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1. 10. 20. 00:07


필라델피아 미술관 인근의 오래된 밥집 거리.  이곳에는 이탤리안 식당이나 카페가 많이 있었다.


내 친구는 조지타운의 천주교회에 다닌다. 나는 가끔 내 친구네 천주교회에서 음악회를 하거나 바자회를 할때 내 친구를 보러 거기 간다.  이 천주교회의 주임신부님은 미국 최초의 한인 천주교 신부님으로 알려져있다. 이분 가족들은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들로 알려져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는 사람들로 알려져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카톨릭대학에 장학기금을 전달한 것으로 신문에 소개가 되기도 했다.  (나는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내 참 할말이 없다...  )

내 친구가 공부하는 모임에서 신부님과 함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전'을 보러 가는 행사에 나를 끼워줬다. 이번 렘브란트 초대전의 주제는 '렘브란트와 예수의 얼굴' Rembrandt and the Face of Jesus (August 3, 2011 - October 30, 2011) 이다. 렘브란트와 그의 제자들이 작업한 예수님을 주제로 한 유화, 판화, 펜화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소풍 가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처지라서, 이 전시회 자체에는 큰 관심도 없었고, 바람이나 쐬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직접 운전대를 잡고 '미제차'에 '어린 양'들을 실어 나른 신부님이 참 소탈하신 분이었다.  필라델피아에 왔으니 일단 '필리 치즈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며 식당을 찾아 가셨다. 미술관을 코 앞에 두고 식당으로 향하는 분이라니~  하하하.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래서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은 재미가 있다.)  덕분에 기름기 없는 필리 치즈 샌드위치를 잘 먹었다.





전시회는, 일없이 소풍삼아 따라나선 나에게, 예기치 않은 감동을 주었다.  렘브란트전시장 안에서만 두시간 가까이 보내면서 작품들을 천천히 보았다.  렘브란트 전시장을 빠져나온 일행은, 이 거대한 미술관의 다른 전시장들을 둘러보기를 단념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내 생애에 시간들여, 돈들여  초대형 미술관에 갔다가 조그만 전시장 하나만 보고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이 전시회를 관람한 나의 일행 모두가 똑같은 심정이었던 듯 하다.  '오늘은 이것만 보자. 더 보면 체한다.'

일행중의 한분은 동일한 전시회를 이미 파리에서 봤다고 한다. 그런데 파리의 전시회에서는 오늘같은 무거운 감동은 맛보지 못했다고 한다. 각자 다른 이유로 이 전시회에 감동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전시회장을 떠났지만, 그러나 전시회장을 쉽게 떠날수 없었던 우리는, 미술관 계단에 앉아  기억을 정리하듯, 우리들이 보고 느낀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누가 미리 계획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리 된 것이다. 마침 나는 25장짜리 기념 엽서 세트를 샀는데, 그것을 돌계단에 펼쳐놓고, 각자 맘에 드는 것을 고르기로 했다.  기념 엽서중에서 내가 정말 갖고 싶은것.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의미있는 그림들을 한두장씩 골랐다.

내가 고른  그림은, 렘브란트의 아주 작은 잉크화였는데, 예수께서 잡혀가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산에 들어가서 아주 힘든 기도를 하고 내려와 잠에 빠진 제자들을 보며 "느이들 시방 잠이 오니? 잠이? 그렇게 깨어있기가 힘드냐?" 이러고 한탄/꾸중을 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이 슬프다. 절대고독 속의 한 인간을 보는 듯 하다.  눈물이 나게 슬픈 장면이다.




전시회의 감흥에 젖어 신부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행들. 계단에 펼쳐진 엽서들. 내가 이날 찍은 사진중에 제일 맘에 드는 작품이라서, 출연자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개한다.


이날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로댕의 지옥의 문을 보고 싶어하는걸 알고 일행이 모두 거기에 가보자고 했다. 가을 햇살이 아름다운 오후에 우리들은 경쾌하게 웃으며 느릿느릿 필라델피아 중앙 도로인 프랭클린가를 걸어 로댕 갤러리에 갔다.

전에 이곳에 왔을때 로댕 갤러리는 공사중이었는데, 외부 공사를 마친 이곳은 내부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내에 전시되던 칼레의 시민이 정원에 나와서 파랗게 부식되고 있었다. 청동이니까 파랗게 부식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부식된  모습이 더 근사해 보였다.




지옥의 문 앞에 다시 섰다. 2년전 10월에도 나는 이 앞에 서서 지옥의 문을 만져보며 삶의 위안을 얻고 있었다.


여행은 편안하였고, 유쾌했다.  복된 하루였다.  고마운 일이다.




지옥의 문 앞 연못  하하하 지옥문 앞에서 이렇게 웃을수 있는 여유~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