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21. 1. 27. 04:35

 

미국 동부 현지시각 1월 12일 (화) 오전 10:35에 아틀란타를 출발한 델타 항공기는 대략 15시간을 허공을 날아 한국 시각 1월 13일 오후 3:30분경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델타

 

내가 탄 비행기는 델타 아틀란타-인천 직항이었다. 승객 인원은 기내의 모든 좌석의 사람들이 발뻗고 누워도 될 정도로 한산했다.  비행기에는 3가지 등급의 좌석이 있었는데 (1) 누워 갈수 있는  (2) 넓직하여 조금 편히 앉을수 있는 (3) 그냥 나같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가는 이런 등급의 좌석들이 있었는데 결과적은 (2)번 비행기표 산 사람이 억울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1) 번 선수들 누워가고 (3) 번 선수들이 3인분 좌석을 1인이 차지하여 누워가는데 (2) 번 선수들은 2인이 나란히 앉는 배치에다가 2인 사이의 담이 고정이 되어있어 절대 옆자리 담 트고 누울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하하. (내가 왜 웃지?)

한달 전 미국에 갈 때보다 돌아오는 길의 좌석이 더 한산해보였다.  코로나의 심각성이 점점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입국절차

 

입국하기 위해서 사전에 스튜어디스가 나눠주는 양식이 세가지 정도 있었다. 두가지는 코비드 관련, 하나는 세관신고서. 비행기에서 미리 작성하면 편리하다.  그런데 코비드 관련 입국 양식 쓸때 - 한국 주소를 쓰는 칸이 있는데 - 이때 주민등록지에 적힌 주소가 아니라 -- 내가 자가격리를 어디서 하는지 그 주소를 써야 한다.  나는 그냥 생각없이, 살고 있는 사택 주소를 썼다가, "아 자가격리는 별도로 다른 곳에서 하는데요" 했더니 그 주소를 적으라고 잔소리를 해서 그렇게 했다. 

 

  1.  쓰라는 서류 몇장 쓰고
  2. 기다리는 동안 체온 검사를 받는데 - 여기서 체온에 이상이 보이면 '증상자' 캠프로 이동한다. 줄 서 있다보면 별도 공간이 보인다. 그리 가면 상황이 복잡해질것이다. 
  3. 자가격리용 앱을 깔아서 - 공무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행을 해야하고, 전화번호가 정말 본인 것인지 그자리에서 확인 전화까지 한다. 
  4. 모두 마친후에 - 다시한번 자가격리 관련 간단한 서류에 뭐 쓰고 싸인해야 한다. 

자 이 모든 과정이 지나야 비로소 평소와 같은 입국심사대로 가서 여권 보여주고 간단히 통과한다. 

 

짐을 찾고 이제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 여기도 경계가 삼엄하다.  그냥 맘대로 나가는것이 아니다. 공무원이 삼엄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어디로 갈건가?' '어떻게 갈건가?'  '가족이 와서 내차로 갈거다'  '차는 어디있나?' '가족이 어디있나?' 꼬치꼬치 묻는다.  가족이 차로 데려간다고 하면 - 그 가족과 삼자대면을 해야 나를 내보내 준다.  가족이 안오고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 그 사람을 어디론가 안전한 차에 탈때까지 에스코트 할걸 아마...  거의 '중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사람'을 관리하듯 하더라.  뭐 불쾌하지는 않았고, 코로나의 위중성을 실감할 뿐이다.  그 공무원은 나와 내 남편과 이렇게 삼자대면을 한 후에 나를 풀어주었다.

 

 

코로나 검사

 

안내지에는 입국후 3일 이내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나와 있었지만 - 나도 한 성깔 하는 사람이다. 그게 사흘 기다릴 일인가?  공항에서 바로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서 '입국자인데요. 지금 인천 공항에 도착했어요. 지금 가려고 하는데 코로나 검사 받으려고요'  하니 직원이 시원시원하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 예약을 해 준다. 

 

질문 내용은, 이름, 주민등록 번호, 직장, 어디서왔나, 자가격리 주소지, 전화번호, 가족 전화번호 (비상연락망) 이런것을 꼬치꼬치 물은 후에 오후 7시까지 오면 오늘 중 아무때나 검사가 가능하다고 안내를 해 준다.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차를 몰아 보건소에 가니, 보건소 바깥 마당에 담당 요원들이 앉아 있다가 곧바로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검사를 해준다. 추운데 이분들이 한데서 수고를 하시는구나. 진행은 신속했고, 검사는 여름에 했을때보다 덜 고통스러웠다. 그동안 검사 기술이 더 좋아진 것인지.  그것이 오후 다섯시 쯤.  

 

 

자고 일어나니 익일 새벽 3시 45분에 보건소에서 텍스트가 날아왔다. 검사결과 음성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다. 

 

시작일로부터 시작하여 15일간 (만 14일간) 이제 문밖 출입을 못하고 가만히 실내에서 견뎌야 한다.  지난번에도 잘 해 냈으니, 이번에도 성실하게 잘 해내면 될 것이다.  올 여름에도 이걸 또 해야 하는걸까? 그때는 상황이 좀 달라지려나?  ....음...흘러가는대로 흘러가는 거다. 

 

 

 

 

 

 

 

 

 

도착 90분 전 중국 상공을 지날 때

창밖 중국의 산하.

남북 통일이 된다면 북한 하늘을 거쳐서 오겠지...

 

 

텅 빈 아틀란타 공항.  저 스타벅스는 작년 여름에도 닫혀 있었다. 그러니까 1년 가까이 저 모양일것이다. 미국의 국제공항은 한국의 인천공항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인천 공항은 그래도 면세점들이 열려있는데 - 미국의 공항들은 그냥 딱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도시의 모양이다.  여름에는 미국 공항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내가 출발하는 날에도 버지니아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눈길을 달려 공항으로 갔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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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1. 1. 2. 10:57

 

냉소와 해학을 곁들인 표현인지 몰라도  --- (이자들이 뭐 하는 자들인지 앞뒤 배경을 모르니 따지고 싶지도 않다) 서모씨가 '육십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을 하면 - 혹시 그의 추종자들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지 모르니  아마도 해학이었으리라 추측하며 --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60넘어 뇌가 썩는다면 60이상 인구들은 죄다 신경외과에 장기입원해야 하는게 아닙니까?  반문하고 싶어진다.

 

농담이라도 이런 농담은 안하는것이 마땅하다.  

 

Netflix 에 있길래 보았다. 100 Humans: Life's quesitons, answered.  백명의 인간: 인생의 의문점에 답을 하다 뭐 이런 타이틀의 시리즈물인데 몇꼭지 보다가 한가지는 나로서도 놀라운 실험/발견이라서 화면을 캡쳐해 두었다. 

 

이 실험에서는 백명의 실험 참가자들 중에서 동일한 숫자의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60세이상세대 이렇게 다섯개 팀으로 나누어 각종 게임을 하도록 했다.  기억력을 알아보기 위한 기억 게임, 체력게임, 문제풀이 게임, 소통게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종합하여 팀 전원이 협력해야 해결되는 방탈출 게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여러가지 게임을 시키고 등수를 매겨봤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20대가 건강하고 영리하게 잘 해 낼것을 짐작할 수 있고, 60세 이상이 가장 임무 수행에서 뒤처질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가장 선두그룹은 예상대로 20대였다. 20대 팔팔한 청춘들이 주어진 임무 수행에서 월등했다.  그리고 그 다음이 60대 이상 노인 그룹이었다.  아래의 그래프가 종합 평가 점수를 그래프로 표시해 준다. 

등수별로 보자면 1등 20대 -- 2등  60세이상 노인 -- 3등  삼십대  -- 4등 사십대 --5등 오십대.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인가?30대가 60대 노인보다도 못하다는 말인가?  이런 현상에 대해서 Daniel Pink (When 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다. 그의 When 은 나도 한번 읽어보고 맘에 들어서 자식들에게도 읽어보라고 책을 사 준적이 있다) 의 해석은 이러하다.  20대가 체력적으로나 문제풀이 능력에서 뛰어나고 가장 활발한 시기이다.  30대 이후에 40대 50대에서 이들의 기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 이들에게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의 각 방면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고 한군데 집중하기가 어려워 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인생에서 30대 부터 50대까지는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한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그만큼 오히려 문제해결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미국인 기준) 60대 이후에는 직장에서 은퇴하고 한가로운 삶의 체제가 되면서 골치 아픈 일도 별로 없고, 잠도 충분히 잘 수 있고, 시간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신체 기능은 떨어질지 몰라도 인지 기능이나 문제풀이 능력 소통력등은 이전보다 더 향상된다고 한다.  나이 먹는것이 그다지 비참한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독설섞인 유머라고 하더라도, 나이 육십에 뇌가 썩는다는 말이 대학교수 입에서 막 튀어나오면 - 그 학생들은 그에게서 뭘 배울것인가?  자극적인 말 막 던지고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의사전달을 할 수 있다.  당신의 뇌는 썩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슬픈일이다. 얼른 치료받기를 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말을 좀 가려서 하고, 해학이나 유머에도 절도가 있으면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도 의사전달은 충분히 된다.  아무리 기생충같이 사는 인생이라도...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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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12. 27. 12:24

'쩌는' 미국의 위용.

