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0. 5. 21:40

The Botany of Desire: A Plant's-Eye View of the World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73039

“룸메이트 부모님이 사과 농장에서 따온 사과를 한 바구니 갖다 주셔서, 요즘 사과를 실컷 먹고 있어요.” 기숙사에 들어간 작은 아들이 사과 얘기를 전한다. 벌써 사과 따는 계절이 왔구나 깨닫게 된다.
 
본래 카자흐스탄이 원산지인 사과나무가 미국에서 왕성하게 번식하게 된 배경에는 전설적인 미국 사과의 아버지, 조니 애플씨드 (Johnny Appleseed, 1774-1845)의 노력이 있었다. 본명이 존 채프먼 (John Chapman) 인 그는 매사추세츠에서 시작하여,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에서 사과묘목을 대량으로 키워 신대륙에 이민 온 사람들에게 판매하였다. 그에게서 묘목을 사 가지고 간 사람들에 의해 미국은 ‘사과의 대륙’으로 변모하게 된 셈이다.

 마이클 폴렌 (Michael Pollan)은 그의 저서 ‘욕망의 식물학 (The Botany of Desire)’에서 채프먼이 북미대륙에 사과를 번식시킨 이야기를 상세히 전하면서 인간과 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펼친다. 채프먼이 사과를 번식시킨 것인가, 아니면 사과가 번식을 위해서 존 채프먼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일까? 인간은 달콤한 사과를 욕망하고, 사과는 달콤함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번식에 성공을 한 것은 아닌가?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도 제시 된바 있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것이 있는가? 아니면 인간은 유전자의 번식을 위한 생존 기계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확고하게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관점의 전도에 불편함을 느낄 수 도 있겠으나, 인간중심에서 약간 벗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주변 현상을 관찰 하다 보면 우리의 사고가 유연 해 질 수도 있다.
 
내가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사과를 따러 갈 때, 나는 나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지만, 사과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번식 시켜주기 위한 대리자가 그 앞에 얌전하게 나타나는 격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서 그 달콤한 과육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나는 사과의 하수인이 된다. 그런들 어떠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노라”고 공언한 철학자 스피노자 역시 사과의 하수인이 아니었던가.
 
워싱턴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해마다 인근 사과 밭에 사과를 따러 간다. 볕 좋은 가을 하늘 아래서, 향기로운 사과를 실컷 따 먹고, 봉지에 담은 것만 값을 치르고 돌아오는 한나절의 소풍은 가을에 놓칠 수 없는 행사이다.
 
이태 전에는 주위의 친구가 소개한 어느 시골 사과 밭에 갔었다. 산골의 노부부가 운영하는데 규모가 작고, 농약도 치지 않는 사과 밭이라고 했다. 비포장 도로를 한참 헤매다가 찾게 된 정말 산골 구석의 과수원이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마당에 사과 따는 도구며 바구니들이 널려있는 채로 집 주인은 나가고 없었다. 일요일 오전이니 모두들 예배당에 간 것일까? 우리 가족은 주인을 기다리다가, 그냥 사과 밭으로 올라가 사과를 실컷 따먹고, 들통에도 따 담았다. 그렇게 한참을 놀면서 기다려도 사과 밭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과 값을 내야 할텐데, 주인이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우리들은 가을꽃이 우거진 그 집 마당에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현관 앞에 사과 값을 놓고 돌멩이로 눌러 놓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여 그 과수원에 전화를 해 보았다. 버지니아 시골 사투리의 노인이 전화를 받았다. 사과를 따고 사과 값을 놓고 왔는데 받으셨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내가 일러주는 곳에 가서 돈을 발견하는 노인. 일러줘서 고맙다며 전화 너머에서 노인이 인사를 했다.
 
시월이 가기 전에 사과 밭에 가 봐야지. 그 산골 사과 밭의 사과도 잘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태 전에 내가 갔던 그 버지니아 시골의 사과 밭 주소를 잃어버렸다. 내게 사과 밭을 소개해준 친구도 이제 이곳에 없으니, 나는 그 산골 구석 노부부의 사과 밭을 찾지 못하리라. 그 사과 밭이 정말 있기나 했던 것일까?


사진 파일을 찾아 보니 2009년 10월 11일에 사과 밭에 갔었다.


2011,10,5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0. 3. 20:21



'망각'도 능력이라고 한다. 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의 기억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인간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선택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 많은 시장에서 스치고 지난 모든 사람을 기억한다면 내 머릿속은 너무나 복잡할 것이다.  나는 대부분을 잊고 지나가는 것이다. 오직 특별한 것들만 내 기억 장치에 남게 된다. 이것도 생존의 기술이며 능력인 것이다.

쥐 실험을 보았다. 쥐를 커다란 수조에 빠뜨린다. 쥐는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헤엄을 친다. 수조 어디쯤에 깡통 모양의 물건을 놓아둔다. 이것은 물 속에 감춰져 있지만, 일단 이 깡통에 다다르면 물에 빠질 염려는 없다. 물속에 감춰진 섬인 셈이다.

쥐는 필사적으로 헤엄치다가 우연히 그 깡통섬을 발견하고, 그 섬위에서 잠시 안도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몇차례 쥐를 수조에 빠뜨리고, 그 쥐는 몇차례 동일한 위치에 있는 깡통섬을 발견하고, '학습'하게 된다. '좋았어, 물에 빠지면 나는 그 깡통섬으로 헤엄쳐 가겠어.'

그러다가, 깡통섬의 위치를 옮긴다.  대부분의 쥐들은 본래 깡통이 있던 자리 주변을 찾아 헤메다가 곧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위치에 놓여진 깡통을 찾게 된다. 상황 변화를 파악하고, 새로운 위치로 이동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쥐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이는 새로운 학습이면서, 동시에, 전에 학습한 것을 망각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전에 살던 집의 주소나 전에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현재의 주소나 번호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한다. 전의 주소나 번호를 기억해내기 위해서는 머리를 갸우뚱하거나, 혹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뇌의 어느 부분에 손상을 입은 쥐의 경우, 그 쥐는 본래의 깡통섬 주위를 끊임 없이 맴돈다. 번번이 깡통섬이 그곳에 없음을 체험하면서도 번번이 물에 빠졌을때 그 쪽으로 향한다. 이 쥐는 깡통섬의 위치는 기억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그자리에 없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 혹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그 기억을 지워야 하지만, 지우지 않는다. 혹은 지우지 못한다. 자꾸만 그쪽으로 향한다.

쥐만 그런게 아니지.  사람들이 쥐 실험을 하는 이유는, 쥐의 행동에서 인간의 행동을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http://www.opposingviews.com/i/health/alternative-medicine/israeli-study-marijuana-blocks-ptsd-symptoms-rats

According to a new study conducted at the Haifa University psychology department and published in the Neuropsychopharmacology Journal, rats that were treated with marijuana within 24 hours of a traumatic experience successfully avoided any symptoms of PTSD (post- traumatic syndrome).

Dr. Irit Akirav, who led the study, said: "There is a critical window of time after trauma, during which synthetic marijuana can help prevent symptoms similar to PTSD in rats."

