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7. 2. 7. 02:04


Let me tell you a story of a blind cat whose name is Paul.  He was born on an autumn day in 2014 along with his brother Peter. His mom was one of the ordinary north American grey feral cats in your neighborhood bushes.   So, now, Paul is two years and some months old. 


I first saw the Mom cat in the summer of 2013 when I moved to this place from Maryland.  Yeah, the previous year I lost my dog, King. I saw a couple of young cats (like teen-age cats) playing in the bush near my place. They were young and active. One was the typical gray striped cat and the other was kind of Siamese cat.  They were like ghosts -- seen now but gone right away. I didn't care much about them. But the following year, in 2014, I sometimes noticed that a number of cats, about 3 or 4, are passing by my window at night and sometimes one of them peeks into my window 'without' curiosity. I mean 'without' curiosity. They simply looked like saying, "me...no...interested in anything about you guys..." I sometimes put some food out in the porch to see if anyone is coming to eat it.  Little by little, I noticed that they come and eat when I am away. It was like playing hide-and-seek. They come to eat but I never saw them eating. 


Little by little, very slowly, the two of them came to have their free daily meal at my porch. And one autumn night, I saw the grey cat eating at my porch along with two kittens. One was very ugly and the other was a little bit small but cute.  Oh, they were so cute....


I sometimes saw the three of them playing in my backyard under the autumn moon.  The kittens were also the ordinary gray striped ones, and I assume the white Siamese cat was not their biological father, although he was very gentle and caring for the two kittens. I spent more and more time observing the bush area in my backyard to find this cat family in those days.  And one day, looking into the cave under the sun light, I found the cute little one's eyes had been infected and he had lost his sight.  He was sitting silently in the cave waiting for his family. He was there. Silent.  (Feb. 7, 2017)



Dear Paul...


Yeah, his name is 'Paul.' Is it she? Not sure. Some say it's 'he' and I find no 'ball' so I assume it is 'she.'  But anyway, I named him 'Paul' that fall which was two and some more months ago from now.  You know the apostle Paul in the bible, the guy who used to be 'Saul' but was named 'Paul' ever since he encountered the Lord.  He got blind and then saw the real light ever since.  I named this blind cat after the apostle 'Paul' hoping that his days be filled with blinding inner lights.  Dear Paul, have you met your Jesus? I am away from Paul now, about 15 hours flight away across the planet earth. It is day time so it will be deep in the night in your place. My days here is passing so quickly.  Do not imagine that I think of you very often...no...  I think of you sometimes...  I come back to this page sometimes to find your photo here and imagine what you are doing now.  Does Charlie and John provide you with milk regularly? Does anyone annoy you?  Is the white cat still bothersome to you? Do you .... do you remember me? Do you...do you remember my voice?  Do you know that sometimes I think of you? (Maybe, are you asking the same questions to me?) (March 21, 2017)



(to be continued....)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7. 2. 6. 12:41


나는 이 세상에 와서 만 53년을 살았다.  


그 세월동안 병치례 하느라 입원을 한 적도 없고, 무탈하게, 그럭저럭 건강하게 잘 지내왔으니 그간의 은혜만으로도 넘치는 복이다. 


요즘 명리학 공부중이라는 내 친구가 전하는 말로는, 자기하고 나하고 생일이 같은데, 자기하고 나하고 그래서 사주가 비슷한데, 우리는 둘 다 '여름 사람'들이라고 한다. 여름이면 살아나고, 겨울이면 기운이 떨어지고. 나무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둘다 그럭저럭 크게 이루는 것도 없이 크게 잃는 것도 없이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한다.  그것 참 정말로 그렇다면 복도 많은 운명이다. 어차피 내가 뭘 크게 이룰것 같지도 않은데, 크게 잃는 것도 없다하니 그것만 해도 어딘가. 내 친구는 공주처럼 태어나서 귀부인으로 산다. 나는 공주처럼 태어나지도 않았고, 귀부인으로 살지도 못한다.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게 그건가부다. 대동소이 할 것이다. 그러니 크게 자랑할 것도 크게 억울할 것도 없다.  아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 고만고만하겠지.  내가 개미떼를 내려다보면서 그게 그것처럼 여기듯이. 



1년후에 만 54년을 살았을 때, 내가 여전히 튼튼한 두다리로 걷고, 웃고, 그랬으면 좋겠다.  10년후에도. 20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나이 오십을 넘기니 전에 목마르게 찾아가 보던 예술품들도 시들하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하느님이 지으신 작품들을 보고 싶어진다. 나무, 풀, 하늘, 고양이, 그런것.  그게...나이가 주는 선물인걸까?  미술관과 숲길  둘중에 어딜갈래? 물으면 나는 주저없이 '숲길'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이 지어낸것 중 아름다운 것이 참 많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하느님이 지으신 풀 한포기보다 더 아름다울수는 없다.  내 검은머리 속에 늘어나는 흰머리들이 내게 그런 얘기들을 해 준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나는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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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Sketch2017. 2. 6. 12:28



지난 2월 3일 (2017년) 디씨에 있는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의 전시품들을 둘러보다 발견한 작품과  작품설명 이름표의 잘못된 만남. 


그러니까 위 그림의 제목이 '갈릴리 호수의 예수' 라는 것이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서 있었다.  그림속에서 호수나 바다를 혹은 예수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웹겁색으로 동 제목과 작가와 국립미술관 검색어를 넣어 보았다. 


동명의 제목과 화가 이름을 넣어서 검색하면 나오는 작품은 아래의 것이다. 국립미술관 소장품이다. 삼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지므로 본래 아래 작품의 이름표가 마땅할 것이다.




그러면....엉뚱하게 '남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전시장 그림의 본래 제목이나 화가는 누구인가?  내가 나름 '짱구'를 굴려서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소재 (여자, 남자, 남자가 여자에게 흰떡 썰은것 같은것 한조각을 내미는 장면, 이러저러한 것들)의 그림 제목에 Last communion of Maria in Egypt 이런 식의 제목이 나온다.  성경이나 성경 주변 일화, 동일한 소재를 화가들이 각자 자기 스타일로 그리므로 아마 '마리아'의 어떤 일화를 그린 그림인듯 하다.  '마리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면 -- 내가 아는 유일한 일화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잠시 이집트로 피신을 한 적이 있다는 것.  아무래도 그 성가족과 관련된 그림 인듯 하다고 추측할 뿐. 아직 구체적인 작품 제목이나 화가를 조사하지 못했다 (아마 안 할 것이다. 의욕이 없으므로.)


옛날에는 미술관에 걸려있는 기독교 관련 그림들을 봐도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고, 금박무늬라던가 알록달록한 화려함에 골치가 아플정도 였는데 지금은 나도 성경적인 지식이 제법 있고, 제법 알고 하니까 이런 그림들이 꽤 재미있고, 그래서 자세히 보다보니 이런 엉뚱한 미술관 직원들의 실수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경비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름표가 잘 못된것에 대해서 서로 진지하게 동의하고, 경비원이 관련 직원에게 연락을 취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는 그냥 발길 가는데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 저녁 디씨에서 저녁을 먹으며, "오늘 내가 미술관 돌면서 봤던 작품들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갈릴리 호수의 예수'.  내가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웹으로 확인해보고 -- 이 그림 참 좋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그림"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지 못한 그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그 작품을 꼭 한번 보고 싶다. 


아, 이름표만 있고 작품은 없었던 그 '갈릴리 호수의 예수' 그림은,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물위를 걸어 오시는 것을 보고 피터/베드로가 주님을 영접하러 나와 물위를 몇걸음 걷다가 그만 물에 빠지는 바로 그 일화를 말하는 듯 하다. 배에서 한발 내밀고 있는, 머리에 원광이 그려진 그이가 베드로일 것이다. 나도 예수님이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16. 9. 22. 20:21





The past, past, well now let me tell you about the past
The past is filled with silent joys and broken toys,
laughing girls and teasing boys
Was I ever in love? I called it love- I mean, it felt like love,
There were moments when, well, there were moments when
Present, Go out with you? Why not
Do I like to dance? Of Course,
Take a walk along the beach tonight? I'd love to,
But don't try to touch me, don't try to touch me
Cos that will never happen again,
Shall we dance

The future, Tommorow? well tommorows a long way off
Maybe someday I'll have somebody's hand
Maybe somewhere someone will understand
You know I used to sing- a tisket a tasket a green and yellow basket
I'm all packed up and I'm on my way and I'm gonna fall in love,
But at the moment it doesn't look good
At the moment it will never happen again
I don't think it will ever happen again.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6. 8. 27. 01:55

Written on Jan. 10, 2010 (updated on August 25, 2016)


공식 홈페이지: http://www.delart.org/

델라웨어주의 주도(행정 수도)인 윌밍턴 (Wilmington)에 있는 델라웨어 미술관

 

 

 

우리집에서 120마일 거리의, 델라웨어주의 주도 (행정수도) 윌밍턴 시에 있는 델라웨어 미술관. 이곳은

 * 미국 식민지시절 그리고 19세기 미술작품

 * 미국 20세기 사실주의

 * 미국 20세기 사실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작품들

 * 영국의 프리 라파엘라이트 작품들

 * 일러스트레이터 Pyle 의 작품들

을  소장하고 영구전시하고 있다. 물론 특별전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미술관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역사적인 명품들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피카소도, 마티스도 없으며 이집트 유물도 없다. 위에 명시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와같이 '미국미술'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거나 감상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상상치도 못했던 역사적인 작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윌밍턴 시 변두리 주택가 안쪽에 위치한 델라웨어 미술관 앞모습.  1층 2층에 전시관및 카페, 뮤지엄 샵등을 갖추었고, 지하층은 교육실과 행정실로 사용된다. 겉보기에 나지막하고 작아보이지만, 측면과 후면쪽이 깊고 넓게 설계되어 있어 겉보기보다 전시장이 크고 알차다.

