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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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Walking2011. 8. 7. 22:29
2011년 8월 7일 일요일 아침 6시-8시

곧 비라도 쏟아질것 같이 찌푸린 하늘.  일요일 아침.



어제 아침에 멀쩡했던 길에 나무 한그루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다.



달리기 행사를 하는듯 단체로 뛰는 사람들 행렬.



그래서 포토맥 강변에 나가면 저절로 운동에 대한 자극을 받게 된다. 미끈한 선수들이 총 집결을 하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7. 06:26
2011년 8월 6일 토요일

아침에 찬홍이와 조지타운까지 왕복. 마침 오늘은 여러 단체에서 마라톤이나 걷기 행사를 열어서, 평소보다 강변 길이 활기가 넘쳤다. (아래) 단체 달리기 행사를 하고 집결한 사람들.








오후에, 버크 레이크에 갔다. 찬홍이 태권도 연습 하는 날이라서 나는 두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데려와야 하는데,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대신에 호숫가를 걸었다.  날이 후텁지근 했지만 그래도 바람도 불고, 그럭저럭 걸을 만 했다. (이미 여름은 갔으니까.... 7월이 가면, 여름도 간다...)



바위 주위를 찰랑이는 이 호수 물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나는 물을 들여다보는 일이 참 재미있다. 그냥 온종일 물속을 들여다본대도 좋을 것이다.




나를 황홀하게 해준 나비.  나도 나비처럼 멀리 훨훨 날아가고 싶다. 꽃잎에서 자고, 바람을 타고 나르고.















숲길을 걷다가, 쓰러져서 풍화해 가는 커다란 나무 기둥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무는 죽어도 부패하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
사람이나 동물, 생선은 죽으면 악취를 풍기는데, 나무는 쓰러져 죽으면 그냥 곱게 마르고 그리고 흙으로 돌아간다.  나무는 약취를 풍기지 않는다. 나무는 어떻게 그렇게 좋은 냄새가 나고, 그리고 죽어도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나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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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8. 3. 19:1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36143

“일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일전에 존경하는 어느 부인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저명한 분의 부인이기도 한 그분은 부군을 내조하며 남들이 누리기 힘든 영예로운 삶의 살아오셨는데, 나의 질문에 아주 소박한 대답을 했다. “학창 시절에, 내 작품이 큰 미술상을 탔는데, 그 때가 내 삶에서 가장 기쁘고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내 생애에서 가장 가슴 뛰던 순간은? 대학시절에 쓴 단편소설로 상을 받았을 때, 그 때 온 세상에서 종소리가 나는 것 같았었다. 그 후에 내가 직업 소설가가 된 것도 아니고, 내가 열망하던 다른 것들을 성취했지만 지금 돌아봐도 그 일은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는 똑같은 질문을 나의 독자들께도 던지고 싶다, “일생에서 가슴이 쿵쿵 뛰도록 행복하고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최근에 알렉산드리아의 극장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 ‘써니 (Sunny)’는 이제 중년이 된 사람들에게 우리 일생에서 가슴이 뛰던 한때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 준다. 영화 내내 흐르는, 내가 고교생이던 시절 듣던 팝송들, 그리고 과외가 금지된 시절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입시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가던 심야 버스에서 듣던 이종환의 음악 방송.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들어 아무도 대문을 열어주지 않는 날이면 담을 타 넘어가기도 하던 나의 고3 시절. 대학 입시준비한다고 아무도 특별히 신경 써주던 사람도 없던 시절. 뉴스 시작하면 늘 1번으로 출연하던 어떤 사람. 나는 영화 속 소녀들처럼 서클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크게 사고를 치지도 못하고, 평범하고 눈에 안 띄는 고교 시절을 보냈지만, 그러나 영화를 보던 내내 영화 속 소녀들과 함께 춤추고, 웃고, 울고 있었다.

 고교 시절,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잘생긴 남자 선생님 한 분을 점 찍어 놓고 허구 헌 날 그 선생님 생각으로 한숨 지으며 3년을 보내고 말았다. 그 때 그 선생님을 짝사랑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고를 치고 다른 일로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웃는다.

 영화 ‘써니’는 얼핏, 몇 해전에 흥행했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여학생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죽거리의 소년들이 성룡의 쿵후에 미쳐 있었다면, 비슷한 시대 서울 시내 어디쯤의 교복 자율화 여고생들은 나미의 ‘빙글빙글’과 보니앰의 ‘써니’에 맞춰 춤을 추는 것에 열광했다. 말죽거리의 고교생들이 가출, 자퇴, 퇴학의 과정을 거쳐 검정고시 학원에서 청춘의 한 순간을 보냈듯, 써니의 여고생들도 집단 퇴학을 당하고, 이제 중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났다. 각자 다른 삶의 풍경으로부터.

 중년에게만 추억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팔순을 내다보는 내 어머니가 손자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인 나도 모르던 내 엄마의 이야기. “수원에 있는 양재학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계집애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반대를 하시는 거야. 그래서 집 뒤 울타리에 개구멍을 뚫어놓고, 몰래 그리로 내뺐지.” 공부를 하고 싶어 목이 마르던 엄마는, 처녀시절 아버지 몰래 몇 십 리 길을 걸어 공부를 하러 다니던 이야기를 손자에게 하다가 말고 펑펑 우신다. 나도 모르던 엄마의 역사.

