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6. 30. 05:56



[살며 생각하며] 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

이은미  
기사입력: 06.28.11 18:1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NEWS&source=&category=opinion&art_id=1218601

일전에 한국의 병무청에서 최근 4년간의 병역 회피자들의 신분을 분석한 자료가 나왔다. 체육인, 유학생, 연예인, 의사가 회피자의 49.9%를 차지 한다고 한다. 신체적으로나 경제 사회적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경우가 다른 회피의 경우보다 수치가 높아서 문제가 된 듯 하다. 물론 이런 통계자료로 체육인이나 유학생, 의사들을 모두 군기피자로 색안경을 쓰고 봐서도 곤란하다.
 
내 큰 아들 얘기를 이 칼럼에서 몇 차례 적은 적이 있다. 주립 대학에 다니다가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간 녀석이다. 결국 이 녀석이 훈련소에 입소 했고, 현재 유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아들을 훈련소에 데려다 준 날, 남편은 한숨이 가득한 국제전화를 걸어와서 수심을 털어 놓았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그 청년들이 입고 갔던 옷가지를 부대에서 집으로 부쳐준다고 하는데, 그 소포가 집에 도착한 날에도 남편은 울음 섞인 채 전화통을 붙잡고 늘어졌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알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아들의 옷가지를 보면서 중년의 가장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전화통 너머로 울먹이던 남편이 며칠 후에는 밝은 목소리로 승전보를 전하듯 알린다. “이봐요, 지금 웹 카페에 들어가봐요! 거기 우리 아들 사진이 올라 왔어!”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훈련병들의 단체사진이며 소그룹 사진, 일상생활을 하고 훈련 받는 스냅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여기 있는 이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모두 내 자식처럼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오호라! 여기 정말 내가 낳은 내 자식이 있구나. 늠름하게 얼룩 무늬 군복을 입고 햇살 아래 눈이 부신 듯 약간 찡그린 채로 씩 웃고 서 있구나!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껴안을 듯이 다가간다. 가능하다면 모니터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 사진 속의 아들에게 가고 싶구나.
 
아들이 태평양 건너 강원도의 어느 훈련소로 들어간 이래로, 나는 이따금 이유도 없이 긴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훈련병, 현역병 관련 사고 소식은 나를 혼비 백산하게 만든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전방의 소식에도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나는 가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쩌다 훈련소에서 공개하는 훈련병들의 사진이 새로 웹 카페에 올라왔을 때, 그 속에서 다행히 내 아들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 나는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홍아!”하고 외치고 만다. 빈집에 앉아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정신이상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돌아본다.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을 때, 나는 초등생의 엄마가 되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아들이 입학 했을 때 아들을 따라 나도 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군인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의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아들이 만들어 준 자리 중에 대한민국 육군의 엄마 자리가 가장 자랑스럽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이 뿌듯함.
 
내일은 아들이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훈련병 수료식을 하는 날. 수료식 후에는 가족 면회도 있다고 하는데, 미국에 있는 나는 훈련병 아들의 수료식도 볼 수가 없다. 남들이 엄마 품에 안길 때, 내가 가서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다.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 육군 장병의 엄마답게 하늘을 보고 웃을 것이다.
 
장하디 장한 대한의 아들. 나는 너를 잘 교육시켜 대한민국으로 보냈다. 너는 대한민국을 지킬 것이고, 대한민국은 너를 품에 안아 지켜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너의 엄마인 것이 참 자랑스럽구나.


***

웹카페에서 지팔이네 직속 조교로부터 채팅하듯 실시간 댓글을 받았다.  지팔이가 훈련소에서 훈련 받으면서 틈틈이 조교들에게 부과되는 잔무를 많이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후임 조교로 콕 찍어놓고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게 되어서 아쉽다고. 다른 사병을 통해서도 (면회 나간 가족에게, 혹은 전화로 부대 얘기하면서 전하는 얘기) 훈련병 지홍이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활달하게, 봉사정신을 발휘 하는듯한 인상이었다.  몇몇 부모님들이 지홍이 소식을 쪽지로 보내주셨다.

지홍아, 요놈아, 엄마는 만리 밖에서도 네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열심히 나라를 지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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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1. 6. 30. 04:04


지난 2011년 2월 19일에 버지니아 미술관 (Virginia Museum of Fine Arts)에 갔을때 발견한, 백남준씨의 '티비를 보는 부처' 작품 앞에 붙여 놓은 작품 설명문.

설명문 오른쪽 칼럼, 세번째 줄 by Paik in Korean and English....라는 글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Korean 이라는 부분이었다. 부처의 머리에 백남준씨가 한자로 백남준, 영문으로 Paik 라고 서명을 했는데 안내문에는 이것을 '한국문'과 '영문'이라고 표시를 한 것이다.

이것을 발견한 나는 미술관 홈페이지를 뒤져서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의 이메일에 잘못된 내용을 알렸다. 이 안내판의 사진과 특히 잘 못된 부분에 표시까지 해서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무 대꾸가 없길래, 이번에는 "당신이 해당 책임자가 아니면, 이 이메일을 해당 책임자에게 포워드를 해주기를 바란다.  내게는 이것이 중대한 문제이고, 잘못된 정보를 고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재차 이메일을 날렸다.  (이때 답이 없으면, 나는 내가 보낸 이전의 모든 이메일을 동봉해서 또다시 연락을 취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해당 디렉터라는 사람에게서 답신이 왔다. 조만간 조치를 취하겠노라고.

이쯤에서 나는 감사하다는 답신을 보내는 것으로 이 일을 손에서 내려놨다. 하지만, 정말 이들이 고쳤는지 궁금하기는 하였다.

어제 2011년 6월 28일, 미술관을 구경하다가 백남준씨 작품 앞에 다시 섰다. 안내판을 살폈다. Korean 이 Chinese 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안내판을 임시로 교체한듯 (아래 사진에 보이듯) 활자가 문질러진듯 번졌고 상태가 좋지 않다. 정식으로 코팅을 한 안내판이 아니라, 임시 수정판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내용이 고쳐졌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나는 백남준씨가 한글이 아닌 영문이나 한자로 서명을 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오히려 한자를 '한글'로 잘못 알고 있는 저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미술 평론가도 아니고, 뭐 예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예술에 어떤 기여를 할 수는 있다. 바로 이런식의 적극적인 관찰, 예술작품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고치는 일도 예술에 기여를 하는 방법이다.  나의 지적을 접수하고 액션을 취해준 미술관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한다. 사람이 자신의 오류를 누군가 지적했을때 그것을 수긍하고 개선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제대로 해 내는 것에대해서도 박수를 보낼만하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9. 10:36

미술관을 출발하여 집으로 오는 길에 프레데릭스버그에 있는 Cracker Barrel 식당에 들러서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 크래커 베럴 식당은 하이웨이 주변에 있는 프렌차이즈 식당인데,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주제로 실내 장식을 하였습니다. 음식도 대략 10달러 안팎의 미국 음식들 입니다. 이 식당의 특징은, 건물의 절반은 식당이고 절반은 기념품 매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하다가 밥도 먹고 기념품 구경도 하고.



이른 저녁이라 식당에 손님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비스가 신속하고 매우 친절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사진 상태가 안 좋은 것은 찬홍이의 아이포드로 찍어서 일 것입니다.


엄마가 스테이크를 열심히 썰고 계십니다. 엄마는 포크와 나이프 사용을 제대로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수저 (숫가락이나 포크, 젓가락)를 들고 이야기 하다가 그것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버릇이 있습니다.  나는 엄마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아주 히스테리컬하게 반응 하는 편입니다. (내 눈에는 특히 이것이 거슬립니다.)  그래서 요즘 밥상머리에서 엄마가 이런 행동을 할때마다 지속적으로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엄마가 포크를 들은채로 무엇을 가리키면 "엄마...지금 손에 뭐가 있지?" 하고 묻습니다. 엄마는 슬그머니 포크를 내려놓고 눈으로만 가리키며 말을 합니다.

엄마가 어떤 친구에 대한 흉을 보려고 합니다. 찬홍이는 지긋이 들어드립니다. 나는 '팍!' 신경질이 납니다. 왜냐하면, 친구의 흉을 보는 엄마의 모습이 미워보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엄마는 그런적 없어?"  "나도 조금은 그런적 있지..."  "그러니까, 엄마도 실수 하쟎아. 그러니까, 엄마 친구 흉보지마... 엄마가 안 이뻐보여..."  엄마는 뭐라고 변명을 하려다가 내가 골난 표정이라서 그냥 입을 다뭅니다.  이번에는 찬홍이가 시무룩한 표정이 됩니다. 엄마가 할머니한테 쌀쌀맞게 군다고 찬홍이가 삐지는 것입니다. 뭐, 이런 식의 아주 사소한 갈등이 발생했다가 꺼지고, 다시 점화되었다가 꺼지고 합니다.

