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20. 3. 13. 17:24

 

 

I got tired of all those individual repeated questions and answers through email because they were asking me the same question individually and I had to answer the same repeatedly. (They do not use the discussion board even though I opened it and invited students to use it) I set up a class Kakao Talk Channel and added all of my class students. I asked them to send questions to this channel so that we can share the common questions and answers and save time. 

 

They do not know each other because they have never met in person, so in the beginning each student was only talking to me. “Professor, I have a question…” Yesterday, I was busy, I didn’t check the channel for several hours, and when I got back I found this. (above image)

 

One student asked me, “Professor I have a question” (I was away, no answer), and another student volunteered to answer for it. Along with a snapshot of her computer screen, she kindly told the classmate how to add ‘comment’ in their peer reviewing assignment. 

 

Finally, my class learned how to help each other doing their classwork online 24/7. I am so proud of my students and am delighted to share this phenomenon with my colleagues. :-) 

 

On this channel, I send ‘Today’s Campus’ photo with spring flowers that I find on campus every morning. I show my office photos. I show some scenes of the university building little by little everyday, and they like what I upload for them. They know that they can get answers from the professor and classmates any time of the day. We are getting closer to each other. 

 

Recently, a big project was due, I was concerned if anyone would be left behind (cannot submit the big project), but to my surprise, ‘everybody’ could finish it without failure. We are becoming a real team now.

 

I video record class lessons through Kultura video everyday and upload it.

I open virtual collab class for office hours.

I open my virtual collab class twice a week

I grade and give my feedback on their daily classwork everyday, immediately

I interact with them real time on Kakao Talk all around the clock (except bedtime)

 

It’s sort of addictive. I feel I am in love with this class of mine.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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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12. 14:22

https://news.joins.com/article/23700273

 

‘윤봉길 의사 장손녀’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 한국당 간다

4·15 총선 인재로 영입됐다.

news.joins.com

 

이 사람이 개인 자격으로 어떤 정당을 선택하건, 그건 그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그가 '윤봉길 의사 손녀딸'이라는 이름으로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진 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은 통탄 할 만한 일이다. 박근혜씨는 그 아버지 박정희씨의 정신이라도 계승하지 않았던가? (그의 효심은 개인 차원에서 인간적으로 가상한 면이 있다.)   당신은 도대체 뭐냐? 당신 할아버지가 왜인에게 물통 폭탄을 날리며 항거할 때, 그 손녀 딸이 장차 박정희 계보를 이어받은 정당에 낯짝을 디밀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당신 할아버지는 왜가 쏜 총알을 이마에 맞고 쓰러져 처형의 순간에까지도 이마에 '일장기'를 그리는 수치를 겪어야 했는데, 당신은 그 친일 후예들과 한가족?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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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12. 10:22

https://americanart.tistory.com/370

 

19세기 풍속화가 George Caleb Bingham 의 노스탈지아

Mississippi Boatman 1850, oil on canvas George Caleb Bingham (조지 케일럽 빙엄) 1811-1879 조지 케일럽 빙엄(1811-1879)는 버지니아주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투자 실패로 삶의 근거지를 중서..

americanart.tistory.com

 

Genre Painting 이라는 회화의 작은 분야가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풍속화'이다.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이 '풍속화'가 의미있는 이유는 서양에서 회화를 비롯한 예술은 '가진자'들의 잔치였던 역사가 오랫동안 지배해 왔는데, (성당의 그림들, 왕족이나 귀족들의 초상화) 누군가가 돈내고 초상화를 부탁할 여유가 없는 '무지렁이' 가난뱅이 시민들의 '보잘것 없고 하품나는' 일상을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돈 있는 자들의 그림' 세계에 '돈 없는 자들'이 소재로 등장한 것이 '풍속화'의 의미라고 할 만하다. 

 

지난 2월 9일, 모처럼 온 나라 사람들이 서로 환호하며 기뻐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역작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네개나 거머쥐면서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해 주었다. 책상에 앉아서 이 뉴스를 검색하던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냥 기쁘고 좋았다.  (사람은 왜 자기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에 기쁠까? 나는 골똘히 그 문제를 생각했다.  봉준호가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데 나는 왜 그가 자랑스럽고 기쁘고, 그의 수상 장면을 보고 또 보고 할까? 아무튼 축하 드린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02229

 

'기생충' 조력자 이미경 "난 봉준호 모든 것 좋다, 특히..."

최우수 작품상 수상 무대에 올라 봉준호 감독과 기쁨을 함께 했다.

news.joins.com

 

 

그런데, 시상식장에 등장한 이분이 봉감독 영화의 후원자라는 것에도 나는 수긍했다. 그렇군, 그런 조력자들이 포진해 있었군. 백억이라는 돈이 프로모션에 사용되었군.  아..하...저런 물밑 작업도 이 영광의 밑밥으로 작용한거구나. 그러면 저 사람들이 프로모션에 백억을 안 썼다면, 그래도 기생충이 사관왕에 올랐을까?  이 대목에서 내 고개가 슬슬 오른쪽 왼쪽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나는 귀동냥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하여, 피파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하여 얼마나 물 밑 경쟁을 했는지. 그 쾌거 뒤에는 늘 '숨은 조력자' 혹은 '공개된 조력자' 재벌 총수들의 얼굴들이 등장했다. 그 미담을 이용해 국회의원이 된 자도 있었다. 아무튼 대박 소식 뒤에는 한국의 존경받아 마땅한 재벌들께서 돌보고 계셨다.  '기생충'에도 기생충같이 살아가는 나는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은혜의 손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 다 좋아. 맘대로 해도 되는데. 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가진자들이 착하고 선하고 그런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이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음지와 양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못 가진자들이 기생충처럼 꿈틀대며 희망도 없이 비굴하고 치사하게 살아가는 속내를  여실없이 보여준것인데, 이 영화가 세계적인 상을 받는 이면에는 여전히 재벌들의 고급취미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재벌들은....기생충같은 서민을 팔아서 돈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셨다. 기생충은 영원히 기생충인데, 머리좋고 착한 재벌들은 기생충을 팔아 돈과 명예를 잡는다. 그게 이 경사스런 사건의 이면 같은거다. 달의 어둡고 추운 이면같은. 

 

 

쟝르화의 소재는 '가난뱅이 서민들의 비루하고 하품나는 일상' 같은거다. 그럼 그걸 돈주고 주문한 사람은 누구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이다.  마리 앙뚜와네트가 호화스러운 궁전에서의 삶이 싫증나면 시골의 자그마한 궁전에 가서 즐긴것처럼,  황금에 질린 부자들이 소박한 서민들이 소재가 된 그림을 비싼 돈 주고 사가지고 거실을 장식하고 그랬다.  장르화의 비극은 그 소재가 되었던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볼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간절히 간절히 보고 싶어했는데, 돈이 없어서 볼수 없었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돈 내고 영화표 사가지고 극장에 가서 '기생충' 영화를 통해서 쟝르화 속의 주인공, 기생충인 자신을 관람하고, 재벌은 돈을 백억씩 써서 영화를 홍보하며 파티를 벌인다.  21세기 기생충 사회. 만세이.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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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10. 11:30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200209037551001?input=1195m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 연합뉴스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조민정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2-09 18:42)

www.yna.co.kr

 

취미 생활을 잘 하다 보면 그것이 생업이 되고 그로인해 '전문가'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아무개씨는 조국씨및 그 부인, 아들, 딸 까대기를 취미생활처럼 하시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그를 팔아 먹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조국 싫다. 아무개씨 만큼이나 조국씨나 그 일가족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른 취미 생활을 찾아 보시라'는 생각을 조금 하다 말았다. 각자 취미 생활은 존중해야 하니까. 태극기는 태극기대로 조국부대는 조국부대대로 각자 취미생활로 보는 편이다.  나의 취미 생활은 그냥 잡다하다. 

 

 

그런데, 이분 요즘 아주 '조국' 팔아먹기로 그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조국을 그토록 싫어하기도 힘들것 같은데, 또 그만큼 단물을 빠는 사람도 드물어 보인다.  이거, 삶의 아이러니 같은거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조국 가족을 팔아서, 그 구더기 들끓는 이름을 팔아 그가 그 구더기 피를 빨아먹고 사는것 처럼 보인다. 