 

 

 

가장 나를 사로잡은 것은 2층 John Sloan과 The Eight 의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  이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심장 박동이 갑자기 증가하여 심호흡을 해야 했다.  (기대도 못하고 갔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아아아, 마침내 존 슬로언의 초상화 앞에 서다!  (전생의 애인을 다시 만난듯 반가웠다... 내 원 참...)

 

 

 

 

이건 또 뭐냐. 내가 간밤까지 고민을 하던 레지날드 마시 오빠가 아닌가.  마시 오빠가 여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이쯤 되면 오늘을 그냥 내 생일로 지정을 해도 좋을것 같다...

 

 

 

 

 

그뿐인가! 현대미술 전시장에서 나를 반기던 저 문간의 색동 무늬.  저 색동무늬는 워싱턴 디씨 태생의 Gene Davis 가 아닌가!   데이비스님은 어떻게 내가 여기 오는걸 아시고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시는고?   게다가, 저기 저 벽뒤에 빨간 말대가리! 저 말대가리는 Deborah Butterfield 의 말이 아닌가!

 

 

오오 나의 말대가리야 오랫만이다! 잘 있었니?

 

 

 

 

오오, 인간말대가리! 너도 잘 지냈니?  요즘도 네 어머니는 너를 '말대가리'라고 부르시니?

       응, 우리엄마는 내가 고집세고 질기다고 말대가리라고 부르시지.

 

 

 

말대가리!  말대가리! 정말 반가워!

            나도 반가워 인간말대가리야! 네 머리는 여전히 말총머리구나 인간말대가리!

 

 

 

 

그런데 인간 말대가리야, 네 머리에 난 뿔은 뭐냐?

 

    그건 내가 좋아하는 프랭크 스텔라의 입체 추상화 작품인것이지.. 

 

 

 

 

오오 나의 말대가리!  안녕 말대가리! 안녕...

 

 

 

카페의 음료와 음식은 양심적으로 착하고 (가격이 저렴하고 깔끔하고)

 

 

인형을 좋아하는 돌쇠같은 작은 놈, 가방에 매달라고 도깨비 인형을 기념품샵에서 사고

 

 

 

해파리가 꿈꾸듯 날아다니는 2층 창가

 

 

 

그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야외 카페와 조각공원

 

 

 

동자승같은 꼬마가 하나 서있는데, 그 뒤에 온갖 악당들을 짊어지고 구부리고 있는 사람. 제목은 Protecting Future.  어린아이를 위하여 온갖 번뇌와 시름을 모두 짊어지고 있는 어른. 아아 이것이 부모가, 기성세대가 자식을 위해 후세를 위해 취해야 할 태도인것인가. 인디언 미술을 재현한 것이라 한다.

 

 

 

그러니깐... 내가, 지켜줄테니까, 두려움 없이, 용맹정진하길.. 내가 지켜줄테니까.  너는 햇살을 향해 웃으면서 나아가길.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님에게 주고

슬픈 일이면,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면 안되네...

슬픈 일은 내가 다 막아줄게

세노야 세노야...

그러니까 어디서든 언제든 행복하게 잘 살아라

건강하게...

 

 

 

 

프리 라파엘라이트 미술 전시관에서는, 수첩에  기념 스탬프도 찍어보고.  옆의 나뭇잎사귀같은 문양은 프리라파엘라이트 미술의 상징적인 버들잎 문양.

 

 

 

스탬프를 찍은 손바닥만한 수첩의 표지는 이러하고... (꽃과 요정들이 매우 촌스럽게 그려진 매우 촌스러운 수첩)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아 가지고 다니기 위해 기념품샵에서 산 헝겊 가방.  제법 커서 내 핸드백과 책과, 뭐 소소한것들이 한꺼번에 다 해결된다.

 

 

 

 

대규모 국립 미술관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기대이상으로 알찬 소장품들을 가지고 있는, 보석같은 미술관이다.

 

 

미술관 도슨트 (docent)의 안내도 받아서  재미있는 새로운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미술 책에 씌어있지 않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야기들.  앞으로 이 미술관에서 보고 배운 미국 미술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슬슬 풀어보겠다. (아, 아, 아, 기대하셔도 좋다...)

 

 

2010년 1월 9일 (토) 맑음. redfox

 

p.s.

 

위의 Deborah Butterfield 의 말대가리 녀석과 나는 인연이 깊다.

 

이놈은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의 링컨 갤러리에 있는 말. 겉보기에는 폐목으로 만든것 같은데 재료가 Bronze (청동)이라고 해서 내가 갈때마다 들여다본다. 정말 브론즈야? 고목나무 조각 아니야?  (2008년 5월 사진)

 

 

 

이놈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톤 인근에 세일럼 (Salem)이라는 '마녀사냥'으로 유명한 항구 도시, 이곳에 Peabody Essex Museum 이 있는데, 그곳 1층에 서있던 말이다.  이 말은 주위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놔서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링컨 갤러리의 말에는 울타리 안쳐놨지만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말에는 왜 울타리를 쳐놓는가?  (2009년 8월 사진)

 

 

 

해파리가 그리웠지.  바다나 수족관에 가야 해파리를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 유리로 만든 해파리들을 봤지.  해파리라면, 한국마켓 식품부에 '해파리 냉채'용 해파리도 있었던 것이지. 해파리... 하지만 나의 해파리는 푸른 바다를  이리저리 떠돌아.  상념처럼. 기억처럼.  오래전에 지워진 기억처럼. 아주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 기억처럼.  지워진 꿈처럼. 해파리처럼.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8. 12. 08:07



안녕 

나의 여름.  안녕 나의 칠월. 

안녕, 온종일 뒹굴거리며 내다보던 초록세상. 

안녕, 잠시 안녕 나의 버지니아. 

안녕, 잠시 안녕 나의 고양이들. 








가을을 향하여. 다시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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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8. 8. 23:40



8월 4일, 버크 호수를 한바퀴 돌고나서 집으로 향하는데,  오래 참았다는 듯이 쏟아붓던 기습적인 폭우.  비가 하도 좋아 갓길에 차를 세우다. 


차체가 파도에 빠진듯한. 온세상이 물보라에 일렁이던 짧은 순간.  이런 순간이 격하게 좋다.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그 순간안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것이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은 풀잎같구나. 칼날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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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7. 01:17


내가 하루 50킬로 장거리에 걷기에 신고 나간 신발은 KEEN Whisper Sandal 이다. 5년 가까이 이 샌들을 봄 여름에 가볍게 걸으러 나갈때 신은것 같다.  그러니까 10마일 (16킬로미터) 정도는 이 샌들을 신고,  장거리 15-20마일 갈때는 여름에도 발목까지 감싸는 하이킹화를 신었다. 이것이 두켤레째인데 작년 겨울에 아마존에서 싸게 사서 (겨울에 여름제품 산거니까 그냥 떨이값에) 잘 보관하다가 올 여름에 꺼내 신었다.


처음에 집 근처 대략 10마일 안팎 걸을때는  맨발로 신었는데 (샌들이니까), 그래도 자질구레하게 발에 상처가 났다. 뒷꿈치에 물집이 생긴다거나 이러한.  내가 가볍게 걷는다해도 10킬로미터 정도를 걷는거니까.  그렇다고 더운 여름에 발목 하이킹화를 신기도 덥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발등만 가리는 양말을 신고 그 위에 샌들을 신는 것이다.  양말을 신으니 발 피부는 보호를 받고, 샌들의 통기성은 그대로 유지를 하고.  이렇게 걸으니 자질구레한 발 피부 상처 문제가 사라졌다.  발도 시원하고. 


일년에 한번만 해도 영광인 50킬로 대장정을 할까 말까 어쩔까, 그냥 별 준비도 없이 걸으러 나가면서 역시나 양말신고-샌들신고를 선택했다. 걷다가 발 아프면 그냥 오지 뭐, 이런 심산으로.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내겐 매우 효과적이었다. 걷는 내내 발이 아주 편했다. 마지막 5마일 걸을때는, 아무래도 발이 붓고 피곤하니까, 양말도 벗어버리고 그냥 샌들만 가볍게 신고 걸었다.  킨-샌들. 합격 (two thumbs up!) 