In the experiment, rats were exposed to extreme stress and then divided into four groups: the first given no marijuana, the second given a marijuana injection two hours after being exposed, the third after 24 hours and the fourth after 48 hours.

The researchers examined the rats a week later and found that the group that had not received marijuana, as well as the one that received the injection after 48 hours, displayed PTSD symptoms and a high level of anxiety.

Although the rats in the other two groups also displayed high levels of anxiety, the PTSD symptoms had totally disappeared.

"This shows that the marijuana administered in the proper window of time does not erase the experience, but can help prevent the development of PTSD symptoms in rats. We also found that the effects of the cannabinoids were mediated by receptors in the amygdala area of the brain, known to be responsible for mediation of stress, fear and trauma," Akirav said.

While a decisive parallel between emotional states in humans and animals cannot always be drawn, Akirav was confident psychiatrists will take her research forward to implement it on 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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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9. 28. 20:0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68922

 독서의 계절로 일컬어지는 가을이 강물처럼 우리 곁을 지나고 있다. 가을이 아주 가기 전에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다. 그런데 올 가을에는 나 혼자 방구석에서 읽는 대신에 어디 볕 좋은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며 누군가를 위해 조롱조롱 책을 읽고 싶어진다.

 워싱턴DC의 Landmark E Street Cinema 영화관에서 프랑스 영화 ‘마거릿과의 오후의 데이트 (My Afternoons with Margueritte)’가 상영 중이다.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 바보 사나이가 산다. 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 순박하고 어수룩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바보 취급한다. 이 바보 사나이가 어느 날 공원의 벤치에서 책을 읽는 95세의 할머니, 마거릿과 조우하게 된다. 글을 잘 읽는 작고 상냥한 할머니와 글 읽을 줄 모르는 순박한 중년 사나이. 할머니는 소리 내어 글을 읽어주고, 사나이는 할머니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할머니는 자신이 책 읽어주는 것을 들어주는 사나이가 고맙고, 사나이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고맙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시력이 나빠져서 더 이상 책을 읽어 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사나이는 낙심한다. 사나이는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 읽는 연습을 한다. 시력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너무나 딱해서. 그런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동네의 바보였던 사나이는 책 읽는 남자가 된다.

 이 영화를 보니 3년 전에 보았던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형무소를 지키던 여자는 글을 읽지 못했다. 수감된 유태인들이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차 안내원으로 살아가던 여자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여자는 소년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아무도 여자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후에 여자는 나치에 협력한 죄로 감옥살이를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발설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소년은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자에게 책을 읽어 녹음해 보내준다. 남자가 보내주는 테이프를 열심히 듣던 여자는 어느 날 책을 꺼내 들고 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책에 적힌 글자를 대조해 가면서 혼자서 책 읽기를 깨치고, 마침내는 아주 서툰 글씨로 남자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주인공인 엄마 역시 문맹이다. 엄마는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면 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편지를 읽게 했고, 그 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받아 적게 했다. 그 편지를 받아 적던 딸이 소설가가 됐다. 엄마는 딸이 쓴 소설을 읽고 싶었다. 엄마는 자신이 자원봉사로 일하는 고아원의 사회 복지사에게 눈이 침침해져서 읽기가 어렵다며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엄마는 그렇게 문맹인 채로 가족들을 돌보다 사라졌다.

 내 고향 시골 마을에 살던 윗집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어쩌다 우체부가 편지를 놓고 가면 아주머니는 편지를 들고 우리 집으로 서둘러 오셨다. “눈이 침침해서 그려, 이 편지 좀 읽어 주소.” 그러면 우리 식구 중 아무나 편지를 큰소리로 읽어 드렸다. 때로는 할아버지가, 때로는 고모가, 때로는 나 같은 어린 꼬마가 그 편지를 읽었다. 우리는 이웃 아주머니가 가져오는 편지를 큰 소리로 읽어드리며 기쁜 소식에 함께 기뻐했고, 슬픈 소식에 함께 슬퍼했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하여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었고, 몇 해 후에는 읽기를 배운 아이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엄마인 나를 위하여 책을 읽어주었다. 돌이켜보니 내 아이들이 종알종알 소리내어 내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것이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책 읽기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하여 소리 내어 책을 읽는 행위에는 함께 나눈다는 공감의 정서가 흐른다. 책을 읽기에 좋은 가을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조롱조롱 책을 읽어 주고 싶다. 하늘이 높다.

2011,9,28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1. 9. 25. 11:58

Willpower: Rediscovering the Greatest Human Strength
Baumeister & Tierney


2011년 9월에 발표된 신간. 며칠전 NPR에서 이 책 소개를 하길래 기억을 해 두었다. 어제 '프로젝트' 한가지를  끝내고 나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킨들북을 주문하여 읽기 시작.  읽다보니 플로리다, 탤라하시 얘기가 나오길래 검색을 해보니 바우마이스터가 현재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이다.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 프로그램이 제법 번듯하고 잘 나가고 있었는데, 아마도 대학에서 사회심리학계의 대가 한분을 초빙했던 모양이다.  '자기조절력 (self-regulation, willpower)' 과 관련된 사회심리학계의 고전이 되는 각종 실험 이야기가 재미있게 이어진다. 

함께 작업한 전문 작가 (Tierney)의 글솜씨가 좋아서, 쉽게 잘 읽힌다.  휙휙 지나가는 실험용어나 학문적인 용어가 쉬운 글속에 잘 스며있다.

자기 조절력에 대하여 평소에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들을 학문적으로 설명해주는데, 내가 잘 못 파악하고 있던 것도 새로 알게 되고, 흥미진진하다. (이기회에 자기 조절력을 어떻게 키울수 있을지도 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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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9. 21. 21:0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64444

“별들은 창공에서 빛나고
대지는 달콤한 향기로 넘쳤네.
과수원의 문은 삐걱거렸고
모랫길을 밞는 발자국 소리
꽃같이 향기로운 그녀가 들어와
내 품에 안겼었지.

내 생의 마지막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나는 죽네. 희망도 없이
삶이 이토록 고귀한 것인 줄 여태 몰랐네.”

 
 플래시도 도밍고가 감독을 맡고 있는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이 지난 10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케네디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푸치니 (Giacomo Puccini)의 오페라 토스카 (Tosca)를 공연하고 있다. 위에 적힌 노래는 오페라 토스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E lucevan le stele)’의 일부다.

 ‘토스카’는 본래 5막짜리 드라마였는데, 푸치니가 이를 3막의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시켜 불후의 무대 예술로 거듭나게 된 셈이다. 1막은 성 안드레아 성당 안으로 잠입하는 탈옥수 안젤로티와 이를 발견하는 주인공 카라바도시. 이들은 친구 사이로 카라바도시가 친구를 숨겨주기로 한다. 카라바도시가 자신의 그림 앞에서 부르는 노래 ‘오묘한 조화 (Recondita armonia)’가 유명하다.

 2막은, 경찰서장 스카르피아의 방. 스카르피아는 카라바도시를 체포하고,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애인 ‘토스카’와의 하룻밤을 요구한다. 이때 토스카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가 유명하다. 오직 사랑과 예술만을 위해서 살았으며 주님께 헌신하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자신 앞에 왜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한탄하는 노래다. 토스카는 애인 카라바도시의 목숨을 살려서 도망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한 후에, 스카르피아를 살해한다.