 

 

조국에서 벗어나 보시면 어떨까? 자기의 아젠다를 가지고 살아보면 어떨까?   뭐, 그것도 그가 사는 방법이므로 내가 뭐랄건 아니지만, 어쩐지 똘똘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상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묘한 느낌이 들어서 한마디.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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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8. 16:21

Food is all I am asking. Bus Pass - Just want to feel better and get back to camp

위 사진속의  패널은 피닉스 삼총사들의 숙소 (버스정거장) 근처에 그들이 놓아둔 것이다.  '음식을 부탁드립니다. 버스표도 있으면 주세요. 버스를 타고 기분전환을 하고 캠프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음식이나 버스표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아리조나 피닉스 (Phoenix)에서 얼마동안 지냈다. 버지니아가 한국의 '부산' 쯤 되는 겨울 날씨라면, 같은 시기의 아리조나 피닉스는 한국의 8월 말 혹은 9월 초순 정도 되는 덥거나 따뜻한 날씨이다.  긴팔 옷을 입거나 반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나를 마중 나온 친구도 반바지에 슬리퍼 (쓰레빠) 차림이었다. 한 겨울에, 피닉스에서.  (그가 슬리퍼 신은 꼴을 보고 나는 안도 했다. 전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군, 샌들 차림인 것을 보면. 

 

 

아리조나 피닉스는 사실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일대 만큼이나 '노인'들이 퇴직후에 살고 싶어하는 곳이다. 사철 따뜻하고 습기도 많지 않으므로 (여름에 뜨거운거야 에어컨으로 해결 보면 되니까 겨울에 따뜻한 것이 중요하다).  노인들의 천국은 --- 집없는 사람들에게도 천국임을 의미한다.  버지니아에서도 이따금 교차로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피닉스에서는 이런 분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내가 아침마다 산책을 나가던 구역에도 세명의 홈리스가 있었다. 남자 두명, 여자 한명. 그들은 버스 정거장 (한국처럼 삼면이 막혀있고 벤치가 있어서 노숙하기에 용이하다)에서 잠을 잤다. 벤치 아래에 봉지 봉지 그들의 세간 살이를 채워 넣고, 벤치를 침대처럼 활용했다.  한명이 벤치에서 자면 두명은 벤치 아래에서 잤다.  나는 이들이 각자 혼자 따로따로 자는것보다 그렇게 셋이 모여서 자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쌀쌀한 아침에는 길 건너 햇볕이 따뜻한 버스 정거장으로 이동해서 셋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어느날은 길 건너편 버스 정거장 벤치 가운데 여자가 고개를 한 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앉아있고, 양 옆의 바닥에 남자들이 앉은채로 그녀를 쳐다 보며 이야기를 하는 광경이 보였는데, 뭐랄까, 그 여성은 성모마리아, 관음보살, 혹은 여신처럼 보였고, 남자들은 신의 메신저처럼 보였다.  신비한 장면이었다.   이른 산책을 나가면 그들의 취침 시간이었고,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그중 한  두명이 어디론가 자리를 비운 것이 보이기도 했다. 

 

 

터줏대감 같은 삼총사 외에도 운전하여 나가면 교차로 근처 이쪽 저쪽에 이분들이 서 있었다.  그들을 발견 할 때마다 1달러라도 주고 싶었지만 번번이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우리들은 이제 지갑에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카드가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는) 애플페이가 있을 뿐이다.  근처에 쇼핑하러 나가면서 현금을 챙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번번이 그들을 그냥 통과 해야만 했다. 

 

 

하루는 산책 나가는 길에 역시나 버스정류장에서 자고 있는 삼총사를 지나치며 생각했다. '저기 있는 그로서리 (일반 상점)까지 걸어가야지. 거기 가서 뭔가 먹을 것을 사야지. 저들에게 아침을 대접 해야지.'  누군가에게 아침을 대접한다는 생각만으로 갑자기 나는 기분이 좋아졌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상점에 갔을 때 뭘 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샌드위치는 냉장고에 있어서 너무 차가워보였다. 뭐든 냉장고에 준비된 음식은 차가웠다. 적절치 않았다. 상점을 몇바퀴 돌면서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방금 구운 머핀 여섯개 들이 한 상자, 그리고 그린티 음료수 여섯병들이 한 팩을 샀다.  따뜻한 머핀과 그린티를 먹으면 --나쁘지는 않을거야...

 

 

음료수가 조금 무거웠다. 그것들을 비닐봉지에 들고 돌아와보니 삼총사중에 둘은 아직도 숙면 중이시고, 한 사람이 인기척에 깨어나 쳐다본다. "Hey, I am Eunmee.  Here's your breakfast."  누워 있던 그는 몸을 일으켜 내가 내미는 비닐봉지들을 받았다. "Thank you. God bless you."  "Thank you. God bless you, too!"  우리들은 눈을 마주치며 웃어보였고 나는 자리를 떠났다.  다음에는 집에서 나갈 때 현금을 갖고 나가서 줘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갑자기 한국으로 와야했다.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바꾸고 피닉스를 떠나야 했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워, 현금을 챙겨 놓았다가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하는 중에, 길가에 서있던 사람에게 현금을 건냈다.  "Thank you. God bless you!" 그가 말했다. "God bless you!" 나도 말했다.  (나는 단지 내가 1달러를 내밀었을 뿐인데 God bless you! 라는 축복의 말씀을 그에게서 들을 때, 그와 나 사이에 천사가 잠시 다녀간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1달러로 천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다니!) 

 

 

 

피닉스를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 들을 것이다. 그러면 길에서 현금을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건가? 나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금을 소지하지 않기 때문에,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내 줄 수가 없다.  일달러, 혹은 이달러, 준다고 내게 축이나는 것도 아니니 자주 줄 수도 있지만, 현금을 소지 하지 않기 때문에 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금 대신 전자 상거래를 하거나 다른 시스템이 현금을 대체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그늘에서 시스템을 따라잡기가 힘든 노인들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데,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빠지게 된다.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한푼 두푼의 현금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식으로 구걸을 하려나?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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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8. 16:10

35일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나는 유배지의 삶 같은 생활을 한 듯 하다. 거기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귀국하여 돌아보니 그 생활은 내가 선택한 유배지의 삶이었다. 

 

 

식료품 몇가지를 사기 위해 쇼핑몰에 들렀다. 지하 식품매장으로 가기 위해 1층 통로를 통과하면서 내 눈은 황홀했을 것이다. 새봄을 알리는 듯한 화사한 색상의 예쁜 옷들이 여기저기서 내게 손짓을 하고, 소리질러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자며 마스크에 발목까지 오는 긴 패딩 오버로 온몸을 중무장하고 나갔던  전쟁 같은 살벌한 외출이었건만, 매장에 걸린 예쁜 색상의 옷들은 무서운 코로나조차 잊게 하는 환각성을 품고 있었다.  물론 내 발길은 멈추지 않고 휘리릭 매장들을 지나쳐 지하 식품매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느리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는 문득 내 가슴에 찌르르 통증이 옴을 느꼈다.  찌르르...미세한 전류에 놀란 듯한 아주 여린 고통이었다.  그순간 미국집 내 창 밖으로 온종일 내다 보이던 목장과 순한 눈빛의 소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35일간, 나는 주로 창가에 붙어 살았다.  아침이면 일어나 한시간 기도를 드리고 (기도가 지겨우면 찬송가를 부르고, 찬송가가 지겨우면 성경을 읽으며 아무튼 한시간 기도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창가에서 글을 쓰거나, 글을 쓰기 위한 연구를 했다. 그것이 내 일상이었다. 