하여, 장거리 워킹을 '조금'하는 경험자 입장에서 내가 추천하는 '발' 관리 및 신발 선택 방향은,

(1) 평소에 내 발을 잘 관찰하면 오른발, 왼발 따로따로 취약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가령 내 발은 왼발 네번째 발가락의 살이 유난히 통통해서인지 옆발가락과 마찰이 일어나면서 물집이 생기곤 한다. 장거리 걸으면 영락없다. 그래서 걸으러 나가기 전에 그 부분에 부드러운 밴드를 붙여준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이렇듯 자신의 발의 섬세하고 연약한 어떤 부위가 있어서 습관적으로 그 부위에 물집이 생긴다 싶으면, 걷기 전에 문제의 부분에 부드러운 밴드를 겹쳐 붙여서 사전에 조치를 취해준다. 


(2) 신발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무기와 같다. 좋은걸 사 신는다. 내 발에 편안하고, 발이 부어도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로. 끈을 조일수 있는 구조로 (좀 넉넉한 사이즈로 사서 끈으로 적당히 조여주면 된다).  여름 장거리 평지 워킹에 (등산이 아닌 평탄한 트레일 수준) 킨-샌들 같은 아웃도어 샌들이 제법 믿을만 하다. 그래도 섬세한 발 피부 보호를 위해서는 양말을 신어주고 그 위에 샌들을 신어도 아주 좋다.  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해보고 추천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가벼운 하이킹이나 장거리 워킹에 적합한.  내가 사용한 것으로는 킨 샌들이 듬직하다. 그러나 반드시 킨 샌들만 좋은것은 아니다. 7년 전에는 끈 가느다란 (시내 돌아다니는 용도의 날렵한) 나이키 샌들을 신고 바위가 뒤섞인 트레일을 아무 생각없이 다녀온 적도 있다. 그래도 발은 무사했다. 그냥 뭐 튼튼한 것을 추천한다 (걷는데 샌들 끈이 끊어진다거나 이런 불행한 사태가 나면 안되니까.)


(3) 나는 걸으러 나갔다 오면 '자동'으로 플라스틱 통에 물 받아다가 족욕을 한다. 그게 너무 즐거워서 -- 마치, 족욕을 하기 위해 땀 뻘뻘 흘리며 걸으러 나간것도 같다.  족욕은 즐겁다. 지상 낙원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플라스틱 물통에 발 담그고 앉아서 비누칠하고 비누칠하고 비누칠하고 발 여기저기 닦아주고 또 비누칠하고...참...즐거운 인생이다. (뭐 수천만원 들여서 창녀를 불러다가 짧게 재미보고 길게 사회적 망신을 산단 말인가. 그냥 물통에 물 받아다가 비누칠 놀이만 해도 파라다이스인데. 참, 이 재미를 모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6. 20:59



어제 2016년 7월 25일, 하루에 50킬로미터 걷기를 시행하여 결과적으로 53 킬로미터를 약 13시간에 걸쳐 마무리를 하게 된 쾌거!를 기념하는 사진 몇장.


새벽 5시 10분 버크 호수.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컴컴했다(무보정).  하늘이 보이는 호숫가도 이렇게 어두우니 여기서 나무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눈앞이 잘 안보인다.  그래도 조심조심 걷다보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작은 돌멩이가 덮인 길이 '희게' 빛난다.   그래서 노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에서 '밤새워 하얀 길을 나 홀로 걸었었다....' 이 가사가 경험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군. 달이 없는 밤이라도 대체로 길은 하얗게 보인다 (모래알갱이나 돌멩이들이 덮여 있을때). 희게 빛나는 길에 의지해서 더듬 더듬 걷다보면 날이 밝아온다.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어둠속에 혼자 있을 때, 하느님과 가까워진다. 무서우니까 하느님 손을 꼭 잡게 되는 것이다. 







버크 호수 걷기 노선중에서 내가 '호수 요정이 숨겨 놓은 길'로 부르는 좁다란 오솔길.  바로 옆에서 호수가 찰랑거리고, 어릴적 논둑길, 밭둑길 같은 그런 아주 좁다란 길이 잠깐 이어지는 곳이 있다.  총 여섯바퀴를 도는 동안 노선을 이리저리, 방향도 이방향 저방향 바꾸면서 걸었는데 이 요정의 길은 다섯번 지나쳤다.  지나칠때마다 행복하다.  요정의 길이니까. 








이 빵 사진에 대한 정확한 기술을 위해서, 어제 아이폰 메모장에 썼던 기록을 가져와 보았다.  (최종 편집이 오늘 아침 시각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마지막 떠난 기록까지만 되어 있고, 마친 시각을 기록을 안해놔서 그걸 마저 적고 총 시간을 적었기 때문이다. ) 이 기록이 한뼘안에 들어가는 짧은 것이지만, 난 이걸 적기 위해 13시간 가까이 거북이 놀이를 해야 했다. 


기록을 보면 1-2-3 까지는 시간이 점점 단축된다.  그러니까 한바퀴에 오마일여 (오마일 조금 넘음)를 걷는것인데 90분 -- 85분 --80분으로 줄어든다. 그 전날 밤에 열대야 때문인지 두시간만에 잠에서 깨어 뜬눈으로 보내고, 잠도 안오니까 홧김에 새벽에 길을 나섰기때문에 처음에는 길도 어둡고, 몸도 무겁고, 그냥 터벅터벅. 두번째 돌때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두번째 돌고나서, 차에서 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 한 20분쯤 푹 잠을 잔것 같다.  그런데 그 잠이 꿀잠이었던 것 같다. 세바퀴 돌때는 내 발에 날개가 달린듯 가볍고, 몸도 가벼웠다. 


세바퀴 돌았으니 목적한 거리의 절반을 수행해 낸 것이다. 그 때부터 반환점에 들어선 셈인데 몸도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벌써 25킬로를 걸은거라구, 당연히 지치지.  그래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네번째 돌때는, 배가 고팠다.  배가 쓰린듯 고팠다.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먹을것을 챙겨오지 않은것이다.  새벽에 가게에 들를수도 없고, 그냥 나온건데 이렇게 걸을줄 몰랐지.  네바퀴 돌고나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배고프고 지친다. 먹을게 아무것도 없다.'  


별 생각없이 나왔으니 그냥 이쯤에서 집으로 가야 된다.  그런데, 내 내부에서 더 가고자 하는 의지가 어떤 의지 같은것이 솟아올랐다.  나 지금 잘 걷고 있어.  오늘 50킬로 걸을수 있을것 같아. 벌써 2/3를 마쳤다구. 이제 10마일만 더 가면 돼.  



빵의 기적 



나는 주차장의 내 차 주위를 살폈다.  하이틴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 몇명이 차 트렁크 쪽을 열어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열린 트렁크로 아이스박스가 보였다.  소풍 나왔을것이다. 소풍 나왔으니 먹을것을 챙겨 왔을 것이다.  가서 뭔가 먹을것을 구해 와야지.  내가 다가가서 (지친, 노브라, 노화장, 시커먼 오십대 아시안계 남루한 아줌마의 형상), "Excuse me, you guys have anything to eat? I'm on my walking project now.  I have enough water but I am out of food. I need something to fill my stomach. Bread or muffin or anything."  여학생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뚜---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키가 장대같이 크고 빼빼마른 전형적인 미국 남자 고등학생 녀석이 "Hey, I have bread in my car..." 하더니 바로 옆 차문을 열고 가방에서 '사라 리' 식빵 봉지를 꺼낸다.   그러더니 맨 위에서부터 식빵 네장을 꺼낸다. "It it enough?" 그는 나의 의향을 묻는다. 더 필요한지 이거면 되는지. "Oh, thank you, that's good.  I can pay you. I'm just out of food, nowhere to buy here."  내가 빵값을 내겠다고 하자 소년은 손사래를 치며 됐단다.  소녀들은 여전히 뚜--한 표정으로 빵을 구걸하는 나를 쳐다보고 서있고.  


