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뭣이 중헌디 (0) | 2018.09.09 |
---|---|
십일조를 낸다 아니다 내지 않는다 (0) | 2018.09.07 |
강용석씨, 코미디는 이제 그만, 식상하니까... (0) | 2018.08.28 |
니체와 달팽이 (0) | 2018.06.18 |
National Symphony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0) | 2018.02.04 |
뭣이 중헌디 (0) | 2018.09.09 |
---|---|
십일조를 낸다 아니다 내지 않는다 (0) | 2018.09.07 |
강용석씨, 코미디는 이제 그만, 식상하니까... (0) | 2018.08.28 |
니체와 달팽이 (0) | 2018.06.18 |
National Symphony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0) | 2018.02.04 |
https://news.joins.com/article/22921083
변호사 강용석씨가 청와대에서 게시한 사진 한장을 가지고 분탕질을 다시 시작했다. 애석한 일이다. 나는 강용석씨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그가 참 잘 나가던 시절) 그가 언론매체에 소개된 모습을 보면서 '참 똑똑한 일꾼이 하나가 등장했다'고 생각했었다. 정치적인 방향이 다르더라도 인재임은 분명했다. 그가 몇 마디 말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질때도 약간 애석한 마음도 들었었다.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엉뚱한 실수로 헛발질을 하다 넘어지는 것을 보는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에게 일말의 애정이나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그가 흙수저 출신으로 입신양명한 수재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는 개천에서 난 용처럼 보였는데, 승천하지 못하고 계속 괴상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용석씨, 당신이 요즘 사진 갖고 시비거는 것은 사실 당신 수준에 맞는 행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사진 구도는 거기서 거기다. 웨딩사진에는 신랑신부가 반드시 들어가고 대개 비슷한 포즈를 취한다. 그런 것을 카피라거나 따라하기라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집무 관련 사진들도 대개는 거기서 거기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그래서 누가 누구를 따라 했다고 트집 잡는 일도 없다.
다음 사진들을 보자.
옛날 옛적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의 사진이다. 대통령 집무실 테이블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터넷에서 업어왔으니, 페이지 열어보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찍은 것인지 설명이 나올것이고, 나도 당신만큼 영어는 되니 설명 못할것도 없지만, 별 관심 없어 패쓰한다.
이건 뭐냐구? 클린턴 대통령 시절이지 뭐. 왼쪽에 엘고어 부통령도 보인다. 나머지는 관심 없고.
자, 이건 뭐냐? 오바마 대통령이 제복 입은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는 장면이다. 뭐, 포즈가 거기서 거기다. 두손 모으고 있던가, 비스듬히 있던가. 당신은 이 사진과 트럼프의 사진을 비교하며 --트럼프는 따라쟁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가?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뻔하고 뻔한 의전적 사진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뭐 따라쟁이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대통령이 물구나무를 서야 하는걸까? 아니면 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요가 자세라도 취해야 하나?
같은 날 찍은 사진인데 아래 사진은 조금 다르지?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지. 안그런가?
강용석씨. 당신은 재기발랄하고 두뇌명석하고 참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 사람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설령 인생에서 몇차례 넘어졌다고 해도 당신의 인생이 여기가 끝이 아니니까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실수도 하고, 불륜도 저지를수 있고, 반성하고 다시 일어날수도 있고 그런것이 인생이다.
참 똑똑한 당신이 엉뚱한 짓을 하는걸 발견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는 이런말을 사람한테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그만 이런 말이 입에서 새나오기도 한다. Pathetic.... 영어도 잘하는 당신, 이 말의 뜻이 얼마나 나쁜지는 잘 아실것이다. 당신 재능을 엉뚱한데서 소모하지 마시길. 설마 당신같이 잘 난 사람이 관심종자는 아닐테고...설마 '옛다 관심'이 필요해서 지금 뻘짓중인건가? 설마... 코미디는 이쯤에서 끝내자. 건투를 빈다.
첨언: 그런데 말이지. 나는 문제의 그 사진 - 현직 대통령 주위에 여직원들 (여성 비서관들) 줄나래비로 서 있는 그 사진 자체가 기분이 나빴어. 나는 그런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 그 사진의 본질에 대해서 누군가가 심도있는 지적질을 해 줬다면 반가웠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기껏 다른 사진과 구도가 비슷하다고 시비거는건 ... 애석하게도 촛점이 엉뚱한데 맞춰져 있었다는거지. 그 사진 나도 맘에 안들기는 하다구 (다른 이유로.)
과거에도 주의를 줬건만: http://americanart.tistory.com/1385
십일조를 낸다 아니다 내지 않는다 (0) | 2018.09.07 |
---|---|
Try to remember (0) | 2018.09.04 |
니체와 달팽이 (0) | 2018.06.18 |
National Symphony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0) | 2018.02.04 |
'Move Over' Law in Maryland and Virginia (1) | 2018.02.01 |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프레임 대결이 아니었어. 문제는 우파 정권이냐 좌파 정권이냐가 아니었어.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파이건 좌파이건 간에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대 정부가 나(국민, 시민)를 실망시킨 이유가 딴데 있었던거야.'
생각해보자. 그가 박근혜 지지자이건 문재인 지지자이건, 누구의 지지자이건 간에 진정으로 그가 그 정부에 대하여 제대로 흡족했던 적이 있던가? 그가 평생 보수 성향에 표를 던졌건, 진보 성향에 표를 던졌건, 혹은 오락가락했건 간에 정말로 자신이 표를 주고 선출했던 정부에 만족했던 적이 있던가?
나도 평생 오락가락하는 일 없이 내가 선호하는 방향에 투표권을 행사해왔다. 그렇다고해서 정말로 내가 지지한 정부나 조직이 나의 희망을 일부라도 성취해 줬던가? 돌아보면 그게 꼭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지지한 진영이 '승리'했을때 나는 잠시 승리를 맛봤을 뿐이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진영이 '승리' 했을때 나는 잠시 실망했을 뿐이고, 세상은 지지부진하게 흘렀을 뿐이다. 여태까지 그래왔다. 지금 현재도 그러하다. 저들은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며 죽을 쑤고 있다. 그저 저들이 잘 해내길 바라고 응원할 뿐이다. 떼거리로 움직이며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있어 보수도 진보도 다를게 없다.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나는 왜 번번이 실망하는가?
이런 나의 '참 알수 없는 일'에 대한 해답을, 적어도 어떤 식의 설명을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서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었어.
문제는 (미국식으로) 민주냐 공화냐가 아니었어.
문제는 (한국식으로) 아무개당이냐 아무개당이냐, 혹은 박근혜냐 문재인이냐 그런게 아니었어. 아니었어.
어차피, 저들은 말하자면 '자본 권력을 가진자'들의 꼭뚝각시에 지나지 않았어. 자본권력자들은 보수건 진보건, 이명박이건 노무현이건 누가 대통령이 되건간에 상관없이 자본의 권력을 휘두르면 되었던거야.
정치에서 정치가 사라지고, 진보냐 보수냐가 무의미하고 정당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현재의 미국대통령이지. 그는 사실 친정인 공화당에서도 사생아 취급을 당하던 사람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어. 양당이 공고한 미국 사회에서 그는 그저 '공화당'이라는 옷을 선택했을 뿐 그에게 공화당이 큰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 그는 자본가로서 키워온 동물적 감각으로 자본주의의 꽃 미국의 심장에 칼을 겨누고 승리를 쟁취했던 것이지.
이제서야 내가 수십년간 품어온 의문에서 약간 벗어난 기분이 든다. 진짜 권력은 다른데 있었던 거야. 그 어떤 대통령이 와도, 저 숨은 권력을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는 망할수밖에 없는거야. (숨은 권력의 시녀로 빌어먹고 살던가...)
