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1. 10. 10. 13:12

사람들이 내게 연락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쉽다). 나는 이메일 인간이다.  그러니까, 내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면 소통을 할 여지가 많지만, 전화로는 거의 소통 불가에 가깝다.  일단, 학교의 내 연구실에는 직통 전화가 없다. 내가 전화기를 빼서 내다 버렸다. (시끄러워서.)  학교의 나와 통화를 하려면, 천상 학교 공식 전화를 통해서 -- 학장님이나 조교를 통해서 할 수 있다.  내 핸드폰은, 내가 이름을 입력해 놓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만 통화를 하는 편이다.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오면 그냥 안 받는다.) 

학장님이나 조교선생은 내 성격을 잘 아는지라, 여간해서는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바꿔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뭐시 교수'를 찾으면, 용건을 묻고, 이리저리 탐색을 한 후에 대개는 "이메일 해 보세요. 그러면 연락이 빨리 될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설명을 해주고 만다.  나에게 전화를 연결해주지 않는다.  내가 낯선 사람의 연락을 절대 안받는다는 것을 그분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꽉꽉 막힌 소통 장치 틈 사이로 나와 통화가 된 분이 있었다.  학장님이 전화번호를 주면서 꼭 한번 연락을 취해보라고 했다.  뭔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대개 시큰둥하게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치는 편이지만, 그날은 어쩐지 그 나를 간절히 찾는다는 그분께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내게 전화를 건 분은 메일랜드 주에서 비영리 교육기관의 운영 책임자였다. 말하자면, 노인학교. 그 노인학교에서는 주 교육국의 교육기금을 받고 있는데, 그랜트 신청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가 나였다.  그분은 신문에서 나를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신문에 난 정보를 토대로 나에게 연락을 취하셨다고 했다.  내게는 신문을 보았다며 연락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대개 비영리 단체에서 협조를 구하는 내용인데, 나는 이런 협조 요청에 답으르 한 적이 없다. 내가 답을 안하고 지나치는 이유는, 그 단체가 뚜렷한 내용없이 정치적인, 혹은  이념적인 색깔만 내세울때, 그 허망함을 내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행동 없이 공염불 하는 집단, 개울도 없는 곳에 다리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집단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나와 통화가 이루어진 그분이 안고 있는 문제는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정확한 사람을 찾아냈다.  내가 아주 잘 해 낼수 있는 분야의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메릴랜드주의 어느 노인대학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의 자문을 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자원봉사로 하는 일이다. 내가 그곳에 자주 갈것도 없이, 중요한 행정적인 절차에서 내가 필요할때 그 때 내가 일처리를 해주면 되는 일이다.  나로서는 잠시 시간 내서 신경을 쓰면 그만인 일이지만, 노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내 도움이 요긴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무척 기쁘게 생각했다.  내 별것도 아닌 노력으로 노인 어르신들의 공부에 도움을 드릴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일전에는 그곳의 운영자 선생님과 대표 어르신이 내 연구실로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매우 송구스러운 연락이었다. 여태까지는 그분이 내 연구실로 찾아와 내 연구실에서 몇가지 작업을 해 드리거나, 전화 통화로 일을 처리 하였는데, 어르신들 여러분이 내게 인사를 하러 오신다니, 난처한 느낌이 들었다. 시퍼렇게 젊은년이 앉아서 어르신들의 인사를 받는 격이 아닌가.

그래서, "그러실 것이 아니라, 제가 수업 없는 날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했다.  그러자 저쪽에서 펄쩍 뛰셨다. 바쁘신 분이 그렇게까지 시간을 내시면 너무 죄송하다고. 이런 말씀을 들으니 나도 더욱 죄송스러워졌다. 그래서, 일전에 난생처음으로 나와 인연이 된 그 노인대학을 찾아가게 되었다.  집에서 하이웨이를 15마일쯤 타고 달리다가 도착하게 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초대형 교회가 있었는데, 그 노인대학은 교회당의 시설을 빌려서 운영되고 있었다.  교회가 지역 주민들의 평생학습의 장을 주선해주는 것은 아주 좋은 사례로 보였다.

주차장에 정각에 도착하니 나와 만나 일을 의논하던 선생님께서 이미 주차장에 마중을 나와 서 계셨다. 융숭한 영접을 받은 셈이다. 그 선생님은 내게 교육시설을 하나 하나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셨다. 그리고 교무실로 안내를 했는데, 교무실에는 열명도 넘는 선생님들이 모여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모두 노인 선생님들이셨다. 모두 내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어르신들.   "아유, 신문에서 뵌 것보다 더 젊고 이쁜 분이 오셨네!"  (신문에 오르는 사진은 3년전 사진인데요....그때가 더 젊었지요...). 

