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0. 1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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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목적은 무엇인가?” 고등학생 시절, 사회과목 헌법 관련 시험에 이 문제가 나왔다. 사지선다형 문제였으므로 나는 ‘국민의 행복’과 같은 문항을 답으로 골랐다. 그런데 정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취하는 데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머리를 몽둥이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께서 정당이 정권을 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이 행복해지도록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린 나는 어떤 숭고한 이상을 상정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정치학적 이론을 설명하셨을 것이다. 아무튼 그것이 내 인생 최초로 맛본 정치에 대한 환멸이었다고 기억한다. 삶의 환상 어딘가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인생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낀 것은, 1990년 1월 김영삼씨가 3당 합당을 하고 노태우, 김종필씨와 나란히 서서 찍은 기념사진 앞에서였다. 사실 나는 우리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놀면서 신문 읽기를 배웠는데, 당시 아주 어린 내게도 여공들을 비호하다가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된 김영삼 의원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전사였다. 내심 그를 존경했던 나는 1990년 그의 정치적 변신 앞에서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1979년 와이에이치 사건, 그리고 어떤 영웅의 탄생


1990, 엉뚱한 곳에서  애매한 분들과  서 있던 어떤 사람




 그 사이에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정당의 기본 목표에 대해서 회의하지도 않으며, 야합의 다른 말은 ‘유연성’이라는 것에도 일부 수긍을 하게 되었다. 이상은 하늘에 있고, 정치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니까.

 정치의 풍경이 내게 환멸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이것이 노 정치인에 대한 국제적인 치하라고 생각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눈 앞에서 기적이 일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흑인 오바마 대통령은 내게는 희망의 옥동자처럼 보였다. 설령 오바마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도 나는 역시 그에게서 희망의 싹을 발견했을 것이다. 미국 역사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나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최근 한국 사회의 아주 특별한 정치적 실험 두 가지가 내 눈길을 끈다. 그 한가지는 ‘투표거부’를 통한 투표권 개념의 확장이요, 다른 한 가지는 정당을 넘어서는 개인후보의 힘에 관한 것이다. 사실 서울시장이 아무도 등 떠밀고 나가라고 한 적도 없는데, 주민이 선출해 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도 진풍경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투표거부’를 통한 정치적 목소리 내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행동이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했다.

혹자는 이에 대하여 투표권을 내던져버린 반민주적 행동이었다고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선례가 없었다고 해서 반민주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의미의 확대, 혹은 진화로 보는 편이다.



 둘째는 변호사이며 시민운동가로 활약하던 무소속 후보가 전체 야당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무소속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이런 식으로 제대로 된 서울시 행정이 되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미리 안 된다고 단정을 내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 역시 대의 민주주의 정신의 확장 팩이 될 수도 있다.



 세종대왕과 그 시대의 학자들은 남들이 모두 손사래를 치며 반대할 때 전례 없는 글자체계인 ‘한글’을 만들어내셨다. 선례가 없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선생이 타고나기를 혁명가로 난 것이 아니고, 시대가 이들을 혁명가로 키웠다. 판사하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변호사가 시장이 되듯, 시민운동하던 사람이 무소속으로 시장이 된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정치의 어떤 풍경들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또 어떤 풍경들은 내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감동을 주는 한판 승부, 서울시장 선거가 아름답게 마무리되길 기대해본다. 선거가 끝났을 때 승패가 갈리겠지만,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선거판을 꾸려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