 3막은, 성의 감옥. 카라바도시가 처형의 시간이 다가오자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토스카와의 아름다웠던 시간을 회상하고,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별은 빛나건만’이다. 이 때 감옥에 찾아온 토스카는 처형할 때 실탄을 쓰지 않을 것으로 약조가 되어 있으니 죽는 시늉만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 후에 안전하게 외국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기쁨에 넘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카라바도시는 실탄에 맞아 운명하고, 절망한 토스카는 성에서 투신하여 죽고 만다.
 
사실 ‘오묘한 조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별은 빛나건만’과 같은 노래들은 이 오페라를 본 적이 없던 나로서도 구구단 외우듯 그냥 “토스카에 나오는 노래지…” 하는 정도로 친숙한 것들이다. 유명한 성악가들이라면 무대에서 앞다투어 불렀고, 집에 쌓여있는 음반에도 많이 실려 있고 제목만 들어도 기본 멜로디는 흥얼거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평소에 듣던 ‘노래’들을 오페라 무대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듣게 되니 가슴을 울리는 감동같은 것이 있었다. 평소 평면적이었던 노래가 이제야 입체적으로 다가왔던 것이었으리라.

 이것은 마치 미술 책에 편집되어 실려있는 명작 그림이나 조각을 매일 들여다보다가, 어느 날 미술관에 가서 실제 작품을 발견하고 그 질감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입체감을 돌아보는 것과 흡사하다. 에펠 탑 사진을 보다가, 에펠 탑 앞에 가서 서보고, 에펠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 현장에 가서 봤을 때만 다가오는 생생함 그리고 감동.

 이제 라디오에서 ‘오묘한 조화’가 흘러나올 때, 나는 케네디센터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와 그날 밤 총총한 별이 포토맥 강에 비쳐 흘렀다는 것과, 가을 저녁이었다는 것까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오페라가 있는 가을 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슬픈 사랑의 노래는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가. 오페라 무대가 있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공연은 24일까지 계속된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9. 14. 20:59

The Social Animal

http://www.amazon.com/Social-Animal-Elliot-Aronson/dp/142923341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59889

 퇴진한 서울시장의 빈 자리를 누가 새롭게 차지 할 것인가로 현재 대한민국이 시끌시끌한 가운데 컴퓨터 백신으로 유명한 안철수 교수가 서울 시장 후보설을 뛰어 넘어 장차의 대권 후보로 떠오르면서,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표현이 언론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신드롬’이 과연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지, 아니면 활화산처럼 타오를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안씨가 수년간 부동의 일위를 다져온 현 정치인과 상대한 여러 여론 조사에서 우세한 모양새를 연출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사회심리 학부생들의 기초 교재이며, 고전으로 알려진 엘리엇 아론슨 (Elliot Aronson)의 저서 ‘사회적 동물 (The Social Animal)’에서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데 일어나는 몇 가지 현상들을 정리해주고 있다.
 첫째, 사람은 ‘전문가’나 ‘신뢰할 만한 개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기왕이면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 평판이 좋거나 신용이 높은 사람의 말을 우리는 높이 평가한다.

 둘째, 그 사람의 언행이 그 자신의 이익과 배치가 될 때 특히 신뢰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고행의 길을 나선 석가모니, 신의 아들이며 메시아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길을 간 것에서 인류가 감동을 받는 것은 겉보기에 스스로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 혹은 희생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이유 역시, 의사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조국도 아닌 다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할 때, 그 사람의 언행이 호소력이 높다는 것이다.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소외 계층을 위해서 행동할 때 그 울림이 큰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셋째, 그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언행을 더욱 신뢰한다. 우리는 내 면전에서 나를 칭찬하는 사람을 의심한다. 숨은 의도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칭찬하는 사람을 신뢰한다.

 넷째,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면, 사소한 일의 경우에, 내용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언행의 영향을 받는 편이다. 예컨대,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광고 모델로 나오는 커피를 나는 선호하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들고 있는 가방을 나도 들고 싶어진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 원리가 잘 통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안성기씨가 과자 광고를 하면 나는 그가 광고하는 과자를 한 두 봉지 사 먹겠지만,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냉큼 그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자와 대통령은 다른 것이니까.



 위의 원칙에 안철수 신드롬을 대입 시켜 보자. 첫째, 안철수씨는 컴퓨터 백신의 독보적 전문가로 알려져 있으며, 평소의 그의 언행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줘왔다. 둘째, 안씨는 꽤 유리한 조건으로 보였던 서울 시장 후보 자리를 그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다른 후보에게 조건 없이 양보했다. 표면적으로 그는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소탈하게 해 치웠다. 셋째, 그의 이러한 행동에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물론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있겠으나 표면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넷째, 평소에 신뢰성이 높아 보여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던 터에, 그의 출현은 현 정치에 식상하여 ‘내 마음 갈 곳을 잃었던’ 다수의 사람들을 사로 잡았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안철수 신드롬'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권으로 향한다면, 그는 진정으로 ‘통치의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할 역량을 키웠는지 검증을 받는 혹독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 검증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사소한 호감 혹은 거품 같은 호감에서 끝나는 인물로 떠나갈지, 아니면 유권자가 기꺼이 한 표를 던질만한 지도자상을 보여줄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한 사회에 검증해 볼 만한 인재들이 많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2011,9,14, 수

p.s. 나?  나는 안성기씨가 좋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관심 없다. 안성기씨하고 라면 먹으면서 소줏잔 나누면 좋을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9. 7. 19:5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56484


최근 고려대가 사건 발생 108일 만에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 한 남학생 전원에 대하여 ‘출교’라는 조치를 취했다.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만다. 사필귀정.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아직도 희망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

 피해자였던 여학생의 증언으로는, 어느 사이에 술이 깨어 동료 남학생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파악을 했을 땐 너무나 망신스러워서 짐짓 모르는 척했다고 한다. 그는 추후에 증거자료와 함께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 하였다.

 이 사건보다 몇 달 전, 서울의 심야 전철에서 술에 취한 여성이 머리를 무릎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옆자리의 남성이 그 여성의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 넣는 것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찍혔다. 이 사건은 문제의 남자가 수사망이 좁혀져 온다고 판단하고 겁에 질려 자수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피해자였던 여성은 정말 술김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피해자 여성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창피스러워서 모르는 척 했다’는 진술을 했다.

 혹자는 “누군가 내 몸을 만지고 있는데 그것이 창피스러워서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의문을 표할 수도 있겠다. 한 술 더 떠서 “좋아서 가만히 있었겠지?” 하고 농담을 하러 들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의 모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학교의 교무주임 선생님이 내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고 친근하게 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무회의를 마치고 나서는데 그 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툭 건드리며 웃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상하고 망신스러웠다. 그래서 모르는 척 외면하고 그 자리를 떴다. 이튿날 교무실에서 스치면서 그 선생님이 내 손을 만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물을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날, 그 선생님이 보이길래 손을 뒤로 감췄다. 손을 만질까 봐 무서워서. 그는 내가 뒷짐 진 손을 일부러 만지고 지나갔다. 그 때 나는 이 ‘더러운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아졌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처녀도 아니었고, 애 둘을 낳아 키운 ‘아줌마’였다. 그런 나에게도 남이 내 손을 허락 없이 만지는 일이 죽고 싶을 정도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나 학교 안가! 더러워! 다른 직장을 찾아 보겠어!” 며칠 혼자 끙끙 앓다가 마침내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자 남편이 제안을 했다.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러시나. 그냥 그런 식으로 현장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선생님을 만나서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해보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들라는 말이지. 그런데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그 때는 내가 나서겠어. 그런데, 일단 혼자 힘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보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도망을 다닐 건데?”

