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3. 3. 30. 20:26



http://www.macabiskirt.com/


매커비 (Macabi) 스커트 라는 것이 있다.  트레킹 스커트 전문 회사이다.  이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품목이 스커트, 자켓, 뭐 이정도이다.  그러니까 아예 스레킹 스커트에 목숨을 건 작은 회사인듯 하다. 


작년에 50킬로미터 걷기 하던 날, 이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을 몇 명 보았다.  스커트가 참 예쁘고 편안해 보인다 싶어서 눈여겨 보고 있다가 웹 검색을 해보니 이런 스커트가 있었다.  트레킹 전용 스커트.


작년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값이 만만치가 않아서 집어 치우고 잊고 있다가, 50킬로미터 행군 날짜가 다가오니 다시 생각이 나서, 온라인으로 한장 주문했다.  


도착해서 입어 봤는데, 예상대로 스타일이 나하고 맞고 (자기하고 스타일이 맞아야 하지), 그리고 편안하다.  사이즈는 내 키가 165 센티인데, 미국 여자들 기준으로 약간 자그마한 키인데, '레귤러'로 할 것인가 '쇼트'로 할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레귤러 사이즈로 선택.   그런데 입어보니 내가 딱 원하는 길이. 그것도 만족. 


50킬로미터 행진하는 날 입고 가려고.  


왜 장거리 걷기 하는데 스커트?  그냥, 요새는 스커트 입는게 편하더라.  바지 꽉 끼는것 입기 귀챦고 스커트가 좋더라. 그리고, 이거 입고 걷는 사람들, 무척 편안해 보였다.  여차하면 바지로 변신도 가능하고. 


이 스커트를 아프리카나 중동 지방 여행자들이 많이 입는 이유는 -- 아마도, 날씨 문제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여자가 팔 다리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는데도 적합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내가 고른 것도 사진속의 '국방색'  :-)  자주국방의 의지를 불태우며! 걷는거지. 지구 끝까지.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3. 3. 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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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sapeake & Ohio Canal National Historical Park.  워싱턴 기점 12마일 지점에서 22마일 지점까지 왕복.


이곳은 포토맥 강변, Great Falls Park 인근의 Angler's Inn 이라는 식당 입구에서 진입하는 트레일 입구.  주차장에 차를 놓고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시작되는 강변 길. 


여기가 대략 12.5 마일 거리쯤 되는 곳이라서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12마일 포스트에 도장을 찍고 22마일을 향해서 걸었다. 


아침 9시 30분에 12마일에서 출발 -- 12시 30분에 22마일에 도착 (10마일) -- 잠시 쉬고 -- 오후 1시에 반환 시작 -- 오후 4시 30분에 차로 돌아왔다.  20마일 걷는데, 중간 휴식시간 포함 일곱시간 걸렸다.  시속 3마일 속도도 못 낸 셈이다.  좀더 분발해야 한다.



마침 이 지역 공립학교들이 봄방학 주간이라서, 어린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단위의 소풍객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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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간 혼자 걸으며 딱 한장 내 얼굴이 들어간 셀카,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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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걸어도 심심하지 않았던 이유: 


거의 1-2마일에 한마리씩 개를 만났다.  주인을 따라 소풍 나온 개 들. 이 개들이 어찌나 살갑게 아는척을 하고 안아달라고 엉기는지.  처음 시작 지점에서도 흰색 골든 레트리버 종류의 크고 아주 순한 개를 만났는데, 그 개가 순하게 내 손을 핥아주고 엉겨 붙는데, 개 형상을 한 천사 같았다. 우리 왕눈이가 하늘 나라에서 나 심심하지 말라고 개를 보냈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막바지 17마일쯤 걸을 때, 지치고 피곤했는데, 우리 왕눈이 크기의 검정 개가 주인을 따라 산책 중.  그 개는 약 1마일을 내 앞에서 걸었다. 그 개 엉덩이를 보면서 걷는 동안은 피곤한 줄 몰랐다. 우리 왕눈이가 앞장서서 걸을때, 털 공처럼 엉덩이가 통통 튀었었다. 그 왕눈이 엉덩이를 보는듯 했다. 


그 외에도 머리에 빨간 털이 난 북버지니아 딱따구리도 여럿 만났고, 사슴 떼가 한가롭게 노니는 것도 멀리서 보았고, 새들도 ... 온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게 일제히 말을 거는 것 같아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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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자랑을 해도 부족한, 물의 나라.  
길을 가운데 두고 왼쪽은 강, 오른 쪽은 수로. 
그 사이의 길을 걷고 있는 나. 
이렇게 근사한 풍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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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크기인데, 꽃 모양이나 잎사귀는 민들레가 아니다.  흔한 데이지 모양의 꽃인데, 납작하게 길에 엎드려 핀 것이 민들레 같기도 하고.  민들레와 데이지가 섞인 듯한 꽃을 발견했다. 이 지역에서 처음 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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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왕눈이를 닮은, 검정색 개.  이 개는 걷다가 내가 뒤처지는지 확인하듯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막판에 이 개가 있어서 걷기가 힘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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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덕분에 봄 꽃들은 아직 더디게 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더디 오는 봄도 좋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있으니까.  뭐든 기다릴때가 더 좋은 법이다.


오늘 내가 20마일을 걸을수 있을지 내심 걱정을 했다. 겨울 동안 장거리 워킹을 안했고, 운동을 자주 안했으니 몸도 무거워지고 (체중은 그대로라도, 나 스스로 느끼는 내 몸의 무게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나이도 한 살 더 먹었으니까... 그런데 정상적으로 걸어줘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기록은 정상이라도 내가 느끼는 걸음의 무게가 훨씬 무거워졌다. 전에는 가볍게 다람쥐처럼 돌아다녔는데, 요즘은 그런 가벼움이 안느껴진다.   


그래도 일단 20마일을 해 냈으니, 좀더 운동을 하고 준비를 하면 한달 후에 32마일 걷기도 잘 해 낼수 있겠지.   그걸 잘 해내면 나는 건강에 좀더 자신감이 생길것도 같다.   


온 세상이 참 아름다웠다.  강물은 오랫만이라며 경쾌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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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3. 3. 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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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눈이 무덤에 '돌탑'을 쌓는 중입니다.


무덤에 갈 때 마다 돌멩이 한개씩, 그렇게 쌓이던 돌멩이들. 


어느날 찬홍이가 '왕눈이 무덤에 탑 안 만들어 주나요?' 한마디 하길래, "오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러고, 그 날 부터 저 배낭을 가지고 왕눈이 무덤에 다니고 있습니다.  



개울가에서 예쁘고 깨끗한 돌멩이들만 주워서 가방에 담아 등에 지고, 왕눈이에게 가는 겁니다. (운동 되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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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사람의 눈길을 유혹하는 것은,  벨벳같이 보드라운 이끼, 이끼, 이끼. 이끼들 틈으로 꽃이 피어나고, 이끼 위로 자주색 참나무 꽃이 집니다. 



왕눈이 무덤을 지나, 메릴랜드 대학 구내를 지나, 호수까지 다녀오는 8마일 길.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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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왕눈이와 산책하던 개울 둑에 무리지은 수선화 군락도 발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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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언덕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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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는 꽃들중에, 오우크 트리 꽃들은, 사람들이 이 꽃을 꽃으로도 보지 않아 쓸쓸히 피고 집니다.

들여다 보면 분명 꽃인데, 벽돌색 자그마한 꽃이라 멀리서보면 나무의 새순이나 새 잎이 돋아나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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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모든 것들은 꽃이든, 꽃이 아니든, 모두 꽃같이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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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도, 메릴랜드 대학 캠퍼스를 감싸고 흐르는 개울가에서, 역시 돌멩이들을 주워다가, 우리 왕눈이 무덤에.



바람이 불어 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머리를 동여매고, 즐거운 산책.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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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Humor2013. 3. 2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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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업을 듣는 학생중에 큼직한 규모의 식당에서 바텐더를 하는 청년이 있다.  고객들과의 소통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계 이민자. 