그렇게 해서 얻은 빵이 저 사진속의 빵이다. 나는 나무그늘, 차에 앉아서 이 빵 네장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먹어치웠다.  이 빵을 먹으면서 나는 알았다. 주기도문에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의 실체를. 내가 고통스러운정도로 배가 고플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딱 알맞은 만큼의 지상의 양식. 다른 무엇, 다른 어떤 가치도 이 빵을 이길수는 없는거지.  나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빵을 먹으면서, 오늘 나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결국 중도포기 하지 않고 이걸 해 낼거야.  (빵이 하늘에서 떨어져야만, 혹은 마법사의 모자에서 나오는 비둘기처럼 튀어나와야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 한번도 기적을 경험하지 못할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것을 찾고 있으므로. 기적은, 그것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플때 먹을 음식이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다.  구걸을 해서라도 음식을 마련한다면 은혜와 기적이 어우러진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픈데, 누군가  낯선이가 새로산 빵봉지에서 새 빵을 꺼내 몇장 준다면 은혜가 넘쳐 흐르는 일이다.  그게 하느님이 일부러 나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나의 믿음의 방식이며 생존의 방식이다. 내가 용기를 내어 50킬로미터를 지옥같은 염천에 해 치우는게 가능했던 것은 -- 하느님의 빵을 먹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 








얼음의 기적 






빵을 먹고,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 쉬고 다시 걷기에 도전하는데 숲길 입구쪽에 버려진 얼음덩이들.  아마도 피크닉 나왔던 사람이 아이스박스를 정리하면서 얼음덩이를 내버린 모양.  그래서 화끈거리는 발을 그 얼음덩이위에 얹고 냉찜질을 한참 하였다.  발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이것을 '얼음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주님께서 염천에 내가 걷는 것을 염려하시어 길위에 얼음덩이를 뿌려 놓으시다.  얼음 버린 사람이야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몰랐겠지만, 그건 글쎄 우리 하느님이 내 발 찜질해주시려고 그렇게 하신거라구.  



고난의 길 


이 길은, 약 200미터 이어진 호수의 뚝방 길이다. 호수의 물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만든 뚝길 일 것이다. 볕 좋은 가을날 이 길을 산책하면 참 좋다.  탁 트이고 호수 전체를 내다 볼 수도 있고.  하지만 화씨 100도를 넘는 뜨끈뜨끈하고 쨍쨍한 날씨에 이 길은 한마디로 '튀김솥'이다. 장작이 이글거리는 아궁이 속에 던져진 것 같은 미치게 뜨거운,  사진은 더위가 한풀 꺾이 오후 4시반에 찍은 것이라 그나마 내가 '이제 살겠네' 하면서 여유가 생겨서 찍은 것이다. 한낮에는 이 길을 통과하는게 너무 무서워서 사진이고 뭐고... 그냥 통과하기에 바빴으니까.  여섯번 이 길을 통과한 중에서 한낮 세번 통과는 고통 그 자체였다. 땅에서, 하늘에서, 사방에서 불길이 훅훅 내게 오는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한낮에는 숲길 산책로에도 사람이 없었다.  날이 하도 뜨거우니까, 사람들이 호수 기슭에서 뱃놀이를 즐기거나 하는 정도였고, 산책로에, 낚시터에 사람이 안보였다.  그 큰 호숫간 숲길이 그냥 '무인천지'였다.   그런 뜨겁고 찌는 날을 택해서 나는 50킬로 장정을 나간 것이다. (낸들 알았나. 알았으면 안했겠지... 하지만 난 해냈다는 것이지.)


집에 와서 지삐한테, "지삐야, 엄마 오늘 50킬로 걷고 왔다. 너도 50킬로 걸어봤나?" 했더니, 지삐 왈, "군대에서 완전무장하고 70킬로 행군 해봤는데요..."  


50킬로미터를 걸었다.


내 영혼은 좀 가벼워졌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열두시간도 넘는 그 행군하는 동안 하느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계셨다는것을 시시각각 느꼈다.  서늘한 나무 그늘, 푸른 잎사귀들, 잔잔한 물결, 새소리, 내 주위를 에워싸는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이 웃고 계셨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6. 08:38



오늘 새벽에 나가서 32.92 마일 (53 킬로미터)를 걷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5시 10분에서 오후 6시까지 이어진 나홀로 장정).  원데이하이크 제한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14시간이고, 나는 12시간 50분 걸렸으니까 조금 느리지만 기준 시간 안에 제대로 해 낸 셈이다.  내가 갖고 있는 기록중에 가장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이걸 해 낼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잠도 설치고 거의 뜬눈으로 새다 시피하고, 잠이 안와서 새벽에 나갔던 것인데 -- 글쎄, 내가 이걸 해 내다니.  (아무래도 하느님이 개입하신 것 같다. 내가 딱해보이셨나... 너무 친절하신 하느님. 아멘.)


오늘은 죽은듯이 깊이, 오래 잘 수 있겠지.  사지가 뻣뻣할정도로 지쳤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5. 16:44




2011년, 2012년, 2013년 4월 마지막 토요일.  그날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나는 기억한다.  일기나 지나간 블로그포스트를 찾아보지 않아도 나는 잘 안다.  



그 삼년간, 일년중 가장 날씨가 좋은, 부활의 계절 4월의 마지막 토요일마다 나는 포토맥 강변을 하루종일 걷고 있었다.  하루에 50킬로미터 걷기 행사.  2011, 2012년은 매클레인에 살때.  2013년은 메릴랜드 칼리지파크에 살때.  첫해 기록은 12시간쯤.  두번째 해 기록은 11시간쯤.  세번째 해 2013년에는 열시간 이내에 골인을 했다.  기록은 점점 좋아졌다. 이 행사를 성공 시키기 위해서 내가 한 사전 준비는, 20마일 (30킬로미터 안팎)거리를 사전에 두세번 걸어서 기초 근력을 확인하고, 확보하는 일이었다. 평소에 걷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고.  



2012년 11월에 나의 왕눈이가 죽었다.  나의 왕눈이가 죽은 후 -- 아, 왕눈이의 죽음과 함께 무언가 내 삶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 같은것이 빠져 나간걸까?  왕눈이가 죽은지 아직 만 4년도 안되었는데, 그 사이에 10년쯤 흐른것 같기도 하다. 왕눈아.  



2014년 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행사에 등록을 했지만, 나는 장거리 워킹용 하이킹화를 사 놓기까지 해 놓고도, 그 걷기 행사에 가지 못했다.  내게서 불꽃이 빠져 나갔기 때문일것이다. 2015년 봄, 나는 50견에서 회복중이었고 내 몸은 녹 슨 고철 인형처럼 삐걱댔다.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올 해 봄, 물리적으로 나는 미국 밖에 있었거니와 설령 내가 미국에 있었다해도 상황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기운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내 생애에서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걷는 일은 이제 요원하거나 불가능한 꿈이 된걸까?





하루 50킬로미터는 마일리지로는 31.1 마일쯤 된다.  31.1마일은, 내가 종종 나가서 걷는 버크 호수를 여섯바퀴 돌면 되는 거리이다. 2주쯤 전에 나는 왕복 16마일, 아코팅크 레이크 다녀오는 일을 별 일 없이 잘 해 냈다.  엊그제 버크 호수 세바퀴 도는 일을 잘 해 냈다.  과거에 비하면 걷는 속도는 현저히 떨어진 것 같은데, 느려진 속도 외에 다른 신체적 컨디션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대체적으로 신체가 노화 되었을 것이고, 그동안 운동도 부족해서 둔해진 측면도 있고, 이래저래 과거의 '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 몇년 사이에 평소 체중도 3킬로그램 정도 증가되었다. 나잇살일수도 있지만, 운동부족으로 인한 나잇살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음.  나이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평소 체중이 증가한것은 내가 그만큼 게을러졌다는 것일뿐. 



버크호수 세바퀴 돌은 기록으로, 그 두 배를 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자다 깨어 그 점을 곰곰 생각해본다. 



내가 조금 걱정이 드는 것은, '더위'가 한몫을 한다는 점이다.  며칠전 버크호수에 새벽에 나가 두바퀴를 걸은적이 있는데, 그날은 선선했다. 새벽날씨는 오슬오슬 서늘하기까지 했다. 약간 서늘한 날씨가 걷기에는 최고 좋다. 그래서 새벽에서 아침 나절까지 두바퀴 도는 일이 가뿐했다. 엊그제는 새벽에 나갔는데도 훅훅 더운 열기가 올라왔다. 찜통 더위였다. 새벽이슬조차 매달리지 않았고, 나무그늘에서도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바퀴 돌았을 때 무척 지쳤고, 세바퀴째 돌때는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우기까지 했다.  날씨가 조금 서늘하다면...50킬로미터를 도전해 볼 만도 한데...



올림픽 경기중에서 가장 근사한 종목은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스포츠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을 나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한다. 달리라고 하면 달리기는 하겠지만, 그 흔한 '조깅'조차도 나는 힘들게 여겨진다. 나는 그냥 달리기를 하는게 힘들고, 전혀 즐겁지 않다.  어릴때는 바람개비를 들고 들판을 뛰어 다니기도 한 것 같은데, 동네에서 저기 떨어져있는 전봇대까지 누가 먼저 달려가나 경주를 하면 나도 지는편보다는 이기는 편이었는데, 달리기는 내게는 무거운 운동이다.  나는 인간이 혼자서 42.195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수 있다는것이 경이롭게 여겨진다.  마라톤 선수들은 달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무시무시한 고통'을 견디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하는 편이다.  숨이 차고, 가슴이 벅차고, 그냥 그대로 뛰던 다리를 멈추고, 팔을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걷고자 하는 '악마의 욕망'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운동선수는 '마라톤 선수'이다. 