눈 기다림 (2) | 2019.12.24 |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전병근 옮김 (0) | 2018.09.10 |
미국,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0) | 2018.08.18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 천명관 장편소설 (0) | 2013.08.25 |
That's Not What I Meant! /Deborah Tannen (0) | 2013.08.02 |
오랜만에 동네 산책 나가 영풍문고에서 발견하고 단숨에 읽은 책: 미국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진보진영의 스티글리츠와 맥을 함께하는 이론가, 행동가. 삽화만화도 저자가 직접 그렸다. 후딱 읽은 김에, 그의 전작 '자본주의를 구하라'도 읽기 시작했다. 아래 그림은 트럼프 치하에서 '말도 안되는 정치 선전 공작'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이 보이는 현상을 그림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것인데, 비정상에 대해서 --(1) 정상이 되기를 기대하다가 -- (2) 말도 안되는 미친 소리에 분노하다가 하다가 마침내는 무감각해져버리고 -- (3) 모든 현상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변하며 --(4) 심지어 무기력해져서 미친놈이 미친소리 할때도 아무 반응이 없는 단계까지 간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그의 처방은 오른쪽에 정리되어 있다.
행동하라!
변화하라!
정치에 참여하라
격렬하게 논쟁하라
다른 사람의 활동에 가담하라
저항하라고 국회의원에게 요구하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논의가 되고 있는 '국민연금' 관련해서 주목할만한 대목. 연금수령 연령을 높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부유층은 오래 살수 있지만, 빈곤층의 기대수명은 부유층과 동일하지 않고, 정작 연금에 의지할 사람들은 연금혜택을 못 받을것이고, 연금이 딱히 필요하지 않는 자들은 펑펑 쓰게 되겠지.
미국인저자가 미국인들에게 제시하는 '대통령 탄핵' 방법론도 한챕터 있는데, 그 부분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이미 앞서가본자의 여유랄까. 로버트 라이시 선생님, 한국의 예에서 배우시죠. 우리들은 이미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드렸거든요.
저자는 그의 평생의 공부와 업적과 이론을, 이 짧은, 삽화와 곁들인 책속에 모두 응축시키고-아무나,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이해 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와 설명으로 풀어 놓은 것 처럼 보인다. 좋은 책이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서 그의 전작들이나 관련 서적을 읽어나가면 좋을듯 하다. 좋은 책이다.
August 18, 2018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전병근 옮김 (0) | 2018.09.10 |
---|---|
자본주의를 구하라 - 로버트 라이시 (0) | 2018.08.24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 천명관 장편소설 (0) | 2013.08.25 |
That's Not What I Meant! /Deborah Tannen (0) | 2013.08.02 |
하루키, 어둠의 저편 (0) | 2013.07.12 |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저자가 인용했던 글. 서울대학교 김병도 교수의 '도전력'이라는 책이었는데.....(리뷰는 안써도 될 것 같은...저 인용문이 전부라고 할만한... 아 내가 약간 회의적인 이유는...도전하라 위험하게 살아라 강조하시는 분이, 어쩐지 교수 연구실에 앉아서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딘가, 뭔가, 음.... 뭐랄까... 앞뒤 아귀가 잘 안맞는다는 듯한 느낌. ㅋㅋ 죄송합니다, 저자가 이 글을 보신다면.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
위험하게 살아라
당신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 기슭에 세워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우며 살아라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중에서.
보름쯤 전에, 일산 호수공원에 갔을때, 밤새 비가 온 후 이른 아침. 내 눈길을 훅! 잡은 달팽이 한마리. 저 작은 달팽이가 1미터도 넘는 높이의 장미나무 꽃 정상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장미향기에 취해서 올라갔을까? 달팽이가 꿀벌이나 잠자리도 아니고, 저기 올라가 앉는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 모습이 하도 장하고 신통해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니체는 '위험하게 살아라'고 했지만, 달팽이는 '위험' 자체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위험조차 그에겐 위험이 아닌듯 하다. '달팽이 승.' 이 사진을 인화하여 벽에 걸어두고, 용기가 필요할때, 삶이 빡빡하고 재미 없게 느껴지거나, 사는게 무섭다는 느낌이 들때, 장미에 취하여 장미나무에 올라간 달팽이를 상기하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뭐 어쨌거나 이 달팽이를 발견하고 그만 눈물이 핑... 이렇게 쪼끄만게 날개도 없이 거기까지 기어올라간게 너무 신기해서. 어쩌면 나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 출발해봐야 하는게 아닐까. 이런.)
연구실을 한참 비워야 할 즈음에, 진분홍 호접란 꽃대를 발견했다. 2016년 8월말, 선물받은 화분이었는데, 그 후로 잘 지내고 있었지만 꽃대가 올라온 것은 처음이다. 내가 없어도 꽃을 잘 피워내길. 씩씩하게.
살아 숨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생명의 노래를 부른다.
Try to remember (0) | 2018.09.04 |
---|---|
강용석씨, 코미디는 이제 그만, 식상하니까... (0) | 2018.08.28 |
National Symphony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0) | 2018.02.04 |
'Move Over' Law in Maryland and Virginia (1) | 2018.02.01 |
Blue Moon, Ocen City MD (1) | 2018.02.01 |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오, 하느님, 제가 이 책을 책방에서 발견하게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방의 인문교양서적 쌓아놓은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한 하드커버 책. 얼핏 보면 어떤 개인의 '회갑기념' 수필집같은 장정이라서 뭔가 싶은데, 책을 열어보면 -- 만만치 않은 책임을 알게 된다. 내 첫 인상이 그러했다. 일단 책 제목이 어딘가 수필집 같은데, '질병의 사회적 책임' 이라니?
저자는 '저는...' '...입니다'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설명을 하는듯한, 혹은 겸손한 자세로 강의를 하는듯한 문체로 질병의 사회학적 관점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해주고 있다. 서양에서 들어온 이론에 대해서는 영문으로 정확한 표기도 해 줌으로써, 관련 자료도 쉽게 찾아보도록 해 주었다. 그의 전공영역인 '사회역학 (Social Epidemiology)'은 내게도 낯선 분야인데, 참 알기 쉽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잘 해준다. 어떤 집단이, 어떤 직업군이,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어떤 질환으로 고통을 겪거나 죽어갈때, 그것을 개인의 차원에서 해석하기보다는 그 집단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문제가 무엇인가 들여다보고 사회적, 정책적 해법도 생각해 보는 다양한 사례가 이 책에 제시된다.
그가 21페이지에서
* Experienced discrimination
* Perceived discrimination
* Reported discrimination
의 개념을 쉬운말로 설명해줄때, 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거였구나. 이러한 컨셉은 보건학뿐 아니라,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수 있다. 어차피 사회학적인 관점이므로. 하필, 쓰레기 자동 집하설비를 점검하던 30대 사나이가 수백미터 아래로 쓰레기 집하 통로에 처박혀 목숨을 잃은 그날, 수백명의 사람들을 집에서 키우는 개, 돼지 만큼도 못한 대우를 하던 재벌 일가의 행패 소식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전히 업데이트 되던 그날, 세월호 희생자와의 영결식을 마친 며칠후, 내 눈에 들어온 이 책은 새로운 어떤 세계에 대한 발견이었다. 이런 분야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난 도대체 뭘 하면서 사는거냐 그런데?)
이 책은 어쩌면 공중보건학 종류의 책일수도 있고, '사회학' 책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전공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한번쯤 쓱 훑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책이다. 책방에서 정가 다 주고 산 그 책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주 오랫만에 책다운 책을 만났다는 희열. 책을 읽는 사이에 두통이 사라지고, 멀미도 사라지고, 책 읽다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서 책을 읽었다. 이제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된다.
(사실 우리집에는 여러가지 분야에서 출판된 증정본들이 쌓이는데, 어떤 것은 딱 한번 훑고 쓰레기통에 넣기도 한다. '이 책은 남에게 줄 가치도 없어보인다'고 여겨질때. 아주 좋은 책들도 증정본으로 (공짜로) 볼 수 있는 여건이다보니, 서점에 가도 어지간해서는 책을 사지 않는다. 집에도 비슷한 좋은 책이 있으니까. 혹은 곧 증정본이 올지도 모르니. 그런데, 이 책은 책방에서 발견 즉시 내 돈내고 사가지고 그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음, 돌팔이 의사 친구에게 이 책을 보내줘야지.)