지금 엄마가 스테이크를 깔로 썰면서 밝게 웃고 있습니다. 엄마가 자신있게 칼질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엄마 장합니다. 무엇이건 빨리 배웁니다.  나는 내가 골낸것을 반성하고 그 대신에 엄마를 아주 많이 칭찬해줍니다.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내게 다짐을 합니다, "너, 나중에 후회할짓은 하지를 말어라. 너 ...엄마 가고 난 다음에 ...그때 내가 좀 더 잘할걸! 하고 후회할 짓 하지 말어라..."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서 하늘의 구름을 보다가 혼자서 손 춤을 춥니다. 엄마의 버릇인데 손가락을 춤추듯 놀리며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뭔가 즐거운 생각에 빠진듯 합니다.  그런 모습이 아기처럼 천진해보여서 운전의 피로를 잊고 나는 달립니다. 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께 효도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서러울 따름입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7. 06:15


국립 미술관 1층에 전시된 백남준의 '엄마' 앞에 앉아있는 엄마.



일요일에 국립 미술관은 오전 11시에 문을 엽니다. 그 시각에 맞추어 집을 나섰습니다. 차를 미술관 맞은편의 의회의사당 주차장에 모셔놓고 국립미술관 동관으로 향합니다. (동관은 현대미술, 서관은 고전미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동관과 서관을 잇는 통로입니다. 지하에도 통로가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피라미드는 지하 통로 카페테리아를 환하게 비추는 천창입니다.




동관 입구에 백남준 특별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칼더의 초대형 모빌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엄마.




미술관 입구에 마련된 휠체어를 대여하여 (무료) 네시간 가까이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동관과 서관을 종횡무진 돌아다녔습니다. 동관의 현대미술 전시는 상세히 보면서 설명을 해 드리려고 애썼고, 서관의 미술품은 몇가지 집중적으로 설명해드리고 건성건성 돌아다녔습니다.

휠체어를 밀고 다니다보니 미술관에서 장애인 휠체어 시설에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휠체어가 못사는 곳이 없도록 설계를 해 놓았습니다. 엄마는 가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일어난 시간 외에는 실내에서 휠체어를 타고 씽씽 돌아다니셨습니다.  그걸 타니 이 넓은곳을 다 본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니가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하고 걱정을 하셨는데, 휠체어 미는게 뭐가 힘이 드나요.  엄마 부축해서 걸어돌아다니는 것이 힘이 들지요. 나도 휠체어 덕분에 아주 가볍게 돌아다닐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왼쪽 리히텐스타인, 오른쪽 라우센버그의 작품들


왼쪽에 솔레윗의 입체 작품이 보입니다.



마티스의 전시실에서 입이 벌어진 유여사. 




스텔라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입니다. 스텔라 작품 앞의 엄마.


서관으로 이동.  피카소 초상화 앞에서 꼭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진 상태가 안 좋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도 꼭 사진을 찍어달라고, 일부러 휠체어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구경을 다 하고, 나와서 피라미드에 가 봅니다. 엄마에게 "이 피라미드 아래가 지하 카페야. 거기서 우리가 간식을 먹었어" 하고 설명을 해드려도 잘 이해를 못하십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눈을 유리창에 대 보면 실내가 들여다보입니다. 나는 엄마에게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엄마가 나를 따라서 들여다보더니, "그렇구나. 저기가 지하구나!" 합니다.

엄마는 소학교 졸업이지만, 보통 사람의 교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풍으로 뇌 수술을 한 이후에 엄마의 언어는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피라미드'라고 말을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에, 다시 설명을 해 드립니다. "이걸 피라미드라고 해, 엄마. 피라미드. 옛날에 엄마는 피라미드가 뭔지 알았어."

엄마는 피라미드를 거울삼아서 둘이 사진을 찍는 것을 무척 신기해 합니다. 어떻게 내가 나를 찍었는지 신기한 모양입니다.


피라미드를 측명에 놓고 이렇게 사진 장난을 쳐 봅니다. 엄마는 이 자신이 아주 맘에 든다고 합니다. 신기한 사진이니까.


엄마를 모시고 다니다보면, 성질 급한 내가 '확' 성질이 오를 때가 참 많습니다. 대개의 경우, '너무나 유식한 (?) 나와, 아는 것 마저 많이 잊어버리고 언어도 어눌한 엄마 사이에는 소통의 장애가 큽니다.  엄마에게는 아주 사소한 것도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귀도 약하시므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반복해 나가다 보면 나도 지치면서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럴때 얼른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합니다.  엄마는 어릴때 나를 가르쳤고, 그 덕분에 내가 자라서 이만큼 잘난척을 있는대로 늘어놓고 있는데,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 이제 많은 것을 잃고 잊고 그랬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엄마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답답한 소리를 할때 화딱지가 나지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에게 아무 설명도 안하고 그냥  돌아디닐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엄마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리고 자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엄마도 죽을때까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하는 존재이니까.

나는 이렇게 똑똑한데, 엄마는 왜 이렇게 답답한가... 이런 생각이 들때, 옛날에 엄마가 나에게 읽기, 쓰기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합니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씻고는 잽싸게 침대위로  올라가서 지금 크르렁 크르렁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습니다. 늙은 아기입니다.


(그래도, 내가 인간이 되느라고, 예전보다 성질을 덜 내는것도 같애...)

아, 이제 멸치국물 내서 국을 끓이고...저녁을 기름지게 지어서 저 늙은 아기를 잘 먹여야, 기운이 나시겠지요.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6. 12:21


엄마의 미국 방문 기념, 케네디 센터 공연 관람.

급작스럽게 표를 구하다 보니, 서부 LA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는 Ozomatli 라는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밴드가 국립 팝스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한다길래.  나는 오조마트리는 뭔지 모르지만 최소한 국립 팝스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를 한다면 꽝은 아니겠지, 이러고 그냥 표를 사 놓았습니다. 오늘이 마침 그 공연 날.

오전에는 양식당에 가서 호되게 '양식 매너'를 익힌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곯아 떨어지셨고, 나는 학교에 잠깐 들어서 급히 일을 처리하고, 찬홍이를 태권도장에 라이드 해 주고, 찬홍이가 태권도 연습을 하는 두시간 반 동안 인근 카페에서 책보며 빈둥빈둥.  태권도 마치지마자 집으로 달려와 급히 저녁을 차렸습니다. 이거 내가 대략 30분만에 급조한 저녁 밥상.

일단 발아현미에 완두콩을 씻어서 압력솥에 앉히고
뚝배기에 순두부 찌개 국물을 앉히고
찜솥에 단호박과 옥수수를 물 잡아 앉히고
갈비살 사다 놓은 것을 꺼내어 후다닥 양념을 하고 (집에 굴러다니는, 아무도 안먹는 양주도 향긋하게 뿌리고)
상추 씻어놓고, 생두부 양념 하는사이에
밥이 완성되고
찌개가 완성되고
갈비살 굽고
어제 먹었던 콩나물국 남은것 다시 데우고.
김치와 생채 꺼내고.
잘 익은 옥수수와 호박도 꺼내놓고.
그래서 저녁밥상 완성.
내가 대충 차린 저녁 밥상을 보면서 "와! 나 대단하다 이걸 반시간만에 해 내다니!"


 
감기기운이 있는 엄마는 콩나물국과 순두부 찌개를 달게 잡수시고, 찐호박도 "미국 호박은 맛도 좋다"며 역시 달게 잡숫고, 갈빗살 구운것도 몇조각 쌈에 싸드리니까 싫다 소리 안하고 주는대로 받아 드시고~   후다닥 설겆이를 마치고, 이제 케네디센터로 달려 갑니다. 대략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저기 보이는 케네디 선생 두상 (오페라 하우스 앞)을 배경으로 증명 사진 찍어주시고.



테라스로 나가서 포토맥 강을 내려다보며 바람을 쐬기도 하고.  메가폰 조형물을 설치 해 놓았길래 이것 가지고 장난도 치고.






내가 엄니한테 저기 난간에 기대서서 포토맥 강을 내려다보면서 "여기는, 저기는" 하면서 설명을 하는 것을 어떤 신사가 지속적으로 눈길을 보내는 것을 느꼈는데.  이 신사가 나중에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사진 찍어줄까?"  (요새 사진 찍어주겠다는 자원봉사자가 참 많아요~ )  그래서 내가, "내 카메라가 좀 말썽이라서 제대로 찍힐지 몰라" 하면서 그 신사에게 줬는데, 역시 작동을 잘 안하는거라. (나만 간신간신히 달래서 쓰는중.).  그런데 이 신사가 하는 말씸 --"네 카메라가 안되면 내 카메라로 사진 찍어줄게."  (아쭈... 하하하. 이 아저씨가...시방 뭐 하는겨? )   그래서 내가, "야야 찬홍아, 내 카메라 고장이다. 네 아이포드로 찍자" 이러고 찬홍이 아이포드를 아저씨한테 넘겼습니다.  아저씨는 사진을 아주 잘 찍어 주었습니다.  참 친절한 신사분이셔..




그런데, 나중에 찬홍이 왈, '그 아저씨 말끔한 신사이긴 한데,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내가 보기엔 말끔한 신사복 차려입고, 와인까지 한잔 마시면서 음악회를 기다리는 전형적인 신사더구만. 게다가 자원봉사로 사진 까지 찍어준다는데 왜 기분이 나쁜가?   심심하던 차에 미인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 보고 싶었겠지.  하하하.



