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8.04.26 08:51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오, 하느님, 제가 이 책을 책방에서 발견하게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방의 인문교양서적 쌓아놓은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한 하드커버 책.   얼핏 보면 어떤 개인의 '회갑기념' 수필집같은 장정이라서 뭔가 싶은데, 책을 열어보면 -- 만만치 않은 책임을 알게 된다.  내 첫 인상이 그러했다.  일단 책 제목이 어딘가 수필집 같은데, '질병의 사회적 책임' 이라니?


저자는 '저는...' '...입니다'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설명을 하는듯한, 혹은 겸손한 자세로 강의를 하는듯한 문체로 질병의 사회학적 관점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해주고 있다. 서양에서 들어온 이론에 대해서는 영문으로 정확한 표기도 해 줌으로써, 관련 자료도 쉽게 찾아보도록 해 주었다.  그의 전공영역인 '사회역학 (Social Epidemiology)'은 내게도 낯선 분야인데, 참 알기 쉽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잘 해준다.  어떤 집단이, 어떤 직업군이,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어떤 질환으로 고통을 겪거나 죽어갈때, 그것을 개인의 차원에서 해석하기보다는 그 집단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문제가 무엇인가 들여다보고 사회적, 정책적 해법도 생각해 보는 다양한 사례가 이 책에 제시된다. 


그가 21페이지에서  

 * Experienced discrimination

 * Perceived discrimination

 * Reported discrimination


의 개념을 쉬운말로 설명해줄때, 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거였구나. 이러한 컨셉은 보건학뿐 아니라,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수 있다. 어차피 사회학적인 관점이므로.  하필, 쓰레기 자동 집하설비를 점검하던 30대 사나이가 수백미터 아래로 쓰레기 집하 통로에 처박혀 목숨을 잃은 그날,  수백명의 사람들을 집에서 키우는 개, 돼지 만큼도 못한 대우를 하던 재벌 일가의 행패 소식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전히 업데이트 되던 그날, 세월호 희생자와의 영결식을 마친 며칠후, 내 눈에 들어온 이 책은 새로운 어떤 세계에 대한 발견이었다.  이런 분야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난 도대체 뭘 하면서 사는거냐 그런데?)


이 책은 어쩌면 공중보건학 종류의 책일수도 있고, '사회학' 책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전공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한번쯤 쓱 훑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책이다. 책방에서 정가 다 주고 산 그 책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주 오랫만에 책다운 책을 만났다는 희열.  책을 읽는 사이에 두통이 사라지고, 멀미도 사라지고, 책 읽다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서 책을 읽었다.  이제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된다. 


(사실 우리집에는 여러가지 분야에서 출판된 증정본들이 쌓이는데, 어떤 것은 딱 한번 훑고 쓰레기통에 넣기도 한다. '이 책은 남에게 줄 가치도 없어보인다'고 여겨질때. 아주 좋은 책들도 증정본으로 (공짜로) 볼 수 있는 여건이다보니, 서점에 가도 어지간해서는 책을 사지 않는다.  집에도 비슷한 좋은 책이 있으니까. 혹은 곧 증정본이 올지도 모르니.  그런데, 이 책은 책방에서 발견 즉시 내 돈내고 사가지고 그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음, 돌팔이 의사 친구에게 이 책을 보내줘야지.)


----

책을 읽으면서 --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개인적인 취향이나 습관'으로  원인 규명을 하던 것들에 대해서, 사실은 그게 그런것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뭐, 딱히 적합한 예라고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나는 고기를 잘 못먹는다. 고기 냄새도 싫어하고, 아무튼 사정이 그러하다.  우리 언니도 고기를 통 안먹니 대학생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터,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입에 대게 되었다.  나는, 쇠고기 스테이크나 불에 구운것만 먹고, 다른 종류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  우리 오빠와 내 사내동생은 특별히 까다롭게 굴지 않고 보통사람들이 먹는 보통 고기들을 가리지 않고 어릴때부터 먹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는 이걸, 그냥 언니와 나는 고기를 싫어하고, 오빠와 사내동생은 고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 까탈스러운 입맛에 나조차도 짜증나고 불편해 하는 편이다.  남들이 맛있다고 먹는 고기 음식에 대해서 나는 왜 구역질이 나는가?  나는 이런 현상을, 그냥 '내게는 고기를 소화시키는 분해효소나 뭐 관련 호르몬이나 뭐 장기능이 떨어지는게 아닐까? ' 이쯤으로 상상하며 살아왔다.  아마 내 상상이 그다지 크게 잘 못된 것은 아닐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왜 대체로 내가 성장하면서 본, 우리 집안 사람들중에서, 남자들은 고기를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여자들은 고기를 가리는 사람이 많은걸까? 이것이 남녀 취향이나 혹은 소화기계의 차이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 문화적인 어떤 패턴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것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일까?