하지만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한다. 달리기를 잘 하려는 욕구도 없다.  난 -- 걸으면 되니까.  난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나의 발과 나의 다리는 내가 아무리 멀리 걸어가도 내게 불평하지 않는다. 내 심장은 투덜대는 일 없이 평온하게 제 할일을 하며, 대체로 나는 평온하다.  조금씩 조금씩 지칠 뿐이지만, 지치면 지칠수록 내게 찾아오는 '평화'도 있다.  지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평화.  그것의 정체를 나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신체의 언어로만 설명할수 있을 것이다. 지쳐 쓰러질때까지 걷는자가 얻게되는 평화 -- 그것은 직접 지쳐 쓰러지도록 걸은 자만 느낄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마라톤 선수들도 그들만의 희열을 맛보고 싶어서 힘들어도 끝까지 달리는 것이겠지.  그들의 경지를 나는 절대 알수 없지만.  (그러니까...미루어 짐작컨대...인생이 캄캄한 어둠 속을 혼자 걷듯 외롭고 두렵고 힘들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면, 끝까지 견디고 살아낸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죽음이 비둘기의 깃털처럼 고요히 내 눈에 내리지 않을까?  두렵고 무서운 죽음이 아니라, 견딘것에 대한 보상같은 평화로운 죽음 같은것. 그런게 아닐까? 그러하다면, 나는 끝까지 견뎌내는 일에 좀더 성의를 다 해야 할 것이다. 마라톤 선수처럼.   )





나는 죽고 싶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상상이나 충동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상상한다.  내가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걸으면, 나는 어쩐지 한번 죽었다가 새로운 영혼으로 새 옷을 입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든 내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엊그제, 지친 걸음으로 기도조차 멈추고 늙은 개처럼 꾸역꾸역 걷다가 문득 발견한 고요한 평화 (그건 기적같았다. 고요한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으니까)를 상기하며,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50킬로미터를 참고 걸으면, 마지막엔 좀더 큰 평화가 내 가슴에 내릴지도 몰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수는 없겠지만, 50킬로미터를 걸어도 안되면, 더 멀리 더 멀리 멀리 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 보면 되겠지.  그렇겠지... 



준비물: 꽁꽁 얼린 물 두병.  소금 조금 (혹시 소금기 빠져서 기절할까봐), 주먹밥 한덩이. 냉장고에 사과가 없어...  신발은 하이킹화와 하이킹샌들 두가지를 준비해서, 상황에 따라서 갈아신고. 


불리한 상황: (1) 써포트 스테이션이 없다는 점.  (2) 여섯바퀴 도는 일이라 중도 포기가 용이하다는 점. 그냥 지치면 때려치고 차에 자빠져 잘게 뻔하다.  게다가 난 의지박약이야.  걷는내내 '하느님 제가 이걸 해내게 도와 주세요. 못하면 하느님 책임입니다 뭐 이렇게 협박을 해야 하려나. 그래봤자 '맹랑한 년' 이러고 못들은척 하실걸.  진짜 행사때는 단방향 50킬로미터 걷기라서 중도포기 자체가 불가능하지...난 여섯바퀴니까 세바퀴 이후부터 계속 유혹에 시달릴거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그만하자. 음 그걸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유리한 상황: 쓰러져 죽을 일은 없다. 힘들면 중도 포기하기가 용이하므로. 백팩을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차에 물건 다 놓아두고 돌다가, 필요하면 한바퀴 마쳤을때 차에 가서 꺼내 먹고, 꺼내 마시고 하면 되니까. 


월요일 새벽에 거사를 치르려고 했는데, 어쩐지 물건너 간것 같다.  잠을 못잤다.  (고질적인 수면 장애.) 어제 저녁에 수영을 다녀왔어야 했어. 


***


일요일 아침 예배 마치고나서, 쇼핑 몰에 갔다. 찬삐가 돈 벌었다고, 내게 뭔가 선물을 사 주고 싶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검정 가죽 누비 지갑 아주 세련된 것이 보여서 둘이 만져보고 눈독을 들였다. 정말 내 맘에 꼭 드는 물건이었다.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왜, 왜, 왜! 왜 그냥 돌아서는 것인가요?


내게 선물을 사주고 싶어하는 아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내게 화를 내듯 물었다.  "지갑이 있어..." 


내가 현재 사용하는 지갑은 선물 받은 것이다. 선물 받은 것인데, 선물 받을때부터 '이거 중국 갔다가, 머라머라 짝퉁, 머라머라 똑같아서 비싼 돈 주고 사온건데, 짝퉁이라 미안해. 그냥 쓸래?'  뭐 이런 사연으로 내가 선물 받아서 몇 해 들고 다니는거다.  그거 몇년 썼으니 정품 새거 사준다고 찬삐가 성화를 하길래, 나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옷장 서랍에 똑같은거 새거 또 있어... 나중에 또 하나 선물 받았어.. 쏘리, 쏘리." 


찬삐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잡아먹을듯이 으르렁댔다. "엄마는 왜 불법 짝퉁을 쓰시나요?"  아니, 내가 일부러 산게 아니고, 누군가가 선의로 그걸 선물했는데, 그럼 그걸 면전에서 쏘아 붙이고 버려? 좋은 마음으로 선물했으니 귀하게 써야지... 내가 불법으로 산건 절대 아니야...  


찬삐는 내가 아주 못마땅하다.  난, 뭐 내가 뭘 들고 다니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건, 나로서는 짝퉁이건 찢어진 것이건, 지갑 안에 돈이나 많았으면 좋겠다. 하하하.  내 인생이, 나라는 인간 자체가 짝퉁이 아닐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나 자체가 뭐랄까 짝퉁 같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성 자체가 가짜 같은 것이다. 가짜.  그걸 극복할수 있다면. 내가 짝퉁이 아닌 순정의 무엇일수 있다면.  


찬삐야, 엄마 선물 살 돈 나줘. 내가 짝퉁이 아닌 진짜 일에 쓰게. 응? 지갑 사주지 말고, 지갑에 돈이나 많이 채워줘. 난 지갑보다 돈이 더 좋아. 진심이야. 



사실 내가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친구는 따로 있다. 뉴요커들 사이에 알려져 있는 앰지월리스, 검정 가죽 누비 메트로 토트백.  475달러.  매트로 가방을 좋아하는데 검정 가죽으로 나왔대서 작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침흘리며 쳐다보던 것이다.  참 예쁠거야... 갖고 싶은 것을 그냥 상상만하면서 쳐다보는 일도 재미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4. 23:30




어제, 7월 23일 산책 기록. 


어제, 15.6 마일 (25킬로미터) 걸었던 기록.  아침 6시에 버크 레이크를 걷기 시작.  대략 5마일 안팍 (걷는 노선에 따라 약간 다른 길이)의 호수 주변을 세바퀴를 돌았다.  다섯시간쯤 걸렸다.  두바퀴까지는 한바퀴에 90분 유지. 마지막 바퀴는 그냥 쉬엄쉬엄 걸었다. (나는 여름 휴가가 끝나기 전에 이 호수 주변을 여섯바퀴를 온종일 돌까 궁리하고 있다. 내 목표는 하루에 50 킬로미터 걷기. 여섯바퀴 돌면 된다.  --참 스투피드해 보이는 계획이지만, 내가 본래 스투비드 쪽으로 천재급이라, 실행에 옮길수도 있을것이다. 애매한 추측). 새벽 5시쯤 출발하면  오후 서너시 (열시간 잡으면) 될걸 아마. 운이 좋다면 말이지... 


동틀무렵 시작된 바보스러운 걷기. (늙은개가 걷듯...느릿느릿, 바보스럽게, 하염없이.)


데이타에 의하면, 나는 평균 하루에 만 사천보를 걷고, 거리로 따지면 하루 평균 10.5 킬로미터 (6.5 마일)를 걸었다.  걷기 기록이 안보이는 날은, 수영장에 가서 한시간정도 수영을 하거나, 온종일 소파에서 뒹굴거리거나.







뭐 혼자 걷는거니까, 내 주변 만물이 내게 말을 건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느라 바쁘다.  혼자 있다고 혼자는 아니다. (전형적인 내향적 성격파탄자들의 증세--인트로버트 증후군).  부엉이나 올빼미 같지, 응, 응?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고의 증강현실 캐랙터는 절대 아니라굽쇼. 




세바퀴 마칠 무렵, 벤치에 앉아 쉴 때 내 눈길을 끌었던 두 사람.  소녀는 4살쯤 되어 보이고, 곁에 있는 이는 머리가 허연 노인. 할아버지였을 듯.  소녀는 물에 들어가 풀을 뜯어 관찰하다가 지친듯 물에서 나왔고,  할아버지는 그녀의 젖은 발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앙증맞은 신발을 신겨주느라 몸을 굽히고.



어딘가 나를 사로잡는 광경.  어린 소녀와,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늘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게도 할아버지가 있었다구!  물론 나는 저렇게 예쁜 소녀가 아니었고, 할아버지도 저렇게 곰살맞지는 않았지만.  '그림'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에게도 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구!  (소녀 곁에 있던 이가 할아버지가 아니고 젊은 아빠였다면, 나는 소녀를 질투했을 것이다. 그건 내 사정이고.)