 

 

그 작은 마을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차로 다섯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버지니아 남단 구릉지에 있었다. 주변은 온통 목장이었다. 마을 한가운데로 기차길이 있어 화물열차가 하루에 두 세차례 통과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눈만 마주치면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평생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처럼 말을 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Where are you from?" 같은 상투적인 질문은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은 얼마든지 어떠한 화제로도 내게 말을 걸을 수 있었다.  두세살짜리 꼬마 아이도 방긋방긋 웃으며 "하이! 하이!" 외쳤는데, 그냥 사람이 반갑다는 뜻이었다.  사람이어서 그것이 좋아서 인사를 보내는 사람들. 그 마을은 그랬다. 그 마을에서 걸어서 갈수 있는 가게는 아무것도 없다.  물론 차로 10분 내에 타운 중심에 갈 수 있고, 그곳에 가면 월마트며 미국 중소도시에 가면 있을법한 상점들이 모여 있긴 했다.  하지만 여건상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미국에는 차도만 있으며 사람이 걸어다닐 인도가 없는 곳이 아주 많다. 걸어서 한시간 거리라 해도 맘놓고 걸을수는 없는 것이다. 시골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차가 없는 한 나는 집에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요리를 하거나, 조그마한 마을을 한바퀴 도는 산책을 하거나, 고양이와 노는 것 외에 별로 할 것이 없었다.  나는 12월 말에서 1월 한달 내내 그렇게 살았다.  

 

 

물론 이따금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사러 차를 운전하여 월마트에 갔다.  워싱턴에 살때는 거들떠도 안보던 월마트를 이 시골마을에서 나는 '놀이공원'처럼 다녔다.  그곳에서 요긴한 식료품을 사고, 방한 목적의 두툼한 겹바지도 하나 사서  내내 그것만 입었다. 그랬다. 그것이 내 유일한 외부 엔터테인먼트였다.  아-무-것-도 내 눈길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그냥 월마트에 전시된 생필품들을 보는 것이 오락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자족'을 발견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식료품을 장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쇼핑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 통장에 돈이 쌓여 있어서 어떤 명품도 척척 살만 한 수준이라 해도 그 시골마을에서는 그 따위 것들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냥 채소와 이런 저런 것들을 사다가 요리를 해 먹으면 그것으로 족한 하루하루였다. 

 

산책을 하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여기 참 좋아. 잡다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돼.  예쁜 것을 찾으러 쇼핑몰에 가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쇼핑몰이 없으니까.  목장과, 하늘의 해와 달 별, 그리고 개울, 개울에 물을 먹으러 오는 소들과, 두마리 집 고양이들. 그것들로 이미 충만해. '

 

 

 

그렇게 산사의 스님처럼 살다가 -- 챨리의 초콜렛 팩토리 같은 마법의 성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마법의 성이다. 아웃렛이 있고, 공원식 쇼핑몰이 있고, 뭐든 근사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눈이 닿는 곳 어디서나 예쁜 색상의 물건들이 나를 부른다. 나는 헉헉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전기 오른듯 쓰르르 울리며 미세한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렇게 물건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참 아름다운 지옥' 같아.  '참 아름다운 감옥' 같아.  나는 예쁜 것들을 탐하며 동시에 그것들의 무용함을 안다. 그래서 가슴이 찌르르 아프다. 

 

 

창밖으로 소들이 순한 눈으로 풀을 뜯으러 올 때, 그리고 그 곁으로 검정 고양이 한마리가 느릿느릿 지날때, 그 검정고양이가 우리집 아기 고양이와 흡사하게 생겨서 -- 아하! 저 놈이 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고양이의 어미구나! 깨달을 때 내 심장에서는 여리고 고운 클래식 기타 소리가 났었다.  그것으로 충만한 시간 그리고 공간.  하느님께서는 장차 나를 어디에 살게 하시려는지 그분께 묻고 싶어진다. 하느님, 저의 다음 행로는 어디인지요?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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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20. 2. 7. 21:15

숙명여대 성전환 합격자, 논란 끝에 "입학 포기"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올해 대학 입시에서 숙명여자대학교에 합격한 A씨가 입학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A씨는 JTBC와의 취재에서 "합격 소식이 알려진 이후로 자신의 입학을 반대하는 움직임에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면서 "숙대 입학을 포기하는 대신 여대를 제외한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앞서 숙명여대는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A씨를 최종 합격시켰고 이후로 학교 안팎에서는 찬반 논란이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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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하여 '여성'임을 법적으로 인정 받은 여성이 합법적으로 여자대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여, 그 대학으로부터 적법하게 입학 허가를 받은 상황에서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학생들 때문에 입학을 포기하였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 역시 '여자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숙대생이라면 나는 그 사람 편에 설 것이다. 

 

 

관련 기사의 숙대생 대화방 내용도 조금 훑었는데, '여성의 파이를 왜 그런 사람이 나눠 먹는가'하는 불만을 표시한 숙대생도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음...뭐 파이좀 나눠 먹으면 안될까? 

 

 

음, 공포심을 느끼고 입학을 포기한 그분께 말씀 드리고 싶다.  여대 가지 마시라. 남자 여자가 섞여서 사는 세상에 뭐가 답답해서 대학 공부를 여대에서 하려 하는가? 남자 여자 섞여서 동등하게 서로 협력하고 나누는 문화에서 공부하는 것이 여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파이'를 남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문화를 흡수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내 비록 내가 다닌 여자 대학에서 귀한 교육을 받았고, 귀한 친구들을 만났으며, 귀한 교수님 슬하에서 많이 크고 많이 도움받고 성장하였으나, 내가 다시 선택할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자발적으로 여자대학에 입학하지는 않을 것이다. 옛날엔 왜 여자대학 들어갔나구? 아, 학비 대주는 아버지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여대로 입학원서를 들이 밀어서 -- 아버지 학비에 기대어 사는 내 신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냥 울면서 여대에 갔을 뿐이다.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은 찬반 논란이 일었다. 숙명·덕성·동덕·서울·성신·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 6개 여대의 23개 여성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A씨의 입학을 반대했다. 숙명여대 일부 동문은 A씨의 입학에 찬성하며 ‘성전환자로 숙명여대 최종 합격한 학생을 동문의 이름으로 환대한다’는 제목의 연서명을 온라인에 올려 해당 학생에게 응원을 보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출처: 중앙일보] 박한희 변호사, ‘숙대 포기’ 트랜스젠더 위로 “함께 살아가자”

 

내가 졸업한 학교도 이따위 기사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서 나는 정말 인생 최초로 내가 '여대 출신'이라는 것이 아주 챙피스러워졌다.  그전에는 그냥 아버지의 선택으로 여대 간것이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쪽팔린다 내가 저런 학교 출신이란 것이. 아...망했다... 트렌스젠더 여성이 여대에 들어오는 것이 '여성의 권리'를 위협한다고?  여성의 권리가 뭔데? 여성에게 권리란게 있었어?  나는 솔직히 남자로 태어나서 하필 여자로 바꾸는 사람이 이해가 안된다 왜냐하면 이따위 남근중심 사회에서 나도 가능하면 남자가 되고 싶은 판이었으니까. 근데 뭐가 답답해서 여자가 되냐구...그게 여성의 권리 침해가 돼? 응? 

 

그럼, 내가 여성의 진짜 권리가 뭔가 말해주겠다. 다른 누구도 침해 할 수 없는 여성의 권리는 -- 약자를 보듬어 주고, 슬픈자의 어깨를 감싸주고 그러는거다. 그게 우리가 가진 천부 권리이다. 사랑의 권리, 그것이 여성이 가진 최고의 권리이다.  그것은 남이 빼앗지 못한다. 좀 정신들 차리셔 여성 동지들. 우리가 가진 진짜 힘은 힘없이 쫒겨나가는 사람의 편에 서 줘야 하는거라구. 페미니즘은 늘 소수자와 연대해 왔다구, 그게 페미니즘의 근간이라구... 아이구. 

 

그러니까 그 분, 여대에서 공포심 느끼고 입학 포기한 그 여학생 -- 지금은 비극이지만 장차는 잘 된 일이다. 그냥 남녀공학 가서 뒤섞여서 사는 방법을 익히시는 것이 훨씬 좋다. 크게 보면 득이지 손해가 아니다. 

 

 

추신: 파이 부스러기조차 남들과 전혀 나눌 생각이 없는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 (그 중에서 트렌스 젠더 학생을 겁주어 쫒아낸 그 학생들) -- 그대들 앞의 그 대단한 파이나 꼭꼭 씹어 먹기 바란다. 배탈나지 않게 꼼꼼하게 씹어먹고 잘 살아내시길. 남의 고통따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성 지도자의 요람이시어.  (니네들 말야, 딱 거지가 다른 거지한테 거지 발싸개 쪼가리 빼앗길까봐 집단 린치 하는것으로 밖에 안보여. 그 잘난 거지같은 학교 나와서 대체 뭐 할건데?)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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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1. 19. 15:04

인턴 남학생이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나타났다. 