동네 식품점에 나갔더니 벽에 Free Flu Shot!  광고가 크게 붙어있다.  "여기는 독감 백신이 무료야? 진짜로?" 내가 놀라 물으니 함께 간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한다. 

 

아이구 맙소사. 나는 시월말에 독감백신 맞으러 동네 의원에 갔더니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 알아보세요' 하길래 몇군데 연락해봤더니 백신이 없다고 해서 독감백신을 돈주고 맞으려해도 실패했는데, 미국에서는 공짜로 백신 맞으라고 광고까지 하고 있었군. 

 

 

코로나백신 확보에서 '열등생'이 된 이나라는 이미 독감백신 때부터 예고편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군. 도대체 잘하는게 뭐지 이정부는? 강남에 집 가진사람 부동산 값 올려주는거?  (잘하는게 있긴 하구나... 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적인 면이 있다. (1) 구제가 안되는 악질 <----> (2) 위대한 미국의 영도자.  이 둘중에 하나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요즘 미국사람들이 맞고 있는 코로나 예방 백신을 '트럼프 백신'이라고 부른다.  뭐 그자가 잘했던 못했건 내가 따질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자는 최소한 백신은 확보해가면서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음.  퇴임앞두고도 백신가지고 공치사 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기는 꼴사납지만...꼴사나운 그도 할 일은 하고 있더라. (한숨) .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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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12. 22. 12:55

 

미국집에 온지 열흘이 넘었다. 착실하게 콕박혀 지내다가 생필품을 사기위해 근처 월마트에 다녀왔다. 

 

월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서려는데 출구 앞의 자선냄비 앞에서 풍채좋은 털보 사나이가 요란하게 종을 울려댔다. 시절이 크레딧카드나 스마트페이로 가고 있으니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도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이럴때는 공연히 미안해진다.  이때 차의 캐비닛에 비상금을 숨겨 놓았던 것이 기억나서 50여미터 떨어진 내 차로 달려가서, 돈을 꺼내가지고 전속력으로 그 자선냄비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돈을 넣고 다시 차로 향하는 길. 털보 사나이는 종을 흔들어대며 내게 "Thank you very much! God bless you!" 를 외쳤고, 나도 마스크를 낀채로 "God bless you!!!"하고 기쁘게 외쳤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발견했다. 내가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미처 못보고 지나쳤을 또다른 자선냄비가 길의 중간쯤에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월마트에 입구가 두군데 있었는데 내 차와 가까운 입구에도 자선냄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이 가까운 자선냄비를 못 보고 지나쳐 훨씬 먼곳까지 달려가야 했을까?  그 자선냄비 앞에도 구세군이 있었는데, 그는 냄비와 일미터쯤 떨어진 의자에 구부리고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앞의 덩치 큰 털보 사나이에 비해서 젊고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이 젊은 남자는 스마트폰을 보다가 이따금 건성으로 종을 흔들었다.  아, 내가 그를 발견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저녁, 해도 지고 주위는 어둡고 사람도 별로 없는 코로나 난국의 월마트 앞.  두개의 자선 냄비가 서 있었는데 한 냄비를 담당한 남자는 연신 종을 울려대고 있었고, 다른 한 남자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의 파란 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듯 가까운 냄비를 못본채 지나쳐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먼 곳의 자선냄비까지 달려갔다. 

 

***

요즘 나는 성경통독을 하고 있다. 하루에 300 쪽씩 성경을 속독으로 읽어나가면 6일이면 구약, 신약을 마칠 수 있다. 오늘이 5일째이다. 구약을 마치고 신약으로 들어서서 사복음서를 마치는 것이 오늘이 숙제이다.  내일 끝낼수 있을까? 잘 모른다. 끝까지 가 봐야 안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는 끝낼수 있기를...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명의 일꾼의 일화를 떠올린다.  세명의 일꾼에게 주인이 먼길을 가기전에 동일한 액수의 돈을 주고 잘 경영하라 한다. 한사람은 그것을 곱절로 불려놓는다. 또 한사람도 제법 불려 놓는다. 마지막 한 사람은 받은 액수를 그대로 간직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일꾼의 문제를 지적하셨다. 

***

자선냄비를 지키던 두 사나이를 생각한다.  월마트에 두개의 입구가 있는데 한쪽 입구를 지키는 사람은 연신 종을 흔들어 자선냄비가 있다는 것을 알렸고, 다른 쪽 사람은 한눈을 팔며 자리를 지켰다.  나는 한눈파는 그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종을 흔들어대는 사나이에게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 생각했다. 나는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사람이 오건 안오건 상관없이 오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종을 흔들어대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스마트폰에 한눈을 팔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가?   나는 '한눈팔이'임이 자명하다. 

 

 

우리 하느님께서 내게 '한눈 팔지 말고 깨어서 종을 흔들라'고 내게 가르침을 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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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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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11. 20. 09:45

조태수 선생의 서예 작품을 웹에서 빌려옴. 

 

이따금 졸업생들이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 지도를 해 줄 때가 있다.  모 교수가 학생을 한 명 부탁한다고 보냈다.  대학원 진학 지도를 할 때는 일단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학업계획서 (Statement of Purpose)' 를 써 와야 나를 만날 수 있다.  본인이 모두 다 알아서 한 후에 내 도움을 받으라는 취지이다.  하룻강아지-애도 아니고 내가 제 에미 애비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서 밥상 차려주면 그 자식은 대학공부 뭣하러 했는가.  본인이 다 알아서 하고 주위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한 학생이 학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나를 만나기를 청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 짐작은 했지만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하는 과목중에 대학원 진학준비 과목은 없었으니까 서툰것은 당연하다.  나는 세상사람들이 모두 선호한다는 미국의 모 대학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누군가 쓴 박사학위 과정 SOP 샘플과 그 학생이 쓴 샘플을 나란히 놓고 첫 문장만 비교를 해 보라고 했다. 

 

최고대학의 박사과정을 신청한 사람의 첫 문장에는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 지원하며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가 짧고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우리 학생의 첫문장은 -- 말하자면 (그냥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 저는 전남 함안의 중농집안의 둘째 딸/아들로 태어나 모 대학을 마치는 동안 자상하신 부모님의 보살핌과 교수님들 품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던중 어느날 홀연히 공부를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비교를 시킨후 학생에게 물었다. 

 

"너, 내가 너와 대화를 하는데 두가지 방법이 있어.  첫번째 방법은 - 나는 영어로 너와 대화를 하면서 미국인들이 피드백 주듯이 너에게 피드백을 줄거야. 두번째 방법은 - 나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면서 한국인들이 피드백 주듯이 할거야. 너는 둘중에 무엇을 원하니?"

 

학생: "....모르겠는데요....그게 어떻게 다른데요?" (어리둥절)

 

네가 미국식을 선택하면 - 나는 굉장히 부드럽고 친절한 표현을 쓸 것이고, 너는 아주 편안할거야. 위로와 용기를 받겠지. 그리고 너는 확신에 찰거야. 나와의 시간이 행복할거야.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되겠지.  그리고 너의 지원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하기가 어렵겠지. 

 

네가 한국식을 선택하면 - 너는 갑자기 가슴에 막 화살이 날아와서 팍팍 박히는 듯한 고통을 느낄거야. 급작스러운 우울 모우드에 들어가거나 다시는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 질지도 모르지. 너는 아마 두번다시 나를 보고 싶지 않아질거야.  그래도 너는 뭔가 손에 쥐는것이 있게 될거야.  지원 결과에 대해서 너 스스로 예측이 가능해 질거야.

 

학생: "...한국식으로 살-살- 해주시면 안될까요? (빙긋)"

 

"글쎄...한국식으로 달콤하게 너를 기쁘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단다.  영어식으로 할때는 나는 미국인의 탈을 쓰고 달달한 사람이 되어 네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말거나 너를 위해 박수쳐주고 응원해주고 하겠지. 너는 내가 뭐라고 말한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거고, 나는 알바 아니라고 모든것을 하늘에 맡기고 말겠지.  나이쓰하고 쿨하게 말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바로 칼을 들고 환부를 쿡쿡 찔러서 잘나내고 썰어내고, 파내고, 아주 난장판이 될거야.  무척 아프지.  한국식으로 살-살-은 없어. 나하고는 그게 안돼. 왜냐하면 나는 살-살 하는 재주가 없거든."

