쩍달싹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이건 꿈이야. 꿈에서 깨어나면 이 상황은 사라지는거야. 깨어나자!" 


그래서 나는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나서 사람들에게 말해줬다. "막다른 길에선 당황하지 말고, 이렇게 외쳐, 이건 꿈이야! 그리고 깨어나면 돼."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이것도 꿈인데..."  그래서 나는 깜짝 놀라서 깨어났다.  그것이 지금 현재의 나이다. 어쩌면 이것도 꿈인지 모른다. 







거미로 그물쳐서 물고기 잡으러!!!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09.16 12:41


살면서 그냥 막연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그런 것과 비슷하게 어떤 허기를 느낄때가 있다.  이곳 섬에 와서 3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 내가 느낀 허기는 '문화적 경험'에 관한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번듯한 공연장이 안보였다. (내가 못 찾아낸 것일수도 있다).  



플로리다에서 지낼때는 대학을 중심으로 그리고 주 청사를 중심으로 배고프지 않을 맘큼 다양한 공연이 제공 되었고, 버지니아에서 살 때에는 케네디센터를 비롯, 워싱턴 디씨의 역사적 공연장들이 즐비했으므로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연주자나 악단의 연주를 쉽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 서울에 살 때에는 지금은 우중충해보이기까지 하는 세종문화회관을 비롯, 뭐 돈이 없어서 못 갔지 갈데가 없어서 못가지는 않을 정도로 공연장이 많았다. 내 일생에 '사방을 둘러봐도 공연장이 없다'는 막막한 느낌은 최근 3년 가까이 섬에서 지낼때 처음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다, 일전에 버스타고 신촌에 다녀오는 길에 인천시내버스에 붙은 음악회 광고를 발견하고, 그길로 바로 표를 예매해서 가게 된 곳이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이었고, 운좋게도 '라흐마니노프'를 들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는. 작은 학생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학생에게 "도대체 이 근처 사는 사람들은 공연을 보러 어디로 가니?"하고 물으니 그 역시 '인천문화예술회관'이 아니면 대개는 서울 예술의 전당쪽으로 간다고 한다.  내가 못 찾은게 아니라 그것이 현실 이었구나. 



금요일 저녁, 비가 솔솔 뿌리는 가운데, 전철을 타고 공연장을 찾았다. 일단 건물은 되게 커 보이고, 그 흔한 샹들리에 하나 매달려있지 않은 어딘가 쇠락해가는 듯한 느낌의 인테리어였다. 



금노상씨가 지휘한 무소르그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내가 경험했던 대규모 외국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못지 않은 훌륭한 것이었다. 특히 KBS명곡 프로그램 시그널로 오래 사랑받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라디오가 아닌 생생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어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교향곡 2번 작품은 CBS FM 저녁 배미향씨 시간에 씨그널로 나오는 멜로디가 들어있는 곡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 멜로디가 흘러나올때, 아 저거구나! 했다. 즐거웠다. 



아쉬운점은 내가 뭐 '막귀'니까 연주는 웬만하면 다 훌륭한데, 어딘가 소리가 무대에서 연주자들 사이에서만 맴도는 인상이었다. 지휘자가 열심히 지휘를 하고 연주자들이 아름답게 연주를 하는데, 그 소리가 객석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자기네들 무대에서만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느낌.  이건, 그러니까 연주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무대와 음향시설의 문제인것으로 보인다.  비유하자면 내 오피스에 좋은 오디오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서 음악소리가 내 온몸의 세포에까지 스며드는 기분이 드는데, 집에가면 조그마한 라디오가 있고, 순간적으로 그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마치 꽉막힌 상자속에 소리가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그런 조그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건물 구조적인, 혹은 음향시설의 문제를 제외하면 연주 자체는 케네디센터에서 했을경우 전원 기립박수를 받을만해보였다. 



금노상씨.  지휘자 이름을 보면서 혼자 생각했다. 

나: "금노상..금노상...금수현씨 아들인가?" 

옆에 있던 박선생: "금수현씨 아들은 금난새씨지.

나: "그렇군, 금난새씨가 있었지.  (3초후) 그런데 금노상씨도 금수현씨 아들하면 안되나? 금수현씨가 아들이 하나밖에 없나?

박선생: 설마, 한집안에서 지휘자가 여럿 나오기가 쉬운가?

나: 금씨가 워낙 희귀성이라서 말이지. 금수현씨 아들 아니면 조카? 먼 친척?



연주회 끝나고 구글 뒤져보니 금노상씨도 금수현씨 아드님이라고 한다.  헤헤. 나는 나중에 실업자 되면 시청앞에 돗자리를 깔아도 굶어죽지는 않을거야. 



음악당의 음향시설이 조금 낙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영혼이 목마를때 찾을수 있는 샘으로 가을에 이곳을 몇차례 더 찾을 생각이다. 내가 이 섬에서 예술의 전당을 다녀오려면 하루 품을 다 팔아도 힘든데다, 본래 게으른 인생. 이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내가 새삼 깨달은 것 세가지:


    1. 나는 하느님께 진짜 감사해야 한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대수롭지 않게 향유해오던 문화시설들이 사실은 한국에서 최고였거나, 미국에서 최고였던 시설들이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굉장한 특혜인지 모르고 그냥 무심코 누리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을 경험하면서 자각하게 되었다. (위대한 인천광역시가 자랑하기에 인천문화예술회관은 어딘가 낙후해 보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2. 인천시민들 정말 착하다. 불평하지 않고,  있는 것을 누릴줄 안다. 이분들에게 좀더 좋은 시설을 제공하면 안될까?
    3. 먹고 사는게 해결되었다면, 이제는 마음의 양식, 문화를 해결해야 한다. 

인천시는 인천시민의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줄만한 좋은 음악당도 만들어주시고, 진짜로 인천을 세계의 중심으로 키워주시길. 트리플스트리트 같은 신개념 쇼핑몰도 좋고, 국제 캠퍼스도 좋고, 다 좋은데 서해안 문화의 중심지로 키울 생각은 없으신지. 시드니에 있는 음악당 같은것 인천 바다 가까이에 지어서 서해안 문화의 기념비가 되게 하고, 바다 건너 오는 중국관광객에게도 화장품이나 치맥 같은것만 팔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 상품을 팔면 좋을 것이다. 요요마도 랑랑도 죠슈아 벨도  바닷가 공연장에서 연주하게 만들고, 응? 응?  (인천에서도 구석에 처박힌 섬마을 사람의 일성).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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