나: "너 학기 마치고 군대가니?"

그: "네... (싱긋)"

 

학기가 끝나갈 즈음, 굉장히 고지식하고 평범하고 '저는 모범생입니다'라는 표를 온몸에 달고 다니던 남학생이 갑자기 머리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거나 파마를 하고 나타난다면, 그는 99퍼센트 '난리'를 치고 있는거다.  군대 가기 전, 청춘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특히 평소에 얌전하고 딴짓 안하던 모범생들이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여지 없이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특히 아들 가진 부모들이 흔히 자조적으로 쓰는 말인데, 모범생이나 문제아나 결국 인간이 평균적으로 보이는 '지랄'은 다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릴때 몰아서 하고, 어떤 사람은 뒤늦게 난리를 치고 그런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어릴 때 말썽 부리는 애들, 나중에 자라면 더 효도를 하기도 하고, 어릴 때 부모 속 썩이지 않던 자식들이 늙어서 부모 쓰러지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는 그저 그런 현상을 지켜 볼 뿐이다. (나는 내 '지랄'의 총량을 다 써먹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새삼 이 나이에 지랄떨게 뭐 있나 싶은 것이지만....사람 일은 죽을 때까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니 늘 스스로를 조심해야 하리라.)

 

"야, 너 군대 가면 나 어떡해?" 

 

내가 슬픈 표정으로 신세한탄을 하자, 이 착한 모범생이 빙긋 웃는다, "안 갈까요, 그럼?" 

 

가라, 가, 군대는 얼른 갔다 와야 하는거지. 어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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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31. 20:31

 

내가 '그 어떤 감리교회'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그 교회를 세웠다는 '원로목사'라는 분의 설교가 괴이쩍고 납득이 안갔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박근혜씨가 아직 대통령이던 시절,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걸 문제삼아야 합니까" 이따위 소리를 해서, 내가 너무 화가 나서 '크리스마스 예배'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다.  그는 동성애자들이 축제벌이는 곳에 '반대시위'를 하러 다니던 목회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설교 시간에 다시 설교 재료로 삼았다. 

 

내가 그따위 교회를 그래도 꾸역꾸역 다녔던 이유는 단 한가지, 그가 곧 정년퇴임을 하여 물러날 것이라는 지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그 원로목사님의 휘하에 두명의 부목사님들이 있었는데, 이분들은 극히 정상적이고 바른 분들처럼 보였다. 설교도 정상적이었고 원만해 보였다.  그래서 저 이상한 노인이 정년퇴직하여 교회를 나가면 저런 정상적인 부목사님들이 목사님이 될 것이고 교회는 정상적이 될거야라는 얄팍하고 순진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간에도 부목사님 한분이 잔뜩 불행한 표정으로 사역하다가 따로 살림차려 나갈때 (개척교회하러 떠날때), 나도 그쪽으로 옮길까 하고 흔들린적도 있었지만, 그냥 귀챦아서 그 노인이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게으른 인간이니까 조금 참아서 될 일이면 참는쪽으로 하는 편이다. 

 

드디어 올해 초에 고대하고 고대하던대로 그가 정년퇴임/은퇴를 하긴 했는데 '원로목사'라고 스스로 자기를 추대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달에 400만원의 원로목사 월급을 받아 간다고 한다. 은퇴후에 그의 얼굴을 한번도 교회에서 보지 못했지만 그는 한달에 400만원 생활비가 적다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한다. 물론 그 월급은 그가 퇴직금조로 빼간 수억원과는 별도로 지급되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듣고, 그 다음부터 그 교회에 돈을 안 내겠다고 작정했지....  에라이 날도둑 목사놈아. ) 그리고 교회는 엉망이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그 사층짜리 신축교회를 그대로 곱게 '남에게' 넘기고 물러날 생각이 추호도 없거니와,  교회는 (1) 지금 다른데서 목회를 하고 있는 그의 '아들'이 그 교회를 물려받는것이 마땅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일부 장로들과  (2)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교회 세습은 말도 안된다, 부목사님이 일 잘하시니 그냥 그 분이 자리 넘겨 받으면 된다는 일부 장로들의 전쟁터가 된 것이다. 

 

그 노인이 자취를 감춘 후 6개월동안 교회는 '원로목사파'와 '부목사파'로 '분단국가' 처지가 된 것 같았는데 '국민투표'식으로 전교인 투표를 해봐도 70퍼센트가 '부목사'를 새로운 담임목사로 추대하자는 찬성표가 나왔지만, 그렇지만 국민투표고 지랄이고간에, 지방 감리교단이 '원로목사'의 수중에 있었다.  자취도 보이지 않는 원로목사 뜻대로 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결국 몇년 후에는 그의 아들이 그 교회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분분해졌다. 게다가 현재 부목사님은 '난'을 일으켰다고 징계를 먹는다나 뭐라나.   교회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보니, 교단이 원로들 수중에서 놀아나면 개혁이고 뭐고 없는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지역 감리교단 자체가 완전히 썪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에잇.  어디가서 예수쟁이라는 말도 못하게 생겼다. 너무 부끄러워서.  예수님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먹고 사는 목사라는 직업인들이 내 삶에 끼어들었다는게 챙피스럽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단은 쫒겨나는 부목사님들이 손을 잡고 새로 세운다는 교회쪽으로 가서 예배를 볼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왜 이 썩어빠진 감리교단을 떠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1) 어차피 사방 눈씻고 찾아봐도 개신교 교단 전체가 썩어가고 있다. 희망이 없다. 의탁할 곳이 없다.

 

2) 천주교나 성공회에 간들 뭐 그들이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인간의 후예들이 다 거기가 거기지. 사람 자체를 신뢰하면 안되는거다. 원래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3) 그럼에도 나는 예수님께 의지하여 일평생 살기로 서약한 바, 어쨌거나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그래야 한다. 그러니 예배처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튼 예배를 계속 드리기 위한 방편으로 새로운 교회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교회를 세우느라 고생중이신 목사님께, '나는 당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당신을 신뢰하지도 않소. 나는 단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만을 믿을 뿐이오. 당분간 당신과 함께 예배를 보기로 했으니 한동안 좋은 길 동무가 되기를 희망하오' 뭐 이런 메시지만 보내놨다.  

 

미국 감리교는 '중앙에서 파송'하는 시스템이라서 목사들이 '이건 내가 세운 내 교회, 우리 아들 준다' 뭐 이따위 소리하는 작자가 없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처럼 몇년 있다가 떠나면 새사람이 오고 그런다.  한국 감리교는 '이건 내교회, 내 아들에 아들에 아들에게 물려줄 내교회' 이따위 생각 가진 목사들이 넘치는 것 같다.  내가 다니던 미국 감리교가 새삼 그립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수님 손을 꼭 붙들고 살고 있다. 

 

한국에는 참 나쁜 목사놈들이 많다. 에라이... 나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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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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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15. 19:34

설리

 

어제, 퇴근후 무심코 열어본 스마트폰 뉴스채널에서 두가지 뉴스를 동시에 발견했는데, 법무장관의 사표 소식과, 연예인 설리가 사망한것 같다는 보도였다.  내가 먼저 클릭한 것은 설리씨의 사망에 관한 뉴스였다.  아니, 그 꽃같이 예쁜 아가씨가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인가?  