엄마에게 가장 가슴 뛰고 눈부시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는 엄마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한번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들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나는 고백한다. 당신들이 내 삶에 와준 것은 분명 축복이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내게는 분명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기쁜 나만의 역사가 있다. 아마 당신들도 그러하겠지. 그러하길 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나에게는 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영화 ‘써니’. 눈부신 여름 날, 온 가족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소풍을 나가는 것도 유쾌하리라. 써니!

***





알렉산드리아 호프만센터의 에이앰씨 극장은  에스컬레이터가 엄청 높다. 무서워서 다리가 후덜덜.  극장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무섭다.

2011.8.2.수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27. 20:5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31421


“21세기를 창조할 사랑스런 젊은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창조한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며, 저항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라고.”

 2차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된 적도 있고, 유엔 인권 헌장의 기초를 작성했던 프랑스의 사회 운동가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의 아주 짧은 책 한 권 ‘분노하라! (Indignez Vous!)’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성난 사자처럼 우렁차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나는 ‘Time for Outrage!’라는 제목의 영문 번역서를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삼복 더위에 폭포수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목 그대로 스테판 에셀은 독자들에게 ‘분노하고, 저항하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분노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노해야 하는가?

 유태인으로 나치의 학대를 당했던 에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행하는 폭력에 분노한다. 압제를 받았던 자가 약자를 짓밟은 압제자가 된다면 그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그는 보는 것이다. 경제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자는 더욱 소유를 증가시키고 못 가진 자는 더욱 기초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사회구조에 그는 분노한다. 누군가가 기초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거든 그가 최소한의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분노와 저항이다.

 저항의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사회정의 실천을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이 93세의 청년은 깊은 고민의 과정을 거친 듯 하다. 그는 “어떤 형식이건 폭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실패에 불과하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폭력을 중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폭력’이며 비폭력이 인류의 역사에서 ‘비폭력적 희망’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에게 있어서 ‘폭력이란 희망에 등을 돌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는 ‘저항’을 역설하지만 동시에 ‘비폭력’을 강조한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하며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각계 인사들을 격려하는 노르웨이에서 최근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아직 배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알려진 바로는 이슬람 문화에 적대적인 노르웨이 사람이 다문화적인 것에 관용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반감을 품고 백 여명 가까운 사람들을 살상하는 사고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 범행의 배후가 누구인지, 단독 범행인지 조사가 진행되어봐야 알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린다.

 그렇다면 나는 개인으로서 무엇에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가? 에셀은 눈을 뜨고 문제를 들여다 보라고 제안한다, 그것이 시작점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쉬운 일일까? 우리는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주변의 현상을 모두 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눈을 뜨고도 못 보거나,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외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스텐리 코언 (Stanley Cohen)의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에 이런 ‘외면’의 사례들이 많이 소개가 된 바 있다.

 가족 중에 힘없는 아동이 성적인 학대를 당할 때 ‘설마 우리 식구가 그럴 리가 없어’라고 외면하는 일은 아동 성학대의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눈 앞에 일이 일어나도 못 보거나 안 본다. 전철에서 누군가가 행패를 부릴 때 이를 나서서 말려주는 대신에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일은 나 역시 저지르는 일이 아닌가? 나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나는 왜 저항하지 않는가? 나는 왜 나서서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나는 왜 희망에 등을 돌리고 모르는 척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고통 당하고 있을 때 그의 고통을 직시하고 도우려는 몸짓을 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임무다. 그것이 에셀이 말하는 분노이며 평화적 저항이다. 그것이 희망의 역사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나는 최근 93세의 청년을 만났다. 그는 내게 ‘분노하라’고 속삭였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25. 09:16



엄마의 앨범을 만들었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비롯, 여러가지 사진과 내가 쓴 글 카피들을 모았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한 곳의 이름과 날짜를 크게 적어 놓았다.)  사실은 뭔가 좀더 정리를 해야 하는데 내가 경황이 없어서 대충 시간 순서대로 엮은것에 지나지 않는다.



엄마는 내가 쓴 칼럼들을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동안 하나 하나 읽으셨다.  내 글을 읽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그러셨다. 그걸 모두 카피해서 달라고 하셨는데, 내가 차일피일 미루다 이행하지 못했다.  엄마와 직접 관련된 글들만 사진 사이사이에 넣었다.


좀 더 잘 엮을수도 있었는데, 내 성에 차지 않는 기록물이라서 아쉽지만, 나로서는 이것도 힘겨운 작업이었으므로 이쯤에서 꼬리를 내리고 현실을 수긍해야만 한다. 내가 수퍼맨은 아니니까.