이 학생이 오늘, 그 식당 바텐더로 일하면서 겪는 '영어'때문에 일어나는 일화를 한가지 들려주었다. 


이 젊은이는 표정이 대체적으로 시무룩한 (전형적인 한국남자 스타일) 편인데, 고객들 사이에서 '스마일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래서 '왜 미국 사람들이 나를 스마일맨이라고 부를까?' 혼자 곰곰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한다.  


돌아보니, 자기 자신이 마치 '네이티브 스피커' 인 것 처럼 행동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사실 단골 고객들이 던지는 농담이나 이야기의 핵심을 놓치거나 못 알아들을 때도 많은 편인데, 그런 경우 그는  자신이 모두 알아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 작렬' ---> 살인적 미소로 땜빵을 했다는 것이다.  얘기 못 알아 듣는 경우가 많으므로 살인 미소를 짓는 횟수도 많았을 것이고,  그러니 사정을 알 수 없는 그의 고객들은 그를 '미스터 스마일, 스마일맨'으로 받아 들인 것이리라.


'왜 사냐건 웃지요' 라는 우리 시인의 싯귀도 있거니와...

그는 살기 위해서 웃었던 것이니.


뭔가 상대방의 영어를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할때, 영어 학습자들이 주로 써먹는 방법은 -- 알아 들었다는 듯이 염화시중의  살인 미소를 은은하고 낭랑하게 띄우면서 '으흐~ 예에~ '  맞장구를 쳐 주는 것.   (못 알아 들을 때 마다, 일일이 --컴 어갠? 웟 디듀 세이? 익스큐즈미? 아이디든개츄 하면서 말의 흐름을 자꾸만 끊어서도 곤란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냥 염화시중 전략으로 안전빵, 가는거쥥.)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 바텐더 청년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고, 대부분의 -- 전세계에서 영어를 배우거나 써먹는 비 원어민들이 영어를 사용할때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써바이벌 전략중의 한가지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passign smile, passing talk 라고 정리한 적도 있다.) 


뭐 대개 이런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면서 산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

경찰이 살인용의자로 잡힌 갑돌이를 붙잡고 묻는다:

경찰: You've killed your wife, haven't you?  (니가 니 마누라 죽였지, 그렇지?) 이러고 묻는데 거기다가 대고 

갑돌이: 만면에 미소를 띄우면서 yeah... 

재판정에서도 판사나 검사나 배심원이 "니가 마누라 죽인 범인이냐?" 하고 물을때, 역시 미소를 띄우며 '예...' 한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것인가. 


* 이 바텐더 청년의 일화가, 아주 보편적이면서 전형적인, 전 세계인에게 두루 적용되는 영어 학습자의 생존 전략 행동 패턴 한가지를 극명하게 스케치해주는 케이스라서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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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Humor2013. 3. 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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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란은, 내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다.  고기를 잘 안먹으니까, 기운 없을땐 계란을 삶아서 두 세개 먹을때도 있다. 그러면 어지럽지 않다.  

어제 저녁 하면서 일없이 계란을 삶아놨다가, 오늘 학교에 오면서 싸가지고 왔다.  조교선생 책상에도 놓아 주고, 그냥 일없이 들르는 사람에게 주려고.  그런데 그냥 계란을 주면 날계란인지 아닌지 헛갈릴테니까 '삶은 계란'이라고 펜으로 썼다. 

써 놓고 보니까,  '삶은 계란'이 -- 인생은 계란 이라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생은 계란이라구?  계란 양계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뭔가 이건...

어쨌거나, 삶은 계란은 언제 먹어도 좋더라.  든든하고. 색깔도 이쁘고.

삶은 계란을 먹을땐, 늘, '고맙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고마운거다.  어릴 때, 삶은 계란을 먹을수 있는 기회는 봄, 가을 소풍날.  그때만 엄마가 이걸 삶아서 한두개 주셨으니까. 

어느해 여름 방학에는 시골에서 지내다가 모두 서울로 올라가는 날, 할머니가 집 닭이 낳은 계란을 보물처럼 모았다가 장에 내다 팔곤 하셨는데 (우리집에선 계란이 그렇게 귀했다) 그날은 "훈자야, 광에 가서 계란 있는거 모두 내다 삶아라" 하고 아직 시집 안간 셋째고모에게 명하셨다.  계란 스무알쯤 삶았을까? 그걸 모두 삶아서 온가족이 그걸 모두 먹었다. 나도 한 '세개 쯤' 내 몫으로 먹은것 같다.  (이건 뭐 로또 맞은거지...)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손자들을 사랑해 주셨다.  내게 삶은 달걀은 바로 그런 정서하고 엉켜있어서, 삶은 달걀은 늘 귀하고, 정답고, 그리고 신체/정신적 영양보급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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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3. 1. 30. 23:57

작년 참가 당시 사진







1년에 딱 한번 하는 50킬로/100 킬로 행진 프로그램 등록이 2월 1일 (금요일) 오후 네시에 시작된다.  등록 창 열리고 몇시간 지나면 '마감'을 알리는 메시지가 뜨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서 4시 땡 치기 기다리고 앉아있다가 1등으로 등록하려고.


걷기 1등은 못해도, 등록 선두는 노려볼 만. 


찬홍이 꼬셨는데 절대! 안 간단다. (싫음 관둬라.)


나는 가다가 죽어도 가련다.  :-)  

올해로 세번째 도전.  (참 대단허신 은미씨.)


* 몸에 기름을 치고 근육도 붙이고 해야.

* 작년에는 진짜 힘들었다.  올해는, 한 살 더 먹었으니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열심히 준비를 하고, 그리고 전 날 밤에 잠을 충분히 자야지. 작년에는 걸으면서 졸았다. 컨디션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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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12. 20. 01:27




영화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 – 그대 안의 호랑이

 

            먼 나라로 팔려가는 동물들을 싣고 가던 배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좌초하게 된다다리를 다친 얼룩말어미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가족을 잃은 소년이 구명정에 오르게 되고, 호랑이 한마리가 뒤늦게 합류한다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우랑우탄을 죽이지만,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만다그리고 마침내 구명정에 남겨진 인도 소년과 호랑이.


            소년은 어떻게 해서든지 호랑이를 처치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막상 호랑이가 물에 빠져 죽을 지경이 되자 호랑이를 구해내고 만다그로서는 한배를 탄 생명을 없앨수는 없는 일.  이로부터 소년은 호랑이를 달래가며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데 몰두하고 이들은 함께 모험을 겪게 된다.


            2001년 소설로 발표된 얀 마텔 (Yann Martel) 의 원작소설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가 대만계 이 안 (Ang Lee)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들에게 다가 왔다동성애를 소재로 한 비극적 사랑을 그린 브록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으로 이미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이 안감독의 우리에게 친근한 작품으로는 와호장룡,’ ‘, ’, ‘음식남녀등이 있다내가 보아온 이안감독의 특징이라면, 일단 그가 어떤 소재를 잡으면 그 소재가 갖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이나 색감에 충실하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인데, 이 안감독의 영화적 스케일은 파이의 이야기에서 더욱 확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2 24일자로 발간된 주간지 타임에서는 2012년 최고의 영화 열편중에 파이의 이야기 3위로 소개하고 있는데 편집자는 이 영화가 아바타 3D (3차원) 입체 영상과  ‘유인원 행성의 도래 (Rise of Planet of the Apes)’에서 보여준 컴퓨터 그래픽 기술 두가지를 합쳐야 가능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하고 있다


            즐거워야 할 금요일 아침에 동네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나 스무명의 무고한 유치원생, 일학년 어린이 들이  희생당하고, 이들을 보호하던 선생님들이 희생당하고,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이미 우울감이 극에 달해서 선택한 영화영화는 따뜻하고 꽃으로 뒤덮이고 순수함으로 가득한 인도의 풍광을, 망망대해를 떠도는 절망적인 시간을,  그리고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감싸는 푸른 하늘과 깊은 바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 반추할만한 시간을 제공한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망망대해를 사나운 호랑이와 싸우며 견뎌야 하는 소년 파이는 우리에게 전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희망을 놓지 말라고신을 발견할수 없을때에도 신께 기도하고, 신이 의심스러울때조차 신의 사랑을  믿으라고 속삭인다