 

법무장관이야 누가 하거나 말거나, 결국 누군가 할 것이고, 세상은 뭐 이럴때도 있고 저럴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리'를 대체할 자가 누구란 말인가?  아무도 그를 대체할 수 없으니, 설리를 잃은 것은 참 슬픈일이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사람이 한창 연예인으로 활동을 하던 시절에 나는 미국에서 내 터전을 쌓느라 분주했고,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때 그는 왕성한 시기를 지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왕성한 가수 활동을 계속 했대도, 쇼프로를 보지 않는 내게는 결국 마찬가지로 눈에 안띄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느 화장품 회사 모델로 나온 그의 모습이 너무나 독보적으로 상큼 발랄, 요정같이 산뜻해서 '저이가 누군가?' 궁금해하다가, 그의 이름이 '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 외에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이따금 가십성 기사에서 그의 일상 사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정도였는데, 어쩌다 보이는 가십성 기사의 사진 속에서도 그는 '요정'처럼 여전히 아름다워서, '이렇게 요정 같이 산뜻, 풋풋한 아가씨라면 뭘 해도 사랑스럽겠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평생에 처음으로 아주 빨간 (오리지날 빨강) 립스틱을 하나 마련한 것도 순전히 '설리'가 빨간 립스틱을 발랐을때 단지 그냥 립스틱만 바른 것 뿐인데도 그가 너무나 요정 같아 보여, 나도 모르게 홀려서 나도 빨간 립스틱을 집어 들었던 것이지.  물론 내가 설리의 빨간 립스틱을 아무리 바른대도 절대 절대 설리의 사랑스러움을 먼지만큼도 얻어 올 수 없음을 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상큼한 스물다섯 아가씨가 이 투명한 가을날, 그렇게 가볍게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세상에서 다시 보기 힘든 꽃 한송이가 문득 사라진 것같아, 영 아쉽고 안타깝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래도 상실감이 문득 찾아온다.  그 예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니...  

 

그래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조건, 무조건, 사람에게 친절하자.  그 사람이 나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리고 무조건 응원해주자.  그가 내 응원에 마음을 돌이킬지도 모르지 않은가? 죽음에서 삶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친절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편이 되어주자.  너무 슬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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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2. 19:09

연구실에서 쌓인 일을 '전투 모우드'로 해 치우고 있는데, 이슥한 저녁, 여학생 한명이 찾아왔다. 내 연구실은 대체로 문이 반쯤 열려 있으니 와서 기웃거린다. 

 

"왜?" 

 

나는 마치 시골 가겟방을 지키는 아주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문지방을 넘어 들어서는 동네 아이를 대하듯 묻는다. 

 

 

"교수님, 혹시 우산 있으세요? 밖에 비와요." 

 

비가 오겠지. 태풍 미탁이 상륙 했다고 하니, 밖에 비가 오겠지. 그 학생이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지내면서 걸어서 통학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운전하며 외출하는 길에,  걸어가는 그 학생을 몇차례 본 적도 있다.  나는 그냥 턱짓으로만 문앞 의자 옆에 세워져 있는 우산을 가리킨다. 

 

 

"저깄다."

 

"저 써도 돼요?"

 

"응" 

 

"그럼 교수님은 비오는데 어떻게 하세요?"

 

"난 그냥 비 맞으면 된다." 

 

"어머! 그러면 제가 못 빌리지요....전 교수님이 우산이 여러개 있는가 보러 왔지요." 

 

"너를 비를 맞게 하느니, 내가 비를 맞고 말지. 너는 나의 소중한 학생이니까." 

 

나는 빙글빙글 웃는다. (거짓부렁이라는 뜻이다.). 비가 온들, 나는 사실 비 맞는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후드셔츠를 입고 있고, 내가 연구실에서 숙소로 달려가는 길은 정말 짧다. 비를 맞을 거리는 더 짧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우산을 세워 놓을 뿐, 웬만한 비는 그냥 맞고 돌아다닌다. 

 

 

학생은 내 우산을 들고 연구실을 떠났다. 

 

나는 다시 일을 한다.

 

문득, 비오는 날 내 생각을 해 낸 그 학생 얼굴이 떠오른다. 비가 올 때, 우산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렸다니 내가 그에게 영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우산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라면, 나 아주 실패한 인생은 아닌것도 같다.  우산을 빌리러 온 내 학생이 우산보다 더 큰 위안을 내게 준것도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명예라는 것도 없어진지 오래고,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는 오늘날의 대학교수라는 직업.  나는 감히 학생들이 나를 존경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학생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나 스스로 의문스럽다. (나는 엉망이다.  인정한다.)  그냥, 비가 오는 날 우산이 필요할 때, 혹은 손을 다쳐서 위로가 필요할 때, 그럴때, "교수님, 저 우산이 없어요. 교수님, 저 손을 다쳤어요" 뭐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무살 친구, 넌 내게서 우산을 얻었고; 나는 너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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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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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9. 27. 16:19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가 사회학 강의중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 제도였다는 강의를 했다고 하는데  내가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사회학 전공자도 아니지만,  내 증언은 남길수 있다.

 

 

우리 엄마가 1935년생이다. 광복되던 해에 만 10세 어린이였다는 말씀이다. 육이오는 엄마가 15세에 발발했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당신의 어린 시절 '왜정'때 얘기며, '소학교' 다니던 시절 얘기며 '피란'가던 얘기를 아주 생생하게 들려주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하여 거짓부렁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엄마가 '왜정'때 겪은 얘기 중에 '정신대' 얘기도 있다.  지금은 '위안부 (Comfort Women)'으로 표기하지만 엄마는 왜정때의 말인듯 '정신대'라는 말을 쓰셨다.  엄마의 증언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왜정때, 느이 이모 (너희 이모)도 일찍 시집을 갔어. 처녀들을 왜놈들이 정신대로 잡아갔거든. 그래서 처녀들 정신대로 끌려갈까봐 빨리 시집을 보내는 집에 많았어.  새댁들도 멀리서 왜놈 순사가 보이면 정신대 끌려갈까봐 얼굴에 검정 재를 칠하고, 여자들을 헛간에 숨기고 그랬어. 정신대 끌려가면 죽는거야.  어린 나도 느이 외할아버지가 '저기 순사온다!' 그러고는 얼굴에 재를 검게 묻혀가지고 숨기고 그랬지."

 

이것이 경기도에서 식민지 시절에 성장한 여성, 우리 엄마의 무한 반복되던 증언이다. 어릴때  '왜정' 얘기와 '육이오'얘기를 하도 실감나게 들어서 마치 내가 경험한 것 같은 공포를 느낄때도 종종 있었다.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 행위였다고?  혹시 류모 교수 엄마나 가까운 가족분들이 자발적으로 일황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몸을 바치셨던 드라마틱한 가족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경기도 일원에서 성장한 사람들 얘기는 류모씨의 얘기와는 참 많이 동떨어져있다. 류교수라는 분은 혹시 개인적으로 가족사에 그런 그림이 있었던 것을 일반화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만약에 그것이 류교수 가족의 문제였다면 자발적으로 일본에 애국하기 위해서 위안부의 길을 걸어간 그분들에 대하여 역시 슬프게 생각한다. 류교수 힘내고 당신 가족중에 그런 분들을 많이 위로하시라.  그러나 일반화는 하지 말기 바란다.  부끄러운줄 아시라.  아주 옘병을 해요, 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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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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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9. 27. 15:54

엄마 집에 있던 김치 냉장고가 작동을 멈췄다. 그 자리에 있은지 십년도 넘은 것이고, 형제 중에 누군가가 쓰던걸 엄마한테 넘긴 것이라고 하니, 수명이 다 할법도 할 것이다. 그 김치 냉장고는 내가 기억하는 한 고대의 시간부터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내 집에서 김치냉장고를 가져 본 적이 없어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것도 잘 모른다.  김치를 많이 먹지도 않으니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내 시선으로 볼 때, 엄마 집에서 김치 냉장고가 사라진대도 별로 상관이 없어 보였다.  엄마 집 냉장고는 우리집 냉장고보다 두배쯤 클 것이다.  사실 엄마의 김치 냉장고에 김치가 많이 들어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창고'처럼 이것저것 구겨 넣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 김치냉장고를 내다버리고 덕분에 넓어진 주방을 향유하시면 되는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엄마는 고장난 것이라도 그냥 끼고 살고 싶은 표정이었다.  노인들은 뭘 버리는 것을 무척 섭섭해하신다.  그래서 살살 달래며 이리저리 물어보니, 그 자리를 비게 놓아두면 안되고, 그러면 추석 명절에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들이 드린 용돈이 꽤 된다며 그것으로 김치냉장고를 하나 사면 되겠다고 하신다.  어딘가 마음이 아려온다.  엄마가 왜 돈이 없지? 엄마가 왜 손자 손녀들이 드린 용돈을 모아서 살림을 사실 생각을 하시는거지? 그렇게 돈이 없었어? 왜? 여러가지 의문이 든다. 엄마가 구차스럽게 살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형제들 사이에서 중론은, 지금 엄마 냉장고만해도 충분히 크니까 김치냉장고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김치냉장고 내다 버리고 그냥 냉장고로 생활해도 불편할게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도 동일했다. 