나는 왜 고기를 회피하는 사람이 된걸까?   한 집안에 남매들이 섞여 있을때, 왜 남자들은 고기를 대충 먹는데, 여자들은 까탈스럽게 고기를 안먹거나 못먹는 식으로 분리가 되는걸까? 개인 취향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집안같이 대대로 남녀차별이 눈에 띄게 존재했던 집안에서는, 그 원인이 개인 취향외에 '사회 문화'에 기인한 것도 있을수 있다.  


집안에서 자라날때 고기를 잘 못먹거나 안먹던 사람이 사회생활 하면서 고기를 먹게 되는 현상 (우리 언니 같은 케이스)을 살펴보자.  그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여 고기를 먹게 되었을수도 있고 (사회적 압력 때문에), 혹은 집에서 벗어나 다른 영역에 갔을때, 구성원들사이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고, 내 돈 내고 내가 먹을수 있는 경제권이 생겼을때...내가 '자립'함으로써 한 집안의 '분위기'에서 벗어났을때, 그의 먹성도 달라질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동등하게 대접해 줬다면 집안의 다른 구성원들이 먹는 만큼은 먹었을것이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 한 집안에서 여자들이 대체로 고기를 잘 안먹고, 남자들이 가리는것 없이 잘 먹는다면, 그것은 '차별'이 원인이다. (아주 거칠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다.) 


오늘 저녁에 퇴근하는대로 동네 갈빗집에 가서 갈비를 먹겠다. 



'사람의 건강'에 관해서 내가 공부한 것으로는 버지니아주에서 발행하는 Personal Care Aide 간병사 자격증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시간동안 교육받고 해당 과정을 이수하면 별 문제 없이 나오는 '누구나' 가능한 자격증이다.  '그냥' 이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땄다.  뭐 상식적으로 사람을 잘 돌보는 상식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나는 막연히 이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딴 것인데,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6년간 재직한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안식년을 선포하고, 1년동안 백수로 지냈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배운 도둑질'이니까, 새로운 삶이래봤자, 새로운 학교를 알아보는 정도였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 전 지역의 대학에 지원서를 보냈다.  그런데, 메릴랜드주의 모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이들이 눈여겨 본것은 내게 '버지니아주 PCA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것은, 이민계 의사 간호사등 의료업종에 있는 이민자들에게 적합한 영어교육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내게 '의료업종 자격증'이 있고 내가 '영어교육' 전문가이므로 -- 의료업종 영어교육 전문가를 찾던 그들 눈에 내 지원서가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꽉 막힌듯 했던 내 운수가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특수전문직 (의료직) 대상 영어교육 전담이 되어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버지니아의 주립대로 옮길수 있었고, 그를 발판으로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곳으로 향할수 있었다.  물론  현재 내가 의료관련 전문직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내 이력이 확장될 수 있었다. 


메릴랜드에서 '의료영어'를 가르치는 동안, 나 혼자 상식수준의 의료관련 영어공부를 많이 했다. epidemic이냐  pandemic이냐 뭐 이런것도 그 당시에 공부를 해서 알게 되었고, 뭐 상식적인 수준의, 의사나 간호사나 간호보조사들이 매일 사용하는 수준의 영어를 스스로 익혀서 가르쳤다.  심지어는 간단한 처치 행위까지도 가르쳤다.  원래는 학생중에 어느 의사가 그 부분을 스스로 실연해보이기로 했었는데, 하필 그날 그에게 이민법 관련 문제가 생겨서 그가 수업에 올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가르쳤다. 내가 가르치고 학생들이 실연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을 하여 디렉터에게 보냄으로써, 교육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그렇게 나는 의료영어교육 '선수'가 되었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의 지향점은 그쪽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버지니아 쪽을 선택했고, 지금 여기에 와 있다. 


그러니까 공중보건에 대해서 내가 아주 문외한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잘 안다고 할수도 없다.  이도저도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뭐라도 공부 해 놓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기회가 올것인지 나는 예측할수 없다. 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조심조심 헤쳐나가듯, 우리 삶이 그러한 것이지.  눈을 뜨거나 감거나 우리는 앞날에 대해서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그냥' 일없이 공부해서 따놓은 자그마한  간병인 자격증이 내 삶에서 하나의 문을 열어줄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에서의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잘 모르겠다. 이곳에 몇년 더 살게 된다면 방송통신대에서 새로운 전공을 공부해볼까 생각해본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