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6. 26. 12:21


엄마의 미국 방문 기념, 케네디 센터 공연 관람.

급작스럽게 표를 구하다 보니, 서부 LA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는 Ozomatli 라는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밴드가 국립 팝스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한다길래.  나는 오조마트리는 뭔지 모르지만 최소한 국립 팝스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를 한다면 꽝은 아니겠지, 이러고 그냥 표를 사 놓았습니다. 오늘이 마침 그 공연 날.

오전에는 양식당에 가서 호되게 '양식 매너'를 익힌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곯아 떨어지셨고, 나는 학교에 잠깐 들어서 급히 일을 처리하고, 찬홍이를 태권도장에 라이드 해 주고, 찬홍이가 태권도 연습을 하는 두시간 반 동안 인근 카페에서 책보며 빈둥빈둥.  태권도 마치지마자 집으로 달려와 급히 저녁을 차렸습니다. 이거 내가 대략 30분만에 급조한 저녁 밥상.

일단 발아현미에 완두콩을 씻어서 압력솥에 앉히고
뚝배기에 순두부 찌개 국물을 앉히고
찜솥에 단호박과 옥수수를 물 잡아 앉히고
갈비살 사다 놓은 것을 꺼내어 후다닥 양념을 하고 (집에 굴러다니는, 아무도 안먹는 양주도 향긋하게 뿌리고)
상추 씻어놓고, 생두부 양념 하는사이에
밥이 완성되고
찌개가 완성되고
갈비살 굽고
어제 먹었던 콩나물국 남은것 다시 데우고.
김치와 생채 꺼내고.
잘 익은 옥수수와 호박도 꺼내놓고.
그래서 저녁밥상 완성.
내가 대충 차린 저녁 밥상을 보면서 "와! 나 대단하다 이걸 반시간만에 해 내다니!"


 
감기기운이 있는 엄마는 콩나물국과 순두부 찌개를 달게 잡수시고, 찐호박도 "미국 호박은 맛도 좋다"며 역시 달게 잡숫고, 갈빗살 구운것도 몇조각 쌈에 싸드리니까 싫다 소리 안하고 주는대로 받아 드시고~   후다닥 설겆이를 마치고, 이제 케네디센터로 달려 갑니다. 대략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저기 보이는 케네디 선생 두상 (오페라 하우스 앞)을 배경으로 증명 사진 찍어주시고.



테라스로 나가서 포토맥 강을 내려다보며 바람을 쐬기도 하고.  메가폰 조형물을 설치 해 놓았길래 이것 가지고 장난도 치고.






내가 엄니한테 저기 난간에 기대서서 포토맥 강을 내려다보면서 "여기는, 저기는" 하면서 설명을 하는 것을 어떤 신사가 지속적으로 눈길을 보내는 것을 느꼈는데.  이 신사가 나중에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사진 찍어줄까?"  (요새 사진 찍어주겠다는 자원봉사자가 참 많아요~ )  그래서 내가, "내 카메라가 좀 말썽이라서 제대로 찍힐지 몰라" 하면서 그 신사에게 줬는데, 역시 작동을 잘 안하는거라. (나만 간신간신히 달래서 쓰는중.).  그런데 이 신사가 하는 말씸 --"네 카메라가 안되면 내 카메라로 사진 찍어줄게."  (아쭈... 하하하. 이 아저씨가...시방 뭐 하는겨? )   그래서 내가, "야야 찬홍아, 내 카메라 고장이다. 네 아이포드로 찍자" 이러고 찬홍이 아이포드를 아저씨한테 넘겼습니다.  아저씨는 사진을 아주 잘 찍어 주었습니다.  참 친절한 신사분이셔..




그런데, 나중에 찬홍이 왈, '그 아저씨 말끔한 신사이긴 한데,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내가 보기엔 말끔한 신사복 차려입고, 와인까지 한잔 마시면서 음악회를 기다리는 전형적인 신사더구만. 게다가 자원봉사로 사진 까지 찍어준다는데 왜 기분이 나쁜가?   심심하던 차에 미인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 보고 싶었겠지.  하하하.



이곳은 케네디센터 컨서트 홀.  내가 오페라 하우스 공연도 보았고, 테라스 컨서트 홀 공연도 여러차례 가 보았는데, 이 컨서트 홀은 나도 처음 가봅니다.  이곳은 서양 고전 그림에서 보이는, 그 발코니 형 객석이 4층까지 있는 매우 고전적인 구조의 음악당이었다.  샹들리에도 아름다웠습니다.




일찌감치 자리 찾아 앉아서, 컨서트 홀 증명사진.



아래 사진은 공연을 마치고 앵콜 공연하고 그럴때 다들 사진을 찍길래 나도 찍은 것입니다. 공연중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됩니다.  사진 오른쪽 발코니 객석에서 사람들이 선채로 춤을 추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오늘 컨서트 분위기가 어땠냐하면, 거의 100분가까이 진행된 컨서트 내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환호하였습니다.  신나는 컨서트였습니다. 사실 나는 무슨 힙합, 레게, 라틴 음악등 이런 잡동사니 음악을 하는 밴드라길래, 이것 무척 시끄럽겠다. 엄니는 적응 못하시겠다. 찬홍이만 신나겠다.  너무 시끄럽고 괴로우면 중간에 나가서 밖에서 기다려야지. 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신이 나는 나머지 마침내는 감기기운이 있어서 전반전에 깜박 졸기까지 하던 엄니가 마지막에는 일어나서 춤을 추며 열광하셨습니다.  (난 엄마가 춤추다가 쓰러질까봐 조마조마 했습니다.  17년 전에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때도 합창 연습하다가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다가 쓰러졌던 것이니~   난 정말 조마조마 했습니다.)


아, 나도 오랫만에 신나게 춤을 추니, 머리가 홀가분하고 좋습니다.  내가 아주 속이 다 후련합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컨서트 찾아다니며 열광하나봐...)   내가 원래 흥이 있고 잘 노는 사람입니다. 음악 들으면 몸이 먼저 들썩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쓰리박하고 살면서 많은 압제를 받았습니다.  쓰리박은 사람들이 아주 경건하고 진지합니다. 그래서 컨서트에 가서도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앉아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흥이 없어보입니다.  나는 음악에 온몸으로 반응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쓰리박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아버지박이나 아들 박이나, 나만 보면 "음악회에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구박까지 합니다.  내가 죽은 시체냐. 가만히 있게, 응?

그런데, 그 해묵은 나의 불만을 오늘 한방에 날려버렸습니다. 국립 팝스 오케스트라 지휘지가, 그리고 오조마틀리 멤버들이 "워싱턴이여 일어나라, 일어나 춤을 추라!  이 세상을 좀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 일어나 춤을 추라" 뭐 이러니까, 다들 일어나 춤을 추며 열광하더라. 쳇. 음악회가 경건해야 한다는 것도 쓰리박의 편견일 뿐이지.  기대도 하지 않고 갔다가, 오늘 아주 신나게 춤을 추고 왔습니다. 평소에 경건하다 못해 짜증나게 진지한 찬홍이가 오늘은 너무 춤을 춰서 다리가 저리다고 합니다. 유여사 까지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니까~  (엄마는 심지어 나중에 이 사람들한테 싸인을 받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하하.깔깔깔.)

집에 오신 유여사. 내가 주섬주섬 꺼내놓는 찐호박과 수박을 아주 달게 잡수시고 침대에 오르시더니 벌써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계십니다.  (엄마가 열광적인 유쾌한 시간을 가져서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