 

그런데, 

 

꼭 사지 않아도, 언라인으로 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의 신상품 카탈로그를 보거나 패션쇼를 보는 일은 눈요기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그걸 구경하다보면 하나 사고 싶다는 허망한 욕망이 질기게 들러붙기도 한다. 모 패션브랜드의 가을 카디건 한장에 백만원도 넘는 것을 눈요기로 구경하다가 문득, 저게 한 오십만원이라면 내가 그냥 눈 질끈 감고 사지 않을까? 왜냐하면, 갖고 싶으니까.  백만원이 넘는 지갑 한개를 침 흘리며 들여다보다 생각한다 - 나 기분 내키면 저것도 지금 당장 살 수 있는데...

 

그러다 문득, 엄마의 김치냉장고 생각이 났다.  노인 살림에 어마무시한 김치냉장고도 필요없고, 엄마가 원하는것은 그냥 박스형 단촐한 것인데. 그거 얼마나 하나? 검색을 해보니 예쁘장한 것이 육십만원 정도면 되는 정도다. 

 

만약에 엄마가 어느 백화점 가방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이쁘장한 육십만원 짜리 가방을 가리키면서, "저것 이쁘구나. 나 저것 갖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나는 두 말 않고 그것을 사 드릴 것이다. 나라면 돈 아까워서 안 사도, 엄마가 사달라면 예쁜 가방 기꺼이 사드린다.  쓸데도 없는 가방을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김치 냉장고를 내다버리고 나면 허전하니 그 자리를 김치냉장고 자그마한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데, 내가 왜 그것을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지어 버린것인가?  예쁜 옷은 꼭 필요해서 사는가? 그냥 예쁘니까 산다.  내가 신발이 없어서 기십만원 짜리 구두를 사나? 아니 그냥 그 구두가 예뻐서 갖고 싶어서 산다.  명품 가방은 필요해서 사는가? 아니, 그냥 그게 갖고 싶어서 갖는거다.  그러면 김치냉장고는 반드시 필요해야만 사는가?  그것도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하면 사드리면 되는거다.  

 

그래서 나는 언라인으로 엄마가 갖고 싶어하시는 자그마한 김치냉장고를 주문하여 엄마 주소를 찍어 보냈다.  그러고나니까 머릿속이 맑아졌다. (사람이 돈을 쓰면 잠시 잠깐 마약 효과가 나는것 같다. 머리가 맑아지고 가벼워진다. 하하하.)  나는 왜 내가 좋아하는 패션 용품은 돈 아까운줄 모르고 사면서, 엄마의 생필품인 김치냉장고를 단지 '냉장고 넓으니 그것이 따로 왜 필요한가?' 이런 꼬리표를 달고 필요없다고 단정한건가?  

 

내가 무엇이 필요하다/불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실용성'의 측면이 아니라 '애장품'의 측면에서 바라보니 그림이 전혀 달라진다. 엄마 옷 오십만원짜리는 망설임없이 사 줄수 있으면서, 김치냉장고는 왜 그렇게 매몰차게 '필요없다'고 말하는가?  그걸 엄마가 좋아하는 옷이나 가방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래서, "엄마, 곧 김치냉장고가 갈거야. 빨간색 예쁜 김치냉장고가 갈거야"하고 전화를 드리니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반기신다. 저렇게 좋아하시는걸 내가 그냥 지나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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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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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9. 16. 13:07

 

 

어느장관의 자녀로 인해 대한민국 수시입학과, 힘있고 돈있는 이 사회의 부모들의 넘치는 후계자 사랑이 도마위에 올라있다. 뭐,  장관 따님의 입학 서류는 5년 기한이 지나 모두 폐기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검찰이 알아서 조사할 일이고, 사실 그 일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다.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냥, 좀, 궁금해진다.  최근 5년 사이에 한 해를 정해서, 그 한해에 서울대학교에 수시 입학한 학생들 서류를 싹 다 조사를 하여, 특히 학계, 재계, 언론계, 정계, 관계, 기타 힘쓰는 부모들 슬하의 자녀들 중심으로 이들의 스펙이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연구를 하는거다. 빅 데이타 연구자들 몇 명 투입하면, 관계도가 나오지 않겠는가? 

 

문제가 발견되면, 5년 데이타 다시 조사하고, 각 '인기있는 대학'으로 조사를 확대해 나가는거다. 자식가진 죄인으로 넘쳐나는 기묘한 사회.  힘없는 부모를 가진 청소년들도 공평하게 기회를 가질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일이 참 요원해보인다. 

 

나 역시 자식 가진 죄인이니 뭐라고 입도 뻥긋 하지 못할 처지이긴 한데, 그래도...나는...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ESL 프로그램 책임자로 있으면서도, 가끔 자식 데려다가 학교 일도 막 시켜 먹었으면서도,  내 자식 인턴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하러들면 왜 못하겠나.  상장도 만들어 주러들면 왜 못하겠나.  하지만, 그건 참 비루하고, 염치없고,  남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걸 그렇게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할 수 있다니...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냥 바보로 남기로 하자, 기왕에 이렇게 된거.)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일부>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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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5. 21. 12:24

 

Daniel Pink 의 'When' 이라는 책을 보면, 미래시제가 분명한 언어권 (예: 영어, 한국어)의 사람들과, 미래시제가 분명치 않아서 (예, 중국어) 현재 시제가 상황에 따라서 미래로도 해석이 가능한 언어권 사람들이 행동 패턴에 약간 차이가 보인다고 한다.  핑크는 '언어'가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친다기보다는 그들 문화권의 행동 패턴이 '언어'에도 반영된다는 식으로 그 상관 관계를 설명했다.  (언어가 행동을 결정하는가  환경이 언어에 영향을 끼치는가는 해묵은 언어학계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어쨌거나.)

 

 

이 '미래시제'의 있고 없고가, 그 언어권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미래시제'가 있는 언어권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체계적으로 준비 하는게 아닐까 그런 상상을 했었는데 (내가 책 읽을때 그런 상상을 했었다), 결과는 정 반대였다.  현재시제 안에 미래시제까지 뒤섞인 (미래 시제가 분명치 않은) 언어권의 사람들이 그들의 '노후대책'에 더 열심이라는 통계치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언어속에서 현재와 미래가 혼재되어 있는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먼 남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미래'의 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언어권 사람들이 미래 계획에 방심 한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현재 닥친 일이 아니니까. 

(예수님은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말아라. 오늘 하루의 근심으로 족하다 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고민에 빠진 나.)

 

흔히 '비단이 장수 왕서방'은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서의 중국인을 칭하고, '중국인들은 현실적이다'라는 통념도 있는 편인데, 아마 이들의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재물을 축적하는 것에 열심인' 태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미래'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노래 할 수 있는 먼 훗날이 아니고, 현재의 일이므로, 미래의 현재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 돈을 아끼고 돈을 모아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사고를 확장시켜 생각을 해본다.

 

 

죽음을 미래의 별개의 사건으로 상정하고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과, 오늘 하루 '죽음'을 함께 사는 사람의 삶의 패턴도 다를 것이다.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과, 죽음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이 사는 사람은 분명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미래에 대한 준비도 별로 안하고 오늘 하루 살고 마는데, 왜냐하면 내일 아침에 내가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데 왜 내일 걱정을 해야 하는가?  이런 사고 방식은 뭐지?  내 하루에는 죽음이 깃들어 있는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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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5. 19. 06:06

내가 세례받은 미국 감리교 예수쟁이이긴 한데, 다닐곳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고민하다가 괴상한 한국 감리교에 다니고 있기는 한데, 결국 내가 늘 갸우뚱하며 회의적으로 쳐다보던 그 교회에서 일이 터졌다. 