 남편의 조언에, 없던 용기를 쥐어 짜내어, 그 선생님과 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정색을 하고 ‘내 몸에 손 끝 하나라도 닿으면 불편하니까, 그러지 마시라’고 설명을 했다. 그 선생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고 사죄를 했다. 그 후로 그 선생님은 내게 깍듯이 예의를 차렸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만한 행동은 일체 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 역시 불쾌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대신에 내가 수습하는 방법 한 가지를 배웠다.

 나는 지금도 타인이 나를 건드린다거나 신체적으로 스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민감해하고 불편해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말 없이 도망치기보다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과 대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조차 입을 떼고 말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무진장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물며 형제같이 믿고 있던 친구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사람의 심정이야…. 지옥같은 상황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문제를 항변한 고려대 의대 여학생에게 심심한 응원을 보낸다. 용기있게 공부 마치시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 주십사 당부 드린다.

2011, 9, 7, 수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9. 7. 19:5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52397

한국에서 미국으로 와서 생활할 때 발견되는 차이점이 무엇인가 물으면 여지 없이 나오는 답 중에, “미국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사실 한국의 대도시 특히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전문가가 되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음식물 쓰레기, 타는 쓰레기, 안 타는 쓰레기,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라도 종이, 플라스틱, 알루미늄 깡통 등, 이것들을 분리해야 하고, 내다 버리는 요일도 정확히 지켜야 한다. 커다란 가구를 폐기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스티커를 사다 붙여서 내놓아야 하고, 뭐든 종류별로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숙지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환경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행동 요령이긴 하지만, 이것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쓰레기 버리는 요령을 익히고 실천하다가 넓디 넓은 미국땅에 와서 생활하다 보면 도무지 아무도 쓰레기 버리는 것에 대하여 ‘잔소리’를 안 하기 때문에 여기야말로 ‘천국’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미국식 파티는 또 얼마나 신 나는가. 일회용 식기를 이용하여 먹고 마시고 그리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면 따로 뒤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다.

 물론 미국에도 환경 문제에 신경을 쓰고,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모범 시민들이 많이 있다. 재활용 가능한 것들과, 일반 생활 쓰레기를 따로 담아 내다 놓는 시스템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런 분류는 자발적인 참여에 불과하다. 정부나 지방 자치단체에서 쓰레기 분리 수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쓰레기를 분류하여 내다 버리라는 잔소리를 안 듣고 속 편하게 몇 년 맘대로 버리면서 살다 보니, 한국에서 환경관련 교육 받은 것들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메아리를 친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렇게 막 쓰고 버리고 살면 안 되는데….

 이태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포토맥 강변에 나가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강변의 나무에 ‘물수리’라는 검은 새가 거꾸로 매달려 파닥거리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누군가 쓰고 버린 투명한 낚싯줄에 발이 엉킨 새가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다니다 그만 꼼짝도 못하게 거꾸로 매달리고 만 것이다. 새가 고통스럽게 버둥거리는데, 너무 높아서 사람이 다가가서 구해 줄 수도 없었다. 결국은 야생동물보호협회에서 나와서 그 새를 구해냈지만, 지금도 그 낚싯줄은 높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곤 한다.

 우리들이 하늘로 날려보내는 풍선이나 생각 없이 버리는 비닐봉지들이 바다에 흘러 들면 마치 해파리처럼 보여서 물고기들이 이것들을 삼키고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나는 생각 없이 버리지만, 누군가는 그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느끼거나 중병에 걸린다.

 최근에 나는 시장가방 세트를 샀다. 튼튼한 헝겊으로 만들어진 자루모양의 가방인데 다섯 개를 돌돌 말아 주머니에 집어 넣어도 지갑 한 개 크기 밖에 안 된다. 이것을 자동차나 가방에 갖고 다니다가 장을 볼 때 꺼내어 사용한다. 계산대에서 점원이 물건을 포장할 때 내가 갖고 있는 헝겊 시장가방을 꺼내주면 물건들을 가방에 담아 준다. 이렇게 가방에 물건을 담으면 비닐봉지가 절약된다. 가방 안에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짐을 집으로 옮기기에도 편하다. 자루 몇 개를 어깨에 척척 들러 매고 짐을 옮기는 것이 올망졸망한 비닐봉지들을 옮기는 것보다 힘이 덜 들고 편하다. 나중에 비닐봉지를 따로 정리하거나 버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런 봉지 절약이나 편리함 외에 시장가방이 내게 주는 더 큰 선물이 있다. 헝겊 시장 가방을 사용하고, 비닐봉지를 집에 가져오지 않으면서 가슴에서 샘이 솟듯 기쁜 노랫소리가 들린다. “지구야 사랑해. 너를 위하여 내가 조금이라도 덜 버리고, 덜 쓰고, 아낄게.” 이런 사랑의 노래가 내 가슴에서 울리면서 저절로 마음이 기뻐지는 것이다. 지구는 우리들의 어머니. 내가 지구를 사랑해줘야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2011, 8, 31 (수)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9. 6. 03:56


그저께 산 등산화를 길을 들이기 위해 (to make it broken well) 헤리티지 트레일에 나갔다.  지난 토요일에는 동일한 길을 반대 방향으로 진행했었다.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에는 평소대로 포토맥 강을 끼고 걷다가, 그냥 반환하기 심심해서 키브리지를 건너 로즈벨트 섬으로 진입하여 여기서부터 헤리티지 트레일을 따라서 체인브리지, 거기서 다시 포토맥 애비뉴까지 가는 동선이었는데. 내 예상보다 험난한 길이었다. (만만히 생각하고 들어섰다가 고생을 좀 했다.)  전에도 왔던 길인데, 왜 이렇게 험난하게 느껴질까?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동선을 잘 못 잡은것도 원인 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동선은 '갈수록 태산' 이다. 가면 갈수록 힘든 코스.  이러면, 그렇지 않아도 힘이 빠지는데 갈수록 난감해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반대방향으로 시작을 했다.  일단 차는 평소에 두는 장소에 모셔놓고, 몸을 풀겸 편안하게 체인브리지를 건너서 헤리티지 트레일로 접어 든다.  체인브리지에서 들어가는 헤리티지 코스의 경우 로즈벨트 섬까지 4마일 거리중에서 처음의 약 1.5 마일이 난코스에 해당된다. 이 코스를 지나면 그저 강을 끼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언덕길이 펼쳐질 뿐이다. 그러니까 걷기 시작할때, 아직 기운이 펄펄 날 때 힘든 코스를 통과하면, 그 후부터는 기운이 빠져도 별 어려움없이 평소 페이스대로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역시 내 계획이 내 몸에 잘 맞았다.  로즈벨트에서 키브리지를 건너 조지타운에 접어 들었을때는 이미 내집 안방 같은 편안한 기분.  오늘은 무리없이 편안하게 한바퀴를 돌았다.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  힘든 코스는 처음에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고생 다 끝나고, 키브리지를 통과할 무렵 길가에 펼쳐진 허니써클 무더기 무더기.  인적없는 길에 무리지어 핀 흰꽃무더기가 어쩐지 봄날의 찔레꽃처럼 슬프더라.  지홍이한테 편지쓸때 부쳐주기위해서 꽃을 좀 땄다. 눌러서 편지에 붙여서 보내주면, 지홍이가 이 꽃 향기를 맡을수 있을까?