            영화 말미에, ‘파이가 대치하고 있던 호랑이가 파이자신이었을수도 있다는 암시가 나온다호랑이가 실재 했는가, 아니면 파이의 또다른 자아였는가는 분명치 않다이안 감독은 원작 소설에 충실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그 호랑이가 누구였는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혹은 소설을 읽은 독자가 개별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안개낀 하늘을 향해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하고 내가 싸워 나를 이기자. 그래서 지금보다 더 굳센 나를, 옳은 나를, 나은 나를…”  어릴때, 아버지가 붓글씨로 써서 액자로 만들어 언니와 내가 쓰던 방에 걸어주셨던 윤석중 선생님의 시아버지는 자신의 서예 작품에 윤석중 선생님의 낙관까지 받아 오셨었다어린 나는 뜻도 모르고 이 시를 종알거리곤 했는데, 영화속 호랑이를 보면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나는 나의 공포와, 나의 태만과, 나의 나약함과 싸워 이기고 이것들을 길들여야 하리라그리고 희망을 찾아 나아가야 하리라, 삶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온가족이 다함께 가서 각자의 상상속에 묻혀 함께 즐길수 있는 아주 좋은 영화연말 가족 나들이용으로 영화 파이의 이야기 (Life of Pi)’를 추천드리고 싶다.

 

2012,12,19 



Life of Pi 책 굉장히 재밌다. 동물 행동학 관련 얘기도 나오고.   영화는 2012년에 본 영화들 중에서 최고.   찬홍이하고 함께 가서 다시 또 보기로 했다.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2. 11. 5. 02:24




요즘 국립미술관에서 리히텐스타인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얼마후에는 이것이 영국 테이트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국제 규모의 전시회라서, '큼직할거다' 기대하고 갔는데, 기대보다 훨씬 컸다.  몇 주 전에 시작되었는데, 이제서야 가 보게 되었다.  또 한번 가 봐야지.


전시장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 되고, 외부 통로에 있는 작품 사진은 촬영가능하다. 평소에 1층에 있던 작품들도 다 올라와 있다. 


리히텐스타인을 뉴욕에서 워싱턴에서 드문드문 보면서 이 작가에 대해서 어느정도 안다고 상상했었는데, 오늘 그의 '평생의 역작'들을 시기별로 일별하고 나니 큰 산맥 하나를 넘은것같은 기분.  경쾌하다. 그리고, 경쾌함 이상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하고.  





동-서관을 잇는 지하 통로의 빛의 길. 




피라미드 아래 폭포. 이 앞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잔 사 마시고, 다시 동관으로 




1층에 가서 백남준의 '엄마'에게 인사를 보내고, 현대미술 한번 다시 살펴주고.




기념품샵에서 킹 제임스 버전의 중세 스타일의 그림이 그려진 바이블을 한권 발견했다.  샀다 (예뻐서.) 지금 거실 테이블 위에 있다. 






18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을 훑다가 발견한 앞마당 그림 (작가와 제목은 사진 확인해 보고 나중에...  )

이 그림 발견했을때, 구조물이나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은 다르지만, 그냥 그대로, 시골집에서 살던 풍경이어서. 닭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머리에 수건쓰고 일하는 할머니도, 그대로 내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풍경 같아서 반가웠다.




미국 8인회 화가 프랜더개스트의 그림.  국립 미술관 미국화 쪽에 가면 늘 걸려있는 그림이다. 여기 오면, 기념으로 꼭 사진찍는다. 미국화 갤러리에서 '한장' 갖고 가라고 허락하면 내가 들고 오고 싶은 작은 '보석'이다.





감기기운 있고 축 쳐저 있었는데, 오히려 미술관 나들이를 하고 오니 머리가 가뿐하고, 좋다. 리히텐스타인, 전시회 끝나기 전에 또 보러 갈거다. (책도 한권 사왔다.)



기념품 샵에서 산, 자석그림, 카드 두장. 





Posted by Lee Eunmee
MyColor2012. 10. 1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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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천으로 만들어진 셔츠가 있었는데 몇년간 한번도 안 입던거라서 아깝지만 잘랐다. 주머니 부분은 따로 떼어내어 덧 붙였다.  본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오려다가 덧 붙인것이다. 손맛을 들이기 위해서 간단히 꽃을 수 놓았더니 갑자기 화려해진다.  노승 하나 앉아있는 잊혀진 암자 마당에 핀 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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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홀리 호비 소녀와 그의 동생 빌리.  홀리가 빌리의 늘어진 넥타이 끈을 잘 묶어주고 있는 장면이다.  


일전에 낡은 홀리 호비 침대보를 한장 사 놓은적이 있다. 나는 이것을 침대보로 사용하지 않고, 가끔 그림을 잘라내어 아플리케를 할 때 사용한다.  그러니, 이런 그림이 아직도 수십장이 더 나올 판이다.  그림 패턴이 다양해서...무궁구진하게 뭔게 만들어 낼 만하다.  그렇다고 필요도 없는 것을 만들어 낼 것도 없고.  장차 심심할 때, 가끔 아플리케를 하여 작은 주머니나 가방을 만들었다가 소녀들이나 아가씨들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내가 과연 심심할 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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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보에서 그림을 잘라내어 바탕이 되는 리넨 천에 올려놓고 아플리케를 하는건데, 그 속에 솜을 넣어 통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나서 바탕이 되는 리넨천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어 퀼팅을 해 주므로 이 소년 소녀는 아주 아주 통통해진다.  손으로 만지면 그 통통한 입체감이 살아나서 포근포근,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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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각종 주머니를 만들어봐서 '주머니'의 노우하우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노트북 슬리브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미루고 있었는데, 어제 일이 있어서 메릴랜드 대학에 갔다가 구내 매점에 진열된 각종 노트북 슬리브들을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여러가지를 들여다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대충 감을 잡았다.


문제는, '몸에 꼭 맞는 맞춤형' 슬리브를 제작한다는데 있었다. 대충 크기를 가늠하는 것과 몸에 맞게 정확히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여태까지는 맞춤이 아니고 그냥 내 맘대로 사이즈 나오는대로 만들면 되었으니까.) 그래서 몇번이나 자로 재 보고, 가위로 조금씩 잘라내고 그래야 했다.  (일단 천이 퀼트 하면서 사이즈가 조금씩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므로 조금 큼직하게 시작했다가 야금 야금 사이즈를 조정해가면서 최종 사이즈를 만들어냈다.) 


지퍼를 다는 문제도 가로로 일자로 달을까 말까 하다가, 그림이 세로로 서 있는 슬리브라서 기역자로 달게 되었다. 


손잡이를 부착시켜서 작은 가방처럼 만들면 좋겠으나, 나는 이것을 주로 핸드백 안에 넣어가지고 다니므로 군더더기처럼 뭐가 달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작은 고리를 붙여 주는 것으로 낙착. 저 고리는 슬리브를 볏겨 놓았을때 벽에 걸어두는 용도로 사용하니 좋다.  지금 내 책상앞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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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감은 컨트리 풍 하트가 그려진 사랑스러운 천이다. (뒤집어서 사진을 찍어볼걸 그랬다). 뒤집어서 봐도 사랑스럽다. 이제는 안팎을 공히 깔끔하게 잘 마무리 할 수 있다.)  지퍼는 원래 집에 있던 30센티 핑크색 지퍼. 다행히 테두리가 자주색이라서 색깔이 크게 튀지 않는다. 들여다보기 전에는 지퍼가 밖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빨강색이나 자주색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전체적으로, 해지천도 재활용이고, 홀리호비 그림 천도 재활용이고, 모두들 집에 있던 재료들이라서 이것을 위해 특히 돈을 들인 것은 없다. 시간을 들였을 뿐. (메릴랜드 대학에 다녀와서 저녁부터 밤까지 앉아서 만들었다). 