엄마에게 전자 앨범을 해 드려야지 생각하다가 그것도 못했다. 다음에 크리스마스때나 언제 전자 앨범에 모든 사진을 담아서 보내드려야겠다.  그러면 깜짝 놀라시겠지...  (나중에 후회 할 짓을 절대 안하겠다고 수시로 다짐하면서도 엄마한테 못되게 군일이 많다. 엄마를 어린아이 야단치듯 잔소리를 한 일도 많고...).  그래도 엄마가 한달 넘게 내 품에서 내가 지어드리는 따뜻한 밥을 잡수시고, 내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들을 맘껏 보여드렸으니, 나는 나중에 엄마 생각을 하면서 조금 기쁘기도 할 것이다. 옛날에 엄마 모시고 유럽여행을 했던 일을 나는 두고두고 기뻐했었다. 그래도, 엄마하고 넓은 세상을 둘러봤으니까.  그래도, 내가 엄마한테 유럽을 보여드렸으니까 (경비야  엄마가 댄거지만.)  나중에, 나는 '그래도 내가 엄마를 모시고 뉴욕을 가봤으니까, 미술관을 돌았으니까, 이 일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기쁘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를 주시기를 하느님께 빌어야지.  :-)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25. 06:11
내일 아침에 엄마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신다.  오늘이 우리집에서 남아 있는 하루.  오늘 뭘 하고 놀까 궁리궁리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나는 거기 한번 더 가고 싶다"고 하셨다.  거기란, 알렉산드리아의 토피도 아트센터를 말한다. 예술가들의 스튜디오가 밀집해 있는, 일명 "예술 공장."



그래서, 한가롭게 아침을 지어먹고, 집안 청소를 싹 해치우고 (외출 전에 집안을 청소 해놓고 나가면 돌아왔을때 상쾌하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


미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니까,  거리 구경을 하는 차원에서, 차에서 내려서 약 500미터를 걸어서 강변으로 갔다. 젊은 사람이야 가볍게 걸을 거리이지만 엄마에게는 힘든 일이다. 마침 내리막길이라서 걸을만 했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의 하나라서 거리가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엄마가 스커트와 스카프를 맞춰서 입으셨다. 어제 찬홍이 태권도장에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동안, 엄마를 모시고 동네 탈보트 아웃렛 매장에 가서 옷 구경을 했는데, 엄마가 탈보트 스커트를 무척 맘에 들어 하셨다.  나도 탈보트 면스커트를 즐겨 입는데 편안하고 실용적이면서 얌전하다. 엄마는 내가 평소에 입던 치마를 눈여겨 보고 있었나보다.  그래가지고, 동일한 디자인의 포플린 주름치마를 세장이나 고르셨다.  (엄마가 흡족해 하셔서 내가 엄마 사이즈에 맞는 것을 색깔별로 갖다 입혀드렸다.)  엄마는 한국에서는 이런 치마를 구하기 힘들다며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그래가지고, 엄마 치마를 무려 네장을 골랐다. :-)   엄마는 평소에 오빠나 언니가 한국에서 무지하게 비싼 치마를 척척 사드리니까, 그 치마값을 생각하고, 치마를  네장이나 사면 '가난한 미국딸이 파산'을 할까봐 불안해 하셨다. (치마 네장값이 한국돈 십만원쯤 한다고 가르쳐드렸더니 안심하시는 눈치이다. 하하하.)  탈보트는 그래도 중산층 아줌니들의 옷인데, 하필 가까운곳에 아웃렛 매장이 있는데다가, 요새 거기서 세일에 들어가가지고 정가의 1/4 가격에 파는데다, 내가 신규가입을 하면서 또다시 10% 할인을 받아가지고 엄청 싸게 사긴 했다.  그러니까, 어제 산 옷 값 다 해야, 평소에 우리 언니나 오빠가 엄마 블라우스 한장 사드리는 값밖에 안할걸 아마...  

엄마는 당신이 나한테 큰 폐를 끼치고 있다고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옷을 보니까 막 갖고 싶은거라.  오늘 기분좋게 어제 산 스커트와 스카프를 두르고 나들이를 나오신거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소풍을 간 곳이 알렉산드리아, 토피도 아트 센터인데,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도 이곳에 다시 들르셨다. 아무래도 미술 작업을 하는 분이라 이곳의 생생함에 매혹되는가보다.


찰판에 그림도 그려보시고~



작업을 하고 있는 화가를 쳐다보기도 하고


오늘 이 작품이 매력적이었다.



창밖풍경이 액자속 동영상처럼 보였다.


창밖의 알렉산드리아 항구 표정




"엄마, 엄마도 이런데 방하나 얻어서 그림 그리면 좋겠지?"
"좋겠지..."
"꿈을 가져...언젠가 될지도 모르지..."








 











항구가 내다보이는 식당에서 한가롭게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엄마는 피곤하신지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기어 올라가(?) 주무신다.  나는 사진 정리를 해가지고 CVSPHOTO.com 에 사진을 올려 현상주문을 했다.  조금 있다가 동네 CVS에 가서 픽업 해오면 된다.  사진을 정리해서 앨범을 완성시키면, 엄마의 한달간의 사진 정리가 끝났다.

지난주에 몰아서 사진 정리를 마쳤고, 이제 며칠분의 정리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나서 가방을 싸 놓아야지.

내일 아침에는 엄마를 씻겨가지고, 예쁘게 화장시켜가지고, 이쁜 옷을 입혀가지고 공항으로 가야지.  그래도 예술가답게 미국에서의 마지막 소풍 일정을 아트센터로 정하시는 센스.  엄마에게 수료증서라도 만들어서 보내드려야겠다. :-)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23. 09:27





딸네 학교 구경을 마치고, 서둘러서 찬홍이네 학교로 향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는데 퇴근 시간 길이 막혀서 한시간쯤 걸렸다.  마침 학교의 예배당에서 여섯시의 종을 울렸다.