혼자 서너시간씩 걸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늘 기도를 한다.  너무 지치면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  누군가 걷고 있는 나를 관찰하면, 내가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중얼 속삭이듯 쭝얼거리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칠때까지 기도한다.  죄많은 인생.....


어제는, 문득, 내가 계획한 기도를 마칠때, 가슴이 평온해지면서 감사한 마음이 찾아 들었다.  하느님, 최소한, 최소한 말입니다. 내가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곳에 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돌릴수 없다 하여도 말입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이 암담한 기분이 지속된다해도 말이지요.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할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하느님, 제가 기도할수 있게 해 주셔서 참 갑사합니다.  기도조차 못했다면, 저는 지옥에 있었을겁니다.  그러니 감사합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16. 22:14


이것은 발을 푹 담그고 물장구를 쳐도 물이 밖으로 튈 염려가 없는 '발 전용 세숫대야'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마켓에서 보이길래 석달열흘 쳐다보며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샀던 기억이 있다. 두어해 전에.  그리고는 그 이후로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우리집에도 목욕시설 완비되어 있고, 체육관에 가면 건식, 습식 사우나에 월풀 사우나, 수영장, 뭐든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게 필요한가?  --- 예. 절대적으로 필요합죠.  저 위에 열거된 모든것을 다 이용해도 해 줄 수 없는 것을 이 플라스틱통이 해결해 줍니다요.


목욕탕이건 수영장이건 사우나건 어딜 가도, 내 발을, 오직 내 발만을 편히 쉬게 해 주는 시설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내 발은 늘 내 몸을 지탱하고 서 있어야 해.  물속에 누워 있을 때에도 내 발만 특별 대접을 받는것은 아니지.  그런데  이 통은 '내 발'을 '황제'처럼 대접할 수 있는 도구이다. 그리고 참 간편한 도구이기도 하다. 


한때 내 인생의 암흑기가 있었다. 아주 깜깜한 암흑기였다. 직장에 사표쓰고, 세상과 연을 끊고, 오십견 와서 어깨는 '병신'이 되었고, 어깨가 아파서 잠을 이룰수도 없었고, 우울증이 심했고, 뭐 아주 '죽어라죽어라죽어라'의 시간이 모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시간마저 멈춘듯했다). 늘 골치가 아팠고, 중이염이 떠나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그리고 겨울이었지... 겨울이라서 발이 시려운데, 그런 물리적인 시려움 말고, 그냥 뼛속까지 시려웠다.  난 사람들이 한여름에도 발이 시렵다고 말하는 그 발시려움을 몰랐었는데 그 때 그 시려움의 정체를 알았다.  따뜻한 이불속에 있어도 발이 시려운 그런 시려움.   그래서 이 플라스틱 통이 내 눈에 띄었을것이다. 


이 플라스틱통으로 그해 겨울을 보냈다. 세상과 단절된 암흑의 겨울. 그 통에 따끈한 물을 그득 담아가지고 발을 담그고,  고무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서 아랫배에 안고 그렇게 춥고 시린 시간을 보냈다. 다시 직장을 찾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내 암흑기는 끝났다. 이 발 목욕통도 그래서 잠시 내게서 떠나갔다.  하지만 요즘 나는 거의 매일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걷고 돌아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곧장 샤워를 하기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떠다놓고 발부터 씻는다.  선물받아 아끼던 향기로운 고급비누를 꺼내다가 발에 문질러주고, 씻어내고, 또 다시 비누칠을 해 주고, 씻어내고, 발을 주물러주고, 발목도 종아리도 주물러주고, 다시 향기로운 비누로 문질러주고.  온집안이 비누향기로 가득찰때까지 ...  그렇게 '발을 위한 의식'을 치른후에야 샤워를 하거나, 혹은 그대로 소파에 누워 책을 보거나 한다.  발이 향긋하고 편안해지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끈적거린다는 느낌도 날아가고...



서민이 황제처럼 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통하나면, 나는 황제가 부럽지 않다.  향긋한 비누와 뽀송한 타월이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다른 무수리들은 필요도 없다.  유튜브 열어서 유제하 노래나 메들리로 들으면, 악사도 필요없어지지. 정명훈따위 트럭으로 없어진대도 세상의 음악은 충분히 아름다울수 있다.  내 발이 따뜻한 물에 잠겨 있을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16. 21:19






나는 심심하면 킨들용 공짜책을 다운받아서 아무데나 읽곤 하는데, 그래서 한시간이면 후다닥 읽는 '걷기'관련책 한가지를 다운받아서 읽어보았다.  걷기를 하기로 작정하면 -- 나가서 걷거나 -- 쇼핑 가서도 걷기 편한 신발을 열심히 들여다보거나 -- 걷기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찾아보거나 -- 걷기로 30킬로 감량했다는 모델의 일화를 눈독들여 읽거나 -- 걷기 관련 철학책도 들여다보고 -- 걷기관련 건강 상식 책도 보고 -- 어디로 걸으러 갈 것인가 계획을 세워보고 -- 걸을때 목마르면 물을 마실 것인가 오이를 한개 씹어 먹을 것인가, 어느 쪽이 더 좋을까 혼자 고민해보고 -- 땀이 많이 흐를땐 맹물보다는 이온음료를 마셔야 하는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그냥 자기 자신을 그쪽으로 몰아간다.  걸을땐 걷고, 걷지 않을 땐 걷기에 관한 정보를 취합한다.  



그래서, 내가 새로 알게된 정보는:


보통 사람들이 걷는 속도가 시속 5 킬로미터 안팎. (내가 엊그제  25킬로미터 걸을때 평균 속도가 그랬지. 나는 평균인이다.)  노인들은 아무래도 속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경보선수들은 시속 8마일 (12.9 Km)  뭐, 초특급 선수일때 그렇단 얘기겠지, 아니면 세계기록이라거나... (맥빠짐).



내가 한 때, 약 4-5년전에 한창 걸을때는 날아다니듯 걸었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속도를 붙이면, 조깅하는 아저씨하고 비슷해서,  아저씨가 나하고 같은 속도로 조깅하면서 (나는 걷고, 그는 뛰고) -- "Man, I am jogging and you are walking and look at this! Are you flying?" 뭐 이런 농담도 들었었는데.  한때 듣던 신동소리.  지금은, 뭐, 평범하다.  허리 굵어지고 배나오고 흰머리 늘어나고, 신속정확하게 노화가 진행중이다. (어쩌라구...) 그 당시 기록을 보면 50 킬로미터를 10시간에 걸으면서 중간에 쉬는 지점에서 휴식한 것까지 다 계산이 되었는데 (관리자들이 체크인 한 시간과 체크 아웃한 시간을 기록해서, 쉬는 시간 제외한 걷기 시간만 가지고 통계를 냈었다), 10시간 평균 걷기 속도가 3.3 마일 (5.3 킬로미터)였다.  초기에는 날아갈듯 하다가 후반에 속도가 떨어지면서 평균치가 이러했다.  총 50킬로미터중에서 약 30킬로미터는 평균  시속 6킬로미터를 유지 했으리라.  한창때니까... 아, 청춘을 돌려다-아-오. 이 못난 내 처엉춘.



지금 내가 속도내서 걸으면 얼마나 나오려나? 궁금해져서, 5마일 (8킬로미터) 짜리 버크레이크 한바퀴를 한시간에 도는지 못 도는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작정하고 속도내서 파바박 걸어봤다. 뭐 그렇다고 숨차 쓰러질 지경으로 속도를 내는 바보는 아니고, 그냥 평소보다 좀더 의식적으로 좀더 빠르게 걸어봤는데, 60분에 딱 4마일을 찍는다. 한시간에 6.4 킬로미터.  흠... 물론 이보다 좀 더 속도를 낼수는 있었지만, 한계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직 나는 회복중이니까.  


오늘도 나는 --어딜 갈까 -- 장거리를 할까 -- 그냥 평소대로 6마일 코스를 갈까




걷기와 체중감량에 관한 언라인 자료를 보다가 재미있는 --혈액형별 성격 스케치를 보았는데,  여러가지 사항중에 이 부분이 재미있어서 긁어왔다. 


-가장 싸가지 없는 사람은?

1위-AB형:AB형은 싸가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재수도 없다.

2위-B형:약간 싸가지가 없다.

3위-A형:A형은 싸가지란걸 모른다.

4위-O형:O형은 일부러 싸가지 없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잇다.

             하지만 O형의 착한 본심과는 다르게 자신을 싸가지없게 만드려고 노력한다.





