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사가 창고 정리좀 해 달라고 하셔서 잠시 '머슴놀이'를 하다가 발견한 유여사의 작품. 액자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아무도 이 그림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개인전 할때도 전시하지 않았던 그림이다. 유여사 왈, "하도 많아서 다 걸지도 못했어..."
몇해전 전시회 할때, 내가 작품 골라냈었는데, 그 때 내 눈에 띄었다면 이 작품을 꼭 눈에 띄는 곳에 전시 했으련만. 아무튼 창고에 처박혀 있던 그림이다.
이곳은 수원 아주대 앞, '원천호수'이다. 지금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흔적을 찾기도 힘들지만, 내가 어릴때는 그냥 탁트이고 고요한 저수지 호수였다. 가운데 머리 긴 소녀는 우리 언니다. 왼쪽의 노란 모자 꼬마는 내 오래비 동생이고, 오른쪽에 서 있는 선머슴이 나다. 빨간 빵모자는 엄마가 짜 준 것이다. 실제 모습이다. 사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엄마가 그냥 내 글을 읽고 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창고에 처박혀 잊혀져 있던 것을 발굴해 냈으니, 일단 내가 '찜'을 했다. "내가 그림 값 갖고 와서 그림 가져갑니다" 했더니 통 큰 유여사, 돈은 필요 없다며 그냥 가져가란다. 물론 대개 그냥 가져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맘에 들어서 작품값을 지불하겠다는 것이지. 은행에 가서 빠닥빠닥한 만원짜리 혹은 오만원짜리 돈을 많이 달라고 해가지고 빠닥빠닥한 신권으로 가져다가 '그림값'이라고 드리면 -- 엄마는 스스로 무척 자랑스러운 기분이 드시겠지. 상고머리에 빵모자, 아무렇게나 허름한 옷. 그림의 구석자리. 그것이 엄마 가슴속의 나의 위치이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주변인으로 존재하는 내 모습이 꽤 맘에 든다. 옛날에 나는 '주목받지 못하고' 늘 변두리 인생같은 내 위치가 서럽기도 하고, 인생이 시들했다. 그런데, 지금은, 구석자리 안보이는 곳, 주목받지 않는 변두리 삶이 더 좋다. 구석 어딘가에 내 자리 하나 있으면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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