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20. 11. 10. 15:42

Hope by George Frederic Watts

 

 

어제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두시간 수업을 열정적으로 하고 나면 맥이 풀리고 무척 피로하다), 모르는 어떤 학생이 들이닥쳤다.  아, 며칠전에 학교의 상담선생님이 복도에서 스칠때 누군가를 보내겠다고 했었는데 그 학생이었다. 상담사 과정을 모두 마친, 그래서 국제 대학 기준에 부합하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 선생님이 내게 학생을 보낼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판단하기에 그 학생에게는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지 가늠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잘생기고 틀도 좋고, 유명브랜드의 옷으로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치장하고, 그리고 가방에서 꺼내는 컴퓨터며 갖고 다니는 도구들이 모두 명품들이었다. 내가 갖고싶어하던 태블릿도 꺼내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당연히 자신이 향유할수 있는 것들이란 자세로 그렇게 모든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졌건만.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통의 강을 혼자서 허우적대며 건너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 이제 열아홉 학생이 원형탈모로 머리 피부가 듬성듬성 비쳐졌다.  그는 근심이 많았다.  앞으로 장차 일어날 일에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근심을 했다. 나는 세상에 저렇게 근심이 많은 사람이 있을수 있을까? 경이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이 걱정쟁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제 뇌가 멍청해서 그런겁니다. 제 뇌가 멍청해요."

 

90분간 이 학생과 시간을 보내고 내가 그에게 내 준 숙제는 이것이다: "혹시 말야, 네가 또 나를 찾아올 마음이 들거든 다시 와도 좋아.  그런데 내게 다시 오게 된다면, 너에 대하여 열가지 '장점/좋은점/매력적인점/자랑하고 싶은점'  그러니까 네가 너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 점 열가지를 적어가지고 와서 내게 말을 해줘.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그 학생을 보내고 난 후, 나 역시 심히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열시간 가까이 죽은듯이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하고 우울한 기분. 그 친구에게 나의 기운을 다 빼앗긴것 같은 기묘한 공허감.  나는 속으로 혼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향해 욕을 해 댔다 --"어떤 배 쳐부른 집안이 애새끼를 쥐잡듯 잡아가지고 멀쩡한 애를 아주 못쓰게 만들어 놨구나."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은 왜 그 애를 저한테 보내신겁니까. 저는 능력이 없는데요. 그 녀석의 우울증이 저한테 전염된것 같아서 저도 기운이 없고 기분이 안좋습니다.  하느님, 아픈 애를 저한테 보내셨으면 저한테 아픈애를 돌 볼 기운도 주셔야지요.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약은 입에 쓰나  (0) 2020.11.20
창문을 달았습니다  (0) 2020.11.12
Power of Kakao Talk Class Channel: Real Time Collaboration  (0) 2020.03.13
윤봉길 의사님...  (0) 2020.02.12
'기생충' 쾌거의 아이러니  (0) 2020.02.12
Posted by Lee Eunmee