주머니에는 내가 늘 갖고 다니는 플래시 드라이브를 넣어두면 좋겠다. 항상 거기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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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중에 태블릿 사면 그때 세트로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줘야지. 프레젠테이션 준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보니 저 자주색 바인딩과 해지천의 색이 참 소박하게 어우러진다. 색감이 아미시 퀼트의 그 소박함과 강열함과 닮았다. (아미시 퀼트의 특징이 소박함과 열정이다. 두가지가 공존할수 있다니!)  맘에 들어서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내가 수놓은 꽃 때문이야. 그 꽃이 없었다면 심심했을걸!  아니, 모든것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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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10. 11. 01:4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502176


“꽃과 같이 곱게 나비 같이 춤추며 아름답게 크는 우리, 무럭무럭 자라서 이 동산의 꾸미면 웃음의 꽃 피어나리!”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우리 시골집 앞마당에 초저녁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할아버지가 매일 우리들을 위해서 어린이 라디오 방송을 틀어 주셨는데 모두들 그것을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뜻도 잘 모르면서 고모들이나 언니, 오빠가 부르던 그 노래들을 따라서 불렀다. 

 어릴 때 나는 할아버지의 라디오 안쪽의 어딘가에서 베짱이나 여치같은 아주 작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는줄 알았다. 고운 목소리로 누군가 얘기하는 현장을 잡기 위해서 라디오 뒷쪽의 구멍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나는 피비에스(PBS)를 좋아하고, 빅버드(Big Bird)도 좋아하지만 중국에서 빚까지 얻어다가 피비에스에 대한 정부 보조를 해 줄수는 없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의 이같은 발언은 피비에쓰 뿐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새서미 스트리트(The Sesame Street)’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 줬다. 피비에스가 미국 재정 적자의 원흉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 방송을 본 한 어린이가 롬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트 롬니씨, 내가 지금은 여덟살이라서 자주 보지는 않지만 나도 한 때는 새서미 스트리트의 팬이었습니다.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이가 생기면 내 아이에게 새서미 스트리트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새서미 스트리트를 없애지 마세요. 앨라배마에서 세실리아.” 이 소녀는 공책 종이에 연필로 쓴 편지의 말미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정확히 밝혔다. 

 1969년 방송을 시작한 피비에스의 어린이 프로그램 ‘새서미 스트리트’는 44년간 방송을 이어 오는 동안 미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믿을만한 어린이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동네 아이들 틈에서 할아버지의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그 시각에 미국에서 자라나던 내 또래 어린이들은 텔레비전 속의 친구들에게서 알파벳과 셈하기와 친구 사귀기등을 배웠으리라. 

 이번에 롬니의 발언으로 새삼 화제가 된 새서미 스트리트와 나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나와도 40년 가까운 인연인 셈이다. 우리 집에 처음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 왔을때 몇 개 안되는 채널 중에는 주한 미군들을 위한 방송 채널도 하나 있었다. 말을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이 ‘그림’만 보던 그 미군 방송에서 커다란 새와 인형들과 인종들이 뒤섞인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췄다. 나른하고 달콤한 피리소리 같던 타이틀 곡은 무허가 집, 쓰레기 냄새가 넘치던 골목에 살던 내게 알수 없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곤 했다. 

 1980년대, 대학에 들어가니 미국인 교수가 한 분 있었는데 그 분이 영어 실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미군방송을 자주 보라고 권했고, 특히 새서미스트리트가 좋다고 안내해 줬다. 1990년대에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때 전셋집을 전전하던 내가 일부러 몫돈을 들여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샀던 이유는 당시에 한 세트로 묶어서 판매하던 ‘새서미 스트리트’ 교육용 비디오를 내 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텔리비전 수신도 잘 안되던 안양의 산골짜기 집에서 매일 그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앉아서 내 두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나도 배우고 그랬다. 후에 내가 초등, 중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의 자산이 바로 그 새서미 스트리트 교육용 비디오였다. 나는 아직도 새서미 스트리트에서 소개된 아름다운 노래들을 가사 정확하게 부를 수 있다. 나는 영어 교육 방법을 새서미 스트리트에서 배웠다.

 새서미 스트리트는 단순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것은 문화가 척박한 초강대국 미국이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교육 문화 자산이다. 피비에스나 새서미 스트리트 지원을 중단한다는 것은 프랑스 정부가 루브르 박물관 보수 공사를 안하고,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없애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교육적으로는 학교를 없애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문화, 교육을 홀대한 나라의 미래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빅 버드가 없는 미국은 쓸쓸할 것이다. 


2012, 10,10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10. 11. 01:0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96462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중에 미모의 미국인 여학생이 한명 있었다. 황갈색의 윤기 흐르는 머리칼과 역시 갈색의 깊고 그윽한 눈빛, 그리 흰 피부 언제 봐도 매력적이었는데, 성격도 활달하고 상냥해서 우리는 모두 이 친구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친구는 가족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게 설명해줬다. “우리 증조 할머니는 세미놀 인디언이었고, 할아버지는 멕시칸이었어. 내 몸에는 미국 원주민의 피가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미국 백인의 외모를 하고 있던 내 친구가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예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한다면 어딘가 아시안하고 닮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이후로 나는 외모를 보고 인종을 판단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순혈의 인종을 찾기도 힘들고, 나 역시 순수 한민족이라고 자신할 근거가 없지 않은가.
 
최근 매사추세츠주의 상원 의원 선거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상원의원은 공화당의 스캇 브라운(Scott Brown). 이에 맞서서 선전을 펼치고 있는 이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렌 (Elizabeth Warren) 교수다. 문제의 발단은 후보 대담 프로그램에 나온 브라운 의원이 워렌 교수 자신이 ‘미국 원주민’의 후예라고 주장하면서 소수계에게 주어지는 특전을 누렸다고 비난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워렌 교수를 가리키며 ‘어디를 봐서 저 이가 인디안으로 보이는가?’하고 냉소했다. 

 그쯤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며칠 후에는 그의 선거 참모 여러명이 워렌의 정치집회에 몰려와서 아메리칸 인디언 전사들의 노래와 함성을 외치는 식으로 ‘미국 원주민 후보’인 워렌을 조소하는 행동을 저질렀으며, 브라운 의원은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어물쩍 넘기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미국 원주민들 전체에 대한 비아냥거림으로 비쳐진다. 말하자면 ‘비천한 미국 원주민 따위에게 상원의원 자리는 어림도 없다’는 식으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장치같다. 

 공개적으로 미국 원주민을 비웃는 듯한 이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이 아시안을 비롯한 다른 유색인종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들이 드러내놓고 미국 원주민을 조롱하는 이유는 아마도 원주민들에게 이렇다할 정치력이 없다거나, 인구가 너무나 미미해 만만하게 여겨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메리칸 인디안이 아닌데도 마치 내 정체성이 짓밟힌듯한 씁쓸한 기분이 든다.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누구든 크고 작은 편견의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내가 소속한 합창단에 새로운 단원이 들어왔다. 미국에 온 지 두 달도 안된 중국인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이 사람은 중국인이래. 어쩌면 좋아!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하고 누군가가 물었고 일제히 시선에 내게 몰렸다. 그들에게는 내가 중국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한국인이고 중국어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이 분하고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중국인이 내 앞으로 안내되었고, 내가 그냥 영어로 인사를 하니 그도 서툴지만 충분히 소통가능한 영어로 내게 자기 소개도 하고 합창단에 온 사연도 활달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주위의 미국인 단원들에게 말해줬다. 

“걱정할 것 없다구. 이분이 영어를 잘 하는 걸 뭐.” 선량한 단원들은 공연히 염려를 했다며 웃었다.

 이들은 왜 중국인이 영어를 못할 거라고 미리 단정했을까? 이들은 왜 한국인인 내가 중국인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상상했을까? 내가 인종적으로 그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백인처럼 생겼어도 미국 원주민의 후예일 수 있고, 미국에 엊그제 도착한 이민자라도 영어가 유창할 수도 있고, 그들 눈에 똑같아 보여도 중국인과 한국인은 다르다.