이곳은 케네디센터 컨서트 홀.  내가 오페라 하우스 공연도 보았고, 테라스 컨서트 홀 공연도 여러차례 가 보았는데, 이 컨서트 홀은 나도 처음 가봅니다.  이곳은 서양 고전 그림에서 보이는, 그 발코니 형 객석이 4층까지 있는 매우 고전적인 구조의 음악당이었다.  샹들리에도 아름다웠습니다.




일찌감치 자리 찾아 앉아서, 컨서트 홀 증명사진.



아래 사진은 공연을 마치고 앵콜 공연하고 그럴때 다들 사진을 찍길래 나도 찍은 것입니다. 공연중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됩니다.  사진 오른쪽 발코니 객석에서 사람들이 선채로 춤을 추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오늘 컨서트 분위기가 어땠냐하면, 거의 100분가까이 진행된 컨서트 내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환호하였습니다.  신나는 컨서트였습니다. 사실 나는 무슨 힙합, 레게, 라틴 음악등 이런 잡동사니 음악을 하는 밴드라길래, 이것 무척 시끄럽겠다. 엄니는 적응 못하시겠다. 찬홍이만 신나겠다.  너무 시끄럽고 괴로우면 중간에 나가서 밖에서 기다려야지. 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신이 나는 나머지 마침내는 감기기운이 있어서 전반전에 깜박 졸기까지 하던 엄니가 마지막에는 일어나서 춤을 추며 열광하셨습니다.  (난 엄마가 춤추다가 쓰러질까봐 조마조마 했습니다.  17년 전에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때도 합창 연습하다가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다가 쓰러졌던 것이니~   난 정말 조마조마 했습니다.)


아, 나도 오랫만에 신나게 춤을 추니, 머리가 홀가분하고 좋습니다.  내가 아주 속이 다 후련합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컨서트 찾아다니며 열광하나봐...)   내가 원래 흥이 있고 잘 노는 사람입니다. 음악 들으면 몸이 먼저 들썩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쓰리박하고 살면서 많은 압제를 받았습니다.  쓰리박은 사람들이 아주 경건하고 진지합니다. 그래서 컨서트에 가서도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앉아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흥이 없어보입니다.  나는 음악에 온몸으로 반응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쓰리박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아버지박이나 아들 박이나, 나만 보면 "음악회에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구박까지 합니다.  내가 죽은 시체냐. 가만히 있게, 응?

그런데, 그 해묵은 나의 불만을 오늘 한방에 날려버렸습니다. 국립 팝스 오케스트라 지휘지가, 그리고 오조마틀리 멤버들이 "워싱턴이여 일어나라, 일어나 춤을 추라!  이 세상을 좀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 일어나 춤을 추라" 뭐 이러니까, 다들 일어나 춤을 추며 열광하더라. 쳇. 음악회가 경건해야 한다는 것도 쓰리박의 편견일 뿐이지.  기대도 하지 않고 갔다가, 오늘 아주 신나게 춤을 추고 왔습니다. 평소에 경건하다 못해 짜증나게 진지한 찬홍이가 오늘은 너무 춤을 춰서 다리가 저리다고 합니다. 유여사 까지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니까~  (엄마는 심지어 나중에 이 사람들한테 싸인을 받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하하.깔깔깔.)

집에 오신 유여사. 내가 주섬주섬 꺼내놓는 찐호박과 수박을 아주 달게 잡수시고 침대에 오르시더니 벌써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계십니다.  (엄마가 열광적인 유쾌한 시간을 가져서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6. 01:03

 


엄마가 오셨다고 내 친구 클레어가 과일 바구니를 갖고 인사를 왔다.  엄마는 자다가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아무 선물도 안 갖고 왔는데 이런 선물을 받아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하셨다.

여러가지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과일이 가득 들어있었다. 내 친구가 신경써서 골라서 넣었을것이다.  마침 엄마 소지품을 넣을 상자가 마땅한 것이 없었는데, 바구니도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엄벙덤벙 사느라 인사 챙기는 일을 잘 못하는데, 내 친구는 늘 사려깊게 친구인 나를 챙기고 보살핀다. 원래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고 만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6. 00:25


토요일 아침.
미국 사람들이 주말 아침에 가족 단위로 나가서 아침을 먹는 '밥집' 정도 되는 Cassatt's Cafe 에 엄마를 모시고 나갔습니다.

엄마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카페 벽에 그림들이 다닥다닥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이곳을 좋아하실줄 내가 알고 있었지~




카페의 풍경은 대략 이러합니다. 작은 카페입니다. 그리고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 합니다.  정겨운 분위기 때문입니다.



찬홍이는 베이컨 소시지가 들어간 음식을 주문했고, 엄마는 프렌치 토스트, 나는 요거트.  프렌치 토스트가 그중 엄마 식성에 맞을 것 같아서 내가 주문을 해 드린 것입니다. 어차피 양도 많아서 나눠먹기에도 습니다.

엄마에게 토스트를 잘라 드리려다가, '이것도 다 교육이 필요한거다' 생각하고, 엄마에게 포크 나이프 잡는 방법, 그리고 서양식을 우아하게 먹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 드렸습니다.  우리는 죽을때까지 배워야하고, 엄마의 배움도 포기를 하면 안됩니다. 엄마는 금세 말귀를 알아 듣고 포크 사용을 정확히 하려고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엄마는 식사를 하는 내내, 두리번 거리며 벅에 걸린 이 지역 화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느라 분주했습니다.  알고 싶고 보고 싶은게 아주 많은 유여사.  (나의 호기심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을 하는 순간입니다.).



알링턴 구시가지 카페 거리가 제법 고풍스럽고, 유럽 스타일이라서 식사 후에 가볍게 거리 구경.



그늘로 걸으면 날씨가 제법 선선하고 산들 바람이 불어서 산책하기에 좋았습니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도 친절했습니다. 누군가가  "사진찍어줄까?" 하면서 우리 세사람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미국 사람들은 부탁하지 않아도 친절하다며 좋아했습니다.  모든것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서로 친절한 것도 전염성이 있어서, 내가 받은것을 누군가에게 전하게 됩니다.




뚜껑이 없는 파란 자동차를 신기한듯이 쳐다보는 엄마. "엄마 그 옆에 서봐 내가 사진 찍어줄게" 했더니 그래도 되느냐며 묻습니다.  옆에서 사진 찍는걸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요.  그런데 사진이 아주 근사하게 나왔습니다.


서양식당에서 포크 나이프 사용하는 법이며, 몇가지 예법을 배우느라 고단하셨던 듯. 집에 돌아온 엄마는 기분좋게 침대에 큰대자로 누워서 낮잠.

엄마가 나이가 드셨다는 이유로 사소한 예법을 생략하고 지나가면 엄마는 그걸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런것도 차근차근 설명을 해 드리면 엄마는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엄마는 아주 훌륭한 학생입니다.

엄마는 '그림 구경' 때문에 이 카페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중에 한번 점심때 차마시러 다시 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5. 03:55

미술용품점



엄마가 밤에 잠이 깨어 - 말똥말똥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아무래도 시간 차이 때문에 그러하신 듯, 게다가 어제 낮에 벌컥벌컥 마신 아이스커피도 한 몫했을것.)

오늘은 가볍게, 동네 크래프트 샵에 가서 엄마에게 필요한 미술용품을 사기로 했습니다. 자동차로 20분쯤 달려서 매장에 도착하여 캔바스며, 아크릴 물감등 필요한 것 일습을 모두 마련 한 후에 백화점같이 넓다란 매장을 돌아다니며 호기심 천국 놀이.


궁금한 것이 많은 우리 엄니.  재승이, 재모, 재은이를 뭘 사다 주나 하고 고민이 많습니다.



에나멜 스프레이도 찾아 달라고 하셔서 아이들 모형 꾸미는 코너를 뒤져내어 엄마가 찾던 금색, 은색 스프레이 에나멜도 구하고.

엄마 미술품만 대략 220달러. (호기롭게 사 제끼시는 유여사님.)

그런데 계산대에서 계산원이 미술품을 포장해주며 "누가 그림을 그리는가?" 묻기에 엄마를 가리키며 "She's the painter" 하고 대꾸하자, "Where is she from?" 어디서 오셨는가 묻기에, "My Mom's visiting me from South Korea" 라고 대꾸해 주었더니. 이 계산대 직원이 엄마를 쳐다보면서 한국말로 "안녕하셔요."

엄마가 깜짝 놀라서 환하게 웃으시는데, 계산원이 "감사합니다"  역시 한국말로.

그래서, 엄마는 미국사람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줘서 기분 만땅. (지화자 좋구나!)

********

한국장




엄마에게 '한국장'을 보여드린다고 페어팩스에 있는 H마트 행.  매장에서 여러가지 시식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풀무원 두부코너에서 두부에 양념 얹어주는 행사.  판매원이 엄마에게는 특별히 두부를 많이 담아드려서 신나게 양념두부를 시식하시는 우리 엄니.  간장게장 코너에서도 맛보라고 밥에 간장게상 살점 두둑한것을 올려줘서 역시 포식을 하시고.  매장 코너 식당에서 찬홍이는 제육복음, 나는 생선회, 엄니는 대구지리를 주문하여 신나게 먹어댔습니다.