 

 

 

그래서 결국 그와 나는 한국식으로 막 '칼바람'이 부는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한 40분쯤 면담을 마치고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떠났다.  나는 바쁘니까 그 일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한달여 만에 그에게서 다시 면담 요청이 왔다. 

 

SOP를 다 뜯어고쳐서 다시 쓰고 영어과 최고참 교수 (미국인)에게 부탁하여 그의 리뷰도 한번 거쳤다고 이실직고 했다. 마침 나와도 잘 통하는 교수라서 "오! 그 교수가 한번 리뷰한 글이라면 - 내 수고가 덜어지겠구나! 땡큐!" 외쳤다.  이제 나를 만날 준비가 된것 같아 면담을 신청한다는거다. 

 

줌으로 만났는데, 그의 일성은 이러했다:

 

"아이고, 지난번에 하도 두둘겨 맞아서 제가 많은 반성을 하고요, 다 뜯어 고쳤고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요즘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 공부하러 다니고 있어요. 필기시험은 통과했고요... 그런데 교수님 한국에서 받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이 미국에서도 통할까요?"

 

야, 야, 이눔아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만국 공용어일진대 (내가 프로그래밍을 안배웠어도 그정도는 안다), 네가 그걸 다룰수 있기만 하면 되는거지 자격증이 한국산인지 미국산인지가 뭐가 중요해!!! 너는 배운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미국인 고참 교수가 리뷰해주면 SOP가 완벽할줄 알았겠지? 천만에 말씀이다. 미국인 교수들은 그냥 쓰르륵 읽어보고 문맥이 이상한것만 슬쩍 코멘트를 할 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말이 되건 안되건 저자의 고유성을 최대한 지켜주려한다.  한국인 (나의) 스타일은 - 문제점들을 샅샅이 지적하여 학생이 말끔한 한채의 집을 짓도록 만들어낸다. 

 

내가 지금 어느 졸업을 앞둔 학생의 이야기를 늘어놓는/기록에 남기는 이유는 녀석이 나를 흐뭇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따끔한 지적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 정말로 내가 지적질을 한대로 처음부터 다시 '집을 지었다.'  게다가 기왕에 대학원 준비에 잔소리를 하는김에 "다가오는 시대는, 아니 이미 다가온 시대는 빅데이터의 시대이고 알로리듬의 시대라서 네가 어떤 전공을 하건간에 기본적인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코딩도 좀 배우고 너 스스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능력이 되면 대학원에서 너는 프로그램 전체를 회를 쳐서 날름날름 먹을수도 있게 되는거다.  입학허가가 문제가 아니라 너를 모셔가러 들거다"  뭐 이런 노랫가락을 읊었는데 이 친구가 그 문제를 심각하게 듣고 - 행동으로 옮기고 새로운 도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참, 이렇게 내 말을 곧이 곧대로 알아듣고/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내 자식도 내 말을 안듣는 이 판국에.)

 

그 친구는 몇달 후에 입학신청서를 제출하기 직전에 다시한번 나의 리뷰를 받기로 하고, 그 사이에 몇가지 자격증을 지원서에 추가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줌에서 떠났다.  미리미리 알아서 준비를 하고,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여 리뷰를 받고, 장차 도움이 될 기술을 미리 익혀놓는 성미이니 그 학생은 전투적으로 자기 삶을 잘 개척해 나갈 것이다.  흐뭇하다. 

 

추신: 그런데, 사실 막 칼춤을 추는 나도, 남의 비평이 무섭다. 나도 아주 나약하고 겁많고 소심한 사람이라 남의 평가를 회피한다. 그러니 나의 무지막지한 평가를 소나기 맞듯 다 맞아내는 그 선수가 대단한 선수이긴 하다. 대단한 젊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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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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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11. 12. 12:30

 

하느님, 수요일 아침에는 제가 기도회를 열고 친구들을 맞이해야 하지만, 어제는 기도회를 열어 놓은채 저는 새벽차를 타고 천안으로 갔습니다.  한국 해비타트가 천안의 시골 마을에 짓고 있는 집 공사장에 가서 돕기로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죄송하게도 수요 기도회에는 두명이 모여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느님, 늘 있던 자리에 제가 안보여서 서운하셨겠지만, 그 시간에 저는 창문 공사를 했습니다. 

 

하느님 창문은 아주 아주 무거웠고, 이 창문을 3층까지 둘이 서로 마주보며 들고 올라갈때는 손에서 힘이 빠져서 자꾸만 무거운 창틀이 제 손에서 흘러내리고, 계단 한개를 올때마다 허벅지까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그래도 혹시라고 내가 놓쳐서 창문이 깨질까봐 저는 그것을 몹시 걱정했습니다.  하느님, 저희 일행은 150여개의 창문을 새로 짓는 집에 끼웠습니다. 그 새 집들은 생계가 어려워 '집'다운 집에 살아보지 못하던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 집입니다. 

 

저희들은 그 집의 창문을 달았습니다. 이 집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때, 장밋빛 동이 틀때, 혹은 비오는 풍경을, 눈이 내리는날, 아름다운 황혼을 -- 저희가 옮겨다 심은 그 창문으로 내다보겠지요.  하느님 저희가 창문을 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하루치 - 한줌의 햇살같은 노동이, 뭐 그리 대단할게 있을까마는 저의 노동보다 저는 많은 선물을 받은것 같습니다. 

 

 

 

 

멀미가 날것 같은 - 노동의 피로감도 깊고 달콤한 잠으로 거뜬히 떨쳐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맞은 새날, 하느님 저는 아직 쓸만한거군요. 한참 젊은 남자 동료들과, 한참 덩치 큰 외국인 동료들과  똑같이 일을해도 하느님 제가 체력적으로 거뜬 한것은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저를 호위하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겠지요. 하느님 고맙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이끄시는대로 겁없이 나아가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가라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겠습니다. 하느님, 저를 하느님의 계획대로 쓰시다가 어제의 햇살처럼 맑고 따뜻한 날 저를 데려가소서.  하느님 참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www.habit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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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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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11. 10. 15:42

Hope by George Frederic Watts

 

 

어제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두시간 수업을 열정적으로 하고 나면 맥이 풀리고 무척 피로하다), 모르는 어떤 학생이 들이닥쳤다.  아, 며칠전에 학교의 상담선생님이 복도에서 스칠때 누군가를 보내겠다고 했었는데 그 학생이었다. 상담사 과정을 모두 마친, 그래서 국제 대학 기준에 부합하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 선생님이 내게 학생을 보낼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판단하기에 그 학생에게는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지 가늠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잘생기고 틀도 좋고, 유명브랜드의 옷으로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치장하고, 그리고 가방에서 꺼내는 컴퓨터며 갖고 다니는 도구들이 모두 명품들이었다. 내가 갖고싶어하던 태블릿도 꺼내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당연히 자신이 향유할수 있는 것들이란 자세로 그렇게 모든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졌건만.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통의 강을 혼자서 허우적대며 건너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 이제 열아홉 학생이 원형탈모로 머리 피부가 듬성듬성 비쳐졌다.  그는 근심이 많았다.  앞으로 장차 일어날 일에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근심을 했다. 나는 세상에 저렇게 근심이 많은 사람이 있을수 있을까? 경이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이 걱정쟁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제 뇌가 멍청해서 그런겁니다. 제 뇌가 멍청해요."

 

90분간 이 학생과 시간을 보내고 내가 그에게 내 준 숙제는 이것이다: "혹시 말야, 네가 또 나를 찾아올 마음이 들거든 다시 와도 좋아.  그런데 내게 다시 오게 된다면, 너에 대하여 열가지 '장점/좋은점/매력적인점/자랑하고 싶은점'  그러니까 네가 너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 점 열가지를 적어가지고 와서 내게 말을 해줘.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그 학생을 보내고 난 후, 나 역시 심히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열시간 가까이 죽은듯이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하고 우울한 기분. 그 친구에게 나의 기운을 다 빼앗긴것 같은 기묘한 공허감.  나는 속으로 혼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향해 욕을 해 댔다 --"어떤 배 쳐부른 집안이 애새끼를 쥐잡듯 잡아가지고 멀쩡한 애를 아주 못쓰게 만들어 놨구나."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은 왜 그 애를 저한테 보내신겁니까. 저는 능력이 없는데요. 그 녀석의 우울증이 저한테 전염된것 같아서 저도 기운이 없고 기분이 안좋습니다.  하느님, 아픈 애를 저한테 보내셨으면 저한테 아픈애를 돌 볼 기운도 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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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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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3. 13. 17:24

 

 

I got tired of all those individual repeated questions and answers through email because they were asking me the same question individually and I had to answer the same repeatedly. (They do not use the discussion board even though I opened it and invited students to use it) I set up a class Kakao Talk Channel and added all of my class students. I asked them to send questions to this channel so that we can share the common questions and answers and save time. 