강의 이편에서 강의 저편을 내다 보다.  주로 강의 저편에서 이쪽을 쳐다보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편에 있다. 차안과 피안. 삶의 이편 저편을 경험하듯, 나는 강의 이편 저편을 걷는다. 이 길이 끝나면, 키브리지를 건너 다시 강의 저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길, 내가 아침에 걸었던 길을 찾기 위해서 나는 기웃기웃 강건너편을 보며 걸었다. 나의 길. 인적이 뜸한 나의길.


새로산 등산화는 '합격'이다.  어제 산책할때 일부러 신었는데 편안했다. 그래서 오늘 용기를 내어 이걸 신고 산으로 간 것인데, 세시간 넘게 걷는 동안, 특히 바위 골짜기를 이리저리 넘나드는 동안 내 발을 잘 보호해주었다. 신발이 무겁지도 않고, 바닥에 닿는 착지감이 참 안정되고 좋았다. 새로 신었는데 발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요즘 신발 만드는 기술이 정말 좋은가보다. 새 신인데 불편하지가 않다니 말이다.)

키브리지 건너, 조지타운에 도착했을때 열두시쯤.  그래서 나의 단골 식당으로 가서 샐러드와 아이스티로 점심을 먹었다. 웨이터가 친절했고, (알아서 아이스티를 충분히 리필해주었다), 이웃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친절했다. 내가 먹기 좋게 잼을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노곤한 상태에서 마시는 아이스티와, 적당히 배가 고플때 먹는 음식. 친절한 미소. 참 좋은 시간이었다.  혼자서 즐겁게 점심을 먹으며 내 생활의 '주제'를 정했다. '칸트 놀이'를 해야지. 칸트 놀이. 

칸트는 고약스럽고, 수다스러우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괴상한 성격이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는 심부름하는 머슴에게 인색했다고 하며, 자기 몸을 꽤나 챙겼다고도 한다. 좀 웃기는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나는 당분간 칸트 놀이를 하기로 했다.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산책하고, 사색하고, 공부하고 그렇게 살겠다는 뜻이다.  주말에는 '순례자' 놀이를 해야지. 주말에는 어디론가 낯선 곳으로 가서 한나절 걷겠다는 뜻이다.  나는 현재의 나의 삶을 '안식년'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잠시 주어지는 안식년. 나 혼자서 사색하고 생활하는 시간. 이 시간이 길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 내게 주어진 이 고요한 시간을 나는 최대한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 칸트 놀이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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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9. 6. 03:29

 날짜  걷기오전  걷기오후  다른 운동  메모
 1 (목)
 2 (금)
 3 (토)
 2
 -
9
 -
2
-
 
카메라도 안가지고 나간 인적없는 산길.  사진대신 들꽃을 따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오다.
 
lemon
 포토맥-로즈벨트-헤리티지-체인브리지 논스톱 세시간 20분 길 끊어진 바위 산길. 등산화 사야겠다.
 5 (월)  10  -   5 hours Heritage + Potomac
         
         
 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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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9. 4. 20:20

 

내 생애 최초로 내 발에 맞는 등산화를 샀다. (어제).

전에 스포츠 오소리티에서 대강 등산화를 살펴 봤었고, 노스페이스 등산화도 살펴놨고, 어제 팀버랜드 매장에서 예쁜 등산화를 만났는데 (꽤 팬시했다) 어쩐지 그 팬시함에 넘어가면 안될것 같아서 에코에 갔다가, 이 신발이 제일 맘에 들어서 이것을 샀다.
 
어제 아침에 산책 나갔다가, 난데 없는 바위지대를 만나는 바람에 내 발이 고생을 좀 했다. 평평하고 잘 닦여진 산책로에만 익숙해진 내 몸이 집중력을 요구하는 바위 산길에서 영 적응을 못하고, 특히 발과 발톱이 고통을 겪었다. (발톱 일부가 깨졌다. 양말과 신발이 얇았던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화'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등산화 그것이 둔하고 무겁고, 그걸 왜 신나 했더니 발전체와 발목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제 바위지대에서 고생을 좀 했는데, 통과 하고 나니, 특히 그 고생스런 지대에 또다시 가고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 안다니던 길에서 고생을 좀 한 결과, 몸살이 났다. 이 몸살이 지나면, 산에 가도 몸살이 안 날것이다.)  평탄한 길은 재미가 덜하고, 바위산을 좀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생 내 몫으로 등산화를 사 본 적이 없다. 옛날에 엄마가 산 빨간 나이키 등산화를 신은적이 있었는데, 내 발에 약간 작은 (발에 딱 맞는) 신발을 그래도 열심히 신고 다녔었다. 그것이 집에 있던 유일한 등산화였었으니까.  발가락이 아픈것을 참고 그 것을 신고 산에 오르고 그랬었다. 아주 옛날 얘기다. 지홍이가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이제야 내가 내 몫의 등산화를 한컬레 장만한다. 인생은 아직도, 새롭고, 처음이고 그런 것들이 많이 있다. 늘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것이니까. 새로운 길이, 새로운 사람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지나갈 것이다.  열이나서 오늘 장거리 워킹은 불가능하겠다. (산에 가기 전에 이 신발을 신고 길을 들여줘야 하는데...)


***

같은 매장에 트레킹화도 아주 예쁜, 그리고 편해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신어보니 발 앞꿈치가 신발에 닿았다.  이상도하지 똑같은 사이즈인데 등산화는 앞꿈치가 신발에 안닿는데 왜 트레킹화는 닿는 것일까? (나는 발 앞꿈치가 신발에 닿으면, 안신는다. 두꺼운 양말 신고, 발이 부을경우 신발에 닿는 부분이 아프니까.)  그 트레킹화가 참 가볍고 예뻤지만, 그점이 맘에 안들어서 안사고 말았다.  하지만 가벼운 트레킹화도 한켤레 갖고 싶은데 말이지. 