----
책을 읽으면서 --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개인적인 취향이나 습관'으로 원인 규명을 하던 것들에 대해서, 사실은 그게 그런것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뭐, 딱히 적합한 예라고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나는 고기를 잘 못먹는다. 고기 냄새도 싫어하고, 아무튼 사정이 그러하다. 우리 언니도 고기를 통 안먹니 대학생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터,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입에 대게 되었다. 나는, 쇠고기 스테이크나 불에 구운것만 먹고, 다른 종류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 우리 오빠와 내 사내동생은 특별히 까다롭게 굴지 않고 보통사람들이 먹는 보통 고기들을 가리지 않고 어릴때부터 먹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는 이걸, 그냥 언니와 나는 고기를 싫어하고, 오빠와 사내동생은 고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 까탈스러운 입맛에 나조차도 짜증나고 불편해 하는 편이다. 남들이 맛있다고 먹는 고기 음식에 대해서 나는 왜 구역질이 나는가? 나는 이런 현상을, 그냥 '내게는 고기를 소화시키는 분해효소나 뭐 관련 호르몬이나 뭐 장기능이 떨어지는게 아닐까? ' 이쯤으로 상상하며 살아왔다. 아마 내 상상이 그다지 크게 잘 못된 것은 아닐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왜 대체로 내가 성장하면서 본, 우리 집안 사람들중에서, 남자들은 고기를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여자들은 고기를 가리는 사람이 많은걸까? 이것이 남녀 취향이나 혹은 소화기계의 차이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 문화적인 어떤 패턴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것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일까?
나는 왜 고기를 회피하는 사람이 된걸까? 한 집안에 남매들이 섞여 있을때, 왜 남자들은 고기를 대충 먹는데, 여자들은 까탈스럽게 고기를 안먹거나 못먹는 식으로 분리가 되는걸까? 개인 취향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집안같이 대대로 남녀차별이 눈에 띄게 존재했던 집안에서는, 그 원인이 개인 취향외에 '사회 문화'에 기인한 것도 있을수 있다.
집안에서 자라날때 고기를 잘 못먹거나 안먹던 사람이 사회생활 하면서 고기를 먹게 되는 현상 (우리 언니 같은 케이스)을 살펴보자. 그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여 고기를 먹게 되었을수도 있고 (사회적 압력 때문에), 혹은 집에서 벗어나 다른 영역에 갔을때, 구성원들사이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고, 내 돈 내고 내가 먹을수 있는 경제권이 생겼을때...내가 '자립'함으로써 한 집안의 '분위기'에서 벗어났을때, 그의 먹성도 달라질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동등하게 대접해 줬다면 집안의 다른 구성원들이 먹는 만큼은 먹었을것이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 한 집안에서 여자들이 대체로 고기를 잘 안먹고, 남자들이 가리는것 없이 잘 먹는다면, 그것은 '차별'이 원인이다. (아주 거칠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다.)
오늘 저녁에 퇴근하는대로 동네 갈빗집에 가서 갈비를 먹겠다.
'사람의 건강'에 관해서 내가 공부한 것으로는 버지니아주에서 발행하는 Personal Care Aide 간병사 자격증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시간동안 교육받고 해당 과정을 이수하면 별 문제 없이 나오는 '누구나' 가능한 자격증이다. '그냥' 이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땄다. 뭐 상식적으로 사람을 잘 돌보는 상식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나는 막연히 이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딴 것인데,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6년간 재직한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안식년을 선포하고, 1년동안 백수로 지냈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배운 도둑질'이니까, 새로운 삶이래봤자, 새로운 학교를 알아보는 정도였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 전 지역의 대학에 지원서를 보냈다. 그런데, 메릴랜드주의 모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이들이 눈여겨 본것은 내게 '버지니아주 PCA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것은, 이민계 의사 간호사등 의료업종에 있는 이민자들에게 적합한 영어교육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내게 '의료업종 자격증'이 있고 내가 '영어교육' 전문가이므로 -- 의료업종 영어교육 전문가를 찾던 그들 눈에 내 지원서가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꽉 막힌듯 했던 내 운수가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특수전문직 (의료직) 대상 영어교육 전담이 되어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버지니아의 주립대로 옮길수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곳으로 향할수 있었다. 물론 현재 내가 의료관련 전문직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내 이력이 확장될 수 있었다.
메릴랜드에서 '의료영어'를 가르치는 동안, 나 혼자 상식수준의 의료관련 영어공부를 많이 했다. epidemic이냐 pandemic이냐 뭐 이런것도 그 당시에 공부를 해서 알게 되었고, 뭐 상식적인 수준의, 의사나 간호사나 간호보조사들이 매일 사용하는 수준의 영어를 스스로 익혀서 가르쳤다. 심지어는 간단한 처치 행위까지도 가르쳤다. 원래는 학생중에 어느 의사가 그 부분을 스스로 실연해보이기로 했었는데, 하필 그날 그에게 이민법 관련 문제가 생겨서 그가 수업에 올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가르쳤다. 내가 가르치고 학생들이 실연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을 하여 디렉터에게 보냄으로써, 교육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그렇게 나는 의료영어교육 '선수'가 되었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의 지향점은 그쪽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버지니아 쪽을 선택했고, 지금 여기에 와 있다.
그러니까 공중보건에 대해서 내가 아주 문외한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잘 안다고 할수도 없다. 이도저도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뭐라도 공부 해 놓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기회가 올것인지 나는 예측할수 없다. 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조심조심 헤쳐나가듯, 우리 삶이 그러한 것이지. 눈을 뜨거나 감거나 우리는 앞날에 대해서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그냥' 일없이 공부해서 따놓은 자그마한 간병인 자격증이 내 삶에서 하나의 문을 열어줄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에서의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잘 모르겠다. 이곳에 몇년 더 살게 된다면 방송통신대에서 새로운 전공을 공부해볼까 생각해본다.
케네디 센터에서 열리는 미국 국립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2018, 2, 3, 오후 8시).
1월과 2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생일축하 이벤트를 생각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여 확답을 받고 음악회 표를 산 것은 이미 3주 전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요정의 입맞춤' 이렇게 세가지 곡이 연주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컨체르토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자주 들어서 가장 친숙한 곡이니까.
찰리는 나를 위해서 휴가를 냈고, 존은 직장에서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다고 그렇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진통제를 먹고 앓는 소리를 하길래 존의 허리에 약을 발라주고 챨리와 둘이 66 East 를 달려 케네디센터에 갔다. 내겐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것 같은 익숙한 길. 여기 온지도 몇 년 만이다.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짧은 원피스 드레스도 입고, 정장 구두도 신고, 음악회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따로이 드레스코드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을 내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가끔은, 우리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용모를 단장하듯, 가끔은 뭔가 이벤트를 만들고 예쁜 옷과 예쁜 구두를 신고, 아름다운 것을 음악을 들으러 예쁜 음악당에 가서 오로지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평소에 향유하지 못하는 뭔가 고양된 것을 경험하거나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차이코프스키의 '폭풍'은 음악 전체가 '폭풍' 그림 앞에 서 있는듯한 분위기였다. 천둥 번개가 치고 잦아들고 다시 몰려오고 그러다가 사라지는. 나로서는 음악을 들으며 어떤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어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템페스트가 끝나고 들어온 스타인웨이 피아노.
음악이 시작 되었을때, 찰리와 나는 저도 모르게 서로 쳐다보고 소리없이 '아!' 했다.
음악에 대해서 특별한 미각이 없는 나는, 피아노 컨체르토 곡이 라디오나 음반에서 흘러 나올때, 대개는 '귀챦아' 하는 편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부담스럽다'는 대체적인 느낌. 아 시끄러... 이런 느낌. 그래서 대체로 솔로 독주나 실내약 정도가 내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 인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내가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음악에 눈과 귀가 트인것 같다. 아, 저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이구나.
우선 지휘자. 지휘자가 춤을 추듯 발뒤꿈치를 살짝 살짝 올려가며 두 팔을 휘저을때, 그리고 음악당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를때, 내 눈에는 마치 보티첼로의 그림에서 서풍의 신 (제피루스)의 입에서 꽃잎이 터져 나오듯 지휘자의 두 팔에서 음악이 만들어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이 그의 두 팔 안으로부터 꽃잎처럼 펴져 나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도 나의 서술은 시각중심이다.)