 

They do not know each other because they have never met in person, so in the beginning each student was only talking to me. “Professor, I have a question…” Yesterday, I was busy, I didn’t check the channel for several hours, and when I got back I found this. (above image)

 

One student asked me, “Professor I have a question” (I was away, no answer), and another student volunteered to answer for it. Along with a snapshot of her computer screen, she kindly told the classmate how to add ‘comment’ in their peer reviewing assignment. 

 

Finally, my class learned how to help each other doing their classwork online 24/7. I am so proud of my students and am delighted to share this phenomenon with my colleagues. :-) 

 

On this channel, I send ‘Today’s Campus’ photo with spring flowers that I find on campus every morning. I show my office photos. I show some scenes of the university building little by little everyday, and they like what I upload for them. They know that they can get answers from the professor and classmates any time of the day. We are getting closer to each other. 

 

Recently, a big project was due, I was concerned if anyone would be left behind (cannot submit the big project), but to my surprise, ‘everybody’ could finish it without failure. We are becoming a real team now.

 

I video record class lessons through Kultura video everyday and upload it.

I open virtual collab class for office hours.

I open my virtual collab class twice a week

I grade and give my feedback on their daily classwork everyday, immediately

I interact with them real time on Kakao Talk all around the clock (except bedtime)

 

It’s sort of addictive. I feel I am in love with this class of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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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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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12. 14:22

https://news.joins.com/article/23700273

 

‘윤봉길 의사 장손녀’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 한국당 간다

4·15 총선 인재로 영입됐다.

news.joins.com

 

이 사람이 개인 자격으로 어떤 정당을 선택하건, 그건 그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그가 '윤봉길 의사 손녀딸'이라는 이름으로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진 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은 통탄 할 만한 일이다. 박근혜씨는 그 아버지 박정희씨의 정신이라도 계승하지 않았던가? (그의 효심은 개인 차원에서 인간적으로 가상한 면이 있다.)   당신은 도대체 뭐냐? 당신 할아버지가 왜인에게 물통 폭탄을 날리며 항거할 때, 그 손녀 딸이 장차 박정희 계보를 이어받은 정당에 낯짝을 디밀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당신 할아버지는 왜가 쏜 총알을 이마에 맞고 쓰러져 처형의 순간에까지도 이마에 '일장기'를 그리는 수치를 겪어야 했는데, 당신은 그 친일 후예들과 한가족?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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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12. 10:22

https://americanart.tistory.com/370

 

19세기 풍속화가 George Caleb Bingham 의 노스탈지아

Mississippi Boatman 1850, oil on canvas George Caleb Bingham (조지 케일럽 빙엄) 1811-1879 조지 케일럽 빙엄(1811-1879)는 버지니아주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투자 실패로 삶의 근거지를 중서..

americanart.tistory.com

 

Genre Painting 이라는 회화의 작은 분야가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풍속화'이다.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이 '풍속화'가 의미있는 이유는 서양에서 회화를 비롯한 예술은 '가진자'들의 잔치였던 역사가 오랫동안 지배해 왔는데, (성당의 그림들, 왕족이나 귀족들의 초상화) 누군가가 돈내고 초상화를 부탁할 여유가 없는 '무지렁이' 가난뱅이 시민들의 '보잘것 없고 하품나는' 일상을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돈 있는 자들의 그림' 세계에 '돈 없는 자들'이 소재로 등장한 것이 '풍속화'의 의미라고 할 만하다. 

 

지난 2월 9일, 모처럼 온 나라 사람들이 서로 환호하며 기뻐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역작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네개나 거머쥐면서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해 주었다. 책상에 앉아서 이 뉴스를 검색하던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냥 기쁘고 좋았다.  (사람은 왜 자기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에 기쁠까? 나는 골똘히 그 문제를 생각했다.  봉준호가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데 나는 왜 그가 자랑스럽고 기쁘고, 그의 수상 장면을 보고 또 보고 할까? 아무튼 축하 드린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02229

 

'기생충' 조력자 이미경 "난 봉준호 모든 것 좋다, 특히..."

최우수 작품상 수상 무대에 올라 봉준호 감독과 기쁨을 함께 했다.

news.joins.com

 

 

그런데, 시상식장에 등장한 이분이 봉감독 영화의 후원자라는 것에도 나는 수긍했다. 그렇군, 그런 조력자들이 포진해 있었군. 백억이라는 돈이 프로모션에 사용되었군.  아..하...저런 물밑 작업도 이 영광의 밑밥으로 작용한거구나. 그러면 저 사람들이 프로모션에 백억을 안 썼다면, 그래도 기생충이 사관왕에 올랐을까?  이 대목에서 내 고개가 슬슬 오른쪽 왼쪽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나는 귀동냥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하여, 피파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하여 얼마나 물 밑 경쟁을 했는지. 그 쾌거 뒤에는 늘 '숨은 조력자' 혹은 '공개된 조력자' 재벌 총수들의 얼굴들이 등장했다. 그 미담을 이용해 국회의원이 된 자도 있었다. 아무튼 대박 소식 뒤에는 한국의 존경받아 마땅한 재벌들께서 돌보고 계셨다.  '기생충'에도 기생충같이 살아가는 나는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은혜의 손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 다 좋아. 맘대로 해도 되는데. 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가진자들이 착하고 선하고 그런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이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음지와 양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못 가진자들이 기생충처럼 꿈틀대며 희망도 없이 비굴하고 치사하게 살아가는 속내를  여실없이 보여준것인데, 이 영화가 세계적인 상을 받는 이면에는 여전히 재벌들의 고급취미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재벌들은....기생충같은 서민을 팔아서 돈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셨다. 기생충은 영원히 기생충인데, 머리좋고 착한 재벌들은 기생충을 팔아 돈과 명예를 잡는다. 그게 이 경사스런 사건의 이면 같은거다. 달의 어둡고 추운 이면같은. 

 

 

쟝르화의 소재는 '가난뱅이 서민들의 비루하고 하품나는 일상' 같은거다. 그럼 그걸 돈주고 주문한 사람은 누구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이다.  마리 앙뚜와네트가 호화스러운 궁전에서의 삶이 싫증나면 시골의 자그마한 궁전에 가서 즐긴것처럼,  황금에 질린 부자들이 소박한 서민들이 소재가 된 그림을 비싼 돈 주고 사가지고 거실을 장식하고 그랬다.  장르화의 비극은 그 소재가 되었던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볼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간절히 간절히 보고 싶어했는데, 돈이 없어서 볼수 없었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돈 내고 영화표 사가지고 극장에 가서 '기생충' 영화를 통해서 쟝르화 속의 주인공, 기생충인 자신을 관람하고, 재벌은 돈을 백억씩 써서 영화를 홍보하며 파티를 벌인다.  21세기 기생충 사회. 만세이.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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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10. 11:30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200209037551001?input=1195m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 연합뉴스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조민정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2-09 18:42)

www.yna.co.kr

 

취미 생활을 잘 하다 보면 그것이 생업이 되고 그로인해 '전문가'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아무개씨는 조국씨및 그 부인, 아들, 딸 까대기를 취미생활처럼 하시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그를 팔아 먹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조국 싫다. 아무개씨 만큼이나 조국씨나 그 일가족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른 취미 생활을 찾아 보시라'는 생각을 조금 하다 말았다. 각자 취미 생활은 존중해야 하니까. 태극기는 태극기대로 조국부대는 조국부대대로 각자 취미생활로 보는 편이다.  나의 취미 생활은 그냥 잡다하다. 

 

 

그런데, 이분 요즘 아주 '조국' 팔아먹기로 그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조국을 그토록 싫어하기도 힘들것 같은데, 또 그만큼 단물을 빠는 사람도 드물어 보인다.  이거, 삶의 아이러니 같은거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조국 가족을 팔아서, 그 구더기 들끓는 이름을 팔아 그가 그 구더기 피를 빨아먹고 사는것 처럼 보인다. 

 

 

조국에서 벗어나 보시면 어떨까? 자기의 아젠다를 가지고 살아보면 어떨까?   뭐, 그것도 그가 사는 방법이므로 내가 뭐랄건 아니지만, 어쩐지 똘똘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상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묘한 느낌이 들어서 한마디.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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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8. 16:21

Food is all I am asking. Bus Pass - Just want to feel better and get back to camp

위 사진속의  패널은 피닉스 삼총사들의 숙소 (버스정거장) 근처에 그들이 놓아둔 것이다.  '음식을 부탁드립니다. 버스표도 있으면 주세요. 버스를 타고 기분전환을 하고 캠프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음식이나 버스표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아리조나 피닉스 (Phoenix)에서 얼마동안 지냈다. 버지니아가 한국의 '부산' 쯤 되는 겨울 날씨라면, 같은 시기의 아리조나 피닉스는 한국의 8월 말 혹은 9월 초순 정도 되는 덥거나 따뜻한 날씨이다.  긴팔 옷을 입거나 반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나를 마중 나온 친구도 반바지에 슬리퍼 (쓰레빠) 차림이었다. 한 겨울에, 피닉스에서.  (그가 슬리퍼 신은 꼴을 보고 나는 안도 했다. 전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군, 샌들 차림인 것을 보면. 

