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0. 26. 18:2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86809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10월30일까지 ‘렘브란트와 예수의 얼굴’이라는 주제로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프랑스의 루브르와 필라델피아, 그리고 디트로이트 미술관이 합동 기획 한 것으로 루브르에서는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전시 되었고, 필라델피아에서는 8월부터 10월 말까지 전시가 되며,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열리게 된다.
 
렘브란트(1606-1669)는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에 활동했는데 그의 인물화와 판화가 유명하며, 그의 판화기술은 독보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님의 얼굴과 예수님의 일대기 관련 유화, 그리고 판화작품과 판화를 위한 밑그림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렘브란트의 화실에서 제자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그림도 전시 되고 있다.
 
지난 주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갔는데, 미술관 입구에 루브르 소장품인 ‘엠마오의 예수 (Christ at Emmaus, 1648)’가 커다란 걸개 그림으로 걸려 있었다. 이 작품이 전시회의 대표적 작품인 셈이다. 엠마오와 관련된 이야기는 누가복음, 마가복음에 소개가 된다. 예수 사망 후 제자 클레오파스와 또 다른 제자가 슬퍼하며 길을 가고 있는데 이 때 모르는 나그네가 합류한다.

날이 저물어 엠마오에 도달하였을 때 나그네는 그냥 가려고 하는데, 제자들은 날이 저물었으니 함께 마을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자고 그를 초대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나그네가 빵을 자를 때 제자들은 그 나그네가 스승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일화다.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자그마한 식당의 테이블 정면에 예수님이 앉아 있고, 그의 양 옆에 두 명의 제자가 앉아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른편에 웨이터가 시중을 들기 위해 서있다. 정면의 예수님의 시선은 어딘가 위 쪽을 향해 있고, 양 옆의 제자들의 시선은 예수님 얼굴 쪽을 향한다.

웨이터는 테이블 쪽에 시선을 내려 보내고 있다. 예수님은 왼손으로 길쭉한 빵을 받치고 있고, 오른 손으로 빵을 잘라내고 있다. 이 빵은 유태인들의 전통적인 빵으로 아직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빵을 손으로 자를 때 버석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바로 그 빵을 자를 때 빵이 버석거린 그 순간, 문득, 제자들은 이 나그네가, 돌아가신 스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깨달음은 빵을 자르는 순간 번개치듯 찾아왔다. 이는 불가에서 석가세존이 연꽃을 들었을 때 제자 가섭이 혼자서 그윽하게 미소를 지었다는 이심전심, 불립문자의 경지와 흡사하다. 인간의 언어로서는 전달이 안 되는 세계. 깨달음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우리의 허를 치듯 찾아와 둥지를 튼다.
 
곁에 서있는,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는 채로, 자신의 눈 앞에 구세주가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서있는 웨이터는 이 극적인 장면을 더욱 고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이가 이 사람뿐이겠는가? 그림 앞에 선 나는 눈앞에 진리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내 일에만 열중하는 나 자신의 초상화를 그 식당 종업원에게서 발견한다.
 
이 전시회에서 새로 알게 된 것은 렌툴러스(Lentulus)의 편지라는 것으로, 렌툴러스라는 사람이 예수를 만나 그의 용모를 상세히 서술한 것이 15세기에 유럽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 편지의 저자는, 예수의 얼굴에 상처가 없으며 뺨은 홍조를 띠었고, 소리내어 웃지 않되 밝은 표정이었으며, 곧 눈물을 터뜨릴 듯한 눈빛이었는데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처음 본다고 적었다.

이 서신은 근본을 알 수 없는 위서로 평가가 되지만, 중세 암흑기를 거친 당시의 인본주의 화가들은 편지에 적힌 인간적인 예수님의 용모를 재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예수님을 보러 필라델피아에 갔던 나는 미술관에서 무지하고 깨닫지 못하는 내 얼굴 하나를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딱한 내 얼굴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축복 넘치는 깨달음이었으리라.

2011,10,26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