지휘자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그리고, 교향악단의 개별적인 연주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음악의 요정'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눈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의 춤, 피아노 독주자의 옆모습 표정까지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고, 계절이 지나가는 시각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시각에 국한 된 경험은 아닐것이다.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나는 소리의 따뜻한 바닷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으니까. 음악회에 가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놀고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음악이 끝나갈무렵,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머리가 가뿐해지고, 가슴에서 희망이 솟아니며, 잘 살아내야만 한다는 각성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 찰리가 새로산 아이폰으로 뭔가 이펙트를 넣어 찍은 사진. 이제 4년차로 들어가는 내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인데.)
찰리에게 말해줬다.
우리의 일상이 똥통같은 현실속에서 구더기처럼 꿈틀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일년에 한 두번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 만들어내는 고양된 예술을 경험하면, 똥통속에 살아간대도 하늘에 태양과 별들이 빛나며, 음악당에서 아름다운 음악들이 연주되고,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며, 바다는 여전히 넘실대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회상'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고양될수 있고, 그 희망을 가지고 순간순간을 견딜수 있는거다. 우리 곁을 맴돌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은 쥐새끼만한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그 음악을 들을때라도 '회상'을 통해서 되살아날거다. 우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를 들을때, 우리는 오늘 들었던 천상의 선율을 되살려 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 줄거다.
강용석씨, 코미디는 이제 그만, 식상하니까... (0) | 2018.08.28 |
---|---|
니체와 달팽이 (0) | 2018.06.18 |
'Move Over' Law in Maryland and Virginia (1) | 2018.02.01 |
Blue Moon, Ocen City MD (1) | 2018.02.01 |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5) | 2018.01.28 |
https://www.nbcwashington.com/news/local/Move-Over-Laws-in-Md-and-Va--287360081.html
어제 저녁에 메릴랜드 베이브리지 동쪽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경관에게 정지를 당했다.
상황은 이러하다. 단방향 2차선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데 갓길에 경찰차가 경광등을 켠 채 서 있고 승용차 한대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걸렸지?' 생각하며 마침 차에서 나와 승용차로 향하는 갓길의 경찰이 다치지 않게 매우 조심스럽게 서행하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왼편 차도로 옮길까 잠시 생각했으나 마침 왼편 차도로 차가 지나가는 중이라 차선을 바꾸기도 약간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다.
문제의 장면을 통과한 후에도, 저만치 뒤에 경찰차가 있는것을 의식해서, 과속에 걸릴까봐 속도도 완만하고 착하게 운전을 하는데 내 뒤로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왔다. "뭐지? 과속도 아니고, 신호등도 없었고, 뭐지? 후면 브레이크등이 나갔나?" 의아해하며 차를 갓길에 세웠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실내등을 켜고
차창을 열고
두손을 운전대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최대한 맑고, 순수하고, 자는 아무 죄가 없으며,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경찰관을 기다렸다.
경찰이 뭐라뭐라 하는데 내가 잘 못알아 듣겠어서 "뭐라구? 이해 못했는데?" 재차 물으니 그가 설명을 해 준다. "경찰차가 갓길에 서서 공무 수행중이면 차선을 안쪽으로 바꾸라는 규정이 있는데 네가 그걸 지키지 않고 차선 바꾸지 않은채 지나쳐서 나를 위험에 빠뜨렸다" 는 것이다.
나 속으로 머리 사사삭 굴리고 있는중, '뭐라구? 이 경우 차선을 바꿔야 하는거라구? 나 미국서 15년 넘게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적도 없고, 이문제로 잡혀본 적도 없는데 그런 규정이 있는줄 몰랐어....'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규정이 몰랐어"라고 말하면 뭔가 덤터기를 쓸 것 같아서, "어...옆에 차가 지나가고 있어서 차선 바꾸기가 곤란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지나갔는데..."라고 아주 공손하게 대꾸했다.
경찰은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을 가져가더니 일각이여삼추의 천년의 시간이 흐른후에 (그래봤지 한 3분쯤? 후에) 다시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규정을 어겼지만, 이번에는 그냥 워닝(경고)만 준다. 벌금이나 벌점은 없어. 앞으로 조심해서 운전하기 바래."
아싸! (할렐루야). 그 메릴랜드 경찰님께서! 스파이더맨의 토비 매과이어같이 잘생긴 분이었는데, 마음씨도 비단결이었어! 사실 나는 쫄아가지고 그 사람의 용모에 대한 평가를 할 겨를이 없었는데, 옆좌석에 있던 찰리가 "되게 잘생겼네...내 또래이겠는데, 진짜 미남이다..."해서 정신이 번쩍 나서 그의 잘생긴 외모를 회상했다. 하긴 잡아 놓고 방면해주는 경찰님이면 천하의 못생긴 돌쇠라도 미남으로 보일걸 아마.
그이는 왜 나를 잡아 놓고 경고만 주고 보낸걸까?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내 차와 면허증을 조회해보니 내 차나 내 면허증이 지난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엇하나 걸린 것 없이 깨끗했을 것이다. 거의 나가서 살았으니까, 깨끗할수밖에. 물론 그 전에도 경미한 몇 건 외에 거의 전과가 발견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관대하게 봐준것이 아닐까?
(2) "옆 차선에 차가 지나가서 차선 옮기기가 어려워서 너 다칠까봐 살살 지나갔는데..." 내가 우물거렸던 설명도 '무죄 방면'에 힘을 실어 줬을 것이다. 이 법규에 관한 사항을 찾아 읽으니, 옆차선이 바빠서 옮기기 힘들때는 조심조심 지나가라는 내용이 나온다. 정상참작이 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위의 링크된 설명을 보면 100달러의 벌금을 물을뻔 했는데, 무죄방면 되었으니 무조건 고마운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 배웠다. 경찰차가 갓길에 어떤 차 잡아 놓고 작업하고 있을때, 혹은 사고차 수습중에 그곳을 지나칠때는 차선을 안쪽으로 옮겨야 한다. 그들의 안전을 확보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무심코 그렇게 행동 했던 것도 같다. 그냥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상식적으로.)
니체와 달팽이 (0) | 2018.06.18 |
---|---|
National Symphony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0) | 2018.02.04 |
Blue Moon, Ocen City MD (1) | 2018.02.01 |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5) | 2018.01.28 |
살림 똑부러지게 하는 우리집 나비 아가씨 (0) | 2018.01.28 |
워싱턴 지역의 월식 시각은 오전 7시 50분으로 예보 되어 있었는데, 해가 이미 밝게 떠올라 있어서 달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그 달을 보려고 새벽 네시부터 일어나 호텔 방문 맞은편 복도에서 서성이며 월식을 기다렸다. 월식을 볼 수 없어도, 이제 곧 시작될 그 달이라도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동쪽 정면으로 향한 객실 가득 햇살이 들어왔다. 그 햇살만으로도 눈부시고 따뜻했던 실내. 어제의 눈내리고 바람불고 춥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봄날같은 겨울 아침이었다.
아이패드로 음악을 틀어놓고, 볕이 따뜻한 창가에 앉아 수도쿠를 풀었다. 12층 아래, 대서양이 출렁댔다. 빛은 깊게 깊게 방안으로 들어와 내 온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이 밝고 따뜻한 장면을 오래 오래 오래 오래 기억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나의 우울과 근심과 추위를 모두 녹여주는 빛과 따뜻함의 시간이었다.
오션시티는 남북으로 해안을 따라 보드위크와 모래 비치가 형셩된 곳인데 보드워크 직선길이가 2.45 마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보드위크 북쪽 끝보다도 더 윗쪽에서부터 남단까지 슬슬 산책하며 한바퀴 돌았다. 약 5마일 걸은 듯.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전에 묵었던 호텔 앞에 서서 - 전에 어느방에 묵었을까? 기억을 되짚어 찾아보기도 했다.