 

 

아리조나 피닉스는 사실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일대 만큼이나 '노인'들이 퇴직후에 살고 싶어하는 곳이다. 사철 따뜻하고 습기도 많지 않으므로 (여름에 뜨거운거야 에어컨으로 해결 보면 되니까 겨울에 따뜻한 것이 중요하다).  노인들의 천국은 --- 집없는 사람들에게도 천국임을 의미한다.  버지니아에서도 이따금 교차로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피닉스에서는 이런 분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내가 아침마다 산책을 나가던 구역에도 세명의 홈리스가 있었다. 남자 두명, 여자 한명. 그들은 버스 정거장 (한국처럼 삼면이 막혀있고 벤치가 있어서 노숙하기에 용이하다)에서 잠을 잤다. 벤치 아래에 봉지 봉지 그들의 세간 살이를 채워 넣고, 벤치를 침대처럼 활용했다.  한명이 벤치에서 자면 두명은 벤치 아래에서 잤다.  나는 이들이 각자 혼자 따로따로 자는것보다 그렇게 셋이 모여서 자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쌀쌀한 아침에는 길 건너 햇볕이 따뜻한 버스 정거장으로 이동해서 셋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어느날은 길 건너편 버스 정거장 벤치 가운데 여자가 고개를 한 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앉아있고, 양 옆의 바닥에 남자들이 앉은채로 그녀를 쳐다 보며 이야기를 하는 광경이 보였는데, 뭐랄까, 그 여성은 성모마리아, 관음보살, 혹은 여신처럼 보였고, 남자들은 신의 메신저처럼 보였다.  신비한 장면이었다.   이른 산책을 나가면 그들의 취침 시간이었고,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그중 한  두명이 어디론가 자리를 비운 것이 보이기도 했다. 

 

 

터줏대감 같은 삼총사 외에도 운전하여 나가면 교차로 근처 이쪽 저쪽에 이분들이 서 있었다.  그들을 발견 할 때마다 1달러라도 주고 싶었지만 번번이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우리들은 이제 지갑에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카드가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는) 애플페이가 있을 뿐이다.  근처에 쇼핑하러 나가면서 현금을 챙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번번이 그들을 그냥 통과 해야만 했다. 

 

 

하루는 산책 나가는 길에 역시나 버스정류장에서 자고 있는 삼총사를 지나치며 생각했다. '저기 있는 그로서리 (일반 상점)까지 걸어가야지. 거기 가서 뭔가 먹을 것을 사야지. 저들에게 아침을 대접 해야지.'  누군가에게 아침을 대접한다는 생각만으로 갑자기 나는 기분이 좋아졌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상점에 갔을 때 뭘 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샌드위치는 냉장고에 있어서 너무 차가워보였다. 뭐든 냉장고에 준비된 음식은 차가웠다. 적절치 않았다. 상점을 몇바퀴 돌면서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방금 구운 머핀 여섯개 들이 한 상자, 그리고 그린티 음료수 여섯병들이 한 팩을 샀다.  따뜻한 머핀과 그린티를 먹으면 --나쁘지는 않을거야...

 

 

음료수가 조금 무거웠다. 그것들을 비닐봉지에 들고 돌아와보니 삼총사중에 둘은 아직도 숙면 중이시고, 한 사람이 인기척에 깨어나 쳐다본다. "Hey, I am Eunmee.  Here's your breakfast."  누워 있던 그는 몸을 일으켜 내가 내미는 비닐봉지들을 받았다. "Thank you. God bless you."  "Thank you. God bless you, too!"  우리들은 눈을 마주치며 웃어보였고 나는 자리를 떠났다.  다음에는 집에서 나갈 때 현금을 갖고 나가서 줘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갑자기 한국으로 와야했다.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바꾸고 피닉스를 떠나야 했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워, 현금을 챙겨 놓았다가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하는 중에, 길가에 서있던 사람에게 현금을 건냈다.  "Thank you. God bless you!" 그가 말했다. "God bless you!" 나도 말했다.  (나는 단지 내가 1달러를 내밀었을 뿐인데 God bless you! 라는 축복의 말씀을 그에게서 들을 때, 그와 나 사이에 천사가 잠시 다녀간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1달러로 천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다니!) 

 

 

 

피닉스를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 들을 것이다. 그러면 길에서 현금을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건가? 나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금을 소지하지 않기 때문에,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내 줄 수가 없다.  일달러, 혹은 이달러, 준다고 내게 축이나는 것도 아니니 자주 줄 수도 있지만, 현금을 소지 하지 않기 때문에 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금 대신 전자 상거래를 하거나 다른 시스템이 현금을 대체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그늘에서 시스템을 따라잡기가 힘든 노인들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데,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빠지게 된다.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한푼 두푼의 현금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식으로 구걸을 하려나?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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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8. 16:10

35일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나는 유배지의 삶 같은 생활을 한 듯 하다. 거기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귀국하여 돌아보니 그 생활은 내가 선택한 유배지의 삶이었다. 

 

 

식료품 몇가지를 사기 위해 쇼핑몰에 들렀다. 지하 식품매장으로 가기 위해 1층 통로를 통과하면서 내 눈은 황홀했을 것이다. 새봄을 알리는 듯한 화사한 색상의 예쁜 옷들이 여기저기서 내게 손짓을 하고, 소리질러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자며 마스크에 발목까지 오는 긴 패딩 오버로 온몸을 중무장하고 나갔던  전쟁 같은 살벌한 외출이었건만, 매장에 걸린 예쁜 색상의 옷들은 무서운 코로나조차 잊게 하는 환각성을 품고 있었다.  물론 내 발길은 멈추지 않고 휘리릭 매장들을 지나쳐 지하 식품매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느리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는 문득 내 가슴에 찌르르 통증이 옴을 느꼈다.  찌르르...미세한 전류에 놀란 듯한 아주 여린 고통이었다.  그순간 미국집 내 창 밖으로 온종일 내다 보이던 목장과 순한 눈빛의 소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35일간, 나는 주로 창가에 붙어 살았다.  아침이면 일어나 한시간 기도를 드리고 (기도가 지겨우면 찬송가를 부르고, 찬송가가 지겨우면 성경을 읽으며 아무튼 한시간 기도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창가에서 글을 쓰거나, 글을 쓰기 위한 연구를 했다. 그것이 내 일상이었다. 

 

 

그 작은 마을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차로 다섯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버지니아 남단 구릉지에 있었다. 주변은 온통 목장이었다. 마을 한가운데로 기차길이 있어 화물열차가 하루에 두 세차례 통과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눈만 마주치면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평생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처럼 말을 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Where are you from?" 같은 상투적인 질문은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은 얼마든지 어떠한 화제로도 내게 말을 걸을 수 있었다.  두세살짜리 꼬마 아이도 방긋방긋 웃으며 "하이! 하이!" 외쳤는데, 그냥 사람이 반갑다는 뜻이었다.  사람이어서 그것이 좋아서 인사를 보내는 사람들. 그 마을은 그랬다. 그 마을에서 걸어서 갈수 있는 가게는 아무것도 없다.  물론 차로 10분 내에 타운 중심에 갈 수 있고, 그곳에 가면 월마트며 미국 중소도시에 가면 있을법한 상점들이 모여 있긴 했다.  하지만 여건상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미국에는 차도만 있으며 사람이 걸어다닐 인도가 없는 곳이 아주 많다. 걸어서 한시간 거리라 해도 맘놓고 걸을수는 없는 것이다. 시골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차가 없는 한 나는 집에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요리를 하거나, 조그마한 마을을 한바퀴 도는 산책을 하거나, 고양이와 노는 것 외에 별로 할 것이 없었다.  나는 12월 말에서 1월 한달 내내 그렇게 살았다.  

 

 

물론 이따금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사러 차를 운전하여 월마트에 갔다.  워싱턴에 살때는 거들떠도 안보던 월마트를 이 시골마을에서 나는 '놀이공원'처럼 다녔다.  그곳에서 요긴한 식료품을 사고, 방한 목적의 두툼한 겹바지도 하나 사서  내내 그것만 입었다. 그랬다. 그것이 내 유일한 외부 엔터테인먼트였다.  아-무-것-도 내 눈길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그냥 월마트에 전시된 생필품들을 보는 것이 오락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자족'을 발견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식료품을 장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쇼핑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 통장에 돈이 쌓여 있어서 어떤 명품도 척척 살만 한 수준이라 해도 그 시골마을에서는 그 따위 것들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냥 채소와 이런 저런 것들을 사다가 요리를 해 먹으면 그것으로 족한 하루하루였다. 