 인간은 감각적인 존재이므로 편견이나 피상적인 감각 너머에 있는 사실에 다가가기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시선이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2012,10,3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9. 27. 00:5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92108


떡이 너무 작은가 아니면 분배하는 방법이 문제인가? 고등학교에서 사회시간에 인구와 자원의 문제를 논의할 때 제시되는 토론거리로 두 가지 가설이 주어진다. 아프리카 대륙을 위시한 지구의 특정 지역에서 사람들이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첫째, 지구에서 인간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식량도 한계가 있는데 오늘날 인구가 너무 많아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둘째, 식량은 전세계의 인구가 굶어죽지 않을 만큼 충분히 생산된다. 문제는 식량 자원이 골고루 분배 되지 않아서, 지구의 한 구석에서는 음식물을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또 다른 곳에서는 굶주리거나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식량문제라면 우리는 인구 조절에 집중해야 하고, 식량자원을 분배하는 구조가 잘 못 되었다고 본다면 자원의 고른 분배쪽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집 냉장고 구석에서는 오래된 빵이나 야채가 시들어가고 있다. 음식 찌꺼기가 무심하게 쓰레기 통에 버려지며, 우리 개 왕눈이는 고기를 달라고 보채는데 지구 어느 구석의 내 이웃은 주린 배를 물로 채우며 배부르게 먹는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분배에 있는것 같다.

 10월 1일자 주간지 타임(Time)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별 기고를 특집 기사로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클린턴은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다섯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클린턴과 클린턴재단(Clinton Global Initiative)이 세계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내다보는 다섯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화기가 경제, 의료면에서 낙후된 지역에서 삶을 개선하는 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반드시 스마트폰일 필요도 없다. 간단하게 텍스트만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기를 활용하여 의료 낙후지역 주민들이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세계인의 삶을 위협하는 AIDS와 같은 질환에 대항하는 미국 정부, 제약회사와 같은 사기업 그리고 비영리단체들의 단결된 의지가 치료비를 낮추고 희생자를 줄이는 데 앞장서 왔으며 이러한 단결된 노력이 여러가지 영역에서 확산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소아 비만에 맞서서 학교에서만이라도 당도가 높은 탄산음료를 제한해야 한다는 운동도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다.

 셋째, 지구 환경을 살리는 무공해 에너지의 생산 및 활용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태양 일조량이 많지 않은 독일에서 하루에 생산해내는 태양력 전기는 22기가 와트인데 이것은 20개의 핵발전소가 생산해 내는 양과 맞먹는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활용은 공상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성공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넷째, 전 지구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있다. 특히 여성 인권이 낙후된 것으로 보였던 중동지역의 경우, 2002년부터 바레인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여성 고학력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다섯째, 비록 여기저기서 충돌와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문화권의 청년, 학생들이 힘을 합쳐 비영리단체 활동을 조직해 내고 있다. 중국과 대만 출신의 학생이 힘을 합치고, 파키스탄과 인디아 출신의 대학생들이 팀이 되어 사회 발전의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퇴임 이후, 클린턴 재단을 이끌면서 전 지구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클린턴의 세계관은 희망으로 가득차 보인다. 오늘도 지구 여러곳에서 반목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골고루 서로 사이좋게 노나먹고 도우면서 살라는 참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원리. 지구상에서 식량이 바닥이 난 적은 여태 없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서로 돕는가 하는 데 있을 것이다. 



2012/9/26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9. 27. 00:5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87106



요즘 유튜브가 뜨겁다. 불이 난 듯 하다. 한국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그리고 미국인이 만들어 배포했다는 영화 ‘무슬림의 무지(Innocence of Muslims)’가 화제의 주인공들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조회수 2억을 돌파 했다는 인터넷판 뉴스를 방금 확인했다. 그 숫자가 그만큼의 인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와 뮤직 비디오에 열광을 하는가 보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에서 한국 가수 ‘싸이’를 초대하여 방송을 한다는 것도 이제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뉴스가 되어 버린 것도 같다. 

 내가 가수 싸이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고 하자, 대학생 아들이 가르쳐준다. “옛날에 ‘난 완전히 새됐어’라는 노래 부른 사람.” ‘새됐다’는 표현이 1990년대 말에 한국에서 IMF 사태로 직장인들이 실직자가 되고 고통에 시달릴때 바로 그들의 심경을 대변한 말이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그 노래를 부르던 청년이 이제 ‘아저씨’가 되어 돌아와 ‘오빤 강남 스타일!’하고 외치는 모양이다. 경제 불황으로 고통을 겪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노래와 율동으로 즐거움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유튜브의 또 다른 폭발적인 비디오는 ‘무슬림의 무지(Innocence of Muslims)’라는 제목의 영화이다. 정체가 아직도 불분명한 미국의 반이슬람주의자가 제작했다는 이 엉성한 영화에서 제작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저급한’ 인물로 그려 놓았다. 이 영화가 이슬람권 사람들의 분노를 산 대목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매트를 ‘인간 쓰레기’로 묘사한 전체적인 내용뿐 아니라, 이것이 안고 있는 이슬람 문화의 몰이해에 있는 듯 하다.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미술관이나 예배당에 가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그림이나 조각물, 십자가에 달린 예수등 무수한 기독교적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이에 반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마호매트의 초상화나 조각물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은 신성시하는 대상을 그림이나 다른 이미지로 구체화 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상징으로 마음에 담아둘 뿐이다. 문제가 된 필름은 이런 금기를 깬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마호매트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일단 그의 생을 연구하고, 그가 속한 문화권의 정서를 연구했어야 했다.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지난 여름 펜실베니아의 랭캐스터, 아미시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갔을 때 그곳에 대한 안내를 맡았던 이가 우리에게 당부를 한 것이 있다. “아미시들은 거울도 안보고, 사진도 안찍고, 초상화도 남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얼굴에 하느님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고 해서 감히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사진기를 그들에게 들이대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이 사는 방법을 존중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아주 특별해 보이는 그 사람들의 뒷모습을 먼거리에서 조심스럽게 찍거나 그들의 집 풍경을 사진기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설마 사진기를 들이댄다고 그들이 뭐라고 야단을 치지는 않겠지만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람들의 정서나 문화를 싸그리 무시하고 반이슬람 정서를 아주 원색적으로 드러낸 문제의 필름은 그런 면에서 악의적이다.

 세계 주요 언어 중에 인구가 가장 많은 언어는 중국 만다린어. 2위는 스페인어, 3위가 영어, 4위는 인도 힌디어, 그리고 5위가 아랍어다. 영어권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영어가 가장 중요한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페인어 인구가 더 많고, 아랍어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인구가 크다. 문제의 영화는 그 아랍어권과 이슬람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자극했다. 그들의 장난에 성실하게 외교에 임하는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세계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유튜브를 열어 싸이의 유쾌한 노래와 율동을 들여다보며 생각해 본다. 동일한 매체를 가지고 누군가는 기쁨을 선사하는데, 누군가는 불안을 조장하고, 분노를 촉발하고, 평화를 위협한다. 유쾌한 강남 스타일 ‘오빠’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2012/9/12

Posted by Lee Eunmee
Humor2012. 9. 25.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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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가 룸펜이라 할지라도

그의 다 떨어진 팔걸이 의자 어깨에 걸린 태극기는

그가 김구선생과 안중근 의사, 그리고 윤봉길 의사와 광복군 장준하 선생을

지극히 흠모하는 백수라는 어떤 단서를 제공하는 듯 도 하다.


망해가는 만화가

혹은 절대 안팔리는 무협작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거나

혹은 장차 백수계의 여자 이외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른다고

박 모군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도대체 앉은뱅이 다림질판 앞에 쭈구리고 앉아

다 찌그러진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너, 너는 뭐냐

노트북을 다리겠다는거냐?

아니면 노트북이 스마트 노트북이라서 다림질 기능까지 장착된거냐?

세상을 다려보겠다는거냐?


아, 등을 돌려 하늘을 보라

룸펜인 너의 등 뒤에도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지 아니한가.