오션시티는 텅 비어 있는듯 했다. 우선, 내가 묵은 호텔이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텔인데 식당이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간이 매점만 한군데 열려 있었다. 수많은 바닷가 호텔중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 호텔 숫자가 한정되어 있었고, 전 구역이 거의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See you in March! 라는 표시들이 많이 보였다. 이 도시의 호텔이나 상점들은 대략 3월부터 봄, 여름, 가을 장사를 하다가 겨울이 오면 아예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영업을 안하는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잭 니콜슨'이 주연했던 영화 '샤이닝'의 상황을 일해 할 수 있었다. 정말로, 계절의 타는 휴양지에서는 호텔이나 가게들이 아예 싹 철수를 해 버리고 휴양지 자체가 유령도시처럼 텅 비고 마는구나. 보드워크 남단에는 어뮤즈먼트 파크 (유원지)가 있는데, 그곳에 있던 '하늘차'도 사라지고 없었다. 커다란 둥근 바퀴같은 것에 작은의자들이 통속에 들어 있어서 그 통안에 앉아서 하늘높이 한바퀴 도는 그 '유원지의 상징'같은 하늘차가 보이지 않았다. 겨울동안 분해해서 치우는 모양이다. 오션시티에 가서 하늘차가 보이면, 그것을 타리라고 생각했는데 하는수 없었다.
그러니까, 텅 빈 바닷가 휴양지에 나 혼자만 있는것 같았다. 햇살은 투명하고, 따스하고, 갈매기들이 와서 말을 걸고, 대서양의 파도는 힘차게 일렁이며 흰 거품을 뿌리고 깔깔대고. 파랑. 파랑. 파랑. 파랑. 파랑.
음, 나는 아래 사진을 5/7 사이즈로 인화하여 액자에 담아 연구실에 걸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보면 힘이 날 것이다.
National Symphony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0) | 2018.02.04 |
---|---|
'Move Over' Law in Maryland and Virginia (1) | 2018.02.01 |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5) | 2018.01.28 |
살림 똑부러지게 하는 우리집 나비 아가씨 (0) | 2018.01.28 |
고독한 푸틴의 사회성에 대하여 (0) | 2018.01.26 |
https://www.nga.gov/exhibitions/special/weems-kitchen-table-series.html
https://www.nga.gov/exhibitions/special/weems-kitchen-table-series.html
며칠전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에 갔을때, 동관에서 특별전시중이던 재미있는 사진전을 보았다. 캐리 매 윔스라는 작가의 '식탁' 시리즈. 부엌 식탁이 주인공으로 이 식탁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24시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시리즈로 사진에 담은 것이다. 사실 나도 식탁에서 밥도 먹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친구와 차도 마시고, 뜨개질도 하고, 고양이와 놀고, 온갖것을 다 하면서도 (아직 식탁에서 섹스는 못 해 봤다...) 식탁의 풍경이 이렇게 다채로울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었다. 전시장 입구를 제외한 네 벽에 이 시리즈가 걸려있어서 전시장 가운데에 서서 빙 둘러보면 마치 내가 식탁 중앙에 서있고 그 상태도 하루종일 식탁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사진전을 기록하는 이유는, 사실 나는 '사진 예술'에 별로 매력을 못느껴서 미술관 산책중 사진전시회는 대충 지나가기 일쑤이다. 만약에 내 블로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어떤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눈치 챘을것이다, 내가 사진전에 대해서 단 한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런데 이 사진전은 내 발을 한참 붙들고 못 움직이게 했다. 이 시리즈 전체가 어떤 이야기,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랬을것이다. 한장의 사진속에서 시각적 구도나 깊이나 뭐 그런 사진 고유의 예술성을 들여다봐야 한다면 나는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사진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식탁'을 주제로 한 이러한 연작 앞에서면 스스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내거나 자신의 식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이 사진속의 식탁에 대해서 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선 식탁 그 자체와 의자들이 아주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서민용 식탁세트라는 것이다. 아마 월마트에 가면 백 몇달러짜리 이 식탁세트가 판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상자를 사다가 직접 조립해서 사용해야 하며, 조립하기 귀챦으면 굿윌 같은 고물상에 가서 남이 쓰다 버린 이 테이블 세트를 사도 그만이다. 사실 내게도 사진속의 똑같은 식탁세트가 있었는데, 대학원시절 선배가 학위마치고 귀국하면서 살림 처분할때 내게 그냥 쓰라고 넘겨주고 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수년간 사용하다가 이사하면서 남쓰라고 줘버렸는데, 의자 하나는 아직도 우리집거실에 남아 있다. 사람들이 살수 있는 '가장 싼' 서민용 식탁세트, 그 주위에 살아가는 서민들. 결국 일반적인 미국인들 정서속에 이 식탁이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에게 개다리 소반의 정서가 스며있듯. 사진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만의 추억에 잠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처럼, '나는 식탁이로소이다'나는 타이틀로 어느집의 식탁이 주변 상황을 스케치하고 그 집 식구들의 일상을 고자질하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영감을 받았다. 어떤 '영감'을 주는 작품. 좋은 작품이다. 내게 영감을 줬으니까, 설령 내가 그것을 구체화하지 않는다해도, 그런 상상만으로도 유쾌해질수 있으니까.
미끄럼타는 사람들 (0) | 2020.12.27 |
---|---|
Jackson Pollock, Mural (1943) at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0) | 2018.01.27 |
Frederick Stuart Church (1842-1924) 봄의 제전 (The Rites of Spring) (0) | 2012.03.19 |
Richard Diebenkorn 의 기하학적 풍경화 (0) | 2011.10.27 |
Sam Gilliam 의 친필 서명 (2) | 2011.04.21 |
내가 여기 있다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가장 아쉬운 것은 나의 친구 '에코'와 헤어지게 된다는 것일게다. 나의 귀염둥이 아들 챨리는 '스피커' 매니아라고 할 수 있다. 녀석은 온갖 종류의 스피커를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고, 크지도 않은 집의 창고에는 귀신딱지 같은 스피커들이 쌓여있다. 나는 내가 한국 가기 전에 저 귀신딱지들을 다 내다버려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스피커 매니아 덕분에 그 시스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다.
찰리는 '에코'라는 그 스마트 기기를 집안의 세군데에 장치를 해 놓았다 (하나면 충분한데 왜 세개씩이나? 이 대목에서 나는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는 각각의 에코에 별도의 스피커들을 이리 저리 연결해 놓았다. 세개의 에코는 각자 세마리 강아지처럼 개별적인 기능을 한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에코들을 총동원해서 한가지 일을 시킬수도 있다. (이것은 최근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각각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 (예컨대, 베드룸 불을 켜라 꺼라 뭐 이런)을 하는 에코들이지만 만약에 내가 "Echo, play music everywhere!" 이렇게 말하면 온집안 구석구석에 설치된 스피커가 한꺼번에 음악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걸 왜 이제서야 알려준거야? 진작에 알려주지! 내가 한탄을 하자 찰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몇번이나 말했는데 엄마가 귀담아 듣지 않았쟎아요." 음...그랬을거야...)
그래서,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주문을 외워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속에 나는 앉아있다. 온집안에 숨어있는 열개 가까이 되는 스피커들에서 음악들이 흘러나오자, 내 주변의 공깃방울들이 마치 보슬비 방울처럼 내 온 몸을 감싸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음악의 바닷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유영을 하는데 산들바람이 불고, 물결에 이리저리 일렁이는 산호초 사이로 작은 물고기가 되어 떠도는 그런 기분. 이럴때 음악은 천상의 관능미를 전한다.
관능적이며
성스럽고
상쾌한...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기쁨'에서 '관능미'를 제거하면 그것은 본연의 기쁨에서 뭔가 결여된 미완의 기쁨일것이다. 사람이 '몸'을 갖고 있는 '신체적'이며 '물리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한 '관능미'는 선을 완성시키는 요소일것이다.
