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6. 30. 10:15


오늘은 내가 학교에 출근을 했다.  아침 지어서 함께 먹고, 부엌 치우고 학교로 향하면서 "찬홍아 새우젖 찌개 데워서 할머니 점심 차려 드려라" 하고 나갔다. 

오후에 학교 근처 떡집에 들러서 떡 몇가지 사고 (인절미 같은것을 작은 팩에 나눠 담아서 냉동 보관하면 소풍갈때 갖고 나가기 좋다) 반찬거리 사가지고 집으로 향하는데, 집에서 엄마와 찬홍이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곳이 묵직해 오고, 뭔가 내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다. (가장들이 저녁에 집으로 향할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오직 나 하나를 믿고 기다리는 가족에게 향하는 그 사명감과 뿌듯함 같은것)

네시쯤 집에 왔는데, 모두들 낮잠을 자다 깬 분위기.  찬홍이와 엄마가 점심도 건너뛰고 낮잠을 퍼 자고 있었다고 한다. (할무니를 점심을 안드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일단 찬홍이한테 잔소리를 끓여붓고)  떡을 꺼내 접시에 담아 내 놓으니 찬홍이도 엄마도 그 떡을 아주 달게 드신다.  (나는 떡을 봉지봉지 담아서 냉동실에 넣고.)

나는 드러누워서 책 보다가, 한국의 언니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가 사용하는 내 방에서 지속적으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가 소녀처럼 하이톤으로 뭔가 신나게 설명을 하고 있고, 찬홍이가 가끔 킬킬대며 추임새를 넣는 모양이다.  찬홍이는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잘 한다.

내가 가만 관찰해보면, 찬홍이는 할머니가 알아 듣건 말건 뭔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찬홍이가 말을 하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다. 찬홍이의 늘어지는 수다를 다 들어준다. 

또한, 할머니가 이야기를 할 때는 찬홍이가 추임새를 넣으며 웃어가며 그 얘기를 다 듣는다. 

찬홍이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찬홍이가 '너무나 지나치게 잘난척에 빠진 엄마'와 사는동안, 엄마가 중간에 말을 툭툭 끊어버리거나, 요점을 정확히 말하라는 잔소리질을 해 대는 통에 맘껏 자기 얘기를 못했던거다. 그런데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해 주니까 마음이 기뻐지는 모양이다.

엄마 입장에서 봐도, 역시, 잘나 자빠진 딸년은 무슨 말을 하려해도 다 들어주지를 않고 똑똑 끊어버리거나 혹은 무시하는 태도를 슬쩍슬쩍 비치는데, 손자놈은 할머니 얘기를 재미있다고 들으며 웃고 깔깔대고 박수를 쳐 주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도 찬홍이하고 얘기하는 것이 편안하고 즐거우신 모양이다.


찬홍이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출세를 할지 나는 가늠할수 없다.  하지만, 이놈이 사람이 아주 진국인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애가 참 어질어보인다. (내가 멍청하다고 놀리기는 하는데), 따지고 보면 어질고 멍청한것이, 약고 사악한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찬홍이가 어진 놈이라서 참 고맙다. 어떻게 나한테서 저런 순둥이가 나왔으까?  (아무래도 그건, 엄마를 안 닮고, 아빠를 닮았나부다...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엄니는 오늘 집에서 푹 쉬시면서, 나 없는 사이에 그림 작업을 조금 해 놓으셨다. 
금요일에는 뮤지컬 공연 보러 갈 것이고, 일요일에는 필라델피아에 모시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외출 일정이 없는 날에는 내가 내 일을 하거나 찬홍이 라이드를 해주거나 그러고 보낸다.  그러면 엄마도 집에서 낮잠도 자고 쉬고 그러실수 있다.


엄마는 내 침실, 내 침대를 사용하신다. 내 침대가 크니까, 거기에 엄마의 귀중품을 모두 정리해 놓으셨다. 내 침대를 자신의 방처럼 정리해 놓고 쓰신다. (뭐 침대가 웬만한 조그만 방 한칸 크기이니까 ㅋㅋㅋ).  나는 거실, 지홍이가 쓰던 침대나 소파나 혹은 바닥에서 뒹굴며 잔다.  전에 플로리다에서 살때, 세팔이하고 함께 살때, 그때도 나는 거실 소파에서 주로 잤다. 거실 바닥이나 소파에서 자는 생활에 익숙한 편이다.  거실의 절반은, 우리집 화실이다. 거기에 화구를 온통 늘어놓고 엄마와 내가 각자 작업을 한다. 나도 내 작품을 가끔가다 조금씩 만져주고 있다.  지금 '사랑이 나를 교활케하여' 라는 허영자 시인의 싯귀를 주제로 연작을 만드는 중이다. 

나는 학교에 연구실이 있으니까, 거기가 완벽한 내 공간이니까, 집에서 이렇게 내방도 없이 사는것도 불편하지 않다.  마치 룸메이트들이 자유롭게 사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엄마하고 이러고 사는것도 재미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