그나저나, 사진 '박 찬삐' <---신기한 동물 바라보듯 한참 쳐다보며 중얼중얼 하더니 불후의 명작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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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Humor2012. 9. 10. 23:47
Commas, they save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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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eat, grandpa = 할아버지, 우리 뭐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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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Humor2012. 9. 8. 02:06



그래, 난 겨울여자 세대다.  이건 뭔 소리냐하면, 그냥 심심해서 붙여본거다. 의미 없다.


조해일의 소설 겨울여자는 내가 어릴때 신문에 연재되던 연재 소설이었다.  그리고, 난 뭐든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던 아주 게으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중에 장미희 언니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영화 겨울여자로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되었을때, 나는 긴 생머리 장미희 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는 환상을 품기도 했었다.  장미희 언니, 정말 예뻤다.  원래 장미희가 데뷰한것이 무슨 가족드라마였는데, 그 때 '강부자'가 "우리 복성, 덕성..."하면서 장미희를 무척 예뻐했다 (드라마에서).  그래서 한때 신인 장미희는 '복성, 덕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할 정도였다. 그때 가곡 '비목'이라는 노래가 장미희의 비련적 장면마다 등장을 해서, 라디오만 틀면 여기저기서 가곡 '비목'이 흘러 나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나도 역시,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올때 열심히 노래가사를 받아 적어서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다. 비련의 예쁜 여자를 생각하면서 말이지. 내가 어린 시절에는 노래를 배우고 싶으면 라디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무조건 받아 적는거다.  아아 듣기, 받아쓰기 실력은 그냥 곁두리로 향상 되었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중에 장미희가 주연한 '겨울여자' 영화가 대박이 나긴 했지만, 그 이전에 일일 연재소설 '겨울여자'가 존재했다는 말씀이고, 매일 매일 '겨울여자'가 탄생하여 자라나는 과정을 어린 나는 지켜봤다는 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참 중요한 일도 쌨다 카이...)  


그기 얼마나 신비로왔던가, 어느 여학생에게 매일 모르는 남자에게서 편지가 배달되고, 결국 만나고, 같이 놀러갔다가, 사고가 날뻔 했는데 그냥 뿌리치고 ...그리고 그 남자가 죽고, 나중에 어느 대학생 남자하고 ..군대에 면회를 가서였나, 어떻게 된 일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석기'던가, 그 남자하고 결국 '러브러브' 근데 그 남자도 죽지 아마... 나중에 대학교수..


난 사실 줄거리 이해도 잘 못했다. 난 동화책을 읽어야 할 수준의 어린아이였고, 집에 동화책이 부족했던 관계로 그냥 닥치는대로 활자라는 활자는 무조건 먹어치우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책만 읽어댔냐하면,  집에 형제 자매 많은 집 애들이 대개 그러한데, 일단 학교에서 책을 받아오면, 교과서를 아주 재밌게 읽는다. 재밌으니까 읽고 또 읽고, 마침내 지겨워질때까지 교과서를 보는거다. 그리고나서, 언니 교과서를 슬금슬금 갖다 읽고, 언니교과서 다 읽은 후에는 오빠 교과서...  만약에 그때 나에게 언니 오빠가 열명쯤 있어서, 그 언니 오빠들이 대학원, 대학생, 이렇게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면, 나의 교과서 독서는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을것이다. 하하. 하지만 언니는 고작 나하고 1년 차이였고, 오빠는 나보다 3학년 높았다. 그러니까 나의 독서 수준이란 것이 고작해야 나보다 3년쯤 앞선 고만고만한 애들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독서력으로 '겨울여자'라는 성인 소설을 내가 제대로 이해 했기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뭘 읽고, 뭘 이해한건가.  그냥 그런거, 이름 모를 사람에게서 편지가 온다는 그 신비감.  남자가 옷을 벗기려하고 했는데 여자가 도망을 쳤다는거..그 정도는 그냥 대충 이해 할 수 있었고, 그 이상 '성인급' 내용을 읽어도 잘 몰랐다가 정석이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잘 몰랐다. 


뭐냐하면, 초등학교 6학년때, 우리 학교 앞 '주차장' 집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커다란 공터 한구석에 살림집이 있고, 거기가 내 친구네 집이었는데, 거기가 주차장이라고 했다. 요즘에야 유치원생도 '주차장'이 뭔지 알 정도로 자동차 생활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때는 '주차장'이란 말 자체가 신비롭고도 난해한 것이었고, 나는 도대체 내 친구네 집 마당이 왜 그렇게 넓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 주차장 구석에는 작은 버스가 있었는데, 그 버스를 개조해서 어떤 남녀가 살림을 차려서 살고 있었다. 버스가 살림집이었던 셈이다. 


내 친구는 학교가 끝나면, 자기 집에 가서 놀자고 가끔 나를 꼬셨고, 그러면 나는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이니까 내 친구네 가서 숙제도 같이 하고, 내 친구네 오빠가 마당에서 웃통벗고 등목할때, 내 친구가 그의 등에 바가지로 찬물을 떠서 뿌려댈때, 그 옆에 물끄러미 서 있곤 했다.  나는 그때도 남자들한테 좀 뚱해가지고 일체 말을 섞지는 않았다. 수줍었다기보다는 뚱했다.  그래서 멀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내 친구 오빠가 뭐라고 무연하게 - 집에 온 손님이니까 나한테 뭐라고 그러면, 나는 그를 쳐다보곤 그냥 말았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씹었다는 차원일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엔 그런 것이 그다지 흉이 아니었던 것도 같다. 남녀가 유별했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그런데, 하루는 내 친구가 그 버스 살림집을 가리키면서, "저 버스에 사는 언니가 애를 뱄다"고 설명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버스'하고 '애기 배는 일'하고는 도무지 연결이 안되었다. 애기는 방에서 배는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좀 이해가 안되어서, "어떻게 버스에서 애기를 배니?" 물으니까, 내 친구가 코를 찡그리고 귀엽게 웃으면서 (사실 내 친구가 참 예뻐서 남자 선생님들이 무척 예뻐하셨다), "넌 그것도 모르니, 남자하고 여자하고 뒹굴면 애는 어디서든 생기는거지." 


근데 난 또 그걸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이 뒹굴면 애기가 생긴다고?  나의 걱정이 뭐였냐하면, 내 동생하고 나하고 집에서 레슬링한다고 맨날 서로 씨름하듯 엉겨 놀고, 요 깔고 막 레슬링한다고 밀고 치고 받고, "야 살살 해 새꺄!" 막 아프면 살살하라고 소리지르고 그러고 노는데 그러다가 나한테도 애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내가 왜 애 생기는 것을 겁을 냈냐하면, 테레비 보니까 여자들이 애 날때 아주 죽겠다고 생난리를 치는게 보이니까, 애 낳는 것은 죽는거보다 더 무섭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것이지.


내가 순진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나도 본거, 읽은거는 많은데, 그것과 현실을 잘 연결을 못하고 있어서, 초등학교 졸업반이 되도록 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남자 여자는 어떻게 힘을 합쳐서 애를 만드는지 그 원리를 잘 몰랐다는 것이지. 대략 방에서 남자 여자가 같이 이불 덥고 자면 애가 자동으로 만들어질거라는 정도의 애매한 상상을 할 뿐이었는데, 방이 아니라 버스에서도 애가 만들어진다는 내 친구의 설명에 나로서는 잔뜩 쫄았던 것이다. 


수준이 이 정도이다보니, 소설 겨울여자를 내가 매일 기다려서 봤다고 할 지라도 뭘,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가늠이 안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여태 딴소리 실컷하고 뭘 각설이냐...)


그 영화 겨울여자를 미성년자인 내가 봤을리는 없고, (난 학교에서 보지 말라 하는 것은 보지 않았고, 하지 말하 하는 것은 안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말 잘듣는 잘 안보이는 -- 다시 말해서 별 볼일 없는 애였다.) 그냥 겨울여자는 그렇게 내 삶을 지나쳐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앉아서 나는 혼자 '난 겨울여자 세대야'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 줄거리는 잘 모르겠고,  당시에 잘 이해못했던 어떤 메시지들이 기억속에서 떠오르며, 지금은 그것의 의미를 대충 이해하는 것 같다.  어릴때 누군가 준 메시지를 뜻도 모르고 간직하고 있다가 어른이 된 후에 문득, 그 메시지들이 떠오르면서 그 뜻을 홀연 눈치채는, 그런 경험이 있지 아니한가.