 

산책을 하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여기 참 좋아. 잡다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돼.  예쁜 것을 찾으러 쇼핑몰에 가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쇼핑몰이 없으니까.  목장과, 하늘의 해와 달 별, 그리고 개울, 개울에 물을 먹으러 오는 소들과, 두마리 집 고양이들. 그것들로 이미 충만해. '

 

 

 

그렇게 산사의 스님처럼 살다가 -- 챨리의 초콜렛 팩토리 같은 마법의 성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마법의 성이다. 아웃렛이 있고, 공원식 쇼핑몰이 있고, 뭐든 근사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눈이 닿는 곳 어디서나 예쁜 색상의 물건들이 나를 부른다. 나는 헉헉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전기 오른듯 쓰르르 울리며 미세한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렇게 물건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참 아름다운 지옥' 같아.  '참 아름다운 감옥' 같아.  나는 예쁜 것들을 탐하며 동시에 그것들의 무용함을 안다. 그래서 가슴이 찌르르 아프다. 

 

 

창밖으로 소들이 순한 눈으로 풀을 뜯으러 올 때, 그리고 그 곁으로 검정 고양이 한마리가 느릿느릿 지날때, 그 검정고양이가 우리집 아기 고양이와 흡사하게 생겨서 -- 아하! 저 놈이 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고양이의 어미구나! 깨달을 때 내 심장에서는 여리고 고운 클래식 기타 소리가 났었다.  그것으로 충만한 시간 그리고 공간.  하느님께서는 장차 나를 어디에 살게 하시려는지 그분께 묻고 싶어진다. 하느님, 저의 다음 행로는 어디인지요?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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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7. 21:15

숙명여대 성전환 합격자, 논란 끝에 "입학 포기"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올해 대학 입시에서 숙명여자대학교에 합격한 A씨가 입학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A씨는 JTBC와의 취재에서 "합격 소식이 알려진 이후로 자신의 입학을 반대하는 움직임에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면서 "숙대 입학을 포기하는 대신 여대를 제외한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앞서 숙명여대는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A씨를 최종 합격시켰고 이후로 학교 안팎에서는 찬반 논란이 일었습니다.

...........................................

 

 

성전환하여 '여성'임을 법적으로 인정 받은 여성이 합법적으로 여자대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여, 그 대학으로부터 적법하게 입학 허가를 받은 상황에서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학생들 때문에 입학을 포기하였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 역시 '여자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숙대생이라면 나는 그 사람 편에 설 것이다. 

 

 

관련 기사의 숙대생 대화방 내용도 조금 훑었는데, '여성의 파이를 왜 그런 사람이 나눠 먹는가'하는 불만을 표시한 숙대생도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음...뭐 파이좀 나눠 먹으면 안될까? 

 

 

음, 공포심을 느끼고 입학을 포기한 그분께 말씀 드리고 싶다.  여대 가지 마시라. 남자 여자가 섞여서 사는 세상에 뭐가 답답해서 대학 공부를 여대에서 하려 하는가? 남자 여자 섞여서 동등하게 서로 협력하고 나누는 문화에서 공부하는 것이 여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파이'를 남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문화를 흡수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내 비록 내가 다닌 여자 대학에서 귀한 교육을 받았고, 귀한 친구들을 만났으며, 귀한 교수님 슬하에서 많이 크고 많이 도움받고 성장하였으나, 내가 다시 선택할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자발적으로 여자대학에 입학하지는 않을 것이다. 옛날엔 왜 여자대학 들어갔나구? 아, 학비 대주는 아버지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여대로 입학원서를 들이 밀어서 -- 아버지 학비에 기대어 사는 내 신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냥 울면서 여대에 갔을 뿐이다.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은 찬반 논란이 일었다. 숙명·덕성·동덕·서울·성신·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 6개 여대의 23개 여성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A씨의 입학을 반대했다. 숙명여대 일부 동문은 A씨의 입학에 찬성하며 ‘성전환자로 숙명여대 최종 합격한 학생을 동문의 이름으로 환대한다’는 제목의 연서명을 온라인에 올려 해당 학생에게 응원을 보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출처: 중앙일보] 박한희 변호사, ‘숙대 포기’ 트랜스젠더 위로 “함께 살아가자”

 

내가 졸업한 학교도 이따위 기사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서 나는 정말 인생 최초로 내가 '여대 출신'이라는 것이 아주 챙피스러워졌다.  그전에는 그냥 아버지의 선택으로 여대 간것이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쪽팔린다 내가 저런 학교 출신이란 것이. 아...망했다... 트렌스젠더 여성이 여대에 들어오는 것이 '여성의 권리'를 위협한다고?  여성의 권리가 뭔데? 여성에게 권리란게 있었어?  나는 솔직히 남자로 태어나서 하필 여자로 바꾸는 사람이 이해가 안된다 왜냐하면 이따위 남근중심 사회에서 나도 가능하면 남자가 되고 싶은 판이었으니까. 근데 뭐가 답답해서 여자가 되냐구...그게 여성의 권리 침해가 돼? 응? 

 

그럼, 내가 여성의 진짜 권리가 뭔가 말해주겠다. 다른 누구도 침해 할 수 없는 여성의 권리는 -- 약자를 보듬어 주고, 슬픈자의 어깨를 감싸주고 그러는거다. 그게 우리가 가진 천부 권리이다. 사랑의 권리, 그것이 여성이 가진 최고의 권리이다.  그것은 남이 빼앗지 못한다. 좀 정신들 차리셔 여성 동지들. 우리가 가진 진짜 힘은 힘없이 쫒겨나가는 사람의 편에 서 줘야 하는거라구. 페미니즘은 늘 소수자와 연대해 왔다구, 그게 페미니즘의 근간이라구... 아이구. 

 

그러니까 그 분, 여대에서 공포심 느끼고 입학 포기한 그 여학생 -- 지금은 비극이지만 장차는 잘 된 일이다. 그냥 남녀공학 가서 뒤섞여서 사는 방법을 익히시는 것이 훨씬 좋다. 크게 보면 득이지 손해가 아니다. 

 

 

추신: 파이 부스러기조차 남들과 전혀 나눌 생각이 없는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 (그 중에서 트렌스 젠더 학생을 겁주어 쫒아낸 그 학생들) -- 그대들 앞의 그 대단한 파이나 꼭꼭 씹어 먹기 바란다. 배탈나지 않게 꼼꼼하게 씹어먹고 잘 살아내시길. 남의 고통따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성 지도자의 요람이시어.  (니네들 말야, 딱 거지가 다른 거지한테 거지 발싸개 쪼가리 빼앗길까봐 집단 린치 하는것으로 밖에 안보여. 그 잘난 거지같은 학교 나와서 대체 뭐 할건데?)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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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1. 19. 15:04

인턴 남학생이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나타났다. 

나: "너 학기 마치고 군대가니?"

그: "네... (싱긋)"

 

학기가 끝나갈 즈음, 굉장히 고지식하고 평범하고 '저는 모범생입니다'라는 표를 온몸에 달고 다니던 남학생이 갑자기 머리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거나 파마를 하고 나타난다면, 그는 99퍼센트 '난리'를 치고 있는거다.  군대 가기 전, 청춘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특히 평소에 얌전하고 딴짓 안하던 모범생들이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여지 없이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특히 아들 가진 부모들이 흔히 자조적으로 쓰는 말인데, 모범생이나 문제아나 결국 인간이 평균적으로 보이는 '지랄'은 다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릴때 몰아서 하고, 어떤 사람은 뒤늦게 난리를 치고 그런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어릴 때 말썽 부리는 애들, 나중에 자라면 더 효도를 하기도 하고, 어릴 때 부모 속 썩이지 않던 자식들이 늙어서 부모 쓰러지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는 그저 그런 현상을 지켜 볼 뿐이다. (나는 내 '지랄'의 총량을 다 써먹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새삼 이 나이에 지랄떨게 뭐 있나 싶은 것이지만....사람 일은 죽을 때까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니 늘 스스로를 조심해야 하리라.)

 

"야, 너 군대 가면 나 어떡해?" 

 

내가 슬픈 표정으로 신세한탄을 하자, 이 착한 모범생이 빙긋 웃는다, "안 갈까요, 그럼?" 

 

가라, 가, 군대는 얼른 갔다 와야 하는거지. 어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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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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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31. 20:31

 

내가 '그 어떤 감리교회'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그 교회를 세웠다는 '원로목사'라는 분의 설교가 괴이쩍고 납득이 안갔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박근혜씨가 아직 대통령이던 시절,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걸 문제삼아야 합니까" 이따위 소리를 해서, 내가 너무 화가 나서 '크리스마스 예배'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다.  그는 동성애자들이 축제벌이는 곳에 '반대시위'를 하러 다니던 목회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설교 시간에 다시 설교 재료로 삼았다. 

