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7. 1. 11:16



어젯밤에 지팔이 훈련병 수료식 중계방송을 듣느라 (지팔이 부친이 전화질을 했다는 뜻) 잠을 설친 관계로,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게으르게 아침을 지어 먹고, 행장을 차려 베이 브리지 너머에 있는 퀸스타운 아웃렛에 갔습니다. 대략 정오쯤 되는 시각.

오늘 엄마의 직계 자식들 및 손녀딸들에게 줄 선물을 모두 샀습니다. 서울의 가족들은 군침을 삼키며 기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엄마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작품들입니다.  (엄마와는 별도로, 나는 지팔이 작은 엄니들과 작은 아빠들 선물도 챙겼습니다. 지팔이 부친이 특명을 내린 관계로, 고민해서 좋은 것으로 골랐습니다.)




성지순례하듯 제일 먼저 간곳은 코치 매장인데, 이곳에서는 재은이와 세팔이, 윤지를 위한 소품들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주변 친지에게 선물할 작은 스카프들도 골랐습니다.   그러다가, 모자를 발견했는데, 엄마가 척 써보더니 "이거 좋다" 이러고 안벗어...그래서 나도 써봤는데, 엄마가 "너도 좋다" 그래서 나도 안벗고, 모녀가 둘이 똑같은 모자를 하나씩 사서 썼습니다. (사실 내가 입고 있는 원피스하고는 색깔이 안 어울리지만, 얌전한 것이 맘에 들었습니다.)
세시간쯤 선물을 산다고 돌아다니고...  엄마는 내가 선물 고르는 동안 소파에서 쉬시거나 찬홍이와 노닥노닥, 아무래도 힘에 부치시는 듯, 내가 골라가지고 "엄마 이거 좋아?" 그러면 "응" "아니" 이런 식으로 코치만 했습니다. 엄마의 직계 자손들을 위한 선물 쇼핑을 모두 마치고, 아웃렛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 (써브웨이)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조그만 피크닉 아이스박스에 인절미, 현미떡, 수박, 체리 이런것들을 싸 갖고 가서, 엄마와 나는 그것을 먹고, 찬홍이는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엄마 앞에 수박, 체리, 그리고 인절미 봉지가 보입니다.) 미국은 여름에 실내 냉방이 잘 되어 썰렁할 정도 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생활이 익숙하지만, 엄마에게는 춥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디건을 갖고 다니다가 엄마의 어깨나 목에 걸쳐드립니다.


난, 아웃렛가서 정작 내가 사고 싶은 것은 구경도 못하고 순전히 선물 쇼핑만 하고 말았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엄니하고 다니니 몇집만 돌아도 피곤합니다. (나 비치용 썬드레스 하나 사고 싶었는데, 구경도 못했네...)  깔깔대면서 늦은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10분쯤 차를 달려 해변으로 갔습니다.

엄마가 바닷바람을 쐬면 기침이 나올수 있으므로 역시 내 카디건으로 꽁꽁 싸 매줍니다.  엄마가 입고 있는 분홍색 블라우스는 '치코' 매장에서 새로 산 것입니다.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큰 우산을 꺼내서 파라솔로 쓰고 있습니다.



찬홍이는 박씨문중 사람답게, 바다를 봐도 들어갈 생각을 전혀, 전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우리집 쓰리박은 물가에 가도 물에 첨벙첨벙 들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석달열흘 고사를 지내야 한번 발을 담글까말까 입니다. 참 대단한 쓰리박입니다.  역시 오늘도 물한방울 만질 생각도 없어 보이는 박찬홍 선수.




파란 모자, 분홍 블라우스, 그리고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얼핏 '소녀'같습니다. 파란 모자가 바닷가에서 아주 시원해보입니다.








사람좋게 벙글벙글 웃기만 하는 거북이.






"엄마, 바다에 왔는데, 바닷물도 안건드리고 그냥 가면, 바다에 좀 미안하지 않어? 응?" 내가 뭐라고 하니까, 엄마가 용기를 내어 바닷물에 손을 담급니다.  엄마는 바닷물이 찬줄알고 몸을 사리고 있다가, 바닷물이 따뜻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빛냅니다. 엄마 몸이 가뿐하면 물놀이를 하고 싶겠지요.  그러나 엄마의 몸은 마음같이 가볍지가 않습니다.






어린애처럼 물에 손을 담가보고 아주 좋아하는 엄마.



엄마는 바닷바람에 감기에 걸릴까봐 옷을 여러겹 껴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록달록하고 예쁩니다.




 





엄마 어릴때 사진이 몇장 있는데, 이 사진속의 엄마와 비슷합니다.

 

우리 찬홍이와 엄마 얼굴이 환하게 빛납니다.


신나는 쇼핑, 즐거운 바닷가의 시간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다시마 멸치로 국물을 내어 우동을 끓였습니다. 엄마는 우동 한대접을 국물까지 싸그리 달게 잡수셨습니다. 내가 목이 말라서 맥주를 갖고 오자 엄마가 먹고 싶다는 듯 맥주를 쳐다봤습니다. "엄마, 맥주 할껴?" 내가 묻자 "응!"  엄마가 맥주가 먹고 싶대요.  그래서 내 맥주를 조금 따라드렸습니다. 맥주가 달다며 그것을 마십니다. 뜨거운 우동과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오늘의 피로를 날려보냈습니다.

엄마는 새로 사온 옷을 입고 지금 축구장같이 넓은 침대위에서 크르렁 크르렁 코를 골며 단잠에 빠졌습니다.  원래, 해변에 가서 놀다 오면 그날 잠은 아주 달콤합니다. 밤새 꿈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붑니다.

오늘도 신나는 하루를 살았습니다. 내일은 울프트랩에 뮤지컬 '맘마 미아'를 보러 갑니다. 자알~ 놀고 있군요~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