나는 낯선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미인이시네요' '젊으시네요' '아가씨 같으시네요' 이런 소리 하면 모욕감을 느끼는 편이다. 너무나 상투적이고 값싼 인사법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자리에 모이신 어르신들이 내게 젊고 이쁘다고 말씀 하실때는 그런 모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분들 눈에는 내가 '정말로' 꽃처럼 젊고 이뻐보이실것도 같았다. 내가 그분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어르신 선생님들은 영어 선생님을 비롯해서 각기 다른 프로그램의 선생님들이셨는데, 내가 영어교육 전문가라고 소개가 되자, 각기 살아오시면서 겪었던 영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내 의견을 물으셨다.  어떤 분은 한글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칠때, 영어 사용을 안하고 한국어만 사용하는 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가 물으셨다.  수십년간 영어 선생님을 하셨다는 노신사는 내게 영어를 영어로만 가르치는게 타당한지 모국어로 설명을 하면서 가르치는게 타당한지 아주 진지하게 물으셨다.  이분들의 질문은 여전히 심도깊게 논의가 되는 주제들이다. 상황에 따라서 답은 달라질수 있는 것 들이다.  선생님들과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활기차게 진행 되었다.

회장님이 나를 위하여 회식을 제안하셨다.  모두들 노인대학 스쿨버스를 타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을 했는데, 식당에서도 진지한 대화는 이어졌다. 칠십세 안팎의 선생님들이 진지하게 교육을 고민하고 계셨다. 그리고 내가 이분들의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 맞장구를 치거나 웃거나 뭔가 대꾸를 하면 그것을 참 좋아하셨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처럼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깊게 반응하는 청중을 본적이 없었던 것도 같았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원생들도 내 수업중에 눈을 빛내고 활발하게 토론을 하는 것을 자주 보는 편이지만, 노인 선생님들과의 대화 속에는 뭔가 반짝거리는 기쁨 같은 것이 숨어있는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이 어르신들 속에서는 예쁘고 싹싹한 젊은피라서, 그래서 어르신들이 무조건 사랑을 보내주셔서 그런것 같다.)

점심식사후에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 흩어졌는데, 선생님들이 한분 한분 내 손을 꼭 잡고 악수를 하시고, 다음에는 언제 올거냐고 묻기도 하고 그러셨다.  (이런 환대와 환송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예상도 못하던 일이었지....) 게다가, 마지막에는 나와 늘 연락을 취하시던 선생님이 혼자 남아서 인사를 하시더니 내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자원봉사로 일해주시니 기름값이라도 하시라는 것이다. 자원봉사 하는 사람도 기름값은 받는거라고.  그래서 그 선생님께, 앞으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학교를 위해서 일하게 될지 알수 없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기름값도, 선물도, 아무것도 받을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사과 한알이라도 받는 순간, 이것은 자원봉사가 아닌게 되는거라고. "점심밥도 얻어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어르신 선생님들께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제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것인데요. 저를 그냥 순수하게 일만 하게 해주세요. 뭘 받으면 그때부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니까요. 사례를 받으면, 저는 봉사하는게 아니쟎아요.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결국 나는 앞으로도 선물 한가지라도 안받는다는 것까지 분명히 의사 전달을 했다. 담당 선생님은 내게 무척 미안해 하셨다. 그 미안해 하시는 표정이 이미 내게 충분한 보상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더 큰 보상을 받은 셈이다. 내가 어딘가에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  그 빛나는 보람을 서푼짜리 휘발류값 혹은 작은 선물과 바꿀수는 없는 일이다.

찬홍이가 대학에 들어갈때까지, 나는 늘 사회에 대한 나의 봉사의 의무를 애들 핑계를 대며 미뤄왔었다.  찬홍이는 대학에 들어갔고, 내 곁을 떠났다. 나는 여러가지 숙제로부터 놓여났다. 이제 더이상 누구의 핑계를 대면서 내가 사회에 되갚아야 하는 것을 미룰수가 없는 형편이다.  바로 그때, 하늘이 보낸것처럼 노인학교 선생님이 내게 신호를 보낸 것이리라.  감사한 일이다.  가끔 혼자 앉아서, 베란다에서 살고 있는 거미를 쳐다보다가, 그 노인대학 생각을 하면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이세상 어딘가에 내 혼이 잠시 쉴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즐겁게 노시는데, 내가 가면 무척 반기신다.  나의 새로운 친구들이다.


* 내가 최근에 나에 대해서 발견 한 것이 뭔가하면, 내가 노인에 대하여 친화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나는 노인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고, 노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신체적으로 불편한 노인을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 조금 알고 있다.  이런 친화력은,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으며, 주변에 할아버지 할머니 또래의 어른신들이 많은 환경이었고, 시집살이를 할 때에도 노인 시어른들 속에서 시집살이를 착실히 하여 노인들의 화법에 익숙하며, 어머니가 늙어가신 세월속에 있었으며, 최근에 한달 넘도록 엄마와 '합숙'을 하면서 훈련을 단단히 받은 전력에서 오는것도 같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뵐때, 늘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생각이 나기 때문에 내 마음이 굉장히 말랑말랑해지는 면도 작용을 한다.  내 환경이 나를 어르신 친화력이 있는 사람으로 키웠을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낯선 분야가 있는데, 그 쪽 분야에서 일을 좀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망설이고 있는 편이다..... 내가 실수해서 아픈 영혼에 상처를 줄까봐 그것이 겁이 나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