사진은, 드라마 매드멘에서 신경질적인 아내가 어느날 애 울린 옆집 아저씨한테 보복하기위해 (그건 핑계고,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옆집아저씨가 날리는 비둘기를 향해 총질을 해대는 아주 웃기고 통쾌한 장면이다.  이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담배를 피워대다가,결국은 폐암 선고를 받고 시들어가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줄담배를 입에서 놓지 않는다. 이 여자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 역시 매케한 연기속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것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사람은 그럴 때도 있다.  해로운줄 알면서도 오기로 그걸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여자가 담배를 입에 물고 허공에 총질을 해 댈때, 옆집 아저씨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때, 나는 꽤나 통쾌했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15. 10:50




어제 장거리를 걸었으니, 오늘은 가볍게 몸 풀기나 하자고 숲으로 갔다.  걷다보니 마냥 걷게 되었지만... 





다녀 오는길에 진흙을 잔뜩 짋어지고 걷고 있는 '자라'를 만났다.  머리와 꼬리를 다 내밀고 걸을때의 몸 길이는 챙 넓은 내 모자 폭보다 더 길어보였다.  아무튼, 자연 상태에서 내가 본 자라중에 최고 큰 것이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크리스티안처럼 무거운 짐 - 진흙을 등껍질에 짊어지고 가길래, 내가 막대기로 진흑을 긁어 내 주었다.  자라는 내가 신경이 쓰이는지 움직이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등껍데기 가로 길이가 내 한뼘을 훨씬 넘는 것이었고, 세로 길이는 두뼘이 넘는것처럼 보였다. 컸다.  머리도 엄청 크고, 발도 아주 크고.  아주 작은 공룡처럼 보였다. 








오늘은 거대한 자라도 보고, 나름 즐거운 하루다.  이렇게 써 놓고보니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그림일기 같다.  인생이 초등학교 3학년의 여름방학 그림일기처럼 단순하고, 즐거운 일로 가득찰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어린시절은 짧게 흘러가고, 자라는 느리게 걷는다. 


자라님,  내게 기쁨을 주려고 잠깐 나오신건가요? 오늘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자라 사진을 본 우리 오빠는 --" 중국에선 사람들이 저렇게 큰 자라를 들고 길에 서 있는데, 사 가라고. 미국은 좋은 나라구나..." 한다.  자라 요리를 테레비에서 본 적이 있다.  중국을 자주 드나든 우리 언니도 그 자라와 자라 파는 사람이 슬퍼 보였다고 회고한다.  역시 중국에서 사업을 했던 임작가께서는 '저걸 -왕팔-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준다.  왕팔이는 우리 왕눈이를 내가 별명으로 부르던 이름인데. 왕팔이, 우리 왕팔이.  자라는 내 친구다. 




* 저녁에 찬삐와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주차장에서 갑자기 찬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차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나는 순간 -- 우리 고양이들 중의 하나가 뭔가 사고가 나서,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 자빠져 있거나, 혹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상상을 했다.  가슴이 무너졌다.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사고당한채 살아서 고통받기보다는 차라리 이미 절명해 있기를... (난 참 이기적이다.)  내가 차를 세우고 찬삐가 달려간 쪽으로 가보니, 찬삐차 뒷창 유리가 박살이 나 있었다.  누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혹은 사고로, 찬삐차 유리를 망가뜨린 모양이다.  찬삐는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 나는 '안도'했다.  고양이가 아니었어. 고양이는 무사하다. 그냥 차 유리가 다친것 뿐.   하느님 고맙습니다. 고양이를 지켜주셔서.  차 유리 망가진 것이야 기분 나쁘지만 갈아 끼우면 되고, 고양이는 갈아 끼울수가 없으니까.  하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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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14. 11:28




아침 9시 10분에 출발하여 11시 40분 8.2 마일 지점 도착.   30분 휴식.

오후   12:10분에 출발하여 2:40분에 출발점에 도착 


총 걸은 시간은 5시간.  총 걸은 길이는 16..4마일 (= 25.7 Km / 34,000보). 대략 시간당 5킬로미터를 꾸준히 유지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침에 출발 했을때는 오히려 아침이라서 걸음이 좀 무거웠고,  반환 지점에서 돌아올 때는 약간 지치기는 했지만 오히려 몸이 풀려서 속도는 유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쳤지만 속도 유지에는 문제가 없는 정도의 피로.  (한창때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속도가 많이 떨어지긴 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걸은 것 중에서 최고 기록이 12마일이었는데, 오늘 작정하고 장거리를 다녀왔다.  잘 해 냈다. 덥지 않은 날을 골라 20마일 코스를 가봐야 할텐데. 






돌아오는 마지막 1마일 지점부터 비가 뿌렸다.  햇볕은 쨍쨍한데 비가 쏟아졌다.  울창한 나무 아래로 걸으니 나뭇잎이 비를 가려줘서 비는 맞지도 못했다.  그래도 아무튼 내 머리위 나무로 비가 쏟아졌고, 그러니까,  나무와, 햇살과, 비와, 그 모든것이 '천지 만물'이 마치도 장거리 워킹을 마쳐가는 나에게 환호를 보내는 듯한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숲에 비가 쏟아지는 사진들이다.  이건 분명히,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더위에 지친 내게 보내신 선물이다.  


땀을 많이 흘렸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반팔 셔츠와 얇은 운동 반바지만을 걸치고 나갔다.  가슴을 욱죄는 브레지어 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 여자들중에 가슴이 작은 여자들은 브레지어 없이 잘 돌아다닌다. 나라고 못 할게 없지. 숲에서 누가 내 가슴선을 보는것도 아니고.)  면셔츠가 젖고, 젖고 흠뻑 젖었다.  얼굴에서도 땀이 흘렀다.  나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올드 팝 Rain and Tears 에서는  비오는 날 울면 빗물처럼 보인다고 노래하는데, 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울고 싶으면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걸으면 된다. 땀이 쏟아질것이다.  흐르는 땀 때분에 눈물이 흐르건 말건 문제가 안된다.  땀이 온 몸에서 강물처럼 흘렀다.   땅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나무그늘이 만들어내는 서늘함을 함께 온몸으로 맞으며 내 몸이 강물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로 살 수 있다면, 나는 흐르는 강물이 되고 싶다.  바다로 바다로 향해서 매일 흐르는 강이 되고 싶다.  그리운 바다를 향해서 매일 달려갈 수 있게.  바다와 만나는 날, 나는 완벽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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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5. 23:39


한국에서 한학기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매일 하기로 작정한 것은 -- '걷기'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그리고 여러가지 여건상 한국에서 운동이 부족했다. 뭔가 몸 상태가 항상 찌부둥하고 개운치가 않았다.  '미세먼지'라는 뿌연 존재가 귀신처럼 창밖에서 늘 서성인다는 기묘한 느낌도 한 몫했다.  눈이 따끔거리거나 콧속이 입안이 매캐해지는 느낌. 집으로 돌아왔을때, 창밖이 온통 초록 나무와 잔디로 가득차고, 그걸 내다보며 소파에서 잠들때의 그 느낌이 어찌나 평화롭던지.  (아 여기가 지상낙원이구나... 이런  고마운 느낌.) 


그래서 나는 매일 숲으로, 호숫가로 걸으러 나간다. 최소 하루 7마일에서 10마일 이상. 전체적으로 매일 10킬로미터이상을 나는 숲속을 걷는다. 날씨가 쨍쨍할때도 숲이 우거져, 초록 물속을 유영하는듯한 기분으로 나는 걷는다. 


어제는 찬삐와 간단히 7마일쯤 걸었는데, 녀석이 물었다, "엄마는 그렇게 걸으시면 발목이나 발이 안아프세요? 저는 발목이 좀 부담이 돼요."  


"글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대답해놓고 보니, 온종일 걸어도 발목이나 무릎, 혹은 발에 아무런 통증이나 '문제'가 없는 내 발과 다리가 -- 걷기에 최적화된 '타고난' 구조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몸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상체는 하체에 비해서 가는편이다.  하체가 상체에 비해서 굵다고 해도 맞다.  좀더 살펴보면, 머리통이 큰 편이고 (그래서 얼굴도 크다), 목부터 엉덩이까지 상체에 해당되는 부분은 대체로 가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엉덩이 아래 -- 허벅지부터 발끝까지가 꽤 '발달되어 있다.'  다리뼈가 굵은 편이고, 발도 좁고 가느다란 아가씨발이 아니고, 딱 머슴놈 발같다.  다리는 균형이 잡혀 있지만 발목이나 종아리가 보통 여자들보다 굵다.  그래서 무릎 길이의 치마를 입을경우 발목과 종아리가 두드러져보인다.  이 경우 아예 미니스커트를 입어서 다리 길이가 길어보이게 하거나, 아예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를 입어서 굵은 다리를 살짝 가리는 것이 내 패션 전략이다.  혹은 폭이 좀 여유있는 치마를 입어서 다리를 다소 가늘게 보이게 하는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옷을 입을 때, 곱다랍게 가늘지 않은 내 종아리가 나로서는 스트레스이고, 치마를 고를땐 늘 A라인 무릎치마나 혹은 발목치마를 고를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의 패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내 다리의 구조가 -- 걷기 위해서 길을 나서는 순간 세계최고의 '황금다리'가 된다.  난 온종일 걸어도 더 걸을수 있고, 아무리 걸어도 발이나 다리에 부상을 입지 않는다.  물론 발바닥에 물집에 잡히기도 하는데, 그 경우에는 터뜨려서 물기를 빼내고 반창고를 붙이는 것만으로 처치가 끝난다.  좋은 신발만 잘 갖춰 신으면, 나는 일년 365일, 평생 걸어도 좋을것이다. 난 그냥 타고난 '걷는존재'일지 모른다. 