 

내가 소속한 교회를 '괴상한 한국 감리교회'라고 말하는 나도 내가 한심하다.  왜 그런델 다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한국 교회 거기서 거기이고, 눈 씻고 찾아봐도 다 거기서 거기라서, 에라 모르겠다 나는 기도하고 예배 드릴 '장소'가 필요하니 '기도'하고 '예배'드리러 간다는 차원에서 다니고 있다는 변명을 늘어 놓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연말에는 나보고 착실하고 성실하게 다닌다고 (매일 새벽예배 나가고, 일요일 예배에 빠짐없이 나가고 헌금도 착실히 하니까) '집사' 안수를 준다나 뭐라나 하는데, 내가 "I am fine, thank you." 이러고 '고사'하고 말았다.  심리적으로 나는 그 교회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내가 그 교회와 거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구체적인 이유는 - 그 교회를 세운 목사님이 떠억하니 자기 사진을 교회 앞 입간판에 걸어놓고 무슨 가겟집 주인아저씨 같이 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촌스러운 교회를 다닐수 밖에 없는 이 불쌍한 성도를 예수님 굽어 살피소서).  나는 그 가겟집 주인아저씨 같은 목사님이 보기 싫어서, 그분이 설교하지 않는 일요일 이른 아침 시간에 (젊고 정직한 부목사님이 설교하는 시간에) 예배드린다. 그게 내 생존 전략이다. 

 

내가 그래도 그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조만간 가겟집 주인아저씨같은 초대 목사님이 은퇴한대서, 그러면 물갈이가 되려나, 나도 좀 제대로 예배드릴수 있게 될까 (목사를 피해다니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까) 뭐 그런 희망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 온 것이지. 그래서, 아무튼 얼마전에 그 가겟집 주인아저씨같은 목사님이 명목상 은퇴라는걸 교회법에 따라서 하긴 했는데, 뭐 곳간 열쇠를 여태 틀어쥐고 내 놓지를 않는다고 한다. (내가 너 그럴줄 알았다. 아 처음부터 맘에 안들더라...뭐 이러고 만다.) 

 

뭐 최근에는 민주적 직선제 시스템으로 교회 신도들이 '국민투표' 형식으로 차기 담임목사님 선출을 위한 선거를 했는데, 70퍼센트 이상 득표한 부목사님에 대한 목사 승인 절차가 교회 인사위원회에서 부결이 되었다고 교회가 난리가 났다. 당회 한다고 나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싸움이 벌어졌다. 간단히 원로목사파와 원로목사가 사라지기를 희망하는 계파간에 전쟁이 난 모양이다. 나야 처음부터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예수님께 기도드리러 교회를 드나들던 사람이라 그냥 건성으로 구경을 하는 편인데,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 그 가겟방 주인아저씨 품격의 초대 목사님이 아무래도 '이걸 내가 어떻게 세운 교회인데!!!' 뭐 이런 미련을 가지고 몽니를 부리고 자빠져 있는 형상이다. 

 

그래도 상황이 좀 딱해서, 70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하고도 구석에 얌전히 찌그러져 있는 부목사님에게 내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대략,

 

"목사님 기뻐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시라고 하셨으니 기뻐하십시오. 일단 70퍼센트 이상 득표하신것을 기뻐하십시오. 결국 한때 빛나던 목회자였을 저 노인께서 온갖 치졸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으니, 성난 신도들이 그동안 참고 봐주고 넘겼던 그의 비행을 하나하나 백일하에 드러내놓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빤쓰까지 다 털리고 쫒겨나게 되는 형국인데, 저분만 그걸 모르니 딱한 지경입니다.  저 가련한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대로 정의를 세우시게 되겠지요. 관전평."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나는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매일 갈때마다 감사헌금 봉투에 헌금을 담아 가는데 (얼마나 착한가. 하느님 사탕이라도 잡수시라고 매일 사탕값이라도 갖고 가는 것이다. 착한 손녀딸처럼), 며칠전부터 나는 텅빈 헌금 봉투에 이러한 메시지를 적어서 낸다. 

 

"저 타락한 원로목사님이 내가 낸 감사헌금과 십일조 이런거 다 털어서 퇴직금이니 위로금이니 온갖 명목으로 다 뜯어가고, 게다가 월 350만원씩 꼬박꼬박 원로목사님 월급으로 챙겨간다니, 그 돈 다 회수할때까지 --하느님 저는 한푼도 헌금 못합니다. 하느님 드시라고 사탕값 드렸더니 하느님께서 엉뚱한 놈한테 주시다니요. 저 삐졌습니다."

 

 

우리 하느님, 나한테 암말도 못하신다. 하느님, 그러니까 교회를 바로 세워 놓으십시오. 제가 안심하고 하느님 사탕값 갖다 드릴수 있도록.  나는 여전히 새벽기도에 나가고 예배에 나간다. 이건 우리 하느님과 나 사이의 '약속'이니까. 목사놈이 무슨 지랄을 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처음부터 '목사'는 내 신앙체계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오직 하느님/예수님과 나의 관계에만 치중할 뿐이다.  나머지는 다 악세사리. 없어도 그만이다. (착한 교회에서 착한 목회자의 인도를 받는것은 좋은일이지만, 없어도 할 수 없는거지 뭐.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어떤 책임 의식도 있는데, 내가 착한 목사님들을 좀 돕고, 고민하는 이웃을 위하여  대범하고 쿨하게 행동하는 것도 좋을 것 이다. 그러나 그것또한 부수적인 장치이다.  예수님과 손잡고 가면 된다. 다정한 연인들처럼. 예수님하고 나하고.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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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5. 18. 18:20

대학 근처에 있는 남자고등학교 학생들과 여자 고등학교 학생들이 지원한 '대학 체험' 프로그램.  30여명 안팎의 두 학교 학생들이 토요일 오전에 모여서 두시간 가량 '커뮤니케이션' 주제의 수업을 듣는다.

 

2시간씩 네 차례에 걸쳐서 진행되는 워크숍에서 내가 계획한 내용들은

 

  1. What is communication?   What is intrapersonal communication?
  2. What is interpersonal communication?
  3. What is intercultural communication?
  4. What is mass communication? 

 

워크숍이니 만큼, 일방적 강의보다는 주로 짝이나 팀 중심으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나가며 스스로 주제에 대한 답을 찾거나 정의를 내리는 작업 위주로 진행한다. 오늘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는 날이라서, 몇가지 Information Gap 과제를 진행했는데 눈부실 정도의 장면들이 많이 연출 되었다. 

 

여자고등학교, 남자고등학교에서 온 학생들이라 남학생과 여학생들은 남과 북처럼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 나는 간단히 여학생에게 1부터 15까지 번호를 주고, 남학생에게도 동일하게 번호를 준 후에 동일한 번호끼리 짝을 지어 앉도록 하는 식으로 전혀 모르는 남/녀 학생들을 짝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합심하여 오직 '영어 말하기'로만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과제를 주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주욱 해오는 작업이기도 하다).  서로 전혀 모르는 동급생 여학생 남학생이 짝이 되어 함께 뭔가를 하려니 쑥스럽기도 할 것이다. 어떤 팀은 과제가 주어지자 마자 평생 알고 지냈던 친구들처럼 서로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문제 해결을 했고, 어떤 팀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것이 영어의 문제인지 개인 성격 (낯가림, 수줍음)의 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두번째 과제를 주었을 때는 망설이는 사람없이 모두들 잘 해 낸것으로 보아 '낯가림'을 잘 극복해 낸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짝을 지어 의사소통 작업을 열심히 해 낸 학생들을 이번에는 네명씩 소그룹으로 묶어서, 각 팀별로 'What kind of skills do we need to make our interpersonal communication successful?'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라고 했다.   강의실 벽에 넓직한 보드들이 삼면에 부착되어 있으므로 학생들은 팀별로 보드 앞에 모여서서 리스트를 작성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일단 낯선 여학생 남학생이 짝을 이루어 몇가지 작업을 한 후, 이들을 소그룹으로 묶어주자, 이들은 '미래세대' 답게 별다른 저항감 없이 기민하게 서로 마주보며 토론을 하고 리스트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주저함 없이 발표를 해 나갔다. 씩씩하게, 용감하게, 막힘없이. 

 

그들이 작성한 리스트에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 책에서 볼 수 있을만한 내용들이 총 망라 되어 있었다.  예컨대

 

 

  1. Respect
  2. Empathy
  3. Rapport
  4. eye contact
  5. Don't interrup
  6. Listen carefully
  7. Speak clearly
  8. Double check
  9. Speak loud enough
  10. Understand culture
  11. gesture
  12. ask again
  13. agree
  14. polite
  15. smile
  16. remember name of the person

 

 

나올만한 것 다 나왔다. 