'Move Over' Law in Maryland and Virginia (1) | 2018.02.01 |
---|---|
Blue Moon, Ocen City MD (1) | 2018.02.01 |
살림 똑부러지게 하는 우리집 나비 아가씨 (0) | 2018.01.28 |
고독한 푸틴의 사회성에 대하여 (0) | 2018.01.26 |
Book: When to Rob a Bank by Levitt & Dubner (0) | 2018.01.26 |
큰 아들 존의 고양이인 우리 나비는 약 9개월 정도 된 암코양이이다. 존의 직장 근처의 길거리 고양이에게서 지난 3월쯤 태어나서 존의 직장 사람들이 먹이도 주며 키웠는데, 어미가 근처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것이 발견 되었고 새끼가 혼자 남아서 꿋꿋하게 지내는 것을 존이 데리고 온 것이 지난 여름. 여름 방학 기간에 내가 집에 와 있는 동안 입양을 해서 내가 돌보다 떠났고 나비는 존의 무한한 애정을 받으며 지내왔다.
짐승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비도 내가 저를 극진히 위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는 늘 내 곁을 맴돌고 있다. 특히 나비가 내게 와서 스킨십을 해 댈때는 두가지 경우인데 (1) 밥달라고 조를때, (2) 내가 책상이나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들여다볼때. 배고플때 아양떠는 것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행동으로 보이는데, 내가 책상에 앉아 있을때 살갑게 와서 부비대고 근처를 안떠나는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뭔가에 집중하거나 몰두할때 그것에 대해서 '질투'를 하는걸까? 나는 대체로 이런 풀이를 하는 편이다. 옛날에 우리 개 왕눈이도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내 책상위에 올라 앉아 내 책을 엉덩이로 깔고 앉거나 하는 식으로 나의 공부를 방해하다가 지치면 그냥 책 모퉁이에서 배를 깔고 자고 그랬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바실라르'의 초의 불꽃에 나온 '드방빌의 고양이'를 생각해냈었다. 밤새 'burn the midnight oil' (밤새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하는) 주인의 곁에서 촛불처럼 지키는 고양이에 대한 사색의 대목이었다. 내 개가 그 고양이 흉내를 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우리 나비가, 내가 책상에만 앉으면 따라와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다. 책속의 사색이 빈말이 아니었어...
우리 나비에게는 존이 모르는 여러가지 행동 양식이 있다. 나는 '관찰자'라서 물끄러니 뭔가를 볼때가 많으니까, 어느날 우리 나비의 어떤 습성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는 생후 약 3개월까지는 어미를 따라서 길고양이로 살았고, 야생고양이로서의 유년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래서 우리 나비는 밥을 먹다가 밥그릇에 밥이 남으면 뭔가로 덮어서 은폐하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을 은폐하는 것은 많은 야생동물들의 본능적 행동이라고 알고 있다. 전에 나의 야생고양이 피터 (장님 폴의 형제)를 먹이기 위해서 덤불 굴 입구에 먹이를 갖다 주었을때 피터는 배불리 밥을 먹고나서 밥그릇 위에다가 낙엽을 긁어서 덮었다. 그 행동이 신기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것이 야생동물들의 자기보호용 행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는 거실밖 포치에 밥을 줬을때도 주변에 나뭇잎 하나 없을때에도 밥을 먹고 나면 밥그릇 주변을 박박 긁어서 뭔가로 덮는 '시늉'을 했다. 고양이들이 용변을 본 후에 흙으로 덮듯, 남은 음식도 동일한 양식으로 덮으려고 한 것이다.
아래의 사진 두장은, 고양이가 먹다 남긴 밥이고, 그 밥그릇을 나비가 키친타올로 덮어 놓은 모습이다.
고양이의 습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조작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 나비의 주인이라고 할만한 존 역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나비가 키친타올로 음식 그릇을 덮어 놓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얼마전에 내가 곱게 수놓은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위에 살포시 놓여있는것을 발견한 나는 '아니 내가 수놓은 보자기를 누가 여기다 덮어놓은거지?'하고 치워놓았다. 그런데 이튿날도 그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에 덮여있는거라. 그때 나는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해냈다. 나비 네가 한 짓이냐? 마침 그 수놓은 손수건은 테이블 아래의 바구니에 놓여 있었는데, 나비가 발끝으로 긁어다가 덮었을것이다. 나는 손수건을 접어서 높이 올려놓고, 그 대신에 키친타올을 한장 뜯어다 밥그릇 주위에 놓아 주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나비는 키친타올을 긁어다가 정확히 밥그릇위에 덮어 놓았다.
뭐 그렇다고 사람 손으로 하듯 살포시 그렇게 덮는 것은 아니다. 내가 관찰해보니, 다른 고양이들이 하듯이 밥그릇 주면을 그냥 앞발로 박박 긁는다. 그러다가 주변에 뭔가 잡히면 앞발 손톱으로 그걸 끌어온다. 그냥 지속적으로 박박 긁으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데,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종이(손수건)가 밥그릇 위까지 올라간다는 것이지. 우리집 아이들은 아직 한번도 그 광경을 목도한 적이 없으므로, 원래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엄마가 뻥을 치는거라고 상상하는 눈치이다. 이젠 자기네들도 어른이기 때문에 어릴적처럼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이다. (내가 상상의 이야기로 아이들을 많이 곯려 먹었기 때문에, 이번 일도 나의 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나비는 이렇게 얌전하게 제 밥 남은것을 덮어 놓았다. 나중 간식 생각나면 다시 와서 먹고 또 덮어 놓을것이다. 이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하면 좋겠지만...내게 그런 열정은 남아있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고양이들은 제 밥을 잘 덮어놓을줄 안다. 아마 교육시키면 설겆이도 할수 있을거다. 나비는 나보다도 훨씬 깔끔하게 제 살림을 잘 해내며 살고 있는것이다.
Blue Moon, Ocen City MD (1) | 2018.02.01 |
---|---|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5) | 2018.01.28 |
고독한 푸틴의 사회성에 대하여 (0) | 2018.01.26 |
Book: When to Rob a Bank by Levitt & Dubner (0) | 2018.01.26 |
Air Supply: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2) | 2018.01.13 |
워싱턴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요즘 뭉크 소장품 특별 전시회를 하는데, 가장 내 눈을 끌었던 작품. (사진은 국립미술관 페이지에서 다운 받았다.) 나는 이 작품 앞에 서서 다이어리에 대충 스케치를 하였다. 미술 작품 맘에 드는 것이 있을때, 전에는 미친듯이 사진을 찍는 식으로 사냥을 했지만, 이제는 그런 모든 사냥질이 내게는 부질없어 보여서, 맘에 드는 것을 대강 스케치를 하여 손과 마음에 담고, 구체적인 이미지는 웹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스케치를 하다보니 아주 짧은 시간 대충 하는 것이지만 사진 찍을때 볼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시골집 마루 무늬 같은 나뭇결 무늬. 그래서인지 어딘가 멜랑콜리 하면서도 따뜻하고, 슬프면서도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몰아닥치는데 - 그게 위로가 된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게 기괴하게면 여겨지던 뭉크가 이렇게 따뜻한 작품을 남겼으리라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뭉크에게 급 관심).
스미소니언 역에서 내려서 국립 미술관에 가는 도중에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을 거치게 되는데, 나는 대개 이곳에 들른다. 자연은 신의 예술 작품이고, 예술은 인간의 작품이고.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그리 크지 않은 '산호 수족관'이 있는데, 예쁘니까 가면 꼭 들러서 들여다본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몇해전부터 해 오던 '인류의 기원' 전시장이 아직 유지 되고 있었다. 인류 최초의 예술이라고 알려진, 동굴의 손바닥 자국. 이걸 보니 잔잔한 호수같던 마음에 파문이 인다. 손짓해 부르는 누군가가 있어 셀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내게 손짓하는것 같아서.
나도 내 손을 갖다 대 본다. 잘 지냈니? 응 나도 잘 지냈어...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가서 손음 맞대고 인사를 한다.