이곳은 대학의 중심. 멀리 계단 연못 언덕위에 중앙 도서관이 보이고, 도서관을 마주 보는 곳에 행정관이 있다.


찬홍이 등뒤로 학교 행정관이 보인다.  찬홍이가 서 있는 지점이 이 학교의 가장 중심점이 될 것이다.







모름지기 대학의 중심은 -- 그 대학의 중앙 도서관이다.  대학의 중앙도서관의 위상을 보면 대략 그 학교의 분위기가 짐작이 된다.  일단 도서관 건물이 맘에 든다.




엄마가 걷는것이 힘이 드셔서 일단 대학 중앙 지점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차로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 학교는 지난해 가을에 내가 학회 발표를 하기 위해서 며칠 드나든적도 있어서 나도 대충 학교의 분위기에 익숙한 편이다.  찬홍이도 내 학회 행사에 구경을 하러 왔었는데, 그 때 이 학교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었다.  (그때는 이곳이 찬홍이의 학교가 될거라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찬홍이가 저 도서관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배우고, 사색하고 깨닫기를 바란다. 학교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22. 03:14


유람선에서 열두시 반쯤 내렸다. 차를 차고 슬슬 돌면서 친코티그 섬 구경을 하였다.  키 웨스트의 풍경과 비슷한 섬의 풍경이 이어졌다. 한 여름이라 휴가객이 많은데도, 이 섬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기념품 가게의 물건들도 값이 싸다고 여겨졌다.  어딘가 빛 바랜듯한, 상업성도 없어 보이는 그런 분위기.  식당에 앉아서 유리창 밖 풍경을 찍은 것이다.



엄마는 기념품 가게에서 지금 사진속에 입고 있는 분홍색 면 카디건을 하나 고르셨다. 미국인들은 여름에 헝겊을 걸레처럼 쥐어 비들은듯하게 염색을 한 셔츠를 즐겨 입는다. 엄마 눈에 그것이 안 띄었을리가 없지. 엄마는 그런 염색셔츠가 입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걸 골라놓으셨는데 반액 세일을 해서 값이 꽤 쌌다.  게다가 상점 아저씨가 손님이 없어 심심했던듯 우리 식구에게 자꾸만 말을 붙이고 하더니만 엄마에게 손톱소재하는 도구를 그냥 선물로 드렸다.  친코티그 등대가 그려진 기념품이었는데, 그냥 주다니.  그래서 엄마에게 '미국 남자가 엄마한테 반했나봐, 이걸 엄마한테 선물로 준대" 했더니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다.  "엄마 재주도 좋아, 미국 남자가 막 선물도 주네~"



어느집 창가에 채송화가 예뻤다.


찬홍이가 뒷자리에 앉아 카메라로 아무렇게나 찍은 풍경들





친코티그 섬을 떠나기 전 바닷가 슾지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해가 나고, 다시 폭우가 쏟아지고. (나는 이런 날씨를 좋아한다.)


비를 맞고 서있는 길가의 해바라기 무리.



버지니아 농장 풍경




오후에는 퇴근시간과 맞물려 네시간만에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밥해먹을 기운이 없을것 같아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타이슨스 몰, 타카 그릴에 가서 엄마에게 불고기 도시락과 우동을 사드리고, 찬홍이는 돈까쓰를 먹고, 나는 엄마가 배부르게 잡수시고 남은 우동을 조금 먹고 그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거실 바닥에 나뒹구러진채로 뒹굴뒹굴하다가 송장처럼 잠이 들었다. :-)  바닷가에 다녀오면 잠이 잘 온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22. 02:56

친코티그 섬에서 배를 타고, 말들이 사는 아싸티크 섬 가까이로 간다. 이 섬의 주위를 돌면서 야생말과 야생 생물을 관찰한다. 여기 찍힌 말들은 내 작은 디지탈 카메라를 최대한 줌인하여 찍은 것들이다 (귀챦아서 큰 카메라를 안갖고 갔는데, 후회 막급이었다.)

카누를 탄 사람들이 섬가로 가서 말 가족을 구경하고 있다. 왼편에 말 부부가 보이고, 오른편에 망아지가 엄마 아빠 쪽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닷가에서 수초를 뜯어먹고 있는 말.



말 주위에 이글릿 이라는 백로같이 생긴 새들이 있다. 이들은 말과 공생관계로 보인다.

섬의 평지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이글릿이 말의 잔등에 올라 앉아있다. 말은 개의치 않는듯하다.

뭐 이렇게 섬 주변의 생물들을 구경하면서 바다위를 둥둥 떠 다닌다.
날이 쨍쨍하고 뜨거웠는데, 얇은 차양시설의 배 안에서는 더운줄 모르겠더라.  바람이 선선했던 까닭이다.