아주아주 나비처럼 가볍고 기능적인 트레킹화도 하나 골라서 사야지.  산에 가기에 좋은 계절이다.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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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9. 2. 22:32

 날짜  오전(새벽)  오후 (저녁)  기타  
 8월 6일 (토)  포토맥  (6마일)  버크레이크 (2마일)    레몬다이어트 8일째부터 운동 다시 시작
       7일 (일)  포토맥 (6마일)      
       8일 (월)      수영 1시간  레몬다이어트 10일 완성
       9일 (화)      수영 1시간  
       10일 (수)      수영 1시간  
       11일 (목)    포토맥 (6마일)  수영 1시간  
       12일 (금)  포토맥 (6마일)  조지타운 (7마일)    
       13일 (토)  버크레이크 (5마일)      
       14일 (일)  포토맥 (6마일)      
        15일 (월)  동네 (3마일)      
        16일 (화)  동네 (3마일)  포토맥 (6마일)    
        17일 (수)  동네 (3마일)  동네 (3마일)  수영 90분  
        18일 (목)  동네 (4.2마일)      
        21일 (일)  조지타운 (7마일)  동네 (2마일) 왕땡이와    
        22일 (월)  동네 (4.2 마일)      
        24일 (수)  동네 (2마일)      
        25일 (목)  동네 (4.2 마일)      
        26일 (금)  동네 (4.2마일)      
        27일 (토)
        31일 (수)
 동네 (4.5 마일)
 동네 (2 마일)
   트랙 달리기도 했다.  

통계: 걷기 96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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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8. 29. 05:43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태풍 아이린이 이름처럼 사뿐하게 (별 사고 없이) 버지니아를 통과한 아침.
찬홍이를 대학 기숙사에 이사를 시켰다.  오전에 보따리를 모두 기숙사에 풀어 놓고, 집에 와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소소한 (보따리 싸면서 잊었던) 것들까지 다시 챙겨가지고 또다시 기숙사에 갖다 놓아주고 왔다.  두번째에 갔을 때에는 나는 건물에 안들어가고 그냥 찬홍이가 물건을 갖고 들어갓다. 물 한박스와, 찬홍이의 곰인형까지.




두번째로 기숙사에 갈때는, 왕땡이도 데리고 갔다.  그래도 식구니까 찬홍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내 사진을 보니, 저 바지가 영 볼품없이 헐렁하군...  저거 빵빵하던 것인데...  내가 날씬해지긴 한것인가, 아니면 바지가 늘어났던가.) 저 팔에 걸린 시장가방에 쌀을 두자루 담아 가지고 갔었다. 완전 쌀자루.  찬홍이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전기 밥솥까지 갖고 갔으니까... 뭐 얼마나 해 먹을지 모르지만, 기름기 많은 서양음식보다 밥이 좋지. (그래서 발아 현미를 사줬는데.)


집안이 폭탄 맞은것처럼 엉망이다. 찬홍이방의 가구가 나갔고, 옷장도 엉망이고, 전체적으로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처럼 그렇게 집안이 엉망인데, 누가 좀 청소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수업 준비도 해야하고, 할일이 많다.

결핵반응 검사 한 부분의 붓고 열이나고, 상태가 안좋다. (그건 순전히 벌레에만 물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부풀어 오르는 내 피부의 문제이지 결핵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튼 피부가 많이 부풀면, 엑스레이를 찍자고 할것이다. 그러면 엑스레이 비용이 추가로 들겠지.  그렇게 돈 들어가는 일이 부담스럽지...)

여권사진을 찍을 일이 있었는데, 찬홍이와 내가 둘이 여섯장씩 사진이 필요했는데 CVS 매장에서 두사람 사진을 해결하는데 12달러가 들었다.  2인분 여섯장씩 (12장) 12달러면, 종전보다 싼 가격이다.  사실 적당한 디지탈 사진으로 여권사진 사이즈로 리사이즈해서 현상만 부탁만 해도 되는데 (정부 안내페이지에 여권 사진 리사이징 하는 도구까지 나와있다) 그러다가 실수 할까봐 그냥 가서 찍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사진 값이 저렴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사진은 CVS가 왕입니다요~ 

내일 오후에 찬홍이 데리고 와야한다. 지난 주말에 혈액검사한 결과를 본인이 와서 봐야 하기 때문에.  내일 데리고 와서 하루 자고 다시 기숙사행.  그러니까, 기숙사에 보냈어도 멀리 보낸것 같지는 않고, 그냥 이웃에 보낸 기분이다.

(아, 집안 정리 좀 하고, 다음주 수업 준비 해야 한다.  피곤하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8. 24. 22:5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48073


 지난 주 중앙일보 유승림 기자가 기획 보도한 아주 특별한 기사가 있다. 이 특집은 ‘애난데일 한식당서 부당대우, 3주 만에 그만둔 로잔나씨. 인간 이하 취급, 밥도 서서 먹어’를 시작으로 네 편의 기사를 담고 있는데, 일부 한인 업소에서 일어나는 남미계 노동자 ‘차별’의 현장을 스케치하고 이들이 구제 받을 수 있는 방법이나 혹은 이민족에게 동등한 대우를 펼치는 모범 사례까지 담아내고 있다. 이 기획보도를 놓치신 독자는 온라인 기사를 다시 볼 수 있다.

 지난 화요일에 ‘로잔나(가명)’의 사례가 소개 되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로잔나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기 보다는, 이런 사례를 신문에 보도할 수 있었던 기자나 편집팀의 용기에 놀랐다고 할 만하다. 미국사회에서 일부 한인들이 이민족에게 그들이 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이것을 문제시할 때, 문제에 빠지는 이가 내 친구이며 내 이웃일 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지난주 칼럼에서 영화 ‘The Help’에 나타난 흑백 차별의 문제를 언급 한 적이 있다. 1960년대 백인 가정에서 일하던 흑인 하녀들은, 자신들이 받는 직장에서의 차별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 백인 사회의 조직적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이 이 부당한 차별 문제에 눈을 뜨고, 흑인 하녀들이 당하는 것을 사회에 알리려고 했을 때, 정작 흑인 여성들은 그나마 직장과 목숨을 잃을까 봐 입을 다물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 이 뿐은 아니리라. 우리는 공동의 부끄러움에 눈을 감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내가 알고 있는 일부 사례들이다.

 영희(가명)씨가 일하던 모 식당에서는 한국인들과 남미인 종업원들이 있었는데, 불법으로 일하는 한국인들조차 남미인 종업원들을 마치 머슴 부리듯 했다. 영희씨는 이런 현상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부지런한 라티노 친구와 서로 도우며 지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라티노와 친하게 지내는 것에 대한 주위 한국인들의 눈총을 견디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영희씨는 동료 라티노 친구와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철수(가명)씨는 한인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에 그는 똑같은 시간제 종업원이면서 굳은 일은 ‘당연히’ 라티노들에게 시키고 한국인들이 라티노에게 기분 내키는대로 욕설을 하거나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분개했다. 그래서 동등하게 일하고, 동등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철수씨 역시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라티노 친구에게 미뤄버리고 편한 일을 골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일하다 보니 저 자신도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내가 어릴 때 내가 뭔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엄마는 조용히 나를 데려다 놓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다시는 절대 그러지 마라. 이것은 너하고 나만 아는 일이다. 네 형제들도 모른다.” 엄마는 이 한마디로 나의 과오를 용서했다. 종갓집 맏며느리면서 네 명의 자녀를 키워낸 엄마에게는 이런 식의 비밀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발설되지 않는 개인의, 집안의 부끄러운 과오와 실수들. 이런 것들을 덮어주고 엄마는 살아오셨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렇게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덮어주고 쉬쉬하고 넘어가서 해결되는 문제가 있고, 덮어주기 때문에 더욱 부패하고 악화되는 문제들도 있는 법이다. 상대가 어쩔 수 없는 약자이기 때문에 밟으러 든다거나, 동등한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짓밟는 현상, 이러한 것들은 우리끼리 쉬쉬하고 넘어간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유승림 기자의 용기 있는 기획취재에 박수를 보낸다. 그 용기만큼 우리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2011년 8월 24일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22. 01:54