 

 

영어가 유창한 학생들도 있고, 머뭇대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영어' 강의를 듣고 이해하고, 영어로 말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영어를 대하고 사용하는 강사(나)가 편안해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이들이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영어 구사를 할지는 미지수이다. 대체로 학생들은 내 앞에서 영어 사용하는 것을 편안해 하는 편이다. 나는 '저 사람하고 영어 하면 무섭지 않아'하는 대상으로 이미 특화되어 있을 것이다. 어느새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듯 하다. (나는 어쩌면 나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어떻게 편하게 영어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을까?) 

 

 

처음만난 남학생 여학생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최선을 다해서 영어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장면들이 내 눈에는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다웠다. 고등학생들이지만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과 별 실력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아무래도 소속한 고등학교에서 스스로 자원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토요일에 모 대학에 온 것이고, 그러므로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서 인지도 모른다.  그들만큼이나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나도 즐겁다.  이들이 최대한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수업 계획을 치밀하게 짜는 것이 힘든 일이긴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있다.  어느 십대 청소년들의 빛나는 순간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아주 잠시나마. 그것이 아주 잠시나마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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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5. 18. 09:46

성경의 예수님 일화 중에서, 귀신들린 사나이에게서 귀신들을 몰아내자, 그 악귀들이 갈데를 몰라 고민하다가 들판의 돼지떼에게로 옮겨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종종 농담삼아서 'ㅇㅇ 총량의 법칙' 이야기를 한다.  가령, 청소년기에 얌전하던 사람이 늦바람이 난다거나 뒤늦게 사고를 치고 돌아 다닐때, 종종 '지랄 총량의 법칙' 얘기를 하며 웃기도 한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별 짓 다하고 사는건데, 누구나 실수하고 뻘짓하고 엉뚱한 짓 하다가 철이 드는 것인데, 결국 그것을 피해가기는 어려워서 어렸을 때 얌전했던 사람이라면 뒤늦게라도 결국 뻘짓을 하고야 만다는 자조적이며 인생을 관조하는 시각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들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닐땐, "저러다 크면 안그런다" 고 위로할 수 있고,  다 늦게 사고를 치는 멀쩡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릴때 안그러더니 기어코 할 짓은 다 하는구나" 그러나 '지랄'에도 총량이 있으니 저러다 말겠지 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지랄 뿐일까.  선도 악도 결국 총량이 있는게 아닐까?  (사랑은 무한하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상상이라도). 

 

얼마전에 어떤 분이 자녀 문제로 고민이 심각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반에서 힘 센 녀석의 '셔틀'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을 한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은,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분이어서, 그 아이를 이웃의 동급생 아이와 친하게 지내게 하고 그 이웃 엄마에게 아이 돌보는 일을 종종 부탁했는데, 바로 그 집 아이가 '대장질'을 하고 아이를 괴롭힌 것이다. 난감한 처지였다.  믿고 부탁한 것인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  고민고민 끝에 그냥 내가 아이 키우던 시절의 이런 저런 난감했던 상황이나, 내가 성장기에 자행했던 '악행'과 내가 당했던 악행들을 회고하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나쁜짓도 하고 나쁜짓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그런것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했었다. 그냥, 다른 방도가 없으니 "저는 기도해 드릴게요 하느님께" 라고 하고 말았다.

 

얼마후 상황을 물으니, 아이 엄마가 기민하게 대처하여 아이의 문제는 해결 되었는데, 그 '대장질'하던 아이가 대상을 다른 아이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 '대장질' 녀석은 여전히 못되게 굴고 있는데 셔틀을 더 만만한 상대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실소를 하며, "악은 소멸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옮겨가는 것 같군요" 했더니, 옆에 앉아계시던 젊은 목사님이 문득, "성경에도 악이 돼지떼에게로 옮겨가쟎아요"하고 성경 얘기를 꺼내셨다.  아...그렇구나..그냥 이사를 가는 것이구나.

 

그래서 생각을 해 보았다.  마음속에 고통이나 우울감, 악한 기운 그런 것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 심상이 상황에 따라서 이리저리 옮겨 갈 뿐이다. 언제나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것인가.  사랑도, 그리움도, 미움도 모두 모두 대상이 바뀔뿐 바람처럼 늘 내 주위에 맴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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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2. 28. 10:57


이 만평이 왜 문제인가?  (뭐가 문젠데? 하며 뒷통수를 긁적이는 당신. 조금 사색을 해 보시고 다시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


육체노동 정년이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되었다.  일희 일비 한다고 한다.

기쁜쪽은 정년 앞둔 남편이고, 짜증나는 쪽은 취업 앞둔 아들이라고 한다. 가운데서 일희일비 하는이는 중년 아줌마다. 


정년 앞둔 아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취업 앞둔 딸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 처럼 보인다.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가 유독 중년 아줌마인 이유가 뭔가?  중년여자는 정년 앞둔 남편과 취업 앞둔 아들 사이에서 '삼종지도'를 지켜야 하는 여성의 표상인건가?


이 세상엔 아버지와 아들과 중간자로서의 아내/엄마만 존재하는가? 경제 주체로서의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때가 어느때인데 주요 일간지 만평이 이따위인가? (그림 그린이가 남자겠지. 그리고 그는 꼰대이리라. 그에게는 딸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림속의 여성은 그의 아내일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는 전업주부일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의 아내가 직장인이라고 해도 그의 아내는 철저하게 전업주부 역할까지 할지도 모른다. 내가 꼰대랑 살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내가 꼰대일 가능성이 크다. )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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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7. 2. 6. 12:28



지난 2월 3일 (2017년) 디씨에 있는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의 전시품들을 둘러보다 발견한 작품과  작품설명 이름표의 잘못된 만남. 


그러니까 위 그림의 제목이 '갈릴리 호수의 예수' 라는 것이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서 있었다.  그림속에서 호수나 바다를 혹은 예수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웹겁색으로 동 제목과 작가와 국립미술관 검색어를 넣어 보았다. 


동명의 제목과 화가 이름을 넣어서 검색하면 나오는 작품은 아래의 것이다. 국립미술관 소장품이다. 삼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지므로 본래 아래 작품의 이름표가 마땅할 것이다.




그러면....엉뚱하게 '남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전시장 그림의 본래 제목이나 화가는 누구인가?  내가 나름 '짱구'를 굴려서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소재 (여자, 남자, 남자가 여자에게 흰떡 썰은것 같은것 한조각을 내미는 장면, 이러저러한 것들)의 그림 제목에 Last communion of Maria in Egypt 이런 식의 제목이 나온다.  성경이나 성경 주변 일화, 동일한 소재를 화가들이 각자 자기 스타일로 그리므로 아마 '마리아'의 어떤 일화를 그린 그림인듯 하다.  '마리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면 -- 내가 아는 유일한 일화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잠시 이집트로 피신을 한 적이 있다는 것.  아무래도 그 성가족과 관련된 그림 인듯 하다고 추측할 뿐. 아직 구체적인 작품 제목이나 화가를 조사하지 못했다 (아마 안 할 것이다. 의욕이 없으므로.)


옛날에는 미술관에 걸려있는 기독교 관련 그림들을 봐도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고, 금박무늬라던가 알록달록한 화려함에 골치가 아플정도 였는데 지금은 나도 성경적인 지식이 제법 있고, 제법 알고 하니까 이런 그림들이 꽤 재미있고, 그래서 자세히 보다보니 이런 엉뚱한 미술관 직원들의 실수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경비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름표가 잘 못된것에 대해서 서로 진지하게 동의하고, 경비원이 관련 직원에게 연락을 취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는 그냥 발길 가는데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 저녁 디씨에서 저녁을 먹으며, "오늘 내가 미술관 돌면서 봤던 작품들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갈릴리 호수의 예수'.  내가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웹으로 확인해보고 -- 이 그림 참 좋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그림"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지 못한 그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그 작품을 꼭 한번 보고 싶다. 


아, 이름표만 있고 작품은 없었던 그 '갈릴리 호수의 예수' 그림은,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물위를 걸어 오시는 것을 보고 피터/베드로가 주님을 영접하러 나와 물위를 몇걸음 걷다가 그만 물에 빠지는 바로 그 일화를 말하는 듯 하다. 배에서 한발 내밀고 있는, 머리에 원광이 그려진 그이가 베드로일 것이다. 나도 예수님이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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