내 앞에 앉아있던 이 커플은, 내것같은 커다란 캐논 카메라와 작은 디지털카메라 이렇게 두가지를 갖고 와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나중에, 배에서 내리기 직전에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바다에 빠뜨렸다. 그걸 어떻게 찾나, 바다에 빠진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뒷자리의 아기가 울어대서, 좀 짜증이 났다. 한두푼도 아니고 43달러씩이나 내고 (셋이면 120달러가 넘는데) 배를 탄건데, 새벽부터 일어나 세시간이나 쉬지도 않고 달려왔는데, 우리 엄마가 평생에 한번 보는 말섬인데, 배 탄 내내 뒤에서 아기가 소리를 지르며 울어대니까, 피곤하고 짜증나고 그랬다. 그렇지만 엄마는 아무 말씀 안하셨고, 찬홍이도 잠자코 있었고, 나는 이들을 피해서 저기 앞에 빈자리로 가고 싶었지만, 나도 꾹 참았다.  우리 가족이 자리를 욺겨버리면 이 사람들이 더욱 난처한 기분이 들을 것 같아서 (자리를 옮기면 --너 싫어서 우리가 자리 옮긴다--는 메시지가 분명하니까, 그런 짓을 하면 안될것 같았다.) 인내의 시간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척, 자리에서 일어나 애 울음소리에서 멀어진 곳에 내내 서 있었다. (나중에는 애 엄마가 애 달랜다고, 내 쪽으로 자꾸만 오길래 내가 화가 나서 머리 꼭지가 돌았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애가 우는건 애엄마 잘못이 아니고, 애가 우는건 애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거니까, 내가 참아야 하느니라~ )



아무튼 나는 한가로운 말을 구경하러 간 것이니까,말에 집중 하자구!














말 구경을 잘 했다. 사실 '돌고래'도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았다. 옛날에 플로리다에서는, 바다에서 헤엄치다 보면 멀리 돌고래들이 보였었는데... 그리운 플로리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22. 02:37
워싱턴에서 180마일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오션 시티라는 대서양 연안의 휴양지가 나오는데, 그 인근에 Assateague 라는 섬이 있다.  이곳은 한마디로 '말(馬) 섬' 이라고 할만하다. 야생 말 300여 마리가 살아가는 섬이다.  엄마에게 이 섬을 보여드리기로 했다. (나도 말로만 듣고 처음 가보는 곳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짓고, 씻고, 먹을것좀 챙기고 이럭저럭하다가 나가서 주유소에서 개솔린을 채우고, 출발한 시각이 5시 45분.  목적지인 섬에 도착한 것이 9시 정각.  논스톱으로 세시간 15분만에 189마일 거리를 달려 갔다.

애나폴리스 베이 브리지 가는 길에 찬홍이가 찍은 아침 해. 여섯시 반쯤이었나보다.


이윽고 펼쳐지는 바닷가 습지대의 초원.



우리가 도착한 곳은 Chincoteague 섬의 유람선 선착장.



선착장에 피크닉 테이블이 있길래, 준비해간 도시락을 펼쳐놓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수박, 아침에 지은 밥, 단무지와 초고추장, 김, 찐호박, 피칸 파이. 저 수박은 내가 거의 다 아작을 냈고, 찬홍이와 엄마는 밥을 먹었다. (요즘 나는 거의 수박 도깨비이다. 하루에 평균 한통의 수박을 먹어치우고 있다. 찬홍이의 일상은 매일 나가서 수박을 한덩이씩 사갖고 오는 것이다.)


일인당 43달러를 내고 타는 유람선. 이 작은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돌면서 말이나 새, 그밖의 자연 관찰을 한다.
나는 언라인으로 승선비를 모두 내고 영수증을 프린트 해 갔는데, 선장은 스마트폰을 뒤지더니 내 이름을 확인하고 만다. 영수증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좋은 세상이다.)








이 알록달록한 보자기는 테이블보도 되고, 담요도 되고, 만능으로 사용하는데, 몇해전 스미소니안 마프리칸 박물관에서 기념품으로 구입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여인들이 손바느질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 용도는 아프리카 남자들의 '치마'라고 한다. 키가 커다란 아프리카 남자들이 이 보자기를 허리에 두르고 서있는걸 상상하면 되겠다.  우리는 이걸 야외 테이블보로 사용하고, 바닷가에서 아프리카 놀이를 했다.




배가 떠나기를 기다리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찬홍이와 나. (엄마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무관한 표정.)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22. 00:2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28045

 “이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한국 영화 ‘투사부일체’에서 무식한 깡패 중간 보스역의 정웅인이 뭔가 납득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습관처럼 뇌까리는 대사이다. 그는 영어도 못하면서 마치 라스베이거스에서 몇 년 살다 온 사람처럼 아는 체를 하는데 그의 천연덕스러운 무식함에 관객은 실소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며칠 전에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지하철에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데리고 올라타자 어느 승객이 개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비난을 했다고 한다. 아, 이 승객의 눈에는 개만 보였을 뿐, 그 개를 데리고 탄 사람의 상황이나 그 개의 특수성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개가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띈 존재라는 것을 알았던들 이런 소동을 피우지는 않았으련만. 눈을 떴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 모르면 봐도 못 보는 것이다.

 한국에서 방문한 엄마를 모시고 다니면서 나는 요즘 신체적으로 약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시다. 그래서 어디에 구경을 가는 일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지육신이 건강해서 남을 부축해가며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거뜬히 걷는 나로서는 거동이 불편해서 뭘 못한다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초음속 비행기처럼 행동할 때, 엄마는 달팽이처럼 느리다. 그래서 우리 엄마의 별명은 ‘달팽이 엄마’다.