상식의 공백 혹은 차이 (0) | 2015.07.07 |
---|
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셔널 몰에 있는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 들렀다가 내가 평생에 꼭 한번은 보고 싶었던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요즈음 국립미술관에서 잭슨 폴락 벽화 특별전시 중이다. 국립 미술관이 잭슨 폴락의 대작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는 한데, 이번에 특별 전시하는 '1943년 벽화'는 이곳에서 볼수 없었던 작품이다. 왜냐하면 아이오와 주립대 (University of Iowa) 미술관에 소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강의 사연은 이렇다. 뉴욕 맨해턴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그 미술관 주인이었던 페기 구게하임이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연명하던 잭슨 폴락을 미술관 직원으로 채용한 후에 그의 작품성에 눈을 뜨게 된다 (아직 잭슨 폴락의 '물감 뿌리기' 이전의 일이다. 페기는 폴락에게 그녀의 저택의 현관 벽을 장식할 작품을 의뢰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벽화 1943'이다. 후에 어떤 인연인지 이 작품이 아이오와 주립대에 기증이 되고 대학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다. https://uima.uiowa.edu/collections/american-art-1900-1980/jackson-pollock/mural/ 해당 대학의 작품 소개 페이지를 링크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 전이구나. 미국 중서부에 크게 물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당시에 아이오와 대학교 미술관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 작품 역시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손상을 입은바 있다. 그래서 후에 캘리포니아로 옮겨저서 수년에 걸쳐 복원 되었고, 오늘날 국립 미술관에 걸리게 된 것이다.
2009년에 내가 한창 미국미술사 연구하고 잭슨 폴락의 작품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그의 대작이 아이오와에 있다는 사실과 수재를 당해서 전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폴락이 남긴 작품 중에서도 대작이라는데, 그걸 못 보다니... 당시에는 참 안타까왔다. 2011년 가을에 드모인의 주립대에 발표하러 갈 일이 있어서 스케줄을 짤때도, 혹시나 그것이 복구 되었나 보러갈까 궁리까지 했었는데, 당시에 악천후로 비행기도 취소되고 난리가 나서 모든 일정이 취소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고나서도, 이제는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것인데, 미술관에 아무 생각 없이 갔을때, 내 눈앞에 '신기루'처럼 그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복관 당첨 된 듯한 기분. 뒷통수를 한대 탁 맞았는데 기분 좋은 그런 기분. 뭐, 잠시 황홀했었다. 이 작품을 보러 한국 가기 전에 또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솟는다.
아래 사진 설명: 알렉산더 칼더의 대형 모빌이 돌아가고, 중간층 (약간 어두워 보이는 층) 오른쪽에 잭슨 폴락 벽화 전시장이 보인다. 그 아랫층 대형 통유리벽 앞쪽에 관람객이 쉴수 있는 편안한 의자. 전시 구경하다 다리쉼 하러 그 소파에 가 앉아서 내가 뭘 했냐면...
수도쿠 풀었다. 하하하. 박물관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 풀었다.
몇해전에 내가 한참 전시장과 미술, 박물관에 미쳐 돌아다니고 있을때는, 시도때도 없이 거길 드나들면서도 늘 '도망자'처럼 헉헉대고 다녔다. 전쟁을 하듯이. 이걸 다 보고 읽고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보이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섦명을 읽고, 책을 사서 들여다보고, 공책에 정리도 하고...미친듯이 열정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오늘날, 나는 전시장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나 채우며 논다. 물론 전시장을 돌아보기는 한다. 그러나 내가 꼭 보고 싶은것 몇가지 보면 더이상 볼 생각을 안한다. 마치 부페식당을 처음 알게 되었을때, 조금 먹으면 손해라는 피해의식에 휩싸여서 맛이 있건 없건 무조건 많이 많이 담아다가 배가 터지게 먹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골치까지 아프게 먹어야 돈 값을 한다고 상상하는 시기가 있다. 처음엔 미친듯이 먹는다. 하지만 몇차례 겪다보면 초특급 부페라도 심드렁해지고, 맛있는것이 아니면 잘 안먹으러 든다. 나는 나의 태도의 변화를 대강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편이다 (그냥 오늘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러는가 혼자 사색해보다가...)
폴락의 '벽화'를 보면서 나는 문득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내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데자뷰라고 해야 하나? 분명 두개는 다른 작품인데, 나는 벽화 앞에 서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나도 설명을 잘 못하겠다. 다음에 가서 다시 보고, 자료도 좀 찾아보고 -- 내가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분석을 좀 해봐야겠다.
음. 수도쿠는 내가 생각이 복잡하고 심드렁해질때 '타이레놀' 처럼 찾아서 풀어보는 나의 게임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 다 마치고나면 집에 아이들이 공부하고 남아있는 '수학의 정석'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볼까 한다. 시험걱정 없이 심심풀이로 하는 수학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2018, 1, 26, 금. 맑음.
미끄럼타는 사람들 (0) | 2020.12.27 |
---|---|
Carrie Mae Weems: The Kitchen Table Series (0) | 2018.01.28 |
Frederick Stuart Church (1842-1924) 봄의 제전 (The Rites of Spring) (0) | 2012.03.19 |
Richard Diebenkorn 의 기하학적 풍경화 (0) | 2011.10.27 |
Sam Gilliam 의 친필 서명 (2) | 2011.04.21 |
위 사진은 웹에서 '자료'로 가져온 것이다.
우리집 뒷마당에 출몰하는 희고 덩치 큰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한 1년 전 쯤부터 본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전신이 새하얀 털로 덮인 이 고양이에게 '스노우'라는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 목에 가느다란 목줄도 있어서 그가 야생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우리집 거실 밖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왔을때, 우리집 아이들이 모두 이 녀석에게 화가 나 있었다.
우리 뒷마당에 사는 눈먼 장님 고양이 --폴 (사도 바울)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눈먼 고양이 폴은 크고 힘센 고양이가 새로 나타날때마다 늘 그들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눈 먼 고양이라 만만해서 그런건가? 나의 폴은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날때마다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흰고양이가 덤불을 들 쑤시고 다니면서 눈먼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이 종종 목도 되었고,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이 이를 발견할 때마다 쫒아가서 야단도 치고, 막대기도 던지고 하면서 으르렁댔다. 지난 여름에는 나도 이 녀석에게 몇차례나 막대기를 던졌다. 그래서 나는 밉상 녀석을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깡패 푸틴녀석. 아, 왜 하필 푸틴인가하면, 이 고양이의 주인이 근저 저택에 사는 미국 남자인데, 러시아에서 살때 이 고양이를 입양해서 러시아에서 함께 살다가 미국에 올때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에서 온 깡패녀석이라서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번 겨울에 집에 돌아 와서도 한차례 막대기를 던져 녀석을 폴에게서 떼어 놓아야 했다. 얼마전에 폴의 거동이 수상쩍어서 살펴보니 엉덩이쪽의 살점이 보였다. 사납게 물어 뜯어서 털도 벗겨지고 생살이 그냥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내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들은 그 흰고양이 녀석이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집을 비운 2년 동안 바깥 고양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살펴오고 있는 젊은 미국인 부부들도 그 흰고양이가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그 부부는 고양이 주인 아저씨에게 고양이를 중성화 시키던가, 아니면 우리 동네에서 깡패짓 못하게 집에서만 키우던가 하라고 시시때때로 전화질을 해대고 있다는데, 녀석은 요즘 매일 우리집 밖에 출몰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도 덤불에서 폴이 비명을 지르길래 내다보니 폴이 해바라기 하는 덤불 입구에 이 녀석이 폴과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잡아 죽일듯이, 잠옷바지만 입은채로 달려가보니 녀석이 폴 앞에 물끄러미 앉아있는데, 폴은 죽을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단 죽을듯이 소리지르는 폴을 안정시켜야 했다. 내가 간신배와 같이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나비야, 나비야, 걱정마, 내가 왔어, 나비야, 나비야" 이렇게 말해주자 폴은 비명을 멈췄고, 흰 고양이는 내 눈치를 보다가 쓱 사라졌다. 장님인 폴은 내 목소리를 듣고 안심했고, 깡패 푸틴 녀석은 내가 노려보니까 도망을 간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오늘 본 장면은 좀 의외였다. 장님 폴이 비명만 지르지 않았다면, 그들의 풍경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덩치큰 푸틴 녀석은 장님 폴앞에 평화롭게 앉아 있었고, 장님 폴 역시 그를 마주 향해 앉은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니, 그들의 마주한 자세는 '평화' 그 자체였다. 폴이 평소에 당한게 있으니까 , 오늘 푸틴은 아무런 해코지를 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폴이 그냥 지레 놀라서 비명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푸틴 녀석, 그 녀석은 친구를 사귈줄 모르는가보다. 깡패짓 하면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고 깡패짓 해 놓고 친구 하자고 찾아 다니나보다. 멍청한 녀석."