지난 금요일 아침에는 찬홍이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다려오느라 이른 아침부터 바빴고
어제 토요일에도 아침부터 찬홍이 귀 고막 파열 된것 같아서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은행에 들러서 찬홍이 카드 하나 만들어주고, 집에 가구 가지러 사람이 온다고 해서 집안 정리 좀 하느라 고된 하루였다.  그래서 지난 이틀간 운동을 못했다.  집에 있는 침대며, 아이들 쓰던 책상 이런것들을 내 학생네 집에서 가져가기로 했다. 그 집에 홈스테이 하는 학생이 와서 그런 가구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집에 있는거 가져가라고 했다. 어차피 나는 짐을 확 줄이고 단촐하고 가뿐하게 살 생각이라, 원하는 사람 있으면 모두 내 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태권도 대회 할때 귀를 맞아서 찬홍이 귀 고막이 약간 파열되었으나, 의사 소견으로는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 정도라고 한다. (다행스런 일이다.)

오늘도 어쩐지 매일 새벽에 깨던 내가 일곱시까지 내쳐 자버렸다. 여덟시가 넘어서야 산책을 나갔다. 모처럼 찬홍이 데리고 조지타운까지 가서 카페에 가서 아침을 잘 먹고 왔다.  찬홍이는 오늘이 레몬 다이어트 7일째 인데, 그냥 카페에서 아침을 먹였다. 찬홍이 레몬 다이어트는 이쯤에서 정리 시키려고 한다.   (나는 하루에 한번, 그리고 주말에 레몬 다이어트 요법을 병행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하루중 저녁 한끼, 그리고 주말 하루쯤을 레몬다이어트 음료를 만들어서 계속 해독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해독 요법이 내 체질 개선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몸이 가볍고, 머리가 맑은 느낌이 좋다. 커피도 안먹고 있고, 매일 레몬수를 먹으니까, 확실히 잠 잘 자고 머리 맑고, 그리고 덜 지치는것 같다. )

조지타운에 작은 카페가 있는데 그 카페 앞에는 예쁜 자전거가 장식으로 세워져 있다. 오늘은 그 자전거 그늘에 개 한마리가 묶여 있었다.  순하고 착한 개. 다가가서 보니 아랫니 송곳니 두개 중에 하나는 빠지고 없다. 꽤 오래된 개 인 모양이다. 열살 넘은 우리 왕눈이도 아직 이가 멀쩡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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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18. 00:26

나 어렸을때, 시골에서 살때, 그러니까, 내가 네 살때, 우리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일없이 하는 자랑질 중에는 "너 버스 타봤어?" 이런거였다. 내가 이것을 분명 네살 때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해에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이 나를 떨어뜨려 놓고 서울로 가버렸으니까. 그리고 내가 버스를 처음 탄 기억은 아직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우리식구 이렇게 모두 모여서 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네살이거나 그 전이었다는 것이지.

버스를 처음 탔을 때의 기억.

흑먼지 막 날리고, 그리고 창밖으로 사물이 막 휙휙 지나가는 그 놀라움! 와 와 세상이 막 지나간다!!!

버스를 처음 탄 아이들은 대개 너무나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버스를 타봤냐 못 타봤냐 점검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너 울었냐 안 울었냐" 이런 조사였다. 난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성격에, 안 울었을것 같다 (너무너무 겁이 나서 쫄았겠지만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겠지...)   아, 창밖에 미루나무가 막 다가왔다가 휙 지나가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에 우리들이 초등학생이 된 후에, 그 마당에 놀던 아이들의 화제는


"너 에레베타 타봤어?"  --> 일단 에레베타가 뭔지 모르면 한수 꺽이고 들어가는거다.
"너 에스카레타 타봤어?" --> 역시 타고 못타고를 떠나서 이것의 존재 자체를 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 후에

"너 서울에 있는 전철 타봤어?"

서울에 가서 전철을 처음 타 본 아이는 우리 이웃의 유순이였다.  서울가서 전철 탔다고 자랑질을 엄청 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이같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며칠전에 찬홍이와 왕눈이와 산책을 하다가  문득, 걷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리를 움직일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움직인다. 멀리 있던 것이 가까이 다가오고, 그리고 내 곁은 지나쳐간다. 내가 다리를 움직이면, 세상은 영화처럼 돌아간다. 움직인다. 세상이 움직인다.  내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면, 세상은 정지해 있을 것이다. 내가 다리를 움직이면 세상은 살아 움직인다.  그런 현상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쩌면, 옛날에, 옛날에, 내가 한돌쯤 되었을때, 내가 처음으로 일어나서 걸음마를 시작했을때, 그 때, 한걸음 한걸음 떼면서 나는 세상이 마구 흔들리고 그리고 덜컹거리며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내게 세상은 얼마나 신기했을까?  나는 여기 있는데, 나는 왜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걸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17. 23:37


요즘, 아침에 (강변에 나갈수 없는 평일에) 내가 걷는 산책 코스.  

우리 아파트 앞 일직선으로 나 있는 도로가 Margarity Road 인데, 지난해에는 아침에 이 길을 따라서 매클레인 하이스쿨까지 가서 트랙을 몇바퀴 돌고 돌아오는 (총 3마일) 워킹을 하곤 했다.  (우리집은 이 마가리티 도로 중간쯤에 위치한다.)

그런데 내 성격상, 운동장을 뺑뺑이질 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길수가 없다. 난 뱅글뱅글 도는 일이 굉장히 지루하다.  그래서 학교 찍고 근처 공원을 에둘러서 막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것도 질서가 없어 보여서 금세 싫증이 났고.  오늘 아침에 지도에 있는 노선을 '확정' 지었다. (당분간 아침마다 이 노선대로 산책을 나가겠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내 성격이,  반복해서 뭘 하는것은 지겨워하고, 그렇지만 뭔가 정해진 질서를 필요로 한다. 무질서한것은...매력이 없어 보인다. 무질서 속의 질서. 그것이 가장 매력적일 것이다.

구글 맵으로 계산해보니 일직선 2.1 마일. 한바퀴 돌면 4.2 마일이 되겠다.  4.2 마일이면 빠른 걸음으로 한시간이면 걸을수 있다. 달린기를 하는 사람들은 30분이면 가능한 거리. (이길을 달리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난 타고난 거북이라서 달리기를 하면 금세 지치고 만다. 

이 길의 장점은 일직선으로 길이 뻗어있되, 구불구불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 내리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걸을때는 잘 모르겠는데, 막판에 반환하는 지점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오르락 내리락 완반한 언덕길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걷는것도 재미있다. (평지는 약간 지루하다).