 엄마를 모시고 다니면서 나는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전시장에서 신체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설을 마련해 놓았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뉴욕과 워싱턴DC, 리치먼드에 이르기까지 직접 엄마를 모시고 간 미술관들에서는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전시장 구석구석, 휠체어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따금 어느 구석 계단 몇 개를 오르내려야 하는 공간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휠체어 전용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져 있고 해당 자원봉사자의 기꺼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시실 안내 서비스도 다양하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맹인 안내견이 전시장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고, 그 외에 다른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개도 전시장에서 본 적이 있다.

 전에 내가 근무하던 플로리다의 어느 학교에서는 개가 ‘상담선생님’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개가 선생을 한다고? 투사부일체의 정웅인이라면 “이건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개는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개에게 달려가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신세한탄을 하거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으며, 개는 묵묵히 아이들을 돌봤다. 그 개는 아주 따뜻하고 자애로운 선생님이었다.

 윌리엄스버그에 가면 록펠러가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던 집이 일반 관객에게 공개된다. 언젠가 이곳에 갔을 때,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는 록펠러 집을 소개하는 전문 안내원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린 후에 우리들을 대기실에서 정원을 지나 본채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가면서 그제서야 나는 발견했다. 그가 흰 지팡이에 의지하여 우리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그는 실수 없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우리들을 집의 이곳 저곳으로 안내하며, 실내의 그림과 비품들을 마치 눈에 보이듯 설명해 주었다.

나는 록펠러 집을 구경하는 것보다, 시각장애 안내인이 눈 뜬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며 안내해주는 것에 반쯤 정신이 홀려 있었다. 그의 설명은 진지했고 성실했으며 우리들은 무
엇에 홀린 듯 그의 설명을 경청했다.

 “시각장애인이 그림 설명을 하고 집 안내를 한다고? 그것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군!” 이 세상에는 우리가 눈뜨고도 놓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9. 11:51


워싱턴 디씨에 한국 정원이 잘 가꿔진 저택이 있는데, 그 댁 안주인의 배려로, 오후에 엄마 모시고 가서 정원구경도 하고, 밥도 얻어 먹고 왔다.  엄마는  미국에도 이런 한국 정원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엄마를 정성껏 대접한 안주인의 사려깊음에 깊은 감동을 받으신 듯 하다. (찬홍이는 할머니 덕분에 덩달아 인생공부 제대로 했다. 왜냐하면 그댁 안주인께서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이다.)





비밀의 화원처럼 숨겨진 정원을 신나게 돌아보고 있는 엄마와 나, 그리고 찬홍이. 


한국탑에서는 탑돌이를 하면서 각자 소원을 빌기도 했다. 나의 소원? 나의 소원은 '통일'이다.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이런데서 탑돌이 하면서 소원을 빌을 때는 그래도 양심상 좀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원대한 소원을 빌어야 하는것 아닌가...


 

우리를 맘껏 뛰놀게 내버려둔 이댁 안주인의 사려깊음에 감사 드린다. 이 세상에 우리 셋만 있는듯한 호젓한 시간이었으니까.








엄마에게 특히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늙으신 엄니가 딸의 온갖 행패와 구박을 꾹꾹 참으면서 착하게 세상 구경을 하는것을 보고 주위분들이 엄니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작정을 하신듯 하다.  오늘의 구경을 위해서 음으로 양으로 마음을 써주신 분께 감사를 보내드린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8. 09:10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7. 00:28


토요일. 오늘은 찬홍이가 태권도장에 가야하고, 저녁에 나가야 하는 바쁜 날.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알링턴의 카삿 카페로 나들이를 했다.  벽에 지역 화가들의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엄마가 특히 좋아하는 곳.  오전 아홉시.

엄마를 위해서는 프렌치 토스트. 내것은 수란에 감자, 과일을 곁들인것. 찬홍이는 -- 소세지 요리.




엄마의 접시를 보시라~ (미국 생활 25일만에 미국 할머니가 다 되셨다.)


길거리 늑대그림이 그려진 광고판이 예뻐서. (사랑스러운 바보 늑대.)



삭당에서의 엄마의 옷차림과 현재의 옷차림에 차이가 난다.


바로 이 옷가게에서 엄마가 옷을 하나 사셨다. 현재 입고 있는 옷. (피카소 그림중에서 핑크 시대의  삐에로를 연상시키는 무늬와 색감이다).

전에 엄마 모시고 카삿 카페에 왔을때, 이웃의 옷가게 구경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가 이 옷을 무척 탐을 내셨다. 내가 보기엔 옷에 비해서 값이 터무니 없어 보여서, '다른데 가면 더 좋은것 많으니까 참으시라'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이 옷이 40% 할인하는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그 값이면, 뭐, 여전히 좀 비싸지만, 그래도 살만하네~)  그래서 이 옷을 사게 되었다.  돈이야 엄마 돈 엄마가 쓰시는것이고, 나는 코치만 하는거다.  엄마는 입고 싶던 옷을 사서 만족. 나는 할인가에 사서 만족. 우리 모두 만족~

즐거운 인생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7. 00:16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리버벤드 파크.  유은렬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6. 01:12




엄마는 아침 해가 뜰때의 색깔과, 한낮의 해와 해가 넘어갈때의 해의 색깔이 모두 각기 다른 이유를 잘 모르신다.  왜 어떤 사람은 해를 빨갛게 칠하고, 어떤 사람은 해를 노랗게 칠하는지, 무엇이 정답인지 내게 물으신다. (난감하도다).  그리고 마침내는 왜가 어떻게 뜨고 지는건지 물으신다.  엄마 눈앞에 지구본이 있어도, 엄마에게 지구는 평평한 세상이다.  그리고 동쪽에서 해가 올라와서 서쪽으로 내려가는거다.