젖갈이며 오이지, 두부, 가지등 시장을 봐가지고 귀가. 엄니는 집에 오시자 마자 졸립다며 침대에 등산하여 드르렁 드르렁. (침대가 하도 높아서 등산하듯이 기어올라야 하는 현실.) 

엄니에게 내방 침대를 내 드렸더니, 침대위에 귀중품을 일렬 배치를 시켜놓고, 침대위에서 천하를 호령. (자기가 등소평이여? 침대 위에서 정치를 허게? 거의 등소평 급의 파워를 행사하시는 유여사.)

 

엄니가 주무시는 동안, 찬홍이하고 나는 거실에 엄니가 그림 그리기 편하시게 도구들을 배치를 시켜야 합니다.

*****

조폭 문신

엄니가 한국에서 작은딸 입으라고 챙겨온 나이롱 샤쓰. 동백꽃이 앞뒤로 그려져 있습니다. "내가 이걸 어떻게 입어? 엄마나 입어!" 일단 이렇게 핀잔을 때린 후에 입어보니, 오잉!~~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그래서 낼름 입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사진속의 내 모습이 어쩐지 조폭들 '문신' 한것처럼 보입니다. 샤쓰가 아니라 문신 같아요.  그런데, 조폭들은 왜 꽃무늬를 좋아하는겁니까? 왜 화려한 꽃무늬 샤쓰를 입는가요?

 






엄마가 가져온 그림 세점





오늘은 대략 이쯤 하고 각자 휴식 모우드 입니다.
내일은, 찬홍이가 태권도장에 가는 날이라 어디 구경가기 애매하고, 그대신 아침 일찍 조지타운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케네디 센터에 음악회를 보러 가게 됩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4. 10:22

저녁 식사후에, 찬홍이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워 놓았고
나는 엄마의 껍데기를 모두 벗긴 후에
엄마를 욕조에 집어 넣었다. (딱 왕눈이 목욕 시키는 방법).
가만히 순하게 욕조에 앉아있는 엄니의 머리부터, 바가지로 물을 부어 샴푸를 했다.
(엄마는 귀를 막고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앉아 계신다.)
샴푸 다 하고, 헹구고, 골고루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구석구석 싹 닦은후에
일단 타올로 머리부터 말리고, 큰 타올로 아기 감싸듯이 욕조에서 나오시게 했다.
엄마는 착한 아이처럼 말도 잘 들으신다.
왕눈이는 버둥거려서 샤워시키고나면 허리가 아픈데
엄마는 목욕 시켜드리는 것이 아주 가뿐하다.
왕눈이보다 쉽다.

혼자서 샤워하다가 미끄러지실까봐,
내가 이렇게 욕조에 물을 받아서 매일 씻어드리려고.

찬홍이는 내가 할무니를 너무 빨리 욕조에서 나오시게 했다고 잔소리를 한다.
욕조에서 한가롭게 앉아서 쉬게 해드려야지 씻고 바로 나오시게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잔소리다.
내가 귀챦아서 얼른 끝낸것이지... (내일은 한가롭게 앉아계실 시간을 드리마.)

우리 형제들이 한국에서 엄마 두차례 암투병 하시는 동안 고생한것을 생각하면
내가 잠시 이런 서비스 해 드리는 것은 꽃놀이 하는 것이지....

그래도 엄마가 건강하게 미국까지 오셔서, 내가 못한것 벌충할 기회를 주시니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두분이 같이 오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그것이 유일한 한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4. 08:31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토피도 아트센터에서 엄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 직접 들어가서 작품을 보거나, 혹은 화가들이 어떤 재료를 활용하여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지 현장에서 직접 보고, 화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면서 여러가지를 발견하고 깨닫고 하신것 같습니다.

나는 엄마가,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것을 자각하시길 기대합니다.  엄마의 상상력, 엄마의 예술성이 엄마가 가늠하는것보다 훨씬 크고 천재성이 있다는 것을 엄마가 어렴풋이나마 발견하시길. (예술이나 인문지식에 대한 엄마의 열등감을 이참에 해소하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화가들은 친절하게 인사를 보내기도 하는데, 내가 "우리 엄마가 한국에서 오셔서, 제일 먼저 이곳을 보여드리러 왔다. 우리 엄마도 개인전을 열은 아마추어 화가다" 이런 소개를 하면 화가들도 "영광이다. 참 반갑다"고 엄마를 향해 활짝 웃곤 합니다. 화가가 엄마한테 이런 인사를 해도 엄마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가르쳐드렸습니다.
누군가 미소를 지으면 인사하는거니까 "헬로"하면 되고,
뭐라뭐라 떠들면 "땡큐" 하면서 웃으면 되고
헤어질땐 "굿바이".
엄마는 내가 가르쳐드린대로 그자리에서 미국 화가에게 인사했고
친절한 미국화가는 역시 큰 제스처를 쓰면서 엄마에게 인사 했습니다.

엄마가 화가와 대화가 된다면 더 많이 묻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벌써 미술 작업에 대한 몇가지 새로운 요령을 터득하셨습니다.


(동영상을 전체화면으로 크게 보는 방법: 화면에서 화살표가 네방향으로 뻗은 단추를 눌러주면 전체화면이 됩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4. 08:02

엄마의 워싱턴에서의 첫 일정은, 일단 워싱턴이 얼마만큼 큰 도시인지, 겉에서 살펴보기.
한강 유람선을 타고 서울의 크기를 가늠하듯, 워싱턴 포토맥강 유람선을 타고 워싱턴을 바깥에서 조망하는 것입니다.

오전에 밥을 먹고, 30분쯤 차를 달려 Old Town Alexandria 에 도착. 이곳에는 Torpedo Art Center 라는 명소가 있는데, 포토맥 강변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아트 스튜디오 건물입니다. 1층부터 3층까지 빼곡한 스튜디오에 입주한 아티스트들이 스튜디오를 개방하고 현장에서 작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엄마가 거동이 불편하신 관계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유적지를 살피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최소화 하면서 유쾌하게 구경할 곳을 집중적으로 다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엄마가 구경하신 곳은
 
1. 알렉산드리아 토피도 아트 센터 : 11시 반부터 오후 세시 반까지. 아트 센터 구경하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점심.

2. 오후 세시반부터 다섯시 반까지 알렉산드리아 -- 조지타운을 왕복하는 유람선: 여기서 조지타운까지 배를 타고 가면서 워싱턴 디씨 시내를 선상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엄마는 이제 워싱턴 도시 이름이 미국의 초대대통령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배웠으며, 미국에서는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의를 표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3. 유람선에서 내려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임세팔군이 다니던 St. John's School 에 들러서 손녀딸이 다니던 학교를 구경하였습니다. (전에 박선생이 살던 2층집도 구경하였습니다.)


대략 이와 같습니다.

아래는 사진들입니다.

이곳이 포토맥강변에 있는 아트 센터 건물 내부입니다. 얼핏 평화시장 옷가게들처럼 보이는 내부 구조. 미로처럼 이어진 통로에 화가들의 개인 스튜디오들이 있습니다.



엄마 목에 새로운 목도리가 둘러져 있습니다. 1층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실크 스카프를 엄마가 직접 골라서 사신것입니다. 언니가 사드린 옷과 한세트를 만들겠다는 야심과 집념의 결과 입니다. 이곳은 피곤하면 쉴수있는 의자들이 많이 있어 노인을 모시고 오기에 참 좋습니다.




창밖에 포토맥강을 내려다보는 화가의 스튜디오입니다.  이 스튜디오의 화가와 인사도 나누고, 엄마도 이제 미국 사람과 인사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만났을땐 '헬로' 하면 되고, 헤어질땐 '굿바이' 하면 됩니다. 누군가 웃으면서 친절을 베풀면 '땡큐' 하면 됩니다.  엄마는 이 세가지를 익혀서 사람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아트센터 바로 앞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습니다.
재승엄마가 사드린 파란 모자를 쓰고 있는대로 폼을 잡고 서 계십니다.



엄마의 센스가 드러나는 대목. 엄마에게는 언니가 사드린 명품 가방도 많지만, 워싱턴에 오실땐, 내가 사서 부친 알록달록 나이롱 가방을 갖고 오셨습니다. 사보낸 사람을 기쁘게 해주겠다는 '저의'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파란 모자는 막내 며느리, 드레스는 큰딸, 가방은 작은딸. 특등석 비행기는 큰아들,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는 유여사로 보입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찍으며 놉니다. 우리 셋이 모두 들어있는 사진입니다. 찬홍이와 나도 들어있습니다.




날이 더우니까, 다시 아트 센터 현관에 들어가서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쐬며 놉니다.



낙서판에서 낙서도 하고 놉니다. 파란 모자를 쓴 엄마는 얼핏 소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허리가 구부정한것이 난관이로군요. 그래도 스타벅스 아이스커피를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미국 오더니 세련되어 지셨습니다.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드디어 배를 타고 강바람을 쐬며 조지타운쪽으로 향합니다.