나는 여전히 포토맥 강변길로 나가곤 하지만, 아침 출근전에 몇시간씩 강가에 갔다 올수는 없으므로, 아침 운동은 이길에서 보낼 때가 잦을 것이다.  오죽 맘에 들었으면 내가 지도까지 갖다 붙여놓고 이러고 있을까. :-)  새벽에 혼자 이길 걸을때 기분 무척 좋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8. 17. 18:0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44121

지난주에 극장가에 개봉된 영화 ‘The Help’는 백인 가정의 하녀로 생계를 유지했던 1960년대 남부 흑인 여성들의 끈질기고 용기 있는 삶을 스케치하고 있다. 말콤 엑스와 마르틴 루터 킹 등의 적극적이고 격렬한 흑인 인권 운동이 펼쳐지던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 흑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흑인과 백인은 ‘동등’하지만 각자 ‘분리’해서 살아가는 (equal but separate) 사회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버스에서도 백인과 흑인의 칸이 분리 돼 있었고, 식당 역시 흑백을 구분하여 손님을 받았다. 심지어 ‘변기’를 흑인이 사용하면 질병을 옮긴다고 해 집에서 일하는 흑인들에게는 별도의 ‘변소’를 사용 하도록 했다. 영화 속에서는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바깥의 ‘변소’에 갈 수 없었던 흑인 하녀가 백인 집주인의 화장실을 급히 사용했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콤 엑스의 어린 시절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학급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던 말콤 엑스는 8학년 수업 중에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그에게 선생님은 “깜둥이 (niggar)가 어떻게 변호사가 된다는 거냐”고 대꾸한다. 그날 말콤 엑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는 백인들의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공부를 하여 인권 운동가로 성장한다.



지난 7월에 백악관에 그림 한 장이 새로 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노만 로크웰 (Norman Rockwell)의 1963년작 ‘The Problems We All Live With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문제들)’이다. 나는 2년 전 여름에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노만 로크웰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감상했었는데, 이 그림이 백악관으로 왔다니 참 반갑고, 기쁘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60년 알라바마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그림 중앙에 흑인 소녀가 앞을 보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고, 흑인 소녀의 앞뒤로 경찰관들이 호위하고 있다. 알라바마 주에서 흑백차별을 철폐하고 흑인과 백인이 동일한 학교에 다니도록 조치를 취했으나 흑인 학생의 등장에 백인들은 등교 거부를 했고, 이 흑인 소녀는 일년 동안 텅 빈 학교에 혼자서 다녀야 했다.


이 사건으로부터 50년이 흘렀고, 백악관에는 흑인 대통령이 입성했다. 그러나 현재 오바마 대통령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차기 대통령 후보로 클린턴 국무장관을 점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제 그림 속의 주인공은 흑인 소녀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 자신일지도 모른다.

영화 The Help 에 나오는 흑인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나, 독학으로 인권 운동의 길에 접어든 말콤 엑스의 이야기, 혹은 일년 넘도록 등교 투쟁을 한 흑인 소녀와 위기 앞에 선 오바마 대통령.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이 먼 다른 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거나 남의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내 고향 소꿉동무는 가난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상경하여 병원 집 식모살이를 하러 떠났다. 내 또래 소녀들이 공장으로 혹은 버스 안내양의 길로 가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내가 누리는 것과 그들이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 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으러 드는 “계집애가, 여자가, 애 엄마가, 아줌마가 어딜……”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좌절감과 함께, 전의를 불태웠다.

어떤 종류의 차별 이건 간에, 차별 당할 때 팔자 소관으로 알고 순응하는 대신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사방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을 넘고자 하는 용기. 시련이 내다 보여도 한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 이 영화가 한바탕 시원한 웃음과 기쁜 결말을 선사 했듯, 우리 삶의 풍경 속에서도 차별 당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나는 꿈꾼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15. 09:22
2011년 8월 12일 (금)

새벽에 일어나서 키브리지까지 왕복했고,

저녁에 혼자 나가서 조지타운 거리와 반즈앤노블 책방을 구경하고 밤길을 걸어 돌아왔다. 밤의 숲속은 캄캄한데, 막상 어둠속을 혼자 걷는 일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았다.  나중에 정말 배낭 하나 매고 천지 유람을 해도 될것 같다.

해질녘, 조지타운의 올드 스톤 하우스 앞에서 두명의 악사가 파헬벨의 캐논을 연주하고 있었다.  단지 음악이 흘렀을 뿐인데, 나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방랑자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011년 8월 13일 (토) 버크 레이크

아침 일곱시, 버크 레이크의 태양.




이른아침, 호수에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는 가족.  미국의 아빠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자녀들에게 낚시를 가르쳐주거나 혹은 스포츠를 함께 하는 것을, 어떤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문화...)

 


2011년 8월 14일 (일)

온종일 날이 흐렸다, 비가 왔다, 개였다, 다시 흐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저녁에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예보되고 있지만 얼마나 쏟아져 줄지는 미지수다. 아침에 비가 부슬부슬 오길래 그냥 키브리지까지 걸어갔다 왔다.  90분간 걷는 도중 소나기가 후두둑하고 쏟아지거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거나 개이거나 그랬다.  시원하고 좋았다.


일기예보와 달리 쨍쨍한 저녁.  풀장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모두들 비가 쏟아질것을 예상하고 안 나온 모양이었다. 한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영을 하고 돌아왔다. 물속에 있을때는 내가 물고기가 된것처럼 자유롭고 시름도 사라진다.  하지만, 이 좋은 수영도 앞으로 일주일 정도 하면 여름이 갈 것이다. 일주일후에 생리가 오고, 그래서 물에 못들어가고  며칠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청춘도, 인생도 금세 지나간다.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기 전까지는 꾸준히 근육을 키워야겠지...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12. 12:02


새벽 네시에 잠이 깨면, 그 때부터 잠을 못잔다.  그래서 버스럭거리면서 동이 트기를 기다리다가, 동트면 찬홍이네 학교까지 해서, 동네를 한바퀴 돌고 들어온다. 그러면 한시간이 지난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게 아침 운동을 했다.

퇴근 후에는 찬홍이와 곧바로 아파트 수영장에 가서 한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영을 했다. 며칠 연달아 하다보니 할수록 는다. 신기하다 사람의 몸이. 사람의 몸은 써줄수록 발달된다.

수영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곧바로 포토맥으로 나갔다.  조지타운에 도착하니 예배당의 종이 아홉번을 때렸다.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 집에 돌아오니 열시 반이다. 빠진 살 다시 찔까봐 내가 아주 발광을 하고 있다....  (찬홍이도 기숙사 들어가기 전에 살을 좀 빼줘야 하겠어서...)

아직 보름 되려면 2-3일 남은것 같은데, 달이 참 환했다. 밤의 숲속길을 걷는것이 참 좋은데, 찬홍이 기숙사 들어가고 나면 나 혼자서는 밤길 못다닌다. (새벽에 다니면 되겠지...)  밤은 신비롭고 그윽하다. 그리고 공기가 시원하다. 참 아름다운 달빛 속 산책이었다.  내일 또 나가야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