저녁을 먹고나서 한가롭게 앉아있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하시길래, 마침 눈앞에 지구본과 플래시가 보이길래. 엄마를 앉혀놓고 엄마 앞에 지구본을 놓고, 내가 커다란 플래시를 들고 서서 지구본을 플래시로 비추며 해가 뜨고 지는 원리를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해가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빙그르 도니까. 해가 비추는 곳은 낮이고, 해가 안보이는 반대편은 밤이고. 그러니까. 지금 한국에 해가 비추고 있으니까, 여기 워싱턴은 그 반대에 있으니까 밤이지. 자 플래시는 가만히 있으니까, 엄마가 지구를 돌려봐."

엄마는 해와 지구의 관계를 눈으로 보면서 확인 하셨다. (제대로 알아 들으신것 같아 보였다.) 
"엄마를 집안의 태양이라고 그러지? 엄마는 중심이야. 해와 같은거야. 항상 빛나고 있어.  태양은 항상 빛나. 꺼지지 않아. 그리고 자식들은 지구처럼 태양을 중심으로 바삐 움직이는거야.  지구는 태양의 새끼야."


나는 지구나 태양이 별이라는 얘기를 해준다. 엄마는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다. 별은 저렇게 작고, 태양은 저렇게 크고, 지구는 이렇게나 크고 넓은데, 지구가 아주 작은 별이라니?  
"엄마 저기 저 밖에 저 나무 보여? 저 나무 진짜 그 앞에 가보면 우리 아파트보다 키가 큰 나무야.  그렇지?  그런데 여기서보면 저 나무는 아주 작아보이고, 나는 아주 커보이지?  나는 가까이에 있으니까 커 보이는거고, 저 나무는 멀리 있어서 아주 작아보이는거야.  그러니까 별이 작아보이는 이유는 아주 아주 아주 멀리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야.  지구의 엄마는 태양이지만, 사실은 태양에게도 엄마별이 있어. 태양도 결국 어떤 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을거야.  우주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어."

엄마는, "아유, 무서워. 우리가 그런 속에 살고 있는거니?  그러면 우리가 사는 지구를 잘 지켜야 하는거구나. 지구를 어떻게 해야 지키니?"

나는 픽 웃으면서, "엄마 그래서 환경보호론자들이 운동도 하고 그래~ 그래서 '환경보호'를 해야 하는거지." (엄마는 지구와 환경보호의 관계를 이제 이해하는 눈치이다.)

엄마는 해와 달이 어떤 관계인지 묻는다. 해는 낮에 뜨고 달은 밤에 뜨니까 둘다 아주 큰 별인가보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체와 거리와 시각의 문제를 설명해준다.  작은것도 가까운것이 커보이고, 큰것도 멀면 작아보이고.  그런식으로 해와 지구와 달의 관계를 설명한다. 엄마는 한가지 원리는 제법 정확히 이해하시는것 같다: 달의 엄마는 지구, 지구의 엄마는 해. 지구는 해의 새끼, 달은 지구의 새끼. 지구에게도 새끼가 있군. 저렇게 큰 달이 지구의 새끼군!


이제 엄마는 "그런데 달은 왜 맨날 사람을 따라다니니?"하고 묻는다. 하하하. 그래서 나는 다시 지구본에 플래시를 비춘다. 플래시를 멀리서 가까이서 비춰본다. 플래시를 멀리서 비추면 지구의 절반이 달빛을 받게 된다. 플래시를 가까이서 비추면 일부분만 빛을 받게 된다. 

"엄마, 엄마가 이 지구위에 대한민국, 그 속에서도 일산에 살고 있어. 이 지구본에서 일산을 찾기가 힘드니까 그냥 서울이라고 치자고. 서울 여깄지. 이 먼지만한 점이 서울이야.  이 먼지만한 서울 속에 먼지보다도 작은 인간이 꼬물꼬물 걸어가고 있어. 엄마, 인간이 몇시간을 걸어도 그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도 않을거야. 그렇지?  달에서 보자면 인간이 제자리에 있는것처럼 보일거야. (엄마, 끄덕끄덕)  바로 그거야. 인간이 걷는 걸음으로 아무리 걸어봤자, 달하고 인간의 거리가 별로 변하는게 없어.  그러니까 달이 따라오는것처럼 보이는거야.

만약에 엄마, 이 지구위에 아주 커다란 거인이 있어서, 거인이 달빛 아래서 성큼성큼 걸으면, 세걸음만에 거인은 달빛 밖으로 가버릴걸. 그 거인은 달이 따라온다는 생각을 안 할거야.  달과 거인의 거리가 변하니까.  (엄마, 끄덕끄덕).