 

내가 그따위 교회를 그래도 꾸역꾸역 다녔던 이유는 단 한가지, 그가 곧 정년퇴임을 하여 물러날 것이라는 지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그 원로목사님의 휘하에 두명의 부목사님들이 있었는데, 이분들은 극히 정상적이고 바른 분들처럼 보였다. 설교도 정상적이었고 원만해 보였다.  그래서 저 이상한 노인이 정년퇴직하여 교회를 나가면 저런 정상적인 부목사님들이 목사님이 될 것이고 교회는 정상적이 될거야라는 얄팍하고 순진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간에도 부목사님 한분이 잔뜩 불행한 표정으로 사역하다가 따로 살림차려 나갈때 (개척교회하러 떠날때), 나도 그쪽으로 옮길까 하고 흔들린적도 있었지만, 그냥 귀챦아서 그 노인이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게으른 인간이니까 조금 참아서 될 일이면 참는쪽으로 하는 편이다. 

 

드디어 올해 초에 고대하고 고대하던대로 그가 정년퇴임/은퇴를 하긴 했는데 '원로목사'라고 스스로 자기를 추대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달에 400만원의 원로목사 월급을 받아 간다고 한다. 은퇴후에 그의 얼굴을 한번도 교회에서 보지 못했지만 그는 한달에 400만원 생활비가 적다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한다. 물론 그 월급은 그가 퇴직금조로 빼간 수억원과는 별도로 지급되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듣고, 그 다음부터 그 교회에 돈을 안 내겠다고 작정했지....  에라이 날도둑 목사놈아. ) 그리고 교회는 엉망이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그 사층짜리 신축교회를 그대로 곱게 '남에게' 넘기고 물러날 생각이 추호도 없거니와,  교회는 (1) 지금 다른데서 목회를 하고 있는 그의 '아들'이 그 교회를 물려받는것이 마땅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일부 장로들과  (2)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교회 세습은 말도 안된다, 부목사님이 일 잘하시니 그냥 그 분이 자리 넘겨 받으면 된다는 일부 장로들의 전쟁터가 된 것이다. 

 

그 노인이 자취를 감춘 후 6개월동안 교회는 '원로목사파'와 '부목사파'로 '분단국가' 처지가 된 것 같았는데 '국민투표'식으로 전교인 투표를 해봐도 70퍼센트가 '부목사'를 새로운 담임목사로 추대하자는 찬성표가 나왔지만, 그렇지만 국민투표고 지랄이고간에, 지방 감리교단이 '원로목사'의 수중에 있었다.  자취도 보이지 않는 원로목사 뜻대로 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결국 몇년 후에는 그의 아들이 그 교회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분분해졌다. 게다가 현재 부목사님은 '난'을 일으켰다고 징계를 먹는다나 뭐라나.   교회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보니, 교단이 원로들 수중에서 놀아나면 개혁이고 뭐고 없는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지역 감리교단 자체가 완전히 썪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에잇.  어디가서 예수쟁이라는 말도 못하게 생겼다. 너무 부끄러워서.  예수님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먹고 사는 목사라는 직업인들이 내 삶에 끼어들었다는게 챙피스럽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단은 쫒겨나는 부목사님들이 손을 잡고 새로 세운다는 교회쪽으로 가서 예배를 볼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왜 이 썩어빠진 감리교단을 떠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1) 어차피 사방 눈씻고 찾아봐도 개신교 교단 전체가 썩어가고 있다. 희망이 없다. 의탁할 곳이 없다.

 

2) 천주교나 성공회에 간들 뭐 그들이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인간의 후예들이 다 거기가 거기지. 사람 자체를 신뢰하면 안되는거다. 원래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3) 그럼에도 나는 예수님께 의지하여 일평생 살기로 서약한 바, 어쨌거나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그래야 한다. 그러니 예배처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튼 예배를 계속 드리기 위한 방편으로 새로운 교회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교회를 세우느라 고생중이신 목사님께, '나는 당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당신을 신뢰하지도 않소. 나는 단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만을 믿을 뿐이오. 당분간 당신과 함께 예배를 보기로 했으니 한동안 좋은 길 동무가 되기를 희망하오' 뭐 이런 메시지만 보내놨다.  

 

미국 감리교는 '중앙에서 파송'하는 시스템이라서 목사들이 '이건 내가 세운 내 교회, 우리 아들 준다' 뭐 이따위 소리하는 작자가 없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처럼 몇년 있다가 떠나면 새사람이 오고 그런다.  한국 감리교는 '이건 내교회, 내 아들에 아들에 아들에게 물려줄 내교회' 이따위 생각 가진 목사들이 넘치는 것 같다.  내가 다니던 미국 감리교가 새삼 그립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수님 손을 꼭 붙들고 살고 있다. 

 

한국에는 참 나쁜 목사놈들이 많다. 에라이... 나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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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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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15. 19:34

설리

 

어제, 퇴근후 무심코 열어본 스마트폰 뉴스채널에서 두가지 뉴스를 동시에 발견했는데, 법무장관의 사표 소식과, 연예인 설리가 사망한것 같다는 보도였다.  내가 먼저 클릭한 것은 설리씨의 사망에 관한 뉴스였다.  아니, 그 꽃같이 예쁜 아가씨가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인가?  

 

법무장관이야 누가 하거나 말거나, 결국 누군가 할 것이고, 세상은 뭐 이럴때도 있고 저럴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리'를 대체할 자가 누구란 말인가?  아무도 그를 대체할 수 없으니, 설리를 잃은 것은 참 슬픈일이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사람이 한창 연예인으로 활동을 하던 시절에 나는 미국에서 내 터전을 쌓느라 분주했고,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때 그는 왕성한 시기를 지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왕성한 가수 활동을 계속 했대도, 쇼프로를 보지 않는 내게는 결국 마찬가지로 눈에 안띄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느 화장품 회사 모델로 나온 그의 모습이 너무나 독보적으로 상큼 발랄, 요정같이 산뜻해서 '저이가 누군가?' 궁금해하다가, 그의 이름이 '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 외에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이따금 가십성 기사에서 그의 일상 사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정도였는데, 어쩌다 보이는 가십성 기사의 사진 속에서도 그는 '요정'처럼 여전히 아름다워서, '이렇게 요정 같이 산뜻, 풋풋한 아가씨라면 뭘 해도 사랑스럽겠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평생에 처음으로 아주 빨간 (오리지날 빨강) 립스틱을 하나 마련한 것도 순전히 '설리'가 빨간 립스틱을 발랐을때 단지 그냥 립스틱만 바른 것 뿐인데도 그가 너무나 요정 같아 보여, 나도 모르게 홀려서 나도 빨간 립스틱을 집어 들었던 것이지.  물론 내가 설리의 빨간 립스틱을 아무리 바른대도 절대 절대 설리의 사랑스러움을 먼지만큼도 얻어 올 수 없음을 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상큼한 스물다섯 아가씨가 이 투명한 가을날, 그렇게 가볍게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세상에서 다시 보기 힘든 꽃 한송이가 문득 사라진 것같아, 영 아쉽고 안타깝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래도 상실감이 문득 찾아온다.  그 예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니...  

 

그래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조건, 무조건, 사람에게 친절하자.  그 사람이 나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리고 무조건 응원해주자.  그가 내 응원에 마음을 돌이킬지도 모르지 않은가? 죽음에서 삶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친절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편이 되어주자.  너무 슬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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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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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2. 19:09

연구실에서 쌓인 일을 '전투 모우드'로 해 치우고 있는데, 이슥한 저녁, 여학생 한명이 찾아왔다. 내 연구실은 대체로 문이 반쯤 열려 있으니 와서 기웃거린다. 

 

"왜?" 

 

나는 마치 시골 가겟방을 지키는 아주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문지방을 넘어 들어서는 동네 아이를 대하듯 묻는다. 

 

 

"교수님, 혹시 우산 있으세요? 밖에 비와요." 

 

비가 오겠지. 태풍 미탁이 상륙 했다고 하니, 밖에 비가 오겠지. 그 학생이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지내면서 걸어서 통학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운전하며 외출하는 길에,  걸어가는 그 학생을 몇차례 본 적도 있다.  나는 그냥 턱짓으로만 문앞 의자 옆에 세워져 있는 우산을 가리킨다. 

 

 

"저깄다."

 

"저 써도 돼요?"

 

"응" 

 

"그럼 교수님은 비오는데 어떻게 하세요?"

 

"난 그냥 비 맞으면 된다." 

 

"어머! 그러면 제가 못 빌리지요....전 교수님이 우산이 여러개 있는가 보러 왔지요." 

 

"너를 비를 맞게 하느니, 내가 비를 맞고 말지. 너는 나의 소중한 학생이니까." 