날이 더우니 시원한 1층 실내로 들어옵니다. 멀리 케네디센터와 워터게이트 건물이 보입니다.



유람을 마치고 조지워싱턴 하이웨이를 달려 집으로 오는길, 하이웨이 중간에 전망대에 멈췄습니다. 저기 맞은편 내려다보이는 강 기슭이 내가 자주 산책하러 나가는 Fletcher's Cove 입니다. 엄마에게 '저기도 데려다 줄게'라고 설명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전에 살던 2층집 앞을 거쳐서, 임세팔이 다니던 학교에 차를 세웁니다. 엄마는 외손녀딸이 다니던 학교를 둘러보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서 구경도 합니다. 임세팔이가 이 사진을 본다면 아주 기뻐하겠지요.


성당 가운데 꽃이 가득한 정원입니다. 임세팔이가 매일 이곳에서 뛰놀았겠지요. 그자리에 외할머니도 서 봅니다.  엄마는 오늘 아주 많은 일을 했다고 의기양양하십니다.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서 목욕을 하시게 하고, 잠자리에 들게 하면, 오늘 나의 임무는 성공리에 완수되는 것입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즐겁게 워싱턴에서 시간을 보내시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오빠, 언니, 동생이 이렇게 우리 엄니를 사랑하고 보살펴서 여기까지 보내드리니 참 고맙고, 또 고맙고 그렇습니다. 이렇게 사진이나 찍어 올리면서 나는 폼만 열심히 잡는 날건달입니다만. 그래도 이런 자식도 하나 있으니 우리 엄니는 이래저래 신나는 인생입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3. 03:32






우리 유여사. 
환영의 꽃다발을 받고 활짝 미소.




오빠가 특등석 비행기표를 구해줘서, "비행기에서 드러누워서 자도 되고, 먹을것도 많이 주고, 아주 좋더라" 하고 어린애처럼 자랑을 하시다.

또래의 노마님이 옆자리에 앉으셔서 열시간 넘는 비행시간이 지루한줄 모르고 살아온 얘기를 하셨다고

찬홍이 아이포드에 실수로 찍힌 사진이, 오히려 예술이라 올려본다.




오늘 우리 엄니,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한가지 '사고'를 치셨다. 하하하. 박선생 알면 기절을 하겄네~

지홍이 소속 부대에서 훈련병 수료식한다고 안내장과 임시 출입증 이런것을 보내왔는데, 편지 겉봉은 지홍이가 직접 쓴 것이다.  그러니까 할무니 생각에, 지홍이 편지를 지홍이 아부지가 뜯어 봤으니깐, 미국 제 에미한테 편지 갖다 보여줘야지. 이러고는 할무니가 편지는 열어보지도 않고 편지 봉투째 갖고 오신거다. 하하하.

"엄마, 이것은 거시기 편지가 아니고, 부대에서 날아온 공문이여... 이걸 왜 갖고 오셨슈?"

"난, 지홍이가 애비한테 보낸거니깐, 남의 편지 보는게 실례라서 안봤지. 정미도 편지 갖고 가서 은미하고 열어보라고 그냥 안보고 주던데..."

"큰일났네 이거. 지홍이 면회도 못가게 생겨부렀소. 워쩌유?"

하하하. 내가 학교에 가서 팩스 이메일  처리하면 박선생 이메일에 카피가 도착할 것이다. 그거 프린트 해 가면 되겄지.


꽃매장에 '작약 (peony)'이 있길래 한단 (세송이) 샀다. 노란장미하고 섞어가지고 공항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꽃다발을 만들었다.  지금 꽃다발은 다시 해체되어 세개의 꽃병에 꽂혀있다. 엄마는 작약꽃을 담아 놓은 꽃병 아래, 침대에서 달게 낮잠을 주무신다. 작약 향이 좋다고 아주 좋아하시더니 금세 잠이 드신다.

조금 이른 저녁을 지어서 먹고, 저녁 산책을 가까운데로 나갔다가 밤에 다시 주무시게 해야지. 그래야 시차에 적응하시기 수월하실 것이다.

엄마가 아주아주 흡족해 하신다. 마음에 무엇 하나 걸리는 것이 없이 가볍고 좋다고 하신다. 뭔가 미진한 숙제가 없이 아주 좋은 상태로 오신 모양이다.  여기 계시는 동안 매일 웃게 해드리겠다.

(엄마가 얇은 자외선 차단 장갑과 자외선 차단 팔 토시 이런것을, 아주 가게를 차려도 좋을만큼 많이 갖고 오셨다. 언니는 자외선 차단 크림이며 화장품을 많이 사서 보냈다.  장갑이며 차단제등이 많이 생겨서 내가 정말 좋다. 내게는 아주아주 귀한 선물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발아현미로 지은 콩밥하고, 배추 우거지 된장찌개, 병어 조림, 쇠고기 구이, 장아찌, 생두부에 간장 양념, 김치. 대략 이렇게 하려고.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22. 17:3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15197

[살며 생각하며]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기사입력: 06.21.11 18:06
 “당신이 처음 내 이름을 묻던 날이 생각나네. 당신은 오래된 신작로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 있네. 자갈밭 속의 자갈처럼, 흙 속의 흙처럼, 먼지 속의 먼지처럼, 거미줄 속의 거미줄처럼.”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 소개가 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서 나도 이 책을 구해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의 문체가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신경숙씨의 문체는 우리 가슴에 그대로 스며든다. ‘먼지 속의 먼지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서울역에서 길을 잃고 사라진 엄마를 찾아 헤매는 큰 딸, 큰 아들, 영감님, 그리고 친구에 대한 사라진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어쩌면 망자가 저승으로 아주 가버리기 전의 넋두리와도 비슷하다.

내 주변에 이 책을 읽었다는 친구들이 여럿이라서 이 소설의 인기를 실감했는데, 대개는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파서 또 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신원 미상의 무연고 처리되는 시신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혹은 범죄의 희생자로, 여러 가지 경로로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들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 같은 현상을 시인 정호승은 그의 ‘세한도’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영등포역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고 하고 / 청량리역 어느 무료급식소에서 봤다고 하는 / 아버지를 찾아 한겨울 내내 /서울을 떠돌다가 /동부시립병원 행려병동으로 실려가 /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행려병자들을 보고 돌아와…”
 
그렇게 신원미상의 시신으로 남겨진 그분들에게도 한 때 눈부시게 빛나는 삶이 흘렀다. 그 눈부신 삶의 기억을 우리들이 읽어내지 못 할 뿐이다. 문학의 위대성은 이런 데 있다. 우리들이 잊어버리거나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소박한 언어로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 가갈 수 있는 근거는 ‘엄마’라는 것이 갖고 있는 인류 보편의 정서에 닿았다는 것이리라. 그뿐이라면 그야말로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김치 냄새’ 풍기는 삼류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틀에 박힌 ‘엄마’ 모습 외에 고유의 독자적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모습이 들어있다. 엄마에게는 평생 손 한번 잡아 보지 않은, 가족 중 아무도 모르는 이성친구도 있었다.

의사가 이름을 물을 때 자기 이름도 잊어버리고 ‘박 소녀’를 외치는 친구, 그런 친구가 평생 그의 곁에 있었다. 엄마의 비밀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있다. 그 비밀들이 엄마를 독자적인 한 ‘사람’으로 세워 놓는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나 역시 할머니, 엄마, 엄마만큼 나이를 먹은 고모님들을 떠올렸다. 각기 다른 얼굴들이지만 비슷비슷한 삶이다.
 
내 엄마는 회갑쯤에 미망인이 되었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생했다. 그래서 거동이 서투르고 언어가 어눌해지셨다. 칠순에는 개인 아마추어 회화 전시회를 열면서 평생 가슴에 담고 있었던 비밀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엄마가 ‘소학교’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라는 것. 엄마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학력’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칠순 할머니가 개인전을 연다고 언론사에서 집에 인터뷰하러 찾아왔을 때, 엄마는 기자들 앞에서 털어 놓으셨다, “내가 국민학교밖에 안 나와서, 평생 졸이고 살았는데, 이렇게 털어 놓으니까 후련합니다.”
 
그 후에 엄마는 몇 년 사이에 두 가지 암 수술을 받고 극복해 내셨다. 그 사이에 엄마의 허리가 휘어지고, 달팽이처럼 한없이 느리게 걷는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아마추어 화가, 우리 엄마의 꿈 “우리 딸네 동네에 커다란 미술관이 많은데, 거기 유명한 사람들 그림이 다 붙어있대. 그걸 보고 와야지!” 오늘은 엄마가 워싱턴에 오는 날.

나는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가겠다. 공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엄마의 기억 속에 눈부신 워싱턴의 나날들을 스며들게 해야지.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June 22, 2011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19. 23:45




날이 잔뜩 흐려서 배낭에 우산 하나를 찔러 넣고 이른 아침에 포토맥에 나갔다.  일곱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조지타운에 이르러 스타벅스에서 아이스티를 한잔 사 마시고 조지타운 하버에서 산책을 하다가 반환하려 시계를 보니 여덟시였다.