'이화'는 전통적인 가족주의에 의문을 품는다. 왜 꼭 자기 가족만 소중한가. 왜 가족과 가족 아닌 것에 금을 긋는가.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해주면 안되는가. 뭐 그런 의문을 품는 것 같았다. 소설가 조해일씨의   ---- '가족'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나 제안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화는 어떤 한 남자와 연결되기보다는 그냥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그런 삶을 선택한 것 같았다. 


***


난 사랑을 주냐 마냐, 가족주의냐 아니냐 그런것에 큰 관심없다. 현재 결혼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아주 이기적으로 살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렇지만 '가족주의적 언어행위'에는 아주 신경질적이 되어있다.


엊그제 나주에서 초등학생이 한밤에 납치되어 강간당했을때, 그 때 웹에 뜬 한국 기사들을 보고 난 너무 화가 나서 노트북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너무 화가 나서. 한국 기자들이 문패처럼 만들어 매달은 헤드라인들이 이런 식이었다: "강강범 잡고 보니 이웃집 아저씨."  "이웃집 삼촌."


소녀의 엄마와 강간범 고종석이가 피씨방에서 만나서 나눈 대화가 "매형하고 언제 술한자..."  고종석이가 애 보쌈해서 납치해가면서 했던 말 "삼촌이니까 괜챦아..." 


아저씨는 무슨 빌어먹을 아저씨인가. 삼촌? 아무나 삼촌이야? 피한방울 섞이지도 인척간도 아닌 타인을 왜 아저씨라 칭하고, 저희 멋대로 삼촌, 누님, 매형인가. 무슨 말이 그렇게 돌아가냐구. 왜 그러냐구!?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이웃이면 사촌이고, 이웃 남자면 아저씨나 삼촌이나 오빠나 그런건가? 뭐가 그따위냐구. 


만나자마자 나이 순서 따져서 형님 아우 해야 직성이 풀리고, 자동으로 '언니'라고 안부르면 버르장머리 없는 년이 되고, 식당에 가도 언니, 미장원에 가도 언니, 이모, 만만하고 홍어 @같은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  온통 가족주의 어휘로 무장을 한 나라에서 심지어 이웃집 강간범에게도 '아저씨' 타이틀을 씌워준다.  그 수준의 사람들이 신문 기사를 쓰고, 타이틀을 달고, 그걸 웹에 올리고 지랄들이다.


한국어 아름답다. 한글, 위대하다.  그런데 한국어가 이상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무한테나 가족관계로 엮어대는 그따위 언어행위는 이제 버릴때 안됐나?  동네 남자는 동네 남자다. 동네 여자는 동네 여자다. 이웃집에 나보다 열살 많은 여자가 살면 이웃집에 '형님'이나 '누님'이나 '언니'가 사는게 아니라 그냥 이웃집에 한 사람/여자가 사는거고 그 사람은 이웃집여자인거다.  친구가 되면 친구고 아니면 마는거다. 


가족이 아니어도 서로 친철할수 있고, 가족이 아니어도 사랑을 베풀수 있다. 그래야 한다. 가족이 아니어도 가족보다 더 서로 친밀해질수 있다. 가족 일가 친척들처럼 서로 누님 매형 누나 언니 아줌마 아저씨 불러가면서 성폭행하고 강간하고 죽이고 버리고 그런 사회보다 그냥 쿨하게 타인을 타인으로 대하고, 이웃을 이웃으로 대하고, 지나치면서 서로 도움이 필요할때 기꺼이 도와주는 '사마리아인'이 있는 세상, 그 세상이 옳은 세상이라고 본다.  내가 회상해보니 어릴때 내가 뜻도 모르고 읽었던 그  성인 소설 '겨울여자'의 주인공 여자 '이화'가 꿈꾸던 세상이 그런 세상이었던 것 같다. 


한국어에서 부족주의적, 씨족공동체적 언어행위를 지워버리자. 왜냐하면 지금은 부족사회도 씨족사회도 아니니까.  성폭행범 새끼를 '잡고 보니 이웃집 아저씨'라는 식으로 기사쓰고 헤드라인 쓴 새끼들 다 무릎끓고 반성해. '동네 남자'면 되는거야. 병신새끼들, 그걸 그렇게 몰라? 응?




Posted by Lee Eunmee
Humor2012. 9. 7. 05:07

 

 

우리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워싱턴 지역 중앙일보.  나 역시 이 일간지에 글을 쓰긴 하지만, 중앙일보가 애플과 삼성간의 소송에 대해서 연일 써대는 기사를 보면 봐주기가 역겨워진다. 심지어, 내가 돈을 털어서 애플 제품으로 아주 중무장을 할까부다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오늘 아침 특집은 뭐였더라, 뭐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관련 글이었는데, '동네 배심원이 디자인을 뭘 알겠나' 이런 투의 미국에서 최근 판결이 난 애플과 삼성간의 소송에 대한 언급이었다.  타이틀만 쓱 보고, 정말 봐주기 역겨워서 기사는 자세히 읽지도 않았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서...

 

'일반인 배심원' 알기를 개떡으로 아는 인간은 법에 대해서 말 하지 말아야 한다. 평범한 배심원 열명이 모이면 전문가 뺩치는 공동의 의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교수라면, 자신이 가르치는 평범한 학생들 속에 비범한 천재들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들을 존경하는 자세로 강의에 임해야 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비범한 판단력에 경의를 표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인 일반인 배심원이 미국회사 '애플'에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판단했다고 강변하고 싶은가? 그것은 개인의 생각인가 아니면 어떤 이익 집단의 생각을 전문가의 탈을 쓰고 전하는 것인가?  (여기서 또 재미있는 반전이 뭐냐하면....삼성은 미국에서 장사 할때 어찌나 광고를 잘 하는지 미국사람들이 삼성 제품을 미국회사 제품으로 안다는거...캬하하.  그럼 '우매한' 배심원들은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두개의 미국회사가 소송하고 있다고 볼걸.... 편파판정이라고?  쳇, 그 사람들은 삼성을 미국회사로 안다니깐요.  이상한데서 국민 감정 자극하지 말라 이거지. 애초부터 미국제품 흉내낸건 당신이었쟎아요~~~  ) 

 

연일 이어지는 중앙일보의 애플 후드려 패기, 이들이 애플을 후두려 패면 팰수록,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패자의 졸렬한, 반성할줄 모르는 행패'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이들이 싫어진다.  어제는 누가 썼더라,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거다,  소송 좋아하는 회사치고 망하지 않은 회사 없다는 논조의 글이었다. 악담에도 급이 있는데, 저열해서 슬펐다. 어떻게 이런 저열한 글을 쓸수가 있나 하는 '인생허망'의 감성이 휘몰아진것이지...

 

 

중앙일보가 삼성을 끼고 돌면서 부르스를 추건, 지루박을 추건, 차차차, 탱고를 추건 말건 포르노그라피를 연출하건 말건 그건 그들의 자유라고 치고, 편파적으로 애플을 후두려패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용돈 좀 모이면 아이패드도 장만하고, 찬홍이 전화기도 아이폰으로 바꿔주고, 데스크탑도 사과 그려진 것으로 하나 들여놓을까 싶어진다.  중립적인 사람마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이들의 행패 부리기. 삼성에는 독이다. 독. 중앙일보는 요즘 삼성 안티 노릇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해내고 있다. 건투를 빈다. 내일은 또 어떤 행패로 내 지갑을 열어 애플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려는가?