엄마는 사람들이 이런것을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묻는다. 
"엄마처럼 이런것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지. 그러니까, 엄마도 아주 위대한거야. 모르는것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게 중요해. "

나는 엄마가 무식해서 한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엄마 자식이고, 엄마는 나를 낳아 키웠으니까. 엄마가 모르는것은 내가 설명 해 드리면 되는것이니까. 나는 엄마가 아직도 뭔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모르는것은....나도 공부해야 하는거지.  어차피 달에서 보기에 엄마의 지식이나 내 지식이나 차이가 없어보일걸. 하하하. 내 눈에도 달이 나를 따라오는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니까. 하하하. 지식은 ...허망한거다. 어차피 지식은 허망한거다... 하지만 지식은 달콤한 사탕처럼 달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탕이 필요하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5. 01:36



메트로폴리탄에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 있다.  높다란 유리벽 너머로 뉴욕 센트럴파크가 펼쳐져 있다. 이 조각품 왼쪽에 카페가 있다.

작품 칼레의 시민의 배경이 되는 역사가 있다. 백년전쟁 당시에 영국군이 프랑스 칼레지방을 정복한다. 칼레 시민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다 패배하고 마는데,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저항이 심했던 칼레 지방 사람들이 괘씸했을것이다. 그는 칼레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도 있었고, 결국  칼레를 대표하는 여섯명을 처치하겠다고 했다.

누가 칼레를 위해 죽을 것인가? 

이때 칼레의 어느 귀족이 '내가 죽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자 칼레의 고위 귀족들이 차례차례 나섰다. 여섯명의 자원자가 나타났다.  결국, 에드워드 3세는 이 여섯사람을 방면하고, 칼레의 시민 어느누구도 희생당하지 않았다.

'귀족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만하다. (아무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이야기도, 로댕의 작품도 모두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를 감동시킨 것이 있다.

나는 이 작품앞에서 엄마에게 별다른 설명을 안하고 그냥 지나쳤다. 엄마도 별 말 안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가 휠체어를 미는대로 그냥 가만히 지나가셨다.

그런데, 나중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계단에서 스케치를 할때, 엄마는 이 칼레의 시민을 스케치를 하셨다. 여섯명의 사람이 모여 서 있는 그림.  "엄마,, 근데 이건 뭐야?" 내가 이 사람들의 정체를 모르고 엄마에게 묻자, 엄마가 말했다. "그 조각있쟎아. 사람들이 서 있는 조각. 그 사람들이 여섯명이 서 있었어. 그치?"

엄마는 제목도 모르는채로 그 여섯명의 사나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난 사실 칼레의 시민이 여섯인지 다섯인지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로, 이것을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엄마가 뭘 모른다거나, 무식하다거나, 딴소리만 해 댄닫거나, 내 말귀를 못알아듣는다고 단정할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엄마는 분명, 내가 못보는 -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을 보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작품 칼레의 시민의 배경 이야기를 해 드린다.  엄마는 내가 해 드리는 얘기를 기억할까? 알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는 자신의 스케치에 칼레의 시민이라고 적어 놓았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14. 09:54

[살며 생각하며] 세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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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소리를 듣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오직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절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시청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영감 가득한 작가로 변신한 헬렌 켈러(1880-1968)는 그의 수필 ‘세상을 사흘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헬렌 켈러가 사흘의 시간이 허락 된다면 보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날, 그는 자신을 교육시켜준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꼽는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다고. 그 다음으로 그가 꼽는 것은 사랑하는 개, 그리고 그의 일상을 지키는 물건들. 매일 그의 손이 닿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중한 물건들. 오후가 되면 숲으로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밤이 되면 인간이 만든 조명의 아름다움을 쳐다보고 싶다고.

 둘째 날,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본 후에, 그는 인류가 수 천 년을 살아오면서 이룩한 자취들을 보기 위하여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한 곳은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에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볼 수 있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간이 이룩한 예술의 성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녁이 되면 그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아가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기와 빛과 움직임을 보고 싶다고 한다.

 셋째 날,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본 후에 그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에 뉴욕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광경은 굉장할 것 같다고 그는 상상한다. 그리고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그는 바삐 달려가 발 아래 펼쳐지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서 도시의 골목에 서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상상한다. 마지막 날 저녁이 다가오면, 그는 극장으로 달려가 유쾌하고 웃기는 연극을 보겠노라고 한다. 그는 아마도 깜깜한 어둠으로 돌아가기 전의 슬픔을 달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헬렌 켈러가 마지막 날 아주 웃기는 연극을 보겠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의 슬픔이 전이가 되어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만약에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사흘뿐 이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그 마지막 사흘을 보낼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 매일 똑같이 흐르는 일상이 갑자기 보석처럼 빛나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ESL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들 대부분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답을 했다. 어느 여학생이 가족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 눈물이 전이가 되면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눈물을 질금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헬렌 켈러는 “내일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될 것처럼 그렇게 오늘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평생 어둠 속에서 상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한 사람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한국에서 엄마가 오셨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엄마를 모시고 워싱턴 일대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닌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미술관에 가면 무료로 대여해주는 휠체어를 빌려 엄마를 태우고 다니며 엄마에게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보여드린다. 나는 엄마가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내일은 엄마를 모시고 새벽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떠난다. “엄마, 엄마가 가는 그 미술관은, 옛날에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눈을 단 한번이라도 뜰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가서 보고 싶어하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도 꼭 보셔야 해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엄마 얼굴이 가장 보고 싶을 거예요.”

*** 월요일에 급히 원고를 써서 보냈는데, 신문이 나온 날은 뉴욕에 다녀온 다음날 (수)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원고 쓰면서 벌써 다녀왔다고 쓸수도 없었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일은'으로 썼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4. 09:35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