책방에서 시간보내다가 해가 저문후에 집에 오니, 어둠 속에서, 바깥 포치에 놓인 캣타워 꼭대기에 흰고양이 푸틴 녀석이 태평하게 앉아있다. 내가 "나비야, 나비야" 부르니 멀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내가 그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캣 타워에서 내려와 우리집 거실 유리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양양거린다. 이상한 녀석이다. 내가 소리지르고, 째려보고, 신발짝이나 막대기를 던진 적도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구박을 해 보냈는데, 내 유리문에 코를 대고 양양거린다. 먹이를 한 그릇 주니 그걸 달게 먹는다. 뭐냐 너, 러시아에서 살다 왔다는 네 주인아저씨는 뭐 하는거냐? 밥도 안줘? 너 왜 밤까지 집에 안들어가고 여기와서 밥을 달래 응? 녀석은 배불이 밥을 먹더니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조금 후에 장님 폴과 어미 메리가 왔다. 나는 또 밥을 준다.
푸틴아, 배 부르게 밥 줄테니까, 눈먼 고양이 폴을 괴롭히지 말아라. 폴이 심성이 착해서 눈이 안보이는데도 제 동생들을 얼마나 잘 돌봤는데. 너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테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라.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5) | 2018.01.28 |
---|---|
살림 똑부러지게 하는 우리집 나비 아가씨 (0) | 2018.01.28 |
Book: When to Rob a Bank by Levitt & Dubner (0) | 2018.01.26 |
Air Supply: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2) | 2018.01.13 |
My Friend Paul the Blind Cat (0) | 2017.02.07 |
타이슨스 쇼핑몰에 갔다가, 반즈앤노블에서 When to Rob a Bank 와 수도쿠 책을 심심파적으로 사가지고 왔다. 마침 바겐세일 가격이라서 아마존에서 하드카피나 킨들을 사는것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기분전환용으로.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왔기 때문에, 이 책도 나를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노마드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이라서, 종이책을 여간해서는 안산다. 대개 킨들 버전으로 사는데, 책방에서 발견한 맘에 드는 책들을 사진으로 찍어와서 집에서 아마존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어떤 경우에는 페이퍼보다 킨들 버전이 더 가격이 높은 것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런식으로 전자책의 마수에 빠지는건가? 초기에는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서 가격이 월등 쌌지만 -- 전자책의 확산으로 점자 전자책 수요가 높아지고 종이책이 밀려나면서 아마존은 슬금슬금 전자책 가격을 높이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어쩔수 없이 손쉽게 아마존 킨들북을 사 볼수밖에 없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책방 조사도 좀 해보고, 책 시장의 동태를 살펴야겠다. 이바닥이 어쩐지 수상쩍게 돌아간다는 괴괴한 느낌.
그래도, 떠돌이 생활에서 종이책은 '사치'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내 삶의 양태가 그러하다. 여전히 종이책에 파묻혀 지내긴 하지만, 전자책이 소리없이 부피도 없이 이미 내 삶에 깊이 파고 들었다.
음, 집에 와서 검색하니 내가 찜 해 놓은 신간들이 전자책이 더 비싸거나 종이책과 비슷한 형상이라, (약이 올라서) 오랫만에 종이책들을 대거 주문하긴 했는데, 그것들 비행기타고 다니면서 옮기는 것도 부담스럽고, 쌓아 둘데도 마땅치 않고... 나는 내 거처나 연구실이나 임시로 머무는 여관처럼 보는 편이다. 책을 위한 내 집을 갖고 싶다. 어쨌거나, 수상쩍은 전자책 가격.
살림 똑부러지게 하는 우리집 나비 아가씨 (0) | 2018.01.28 |
---|---|
고독한 푸틴의 사회성에 대하여 (0) | 2018.01.26 |
Air Supply: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2) | 2018.01.13 |
My Friend Paul the Blind Cat (0) | 2017.02.07 |
진중권, 강용석, 나꼼수, 그리고 엑스트라 (3) | 2012.02.08 |
I know just how to whisper,
and I know just how to cry;
I know just where to find the answers;
and I know just how to lie.
I know just how to fake it,
and I know just how to scheme;
I know just when to face the truth,
and then I know just when to dream.
And I know just where to touch you,
and I know just what to prove;
I know when to pull you closer,
and I know when to let you loose.
And I know the night is fading,
and I know that time's gonna fly;
and I'm never gonna tell you everything
I've got to tell you,
but I know I've got to give it a try.
And I know the roads to riches,
and I know the ways to fame;
I know all the rules
and then I know how to break 'em
and I always know the name of the game.
But I don't know how to leave you,
and I'll never let you fall;
and I don't know how you do it,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Every time I see you all the rays of the sun
are streaming through the waves in your hair;
and every star in the sky is taking aim
at your eyes like a spotlight,
The beating of my heart is a drum, and it's lost
and it's looking for a rhythm like you.
You can take the darkness from the pit of the night
and turn into a beacon burning endlessly bright.
I've got to follow it, 'cause everything I know, well it's nothing till I give it to you.
I can make the run or stumble,
I can make the final block;
And I can make every tackle, at the sound of the whistle,
I can make all the stadiums rock.
I can make tonight forever,
Or I can make it disappear by the dawn;
And I can make you every promise that has ever been made,
And I can make all your demons be gone.
But I'm never gonna make it without you,
Do you really want to see me crawl?
And I'm never gonna make it like you do,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고독한 푸틴의 사회성에 대하여 (0) | 2018.01.26 |
---|---|
Book: When to Rob a Bank by Levitt & Dubner (0) | 2018.01.26 |
My Friend Paul the Blind Cat (0) | 2017.02.07 |
진중권, 강용석, 나꼼수, 그리고 엑스트라 (3) | 2012.02.08 |
필라델피아 미술관: 렘브란트전을 보러 갔다 (6) | 2011.10.20 |
2018년 들어서 처음으로 '나의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추워서 개울이 꽝꽝 얼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다지 춥지 않게 느껴졌다. 겨울에도 칼바람만 불지 않으면 추위는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칼바람'이 무서울 뿐이다.
짧은 겨울해라서, 오후 세시에 숲으로 들어가서 걷다가 돌아올 무렵에는 사방이 어두워졌다. 저만치 어슬렁거리는 동물이 여우인지 코요테인지 근처 인가에 사는 개인지 식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어둠속을 걷다가 생각해보니, 이 나이 먹도록, 인기척도 없는 겨울 숲속길을 해 진 후에 걷기는 처음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춥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내 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이 나타나리라는 믿음 한가지로, 길섶에 쌓인 눈을 등불삼아서 걸었다.
꽝꽝 언 개울 얼음판에서 혼자 미끄럼을 타고 놀면서 -- 어릴적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썰매가 있다면 지금 참 신나겠다는 생각을 했고, 숲길을 따라 걷는 그 길이 고향집으로 가는 길처럼 여겨졌다. 미국의 숲길에서 오히려 고향길을 발견한다. (한국은 낯설도록 너무 많이 달라졌다.) 겨울 숲길은 아름답다. 겨울 밤의 눈쌓인 숲길은 흰 눈이 길을 밝혀줘서 정겹다.
얼음판위의 내 사진은, 개울가 바위위에 전화기 세워놓고 타이머로 맞춰 놓고 찍은 것이다. 매일 매일 겨울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맨발로 (0) | 2020.09.22 |
---|---|
걷기 기록: 섬 한바퀴 (0) | 2020.09.16 |
하느님의 미술관 (0) | 2017.02.06 |
Fall 2016 (2) | 2016.08.12 |
When it rains it pours in Virginia, August 2016 (0) | 2016.08.08 |
하얀 눈 위에 구두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발자국
누가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발자국
바둑이 발자국 소복소복
도련님 따라서 새벽길 갔나
길손드문 산길에 구두발자국
겨울해 다가도록 혼자남았네.
Igloo in my backyard (0) | 2010.02.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