돌아오는길에 '나의 오디나무' 아래서 아직 작은 병아리인 거위 새끼 두마리를 거느린 거위부부를 만났다.  처음에 이들은 나를 경계하고 부리로 쪼려는듯 색색 외치며 나를 몰아내려 했다.  나는 나무 그늘에서 오디를 따서 먹다가 잘 익은 오디를 이 거위들에게 던져 줘 보았다.  거위가 냉큼 받아먹었다. 아하!  그래서 그때부터 검게 익은 오디를 따서 이 부부에게 던져주었다. 새끼들도 내가 던져주는 오디를 쪼아 먹었다.  내가 계속해서 검은 오디를 따서 던져주자, 이 부부는 나에대한 경계를 풀고, 이제부터는 "빨리 오디를 달란말야!" 하면서 꽉꽉대고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기들이 내 발치에 다가와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부부는 내 왼쪽에 있고, 아기들은 내 오른쪽에, 그러니까 인간인 내가 이들 가운데에 뻗치고 서 있어도 상관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기들을 발로 밟을수도 있는데?!

이들은 달콤한 오디를 따서 던져주는 내가 아주 맘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거위는 사람이 지나칠땐 약간 경계하지만 멀리 도망가지는 않는데, 개가 나타나면 냉큼 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내 눈에 개가 보이지 않아도, 이들이 물속으로 가버리면, 조금후에 영락없이 개가 나타나는 일이 반복된다.  거위는 사람에 대해서는 안심하는 눈치이지만 개는 경계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거위를 해코지 하는 일은 드물지만, 개는 예측불허라서 그러할 것이다.) 어떤 사냥개가 있었는데, 그 개는 거위가 물에 들어간 후에도 물에 따라가 잡으려는듯 물가에서 으르렁댔다.  그래서 거위가 개를 싫어하는가보다.




이 거위 가족이 물속으로 피신을 한 후에도 내가 물가에서 오디를 따서 물에 던져주자 거위 가족은 나무 밑을 떠나지 않고 내가 주는 오디를 받아 먹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다른 거위 가족이 나타났다. 저쪽 구석쪽에 몸이 많이 자란 두마리 새끼를 거느린 부부.  거위들은 순해보이지만, 일단 '먹이'에 대해서 경쟁할때는 사나워진다.




아래 사진을 보면 왼쪽의 큰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위협하는 자세이다. 이렇게 위협을 하면서 다른 거위들을 몰아내려 한다. 이 거위가족은 부모와 새끼들이 합심하여 오른쪽의 아기거위 가족을 몰아댔다. 열세에 있는 작은 거위 가족이 저쪽으로 밀려갔다.  이놈들이 왜 한쪽을 몰아대는가하면,  오디 따서 던져주는 인간의 앞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바삐 오디를 따서 이가족, 저가족 골고루 주느라 아주 바빴다.  그런데 요 거위놈들이 덜 익은것을 따서 주면 안먹고, 잘 익은것을 따서 줘야 받아 먹는다. 나처럼 잘 익은것만 먹는 놈들이다.





내가 나무 밑에서 거위가족들에 둘러싸여 오디를 따 먹이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었던듯, 산책하는 사람들도 미소를 짓거나 사진을 찍어가지고 가곤 했는데, 어떤이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내게 조언을 했다, "그러다가 거위 부모한테 물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이 사람은 동물에 대해서 겁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나도 사나운 거위의 행동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을때 사납게구는 거위는 본적이 없다.  게다가, 지금 거위들은 내 발치에서 오디를 달라고 꽉꽉대고 있는 것이므로, 이들이 나를 쫄리는 없는 것이지. 쫀들, 그걸로 사람이 죽는것도 아니고~   난 거위가 공격적으로 쌕쌕거릴때와, 뭘 달라고 꽉꽉거릴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와 대화 하기 위해서 다가갔다가, 설령 대화가 안통하고, 내가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  하지만, 미리 겁먹고 대화를 포기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상대가 동물일때, 나는 서슴없이 다가가는 편이다.  난 사람보다 동물과 대화하는 편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뇌진탕 걸려서 깜박깜박하는 내 카메라가 빗방울 떨어지는 장면을 잘 잡아냈다. 고맙다 카메라.


















일전에, 다 자라버린 다섯남매 거위 가족 사진을 올린적이 있다. 오늘, 그 거위가족을 다시 발견했다. 멀리서보면 그냥 어른 거위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중 두마리가 좀더 크고, 아직도 부모가 가장자리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다섯마리가 모두 성년이 된 것이 마냥 고맙다. 마치 내 새끼들을 보고 있는듯 흐뭇했다.






꽃술에 벌이 매달린것을 볼때면, 묘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뭔가 관능적이면서도 포근하다.



새벽에, 한국에서 지홍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CPR 훈련받을때 1등을 해서 포상으로 '가족에게 전화 5분' 를 걸수 있게되었다고, 그래서 내게 하는거라고. 5분 되면 전화가 그냥 꺼지니까, 갑자기 전화 끊겨도 그런줄 알라고.

지홍이는 "엄마엄마!" 이렇게 꼭 두번을 부른다. 지홍이는 늘 그런다. 한번 "엄마" 하고 부르는게 아니라 "엄마엄마" 이렇게 두번을 연달아서 부른다.  한번 부르는 것으로는 성에 안찬다는듯 "엄마엄마", "아빠아빠" 이렇게 부른다. 아기때부터 그러더니 여태 그런다.

며칠전에 둘이 총들고 나란히 선 사진이 카페 게시판에 커버처럼 걸려있다는 얘기를 해 줬더니 (훈련병은 인터넷 못 보니까), 자기는 소대장이고 그 친구는 부소대장이라고 한다. 


"너, 힘들어하는 소대원을 잘 도와주고 돌봐줘야 한다!" 했더니, 자기도 열심히 도와주려고 하는데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도와주기가 어렵다고 한다.

내가 지홍이에게 동료 훈련병들을 돌봐주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1) 남을 돕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남을 도울수가 있는거니까. 따라서, 나 자신의 몸관리를 잘 하라는 뜻이다.
2) 혼자만 잘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변에 힘든 사람을 도울 만큼의 역량을 키우라는 뜻이다.
3) 결국,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운명이다. 그러니 평소에 인정을 베풀라는 뜻이다.
4) 서로 돕지 않는 삭막한 사회는 나에게 해롭다. 결국 내가 잘 살기 위해서 남을 도와야 하는 것이다.

돕는것이,  도움을 받는 것이다.

***

포토맥 강변에서 벌써 1년도 넘게 아침에 나갈때마다 마주치는 두 신사가 있다.  한분은 80쯤 되어보이는 노신사이고 한분은 60안팎으로 보이는 신사이다. 내가 이분들을 신사라고 하는 이유는 이분들이 미국 고전 영화에 나올법한 키가 큰 전형적인 서양 남자들인데 인상도 좋고 늘 일정한 속도로 걷거나 달리거나 한다.  나는 이분들이 '아버지와 아들' 혹은 '장인과 사위' 뭐 그런 관계가 아닐까 상상을 하며 지나치곤 했다. 

내가 체인브리지 방향에서 조지타운까지 갔다가 반환한다면, 이 두 신사들은 조지타운 집에서 체인브리지까지 갔다가 반환하는, 그러니까 나하고 정반대의 산책을 하시는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조지타운의 딘앤델루카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다가 이분들이 조지타운 주택가로 향하는 것을 본적도 있다.

오늘은 한가로운 이른 아침이었고, 포토맥 너른 강이 발치에 보이는 한적한 길에서 이 두분을 마주쳤다. 그래서 "Good morning, gentlemen!" 하고 먼저 인사를 날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보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강변에 서서 가벼운 인사를 하고, 서로 뭐하는 사람인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Lin Yutang 을 아느냐고 물었는데, 가만 듣다 보니까 '임어당' 얘기를 하는것 같아서, 나중에 그를 안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게 '중국인'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다른 신사가 얘기에 합세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한국에 American Idol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22세 청년의 감동적인 얘기가 소개가 됐다" 며 내게 아느냐고 물었다.  이 신사는 한국의 쇼프로그램 얘기를 내게 해주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는거다.   아 이 신사들은 조지타운에 사는 이웃 친구들이었다. 할아버지와 그 신사는 변호사라고 했고, 한국 쇼프로 얘기를 내게 들려준 신사는 조지타운 대학 교수였다가 퇴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강바람을 쐬면서 이런 얘기들을 웅성웅성 하다가 다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길을 갔다.  다음에 또 마주치면 우리들은 또다른 화제로 웅성웅성 하게 되겠지.

(남자들도 '수다'를 좋아해...흠흠...)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걷기에 좋았는데, 혼자 유쾌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오른 손을 싹싹 핥고 지나가는거다. 어떤 커다란 개가 줄이 풀린채로 내 곁을 뛰어 지나가며 내 손을 핥은 것이다. (가끔, 개끌고 달리기 하는 사람중에 개를 풀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안되지만.  이 경우 개가 순해서 안심하고 풀어놓은 것이기때문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뒤에 달려온 개 주인은 내게 무척 미안해 했지만, 나는 깔깔 웃고 말았다.  내 오른손은 거위에게 오디를 따 주느라 검붉게 물이 들어있었고, 그리고 달콤하였다. 그러니까 그 개가 핧았던 것이겠지.