우리 언니는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길고 늘씬한 다리를 가졌다. 참 부럽다.  한때 부러웠다.  지금은 별로 부럽다는 생각을 안한다.  길고 늘씬한 다리의 언니는 나보다 운동도 잘하고 여전히 날씬하고 부지런하지만 -- 과연 내 다리만큼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지는 않다.  보통 사람처럼 쓰면 쓴 만큼 어딘가 아프고 문제가 생기고 그러아므로.  내 다리는 -- 그냥, 이건 하느님이 내게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이다.  '코끼리다리' 혹은 '무다리' 인것이 약간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코끼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다. 코끼리는 일견 느리게 걷는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실 코끼리가 미친듯이 달려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코끼리도 필요하면 달리겠지만 대개는 걷는다.  느리게 걷는것처럼 보이지만 꽤 빨리 걷기도 한다.  그리고 코끼리는 오래 오래 아주 멀리 멀리 갈 수 있다. 난 슬슬 내 코끼리 다리에 대해서 막 자랑을 하고 싶어진다. 하하하. 


다시 한국으로 갈 시간이 올 것이다. 버지니아의 아름다운 자연, 내가 온종일 걸을수 있는 숲을 두고 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내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한것이 -- '자연'이었구나, 실감하게 된다.)  애인과 작별하기 싫은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나는 매일 숲으로 간다. 나의 코끼리다리는 불평없이 나를 숲의 심연으로 이끈다.  (아, 한국에 있는 동안 3킬로 정도 체중 증가.  이걸 다시 빼고 가야 한다는 것이 내가 내게 부과한 '숙제'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먹고 퍼 잔것이 체중 증가에 주효했다.  갱년기로 다가가는 나의 나이도 한몫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 가면, 아, 여건상 많이, 오래 걷기가 어렵다. 난 도심에서 걸으면  시끄럽고 막 스트레스 올라간다. 공기도 안좋고. 해결책을 찾아야 해. 아무튼 한국 가기 전에 체중을 잘 조절해야 한다.  몸풀기가 끝났으니, 이제 왕복 15 마일 (24킬로) 코스를 일주일간  해 보고, 그게 제대로 되면 왕복 20마일 코스 (32 킬로)로 도전해보고.  그러면 내 몸의 시계가 청춘으로 돌아가겠지. 걷는 내내 나는 기도하고 사색하고, 노래 할 것이다.  


걷기를 마치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체육관에 들러서 수영을 하고 몸을 씻고 오는것도 -- 지상낙원의 삶의 일부다.  하느님은 나를 정말 예뻐하신다.  이런 선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허락하시다니. 이 죄많은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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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5. 03:29





뭔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듯한 잔뜩 흐리고 축축한 날씨. 이따금 나무위로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더니,   결국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비가 추적추적 추적추적.   내 집에서 나를 기다리던 내 파랑 자동차.  아, 너 참 예쁘구나. 


비가 그치면, 밤이 오면, 사람들은 폭죽을 터뜨리겠지.  작년에는 바다건너 군함에서 터뜨려대던 불꽃놀이를 보았지.  종이를 접듯이 시간을 접으면 그 시간으로 포개질 수 있을까?  꼭 그럴것은 없다.  사람에게는 '뇌'가 있고, 기억장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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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4. 03:59


내일은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지난 금요일부터 내일까지 4일간의 연휴.  멀리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근처 공원을 찾는다.  나도 작년에는 메릴랜드 오션시티와  버지니아비치에 갔었다.  버지니아 비치에서 독립기념절 불꽃놀이를 보았다.  불꽃놀이 직후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빗속을 깔깔대고 달렸었다.  


가족단위로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타거나.  모두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표정.  아침에 비가 좀 뿌렸고 날이 흐려서 야외에서 놀기에 아주 좋은 날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Black-eyed Susan (검은 눈동자의 수잔).  메릴랜드주의 꽃이 이 꽃이다.  미국에서는 들꽃으로 아무데서나 무리지어 피어 있는것을 볼 수 있다. 




Henry David Thoreau 의 월든 호수를 연상시키는. 






한바퀴 돌면 아이폰 미터기로 오마일이 약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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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 01:38




시차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제 몸을 고되게 놀렸건만, 새벽 네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깨었다.  시차 문제가 아니라, 그냥 평소의 나의 잠의 양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할머니처럼 새벽 네시 혹은 그 전에 잠에서 깰때가 많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 한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찍 잠에서 깬다는 것. )


뭘할까? 아주 잠시 생각해보다가, 뭔가 꾸물대다가, 문밖 고양이 타워에서 나를 반기는 고양이와 인사를 나누고 집 뒤 숲으로 갔다.  새벽 네시 반.  하늘엔 내 눈썹같이 가느다란 그믐달이 걸려있고, 사방은 어두웠다.  밤에 숲길을 걸을때는, '길'이 희게 빛난다.  밤길 걷는 사람만 알것이다. 


공원 입구에서 숲으로 걸어들어갈때, 내 심장은 무서운 '귀신영화'를 볼 때처럼 두렵다고 외치며 쿵쾅댔다.   사방에 불빛도 인기척도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숲길을 혼자 걸어 들어가는 일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어둠에 대한 그냥 원초적인 두려움, 아마 그런것일게다.  내가 자주 다녀서 눈감고도 다닐수 있다고 믿었던 아주 아주 익숙한 길.  그 익숙한 길이 어둠속에선 낯설다.  아니 길 자체가 잘 안보인다.  반딧불이 전등처럼 반짝일뿐이다.  반딧불이 내 발길을 인도하듯 앞서 날며 깜빡댔고, 새들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고요하였으며, 나뭇가지만 이따금 수런거리를 소리를 냈다.  발끝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혼자 걸을 때 -- 나 혼자여서 무서웠을때 내가 이유없는 이 공포를 극복한 방법은, 참 너무나도 간단하다.   나의 기도문을 소리내어 외는 것이다.  어둠과 정적속에 나 혼자 걸을때, 속삭이는 내 기도문은 소리질러 외쳐대는 함성처럼 그렇게 크게 들렸다.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이 잘  안보이고,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잘 모르겠을때,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면, 깜깜한 밤길을 혼자서 걸으며 기도를 하면 된다. 그러면 그가 나와 함께 계시다는걸 발견하기가 용이해진다.  깜깜한 어둠속에 오직 그와 나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하하.   사람은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숲으로 가야 할거다 아마.  


위의 달 사진은 다섯시에 찍은 것이다.  주위가 밝아지고, 더이상 어둠의 공포가 나를 괴롭히지 않을 무렵.  어둠의 공포가 사라지는 만큼 내 손을 잡아주시던 하느님의 온기도 희미해진다. 






위의 달은 다섯시 반.



여섯시 자귀화.



일곱시 산딸기.  목마르고 배고픈 내 눈에 가들 들어온 산딸기의 축복.  이것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해 보고 싶으나 여태 해보지 못한 것들중에 한가지는 밤새워서 숲길을 걷는 것이다.  나는 숲속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그 달이 지고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을 지켜보며 내쳐 걸어보고 싶다는 환상을 품고 있으나 여태 한번도 실천을 한 적은 없다.  왜 못했나?  혼자 그러는게 어쩐지 겁이나서.  그걸 같이 할 사람을 아직 못찾아서.  올 여름에 찬홍이를 꼬셔서 그걸 딱 한번 해보면 어떨까? 


장담을 못하겠지만, 나는 또다시 새벽 네시도 되기 전에 잠에서 깬다면 -- 새벽 어두운 숲길을 걸으러 나갈것이다.  어둠속에선 하느님을 더 생생하게 만날수 있다.  그러니까, 어둠이나 고통, 고난을 너무 겁내면 안된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에 나온 얘긴데,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바 없으나 인상적이라서, 아니 그걸 왜 이 페이지에 적는지.  아마도 새 페이지 열기가 귀챦아서, 그러고 싶지 않아서.  단지 기억하기 위해.


이 호박벌은 몸집에 비해서 날개가 아주 작다고 한다.  몸과 날개가 비례가 대충 맞아야 날 수 있는건데, 날개 크기를 보면 도무지 이게 정말 날개인지 악세사리인지 알수 없게 작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그 몸집에 그 날개면 '날기가 어렵다'고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견상 -- "이봐 호박벌, 너는 날수가 없는 존재야. 넌 그날개를 갖고 도저히 날수가 없어요"라고 충고를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호박벌한테 '넌 그 날개 갖고 도저히 못날아. 인생 포기해라' 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호박벌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의 딱한 현실을 모르기때문에, 잘도 날아다니고 있다.  


호박벌은 어쩌면 인간에게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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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