 

나는 빙글빙글 웃는다. (거짓부렁이라는 뜻이다.). 비가 온들, 나는 사실 비 맞는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후드셔츠를 입고 있고, 내가 연구실에서 숙소로 달려가는 길은 정말 짧다. 비를 맞을 거리는 더 짧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우산을 세워 놓을 뿐, 웬만한 비는 그냥 맞고 돌아다닌다. 

 

 

학생은 내 우산을 들고 연구실을 떠났다. 

 

나는 다시 일을 한다.

 

문득, 비오는 날 내 생각을 해 낸 그 학생 얼굴이 떠오른다. 비가 올 때, 우산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렸다니 내가 그에게 영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우산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라면, 나 아주 실패한 인생은 아닌것도 같다.  우산을 빌리러 온 내 학생이 우산보다 더 큰 위안을 내게 준것도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명예라는 것도 없어진지 오래고,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는 오늘날의 대학교수라는 직업.  나는 감히 학생들이 나를 존경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학생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나 스스로 의문스럽다. (나는 엉망이다.  인정한다.)  그냥, 비가 오는 날 우산이 필요할 때, 혹은 손을 다쳐서 위로가 필요할 때, 그럴때, "교수님, 저 우산이 없어요. 교수님, 저 손을 다쳤어요" 뭐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무살 친구, 넌 내게서 우산을 얻었고; 나는 너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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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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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9. 27. 16:19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가 사회학 강의중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 제도였다는 강의를 했다고 하는데  내가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사회학 전공자도 아니지만,  내 증언은 남길수 있다.

 

 

우리 엄마가 1935년생이다. 광복되던 해에 만 10세 어린이였다는 말씀이다. 육이오는 엄마가 15세에 발발했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당신의 어린 시절 '왜정'때 얘기며, '소학교' 다니던 시절 얘기며 '피란'가던 얘기를 아주 생생하게 들려주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하여 거짓부렁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엄마가 '왜정'때 겪은 얘기 중에 '정신대' 얘기도 있다.  지금은 '위안부 (Comfort Women)'으로 표기하지만 엄마는 왜정때의 말인듯 '정신대'라는 말을 쓰셨다.  엄마의 증언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왜정때, 느이 이모 (너희 이모)도 일찍 시집을 갔어. 처녀들을 왜놈들이 정신대로 잡아갔거든. 그래서 처녀들 정신대로 끌려갈까봐 빨리 시집을 보내는 집에 많았어.  새댁들도 멀리서 왜놈 순사가 보이면 정신대 끌려갈까봐 얼굴에 검정 재를 칠하고, 여자들을 헛간에 숨기고 그랬어. 정신대 끌려가면 죽는거야.  어린 나도 느이 외할아버지가 '저기 순사온다!' 그러고는 얼굴에 재를 검게 묻혀가지고 숨기고 그랬지."

 

이것이 경기도에서 식민지 시절에 성장한 여성, 우리 엄마의 무한 반복되던 증언이다. 어릴때  '왜정' 얘기와 '육이오'얘기를 하도 실감나게 들어서 마치 내가 경험한 것 같은 공포를 느낄때도 종종 있었다.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 행위였다고?  혹시 류모 교수 엄마나 가까운 가족분들이 자발적으로 일황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몸을 바치셨던 드라마틱한 가족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경기도 일원에서 성장한 사람들 얘기는 류모씨의 얘기와는 참 많이 동떨어져있다. 류교수라는 분은 혹시 개인적으로 가족사에 그런 그림이 있었던 것을 일반화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만약에 그것이 류교수 가족의 문제였다면 자발적으로 일본에 애국하기 위해서 위안부의 길을 걸어간 그분들에 대하여 역시 슬프게 생각한다. 류교수 힘내고 당신 가족중에 그런 분들을 많이 위로하시라.  그러나 일반화는 하지 말기 바란다.  부끄러운줄 아시라.  아주 옘병을 해요, 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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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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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9. 27. 15:54

엄마 집에 있던 김치 냉장고가 작동을 멈췄다. 그 자리에 있은지 십년도 넘은 것이고, 형제 중에 누군가가 쓰던걸 엄마한테 넘긴 것이라고 하니, 수명이 다 할법도 할 것이다. 그 김치 냉장고는 내가 기억하는 한 고대의 시간부터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내 집에서 김치냉장고를 가져 본 적이 없어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것도 잘 모른다.  김치를 많이 먹지도 않으니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내 시선으로 볼 때, 엄마 집에서 김치 냉장고가 사라진대도 별로 상관이 없어 보였다.  엄마 집 냉장고는 우리집 냉장고보다 두배쯤 클 것이다.  사실 엄마의 김치 냉장고에 김치가 많이 들어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창고'처럼 이것저것 구겨 넣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 김치냉장고를 내다버리고 덕분에 넓어진 주방을 향유하시면 되는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엄마는 고장난 것이라도 그냥 끼고 살고 싶은 표정이었다.  노인들은 뭘 버리는 것을 무척 섭섭해하신다.  그래서 살살 달래며 이리저리 물어보니, 그 자리를 비게 놓아두면 안되고, 그러면 추석 명절에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들이 드린 용돈이 꽤 된다며 그것으로 김치냉장고를 하나 사면 되겠다고 하신다.  어딘가 마음이 아려온다.  엄마가 왜 돈이 없지? 엄마가 왜 손자 손녀들이 드린 용돈을 모아서 살림을 사실 생각을 하시는거지? 그렇게 돈이 없었어? 왜? 여러가지 의문이 든다. 엄마가 구차스럽게 살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형제들 사이에서 중론은, 지금 엄마 냉장고만해도 충분히 크니까 김치냉장고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김치냉장고 내다 버리고 그냥 냉장고로 생활해도 불편할게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도 동일했다. 

 

그런데, 

 

꼭 사지 않아도, 언라인으로 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의 신상품 카탈로그를 보거나 패션쇼를 보는 일은 눈요기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그걸 구경하다보면 하나 사고 싶다는 허망한 욕망이 질기게 들러붙기도 한다. 모 패션브랜드의 가을 카디건 한장에 백만원도 넘는 것을 눈요기로 구경하다가 문득, 저게 한 오십만원이라면 내가 그냥 눈 질끈 감고 사지 않을까? 왜냐하면, 갖고 싶으니까.  백만원이 넘는 지갑 한개를 침 흘리며 들여다보다 생각한다 - 나 기분 내키면 저것도 지금 당장 살 수 있는데...

 

그러다 문득, 엄마의 김치냉장고 생각이 났다.  노인 살림에 어마무시한 김치냉장고도 필요없고, 엄마가 원하는것은 그냥 박스형 단촐한 것인데. 그거 얼마나 하나? 검색을 해보니 예쁘장한 것이 육십만원 정도면 되는 정도다. 

 

만약에 엄마가 어느 백화점 가방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이쁘장한 육십만원 짜리 가방을 가리키면서, "저것 이쁘구나. 나 저것 갖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나는 두 말 않고 그것을 사 드릴 것이다. 나라면 돈 아까워서 안 사도, 엄마가 사달라면 예쁜 가방 기꺼이 사드린다.  쓸데도 없는 가방을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김치 냉장고를 내다버리고 나면 허전하니 그 자리를 김치냉장고 자그마한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데, 내가 왜 그것을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지어 버린것인가?  예쁜 옷은 꼭 필요해서 사는가? 그냥 예쁘니까 산다.  내가 신발이 없어서 기십만원 짜리 구두를 사나? 아니 그냥 그 구두가 예뻐서 갖고 싶어서 산다.  명품 가방은 필요해서 사는가? 아니, 그냥 그게 갖고 싶어서 갖는거다.  그러면 김치냉장고는 반드시 필요해야만 사는가?  그것도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하면 사드리면 되는거다.  

 

그래서 나는 언라인으로 엄마가 갖고 싶어하시는 자그마한 김치냉장고를 주문하여 엄마 주소를 찍어 보냈다.  그러고나니까 머릿속이 맑아졌다. (사람이 돈을 쓰면 잠시 잠깐 마약 효과가 나는것 같다. 머리가 맑아지고 가벼워진다. 하하하.)  나는 왜 내가 좋아하는 패션 용품은 돈 아까운줄 모르고 사면서, 엄마의 생필품인 김치냉장고를 단지 '냉장고 넓으니 그것이 따로 왜 필요한가?' 이런 꼬리표를 달고 필요없다고 단정한건가?  

 

내가 무엇이 필요하다/불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실용성'의 측면이 아니라 '애장품'의 측면에서 바라보니 그림이 전혀 달라진다. 엄마 옷 오십만원짜리는 망설임없이 사 줄수 있으면서, 김치냉장고는 왜 그렇게 매몰차게 '필요없다'고 말하는가?  그걸 엄마가 좋아하는 옷이나 가방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래서, "엄마, 곧 김치냉장고가 갈거야. 빨간색 예쁜 김치냉장고가 갈거야"하고 전화를 드리니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반기신다. 저렇게 좋아하시는걸 내가 그냥 지나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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