나는 낯선 개가 내 손을 핥고 지나간것에 감동을 받았다. :-) (변태에요. 별 이상한데서 감동을 받아요.) 

나는 대개 혼자서 장거리 산책을 나가지만, 심심한 경우는 별로 없다. 나는 눈에 보이는 나무나 들풀, 지나가는 새들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고, 흘러가는 강물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가끔은 지나치는 사람과도 길에 서서 '수다'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을 한바퀴 돌고 오면, 몸도 마음도 나른해지고 평화로워진다. 나는 이보다 더 좋은 오락을 찾을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고요하고도 은밀하며 유쾌한 산책을 위해서는, 나 혼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산책을 하지 않게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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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16. 20:52


어제 (6월 15일) 밤 아홉시 쯤에 포토맥 강 위에 걸린 달 (알렉산드리아의 호텔 건물이 보인다).  처음에는 쟁반같이 커다란 달이 술에 취한 농부처럼 붉그레 했다.  찬홍이 설명으로는 개기월식이 지나가면서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어서 붉게 보인다고 했다.

붉던 달은 점점 밝아졌다.  조지타운 하버에 다다를 즈음 달은 밝고 투명해졌다. 강물에 비친 달 그림자도 투명하였다. 달의 왼편 아래로, 하얗게 뾰죽 솟은것은 워싱턴 마뉴먼트.

 








 



우리는 밤 열시까지 조지타운에서 강바람을 쐬다가 조지타운의 시계가 딩딩 울리며 열시를 알릴때 집으로 향했다.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달이 이렇게 밝으니, 불빛이 없는 숲속에서는 어떠하겠는가?  나뭇잎 사이로 달이 보일때, 태양처럼 눈이 부실 정도였다. 달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반딧불이들이 일제히 날아 올랐다. 반디들이 내 눈앞에서 깜박일때 나는 그 메시지를 읽어보기도 하였다.  (내 맘대로 생각나는대로 좋은 생각만 하면 된다).

여름 밤
강물
하늘에 달
숲길
그리고 날아 오르는 반딧불이들.

이곳 반딧불이는 어찌나 순한지, 날아 다니는 것을 내가 슬그머니 두손으로 공처럼 만들어 잡아도, 겁을 내지 않고 깜빡인다. 혹은 날아다니다가 내 셔츠에 앉기도 한다. 꽁지에 등을 달고 날아오르는 곤충들.  반디가 숨을 쉬듯 깜박일때마다 나는 희망적인 생각들을 해 내려고 애쓴다.

옛날에 윤동주 시인은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새겼다. 사람들은 그렇게 했다. 나는 날아오르는 반디불이들의 등불에 내 사랑과 쓸쓸함을 날려 보냈다.  반딧불이들은 하느님이 지상에 내려보낸 별 들이다.

등뒤에 달이 따라왔다. 나는 달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앞세워 걸었다. 이렇게 달이 질 때까지, 아침이 올때까지 계속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찬홍이 데리고 밤새 걷기에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다. 밤에 출발하는거야. 그래서 한 네시간쯤 서쪽으로 걷는거야. 그리고 네시간쯤 후에 동쪽으로 돌아오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걷게 되겠지...(그거 해보고 싶다. 밤새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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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15. 18:45

[살며 생각하며] 우디 앨런의 환상 여행 'Midnight in Paris'

기사입력: 06.14.11 20:37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이따금 이런 질문을 서로 던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늘 같다. 

“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어요. 지금 이 상태가 제일 좋아요. 돌아보면 고민스런 나날들도 많았고, 그다지 행복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가 제일 좋고, 그리고 앞으로 더욱 기쁜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기대해요.”

 역사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문제도 결국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가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고,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감사하고 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시간이 평화로워서 고맙다. 과거의 어느 시절도 내게는 매력이 없어 보인다.

 우디 앨런 (Woody Allen) 감독이 2011년 여름에 우리에게 선사한 영화 ‘Midnight in Paris (밤의 파리에서 생긴 일)’에서 주인공 남자는 그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꿈꾸는 파리의 1920년대로 간다. 영화가 꿈의 소산이라면, 영화 속의 꿈의 세계는 꿈속의 꿈 일 것이다.

 1920년대의 파리의 풍경은 어떠하였나? 거트루드 스타인 부인이 파리의 살롱에서 당시의 청년 작가들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코트 피츠제럴드와 문학 토론을 하고, 피카소, 마티스, 만레이, 달리 등의 예술가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미국의 야만성이 싫다고 영국으로 귀화해버린 엘리어트 역시 파리에 있었다. 엘리어트가 누군지 몰라도 매년 4월이 오면 ‘사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그의 서사시 ‘황무지’를 읊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2011년의 미국인 소설가가 1920년의 파리에 가서 헤밍웨이를 만나고 스타인부인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습작을 고쳐 나간다. 이 소설가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사실 이쯤에서 나 역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스무 살 이었을 때, 나의 꿈은 ‘미국에 가서 헤밍웨이를 연구하고, 헤밍웨이와 같은, 선이 굵은 소설가가 된다’는 것이었다. 십 여 년 전 플로리다에서 유학하게 된 남편을 따라서 온 가족이 플로리다에 거주하게 되었을 때, 나의 첫 번째 희망은 키웨스트에 가서 헤밍웨이의 저택과 서재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헤밍웨이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마치 일생의 꿈을 이룬 듯 행복해 했었다. 

아, 나의 추억 속의 헤밍웨이가 영화 속에 나타나, 죽음을 응시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을 수 있다고 무뚝뚝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우리가 개별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역사 속의 인물들이 사실은 어느 시기에 한 장소에서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살아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파티장에서 서로 스치거나 혹은 카페에서, 살롱에서 어울려 예술과 인생을 논했던 ‘동네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물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구슬을 줄에 꿰듯 향수 어린 회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약에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잘 모를 경우, 이 영화의 매력은 떨어 질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아들에게 “저 사람이 쓴 작품은, 저 사람이 그린 작품이 지금 미국 미술관에…”라고 설명을 해 줬는데, 녀석은 “엄마의 설명이 없었다면, 영화가 재미없을 뻔 했어요”라고 고백했다. 

 “엄마가, 여름 방학 동안에, 저기 나온 화가들의 작품들을 미술관에 함께 가서 다 보여줄게. 스타인 부인의 조각상은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도 있단다.” 이 영화 덕분에 대학 입학을 앞 둔 아들의 여름방학은 영화에 나온 작가들의 소설과 예술작품을 보는 것으로 채워질지도 모르겠다

2011, 6, 15 



부록: 아래 2002년 Thanksgiving Holidays 기간에 키웨스트 헤밍웨이 집에 갔던 증명 사진들. 

헤밍웨이의집필실 

 
2층 계단참의 책꽂이



9년전, 내가 아직 '신인류'의 탈을 벗지 않고 버티고 있을당시의 모습. 현재보다 눈이 컸고 (눈이 처지지 않았으니까...), 머리는 신인류 동지들과 같이 알록달록하고, 지금보다 날씬했군. 우리집 아이들은 "엄마가 신인류 시절에 정말 잘 나갔는데~" 하면서 회상하곤 한다.  여기서 신인류란, 일본의 매우건전하고 퇴폐적인 일부 날라리  집단을 뜻한다고 애들이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은 손 씻었다. :)  


 어딘가 예전에 내가 쓰던 홈페이지를 뒤지면, 10년전 애들 끌고, 엄니 모시고 베르사이유며 파리를 누비던 사진들도 나올법한데.  그 때 우리 엄니 모시고 내가 잘 돌아다녔지...중풍을 벗어난 엄니와 두 초등생들 끌고, 이 성질 급한 내가 매일 씩씩거리며~  (나도 용감했던것 같아....)

엄마!  엄마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시겠지만, 엄마는 2001년에, 딱 10년전에 나하고 함께 유럽을 돌아다녔었어 (엄마는 엄마가 어디를 다녔는지 기억을 못해서, 친구들한테 자랑질하는데도 애로가 많쟎아.) 엄마가 로마에서 베드로성당 앞에서 커다란 솔방울을 집어 들고 "이것이 참 심상치 않아 보인다..." 했을때, 나는 엄마의 말을 흘려듣고 말았지.  그런데 여행안내원이 그 솔방울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상징물이라고 설명해줬어.  엄마는 나보다도 관찰력이 뛰어나. 