 

태초에, 나는 애플에 별 관심 없던 사람이다. 내가 쓰다가 망가뜨린 노트북만도 삼성것만 세개다. 그것으로 학위 논문도 썼고 다 했다. (내가 또 애국자 아니던가, 한국 사람이 만든 회사 제품이면 그냥 꺼뻑 죽지), 내 아들 노트북도 삼성 제품으로 사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중앙일보가 하도 애플을 두둘겨패길래 내가, 그것 참 이 세상에 애플이 있었군, 내가 왜 여태까정 그걸 몰랐을까, 반성하고, 각성하고 애플 샀다. 청개구리들은 여름 가는 것이 슬프다.개굴. 사과는 달다.

 

 

 

 

배심원들이 우습고 만만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분께 권한다. Twelve Angry Men (1957).

http://www.imdb.com/title/tt005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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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9. 5. 19:5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77022



침팬지 ‘갑’은 평소에 별로 개성이 없고 기운도 없고 그래서 가족 내부에서도 무시를 당하며 살다가 결국 마을에서 쫒겨났다. 그는 혼자 떠돌다가 다른 침팬지 집단의 눈치꾸러기로 합류했다. 집단의 가장 낮은 곳에서 구박을 받으며 살던 ‘갑’은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중간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권력의 상부로 이동한다. 그 사이에 몇몇은 늙어 죽었고, 혹은 인간에게 잡혀 갔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상부에 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날 대장 침팬지가 죽었을 때 ‘갑’은 자신이 이제 대장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침팬지 ‘을’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 힘으로 ‘갑’을 제압해 버리고 그 날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가 아주 힘이 세고 사나웠기 때문에 아무도 저항할 수 없었다. 침팬지 ‘병’은 별로 힘이 세지 않았으므로 대장 ‘을’ 앞에서 얌전히 지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을 모았고, 때를 기다렸다. 어느날 이들은 힘을 모아 ‘을’을 공격했고 이 싸움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대장 ‘을’은 피투성이가 되어 마을에서 쫒겨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병’의 리더십이 시작되었다. ‘병’을 도운 침팬지들이 권력을 함께 누렸다.

 이 이야기는 우화가 아니다. 동물 학자들이 수년간 침팬지 집단의 삶을 관찰하면서 발견하고 기록한 것으로 시카고 대학의 진화심리학자 마에스트리피에리(D. Maestripieri)가 최근 발간한 책 ‘영장류의 게임 방법(Games Primates Play)’에 소개된 사례다. 이 침팬지 마을 이야기를 인간 세상으로 옮겨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갑순이는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상사와 동료들이 던지는 온갖 굳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언젠가 자신에게도 동등한 기회가 올거라는 희망으로 양심적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그가 간신히 남들보다 한참 늦은 진급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에서 갑자기 나타난 ‘을순이’는 별다른 노력이나 공적도 없이 덜컥 간부자리를 차지한다. 을순이의 집안 배경이 굉장하다거나 학력과 이력이 뛰어나다거나, 혹은 그의 패거리가 무시무시하다는 소문도 있다. 

 ‘병순이’는 갑순이와 마찬가지로 학력도 집안 배경도 내세울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는 사회성이 뛰어나서 주변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설득력이 있다. 병순이는 때를 기다렸다가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을순이’를 제거하고 조직을 장악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다지 낯선 얘기는 아니다. 사회성이 있는 동물 집단이라면 그것이 침팬지이거나 인간이거나 집단 안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이고, 일상 생활에서 나 자신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이어 이번주에는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다. 양당의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저녁 쟁쟁한 정치인들의 연설이 이어지면서 이들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을 들여다보는 일도 흥미진진하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공화, 민주 양당의 전당대회와 한국에서 진행되는 대통령 선거전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정치는 혼자서 때를 기다린다거나 완력이나 부정한 수단으로 혼자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서로 타협하고 의논하며 리더를 정하고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리더도 그 무엇도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위에 소개한 침팬지 집단과 인간 집단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 침팬지들은 누군가 힘있는 놈이 나타나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힘 자랑을 할 때 대개 그를 대장으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투표’를 통해서 ‘나의 대장’을 직접 뽑을 수 있다. 비록 내가 힘이 없고 리더십도 없고 별볼일이 없는 존재라고 해도 나 역시 내 한 표를 나보다 힘 세고, 잘난 친구와 동등하게 행사할 수 있다. 여러 명의 후보가 있을 때 누가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누가 ‘약자’를 보호할 사람인지 가늠해 보고, 위대한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 다행이다, 내가 침팬지가 아니고 인간이라서. 다행이다, 나도 투표 할 수 있어서.


2012,9,5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2. 9. 5. 19:4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472349


그 집 입구에는 창고같이 보이는 작은 오두막이 있다. 그 오두막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 그 집의 안채가 보인다. 하지만 식구들은 모두 들에 일을 나갔는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마치 옛날 우리 시골집 사랑채 바깥 마당 구석에 세워진 바깥 변소처럼, 그 작은 창고는 외톨이로 서있다. 이때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전화벨은 그 창고에서 울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달려와 전화를 받는 이는 없고, 한참 후 전화벨 소리는 시무룩하게 끊긴다.


 지난 여름 펜실베이니아의 랭캐스터 카운티에 갔을 때 어느 아미시 집 마당에서 겪은 일이다. 현대 기술문명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아미시. 그들도 ‘전화’의 필요성만은 인정을 했나 보다. 전화를 놓은 집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화기를 집안으로 들여놓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집 전화기는 바깥채 헛간에서 혼자 외롭게 울어대곤 한다.

 옛날에는 우리도 그렇게 살았다. 마을에 한 대 밖에 전화가 없던 시절, 시골 우리 집은 온 동네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전화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두 서로 가족처럼 마주보고 웃고 울며 살던 마을 사람들. 하지만, 세상은 그로부터 한참 멀어졌다.

 최근 주간지 타임(Time)지는 이동 통신 기술이 우리 삶을 바꾸는 열 가지 양상을 특집으로 실었다. 스마트폰이나 셀폰 등 손으로 들고 다니는 이동통신을 모두 아우르는 이 기사는 무엇을 주목했을까? 그중 다섯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스마트폰의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이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홍보물 전달이나 후원금 모금 방법이 전보다 훨씬 쉽고 유연해졌다고 한다. 

 둘째, 단문을 주고 받는 텍스팅 (texting)이, 방해 받지 않는 새로운 소통 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장문의 이 메일이나 문서들은 귀찮아서 열어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텍스트 한 두 줄은 즉각적으로 확인이 되는 편이다. 

 셋째, 스마트폰만 있다면 지갑 속의 현금이나 크레딧 카드 없이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넷째,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당신의 전화가는 모두 알고 있다. 최근의 전화 사용내역이나 검색, 텍스트, 이 메일 열람 내역을 조회해보면 그 안에 모두 답이 있다. 그래서 최근 범죄자 추적 시간이 많이 짧아졌다는 통계도 있다. 

 다섯째, 당신과 가장 가까운 것은 지갑도, 가방도, 애인도, 애완견도 아니다. 스마트 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전화기를 놓아둔다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었다. 기지국이 없어서 무선전화가 불가능한 먼 오지의 마을 사람들도 요즘 기지국을 세우는 문제로 토론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를 따라 이제 카메라는 지구 구석구석 어디든 간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무선 스마트기기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이나 값비싼 도구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학교에서도 무조건 셀폰 사용을 금지할 수만도 없게 되었다.

미국의 여러 지역 학교에서 셀폰이나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고, 의과대학에서는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기기가 의료행위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에 따라 의사 가운 주머니에 태블릿을 넣을 수 있도록 주머니가 조정되었을 정도이다. 아프리카 우간다와 같이 의료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셀폰을 통한 문자 메시지만으로도 의료처방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내 일상을 돌아보니,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나는 이미 이동통신과 연결된 삶에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다. 바깥채에 전화기를 놓고 무심히 살고 싶다는 바램과는 상관없이 나는 이동 통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어쩌면 이동통신은 내가 숨쉬는 공기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내 전화기는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데, 나는 내 전화기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많이 있다. 이제 내 전화기와 적극적으로 친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2,8,29

Posted by Lee Eunmee
Humor2012. 8. 31. 04:42

 

 

 

 

 

 

시공을 초월한 사차원 닮은꼴 사진.

 

 

위, 51세 양모씨, 아래 사십대 신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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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