엄마는 몽마르뜨르 언덕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길에서 네 초상화 그린데가 어디지?" 이런식이지. 엄마가 오면, 우리 Midnight in Paris 를 다시 보러가. 그 영화에 나온 장소들은 엄마가 다 가 본 곳이야, 엄마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리고 엄마, 이제 10년만에 나하고 또다시 여행을 하는거야. 이번에는 워싱턴과 뉴욕과 나이아가라를 보여줄게.  엄마하고 나하고 매일 미술관에 다니는거야. 엄마 이제부터 이걸 외워놔. 어디가냐고 물어보면 "딸네집에" 뭐 볼거냐고 하면 "워싱턴, 뉴욕."  하루에 열번씩 읽어가지고 외워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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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14. 20:51



어제는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아직도 훤한 여덟시에 포토맥에 나갔다.  조지타운 입구 성벽의 따뜻한 돌 바닥에 누워서 키브리지 위에 높이 떠있는 달과,  다리의 가로등과, 다리 아래에서 달빛에 물든 찰랑이는 강물과, 나처럼 성벽에 앉거나 누워 있는 연인들을 구경했다. 밤바람이 선선했다.  초가을 하늘처럼 하늘이 높았다. 조지타운 대학의 종이 딩딩딩딩 아홉시를 알렸다.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시간마다 종이 울릴때, 그 종소리를 들으면 나는 마법의 시간속으로 스며들것 같다.  종이여 울리어라, 강물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기욤 아폴리 네르의 싯구절) 


달이 어찌나 투명하게 밝던지.  옛날에 할머니들이, 아기를 보고 "씻어논 달덩이처럼 잘 생겼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달덩이가 물에 방금 씻은듯 그렇게 투명하고 밝았지.  



달이 어찌나 밝던지. 주위에 불빛이 없는 숲속 길에서 달빛에 비친 내 그림자가 선명하였다.  밝은 달을 보려면, 숲속으로 가야해. 전등이나 가로등이 없는 숲속으로 가면 하늘의 달이 얼마나 환한자 알수 있지...

열시 반쯤 집에 돌아와, 찬홍이가 썰어준 수박 반통을 먹고, 그대로 푹 잤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수박을 먹었다. 이제 학교에 가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생선을 구워 저녁을 먹고, 그리고 다시 달빛이 흐르는 강변으로 나는 가야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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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13. 03:26


일주일만에 포토맥강에 나갔다. 오랫만에 만난 다섯남매 거위 가족.  지난번에 (3주쯤 전에) 카메라에 잡혔던 깃털이 듬성듬성하던 녀석들이 이제 매끈한 성년 기러기로 탈바꿈 했다.  그래도 아직 어미 아비보다는 몸집이 작다. 사진에서 가장자리에 어미아비가 호위하고, 가운데에 다섯마리가 몰려서 가고 있다.

원래는 수로에 모여 서 있었는데, 내가 다가가자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캐나다 거위의 자식 사랑은 멀리서 봐도 표가 난다, 반드시 어미 아비가 앞뒤로 호위를 하는 형상이므로. 사고없이 미끈하게 잘 자라 줘서 참 고맙다.  아마도 한 열흘쯤 후에 이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이 가족을 식별하기 힘들 것이다. 모두 몸집이 비슷해져 있을 것이므로 이것이 부모 자식간인지 그냥 한무리인자 구별이 안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 눈앞에서 성큼 성큼 자라나는 '새끼들'을 보면 오래된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의 주제곡인 Sun Rise Sun Set 을 혼자서 흥얼거리게 된다.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essed?  Is this the little boy at play? I don't remember growing older. When did they?  결혼식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곡인데...이 신부가 내가 안아 흔덜어 주던 그 아기였나?  이 신랑이 뛰놀던 그 소년이었나? 나는 기억 할 수가 없네, 언제 이들이 이렇게 컸는지... 

어떻게 이렇게들 자란 것인지.


이 가족은 두마리의 새끼거위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결혼을 늦게 하셨군요...  잘 자라나길.



아침 여섯시에 포토맥에 도착하여 걷기 시작하여, 지금은 오전 일곱시 쯤.  일어나기 싫다고 투덜대던 찬홍이는 나보다 한참 뒤처졌다. 저 멀리 빨간 점으로 보이는 우리 거북이. 


이제 조지타운에서 반환점을 찍고 집으로 가는 길.  
왕눈이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경우에는 나한테 꼭 붙어있으려고 한다. 찬홍이를 따라가기가 싫다는듯 자꾸만 뻗대는 왕운이. 찬홍이가 앞장서서 끌고 갈때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내게 오고싶어 한다.  그래서 결국 내가 데리고 다니게 된다. 





푹푹 찌는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에는 날이 선선해서 진땀 안내고 걸을수 있었다.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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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6. 00:11

 


비가 쏟아질듯 흐린 일요일 아침 일곱시.  아직 이른 시간이라 (게다가 비가 올것 같은) 지나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왕눈이의 목줄을 풀어주고 자유롭게 걷게 했다.  흐린날 수로의 물은 더욱 선명해보인다. 내 팔뚝만한 커다란 물고기들이 물위로 뛰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을 볼때면, 플로리다에 살때,  저수지나 계곡에서 물고기들이 일제히 춤을 추듯 뛰어 오르던 풍경이 떠오른다. 바다에선 돌고래들이 일제히 튀어 오르곤 했었다.  그곳에선 지금도 물고기들이 서로 경주하듯 이리 저리 튀어 오르고 있을것이다. (지상 낙원).




새끼양 같은 우리 왕눈이. 왕눈이는 걷다가 가끔 안아주면 좋아한다.  몸집이 작으니 사람을 따라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터. 가끔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군소리 않고 잘 따라 걷는다.




수로를 따라 걷다보면 수풀 사이로 그 바다같은 자태를 드러내는 포토맥 강.

 




이 너른 강을 보며 조지 워싱턴은 농업을 통한 부국을 꿈 꿨다.




수로변에 피어나는 야생 나리꽃들.  주변에 길쭉하게 뻗은 잎새는 나리 잎사귀가 아니고, 보름전에 피고 진 아이리스 줄기이다.






 



사람은 놀랍게 환경에 적응한다.  '오디' 따먹기에 맛이 들린 내 눈에 오디 나무들이 일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수로변에 오디 나무가 아주 많다는 것에 눈을 떴다.  그리고 제각기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오디나무는 익지 않은듯 노리끼리한 오디라도 미치게 달다. 이런 오디가 새까맣게 익었을경우 너무 달아서 오히려 질린다.  어떤 오디는 시큼한 맛이 나고 어떤 오디는 초콜렛처럼 강한 맛이 난다. 

오디가 지천으로 널려있지만, 미국인들은 오디따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미국인들은 오로지 식료품점에서 판매하는 것만 안전한 먹을거리라고 생각하는듯 하다.  찬홍이는 내가 오디 따먹는 것이 남들 눈에 챙피한 모양이다. "저기 사람 오니까 그만 따먹으시라"고 망보듯 잔소리를 하곤 한다. 나는 이경우 개의치 않고 따 먹는다.  나는 모르는 사람의 시선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내가 뭐 잘못하는게 없는데~

오디가 하도 지천으로 널려서, 내가 갖고 다니는 왕눈이 개똥봉지에 오디를 좀 따 모을까 하는 유혹도 받지만 이것만은 그만둔다.  공정한 게임을 하는 차원에서.

뭐냐하면, 자연에 널린 오디는 미국인들 빼고, 나하고 새하고, 작은 들짐승들의 먹이가 된다. (많은 것들이 땅에 떨어져 땅을 검게 물들이고 만다).  새는 나무 높은 가지의 오디를 따 먹고, 나는 아래에 처진 가지에 매달린 오디를 따 먹는다. 우리는 각자 먹을만큼 배부르게 오디를 먹는다.  새는 오디를 따서 봉지에 모으거나 하지는 않는다. 각자 배를 채울 뿐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내 배만 채우기로 하자.  개똥봉지에까지 오디를 따 모으는 욕심은 부리지 말기로 하자.

예수님이 언덕에서 중생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대충 내가 풀어서 다시 엮기를) "저기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저것들도 오늘 뭘 먹을지, 어디서 잘지 걱정하지 않는다. ...."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도, 사람이 살 만큼은 살게 되어있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개똥봉지에는 개똥이나 주워담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하자. 개똥봉지에 오디까지 담을것은 없는 것이니.


나는 그냥 열매나 따먹고, 추위를 가릴수만 있다면, 원시 채취시절의 삶을 살아도 좋으리... 







 물가의 푸른 치커리 꽃.  이 푸른색은 얼마나 유혹적인가...
 









조지타운 시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오른편에 찬홍이와 왕눈이가 보이고, 수로 저편에 네명이 달리기 하는 것이 보인다. 일요일 아침, 천국같은 한때를 보냈으니, 이제, 내일 시작되는 여름학기 수업 준비에 열중해야. 다음 한주동안 인텐시브 코스를 진행해야 하는데, 수업준비를 전혀 안했다. 지금부터 해야 한다. (뭐, 지금부터 하면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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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4. 22:27

 

아침 일곱시, 인적이 없고 숲이 깊어 어두운 터키런 숲길.  '쥬라기 공원'을 연상케 하는, 양치 식물 숲.

이 고사리같이 생긴 식물의 키가 내 가슴께까지 올라온다.




아침 여덟시. 햇살이 나뭇잎에 어렸다.


늘 갈때마다 번번이 깨닫곤 하는 것인데, 이곳은 숲이 깊어서, 썬크림을 바르고 가지 않아도 자외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빽빽한 숲. 깔깔대는 강물과 새들.

식전에 한바퀴 돌기에 딱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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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